시집 제목으로 착각할 수 있는 사회학책, 이라고 적으려니 또 마땅찮다. 감정사회학 에세이라고 해야 할까? 김신식의 <다소 곤란한 감정>(프시케의숲). 부제가 ‘어느 내향적인 사회학도의 섬세한 감정 읽기‘다. 소개는 이렇다.

˝비평가 김신식 작가의 ‘심정 3부작’ 출간 프로젝트의 첫 번째 책으로, 사회 현실 속에서 ‘감정’으로 인해 힘겨워하는 이들을 위한 기록이다. 모두 5부에 걸쳐 단어 55개를 선별해 우리가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감정’을 자세히 살펴본다. 탄탄한 감정사회학 연구에 기반을 둔 그의 생각들이 지적인 에세이 형식으로 제시된다.˝

부제만 봐도 사회‘학‘ 책은 아니다. 제목은 몰라도 부제는 보통 출판사에서 붙일텐데, 나 같은 독자는 ‘다소 곤란한 감정‘을 갖게 한다. ‘내향적인‘이란 수식어가 사회학도에게 필요한 것인지 싶어서다. 설사 내향적인 성격이라 하더라도 개인의 성격이란 학문과 무관하거나 참고사항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섬세한 감정 읽기‘라는 표현도 생각하면 군더더기인데, ‘투박한 감정 읽기‘의 사례가 있어야 의미를 가질 터이다. 목차만 보면 책은 55개의 항목의 감정사전에 가까운 것 아닌가 싶다.

그래서 같이 떠올리게 되는 책은 김소연 시인의 <마음사전>(마음산책)과 고종석의 <어루만지다>(마음산책) 등이다(아, 강신주나 아들러의 <감정수업>도 있었구나!). 뒤늦게 발견했는데 책에는 김소연 시인도 (문화연구자 엄기호와 함께) 추천사를 얹었다.

˝그 누구도 나를 목적 없는 선의로 대할 리 없으며, 나의 순수한 선의는 자주 약점이 될 수 있다는 걸 잊지 말 것. 언제나 속마음이 들키지 않도록 포커페이스를 할 것. 속지 않고 살기 위해 타인에겐 되도록 의구심을 품을 것. 언젠가부터 내가 장착하게 된 모토이다. 이 몹쓸 모토 덕분에 내 자신을 나는 더 잘 보호할 수 있게 되었으나, 그래봤자 아주 미미하게 나아졌을 뿐이다. 그에 비해 감정노동의 강도는 어마어마하게 불어났다. 이뿐이면 좋으련만, 하루하루 온갖 말들로 도처에서 받는 상처는 쌓여간다. 받은 상처의 반대편에는 나도 모르게 내가 준 상처 또한 수북할 것이 분명하다. 타인에게 상처를 줬을까봐 내가 한 말들을 뒤늦게 복기하는 괴로움. 당신은 어떠신가. 만약, 당신도 나와 비슷한 피로감으로 살아가고 있다면, 김신식의 <다소 곤란한 감정>을 읽어보길 권한다.˝

아무래도 이 책은 내향적인 독자들을 위한 것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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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정희진의 글쓰기‘에 포함돼야 하는 내용인데 시간적 간격도 있어서 별도로 적는다. 김영하의 <보다>(문학동네)에 대해 적은 설명이 생각의 꼬투리이자 시빗거리다. 저자가 인용한 건 김영하가 영화 <그래비티>를 보고서 우울증에 대해 적은 대목이다. 줄여서 인용하면 이렇다.

˝우울증 환자들은 인간이 혼자라는 것, 죽을 수밖에 없는 가련한 운명이라는 것을 냉철하게 직시한다는 점에서 극단적으로 현실적이다. ‘혼자 죽는‘ 고통을 미리 맛보고 있는 그들에게 삶이 이미 죽음이고 죽음이 곧 삶이다.˝

나로선 우울증에 관한 책들을 더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대목인데, 과연 ˝혼자 죽는다는 사실을 미리 직시한 자˝들로 우울증 환자들을 정의할 수 있는 건지 궁금하다. 절판돼 유감인 책 가운데 하나는 로버트 버턴의 <우울증의 해부>인데(완역본은 아니었다), 기억에 버턴은 우울증의 사회적 조건을 지목하고 있어서 시사적이다. 그 첫번째 조건은 고학력. ‘식자우환‘의 전형적 사례인데, 평균보다 많이 아는 자가 우울증을 앓기 쉽다. 두번째 조건은 사회적인 역할이 할당되지 않는 것. 그래서 남보다 우월한 앎(인식)이 사회적 쓸모와 결합하지 못할 때 발생하는 정서가 우울증이다(19세기 러시아희곡의 제목을 빌리면 ‘지혜의 슬픔‘, 곧 잉여적인 앎이 빚어낸 슬픔이 곧 우울증이다).

단순하게 인간이 혼자라는 사실, 혼자 죽는다는 사실에서 우울증이 발생하지 않는다. 그건 자연적 사실일 뿐이고 삶에 대한 성찰과 성숙의 계기가 될 수 있다. 심지어 그런 주제의 철학서나 문학책을 씀으로써 성취감도 맛볼 수 있다(파스칼의 <팡세> 이후의 허다한 책들). 문제는 그러한 인식을 나누지 못할 때다. 체호프의 단편 ‘우수‘가 여기서는 적합한 사례가 될 수 있겠다. 아들을 잃은 가난한 마부 이오나의 이야기인데, 그에게 아들을 잃었다는 사실보다 더 큰 고통은 그 슬픔을 같이 나눌 사람이 없다는 데 있었다. 다시 말해 ‘혼자 죽는‘ 고통이라는 건 특별히 호들갑을 떨 일이 아니다.

이런 이유로 김영하의 ‘극단적 현실‘론이나 그에 대한 정희진의 맞장구(‘이 정확성!‘)에 나로선 공감하기 어렵다. 정희진은 이렇게 보충한다.

˝‘극단적 현실‘의 당사자도 쓰기 어렵다. 현실은 현실이 아니다. 그것은 언제나 ‘현실적‘이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은 누구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발언은 ‘현실‘을 운전할 수 있는 ‘현실적인‘ 상태인 몇몇 인간만의 특권이다. ‘극단적 현실‘, 즉 현실에서는 도스토옙스키라도 쓰지 못한다.˝

나로선 증상으로밖에 읽을 수 없는 대목이다. 다시 읽어보자. 현실은 현실이 아니다, 현실은 언제나 현실적이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은 누구도 감당할 수 없다, 현실에 대한 발언은 현실적인 상태의 몇몇 인간에게만 가능하다, 극단적 현실로서의 현실에 대해선 도스토옙스키도 쓰지 못한다? 나는 누가 이 대목을 이해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아무려나 도스토옙스키조차도 들지 못하는 ‘몇몇 인간‘에 누가 들어가는지 저자에게 묻고 싶다. 그에 이어지는 문장이 힌트가 될까? ˝홀로코스트 생존자 프리모 레비 같은 이도 있지만, 그는 인간이 어디까지 고통을 견딜 수 있는가를 증명해야 하는 존재로 기대받았고, 결국 자살했다.˝

나는 저자가 도스토옙스키를 읽지 않았고 프리모 레비도 대충 읽었을 거라고 추정하게 된다. 총살 5분 전까지 경험했던 사형수 도스토옙스키는 8년이 넘는 시베리아 유형생활을 경험했고 이를 <죽음의 집의 기록>이라는 소설을 통해 사실적으로 그렸다. 도스토옙스키가 무슨 이유로 호출되어(도스토옙스키라도!) 의문의 1패를 당해야 하는지 나로선 알기 어렵다.

그리고 홀로코스트 생존작가로 프리모 레비가 자살하기 전까지 평생에 걸쳐서 증언한 것이 ‘인간이 어디까지 고통을 견딜 수 있는가‘였던가? ‘결국 자살‘? 저자는 그의 자살을 그의 패배로 해석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가능한 해석이지만 아주 나이브한 해석이다. 레비가 경험한 수용소의 경험은 모든 인간성이 박탈되어 자살조차도 불가능했던 현실이었다. 똑같은 홀로코스트 생존작가로 자살한 장 아메리의 책제목을 빌리자면 두 사람의 자살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주장하고 입증하기 위한 ‘자유죽음‘의 뜻을 갖는다.

저자의 한탄에 따르면 삼사십대에 우울증과 자살연구에 매달렸는데 ˝이룬 것은 없고, 있던 것마저 다 잃˝어서 ˝우울증과 죽음을 해명하지 않으면 다음 날을 맞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각자에게는 자신의 고통과 고독이 절대적일 수 있다. 그건 주관적 진실이다. 내가 유감스럽게 생각하는 건 그걸 객관적인 것으로 과장하면서 애꿎게도 도스토옙스키나 프리모 레비를 들러리로 세운 것이다. ˝도스토옙스키라도 쓰지 못한다˝라거나(저자가 얼마나 읽었는지 궁금하다) ˝프리모 레비 같은 이도 결국 자살했다˝ 같은 문장은 나로선 쓸 수 없는 문장이다. 사실 상상력이 빈약한 탓에 상상도 해보지 못했다.

조금 돌아오긴 했는데 나는 저자의 진의가 도스토옙스키나 프리모 레비를 폄하하는 데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그렇게 읽힐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고 있어서 한 독자로서 불편했다는 것이다. 저자의 어떤 글들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기보다는 하나의 증상이고 그렇게 읽어야겠다는 것. 오랜만에 정희진의 책을 읽고서 정리한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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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2020-03-06 1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실에 대한 발언은 현실적인 상태의 몇몇 인간에게만 가능하다, 극단적 현실로서의 현실에 대해선 도스토옙스키도 쓰지 못한다.‘ 이 부분 제가 읽기엔 도스토옙스키는 ‘몇몇 인간‘에 속하는 걸로 이해됩니다. 저자(정희진)는 현실에서 약간이라도 거리가 생긴 상태를 ‘현실적인 상태‘라고 보는 것 같아요. 현실에 압도되어 있는(‘극단적 현실‘) 상황에선 글쓰기가 어렵다는 뜻이 아닐런지요.

로쟈 2020-03-06 19:53   좋아요 0 | URL
저자는 현실과 극단적 현실을 구분하는 듯하면서도 또, 극단적 현실=현실(‘극단적 현실‘, 즉 현실)이라고 쓰고 있어요. ‘극단적 현실=현실<->현실적‘이라는 것인지. 이해불가한 용어법입니다. 서평이나 칼럼의 한국어 문장이 해독을 요한다면 넌센스입니다..
 

강의가 없어지면서 일상의 루틴도 달라졌다. 반경 500미터 내 카페들을 주로 순례하면서 책과 자료를 읽거나 원고를 쓰거나 교정하는 일을 한다. 백팩에 며칠 들어있던 책이 정희진의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교양인)인데 빼놓기 위해서 몇자 적는다.

몇가지 사실과 인상. ‘정희진의 글쓰기‘가 시리즈로 나오는 듯하고 이번에 두권이 나왔다. 지난해 통과한 박사학위논문(‘반미문학을 통해 본 식민지 남성성의 형성‘)도 아마 곧 출간되지 않을까(석사논문이 <아주 친밀한 폭력>으로 나온 것처럼). 그만큼 현재 가장 ‘대중적인‘ 여성주의 저자가 정희진이다. 글쓰기의 모델?

이번에 나온 책을 포함해 정희진의 글쓰기는 주로 서평이나 칼럼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서평이라 하더라도 책의 내용보다는 책이 준 인상이나 촉발된 생각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에 칼럼적인 성격이 더 강하다. 내가 서평강의에서 권장하는 모델은 아니다. 누군가의 분류대로 서평에 객관적 서평과 주관적서평이 있다면, 정희진의 서평은 장정일의 그것보다도 더 주괸적이다. 그래서 그의 서평에는 책보다도 ‘정희진‘이 더 강하게 드러난다.

서문에서 밝힌 대로 저자는 15년간 한 출판사에서만 책을 내왔다. ˝출판사 교양인에 감사드린다. 지난 15년 동안 교양인, 한 출판사하고만 일해 왔다. 그들의 안목에 대한 절대적 신뢰가 가장 큰 이유이지만, 나의 우울증으로 인한 무기력과 과욕을 오가는기분 장애(변덕)의 범퍼가 되어주었다.˝ 두 가지 이유를 들고 있는데 (1)출판사에 대한 신뢰, (2)그들의 범퍼 역할.

실제로 책에는 저자의 기분이 잔뜩 실려 있는 서평들이 많이 들어가 있다(‘우울증‘만도 아니어서 정확히는 ‘조울증‘이라고 해야겠다). 김영하의 <보다>(문학동네)의 한 대목에 감격하면서 토로한 이력. ˝나는 삼사십대, 이른바 한창나이에 ‘원래 해야 할 일‘은 하지 않고, 우울증과 자살 연구(?)에 매달렸다. 이룬 것은 없고, 있던 것마저 다 잃었다. 어쨌든 우울과 죽음을 해명하지 않으면 다음 날을 맞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읽고 만나고 앓고 써댔지만, 글이라 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 ‘해명‘은 종료된 것인가? 아니면 그의 글쓰기는 그 연장이거나 대체인가?

몇가지 대목에서 물음표를 치고 페이지를 접어두었는데 한곳만 적자면 기형도의 사인에 관한 기술. ˝기형도(1960-1989년). 그는 스물두 살에 백혈병(혈액암)에 걸렸고 그로부터 7년 후에 세상을 떠났다.˝ 심야극장에서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게 공식적으로 알려진 사실이다. 백혈병으로 투병하다가 사망에 이르렀다는 건 금시초문인데(책으로 나온 자료에 그런 내용이 있던가?), 새롭게 알려진 진실인지 착오인지 모르겠다. 저자가 누군가에게 그냥 전해들은 게 아닐까 추정해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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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05 16: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3-05 17: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3-05 19: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3-05 22: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전출처 : 로쟈 > 세계문학전집의 현황과 특징

11년 전에 적은 현황이다. 업데이트가 필요한데 그런 걸 요청하는 지면도, 해볼 만한 의욕도 현재는 갖고 있지 않다. 그렇지만 누군가 써준다면 기꺼이 읽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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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지젝에 대해 알고 싶은 몇 가지

16년 전에 쓴 글이다. 지젝과의 인연이 오래됐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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