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젝 외 2인 공저의 <다시, 마르크스를 읽는다>(문학세계사)를 그제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비교적 술술 읽히던 서론을 지나 본론에 이르게 되니 역시나 모래주머니를 차고 걷는 것 같다. 번역본만으로는 읽을 수 없어서다(많은 지젝 번역서가 그렇긴 하다). 다른 지젝 번역서에 대한 해제를 쓰기 전에 미리 읽으려고 계획했지만 수정이 불가피하다. 이 책만 독파하는 데 일주일은 걸릴 것 같기에.

독서가 더딘 건 물론 부정확한 번역의 탓이 크다. 본론의 세 장 가운데 첫 장이 지젝이 쓴 ‘마르크스, 객체 지향적 존재론을 읽다‘인데(영어 이니셜을 따서 OOO로 지칭되는 객체지향적 존재론에 대해 이번에 알게 되었다. 대표자가 <네트워크 군주론> 등의 책으로 소개된 미국 철학자 그레이엄 하먼이라는 것도. 나와는 동갑내기다), 첫 문장이 이렇다(원서에서는 한 문장, 번역본에서는 두 문장이다).

˝오늘날 우리가 진정 수행해야 하는 마르크스 읽기는 그의 텍스트에 곧장 파고드는 것도 아니고, 오직 상상력에 의지해서 읽는 것도 아니다. 가령 철 지난 마르크스주의를 대체하기 위해 제시된 새로운 이론들에 대해 마르크스라면 어떻게 응대했을지, 연대기 순으로 상상해보는 방식이 그럴 게다.˝

너무 무심한 번역이라 눈을 의심하게 된다. 원문은 이렇다.

˝The reading of Marx we really need today is not so much a direct reading of his texts as an imagined reading: the anachronistic practice of imagining how Marx would have answered to new theories proposed to replace the supposedly outdated Marxism.˝

이 책의 핵심 입장을 담고 있는 문장인데 지젝이 direct reading 대신에 지금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것이 바로 imagined reading이다. 이것이 어떻게 ˝오직 상상력에 의지해서 읽는 것도 아니다˝라고 정반대로 옮겨질 수 있는지(지젝의 입장은 서론에서도 제시됐었다). 그리고 콜론 다음에 이어지는 것은 이 imagined reading에 대한 설명이다. 소위 한물간 마르크스주의를 대체한다는 새로운 이론들에 대해서 마르크스라면 어떻게 답할지 상상해보자는 것. 그것은 ‘연대기 순‘으로 상상하는 게 아니라 시간을 거슬러서(anachronistic) 상상하는 것이다. 죽은 마르크스를 현재로 소환하는 것이니까.

새로운 이론 가운데 대표격으로 지젝은 ‘객제지향적 존재론‘을 들고서 이를 마르크스가 어떻게 읽어낼지(마르크스에 빙의할 필요가 있겠다) 생각해보려고 한다. 이하의 내용들에서 디테일한 수준에서 오역이나 부정확한 번역이 계속 나온다. 안타깝지만 이 번역서 역시도 대충 읽을 때만 유용하지 않을까 싶다. 꼼꼼하게 읽어나가려는 독자라면 좌절할 수밖에 없을 듯해서다. 이미 34쪽에서 (같은 페이지 안에!) <공산당주의당 선언>과 <공산주의당 선언>이 나란히 등장할 때 교열에 대한 기대는 접었어야 했다(설사 통일한다고 해도 ‘공산주의당 선언‘은 뭔가? ‘공산당선언‘에서 ‘공산주의선언‘까지는 이해가 된다 해도).

그러나 어쨌든 지젝 때문에 또 ‘객체지향적 존재론‘까지 공부하게 되었다. 하먼의 책으로는 브뤼노 라투르를 다룬 <네트워크 군주>(갈무리)와 미학서로 <쿼드러플 오브젝트>(현실문화)이 국내에 소개돼 있는데, 참고문헌을 보니 주저가 몇권 더 된다. 대체 어디까지 읽어야 할지 당장은 엄두가 나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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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지젝의 <사이코> 읽기

16년 전에 쓰고, 14년 전에 정리해서 올린 글이다. <항상 라캉에 대해 알고 싶었지만 감히 히치콕에게 물어보지 못한 모든 것>(새물결)은 현재 절판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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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알게 된 사실인데, 지난해 초부터 '사회통합 총서'가 출간되고 있다. 지난해말 현재 5권까지 나온 상황. 연구진을 보니 인하대학교 아시아다문화융합연구소의 연구 프로젝트 결과물로 보인다. 총서의 전체 제목과 각 권 주제만 보아도 기획의도를 짐작해볼 수 있다. 


"한국 사회는 주류사회 중심의 일방향적이고 일시적인 동화 형태의 사회통합이 아니라, 이민자를 정주민과 동일한 위치에서 공존과 상호문화적 소통이 가능한 다문화사회를 만들어나가기 위한 양방향적 사회통합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를 위해 이주배경과 한국 사회에서의 적응 양상에 따라 유형을 구분하여 개인 및 집단별 맞춤형 사회통합정책이 필요하며, 이주민뿐만 아니라 정주민을 포함한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사회통합정책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사회통합의 대상은 이주민만을 제한적으로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주민을 포함한 한국 사회 시민 모두가 그 대상이기 때문이다."


당장 책을 읽을 일은 없을 듯싶지만 언젠가 동남아시아권 문학을 다루게 되면 참고해보려고 한다. 그래도 일단은 출간의 의의를 높이 사서 리스트로 묶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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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야 할 원고들과는 별개로 강의가 없다는 이유로 평소에 엄두를 내지 못했던 책들을 책장에서 꺼내게 된다. 정신분석사가 엘리자베스 루디네스코의 평전 <자크 라캉>(새물결)도 그 중 하나다. 2000년에 나온 책이니 20년만이다(이미 절판 모드로 들어갔군).

독서가 늦어진 건 원서(불어판은 아니고 영어판)를 구한 다음에야 읽는 습관 때문인데 원서를 구한 이후에도 희한하게 책을 손에 들지 못했다. 책이사를 하면서 원서와 번역본 모두 한동안 시야에서 사라졌었기 때문. 다시 발견하여 서가에 꽂아두었지만, 서가에서도 또 시야에서 놓쳤다. 그런 숨바꼭질 끝에 엊그제야 재발견하여 따로 빼놓았고 비로소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안 그래도 재작년에(영어판 기즌) 바디우의 <라캉>이 출간돼 모아서 읽어볼 기회를 노리던 터였다.

루디네스코와 바디우의 대담집 <라캉, 끝나지 않은 혁명>(문학동네)을 기억하는 독자라면 바디우의 책에서 왜 루디네스코까지 연상하게 되었는지 아실 것이다. 짐작에 바디우의 <라캉>은 번역이 진행되고 있지 않을까 싶다. 언제일지는 모르겠지만 번역본이 나오기 전에 루디네스코의 평전까지는 완독해두어야겠다. 책이 나온 지 20년이 되었다고 적었는데 앞으로의 20년은 기약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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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09 21: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3-09 21: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omandante 2020-03-09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루디네스코가 쓴 전기 정말 재미있더라구요..

로쟈 2020-03-10 08:21   좋아요 0 | URL
네 아직까진 더 나은 책이 안 나온 듯..
 

저녁에 생각이 나서 서가에서 찾은 책은 조동일 선생의 <소설의 사회사 비교론>(전3권)이다. 세계문학과 문학사에 대해 강의해오다 보니 주제상으로는 말 그대로 ‘소설의 사회사 비교‘가 주된 관심사가 되있다. 다만 동아시아권의 전통적인 ‘소설‘과 달리 나의 관심은 근대소설(Novel)에 한정된다. 루카치가 <소설의 이론>에서 말하는 소설이란 장르의 탄생과 발전, 그리고 현대세계에서의 운명이 나의 관심사이고 강의의 레퍼토리다.

이런 주제를 가장 폭넓게 다룬 학자로 조동일 선생이 대표적이다. 세계문학사와 한국소설의 이론에 대한 관심도 내게는 모범과 전례가 된다(구비문학에 대한 관심만은 선생과 공유하지 않는다). 직접적인 인연은 학부 1학년 때 들은 한 학기 강의(대학국어)에 한정되지만 당시에도 몇권의 책을 읽었더랬다. 춘향전과 홍길동전 등을 제외하면 한국고전문학에 대해서는 특별한 관심주제를 갖고 있지 않아서 <한국문학통사>도 나는 일부만 읽었을 뿐인데, 이제 ‘소설의 사회사‘란 주제로 다시 만나게 된다.

확인해보니 책은 2001년에 나왔고 나는 9년 전인 2011년에 구입했다(서고에 가 있을지 모르겠다). 나로선 책을 구하고도 거의 10년만에, 출간으로 치면 거의 20년만에 정색하고 대면하는 게 된다(물론 책을 먼저 찾아야 하지만). 그 사이에 이에 견줄 만한 책이 더 나오지도 않았다. 책이 아직 절판되지 않아서 다행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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