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저널 담비의 리뷰를 가끔 스크랩해놓는데, 이번에 옮겨오는 것은 영국 비평가 매슈 아놀드의 '교양'론에 관한 것이다. '매슈 아널드'의 <교양과 무질서>(한길사, 2006)는 예전에 '최근에 나온 책들'에서 다룬 바 있지만 아직까지 손에 들어보지 못했는데 전공에 대한 관심사와도 맞물려서 조만간 훑어보기라도 할 작정이다. 아놀드 비평의 요체를 되짚어본 논문에 대한 리뷰를 워밍업으로 읽어둔다. 

담비(07. 03. 23) 매슈 아놀드의 '교양'을 다시 논하다

매슈 아놀드(Matthew Arnold, 1822~1888)는 영미 신비평(New criticism)이 활개를 쳤던 지난 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국내 인문학 담론 전반에서 널리 인용된 학자이다. 비평의 인문주의적 기능을 확립시킨 그는 어떠한 사적 의도도 갖지 말고 작품을 대하라는 '몰이해적 관심'(disinterestedness), 이제까지 존재한 최상의 작품과 비교해보았을 때 손색이 없어야 비로소 뛰어난 작품이라는 '시금석 이론' 등으로 유명하다.

F. R. 리비스와 에즈라 파운드에 의해 정초된 문학 텍스트주의가 미국으로 건너가 남부 귀족 교수들의 보수적 세계관과 맞아 떨어지면서 제도권 평단을 석권했다는 비판이 있듯이, 이들의 사상적 鼻祖(비조)에 해당하는 매슈 아놀드 또한 그간 좌파 비평가들에게는 우파 부르주아 비평관의 원조격으로 비판을 받아왔다. 소위 아놀드 때리기와 이에 맞선 아놀드 구하기가 영미 문학계 내부에서 진행되어온 것이다. 

아놀드는 프랑스 혁명 후 영국사회에 불어닥친 이념의 혼란상을 타개하기 위해 '비평' 기능의 회복을 주장하거나, 대중들의 민주주의적 열망이 대중주의로 흐르는 것을 경계하면서 '교양' 개념을 통해 대중의 문화적 수준향상을 꾀하려했던 인문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현 시기 비평의 기능'(The Function of Criticism at the Present Time, 1864)과 '교양과 무질서'(Clture and Anarchy, 1869) 등의 저작을 통해 새로운 비평을 제안하고 그 핵심으로 교양 개념을 제시했다.

이런 아놀드의 기획에 대해 전형적인 맑스주의적 비평을 가한 이는 테리 이글턴이다. 그는 아놀드가 당대 계급세력의 급진적인 재편을 지배블럭 안에서 효과적으로 달성함으로써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기존체제로 포섭하는 데 그 목적을 두었다고 비판했다. 귀족계급이 급속도로 정치적 헤게모니를 잃어가고 있는 시점에서 부르주아의 정치적 헤게모니 장악을 위한 문화적 패권 확보가 아놀드의 주된 관심사였다고 본 것이다. '문학에서 문화연구로'의 저자 앤서니 이스트호프 또한 "아놀드의 교양이념에서 문학이 계급갈등을 희석시키고 국가적인 조화를 긍정함으로써 직접적으로 정치적 역할을 수행했다"고 본다.

이글턴과 이스트호프는 당연히 문학의 정치적 읽기로 나아간다. 이들의 단골메뉴는 대중문학(문화)과 고급문학(문화)의 위계철폐다. 그러나 요즘 이런 주장의 효력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오늘날의 대중문화는 대중들의 민주주의적 열망을 담아내기보다는 자본의 확장에 동원되는 측면이 훨씬 강하기 때문이다.

이런 시점에서 철지난 '아놀드 때리기'와 '구하기'에서 벗어나 그의 핵심사유를 다시 읽어보려는 시도가 있어 눈길을 끈다. 김재오 영남대 교수(영문학)가 최근 '19세기 영어권 문학' 제10권 2호에 발표한 '아놀드의 사상-민주주의, 비평, 그리고 교양'이 그것이다. 김 교수는 "아놀드가 오늘날 대중문화의 자본종속과 같은 사태를 누구보다 우려하고 그 폐해를 실감했다"는 점에서 볼 때 "아놀드의 비판대상이 되었던 관점으로 아놀드를 비판하는 것은 문제의 핵심을 흐리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대부분의 평자들이 아놀드의 이데올로기적 입장만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 "아놀드의 주장을 거꾸로 읽어야 올바른 독자가 되는 것처럼 착각하는데, 이것이야말로 '이데올로기 효과'"라며 김 교수는 목소리를 높인다. 아놀드의 현실인식이 '정치적 정답'과 일치하느냐의 여부보다 그의 비평과 교양개념에 담긴 당대적 의의를 살펴보는 것이 인문학의 위기라는 오늘날의 현실을 진단하는 데 유용한 참조틀이 될 것이라며 아놀드 다시 읽기를 시작한다.

우선 김 교수는 아놀드의 첫번째 비평적 주저에 해당하는 '현 시기 비평의 기능'이 프랑스 혁명 후의 영국사회의 변화상에 대한 사상적 대응이라는 점을 환기시킨다. 아놀드가 보기에 당시의 문인들은 소포클레스나 셰익스피어처럼 '창조성'이 중요한 사상의 흐름 속에 있지 않았다. 그것보다 '인간의 힘'과 같은 것이 부족했고 필요했다. 아놀드는 바이런과 괴테가 위대한 창조력을 갖고 있었지만 괴테가 삶과 세계에 대해 폭넓게 알고 있었기 때문에 생명력이 더 오래갔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아놀드는 워즈워드를 비롯한 이전 세대 시인들이 프랑스혁명의 여파를 전 유럽적인 관점에서 파악하지 못했고, 그 이념의 전파가 몰고 올 영국사회의 변화를 넓은 시야에서 바라보지 못한 점이 불만스러웠다.

먼저 프랑스혁명과 영국혁명의 차이를 보자. 아놀드가 보기에 프랑스혁명은 이성에 대한 믿음에 기초한 보편적이고 항구적인 사상에서 그 동력을 발견한 것이었고, 영국의 경우는 법이나 양심 등의 실제적인 감각에 기초한 것이기에 보편적 호소력을 지니지 않았다. 하지만 아놀드는 프랑스 혁명을 두개로 쪼개서 보았다. 사상적 혁명에서는 성공했지만, 정치적 혁명에서는 실패했다고 말이다.

그런 차원에서 그는 에드먼드 버크에 동조했다. 버크는 프랑스의 과격한 혁명문화가 영국에 밀어닥칠 것을 우려한 대표적인 보수파 지식인이다. 주권재민의 원칙은 영국에서 시발되었으나 권리장전에 채택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것이 프랑스로 건너가 형멱의 핵심으로 자리잡았다. 이에 대해 버크는 다음과 같이 비유적으로 정리했다. "주권재민의 원리는 영국 토양에 전적으로 맞지 않으나 영국에서 자란 가공되지 않은 산물로서 어떤 사람이 이중의 사기로 불법적으로 선적해 [프랑스에] 수출한 위조품이다. 이 수출의 목적은 이 위조품을 향상된 자유라는 최신 프랑스식의 유행을 따라 다시 제조해서 영국에 밀수입하려는 데 있다."

대단히 역동적인 정리가 아닐 수 없다. 아무튼 여기서 아놀드가 읽어낸 교훈은 "훌륭한 사상들을 정치적이고 실제적인 부분에 즉각적으로 적용하려는 열광은 치명적"이라는 것이다. 사상은 '그 자체로' 평가해야 하나 자신들의 요구에 따라 사상의 본질을 왜곡하면서까지 세계를 변혁하고자 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보았다. 김 교수는 여기서 "아놀드의 사상은 정치이념으로서의 성격보다는 한 문화를 성장시키는 정신적 토양에 가깝다"라는 점을 지적한다. 이 명제가 김 교수 논문의 핵심이다.

아놀드는 프랑스 혁명사상이 과연 보편적인가를 심각하게 질문했던 것이다. 그 방식은 바로 그것을 영국사회의 특수성 속을 통과시키는 것이었다. 거기서 그것은 '추상적'이라는 판단을 받게 된 것이고.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지 현실세계에 작용하는 '사상'에 대한 필요성이 아놀드에게 제기될 수밖에 없었다. 그의 '교양' 개념은 이런 필요성에 따라 등장한 개념이라고 김 교수는 말한다.

이 '교양'이 '프랑사(*프랑스)의 사상'과 다르게 하기 위해 그는 독일에 눈을 돌렸던 듯하다. 쉴러 같은 독일 관념론자들에서 잘 나타난 '인격도야(Bildung)의 개념이 그것이다. 리딩스(Bill Reading) 등의 지적에 따르면 독일 관념론자들의 기획은 지식과 역사적 전통을 미학적 이데올로기를 통해 매개하여 변증법적 통일을 이루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교양(문화)의 이상을 드러내는 일과 개인의 발전을 하나의 과정을 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독일과 영국의 국민적 기질은 거의 상반됐다. 민족적 정체성보다는 개인주의가 강력하게 뿌리내리고 있었다. 따라서 아놀드는 개인적 도야를 역으로 틀어 당시 영국에 퍼지던 물질적 문명에 대한 맹신, 강한 개인주의, 융통성의 부족(똘레랑스의 실종?) 등의 문화적 에토스에 대한 대응으로서 '교양'을 설정했다.

교양이 개인적인 관점에서는 학문적 열정으로, 이웃에 대한 사랑과 선행에의 충동, 인간적 오류를 개선하려는 사회적 동기와 결합한다. 무엇보다 아놀드는 교양의 이념을 국가 개념과 결합시키려고 노력한다. 노동계급이 오랜 봉건적 습속에서 벗어나 자유 그 자체를 숭배하는 무질서한 경향이 뚜렷해지는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볼 때 아놀드의 노동계급에 대한 시각은 일방적인 면이 있음을 김 교수는 인정한다.

계속 지적하자면 아놀드에게는 계급의 현실이 부차적이거나 항상 생략됐다. 교양의 작용이 계급을 없애려면 계급간의 정치적, 경제적 불평등의 해소는 우선적 고려사항이 되어야 하는데 말이다. 이런 측면에서 레이먼드 윌리엄즈가 "아놀드 교양이념의 재료를 발견할 수 없다"고 비판한 것은 설득력을 지닌다. 우리의 탁월한 윌리엄즈는 "교양개념은 올바른 실천과 앎이 결합된 '하나의 과정'으로 이해되지 않고 '앎'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일종의 '물신'이 되어버렸다"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결론에서 아놀드의 교양개념이 현실을 수용하지 못한 측면이 많지만, 성숙한 민주주의 사회로 나가는 길목에 '교양'의 이념이 있음을 강조했고, 그 이념을 당성하는 데 '문학'의 역할이 있음을 알렸다는 측면을 높이 평가한다. 김 교수의 논문은 아놀드 사상의 역사적 배경과 전개, 그 장단점을 잘 정리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 주변의 교양이라고 일컬어지는 가벼운 것들과 아놀드의 교양을 비교해볼 필요는 충분히 있을 듯하다.(리뷰팀)

07. 03.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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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07-03-24 17:16   좋아요 0 | URL
예전에 문학권력 논쟁하던 무렵에 강준만 교수가 덕성여대 영문과 윤지관 교수를 비판하면서 매슈 아놀드를 언급했던 게 기억이 나네요. 윤지관 교수가 스스로 진보적이라고 주장하면서도 철지난 보수적 이론가인 아놀드를 가지고 얘기하고 있다고 비판한 것 같은데^^ 그 이상은 아는 바가 없네요. 그때의 논쟁은 어떻게 정리가 됐었나요?

로쟈 2007-03-24 23:01   좋아요 0 | URL
네, 저도 기억은 나는데, 결말은 모르겠습니다(결말이 따로 지어졌는지도 모르겠구요).^^; 백낙청 교수의 경우도 그렇지만 '보수적 비평가'를 준거로 삼는 건 창비의 기본 포지션입니다. 그 자체가 비난받을 만하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징후적이란 생각은 합니다...
 

이번주에 나온 신간들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끈 책은 <세계를 뒤흔든 열흘>의 저자 존 리드의 평전이다. 워렌 비티가 감독과 주연을 맡았던 영화 <레즈>(1981)의 원작이었다고도 하니까 로젠스톤의 원저 자체는 좀 오래된 책이다. <낭만적 혁명가(Romantic Revolutionary)>(1975)가 그 원제이다. 32년만에 번역된 것에 의의가 있다기보다는 러시아혁명 90주년을 맞는 해에 번역되었다는 사실이 더 뜻깊다고 하겠다. 프레시안에 실린 리뷰가 자세하기에 옮겨놓는다.

 

프레시안(07. 03. 22) 진정 이 시대엔 '혁명'이 사라졌는가

"철도공무원." 얼마 전 한 TV 프로그램에 출연한 어린이가 장래 희망을 묻자 망설임없이 이렇게 답하는 것을 봤다. 그 어린 나이에 '장래 희망'을 구체적인 '직업'으로 콕 짚어 이야기한 것도 놀랍지만, 철도공무원이 되고 싶은 이유를 물어보자 "직업이 안정적이잖아요"라고 대답한 대목에선 경악을 금치 못했다(안타깝게도 그는 너무 어려 지난 2005년 철도청이 민영화돼 철도공사로 전환된 사실은 모르고 있는 듯 했다). 채 열 살도 안 된 어린 소년이 추구하는 삶의 궁극적인 목표가 '안정적 삶'이라는 사실은 어느덧 '불안'이 사회를 지배하는 키워드가 돼버린 21세기 초 한국의 자화상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했다.
  
하지만 자아가 확립되기 이전 단계에서부터 '부'와 '안정적 삶'을 목표로 삼는 것이 자본주의 체제 형성 이후 어느 사회에서든 일상적으로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을 역설적이게도 러시아 볼세비키 혁명을 취재한 책 <세계를 뒤흔든 열흘>을 쓴 존 리드(Jhon Reed)의 평전을 통해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백만장자를 꿈꾸던 청년이 혁명가가 되기까지
  
최근 출간된 로버트 로젠스톤의 <존 리드 평전- 사랑과 열정 그리도 혁명의 투혼>(정병선 역. 아고라 펴냄)에 따르면, 대학 시절 존 리드는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모든 것은 이렇게 요약된다. 행복과 모험, 아니면 돈과 판에 박힌 일상." 그리고 대학 졸업을 앞두고 몇 개월간 유럽을 여행한 뒤 미국으로 돌아오면서 리드는 두 가지 인생 목표를 설정했다. "백만장자가 되는 것과 결혼하는 것." 물론 그는 시간이 지나면서 '돈과 일상'이 아닌 '행복과 모험'을 택했다.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그의 삶에도 불행한 순간이 많았지만.


  
특히 기자로서 그를 변화시킨 결정적인 계기는 1913년 봄 뉴저지 주 패터슨 노동자 파업 취재였다. 그는 이 파업을 취재하다가 경찰에 체포돼 감옥에 구금됐다. 이 경험에 대해 그는 "나는 영웅도 아니고 순교자도 아니다. 모든 것이 한바탕의 장난일 뿐"이라고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 썼지만, 대학시절 낭만주의적 발상으로 고기잡이 배를 탔던 것과 나흘에 불과했지만 노동자들과 함께한 감옥 생활은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가 낭만주의적 지식인에서 실천적 지식인으로 변화해가는 과정은 1914년 판초 비야가 이끄는 멕시코 원주민 반군을 취재해 쓴 <반란의 멕시코>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이 책에 대해 그의 친구는 "멕시코는 물론이고 너와 함께 약동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또 그는 "멕시코 혁명을 취재하면서 대의가 삶보다 더 중요해질 수 있다는 것을 이해했다."
  
리드는 유럽 전역에서 제1차 세계대전을 취재하면서 철저한 반전주의자가 됐다. 전쟁을 두고 미국 내 진보적 지식인과 예술가, 급진주의자들의 공동체가 혼란에 빠졌고, 종국에는 대다수가 전쟁에 찬성했지만, 그는 국회의사당에 출석해 전쟁 반대 주장을 폈다. 이 일을 계기로 그는 사실상 '실업자'가 됐다. 어느 매체도 공개적으로 전쟁 반대 입장을 밝힌 그에게 일거리를 맡기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혁명'의 기운을 감지하고 러시아로 건너가 1917년 11월 볼세비키 혁명을 목격했다. 그는 "대중의 승리"인 이 혁명의 기록을 담은 책을 두 달 만에 완성했다. 이 기록이 바로 에드가 스노우의 <중국의 붉은 별>, 조지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와 함께 세계 3대 르포르타주로 평가받는 <세계를 뒤흔든 열흘>이다.

한 세기의 시간을 두고 변한 것은 무엇인가
  
그는 볼세비키 집권 이후 소비에트 선전국에서 일했으며, 뉴욕 주재 소련 영사로 임명되기도 했다. 그는 미국에서도 '대중의 승리'를 꿈꾸며 공산주의 노동당을 창당하고 코민테른의 승인을 받으러 러시아로 갔다가, 1920년 모스크바에서 발진티푸스에 걸려 사망했다. 그는 레닌을 비롯한 동지들의 애도를 받으며 미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크렘린에 묻혔다. 안타깝게도 그가 1776년 '독립 영웅'들 이외의 혁명가들은 존경받지 못 하는 미국인이라 점에서 자국민들의 기억 속엔 깊이 남아 있지 못하지만 말이다.

그나마 그에 대한 기억이 환기된 것은 1981년 이 평전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영화 <레즈(Reds)> 덕분이다. 이 영화는 그해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았다(*착오로 보인다. 그해 작품상은 <불의 전차>가 수상했으며 <레즈>는 감독상과 여우조연상 등을 수상했다. 오래전에 본 이 영화를 며칠전에 상기할 수 있었는데, 보드리야르가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한 대담에서 털어놓을 걸 읽었기 때문이다. 아래는 1927년 사망한 존 리드의 모스크바에서의 장례식).

서른셋 짧은 생을 불꽃같이 살다간 리드의 평전을 읽다보면 100년 가까운 시간과 미국과 한국이라는 공간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크게 달라지지 않은 현실에 다시 한번 놀라게 된다. 리드는 1913년 패터슨 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뉴저지주 패터슨에서 전쟁이 일어났다. 그러나 그것은 이상한 전쟁이다. 일방적으로 한쪽, 다시 말해 공장 소유주들만이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들의 하수인인 경찰이 저항하지 않는 남녀를 곤봉으로 구타하고, 법을 준수하는 군중을 탄압하고 있다. 그들에게서 돈을 받은 용역 깡패들이 총탄을 사용해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고 있다. 그들의 신문인 <패터슨 프레스>와 <패터슨 콜>은 선동적이고 범죄를 조장하는 기사를 씀으로써 파업 지도자들에게 폭력을 가하도록 조장하고 있다. 그들의 끄나풀인 캐럴 치안판사는 경찰서에서 잡아들인 평화 시위대원들에게 중형을 선고하고 있다. 그들이 경찰과 언론, 법원을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자본가들과 경찰, 법원, 그리고 주류 언론의 '끈끈한 관계'는 사실상 변한 게 없다. 또 당시 패터슨 노동자들의 요구는 '8시간 노동'과 '최저 임금'이었다. 이는 현재의 대다수 노동자들도 여전히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또 리드는 1916년 미국의 참전 여부를 놓고 논란이 일 때 아래와 같은 이유를 들어 전쟁을 반대했다.
  
"근로대중은 자신의 적이 독일이나 일본이 아님을 깨달아야만 할 것이다. 국가의 부를 60%나 소유하고 있는 미국의 2%가 근로대중의 적이다. 근로대중의 재산을 빼앗아간 이 사악한 '애국자' 집단이 이제는 그들을 군인으로 동원해 자신들의 약탈재산을 보호하려 획책하고 있다."
  
존재하지도 않는 '대량살상무기'를 들어 이라크를 적으로 설정한 지금의 전쟁에서도 딕 체니 부통령의 헬리버튼 등 부시 정권과 결탁한 미국 군수업체들만 엄청난 이득을 보고 있다. 이 전쟁에서 죽어 나가는 것은 근로대중들의 자녀인 동원된 군인들과 점령국의 무고한 민중들이다.
  
무엇을 기록하고 무엇을 남길 것인가
  
하지만 20대 초 백만장자를 꿈꾸던 평범한 청년이 혁명가가 된 것은 그의 특출함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그는 여자를 밝히고, 한때 부인의 배신에 괴로워하고, 돈벌이를 위해 글을 쓰기도 하는 등 지극히 평범한 인간이기도 했다. 다만 그는 역사의 흐름에 적극적으로 몸을 맡겼고, 자신의 방식으로 역사에 발자취를 남겼다.


  
그로부터 100년 가까이 지나 더 이상 '혁명'을 꿈꿀 수 없다는 21세기 초,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새로운 저항들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또 미국이 일으키고 있는 전쟁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큰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남미에선 여러 국가들에 좌파 정부들이 들어서고 있다. 이들은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리드는 <세계를 뒤흔든 열흘> 서문에서 "내 감정은 중립적이지 않았다"고 썼다.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시각이 과연 누구의 시각인가를 다시 한번 뒤돌아보게 만드는 말이다. 살아가면서 무엇을 기록하고 무엇을 남길 것인가. 전혀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살다간 기자이자 혁명가인 그의 삶이 우리들에게 던지는 질문이다.(전홍기혜 기자) 

07. 03.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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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23 09: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3-23 11: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7-03-24 12:35   좋아요 0 | URL
ㄱ님/ 품성론은 그래서 나오는 것인데, 그것이 '과학'과 결합되면 '인간개조론'이 되는 것이죠...
ㅁ님/ 러시아혁명 자료를 찾으면서 비디오로 보아서인지 전반부를 몰입해서 보지 못했습니다. 스크린으로 본다면 느낌이 좀 다를 거란 생각은 드네요.^^
 

레디앙의 연재물 '세계의 사회주의자'에 뜻밖에도 가라타니 고진 편이 다루어졌기에 옮겨놓는다. 단서조항이 없을 수 없는데, 편집자도 옮겨놓고 있는 필자의 견해에 따르면 "그가 사회주의자일 수 있다면, 자신이 새로 만들어낸 기획 속에서일 것"이라는 게 '사회주의자 고진'의 근거이다. 알다시피 고진이 "새로 만들어낸 기획은 NAM을 의미한다". 안 그래도 고진의 <일본근대문학의 기원> 책상에 올려놓은 지가 오래인데 바쁜 일들이 얼른 지나가기만을 바랄 따름이다. 아래의 연재는 고진에 대한 개괄적인 소개로도 읽을 만하다.

레디앙(07. 03. 20) '몰락 이후' 쉰이 넘어 코뮨주의자 되다

잊고자 쓰는 사상가가 있다. 그는 개념으로 성을 쌓지 않는다. 남들이 자신의 착상을 하나의 방법론으로 차용할 때면 그 자리에 불을 지르고 떠난다. 형이상학을 극도로 경계하며, 따라서 세계를 하나의 이야기로 지어내는 예언을 멀리한다. 이런 성향을 가진 이에게 ‘~주의ism’는 사상의 죽음을 뜻한다. 예수가 아닌 바울이 기독교(예수주의)를 만들었듯, 마르크스주의가 엥겔스의 산물이듯 ‘주의’는 사상이 하나의 체계로 구축되며 시작된다. 그래서 이동을 감행하는 사상가에게 ‘~주의’는 사상이 멈춰선 자리, 즉 죽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사회주의적 전망이 상실된 90년대에, 그것도 쉰이 넘고 나서야 그는 코뮨주의자가 되었다. 바로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의 이야기다.



비평은 위기적 상황으로 자기를 내모는 것

가라타니 고진은 1941년 일본의 효고현에서 태어났다. 10대에 문학 작품을 탐독했지만 문학을 하나의 장르로 다루는 데에 반감을 품고 있었으며, 결국 도쿄대학 경제학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그의 사상적 행방은 문학비평가로 시작되었다. 스물아홉에 가라타니 고진은 <소세키론>으로 군조오 신인문학상을 거머쥐면서 문학계에 두각을 나타냈다. 물론 이 시기 그는 영문과 대학원을 진학했지만 경제학과 출신의 문학비평가라는 다소 어색한 그의 이력을 두고 의아해할 필요는 없다. 경제학이든 문학이든 그는 분과학문을 한다는 의식을 갖지 않았다. 다만 그에게는 형이상학과의 싸움이 절실한 문제였다.

형이상학은 역사의 배후에서 역사를 움직이는 이념을 발견한다. 한국에서 널리 읽힌 그의 초기 저작 『마르크스, 그 가능성의 중심』(1978)과 『일본근대문학의 기원』(1980)은 형이상학과의 대결이라는 문제설정을 경제학과 문학이라는 각기 다른 방면에서 펼쳐낸 것들이었다. 그는 이 저작들에서 자본주의와 근대문학을 하나의 형이상학적인 장치로 해명하여 근대인들을 속박하는 관념의 그물을 걷어내고자 했다.

아마도 가라타니 고진이 스물여섯에 발표한 첫 번째 평론 「사상은 어떻게 가능한가」는 이런 점에서 그의 사상적 원점을 이룬다고 하겠다. 그 일절을 주목하자. “사상과 사상이 격투한다고 보일 때도, 실상은 각자의 사상적 절대성과 각자의 현실적 상대성이 모순되는 지점에서 은밀히 행해지는 연기에 지나지 않는다. 서로 다른 사상이 각자의 절대성을 주장하는 곳에서 결전이 이루어진 예는 한 번도 없다.”

확실히 가라타니 고진은 ‘비평가’로서의 자기의식을 갖고 출발했다. 그에게 비평은 다른 텍스트에 기대어 자신의 입장을 전하거나 편을 짓는 작업이 아니었다. 비평이란 사상의 결전이 치러지는 장소 밑바닥에서 이뤄지고 있는 역할극을 끝까지 주시하는 일이다. 대치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입장 가운데서 하나를 택하는 일이 아니라 그렇게 대치할 수 있는 조건, 그 무의식적 구조를 해명하는 일인 것이다. 그 조건과 구조를 밝힌다면 날이 선 온갖 사상적 입장들은 형이상학의 성채를 두르고 있던 부속물임이 드러난다.

물론 이러한 비평에는 으레 자신은 상처입지 않으면서 상황 밖에 서 있다는 푸념이 따르곤 한다. 하지만 고진은 홀로 옳은 곳에 서 있고자 비평하지 않았다. 그에게 비평(critique)이란 위기적인(critical) 상황으로 내몰리는 일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비평 대상만이 아니라 비평하는 자신도 그래야 한다는 점이다. 사상가가 자신의 발화를 자명하다고 여겨 더 이상 거리낌을 갖지 않는다면, 사상은 어느새 상업성을 띤 선교가 되고 만다. 가라타니 고진에게 비평이란 자신을 불명료함으로 내몰아 선교사의 입장을 피하는 일이었다.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사실이 있다. 가라타니 고진이 비평가로서 자신의 사상을 개척해나가던 60년대 후반은 서구 지성계에서 소련식 사회주의에 대한 비판이 제기된 시기이자 반체제 운동이 번져나가던 시기였다. 전공투의 역사를 지닌 일본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았을까. 그는 다만 난무하는 여러 입장들을 곁눈으로 흘기며 자신의 속도로 걸어갔다. 당시 제기된 인간적 마르크스주의도 반체제 운동이 보여준 열정도 그에게는 ‘이념이 만들어낸 병’에 불과했다. 그 무렵의 학생들처럼 거리로 나섰으나 이내 회의를 느끼고는 이념을 걷어낸 자리를 끝까지 응시한다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다. 그는 어떠한 ‘주의자’도 아니었다. 젊은 시절 그에게 입장이 있다면 그것은 모든 입장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어야 했다.



태도 전환

이후 가라타니 고진의 사상적 노정은 『탐구』에서 결실을 이룬다. 형이상학과 맞서 싸운다는 버거운 작업으로 삼십대에 심한 우울증을 앓기도 했지만, 그는 『탐구』를 통해 자신의 스스로 병을 치유했다. 1985년부터 1988년까지 그는 잡지 『군조우』에 『탐구』를 연재했다. “내가 『탐구』를 연재하면서 계속 질문했던 것은 ‘사이’ 혹은 ‘외부’에서 살아가기 위한 조건과 근거였다 할 것이다.”(『탐구Ⅰ』후기) 가라타니 고진은 『탐구』에서 ‘타자의 문제’를 해명하여 역사에 대한 목적론을 부정하면서도 그 반편향으로 해체주의 마냥 어려운 지적 수사에도 빠지지 않는 ‘삶의 비평’을 일궈냈다. 90년대로 넘어가기 직전에 나온 이 책을 두고 일본의 사상지 『유레카』는 90년대 일본 최고의 책으로 선정했다.

그러나 정작 가라타니 고진은 90년대에 들어서자 『탐구Ⅲ』을 쓰겠다던 계획을 중단한다. 가라타니 고진이 90년대 이후 쓴 저작들을 보면 무언가 적극적인 발언을 하겠다는 충동이 가득 묻어난다. 하나의 선명한 입장을 갖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의 태도 전환이 응축되어 있는 저작이 바로 10년간 거듭해서 써낸 『트랜스크리틱』(2000)이다. 『트랜스크리틱』은 확신으로 씌어진 책이다. 그는 이 책의 서문에서 “광명을 보기 시작했다”고까지 표현하는데, 사상의 구석진 자리를 응시하려던 과거의 태도와는 사뭇 다르다.

확실히 가라타니 고진은 1989년까지 사회주의라는 이념을 경멸해 왔다. 그는 어떠한 입장에도 속하지 않고 비평하는 자리에 서 있었다. 그러나 그는 사회주의권이 몰락하자 자신이 과거 마르크스주의적 정당이나 국가를 비판할 수 있었던 것은 그것들이 지속된다는 전제 아래 유효했음을 자각하기 시작한다. 사회주의는 역사의 ‘거대 서사’와 함께 종언했지만, 아울러 몇 가지 현상이 일어났다. 사회주의의 종언이 서구식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승리라는 ‘서사’가 등장했으며, 민족주의와 원리주의라는 ‘서사’가 부활했다. 아울러 모든 이념을 조소하는 냉소주의도 만연했다.

따라서 가라타니 고진은 사회주의가 현실적으로 끝났을지언정 사상적으로는 끝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오히려 자본주의를 극복할 현실적인 기획에 몸을 담았다. 90년대의 상황이 학문적으로는 회의론적 상대주의가 범람하고 정치적으로는 사회민주주의의 우월성이 구가되었으나 그것들이 점차 파괴력을 잃어갔다는 사정을 감안한다면, 우리는 가라타니 고진이 시대의 변화와 아울러 새로운 곳에서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야 했던 고충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론적으로 구축된 실천의 방향

가라타니 고진은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전망을 가다듬는다. 기억해야 할 대목은 그가 지극히 이론적인 방식으로 자본주의를 폐절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그는 “이론적인 무지를 바탕으로 한 실천은 결코 변혁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자본주의는 정의감과 연민에 기반한 열정으로는 무너지지 않는다. 자본주의가 토대로 삼는 논리구조를 해명할 때 그것을 극복할 단서가 발견된다는 것이다. 그는 자본주의가 ‘교환’에 내재된 근원적인 패러독스로 생겨났다고 이해한다. 따라서 자본주의를 지양할 코뮤니즘 역시 종교적이거나 유토피아적인 상상이 아닌 새로운 교환원리를 통해 탄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우선 자본주의를 스테이트(state, 국가)와 네이션(nation, 공동체)과 겹쳐 사고한다. 89년 이후 가라타니 고진은 ‘자본주의=네이션=스테이트’라는 자신의 정식을 설파하는 데에 경주했다. 그것들 각각은 등가교환, 상호부조, 강탈이라는 교환원리에 대응한다. 먼저 네이션 안에서는 ‘상호부조’가 이루어진다. 등가교환에 따르지 않고 공동의 감정에 기대 서로를 돕는다는 교환원리이다. 스테이트는 강탈을 자신의 교환원리로 삼는데, 그것이 교환인 까닭은 지속적으로 빼앗기 위해 수탈당하는 이들에게 보호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국가의 기원을 이룬다. 마지막으로 자본주의는 시장원리에 따라 화폐를 통한 등가교환을 취한다.

이렇듯 상이한 교환원리가 합쳐져 ‘자본주의=네이션=스테이트’라는 삼위일체를 이룬다. 자본주의가 강력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만약 자본주의를 깨려고 하면 국가적인 관리가 뒤따르거나 네이션의 감정이 솟구친다. 그래서 우리는 공황에 직면하면 국가기구가 전면화되고 민족주의가 활성화되는 현실을 목도한다. 가라타니 고진에 따르면 강력한 스테이트로 자본주의를 타도하려던 것이 레닌주의이고, 네이션으로 자본주의 극복을 꾀했던 것이 파시즘이다. 이들 모두는 ‘자본주의=네이션=스테이트’라는 사슬을 끊지 못했기에 역사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가라타니 고진은 세 가지 교환원리에 기반해 있는 ‘자본주의=네이션=스테이트’를 무너뜨리기 위해 새로운 교환원리를 제안한다. 그것이 어소시에이션(association)이다.

또 한 가지 자본주의를 타파하기 위한 이론적인 단서는 자본의 자본화 과정, 즉 화폐(M)-상품(C)-화폐'(M')에 있다. 여기에는 두 차례 개입의 여지가 있다. 첫째는 M-C의 계기, 즉 화폐가 상품으로 전환되는 순간이고, 두 번째는 C-M'의 계기, 즉 상품이 다시 잉여가치가 부가된 화폐로 전환되는 순간이다. 자본의 관점에서 이것은 생산에 필요한 노동력을 구매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상품을 다시 파는 일이 된다. 무산대중에게 이것은 노동자가 되고 소비자가 되는 일로 나타난다. 가라타니 고진은 이 M-C-M'의 과정을 끊자고 제안한다. 즉 일하지도 상품을 사지도 말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자이자 소비자인 대중이 일하지 않고도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안정망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까닭에 가라타니 고진은 ‘생산자/소비자 협동조합의 연합’을 제시한다.



사상의 실패인가 새로운 사상인가

가라타니 고진은 이론적인 아이디어를 내놓는 데서 멈추지 않았다. 90년대 후반부터 그는 본격적인 실험에 나섰는데, 그것이 NAM(New Associationist Movement) 운동이다. NAM 운동은 그가 제안한 최초의 현실운동이었다. 그는 일본에서 NAM 조직을 만들고, 각 지역의 NAM 지부 사이에서 네트워크를 꾸려냈다. 간단히 말해 그가 제안한 NAM 운동은 새로운 교환원리인 어소시에이션에 기반하는 생산자/소비자의 협동조합 운동이었다. 어소시에이션은 개인들의 자유로운 계약에 기초한다는 점에서 시장경제와 닮아 있지만 잉여가치를 발생시키지 않는다. 또한 공동체의 교환원리인 상호부조와 유사하지만 배타적이지도 구속적이지도 않다. 이러한 발상이 단지 낯설지만은 않다.

한국을 비롯해 세계 여러 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지역통화 운동은 원리적으로 어소시에이션이다. 그가 『가능한 코뮤니즘』이나 『NAM 원리』에서 제시한 LETS(Local Exchange Trading System) 운동 역시 자본이 되지 않는 화폐를 매개로 삼는 지역통화 운동의 일종이다. 그리고 NAM 운동은 노동자로서의 소비자와 소비자로서의 노동자의 연대를 목표로 삼는다. 화폐 경제에서 판매와 구매, 생산과 소비는 분리되어 있다. 이러한 분리는 노동자와 소비자의 분리, 나아가 노동운동과 소비자운동의 분리를 낳는다.

그러나 소비자운동은 실상 입장이 바뀐 노동운동이며, 노동운동 역시 소비자운동인 동안 자신의 국지성에서 벗어날 수 있다.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소비과정은 육아, 교육, 여가 등 생활세계 전영역에 걸쳐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라타니 고진은 생산자/소비자의 협동조합을 통해 자본주의 바깥에서 생활의 지평을 만들자고 제안한다.

그렇다면 그가 기획한 현실운동은 어떻게 되었을까. 결국 가라타니 고진은 FA(Free Association)라는 또 하나의 조어를 만들어내기에 이른다. 이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가라타니 고진은 2002년 「FA선언」을 통해 NAM을 해산시킨다. 자신의 기대와 달리 NAM은 그의 유명세를 바탕으로 한 지식인들의 모임이 되었다. 가라타니 고진이 「FA선언」에서 밝힌 해산 이유 역시 NAM 운동을 지속할 운동체가 부재하다는 것이었다.

가라타니 고진이 현실에서 보여준 시도와 실패는 일본과 한국에서 그를 둘러싼 평가가 갈리는 지점이 되었다. 그리고 대개의 경우 그 평가는 예순이 넘은 가라타니 고진의 나이를 상기시키며 “가라타니 고진도 이제 다했다”는 것이 주종을 이룬다. 이것은 정녕 사상의 실패인가. 어떤 의미에서 그의 실패는 예상할 수 있는 것이지 않았을까. 그 사실을 알고도 그는 실패를 감행하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현실적인 운동의 실패를 사상의 실패라고 단정짓는 것은 사회주의의 현실적인 몰락 이후 새로운 사회주의를 사상적으로 꾀했던 가라타니 고진에게는 공평치 못한 일이리라.

가라타니 고진은 이제껏 여러 사상적 입장에 가격을 매겨 왔다. 이제 자신의 사상적 궤적을 제작비이자 홍보비 삼아 하나의 입장을 상품으로 내놓았으니, 그것은 팔릴 것인가. 쉽지 않아 보인다. 나 역시 지금의 가라타니 고진에 대해 호의적이고 싶지 않다. 그의 시도는 자신이 서 있는 장소와의 긴장감을 놓쳤으며, 그의 실패는 그마저도 이론적 완결성을 위해 희생되었다. 그의 사상 언저리에서 느낄 수 있었던 그늘과 불쾌함을 더 이상은 찾기가 힘들다.

하지만 이것만은 말할 수 있다. 한 사상가를 진정 대면하려면 그 사상이 지닌 탄성을 제멋대로 줄여놓고 쉽사리 평가해서는 안 된다. 가라타니 고진은 지금도 움직이고 있다. 2007년 가라타니 고진은 재직 중이던 컬럼비아 대학과 긴키 대학에서 물러나 일본에서 지인들과 교류하며 또 한 번의 사상적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그는 이제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다. 하지만 자신의 명성에 사로잡히지도, 실패를 두려워하지도 않기에 그는 건강하다. 그리고 이 말도 보탤 수 있겠다. 기꺼이 실패하는 것. 그것이 사회주의자의 역사적 역할이다. 사회주의자는 하나의 입장에 관한 이름이지만 동시에 근본적으로 사고하는 자들이 공유하는 이름이기도 하다. 근본적인 사고는 현실에서 실패할지언정 불씨를 남긴다. 그 불씨는 타오를 것인가.(윤여일 / 연구공간 ‘수유+너머’ 연구원)

07. 0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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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2007-03-22 0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진의 책을 몇권 읽었는데, 어려우면서도 재밌고, 신선하고,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런데 지식인의 사유가 이렇게 진행되는구나 보게되는 그런 재미와 참신함은 큰데
'사회주의적 기획'이라 할만한 설득력은 좀 떨어지지 않나, 싶은데.

기인 2007-03-22 0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갑니다. :)

로쟈 2007-03-22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딸기님/ 고진은 A급 비평가죠. 일본이 자랑해도 좋을 만한, 우리 주변에서는 찾아보기 쉽지 않은...
기인님/ 그람시로 바꾸신 건가요?^^

yoonta 2007-03-22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진의 자본주의=스테이트=네이션 이론이나 소비의 시각으로 보는 착취구조의 해명은 오늘날의 자본주의를 새롭게 보는 참신한 발상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더불어 이에 대한 전통적 노동가치론자들의 반박글들을 보고싶은데 생각보다는 별로 눈에 안 띄는것 같더라구요. NAM의 실패는 좀 예견되었던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 원래 고진같은 이론가가 대중운동을 주도해 나가는데에는 애초부터 한계가 있었겠죠.
 

슬라보예 지젝이 지난 3월 5일부터 7일까지 3일간 모스크바에 머물면서 네 차례 강연회를 가졌다. '러시아연구소' 등의 초청으로 이루어진 이번 강연회에서 그가 다룬 네 가지 테마는 (1)톨레랑스 비판 (2)정신분석은 왜 여전히 중요한가? (3)글로벌 시대 주권국가의 전망(원탁회의) (4)할리우드의 가족신화 등이었다. 강연의 일부는 오디오 파일로 인터넷에 올라와 있기에 조금 들어봤는데, 러시아어로 동시통역돼 있는 데다가 잡음이 많아서 알아듣기 힘들었다. 관련사진과 현지 인터뷰 기사 하나만을 옮겨놓는다. 기사는 '노바야 폴리티카'(새로운 정치)란 저널에 게재된 것으로 직역하면 '정치적 올바름에는 뭔가 불공정한 것이 있다'란 제목이다(나중에 시간이 나면 번역해놓겠다).

07 марта 2007

Славой ЖИЖЕК

В политкорректности есть что-то неправильное

Москву посетил известный словенский интеллектуал Славой Жижек. Он известен как философ, публицист, эссеист, поклонник и толкователь психоанализа и марксизма, кумир левой публики в Европе. Его тексты намеренно провокативны – дабы побудить читателя думать, и обозначить проблему отчетливее и ярче. При содействии пиар-директора издательства "Европа" Инны Липатовой, Жижек согласился ответить на вопросы "НП".

– Вы – самый известный в Европе фрейдомарксист. Но многие мыслители, например, Карл Поппер, считают, что как марксизм, так и психоанализ – не наука. Они полагают, что эти феномены человеческой мысли даже ближе к религии. Что вы думаете по этому поводу?

– Все зависит от того, как люди определяют значение слова "наука". Психоанализ – не религия, но и не наука в строгом смысле слова. В нем нет объекта наблюдения, нет доказательств как в строгой научной дисциплине. Это нечто другое. Для меня отсутствие "объективности", то есть критика Поппера или Фейерабенда, не аргумент против психоанализа. Ведь тому как Поппер определяет науку ни одна из научных дисциплин не соответствует. Например, квантовая физика не будет являться наукой в строгом смысле подобного определения. Принято считать, что в нашем мире единственное "законное" знание есть наука. Но это лишь в узком смысле. Ведь есть иные очень важные сферы познания, например, мистическое прозрение, которое представляет собой другая сторону знания.

– Каково место марксизма в общественной мысли в начале XXI века?

– Конечно, сегодня мы наблюдаем великое поражение марксизма. И революция – как квинтэссенция марксизма, как его практика, – оставлена позади. Что для меня живо в марксистском наследии? Это проницательный взгляд во внутреннюю динамику капитализма. В капитализме остались (и всегда будут присутствовать) различные антагонизмы и контрадикции. В длительной перспективе капитализм не способен самостоятельно устранить собственные противоречия.

Вы – автор известной книги "13 тезисов о Ленине". Поэтому задам вам такой вопрос – если бы Ленин родился столетием позже, в 1970 году, с кем бы и бы где он был сейчас?

– Интересная особенность в Ленине – начало Первой мировой войны опрокинуло все его представления и ожидания, история пошла по другому пути, чем он полагал прежде. Я думаю, он был бы сегодня аналогично сбит с толку, растерян. Не считаю, что он бы стал социал-демократом. Но он и не примкнул бы к тем многочисленным революционным движениям, которые появились после Второй мировой войны. Ему бы пришлось сильно поломать голову, чтобы найти свое место.

– У нас в России многие опасаются прихода из Европы политической корректности. Что вы думаете об этих страхах и об этом феномене?

– Политическая корректность имеет две стороны. С одной, она противостоит привычному консервативному отношению ко многим вещам. И это весьма позитивно. В тоже время есть что-то фундаментально неправильное в политической корректности. Она ставит правильные задачи, но решает их в ложном направлении. В целом, политическая корректность – это не исключительно негативный феномен.

– Ваше отношение к распаду Югославии?

– Я не думаю, во-первых, что распад Югославии – это то, чего хотело большинство словенцев. Они стали думать о независимости только после провозглашения воинственной политики Милошевича. Большинство людей хотело существования Югославии в новой форме. Проблема заключалась в опасной динамике режима Милошевича в Сербии.

Сегодня ситуация сложная. Преобладающая часть жителей Словении, например, гордится тем, что у них есть своя страна, со своей столицей, что мы – часть единой Европы. Но сохраняется субкультура родства всех бывших югославов – сербов, хорватов, боснийцев и так далее. Нет подлинной ненависти наций друг к другу. Думаю, для большинства югославов распад Югославии – это трагедия. Но, повторюсь, после того, как власть сосредоточилась в руках Милошевича, все возможные формы сохранения югославского государства были мертвы.

– Как повлияло вступление Словении в Европейский союз на ее жизнь? Какие произошли изменения?

– Парадокс – с экономикой у нас не все так плохо. В бывшей Югославии Словения была основным экспортером продукции машиностроения. На нее приходилось 70 % экспорта и импорта в Европейский союз. Так что для нас вступление в Евросоюз в плане экономики не было шоком. А вот культурно мы стали провинциальней. Еще один парадокс – при коммунистах те же художники-авангардисты имели финансирование своих выставок, получали поддержку государства и так далее. Сегодня же преобладающая культура более консервативна. Да, сохраняется радикальная рок и панк музыка. Но в последние годы коммунизма она имели большее признание и одобрение чем сейчас. Сегодня у нас сильное влияние консервативной Католической церкви. Те, кто были маргиналами до 1991 года, нынче верховодят.

Недавно итальянские журналисты меня спросили: теперь, когда вы стали частью единой Европы, что вы можете ей дать? Я ответил – "ничего". Мы не некая маленькая нация, обладающая огромными духовными ценностями. Мы просто маленькая умеренная "нормальная" страна. Меня спросили также – почему же я, левак, поддерживаю присоединение Словении к Европейскому союзу? Я ответил, что мне не нравится, что во многих посткоммунистических странах наблюдается сильная консервативная реакция, например, не только у нас, но и в Польше. Я думаю, что в Единой Европе часть подобных издержек можно будет избежать. Вступление в Евросоюз позволит больше уважать права индивидуума. Ситуация сложилась бы хуже, если бы Словения оставалась вне Евросоюза. Ведь, если ты член Евросоюза, то должен соблюдать определенные нормы – уважать иные культуры, быть толерантным и так далее. Вот почему я за единую Европу.

Беседовал Максим АРТЕМЬЕВ

07. 0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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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바 2007-03-22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의 '번역'을 하루 빨리 읽고 싶습니다.^^ 그런데 강연 전문이 영어로 번역되면 좋을 것 같은데 이건 전혀 불가능한 일인가요? 그리고 몇일전 '기인'님 서재에서 로쟈님 사진을 봤는데, 생각했던 이미지와는 많이 다르더라구요...^^

로쟈 2007-03-22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 빨리는 어렵고요(^^;) 아마도 방학 가까이가 돼야 시간이 날 듯합니다. 문제의 사진은 좀 이상하게 나왔는데 실물이 조금 더 낫습니다. 4월에 데리다에 대한 짧은 강연이 예정돼 있는데, 시간되면 한번 들르시길...

에바 2007-03-23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간, 장소만 알려주시면 꼭 가겠습니다. 그리고 문제의 사진에 관해서라면 '기대 이상'이라는 뜻이었습니다.^^
 

막간에 뉴스들을 둘러보는데, '한국어가 소멸된다고?'라는 선정적인 타이틀이 눈에 띄었다. 프레시안 편집자의 말대로, 일부 언어학자들은 소수 부족들의 언어가 급속하게 사멸해가고 있음을 이미 경고한 바 있다. 그 멸종어 대열에 한국어도 포함되는 일이 적어도 당분간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가까운 장래에 이중언어적 상황에 직면할 가능성은 충분히 예상해볼 수 있다. 이미 대학캠퍼스와 강의실에 '영어'를 도입하고자 하는 시도가 '세계화'를 명분으로 맹렬하게 추진되고 있지 않은가. 미국 국적을 얻기 위한 원정 출산 대열이 줄지 않는 데에서 보듯이 '한국인'이 되는 일이 더 이상 자랑할 만한 일이 아니게 될 때, '한국어'의 운명을 낙관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한국어 파괴'는 거기에 비하면 부차적인 것이 아닐까 싶다(기사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내용은 '파괴'라기보다는 '오용'에 가까운 것 아닌가? 문법학자의 근심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지만).    

프레시안(07. 03. 20) 한국어가 소멸된다고?

중국의 마지막 왕조 청(淸)나라를 세운 만주족의 언어인 만주어가 사멸 위기에 놓여 있다고 <뉴욕타임즈>가 최근 보도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번 세기 말까지 전 세계에 존재하고 있는 6800개의 언어 가운데 절반이 사라질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한국어도 크게 예외는 아니다.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질서에 편입되는 속도가 빨라질수록 한국사회에서 '영어'의 영향력은 점점 커지고 있다. 이제 특정계층에서 영어는 '외국어'가 아닌 '공용어'의 위치를 차지한 듯 보이기까지 한다. 또 인터넷 공간에서 구어체 중심의 '쓰기 문화'가 10-20대 계층에 일반화되면서 한글 맞춤법과 문법의 파괴 속도 역시 가속화되고 있다.
  
따라서 '만주어 사멸' 뉴스를 가볍게 여길 일이 아니다. 수많은 민족어 중 하나인 한국어도 그 언어를 사용하는 이들이 이를 지키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사라지는 것은 시간 문제다. 굳이 패권주의적인 민족주의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언어는 그 언어를 사용해 온 이들의 역사와 문화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는 점에서 지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나 발명된 '과학적 문자'인 한글은 세계 모든 언어를 음성기호로 표기할 수 있는 매우 수용성이 높은 언어다. 이런 문제의식에 기반해 인하대 국어교육과 박덕유 교수가 기고한 글을 싣는다. 박 교수는 이 글에서 한국어 파괴의 징후들을 거론하면서 이를 막기 위한 교육적 대처 방안 수립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편집자>

인구 규모를 유지하는 데에 필요한 출산율은 2.08명인데, 최근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1.08명이다. 이러한 출산율이 계속 유지된다면 2050년에 3000만 명으로, 2200년이면 500만 명으로 줄어들다가 2800년이면 완전히 멸종될 것이라는 'UN미래보고서'가 발표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시급한 것은 한국어에 대한 소홀이 지금처럼 진행된다면 한국어가 이 지구상에서 사라질 날도 그리 멀지 않았다는 것이다.
  
최근 학생들의 문법 지식 정도를 알아보기 위해서 서울, 인천, 천안 등 3개 도시의 6개 중학교 2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글을 쓰게 하였다. 40분의 시간을 주고 제목은 학교마다 다르게 다양한 주제를 주었다. 아래 예문은 학생들이 쓴 문장 중 일부만 제시한 것이다.

학생들이 잘못 쓴 문장 → 수정한 문장
  
  한국가 일본사이에 애매하게 위치해 있는 독도→한국과 일본 사이에 애매하게 위치해 있는 독도

  
  휴전선을 없에고 통일을 한다면 →휴전선을 없애고 통일을 한다면
  
  올림픽과 월드컵까지 개최한 세계적인 국가가 됬다. → 월드컵을 개최한 세계적인 국가가 되었다(됐다).
  
  노력 할꺼고 좋은 아빠가 될꺼다. 노력할 것이고 좋은 아빠가 될 것이다
  
  내 서적에도 안돼고 → ? 안 되고
  
  독도는 자기꺼라고 할 때 기분이 나뻤다. → 독도를 자기나라 거(영토)라고 할 때 기분이 나빴다.
  
  독도의 대해 찾아볼것이다.독도에 대해 찾아볼 것이다.
  
  저번해 뉴스에서 이산가족 상봉장면을 보았습니다. → 저번에 뉴스에서 이산가족 상봉장면을 보았습니다.
  
  지금까지 꿈은 수도없이 밖였다. → 지금까지 꿈은 수없이 바뀌었다.
  
  그리고우리동뇨는그리고 우리 동료는
  
  독도는 어면히우리땅인데 일본을 그렇게 실어했는데 →독도는 엄연히 우리땅이므로 일본을 그렇게 싫어했는데
  
  그때잘했을껄그 때 잘 했을 걸
  

  원레 1학년 때는 왼쪽무릎의 쓸개골에 염증이 생겨 깊스를 했었습니다. → 원래 1학년 때는 왼쪽무릎의 쓸개골에 염증이 생겨 깁스를 했었습니다.
  
  작년이나 제작년에는 → 작년이나 재작년에는
  
  그집은 자매나 형재고그 집은 자매나 형제나
  

  시험이끊나고 단합대회를 했으면 좋겠어요. → 시험이 끝나고 단합대회를 했으면 좋겠어요.
  
  가장 기뻣던일 → 가장 기뻤던 일
  

  이빨이 않좋은게 아니라 → 이가 안 좋은 것이 아니라
  
  이렇게 나쁜 날은 아마 업을겁니다. → 이렇게 나쁜 날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자기소게자기소개
  
  용서가 돼지 않을만한 것이다. → 용서가 되지 않을 만한 것이다.
  
  뜨거운 포웅 → 뜨거운 포옹
  

  외국인과의 의사소통이 않되었을때 → 외국인과의 의사소통이 안 되었을
  
  언른 나으셔서 오래오래 사시게 해주세요. → 얼른 나으셔서 오래오래 사시게 해주세요.
  
  조은꿈만...조겠다.좋은 꿈만 -- 좋겠다.
  
  몇일전 너무나 어이없고 → 며칠 전 너무나 어이없고
  
  무슨일을하던, 무슨꿈을위해달리던 구지 하나만 고집했다가 → 무슨 일을 하든(지), 무슨 꿈을 위해 달리든(지) 굳이 하나만 고집했다가
  
  기술시간의 배운 생명공학이라는 → 기술 시간에 배운 생명공학이라는
  
  일본이 실습니다. → 일본이 싫습니다.
  
  지금 난리라고 함니다. → 지금 난리라고 합니다
  
  채벌을 하지 않겠다. → 체벌을 하지 않겠다.
  
  충격을 바드셨습니다. → 충격을 받으셨습니다.
  

남학생과 여학생의 차이가 다소 있지만, 남학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30% 정도가 맞춤법을 제대로 모르고 위의 예문과 같이 사용하는 게 현실이다. 이는 무엇보다 문법 지식이 부족한 데서 오는 것으로 보다 체계적이고 분석적인 문법 지식 학습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현상은 20대 이상의 일반인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최근 일반인들의 어문규정(맞춤법, 표준어) 인지(認知) 실태를 알아보기 위해 실제 언어생활에서 자주 사용하고 있는 단어 100개에 대해 서울, 인천 지역에 거주하는 일반인 57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했다. 100문항 중 정답률이 40% 이하인 단어는 모두 29개였다. 이 중 몇 가지를 보면 다음와 같다.
  

오답 → 정답 (괄호 안은 정답률)
  
  닐리리(15.3%) → 늴리리
  쌍용(18.6%) → 쌍룡
  오뚜기(25.3%) → 오뚝이

  산수갑산(26.1%) → 삼수갑산
  서슴치(27%) → 서슴지

  풍지박산(27.8%) → 풍비박산
  생각컨대(29.4%) → 생각건대

  흐리멍텅하다(31.1%) → 흐리멍덩하다
  숫소[황소](32.0%) → 수소

  개나리봇짐(32.7%) → 괴나리봇짐
  우뢰(32.8%) → 우레

  숫놈(32.8%) → 수놈
  설걷이(32.9%) → 설거지

  곱배기(33.6%) → 곱빼기
  집에 갈께(33.6%) → 집에 갈게

  햇님(34.4%) → 해님
  윗층(36.1%) → 위층

  삯월세(37.8%) → 사글세
  주초(37.8%) → 주추

  홀홀단신(38.4%) → 혈혈단신
  촛점(38.6%) → 초점

  개발새발(39.4%) → 괴발개발


 

 

 

 

 

 

 

 

 

 

 

 

  

연령별로 살펴보면, 나이가 많을수록 성적이 떨어졌다. 20대는 58.1점, 30대는 56.3점, 40대는 54.5점, 50대는 53.9점으로, 1989년 어문규정이 새로 적용된 것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반면 학력별 성적은 반드시 교육적 효과와 비례하지 않았다. 대재 및 대졸자가 57.1점이지만, 중졸이 55.8점으로 고졸 55.0점보다 오히려 성적이 높았다. 따라서 어문규정이 개정된 이후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어문규정의 교육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지구상에는 약 1만여 개의 언어가 존재했었다. '에스놀로그(Ethnologue)'에 따르면 현재 지구상에 사용되고 있는 언어는 6912개이며, 이들 언어 가운데 언어 전수 기능이 가능한 언어는 300개 미만으로 세계인의 96%가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이도 100년 후에는 절반으로 줄어들 것이며, 영어, 중국어, 스페인어 등 일부 언어만 살아남고 나머지는 모두 소멸될 것이라고 한다. 과학적으로도 훌륭한 문자라고 자랑하는 우리 한국어도 예외는 아니다.


요즘 우리나라는 온통 영어로 난리법석이다. 각종 중고등학교 입학시험이나 평가시험, 대학 입학시험, 취업 시험 등 영어 점수가 낮으면 그 어디에도 들어갈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게다가 앞 다투어 경쟁이라도 하듯이 각 지방자치마다 영어마을 선포식을 갖는 등 영어는 어느새 우리 민족의 얼과 문화를 잠식해 가고 있다. 특히, 2009년부터는 초등학교 1학년에서 영어를 가르치도록 되어 있어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던 영어공용어 바람이 거세게 불어 한국어의 위기는 갈수록 심각할 것이다.


  
한글은 실질적 의미를 나타내는 어근에 문법적 의미를 나타내는 형태소가 붙어 문법적 기능을 나타내는 형태적 특징의 언어로 첨가어(添加語) 또는 교착어(膠着語)이며, 자음과 모음 40개의 음소문자로 발음의 전부 또는 일부를 해당글자로 사용하는 표음문자이다. 이 유형에 속하는 언어는 한국어 외에 일본어, 터키어, 몽골어, 헝가리어 등 우랄 알타이어계 언어들이다. 표음문자에는 단어의 음절 전체를 한 단위로 나타내는 문자인 음절문자와 음소적 단위의 음을 표기하는 음소문자(자모문자)로 나뉜다. 전자의 예로 일본의 가나 문자를, 후자의 예로 로마자와 우리 한국어를 들 수 있다.
  
그런데 한글은 단순히 자음과 모음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것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음운자질을 반영하는 글자이다. 즉, 발음기관을 본 따 만든 기본 글자(ㄱ,ㄷ,ㅂ,ㅈ)에 가획의 원리(ㅋ,ㅌ,ㅍ,ㅊ)와 병서의 원리(ㄲ,ㄸ,ㅃ,ㅉ)로 거센 글자와 된소리 글자를 만들어 냈다. 따라서 로마자가 무성음과 유성음의 2분법적인데 반해 우리 한글은 3분법적의 음운적 특징으로 세계 모든 언어를 음성기호로 표기할 수 있는 아주 우수한 문자이다.

영국과 미국이 50여 개 이상의 연방국가로 세계를 장악하고, 중국이 50여개 이상의 소수민족을 연합하여 거대국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또한 아랍국이 연합하고 유럽이 연합하고 있다. 이제 언어도 영어, 중국어, 유럽어, 아랍어 등 몇 개 언어로 좁혀질 것이다.
  
'언어 전쟁'이 시작되고 있다. 우리도 남북통일은 물론 일본, 몽골, 중앙아시아, 터키 등을 연결하는 알타이어계의 중심어로 자리 잡아 나아가야 한다. 그러려면 여러 가지 한국어교육 정책이 필요하겠지만 그 중 대외적으로는 한민족의 디아스포라 연구가 필요하다. 현재 700만 한민족 동포가 180여 개국에 산재되어 있다. 이들을 기저로 한국어교육 정책을 펼칠 전문기관이 필요하다. 김대중 정부 시절 한국어교육에 관련된 교재를 정부에 보내달라고 하니 김대중 대통령 자서전을 보냈다는 웃지 못 할 일이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한국어를 사용하는 내국인에게 말하기-듣기 중심의 기능주의에서 벗어나 정확한 언어생활을 할 수 있도록 문자언어 중심의 교육 정책이 필요하다. 언어 소멸 속도는 굉장히 빠르다. 갑자기 한두 세대 만에 사라질 정도로 우리는 '언어 전쟁' 속에 살아가고 있다. 세계의 언어 경쟁력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문법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한국어가 소멸된다'는 가설은 곧 현실로 다가올지 모른다.(박덕유/인하대 국어교육과 교수)

07. 03. 20.

P.S. 지난달에 연재가 끝난 고종석의 칼럼 '말들의 풍경'에서 한국어의 운명에 관한 마지막회분을 참고로 옮겨놓는다.

한국일보(07. 02. 21) [말들의 풍경] <51·끝> 한국어의 미래

수천에서 1만 여에 이른다는 자연언어들 가운데, 그 말을 쓰는 사람 수를 기준으로 한국어의 순위는 어디쯤일까? 개별 언어와 방언의 경계를 긋기가 쉽지 않아서 한국어의 순위를 확정하기는 어렵다. 이를테면 흔히 아랍어라 부르는 서남아시아와 북아프리카 지역 언어를 그 고전적 형태(문어 형태)에 주목해 한 언어로 간주하면, 한국어의 순위는 아랍어보다 크게 뒤질 것이다. 그러나 각 지역마다 사뭇 다른 구어 형태의 아랍어들을 서로 다른 언어로 친다면, 한국어는 그 각각의 아랍어들(이집트 아랍어, 알제리 아랍어 등)보다는 큰 언어다.

이렇게 기준이 물렁물렁하긴 하지만, 순위를 얼추 가늠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남북한과 해외의 한인공동체 인구를 7,500만 남짓으로 잡으면, 그 사용자 수로 볼 때 한국어의 순위는 12, 13위 정도 된다. 1억 가까운 사람이 쓰는 독일어보다는 작은 언어지만, 7,200만 남짓 되는 사람이 쓰는 프랑스어보다는 큰 언어다. 수천이 훨씬 넘는 언어들 가운데 12, 13번째로 사용자가 많다는 것은 한국어가 매우 큰 언어라는 뜻이다.

그러나 그 12, 13위라는 순위만큼 한국어가 위풍당당하지는 않다. 우선, 순위의 앞머리 세 자리를 채우고 있는 베이징어(보통화), 스페인어, 영어의 사용자 수가 3억에서 9억에 이르는 것과 비교하면, 고작 수천만의 화자를 거느린 한국어의 비중은 탐스럽지 않다. 남한 인구가 정체 상태에 있는 데다가 북한 인구는 심지어 줄어드는 추세여서, 적어도 단기적으론 한국어 사용자가 늘어날 것 같지도 않다. 더구나 12, 13위라는 순위가 어떤 자연언어를 제1언어(모어,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 수를 기준으로 매긴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한국어의 상대적 위세는 훨씬 더 초라해진다. 사실 이 점이 매우 중요하다!

영어가 베이징어보다 훨씬 작은 언어고 심지어 스페인어보다도 약간 작은 언어라고 할 때, 그것은 이 언어들을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 수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은 3억2,000만 남짓으로 추정돼 3억3,000만 남짓으로 추정되는 스페인어 사용자보다 조금 적다. 그러나 영어를 스페인어보다 비중이 작은 언어로 판단하는 사람은 없을 테다. 영어는 지구 행성의 보편어에서 그리 멀지 않는 국제 교통어의 지위를 이미 확립했지만, 스페인어는 이베리아 반도와 남아메리카, 북아메리카 일부에 갇혀 있으니 말이다.

사람들 대부분이 제 모국어에 이어서 배우는 언어는 베이징어나 스페인어가 아니라 영어다. 영어는 스페인어나 (9억인의 모어인) 베이징어보다 비중이 큰 언어인 것이다. 한국어는 모국어 사용자 수를 기준으로 매긴 순위보다 교통어로서의 순위가 사뭇 떨어지는 언어다. 그것은 한국어공동체 바깥에서 한국어가 그리 매력적인 언어가 아니라는 뜻이다. 제1언어로 한국어를 익히는 사람은 제1언어로 프랑스어를 익히는 사람보다 많지만, 한국어가 프랑스어보다 더 비중있는 언어라고 판단하는 사람은 없을 게다. 프랑스어를 제2언어나 제3언어로 익히는 사람은 수억 명에 이르겠지만, 한국어를 제2언어나 제3언어로 익히는 사람은 아주 늘려 잡아도 수백만 명 정도일 테니 말이다.

교통어로서의 비중만 보면, 한국어는 모국어 화자가 6,000만이 안 되는 이탈리아어보다도 덜 중요한 언어다. 그렇다면 교통어로서 한국어의 미래는 어떨까? 다시 말해, 외국어로서 한국어의 미래는 어떨까? 이 질문은, 자신이 배울 외국어를 고르는 기준으로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뭘까라는 질문과 관련돼 있다. 사람들은 우선, 될 수 있으면 많은 사람이 쓰는 언어를 배우고자 한다. 어떤 언어를 쓰는 사람이 많을수록, 그 언어의 커뮤니케이션 폭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국어 화자가 가장 많은 베이징어나 교통어 화자가 가장 많은 영어는 이 언어들이 모국어가 아닌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제2언어 후보가 된다.

이미 많은 사람이 쓰고 있는 언어를 사람들은 배우려 들고, 그러니 그 언어를 쓰는 사람은 더 많아진다. 부익부 빈익빈인 셈이다. 한국어를 모국어로 쓰는 7,500만 남짓의 인구집단은 이 언어를 외국어로 배우고자 하는 욕망을 불러일으키기에 모자람이 없는 규모다. 그러나 모어 화자가 이렇듯 많은 데 비해, 한국어를 교통어로 사용하는 사람은 매우 적다. 한국어 공동체의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힘이 가까운 과거에 이르기까지 그리 크지 못했고, 한국인들이 역사의 오랜 기간 국제교류에 소극적이었다는 뜻이겠다. 이 점이 교통어로서 한국어의 가능성에 제약으로 작용할 것이다. 다시 말해 한국어를 외국어로 익히는 사람이 지금 적다는 사실이 앞으로도 한국어를 외국어로 배우고자 하는 욕망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 다음, 첫 번째 조건과 부분적으로 겹치겠지만 중요성에서는 아마 으뜸으로, 사람들은 제게 경제적 이득을 베풀 언어를 제2언어로 배운다. 사람들이 (모국어 화자가 가장 많은) 베이징어를 제쳐놓고 영어를 제2언어로 배우려 드는 것은 영어가 경제활동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어지간한 회사에 일자리를 얻으려 해도 영어를 다소 아는 것은 필수적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회에서 영어는 각급 학교의 필수 외국어로 지정돼 있다. 고를 권한을 학생들에게서 박탈할 만큼 영어는 온 세상의 교육과정에 깊이 뿌리내렸다. 그것은 미국을 비롯한 영어권의 경제적 힘과 관련이 있다. 북한과 함께 한국어 사용권의 핵심부를 이루는 남한 지역의 경제적 활력은 교통어로서 한국어의 미래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베트남이나 몽골처럼 한국과 경제관계가 긴밀해진 나라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셋째, 사람들은 문화 영역의 자아 실현을 위해 외국어를 배운다. 여기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허영심이다. 이를테면 프랑스어는 스페인어에 견주어 모어 화자가 훨씬 적다. 그러나 아메리카 대륙을 뺀 대부분 지역에서, 외국어로 프랑스어를 배우는 사람이 외국어로 스페인어를 배우는 사람보다 훨씬 많다. 거기엔 프랑스어권에서 축적된 문화가 스페인어권에서 축적된 문화보다 더 풍요롭다는 판단이 개재돼 있다. (거기엔 또 부분적으로 정치적 이유가 개재돼 있다.

한 때 유럽의 중심국가로서 스페인 못지않게 넓은 해외 식민지를 경영했던 프랑스는 오늘날 유럽연합이나 국제연합을 비롯한 국제사회에서 스페인보다 훨씬 더 큰 정치적 발언권을 지니고 있다.) 외국인들의 문화적 허영심을 만족시킬 매력이 한국어에는 넉넉하지 않다. 역사의 대부분 기간에 한반도 문화는 고전중국어로 다시 말해 한문으로 축적됐고, 한국어가 문화의 도구로서 본격적으로 행세하기 시작한 것은 고작 한 세기 남짓 전이기 때문이다.

넷째, 사람들은 배우기 쉬운 언어를 배운다. 다시 말해 제 모국어와 문법 유형이 비슷하거나 어휘가 닮은 언어를 익히려 한다. 일본의 경제력은 프랑스를 포함한 프랑스어권 전체보다 크다. 그렇지만 외국어로 일본어를 배우는 사람 수는 외국어로 프랑스어를 배우는 사람보다 훨씬 적다. 그 이유의 큰 부분은, 앞에서 시사했듯, 프랑스어로 축적된 문화가 일본어로 축적된 문화보다 더 매력적으로 비친 데 있겠지만, 대부분의 언어권 사람들에게 일본어가 배우기 너무 어려운 언어라는 사정도 거기 포개져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일본이 세계적 규모로 행사하는 경제적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일본어를 외국어로 배우는 사람들 다수는 한국을 포함한 동북아시아 문화권에 몰려 있다.

최근 들어 그 관계가 뒤집히긴 했지만, 이탈리아 사람들이나 스페인 사람들이 제2언어로 영어보다 프랑스어를 선호했던 것도 영어보다는 프랑스어가 이탈리아어나 스페인어와 더 닮아 배우기 쉬웠기 때문일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연관효과’라 부를 만한 것도 학습동기 부여에 간여한다는 점을 지적하자. 사람들은, 꼭 제 모국어와 닮지 않은 언어일지라도, 서로 닮은 언어들이 많은 언어를 배우고 싶어한다. 이를테면 프랑스어를 외국어로 익힌 사람이 그 다음에 스페인어나 포르투갈어나 이탈리아어를 배우기는 쉽다.

네덜란드어를 외국어로 익힌 사람이 그 다음에 독일어나 덴마크어나 영어를 익히는 것도 쉽다. 그러나 동아시아 바깥 사람이 일본어를 어렵사리 배워보았자, 그 ‘연관 효과’로 쉽게 배울 수 있는 언어는 한국어 정도다. 그러니 일본어는 동아시아 바깥 사람들에게는 덜 매력적으로 보인다. 한국어도 같은 처지다. 한국어를 익히는 사람들이 그나마 일본에 꽤 있는 것은, 두 나라 사이에 확대되고 있는 교류나 어찌해볼 수 없는 지리적 근접성말고도, 일본사람들이 배우기에 한국어가 비교적 쉽다는 데 그 이유의 한 가닥이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바로 앞에서 내비쳤듯, 사람들은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가까운 나라의 언어를 외국어로 배운다. 최근 프랑스어를 제치고 스페인어가 미국인들의 제2언어로 떠오른 것은 미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멕시코를 비롯해 라틴아메리카 지역 대부분에서 스페인어를 쓰는 데다가, 미국 사회 안에 스페인어를 쓰는 이민자가 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문화적 인접 효과가 지리적 인접 효과를 상쇄하는 경우도 있다. 루마니아나 폴란드나 세르비아 같은 중부 동부 유럽 나라들은 지리적으로 프랑스보다 독일과 더 가깝지만, 그 나라 사람들은 외국어로서 독일어보다 프랑스어를 더 선호한다. 그 나라들에 이런저런 이유로 프랑스 애호가 퍼져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들이 최근 늘어난 것도, 일본인들에겐 한국어가 비교적 배우기 쉬운 언어라는 사정에다가, 지리적 문화적 인접성(‘한류’에 대한 친화감을 포함해)이 포개지며 나타난 현상일 테다.

이런 모든 조건들을 따져서 판단할 때, 교통어로서 한국어의 미래는 밝지 않다. 다시 말해, 한국어를 외국어로 배울 사람이 앞으로 크게 늘 것 같지는 않다. 한국어권 경제의 확장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고, 학습 동기를 유발할 다른 요인들도 그리 두드러지지 않는다. 그래도 간접적으로나마 한국어를 배울 의욕을 북돋을 길은 있다. 그것은 사전을 포함한 한국어 학습 교재를 될 수 있으면 여러 언어로 다양하게 마련해놓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정부와 기업과 대학과 연구소가, 한국어학자와 외국어학자와 교육이론가가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한국어를 익히기 시작한 외국인들이 흔히 투덜거리는 것이 너무 단조롭고 부실한 학습 교재에 대해서다. 일리가 있는 불평이다.



좀더 많은 외국인이 한국어에 매력을 느껴서 이 언어를 배우길 우리가 바란다면, 그런 투덜거림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정부가 한국어를 보급하기 위해 세계 여러 곳에 세울 예정이라는 세종학당도 다양하고 효율적인 한국어 학습교재가 마련된 바탕 위에서야 제 구실을 할 것이다. 한국어는 쉽사리 눈에 띄지 않는, 조붓한 길이다. 시원하게 뚫린 한길이 아니다. 그러나 정성스레 닦아놓으면 그 길을 산책로로 골라 거닐 사람이 왜 없으랴.(고종석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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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꿀라 2007-03-20 19:58   좋아요 0 | URL
좋은 소개 감사드립니다. 퍼갑니다.

마늘빵 2007-03-20 22:31   좋아요 0 | URL
<언어의 죽음> 읽었는데, 이거 진지하고 깊이있게 전 세계의 언어의 죽음에 다루고 있습니다. 좋은 책입니다. 다른 분들께도 추천.

로쟈 2007-03-20 22:41   좋아요 0 | URL
아프락사스님이 먼저 터를 닦아두신 책이네요.^^

베토벤 2007-03-20 23:17   좋아요 0 | URL
<사라져가는 목소리들 Vanishing voices>도 같은 주제를 다른 책입니다. 부제가 <그 많던 언어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인데요. 읽다보면 좀 씁쓸해집니다. 굳이 제가 배울 언어가 절대 아닌데도요.

로쟈 2007-03-20 23:48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제가 아까 '사라지는'을 검색했었네요.^^

이네파벨 2007-03-21 11:01   좋아요 0 | URL
신선한 화두네요...........

많은 생각거리가 떠오르지만 답이 안보이는...

전 번역을 하면서...우리말이 참 초라하고 빈약하다고 자조적인 생각을 많이 했더랬어요. 조금만 학술적이거나 전문적인 내용을 표현하자면...한자어로 들어가게 되지요..이제 그나마...그냥..영어를 소리나는대로 써주는 추세이고요..
우리말의 대응어를 찾을 수 없을 때의 갑갑함...외래어로 얼룩진 문장을 만들어내는 자괴감...그나마 새로이 유입되는 개념들의 경우..기존의 외래어로도 감당이 안되어 곤혹스러운 상황...

이게 바로.......약한 언어의 나라 국민의 슬픔이다...라고까지 비약을 하곤 했지요.

저 어릴때는 국어 과목이 너무 싫어서 (영어도 싫고..언어 과목을 다 싫어함) 차라리 우리말이고 뭐고 없이 전세계 공용어 딱 하나 있으면 좋겠다~~ 고 많이 생각했는데...그와 똑같은 얘기를 여덟살 아들녀석에게 들으니 (엄마, 난 내가 미국에서 태어났으면 좋겠어. 그럼 영어공부 따로 안하고 내가 좋아하는 수학같은것만 공부하면 되잖아) 충격적이더군요......
내것에 대한 사랑...(가족, 부모, 나라...)...은 철이 들어야 생기는 것인지...

실비 2007-03-21 12:17   좋아요 0 | URL
보고 다시 공부해야겠어요... 퍼갈게요.^^

qualia 2007-03-21 16:22   좋아요 0 | URL

저는 우리나라 국어교육과/국어국문학과 교수님들(은 말할 것도 없이 외국어문 계열 교수님들)은 도대체 뭐하고 사시는지 참으로 답답하기 짝이 없습니다. 제가 보기에, 현단계에서 우리 학자들이 세워 놓은 한국어의 문법/맞춤법/철자법/문장작법/조어법 따위는 정말 부실하기 (심지어 조악하기) 짝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어의 말글 체계는 아직까지도 법칙적으로 정립되지 않은 야생 상태에 머물러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도 말글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교수님들이 쓴 관련 논문이나 책들 가운데 읽을 만한 "고전"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우리말글 바로 쓰기와 관련하여, 여태까지 우리나라 교수님들이 해 놓은 것 중, 전범으로 따를 만한 것은 별로 없다는 것이 제 판단입니다. 오히려 우리 겨레의 마음결(심리구조)을 자연스럽게 타고 흐르는 우리말글의 정수와 본질을, 국적불명의 튀기말글체로 일그러뜨리고 더럽힌 주범들은 바로 이 나라의 교수님들입니다. 이것은 제가 우리나라 교수님들이 쓴 논문/번역서/책을 읽을 때마다 정말 씁쓰레하게 실감하는 점입니다. (증거 없이 이런 총론적 주장을 한다고 비판하실 분이 계실 줄 압니다만, 이 사안에 대해서는 나중에 한번 구체적으로 다루긴 다룰 것입니다. 가차없는 실명비판이 될 것이기 때문에 이런 댓글에서는 자세히 다룰 수 없겠죠.)

우리나라 교수님들의 게으름과 무능과 딴짓하기에 비하면, 이오덕 선생님과 이수열 선생님이 펼치신 우리말글 바로 쓰기 운동은 정말 존경스럽고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 아마도, 이오덕 선생님과 이수열 선생님은 우리말글에 침투한 여러 가지 심각한 병증을 (다시 말해 외국말글 직역투/오역투, 일본말글을 그대로 흉내낸 왜색 말글투, 지나친 한문투, 원칙없고 철학없고 잘못된 한국어 사전이 퍼뜨린 국적불명/어원불명의 낱말들, 원칙도 없고 철학도 없고 게다가 국어 실력까지 형편없는 교수님들이 퍼뜨린 비문들 따위를) 샅샅이 찾아내 비판하고 그 개선안을 처음으로 내놓으신 분들이 아닐까 합니다. 이 분들은 무능하고 게으르고 패거리의식으로 똘똘 뭉친 학계(대학 교수 사회)에서는 도저히 엄두도 못낼 비판적 작업에 선구자처럼 나선 것입니다. 이 분들의 우리말글 비판 작업이 없었다면, 샘물처럼 맑고 다듬잇돌처럼 매끄러운 우리말글의 흰 살결에 더 많은 조악한 비문들이 검버섯처럼 창궐했을지도 모릅니다. 이 분들의 지적이 있기 전까지는 그 어떤 사람도 위와 같은 우리말글의 문제점을 자각하지 못했을 뿐더러, 이 분들의 지적이 있고 나서도 소위 교수라는 분들은 (국어 실력이 형편없으면서도) 한동안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을 뿐이고, 계속해서 논문이나 책을 비문 투성이로 써댔으니까요. (이오덕 선생님, 이수열 선생님, 두 분은 모두 대학에 적을 두지 않으셨죠.)

 

저는 이오덕 선생님과 이수열 선생님의 주장에 모두 동의하지는 않습니다만, 두 분 선생님께서 각각『우리글 바로쓰기 1, 2, 3』과『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말 바로 쓰기』에서 주장하시는 문제의식에는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그리고 이 책들의 주장 가운데 거의 열에 여덟 아홉은 우리가 따라야 할 정확하고 올바른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이 책들의 금과옥조를 잘 읽고 잘 새긴다면, 우리는 우리말글을 한결 더 정확하고 아름답게 쓸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특히 이수열 선생님의『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말 바로 쓰기』는 저술가나 번역가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제 생각에 이 책의 내용 중 열에 여덟 아홉 정도는 우리가 꼭 따라야 할 내용이지만, 몇 가지는 매우 논쟁적인 주장이기도 하더군요. 이에 대한 논의는 우리말글 바로 쓰기 작업의 하나로서 언젠가는 해야 될 줄로 압니다. 저는 깐깐하신 비판정신을 지니신 이수열 선생님을 정말 존경합니다. )


마늘빵 2007-03-21 21:21   좋아요 0 | URL
그때 한참 관련책 읽기에 몰두했을 때 계속 더 좁게 밀고 나가고 싶었으나, 당장 눈앞에 더 급한 주제들이 있는지라 그만두었더랬어요. 흠. 전공과 동떨어진 분야 중에서 제가 매우 관심갖는 주제입니다.

로쟈 2007-03-22 12:13   좋아요 0 | URL
댓글들을 많이 달아주셨네요. 뭉뚱그려서 몇 자 적으면, 저로선 서두에 적었지만 '사라져가는 언어' 문제와 '우리말 파괴'는 좀 다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혹은 분리해서 다룰 수 있는 문제. '사라져가는 한국어'와 보다 직접적으로 관련되는 것은 대학에서의 영어 강의 같은 것이죠. 적어도 학문어로서 한국어의 장래는 밝아 보이지 않습니다. 제 일차적인 관심은 그 언저리에 있습니다...

이네파벨 2007-03-23 21:29   좋아요 0 | URL
qualia님 지적과..좋은 책소개 감사합니다. 꼭 읽어볼께요...

qualia 2007-03-26 19:28   좋아요 0 | URL
이네파벨 님, 안녕하세요. 번역하시느라 힘 많이 드시죠. 좋은 번역을 위해 고심하시는 모습... 눈에 선하게 보이는 듯하네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