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준비를 하는 틈에 잠시 짬을 내어 들어가본 담론비평 사이트에서 리뷰기사를 하나 옮겨놓는다. 문학평론가이자 계간 황해문화 주간이기도 한 김명인의 한국근현대 문학사에 대한 '시론적 소묘'를 요약정리하고 있는 리뷰이다. '가족로망스'라는 구도 자체는 새로운 것이 아닌데, 국문학계에서는 아직 이러한 시도가 없었던 모양이다. 완결된 '문학사'가 기대된다.

담비(07. 03. 29) 평론가 김명인의 야심찬 '문학사 기획'

시인 김수영을 통해서 근대를 향한 성찰적 개인의 위대한 모험을, 평론가 조연현을 통해서 근대에 투항하는 복잡한 현대인의 내면을 짚어보았던 문학평론가 김명인의 문학사 쓰기가 새로운 국면을 향해 한 발을 내딛었다. 그것은 한국 근대문학 1백년을 '가족'이라는 주제로 꿰뚫는 자못 거시적인 작업이어서 주목을 끈다.

김명인은 '민족문학사연구' 최근호(32호)에 발표한 '한국 근현대소설과 가족로망스'에서 자신의 이러한 과업의 "시론적 소묘"를 펼쳐보였다. 그 아이디어의 시발은 바로 프로이트다. 프로이트가 1908년에 쓴 '신경증환자의 가족 로망스'는 어린아이들이 아버지에 대한 모방과 동일시가 충족되지 않을때 상상의 아버지를 갈망하게 되는 신경증을 분석했다. 로버트 단턴(*린 헌트)은 이 가족로망스 이론을 프랑스혁명에 적용했다.

이런 견해를 근대소설에 적용하면 근대소설의 문제적 개인들은 신이 사라진 시대(=아버지가 부정된 시대)에 새로운 아버지를 찾아나서는 자발적 고아들이다. 특히 성장소설이 그렇다. 내발적 경로를 통해 주체적으로 자본주의적 근대를 이룬 서구사회의 경우, 봉건체제의 부정과 자본주의 체제의 성립이 자기사회 내의 논리에 따라 계기적으로 일어남으로 해서 비교적 낡은 아버지 부정과 새 아버지 긍정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하지만 식민지라는 경로를 통해 외재적으로 자본주의적 근대의 길로 들어선 비서구 지역에서는 이것이 자연스러울 리가 없다.

낡은 아버지는 부정되어야 할 존재이면서 동시에 지켜야할 존재이며, 새로운 아버지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으면서도 동시에 부정해야 마땅할 존재이다. 가족로망스는 시작부터 길을 잃는 것이다. 아버지와 함께 버려진 존재인 식민지 고아들은 낡은 아버지를 부정할 겨를도 없이 그를 부양해야 하며, 새로운 아버지를 찾을 겨를도 없이 가짜 새 아버지와 대결해야 한다. 그들은 문제적 개인이지만, 행로가 단순하지 않고, 가족로망스는 늘 지연되고 그 자리엔 다른 악몽이 시도 때도 없이 개입해 들어온다. '피식민주체의 서사시'가 시작된 것이다. 김명인은 이런 문제의식 아래 한국 근현대소설을 개관한다.

제1기(19세기말~1920년대 초반)는 봉건체제의 붕괴와 식민체제의 형성이 동시적으로 진행된 시기이자, 넓은 의미의 '계몽주의 시대'와 엇비슷이 일치하는 시기로서 가족로망스에서 이른바 '고아의식'과 '업둥이의식'이 발생하는 시기이다.

제2기(1920년대 중반~1945년)는 '식민지 근대'가 본격적으로 작동하는 시기로서 부정된 아버지에 대한 복합심리와 새로운 가족에 대한 동경, 대안으로서의 형제애 등이 복잡하게 착종하는 시기이다.

제3기(해방기~1950년대)는 분단체제 형성기다. 새로운 아버지에 대한 동경이 다시 한번 좌절하고 1기의 고아 혹은 업둥이들은 아버지로서 다시 부정되거나 실종되고 2기의 소년들은 재차 더 극심한 시련 속으로 내던져진다.

제4기(1960년대~1980년대)는 한국 자본주의의 본격적 발전기이자 권위주의적 군부독재기로서 가짜 아버지에 의한 전체주의적 가족국가와 진짜 아버지의 복원열망이 충동하는 시기이다.

제5기(1990년대~현재)는 민주화와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복합적으로 작동하는 시기로서 제4기의 새로운 세대가 다시 아버지가 되고 가족로망스 자체가 붕괴되어가는 시기이다.

김명인은 이런 시기구분 하에 이광수, 염상섭, 이상, 김남천, 채만식, 최인훈, 김원일, 조세희, 방현석, 신경숙, 배수아 등의 작품이 이런 특징들을 어떻게 구현하고 있는지 간단간단히 짚어나간다. 이광수의 '무정'은 "스스로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게 만든 무정한 세계에 대한 한탄과, 그럼에도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가짜 선구자의 곤혹스러움이 서로 용해되지 못한채 전반부와 후반부에서 양립해있는 형국을 보여준다.(제1기)

제2기에는 카프 계열 작가들이 사회주의라는 이름의 평등한 가족체계를 꿈꾸며 '고향', '황혼' 등의 작업을 보여주는가 하면, 그 반대편의 국민문학파가 그에 반발하며 옛날 아버지를 불러보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다소 단순한 반응이었고 보다 복잡한 심리는 이상과 김남천, 채만식에게서 나타난다는 게 김명인의 판단이다. 이상은 첨단의 모더니티를 향해 냅다 달렸지만, 그에게 더 절실했던 것은 어떠한 봉건적 관계의 속박으로부터도 자유로우면서도 그의 애정결핍을 충족시켜 줄 사적인 가족 형태였으며, 그것은 곧 성적, 정서적 동반자로서의 여성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김명인은 남매애의 변형이라고 할 수 있는 이상의 여성집착은 자신의 상처를 그대로 여성에게 전가하는 것이라고 평가한다. 차라리 손위 누이를 감싸 안는 김남천이나, 손아래 누이를 지키며 씩씩하게 살아가는 소년 주체가 제시되는 채만식을 주목한다.

하지만 제3기에서 김남천과 채만식이 남겨놓은 씩씩한 소년들은 타락하지 않은 시원의 아버지를 만났는가. 아니면 스스로 좋은 아버지가 됐는가. 최인훈의 '광장'에서 이명준이라는 청년은 남북 양쪽의 아버지들이 가짜라는 눈치를 챘지만, 새로운 아버지에 대한 열망보다는 가짜 아버지들에 대한 절망이 더 커서 전도된 남매애로서의 여성에 대한 성적 집착의 길을 걷다가 결국 이 땅에서 탈주했다.

제4기에 들어서면 가짜 아버지에 대한 부정과 그가 지배하는 전체주의적 가족국가에 대한 거부가 두 방향으로 본격화된다. 하나는 '분단소설'들로서 가족국가의 형성과정에서 지워진 아버지를 되살리려는 노력이고, 다른 하나는 노동소설에서 보여지는 형제애에 기초한 가족의 형성욕망이다. 김원일이 '노을', '어둠의 혼'에서 분단동이들은 자기 손으로 아버지를 부정하기도 전에, 더 큰 외부의 힘이 아버지를 부정해버린 제1기의 고아들과 비슷한 형국인데, 이들에게 미래의 가족로망스는 곧 과거의 아버지를 되살려내는 것이라는 역설적 상황이 주어진다. 발전의 서사와 대비하여 '복원의 서사'라 부를 만한 이런 경향은 비극적 식민지를 겪은 제3세계 문학의 공통된 경향이라고 김명인은 말한다.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자본주의체제의 형성과정에서 눌려서 난장이가 되어버린 아버지를 위한 복수의 서사다. 이 작품은 80년대의 급진화하는 가족로망스를 예비하는 성격을 가지면서도, 봉건시대로 거슬로 올라가는 노예적 가족사의 사슬을 끊고자 하는 비원도 담고 있다. 방현석의 '내일을 여는 집'은 노동계급운동의 미증유의 활성화라는 분위기와 맞물려 본격적인 사회주의적 형제애에 기초한 가족로망스를 구가하였으나, 희망태에 불과했고, 지금 돌아보면 어딘가 허망하고 고립된, 1980년대적으로 특수화된 것이라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다고 정리한다.

90년대에 들어오면 가족로망스는 현격히 쇠퇴해, 개인적 차원을 넘어선 집단무의식의 문제로는 포착하기가 힘들게 되어 버렸다. 부-모-자녀로 이루어지던 최소단위도 유지하기가 힘들게 돼 구성원들은 단자로 내몰렸다. 불륜소설이 붐을 이뤘고, 신경숙, 조경란, 공선옥 등이 예외적으로 가족이라는 굴레로부터의 이탈과 가족을 추수려 세우려는 노력을 보여 예외적 현상으로 남았다.

김명인은 이상의 가족로망스에서 그 주체가 '아버지-아들'이라는 점을 환기시킨다. 식민지의 이 기구한 가족로망스 속에서조차 여전히 타자이자 또다른 식민지였던 여성의 역사를 겹쳐놓는다. 나혜석, 강경애, 박완서, 신경숙, 배수아의 소설로 계보를 이어가는 '가족구성원으로서의 여성의 삶'은 때론 비극적이고 적나라하고 지그재그적 행보를 보여준다. 배수아의 소설집 '바람인형'에 오면 여성으로서 성장한다는 것은 곧 그 여성-인간을 살해하는 것이라는 극단적인 명제를 입증하는데 바쳐진다.

김명인은 이러한 여성 주체의 근대적, 혹은 탈근대적 해방이라는 주제야말로 주목할한만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 자체가 세계사적 보편성과 당대적 폭발성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근대/식민지 근대가 낳은 사회체제, 문화, 이데올로기 전반의 문제들을 가로지르고 재구성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근본적(radical) 거대주제라는 점에서 가족로망스의 악순환과 근대적 삶에 편만한 식민성을 동시에 넘어설 수 있는 잠재력을 내장하고 있다고 말한다.(리뷰팀)

07. 03. 29.

P.S. 가장 최근에 낸 김명인의 평론집은 <환멸의 문학, 배반의 민주주의>(후마니타스, 2006)이다. 책에 관해서는 프레시안의 관련기사가 유익하다(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article_num=30060929171410).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릴케 현상 2007-04-01 0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버트 단턴은 이 가족로망스 이론을 프랑스혁명에 적용했다<---린 헌트 아닌가요?

로쟈 2007-04-01 0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습니다. 필자나 리뷰팀의 착오 같습니다...
 

알라딘에 로그인 하게 되면 습관적으로 새로나온 책들을 검색해보게 된다. 막상 가끔씩 서점에 가보면 전혀 생소한 책들과 대면할 때가 있어서 역시나 '온라인은 온라인일 뿐'이란 생각도 하게 되지만 또 거꾸로 서점에서 미처 둘러보지 못한 책들을 온라인에서 처음 접할 때 느끼는 반가움도 적지는 않다. '반가움'이라고 적었지만 실상은 묘한 감정이다. 새로 나온 책에 대한 부듯함과 함께 또 사서 읽어야 하나, 언제 읽나, 하는 부담감이 묘하게 결합돼 있는. 그런 반가움과 착잡함(?)을 동시에 느끼도록 해준 책이 또 출간됐으니 미국의 저명한 동시대 작가 존 바스(1930- )의 <연초 도매상>(민음사, 2007)이 그것이다.  

 

 

 

  

미국의 현대문학에 대해 약간의 견문이 있는 독자라면 이 작가의 이름과 작품에 대해 얼마간 면식이 없을 수 없다. 특히나 포스트모더니즘 광풍(?)이 몰아치던 시절에 가장 많이 언급된 작가 중의 한 사람이 바로 존 바스였기도 했고. 이번에 출간된 <연초도매상>은 '타임'지가 선정한 100대 영문소설의 한권이기도 하니까 이미 '고전'의 반열에 오른 작품이기도 한다.

다소 놀라운 건 1960년에 발표된 작품이므로 작가가 만 30세(이전에!) 쓴 소설이라는 것. 768쪽이라는 방대한 분량(국역본은 3권 합계 1,600쪽이 넘는다!)의 작품을 20대에 쓰고서 그것이 당대의 걸작으로 꼽힌다는 게 예사로운 일은 아니다. 아무튼 포스트모더니즘의 대표작 중의 하나로 회자되던 책이 (비록 '연착'이란 느낌을 지울 순 없지만) 완역 출간되었기에 반갑다(비슷한 경향의 러시아 현대작가들의 소설들도 소개된다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혼자 해본다). 

소개에 따르면 책은 "'연초 도매상'이라는 서사시를 남긴 17세기의 시인 에브니저 쿠크의 여정을 좇는 패러디 역사소설이다. 작가는 리얼리티의 충실한 재현보다는 리얼리티가 언어적으로 어떻게 구성되는가, 리얼리티가 어떻게 모방되고 위조되는가에 관심을 보인다. 주인공 에브니저 쿠크는 17세기에 실존했던 시인이자 연초 도매상으로, 서사시이자 풍자시인 '연초 도매상'을 비롯한 몇 편의 시를 남겼다. 에브니저 쿠크의 시 창작 과정이 전개되고 메릴랜드의 식민 역사가 패러디되는 <연초도매상>에서는 문학적인 글쓰기와 더불어 역사적인 글쓰기가 중심적인 관심사이다. 에브니저는 메릴랜드 주에 있는 아버지의 연초(담배) 농장을 관리하기 위해 영국에서 아메리카로 간다. 그리고 여정 내내 해적과 인디언, 매춘부, 폭도에게 둘러싸여 예상치 못한 모험을 하게 된다. 그는 여행 중 만나는 사람들에게 스무 개가 넘는 이야기를 듣는데, 마침내 모든 이야기가 하나의 그림으로 직조되고, 쿠크는 서사시 '연초 도매상'을 완성한다."

 

 

 

 

위키피디아의 '존 바스' 항목을 읽어보면 그가 포스트모더니즘 소설과 메타픽션의 대가라고 소개돼 있는데, 작품의 줄거리는 그러한 소개에 딱 들어맞는 듯싶다. 특히나 <연초 도매상>은 로렌스 스턴의 <트리스트럼 샌디>(문학과지성사, 2001)와 필딩의 <톰 존스>(삼우반, 2007) 같은 피카레스크 소설에 대한 풍자로서의 성격을 갖는다고 하며 타임지의 평에 따르면, "<캉디드> 이후 가장 흥미로운 방랑 영웅이 등장하는 현대의 고전"이다. 

내가 알고 있는 존 바스는 대부분 영문학자 김성곤 교수의 소개에 근거한 것이다. 대부분이 박스보관 도서인지라 다시금 확인해보지 않았지만, <미로 속의 언어: 현대 미국작가와의 대화>(민음사, 1986), <탈모더니즘 시대의 미국문학>(서울대출판부, 1998) 등의 책에서 존 바스가 언급되었던 듯하다. 더불어, '고갈의 문학'과 '소생의 문학'이란 표어로 잘 알려진 바스의 문학론은 <소설의 죽음과 포스트모더니즘>(글, 1992)에 소개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얼마전 교보에서 <고갈과 소생의 변증법>(한국학술정보, 2006)이란 제목의 책이 눈에 띄어 집어든 적이 있는데, 기대한 번역서가 아니라 존 바스 연구서였다.  

 

 

 

 

한편, 영미문학연구회에서 엮은 <영미문학의 길잡이2>(창비, 2001)에서는 20세기 문학의 마지막 작가들로 '존 바스와 토머스 핀천'을 다루고 있다. 지금은 거의 찾아볼 수 없지만 두 작가의 소설들이 국내엔 얼마간 소개돼 있다. 먼저, 존 바스(존 바드, 존 바아드)의 경우엔 <여로의 끝>(을유문화사, 1983), <여로의 끝/ 선상악극단>(학원사, 1984) 등이 영문학 교수들의 번역으로 출간된 바 있고, <키메라>(고려원, 1979)는 전문번역가 이윤기 선생의 번역으로 일찌감치 나왔고.

토머스 핀천(1937- )의 경우에도 <브이>(학원사, 1985; 민음사, 1991), <제49호 품목의 경매>(벽호, 1994)가 번역/소개된 바 있다(단행본 연구서도 두어 권 정도 나와 있다). <제49호 품목의 경매>는 이번에 민음사에서 다시 출간됐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을 갖는 책은 아무래도 아직 번역되지 않은 <중력의 무지개>(1973)이다. 제목에 이끌려 오래전에 원서를 사두었지만 이 방대한 분량의 소설도 지금은 박스에 들어가 있다. <연초 도매상>에 견줄 만하지 않을까 싶은데, 마저 번역된다면 좋지 않을까 싶다...

07. 03. 28-31.

P.S. 핀천의 경우엔 자신의 신변노출을 극히 꺼리는 작가로도 유명하여 인터넷에서도 그의 사진은 몇 장 찾아볼 수 없다. 알려진 에피소드 한 가지는 그가 코넬대 재학시 나보코프의 문학강의를 수강했었다는 것 정도. 정작 나보코프 자신은 핀천에 대해 기억나지 않는다고 한 것으로 보아 '두드러진' 학생은 아니었던 듯한데, 작문 채점을 도와준 그의 아내 베라가 핀천의 필체가 인상적이었다고 한마디 덧붙이긴 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tarla 2007-04-14 15:22   좋아요 0 | URL
커트 보네거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아 이 세대가 이제 진짜 끝이구나 싶어서 남은 분들(;;;)을 생각해봤더니, 핀천과 바스가 살아 계시더군요;;; 아무래도 이 분들은 보네거트 님만큼 만만한 분들이 아니어서 읽은 적 없는데, 로쟈 님 포스트 보고 <연초 도매상>에 도전합니다. -_-;

로쟈 2007-04-14 20:42   좋아요 0 | URL
저도 뒤늦게(?) 보네커트의 책을 주문했습니다.^^;
 

구내서점에 들렀다가 뜻밖에 발견한 책은 미셸 푸코의 <주체의 해석학>(동문선, 2007)이다. '삶이 예술이 되게 하라'란 제목의 리뷰를 어제 옮겨왔었는데, 마침 바로 그 주제에 관한 책이 출간된 것(알라딘에는 아직 입고되지 않은 듯하다).

책 이미지

1981-1982년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의 강의를 펴낸 것인데, 불어본은 지난 2001년에, 그리고 영역본은 지난 2005년에 출간되었다. 푸코의 강의록으로는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와 <비정상인들>에 이어서 세번째로 소개되는 책이다. 이 강의록 시리즈의 책임 편집자는 프랑수아 에왈드와 알레상드로 폰타나이며, 이 책의 편집자는 <푸코와 광기>(동문선, 2005)의 저자이자 <미셀 푸코, 진실의 용기>(길, 2006)의 공저자인 프레데렉 그로이다. 책에는 이 강의의 특징과 출판과정에 대한 편집자의 자세한 해설이 부록으로 포함돼 있다.  

 

 

 

 

역자는 오래전에 저명한 푸코 연구서인 존 라이크만의 <미셸 푸꼬, 철학의 자유>(인간사랑, 1990)을 소개한 바 있고 미셸 푸코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 취득 후에 귀국하여 프랑수아 샤틀레의 <이성의 역사>(동문선, 2004)를 역간하기도 한 심세광 박사이다. 모처럼 무게 있는 저작이 최적의 역자를 만나 출간되었기에 안도감이 든다. 20쪽에 이르는 해제성 역자서문도 신뢰감을 주기에 충분하고.

1982년 1월 6일부터 3월 24일까지 행해진 강의에서 푸코가 주로 다루고 있는 텍스트는 플라톤의 <알키비아데스> 등이다. 역자가 잘 정리해놓은 바에 따르면, "푸코는 <주체의 해석학>에서 고대의 자기 기술둘, 특히 스토아주의와 에피쿠로스주의의 자기 기술들을 연구하면서 고대인들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결코 던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발견해낸다."

"고대인들이 자기 자신에게 가해야 할 노력이 있었다면 그것은 발견해야 할 정체성의 문제가 아니라 실천해야 할 행동의 문제였다. 고대에 자기와 자기를 분리시키는 것은 '인식'의 거리가 아니라 '현재의 자기'와 '생이라는 작품'의 거리였다는 점을 푸코는 강조한다. 고대 주체의 문제는 자기를 인식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삶을 작품의 재료로 간주하는 데 있었다.'"(25쪽) 푸코는 이를 일컬어 '실존의 미학'이라 명명한다. 이 주제에 관해서라면 <자기의 테크놀로지>(동문선, 1997)도 참고해야 하는 필독서이다.

책에는 시리즈의 공동편집자가 작성한 일러두기가 서두에 실려 있는데, 푸코의 독자라면 다들 알 만한 내용이지만 생소한 독자들도 있을 것 같아 옮겨보면, "미셸 푸코는 안식년이었던 1977년만 제외하고는 1971년 1월부터 1984년 6월 그가 사망하던 때까지 줄곧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강의했다. 그의 강좌명은 '사유체계의 역사'였다. 이 강좌는 쥘르 뵈유맹의 제안에 따라 콜르주 드 프랑스 교수협의회에 의해 1969년 11월 30일에 개설되었는데, 장 이폴리트가 죽을 때까지 맡고 있던 '철학적 사유의 역사'를 대체한 것이다."(31쪽)

그러니까 스승이었던 이폴리트의 후임으로 새로운 강좌를 맡게 된 것인데, "교수협의회는 1970년 4월 12일 미셸 푸코를 새 강좌의 교수로 선출했다. 그때 그는 43세였다. 미셸 푸코는 1970년 12월 2일 교수 취임 기념강의를 했다." 푸코와 교수직에 나란히 지원했다가 고배를 마신 이가 바로 폴 리쾨르였다. 그리고 푸코의 첫 취임강의는 이듬해 5월 <담론의 질서>로 출간되었다.

 

 

 

 

콜레주 드 프랑스의 가장 큰 특징이기도 하지만 이 강의를 듣는 데에는 어떠한 자격요건도 필요하지 않았고 교수들은 지도학생을 가진 것이 아니라 청강생들만을 가지고 있었다. '한국어반 청강생'들을 위한 교본으로 생각하면 책값이 그렇게 부담스럽지만은 않을 듯하다.

국역본이 나온 김에 나는 도서관에서 이전에 너무 두꺼운 탓에 엄두가 나질 않아 대출하지 못했던 영역본을 대출했다(영역본은 556족으로 588쪽의 국역본과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건 국역본의 페이지당 행수가 30행인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영역본은 35행이다). 그리고는 아예 영역본은 아마존에 주문했다. 배송료를 포함해도 국역본보다 훨씬 싼 가격에 구입할 수 있고, 그 정도면 책을 복사하는 것보다 경제적이어서이다. 영역본으로는 콜레주 드 프랑스의 강의가 네댓 권 정도 번역돼 있는 듯하다.

Интеллектуалы и власть. Избранные политические статьи, выступления и интервью. Часть 2

한편, 러시아어로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와 <비정상인들>이 번역돼 있다(이 중 <비정상인들>은 모스크바 체류시에 구입한 책이다). <주체의 해석학>의 경우에는 한국어본이 먼저 나온 셈이다. 러시아어본으로 최근간은 대담집인 <지식인과 권력> 2부(2005)이다. 1부는 지난 2002년에 출간됐었다... 

07. 03. 27-28.

P.S. 푸코가 주로 다루는 책 중의 하나가 플라톤의 <알키비아데스>라고 했는데, 이번에 우리말 번역본이 출간됐다. <알키비아데스>(이제이북스, 2007). 정암학당 플라톤 전집의 첫 권으로 나온 듯싶다. 소개에 따르면, "정암학당의 학자들이 7년간의 시간을 기울여 번역한 플라톤 전집 중 한 권. 소크라테스가 알키비아데스라는 장래가 유망한 젊은이를 상대로 질문을 던져 가며, 알키비아데스 스스로 자신의 무지를 깨닫게 하고 앞으로 해야 할 바를 자각게 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다양한 주제에 걸쳐 질문을 주고 받는 소크라테스와 알키비아데스의 모습 속에서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의 진미를 느낄 수 있으며, 위서 논란이 있지만 플라톤 사상의 전조(*전모)를 보는데도 부족함이 없다." 한국의 플라톤 수용에 있어서 또 하나의 획기적인 전기가 될지 기대된다.

07. 04. 13.


댓글(14)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Ritournelle 2007-03-28 00:36   좋아요 0 | URL
* 영역본을 살려고 했는데 잘 됐군요. 역자가 '심세광'씨라서 믿음도 가고요. 고마운 정보 감사합니다.

로쟈 2007-03-28 01:19   좋아요 0 | URL
저는 아예 영역본까지 주문해버렸습니다.^^;

Ritournelle 2007-03-28 01:27   좋아요 0 | URL
예스 24에서 꽤 싸게 파네요. 17, 420원... 2주 정도가 걸리니 저도 영역본을 주문해야 겠습니다. '삶의 미학적 차원' 혹은 '삶의 예술적 차원'이라는 주제는 정말 멋있는 것 같습니다. 푸꼬가 그토록 매력적인 것은 바로 이러한 연유 때문 아닐런지요?

로쟈 2007-03-28 01:31   좋아요 0 | URL
알라딘도 빨리 '국제화'되면 좋겠는데요...

Ritournelle 2007-03-28 03:47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예스 24는 책 값의 10% 정도를 마일리지로 적립해 줍니다. ^^* 물론 플래티넘 고객한테만요. 다른 고객에게는 잘 모르겠네요. 그리고 "푸코와 교수직에 나란히 지원했다가 고배를 마신 이가 바로 폴 리쾨르였다." 이 부분이 눈에 확 들어오는 군요.

이비 2007-03-28 09:47   좋아요 0 | URL
참고할 필독서로 <자기의 테크닉>을 소개해주셔서 검색해보았는데 잘 찾을 수가 없네요. 이 책도 역시 푸코의 저서인가요?

주니다 2007-03-28 11:52   좋아요 0 | URL
기대되는 책이군요. 번역본이 원서보다 훨씬 비싸네요. ㅎㅎ

로쟈 2007-03-28 14:42   좋아요 0 | URL
tavola님/ 제목을 제가 축약해버렸네요. <자기의 테크놀로지>입니다.^^;
주니다님/ 원서보다 비싼 게 요즘은 대세 같아요.--;

테렌티우스 2007-03-28 20:00   좋아요 0 | URL
하 희소식이네요. 그런데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라는 국내번역서의 정확한 제목은 원저와 마찬가지로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가 되어야 맞습니다.

이 제목은 푸코가 주장하는 바가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사회 내의 이른바 '보수적인' 사람들이 기존의 윤리적 정치적 가치를 비판받을 때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라고 대답했다는 말을 푸코가 비판적으로 인용한 내용을 따른 것입니다.

그래서 불어원서도 그대로 "Il faut defendre la societe"로 출간되어 있지요(알라딘 넷에도 인용부호 없는 사회를 보호한다로 잘못 되어 있지요). 즉 일종의 비판 혹은 비아냥(?)식의 책제목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합니다.

사실 푸코가 말하고 싶은 것은 - 제목을 얼핏 들었을 때의 일반적인 느낌과는 정반대로 - 차라리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고?"라는 반문에 더 가깝지요.

이는 예를 들면 독일 제3제국 시절의 어느 한 나치주의자가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을 때 그말이 당시 가졌을 정치적 함의를 생각해보면 그 뜻을 잘 알 수 있지요...

여하튼 로쟈님, 빠른 소개 정말 반갑고 고맙습니다.^^

로쟈 2007-03-28 22:20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국역본도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라고 나와 있구요, 제가 누락시키긴 했지만.^^; 푸코의 책을 읽어본 독자라면 오해의 소지는 없을 거라고 생각되지만... 그나저나 테렌치우스님의 활동도 기대가 됩니다.^^

2007-03-28 23: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7-03-29 14:00   좋아요 0 | URL
**님/ 제가 알기에 푸코는 권력이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공모적이라고 보기 때문에 그런 비판이 나온 게 아닌가 싶네요. 자세한 건 맥락을 봐야 할 거 같습니다...

2007-03-29 22: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테렌티우스 2007-03-29 23:1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기대에 부응해야 할텐데 걱정되네요...^^
 

아침신문에서 두 가지 기사를 옮겨놓는다. 역사가 어떻게 '구성'되는가를 공통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듯해서 제목은 '우리가 상상하는 한국사'라고 붙였다.  

경향신문(07. 03. 27) 박노자교수 “논개는 조작된 영웅…정치적 미화”

최근 경남 진주 의기사(義妓祠)에 있는 논개(論介) 영정의 복사본을 강제로 떼어낸 진주시민단체 회원 4명이 대법원으로부터 유죄를 선고 받았다. 이들은 친일 화가 이당 김은호가 영정을 그렸다는 이유로 영정을 떼어냈다. 논개를 국난 극복의 대표적인 여성 영웅, 민족의 영웅으로 인식하는 일반인의 시선을 감지할 수 있는 대목이다.



과연 논개는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에 왜장을 껴안고 죽은 것일까. 박노자 노르웨이 국립오슬로대 교수는 아니라고 단언한다. 그는 논개가 왜장 게야무라 로구스케를 껴안고 투신한 것도, 전남 장수가 고향으로 본관은 신안 주씨라는 인적 사항도 모두 후대에 조작된 것들이라고 주장한다. 박교수는 오는 31일 연세대 위당관에서 열릴 열상고전연구회 춘계학술대회에서 ‘임진왜란과 의기(義妓)전승-전쟁, 도덕, 여성’이란 논문을 통해 논개의 죽음에 수많은 정치적 미화가 곁들여졌다고 발표한다.



논개와 관련된 최고(最古)의 자료인 유몽인의 ‘어우야담(1621)’에는 논개가 ‘욕을 보지 않으려고 죽은’ 것으로 쓰여있다. 유몽인은 임진왜란때 광해군을 따라 진주에 갔을 당시 들은 목격담을 기록하고, 자신의 해석을 덧붙여 논개의 죽음을 ‘유교 군주의 교화를 입어 차마 나라를 버리고 적을 따르지 못하는’ 관기의 가상한 충성심으로 파악했다.

논개의 죽음에 대한 본격적인 각색은 18세기 초 진주지역 유생과 지방관료들에 의해 진행된다. 이들은 조정에 논개에 대한 봉작과 사당 건립을 요청하면서 그저 ‘왜군’으로 묘사되던 ‘강간범’을 ‘왜장’으로 승격시키고, 강간범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려 했던 논개를 의도적으로 왜장을 유혹해 투신해 전공을 세운 여성 의사(義士)로 그려낸다. 18세기 중반 논개를 기리는 의기사가 세워진 후에는 출신, 신분이 불분명하던 논개에게 고향과 본관이 생긴다. 또 임진왜란 당시 전훈을 세우고 순국한 의병장 최경회(1532~93)의 천첩으로 신분도 승격됐다.

박교수는 논개의 신격화를 당시 진주가 차지하던 사회정치적인 지위와 연결지어 설명한다. 이중환의 ‘택리지’에 따르면 진주는 구례, 남원과 더불어 조선 최대의 옥토로 일컬어지던 곳. 이를 바탕으로 진주의 양반은 강력한 세력을 유지했고 조선 초기만해도 중앙으로의 진출 역시 활발했다. 진주가 고향인 남명 조식(1501~72)은 이곳에서 유가의 실천정신을 중시하며 남명학파를 이끌었다. 그러나 남명학을 이념적 지주로 삼던 광해군 정권이 인조반정(1623) 이후 몰락하고 이인좌의 난(1728)의 사상적 뿌리가 남명학에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진주는 역모의 사상적 고향으로 찍혀 차별을 받기 시작했다.

박교수는 이 때문에 진주의 유생과 사대부들이 진주를 충절의 고향으로 승격시키기 위해 논개의 신격화에 매달렸다고 설명한다. 이후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민족주의적 요소까지 덧씌워지면서 논개가 민족의 영웅으로 추앙받기에 이르렀다는 것. 박교수는 논개의 행동을 민족주의, 국가주의적 시각에서 바라보는 데 대해 의문을 제기하며 “논개가 설령 국가와 임금 혹은 민족을 생각하지 않았다하더라도 자신을 지킨 행동이 폄훼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윤민용기자)

담비(07. 03. 26) 상상적인 국가이야기는 어떻게 시작되었나

현재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에는 "신라가 당을 축출함으로써 삼국통일이 완수되며, 이를 통해 우리 민족은 하나가 되어 단일한 민족문화와 사회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고 묘사되어 있다. 이러한 통일신라론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가. 이런 묘사는 손진태의 '조선민족사개론'(1948)이나 '국사대요'(1949)에서도 찾아볼 수 있지만 그 시원은 1892년에 출판된 하야시 다이스케(林泰輔, 1858~1922)의 '朝鮮史'에서 최초로 확인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윤선태 동국대 교수는 최근 나온 '신라문화' 제29집에 발표한 논문에서 "통일신라론이 왜 등장했고, 한국의 현행 국사체계 속에 어떤 과정을 거쳐 뿌리내리게 되었는가를 추적"했다.

논문에 따르면 갑오개혁 이후 역사를 소비하는 주체에 거대한 변화가 일어났다. 기존에는 유교 지식인의 經學을 보조하는 수단으로서 기능했던 역사가 갑오개혁 후에는 국민을 지속적으로 창출하기 위한 수단으로 변모하였다. 그 일환으로 등장한 역사교과서가 바로 1902년 金澤榮의 '동사집략'(1902)과 玄采의 '동국사략'(1906), '중등교과 동국사략'(1908) 등이다. 이들은 직접 지은 것이 아니라 하야시의 '조선사'를 거의 그대로 역술한 것들로서, 기존 연구들은 이들을 식민사관의 수용으로만 평가하였을뿐, 근대역사학의 성립과정 속에서 세밀하게 검토하지 않았다.

하야시의 '조선사'에는 '신라의 통일'이라는 항목이 별도로 설정돼 있는데, 그 서술이 현재 통용되는 통일신라론의 선구적 면모를 갖추고 있다. 전통시대의 신라정통론과 하야시의 그것은 질적으로 달랐다. 가령 조선 전기에 찬술된 '동국통감'에는 신라기를 독립시켜 다루고 있지만, 통일의 시점이 고구려가 멸망한 문무왕 8년으로 설정돼 있다. 신라기 독립의 명분도 신라가 箕子의 유풍을 간직, 계승하였고, 오륜이 돈독하다는 등 유교적 가치를 기준으로 한 것이었다.

그러나 하야시는 당세력의 축출을 삼국통일의 시점으로 새롭게 설정했다. 바로 나당의 대립을 강조한 새로운 담론이었던 것이다. 이런 하야시의 입론은 청일전쟁 직전 일본의 대한반도 정책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고 윤 교수는 추적해 들어간다. 당시 분위기는 강화도사건을 계기로 체결된 1876년 '한일수호조규'의 "조선국은 自主之邦으로 일본국과 平等之權을 보유한다"는 부분에서 살펴볼 수 있다. 여기에서의 자주와 평등은 기본적으로 전근대 동아시아세계의 계서적 국제질서관념 속에서 청국에 대한 조선의 종속관계를 단절시켜, 조선을 전통적인 화이관 밖으로 끌어내려는 일본의 의도가 담겨있다고 윤 교수는 분석한다. 게다가 하야시가 '통일신라론'을 만들어낸 시기인 1885년부터 1893년은 일본이 조선을 둘러싼 청국과의 쟁탈전에서 패배한 시점이기도 하다.

한편, 조선의 경우를 보자. 광무개혁을 주도한 고종정권은 종래의 지역적 단위의 공동체를 넘어 국가단위의 통합이 필요했다. 이 때 하야시가 만들어놓은, 중국을 타자로 한 조선사 체계가 아주 요긴한 내러티브로 다가온 것이다. 그렇다면 조선역사가들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를 활용했을까. 김택영은 '동사집략'에서 "깜깜한 밤중에 갑자기 이웃집에 불난 듯 역사의 내용이 밝하졌다"라며 하야시의 임나일본부설을 적극 칭송하며 수용하였다. 그에게 근대적 국사체계에 대한 인식이 없었기 때문이다. 김택영에게 과거의 임나일본부는 현재의 조선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그저 하나의 사료에 불과했던 것이다.

반면, 현채의 '동국사략'은 하야시의 '조선사'를 역술하면서도 자신의 입장에서 비판적으로 변용했다. 하야시와는 달리 단군의 개국을 확실시 하였고, 위만과 四郡은 목록에서 빼버렸다. 임나는 목차엔 그냥 두었지만, 설명은 통째로 들어냈다. 이는 그가 독자적인 조선의 민족사를 고민하였음을 말해준다. 그의 '동국사략'은 1909년 일제에 의해 판금조치가 되는 등 수난을 겪었지만, 이후 역사서들의 기준이 되었다. 현채의 이런 주체적 사관은 그가 역관 출신의 일본통으로서 일본의 근대적 변화를 몸소 겪었기 때문이라는 게 윤 교수의 분석이다. 그리고 1903년 무렵의 시간대에 양계초의 '응빙실문집'이 들어오고, 사회진화론 및 근대역사학 방법론이 널리 보급되었던 때였다는 것도 고려해 볼만하다.

이렇게 하야시의 통일신라론은 조선의 역사 속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그의 통일신라론이 명실상부한 보편적 역사진리로 각인되는 과정에는 또 다른 작용이 있었다. 바로 1902년 이래 미술사학자 세키노 타다시 등이 경주지역 발굴이 그것이다. 그 유명한 석굴암이 이 시기 발굴된 것이다. 산기슭에 묻혀있던 하나의 토굴에 불과했던 석굴암은 타다시를 비롯해 야나기 무네요시 등에 의해 "동양의 종교와 예술의 귀결"이라는 평을 받았다. 나카무라 료헤이는 "석굴암이야말로 신라 예술의 정수를 모은 것이다. 아니, 조선만이 아니라 地上美의 전당이다"라고까지 말했다. 

석굴암과 불국사 등 신라의 예술은 일본을 넘어 세계적인 인정을 받았다. 독일의 미론가 안드레아 에카르트는 "경주의 석굴암이 동양문화의 가장 중요한 기념비임은 지나친 과장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당연히 이런 언설들은 조선의 지식인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들은 일본의 관변학자 세키노와 민예의 창시자 야나기가 건립해놓은 '신라'라는 박물관에 매혹된 관람객이자 학도로서 그 박물관 견학의 결과를 제출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당 세력을 몰아낸 이후 신라사가 황금문명을 이룬다고 기술한 황의돈의 '신편조선역사'(1923), 감상적이고 慕古主義적인 단재사학을 배격함과 동시에 식민사관도 아울러 비판한 안확이 신라의 외세 이용과 삼국통일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조선문명사'(1923), 신라의 정신과 문화를 바탕으로 이른바 '朝鮮心'을 이끌어내는 문일평의 '掌篇新羅史'(1935, '조광'), "광대한 영토와 인민을 상실하긴 했지만, 신라통일로 그나마 민족 모체의 결정을 보게 되었으며 빈번했던 종족 내부의 상투적 비극이 정지되었다"고 말한 손진태의 '조선민족사개론'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윤 교수는 "신라를 지나 고려 이후 미술의 쇠퇴, 조선문화의 쇠퇴 등은 현실적인 제국과 식민구조를 정당화하는 기조로 작용했다. 신라문화는 일본 고대문화의 아류로서 존재한 것이지, 별도의 독립된 학문영역은 아니었다"라고 지적한다.

아무튼 식민지시기를 통틀어 역사, 문학, 종교, 미술 등 통일신라론의 개진은 다방면에 걸쳐 이뤄졌다. 그것은 한국인의 지적, 상상적 능력이 전면적으로 동원된 작업이었고, 후대 한국의 정치실험과 문화 건설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윤 교수는 결론에서 "통일신라의 발명과 확립은 문화와 민족의 지위가 사라져버렸던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이 기획할 수 있었던 상상적인 국가이야기의 시작으로서, 간과할 수 없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라고 평한다.(리뷰팀)

07. 03. 2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원래는 주말에 해놓으려고 했던 정리인데 다소 지체된 일을 해치우려고 한다. 볼프강 벨슈의 <미학의 경계를 넘어>(향연, 2005)에서 아방가르드와 일상의 심미화를 대비시키고 있는 대목을 간단히 정리해두는 게 일차적인 목표이지만 곁다리 얘기들도 포함될 듯하다(이브 미쇼의 책들이 함께 다루어질 만하다). 다른 일들에 발목뿐만이 아니라 허벅지까지 붙들린 상태이지만 <일상생활의 혁명>에 관한 리뷰를 옮겨오면서 다시금 등떠밀리며 떠올리게 된 일부터 처리하는 수밖에.

 

 

 

 

먼저, 볼프강 벨슈(벨쉬)는 <우리의 포스트모던적 모던>(책세상, 2001)로 먼저 소개되었던 독일 철학자이며 현재는 예나대학교에 재직중이라고 한다. 그의 <포스트모던적 모던>은 이미 여러 차례 개정판이 나왔을 정도로 현지에서도 호평을 받고 있는 듯하고, <미학의 경계를 넘어서>도 그의 책으론 처음 영역(1997)되면서 학문적 성가를 널리 알린 책이다. 역자에 따르면 "현재 독일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미학자 중 한 명"이다.  

Cover Art for Undoing Aesthetics

원저인 독어본이 1996년에 출간됐으니 영역본은 바로 이듬해에 나온 셈이다. 그리고는 또 8년 후에 한국어본이 나온 것이고. 국역본이나 영역본 표제에서도 암시받을 수 있지만, 저자는 "전통 미학의 관점에 안주하기보다는 미학의 영역을 확장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미학자"이며, "현대 예술, 건축, 음악 및 디지털 전자 매체 세계에 대해서도 미학적 분석을 시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확장을 통해 미학의 경계를 허물고자 시도"한다. 그러고 보면, 역자인 심혜련 교수의 <사이버스페이스 시대의 미학>(살림, 2006)은 이 책의 문제의식을 자연스레 연장한 것으로도 보인다(역자 자신이 벤야민 전공자이기도 하지만).

전체 3부로 구성된(영역본은 2부로 재구성돼 있다) 책의 제1부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것은 미학의 '새로운 시나리오', 곧 현대의 심미화 과정이 낳은 이러저러한 결과들에 대한 점검이다. 그 중에서도 첫번째 장은 심미화 과정들 일반에 대한 검토와 비판적 전망으로 채워져 있다. 그 '심미화 과정'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의심할 여지 없이 우리는 지금 미학의 열기를 체험하고 있다. 이는 개인적인 꾸미기를 넘어서 도시 조형과 경제를 거쳐 이론에까지 이르고 있다. 현실의 많은 요소들이 점점 더 심미적으로 재형성되고 있으며, 현실은 점점 더 심미적인 가설로서 중요시되고 있다."(21-2쪽)

'개인적인 꾸미기'란 자기 스타일의 창조를 말한다(저마다 제멋에 겨워 사는 게 현대인들 아닌가?). '심미적인 가설'이라고 번역된 건 영역본에 따르면 'aesthetic construct'이다. 마지막 문장을 영역본을 토대로 옮기면 "현실의 점점 더 많은 요소들이 심미적으로 치장되고 있고, 현실이란 것 자체가 우리에게 점차 심미적 구조물로 간주되고 있다." 이러한 심미화 경향을 벨슈는 '표면적 심미화(surface aestheticization)'와 '심층적 심미화(deep-seated aestheticization)'으로 구분하고 이에 대해서 상술한다(물론 그의 초점은 '심층적 심미화'에 맞추어진다).

저자가 표면적 심미화로 분류하고 있는 항목은 (1)현실의 심미적 장식, (2)문화의 새로운 모체로서의 쾌락주의, 그리고 (3)경제적 전략으로서의 심미화, 세 가지이다. "표면적인 측면에서의 심미화는 현실을 심미적 요소로 치장하고 심미적인 분위기로 실재를 아주 달콤하게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확실히 이러한 표면적 심미화는 아름다운 현실과 우리의 감각과 우리가 원하는 형태에 상응하는 현실에 대한 기본적이고 오래된 요구와 연관되어 있다."(23-4쪽)

뒷문장은 영역본에 따르면 "This certainly takes up an old and elemental need for a more beautiful reality corresponding to our senses and feeling for form"(2쪽)이고, 이걸 다시 옮기면 "이것은 형태에 대한 우리의 감각과 느낌에 부합하는 보다 아름다운 현실에 대한 오랜, 그리고 기본적인 요구와 확실히 연관되는 것이다." 정도가 될 것이다.

 

 

 

 

벨슈도 인용하고 있는 책이지만 이러한 심미화 경향의 짝을 이루는 것은 '심미적 인간'이다(뤽 페리의 이 책은 <미학적 인간>(고려원, 1994)으로 번역/소개돼 있다). "심미적 인간은 예민하고 쾌락적이며 교양 있는 인간이다. 그리고 특히 뛰어난 취향을 가진 인간이며 타인의 취향을 인정하고 이에 대해 논쟁하지 않는다."(30-1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