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창비주간논평을 옮겨온다. 한국문학 번역가로도 활동하고 있는 서강대 안선재 교수의 '한국문학 번역의 과제들'이란 제안과 고언이다. '우물안 개구리'를 시야를 벗어나려면 정작 외국 독자들이 한국문학을 보는 시각에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겠다.

창비주간논평(07. 05. 15) 외국 독자들은 한국문학을 어떻게 읽을까

한국인들은 흔히 한국문학이 해외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고 말한다. 번역 출간된 작품이 너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2001년 이후에 70편이 넘는 작품이 영어로 번역되었고 다른 언어로 번역된 작품 수는 분명히 그보다 더 많다. 자주 듣는 또다른 말은, 한국문학의 번역은 형편없어서 노벨문학상 같은 것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나의 첫번째 답변은, 최근에 작품이 거의 번역되지 않은 상황에서 노벨상을 수상한 작가들도 있다는 것이다. 번역과 성공적인 마케팅은 노벨상을 타는 선행조건이 아니다. 두번째 답변은 지난 10년간 내가 봐온 한국문학 번역작품은 원작의 내용을 충분히 정확하게 반영한다는 점에서 질적으로 상당히 괜찮다는 것이다. 세번째 답변은 노벨상 수여기관인 스웨덴 왕립아카데미 회원들이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의 의견에 따르면) 세계 곳곳에서 씌어진 문학작품을 비교하여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이 명백히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최근에 그들이 내린 판단은 대부분 심각한 문제가 있다.  

한국문학 번역에 대한 동상이몽

그러나 한국문학의 번역과 홍보가 당면한 문제는 분명히 있다. 첫째, 번역될 작품을 선정하는 데 문제가 있다. 한국의 문화, 정부 관계자들은 대개 이미지 선전으로써 한국을 전세계에 알리려는 총제적인 캠페인의 일환으로, 널리 상찬되고 정평있는 '유명한' 한국작가들의 번역을 추진하려고 한다. 한국문학사를 가르치는 학계의 전문가들은 본인들이 판단하기에 근대 한국문학의 전개과정에서 중요한 작품을 번역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오늘날 해외의 상업출판업자들의 관심은 단 한가지에 집중된다. 즉 그들은 재정적 수익을 많이 올리고 자기들의 위신을 보장할 수 있을 정도로 잘 팔리는 작품을 출판하려고 한다. 한국측의 '문헌적 정보' 프로젝트와 '성공・수익'에 대한 외국 출판업자들의 요구 사이에는 직접적인 갈등이 있는데, 이 갈등은 런던이나 빠리, 뉴델리 등지에서 현재 어떤 종류의 문학작품이 잘 팔리는지 한국인들이 일반적으로 잘 모르기 때문에 더 심각해진다.

문학 번역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는,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작품이므로 전세계가 그 한국 작품에 찬사를 보내야 한다는 말을 듣는 것보다 더 절망적인 일은 없다. 최근에 나는 한 유명한 한국작가가 너무 많은 젊은 한국작가들이 1인칭 화자를 도입해 아무런 문학적 상상력 없이 ‘사실적인’ 스타일로 창작한다고 비판하는 것을 들었다.

세계문학으로 진출하려면 국제감각부터 익혀야

그의 비판은 (나는 그 논평의 전문을 보지 못했지만) 많은 한국문학 작품에서 서술자의 복합성이 결여되었음을 지적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내가 읽은 많은 한국 소설은 시작에서 출발해 간혹 회상이 섞여 들어가는 연대기적 순서에 따라 사건을 서술하고 마지막 페이지에 가서 어색한 결말로 끝맺는다. 외국의 성공적인 소설은 이렇게 창작되지 않는다.    

따라서 한국문학을 '세계화'하기를 바랄 때 한국이 당면한 단 하나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오늘날 세계의 가장 탁월한 작가들이 어떤 작품을 생산하고 있는가에 대해 한국 작가들과 독자에게 교육하는 것이다. 현재 번역과 출판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한국 문학작품을 바깥에 소개하는 것 못지않게, 아니 그 이상으로 동시대 외국의 탁월한 작가들을 한국독자에게 알리는 일이다. 전해지는 근래의 일본소설의 성공담은 그 점을 확인해준다.

많은 기성 한국작가들의 작품이 잘 팔리지 않는 것을 현대인의 시청각매체에 대한 집착 탓으로 손쉽게 돌릴 일이 아니다. 그것은 한국독자들이 뭔가 더 나은, 진정으로 새롭고 즐거운, (최소한 때때로) 생각을 자극하는 그런 작품을 원한다는 사실의 징표이기도 하다. 양질의 현대 세계문학의 번역을 한국의 출판인들이 지원하지 않는 것은 한국문학의 발전에 해가 되는 일이다. 

외국독자들이 말하는 한국의 시와 소설

오늘날 세계에서 시는 대부분 잘 팔리지 않는다. 상을 타고 비평의 주목을 받으면서 수익을 내고 영화로 만들어지는 것이 소설이라는 사실은 다들 알고 있다. 그렇다면 왜 한국 시가 지난 20년간 한국소설보다 영어로 그렇게나 많이 출간되었는가? 나 자신만 해도 시집을 거의 20여권을 번역했지만 번역한 소설은 3권에 불과하다. 이 물음에 대한 한가지 답변은, 한국 시는 소설보다 훨씬 재미있고 활기차다는 것이다. 많은 한국 시인들은 번역으로 전달될 수 있는 방식으로 특정한 한국적 삶의 경험에 대해 쓴다. 그들의 시는 살아 있고 설득력이 있으며 독특하게 인간적이다. 물론 그 시적 효과를 위해 주로 한국어의 특징에 의존하는 시인들은 번역으로 제대로 표현될 수 없다.



외국독자들에게 어떤 한국 시들의 영향은 강렬하고 잊을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이 사실을 그들에게 들어서 알고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한국소설을 읽은 독자들의 으레 이렇게 묻는다. "작품이 왜 이렇게 우울한가?" 시는 자주 고통스러운 상황에 복합적이며 개인적인 반응을 간결하고 강렬하게 표현하면서 독자로 하여금 인간적인 목소리를 듣게 한다. 물론 소설은 시의 한 형식으로 간주되기도 하지만, 한국 소설가들은 이 점을 보지 못하고 있다. 우아한 문체, 다양한 서술 리듬, 해석의 모호함, 여러 서술자들의 목소리, 글쓰기 전략에서의 복합성 등은 모두 시로서의 소설이 갖는 근본적인 특성들인데, 한국 작가들의 작품에는 너무나 부족한 것이다.

체면치레하지 말고 치열하게 비판하라

물론 어느 면에서는 한국작가들이 작가와 비평가 사이의 효과적인 대화가 성숙되지 않은 문화 속에서 살고 있어서 혜택을 보지 못하는 탓도 있다. 서평 형식으로 (때로는 맹렬하게) 표현되는 문학비평은 국제적인 문학담론의 본질적인 부분이다. 모든 작가가 직면한 가장 큰 위험은 자기에게 너그러운 것이다. 사려깊고 도전적인 비평 없이 어떤 작가가 기량을 연마하고 약점을 고치고 성숙한 예술을 발전시킬 수 있으리라 희망할 수 있겠는가? '체면'과 '명성'이 핵심 고려사항인 한국 같은 문화에서 정직한 비평은 자주 거부된다. 이건 큰일이다.

만약 다른 나라에서 창작되는 작품과의(반드시 북미나 유럽의 작품일 필요는 없다) 창조적인 만남을 통해 한국문학이 다시 태어나려면, 문단이나 학계의 '고참'들이 젊은 작가에 대해 후견인 노릇을 하고 평가하는 여전히 강력한 위계구조는 철폐하고, 새로운 문을 열고 새로운 자유를 찾아야만 한다. 그런 새로운 한국문학이라면 번역될 때 찬사를 받을 가능성이 휠씬 크다. 또한 그럴 때에야 비로소 한국문학은 세계문학의 핵심적인 일부가 될 수 있을 것이다.(안선재| 한국문학 번역가, 서강대 명예교수)

07. 05. 16.

P.S. 특히 마지막 충고가 인상적이다. 체면치레하지 말고 치열하게 비판하라! 좋은 게 좋은 거라는 한국적 정서가 비평의식을 잠식해서는 동네문학 수준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문단이나 학계의 '고참'들이 젊은 작가에 대해 후견인 노릇을 하고 평가하는 여전히 강력한 위계구조는 철폐하라! 흠, 이 벽안의 한국인(?)은 너무 많은 걸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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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17 22: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7-05-18 0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불가피한 일이겠지요. 그건 우리말로 번역된 '세계문학'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일 거구요. 하지만 그런 상실이 또한 번역의 가능조건이라고 생각합니다. '불가능조건'이 되는 상실은 문제이겠지만...
 

고종석의 연재 때문에 수요일엔 한국일보를 사보게 된다. 하지만 오전 강의도 준비해야 하는 터여서 연재기사 '도시의 기억'은 가방에 넣어두기만 하고, 미처 챙겨읽지 못했다. 대신에 훑어본 기사들 가운데 '인상적'이었던 건 '이과수 폭포 보며 혁신 배우겠다는 감사들'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사설이었다. 공직자들의 '세미나 관광'(사실 국회나 지자체 의원들에겐 남 얘기가 아니겠다)이야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어서 '아직도 이런 일이!'라고 놀라기엔 좀 식상하고 멋쩍다. 다만 이 '평범한 사회악'이 이렇듯 반복되는 것으로 보아 거의 구조적인 문제가 아닌가, 란 생각도 든다(그렇다면 '모럴 해저드' 문제가 아닌 것이다). '이구아수(이과수)'를 검색해보니 시원한 폭포수 대신에 뜨는 게 몽땅 이 '세미나' 관련기사들이다. 미디어오늘의 '아침신문 솎아보기'에서 관련 대목만 옮겨놓는다.  

미디어오늘(07. 05. 16) 공기업 감사는 공공의 적?

16일자 아침신문의 사설들은 일제히 남미로 '외유 세미나'를 떠난 공공기관·공기업 감사들의 심각한 '도덕적 해이'를 힐난했다. <공기업 감사들, 이과수 폭포 옆에서 '혁신 세미나'>(조선일보), <이구아수폭포 '혁신 세미나'와 미주리 골프 연수>(동아일보), <단체 외유에 나선 공공기관 감사들>(경향신문), <이과수 폭포로 '혁신' 세미나 간 혁신정부>(중앙일보), <이과수 폭포 보며 혁신 배우겠다는 감사들>(한국일보), <이구아수 폭포에서 공기업 혁신 논하나>(서울신문), <공기업 감사 '외유 세미나' 이래도 되나>(세계일보) 등 사설 제목들만 봐도 알 수 있다. 공기업 감사들이 '혁신을 배우겠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남미의 유명한 관광지인 '이과수 폭포'에 굳이 간 걸로 봐서 놀러간 게 분명하다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A2면 머리기사 <외유논란 공기업 감사들 중도 귀국할 듯>에서 "국민연금관리공단, 한국석유공사, 예금보험공사 등 21곳 공공기관, 공기업 감사들은 '공공기관 혁신포럼'을 연다는 명분으로 남미의 유명 관광지인 칠레 산티아고, 브라질 이과수 폭포,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 등을 들르는 10박11일 출장을 떠나 외유 논란을 빚었다"는 소식을 전하며 "특히 이번 여행에 참여한 감사들 상당수가 청와대 비서진, 과거 여당인 열린우리당 당직자, 노 대통령 후보 당시의 특보 출신들이라 '낙하산 인사'들이 해외관광을 떠났다는 비판도 제기됐다"고 보도했다. "1인당 800만원 정도 드는 여행경비는 이들이 속한 공기업, 공공기관이 전액 댔다"고 덧붙였다. 한편 출장을 준비한 여행사 관계자를 인용해 "이들은 향후 일정을 중단하고 중도 귀국하는 방향으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고도 전했다.

▲ 중앙일보 5월16일자 6면.
중앙일보는 어제에 이어 이틀째 1면에 공기업·공공기관 감사의 '이과수 폭포 세미나' 관련 보도를 내보냈다. 정부 차원에서 기획예산처가 진상조사에 착수했다는 소식이다. 예산처는 공기업·공공기관에 대한 1차 감독부서다. "감사들의 남미 출장 보도가 나가면서 거센 비판 여론이 일고 있다"는 지적은 조선과 마찬가지다. 방만 운영, 낙하산 인사 등에 대한 비판이다. "그러나 본지 확인 결과 감사 21명은 예정대로 출장 일정을 진행하고 있다"는 부분은 조선과 정반대 얘기다. 왜 사실관계가 다른지 알 수 없다.

조선 "중도 귀국" vs 중앙 "예정대로 일정 진행"

중앙은 6면에서도 <"혁신포럼 빙자한 관광 문책하라">는 제목으로 정치권의 비판을 기사화했다. 여야 할 것 없이 진상 파악과 관련자들의 처벌을 요구했다는 내용이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기획예산처가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있다"며 "파악해서 문제점이 있다면 (기획예산처 차원에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중앙은 △공공기관 감사 21인의 출장 일정 △공기업 낙하산 인사 관련 노 대통령, 청와대 인사수석 발언 등도 관련 그래픽으로 만들어 기사와 함께 배치했다.

중앙은 같은 면에서 <신이 내린 직장, 신이 내린 자리>라는 제목의 '취재일기'를 통해서도 외국으로 세미나를 하러 간 공기업 감사들을 비판했다. 이 기사를 쓴 윤창희 기자는 "보통 사람들과 달리 뭔가 근사한 곳에 가야 산뜻한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모양일까"라고 비꼬는 한편 "그들이 귀국 보따리에 획기적인 감사혁신 방안을 담아 온다면 사실 아무 문제가 될 게 없다. 그러나 우리보다 공기업 경영이 별로 나아보이지 않는 남미에서 기막힌 공기업 혁신방안을 배워올 수 있을까"라고 기막혀 했다. 윤 기자는 이어 "공기업 27개 중 80%가 넘는 22개사 사장이 공무원과 정치인 출신이다. 공기업 감사들이 줄지어 남미로 단체 출장을 떠난 것은 바로 이런 분위기 때문이 아닐까"라며 공기업 감사들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를 원인으로 짚었다.

한겨레는 6면에서 <공기업 감사 '집단 외유성 출장'>이라는 제목으로 해당 기사를 실었다. "공기업과 공공기관 감사 20여명이 외국 공기업의 감사 업무를 벤치마킹하고 세미나를 연다며 남미로 출장을 떠나자 '낭비성 외유'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는 말로 시작되는 기사는 "무엇보다 이들이 출장에 나선 남미 나라의 공공기관 경영방식에서 우리가 배울 게 많지 않고, 관광지 등에서 적잖은 시간을 보내기로 했기 때문(에 비판을 받고 있다)"고 사안을 정리했다.

 한편 "이들은 모두 '공공기관 감사포럼' 회원들이며, 지난 대선 때 노무현 후보 캠프에서 활약했거나 열린우리당에서 일한 사람들이 많다"고 이 기사는 지적하며 "출장 일정 등을 보면 '감사 업무 혁신 방안 마련'과는 거리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고도 보도했다. 공공기관 감사포럼 의장인 곽진업 한국전력 감사의 "남미의 공공기관을 방문해 한국과의 차이점을 확인하는 것도 공부에 해당하는 만큼 외유성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말을 인용하고 있지만 사안에 대한 언론들의 판단이 일관적인 만큼 다소 궁색해 보이는 게 사실이다.

▲ 경향신문 5월16일자 1면.
경향신문은 이 사안을 1면에서 <1인 800만원짜리 남미 '관광 세미나' 물의/"신도 탐내는 공공기관 감사">라는 제목으로 다뤘다. 경향은 "공공기관들이 '신이 내린 직장'이란 비아냥을 들을 정도로 따가운 시선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남미로 외유성 세미나를 떠난 것도 이런 역학적 관계 때문에 가능했다는 설명"이라고 기사는 풀이했다. '남미로 출장간 공공기관 감사 경력 및 연봉'과 '정치권·관료 출신 공공기관 감사'를 표로 만들어 정리하기도 했다.(권경선 기자)

07. 05. 16.

P.S. '구조적인 문제'란 것은 어제 읽은 김훈과 홍세화의 대담에서 나온 김훈의 발언을 염두에 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아마 우리가 밥을 먹는 과정에서 벌어진 구조적인 악들에 도전했다가 참패하신 것 같아요. 그분이 참패한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것을 개조하고 거기에 도전하는 일은 차기 정권의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계승해 나갈 수밖에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근데 박정희, 이승만 이후로 깔려버린 구조화된 악과 억압이라는 것은 정말로 만만치가 않은 것이죠."

얄궂게도 이번 외유성 세미나에 나선 이들은 모두 청와대 비서진을 비롯한 '노무현의 사람들'이라고 한다. '적'은, '구조적인 악'은 밖에만 있는 게 아닌 것(그러니까 그는 도전하기도 전에 이미 패배한 것이 아닐까). 이 '평범한 악'이 '혁신'이란 이름을 갖고 있는 게 또한 아이러니컬하다. 오늘이 5.16 쿠데타가 일어났던 날이란 것까지 고려하면 비장하게 코믹하고, 이과수 폭포가 나오는 왕가위의 <해피 투게더>의 첫장면을 떠올리면 애잔하기까지 하다(감사들끼리의 '해피 투게더' 아닌가?). 신이여, 제발 우리를 구원하지 마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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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민주항쟁20주년사업추진위원회'에서 진행중인 민주화20년 ‘상상변주곡’ 대토론회 중 네번째 꼭지로 임상수 영화감독의 발제 ‘6월항쟁 이후 한국사회 내면풍경에 관한 기사를 옮겨놓는다(지난주인가 두번째 꼭지인 진중권의 '신체의 지질학'을 옮겨놓은 바 있다). 출처는 컬처뉴스이다.   

6월항쟁 20주년 기념 대토론회 '상상변주곡' 네번째 장이 5월 14일 열렸다.

컬처뉴스(07. 05. 15) "고백 통한 자기복원이 필요하다"

1986년 군대를 갔다 온 후 복한한 한 대학생은 머리에 최루탄을 맞아 사망한 이한열의 시신을 지키는 사수조에 참여하라는 전화를 무시했다. 또 신촌에서 시청까지 인파로 뒤덮인 이한열의 장례식 날에도 개미 한 마리 없는 도서관에 혼자 있었다. 하지만 매일 낮 12시에 울리는 택시들의 경적소리와 그에 호응하는 넥타이족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어쩔 수 없는 울분과 떨림을 느꼈다. 그 복학생은 학교를 졸업하고 영화감독이 된다. <눈물>, <바람난 가족>, <오래된 정원> 등 한국 사회의 문화적 격변과 내면 풍경의 변화를 도발적인 문제제기와 모험적인 카메라 워크로 잡아낸 임상수 감독이다. ‘상상변주곡’ 네 번째 시간(14일)의 발제를 맡은 임 감독은 ‘고백을 통한 자기 복원 없이 그저 달려 나가가만 하는 사회’라는 주제로 “과연 민주화 진영이 무엇을 얼마나 이루었는가”에 대해 이야기했다.

 

 

 

 

 

 

 

 

 

임 감독은 “<그때 그사람들>은 1987년 6월민주항쟁이 없었더라면 찍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물론 박정희 시대였던 그 18년을 다 담고 싶다는 욕망도 있었지만 그 보다도 먼저 명령과 복종만 있었던, 해서 명령에 대해 회의하거나 사고하는 사람은 존재가 불가능했던 ‘그때 그 사람들’의 인간관계에 주목하고자 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임 감독은 우리가, 한국 사회가, 민주화 운동세력이 극복하지 못한 것을 크게 두 가지로 정리했는데 바로 ‘골목대장 문화’와 ‘터무니 없는 거짓말’이 그것이다. 먼저 ‘골목대장 문화’에 대해 임 감독은 “유치한 위계질서가 지금 얼마나 극복됐을까”라고 반문하면서 “한화 김승현 회장 사건만 보더라도 촌스럽기 그지없는 위계질서를 여전히 목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치졸하고 쓰레기 같은 짓을 하면서도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살고 있다는, 살아야 한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면서 “하늘이 알고 네가 알고 내가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거짓말이 통용되는 것은 그러한 뻔뻔스러움이 전염되어 내면화 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수구와 보수세력을 비판하기에 앞서 그렇게 치열하게 민주항쟁을 주도했던 민주진영 세력들이 도대체 이루어 낸 것이 시스템적인 민주주의 외에 무엇이 있는지에 대해 비판해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 누구도 세련된 민주주의 속에서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임 감독은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정의주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하고 있는 굴절된 풍토를 청산하고자 했지만 사실 이러한 것은 5년동안 할 수 있는 일이, 정권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 “바로 그 때의 6월 거리에 나왔던 사람들이 자기 고백을 통해 과거를 복원하고 그 복원을 통해 그 피의 값은 충분히 얻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이를 이루지 못한다면 소위 6월항쟁이란 허위의식에 가득 찬 난리굿이라 할 2002년 월드컵 열기와 다를 바 없다”고 전했다.

 

 

 

 

 

 

 

 

  

이날 토론자로는 강유정 영화평론가와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가 참여했다. 먼저 강유정 영화평론가는 “모든 사람들은 우연하게 만나고 우연하게 그 자리에 있는 것”이라며 “그러한 우연한 시기에 박종철이 죽었고, 이한열이 죽었고, 그들의 죽음을 우연히 같은 시기에 목격한 사람들이 들고 일어난 것이 바로 6월항쟁이 아닐까”라고 자문했다. 이어 그는 “막스(*맑스)가 사람을 통해 ‘학’을 구성했듯 이제야 우리들도 거리로 뛰쳐나왔던 그들을 통해 우연을 필연으로 만들어야 하는 시기”이며 “좀 더 지독한 타자의 윤리가 임상수 감독의 영화 속에 등장하기를 기대하겠다”고 전했다. 더불어 지독하게 냉정하고 객관적인 관찰자였던 임상수 감독의 위치와 영화 속에서 고백이라는 제의를 재현하고 싶었는지에 대해 질문했다.   

이에 임상수 감독은 “80년대 나는 물론 현장에 있었고 모든 것을 관찰하려는 노력을 했었던 것 같은데 내가 그렇게 바깥에 있었는가”라고 반문하며 “<오래된 정원>을 보고 1980년대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가득차 있었다, 이야기한 한 평론가의 평이 나는 가장 마음에 든다”고 전했다. 또한 “과거의 자기복원이 어려운 이유는 앞으로 빠르게 나가야 하는 현재의 상황들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인데 나는 <바람난 가족>에서 정말 나의 내밀한 고백을 시도했고, 그렇기에 나는 거리낄 것 없이 앞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김봉석 평론가는 “창작자들이 그 때의 이야기를, 6월민주항쟁의 이야기를 쓰지 않는 것이 불만이다”라며, “임상수 감독이 <오래된 정원>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타자’였기에 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민주화 운동세력이 철저한 자기고백을 하지 않았다는 임상수 감독의 발언에 동의하며 “386세대들은 분명 특수한 세대이고 그들 또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을 것이라 여겨지지만 결국 노태우 정권과 김영삼 정권을 이겨내지 못하고 동구권 또한 무너지면서 이상에 대한 환멸을 느꼈을 것”이라며, “그러한 열등감에 무용담 이상의 것을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에 강유정 평론가는 “386세대라는 호명 자체가 386세대의 호명에 대한 욕망”이라면서 “자기윤리를 세속적인 기준으로 맞추는 세대론 자체는 어쩜 유효하지 않은 것일 수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태윤미 기자) 

07. 05. 15.

P.S. 마침 6월에는 황석영의 <오래된 정원>과 임상수의 <오래된 정원>에 대해서 몇 마디 해야 할 일이 있는데, 임감독의 발제문은 참고자료가 될 만하겠다(감독과 변성찬 평론가의 대담을 링크해놓으려고 찾았지만 눈에 띄지 않는다). 내가 할 얘기는 6월로 미뤄놓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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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술 2007-05-16 03:53   좋아요 0 | URL
이 글과는 전혀 관계없는 횡설수설이지만 악셀이 누군지 알아냈어요. 빌리에 드 릴라당(Villiers de l'Isle-Adam)이라는 19세기 프랑스 작가의 희곡이래요. 원작은 우리나라에 아직 옮겨 나오지 않았고 에드먼드 윌슨이란 평론가가 쓴 '악셀의 성'이란 책을 통해 이 작품이 있다는 게 우리나라에 알려졌다내요.

로쟈 2007-05-16 21:44   좋아요 0 | URL
저도 생각난 건 <악셀의 성>밖에 없었는데(번역돼 있는 비평집이고 저도 갖고 있습니다), 번역된 작품의 주인공을 찾으시는 줄 알았습니다. 등잔 밑이 어둡네요...
 

동국대 대학원신문에 게재된 리뷰 하나를 담비에서 옮겨온다(http://www.dambee.net/news/read.php?idxno=1604&rsec=MAIN§ion=MAIN). <일본 근대 독자의 성립>(이룸, 2003)의 저자인 일본의 근대문학 연구자 마에다 아이의 연구논문들이 지난 2004년에 <텍스트와 도시: 일본의 근대성에 대한 에세이(Text and the City: Essays on Japanese Modernity>(듀크대출판부)로 영역되었다고 하는바 이 책에 대한 소개이다. 리뷰의 내용이 흥미로워서 옮겨놓는 것인데 이왕이면 번역/소개되었으면 싶다. 근대성(모더니티)과 관련하여 이정표가 될 만한 도시를 넷만 꼽자면 파리, 페테부르크, 뉴욕, 그리고 도쿄 정도가 아닐까 싶고(물론 더 많은 도시들이 거기에 덧붙여질 수 있을 것이다), 이 도시들에 관한 연구서들은 좀더 많이 소개되면 좋지 않을까 한다(발터 벤야민, 데이비드 하비, 마샬 버먼 등의 책들을 떠올릴 수 있겠다). 서울, 부산, 인천 등에 관한 연구서들도 좀 나와주고. 마에다 아이의 책이 자극제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동국대 대학원신문(141호) 마에다 아이의『텍스트와 도시』

'근대독자의 성립'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마에다 아이(前田愛)는 '도시 공간 속의 문학', '히구치 이치요의 세계', '마에다 아이 저작집' 등을 통해 일본 문학과 문화에 관한 주목할 만한 비평과 연구를 남겼다. 안타깝게도 지난 1987년 55세의 나이에 요절한 그는 메이지 시대 출판문화와 근대 문학의 성립을 살핀 메이지 근대 문학 연구자로 잘 알려져 있지만 일본 근대 문화에 대한 탁월하고 개성적인 관점의 비평을 수행한 문화비평가로서도 유명했다.

이러한 의미에서 제임스 후지에 의해 편집, 해설되고 해리 하루투니언의 서문이 실린 '텍스트와 도시(Text and the City)'는 메이지 시기 일본 문학 뿐 아니라 근대성과 도시의 관련성에 주목하는 문학, 문화 연구자들에게는 유용한 책이 아닐 수 없다. ‘일본 근대성에 관한 소론’이라는 부제를 단 '텍스트와 도시'는 마에다 아이의 여러 저작 중 '도시 공간 속의 문학'을 중심으로 도시 공간에 대한 연구물들을 모은 앤솔러지 형식의 저서이다.

이 책은 크게 4개의 장, 11편의 글로 구성되어 있다. ‘감옥의 유토피아’, ‘개화의 파노라마’, ‘폐원의 정령’으로 이루어진 1장은 〈빛의 도시, 암흑의 도시〉라는 테마 아래 도시의 명암을 다루고 있으며 ‘아이들의 시간’, ‘극장으로서의 아사쿠사’, ‘다이쇼 후기 통속소설의 전개’로 구성된 2장은 〈놀이, 공간, 그리고 대중문화〉라는 테마 아래 요시와라와 아사쿠사의 어두운 활력을 다룬다. ‘음독에서 묵독으로’, ‘근대 문학과 출판의 세계’로 이루어진 3장 〈텍스트, 공간, 시각성〉은 근대 독자의 성립과 출판에 관한 문제를, ‘파리의 류호쿠’, ‘베를린 1888’, ‘야마노테의 오지’를 담은 4장은 〈도시공간의 경계를 가로지르기〉라는 테마 아래 도쿄를 비롯하여 파리와 베를린 등의 도시를 해석한다.

경계를 설정하고 고립된 구역을 상정하는 중세 유럽의 도시상은 “격리와 징벌의 장치로서의 감옥”과 “인간의 자유와 해방을 약속하는 유토피아의 환상”을 만들어낸다는 흥미로운 발상으로 시작되는 마에다 아이의 논의는 ‘개화의 파노라마’에서 도쿄라는 도시가 어떻게 변모되고 있는가를 4개의 텍스트를 통해 주의 깊게 탐색한다.

그는 우선 메이지 시기 유명한 작품인 고바야시 키요치카의 ‘도쿄명소도’(1876)에 묘사된 국립제일은행의 모습을 통해 키요치카의 문명개화에 대한 감정을 읽어낸다. 에도의 구도시에서 태어난 키요치카로서는 메이지 초기의 문명개화라는 격변은 무조건적으로 긍정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가 자신의 작품에서 담아내고 있는 것은 과거의 공간, ‘물의 도시’ 에도에 대한 풍부한 기억에 다름 아닌 것이다. 이에 비해 비슷한 시기의 베스트셀러였던 핫토리 부쇼의 '도쿄신번창기'(1874)는 ‘물의 도시’를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육지의 도시’를 표방하고 있다. 이들의 작품은 ‘물의 도시’ 에도가 점차 해체되며 ‘육지의 도시’ 도쿄가 구축되는 변화를 알려준다.

사이토 게신의 에도 관광 책자인 '에도명소도회'는 에도라는 도시를 사당, 신전, 그리고 역사적 자리와 같은 상징적인 장소들로 구성한다. '에도명소도회'에서 에도는 성스러운 것이 전면에 등장하는 “신화의 공간”으로 해독되는 것이다. 반면 테라카도 세이칸의 '에도번창기'는 스모, 요시와라, 극장과 같은 비일상적인 것들에 주목함으로써 일상의 세계와 비일상의 세계가 끊임없이 연결되어 있음을 알려준다.

마에다의 이러한 공간 성찰은 비단 도쿄에 한정되지 않는다. ‘베를린 1888’에서 그는 모리 오가이의 '무희'를 통해 베를린의 도시 공간을 탐사한다. '무희'의 주인공 도요타로에게서 가장 먼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베를린에 도착한 동양의 한 젊은이가 유럽 문명의 정화를 조국에 전달하겠다는 강렬한 사명감이다. 더불어 그는 이 대도시가 지닌 장관에 압도되지 않을 것을 다짐한다. 매력적인 외부의 경관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도록 거듭 다짐을 하게 만드는 것이 운데르 덴 린덴의 대로라면 엘리스의 다락방이 있는 크로스텔가는 베를린이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얼굴이다. 이 크로스텔 거리는 옛 베를린의 암울한 이미지를 상징하며 운데르 덴 린덴에 대치하는 장소가 된다. 이것은 메이지 후기의 개인이 자각하게 된 내면의 어둠, 즉 개인의 고독에 관한 공간의 아날로지이다.

'텍스트와 도시'의 특징적인 점은 오가이의 '무희' 소세키의 '문'과 같은 일본의 대표적인 문학 작품 뿐 아니라 키요치카의 판화 ‘동경명소도’를 비롯, 메이지 시기 사절단의 공식기록물이던 '미구회람실기'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텍스트들을 해석의 자리에 동참시킨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텍스트들 사이를 종횡무진하며 메이지 시기 전후의 ‘오래된’ 텍스트들을 현대적 맥락에서 재구성한다.

마에다의 연구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은 대립항의 계열로 이루어진 도시의 속성이다. ‘개화의 파노라마’에서 이루어지는 물의 도시/육지의 도시, 신성의 공간/놀이의 공간으로서의 도쿄 읽기, ‘폐원의 정령’에 나타나는 아버지의 세계/어머니의 세계, ‘베를린 1888’에 나타난 운데르 덴 린덴/크로스텔 거리라는 구분들은 이를 잘 나타낸다. 그가 설정하고 있는 이러한 대립항은 결과적으로 성과 속의 연관, 정과 부의 교호, 근대와 반근대의 친연성에 대한 반증이다. 이러한 대립항은 메이지 시대의 역사적, 사회적 격변과 조우한 개인들의 착잡한 내면의 풍경을 다양하게 읽어내려는 마에다의 개성적이고도 효과적인 방법론인 것이다.

마에다 아이는 이러한 작업을 통해 도시가 지닌 빛과 암흑을 다양한 각도로 조명하면서 근대의 새로운 풍경에 당면한 다양한 개인의 활력과 좌절을 함께 포착해내고 있다. 출간된 지 20여년이 된 그의 저서가 지난 2004년 해리 하루투니언, 미요시 마사오와 같은 미국 내 대표적인 일본 연구가들에 의해 영문판으로 출간되었다는 사실은 '텍스트와 도시'가 지닌 다양한 장점이 미국 내 동아시아 문화연구에 있어 새로운 시사점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일 것이다.(김문정 동국대 강사)

07. 0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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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5-15 23:10   좋아요 0 | URL
로쟈님, 동국대 대학원 신문까지 레이더가 퍼져있단 말입니까. 아. 꼼꼼하십니다. :) 덕분에 저는 좋은 페이퍼들 많이 보는군요.

로쟈 2007-05-15 23:15   좋아요 0 | URL
'담비'에 링크돼 있는 기사입니다. 저는 부지러한 편이 아닙니다.^^;
 

소설가 김훈과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의 대담(http://www.hani.co.kr/arti/society/media/209332.html)을 아침에 전철에서 읽었다. 전철역으로 가는 버스에서는 이미 김훈의 <남한산성>(학고재, 2007)을 읽고 있던 참이었다. 지면으로 읽기 전에 온라인에서 대담을 훑어보았고 소설을 읽는 일도 더는 미루기가 어려웠다(그의 다른 장편들을 정독하지 않은 상태이지만 <남한산성>은 기대보다 재미있다. 특히 청나라를 세운 칸이 조선 임금에게 보낸 국서는 명문(?)이다. 설마 자료가 남아 있는 것인지?). 한겨레가 창간 기념호에 두 사람을 불러모은 건 한때 두 사람이 한 솥밥을 먹은 '입사 동기'라는 이유에서이다(이 또한 '한국인 코드'이다!). 그런 사정이 아니라면, 그냥 '자전거 레이서와 택시 운전사의 대담'이 더 어울릴 만한 타이틀이다('자전거 레이서가 택시운전사를 만날 때'라고 제목을 잡았다가 다시 돌려놓았다). 광고나 소제목들이 눈에 거슬려서 기사는 나대로 재편집했다.  

한겨레(07. 05. 15) 입사 동기 김훈-홍세화 6시간 대담

<한겨레>는 창간 19주년을 맞아 소설가 김훈씨와 홍세화 기획위원의 대담을 마련했다. 두 사람은 남다른 인연을 지니고 있다. 2002년 2월 김훈씨가 <한겨레> 편집국 부국장 대우 사회부 기동팀 취재기자로 입사했으며, 홍세화씨 역시 편집국 부국장 겸 편집위원으로 입사했던 것. 그러니까 두 사람은 ‘입사 동기’인 셈이다. 물론 김훈씨는 2003년 1월 20일자로 사직했고, 홍세화 위원은 정년퇴직 이후에도 기획위원으로 계속 신문사에 몸을 담고 있다. 홍 위원이 우리 사회의 기준으로 보아 ‘진보’에 해당한다면 김훈씨는 보수적인 세계관을 지닌 이로 알려져 있다. 인간과 세계를 보는 눈이 상극에 가까울 정도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궁금하고 솔직히 걱정도 됐지만,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둘의 이야기는 활발했고 흥미로웠다. 대담은 9일 오후 서울 신문로의 한 야외 찻집에서 시작됐으며 찻집이 문을 닫은 뒤에는 인사동의 음식점으로 자리를 옮겨 밤 늦게까지 이어졌다. 김훈씨의 근작 소설 <남한산성>을 막 읽고 난 홍 위원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홍: “<남한산성>을 잘 읽었습니다. 그 소설 속 상황을 한·미 자유무역협정과 관련해서 이해하는 이들도 있다는데, 저는 거기에는 별로 동의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냥 쉬운 이야기부터 하죠. 김 선생의 경우에는 글이 어디에서 나옵니까?”

김: “글이요? 글쎄요. 저는 사실 글을 쓴다는 일에 대해서 아주 잔혹한 훈련을 받은 사람이에요. 제가 글을 쓰는 것은 아직도 내가 내 자신을 훈련시키는 방식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죠. 글에서, 말하자면 예술가로서의 자유 같은 건 저에게 일체 없는 거예요. 이것이 저에겐 노동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죠. 밥을 벌어먹는 노동이기 때문에 그건 끔찍한 일이 될 수밖에 없는 거죠.”

홍: “뭐, 저에게도 글쓰기가 비슷한 밥벌이의 수단인 건 사실인데, 꼭 그것만은 아닌 것 또한 사실이죠. 역시 글이라는 것이 가지고 있는 소통의 문제를 무시할 순 없다고 봅니다.”

김: 저도 홍 선생께서 쓰신 책을 많이 봤는데, 역시 지금 말씀하신 소통의 문제, 소통을 통해서 세계를 개조하려는 열망, 그런 것들을 읽을 수 있었어요. 근데 글이 세계를 개조하는 수단이라고 말한다는 것은 매우 아득하고 신뢰하기가 어렵고 위태로운 말처럼 들리기도 해요. 그것은 글을 쓰는 자들의 절망적인 답답함인데, 무기는 세계를 개조하잖아요? 미국의 무기는 오늘 아침도 이 세계를 정확하게 때려부셔가지고 개조해 버리는 것이죠. 그 개조의 방향이 옳든 그르든 간에 그네들의 이익에 맞게끔 세계를 개조하는 것이죠. 근데 말이 세계를 개조한다는 것은 거기에 비하면 참 아득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것이죠. 나는 ‘펜이 칼보다 강하다’는 말을 안 믿는 사람이에요.”

홍:지금까지 사람이 살아온 과정을 볼 때 지금 하신 말씀이 사실이라고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수, 그러한 현실에 저항해 온 사람들에 의해서 그나마 지금과 같은 정도의 이성적인 사회가 가능하지 않았겠느냐 하는 게 제 생각입니다. 인간은 물론 전쟁을 일으키는 도구적 이성의 소유자임에 틀림이 없지만, 동시에 성찰적 이성 역시 지니고 있어서 그걸 토대로 부당한 현실을 상대로 한 싸움을 계속해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고 글쓰기 작업도 그런 것의 하나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두 사람 다 글을 써서 밥을 먹고 사는 이들. 그러나 개인적인 글쓰기의 동기, 그 바탕을 이루는 세계관에서는 현격한 차이를 보였다. 탐색전을 생략한 채 득달같이 일합을 겨룬 느낌이었다. 과열된(?) 분위기도 식힐 겸 두 사람의 성장기에 관한 이야기로 화제를 돌려 보았다. 홍 위원이 1947년 12월생이고, 김훈씨는 1948년 5월생이어서 두 사람은 5개월여의 시차를 두고 같은 서울에서 태어나 성장했다. 김훈씨가 일곱 살에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두 사람은 같은 학번이 되었는데, 초중고등학교와 대학교에 이르도록 한 번도 같은 학교에서 만나지는 않았다.

김: “제 어린 시절은 가난과 억압뿐이었어요. 전쟁이 나자 부산으로 피난을 갔다 왔는데 거기서 좀 자라서 왔어요. 거기서 미군이 철조망 너머로 던져주는 껌과 초콜렛을 얻어먹었죠. 대학 들어갈 무렵 나와 내 친구들의 꿈은 오직 하나였어요. 밥을 먹는 것. 밥. 밥을 좀 먹는 나라를 만들어서, 도대체 밥 세 끼를 좀 먹고 살아야겠다는 소망이 있었어요. 간절한 소망이었죠. 우리는 고조선때부터 그 시대까지 밥을 못 먹었어요. <삼국사기> <삼국유사>에 보면 해마다 굶어죽은 놈이 수만명씩 나오잖아요. 그리고 우리 어렸을 때도 해마다 보릿고개만 되면 굶어죽었어요. 우리 정부의 행정구호가 ‘기아퇴치’였다고, 기아퇴치. 밥을 먹는 나라를 만들려는 게 우리들의 비통한 소망이었지. 근데 우리는 밥을 먹는 나라를 만드는 데 성공했어요. 그러니까 그 시대의 박정희 대통령이 밥을 먹는 나라를 만든 것이고 우리는 그 밑에서 노예처럼 일했어요. 마소처럼 일하고 개처럼 짓밟히면서 일해가지고 밥 먹는 나라를 만든 거예요.”

홍:전후의 상황이라는 게 대부분이 가난했고 저 역시 거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어요. 그나마 조금 나은 축에 속한다고 할까. 고등학교 때까지의 생각은 어떻게 하면 공부를 잘해서 빨리 출세를 하나 하는 것이었죠. 처음에는 영어보다 수학을 잘해서 이과를 갔고 공대에 들어갔는데, 바로 대학 들어간 해에 한국 현대사에 대해서, 내 가족이 6.25 당시에 어떤 상황에 놓여 있었던가를 통해서 되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있었어요. 아까 ‘기아퇴치’라고 하셨는데 전 그에 관한 기억은 별로 없고 대신 학교 담벼락마다 붙어 있었던 ‘반공방첩’이라는 구호가 아주 강력하게 남아 있어요. 저 역시 고등학교 때까지는 그 구호를 저의 가치관으로 받아들였는데, 대학에 들어가면서 그 가치관이 붕괴되고, 그래서 공대고 뭐고 다 재미없어지고 방황하게 된 시기가 바로 20대 초반이었어요.”

김:전 대학 졸업을 못했어요. 영문과를 다니다가 중퇴를 해버렸는데, 그리고 다시는 대학에 들어가지 않았고. 내가 그때 학교를 그만둔 것은 돈이 없어서였어요. 등록금이 없어가지고. 그런데 지금 밥 얘기를 더 하자면, 밥을 먹는 세상을 만들어 놨는데 그 과정에서 우리는 수많은 악과 억압과 비리를 저질러 가지고, 그것이 지금 우리 사회 바닥에 깔려 있는 것이에요. 야, 밥을 먹는 것에 대한 무서운 대가가 바로 그거였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죠.

노무현 대통령은 아마 우리가 밥을 먹는 과정에서 벌어진 구조적인 악들에 도전했다가 참패하신 것 같아요. 그분이 참패한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것을 개조하고 거기에 도전하는 일은 차기 정권의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계승해 나갈 수밖에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근데 박정희, 이승만 이후로 깔려버린 구조화된 악과 억압이라는 것은 정말로 만만치가 않은 것이죠. 노 대통령 같은 낭만주의나 대중주의, 혹은 민주주의의 힘으로도 그것은 부술 수가 없는 훨씬 더 뿌리깊고 강한 구조적인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종종 하게 되었어요. 이만큼 생각한 것도 나로서는 상당히 사고가 진보된 것이죠. 그 전엔 그런 생각 안 했어요.” (웃음)

: “노무현 정부에 대해서는 조금 다른 해석이 가능할 것 같아요. 저는 노무현 대통령과 그 지배세력들이 민중이나 이런 걸 표방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명분과 실리를 같이 취하려다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고 보죠. 그것이 물론 지금까지 말슴하신 대로 축적된 모순과 60년 가까이 수구세력들이 장악하고 있는 물적 토대, 각 부문별로 결합되어 있는 문제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대한민국 국민이 변화를 요구하면서 노무현 정부를 세웠던건 사실이란 말이에요. 그리고 과반수의 국회의석도 주었고. 근데 그것이 실패로 돌아간 것은 결국 자기를 뽑은 민중을 스스로 배반한 결과라고 저는 생각하죠.”

박정희에서 노무현에 이르는 지도자들에 대한 평가에서 두 사람은 예상 가능한 차이와 뜻밖의(?) 공감대를 보였다. 두 사람이 공감대를 이룬 바탕에 <한겨레> 입사동기라는 인연이 작용한 것은 아닐까. 이쯤 해서 2002년, 두 사람이 <한겨레>에서 한솥밥을 먹던 시절로 거슬러올라가 보았다. 두 사람은 어떤 계기로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한 것일까.

김: “당시 저는 혼자 구석방에 들어앉아서 책만 읽고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내가 완전히 세상으로부터 단절된, 유령 같은 인간이 되어 가고 있구나 하는 위기를 느꼈어요. 어디론가 다시 삶의 현장으로 나가지 않으면 나 자신이 괴멸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당시 김종구 사회부장(현 편집국장)에게 찾아가서 채용해 달라고 부탁했죠. 신문사에 들어갔더니 월드컵의 대규모 거리 응원이 벌어지고, 그 다음에 효순이 미선이 사건, 이어서 대통령 선거까지 대중들의 힘의 폭발이 이어졌어요. 월드컵은 놀라웠죠. 난 그런 대중의 힘을 처음 봤어요.

대중의 힘은 매우 맹목적인 것 같기도 했는데, 효순이 미선이 사건에 이어 대선까지 그 분위기가 이어지는 걸 보면서 ‘난 다시 집으로 가야겠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내 밀실로 돌아갈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대통령이 당선되던 그 다음날 사표를 내고 <한겨레>를 떠났죠. 미선이 효순이 사건, 그것은 범죄는 아니었죠. 사고였어요. 그런데 그것을 범죄로 몰아가고 결국 반미주의로까지 끌고 나가는 일련의 흐름에서 <한겨레>는 자기의 사명을 다했죠. 그 과정을 바라보면서 ‘내 생각하고는 상당히 다른 사람들의 집단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것이 나와 <한겨레>의 큰 갈등이었어요.”

홍: “저는 프랑스에 머물다가 귀국하게 된 계기가 바로 <한겨레> 입사였어요. <한겨레>에 입사하기 위해서 귀국한 것이죠. 그런데 저는 처음 들어올 때부터 어떻게 해서든 한국 사회에 적응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했죠.”

김: “심하다, 심해.” (웃음)

홍: “미선이 효순이 사건은 말씀하신 대로 사고인 게 분명하죠. 그런데 만약 미군쪽에서 처음부터 그것에 대해서 그야말로 점령군이 아닌 평등 차원에서의 선언이나 이런 것이 나왔다면 상황이 그렇게까지 나빠지지는 않았을 거라고 봅니다. 사건이라고는 하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한·미 간의 구조적인 문제, 역학 관계에 대한 인식을 하도록 하는 데 있어서는 <한겨레>가 역할을 하는 게 마땅하다고 봅니다. 그 과정에서 어느 정도 감정적 부분을 동원한 것은 인정하지만, 그것 때문에 점령군이라는 미군의 본질이 바뀌는 것은 아니죠.”

김: “그것은 대중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결과도 되었으리라 생각해요. 효순이 미선이 사건은 앞으로도 언론의 보도와 관련해서 고통스러운 전례를 남긴 것입니다. 안타까운 사고를 계기로 미군과 미국측의 태도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은 생산적인 결과라 볼 수 있는 것이지만, 그 과정에서 대중의 이성이 매우 교란되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홍: “그것은 참 어려운 문제죠. 우리처럼 지독한 미국중심주의적 사고에 젖어 있는 사회에서 대중의 이성은 벌써 오랫동안 마비되어 온 것이 사실이거든요. 거기에서 어떻게 균형감각을 가지게 할 수 있겠느냐 하는 게 무척 어려운 지점이죠.”

김: “아까 소통에 관해 말씀하셨죠. 제가 보기에는 우리 사회의 말들이 당파성에 매몰되어 있기 때문에 사실과 의견이 뒤죽박죽이 되는 일이 많아요. 의견을 사실처럼 말해버리는 것이죠. 그리고 그것을 당파성이 지향하는 바의 정의라고 주장하는 것이죠. 그렇게 되면 언어의 소통기능은 점점 마비되고 언어는 무장하게 되는 것이죠. 무장된 언어가 사회를 막 교란하고 뒤집어엎고 있는데, 그렇게 되면 결국 말을 할 수가 없게 되는 거예요. 이것이 우리 시대 언어의 풍경인 것이죠.”

홍: “동의합니다. 예컨대 인터넷이 활성화하면서 마치 인터넷이 쌍방향간의 소통의 장이 열린 것이다 라고 하지만 저는 회의적입니다. 토론이란 자기 견해를 밝히는 것뿐 아니라 남의 견해도 들으면서 자기 견해를 수정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인데, 지금 한국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토론이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각을 확인하는 것에 지나지 않고 자기와 생각이 다르면 바로 배설해버리는 식인 것 같아요. 그것은 집단의 외피를 쓴 이기적인 개인들의 뻔뻔한 때문인 것 같아요. 집단의 뒤에 숨어 있는 개인들이 문제인 거죠. 그리고 그게 다 경제지상주의적 가치관 때문인데, 경제사회에서 문화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결국 토론과 교육, 소통에 기댈 수밖에 없지 않나 생각해요.”

김: “민주사회에서 공동체적인 가치를 위해서 개인의 이익을 양보하라고 주문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것은 이루어질 수가 없는 것이고, 개인의 욕망을 긍정하는 토대 위에서 이 사회는 이루어진 것이고 앞으로도 그렇게 전개되리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홍: “그와 관련해서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관해 조금 말해 보죠. 저는 이 문제와 관련해서도 가장 중요한 건 문화적인 측면에서 접근을 해야 하는 점이라고 봅니다. 특히 농촌의 피폐화가 걱정이에요. 우리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있나, 자유무역협정이 발효되면 그야말로 무서운 변화가 올 수도 있는데, 그런 부분들에 대한 성찰이 너무 부족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죠.”

김:저는 한 나라는 이념이 아니라 이득을 추구해야 맞다고 생각합니다.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국가의 도덕성이라고 생각해요. 국가가 이익을 이행하는 것은 도덕적인 일은 아니죠.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부도덕한 일도 아닙니다. 그런 것은 도덕이나 부도덕을 말할 수가 없는, 본래 스스로 그러한 것이다, 저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이득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는 참 따지기 어려운 것이죠. 나는 우리 정부가 그것이 결국 이득이 되게끔 앞으로 그걸 헤쳐 나가야 하고 그 이득이 제발 국민 각계각층에 골고루 미치는 이득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죠.

난 자유무역협정은 잘했다고 생각해요. 자유무역협정이 체결된 다음에 <한겨레>가 노무현 대통령의 이념의 일관성을 집요하게 시비한 적이 있었어요. 노무현이 자유무역협정을 추진했는데 이것은 진보의 일관성이 있는 것이냐 없는 것이냐를 따지는 것은 참 무의미한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전 그런 기사가 나올 때 <한겨레>를 좋아하지 않아요. 다만 농민이라는 한 계층 전체를 희생시키면서 이걸 추진한다는 것은 참 무리하고 부당하고 부도덕한 측면이 조금 있어요. 그에 대해서는 정부의 정책적 배려가 있어야 마땅하죠.”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와서 다시 부딪쳤다. 얘기가 다시 격렬해지려는 참에 마침 찻집이 문을 닫을 시간이 되어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커피 대신 적포도주가 곁들여지면서 좀 더 솔직하고 내밀한 이야기들이 오갔다. 두 사람은 음식을 앞에 두고 다시 배 고팠던 지난 시절을 회고한 다음, 요즘 젊은이들이 소중한 청년기를 너무 소홀히 보내는 것 같다는 데에서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그러나 2002년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를 찍었다는 김훈씨가 노무현 정부에 대한 기대를 표한 것은 다소 뜻밖이었다.

김: “저는 노무현 대통령께서 정말 약자의 편이 되기를 바랐어요. 전 노 대통령 치하에서 세금 많이 냈습니다. 세금 낼 때 기분이 좋았어요. 얼마나 기분 좋은 일입니까. 책을 써서 인세를 받아서 세금을 많이 낸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었어요. 저는 의료보험도 많이 냈어요. 우리 시대의 분배에 기여한다면 정말 좋은 일이죠. 그런데, 신문 보니깐 아니더라고. 강남의 성형외과 의사, 소득세 50만원 올렸다고 시위하고 말이죠. 우리나라 조세정책은, 대통령의 리더십은 거기서 망가지는 것 같더라고요.”

홍: “그렇게 당연히 사회에 내놔야 되는 사람들이 정작 내놓지 않는 그 문제에 대해서 당연히 분노해야 되는 것이죠.”

김: “저 분노하고 있어요.”

홍: “분노의 방식이 문제인데요. 분노가 어떻게 표현되고, 어떻게 바꿔나갈 수 있느냐 하는 문제요.”

김: “그건 권력이 해야죠. 정치권력이.”

홍: “한국과 같은 천박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의 이익을 대변하는 거대 언론과 기득권 세력이 버티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정치권력이 그런 일을 순조롭게 하리라고 믿는 건 너무 순진한 생각 아닐까요?”

김: “무슨 말씀인지 알겠는데, 저는 <한겨레>가 기본적인 객관성을 가지길 바랍니다. 부는 악이고 빈이 선이다, 라는 이분법을 버려야죠. 노동은 선이고 자본은 악이다, 그런 이분법적 정서가 있는 거잖아요. 전 그렇게 생각 안해요. 지금 한국 노동의 문제는 노동세력 타락의 문제예요. 노동귀족들의 타락에 국민들은 절망하고 있죠.”

홍: “그걸 과연 노동귀족들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가 있구요. 또 하나, 한국 사회에서는 타락할 권리가 있는 사람과 타락할 권리조차 없는 사람으로 나뉘어진다고 봅니다. 어느 자리에 서면 다 타락합니다. 타락하게 되어 있어요.”

김:홍 선생의 전공이 ‘똘레랑스’입니다만, 똘레랑스라는 건 본래 보수주의자의 것이었어요. 우리가 빼앗긴 거죠. 보수주의의 관용 안에서 많은 걸 해결할 수 있고 사회가 발전할 수 있는 힘이 있었다구요. 그런데 그걸 놓친 거예요. 보수주의자가 타락해서 자기 기득권만 방어하면 된다, 이런 식이 되면서 망하게 된 거죠.”

홍: “‘똘레랑스’의 어원 자체가 참는다는 뜻이기 때문에, 그것을 관용이라고 하기보다는 용인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차이를 받아들인다는 거죠. 가장 정확한 것은 사자성어 ‘화이부동’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똘레랑스’를 이야기하면서 가장 기본적으로 생각했던 것은 바로 수구세력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앵똘레랑스에 대한 반대라는 측면이었습니다.”

김: “저는 우리 현행법에 모든 정의와 개념이 있다고 생각해요. 법치주의를 완성해야 합니다. 법치주의의 틀 안에서 ‘똘레랑스’도 이루어질수 있다고 봅니다. 법치주의를 깨자고 들면 곤란하죠. 인간이 평등하다는 것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것이죠. 인간의 능력이나 경제적 처지가 평등하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거죠. 다만 법률 앞에 평등해야 하는 것 아니겠어요?”

홍:김 선생과 저는 사회를 관찰하고 해석하고 데에서는 많은 부분 일치하는데,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 하는 데에서 갈라지는 것 같아요. 말씀하신 대로 우리 사회에 힘의 논리가 관철될 때 기본적으로 그 힘은 법에 의해 규제되어야 하는 것인데, 그 법조차 힘의 논리에 의해서 왜곡되고 있다는 것이죠. 그리고 앞서 부와 빈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한겨레> 논조가 부는 악이고 빈은 선이다, 그런 것은 아니죠. 그것은 지금 한국사회에서 빈곤이 죄악시되고 있는 것에 대한 반사물이라고 봅니다.”

김:가난은 탈피할 대상이지 장려 대상은 아닙니다. 옹호할 가치는 아니죠. 가난에 선의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도덕적으로 우수한 것은 아니에요.”

홍: “우리가 공화주의를 지향한다고 할 때, 그 핵심이라 할 애국주의는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요. 한 사회에서 그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내가 위함을 받았다는 경험 때문이 아닐까요. 한국에서는 그런 경험이 없죠. 끝없이 관리통제의 대상이 될 뿐이죠. 자발성이 없는 거예요. 이를테면 무상교육 얘기를 해 보죠. 그것은 단순히 가난한 사람들에게 교육자본 형성 비용을 사회가 대준다는 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하여 계층간 연대와 세대간 연대가 이루어진다는 데에 핵심이 있는 겁니다. 소득이 많은 사람이 소득이 적은 사람의 비용 대주는 것이 계층간의 횡적연대라면, 그렇게 해서 얻은 것을 가령 국민연금 같은 형태로 돌려주는 것은 세대간의 종적연대라 할 수 있는 것이죠. 나로 하여금 경제활동을 할 수 있게 해준 윗세대가 은퇴할 때 그들에게 지금의 경제활동 인구가 받은 것을 되돌려준다는 것이 가능하다는 거죠.”

식당 역시 문을 닫을 시간이 되었다. 이야기를 시작한 지 벌써 여섯 시간이 훌쩍 넘었다. 두 사람은 여전히 자신이 보는 세상과 <한겨레>에 대해 열변을 토했지만, 초반과 같은 팽팽한 긴장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포도주로 불콰해진 얼굴로 마주 앉은 두 사람은 오랜 친구처럼 보였다. 김훈씨가 대담을 마무리하는 발언을 했다.

김: “저는 사실 이 자리에 나오기 전에 우리 둘이 매우 다른 줄 알았어요. 그런데 말을 나누어 보니 기본은 같다는 걸 알았어요. 그런데 방향은 정말 달라졌네요. 그도 그럴 것이 삶의 여정이 매우 달랐잖아요. 그런 만큼 서로를 더 존중하고 긍정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무엇보다 우리의 마음의 바탕이 천진해야 해요. 천진성이 있어야죠. 천진성이라는 게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 거잖아요?”(정리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김훈-홍세화 특별한 만남

김훈씨는 <한국일보> 기자와 <시사저널> 편집국장 등을 거쳐 <한겨레>에서 사회부 경찰 출입 기자로 일했다. <칼의 노래> <현의 노래>에 이어 최근 새 장편소설 <남한산성>을 발표해 서점가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이상문학상, 동인문학상 등을 받았다.

홍세화 기획위원은 오랫동안 프랑스 파리에 머물다가 2002년 한겨레신문사 입사를 계기로 귀국했다. 편집국 부국장 겸 편집위원으로 있다가 정년퇴직한 뒤, 지금은 기획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 등의 시평집을 냈다.

07. 0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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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 2007-05-15 20:32   좋아요 0 | URL
가져갑니다.

jouissance 2007-05-15 22:19   좋아요 0 | URL
여하튼 홍선생이 말하는 방향이 맞다고 봐야겠죠. 그런데 왜 자꾸 김선생이 뇌까리는 말들이 귀에 들어 오는지 모르겠네요. 홍선생이 말들이 너무 뻔하게 들려서 그런가? 간만에 흥미로운 대담이군요('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합니다'에서 잠시 긴장했습니다. 아마 쎄게 부딪친 부분은 거의 편집했겠지요. '무엇보다 우리 마음의 바탕이 천진해야 해요. 천진성이 있어야죠'라는 마지막 멘트는 무엇보다 저에게 아주 쎄게 부딪쳐 오네요;;;) 득달같이 퍼갑니다^^

로쟈 2007-05-15 23:14   좋아요 0 | URL
저는 (이회창이 아닌) 노무현을 찍었었지만, '김선생이 뇌까리는 말들'에 더 공감합니다(홍선생의 말은 녹음기를 틀어놓은 것 같습니다). '펜이 칼보다 강하다'는 말을 저 역시 안 믿기 때문이고, '좌파적 말빨'들을 혐오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항상 '부실한 친구'보다는 '깐깐한 적'으로부터 더 많은 걸 배울 수 있고 배워야 합니다...

biosculp 2007-05-16 10:36   좋아요 0 | URL
홍선생의 말대로 경험이 없고 자발성이 없는데.
그럼 이것을 외국은 이러니하고 가르키고, 세금걷어 행하면 다 끝나는것인지 의문이 듭니다. 더군다나 그 세금을 걷는 과정에서 당위때문에 현실은 웃기는 꼴을 만들고요.
거제도나 울사같은 대규모 공단은 현지 한국평균보다 더 높은 소득을 올리고 있고 노동자들이 많지만 그곳에서 현재 한국사회에서 만연한 학벌이나 기득권층을 대체할 아니 뭔가 다른 연대의 시도라고 있는지. 신문만 보고 살아 그곳사정을 모르는것도 있지만 거의 없는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yoonta 2007-05-16 14:28   좋아요 0 | URL
김훈씨의 현실분석은 저도 그럭저럭 수긍할만하고 홍세화씨도 의견이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김훈씨 스스로도 "저는 사실 이 자리에 나오기 전에 우리 둘이 매우 다른 줄 알았어요. 그런데 말을 나누어 보니 기본은 같다는 걸 알았어요. 그런데 방향은 정말 달라졌네요"라고 말하고 있으니까요.
문제는 그렇다면 그의 입장에서 무슨 대안이 이야기 될수있느냐는 겁니다. 홍선생은 비록 이상적으로나마 앞서 말한 현실분석에 기초하여 어떤 대안을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이죠. 반면 김선생은? 그냥 딴지 거는 것으로 밖에는 안보입니다.
홍선생은 속으로 이럴껍니다. "그래서 뭐 어쩌자구? -_- "

"법치주의의 완성" 이런 나이브한 이야기정도 밖에 하지 못하는게 김훈식의 현실론이자 대안이죠. 헌법공부 한번이라도 해보면 저런 이야기 못합니다. 제가보기에 김훈은 정치에 무지한 사람입니다.

pax 2007-05-16 16:27   좋아요 0 | URL
소통을 안믿으시는 분이 법치주의는 믿으시는군요...

로쟈 2007-05-16 17:05   좋아요 0 | URL
법치주의를 믿는다는 게 현행법의 완벽성을 믿는 것과는 다른 것이죠(법이란 개선돼 가는 것이니까요). 의회란 입법기관인데, 법에 대한 부정이라면 좌파 의회주의에 대한 부정이기도 하겠습니다. 그런 입장이 가능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렇다면 '법 바깥'에 국가를 세우는 건가요? 그 경우에 말 그대로 무정부주의적인 포지션만 가능하겠죠. 그런 포지션에서 말씀하시는 거라면 인정할 수 있습니다. 그것의 '현실성'에 대해선 부정적이지만...

yoonta 2007-05-16 18:23   좋아요 0 | URL

"저는 우리 현행법에 모든 정의와 개념이 있다고 생각해요. 법치주의를 완성해야 합니다"

김훈씨는 위 본문에서 분명 "현행법"의 완성을 "법치주의의 완성"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로쟈 2007-05-16 19:04   좋아요 0 | URL
제 생각이 김훈과 완벽하게 일치하는 건 아닙니다(저는 공감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말하는 현행법은 기본적으론 '헌법'을 말하는 것이죠. 그건 상식적으로 얘기되는 것 아닌가요? 헌법이 정한 가치의 수호니 정의의 구현이니 하는 것 말입니다. 그런 건 김훈만의 독불장군식 견해가 아닙니다. yoonta님이 원하는 건 '다른 법'인가요(그러니까 다른 '법치주의'), 아니면 '법의 바깥'(소위 지도자 통치? 아니면 자율?)인가요?..

virtuepeak 2007-05-16 20:30   좋아요 0 | URL
현행법이라는 단어가 나왔다고 바로 법실증주의나 결단주의로 연결짓기는 어려워 보이는 문맥 같습니다. 법률이 정한대로 행동해야 한다는 주장이라면 그 법이 '완성'될 여지도 없겠지요.

yoonta 2007-05-17 00:54   좋아요 0 | URL
로쟈님/네..그러니깐 적어도 위의 구절에 대해서는 "일치"하지는 않으신다는 말씀이시군요. 저는 "다른 법"을 이야기한다라기보다는 "법도 변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겁니다. 헌법을 포함한 "현행법"자체도 필요에 따라서는 달리 해석할 필요가 있고 때로는 수정하거나 폐기 되어야 하기 때문이지요. 김훈씨가 "법치주의의 완성"을 이야기하는 것의 배경에는 아마도 대중들의 몰지각함을 강조하고 지도자의 카리스마와 영도력을 대안으로 삼는 그의 "정치"에 기인하는 것 같습니다.

영혁님/ 물론 그가 "법실증주의"랄지 "결단주의" 혹은 "동화적 통합이론"등을 배경에 깔고 "현행법"이나 "법치주의의 완성"을 이야기한 것은 아니겠죠. "법 앞에서의 평등"이라는 상식적 관점 내에서의 법치주의의 실현 정도를 이야기하는 것같은데요. 문제는 그럼 법자체가 잘못될 경우에는 어떻게 하느냐라는 질문을 받을때 그가 무슨 답변을 할수있느냐인데..그때에도 아마 김훈씨는 "남한산성에 갖혀서 청이라는 절대권력 앞에서 절망하며 고뇌하는 최명길의 현실적 선택"을 할꺼라는 생각이 든단 거죠.

로쟈 2007-05-17 01:04   좋아요 0 | URL
'지도자의 카리스마와 영도력'이란 게 법치주의의 함의인가요? 그건 새로운 법치주의의 발명 같은데요. 더불어, 법이 변한다는 것 역시 그냥 상식으로 보입니다. '현행법'이라는 게 불변의 법을 얘기하는 건 아니니까요. 다만 그 법의 수정/개정/개선 또한 법에 명시된 절차를 따른다면 법치주의에 위배되거나 모순되는 게 아니죠. 법 개정에 '다른 방법'을 염두에 두고 계신 게 아니라면...

yoonta 2007-05-17 01:25   좋아요 0 | URL
윗 구절은 사실 너무 짭은 구절이어서 자세히 그가 말한 "현행법" 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기가 힘드네요. 앞에서 홍세화씨와 효순이와 미선이 이야기를 하면서 그는 대중들의 교란가능성을 강조합니다. 결국 그런 혼란을 막을수있는 것은 "법"으로 표현되는 "권위"와 같은 법치주의적 질서 밖에 없고 그렇기 때문에 "현행법"만 잘 작동되는 것만으로도 다행이 아닌가 라는 정도로 그의 생각을 이해했는데요. 저는 "현행법"의 사전적 혹은 법률적 의미보다는 그 행간을 보는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저는 그의 "현행법"강조를 "지도자의 카리스마"와 한번 연결시켜 보았던 겁니다. ^^

그리고 사실 보통 "현행법"이라고 말하면 그것의 "개정이나 수정가능성"까지 포함해서 이야기하지는 않지 않나요?

로쟈 2007-05-17 01:30   좋아요 0 | URL
행간 읽기라고 하신 '지도자의 카리스마'는 yoonta님의 상상력이라고 해두겠습니다. 그리고 현행법에 대해서 만약 김훈이 그런 취지로 이야기한 것이라면 법물신주의라 할 만하고 저와는 다른 견해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yoonta님이 너무 제한적으로 이해하신 거구요...

virtuepeak 2007-05-17 02:54   좋아요 0 | URL
yoota님께서 읽으신 행간을 염두에 두고 법치주의가 언급된 부분을 읽으니 그렇게 보여지기도 합니다만, 상식적인 수준에서 법치주의를 말한 것이라고 여기는 게 더 적합해 보입니다. 김훈은 절대적인 권력 앞에 굴복하는 일을 어쩔 수 없다고 여기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런 권력을 추종하거나 그런 권력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봅니다만...

아마 김훈은 잘못된 법도 개정되기 전까지는 따라야 한다고 말할 것입니다. 시사저널 사태를 두고 한 인터뷰에서 김훈씨가 만약 편집국장이었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에 생각을 좀 하다가 그래도 결호를 낼 수는 없다는 대답을 했었지요. 그러나 그 잘못된 법을 고칠 수 없다고 말하지는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yoonta 2007-05-17 10:43   좋아요 0 | URL
뭐 어쨋든 2002년당시 "법대로"를 외치시는 이회창을 찍은 그이므로 저는 "현행법"의 김훈씨도 이회창과 그닥 다르지 않은 법감정을 가진것으로 자꾸 생각되네요. 위의 카리스마 이야기는 분명 저의 상상력이긴 합니다만 "현행법"처럼 오해의 소지가 많은 용어를 저렇게 쉽게 발설할수 있는 것을 보면 분명 그의 "법감정" 내지는 "정치"에는 문제가 많아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