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박노자의 신간 <우리가 몰랐던 아시아>(한겨레출판, 2007)가 출간되었고, 이 책은 구입 예정도서 목록에 올라가 있다. 대개는 한겨레21에 연재된 칼럼들이 아닌가 한다. 가장 최근에 한겨레21에 게재된 그의 칼럼을 옮겨놓는다. 한국 교회에 대한 비판이어서이다(나는 그의 교육론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종교론에는 대부분 공감한다. 그에 대한 정리는 http://www.aladin.co.kr/blog/mylibrary/wmypaper.aspx?PaperId=862545). 가까운 가족들이 교회에 다니기 때문에 '태신자'인 내가 대놓고 교회비판을 늘어놓을 수는 없고 다만 이런 믿음직한 칼럼들을 즐겨 읽음으로써 '내적 무신앙'을 다질 따름이다.

한겨레21(07. 05. 23) 교회, 장기적 보수화의 일등공신

거의 한 세기 전인 1906년에, 자칭 마르크스주의자였던 독일의 저명한 경제사학자 좀바르트(Werner Sombart·1863∼1941)는, <미국에 왜 사회주의가 존재하지 않는가?>라는 책을 펴낸 적이 있었다. 노동자 사이에서 이미 헤게모니를 확립한 독일 사민당과 정반대로 미국 사회주의자들이 주변적 위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좀바르트가 문제의식을 갖게 된 출발점이었다. 좀바르트는 노동계급의 권리투쟁에 자극을 줄 수 있는 봉건적 잔재의 부재나 비교적 높은 임금 수준, ‘기회 균등’ 신화의 설득력 등을 들어 미국의 ‘예외성’을 설파했다. 이후 미국에서 좌파 운동이 지지부진한 이유를 고민해본 진보적 지식인들은 인종들 사이에 위계서열을 두어 교묘한 분리통치를 해온 미국 지배층의 사회통제 정책과 ‘적색 공포’ 등을 그 이유로 꼽았다.

그리고 늘 지적되는 또 한 가지 사실이 있다. 일부 정통 가톨릭 국가들을 논외로 한다면 어떤 산업사회보다도 미국인들의 의식 세계에 종교가 강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대체로 미국 성인의 약 40∼44%가 교회에 정기적으로 출석하고, 약 73% 정도는 신의 존재를 믿는다. 교회에 출석하는 이들이 성인의 3∼4%에 불과한 스칸디나비아 같은 지역과는 천양지차다. 빈곤과 같은 사회적 문제들을 ‘개인 문제’로 환원하고 권리투쟁 대신에 신앙적인 ‘개인적 해결’ 방향을 제시하는 교회가 사회적 헤게모니를 장악한다면 과연 ‘모두를 위한 해결’을 모색하는 좌파적 담론이 쉽게 확산될 수 있겠는가?

그런데 교회의 영향력이 사회 전체의 보수화를 가져온다는 것은 미국만의 상황인가? 한국의 경우에도 1980년대 후반까지 자본주의에 대한 본격적 문제 제기의 결여를, 단지 ‘위로부터의 억압’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물론 근본적으로는 한국 평민들을 ‘시키는 대로 일하는’ 순치된 ‘산업 전사’로 만든 것은 학교에서의 체벌부터 군대에서의 ‘얼차려’까지 병영국가의 폭력적 ‘국민화’ 과정, 그리고 중앙정보부의 고문실로 상징되는 ‘백색 공포’였다. 그런데 박정희 체제와 크게 다를 것이 없는 싱가포르에서조차도 1970년대에 노동자 1천 명당 쟁의로 인한 노동 손실 일수가 한국(연평균 약 4천 일)에 비해서 두 배나 높았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1980년대 후반까지 한국 노동자들은 다른 권위주의 국가의 노동자에 비해서는 물론, 일제 강점기의 노동자들에 비해서도 매우 순치된 모습을 보였다. 예컨대 노동자 수가 식민지 시절에 비해 몇 배로 늘어난데다 정치적 분위기까지 자유로웠던 1960년에 파업 참가자 수(6만4천 명)는, 일제의 탄압이 자행됐던 1923년 노동쟁의 참가 인원(6만1천 명)과 비슷한 수준이다. 이와 같은 순치 효과를, 박정희 시대를 ‘대중 독재’로 개념화하는 일군의 연구자들처럼 애국주의적 ‘이념적 동원’으로만 이해할 수 있을까?

물론 탄압과 국가주의적 ‘민족주의’의 철저한 주입이 노동자들 사이에 계급의식이 형성되는 것을 원천 봉쇄했음이 틀림없다. 그런데 이와 동시에 자신의 계급적 존재를 깨닫지 못하는 ‘국민화된’ 노동자의 탄생을 이끌었던 주역은 반공주의, 성공 이데올로기, 자본주의와 친미주의의 기수 노릇을 해온 이른바 ‘대형 교회’들이 아니었나 싶다(*이건 거꾸로 한국교회의 자화자찬이 될 만하겠다!). 어떤 측면에서는 대형 교회들이 보급했던 신앙 형태야말로 1950∼80년대 무수한 민초들의 진정한 이데올로기였기 때문이다.

해방 당시 겨우 조선인의 2∼3%에 불과하고 주로 서북 등 일부 지역에서만 밀집해 거주했던 기독교인들은 과연 어떻게 해서 오늘날처럼 총인구의 약 24%를 차지하게 됐는가? 물론 6·25 전쟁 이후의 폐허 속에서 ‘근대·문명’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였던데다 미국의 구호물자를 재분배할 능력을 갖추고 ‘기독교인 대통령’ 이승만을 그 ‘힘’의 표징으로 자랑할 수 있었던 교회는 이미 제1공화국 시절에 남한 사회의 새로운 구심점으로 부상했다. 하지만 1950년대에 교회의 성장은 빠르지 않았다. 개신교의 경우 1950년 50만 명 정도였던 신도 수가 1960년에 70만 명 정도까지 늘어났을 뿐이다.

기독교의 ‘붐’은 고속성장과 대량이농의 시대인 1960∼80년대에 일어났다. 개신교의 경우 교인 수가 1980년 600만 명, 1990년 약 800만 명에 이르러 한국 도회지의 야경은 네온 빛이 번쩍이는 ‘십자가의 숲’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교회는 해체된 농촌 공동체를 대체해 이농 인구를 통합하면서 국가가 제공하지 못하던 일부 복지 서비스(자녀 장학금, 직업 알선 등)를 제공해주는 사실상의 ‘국가 안의 또 하나의 국가’로서 위치를 굳혔다.

물론 교회가 열악한 생활에 지친 서민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그들의 만성적인 불안을 약간이나마 덜어주었던 것은 긍정적 구실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른다. 문제는, 그 시대의 경제가 몇 개 재벌들을 위주로 해서 성장했듯이, 그 성장에 편승한 교회의 성장도 ‘교계의 재벌’이라고 할 대형 교회들의 주도로 이루어진 것이다. 예컨대 이미 1980년에 대표적 ‘초거대형 교회’라 할 순복음교회가 10만 교인을 기록해 단일 교회로는 ‘세계 최고의 규모’를 자랑했다. 이 ‘종교 재벌’들이 서민들의 눈물을 닦아주면서 그 귀에 무엇을 속삭여온 것인가?

‘민족의 중흥’과 보조를 맞춘 ‘민족의 복음화’를 외치고, ‘기독교인들의 총화안보와 반공궐기’를 이끌고 ‘해방신학, 혁명신학, 흑인신학’을 ‘악마적 공산주의의 앞잡이’로 봤던 한국대학생선교회의 김준곤 목사나 순복음교회의 조용기 목사 등이 유신 독재를 열성적으로 지지하면서 반공 담론 대중화의 일익을 맡은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문제는 단순히 그들이 외쳤던 ‘상징적 반공국가 만들기 위한 분골쇄신’(‘기독교와 공산주의 갈림길에서’, 김준곤, <크리스챤신문>, 1975년 7월26일)과 같은 끔찍한 전체주의적 언설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초고속으로 늘어나는 교인들이, 주일마다 교회에 출석하고, 정기적으로 헌금을 내고 ‘평신도 합숙전도훈련’이니 ‘철야기도’니 특정 도시의 ‘성시화’를 위한 집회니 하는 각종 대형 행사에 동원되면서 권력에의 복종으로서 ‘규율적 근대’를 교회를 통해 익히게 됐다. 그런데 예컨대 1992년에 한국의 가장 독자적인 신학자이었던 변선환 목사를 감리교 교단에서 출교하는 데 앞장서면서 “자유주의 신학이 사탄의 도구다!”라고 외쳤던 김홍도 목사의 모습에서 그 신도들이 주체적 개체들 위주의 ‘해방으로서 근대’를 발견할 수 있었겠는가? 교련 수업과 ‘얼차려’의 군사주의 못지않게 극우적 교회의 ‘유일사상’은 민중 사이의 비판적 이성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었다.

지금부터 한국이 장기적 보수화에 들어간다면 그 일등공신 중 하나는 바로 여태까지 ‘한국적 파시즘’의 버팀목 구실을 해온 대형 교회들일 것이다. 이 섬뜩한 시나리오를 막기 위해 무엇보다 기독교 신도 사이에 사랑과 평화의 화신으로서, 일종의 ‘원시 무정부 공산주의자’로서 예수재발견이 절실할 것이다.(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 · 한국학) 

 

참고 문헌

1. “군사정권기 한국교회와 국가권력: 정교유착과 과거사 청산 의제를 중심으로”장규식, <한국기독교와 역사> 제24호, 2006, 103∼133쪽
2. “박정희 체제의 지배담론과 대중의 국민화”황병주, 임지현·김용우 엮음, <대중독재> 제1권, 책세상, 2004, 475∼517쪽
3. <변선환 신학 새로 보기> 대한기독교서회, 2005
4. 〈American Fascists: The Christian Right and the War On America〉 Chris Hedges, Free Press, 2007

07. 05.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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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7-05-28 05:27   좋아요 0 | URL
최근 돌아가신 권정생 선생도 -교회에 다니기는 하셨지만- 원시 무정부 공산주의자로서의 예수(정확히 그런 표현이 옮바른지는 모르겠으나.) 를 그리고 계셨던 듯 합니다.대게 기독교와 예수의 본질을 짚고 실천하는-지극히 소수겠지만 - 사람들은 그런 성향이 있더군요,^^ 오늘은 아침에 일찍 출근했어요.5시...^^
자..이제 바닷바람 좀 맞으러 가 볼까...좋은 아침,좋은 한 주 되세요.

로쟈 2007-05-28 08:41   좋아요 0 | URL
한국형 대형교회들의 번성이 기이한 현상인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그건 기독교와도 무관한 '한국적' 현상이 아닐까 싶어요. 근데, 바닷가로 출근하시나요?^^
 

푸슈킨(1799-1837)의 시 한편이 생각나서 옮겨놓는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제목이 따로 붙어 있는 시가 아니어서 그냥 첫행을 제목으로 쓴다. 그리고 이 시는 아마도 국내 독자들에겐 가장 잘 알려진 시일 것이다(나는 '이발소 그림'에 대응하여 '이발소 시'라고 부른다). 시가 씌어진 건 1825년, 그러니까 시인의 나이 26살 때이고, 정치적인 이유로 남방(카프카즈 지역) 유배중이었다.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지내야만 했던 생활이 5년차였는지라 자신의 처지에 대해 슬픔과 노여움을 품음 직했다. 그런 스스로를 달래고 다독이는 시인 셈.  

 

Если жизнь тебя обманет,
Не печалься, не сердись!
В день уныния смирись:
День веселья, верь, настанет.

Сердце в будущем живет;
Настоящее уныло:
Все мгновенно, все пройдет;
Что пройдет, то будет мило.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슬픈 날을 참고 견디면
머지않아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언제나 우울한 것
모든 것은 순간이고 지나가며
지나간 것은 또 그리워지나니.

 

 

 

 

Should this life sometime deceive you,
Don't be sad or mad at it!
On a gloomy day, submit:
Trust -- fair day will come, why grieve you?

Heart lives in the future, so
What if gloom pervades the present?
All is fleeting, all will go;
What is gone will then be pleasant.

갑자기 이 시를 떠올리게 된 건 '현재는 언제나 우울한 것'에서 나 또한 예외가 아니기 때문이다. 마침 어제는 (구력으로 치자면) 푸슈킨의 생일이었고, 오늘은 절친했던 친구의 4주기가 되는 기일이다. 해서, 이러구러 답답하고 우울하다(우울함의 어처구니 없는 이유 중의 하나는 요즘 마음놓고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이라는 위안마저 없다면 어찌 견디겠는가.

Night View on Tverskaya Street , Moscow, 2003-09 (C) Seiji Yoshimoto

모스크바의 밤거리를 거닐어본 지도 오래되었군...

07. 05.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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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le 2007-05-28 0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그대는 영영 모르리라.

술을 마시다가 이미 넉 달 전에 지구상에서 사라져버린 제 개가 생각나서 말이죠. 사람도 아니고 개가요. 언제부턴가 이상하게 이유없이 조증과 울증이 반복되어 나름대로 열심히 근거를 잘 대어갔는데 친구가 그러더군요. 그러고보니 너의 조울증은 그러니까 개가 떠나고 난 다음부터인 것 같다고. 물론, 예의상 버럭 해줬습지요. 예의상.

로쟈 2007-05-28 08: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조울증도 다 관리대상이지요. 그 경우엔 떠나는 게 아니라 덮치는 게 문제이지만...

비로그인 2007-05-28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 조울증 환자 한명 더 대령했습니다. :)
저만 조울증 환자인줄 알았더니 ㅎㅎ 뭐야뭐야, 요상한 안도감을 느끼고 있네요~
 

'사진으로 보는 러시아의 20세기' 마지막 회이다. 20세기의 정치가들과 예술가들 편에 이어서 인민들(러시아어로는 '나로드'), 곧 노동자와 농민들의 삶이 사진에 담겼다. 대개 노동자/농민이라고 통칭하지만 사실 노동자와 농민의 이해관계는 같지 않다. 러시아 혁명에 힘을 합쳤지만 이후 사회주의 건설 과정에서 주로 농민들이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당한 일은 현실 사회주의에서 국유화된 토지를 경작해야 했던 농민들의 삶이 과연 이전 시대보다 얼만큼 나아진 것인지 되묻게 한다. 작년에 본 레프 도진의 연극 <형제자매들>이 다시 생각난다...  

 

한겨레(07. 05. 23) 사진으로 보는 러시아의 20세기 ⑤ 노동자와 농민의 삶

» 체르노빌의 노동자들. 사진/ I. 가브릴로프. <북폴리오> 제공
체르노빌의 노동자들 = 1986년 체르노빌이 폭발 사고로 황폐화된 지 8일이 지난 뒤 노동자들이 핵발전소의 파괴된 원자로에서 자신들을 밖으로 실어 나를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수습팀이 훈련도 받지 않고 허술한 얼굴 가리개만 쓴 채 체르노빌에 투입되었다. 방사능 수준이 너무 높아서 버스 운전사들은 발전소 근처에도 가지 않으려고 했다. 수습팀은 자신들이 겪고 있는 위험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들이 고향지역으로 돌아와 아파 드러누웠지만 연락이 잘 안 되어 지역 병원들은 자신들이 방사능 오염을 다루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 소년 피오네르들. <북폴리오> 제공
소년 피오네르들 = 이들은 “콜호스 수확의 최우수 전사”가 되어 부상으로 배지를 받았다. 당은 예전에 교회가 그랬듯이 아주 어린 아이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 볼가 강의 짐꾼들. <북폴리오> 제공
볼가 강의 짐꾼들 = 볼가 강의 짐꾼들이 차와 빵을 먹으며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차는 각설탕에 적셔 빨아 마셨다. 전쟁 전 차르 시대의 기준에서 볼 때 음식과 신발이 형편없던 이들은 볼셰비키 체제하에서 이와 같은 배급품을 받고 기뻐하게 될 것이다. 일인당 곡물 생산은 1960년대 중반에 이르도록 1913년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

» 바쿠 유전지대. <북폴리오> 제공
바쿠 유전지대 = 1933년에도 지금처럼 환경에 거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스탈린은 외국 석유회사들이 이권을 착취하던 제1차 세계대전 전에 바쿠에서 볼셰비키 선동가로 활동했다. 이 나라의 거대한 석유 및 광물 자원은 당에게 이익을 가져다주었다. 이후 소련은 세계에서 가장 큰 석유와 가스 생산국이 된다.

» 아버지와 아들. <북폴리오> 제공
아버지와 아들 = 러시아의 지방 거리에서. 지방에서는 달 표면처럼 어떤 사건이나 변화도 없었다. 봄이나 가을에 진흙을 피하려고 깔개를 깔았다. 여름에는 모든 행인들이 뒤에 작은 흙먼지 구름을 달고 다녔다. 겨울이면 거리는 온통 얼음투성이었다.

» 여성 농민. <북폴리오> 제공
여성 농민 = 경제가 붕괴하면서 식량을 찾아 전국을 떠돌아다니는 많은 여성들 중 한 명. “해방자” 차르 알렉산드르 2세는 1861년 농노를 해방했다. 70년 뒤 스탈린이 새로운 형태의 농노제를 도입했으며, 이에 따라 러시아 농촌 여성은 “노예의 딸, 노예의 어머니, 남편의 노예라는 삼중 노예 상태”의 전통적인 운명을 다시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 집단농장의 점호. <북폴리오> 제공
집단농장의 점호 = 모스크바지역의 한 농장. 집단농장들이 과학적으로 경영되고 고도로 기계화되었다고 선전했지만 실제로는 착취당하는 여성 농민들의 원시적인 힘에 의존했다.

» 낙천적인 러시아인들. 사진/F. 구바예프. <북폴리오> 제공
낙천적인 러시아인들 = 러시아인들이 결혼식 피로연에서 집에서 만든 보드카로 미래를 위해 건배하고 있다.

» 운하 노동자인 T. 벨리코바. <북폴리오> 제공

운하 노동자인 T. 벨리코바 = 결국 무용지물이 되고 말 백해 운하 프로젝트 현장에서 끔찍한 조건하에 일한 수많은 여성 노동자 중 한 명을 찍은 희귀한 사진이다. 발트 함대를 위해 운하를 설계했으나 함정이 통과하기에는 수심이 너무 얕았다.(<북폴리오> 제공)

07. 05.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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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개편 이후 한겨레 북리뷰가 토요일자로 나오는 모양이다. 개인적으론 유감스럽다. 아파트 주변에 신문 가판대가 없기 때문에(있더라도 한겨레는 잘 안 갖다놓는다) 토요일엔 신문을 사서 읽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온라인상으로만 기사를 읽어야 하는데 여러 모로 내 취향에는 맞지 않는 일이다. 하는 수 없는 노릇이지만. 토요일자 기사 중에서 최재봉 기자의 칼럼을 옮겨놓는다. <근대문학의 종언>과 한국문단에 관한 것인데, 어제오늘 '가라니타 고진' 퍼레이드를 완결짓는 의미로 제목은 '가라타니 고진과 백낙청'이라고 붙인다.  

한겨레(07. 05. 26) '근대문학의 종언’에 한국문단은 답하라

“하나의 유령이 한국문단을 배회하고 있다. <근대문학의 종언>이라는 유령이. 미디어, 출판자본, 문학 전공 교수, 편집자, 문학평론가, 시인, 소설가 등등 문학을 둘러싼 모든 권력의 담지자들이 이 유령과 맞서기 위해 신성동맹을 체결했다.”

마르크스·엥겔스의 <공산당선언>의 도입부를 비튼 이 구절은 문학평론가 권성우 교수(숙명여대 인문학부)가 영미문학연구회의 기관지 <안과 밖>제22호(2007년 상반기호)에 쓴 글의 일부다. ‘추억과 집착-<근대문학의 종언>과 그 논의에 대하여’라는 제목을 단 이 글은 일본 평론가 가라타니 고진의 저서 <근대문학의 종언>에 대한 한국 문단의 반응을 비판적으로 점검하면서 한국 문학의 반성과 갱신을 촉구하는 내용이다.

사회적으로 시급한 문제들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는 의미에서 근대문학의 ‘끝장’을 선언한 가라타니의 주장에 대해 국내의 주류 문단은 시큰둥하지 않으면 신경질적인 반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권 교수는 그러한 태도가 솔직하지 못하거나 오해에 기반한 것이라고 본다. 그는 “현실에 대한 대응력을 상실한 제도적인 차원의 관성적인 문학”에 대한 가라타니의 거시적 비판은 받아들이되, “미시적인 차원에서는 여전히 현실과 체제에 대한 비판적 개입을 시도하는 소수파 문인들과 적극적인 비평적 대화를 수행”해야 할 필요를 역설한다.

<근대문학의 종언>의 메아리는 비평 전문지 <오늘의 문예비평> 여름호에서도 들을 수 있다. ‘가라타니 고진과 한국문학’이라는 이 잡지의 기획에는 세 사람의 평론가가 글을 보탰다. 이 가운데서도 문제의 책 <근대문학의 종언>과 가라타니의 또 다른 저서 <언어와 비극>을 번역한 조영일씨의 글이 흥미롭다. ‘비평의 노년-가라타니 고진과 백낙청’이라는 제목의 이 장문의 글은 가라타니의 ‘근대문학의 종언’ 테제가 출현하기까지의 과정을 한국 문단과의 교류 속에서 살펴보고, 비슷한 연배의 평론가인 가라타니와 백낙청의 만남과 헤어짐의 역사를 통해 그 테제가 한국의 주류 문단에 던지는 메시지를 헤아린다.

가라타니는 1992년부터 1997년까지 네 차례에 걸쳐 한·일 양국을 오가며 진행된 ‘한일작가회의’에 꾸준히 참석했다. 조씨에 따르면 가라타니는 이미 1993년의 제2차 회의에서 발표한 ‘한국과 일본의 문학’이라는 글에서 ‘문학의 종언’ 테제를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문지’(출판사 문학과지성사) 계열 문인들로 이루어진 한국쪽 파트너들은 그의 주장에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문지의 ‘문학주의’에 실망한 가라타니는 이후 백낙청 교수로 대표되는 ‘창비’ 쪽과 접촉해 보지만, 결국 마찬가지의 실망을 경험하고 한-일 문학교류에서 손을 떼고 만다.

결론적으로 조씨는 백 교수가 최근 저서 <한국문학의 보람>(2006)에서 강조한 ‘한국문학의 보람’이란 곧 가라타니가 경고한 ‘문학의 종언’의 역설적인 증거일 뿐이라고 본다. “완전히 ‘문학화’된(즉 비평이 종언을 고한) 한국문학에서 문학의 적은 영화나 게임이 아니라 문학 자신”이라고 그는 일갈한다. ‘‘창비’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을 자처하는 그가 “‘창비’ 슈퍼스타즈의 팬클럽 역시 해체할 때가 된 것”이라고 주장할 때 그 어조에서는 비장함과 아울러 씁쓸한 비애의 정조가 묻어난다. 동맹이냐 해체냐. 가라타니의 테제는 지금 한국 문단을 향해 엄중한 선택을 요구하고 있다.

07. 05. 27.

P.S. 기사에서 언급된 조영일씨의 장문의 비평문은 다음카페 비평고원(http://cafe.daum.net/9876)의 '소조의 바리에테' 카테고리에서 읽어볼 수 있다('창비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란 글은 '화요논평'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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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리 2007-05-27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잠시 착각을... 가라타니 고진 그래가지고 표절 얘긴 줄 알았어요 글구 가라타니가 아주 옛날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군요. 97년이라 으음. 글구 전 개인적으로 권성우의 말엔 동의하는 편이어요. 좋아한답니다.

로쟈 2007-05-27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진의 책들은 재미있습니다. 일독해보셔도 좋겠습니다...
 

남들 쉰다는 주말에 왜 이리 할일이 많은지 모르겠다(하긴 주로 방구석에 있으니 바쁘다는 티도 안 나지만). 어느새 자정이 다가오고 있지만, '자정'의 의미도 예전같지 않다. 9시에 자고 6시에 일어나던 때가 인생의 어느 시절에는 분명히 있었던 듯한데 요즘은 아이가 잘 자는 걸로 대신 위안을 삼는다. 그리고는 내게 주어진 일을 해나가야지. '작가와 문학사이' 이번주는 지난 연말 '자정의 픽션'론을 들고 나온 작가 박형서 편이로군. 자정엔 픽션을 읽으란 얘기인가?..  

경향신문(07. 05. 26) [작가와 문학사이](19) 박형서-‘무색함’ 뒤의 새로움이여

이야기가 주인공인 소설이 있다. 머리에서 하루 200만배럴의 원유에 해당하는 고농축 유분이 흘러나오는 두유(頭油)청년에 관한 황당한 이야기(‘두유전쟁’), 화재 현장에서 많은 인명을 구해낸 의로운 소방대원들이 사실은 불에 탄 신체의 일부를 즐겨먹는 엽기적인 집단이라는 기이한 이야기(‘불 끄는 자들의 도시’), 이 세상에는 망자들이 저승으로 넘어가는 길이 있다는 다소 엉뚱한 이야기(‘노란 육교’), 바위구멍에 머리를 박고 죽게 된 어느 마을 사람들의 기막힌 이야기(‘너의 마을과 지루하지 않은 꿈’). 여항(閭巷)의 가담항설(街談巷說)이나 전기수(傳奇수)의 넉살좋은 입담을 연상시키는 이 이야기들을 박형서는 ‘자정의 픽션’이라고 부른다. 작가의 말을 빌려 이에 관해 조금 들어보자.

“내가 생각하는 ‘자정’이란 가라타니 고진이 그리워하는 ‘요란했던 근대’ 이후의 시간이다. 동시에 서사문학이라는 대가족 안에서 소설이 태동하던, 태아처럼 웅크린 채 자신의 미래에 대해 홀로 자문해보던 근대 이전의 저 먼 ‘새벽’을 의미하기도 한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자정’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얕은 꿈을 꾸거나 혹은 잠을 이루지 못해 고단하게 중얼거리는 시간이다. 어느 쪽이든, 아침은 바로 거기서 시작된다고 믿는다.”

여기서 ‘자정’은 근대 이후(post-modern)이면서 근대 이전(pre-modern)을 의미한다. 즉 근대 이후의 시간은 근대 이전의 시간과 만난다. 박형서는 이 구부러진 원환의 시간띠 속에서 바로 지금이야말로 새로운 소설을 시작할 수 있는 때라고 말하는 듯하다. 모든 시간은 반복된다. 박형서의 ‘자정의 픽션’이 근대 이전의 이야기들, 우리가 패설(稗說)이라고 부르는 것들을 연상케 한 데는 이런 저간의 사정이 있는 것이다.



그러니 첫번째 단편집 ‘토끼를 기르기 전에 알아두어야 할 몇 가지 것들’에 이어 최근 ‘자정의 픽션’이라는 단편집을 출간한 박형서에게 소설은 이야기다. 그래서인지 그의 소설은 흔히 단편소설을 읽었을 때 얻게 되는 삶에 대한 새로운 통찰이나 어떠한 정서적 여운도 우리에게 주지 못한다. 아니 주지 않는다. 작가는 최소한의 주제의식조차 거부한다.

그는 ‘은근히 겁주고 얄밉게 웃다가 말 돌리고, 상대가 모르는 예를 들면서 정신없이 들이대고, 무턱대고 말허리를 자르더니 갑자기 반말하면서 몰아세우고, 그러다가 어느 순간 딴청을 부린다.’(‘논쟁의 기술’) 이 ‘막나가기’ 신공 끝에 누군가는 “피범벅이 되어 떡볶이마냥” 나뒹굴지만, 박장대소하며 웃던 독자들은 “그래서, 뭐?” 하면서 어깨를 으쓱한다. 그러거나 말거나다. 누군가의 말처럼 거장들(루카치 골드만 지라르 등등)의 소설에 관한 모모한 정의가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다시 한번 말하거니와 이런 무색한 순간이야말로 작가에게는 새로운 소설의 아침을 열 수 있는 시간이다. 이 모든 무색함이야말로 작가가 의도한 것임을 잊지 말자. 만약 굳이 박형서 소설에서 주제를 끄집어낼 수 있다면 아마도 새로운 소설에 대한 이런 무색한 열망이 아닐까. 그것은 소설에 부과된 규범과 문법을 무색케 하면서 자기 자신마저도 하찮은 농담거리로 무색케 하고야 말겠다는 의지에 다름 아니다.

한국의 순수 서정소설을 대표하는 주요섭의 ‘사랑손님과 어머니’를 19금(禁)의 음란물로 만들어버린 ‘‘사랑손님과 어머니’의 음란성 연구’는 이러한 작가의 의도를 가장 노골적이면서도 자기비하적으로 연출한 소설이다. 여기서 노골적이라 하는 것은 ‘달걀’을 ‘불알’로 재해석하거나 ‘달걀먹기’가 옥희와 옥희 어머니가 ‘사랑손님’과 벌이는 성교행위임을 폭로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 소설이 노골적인 이유는 한국문학의 연구풍토와 모모한 문학론들에 대한 경멸과 야유를 퍼붓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경멸과 야유는 작가 자신에게도 그대로 돌아간다. 박형서의 이 거침없으면서도 다소 우울한 시도가 어디까지 이어질지는 아직 미지수다. 그러나 끝까지 가보기를….(심진경|문학평론가)

07. 05. 26.

P.S. '소설'이라고 통칭되고 있지만 작가가 쓴 건 '단편'들, 곧 '짧은 이야기(short story)'들이고, 이건 '거장들(루카치 골드만 지라르 등등)'이 정의한 소설(로만)과 무관하다. 내 생각에 소설에 관한 담론들의 많은 혼선/혼동이 이 두 장르/종류를 구별하지 않아서 빚어진다. 재미있고 유쾌한 '이야기들'은 근대 이전에도 있었고, 근대 이후에도 있을 것이다. 정오와 자정을 따로 가리지 않고. 박형서의 이야기들이 예증하는 것도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그 이상의 거창한 의미부여는 좀 음란해 보인다. 아래는 <자정의 픽션> 출간 당시의 서평기사 중 하나이다.

동아알보(06. 11. 04) "소설이란 원래 재미를 주는 거짓말”

소설에 자정의 시간이 오는가? 젊은 작가 박형서(34·사진) 씨의 새 단편소설집 ‘자정의 픽션’(문학과지성사)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이다. 박 씨는 ‘독특하고 극단적인 상상력’으로 호평받아 온 젊은 작가. 새 소설집에서 그는 특유의 상상력에 포복절도할 유머를 섞어 놓았다.

이를테면 ‘'사랑손님과 어머니'의 음란성 연구’라는 제목으로 논문 형식의 단편소설을 썼다. 주요섭의 유명한 단편 ‘사랑손님과 어머니’가 실은 사랑손님과 딸 옥희의 성애를 교묘하게 다뤘다는 주장이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등 유명한 저서의 부분 부분을 이어 모은 실험도 주목할 만하거니와, 독자에게 전하려는 메시지가 무엇인가에 대한 작가의 답변이 흥미롭다. “요즘같이 바쁜 세상에 독자들이 메시지를 찾아가면서 읽겠느냐”는 것. ‘그렇다면 독자는 무엇을 얻는가’라는 질문에 그는 더욱 흥미로운 답을 내놓았다. “재미요.”

이야기꾼은 사람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 이야기를 한다는, 소설이 출발했던 때의 모습을 박 씨는 새롭게 일깨우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소설은 재미와 감동을 주는 ‘거짓말’이 아니었던가. 사실 ‘사랑손님과 어머니의 음란성 연구’에서 아버지뻘 되는 사랑손님과 소녀 옥희의 원조교제로 얘기를 끌어가는 것도 황당하지만, ‘사랑손님이 자신의 달걀을 옥희에게 주는 행위’를 ‘사랑손님이 옥희에게 정액을 발사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부분에 이르면 말도 안 되는 주장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배를 잡게 된다.

“저는요, 작가는 결국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사람들한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 주는 사람요. 소설을 보고 뭘 의미할까, 뭘 상징할까 생각하는 걸 말리지는 않겠지만, 저의 가장 큰 목표는 사람들이 읽고 재미있어 하는 이야기를 쓴다는 거예요.”

또 다른 단편 ‘논쟁의 기술’은 말싸움에서 승리하는 방법을 설명하는 소설. ‘유리한 주제의 선정’ ‘은근히 겁주기’ ‘상대가 모르는 예를 들기’ 등 실전에 도움 되는 기술을 소제목으로 나열하고 부합하는 사례들을 유쾌하게 늘어놓는다. “우리 사회 어느 곳에서나 논쟁이 벌어지잖아요. 억지도 말만 잘하면 성립되고. 그런 모습을 비꼰 것일 수도 있겠는데,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진 마시고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제 바람이 이뤄지는 것이죠.”

소설에 자정의 시간이 오는가에 대한 그의 답변은 “그렇다”이다. “그러나 자정은 하루의 끝이 아니라 새 아침이 시작되는 시간”이라고 작가는 설명한다. 순도 높은 재미로 가득 찬 소설 쓰기로 그는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고 있다.(김지영 기자)

P.S.2. 영화를 맞수를 상대하는 작가들이 드물지 않듯이 때론 개콘을 라이벌로 꼽는 작가도 있는 법. 그의 선전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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