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저널 담비에서 고대 대학원신문에 게재된 기사 하나는 옮겨온다. 어제가 현충일이었지만 호국보훈의 달을 맞이하여 57년전 발발한 한국전쟁의 의미를 한번쯤 되새겨보게 하는 기사이다. '전쟁과 함께 만들어진 '한국인이 사는 법''이란 기획기사의 한 꼭지인 듯하다. 실상 여전히 '분단체제'하에서 우리가 살고 있다는 걸 고려하면 '한국전은 57년째 계속되고 있다'란 문제의식 자체가 파격적이거나 새로운 건 아니다. 다만 '한국전 망탈리테'에서 한국인 코드라 할 '사바사바'의 기원을 찾고 있다는 점이 흥미를 끈다(기사는 '가설' 수준에서 머문 듯한 감이 있지만). 한국전쟁에 관한 연구가 앞으로 지향해야 할 한 가지 방향을 제시하는 듯해서 스크랩해놓는다.

▲ 부산 인근에서 벌거벗은 채 줄맞춰 이동 중인 인민군 포로들의 모습

고대 대학원신문 6월호(07. 06. 06) 한국전은 57년째 계속되고 있다

“한국전은 계속되고 있다.” 예비군 훈련 정신교육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말이다. 그렇다. 한국전은 분명 57년째 계속되고 있다. 한국전이 종전으로 매듭 지워지지 못하고 휴전이라는 상태로 진행되어 오지 않았던가. 본 기자가 예비군 훈련장이 아닌 이곳에서 귀중한 지면을 빌려 ‘한국전은 계속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안보 장사’를 하는 이들처럼 휴전상태라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 ‘안보의식을 고취하자’는 따위의 이야기를 섣불리 하고자 함은 아니다. 한국전이 만들어낸 우리의 망탈리테가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기에 하는 말이다.

많은 이들이 IMF 위기 이후 한국사회의 변동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한국전쟁이 만들어 놓은 이른바 ‘한국전 망탈리테’는 여전히 한국사회에 온존하고 있다. 단기간에 극심한 경제, 사회적 공황을 불러일으킨 IMF위기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특정 정책이나 제도는 내, 외부의 변화압력에, 시간차를 가질지언정 비교적 쉽게 변하기 마련인 반면, 우리의 일상생활을 주조하는 망탈리테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학살에 학살을 거듭한 인류사에 유래가 없을 정도의 참혹한 전쟁인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일반인들의 삶에 완전히 체화된 ‘한국전 망탈리테’는 여전히 우리에게 삶의 방식내지 지혜로 뿌리깊이 체화되어 있다.      

비록, 국가의 자율성은 크지만 능력은 미약한 ‘약탈국가’였을 망정, 한국의 국가는 한국전을 거치면서 만들어졌다. ‘국가는 전쟁을 만들고, 전쟁은 국가를 만든다’는 찰스 틸리의 주장은 한국의 ‘국가 만들기’에 잘 부합된다. 또한 전상인 교수의 지적처럼 한국전은 시민사회에 대한 국가권력의 절대적 우위문화, 달리 말해, ‘국민의 국가’가 아니라 ‘국가의 국민’을 만들어 냈다. 한국전쟁 과정에서 나타난 폭압적이고 무책임한 국가권력은 전쟁이 휴전된 이후 사라지지 않고 다소 부드러운, 완화된 형태로 계속해서 우리의 삶에 구조화된 형태로 온존하고 있는 것이다.

휴전 이후 계속해서 권위주의 정권들을 거치면서 전쟁의 방식과 논리, 더 나아가 군사주의는 한국사회에 깊숙이 뿌리내렸다. ‘군대를 다녀와 봐야 사람된다’는 말은 이런 맥락에서 타당한 말이다. 사회가 군대논리로 돌아가니, 싫던 좋은 이런 논리가 몸에 완전히 체화된 사람들이 약육강식 세계에서 생존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산발적으로 진행되어 오던 국지전이, 북한의 남침으로 본격적인 전면전으로 커지자 이승만 정권은 국민을 속이고 도망쳤다. 그뿐 아니라 9·28수복 이후에는 남쪽으로 미처 피난가지 못한 이들의 상당수를 ‘부역자’라 명명한 후 무차별적으로 처벌했다. 전쟁을 겪으며 좌익이 뭔지, 우익이 뭔지도 모르던 숱한 양민들은 전선의 이동에 따라서 남, 북, 미군에 의해 무차별적 학살을 당했다. 또한 엄청난 수의 힘없고 돈 없는 사람들이 어이없이 목숨을 잃었던 국민방위군 사건이 말해주는 바는 자명했다.



사람들은 전쟁을 거치면서 국가나 제도에 관한 강한 불신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국민에게 거짓말을 하고 도망치며 다리를 끊어버린 정부, 돈 없고 빽 없는 사람들을 징집해가서 굶어죽이는 정부,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을 빨갱이로 몰아서 죽이는 정부나 제도에 대해서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전쟁 통에 당장 나를 살려주고 먹여주는 것은 공적기구나 제도나 아니라 바로 나의 가족들 밖에 없었다. 그리고 어떻게는 지배계급과 줄을 만들어 놓은 사람들만이 출세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이른바 ‘사바사바’의 위력을 모두가 실감하게 되었다.

한국전쟁은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공적 영역에 대한 만성적인 저신뢰를 낳았으며, 공적 영역 자체에 대한 사람들의 참여 내지 비판을 금기시하게 했다. 그러나 물론 공적 영역에 대한 소극적인 태도가 삶 자체에 대한 소극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정반대다. 강준만 교수의 주장처럼 한맺힌 세월에 대한 강한 보상심리의 작용으로 ‘공적 소극성, 사적 적극성’현상이 나타났으며, 사적 적극성은 중앙과 정상을 향한 맹렬한 돌진의 양상을 띠게 되었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아남는 것이 최우선일 수밖에 없었던 한국전쟁 당시의 삶의 전략은 이른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상태를 낳으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국가의 공적인 체제나 제도를 믿으면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는 ‘삶의 지혜’를 한국전을 거치면서, 군사독재를 거치면서 우리 모두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적인 연줄망이나 빽에 의존하는 사회에 사는 사람들은 항상 남들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고 만성적 피로 속에서 산다. 줄을 만들고 관리하기 위해서는 적재적소에 아첨 및 ‘사바사바’를 해야 한다. 그리고 시원하게 술도 마셔줘야 하고 남들의 경조사도 깔끔하게 챙겨줘야 한다. 한국인들 상당수가 취미하나 없고, 놀 줄도 모르고 가정에 와서는 잠과 휴식만을 갈구한다는 것은 공적신뢰가 전무한 ‘약육강식 사회’가 보여주는 하나의 자화상이다.

물론 한국전이 이 모든 것을 만들어냈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인류사에 그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잔인한 전쟁은 분명 우리 한국인들이 이른바 ‘삶의 양식’내지는 ‘망탈리테’라고 할 만한 것들의 상당부분 기초를 제공했다. 이는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가 전체 인구의 상당비율을 차지하는 요즘에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들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이른바 ‘한국전 망탈리테’는 우리가 ‘개발국가’하에서 전래 없는 경제성장을 이룩할 수 있게 만든 가장 중요한 원동력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그것은 저신뢰사회와 극단적인 쏠림현상을 낳아서 우리의 삶을 극도로 피곤하게 항상 긴장하게 만들었다. 세상의 많은 일이 그렇듯, 한국전 망탈리테는 우리에게 희열과 아픔을 동시에 가져다 준 것이다.(김경필 기자)

07. 06.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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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의 서재 개편이 며칠 미뤄지는 바람에 '말년휴가'도 머쓱하게 돼버렸다. 지난달말부터 한 주 가량 나는 서재를 접었다가 대략 오늘(6월 6일) '서재2.0'과 함께 컴백할 계획이었는데, 복귀 일정이 2-3일 당겨졌고('주간서재의 달인'이 폐지된 것도 복귀의 빌미가 돼 주었다), 새 서재의 오픈은 최소 2-3일은 늦춰진 듯하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1.0 알라디너'이다. 그리고 그 알라디너 로쟈의 '고통'도 여전하다. 

종종 서재를 집어치울까 고민하게 만드는 나의 고통은 책을 읽을 시간도, 글을 쓸 시간도 너무 부족한 데서 비롯한다. '정상적인' 생활, 곧 본업과 관련한 일들도 잔뜩 쌓여 있건만(이것도 고통이다!) 그 한편에서 '로쟈의 일'도 자꾸만 늘어간다(이건 악순환의 되먹임이어서 더 열심히 할수록 일은 더 많아진다!). 적어도 하루에 2-3가지 아이템을 놓고 나는 포기하거나 연기할 명분을 찾아야 한다(그럴 때 나는 펌글들로 입막음한다). 다 쓸 수 없으니까. '6월의 사회적 독서' 목록을 작성하는 일이 계속 미뤄지고 있고, 어제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에이젠슈테인'란 타이틀을 포기했다(다음주에도 시간을 내지 못한다면 흐지부지될 것이다). 그리고 오늘은 '알로이스 리글'에 대한 글을 포기하려다가 조금 비틀어서(그러니까 약간 타협해서) 여기에 몇 자 적어두기로 했다(이런 생활을 언제까지 지탱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나도 이젠 적잖은 나이를 먹었기에).    

계기는 어쩌다 들뢰즈의 <대담>(솔, 1993)에서 한두 페이지를 읽은 것(이 책에서도 통제사회에 대한 푸코와 네그리의 대담을 정리해두는 것 역시 오래전에 포기된/연기된 아이템 중 하나이다). 최근 영화이론서를 읽고 있는지라(읽어야만 하는지라) 겸사겸사 '낙관, 비관, 그리고 여행'이란 부제를 달고 있는 '세르쥬 다네에게 보내는 편지'를 잠깐 읽어보려고 펼쳐들었다가 일이 또 번진 것인데, 편지는 이렇게 시작된다.

"지난번 당신의 책 <비탈>(1983)은 <수첩(Cahiers)>지에 기고한 글들을 엮은 것이었지요. 그 글들이 진정한하나의 책을 이룬 것은 당신이 그것들을 <수첩>지가 거쳐온 여러 시대들의 분석에 따라, 그리고 특히 영상 이미지의 여러 가지 기능 분석에 따라 분류해놓았기 때문입니다."(80쪽)

'수첩'지는 물론 저명한 영화잡지 '카이에 뒤 시네마'를 말한다. '까이에 뒤 시네마' '카예 뒤 시네마' 등 다양하게 표기되고 있지만, 이 고유명사를 '수첩'지라고 옮기는 건 드문 일이다. 말이 나온 김에 얘기하자면 <대담>은 내 기억에 들뢰즈의 저작으론 <소수집단의 문학을 위하여>(문학과지성사, 1992)에 이어서 두번째로 국내에 소개된 책이다. 이때만 해도 들뢰즈는 한국에서 '전설'이었고 '미래의 철학자'였다. 나는 <대담>을 아마도 서점에서 보자마자 집어들었고 한동안 물신적인 애착까지 느꼈던 듯하다. 

 

 

 

 

지금 돌이켜보면 몇 편의 대담이나 읽었을지 상당히 의심스럽지만 여하튼 당시 대학원 석사과정 시절에 나는 친구에게 앞으로 '들뢰즈의 책들이 나오게 될 거야'라고 호언장담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 장담은 십수 년이 지난 현재 거의 실현된 듯하다(곁들여 독일 철학자로선 니콜라스 루만의 책들이 소개되어야 하다고 주장했지만 그건 그다지 현실화되지 않았다). 말년의 <시네마>까지 완역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일'이 모든 끝난 것은 아니며 이제 제대로 된 '교정' 작업이 이루어져야 하는 게 아닌가 한다. 즉, <소수집단의 문학을 위하여>가 <카프카>(동문선, 2001)로 재번역된 것처럼 시효성을 다한 <대담> 또한 재번역될 필요가 있다. 

언젠가 지적한 한 것 같기도 한데, 책은 적잖은 오역/오류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반대로 이후에 축적된 국내의 들뢰즈 이해/연구의 성과들은 포함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기본적으로 국역본은 완역이 아니다. 전체 18편의 대담 꼭지들 가운데 12편이 번역돼 있으니까 2/3 번역이다. 영역본을 기준으로 본문 200쪽이 안되는 책이므로 새로운 번역작업에 많은 시간이 소요될 성싶지도 않다(물론 번역은 들뢰즈에 대한 충분한 사전이해를 필요로 하겠지만). 새 번역이 나와서 <디알로그>(동문선, 2005)와 함께 들뢰즈의 육성을 우리말로도 읽을 수 있었으면 한다(나는 영역본과 함께 지난 2004년에 나온 러시아어본을 갖고 있다).

Переговоры. 1972 - 1990

다시 다네로 돌아오면 들뢰즈는 여기서 <카이에>의 편집장까지 지낸 이 걸출한 영화평론가에게 경의를 표하면서 그의 작업이 갖는 의의에 대해서 기술하고자 한다. 여담을 붙이자면, 나는 '세르주 다네(1944-1992)'란 이름을, 그리고 그가 앙드레 바쟁 이후 프랑스 최고의 영화평론가란 사실을 오래전에 영화평론가 정성일을 통해서 접했다. 작년 가을만 해도 그는 '정성일의 가을영화 산책'이란 글의 서두를 이렇게 시작했다.    

(그저 떠오르는 대로 열거하는) 산책의 대가들의 명단. 보들레르의 산책. 지가 베르토프의 산책. 모네의 산책. 알베르틴의 산책. 다이스케의 산책. 벤야민의 산책. 로셀리니의 산책. 도미오카와 유키코의 산책. 솔레르의 산책. 차이밍량의 산책. 홍상수의 산책. (고작해야) 그들을 흉내내고 있는 나의 산책. 더 솔직히 말하면 영화에 대한 메모만으로 가득 찬 산책-글쓰기는 내 오랜 꿈이었다. 나는 이러한 글쓰기를 세르주 다네의 (신문 <리베라시옹>에 1981년 7월18일 프리츠 랑으로 시작해서 1986년 1월24일 펠리니의 <진저와 프레드>로 연재를 마친) ‘영화-일지’(Cine-Journal)를 읽으면서 배웠다. 물론 나도 안다. 내가 아무리 해봐야 다네만큼 높이 상공 비행한 다음 내려다보지 못한다는 것을. 다네가 보여준 더 많이 보려는 욕망. 그는 어떤 영화는 슬로모션처럼 보아야 하며, 어떤 영화는 디졸브하듯이 보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영화를 보는 내가 영화-되기.

지금 모두들 영화비평의 위기를 말한다. 지금 다시 떠올려볼 만한 다네의 유명한 제안, 영화에 관한 평이란 완전하게 불필요하다. 대중은 평 없이도 영화를 보고, 극장은 글 없이도 가득 채울 수 있다. 말하자면 영화평이란 잉여이다. 그런데 그게 필요하다면 왜 필요한가? 그건 단 한 가지 목적 때문이다. 영화를 본 다음 생각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영화에 관한 평을 읽는 것은 영화를 보는 경험의 연장이며, 보충이며, 대리이다. 그러기 위해서 영화평은 영화에 더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 할 수만 있다면 겹쳐놓을 수 있어야 한다. 세르주 다네는 영화를 본 다음 정리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핵심은 그 인상을 보존하고, 그것만으로 버티는 것이다. 영화와 세상 사이의 중재. 그냥 영화를 본 다음 인상적으로 떠오른 생각들. 수첩을 가득 채운 두서없는 메모. 이 글은 그렇게 쓰여졌다. (후렴) 지금은 가을이니까.

하지만 지금은 여름이기에 따로 후렴이 필요하진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인용문에서 언급되고 있는 세르주 다네의 <영화-일지>(1986) 서문이 바로 들뢰즈의 이 글 '세르쥬 다네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대목들 역시 들뢰즈의 다른 글들이 그렇듯이 세심하게 따라가며 읽어야 한다. 가령 이 페이퍼의 빌미가 된 미술학자 알로이스 리글(1858-1905)에 대한 언급.

"조형 예술의 저명한 선구자인 리글(Riegl)은 예술의 목적을 자연 미화, 자연 정신화, 자연 필적이라는 세 가지로 나눠놓았지요('미화', '정신화', '필적'이라는 말들은 그에게 있어서 단호한 역사적-논리적 의미를 가지는 것들입니다)."

내가 흥미를 느낀 건 이 한 문장이다(이럴 때 '공부'는 이런 문장에 주석을 다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전제된 리글의 미술사관이다(나는 그 주석을 달아보기 위해서 한 시간 정도 웹서핑을 했다). 찾아보니 리글의 책은 국내에 번역/소개된 것이 없다(해서 몇몇 주저들이 번역/소개되면 좋겠다). 개인적으론 단토의 <예술의 종말 이후>(미술문화, 2004)에서 그의 <양식의 문제>(1893)의 골자 정도를 읽어볼 수 있었다. 그래서 그의 주저와 관련 논문들 두어 개를 읽어보기 위해 찜해놓았다. 그러면서 내가 스스로에게 내민 타협안이 리글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루기로 한다는 것. 

그리고서 책을 덮으려고 하는데 눈에 띈 에이젠슈테인. 아니 국역본대로 하면 '아인슈타인': "당신은 최근 책에서 이 대백과사전의 상징물로서 아인슈타인의 서재, 아인슈타인 박사의 서가를 제안하고 있지요. 한데 당신은 영화가 저절로 죽은 것이 아니라 전쟁이 암살한 것이라는 점을 지적했습니다(사실 모스크바에 있는 아인슈타인의 서가는 죽은 곳, 박탈된 곳, 용도 변경된 곳이 되어버렸지요). 시베르버그는 발터 벤야민의 몇몇 생각을 아주 멀리까지 밀고 나가 히틀러를 영화인으로 취급해야 한다고 말한 바도 있지요..."(81쪽)

'모스크바에 있는 아인슈타인의 서가'라는 말까지 읽게 되면 헛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다. 참고로 영역본을 옮겨놓으면 "In your new book you offer Eisenstein's library, the Cabinet of Doctor Eisenstein, as asymbol of this great encyclopedia. Now, you've pointed out that this form of cinema didn't die a natural death but was killed in the war (Eisenstein's office in Moscow, indeed, became a dead, dispossessed, derelict place). Syberberg extensively developed some remarks of Walter Benjamin's about seeing Hitler as a filmmaker..."(69쪽)

Метод. Том 1. Grundproblem

'한데'('Now')를 기점으로 문단이 나뉘는데, 인용문 이전에 들뢰즈는 영화사의 첫번째 시대가 '몽타주 기법'에 의해 정의될 수 있으며 그것이 지향했던 바는 '세계의 백과사전'이었다고 정리한다. 그리고는 이 인용문의 첫 문장에서, 다네가 그 '대백과사전'의 상징으로 '에이젠슈테인의 서재'를 들고 있음을 상기시키고 있는 것. 그 서가를 'the Cabinet of Doctor Eisenstein'이라고 부연하는 것은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The Cabinet of Dr. Caligari)>(1919)에 대한 인유인데 그걸 살려주자면 '아인슈타인 박사의 서가'가 아니라 '에이젠슈테인 박사의 밀실'이라고 옮겨야 한다(아마도 '박사'란 말 때문에 역자는 '에이젠슈테인'이 아닌 '아인슈타인'을 먼저 떠올렸을 법하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지금 영화 얘기를 하고 있는데!). 그 서재/밀실의 주인은 전쟁이 끝난 이후인 1948년에 세상을 떠났다(그의 죽음도 또한 페이퍼 거리지만 참아두기로 한다).

한가지만 더 지적하자면 인용문의 마지막 문장에서 '시베르버그(Syberberg)'는 '지버베르크'라고 읽는 게 맞다(러시아어로는 '시베르베르그'라고 옮기지만). <히틀러>(1978)를 만든 독일의 영화감독 한스 위르겐 지버베르크(1935- )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이기에. 그에 대해서는 수잔 손택의 <우울한 열정>(시울, 2005)을 참조할 수 있다('지버베르크의 히틀러'가 책의 한 장이다)...

07. 06. 06.

P.S. 세 시간 정도를 투자해서 페이퍼를 완성한 다음에 드는 생각. 이런 페이퍼라는 게 책을 읽는 데 어떤 도움이 되는가? 다네의 제안을 비틀어서 말하자면 책에 관한 자질구레한 이런 페이퍼는 완전하게 불필요하다. 대중은 이런 참견 없이도 책을 (안)읽고 삶은 '마시지'를 통해서 오히려 건강하고 윤택해진다. 해서, 리뷰니 페이퍼니 하는 건 모두 잉여이다. 그런데 그게 필요하다면 왜 필요한가? 그건 단 한 가지 목적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그리고 읽은 다음에 생각하기 위해서이다. 나는 보통 두세 가지 생각을 한다. 사람들은 어떻게 이런 책을 안 읽을 수 있는 것일까? 도대체가 이보다 더 좋은 책을 읽을 수는 없는 것일까? 젠장, 언제까지나 이런 책을 읽어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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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나무 2008-03-18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 시간을 투자한 페이퍼를 30분은 들여다봐야할 것 같은 강박감을 느낍니다.^^
하여간 전 이런 류의 페이퍼가 좋습니다. 책에 대한 정보는 기본, 로쟈님의 사변이 주제들인...^^ 어떻게 이런 페이퍼들을 사랑하지 않겠습니까. 비밀 하나 알려드리자면 저의 즐거움 중 하나는 로쟈님의 페이퍼들을 뒤지는 일입니다.-기억력이 제로인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취미 입니다. 수고로운-밥벌이도 안 되는데-로쟈님을 생각하면 걍 페이퍼들 접으라고 말해주고 싶은데 그러기엔 내가 느끼는 공허감이 좀 클 것 같아서요...^^ 가까이 계시면 커피 대신 시원한 맥주라도 한 잔 사 드릴텐데... 전 홀짝이는 커피값이 젤 아까운 사람이거든요ㅎㅎ 하여간 감사하는 인간 있다는 거 잊지 마시구요 귀찮을 땐 가끔 접으시고 그리고 또 힘도 내시고 그러시길...

로쟈 2008-03-18 13:21   좋아요 0 | URL
ㅎㅎ 덕분에 저도 옛날 얘기를 잠깐 읽어봤습니다.^^

섬나무 2008-03-19 0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석에 박힌 댓글도 눈에 띄나보군요.^^

청공 2020-06-06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시간 공들여 쓰신 글이라는 걸 의식하지 못한채 매번 당연한 듯, 제가 읽어내려가고 있는건 아닌지...물론 언젠가는 선생님께서 쓰신 글을 온전히 흡수할 수 있길 바라고 있지만요.
 

지난봄 중국 작가 위화의 방한 소식을 접했었는데, 중국문학의 '제비 한 마리' 정도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바야흐로 중국문학의 ('봄'도 넘어서) '여름'이 도래할 태세이니까. 내일자 한겨레에 실릴 기사를 미리 읽어보니 올 하반기부터 내년 상반기까지 출간될 중국소설만 30-40종을 헤아린다 한다. 거의 '옐로우 오션' 아닌가? 기본적으론 중국 '본격소설'이 최근에 유행을 탄 일류(일본문학)보다 진지하고 건강하다는 예단을 갖고 있는 터라 반갑긴 하다. 그 틈바구니 속에서 한국문학도 더 강해지기를 기대해본다. 내가 접해본 관련기사들을 이 참에 다 모아놓는다.

한겨레(07. 06. 07) 중국소설, 한반도에 ‘만리장성’ 쌓을까

<허삼관 매혈기>와 <살아간다는 것>의 작가 위화(47·왼쪽), 그리고 <쌀>과 <이혼지침서>의 작가 쑤퉁(44·오른쪽). <붉은 수수밭>의 모옌(52)과 더불어 중국 현대소설을 이끄는 삼두마차로 꼽히는 이들이다(*세사람의 공통점? 모두 장이모의 영화들 원작자들이다. 그 영화들이란 <붉은 수수밭>, <홍등>, 그리고 <인생>이며 각각 모옌, 쑤퉁, 위화의 소설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위화가 지난달 말 방한해 연세대와 서강대 등에서 강연을 하고 간 데 이어 바통을 넘겨받듯 다음주에는 쑤퉁이 한국을 찾는다.

두 사람의 한국 걸음은 최근 두드러지고 있는 ‘중국 소설 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2005년 출간되어 중국에서 160만부가 팔린 위화의 화제작 <형제>(전2권, 휴머니스트)가 이달 중에 번역 출간되며, 지난주에 나온 쑤퉁의 <나, 제왕의 생애>(아고라)에 이어 그의 신작 <푸른 노예>(문학동네)도 이달 안에 한국어판이 나온다. 이들에 뒤질세라 모옌의 소설 <생사피로> 역시 올 하반기에 창비에서 번역 출간될 예정이다.

이 밖에 웅진에서도 옌롄커의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를 올 가을에 내기로 했으며, 김영사의 계열사인 비채도 쑤퉁의 또 다른 장편 <무측천>을 비롯해 중국 소설 5권을 잇달아 선보일 계획이다. <빨간 기와>의 작가 차오원쉬안이 쓴 첫 성인용 장편소설 <천표>가 은행나무에서 올해 안에 나올 예정이고, 현암사에서 한사오궁의 중단편선집이, 문학동네에서 비페이위의 소설이 나오는 등 올 하반기에서 내년 상반기 사이에 나올 중국 소설은 30~40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출판계에서 중국 소설이 일종의 ‘블루 오션’으로 취급되는 까닭은 크게 △90년대 이후 중국 당대 소설들이 보여주는 놀라운 활력 △일본 소설 등에 비해 저렴한 저작권료 등에서 찾아진다. 이욱연 서강대 교수(중국현대문학)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이념적 경직성과 80년대의 서구 모더니즘 추수에서 다같이 벗어난, 독자적인 서사방식을 지닌 작가들이 90년대 이후 대거 나타나면서 중국 소설이 문학적 다양성과 높은 수준을 아울러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장은수 민음사 대표는 “한동안 특수를 누린 일본 소설의 거품이 꺼져 가는 가운데 상대적으로 저작권료가 적은 중국 소설에서 ‘싸고 질 좋은 작품’을 찾는 움직임이 보인다”고 말했다.

중국 소설에 대한 이런 관심은 경제·경영 및 처세·실용서 분야에서의 중국 바람과 맞물려 상승 효과를 보고 있다. 엔터스나 임프리마 같은 저작권 에이전시는 영미와 일본, 유럽 등을 망라한 종합 도서정보와 별도로 중국 출판정보만을 따로 모아 제공하고 있다. 캐럿 에이전시 같은 중국 전문 에이전시의 활동도 활발해지고 있다. 최근 중국의 대형 베스트셀러 소설인 <사자개>(양즈쥔 지음)를 낸 출판사 황금여우의 방철 대표는 “경제·경영 쪽에서 선도한 중국 바람이 소설 쪽으로 넘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4월 상하이에서 두 나라 문인 5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제1회 한·중 작가회의가 열린 데 이어 올 9월과 10월에도 한국과 중국에서 대산문화재단과 중국작가협회 주최로 양국 작가 10~20명씩이 참가하는 ‘한·중 작가교류’ 행사가 열릴 예정이어서 출판·독서계의 중국 바람을 뒷받침할 것으로 보인다.(최재봉 문학전문기자)

한국일보(07. 04. 11) 공지영, 中대표작가 위화 만나

한국과 중국에서 인기 작가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제1회 한중작가회의 둘째 날인 10일 소설가 공지영(44)씨가 중국의 대표 작가 위화(余華ㆍ47)를 만났다. 위화는 <살아간다는 것> <허삼관 매혈기> 등 그가 쓴 책 다섯 권이 한글로 번역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소설가다. 두 사람은 2000년 위화가 성공회대 초청으로 방한했을 때 친분을 맺었다. 공씨는 <살아간다는 것>의 국내 번역본을 윤문하기도 했다.

▦공지영(공)=7년 전 처음 봤을 때 당신이 영어를 전혀 못해 대화하기 힘들었다.

▦위화(위)= 문화대혁명(이하 문혁) 시절에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 교육을 전혀 받지 못했다. 나와 동년배 작가들도 대개 영어에 서툴다.

▦공= <살아간다는 것>을 읽으며 많이 울었다. 나와 비슷한 세대인데 이렇게 경험이 다르구나 싶었다. 어떤 계기로 작품을 쓰게 됐나.

▦위= 중국 혁명, 대약진, 문혁 등 불안한 세월을 견딘 사람의 운명을 형상화하고 싶었다. 처음엔 방관자적 입장인 3인칭 시점으로 쓰려 했는데 도저히 못 쓰겠더라. 그래서 1인칭으로 바꿨다. 덕분에 주인공을 단순히 고통받는 자가 아닌,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찾아가는 입체적 인물로 그릴 수 있었다. 어떤 인생이든 나름의 기쁨은 있기 마련이니까.

▦공= 거의 10년 만에 소설을 낸 것으로 알고 있다. 공백기가 길었는데.

▦위= 재작년 <형제>라는 장편을 냈다. 한국에서도 곧 출간될 것이다. 10년 간 산문이나 채 완성 못한 소설을 쓰며 지냈다. 인터넷 문화가 만개한 시대에 문학이 생산하는 픽션의 세계가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을 지에 대해 고민이 깊었다. 침묵기를 거쳐 낸 결론은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말자”다.(웃음)

▦공= 나도 비슷한 고민으로 한동안 작품을 못 냈다. <형제>에서 독특한 창작 기법을 선뵀다는 얘기를 들었다.

▦위= 직접 읽어보고 확인하시라. 소설을 쓸 때는 늘 과거 작품을 잊고 새로운 표현기법을 추구한다. 설령 형식적으로 미진한 부분이 생기더라도 그렇게 해야 작품의 생명력이 강해진다. 이것을 축구에 비유하고 싶다. 축구 선수에게 중요한 것은 아름다운 동작이 아니라 골을 넣는 일이다.

▦공= 단문 위주로 이야기를 빠르게 전개한다는 점에서 내 소설과 비슷하다.

▦위= 여전히 중국 문단을 지배하는 모더니즘 사조에서 이미 벗어났다고 자부한다. 형식주의에 구애받을 경우 작가는 많은 것을 잃게 된다. 나는 외국 소설을 읽을 때 경향보다는 이야기, 인물 묘사에 집중한다. 자서전이나 평전에서 새로운 서술 방식을 발견하고 영감을 얻기도 했다.

▦공= 치과의사 생활을 5년 동안 하다가 작가가 됐다고 들었다. 계기가 있었나.

▦위= 그냥 병원 일이 재미 없었다. 유명한 작가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운이 좋아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난 오랜 기간에 걸쳐 서서히 인정받았기 때문에 내면의 격정을 잃지 않고 계속 작품을 쓸 수 있었다. 만약 초기 작품으로 인기를 얻었다면 창작 동력을 유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중국 사회의 역동성이 나를 만든 측면도 있다. 문혁의 비인간성이 현재와 같은 물신주의로 변화하는데 단 40년 밖에 걸리지 않았다.

▦공= 초판을 50만부나 찍는다는 게 사실인가. 대체 얼마나 많이 팔리기에.

▦위= 사실이긴 한데 중국은 한국보다 책 값이 싸다.(웃음) 공급이 풍부하지 않으면 금세 해적판이 돌기 때문에 충분히 찍는 측면도 있다. <살아간다는 것>은 100만 부 가량 팔렸다. <형제>는 70만~80만 부 정도이고.

▦공= 다음 달에 한국에 온다고 들었다.

▦위= 창작과비평사 초청으로 연세대, 서강대에서 강연 한다. 주제는 ‘문학의 상상력’이다. 중국 고전 중에 <수신기(搜神記)>가 있다. 이 작품에 따르면 비는 신선이 지상에 내려오는 것, 바람은 도로 천상으로 올라가는 것이란다. 비ㆍ바람이란 현실을 신선의 강림ㆍ승천이란 상상력과 결합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위대한 문학의 전범이다.

▦공= 내가 선물한 나전칠기 필통은 맘에 드나.

▦위= 아주 아름다운 필통이라 아까워서 못쓰겠다. 어디 고이 모셔둬야지. 다음 달 방한 때 답례를 기대하라.

경향신문(07. 06. 02) [동아시아의 오늘과 내일](18)중국 문학의 귀환과 작가 위화

‘살아간다는 것’(푸른숲, 1997)의 중국 작가 위화가 왔다(*필자인 백원담 교수는 <살아간다는 것>의 역자이다). 연세대 인문학특성화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마련된 ‘문화 속의 상상’ 강연회에서 만난 위화는 최근 장편소설 ‘형제’를 발표한 후의 자신감 탓일까, 특유의 순발력과 동서양을 넘나드는 풍성한 문학 편람으로 주제를 논파하는 모습이 사뭇 중량감 있게 다가왔다. 위화는 문학적 상상력이란 통찰력과의 결합을 통해서만 그 진정한 힘을 가질 수 있다고 역설했다. 그 통찰력을 역사와 사회에 대한 그것으로 분명하게 적시하지는 않았지만, 정치성을 거론한 것에서 시적 긴장으로 세상을 꿰뚫어보는 통찰력과 역사적 상상력의 결합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확인하기란 어렵지 않다.

마르케스와 보르헤스, 주로 라틴아메리카의 마환현실주의(魔幻現實主義)에 기대어 있던 전위(先鋒) 작가 위화가 루쉰식 현실주의 입지에서 통찰과 상상의 세계를 안아낼 뿐만 아니라 그리스·로마 신화와 중국의 신화 전설을 동일한 지평에 놓고 인류의 문학적 상상력의 자산으로 삼아 자유로이 넘나들며 하늘의 세계와 인간의 변신과 환생을 흥미진진하게 풀어나가는 모습에 100여명의 청중들은 강하게 흡인되어갔다. 그런데 그 강력한 교감의 자장 한 가운데에서 어떤 비상(飛翔)을 감지했다면 나의 성급한 속단일까.

위화는 중국식 사회주의의 역사적 실패로 인한 팽배한 허무주의와 서구적 근대를 추수하기에 급급한 세기말의 중국에서 전 사회가 절망과 욕망이 변주되는 긴 터널 속을 통과하는 가운데 어렵사리 체득해낸 혜안 같은 것을 언뜻언뜻 비춰보였다. 물론 그 속에서 어떤 탈주를 꿈꾸는 간계 같은 것을 읽어낼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가 맞뚫림 혹은 회통의 가능성을 보여내고 있다는 것이다. 역사와 현실의 한 단면에 스며들어 해체를 일삼거나(포스트모더니즘) 잠입적 관주(신사실주의)가 아니라 그 시공간의 연관을 관계의 미학으로 터득해내고 있으며 새로운 관계를 상상하는 방법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비단 위화 한 개인의 성장이거나 위화한테서만 확인되는 것은 아니다. 20세기를 넘어서면서 첨예한 문제 인식들을 담담하게 표출해내 온 일련의 중국문학 작품 속에서 이미 감지된 바 있기 때문이다. 그 한복판에 위화가 서있는 것이고, 위화를 비롯한 중국 작가들은 각기 나름의 입지를 구축하며 길을 찾아나서고 있는 와중으로 보아야 하는 것이다. 위화는 세계적인 작가로 자신이 거론되는 것은 중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세계적 관심에서 비롯되는 것이지, 중국 문학 혹은 자신의 문학적 기량 때문이 아니라고 한국 작가들과 문학에 위로의 말을 잊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의 중국 문학이 중국과 세계에 자기존재감을 나름의 관계성 속에서 드러내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라 하겠다.

1997년 그의 ‘살아간다는 것’을 처음 대했을 때의 어떤 진감(震감)을 한국의 많은 독자들은 잊지 못할 것이다. 위화는 이후 ‘허삼관매혈기’에서 중국적 삶의 곤혹과 미망, 그러나 그 관계성의 미학이 펼치는 인간적 진경을 유감없이 펼쳐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러한 위화의 문학세계 속으로 속절없이 빨려 들어갔다. 이문구 선생조차 위화의 예리한 역사통찰과 그 냉혹한 삶의 도정을 넉넉하게 풀어내는 위화의 넉살에 매료되었음을 숨기지 않았던 것이다. 위화는 자신이 문학체험 속에서 겪었던 기상천외한 여정들, 그것은 개인적인 지극히 사사로운 일일 수 있지만, 그것이 한 시대의 형상임을 믿는다.

그의 글쓰기는 한 개인 혹은 가족 혹은 주변 인물들의 무수한 움직거림으로 가득차 있다. 그의 소설세계는 개인적 삶의 여정과 역사와의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운명적 관계로 연이어져 있다. 위화는 복수가 아니라 ‘복원(復原)의 가능성’을 믿는다. 그의 작품 속에는 개인적 삶의 여정이 거대한 역사와의 대면 속에서 끈질기게 운명적 관계를 이어내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역사적 현실과는 짐짓 무관한 듯한 단편 단편의 무수한 숙명적 삶들이 장편의 주변에 직조되어 있다.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에 끊임없이 휩쓸리면서도 무심하기 짝이 없는 처세적 ‘살이’ 혹은 ‘살아내기’, 그러나 위화의 장편들은 대다수 중국민의 보편적 삶에서 단 한 치도 떨어져 있지 않다. 그 토해낸 희로애락의 ‘중절(中節)’-‘화(和)’, 그것을 언제가 나는 ‘화’의 미학으로 갈파한 바 있다.(‘화(和)의 두 양상-최인석과 위화’, ‘중국현대문학’, 2000)

많은 한국의 작가들과 비평가는 위화를 통해 중국 문학과 현실적 교감을 해오고 있으며(이번 방문 과정에 민족문학작가회의에서 간담회의 열기 또한 그것을 방증한다), 중국 관련 연구자나 중국 관련 학과 학생들의 경우 위화의 작품을 통해 중국 현대사의 흐름을 이해하는 것은 이미 자연스러운 경로가 되었다. 위화의 강연 소식에 한달음에 달려온 한국위화소설동호회 회원들의 성원에 위화 역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거니와 한국에는 이미 많은 위화의 독자층이 광범위하게 형성되어 있다.

그러한 문화 월경 혹은 팬덤 현상을 통해 우리는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의 소비 혹은 동아시아에서의 한류의 소비와는 다른 의미를 포착해낼 수 있다. 다름 아닌 정통문학작품을 통해 한국과 중국 간에 상호 이해와 소통의 통로가 조금씩 열리고 있다는 것이다. 위화 또한 한국 작가들과의 만남으로부터 새로운 시야가 열렸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김정환과 공지영, 두 시인과 소설가의 만남. 그들은 위화의 무정부주의 성향과 문제의 예각화가 아니라 반복적 서사를 통한 체념의 미학의 문제를 지적했고, 위화는 그 비판 지점을 아프게 인정한 바 있다.

근 10년 위화는 산문 이외 새로운 소설을 쓰지 못했다. 그런데 새로운 작품을 생산하기 위한 산통의 시간은 비단 위화만의 긴장과 이완이 교차하는 곤경의 그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중국 문학은 부단한 자기 전화를 통해 격동하는 중국의 현실과 대면하여 그 혼돈의 토양에 굳건히 뿌리 내리고 둔중한 흙의 무게를 비수처럼 뚫고 싹을 틔울 수 있는 적응과 절합의 기간을 절실히 요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위화는 ‘살아간다는 것’의 서문에서 속마음(內心)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운명과의 우정을 말하고 싶었다고 토로했다. 위화가 체념의 내재화를 통해 살아간다는 것 자체의 아름다움과 환희의 세계를 펼쳐보임으로 인해 세계와 아시아의 작가들과 독자로 마주한 사람들이 서로의 내심을 토로하는 하나의 방법을 찾았다고 하면 과도한 표현일지 모르겠다. 위화는 ‘전쟁 아시아’를 ‘평상 아시아’로 복원하고 싶었던 것일까.

최근의 중국 문학의 흐름을 물으니 위화가 웃으면서 말했다. 시장통에서 야단법석이라고. 그는 시장 아시아와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대에 문학과 삶이 동시에 사는 법을 이미 터득하고 있는 것일까. 새 장편소설 ‘형제’에 대해 위화는 한 사회를 살아가는 개개인이 그 사회에 대해 가져야 할 책임의식의 문제를 제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백원담|성공회대 교수·중어중국학과)

07. 06. 06.

P.S. 찾아보니 2년전 오마이뉴스의 해외동향 기사에 위화의 <형제>출간과 함께 중국에서 '본격소설' 바람이 불고 있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그 '본격문학'이 이번에 대거 '수입'되는 게 아닌가 한다(우리한테 없거나 모자라는 물건을 들여오는 게 수입이다). 한국의 문학시장이 어느새 일본과 중국 문학의 각축장이 되어가나 보다...   

오마이뉴스(05. 11. 20) 중국, 하이틴 로맨스 시대 물러가나

 

▲ 위화의 신작 형제의 표지
"사람은 살아가는 것을 위해서 살아가지, 살아가는 것 이외의 그 어떠한 것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내전과 문화대혁명 등 중국의 근현대사를 배경으로, 그야말로 '살아가는 것'의 눈물겨움을 보여주는 소설 <살아간다는 것(活着)>의 맨 처음 문장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부유한 지주의 아들로 태어난 '푸구이(富貴)'가 내전과 혁명의 소용돌이에 휩싸이면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삶을 살아가야 상황을 그린 소설이다. 이 작품은 1994년 장이모우 감독이 영화화해 <인생>이라는 이름으로 칸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살아간다는 것>의 작가 위화(45, 余華)는 <허삼관 매혈기> <가랑비 속의 외침> 등으로 한국 독자들에게도 익숙한 중국의 현대 소설가다. 그러나 최근 10여 년 동안 새 작품을 발표하지 않았던 위화는 지난 8월 오랜 침묵을 깨고 신작 <형제(兄弟)>를 발표했다.

중국 출판계에 부는 본격 소설 바람

중국의 대형 인터넷서점인 주오위에(www.joyo.com)의 10월 베스트셀러 목록은 이전과 사뭇 달랐다. 인터넷 연애소설과 실용서 일색이던 베스트셀러 목록에 위화의 <형제>가 2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한 것(1위는 <해리 포터와 혼혈왕자>). 또 본격문학은 아니지만 문학적 향취가 깊은 <토템 늑대(狼圖騰)>가 10위에, 그리고 위화의 <살아간다는 것>이 14위에 올랐다. 이밖에도 <장아이링 전집(張愛玲典藏全集)>이 22위, 지아핑아오의 <천콩(秦腔)>이 45위로 베스트셀러 50위 안에 이름을 올렸다.

▲ 인터넷문학의 대표작가 궈징밍의 1995년부터 2005년까지 표지.
이처럼 베스트셀러 목록 상위에 문학서가 자리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올 상반기만 해도 새로운 본격 문학 작품을 찾는 것조차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 해 중국 출판계 최대 화두는 한국의 인터넷 소설가 '귀여니'와 중국의 청년 작가 '궈징밍'이었다. 중국 혁명과 문화대혁명을 거치며 힘을 잃은 중국 문학은 근래 들어 인터넷이라는 복병과 마주쳐야 했다. 물론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인터넷을 통해 수준 낮은 글들이 유포됐고 지난 수년 동안 중국 문학은 온통 '하이틴 로맨스' 일색이었다.

오랫동안 상업화 바람에 시달린 중국 문학계에 '본격 소설' 바람이 분 데는 앞서 말한 위화와 한국 독자들에게 친숙하진 않지만 '중국의 김지하'로 불리는 <천콩>의 지아핑아오(賈平凹)의 덕이 크다. 그 중에서도 십 년의 침묵을 깨고 활동을 재개한 위화는 단연 돋보인다.

10년 침묵 깬 위화, 특유의 페이소스로 선전

지난 8월 1일 출간된 위화의 신작 <형제>는 상편 18만 자, 하편 20만 자의 방대한 작품으로 상편에서는 문화대혁명을, 하편에서는 그 이후를 다루고 있다. 그의 전작 <허삼관 매혈기>가 문화대혁명을 희화적으로 다뤘다면, <형제>는 리얼리즘적 접근이 두드러진다. 하지만 현대성이 갖고 있는 기괴성이나 전기성(傳奇性)도 두루 갖추고 있어 위화만의 느낌이 강하다.

<형제>는 본격문학이지만 위화 특유의 페이소스가 담겨 있다. 소설은 여자들의 엉덩이(사실은 더 은밀한 부분)를 보려다 화장실에 빠져 죽은 아버지를 둔 이광토우(李光頭)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아버지의 내력을 알지는 못했지만 그 역시 여자의 엉덩이를 훔쳐보다가 경찰서에 잡혀 온다. 그의 어머니는 동네 사람들에게 얼굴을 들지 못하겠다며 창피해 했지만 그가 본 것은 단순한 여자의 엉덩이가 아니라 동네의 모든 남자들이 흠모해 마지않는 린홍(林紅)의 것이었다. 광토우는 남들에게 자신이 본 것을 설명해 주면서 이것저것 얻어먹으면서 우주선을 타고 우주여행을 꿈꿀 만큼 갑부가 된다.

이광토우와 그와 복잡한 관계에 있는 동생 쑹강(宋鋼)의 인생역정을 재미있게 풀어낸 이 소설은 금세 중국독자들을 사로잡았다. 문혁 이후에 부자가 되는 길을 꿈꾸는 많은 이들의 삶을 이광토우와 동생 쑹강을 통해 보여줬기 때문이다

본격문학 부활 알린 '중국의 김지하' 지아핑아오

▲ 지아핑아오의 새 소설 <첸콩>의 표지
하지만 위화에 앞서 본격 문학의 부활을 알린 사람은 지아핑아오였다. 한국 문학계로 치면 '좀 과격한 이문구'나 '김지하'로 불릴 만한 지아핑아오의 대표작은 단연 <폐도>(廢都, 1993)다. 1994년 한국에도 번역 출간되기도 한 <폐도>는 '중국판 오적(五賊)'이라고 할 만하다.

"공무원이란 자들은 저 높은 곳에서 호의호식하고, 정경유착 모리배들은 아무리 투기를 해도 뒤탈 없고요, 경영자란 자들은 주색잡기를 해도 회사 돈으로 긁고요... 일류 작가는 정계에 붙어 고관대작의 참모 노릇을 하고요, 이류 작가는 사장님께 붙어 기업에 광고나 하고요, 삼류 작가는 뒷골목 출판사에 붙어 음란서적이나 집필하고요, 사류작가 너는 밥풀도 못 붙어 엉덩짝이나 홀랑 벗고 자위나 해라"- <폐도>의 한 대목

1990년대 중국에서 출간되기에는 너무 파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던 <폐도>는 아니나 다를까 초판 이후 중국 정부에 의해 판매금지 조치 당한다. 하지만 '현대판 <금병매>'로 불리며 50여 종의 불법복제 서적으로 출간돼 1500만 부가 팔리는 신화를 낳았다. 이후 그는 <부조(浮躁)> <고노장(高老庄)> <오십대화(五十大話)> 등을 출간하면 나름대로 작품성을 인정받았지만 지정 자신의 출세작은 앞에 두지 못 했다.

그러던 올해 초, 중국 정부는 <폐도>의 정간을 공식 해제했다. 이로 인해 지아핑아오의 문학 활동도 서서히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올초 중국 최대 포털사이트인 '신랑(www.sina.com)'의 대담 프로그램에 출연해 자신의 입장을 피력하기도 한 그는 4월에 <천콩>을 출판했다.

<천콩>은 1952년생인 그가 자신의 고향이자 창작 활동의 원천인 샨시성 샹루오(商洛)와 샹루오의 이화지에(棣花街)를 배경으로 자본주의에 물들어 가는 중국 농촌의 변화를 담아낸 작품이다. 본격문학인 데다가 농촌 문학이어서 독자들에게 쉽게 다가설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지만 지금까지 베스트셀러 목록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면서 인기를 끌고 있다.

큰 별 '바진' 영면, 중국 본격문학 부활할까

▲ 1930년대의 작가 바진 모습
지난 10월 17일 중국 현대 문학의 큰 별 바진(巴金, 본명 리페이간(李芾甘), 1904~2005)이 영면했다. 5·4운동에 감화, 지식혁명운동에 참여했던 그는 러시아의 무정부주의자 바쿠닌과 크로포트킨의 앞 자를 따 '바진'으로 개명할 만큼 혁명에 심취했다. 또 <게원>(憩園, 1944) <한야>(寒夜, 1946) 등을 발표하면서도 항일운동에 참여했으며 한국전쟁 때는 중공군 총사령관 펑더화이(彭德懷)의 사령원으로 북한을 드나들기도 했다.

하지만 중국 현대사의 풍랑만큼 그의 작품 활동은 평탄치 않았다. 문화대혁명기에는 '니우꾸이(牛鬼)'라는 딱지를 붙이고 짐승 같은 대접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그는 중국작가협회 주석, 정치협상회의 부주석을 역임하는 등 재기에 성공했고 중화권에서는 노벨문학상 수상자 후보의 맨 처음에 이름을 올릴 만큼 문학적 성취도 이루었다. 특히 91세였던 1995년 <신은 없다(沒有神)>를 발표해 젊은 후배들을 부끄럽게 하기도 했다.

그러나 바진의 말년은 그리 희망적이지 않았다. 중국 본격문학은 독자의 외면을 받았고 싸구려 인터넷 연애 소설들이 판칠 뿐이었다. 그나마 죽음 직전에 위화와 지아핑아오가 활동을 재개하고 독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는 것을 목도한 것이 위안이라면 위안일까.

명부를 향하는 바진의 길을 안내해 줄 중국 본격문학의 부활은 과연 일시적인 현상일까 아니면 인터넷에 밀렸던 본격문학의 르네상스를 말하는 것일까.

그러나 지하의 바진이 안심하기에는 다소 일러 보인다. 위화나 지아핑아오 같이 대중적인 지명도도 있고, 작품성도 담보된 작가 층이 그다지 두텁지 않기 때문이다. 이 두 작가가 기존 중국 문학계의 흐름을 완전히 뒤바꾸기에는 지원군이 부족한 실정이다. 실제로 11월부터 귀여니의 신작 <아웃사이더>가 중국에서 출간되어 인기몰이를 하고 있고 궈징밍 같은 작가들도 굳건히 자리하고 있다. 타계한 바진의 뒤를 이어 중국 문학의 르네상스를 위해 불을 지피기 시작한 위화와 지아핑아오. 이들이 어떤 문학적 성과를 낳을지 지켜볼 일이다.(조창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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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2007-06-07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교 때 잠시 '사람아 아 사람아' 연작이 나오면서 중국소설 빤짝 했던 것 같아요.
위화의 소설은 참 재밌게 읽었는데... 허삼관 매혈기 피 철철 넘치는 유머와 달리
단편들은 완전 엽기인지라 좀 놀랬었죠.
여기 언급된 다른 소설들, 읽어보고 싶네요.

로쟈 2007-06-07 1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화의 책들은 대표작들을 갖고 있는데, 아직 못 읽어봤습니다. 장이모우의 <인생>의 원작이라니까 대번에 감은 그려지지만... <형제>가 곧 나온다니까 기대되네요. 일본소설들은 '삶'의 냄새가 너무 없어서...
 

계간 문학동네 여름호에 젊은 작가들의 좌담이 실려 눈길을 끄는데, 컬처뉴스에서 리뷰기사를 옮겨온다. 한국문학의 위기 담론을 엄살로 치부하는 태도에서 '젊은 작가들'의 자신감을 읽을 수 있다. 객관적 사태와 주관적 결단의 문제는 구별되어야 한다고 보지만...

 

컬처뉴스(07. 06. 05) 한국문학 위기? 엄살 떨지 마세요

한국문학은 ‘위기’만 수년째다. 도대체 위기의 끝은 어디쯤에 있는 것인지, 그 끝이 오기는 올 것인지 위기설은 반복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위기’와 ‘종언’의 한 복판에서 작가로 태어난 이들은 과연 이 ‘위기’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이번 여름호 『문학동네』(통권51호) 의 좌담 ‘젊은 작가들이 말하는 우리시대의 문학’에 초청된 작가(이기호, 정이현, 박민규, 김애란)들은 이러한 ‘문학의 위기설’에 대해 모두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오히려 “한국문학은 번성한 적도 없었고, 이제 진화해나가는 단계”(박민규)이니 “엄살떨지 마세요”(이기호)라고 말한다.

좌담의 사회자로 나선 신형철 평론가가 첫 번째 질문으로 소위 ‘한국소설의 최첨단’(『문학동네』인용)이라 할 만한 네 명의 작가에게 “시장의 위기를 포함해 여러 층위에서 한국소설의 위기가 제기되고 있는데, 도대체 위기라는 것을 실감하고 계시기는 합니까?”라고 위기설에 대해 물었던 것이다.

이기호 작가는 “보기에 따라서는 작가들의 엄살인 것 같아요. 뻔히 알고 들어왔고, 누가 작가가 돼서 우리 생계를 책임져라 하면서 등 떠미는 사람도 없었고, 다들 뻔히 알고 들어온 건데 우리가 뭐……다들 살 만하던데……”라며 “근데 ‘위기’가 아니었던 적이 있었던 가요?”라고 오히려 반문했다.
 
박민규 작가는 “‘한국소설의 위기’하니까 마치 ‘로마제국의 위기’ 같은 느낌인데요. 개폼 잡지 마세요”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반만년 역사 하면서 마치 반만년 동안 소설을 써온 것처럼 위기 하는데 실은 이제 우리 고작 육십년 쓴 거예요. 우리 백년은 더 써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또 최근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일본문학과 관련해 “지금 일본소설이 그만큼 많이 팔리는 이유는 일본문학이 그만큼 앞서 있기 때문”이라며 “민족의 우수성 그딴 걸 논하는 게 아니고 그 사람들 우리보다 훨씬 오랫동안 써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세계화에 이 정도 출혈도 없을 거라 생각했다면 차라리 돌고래에게 문단을 맡기세요”라고 말한다.  

정이현 작가는 “문학의 위기를 진달할 때 다양성의 측면을 살펴봐야 한다”고 운을 뗐다. 그는 “지금 우리 문학이 다양하지 않거나 작가들이 다들 똑같은 얘기만 쓰고 있다면 분명 위기라고 해도 되지만 지금 우리 문단은 그런 것 같지 않아요. 여러 작가들이 각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활발하게 작업을 하고 있고, 자신만의 길을 찾으려는 모색을 하고 있어요”라며 오히려 ‘한국문학의 가능성’에 대해 말했다. 

김애란 작가도 일본문학과 관련해 “일본문학은 이상하게 한국이라는 대상의 앞면에 생기는 그림자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걸 비추는 태양이 근대든 아니든, 어쨌든 우리가 밟고 있는 역사적인 과정을 반 박자, 한 박자 먼저 겪었고, 그렇기 때문에 이 시대가 어떤 감수성을 요구할 때, 그것을 먼저 얘기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또 한편으로 “단순한 한일 구분이 아니라 일본에서도 좋은 소설과 나쁜 소설이 있고, 한국에서도 그렇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면서 “위기라는 말에 상품성도 큰 기준이 되는 것 같은데 다른 태도까지 혐의를 둔다면 적어도 진정성에 대해서는 동료, 선배 작가들이 떳떳함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야기는 ‘한국문학의 위기’에서 ‘근대문학의 위기’를 넘어 자연스럽게 ‘2000년대 문학’으로 이어졌다. 신형철 평론가는 “근대문학의 종언과 관련해 주로 법정에 끌려나오는 것은 소위 ‘2000년대 문학’인데, 2000년대 문학이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었다.
 
박민규는 “앞서 ‘한국문학’이란 허상에 대해 얘기했던 것처럼 ‘2000년대 문학’ 역시 하나의 허상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논쟁은 좋은 것이고, 발전하는 것이고, 또 그런 역할을 하는 분들이 평론가이고, 아주 중요한 거라 생각하지만 창작자로서 전혀 관심 없다”고 말하며 “평론과 창작은 전혀 다른 분야, 다른 세계”라는 결론을 내렸다.

정이현은 “지금 젊은 작가들이란 고작 책 두어 권 냈을 뿐이며 아직도 계속 변화하고 있고 자기 세계를 찾아가는 길 위에 있는 이들”이라며 “논쟁 자체는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작가와 작품에 대해 조금만 더 선입견 없이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000년대 작가군에서 주목받고 있는 김애란은 “그런 말(세대구분)들이 작가에게 특징을 부여해주기도 하지만 반대로 한정짓게 만들기도 한다”며 “개인적인 자질보다 환경 자체가 난쟁이가 될 수밖에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같은 작가들의 논의에 대해 신형철 평론가는 “아까 박민규 씨가 말한 것처럼 작가의 일이 있고 비평가의 일이 있는 건데, 비평가들은 동일하게 꾸준히 지속되는 어떤 것보다는 작지만 차이가 발생하는 부분을 주목할 수밖에 없다”면서 “그래야 새로운 담론이 가능해지고 새로운 의제가 생산된다”고 말했다.

또 평론가들의 문단의 ‘지도(地圖) 그리기’와 관련해 “어떤 것을 배제하기 위해서 지도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판을 전체적으로 봐야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고민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물론 전체를 보는 눈과 개별 작가를 섬세하게 읽어내는 눈을 함께 떠야 하는 건데 후자는 생략하고 전자에만 몰두하니 더러 작가들의 비판을 받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번 좌담에는 딱히 결론이랄 것이 없었다. 평단에서 걱정스럽게 보고 있는 ‘한국문학’의 ‘지금’에 대해 작가들은 오히려 ‘긍정’하고 있었고, 자신들을 포함해 그 가능성들을 기대하고 있었다. 박민규는 그 기대를 이렇게 말했다.   

인류의 역사를 길게 본다면 결국 문학은 언젠가 사라질 거예요. 인간은 분명 어떤 필요에 의해 글자를 만들고 문학을 만들었습니다. 저는 문학이 인간에게 있어 진화의 도구라고 생각해요. 문학이 사라진다는 건, 그건 어마어마하게 황홀한 일이죠. 왜? 그건 문학이 필요 없어진 거니깐……. 문학은 차차 풍성해지고 그럼으로써 차차 간편해지고, 흡수될 것입니다. 인간에게, 말이죠.” (위지혜 기자) 

07. 06. 06.

P.S. 좌담 내용을 아직 읽어보진 않았지만, 수줍음을 많이 타는 것으로 알려진 작가 박민규씨가 '오늘의 토크왕'이 될 만한 멘트들을 날린 듯하다. '상품'으로 재작년 <카스테라> 출간 즈음에 나온 인물 기사를 하나 옮겨놓는다. 딱 이맘때 나온 기사이군.

한겨레(05. 06. 09) 박민규 전복적 상상력의 문제작가

박민규는 ‘문제 작가’다. 그의 장편소설 <핑퐁>을 연재하기 시작한 계간지 <창작과 비평> 여름호의 광고는 그를 그렇게 규정한다. 광고인 만큼 별도의 설명은 없었지만, 이즈음의 한국 소설에 어느 정도 익숙한 독자라면 그런 규정에 특별히 토를 달지는 않을 것이다. 그가 ‘문제 작가’이기 때문이다.

등장부터가 문제적이었다. 2003년 여름, 그는 ‘문학동네 신인작가상’에 경장편 <지구영웅전설>이, 한겨레문학상에 장편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 한꺼번에 당선되면서 화려하게 등단했다. 미국 대중문화의 영웅들이 대거 출현하는 <지구영웅전설>이나, ‘패배의 화신’과도 같았던 초창기 한국 프로야구팀 삼미 슈퍼스타즈가 회고되는 <…마지막 팬클럽>이나 발칙한 발상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대번에 21세기를 여는 한국 소설의 새로운 가능성으로 주목받았다.

소설과는 무관한 얘기일 수 있겠지만, 긴 생머리에 검은 선글라스가 ‘트레이드 마크’인 그의 외양 역시 눈길을 끌었다. 90년대 중반 귀고리를 한 차림으로 문단에 ‘충격’을 주었던 김영하의 경우를 떠오르게도 했다. 게다가 그는 밴드의 로커로 활동하는 한편 이종격투기와 프로레슬링 따위를 즐긴다고도 알려졌다.

2004년 여름호 계간 <대산문화>에 그는 <좃까라 마이싱이다!>라는 글을 발표했다. 에세이였다. 같은 잡지 봄호에서 선배 문인들이 그 또래 젊은 작가들의 소설에 대한 우려 섞인 조언을 했던 데 대한 ‘대답’이었다. 도무지 선배에 대한 예의라고는 모르는 듯 무엄한 제목부터가 작지않은 파문을 일으켰다. 본문 역시 결코 예의바르다고는 하기 어려웠으니, 가령 이러했다. 잡지 편집자가 제시한 네 개의 질문 중 뒤의 두 질문에 대해 답한 부분이다.

“③독자나 평론가들이 자신의 소설에 대해 오해, 오독하고 있는 부분은 없는지? 답: 누구에게나, 꼴린 대로 생각할 권리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④자신을 비롯한 젊은 작가들의 소설에 대한 선배 문인들의 평가(<대산문화> 2004년 봄호)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는지? 답: 수고하셨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나도, 열심히 하겠다.”

박민규의 이런 거침없는 발언은 작가로서 나름의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이었을 터이다. 같은 글에서 그는 “쓰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다. 시간이, 없다”고도 밝혔다. 아닌 게 아니라 등단 이후 그는 부지런히 쓰고 또 썼다. 일단의 소설가와 평론가들을 대상으로 한 어떤 조사에서는 그의 단편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가 지난해의 최고 소설로 뽑히기도 했다. 소설집 <카스테라>(문학동네)는 2년 전의 화려한 등단 이후 박민규가 내놓는 첫 책이다.

책에는 10개의 단편이 묶였다. 지미 헨드릭스의 데뷔 앨범 <너 해봤니?(Are You Experienced?)>와 같은 열 개의 트랙으로 구성되었노라고 그는 설명했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박민규 소설의 주인공들은 대체로 백수거나 ‘알바’거나 인턴 사원이거나 대학생처럼 유예된 신분의 사람들이다. 유예되었다는 건 다른 말로 경계선상에 놓였다고 할 수도 있겠는데, 그들은 그러니까 순수와 미경험의 세계에서 경험과 타락의 세계로 옮겨 가는 도정에 있다.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편의점 점원과 지하철 푸시맨 같은 아르바이트에 종사해야 하는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의 고교생, 아버지의 부도 여파로 열악한 고시원에 기거하는 <갑을고시원 체류기>의 대학생, 학교 근처 원룸에서 요란한 소음을 내는 냉장고와 ‘동거’해야 했던 <카스테라>의 대학생, 전문대를 졸업한 뒤 일흔세 곳에 이력서를 넣었어도 끝내 취직에 실패한 뒤 한적한 유원지를 임시 직장으로 택한 <아, 하세요 펠리컨>의 주인공, ‘인턴’ 사원의 꼬리표를 떼기 위해서라면 동성인 직장 상사의 성 노리개 노릇도 마다 않는 <고마워, 과연 너구리야>의 주인공 등이 한결같이 그러하다.

안정된 직장과 충분한 보수를 확보하지 못한 채 부유하는 젊은이들의 면모는 ‘청년실업’이라는 말로 요약되는 당대 현실의 정직한 반영으로 볼 수 있겠다. 그들이 순수의 세계에서 경험의 세계로 입문하는 과정은 세계의 냉혹성과 자신의 열악한 상황에 대한 쓰라린 확인을 수반한다. “나이 마흔다섯에 시간당 삼천오백원”(72쪽)이라는 ‘아버지의 산수’를 확인한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의 주인공은 “이상하게 그날 이후(…)조용한 소년이 되어버렸다.”(72쪽) 비슷한 상황에서 <갑을고시원 체류기>의 대학생 역시 “갑자기 어른이 된 느낌이었고, 왠지 이 세계에 대해 조금은 알게 되었다는 기분이, 들었다.”(281쪽)

그들이 알게 된 세계란 어떤 것이었나. 한마디로 “세상은 엉망이다.”(47쪽) “인간이 너구리로 변하는 세상”(52쪽)이니 말 다 한 것 아닌가. 너구리로 변하다니? 이런 말이다: 너구리가 주인공인 게임이 있다. ‘스테이지 23’까지는 문제 없이 나아간다. 바로 그곳, 스테이지 23에서 막힌다. 대부분의 우리에게 그곳에서 더 이상 나아가기란 불가능하다. 그런데 스테이지 23에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자들은 죄다 너구리가 되어 지하로 내려가야 한다. 그러니 ‘스테이지 23’이야말로 “이 세상의 실제 이름”(49쪽)이라는 말이다. 스테이지 23으로서의 세상의 본질을 알게 된 인턴 사원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사회란 무서운 것이구나.”(54쪽) 푸시맨 소년은 같은 상황을 이렇게도 표현한다: “세상은 하나의 열차다. 한 량의 정원은 180명, 그러나 실은 400명이 타야만 한다”(84쪽).

순수에서 경험의 문턱을 넘어선 입사자들은 비로소 세상의 무서운 속성을 알아차렸다. 그렇다면 그들은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곳에서…왜 고작 이 따위로 사는 걸까”(87쪽) 또는 “왜, 이 열차는/삶은, 세상은, 언제나 흔들리는가”(91쪽)와 같은 회의와 반성의 순간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그것이 모종의 적극적 실천으로 나아가지는 못한다는 데에 박민규 소설의 문제적 성격이 있다. 그들은 대부분 “그것은 슬픈 일도 기쁜 일도 아니었으며, 누구를 원망할 성질의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72쪽)고 짐짓 ‘쿨한’ 태도를 취하며, “열심히 사는 거 외엔 달리 방법이 없는 게 아닌가”(88쪽) 체념하고 물러 앉는다. 요는 “세계의 거대한 톱니”(177쪽)를 벗어난 ‘바깥’이란 없다는 것이다.

박민규 소설에 자주 출몰하는 외계인과 우주선, 괴물 같은 동물들의 환상은 그가 세계를 상대로 한 싸움을 주관적 회피와 위안으로 치환하는 과정에서 비롯된다. 예컨대 왕년의 ‘운동권’ 출신으로 지금은 농촌 공동체 운동에 헌신하고 있는 <코리언 스텐더즈>(‘스탠더즈’가 맞는 표기 아닐까?)의 주인공 ‘기하 형’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외계인과 유에프오의 습격 때문에 농사를 망치며, <대왕오징어의 기습>에는 “모두가 무방비인 채 그들의 습격을 받아야 했다”(232쪽)는 표현이 나온다. 유에프오와 대왕오징어를 우리는 어찌 해 볼 도리가 없다. 그런데 이것은 혹시 ‘패배주의’가 아닐까.

박민규 소설의 문제적 성격을 이렇게 내용의 측면에 국한해서 설명하는 것으로는 불충분하다. 대부분의 좋은 소설들이 그러하듯 박민규의 소설에서도 형식적 특성이 내용과 긴밀히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방법적 갱신을 향한 모색과 시도는 박민규 소설에서 매우 성공적인 결과를 낳는다(*그것이 '성공적'인가에 대해서 나는 유보적이다). 우선, 그는 문단별로 한 행씩을 띄우는 인터넷 글쓰기 방식을 일관되게 사용한다. 때로는 한 문장이나 구절, 하나의 단어가 독립적으로 하나의 ‘연(聯)’을 이루기도 한다. 실제로 박민규 소설의 어떤 대목은 내용에서나 형식에서나 1980년대 장정일의 시를 연상시키기도 한다(22쪽, 34~5쪽, 304쪽 등). 인터넷 카페의 ‘펌글’이나 잡다한 정보를 통째로 들어다 놓은 듯한 부분도 드물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이런 형식적 특성은 가독성을 높인다는 점에서는 일단 긍정적이다. 컴퓨터 모니터 상의 글 읽기에 익숙한 젊은 독자들에게 박민규 소설은 종이 텍스트라는 이질감을 최소화하는 효과를 지닌다.

반면, 수시로 한 행씩을 띄우고 쉼표를 박아 넣는 과정에 작동하는 단절과 비약의 기제는 논리적이며 유기적인 서사를 불가능케 한다는 문제점을 낳는다. 박민규 소설의 주인공들이 상황에 정면으로 맞서지 못하고 환상 속으로 도피하곤 하는 버릇이 이런 형식적 특성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다른 일자리보다 보수가 높은 푸시맨 아르바이트를 소개 받은 소년이 “내 주변에 그런 고부가가치 산업이 존재하고 있었다니. 제의를 받은 사실만으로도, 갑자기 확 고도산업사회의 일원으로 성장한 느낌이었다”(71쪽)고 감격한다거나 유원지에서 하릴없는 청춘의 나날을 보내는 젊은이가 “간혹 외로운 밤이면, 심야전기처럼 저렴한 내 청춘이 흐린 전구처럼 못내 밤을 밝히기도 했다”(129쪽)고 토로할 때 박민규의 유머러스한 문장은 짙은 페이소스를 수반하며 독자의 가슴에 아련히 스며든다.

그러나 작가가 즐겨 구사하는 ‘곁가지의 글쓰기’와 몽상의 자가발전은 때로 통제불능의 상태로 빠져들면서 의미 없는 말의 유희로 떨어지기도 한다. ‘뭐랄까’라는 허두가 그의 구어투 글쓰기를 특징짓는 요소라면, ‘모쪼록’이라는 부사는 아무래도 문맥에 안 어울리게 쓰인 게 아닌가 싶다(69쪽, 184쪽, 263쪽, 287쪽 등). “그리고 이 년 전의 일이, 즉 LA의 8번가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나 자신을 볼 수 있었다”(253쪽)거나 “뭔가 몸이 붕 뜬 느낌이었고, 나는 정신없이 매트를 향해 머리를 추락했다”(260쪽)와 같은 비문과 어색한 문장도 정비가 필요해 보인다.

박민규 소설에 대한 기대 8, 불만 2의 이 글을 그가 읽는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짐작되지 않는 건 아니다: 수고하셨다. 그리고, 좃까라 마이싱이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한국문학의 현실에 대한 엄살과 푸념의 담론들에 대해서 '젊은' 작가들은 '좃까라 마이싱이다!'라고 한방 먹일 수 있다. 대체로 '백수들'에겐 그럴 권리가 충분하며 그마저 없다면 세상은 더 '좃같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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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톰 2007-06-07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법적 갱신을 향한 모색과 시도는 박민규 소설에서 매우 성공적인 결과를 낳는다(*그것이 '성공적'인가에 대해서 나는 유보적이다). 에서의 로쟈님의 구체적인 의견이 궁금합니다. 언젠가 페이퍼로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로쟈 2007-06-07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민규 소설의 단점들은 많이들 지적하는 것이고(최재봉 기자도 기사에서 지적하고 있고요) 제가 특출한 이견을 갖고 있는 건 아닙니다. 결말도 그렇지만, "수시로 한 행씩을 띄우고 쉼표를 박아 넣는 과정에 작동하는 단절과 비약의 기제는 논리적이며 유기적인 서사를 불가능케 한다는 문제점" 등이 저도 거슬립니다. 백낙청 선생이 '시적'이란 얘기를 했는데(좋은 뉘앙스로), 저는 (부정적인 뉘상스로) 박민규 소설이 보다 시적이며 소설정신에는 좀 미달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며칠 유예됐지만 이 서재 또한 다른 곳으로 이사할 즈음이라 '다른 곳'이란 어구에 눈길이 갔다. 니콜 라피에르의 <다른 곳을 사유하자>(푸른숲, 2007)을 엊저녁 서점에서 보고 바로 손에 든 이유이다. 저자는 "다문화연구에 열정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프랑스의 여성 사회학자라고 한다. 하지만 책은 딱딱한 사회학과는 다소 무관해 보이며 내가 가끔씩 손에 드는 전형적인 '프랑스산 에세이'이다. "난이요 학이요 청초하고 몸맵시 날렵한 여인"이라고 정의되는 우리식 '수필'보다는 훨씬 길고 무겁지만 동시에 활달한 사변을 자랑하는 장르로서의 에세이.

'길을 내며'란 서문에서 저자가 인용하고 있는 것은 "우리는 항상 다른 곳을 사유한다"는 몽테뉴의 문장이다. <수상록>(이 책의 원제가 바로 '에세이'이다!)의 '기분전환에 대하여'란 장에 나온다고(국역본 <나는 무엇을 아는가>에 수록돼 있으며 발췌본 <수상록>에는 빠져 있다). 그 장의 요지는 이렇단다.

"슬픔을 그대로 표출하는 것은 무모하고 괴로울 뿐 아니라 정작 슬픔을 덜어내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보다는 비탄에 잠긴 마음을 살며시 다른 데로 돌리는 편이 낫다. 슬쩍 다른 화제를 꺼내 생각을 유도하라는 것이다. 여기서 1563년 절친한 친구 라 보에티가 사망한 후로 오랫동안 슬픔에 잠겨 있던 몽테뉴는 한 여자와 사랑에 빠지고, 학문과 여행에 더욱 몰두함으로써 고통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는 기분전환을 '영혼의 병을 치료하는 가장 일반적인 처방'이요, 강박관념과 고정관념과 치명적인 열정에서 빠져나오는 데 특효라고 말한다."(9-10쪽)

그에 대한 저자 라피에르의 촌평. "몽테뉴는 불행에서 해방되기를 갈구하는 금욕적인 인물과는 딴판이다. 그에게서는 침울한 면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는 그저 상황이 호전되기를 바라고, 살 사람은 어찌 됐든 살자는 주의다.(...) 몽테뉴는 사고와 감정의 유연성이 인간 조건에 있어서 일종의 행운이자 묘수라고 보았다. 그리고 이러한 유연성은 가능성을 열어준다." 그런 몽테뉴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존재를 그리지 않는다. 단지 그 행보를 그릴 뿐."

책은 그러한 몽테뉴적 정신으로 충전된 저자의 지식인 유람기처럼 보인다. 뒷표지에 실린 김용석 교수의 추천사에 따르면, "몸의 이동으로 '실천의 사유'와 '사유의 실천'이 가능했던 '학문적 떠돌이'들의 역사적 사례들을 세심하게 짚어간다." 표지를 보면 그런 '학문적 떠돌이'로 발터 벤야민도 다루어지는 모양이고(찾아보기를 보면 250명 이상의 지식인들이 이 책에서 언급되는 듯하다).

흔한 유행어로 하자면 '유목'이고 '탈주'고 하겠지만, 차이라면 이건 '앉아서 하는 유목'이 아니라 실제로 '움직이면서 하는 사유'의 궤적이다. 그리고 '정주하지 않는 지식인의 삶과 사유'을 다루면서 그 모델/전거를 들뢰즈의 철학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 몽테뉴의 에세이에서 찾는다는 것이 특징적이다(우리가 보기에 그렇다는 얘기다). 그 점이 마음에 든다(오늘 생일을 맞은 러시아 작가 푸슈킨 또한 몽테뉴주의자였다).  

이 여름의 초입에, 호젓한 해변에 가보는 것은 아직 엄두도 못낼 형편이지만 '멀리 떠나자!'라는 유혹만은, 기분전환으로의 초대만큼은 거부하고 싶지 않다(그게 고작 '서재2.0'인가에 대해선 생각해볼 문제이지만). 나는 무엇을 아는가를 알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떠나야 할 필요가 있다. 사유는 언제나 다른 곳에서 시작한다... 

07. 06. 06. 

P.S. 책은 요즘 보기 드물게 가독성이 좋다. 우리말이 깔끔하고 안정감이 있다. 옥에 티라면 역자도 토로한 바대로 학술용어나 고유명사에 관련된 것들이다. "특히 이 책의 경우 옮긴이를 곤혹스럽게 한 부분은 학술 언어, 특히 학자들이 만들어낸 신조어의 번역 문제였다.(...) 이 문제는 책이 출간된 이후에 독자들의 지적과 재번역의 가능성으로 열어두고자 한다."(316쪽)에 기대어 내가 읽은 서문에서 지적하자면, 22쪽에서 벤야민의 대작 <이행의 책 Passagen-Werks>은 음역해서 <파사젠-베르크>라고 하거나 국역본을 따라 <아케이드 프로젝트>(새물결)라고 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한나 아렌트의 남편은 '하인리히 불뤼커 Heinrich Blucher'는 그녀의 전기들에서 '하인리히 블뤼허'라고 표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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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주나무 2007-06-06 12:19   좋아요 0 | URL
기분전환에 대해서 처음 들은 것은 '파스칼의 팡세'였는데, 환기를 통해서만 사람은 조울증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고, 다소 체념적이기까지 한 사고를 보여주었어요. 파스칼이 몽테뉴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지만, 정작 몽테뉴는 읽어보지 못했네용~~

로쟈 2007-06-06 16:06   좋아요 0 | URL
몽테뉴의 <수상록>을 예전에 읽긴 했지만 대개 그렇듯이 발췌본이었고, 완역본은 나중에 구하게 됐지요. 기분전환이 자주 필요한 때인지라 가까이 두려고 합니다...

Joule 2007-06-07 01:01   좋아요 0 | URL
이 페이퍼를 읽고 저도 몽테뉴주의자 하기로 했어요. 인간을 그리지 않고 다만 그 궤적을 그릴 뿐이라는 말이 참 멋져요.

아, 그런데 '동서문화동판주식회사'라는 묘한 이름을 가진 저 출판사에서 나온 '몽테뉴 나는 무엇을 아는가'란 책을 들춰보신 적 있으세요? 음, 속에 편집이 어떻게 되어 있나 해서요. 서체가 12포인트 이상 된다거나 행간이 너무 넓직하다거나 가장자리에 테두리가 둘러쳐져 있다거나('빈 서판'처럼) 그러지만 않으면 되거든요. 사실 제가 원하는 건 아무 디자인도 하지 말아달라는 건데 어쩌다보니 그게 까칠한 것처럼 되어 버렸어요.

로쟈 2007-06-07 01:40   좋아요 0 | URL
제가 갖고 있는 건 구판인 <몽테뉴 인생에세이>입니다. 제목이 왜 바뀐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같은 책입니다. 한데, 전집을 원하신다면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습니다. 유일한 완역본인지라...

작은앵초꽃 2007-06-07 02:59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저 가운데에 있는 책이 유일한 '완역본'이라는 말씀이지요? 꼭 읽어보고 싶었던 책인데, 완역본 있는 줄을 아직도 모르고 있었네요. ^^;;;

Poissondavril 2007-06-07 17:18   좋아요 0 | URL
<몽테뉴~>는 본문에 아무 디자인 없고 글씨는 시원시원하지만 너무 크지는 않습니다(판형 자체가 커서 그보다 글씨가 더 작으면 아마 현기증이 날걸요...).
그리고 로쟈님, <다른 곳을~>에서 들뢰즈와 푸코의 유령이 (이상하게) 대중과 영미권 학자들에게 사랑을 받게 됐다고 곤혹스러워하는 대목을 재미있어하실 것 같네요. ^^

로쟈 2007-06-07 17:49   좋아요 0 | URL
<다른 곳을>을 벌써 읽어보셨군요. 앞부분의 번역이 깔끔하다는 인상을 받아서 저도 예감은 좋습니다. 언제 읽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Joule 2007-06-09 03:14   좋아요 0 | URL
ghdh, tlsdltldu wjdprp ajswj dudrhkddmf wnthtj!

이거 해독하시는 분에게 제가 한 천 원쯤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얼마 전에 우연히 도서관에 갔다가 발견한 고서에서 발견한 문구인데요. 사서는 라틴어라고 하더라구요. 무슨 말인지 너ㅡ무 궁금해서요.

전 히말라야어 정도가 되지 않을까 추측하는 중이에요.

로쟈 2007-06-09 13:32   좋아요 0 | URL
저는 음주 댓글로 추측하는 중입니다...

Joule 2007-06-09 16:17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안 그래도 오늘 일어나서 대략 10분 동안 부끄러워해주었답니다.



라벨이 너무 예쁘지 않나요. 선물로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