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뉴스에서 영화 리뷰 하나를 옮겨온다.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소설 <검은 집>에 대한 언급 때문인데, 실상 리뷰 대상인 신태라 감독의 <검은 집>은 하이스미스의 작품과는 무관하다고 한다(감독의 이름은 생소하다). 나 역시 이 리뷰와는 무관하게 하이스미스의 소설을 이미지로 띄워놓는다. 영화의 원작이라는 기시 유스케의 소설 <검은 집>(창해, 2007)과 함께. 사실 그녀의 <검은 집>(표제작이 포함된 작품집이 국내에선 <당신은 우리와 어울리지 않아>(민음사, 2005)로 번역돼 나왔다)에 대해서는 지젝이 <삐딱하게 보기>(시각과언어, 1995)에서 다루고 있기도 하다(타인의 환상을 침범하지 말라, 는 게 교훈이다). 공포영화를 즐기는 편이 아니어서 영화를 극장에서 보게 되지는 않을 것 같지만 리뷰는 그닥 공포스럽지 않다...

컬처뉴스(07. 06. 14) 아무 감정 없는 잔혹한 살인

패트리샤 하이스미스라는 미국작가가 쓴 소설 중에 <검은 집 Black House>이라는 게 있다. 한 외딴 마을의 뒷산에 이른바 검은 집이라 불리는 흉가(凶家)가 하나있는데, 마을사람들이 하루 일과를 마치고 선술집에 모일라치면 어김없이 화제로 등장하곤 했다. 귀신을 봤다는 등 여러 설(說)들이 많았다. 어느 날 그 흉가에 대해 듣게 된 한 나그네가 호기심이 발동하여 그곳을 샅샅이 뒤져보고는 그저 텅 빈 집일뿐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다음날로 마을사람들한테 그 사실을 고했다. 아무것도 아닌 것에 괜히 호들갑을 떤다는 투로 말이다.

그 말을 들은 일단의 마을 사람들이 격분하여 나그네를 때려죽이고 말았다. 마을사람들한테 그 흉가는 바로 환상공간이었고, 그 불쌍한 나그네는 환상공간을 침범하는 우를 저질렀던 셈이다. 신태라 감독의 <검은 집>은 사실 이 소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기시 유스케가 쓴 동명의 일본소설을 원작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화두로 꺼낸 까닭은 무엇인가?

 

 

 

 

 

 

 

 

신태라 감독의 두 번째 작품인 <검은 집>은 한국영화로서 드물게 보는 잘 만든 스릴러 영화다. 이전에도 스릴러 영화는 심심치 않게 만들어졌지만, 무늬만 스릴러인 경우가 대부분이었음을 감안한다면, <검은 집>은 이 장르에서 거둔 하나의 작은 성취라고 할만하다. 이 영화는 보험사기라는 현대사회에 만연해있는 병폐현상과 싸이코패스라는 원인모를 병리현상을 절묘하게 결합한 매우 지적인 스릴러 영화라는 것이다. 시종일관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으면서 영화가 끝날 때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게 만든다. 따라서 보험사기와 싸이코패스는 이 영화를 푸는 두 개의 핵심 코드가 된다.

다 알다시피 보험(保險)이란 적금(積金)과는 다르다. 일정기간 적립했다가 만기가 되면 원금은 물론이고 이자까지 쳐서 받는 적금과는 달리 보험은 만기가 되더라도 원금 회수를 기대할 수가 없다. 사망, 화재, 질병 등 뜻하지 않은 사고에 대비하여, 미리 일정한 보험료를 내게 하고, 사고가 일어났을 때 일정한 보험금을 주어 그 손해를 보상하는 제도가 보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고가 나면 불행 중 다행(한몫 챙기니까)이지만, 사고가 안 나면, 보험금은 한 푼도 없다는 역설이 발생하게 된다. 다행 중 불행이랄까?

바로 그 틈바구니 속에 보험사기라는 유혹이 끼어들게 됨은 물론이다. 뜻하지 않은 사고를 ‘뜻한 바 있는 사고’를 통해 위장(僞裝)할 수 있는 여지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험회사에서는 보험사정 업무를 통해서 뜻하지 않은 사고냐 ‘뜻한 바 있는 사고’냐를 가리는데 총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게 된다. 바로 이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정의파 싸나이 전준오(황정민)에게 어느 날 보험사기의 전조(前兆)를 알리는 한통의 전화가 걸려오게 되면서 관객은 자연스럽게 ‘검은 집’으로 초대를 받게 된다. 전화문의의 내용인즉, 자살을 해도 보험금을 탈 수 있냐는 것이다. 대답은 물론 ‘탈 수 있다’이고, 바야흐로 억대 보험금을 노린 범인의 대담한 작전이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그 범인이 단순 사기꾼이 아니라 싸이코패스였다는데 스릴러물로서의 영화의 묘미가 있다. 그렇다면 싸이코패스(psychopath)란 도대체 무엇인가? 영화는 친절하게도 이에 대해 간단명료한 정의를 내려준다. 극중 한 젊은 심리학도가 준오에게 찾아와서 자신이 작성한 석사논문을 통해 싸이코패스와 싸이코의 결정적 차이점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해준다. 매우 시사적인 내용이므로 전문을 인용해보자.

심리학도(한승규) : 싸이코패스는 선천적으로 감정의 기능을 갖지 못하고 태어났어요. 타인의 고통을 모르는데다 죄책감마저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는 거죠. 개다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설령 자기 자식에게 조차 잔혹한 행동을 서슴없이 할 수 있어요.

전준오 : 아니 그럼 싸이코랑은 다른가요?

한승규 : 싸이코는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모릅니다. 그냥 아이를 죽이고 싶어서 죽이는 것뿐예요. 하지만 싸이코패스는 다릅니다. 아이를 죽이면 보험금이 나온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죽이는 거죠.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서 사람을 그냥 물건 보듯 하는 겁니다.

전준오 : 병입니까?

한승규 : 전 병으로 봅니다. 치료할 방법은 없어요. 사회에서 격리하는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참고로 극중 이 남자는 그 싸이코패스로부터 참혹하게 살해당한다.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죽게 마련이라는 스릴러물의 공식이 괜히 생겨난 것이 아님을 새삼 일깨워주는 대목이라 하겠다).

이처럼 무시무시한 인성을 가진 싸이코패스가 보험사기에 뛰어들었고, 순박한 보험사 직원 전준오가 그 상대역으로 간택을 당한 셈이다. 따라서 우리의 주인공 전준오가 과연 어떻게 그 악의 손길을 물리칠지가 영화 감상의 관건이 됨은 물론이다.

전준오 역을 맡은 황정민은 기대한 대로 무척이나 인상 깊은 연기를 보여준다. 황정민은 일치감치 캐릭터 배우(character actor : 조연급)로서의 자격을 인정받았고, <너는 내 운명>이라는 가장 최근작을 통해서 당당하게 스타로서의 지위에까지 올랐다. 말하자면 캐릭터 스타(주연급)로의 승격인 셈이다. <검은 집>에서 그는 캐릭터 창출에 관한 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의 연기변신을 보여준다. <달콤한 인생>에서 주인공 이병헌을 위협하는 극악한 캐릭터의 한 전형을 보여주었던 황정민은 바로 얼마 후 <너는 내 운명>에서는 순박하기 이르데 없는 우직한 노총각으로 180도 변신을 한다. 그랬던 그가 다시 열정적이면서도 인간적이고, 소심한듯하면서도 대범하게 행동에 나서는 보험사 직원 역으로 다시 관객 앞에 섰다. 관객이 응답할 차례다.

이렇게 해서 나는 <검은 집>의 핵심 줄거리를 하나도 발설하지 않고 리뷰를 마무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검은 집’의 환상공간을 불가피하게 침범(侵犯)하는 일이 될 터이니 말이다. 환상공간을 대면코자 한다면, 직접 ‘검은 집’을 방문하시길 바란다.(김시무/ 영화평론가)

07. 06. 14.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Joule 2007-06-15 0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재는 바뀌었지만 그래도 변하지 않는 게 있다면 로쟈님의 페이퍼가 여전히 너무나 재미있다는 것! 로쟈님의 시도 참 좋았어요.

로쟈 2007-06-15 0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온 글을 재미있다고 하시니까 머쓱하네요.^^;

Joule 2007-06-15 0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건 모르시나봐요. 재미있는 글 퍼오는 것도 능력이라는 거. 전 신문도 안 보고 테레비도 없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뉴스를 알라딘 서재를 통해 알게 되거든요.
 


7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다른 곳을 사유하자- 정주하지 않는 지식인의 삶과 사유
니콜 라피에르 지음, 이세진 옮김 / 푸른숲 / 2007년 5월
14,000원 → 12,600원(10%할인) / 마일리지 700원(5% 적립)
2007년 06월 14일에 저장
절판

몽테뉴 인생 에세이
몽테뉴 지음, 손우성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5년 3월
29,800원 → 26,820원(10%할인) / 마일리지 1,490원(5% 적립)
2007년 06월 14일에 저장
절판
몽테뉴의 숲에서 거닐다- 박홍규, '에세'를 읽으며 웃다
박홍규 지음 / 청어람미디어 / 2004년 10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2007년 06월 14일에 저장
절판
위대한 교양인 몽테뉴 1- 전란의 시대
홋타 요시에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1999년 5월
10,000원 → 9,000원(10%할인) / 마일리지 500원(5% 적립)
2007년 06월 14일에 저장
품절


7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Joule 2007-06-15 00:29   좋아요 0 | URL
홋타 요시에의 '위대한 교양인 몽테뉴' 예전에 들었다 놨다 하다 말았는데(왜 저는 일본 작가에 대한 편견이 있는지 모르겠어요. 일본 문화에 대한 편견은 없는데. 민족주의자도 아닌데. 게다가 애국자도 아니고) 로쟈님은 읽어 보셨어요? 어때요.

로쟈 2007-06-15 00:37   좋아요 0 | URL
이번에 도서관에서 대출했습니다. 너무 자세하다는 평도 있더군요. 한데 1권은 벌써 품절 모드입니다...
 

지난주에 '중국 소설이 온다!'란 페이퍼를 만든 적이 있는데, 대표작가 중 한 사람이 쑤퉁이 방한했다('중국 작가가 왔다!'고 해야겠다). 아침에 전철에서 읽은 기사를 옮겨놓는다. 아직 그의 소설들을 읽은 바 없지만 그의 소설을 원작으로 했단 영화 <홍등>은 오래전에 본 기억이 있다. 우리에게 보다 친숙한 작가가 될지 두고봐야겠다(적어도 양적으로는 그럴 만한 여지가 충분하다. 쑤퉁은 최근 가장 많은 번역이 국내에 소개된/소개될 중국 작가이다).

경향신문(07. 06. 14) “소설…자기 내면과의 계약”…쑤퉁·전형준 교수 대담  

중국 작가 쑤퉁(蘇童·44)이 한국에 왔다. 중국 당대문학(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 가운데 가장 먼저 한국에 소개된 위화가 2000년 처음 한국 땅을 밟은 데 비하면 7년 늦었다. 그러나 그의 한반도 상륙은 중국 소설이 각광 받기 시작하는 시점에 이뤄진 만큼 훨씬 빠르고 순조로울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소설집 ‘이혼지침서’(아고라)가 나왔으며 올들어 장편소설 ‘쌀’(")과 ‘나, 제왕의 생애’(")가 출간됐다. 또 이달 말에는 ‘푸른 노예’(문학동네)가, 9월쯤에는 ‘무측천’(비채)이 나온다. 중편집 ‘양귀비의 집’ ‘홍분’(아고라)도 번역 중이다.

1980년대 중국 선봉파(전위) 문학의 기수로 알려졌던 그의 문학은 90년대 들어 거대 담론으로서의 역사를 해체하는 신역사주의로 변모한다. 문학평론가인 전형준(필명 성민엽) 서울대 중문과 교수가 지난 12일 그와 대담을 나눴다.



전형준=쑤퉁이 한국에 알려진 계기는 장이머우의 영화 ‘홍등’이었다. 원작소설이 중편 ‘처첩성군’(‘이혼지침서’ 수록)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원작에 없는 볼거리를 제공하는 반면 세부를 바꾼다. 밤마다 홍등을 건다든지, 발마사지를 한다든지 하는 다소 수상한 모티브도 추가되고 가짜 임신소동 통해 여주인공 쑹롄의 성격에 적잖은 변화가 나타났다. 이런 변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쑤퉁=영화는 감독의 것이기 때문에 관여하지 않는다. 영화가 나왔을 때 한 문학잡지 편집자로 일했는데 영화 때문에 유명해진 걸 몰랐다. 어느날 홍콩 사람이 전화를 해서 “영화에 나오는 발마사지 도구에 대해 잘 아는 것 같으니 함께 돈벌이를 해보자”고 해서 그때서야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이 봤다는 걸 알았다. 그러나 그 도구는 장이머우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다.(웃음)

전형준=중국 영화는 소설을 원작으로 한 경우가 유별나게 많다. 그러나 영화를 소설로 착각하는 데서 비롯되는 오해도 적지 않다고 본다. 문학연구자의 입장에서 볼 때 안타까운 건 중국 영화를 이야기할 때 문학을 비하하면서 영화를 띄우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쑤퉁=영화는 소설의 친척이지 자식은 아니다. 장이머우나 첸카이거는 소설을 무척 신뢰해서 소설로 영화를 만드는 경향이 두드러졌으나 요즘 영화는 상업적으로 변해서 감독 머릿속의 생각을 글로 만들어서 영상으로 옮긴다. 그러나 소설은 소설로서의 역할이 있고, 영화로 옮겼을 때의 결과는 머릿속에서 끄집어낸 어떤 생각으로 만든 영화와는 다르다.



전형준=선봉파에서 신역사주의 작가로 변했다는 평가에 대해 자신은 어떻게 생각하나. 나는 소설은 소설일 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식의 설명을 좋아하지 않는다.

쑤퉁=동의한다. 소설을 쓰는 건 자신의 내면과의 계약이다. 분류에 맞춰 소설을 쓰는 게 아니라 내가 쓰고 싶은 내면의 변화를 쓴다. 선봉파였지만 후퇴한다는 이야기를 들어도 원하는 걸 쓸 수 있는 게 자신과의 계약이다.

전형준=후퇴란 말은 실험성이 약화되거나 대중성과 타협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대중성을 고려한 것인가.



쑤퉁=나는 상업적으로 성공한 작가가 아니다. 장이머우가 영화를 찍음으로써 유명해졌는데 중국에서 3만 독자만 유지해도 좋다고 생각하다가 90년대 문학이 약세를 면치 못하면서 5000명만 남아도 좋다고 생각하게 됐다. 작가는 계속 변한다. 이를테면 ‘나, 제왕의 생애’는 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작품인데 젊었을 때 아니면 쓸 수 없는 아름답고 따뜻한 이상세계의 이야기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현실을 직시한다. 현실과 타협하는 게 아니라 현실을 주제로 쓰게 됐다.

전형준=‘쌀’이나 ‘나, 제왕의 생애’는 인간의 부조리 탐구, 잔혹극에 가까운 상상과 묘사, 상식이라는 이름의 지배 이데올로기에 대한 전복 등 좋은 의미의 불온성이 느껴진다. 창작 의도는 어떤 것이었나.



쑤퉁=‘쌀’은 첫번째 장편인데 인간성 속에는 아름다움과 함께 남에게 보일 수 없는 추악함이 있다고 생각했다. 아름다움은 묘사가 쉽지만 어둠은 표현하기 어렵다. ‘쌀’의 주인공 오룡은 최악으로 표현돼서 추리소설처럼 비현실적이기도 한다. ‘나, 제왕의 생애’는 우화에 가깝다. 제왕에서 광대가 되는 것, 하늘과 땅, 진실과 거짓, 어둠과 밝음의 극단을 잘 묘사하고 싶었다.

전형준=한국뿐 아니라 선진국에서도 문학의 위기에 대한 논의가 나오고 있다. 중국은 어떤지.

쑤퉁=중국도 당대문학의 황금기는 70~80년대였다. 당시에는 드라마·영화·음악 등이 상대적으로 부족해서 소설이 사람들의 정신적 욕구를 충족해주던 시기였다. 원래 생일케이크처럼 크고 중심에 놓였던 문학이 대중매체 발달에 따라 조그만 치즈케이크로 변했다.

전형준=중국에 사회주의 시장경제가 도입된 이후 물질적 측면은 크게 발전한 반면 민주화나 부의 분배 등은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다. 현재 중국에 필요한 정신적 가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쑤퉁=현재 중국의 문제는 빨리빨리다. 집도 빨리 짓고 돈도 빨리 벌고 뭐든지 그렇다. 이런 변화가 빠른 종말을 맞을 수도 있다. 먼저 낚아채는 사람이 임자라고 생각해서 정신적으로 공황을 맞게 된다. 그러나 가난하게 살았던 기간이 너무 길기 때문에 누구라도 자본주의 맛을 봐야 할 상황이다. 과거의 인상 쓰는 중국인들에 비하면 요즘 젊은이들은 중국인 같지 않다. 일본 아이나 한국 아이와 다를 바 없는 천진난만함은 물질이 가져다준 것이다. 사람은 산 꼭대기에 있어야 하늘을 가까이 볼 수 있고 산 밑에 사는 사람들은 산기슭만 바라본다. 중국인들은 아직 산 밑에 있다.

전형준=한국 독자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씀은.

쑤퉁=내 책을 두 권씩 사서 한 권은 자신이 읽고 한 권은 남에게 선물해주길 바란다.(웃음)



◇쑤퉁은 누구?
본명은 퉁중구이(童忠貴). 1963년 장쑤성에서 태어나 84년 베이징사범대 중문과를 졸업했다. 83년 등단한 뒤 중편 ‘1934년의 도망’(1987)에서의 형식실험으로 선봉파의 중심인물이 된다. 중편 ‘처첩성군’(1989), ‘홍분’(1991)이 영화화돼 대중에게 알려진다. 영국 캐논게이트 출판사의 세계신화총서에 오르한 파묵, 주제 사라마구, 토니 모리슨 등과 함께 참여해 집필한 ‘푸른 노예’로 세계적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방한 일정
▲14일 오후 4시 30분 서강대 강연회(다산관) ▲15일 오후 7시 교보문고 주최 강연회(서교동 한국출판인회의 강당) ▲16일 오후 2시 교보문고 사인회(광화문점) ▲ 16일 오후 5시 작가와 독자의 밤(홍대근처 중국음식점 ‘피낭’)

경향신문(07. 06. 14) 이제 中國을 읽는다…위화·모옌·쑤퉁 작품 출간

중국 당대소설의 삼두마차로 불리는 위화, 모옌(영화 ‘붉은수수밭’의 원작자), 쑤퉁을 시작으로 중국 소설이 한국에 속속 소개된다. 개혁 개방 이후 사회주의 당파성을 벗어난 40~50대 작가들이 써내는 중국 소설은 서구 출판계에서도 관심의 대상이다. 이미 독자들에게 익숙해진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작가들의 후속으로 중국 작가들을 발굴하고 있다.

국내 출판계는 올들어 발동이 걸렸다. 일본 소설이 포화상태에 이르면서 중국 소설이 ‘블루오션’으로 떠올랐다. 고전·무협·역사소설을 제외한 순문학 기준으로 볼 때 지난해 10여편에서 올해는 30여편으로 껑충 뛰었다.



단일작가로 가장 많은 책을 선보이면서 독주가 예상되는 쑤퉁 외에 위화(*왼쪽)는 10년 만의 장편인 ‘형제’(2권·휴머니스트)를 이달 말 출시한다. 또 모옌(*오른쪽)의 소설 ‘생사피로’(창비)가 올 하반기에 나온다. 포스트모던 작가인 옌롄커의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웅진), 청소년 소설 ‘빨간 기와’로 국내 독자와 낯을 익힌 차오원쉬안의 성인용 장편 ‘천표’(은행나무)도 올 안에 출간된다.

김영사 임프린트인 비채는 쑤퉁의 ‘무측천’ 외에 영화 ‘국두’의 원작소설인 ‘푸시푸시’의 작가 류헝의 장편 ‘수다쟁이 장 따닌의 행복한 생활’, 팡팡의 ‘행위예술’, 허다차오의 ‘칼과 칼’ 등 5종의 중국 소설을 올해 내놓는다. 문학동네 역시 쑤퉁의 ‘푸른 노예’ 외에 비페이위의 ‘청의’를 준비 중이다. 현암사도 한사오궁의 중단편 선집으로 중국 소설에 뛰어든다. 얼마전 중국의 대형 베스트셀러였던 양즈쥔의 ‘사자개’(황금여우)도 나왔다.

중국 소설의 강점은 탄탄한 기본기로 평가된다. 문학동네의 오영나 해외문학팀장은 “중국 특유의 입담과 표현력으로 과거 이야기를 살려내는 데 깊이가 있다”고 말한다. 또 비채의 이영희 사장은 “일본 소설에 비해 기교는 무방비 상태지만 읽다보면 확 와닿는 느낌이 있다”면서 “상황은 늘 좋지 않은데 유머와 위트가 살아 있는 것”을 중국 소설의 강점으로 꼽는다.

아직 중국 소설의 시장 규모는 크지 않다. 한 종당 3000~5000부를 소화하는 게 목표다. 그러나 출판기획자들은 “새 작품을 소개하는 보람이 있고 시장이 세분화하면서 독자층이 좀더 넓어질 것이란 기대가 있기 때문에 당분간 중국 붐이 계속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한윤정 기자) 

07. 06. 14.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파란여우 2007-06-15 21:25   좋아요 0 | URL
제 보관함에 이 작가의 책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페이퍼 별찜해 갑니다.
새서재가 되어서도 여전히 방대하고 알 빵빵한 자료정보를 기대합니다.

로쟈 2007-06-15 23:14   좋아요 0 | URL
기대에 부응하려면 땀깨나 나겠는데요.^^;
 

자정이 다 되어 서재에 들어와보니 전혀 '딴집'이 돼 있다. 아니 그 이전에 익숙했던 '나의 서재'가 '로그인' 화면으로만 연결되길래 이미 상황이 종료됐다는 것 정도는 짐작했지만 아무래도 '익숙한 것들과의 결별'은 얼마간의 시간을 요구하는 듯싶다(어찌됐든 현재로선 마음에 드는 구석을 찾을 수 없다!).

서재의 이름도 꼭 붙여야 되는 것처럼 뜨길래 잠시 생각해보다가 '로쟈의 저공비행'이라고 붙였다(바뀐 서재에도 그냥 '로쟈의 서재'라고 해놓는 건 어울리지 않아 보여서). 20년전에 쓴 시 중의 하나가 그런 제목을 갖고 있었다. 테스트 삼아서 적어본다(이미지도 함께).

그대의 잠든 하늘을
잠행하다가
독일제 대공포 소리를 들었다
어느 이름 모를 별자리의
비명 소리를 들었다
그는 아마
저공비행을 하였던 것 같다

어쨌든 새로운 비행이 시작되었다. 마음에는 안 들더라도 하는 수 없는 노릇이지. 대공포화나 조심해야겠다...

07. 06. 14.


댓글(9)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가을산 2007-06-14 0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 벽지를 독특한 것으로 바르셨네요.
서재2.0이 맘에 안들면 어쩌나... 걱정했었는데, 우려했던 것보다는 괜찮은 것 같아요.

로쟈 2007-06-14 0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주여행 하시는 거에 비하면야.^^

필라멘트 2007-06-14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도 쓰시는군요. 시 좋은데요. 로쟈님이 못하시는게 뭔지.. ㅎ

2007-06-14 11: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7-06-14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키드마크님/ 아, 시는 안 쓴 지 좀 됐습니다. 쓰는 게 즐거움을 주기는 했는데, 다른 일들과 병행하기가 어려워서요.^^;
z님/ 책으로 내시는 게 아니라면 그 정도로 무난할 거 같습니다. <바틀비>는 번역본이 있으므로 한번 대조해보시길...

2007-06-14 14: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늘빵 2007-06-14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로쟈님 못하는게 뭡니깟.

로쟈 2007-06-14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돈벌이를 잘 못합니다.^^;

Joule 2007-06-15 0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락사스님, 로쟈님은 고공비행을 잘 못해요(아, 쫌 썰렁했다. ㅡㅡ'). 그리고 제 생각에는 음주댓글 달기 뭐 그런 것도 잘 못 하실 것 같애요.
 

엊그제 뒤늦게 알게 된 것이지만 재미철학자 승계호 텍사스대 석좌교수가 내한하여 강연회를 가졌다. 'T. K. Seung'이름을 저자 혹은 편자로 달고 있는 책을 나는 두어 권 갖고 있는데, 영어명 T. K. Seung이 바로 승계호 교수이다. 기사에서도 언급되고 있지만, 김재권, 조가경, 정화열, 이광세 등과 함께 가장 손꼽히는 재미철학자가 아닌가 싶다('한국철학자'라고 분류할 수는 없겠지만). 이들의 책은 모두 국내에 한두 권씩은 소개돼 있다. 특별히 더 눈길을 끈 건 이 분이 정치철학뿐만 아니라  문화철학·문화비평 쪽도 다룬다는 것. 이번 석학강연의 주제 중 하나도 '과학과 시의 갈등'이었다. 책으로 묶여 나오길 기대해본다.

조선일보(07. 05. 29) 과학과 詩는 왜 싸웠나

조선일보사와 한국학술협의회, 대우재단이 공동으로 주최하는 ‘제9회 석학연속강좌’가 오는 31일부터 이틀 동안 열린다. 이번에 초청된 석학은 정치철학과 문화철학·문화비평의 대가로 손꼽히는 승계호(承啓浩·T K Seung·74) 미국 텍사스대 인문학 석좌교수다. 서울 은행회관에서 열리는 그의 공개강연은 ▲31일 오후 3~6시 ‘과학과 시의 갈등’ ▲6월 1일 오후 3~6시 ‘마음과 물질의 신비’를 주제로 두 차례 이뤄진다.

평북 정주 출신인 승 교수는 6·25 전쟁에 국군으로 참전했고, 연세대를 거쳐 1954년 도미(渡美), 예일대에서 공부했다. 대학원 시절 단테를 주제로 한 문학비평서를 써서 명성을 높였으며, 이후 플라톤·칸트·니체 등 서양철학의 거장들에 대한 독창적인 해석을 제시해 미국 지성계에 신선한 파문을 일으켰다. 특히 ‘직관과 구성(Intuition and Construction·1993)’의 반향은 컸다. 현재 미국에서 명성이 높은 한국계 철학자는 그와 김재권(브라운대), 정화열(모라비아대), 조가경(뉴욕주립대), 이광세(켄트주립대) 교수 등이 있다.

첫 번째 강연에서 승 교수는 서양철학의 정신을 이루는 두 기둥인 ‘과학’과 ‘시(詩)’의 싸움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싸움은 고대 그리스철학이 탄생했을 바로 그 때 시작됐다. 호메로스의 서사시는 모든 지혜의 샘으로 존중받았으나 그 권위는 새로 등장한 과학(고대의 과학은 자연학 개념)에 의해 도전을 받았다. 둘 중에서 어느 쪽이 궁극적 진리를 알 수 있느냐는 싸움이었다. 이 싸움의 중간에 탄생한 것이 바로 철학이었으며, 시나 과학보다 더 높은 수준의 지혜를 보존하고자 했다. 플라톤은 과학과 시 사이 어딘가에 자신의 철학을 구축해 놓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논리학·자연학은 물론 시학·정치학까지 망라한 개별 과학들의 체계였다.

철학과 자연과학을 구별하는 경계선은 데카르트에 가서야 도입됐다. 칸트는 형이상학을 ‘선험적 원리들을 바탕에 둔 과학’으로 건립하려 했다. 하지만 궁극적 진리의 소중함을 보이고자 했던 그의 포부는 현대철학계에서 어느덧 사라져 버렸고 이제 대부분의 철학적 저술은 시시하고 지루한 것으로 전락해 버렸다. 더 이상 ‘만학(萬學)의 여왕’이 아닌 철학을 현재의 곤경에서 구출하려면 다시 철학에서 ‘과학’과 ‘시’의 역할을 부활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강연은 심신(心身)의 관계라는 근본적인 의문에 대한 탐구다. 승 교수는 “나의 마음과 나의 뇌는 같은 것이므로, 뇌가 마음에 작용한다든가 그 역이 성립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가 현대의 심신 이론 중 정신을 물리적 현상의 하나로 보는 ‘환원론’을 따르는 것은 아니다. 세포들이 생물학적이고 유기적으로 연결돼 관계망을 형성함에 따라 생명과 마음이 생겨나는 것이며, 이 관념을 추적한다면 물질세계의 내재적 생명 원리가 바로 영혼이라는 플라톤의 사상에 닿게 된다는 것이다. 전체와 부분의 관계인 정신과 물질은 결국 동일하다는 독특한 이론이다.

지난 2000년 시작한 석학연속강좌는 지금까지 김재권 미국 브라운대 석좌교수(철학),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 독일 뮌헨대 명예교수(신학), 다니엘 데넷 미국 터프츠대 교수(인지과학), 모리스 고들리에 프랑스 고등사회과학원장(경제인류학), 정재식 미국 보스턴대 석좌교수(종교사회학), 마이클 루스 미국 플로리다주립대 석좌교수(생물학 철학),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영문학), 필립 큔 미국 하버드대 석좌교수(중국역사학)를 초청해 여덟 차례의 강좌를 열었다.(유석재 기자)

조선일보(07. 05. 30) “철학은 좀 더 시에 가까워져야”

조선일보와 한국학술협의회, 대우재단은 정치철학과 문학비평·문화철학의 세계적 권위자 승계호(承啓浩·T K Seung) 미국 텍사스대 인문학 석좌교수를 초청, ‘2007 제9회 석학 연속강좌’를 갖는다. 지난 2000년 시작한 석학연속강좌는 학문 각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경지에 이른 석학을 초청, 강연과 토론의 장(場)을 통해 세계 첨단의 지식 흐름을 소개해 왔다. 이번 주제는 ‘서양철학의 문화적 배경’이다. 승계호 교수는 플라톤·단테·칸트·괴테·니체와 같은 서양 지성의 거장들에 대해 독특한 해석을 내놓으면서 미국 학계에 신선한 파문을 일으켜 왔다. 첫 번째 강연에선 서양철학의 역사적 흐름에서 나타난 ‘시(詩)’와 ‘과학’이라는 두 가지 요소의 갈등에 대해 말하고, 두 번째 강연에선 심신(心身)의 관계에 대한 자신의 해석을 이야기한다. 한국철학회 회장을 지낸 엄정식(嚴廷植) 서강대 교수가 그를 만나 대담을 가졌다(*대담은 원본을 옮겨놓는다).

엄정식 교수=승 교수님 오래간만입니다. 1995년에 열린 '한민족 철학자 대회'때 다녀가신 적이 있지요. 그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지요. 어떠세요?  

승계호 교수=지난번에도 느꼈지만, 정말 이번에는 한국이 더 발전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제 철학에 특별히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좀 더 다듬어졌다고나 할까요.  

엄정식=우선 선생님이 철학을 공부하신 동기를 말씀해주시지요.  

승계호=저는 평안도 정주에서 남하하여 전쟁에 참전했던 6·25세대입니다. 도미 유학의 기회를 얻었을 때, 무엇보다 이 전쟁의 의미에 관해서 연구하고 싶었습니다. 그것은 결국 서구인들의 전쟁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서구 문화를 심층적으로 공부해야 그 전쟁의 성격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죠. 그 가운데서도 제일 효과적으로 서양문화를 알려주는 것이 문학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문학을 전공하게 되면 영문학, 불문학, 독문학과 같은 식으로 공부해야 하는 거예요. 전공을 나누기 전에는 세계 문학에 대해서 배우는데, 공부를 하면서 범위가 점점 좁아지는 거예요. 그래서 차선책으로 선택한 것이 철학이었습니다.  

엄정식=6·25 전쟁을 경험하시고 나서, 그런 한반도에서 일어난 전쟁을 제대로 파악하시기 위한 결과로 이해할 수 있겠군요.  

승계호=그렇지요. 한국을 이해하려면 한국만 보고서는 이해를 못합니다. 세계 문화 전체 속에서 파악을 해야 합니다.  

엄정식=철학이라고 간단히 말씀하셨지만, 용어 자체가 너무 넓은거 같군요. 언젠가 콰인(Quaine·1908~2000, 미국의 분석철학자)에게 이런 물음을 던진 적이 있습니다. “철학이 뭐냐?” 콰인의 대답으로는 철학은 너무나 넓어서 철학자가 하는 게 철학이고, 본인에게는 논리학이 철학이라는 겁니다. 다른 이에게는 문학이 철학이고, 또 다른 이에게는 문화가 철학이고. 선생님에게는 철학이 무엇이고, 왜 그런 철학을 하셨는지 좀 더 자세히 말씀해주십시오.  

승계호=말씀대로 철학은 굉장히 광범위하지요. 그래서 많이 방황했습니다. 결국 예일대학을 그만두고, 로스쿨을 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하버드 대학과 예일 대학 로스쿨에 입학신청서를 냈는데 둘 다 합격한 거예요. 고심 끝에 예일대학 로스쿨을 선택했는데, 공부를 해보니 법학은 별로 재미가 없더군요. 법 공부라는 게 단지 직업교육이었어요. 그래서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법관이 되어서 일생을 보낼 수 있을까? 법을 공부해서 내가 하고자 하는 서양 문화를 이해를 하는데 도움이 될까? 뭐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법철학을 하는 노스로프(F.S.C. Northrop)를 만날 기회가 있었어요. 그 분이 저에게는 동양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나더니, 나보고는 서양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라는 것이었어요. 결국 두 번째 학기에 로스쿨을 그만두고, 다시 철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때도 하버드 대학과 예일대학 철학과에 서류를 냈습니다. 그런데 운 좋게도 하버드 대학에서는 전교에서 한 명에게 주는 유니버시티 장학금을 주겠다고 해요. 그래서 하버드를 가려고 마음먹던 중에, 예일대학 철학과장을 맡고 있던 존 슈뢰더를 만나게 되었어요. 그 분은 칸트학자였는데, 하버드에 가지 말라고 말리는 겁니다. 거기 가봐야 콰인이니 누구니 맨 논리학만 공부할게 뻔한데, 법과 공부가 싫다고 뛰쳐나온 나온 녀석이 하버드에 가면 공부하기 더 싫어질 거라고 하더라구요. 그렇지만 자기와 같이 있으면, 내가 하고 싶은 문화에 대해서 마음대로 공부할 수 있을 거다. 뭐 이렇게 설득하는 거예요. 그래서 예일 대학에 가서 다시 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엄정식=정말 긴 이야기군요.  

승계호=사실 그 전에 예일 대학 학부를 다니던 1학년 때 문학강좌를 들으면서 서양 문학, 특히 ‘시’는 동양과 다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서양의 문학은 서양의 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그때 학기말에, 그 강의를 하셨던 교수님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강의가 감명 깊었다는 이야기를 드리면서, 도움을 청했습니다. 여름방학 3개월 동안 서양 문학과 문화를 더 이해하기 위해서 읽어야 할 작품들을 적어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분께서 긴 목록을 적어 주셨어요. 받고 나서 제가 물었습니다.적어주신 것이 중요한 작품 모두냐고요.그랬더니 하나가 더 있기는 한데, 어차피 어려워서 읽지 못할 거라 적지 않았다는 거예요. 당연히 나는 그 작품이 뭐냐고 물었더니, 그게 바로 단테의 '신곡'이라는 겁니다. 그 말에 오기가 날 수 밖에요. 그 해 여름방학 내내 다른 것은 제쳐두고, 그것만 읽었는데 정말 어려웠어요. 그 후에 많은 방황을 했던 거지요.

제가 로스쿨 다니면서 그 동안 접어두었던 '신곡'을 여름방학 때 다시 읽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도서관에 가보니 단테의 '신곡'에 관한 책만 수천 권이 있었을 거예요. 그 중에서 몇 권 빌려서 읽었습니다. 그리고 나니 조금 눈이 뜨이기 시작했는데, 눈이 뜨일수록 '신곡'은참으로 기형적인 작품이었습니다. 서사시(epic)는 영웅이야기인데, '신곡'은 서사시이지만 영웅이 없어요. 그래서 나는 이것을 ‘서사시적 영웅 없는 서사시’(Epic without epic hero)라고 불렀어요. 로스쿨 그만둘 때까지 이런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일대학 철학과 대학원 1학년 1학기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혼론'을공부했어요. 그리고 그 책에 대해서 아퀴나스가 쓴 주석서를 읽었는데, 그게 기가 막히더라구요. 그 주석서를 읽으면서 단테 '신곡'에 대한 해결책이 생각났어요.  

단테의 '신곡'을 보면, 천당이 10군데, 연옥은 7군데, 지옥은 9군데 입니다. 이게 정합성이 있어야 합니다. 지옥에서는 죄 때문에 처벌 받고 연옥에서는 갱생하는 것이니, 지옥의 수와 연옥의 수가 서로 맞아야 되지 않겠어요?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또 천당하고도 연결이 되지 않습니다. 갱생한 사람이 천당으로 가는 건데, 천당의 수와 연옥의 수가 다릅니다. 그런데 내가 보았던 것은 프라이머리 릴리전(primary religion)이 3개였습니다. 지옥도 그렇고 연옥도 그렇고, 그게 성부, 성자, 성신과 연결됩니다. 그게 아우구스티누스의 책에도 나옵니다. '신곡'에서는 사람의 행위가 삼위일체를 표현하는 것인데, 영웅이 바로 삼위일체라는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혼론'을 읽으면서, 그것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엄정식=토마스 아퀴나스의 주석서가 아주 중요했군요.  

승계호=그렇지요, 그래서 제가 책을 하나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생각난 것이 가끔 마주칠 때마다 도와줄 것이 있으면 이야기하라고 하시던 예일 대학원의 대학원장님이었습니다. 바로 대학원장님을 찾아가 계획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자 그 당시에 무려 1,000불이라는 거금을 지원해 주셨습니다. 그때 1,000불이면, 지금 돈으로 10,000불 정도가 될겁니다. 그래서 그해 여름에 Fragile Leaves of the Sybyl: Dante's Master Plan(1962)을 썼습니다.  

엄정식=단테를 통해서 철학으로 들어오신 거군요.

승계호=그렇지요. 그리고 그게 바로 ‘주제학' 을 한 것입니다.  

엄정식=선생님의 ‘주제학’에 대해 설명해주십시오.

승계호=간단해요. 주제가 뭐냐,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하느냐는 것입니다. 단테의 해석에서 내가 찾아낸 주제가 통하지 않는 것이 없어요.  

엄정식=그럼 정합성과 일관성에 의해서 ‘주제’를 찾아내시는 거군요. 뭘 다루고 의도가 뭔가 등등. 그러나 문학적으로 표현해도 되고, 철학적으로 표현해도 되고, 중요한 것은 어떤 식으로 표현하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표현하느냐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군요. 작가의 의도를 파악할 필요는 없고, 주제에 대한 여러 가지의 해석은 나올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덜질 수 있겠군요. 주제가 여러 가지로 나올 경우, 그것을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이 있을까요?  

승계호=예를 들어 단테의 '신곡'을 얼마나 잘 해석할 수 있느냐, 그것이 기준입니다.  

엄정식=그렇다면 가장 포괄적이고, 누구나가 공감할 수 있는 ‘주제’를 택하는 것이로군요.  

승계호=그렇습니다. 광범위하게 가장 포괄적이어야 합니다.  

엄정식=버트란드 러셀(B. Russell)은 철학이 과학과 종교의 중간쯤에 있다고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철학이 시와 과학의 중간쯤에 있다고 하시는데, 그것은 아마 선생님의 문학적 배경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래서 러셀이 신화를 읽으면 종교적 측면을 많이 볼 것이고, 선생님께서는 시적인 측면을 많이 보실 것으로 생각됩니다. 신화에서는 표현 방식에서 시적인 방식을 쓰지 않으면 안 되는데, 그렇다면 선생님께서는 그런 표현 방식에도 더 많은 관심을 가지셔야 하지 않을까요?  

승계호=한국 사람들은 ‘시’(詩), ‘시적’(詩的)이라고 하면 이해를 못합니다. 대개 한국사람들은 ‘시’하면 ‘시조’(時調)를 떠올리는데, 서양에서의 시는 시조와 다릅니다. 우리는 궁극적이라고 하면 과학적이라고 보고, 과학 이상의 것을 더 보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과학자 자신은 새로운 이론을 내놓을 때 그것이 시적 작업이고 과학 자체가 시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표현 방식보다는 내용과 주제가 더 중요합니다.

엄정식=대체로 선생님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생각했던 ‘이론학’이나 ‘실천학’과는 다른 ‘포이에티케(poietike·詩作)’와 ‘포에시스(poiesis·詩)’에 대한 견해를 말씀하고 계시는군요. 그럼 선생님의 생각은 넓은 의미로 문학적, 더 넓게는 인문학적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그래서 그런지 선생님께서는 사실 단테의 '신곡'도 신에 관한 것인데도 시적인 것을 보시더니, 니체를 논의할 때도 그렇고, 또 괴테의 '파우스트'에서도 신과의 대결인데도 시적인 요소를 찾아내시는군요. 아주 흥미롭습니다.  

승계호=니체를 그렇게 해석한 사람은 저밖에 없어요. 다른 사람들은 대체로 그것을 ‘철학적 경구(Philosophical Aphorism)’로 보았거든요. 그러나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엄정식=그러니까 선생님의 철학관은 그런 것이군요. 앞서도 말씀하셨던 콰인하고는 많이 다릅니다.  

승계호=정반대지요!  

엄정식=하긴 콰인에게 왜 논리학만 하고, 종교나 예술이나 이런 쪽은 관심이 없느냐고 물었더니, 논리학만 하기에도 바쁘다고 하더군요. 선생님의 철학관을 이해하지 않으면, 선생님의 철학을 이해할 수 없군요. 흥미로운 것은 선생님의 철학관이 있지만, 다른 철학에 대해서 그 철학관을 가지고 평가하는 대목이 있더군요. 세미나에서 다루셨던 ‘프레게의 논리혁명’과 ‘콰인의 형이상학 혁명’을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언어에 대해서 상당히 많은 관심을 보이시면서도, 언어철학에서 말하는 ‘언어적 전환(Linguistic Turn)’이라는 표현은 잘 쓰지 않으시더군요. 특징적으로 말해서 신화 시대부터 플라톤의 등장으로 ‘존재론적 전환(Existential Turn)’, 그 후부터 데카르트에 이르면서 ‘인식론적 전환(Epistemic Turn)’으로, 그리고 현대철학에서는 ‘언어적 전환(Linguistic Turn)이 이루어진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즉 현대철학에서는 언어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그거는 중요하지 않다, 이런 생각으로 보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말씀을 해주시죠.  

승계호=제가 보기에 프레게의 철학을 논의하면서, 데카르트와 칸트의 논의를 연결시켜서 생각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데카르트 이후 모든 것은 객관적이어야 했고, 더 나아가 프레게는 모든 논의에서 심리학주의를 배제하자는 거예요. 그래서 프레게는 새로운 논리학을 내세웠고, 이것이 논리혁명이라는 것입니다. 단지 언어만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는 것이지요. 이런 의미에서 단순히 ‘언어적 전환’이라고 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언어 자체가 대상을 보증해주지 않습니다.  

논리혁명이라면, 정말 논리가 있다면, 데카르트의 이론을 살릴 수 있어야 합니다. 제 생각으로는 데카르트-칸트-프레게에 이르기까지 핵심은 철학을 과학으로 만들자는 것입니다. 데카르트는 그 생각을 실현 못했지만, 데카르트 자신은 수학을 진짜 과학으로 보았습니다. 또칸트는 이 수학을 이용해서 진정한 과학을 한다고 보았고, 더 나아가 철학도 결국 순수하게 아 프리오리(a priori)하게(=선험적으로) 과학이 된다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이 허물어진 것입니다. 비(非)유클리드 기하학을 생각해 보세요.  

프레게는 칸트가 희망하고 꿈꾸던 철학을 어떻게 과학적으로 만드느냐는 문제에 대해 고민했던 것이죠. 외연 논리로 칸트의 선험적 세계를 분석한다는 것입니다. 칸트는 선험적 직관을 가지고 했는데, 프레게는 선험적인 것 없이 한 것이거든요. 그런데 그게 실패했습니다. 그 이후에 카르납이나 콰인이 했던 작업은 칸트가 하려는 것을 러셀이나 프레게가 실패했다고 해서 포기할 수 없다는 거지요. 정말로 철학을 과학화할 수 있는 더 좋은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철학을 자연화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언어적 전회와 같은 것보다 어떻게 해야 철학이 진정한 과학으로 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이 더 중요합니다.  

엄정식=선생님께서는 철학을 넓은 의미의 시와 과학의 중간쯤에 있다고 보시고 있습니다. 서양의 철학은 어떻게 보면 시적인 측면에서 과학적인 측면으로 오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는 언어적 전환은 별 의미 없고, 철학은 끊임없이 과학화의 과정을 밟았다는 말씀으로 들리는군요.  

승계호=콰인이 그렇게 할 수 있었다면, 지금까지 형이상학적으로 해결 못한 문제들은 과학화 되면서 해결되어야 합니다.  

엄정식=근데 그 해석은 제가 볼 때는 분석철학 안에서의 해석이고, 그 중에서 특히 과학화의 경향을 쫓아가는 해석 같아요. 칸트의 '프롤레고메나'에서 “과학을 의식하지 않는 형이상학은 없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 경향은 이제 프레게와 콰인한테 이어졌고, 전부 과학화의 과정이었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현대 철학의 과정을 보면 후설과 사르트르와 데리다로 이어지는 그런 흐름도 있습니다. 그것도 중요한 흐름이었고, 그것은 한마디로 반과학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분석철학 내에서도 과학을 의식했지만, 철학은 과학과 다르다는 논의도 있습니다. 논리학을 형식과학이라고 할 수 있지만, 자연과학이라고 할 수는 없지요. 또 비트겐슈타인도 어떤 의미에서든 철학은 과학과 다르다고 했는데, 선생님은 그런 흐름을 과소평가 하는 것이 아닐까요?  

승계호=재미난 질문입니다. 현상학은 원래가 반-과학이 아닙니다.  

엄정식=그것을 넘어서고자 한 것이죠.  

승계호=그게 중요합니다. 사실은 데리다가 나온 이유가 과학주의를 추구하면서 나왔습니다. 과학화를 의식한 것이지요.

엄정식=그러면 앞으로 현대철학은 어느 방향으로 갈 것으로 생각하세요?

승계호= 실천적이라는 것은 어떤 철학이든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문학도 마찬가지입니다. 과학은 완전한 이론을 추구하지는 않고 가설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런 점에서 완벽한 설명은 형이상학이지 과학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엄정식=참, 공개강연에서 다루실 심신(心身) 문제와 관련해서 한 말씀 더 드리고 싶은데요. 저는 오랫동안 인격체적 ‘자아’의 문제에 고심해 왔습니다. 그런데 특히 지난 10여 년 동안 이른바 ‘공동체적 자아’의 가능성에 관해 연구해왔습니다. 인격적 자아를 담론에 끌어 들였을 때 인격체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듯이 여기서도 공동체를 더 잘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승계호=저도 엄 교수의 의견에 전적으로 찬동합니다. 인격체는 어떤 의미로 하나의 공동체이고 그러한 관점에서 가족이나 민족, 국가 같은 공동체에 자아를 담론의 전제로 도입하는 것은 무리가 없다고 봅니다.

엄정식=사실 저는 이 개념은 현대 한국의 역사적 현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일제의 식민통치 기간에는 ‘민족적 자아’의 마멸을 시도했다고 볼 수 있고 지금의 분단시대는 이 자아의 분열을 획책한다고, 그리고 통일은 바로 이 자아의 회복을 의미한다고 해석 할 수 있지요.

승계호=흥미 있는 발상입니다. 그러한 발상과 개념의 구체화는 조국의 현실을 철학적 관점에서 조명하는 데 좋은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엄정식=선생님을 비롯해서 외국에서 철학을 하는 분들은 대부분 한국적 현실과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그렇게 하기가 어렵습니다. 한반도에서는, 특히 남한에서는 동서와 고금이 심층적으로 만나고 있기 때문에 철학하기에는 최적의 풍토를 조성한 셈이거든요.

승계호=그러면 한국에서 훌륭한 철학자가 나타나기를 기대해도 좋겠군요.

엄정식=긴 시간 동안 감사합니다. 내년에 서울에서 개최될 ‘세계 철학자 대회’가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게 될 것입니다. 많이 지원해 주십시오. 자주 오셔서 현대 한국 철학의 형성에 적극적으로 기여해 주시기 바랍니다.

승계호=감사합니다.

엄정식=우리 이야기들이 많은 분들에게 좋은 메시지를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07. 06. 13.

P.S. 승계호 교수의 책으론 정치철학서로 분류되는 <직관과 구성>(나남, 1999)이 진작에 번역돼 있다(분량 때문에 미뤄둔 책이었지만 나는 저자의 이번 방한을 계기로 구입했다). 존 롤즈의 <정치적 자유주의>(동명사, 1999)와 함께 지난 1993년에 출간된 이 분야의 '문제작'이란 평판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마늘빵 2007-06-13 17:55   좋아요 0 | URL
엇 이 분의 책의 주제가 그럼 정의론, 자유 이런 쪽이란 말씀인가요? 음.

로쟈 2007-06-14 13:34   좋아요 0 | URL
예, 정치철학을 다룹니다. 롤즈와 '맞장'을 떴다고 소개돼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