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훈과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의 대담(http://www.hani.co.kr/arti/society/media/209332.html)을 아침에 전철에서 읽었다. 전철역으로 가는 버스에서는 이미 김훈의 <남한산성>(학고재, 2007)을 읽고 있던 참이었다. 지면으로 읽기 전에 온라인에서 대담을 훑어보았고 소설을 읽는 일도 더는 미루기가 어려웠다(그의 다른 장편들을 정독하지 않은 상태이지만 <남한산성>은 기대보다 재미있다. 특히 청나라를 세운 칸이 조선 임금에게 보낸 국서는 명문(?)이다. 설마 자료가 남아 있는 것인지?). 한겨레가 창간 기념호에 두 사람을 불러모은 건 한때 두 사람이 한 솥밥을 먹은 '입사 동기'라는 이유에서이다(이 또한 '한국인 코드'이다!). 그런 사정이 아니라면, 그냥 '자전거 레이서와 택시 운전사의 대담'이 더 어울릴 만한 타이틀이다('자전거 레이서가 택시운전사를 만날 때'라고 제목을 잡았다가 다시 돌려놓았다). 광고나 소제목들이 눈에 거슬려서 기사는 나대로 재편집했다.  

한겨레(07. 05. 15) 입사 동기 김훈-홍세화 6시간 대담

<한겨레>는 창간 19주년을 맞아 소설가 김훈씨와 홍세화 기획위원의 대담을 마련했다. 두 사람은 남다른 인연을 지니고 있다. 2002년 2월 김훈씨가 <한겨레> 편집국 부국장 대우 사회부 기동팀 취재기자로 입사했으며, 홍세화씨 역시 편집국 부국장 겸 편집위원으로 입사했던 것. 그러니까 두 사람은 ‘입사 동기’인 셈이다. 물론 김훈씨는 2003년 1월 20일자로 사직했고, 홍세화 위원은 정년퇴직 이후에도 기획위원으로 계속 신문사에 몸을 담고 있다. 홍 위원이 우리 사회의 기준으로 보아 ‘진보’에 해당한다면 김훈씨는 보수적인 세계관을 지닌 이로 알려져 있다. 인간과 세계를 보는 눈이 상극에 가까울 정도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궁금하고 솔직히 걱정도 됐지만,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둘의 이야기는 활발했고 흥미로웠다. 대담은 9일 오후 서울 신문로의 한 야외 찻집에서 시작됐으며 찻집이 문을 닫은 뒤에는 인사동의 음식점으로 자리를 옮겨 밤 늦게까지 이어졌다. 김훈씨의 근작 소설 <남한산성>을 막 읽고 난 홍 위원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홍: “<남한산성>을 잘 읽었습니다. 그 소설 속 상황을 한·미 자유무역협정과 관련해서 이해하는 이들도 있다는데, 저는 거기에는 별로 동의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냥 쉬운 이야기부터 하죠. 김 선생의 경우에는 글이 어디에서 나옵니까?”

김: “글이요? 글쎄요. 저는 사실 글을 쓴다는 일에 대해서 아주 잔혹한 훈련을 받은 사람이에요. 제가 글을 쓰는 것은 아직도 내가 내 자신을 훈련시키는 방식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죠. 글에서, 말하자면 예술가로서의 자유 같은 건 저에게 일체 없는 거예요. 이것이 저에겐 노동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죠. 밥을 벌어먹는 노동이기 때문에 그건 끔찍한 일이 될 수밖에 없는 거죠.”

홍: “뭐, 저에게도 글쓰기가 비슷한 밥벌이의 수단인 건 사실인데, 꼭 그것만은 아닌 것 또한 사실이죠. 역시 글이라는 것이 가지고 있는 소통의 문제를 무시할 순 없다고 봅니다.”

김: 저도 홍 선생께서 쓰신 책을 많이 봤는데, 역시 지금 말씀하신 소통의 문제, 소통을 통해서 세계를 개조하려는 열망, 그런 것들을 읽을 수 있었어요. 근데 글이 세계를 개조하는 수단이라고 말한다는 것은 매우 아득하고 신뢰하기가 어렵고 위태로운 말처럼 들리기도 해요. 그것은 글을 쓰는 자들의 절망적인 답답함인데, 무기는 세계를 개조하잖아요? 미국의 무기는 오늘 아침도 이 세계를 정확하게 때려부셔가지고 개조해 버리는 것이죠. 그 개조의 방향이 옳든 그르든 간에 그네들의 이익에 맞게끔 세계를 개조하는 것이죠. 근데 말이 세계를 개조한다는 것은 거기에 비하면 참 아득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것이죠. 나는 ‘펜이 칼보다 강하다’는 말을 안 믿는 사람이에요.”

홍:지금까지 사람이 살아온 과정을 볼 때 지금 하신 말씀이 사실이라고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수, 그러한 현실에 저항해 온 사람들에 의해서 그나마 지금과 같은 정도의 이성적인 사회가 가능하지 않았겠느냐 하는 게 제 생각입니다. 인간은 물론 전쟁을 일으키는 도구적 이성의 소유자임에 틀림이 없지만, 동시에 성찰적 이성 역시 지니고 있어서 그걸 토대로 부당한 현실을 상대로 한 싸움을 계속해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고 글쓰기 작업도 그런 것의 하나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두 사람 다 글을 써서 밥을 먹고 사는 이들. 그러나 개인적인 글쓰기의 동기, 그 바탕을 이루는 세계관에서는 현격한 차이를 보였다. 탐색전을 생략한 채 득달같이 일합을 겨룬 느낌이었다. 과열된(?) 분위기도 식힐 겸 두 사람의 성장기에 관한 이야기로 화제를 돌려 보았다. 홍 위원이 1947년 12월생이고, 김훈씨는 1948년 5월생이어서 두 사람은 5개월여의 시차를 두고 같은 서울에서 태어나 성장했다. 김훈씨가 일곱 살에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두 사람은 같은 학번이 되었는데, 초중고등학교와 대학교에 이르도록 한 번도 같은 학교에서 만나지는 않았다.

김: “제 어린 시절은 가난과 억압뿐이었어요. 전쟁이 나자 부산으로 피난을 갔다 왔는데 거기서 좀 자라서 왔어요. 거기서 미군이 철조망 너머로 던져주는 껌과 초콜렛을 얻어먹었죠. 대학 들어갈 무렵 나와 내 친구들의 꿈은 오직 하나였어요. 밥을 먹는 것. 밥. 밥을 좀 먹는 나라를 만들어서, 도대체 밥 세 끼를 좀 먹고 살아야겠다는 소망이 있었어요. 간절한 소망이었죠. 우리는 고조선때부터 그 시대까지 밥을 못 먹었어요. <삼국사기> <삼국유사>에 보면 해마다 굶어죽은 놈이 수만명씩 나오잖아요. 그리고 우리 어렸을 때도 해마다 보릿고개만 되면 굶어죽었어요. 우리 정부의 행정구호가 ‘기아퇴치’였다고, 기아퇴치. 밥을 먹는 나라를 만들려는 게 우리들의 비통한 소망이었지. 근데 우리는 밥을 먹는 나라를 만드는 데 성공했어요. 그러니까 그 시대의 박정희 대통령이 밥을 먹는 나라를 만든 것이고 우리는 그 밑에서 노예처럼 일했어요. 마소처럼 일하고 개처럼 짓밟히면서 일해가지고 밥 먹는 나라를 만든 거예요.”

홍:전후의 상황이라는 게 대부분이 가난했고 저 역시 거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어요. 그나마 조금 나은 축에 속한다고 할까. 고등학교 때까지의 생각은 어떻게 하면 공부를 잘해서 빨리 출세를 하나 하는 것이었죠. 처음에는 영어보다 수학을 잘해서 이과를 갔고 공대에 들어갔는데, 바로 대학 들어간 해에 한국 현대사에 대해서, 내 가족이 6.25 당시에 어떤 상황에 놓여 있었던가를 통해서 되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있었어요. 아까 ‘기아퇴치’라고 하셨는데 전 그에 관한 기억은 별로 없고 대신 학교 담벼락마다 붙어 있었던 ‘반공방첩’이라는 구호가 아주 강력하게 남아 있어요. 저 역시 고등학교 때까지는 그 구호를 저의 가치관으로 받아들였는데, 대학에 들어가면서 그 가치관이 붕괴되고, 그래서 공대고 뭐고 다 재미없어지고 방황하게 된 시기가 바로 20대 초반이었어요.”

김:전 대학 졸업을 못했어요. 영문과를 다니다가 중퇴를 해버렸는데, 그리고 다시는 대학에 들어가지 않았고. 내가 그때 학교를 그만둔 것은 돈이 없어서였어요. 등록금이 없어가지고. 그런데 지금 밥 얘기를 더 하자면, 밥을 먹는 세상을 만들어 놨는데 그 과정에서 우리는 수많은 악과 억압과 비리를 저질러 가지고, 그것이 지금 우리 사회 바닥에 깔려 있는 것이에요. 야, 밥을 먹는 것에 대한 무서운 대가가 바로 그거였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죠.

노무현 대통령은 아마 우리가 밥을 먹는 과정에서 벌어진 구조적인 악들에 도전했다가 참패하신 것 같아요. 그분이 참패한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것을 개조하고 거기에 도전하는 일은 차기 정권의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계승해 나갈 수밖에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근데 박정희, 이승만 이후로 깔려버린 구조화된 악과 억압이라는 것은 정말로 만만치가 않은 것이죠. 노 대통령 같은 낭만주의나 대중주의, 혹은 민주주의의 힘으로도 그것은 부술 수가 없는 훨씬 더 뿌리깊고 강한 구조적인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종종 하게 되었어요. 이만큼 생각한 것도 나로서는 상당히 사고가 진보된 것이죠. 그 전엔 그런 생각 안 했어요.” (웃음)

: “노무현 정부에 대해서는 조금 다른 해석이 가능할 것 같아요. 저는 노무현 대통령과 그 지배세력들이 민중이나 이런 걸 표방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명분과 실리를 같이 취하려다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고 보죠. 그것이 물론 지금까지 말슴하신 대로 축적된 모순과 60년 가까이 수구세력들이 장악하고 있는 물적 토대, 각 부문별로 결합되어 있는 문제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대한민국 국민이 변화를 요구하면서 노무현 정부를 세웠던건 사실이란 말이에요. 그리고 과반수의 국회의석도 주었고. 근데 그것이 실패로 돌아간 것은 결국 자기를 뽑은 민중을 스스로 배반한 결과라고 저는 생각하죠.”

박정희에서 노무현에 이르는 지도자들에 대한 평가에서 두 사람은 예상 가능한 차이와 뜻밖의(?) 공감대를 보였다. 두 사람이 공감대를 이룬 바탕에 <한겨레> 입사동기라는 인연이 작용한 것은 아닐까. 이쯤 해서 2002년, 두 사람이 <한겨레>에서 한솥밥을 먹던 시절로 거슬러올라가 보았다. 두 사람은 어떤 계기로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한 것일까.

김: “당시 저는 혼자 구석방에 들어앉아서 책만 읽고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내가 완전히 세상으로부터 단절된, 유령 같은 인간이 되어 가고 있구나 하는 위기를 느꼈어요. 어디론가 다시 삶의 현장으로 나가지 않으면 나 자신이 괴멸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당시 김종구 사회부장(현 편집국장)에게 찾아가서 채용해 달라고 부탁했죠. 신문사에 들어갔더니 월드컵의 대규모 거리 응원이 벌어지고, 그 다음에 효순이 미선이 사건, 이어서 대통령 선거까지 대중들의 힘의 폭발이 이어졌어요. 월드컵은 놀라웠죠. 난 그런 대중의 힘을 처음 봤어요.

대중의 힘은 매우 맹목적인 것 같기도 했는데, 효순이 미선이 사건에 이어 대선까지 그 분위기가 이어지는 걸 보면서 ‘난 다시 집으로 가야겠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내 밀실로 돌아갈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대통령이 당선되던 그 다음날 사표를 내고 <한겨레>를 떠났죠. 미선이 효순이 사건, 그것은 범죄는 아니었죠. 사고였어요. 그런데 그것을 범죄로 몰아가고 결국 반미주의로까지 끌고 나가는 일련의 흐름에서 <한겨레>는 자기의 사명을 다했죠. 그 과정을 바라보면서 ‘내 생각하고는 상당히 다른 사람들의 집단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것이 나와 <한겨레>의 큰 갈등이었어요.”

홍: “저는 프랑스에 머물다가 귀국하게 된 계기가 바로 <한겨레> 입사였어요. <한겨레>에 입사하기 위해서 귀국한 것이죠. 그런데 저는 처음 들어올 때부터 어떻게 해서든 한국 사회에 적응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했죠.”

김: “심하다, 심해.” (웃음)

홍: “미선이 효순이 사건은 말씀하신 대로 사고인 게 분명하죠. 그런데 만약 미군쪽에서 처음부터 그것에 대해서 그야말로 점령군이 아닌 평등 차원에서의 선언이나 이런 것이 나왔다면 상황이 그렇게까지 나빠지지는 않았을 거라고 봅니다. 사건이라고는 하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한·미 간의 구조적인 문제, 역학 관계에 대한 인식을 하도록 하는 데 있어서는 <한겨레>가 역할을 하는 게 마땅하다고 봅니다. 그 과정에서 어느 정도 감정적 부분을 동원한 것은 인정하지만, 그것 때문에 점령군이라는 미군의 본질이 바뀌는 것은 아니죠.”

김: “그것은 대중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결과도 되었으리라 생각해요. 효순이 미선이 사건은 앞으로도 언론의 보도와 관련해서 고통스러운 전례를 남긴 것입니다. 안타까운 사고를 계기로 미군과 미국측의 태도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은 생산적인 결과라 볼 수 있는 것이지만, 그 과정에서 대중의 이성이 매우 교란되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홍: “그것은 참 어려운 문제죠. 우리처럼 지독한 미국중심주의적 사고에 젖어 있는 사회에서 대중의 이성은 벌써 오랫동안 마비되어 온 것이 사실이거든요. 거기에서 어떻게 균형감각을 가지게 할 수 있겠느냐 하는 게 무척 어려운 지점이죠.”

김: “아까 소통에 관해 말씀하셨죠. 제가 보기에는 우리 사회의 말들이 당파성에 매몰되어 있기 때문에 사실과 의견이 뒤죽박죽이 되는 일이 많아요. 의견을 사실처럼 말해버리는 것이죠. 그리고 그것을 당파성이 지향하는 바의 정의라고 주장하는 것이죠. 그렇게 되면 언어의 소통기능은 점점 마비되고 언어는 무장하게 되는 것이죠. 무장된 언어가 사회를 막 교란하고 뒤집어엎고 있는데, 그렇게 되면 결국 말을 할 수가 없게 되는 거예요. 이것이 우리 시대 언어의 풍경인 것이죠.”

홍: “동의합니다. 예컨대 인터넷이 활성화하면서 마치 인터넷이 쌍방향간의 소통의 장이 열린 것이다 라고 하지만 저는 회의적입니다. 토론이란 자기 견해를 밝히는 것뿐 아니라 남의 견해도 들으면서 자기 견해를 수정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인데, 지금 한국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토론이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각을 확인하는 것에 지나지 않고 자기와 생각이 다르면 바로 배설해버리는 식인 것 같아요. 그것은 집단의 외피를 쓴 이기적인 개인들의 뻔뻔한 때문인 것 같아요. 집단의 뒤에 숨어 있는 개인들이 문제인 거죠. 그리고 그게 다 경제지상주의적 가치관 때문인데, 경제사회에서 문화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결국 토론과 교육, 소통에 기댈 수밖에 없지 않나 생각해요.”

김: “민주사회에서 공동체적인 가치를 위해서 개인의 이익을 양보하라고 주문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것은 이루어질 수가 없는 것이고, 개인의 욕망을 긍정하는 토대 위에서 이 사회는 이루어진 것이고 앞으로도 그렇게 전개되리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홍: “그와 관련해서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관해 조금 말해 보죠. 저는 이 문제와 관련해서도 가장 중요한 건 문화적인 측면에서 접근을 해야 하는 점이라고 봅니다. 특히 농촌의 피폐화가 걱정이에요. 우리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있나, 자유무역협정이 발효되면 그야말로 무서운 변화가 올 수도 있는데, 그런 부분들에 대한 성찰이 너무 부족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죠.”

김:저는 한 나라는 이념이 아니라 이득을 추구해야 맞다고 생각합니다.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국가의 도덕성이라고 생각해요. 국가가 이익을 이행하는 것은 도덕적인 일은 아니죠.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부도덕한 일도 아닙니다. 그런 것은 도덕이나 부도덕을 말할 수가 없는, 본래 스스로 그러한 것이다, 저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이득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는 참 따지기 어려운 것이죠. 나는 우리 정부가 그것이 결국 이득이 되게끔 앞으로 그걸 헤쳐 나가야 하고 그 이득이 제발 국민 각계각층에 골고루 미치는 이득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죠.

난 자유무역협정은 잘했다고 생각해요. 자유무역협정이 체결된 다음에 <한겨레>가 노무현 대통령의 이념의 일관성을 집요하게 시비한 적이 있었어요. 노무현이 자유무역협정을 추진했는데 이것은 진보의 일관성이 있는 것이냐 없는 것이냐를 따지는 것은 참 무의미한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전 그런 기사가 나올 때 <한겨레>를 좋아하지 않아요. 다만 농민이라는 한 계층 전체를 희생시키면서 이걸 추진한다는 것은 참 무리하고 부당하고 부도덕한 측면이 조금 있어요. 그에 대해서는 정부의 정책적 배려가 있어야 마땅하죠.”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와서 다시 부딪쳤다. 얘기가 다시 격렬해지려는 참에 마침 찻집이 문을 닫을 시간이 되어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커피 대신 적포도주가 곁들여지면서 좀 더 솔직하고 내밀한 이야기들이 오갔다. 두 사람은 음식을 앞에 두고 다시 배 고팠던 지난 시절을 회고한 다음, 요즘 젊은이들이 소중한 청년기를 너무 소홀히 보내는 것 같다는 데에서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그러나 2002년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를 찍었다는 김훈씨가 노무현 정부에 대한 기대를 표한 것은 다소 뜻밖이었다.

김: “저는 노무현 대통령께서 정말 약자의 편이 되기를 바랐어요. 전 노 대통령 치하에서 세금 많이 냈습니다. 세금 낼 때 기분이 좋았어요. 얼마나 기분 좋은 일입니까. 책을 써서 인세를 받아서 세금을 많이 낸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었어요. 저는 의료보험도 많이 냈어요. 우리 시대의 분배에 기여한다면 정말 좋은 일이죠. 그런데, 신문 보니깐 아니더라고. 강남의 성형외과 의사, 소득세 50만원 올렸다고 시위하고 말이죠. 우리나라 조세정책은, 대통령의 리더십은 거기서 망가지는 것 같더라고요.”

홍: “그렇게 당연히 사회에 내놔야 되는 사람들이 정작 내놓지 않는 그 문제에 대해서 당연히 분노해야 되는 것이죠.”

김: “저 분노하고 있어요.”

홍: “분노의 방식이 문제인데요. 분노가 어떻게 표현되고, 어떻게 바꿔나갈 수 있느냐 하는 문제요.”

김: “그건 권력이 해야죠. 정치권력이.”

홍: “한국과 같은 천박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의 이익을 대변하는 거대 언론과 기득권 세력이 버티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정치권력이 그런 일을 순조롭게 하리라고 믿는 건 너무 순진한 생각 아닐까요?”

김: “무슨 말씀인지 알겠는데, 저는 <한겨레>가 기본적인 객관성을 가지길 바랍니다. 부는 악이고 빈이 선이다, 라는 이분법을 버려야죠. 노동은 선이고 자본은 악이다, 그런 이분법적 정서가 있는 거잖아요. 전 그렇게 생각 안해요. 지금 한국 노동의 문제는 노동세력 타락의 문제예요. 노동귀족들의 타락에 국민들은 절망하고 있죠.”

홍: “그걸 과연 노동귀족들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가 있구요. 또 하나, 한국 사회에서는 타락할 권리가 있는 사람과 타락할 권리조차 없는 사람으로 나뉘어진다고 봅니다. 어느 자리에 서면 다 타락합니다. 타락하게 되어 있어요.”

김:홍 선생의 전공이 ‘똘레랑스’입니다만, 똘레랑스라는 건 본래 보수주의자의 것이었어요. 우리가 빼앗긴 거죠. 보수주의의 관용 안에서 많은 걸 해결할 수 있고 사회가 발전할 수 있는 힘이 있었다구요. 그런데 그걸 놓친 거예요. 보수주의자가 타락해서 자기 기득권만 방어하면 된다, 이런 식이 되면서 망하게 된 거죠.”

홍: “‘똘레랑스’의 어원 자체가 참는다는 뜻이기 때문에, 그것을 관용이라고 하기보다는 용인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차이를 받아들인다는 거죠. 가장 정확한 것은 사자성어 ‘화이부동’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똘레랑스’를 이야기하면서 가장 기본적으로 생각했던 것은 바로 수구세력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앵똘레랑스에 대한 반대라는 측면이었습니다.”

김: “저는 우리 현행법에 모든 정의와 개념이 있다고 생각해요. 법치주의를 완성해야 합니다. 법치주의의 틀 안에서 ‘똘레랑스’도 이루어질수 있다고 봅니다. 법치주의를 깨자고 들면 곤란하죠. 인간이 평등하다는 것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것이죠. 인간의 능력이나 경제적 처지가 평등하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거죠. 다만 법률 앞에 평등해야 하는 것 아니겠어요?”

홍:김 선생과 저는 사회를 관찰하고 해석하고 데에서는 많은 부분 일치하는데,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 하는 데에서 갈라지는 것 같아요. 말씀하신 대로 우리 사회에 힘의 논리가 관철될 때 기본적으로 그 힘은 법에 의해 규제되어야 하는 것인데, 그 법조차 힘의 논리에 의해서 왜곡되고 있다는 것이죠. 그리고 앞서 부와 빈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한겨레> 논조가 부는 악이고 빈은 선이다, 그런 것은 아니죠. 그것은 지금 한국사회에서 빈곤이 죄악시되고 있는 것에 대한 반사물이라고 봅니다.”

김:가난은 탈피할 대상이지 장려 대상은 아닙니다. 옹호할 가치는 아니죠. 가난에 선의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도덕적으로 우수한 것은 아니에요.”

홍: “우리가 공화주의를 지향한다고 할 때, 그 핵심이라 할 애국주의는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요. 한 사회에서 그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내가 위함을 받았다는 경험 때문이 아닐까요. 한국에서는 그런 경험이 없죠. 끝없이 관리통제의 대상이 될 뿐이죠. 자발성이 없는 거예요. 이를테면 무상교육 얘기를 해 보죠. 그것은 단순히 가난한 사람들에게 교육자본 형성 비용을 사회가 대준다는 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하여 계층간 연대와 세대간 연대가 이루어진다는 데에 핵심이 있는 겁니다. 소득이 많은 사람이 소득이 적은 사람의 비용 대주는 것이 계층간의 횡적연대라면, 그렇게 해서 얻은 것을 가령 국민연금 같은 형태로 돌려주는 것은 세대간의 종적연대라 할 수 있는 것이죠. 나로 하여금 경제활동을 할 수 있게 해준 윗세대가 은퇴할 때 그들에게 지금의 경제활동 인구가 받은 것을 되돌려준다는 것이 가능하다는 거죠.”

식당 역시 문을 닫을 시간이 되었다. 이야기를 시작한 지 벌써 여섯 시간이 훌쩍 넘었다. 두 사람은 여전히 자신이 보는 세상과 <한겨레>에 대해 열변을 토했지만, 초반과 같은 팽팽한 긴장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포도주로 불콰해진 얼굴로 마주 앉은 두 사람은 오랜 친구처럼 보였다. 김훈씨가 대담을 마무리하는 발언을 했다.

김: “저는 사실 이 자리에 나오기 전에 우리 둘이 매우 다른 줄 알았어요. 그런데 말을 나누어 보니 기본은 같다는 걸 알았어요. 그런데 방향은 정말 달라졌네요. 그도 그럴 것이 삶의 여정이 매우 달랐잖아요. 그런 만큼 서로를 더 존중하고 긍정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무엇보다 우리의 마음의 바탕이 천진해야 해요. 천진성이 있어야죠. 천진성이라는 게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 거잖아요?”(정리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김훈-홍세화 특별한 만남

김훈씨는 <한국일보> 기자와 <시사저널> 편집국장 등을 거쳐 <한겨레>에서 사회부 경찰 출입 기자로 일했다. <칼의 노래> <현의 노래>에 이어 최근 새 장편소설 <남한산성>을 발표해 서점가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이상문학상, 동인문학상 등을 받았다.

홍세화 기획위원은 오랫동안 프랑스 파리에 머물다가 2002년 한겨레신문사 입사를 계기로 귀국했다. 편집국 부국장 겸 편집위원으로 있다가 정년퇴직한 뒤, 지금은 기획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 등의 시평집을 냈다.

07. 0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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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 2007-05-15 20:32   좋아요 0 | URL
가져갑니다.

jouissance 2007-05-15 22:19   좋아요 0 | URL
여하튼 홍선생이 말하는 방향이 맞다고 봐야겠죠. 그런데 왜 자꾸 김선생이 뇌까리는 말들이 귀에 들어 오는지 모르겠네요. 홍선생이 말들이 너무 뻔하게 들려서 그런가? 간만에 흥미로운 대담이군요('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합니다'에서 잠시 긴장했습니다. 아마 쎄게 부딪친 부분은 거의 편집했겠지요. '무엇보다 우리 마음의 바탕이 천진해야 해요. 천진성이 있어야죠'라는 마지막 멘트는 무엇보다 저에게 아주 쎄게 부딪쳐 오네요;;;) 득달같이 퍼갑니다^^

로쟈 2007-05-15 23:14   좋아요 0 | URL
저는 (이회창이 아닌) 노무현을 찍었었지만, '김선생이 뇌까리는 말들'에 더 공감합니다(홍선생의 말은 녹음기를 틀어놓은 것 같습니다). '펜이 칼보다 강하다'는 말을 저 역시 안 믿기 때문이고, '좌파적 말빨'들을 혐오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항상 '부실한 친구'보다는 '깐깐한 적'으로부터 더 많은 걸 배울 수 있고 배워야 합니다...

biosculp 2007-05-16 10:36   좋아요 0 | URL
홍선생의 말대로 경험이 없고 자발성이 없는데.
그럼 이것을 외국은 이러니하고 가르키고, 세금걷어 행하면 다 끝나는것인지 의문이 듭니다. 더군다나 그 세금을 걷는 과정에서 당위때문에 현실은 웃기는 꼴을 만들고요.
거제도나 울사같은 대규모 공단은 현지 한국평균보다 더 높은 소득을 올리고 있고 노동자들이 많지만 그곳에서 현재 한국사회에서 만연한 학벌이나 기득권층을 대체할 아니 뭔가 다른 연대의 시도라고 있는지. 신문만 보고 살아 그곳사정을 모르는것도 있지만 거의 없는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yoonta 2007-05-16 14:28   좋아요 0 | URL
김훈씨의 현실분석은 저도 그럭저럭 수긍할만하고 홍세화씨도 의견이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김훈씨 스스로도 "저는 사실 이 자리에 나오기 전에 우리 둘이 매우 다른 줄 알았어요. 그런데 말을 나누어 보니 기본은 같다는 걸 알았어요. 그런데 방향은 정말 달라졌네요"라고 말하고 있으니까요.
문제는 그렇다면 그의 입장에서 무슨 대안이 이야기 될수있느냐는 겁니다. 홍선생은 비록 이상적으로나마 앞서 말한 현실분석에 기초하여 어떤 대안을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이죠. 반면 김선생은? 그냥 딴지 거는 것으로 밖에는 안보입니다.
홍선생은 속으로 이럴껍니다. "그래서 뭐 어쩌자구? -_- "

"법치주의의 완성" 이런 나이브한 이야기정도 밖에 하지 못하는게 김훈식의 현실론이자 대안이죠. 헌법공부 한번이라도 해보면 저런 이야기 못합니다. 제가보기에 김훈은 정치에 무지한 사람입니다.

pax 2007-05-16 16:27   좋아요 0 | URL
소통을 안믿으시는 분이 법치주의는 믿으시는군요...

로쟈 2007-05-16 17:05   좋아요 0 | URL
법치주의를 믿는다는 게 현행법의 완벽성을 믿는 것과는 다른 것이죠(법이란 개선돼 가는 것이니까요). 의회란 입법기관인데, 법에 대한 부정이라면 좌파 의회주의에 대한 부정이기도 하겠습니다. 그런 입장이 가능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렇다면 '법 바깥'에 국가를 세우는 건가요? 그 경우에 말 그대로 무정부주의적인 포지션만 가능하겠죠. 그런 포지션에서 말씀하시는 거라면 인정할 수 있습니다. 그것의 '현실성'에 대해선 부정적이지만...

yoonta 2007-05-16 18:23   좋아요 0 | URL

"저는 우리 현행법에 모든 정의와 개념이 있다고 생각해요. 법치주의를 완성해야 합니다"

김훈씨는 위 본문에서 분명 "현행법"의 완성을 "법치주의의 완성"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로쟈 2007-05-16 19:04   좋아요 0 | URL
제 생각이 김훈과 완벽하게 일치하는 건 아닙니다(저는 공감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말하는 현행법은 기본적으론 '헌법'을 말하는 것이죠. 그건 상식적으로 얘기되는 것 아닌가요? 헌법이 정한 가치의 수호니 정의의 구현이니 하는 것 말입니다. 그런 건 김훈만의 독불장군식 견해가 아닙니다. yoonta님이 원하는 건 '다른 법'인가요(그러니까 다른 '법치주의'), 아니면 '법의 바깥'(소위 지도자 통치? 아니면 자율?)인가요?..

virtuepeak 2007-05-16 20:30   좋아요 0 | URL
현행법이라는 단어가 나왔다고 바로 법실증주의나 결단주의로 연결짓기는 어려워 보이는 문맥 같습니다. 법률이 정한대로 행동해야 한다는 주장이라면 그 법이 '완성'될 여지도 없겠지요.

yoonta 2007-05-17 00:54   좋아요 0 | URL
로쟈님/네..그러니깐 적어도 위의 구절에 대해서는 "일치"하지는 않으신다는 말씀이시군요. 저는 "다른 법"을 이야기한다라기보다는 "법도 변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겁니다. 헌법을 포함한 "현행법"자체도 필요에 따라서는 달리 해석할 필요가 있고 때로는 수정하거나 폐기 되어야 하기 때문이지요. 김훈씨가 "법치주의의 완성"을 이야기하는 것의 배경에는 아마도 대중들의 몰지각함을 강조하고 지도자의 카리스마와 영도력을 대안으로 삼는 그의 "정치"에 기인하는 것 같습니다.

영혁님/ 물론 그가 "법실증주의"랄지 "결단주의" 혹은 "동화적 통합이론"등을 배경에 깔고 "현행법"이나 "법치주의의 완성"을 이야기한 것은 아니겠죠. "법 앞에서의 평등"이라는 상식적 관점 내에서의 법치주의의 실현 정도를 이야기하는 것같은데요. 문제는 그럼 법자체가 잘못될 경우에는 어떻게 하느냐라는 질문을 받을때 그가 무슨 답변을 할수있느냐인데..그때에도 아마 김훈씨는 "남한산성에 갖혀서 청이라는 절대권력 앞에서 절망하며 고뇌하는 최명길의 현실적 선택"을 할꺼라는 생각이 든단 거죠.

로쟈 2007-05-17 01:04   좋아요 0 | URL
'지도자의 카리스마와 영도력'이란 게 법치주의의 함의인가요? 그건 새로운 법치주의의 발명 같은데요. 더불어, 법이 변한다는 것 역시 그냥 상식으로 보입니다. '현행법'이라는 게 불변의 법을 얘기하는 건 아니니까요. 다만 그 법의 수정/개정/개선 또한 법에 명시된 절차를 따른다면 법치주의에 위배되거나 모순되는 게 아니죠. 법 개정에 '다른 방법'을 염두에 두고 계신 게 아니라면...

yoonta 2007-05-17 01:25   좋아요 0 | URL
윗 구절은 사실 너무 짭은 구절이어서 자세히 그가 말한 "현행법" 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기가 힘드네요. 앞에서 홍세화씨와 효순이와 미선이 이야기를 하면서 그는 대중들의 교란가능성을 강조합니다. 결국 그런 혼란을 막을수있는 것은 "법"으로 표현되는 "권위"와 같은 법치주의적 질서 밖에 없고 그렇기 때문에 "현행법"만 잘 작동되는 것만으로도 다행이 아닌가 라는 정도로 그의 생각을 이해했는데요. 저는 "현행법"의 사전적 혹은 법률적 의미보다는 그 행간을 보는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저는 그의 "현행법"강조를 "지도자의 카리스마"와 한번 연결시켜 보았던 겁니다. ^^

그리고 사실 보통 "현행법"이라고 말하면 그것의 "개정이나 수정가능성"까지 포함해서 이야기하지는 않지 않나요?

로쟈 2007-05-17 01:30   좋아요 0 | URL
행간 읽기라고 하신 '지도자의 카리스마'는 yoonta님의 상상력이라고 해두겠습니다. 그리고 현행법에 대해서 만약 김훈이 그런 취지로 이야기한 것이라면 법물신주의라 할 만하고 저와는 다른 견해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yoonta님이 너무 제한적으로 이해하신 거구요...

virtuepeak 2007-05-17 02:54   좋아요 0 | URL
yoota님께서 읽으신 행간을 염두에 두고 법치주의가 언급된 부분을 읽으니 그렇게 보여지기도 합니다만, 상식적인 수준에서 법치주의를 말한 것이라고 여기는 게 더 적합해 보입니다. 김훈은 절대적인 권력 앞에 굴복하는 일을 어쩔 수 없다고 여기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런 권력을 추종하거나 그런 권력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봅니다만...

아마 김훈은 잘못된 법도 개정되기 전까지는 따라야 한다고 말할 것입니다. 시사저널 사태를 두고 한 인터뷰에서 김훈씨가 만약 편집국장이었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에 생각을 좀 하다가 그래도 결호를 낼 수는 없다는 대답을 했었지요. 그러나 그 잘못된 법을 고칠 수 없다고 말하지는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yoonta 2007-05-17 10:43   좋아요 0 | URL
뭐 어쨋든 2002년당시 "법대로"를 외치시는 이회창을 찍은 그이므로 저는 "현행법"의 김훈씨도 이회창과 그닥 다르지 않은 법감정을 가진것으로 자꾸 생각되네요. 위의 카리스마 이야기는 분명 저의 상상력이긴 합니다만 "현행법"처럼 오해의 소지가 많은 용어를 저렇게 쉽게 발설할수 있는 것을 보면 분명 그의 "법감정" 내지는 "정치"에는 문제가 많아 보입니다.
 

'사진으로 보는 러시아의 20세기' 연속이다. '소련 공산당 정치가'란 타이틀을 달고 있는데, 역대 공산당 서기장들의 면면을 확인할 수 있다. 흐루시초프부터 옐친까지인데, 옐친만이 '서기장'이란 타이틀에서 열외이겠다. 대신에 그는 대통령이었다... 

한겨레(07. 05. 14) 사진으로 보는 러시아의 20세기 ③-1 소련 공산당 정치가

» 니키타 흐루시초프. <북폴리오> 제공
» 니키타 흐루시초프. <북폴리오> 제공
니키타 흐루시초프 = 니키타 흐루시초프가 1963년 다차 정원에 앉아 있고 그 옆으로 정치국원들이 보인다. 감성적이고 간혹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낸 흐루시초프는 1956년 스탈린 체제에 맹공을 가했다. 수백만 명이 강제수용소에서 풀려나거나 사후에 명예를 회복했다. 그러나 흐루시초프는 소련의 신념체계에 의심을 품지 않았으며, 1956년 봉기에서 공산주의 체제를 제거하려 한 헝가리인들을 야만적으로 진압했다. 1963년 흐루시초프를 대신하게 될 레오니드 브레주네프가 떨어져 걷고 있는 모습이 사진에 보인다. 흐루시초프는 불같이 화를 낼 때도 있었지만 명랑하고 쾌활한 성격을 지녔고, 예전의 당 지도자들에게는 없었던 대중에 영합하는 재간도 있었다.

» 니키타 흐루시초프. <북폴리오> 제공

» 브레주네프. 사진/V. 무사옐랸. <북폴리오> 제공
브레주네프 = 다차에서 손녀와 함께 있는 가정적인 인물 브레주네프. 농촌과 숲 속에 있는 이런 집들은 노멘클라투라의 큰 특권 중 하나였으며 서열이 높을수록 크기가 더 커졌다. 스탈린은 모스크바 외곽에 수수한 목조 다차를 가지고 있었다. 브레주네프는 다섯 채를 가지고 있었는데, 하나는 크림에 있는 차르의 리비디야 궁처럼 그루지야의 흑해 연안에 있었다.

» 미하일 고르바초프. 사진/J. 토레가노. <북폴리오> 제공
미하일 고르바초프 = 붉은광장의 레닌 영묘 위에 서 있다. 야심 많고 카리스마가 뛰어났던 고르바초프는 여전히 공산주의자였고 당의 죽음을 주재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결국 자신의 관용에서 분출된 힘에 희생당한 마지막 소련 지도자가 되었다.

» 보리스 옐친. 사진/G. 핀하소프. <북폴리오> 제공

보리스 옐친 = 대통령인 그의 권위는 건강 악화와 급작스러운 수상 경질, 불규칙적인 공식 석상 등장 등으로 서서히 무너졌다. 거의 종말에 가까운 경제 몰락, 국내 분리주의자들, 해외 영향력 붕괴 같은, 그가 안고 있는 문제들은 끔찍하였고 비정상적인 대응은 문제들을 더욱 악화시켰다.(<북폴리오> 제공 )

07. 0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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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 학교 가는 길에  이번주 필름2.O과 오늘자 경향신문을 사서 읽었는데, 기획연재물인 '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  말고 눈길을 끈 기사는 '왜 책을 읽는가'였다. 왠지 답을 달고 싶어하는 것이 아마도 지난주 '독서문답'의 '후유증'이 아닌가 싶다.  

경향신문(07. 05. 14) 왜 책을 읽는가

“50여년 전 이야기이다. 어떤 박문(博文)·다식(多識)으로 자부하는 이가 있었다. 그는 고금의 어떤 저적(著籍)이고 그 내용을 모르는 것이 없다는 듯이 설명했다. 홍명희 벽초옹은 그를 평하여 ‘아무개는 남의 서문만 읽어 행세하는 친구였지’ 하곤 했다. 이는 남의 ‘서(序)’만을 읽고 그 원전을 독파한 듯이 행세하는 얕은 지식의 소유자들에게 일퇴를 내린 것이다.”


7년전 타계한 연민 이가원 선생이 ‘한국의 서발(序跋)’ 머리말에 쓴 글이다. 물론 책의 서문만 읽고 다 읽은 듯이 행세하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이다. 선생은 “이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완벽한 지식을 획득하려면 ‘서(序)’의 번역이 있기 전에 그 원문이 있고, 원문이 있기 전에 그 원전(原典)이 없지 않음을 잠시라도 잊어서는 아니 될 것”이라며 문집의 서·발문을 번역한 것은 책의 원문 읽기에 나아가기를 권면하기 위한 것임을 밝혔다.



오래전에 사둔 책을 다시 펼친 것은 ‘책읽기’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서다. 사실 요즘만큼 책읽기가 운위되는 때도 없는 듯하다. 언론사·시민단체 등이 잇따라 캠페인을 벌이고, 그 때문인지 기업체·지자체·관공서에서 독서 열풍이 일고 있다고 한다. 좋은 일이다. ‘개권유익(開卷有益)’. ‘책은 펼치기만 해도 이익이 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독서 캠페인으로 책읽는 풍토가 확산되고, 나아가 위기에 처한 활자문화까지 일으켜 세운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

이쯤에서 물어보자. “왜 읽느냐?”고. ‘책은 마음의 양식이니까’ ‘삶의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 ‘지식과 정보를 얻기 위해서’…. 많은 대답이 돌아온다.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라고 반문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모두 틀린 대답은 아니다. 그러나 어디에서 많이 듣던 말들이 아닌가.

그렇다. 책읽기에 대한 문제의식이 자신의 것이 아니듯, 지금의 열기는 책읽는 사람 자신이 아닌 외부로부터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책읽는 사람의 대부분은 스스로가 필요성을 느끼고, 손수 책을 고르며, 책읽기의 방법을 터득해 가는 게 아니다. 혹시 누군가가 꾸며준 서재에서, 남이 공짜로 보내준 책을 생각없이 읽고 있는 것은 아닌지….

너는 얼마전 한 인사가 “기사를 정독하다 보면 한 권을 다 읽은 듯한 효과를 얻을 때도 있다”고 말한 인터뷰를 접하고 의아해 했다. 그 인사는 신문 서평기사를 읽으면 도움이 된다는 뜻에서 한 말이겠지만, 앞서 벽초가 비판했던 ‘서문’만을 읽는다는 ‘아무개’가 떠오른 것은 왜일까. 서문이 고전의 원문을 다 말해주지 않은 것처럼, 어떤 서평기사도 책 전체의 내용과 아우라를 전해줄 수는 없다. 서평은 서평일 뿐, 중요한 것은 책과 씨름하는 일이다.

작금의 독서 캠페인의 열기를 받아들인다고 할 때, 우리에게 먼저 필요한 것은 ‘왜 읽는지’에 대한 철학을 갖는 일이다. 대한출판문화협회 통계에 따르면, 2005년 한해 출협에 납본된 신간은 4만3586종이었다. 하루 평균 120종의 새 책이 쏟아진다는 얘기다.

지천으로 깔려있는 게 책이지만 ‘책읽기’의 철학을 다룬 서적은 찾기 힘들다. 한 독문학자로부터 철학자 볼프강 이저의 ‘읽기 행위’(Der Akt des Lesen)가 책읽기를 철학적으로 논한 책이라고 들었지만, 아직 우리말로 번역되지 않았다. 독서행위를 여러 관점에서 분석한 모티마 아들러의 ‘자유인을 위한 책읽기’(How to Read a Book)는 20년 전에 나온 뒤 절판됐다.



책읽기와 관련해 주목할 만한 저술은 주희의 ‘독서법’이다. 전 140권의 ‘주자어류’ 가운데 제10권·11권으로 들어간 ‘독서법’은 책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읽을 것인가 등의 공부와 독서의 철학을 담고 있다. 이이와 이황, 박지원, 이덕무, 정약용 등 조선조 학자들이 설파한 독서론의 뿌리가 바로 주희의 ‘독서법’이다.

주자에게 독서는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일도, 시간 때우기 수단도 아니다. 단순히 ‘글을 보는(看文字)’ 것 이상이다. 자기를 돌아보고 세상을 바로 보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문맥상의 틈새를 읽어야 한다’. 그래서 숙독이 강조된다. 거듭 깊이 생각하며 읽으라는 주문이다. 주자는 현실적 문제의식 없이 행해지는 독서에는 비판적이었다. 그가 독서론을 ‘독서는 배우는 사람의 두번째 일이다(讀書乃學者第二事)’라는 말로 시작한 것은 이 때문이다. 주자에게 독서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답게 사는 일, 그리고 현실을 바로 아는 일이었다. 독서는 그것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조운찬 문화1부장)

07. 05. 14.

P.S.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그리고 현실을 바로 알기 위해서 책을 읽는다는 주자의 독서론에 이의를 제기하기는 어렵겠다. 다만 그런 경우에도 왜 굳이 독서인가, 란 의문은 남는다. 더불어, 인간에겐 얼마 만큼의 책이 필요한가, 란 톨스토이적인 물음도. 나의 독서론이라 할 만한 것은 예전에 '즐거운 도망, 즐거운 저항'이란 페이퍼로 정리해놓은 바 있다(http://www.aladin.co.kr/blog/mylibrary/wmypaper.aspx?PCID=1216428&paperId=880102). 제목은 다니엘 페나크의 <소설처럼>에서 따온 것인데, 그 도망과 저항이 결국엔 같은 것이라고, 같은 것이 되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무엇으로부터의 도망이고, 무엇에 대한 저항인가는 그때그때 다르다손 치더라도 말이다.

한편 기사에서 "한 독문학자로부터 철학자 볼프강 이저의 ‘읽기 행위’(Der Akt des Lesen)가 책읽기를 철학적으로 논한 책이라고 들었지만, 아직 우리말로 번역되지 않았다."고 한 건 오류이다. <독서행위>(신원문화사, 1993)라고 번역돼 나온 게 이미 십몇 년 전이다(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독서의 현상학'에 해당하는 책이다. 나는 국역본과 영역본을 갖고 있다). 국립도서관이나 대학도서관을 1분만 검색해봐도 아는 일인데 너무 성급한 단언이었다. 나처럼 "책의 서문만 읽고 다 읽은 듯이 행세하는 사람들"이 나름대로 요긴할 때도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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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14 18: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립간 2007-05-14 1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갑니다.
 

영국의 여성 작가 제인 오스틴의 소설들에 대한 가장 흥미로운 '미끼'는 슬라보예 지젝이 던져놓은 것이다. 마침 <맨스필드 파크>의 새 번역본도 출간되었기에 지젝이 그리고 있는 '오스틴 맵'에 대해서 다시 읽어보기로 한다. 읽을 대목은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인간사랑, 2001)의 115-7쪽이다(인용문의 몇몇 표기와 용어는 수정했다).

 

 

 

 

그가 붙인 절제목은 'Hegel with Austen'인데, 언젠가도 적었지만 국역본은 그걸 '오스과 함께 헤겔을'이라고 옮기면서, 그걸로도 모자랐는지 "Austen, not Austin."이라는 첫문장을 "오스(Austen)이 아니라 오스(Austin)임에 주의하자."라고 부주의하게 오역해놓았다('Austen'은 여성작가이고 'Austin'은 남성 철학자이다. 그래서 '오스틴과 함께 헤겔을'이라고 할 때의 오스틴이 '철학자 존 오스틴'이 아니라 '작가 제인 오스틴'이라는 걸 지젝이 먼저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강조가 무색하게 됐지만). 'Austen'이란 이름을 나는 국역본과는 달리 관행대로 '오스틴'이라고 읽겠다. 지젝은 이렇게 말한다. "문학에서 헤겔에 대적할 만한 인물이 있다면 이는 아마도 제인 오스틴일 것이다." 이만하면 그럴 듯한 '미끼' 아닌가?

 

 

 

 

지젝 왈 "<오만과 편견>은 <정신현상학>에, <맨스필드 파크>는 <논리학>에, <엠마>는 <백과사전>에 필적한다." 여기서 <논리학>은 <대논리학>을 가리키는 것으로 임석진 역, <대논리학1-3>(지학사, 1983)이 출간됐었지만 현재는 절판됐다(연구서들만 덩그러니 몇 권 나와 있는데, 그다지 보기좋은 풍경은 아니다). <백과사전>은 <철학강요>(을유문화사, 1976/1998)로 번역된 책인데 아직 시중에 돌아다닌다. 두 책의 서론만을 옮긴 책이 <논리학 서론-철학백과 서론>(책세상, 2002)이다.  

먼저 지젝의 이야기를 따라가기 위해서 <오만과 편견>에 대한 해제를 잠시 읽어둔다(지젝은 <오만과 편견>만을 자세히 다루고 있다). 서지문 교수(고려대 영문학)의 작품해설이다(원 기사의 편집자가 남자 주인공 '다아씨(Darcy)'를 '다아 씨'라고 표기해놓은 것도 코미디라 할 만하다. 인용문에선 수정했다. 국역본 지젝에서 이 커플은 '달시-엘리자벳'으로 표기되고 있다).

“당신의 청혼 방법이 나의 대답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주었으리라고 생각하신다면 오햅니다. 그저 좀 더 신사적인 태도로 청혼했더라면 거절하면서 느꼈을 나의 미안함을 면제해 주었을 뿐이지요.” 소설 ‘오만과 편견’의 가난한 여주인공 엘리자베스가 대지주인 다아씨의 청혼을 보기 좋게 거절하며 하는 말이다.

19세기 영국에서 양가의 규수들은 결혼을 하지 않으면 오빠나 남동생의 집에 군식구로 얹혀살거나 남의 집에서 지독한 저임금에 무수한 수모를 감내해야 하는 가정교사가 되는 수밖에 없었다. 기댈 남자 형제도 없고 기대할 유산도 전혀 없는 이 소설의 여주인공 엘리자베스 같은 여성은 그러니까 조건 좋은 신랑감을 구하는 것이 절체절명의 과제였다.

그러나 예리한 비판적 지성의 소유자이고 생기발랄한 엘리자베스는 그런 세속적 압력에 굴복하기를 거부한다. 그 사회의 비굴하고 잘난 체하는 속물적인 군상들을 취미삼아 관찰하는 엘리자베스가 오만하고 비사교적인 대지주 다아씨에게 반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다아씨도 처음에는 엘리자베스를 자신의 시선을 끌 만한 미모가 아니라고 생각했으나 그녀의 지적인 예리함과 재기에 어쩔 수 없이 끌리게 된다. 그리해서 그녀의 주책망나니 어머니, 책임감이 부족한 아버지 등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누르고 내키지 않는 청혼을 한다. 그러나 엘리자베스가 자기 같은 ‘일등 신랑감’을 거절할 수 없을 것이라는 그의 예상과는 달리 다아씨는 호된 질책과 함께 여지없이 ‘퇴짜’를 맞는다.

처음엔 어리둥절하고 곧이어 분개하지만 다아씨는 좋은 ‘조건’만으로는 엘리자베스의 사랑을 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겸허한 자기성찰을 시작한다. 엘리자베스 역시 자기가 다아씨에게 가졌던 반감이 많은 부분 편견에서 왔음을 깨닫고, 자신의 판단력 과신을 깊이 반성하며 다아 씨의 훌륭한 점을 인정하게 된다. 다아씨와 엘리자베스가 자신들의 달라진 모습을 서로에게 보일 수 있는 몇 건의 사건이 있은 후 두 번째 청혼에서 다아씨는 성공한다. 이 과정을 제인 오스틴은 너무나 흥미진진하고 아기자기하게 꾸며서 이 책은 한번 손에 들면 내려놓을 수 없다.

 

 

 

 

오스틴의 소설들은 너무너무 재미있고, 모든 인물이 그의 자격에 꼭 합당한 결말을 맞이하기 때문에 독자들의 사랑을 받지만 오스틴의 진수는 그의 엄격한 도덕관, 그리고 그가 제시하는 문명사회의 유지, 발전과 가치 있고 품위 있는 삶에 대한 비전에 있다. 영국 남부 농경사회의 조그만 읍을 무대로 조용한 일상사와 함께 전개되는 이 소설은 오로지 당돌하면서 재기발랄한 여주인공과 카리스마 넘치는 남주인공, 그리고 군더더기 한마디 없고 허술한 구절도 전혀 없는 완벽한 구성으로 시종일관 흥미진진하게 읽힌다. 

 

 

 

 

오스틴은 이성과 분별력과 절제를 기본가치로 하는 영국의 전통적 사회구조가 유지되어야 한다고 확신했으나 그것은 상류층이 경직되고 배타적이지 않고 겸허함과 열린 마음을 지님으로써 가능하다고 생각했고, 사람은 끊임없는 자기성찰을 통해서 성장하고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찾고 수행할 수 있다는 점을 역설했다.(동아일보, 05. 08. 19)

다시 지젝: "따라서 <오만과 편견>에서 오인으로부터 유래하는 진리의 변증법에 관한 완벽한 시례를 발견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엘리자벳과 달시는 각자 상이한 사회적 계급에(남자는 부유한 귀족 가문에, 여자는 빈곤한 중산층에) 속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간에 강한 매력을 느꼈다. 하지만 그의 오만 때문에 그의 사랑은 엘리자벳에게 가치 없는 것으로 보였다. 엘리자벳에게 청혼을 하면서 그는 그녀에게 그녀가 속한 세상에 대한 경멸을 솔직히 고백하고 그의 프로포즈를 전례 없는 영광으로 받아들이길 기대한다. 하지만 엘리자벳은 그녀의 편견 때문에 그를 거만하고 허영심에 가득 차서 우쭐대는 인물로 바라본다. 그의 오만한 프로포즈는 그녀에게 모멸감을 주고 그녀는 그를 거절하게 된다."

"이러한 이중적인 실패, 이 상호적인 오인은 의사소통의 이중적인 운동구조를 갖고 있다. 각각의 주체는 타인으로부터 자신의 메시지를 전도된 형태로 되돌려 받는다. 엘리자벳은 달시에게 자신이 교양 있고 재치로 가득 찬 숙녀로 비춰지길 원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로부터 '당신은 단지 그릇된 기교들로 가득 찬 가난하고 무식한 피조물일 뿐'이라는 메시지를 받게 된다. 한편 달시는 그녀에게 자신이 자긍심 있는 신사로 보이길 원했다. 그런 그는 그녀로부터 '당신의 자긍심은 경멸스러운 거만함에 불과해'라는 메시지를 받게 된다. 그들의 관계가 결렬된 후 그들은 각자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서 서로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소설은 당연하다는 듯이 그들의 결혼으로 끝을 맺는다." 

여기까지는 그냥 줄거리라고 해야겠다. 한가지 짚고 넘어가면 엘리자벳이 받은 메시지에서 '그릇된 기교들'은 'false finesse'의 번역이고 'finess'는 '연애의 기교' 혹은 술책을 가리킨다. 그리고, '가난하고 무식한 피조물(a poor empty-minded creature)'은 너무 적나라한 직역인데, '가련한데다 머리는 텅빈 아가씨' 정도가 아닐까 싶다. 여하튼 이러한 줄거리를 가진 오스틴의 소설이 헤겔과는 무슨 관계가 있다는 것일까?

"이 이야기가 지닌 이론적인 흥미는 첫번째 만남의 실패, 타인의 실재적인 특성에 대한 이중적인 오인이 최종 결론의 실정적인 조건으로서 작용한다는 데에 있다. 우리는 진리에 곧바로 도달할 수 없다.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없다. '만약 처음부터 그들이 서로의 실제 성격을 알았다면 그들의 이야기는 곧장 결혼으로 끝맺을 수 있었을 텐데.' 미래의 연인들의 첫 만남이 성공하게 된다는, 즉 엘리자벳이 달시의 첫 구애를 받아들인다는 희극적인 전제를 세워보자. 그렇다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그들은 진정한 사랑에 빠지는 대신 흔하디 흔한 통속적인 연인이 될 것이다. 오만하고 부유한 남자와 잘난 체하고 무식한 처녀로서 말이다." '최종 결론의 실정적인 조건(a positive condition of the final outcome)'은 '최종결과의 긍정적인 조건'으로 읽는 게 더 낫겠다.

때문에 우리가 얻게 되는 교훈은 이런 것이다: "만약 우리가 오인을 통한 고통스런 우회로를 피해가길 원한다면 우리는 진리 자체를 잃게 될 것이다. 우리는 오직 오인을 '통해서만' 타인의 본성에 도달하고 우리 자신의 부족함을 극복할 수 있다. 그것을 통해서만 달시는 그릇된 오만으로부터 벗어나고, 엘리자벳은 자신의 편견을 불식시킬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진리는 대문자(Truth)로 강조돼 있고, '통해서만'은 'working-through'의 번역이다.

"이 두 계기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왜냐하면 엘리자벳은 달시의 오만 속에서 자신의 편견의 전도된 이미지와 마주치고, 달시는 엘리자벳의 허영 속에서 자신의 그릇된 오만의 전도된 이미지와 마주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달시의 오만은 엘리자벳과의 관계와 무관하게 존재하는 단순한 실증적인 상태가 아니다. 그의 본성의 직접적인 속성이 아닌 것이다. 그것은 오직 그녀의 편견의 시점으로부터만 나타난다. 이와 마찬가지로 엘리자벳은 달시의 오만스런 시점 속에서만 잘난 체하고 무식한 처녀가 될 뿐이다."

'이 두 계기들(These two movements)'는 '이 두 운동'의 착오이다. 어쨌든 이 두 운동은 상호 교차적이다. 달시의 오만과 엘리자벳의 편견은 서로의 시점에서 봐줄 때만 나타나는 무엇이다. 즉, 달시가 오만하기에 엘리자벳이 편견을 가진 여자로 보이는 것이고, 엘리자벳이 편견을 갖고 있기에 달시가 오만하게 보이는 것이다. "헤겔의 용어로 말하자면, 타인의 결점이라고 인식된 것 속에서 각자는 (그것을 모른 채) 자신의 주체적인 위치의 허위성을 인식한다. 타인의 결점은 단지 우리 자신의 관점의 왜곡을 객관화한 것이니까 말이다." 고로 타인의 결점이 없다면 우리 자신의 허위성(왜곡) 또한 인지할 수 없게 되는 것(고로 진리는 오인으로부터 온다!). 이런 게 변증법 아닌가?..

07. 05.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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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onta 2007-05-14 2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요것 재밌습니다. 헤겔과 오스틴이라...요즘 The sublime object of ideology를 영문판과 비교해서 읽고있는데 어찌 영 진도가 안나가는군요..허접한 나의 영어실력때문에..ㅜ.ㅜ

로쟈 2007-05-14 2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살을 부리시는 게 재밌습니다.^^ 독어가 더 편하신 건가요?..

yoonta 2007-05-15 0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어라고 별수있겠습니까..그래도 영어가 쪼금 낫습니다.-_- 요즘 헤겔 정신현상학도 한번 독해해보려고 워밍업중인데요. 본문에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정신현상학에서의 변증법적 과정은 특정 인식의 한계성(엘리자벳)을 특정대상(달시)의 대상화과정을 통해서 드러내고 또 그럼으로써 보다 상승된 인식으로 '지양'(엘리자벳과 달시의 결혼 혹은 양자의 오인의 해소)되는 방식으로 즉 변증법적으로 서술되어 있더군요. 이런 주체의 한계 내지는 공백을 드러내는 헤겔 철학의 변증법적 특성때문에 지젝이 헤겔을 좋아하는 것 같은데요. 지젝은 그렇다면 정신현상학에서의 결론인 헤겔의 절대지 혹은 절대정신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요? 맑스는 헤겔철학의 이러한 결론때문에 그것은 "거꾸로 서야 한다"고 이야기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지젝도 맑스처럼 이런 관점으로서만 헤겔철학을 승인하는 것인가요?

로쟈 2007-05-15 0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고난도의 질문이십니다.^^; 지젝의 책 어딘가를 참조하면 자세히 나올 거 같은데, 제가 아는 지젝은 헤겔을 에누리 없이 승인하고 수용합니다. 단, 기존의 독해와는 다른 방식으로. 맑스의 헤겔 독해도 불충분하다고 보는 걸로 저는 이해합니다(저도 공부해야 합니다).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 같은 경우 제3부를 참조하시면 시사점을 얻으실 수 있을 거 같구요, 물론 <그들은 자기가...>가 보다 주된 '교재'가 될 거 같습니다...
 

마이클 부라보이라는 미국의 거물급 사회학자가 방한했다고 한다. '공공사회학'을 주창한 학자라는데, 요즘 사회학 책들을 별로 안 읽은 탓인지 '공공사회학'이란 말 자체가 생소하다(저자는 <생산의 정치>(박종철출판사, 1999)로 이미 오래전에 소개됐다). 설명에는 '전문(professional) 사회학’과 대비되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강단사회학의 두 조류가 되는 것인가?(뒤집어 생각해보면, 공공사회학은 가장 실제적/실천적인 학문이어야 할 '사회학'이 그간에 얼마나 폐쇄적으로 전문화되었던가에 대한 반증이자 반성이기도 하겠다.) 하지만, 나의 관심은 공공사회학보다는 그가 러시아와 동구권 사회주의 국가들의 자본주의 이행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는 데 두어진다. 그 방면의 책들이 번역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세계의 책'으로 분류해놓는다. 인터뷰 기사를 옮겨놓는다. 인터뷰에서 인상적인 건 차베스에 대한 평가이다. 말발만 앞세운 사회학자들과는 좀 다르다는 인상을 준다.

한겨레(07. 05. 12) 사회학자여, 강단을 넘어 대중과 만나라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 대학 사회학과 교수인 마이클 부라보이는 ‘공공사회학(public sociology)의 전도사’로 불린다. 이매뉴얼 월러스틴과 함께 미국의 대표적인 좌파 사회학자인 그는 사회학이 사회에 대해 비판적 관점을 취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믿는다. 사회학이 지향하는 가치가 강단을 넘어 대중과 직접 만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회학자는 강단에서 학문적 엄밀성만 추구할 게 아니라 그들의 가치가 실현될 수 있도록 직접 대중과 만나고 토론해야 한다는 것이다. 1980년대 우리 학계에 널리 퍼졌던 실천적 경향을 떠올리게 한다.

미국 사회학회 회장(2003~2004년) 시절 공공사회학을 주제로 미국사회학회 연례회의를 주재했으며, 지금도 각국을 돌며 공공사회학의 이념 전파에 주력하고 있다. 그는 사회주의권 붕괴 이전 헝가리 철강 공장에 직접 취업해 노동과정을 연구하는 등 현장 체험에 바탕을 둔 실증적인 노동 연구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지난 3일 중앙대·연세대 두뇌한국(BK)21 사업단 초청으로 한국을 첫 방문한 부라보이 교수를 4일 연세대 사회학과 원재연 교수 연구실에서 만났다.

-사회학자들이 왜 대중과 직접 만나야 하나.

=시민들이 그들의 존립에 물질적 지원을 하고 있다. 시민들이 낸 세금으로 학자들이 봉급을 받고 있다. 학자들은 시민사회에 뭔가를 돌려줘야 한다. 사회를 위한 의무다. 사회 역시 사회학자들의 가치에 대한 통찰을 필요로 한다. 자본과 국가로부터 시민사회를 지켜내는 데 학자들이 적극 기여해야 한다.

-대중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공공사회학의 가치는 무엇인가.

=공공사회학은 사회 문제에 직접 관여해 이슈들을 토론하는 것을 강조한다. 지향해야 하는 가치에 대한 단일한 정의는 없다. 다양한 정의가 가능할 것이다. 공공사회학계에서는 사회정의와 평등의 가치가 점차 중요성을 얻고 있다. 내게는 ‘사회정의’가 가장 중요하다.

-그런 가치를 어떻게 대중들에게 전달할 것인지 궁금하다.

=제도권 언론들이 보수적이라고 하지만 모두 단일한 성향을 가지고 있지 않다. 같은 미디어 안에서도 서로 모순되는 가치가 혼재한다. 예컨대 <뉴욕타임스>나 <월스트리트저널>과 같은 유력지에서도 진보적 칼럼을 찾을 수 있다. 미국에선 ‘공공 라디오’들이 훨씬 개방적이다. 사회학계 주최의 여러 행사에 언론인들을 초청해 교육시키는 데도 비중을 두고 있다. 중간 매개체를 거치지 않고 대중과 직접 만나는 것도 중요하다. 노조와 각종 시민·지역 단체 회원들과 수시로 만나 토론한다.

-한국 학자들은 1980년대 이후 강단에 매몰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미국의 영향이 크다. 미국의 사회학은 과도한 전문주의 경향을 띠고 있다. 아울러 시민사회의 조직화에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학문적 지배권을 가진 미국의 이런 경향을 따라하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미국 중심의 국제학술지 논문 게재가 갈수록 강단에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것도 주요한 이유다.

-일각에선 세계화가 정점에 도달했다는 지적도 내놓고 있다.

=절대 그렇지 않다. 어디를 가도 세계화 파고가 높아지고 있는 것을 본다. 남아프리카에서는 전기·수도 등 공공서비스가 민영화되고 있고, 중국과 인도 농민들은 각종 토목 공사 때문에 땅에서 쫓겨나고 있다. 아직 정점에 도달하지 않았다. 시장화는 그 반대세력을 키우고 있다. 볼리비아와 베네수엘라 브라질 우루과이 등 남미에서 이런 기류가 확연하다.

-베네수엘라 차베스 대통령은 세계화에 반대하는 새로운 민주주의 대안 모델이 될 수 있나.

=그가 세계에서 미국 지배권에 도전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가장 큰 걸림돌은 석유다. 그는 너무나 많은 ‘오일머니’를 가지고 있다. 때문에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꿀 이유가 없다. 근본적으로 자본주의와 타협하고 있다고 본다. 그는 대토지 소유자로부터 땅을 사버린다. 그들을 추방하지 않는다. 금융과 은행 제도와도 타협하고 있다. 너무 돈이 많아 자본주의와 타협하는 게 가능하다. 나는 그를 ‘민족적 대중주의자(national populist)’로 본다. 그가 도시 변두리 주민들의 빈곤을 개선하기 위해 일종의 재분배를 한 것은 인정한다.

-세계화 흐름 이후 양극화 경향이 거세지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최근의 사회운동은 일종의 수세적인 방어 운동이다. 공공영역의 민영화가 계속 확장되고 있다. 자유무역협정 역시 마찬가지다. 당장의 미래에 대해선 비관적이다. 하지만 남미를 비롯해 세계화에 저항하는 많은 대안 찾기가 시도되고 있다. 시장화에 반대하는 조직화가 여러 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대안은 이런 사회운동에 있다고 본다.

-사회주의 붕괴 이후 중국과 러시아의 행로에 대해 어떻게 보나.

=1991년 이후 러시아 경제는 하강했으나 중국은 반대로 상승하고 있다. 러시아는 조직적으로 국가 전복을 시도했다. 혁명적인 방식으로 시장자본주의로 이행했다. 충격요법을 썼지만 치유책은 내놓지 못했다. 중국은 국가의 후원 아래 시장경제가 발전하고 있다. 자본주의 경제는 국가가 필요하다.

-마르크스주의의 현재적 의미는 무엇인가.

=자본주의에 도전하는 가치로서 언제든 의미가 있다. 자본주의가 존재하는 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근본적으로 마르크스주의는 매우 다층적이고 비동질적인 사유체계이다. 자본주의에 대항한 사회운동에 활력을 불어넣는 구실을 할 것이다.

-미국에서도 ‘인문학의 위기’를 체감하는지.

=내가 재직 중인 대학의 사회학과는 지금까지 계속 그 규모가 늘어나고 있다. 학문의 인기는 일자리의 수와 밀접한 상관관계를 맺고 있다. 미국의 물질적 매력에 기반한 지배력이 학문의 세계에서도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도 한 영향이다. 미국의 힘은 자신들의 교육 체계나 지식·이데올로기에 권위를 부여하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남미가 저항 아이디어로 맞서듯, 유럽 등 다른 대륙도 미국과는 다른 세계를 만들어갈 수 있다고 본다.

공공사회학 = 학문이 강단을 넘어 대중과 만나 지향하는 가치를 전파하고 토론해야 한다고 믿는 사회학의 한 분야. 1988년 미국에서 이 용어가 처음 사용됐다. 동료 전문 학자들과 이론적 논의에 그치는 강단사회학인 ‘전문(professional) 사회학’과 대비되는 개념이다.(강성만 기자) 

07. 05. 13.

P.S. 부라보이 교수의 홈피(http://sociology.berkeley.edu/faculty/burawoy/workingpapers.htm)에는 그의 '워킹 페이퍼'들이 링크돼 있다. 러시아의 자본주의 이행에 관한 논문들이 단행본으로 출간되기를 기대해본다. 가장 최근에 나온 책으론 편저인 <세계화와 새로운 정체성들>(2007)이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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