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에서 영국의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의 방한을 회고하는 기사를 옮겨놓는다(http://www.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at_code=413708&ar_seq=7). 그의 책들을 많이 출간한 한길사 김언호 사장의 회고인데(연재물인 '책의 탄생, 시대의 풍경'의 한 꼭지이다), 이번에 알게 된 것이지만 홉스봄은 20년전, 그러니까 지난 1987년 5월에 한국을 다녀갔다. 전혀 기억이 없는 걸 보면 나는 대학생활에 적응하기 바빴던 모양이다(6월 항쟁 한달 전이니까 사실 '적응'이라는 말 자체가 사치스럽다. 적응해야 할 대학생활이라는 게 있었나?). 어쨌든 흘려보낸 시간의 이면을 들추는 듯해서 흥미롭다. 최근 그가 편집한 <만들어진 전통>(휴머니스트, 2004)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것도 기사에 대한 흥미를 느낀 또 다른 이유이다. 방학때 그의 자서전(<미완의 시대>)이나 읽어볼까 싶다.

오마이뉴스(07. 05. 31) '열정의 역사가' 홉스봄을 만나다

1987년 5월 12일 화요일 오후 5시 영국의 세계적인 사회경제사학자 에릭 홉스봄(1917~ )이 안암동에 있는 우리 회사를 방문했다. 참으로 귀한 손님이었다. 이런 석학을 모실 수 있다니 출판사·출판인으로서 대단한 즐거움이 아닐 수 없었다. 정현백·박지향 교수가 안내했다. 나는 홉스봄에게 한국사회에서 당시 힘차게 전개되고 있는 사회운동과 출판운동에 대해서 설명했다. 책과 권위주의적 권력이 갈등하고 있는 양상에 대해서도 말했다. 홉스봄은 어떤 책들이 판금되었는가를 저자 이름, 책 이름을 일일이 메모하는 것이었다. 사회적 진실을 추구하는 노학자의 정정한 모습이었다.

"한국사회는 지금 격동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와 인간평등을 주창하는 젊은이들의 운동과 정신은 일련의 젊은 출판인들이 펼치는 출판운동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지금 한국의 젊은 세대들은 사회과학적 문제의식으로 '독서'하고 '민주화 운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젊은이들이 읽고 있는 책을 두려워하면서 그런 책들을 판매금지시키고 있지만, 독자들의 문제의식은 엄청나게 진전되고 있습니다. 정부의 '금서정책'은 이제 통하지 않습니다. 젊은이들의 문제의식과 행동은 정부의 금서조치를 무력화시키고 있습니다."

대석학은 나의 설명을 경청했다. 한국의 사회운동과 출판상황은 선생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사회사적 자료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해 4월 28일 서울지검 공안2부는 '좌경서적'을 출판했다는 이유로 젊은 출판인 5명을 구속했다. 녹두출판사 김영호(27) 대표와 사계절출판사 김영종(32) 대표, 동녘출판사 이건복(33) 대표, 세계사 윤후덕(30) 대표, 거름 편집인 강경철(26)씨가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는 것이었다. (괄호 속 나이는 1987년 당시 기준)

나의 방에서 나는 선생과 한 시간 정도 한국의 사회상황·출판상황에 대해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수많은 책들이 판금되거나 강제 수거되며, 때로는 구속되는 상황에서도 젊은 출판인들은 계속 책을 만들고 있다는 이야기도 했다. 이런 대화를 홉스봄 선생과 나누던 그 80년대는 나에게 분명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홉스봄은 서울대 이인호 교수가 재직하던 서울대 서양사학과에서 초청하고 국제문화협회의 협찬을 받아 방한했다. 한길사와 서울대 서양사학과가 공동주최하는 '홉스봄 교수 초청 학술강연회'가 5월 9일 오후 동숭동 한국학술진흥재단에서 열렸다. 그날 '최초의 산업국가의 흥망 : 영국 1780~1980'을 주제로 한 강연회에서 홉스봄은 당대의 석학답게 신념에 찬 목소리로 열강 했다. 영국의 상황뿐 아니라 다른 나라의 조건도 비교해가면서 강연한 그는 마르크스주의자이지만, 그의 이론과 사상은 열려 있었다.

한길사는 일찍이 홉스봄의 <의적의 사회사>(Bandits, 1969)를 1978년 11월에 펴냈다. 공업화되기 이전의 농업사회에서 보편적으로 발견되는 비적 내지 의적현상을 분석하는 책이다. 역사 연구의 주류에서는 이제까지 별로 연구되지 않은 사회적 반항, 또는 민중의 원망(願望)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선구적인 저술이다. 로빈 후드에서 양산박(梁山泊)의 산적들, 멕시코 초원의 혁명아 판초 비야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뒤안에서, 그러나 역사의 원동력으로서, 민중과 더불어 한 시대를 주름잡던 사나이들의 이야기다.



한길사는 다시 '오늘의 사상신서' 제71권으로 <자본의 시대>(The Age of Capital, 1975)를 1983년 12월에 펴냈다. 이어 <혁명의 시대>(The Age of Revcolution, 1962)를 '오늘의 사상신서' 제74권으로 1984년 8월에 펴냈다. 그리고 <제국의 시대>(The Age of Empire, 1987)를 '한길그레이트북스' 제14권으로 1998년 10월에 펴냈다. 이 세 권의 책은 홉스봄의 대표적인 저술로 이른바 '자본주의 역사 3부작'이다. 1789년 프랑스혁명부터 1914년까지의 '통사'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책들은 유럽을 중심으로 서술되고 있지만 세계적인 관점을 취하고 있다.

홉스봄의 이 3부작을 읽으면, 역사란 이렇게 흥미진진하구나 하는 느낌을 갖게 된다. 당대를 살아간 민중들의 생활상까지를 생생하게 재현시켜 놓았기 때문이다. 역사란 제도사(制度史)나 경제사만이 아닌 인간이 엮어내는 경이로운 드라마라는 것을 보여주면서, 독자들에게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필력을 홉스봄은 자유롭게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읽어서 재미있고 즐거운 책'이라는 격찬을 받은 저술이다.

홉스봄이 그려내는 역사라는 풍경화는 '역사서술이란 당초부터 탁월한 문학'이라는 명제를 일깨워준다. 나는 홉스봄의 책을 읽으면서 아름다운 대하소설 속에 들어서 있는 듯한 감흥을 억누를 길이 없었다. 넓게 열려 있는 시야와 자유분방한 글쓰기를 통해 우리는 역사란 참으로 위대한 교훈이자 오락이라는 명제도 아울러 확인하게 된다.

한길사는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진행하고 있는 대형기획 '한길그레이트북스'의 제12·13·14권으로 <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 <제국의 시대>를 배치했다. 이 '자본주의 역사 3부작'은 이미 현대의 고전이 되고 있지만, 홉스봄 선생의 고전이란 또 다른 문학이라는 생각을 나는 하게 된다.

1987년 5월 12일, 나는 홉스봄과 우리가 펴낸 <혁명의 시대>와 <자본의 시대>를 들고 현관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나는 세미나실을 보여드리면서 그때 우리가 펼치고 있는 한길역사강좌·한길역사기행·한길사회과학강좌 등을 설명했다. 나는 홉스봄에게 "역사라는 프리즘을 통해서, 오늘날 우리 국가사회와 민족공동체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들을 제대로 인식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다시 홉스봄에게 말했다.

"오늘 우리 국가사회의 성원들은 '역사'에 대해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국가와 국토가 분단되고 동족끼리 전쟁을 하는 참으로 비극적인 현대사의 아픈 체험이 역사에 대한 관심을 더욱 고조시키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특히 한국의 젊은이들은 현대사에 대한 관심이 지대합니다. 이 분단시대사를 극복하려는 몸부림이라고 생각됩니다."

나의 설명을 들은 홉스봄은 "역사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미래에 희망을 건다는 것입니다"라는 말했다.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역사를 통해서 삶의 희망과 미래의 지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역사를 연구해보면, 역사는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현대 역사학의 거장 홉스봄은 1980년대에 우리 국가사회의 성원들이 총체적으로 체험하던 민주화운동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안암동의 그 작은 세미나실을 이리저리 살펴보았고, 책장에 꽂혀 있는 한길사의 책들을 펼쳐보는 것이었다.



나는 홉스봄을 인사동으로 모시고 가서 저녁식사를 대접했다. 한국적인 것을 보여드리기 위해 국악을 연주해주는 '산촌'으로 갔다. 스님이 경영하는 음식점 산촌에서는 고기를 사용하지 않았는데, 저녁 8시 30분부터 1시간 동안 진행된 국악과 춤을 선생은 흥미롭게 보고 들었다. 홉스봄은 특히 국악기 아쟁의 소리가 좋았다는 코멘트를 했다. 재즈 전문가로서 재즈에 관한 책과 글들을 쓰고 있던 그에게 한국 음악에 대한 관찰은 남다른 의미를 갖고 있을 것이다.

1986년 1월 6일자 <뉴욕 리뷰 오브 북스>에 발표한 글에서 홉스봄은 "1950년대 미국 대중음악에서는 존속살인이 일어났다. 록이 재즈를 살해한 것이다"라고 썼다. 이 같은 표현을 두고 <옵서버>지는 "재즈에 대해 쓸 때 그는 자신이 애정을 품고 있는 것을 옹호하고자 사나운 채찍을 휘두른다"고 했다. 그러나 "홉스봄은 역사까지 이런 식으로 서술하지 않았다는데 안도감이 든다"고 했다.



이 전문가의 시대에 홉스봄 선생만큼 다방면에 걸쳐 지식을 갖춘 사람은 드물 것이다. 19세기의 노동운동, 아방가르드 운동예술과 사회주의와의 관계, 농민운동, 베트남전, 듀크 엘링턴과 빌리 홀리데이 같은 재즈 예술가에 이르기까지, 그의 관심과 천착은 놀랍다.



역사에 이름을 남기지 않고 사라지는 보통 사람들이, 사실은 역사를 만들고 일으켜 세우는 역사의 주역이라고 말하는 홉스봄, 통상 평범한 사람들(Common People)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Uncommon People)이다. 이름 없는 이들이 참으로 위대한 사람들이다. 홉스봄은 바로 '참으로 위대한 보통의 사람들'을 늘 주제로 삼고 있는 것이다. <저항과 반역 그리고 재즈>라는 제목으로 영림카디널에서 2003년에 번역되어 나온 < Uncommon People >(1998)도 바로 이런 내용을 다루고 있다.

홉스봄은 '자본주의 역사 3부작'에 이어 1994년 <극단의 시대>(Age of Extremes)를 저술한다. 이는 20세기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극단의 시대>는 까치글방에 의해 1997년에 번역출간 되었다. 또 <역사론>(On History)을 1997년에 저술했다. 이 책은 2002년 민음사에서 번역출판 되었다. 2002년에는 자서전 <흥미로운 시대(Interesting Times)>를 저술한다. 이 책 역시 <미완의 시대>라는 이름으로 2007년에 민음사에서 번역출판 했다.



홉스봄은 참으로 독특한 삶을 살아온 현존하는 최고의 역사가다. 트라팔가 광장에서 버트런드 러셀과 함께 핵무기확산 반대 시위운동을 벌였고, 아바나에서 체 게바라를 위해 통역을 해주었으며, 런던에서는 재즈에 심취했다. 유대인이지만 이스라엘의 정책을 비판해서 이스라엘에서는 왕따 당했다. 최고의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였지만 소련에서 그의 저서는 판금 당했다. 영국의 비타협 노동운동을 비판하기도 했다. 사회정의를 위해 90살이 넘어서도 글쓰기를 중단하지 않는 열정의 역사가다. 그는 그 정신과 사상이 살아 있는 20세기의 현자다. 역사의 힘, 역사의 지혜를 실증해보인 실천하는 현자!

홉스봄이 한국을 방문하던 1987년 5월 그 무렵 나의 '일기'에는 이른바 '판금도서목록'이 기록되어 있다. 1982년부터의 것이다. 1970년대 중반 이후 1980년대에 창출된 책 또는 책의 정신과 사상의 한 모습을 볼 수 있는 자료다. 70년대와 80년대는 '사회과학의 시대'였음을 보여준다. 이런 사회과학적 인식을 시대를 거쳐서 한국사회는 오늘 이만큼 성장했다.(김언호 기자)

07. 06.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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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07-06-04 22:29   좋아요 0 | URL
애인 귀국 후 맨 처음 하기로 한 세미나가, 홉스봄 선생 3부작 2주만에 읽기 세미나입니다 ㅋㅋ 추천하고 퍼갑니다. :) 내일부터 세미나 시작! ^^;

전자인간 2007-06-05 08:53   좋아요 0 | URL
이 글을 보니 당장 어디 산속에라도 들어가 아무 일도 안하고 <혁명의 시대> 부터 <극단의 시대>까지 한 번 더 통독하고 싶어집니다.

로쟈 2007-06-05 15:36   좋아요 0 | URL
기인님/ 애인분과 주로 세미나를 하시는군요.^^; 다른 할일도 많으실 텐데...
전자인간님/ '산속'에서 읽기엔 (근현대사인만큼) 좀 격렬한 책들인 듯한데요.^^
 

재작년 7월에 '벤야민을 좋아하세요?'(http://www.aladin.co.kr/blog/mylibrary/wmypaper.aspx?PaperId=706506)란 페이퍼를 쓴 적이 있다.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을 읽다가 의문이 나는 한 구절을 자세히 검토해본 글이었다. 그때 참조한 것은 독어를 모르지만 참고로 복사해놓은 독어본 텍스트 외에 2종의 영역본과 러시아어본, 그리고 5종의 우리말 번역본(반성완, 차봉희, 이태동, 강유원, 김남시)들이었다. 오늘 우연히 시립도서관에서 문제가 된 대목의 우리말 번역이 눈에 띄기에 참고삼아 다시 확인해둔다. 먼저 2년전에 적어둔 걸 잠시 리와인드해서 따라가본다...

당신은 벤야민을 좋아하시는지? 만약에 그렇다면, 정작 자신이 좋아하는 그의 '실제' 모습이 어떤 것인가 정도는 확인해보고픈 생각이 들지 않을까? 아는 만큼 사랑한다지만, 사랑한다면 어느 만큼은 알 필요도 있다. 물론 그 '어느 만큼'의 내용은 남들도 다 아는 '윤곽'이 아니라 소소한 '디테일'이다. 등짝이나 배꼽 아래에 난 점 따위야 그 사람의 인격과 무관하지만, 그걸 인지하는 건 애정지수와 거리를 가늠하는 잣대가 되기도 한다.

해서,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의 #2, #3에서 정의되고 있는 '아우라'는 이 글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이지만, 다른 한편으론 '기본'에 불과하다. "당신, 아우라가 뭔지 말해봐?" 정도의 질문으로는 애정을 판가름할 수 없는 것. 대신에 물을 수 있는 건, (#2의 끝머리에서 벤야민이 인용하는바) 아벨 강스가 무슨 얘기를 한 거야, 같은 질문이다. 어젯밤에 침침한 눈으로 텍스트를 읽다가 아무래도 미심쩍어서 온갖 번역본을 다시 확인해본 대목인데, (이상하게도) 별 차이는 없지만 5가지 국역본을 차례로 제시한다.

-1927년 아벨 강스는 다음과 같이 열광적으로 말한 바 있다. "셰익스피어, 렘브란트, 베토벤이 영화화될 것이다..."(반성완)

-아벨 강스는 1927년 이미 이렇게 외쳤다. "셰익스피어, 렘브란트, 베토벤은 영화화될 것이다..."(차봉희)

-1927년 아벨 강스는 다음과 같이 열광적으로 외쳤다. "셰익스피어, 렘브란트, 베토벤이 영화화될 것이다..."(이태동)

-1927년 아벨강스가 열광적으로 "셰익스피어, 렘브란트, 베토벤은 영화화될 것이다..."고 외쳤을 때...(강유원)

-1927년 아벨 강스가 다음과 같이 열광적으로 외쳤을 때 - "셰익스피어, 렘브란트, 베토벤이 영화화될 것이다.."(김남시)

이에 대한 영역본은 (2종 모두) 대략 "When Abel Gance fervently proclaimed in 1927, 'Shakespeare, Rembrandt, Beethoven will make films..."라고 옮기고 있다. (사소하지만) 무슨 차이인가? 영역본은 형태상 능동문인 'will make films'가 의미상으론 수동문인 'will be made films'의 뜻을 갖지 않는 한(국역본들에 따라서 처음에 나는 그런 게 아닌가란 생각을 했다. 영문법 박사도 아닌지라, 나는 남들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 줄 안다) 내용은 "셰익스피어, 렘브란트, 베토벤이 영화를 만들/찍을 것이다..."이다(*이후에 내가 구하게 된 영역본은 하버드대출판부에서 나온 영역본 벤야민 선집의 제4권 페이퍼백으로 작년에 출간된 책이다.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의 세번째 판본이 수록돼 있다).

벤야민의 독어본에서 인용문은 "Shkespeare, Rembrandt, Beethoven werden filmen..."이다. 이 역시 아벨 강스의 불어 텍스트를 벤야민이 옮겨온 것이므로 '원문'으로서의 지위를 갖는 건 아니다. 구문은 단순한데,  추측하자면 werden이 미래시제 조동사이고(사전에는 werden이 '-가 되다'란 뜻도 갖는 걸로 돼 있다), filmen이 동사원형(부정법)이어야 영역본에 대응한다. 러시아어본도 같은 식이다. 그렇다면, "셰익스피어, 렘브란트, 베토벤이 영화화될 것이다"와 "셰익스피어, 렘브란트, 베토벤이 영화를 만들/찍을 것이다..."가 의미론적으로 동치가 아닌 이상(물론 아니다) 어떤 해석이 맞는 것일까? 안타깝지만, 나는 5종의 국역본 대신에 영어와 러시아어본이 맞다고 본다. 그건 의미의 논리상 그렇다.

앞 대목에서 벤야민의 대중운동의 가장 유력한 매체(대리자)로서 영화가 갖는 사회적 의미를 부각시키고 있고, 그런 맥락에서 아벨 강스를 인용한다. 그리고 아벨 강스가 열광적으로 외치고 있는 바는 바야흐로 현대(1927년)는 '영화의 시대'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 시대에는 과거 문학의 천재(셰익스피어), 미술의 천재(렘브란트), 음악의 천재(베토벤)도 (그런 거 다 물려놓고) 모두 영화를 찍게 될 거라는 것(가자, 영화로!). 즉, 내가 보기에 이 대목에서 셰익스피어, 렘브란트, 베토벤은 고유명사라기보다는 대명사이다. 국역본의 역자들은 이들을 모두 고유명사로 보았고, 그럴 경우 이미 죽은 사람들이 영화를 찍을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역시 논리상!) '영화화될 것이다'라고 옮긴 것이다(직역을 강조하는 이들까지 이 대목에서는 '의역'에의 유혹에 굴복한 것일까?)...

벤야민이 인용하고 있는 아벨 강스(1889-1981)의 글은 '이미지의 시대가 온다!'이며, 벤야민이 밝힌 출처로는 <영화예술(L'art cinematographique)> 제2권(1927)에 수록돼 있다. 그는 두어 페이지의 내용을 발췌하고 있는데, 우연히 들춰본 김성태의 <영화 - 존재의 이해를 위하여>(은행나무, 2003)에는 처음 시작 대목이 아벨 강스의 원문으로부터 이렇게 번역돼 있다.

 

 

  

 

  

"셰익스피어, 렘브란트, 벤토벤은 영화를 만들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왕국은 이전과 같으면서도, 동시에 훨씬 더 넓어졌기 때문이다. 예술적 가치들은 온통 소란스런 전복으로 가득하게 될 것이며, 게다가 지금까지 있어온 어떤 것보다 위대한 꿈들이 환상적이고도 급작스럽게 꽃을 피울 것이다. 단순한 인쇄기계를 넘어서, 모든 심리적인 상황을 변조할 수 있는 꿈의 공장이요 왕수(금이나 백금 따위를 녹이는 화학용액)요 리트머스 용액이기도 한 영화. 이미지의 시대가 온 것이다!"(236쪽)

딴은 이래저래 대조해볼 필요도 없었던 것이다. 한편, 프랑스의 저명한 영화감독이자 제작자로서 무성영화 시대의 거장인 아벨 강스의 영화로는 마침 1927년에 만들어진 대표작 <나폴레옹>이 국내에 출시돼 있다(프란시스 코폴라가 1981년에 재상영한 버전이다). 재작년인가 할인매장에서 3,000원 주고 사둔 걸 조금 전에 확인했다(감독이 아벨 강스였다는 것도 지금 확인했다!). 요컨대, 아벨 강스가 '영화화'될 거라고 열광적으로 외쳤던 이는 따로 있었으니, 국역본의 역자들이 지목한 '셰익스피어, 렘브란트, 베토벤'이 아니라 바로 '나폴레옹'이었다...  

07. 06.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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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벨 강스는 이렇게 말했다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1-04-24 18:08 
    서점 두 곳에 들러 이주의 관심도서 두 권을 사들고 왔다. 둘다 이론서라는 공통점이 있는데, 이윤영 교수가 엮은 <사유 속의영화>(문학과지성사, 2011)은 영화이론 선집이고, 호미 바바가 엮은 <국민과 서사>는 '네이션'에 관한 탈식민주의적 성찰들을 묶은 것이다.두 책을 모두 갖다놓은 서점이 없어서 한권씩 구하면서 발품을 팔아야 했다(알라딘에는 <국민과 서사>가 아직도 입고돼 있지 않다).그중 <사유 속의 영화&g
 
 
천재뮤지션 2007-06-06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벤빠에게 낼 퀴즈문제가 정답지까지 대동한 채 좀 더 확실해진 것 같네요.^^

로쟈 2007-06-06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불어본을 검토한 분들이 김성태씨의 번역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기도 하므로 '확실해진' 건 아니구요, 좀더 지켜볼 문제입니다...

로쟈 2007-06-07 1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러 이견들 덕분에 생각을 다시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드는 생각은 모든 번역이 다 맞는다는 것이고 다만 뉘앙스들이 달라서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다만 '셰익스피어, 렘브란트, 베토벤'이 고유명사가 아니라는 게 제 기본적인 입장이며 그것들은 각각 최고의 문학, 미술, 음악으로 다시 씌어질 수 있다고 봅니다. (영화는 종합예술이니까) 이 최고의 다른 예술장르들이 영화를 구성하게 될 거라는 뜻으로 제 이해를 정정합니다. 제 초점을 '최고의 예술가들'에서 '최고의 예술작품'으로 옮겨가는 것인데, 이 경우에 현재 제시된 번역들이 모두 타당성을 가질 수 있을 듯하네요...

yoonta 2007-06-07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먼저의 로쟈님의 해석이 맞다고 생각했는데요..문맥상으로 보아도 저명한 예술가들의 이름이 나열되고 그런 유명한 예술가들이 오늘날 살아있다면 영화라는 종합예술의 영역에서 활동할 것이다라고 보는게 더 자연스러운것 같은데 말이죠. 독일어로 보아도 그게 자연스럽고.. 먼저의 생각을 폐기하신다면 불어원문을 번역한 것으로 보이는 김성태씨의 번역이 신뢰하기 힘들다는 이야기가 되는데..김성태씨 책에서의 문맥으로 봐도 먼저의 로쟈님의 해석이 맞는것 같은데.. 말이죠.

로쟈 2007-06-07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부 불어 전공자들의 의견을 반영한 것인데, 그에 따르면 '셰, 렘, 베가 영화화 될 것이다'가 맞다는군요. 영어나 러시아어는 그냥 '영화를 만들 것이다' 정도라서, 왜 그런 차이가 빚어졌는가 생각해보다가 '셰, 렘, 베'가 그런 수준의 '작품'을 가리킬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러니까 불어 전공자들이 주장하듯이 김성태씨의 번역이 오역인 것도 아니고, 독역본 번역자들의 잘못도 아니란 결론이죠. 다만 '셰, 렘, 베가 영화화 될 것이다'란 번역에서 '영화화'란 표현이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게 제 잠정적인 결론입니다. 일역본은 '셰, 렘, 베가 영화에 등장하게 될 것이다'라고 했다는군요...
 

비공개 리뷰로 분류했던 글을 페이퍼로 옮겨놓는다. <문학과사회>(2006년 가을호)에 지젝의 <신체 없는 기관>(도서출판b, 2006)에 대한 서평으로 게재되었던 것이다. 분량 제한 때문에 '들뢰즈와 헤겔'에 관한 내용만 간추렸는데, 사실 책은 한편으로 에이젠슈테인의 <이반 대제>론으로도 읽을 수 있을 만큼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다(최근에 에이젠슈테인론을 대학원 수업시간에 읽다가 <신체 없는 기관>을 다시금 떠올리게 됐다). 하지만, 그걸 다 음미하기도 전에 지젝은 서너 권의 책을 더 써낼 것이다!..



우리 영화 <왕의 남자>의 끝장면에서 광대 장생은 줄 위에 앉아 연산군을 희롱하며 재담을 늘어놓는다. “아, 이놈이 기생들 요분질이 시시해지니까 이번에는 사내놈하고 붙어먹는 짓도 서슴지 않는데, 그 비역질이 보통 비역질과 달라서 밥이 나오고 비단옷이 나오고 벼슬까지 나오는 비역질이더라!” 그런데, 이 비역질이 비단 절대권력자만의 것이 아니라 철학자의 것이기도 하다면 어쩔텐가? 철학사가 바로 그러한 비역질의 산물이라면? 그리고, 이 ‘비역질의 철학’이 ‘순진무구의 철학자’ 질 들뢰즈의 주특기였다면?

들뢰즈 자신이 한 대담에서 밝혀놓은 터라 특별한 비밀도 아닌 이 사실을 “들뢰즈를 다루는 라캉주의적 책”(p.10)의 저자가 놓칠 리 없다. 지젝이 인용하는바 들뢰즈는 이렇게 말했다. “철학사를 일조의 비역, 혹은 같은 얘기지만, 무염시태 같은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었지. 나는 어떤 작가의 등에 달라붙어서 그의 애를 만들어낸다고 상상했지... 하지만 그 아이가 괴물 같다는 사실 역시 필수적인 것이었지.”(p.98) 




 

 

 

 

 

 

그리고 이러한 ‘비역질의 철학적 실천’을 지젝은 <신체 없는 기관>에서 들뢰즈에게 그대로 되돌려준다. “요컨대 우리가 들뢰즈 자신 뒤에 달라붙는 행위를 감행하고 들뢰즈에 대한 헤겔적 비역질이라는 실천에 관여하는 것이 왜 안되겠는가? 이 책의 궁극적인 목적은 바로 거기에 있다.”(pp.101-2)  

사실 ‘기관 없는 신체’라는 들뢰즈의 상용구를 ‘신체 없는 기관’으로 뒤집은 표제 자체가 들뢰즈의 뒤에 달라붙으려는 지젝의 전략을 암시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대화(dialogue)가 아닌 조우(encounter)'라고 서문에서 이 책의 성격을 규정할 때 그 ‘조우’의 장면으로 우리가 자연스레 머릿속에 그려볼 수 있는 것은 ‘뒤에 달라붙는’ 장면이다. 즉, 지젝을 따라읽으며 우리가 이 ‘소책자'에서 마주하게 되는 것은 들뢰즈의 ‘얼굴’이 아니라 ‘뒤통수’이다(지젝은 자신의 책을 'booklet'이라고 지칭했는데, 번역본의 분량은 본문 400쪽이지만 원서는 213쪽이다). 들뢰즈 자신은 보지 못하는 ‘또 다른 들뢰즈’ 말이다. 

 

그렇다면, 왜 들뢰즈인가? 그건 지젝 자신이 짚어주고 있는 바대로, 최근 10년간 그가 “현대 철학의 중심적 준거점”으로 출현했기 때문이다(참고로, 지젝이 보는 현대철학의 3항 구도는 '들뢰즈-데리다-라캉'이며, 이것은 '스피노자-칸트-헤겔'이라는 근대철학적 구도의 반복이다). 우리 주변에서도 언제부턴가 ‘저항하는 다중’ ‘유목적 주체성’ ‘반-오이디푸스’ 같은 들뢰즈식 개념들이 마치 ‘공통 통화’처럼, 진보와 저항의 이론적 근거처럼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지젝이 보기에는 이렇듯 ‘유행하는 들뢰즈 이미지’, 곧 반-헤겔적, 반-정신분석적 들뢰즈의 이면에서 훨씬 더 급진적이고 파괴적인 들뢰즈를 읽어낼 수 있다(이때의 들뢰즈는 헤겔적/라캉적 들뢰즈이다!). 다시 말해서, 지젝이 도입하는 것은 ‘들뢰즈 대 들뢰즈’, ‘들뢰즈에 대립하는 들뢰즈’의 구도이고 그 긴장이다.


지젝에 따르면, 들뢰즈의 최고의 책 <의미의 논리>와 최악의 책 <안티-오이디푸스> 사이에는, 곧 “의미-사건의 비물질적 생성의 불모성과 관련된 들뢰즈”와 “존재의 물화된 질서에 맞서 생성의 생산적 다수성을 찬미한 들뢰즈” 사이에는 양립불가능한, 화해할 수 없는 대립이 놓여 있다(지젝은 들뢰즈가 가타리와의 공동작업을 청산하고 쓴 <시네마>를 통해서 <의미의 논리>에서의 들뢰즈, 본래의 들뢰즈로 회귀하는 것으로 본다). 그는 아예 들뢰즈가 자신의 이전의 입장이 처한 곤궁으로부터 쉬운 도피처를 가타리에게서 찾은 것이지 않겠는가라고 제안한다(철학사에서 그러한 도피/회피의 사례는 드물지 않다면서).

‘잠재적인 것’(잠재태)과 ‘현행적인 것’(현실태) 사이의 대립을 ‘생산'과 '재현'의 대립, ‘생성’과 ‘존재’의 대립과 동일시함으로써 들뢰즈는 유물론으로부터 관념론으로 퇴행한다. 그럴 경우 “생산의 고유한 현장은 잠재적 공간 자체가 아니라 오히려 잠재적 공간에서 구성된 현실로의 바로 그 이행”이고 “생산은 근본적으로 잠재성들의 열린 공간에 대한 제한이며, 잠재적 다수성에 대한 규정이자 부정”(p.49)이라는 ‘의미의 논리’의 결과를 간과하게 된다.

  

사실 “들뢰즈의 위대한 반헤겔적 모티브는 절대적 긍정성, 즉 부정성에 대한 그의 철저한 배격”(p.108)에 놓여 있다. 그때 스피노자주의자로서 들뢰즈가 상정하는 헤겔은 ‘순진무구한’ 헤겔이다. 즉 “헤겔은 존재의 순수 긍정성에 부정성을 도입하며 또한 헤겔은 분화를 긍정적 일자의 종속적/지양가능한 계기로 환원하기 위해 부정성을 도입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에 대한 지젝의 반격은 “헤겔이 궁극적으로 부정성에 대해 행하는 것은 전례 없는 부정성 그 자체에 대한 ‘긍정화’가 아닌가?”(p.108)란 반문이다

헤겔에 대한 들뢰즈의 단순화는 “칸트에 맞선 혹은 칸트를 넘어선 헤겔의 움직임”에 대해서도 간과하게 만든다. 들뢰즈는 자신이 증오해 마지 않는 헤겔을 그답지 않게 전통적인 방식으로만 읽는다(마치 헤겔의 뒤에 달라붙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듯이). 그래서, “헤겔은 칸트로부터, 자기투명하고 완전히 현행화된 존재의 논리적 구조를 표명하는 절대적 형이상학으로 회귀한 자”(p.118)란 이미지만을 반복한다. 

하지만, 지젝이 보기에 헤겔의 통찰이야말로 들뢰즈적인 것이다.“하지만 헤겔이 칸트에게 여하한 긍정적인 내용도 덧붙이지 않는다면, [칸트적 체계의] 간극을 채우지 않는다면 어찌할 것인가?.. 헤겔의 ‘절대지’는 ‘모든 것을 아는’ 터무니 없는 입장이 아니라 진리를 향한 경로가 어떻게 이미 진리 그 자체인지에 대한 통찰, 절대자가 어떻게 정확히 - 들뢰즈의 용어로 말하자면 - 자기 현행화의 영원한 과정의 잠재성인지에 대한 통찰이라면 어찌할 것인가?”(pp.118-9)

 

들뢰즈에 대한 지젝의 이러한 독해, 혹은 달라붙기가 산출해내는 것은 헤겔=들뢰즈=라캉의 ‘기이한 등가계열’이다(지젝은 들뢰즈=라캉의 테마에 대해서도 ‘오이디푸스-되기’ ‘환상’ ‘남근’ 등의 모티브를 통해서 입증한다). 이것이 어쩌면 “참을 수 없는 괴물”(p.103)이어서 들뢰즈는 헤겔을 자기 특유의 비역질, 혹은 ‘자유간접화법’에 의해 전유될 수 없는 절대적인 타자로 고양시켜야만 했는지도 모른다. 반대로, 지젝이 하고 있는 일은 들뢰즈가 꺼려 했던 바로 그 일이다.   


“들뢰즈는 헤겔이다”라는 일종의 무한판단, 바로 그것이 ‘들뢰즈에 대한 헤겔적 비역질’, 보통의 비역질과는 다른 ‘비상한 비역질’을 통해서 우리시대의 광대-철학자 지젝이 얻어내는 결과이다. 그리고 책의 2부에서는 그 결과의 ‘결과들’을 과학, 예술(영화), 정치라는 세 가지 주요 영역들에서 차출해낸다. 특히 주목을 끄는 것은 흔히 말해지는 ‘들뢰즈적 정치’의 곤궁과 불능을 드러내는 대목들인데, 지젝이 단언적으로 미리 주장하는 바는 이렇다. “혁명적 전복에 관한 그 어떤 가능한 관념이라도 ‘반-오이디푸스적 반란’이라는 문제틀과 총제적으로 단절해야 한다.”(p.199)

지젝이 이 책을 헌정하고 있는 조운 콥젝은 “이제부터 들뢰즈에 대한 모든 독해는 이 중요한(필수적이기까지 한) 책을 통해 우회해야만 할 것이다”라고 예언한다. 스피노자에 대한 들뢰즈의 무조건적 존경을 빗대어 지젝은 “스피노자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도대체 가능한가?”(p.72)라고 반문하는데, 그 반문을 조금 비틀어서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지젝을 읽지 않는 것이 도대체 가능한가?” 

06. 08. 05./ 07 06.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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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onta 2007-06-04 0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다시보는 글이네요..^^ 당시 자세히 읽어보지 않아서 대충 넘어갔는데..지금 다시 읽어보니 흥미로운 구절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가령 "헤겔의 ‘절대지’는 ‘모든 것을 아는’ 터무니 없는 입장이 아니라 진리를 향한 경로가 어떻게 이미 진리 그 자체인지에 대한 통찰, 절대자가 어떻게 정확히 - 들뢰즈의 용어로 말하자면 - 자기 현행화의 영원한 과정의 잠재성인지에 대한 통찰이라면 어찌할 것인가" 와 같은 말을 지젝이 하였다는 것은 지젝의 말처럼 들뢰즈가 헤겔적으로 독해될수있다는 이야기도 되지만 거꾸로 헤겔이 들뢰즈적으로 혹은 칸트, 스피노자적으로 독해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될 것 같네요. 물론 들뢰즈가 헤겔을 지나치게 단순화하여 비판하였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지젝만이 했던 비판이 아니라 여러 헤겔전문가들도 마찬가지의 비판을 하곤 했죠. 그렇다면 헤겔의 철학이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것을 다시 되돌아 보아야 하는데, 그부분에서 지젝은 들뢰즈와 헤겔의 "등가성"만 이야기하고 "차별성"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네요. 적어도 위 페이퍼에서는 말이죠. 그렇다면 지젝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헤겔을 들뢰즈적으로 혹은 스피노자적으로 독해해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는 것인데..이부분에서 물음표를 남겨둘수밖에 없네요. 특히 헤겔이 행했던 칸트와 스피노자에 대한 비판을 되돌아보면 말이죠. 그리고 거꾸로 이야기하자면 헤겔은 칸트와 스피노자를 들뢰즈가 헤겔에게 했던 것처럼 단순화하여 결과적으로 자신의 철학이 칸트적 스피노자적 논리를 따름에도불구하고 그들과의 유사성 보다는 차별성을 부각시키려 했다는 것에 불과하다고 이야기해도 될것 같은데 말이죠. 그렇다면 위에서처럼 "헤겔=들뢰즈=라캉"이 성립하는 것 만큼 "스피노자=칸트=헤겔"등식도 성립한다는 것을 지젝은 보여주어야 될것 같은데...

로쟈 2007-06-04 17: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하나에 너무 많은 걸 기대하시는 것 아닌가요?^^ 여기서 생략된 많은 이야기들은 지젝에게서 직접 들어보실 수 있을 겁니다. 저는 지젝 비판도 그 정도의 풍만함을 보여주었으면 싶어요...
 

지난 월요일부터 서재의 문을 닫아놓았지만 아직 버리지 못한 습관(!)대로 흥미를 끄는 기사들은 간간이 스크랩해놓는다. 남의 얘기 같은 않은 기사가 눈에 띄기에(나의 오랜 고민거리이기도 하고) 옮겨놓는다. 중대 대학원신문에 게재된 것이지만 학술저널 담비에서 가져왔다.  


중앙대 대학원신문 제239호(07. 05. 30) 주여, 책으로부터 구원하소서!

나는 가끔 사람들을 만날 때 책을 선물한다. 새 책을 주기도 하지만, 내가 이미 읽은 책들 중에 그 사람들에게 맞을 법한 것을 골라 안겨주기도 한다. 선물의 의도는 두 가지. 그 사람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인 동시에 방을 가득 메우고 있는 책의 양을 줄이기 위해서다.

대체 책이 얼마나 되기에 그러냐고? 많지는 않지만, 남들만큼은 된다. 대충 이천여 권 정도. 고향집에 천 권, 서울에 천 권. 서울에 있는 내 방 책장이 열 개인데, 이것으로 책들을 다 정리할 수가 없어서 방 안이 온통 난잡하다(*나는 그 네 배 정도 되는 듯하다).

당연히 이사 따위는 엄두도 못 낸다. 이전에 살던 기숙사에서 나올 때 책 박스가 서른 개 정도였다. 그 때 고향에 보낸 책 박스가 스무 개. 부모님에게 더 이상 책 사지 마라는 질책을 일 년 넘게 들었건만 이제 그 때를 훌쩍 넘어서는 분량으로 늘어났다(*나는 주변의 모든 사람들로부터 그런 소리를 듣는다).


그러나 책이 늘어나는 만큼 고뇌도 늘어간다. 사랑은 집착을 낳고, 집착은 고통을 낳는 법. 무소유를 외치는 법정 스님도 유일하게 책에 대한 소유욕만은 뿌리치지 못하셨다지 않는가. 책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리 되지 못하는 것이 나의 솔직한 현실이다.

이는 아마 나만의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대학원생들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고민인 듯하다. 대학원생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책을 사서 모은다는 것과 같은 이야기이다(*하물며 대학강사는?). 생물학적 연령과 주름이 비례하듯이 재학기간과 장서량 또한 비례하기 마련이다. 성욕은 감퇴할지라도 책 욕심은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이 대학원생들의 잔혹한 현실이다

내세의 이미지는 현세의 욕망을 반영한다고 보면, 대학원생에게 있어서 천국의 이미지는 도서관이다. 원하는 책으로 둘러싸여 있으면 그게 곧 천국이 아닌가! 다치바나의 ‘고양이 빌딩’처럼 내게도 개인 도서관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욕망은 향락의 근원인 동시에 고통의 원인이기도 하다(苦集). 어린 자식 키울 때는 마냥 예쁠지 모르지만, 다 크고 나면 말썽만 피우듯이 새 책을 손에 쥘 때는 행복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방바닥을 굴러다니는 꼬락서니를 보면 번뇌만 쌓여간다. 그런 의미에서 대학원생의 지옥 또한 도서관일 것이다. 책을 감당 못해 허덕이면 그게 바로 지옥인 것이다. 대학원생에게 텍스트의 외부는 없다. 바벨의 도서관을 벗어날 방도가 없는 것이다(*아래는 다치바나의 서재).



내가 바라는 구원은 책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사진 같은 기억력이나 번개같은 속독력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나는 알라딘의 서재가 짐을 덜어줄 걸로 기대했지만 오산이었다.) 그러니까 브로델처럼 한 번 본 책은 본문과 쪽수까지 다 암기한다거나 장정일처럼 십여 권의 대하소설을 하루 만에 다 읽어치운다거나……. 아니다. 설혹 그런 능력이 있다 하더라도 절판 도서에 대한 나의 페티시즘은 해결되지 않는다. 오, 주여, 이 대학원생을 책의 지옥으로부터 구원하소서!(이원석 문화연구학과 박사과정) 

07. 06.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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깽돌이 2007-06-03 10:29   좋아요 0 | URL
어디 납치된줄 알았습니다 ㅋㅋ.

마늘빵 2007-06-03 11:31   좋아요 0 | URL
로쟈님 뜸하십니다. :)
저도 책 욕심은 점점 커지고 있으니 큰 일 입니다. 이제 플래티넘은 기본입니다. 그게 수치가 얼마나 올라가느냐에 문제지요. 집안에 책 놔둘데는 없고 어여 독립해서 서재를 꾸리고픈 생각뿐.

로쟈 2007-06-03 11:37   좋아요 0 | URL
전에 말씀드린 대로 지금 '휴가중'입니다. 잠시 '나의 서재2' 테스팅을 해보고 있습니다. 글자꼴 바꾸기를 몇 번 했더니 바로 에러가 뜨네요. '새 서재'라고 정을 붙여보려고 하지만 워낙에 굼뜬 타입이라 적응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알라딘 구세대'는 물러가야 되는 게 아닌가도 싶고.--;

푸른괭이 2007-06-03 15:29   좋아요 0 | URL
오, 로쟈님! 그냥 여기에 머무르시지요 ^^ 돌아오셔서 너무 반갑습니다 ㅋㅋㅋ

Mephistopheles 2007-06-03 17:26   좋아요 0 | URL
저도 일이 지치고 힘들 때 가끔 머리속에 개인 도서관 생각이 난답니다..
저푸른 초원위에 붉은 벽돌로 나선형 계단이 들어갈 수 있는 원통형 서가와
함께 벽난로와 푹신한 소파에서 조용히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요..^^
다른 사람들은 동호인 주택이라고 끼리끼리 모여살기도 하는데 저는 이곳
서재분들이 모여서 개인서고식으로 도서관 만들면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자본이..들지만요..^^) 서고를 구분해서 "로쟈관"이라던지 "물만두관"
처럼 말이지요..

작은앵초꽃 2007-06-03 20:25   좋아요 0 | URL
아멘!
남 얘기 같지 않아요. ㅋㅋㅋ

Joule 2007-06-03 23:23   좋아요 0 | URL

흐음. 로쟈님도 새로운 혹성에 적응하는 연습을 좀 해보신 게로군요. 저는 대략 이틀 정도를 만지작거리다가 도무지 맘에 드는 게 하나도 없다는 투덜거림만을 남기고 자포자기했습니다. 하나마나한 소리지만 서재 2.0이라는 새로운 혹성에 혹하시는 분들이 많은 만큼 비슷한 숫자만큼의 행성민들이 저나 로쟈님처럼 마음 못 붙이고 갈팡질팡 우왕좌왕 설왕설래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근데 적응 못해도 다른 데 가지 말고 여기서 놀아요, 우리. 그나마 책 읽는 낙 있는 사람들이 책 있는 데서 놀아야지 어디 간답니까. 글은 올리셔도 댓글 달기에 좀 소원해지면 알라딘 서재질도 할 만하시지 않을까 생각합니다만.

아참, 로쟈님 새로 글 올리셨길래 기분 좋아 한잔했습니다. (한잔하다가 동사라는 거 아세요? 그러니까 붙여 써야 한대요.) 


로쟈 2007-06-04 00:09   좋아요 0 | URL
네 약간 적응 안되네요. 저는 이사 가기 싫어서 8년째 같은 집에서 사는데, 아무리 더 좋아진 서재라지만 느닷없는 '이주민' 신세가 아닐까 싶습니다. 세간들이야 다 갖고 가겠지만서도...

paviana 2007-06-04 10:51   좋아요 0 | URL
약간 안 되세요? 전 미리보기 들어갔다가 화들짝 놀라서 제집에서 길을 잃고 못 나와서 창 닫아서 다시 로그인해서 옛집으로 들어갈 정도에요.흑흑흑

바벨의도서관 2007-06-04 16:17   좋아요 0 | URL
저 글을 쓴 사람입니다. 로쟈 님의 고작 1/4에 불과한 책을 가지고 푸념해서 죄송합니다(그래도 작년과 올해에 쓸데없이 바지런을 떤 탓에 올해가 다 가기 전에 삼천 권을 넘어버릴 것 같습니다).

로쟈 2007-06-04 17:02   좋아요 0 | URL
Paviana님/ 낼모레면 그 돌아갈 집도 없어지는 것 아닌가요?--;
카이로스님/ 죄송하긴요.^^; 다들 저마다의 책 무게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죠. 대학원생 시절에 저도 일년이면 300-400권씩 책이 불어나서 애를 먹었습니다(문제는 나이 들어도 고쳐지지 않는다는 것인데요). 암튼 잘 버티시고, 아주 관대한(!) 배우자를 만나시길...
 

'작가와 문학사이'의 스무 번째 꼭지이다. 듣기에 시인으로는 마지막 차례이고 평론가는 동갑내기 시인 김경주를 꼽았다. 이미 관련 페이퍼(http://www.aladin.co.kr/blog/mylibrary/wmypaper.aspx?PaperId=1042368)를 올려둔 적이 있기에 나로선 덧붙일 군말이 없다. 다만, 읽어보시면 되겠다.

 

작가와 문학사이](20)김경주-비정형의 사유를 연주하다

시인 김경주는 전천후다. 목련의 처연한 죽음(‘목련’)과 헤겔의 ‘정신현상학’(‘정신현상학에 부쳐’)을 똑같은 톤으로 노래하고, 시나리오와 희곡과 장시(長詩)의 경계를 무람없이 오간다. 서정에 능한 가객인가 싶다가도 다시 보면 이렇게 치열한 사색가가 또 없다. 이 무모하리 만큼 완강한 자신감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는 “외로운 날에는 살을 만진다”(‘내 워크맨 속의 갠지스’)라고 적었다. 이 시인은 저 자신의 살에서 우주의 기미(幾微)를 엿보고 영혼의 음악을 듣는다. 이 ‘살’(감각)의 직접성과 확실성이 그의 위력이다. 그는 시를 쓰지 않는다. 감각으로 시를 밀어붙인다. ‘나쁜 피’와 ‘취한 배’의 시인 랭보의 혈족이다.

1976년에 태어나 2003년에 시인이 되었고 2006년에 첫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를 펴냈다. “걱정스러울 정도로 뛰어난 시적 재능”(대산창작기금 심사평), “무시무시한 신인”(권혁웅)과 같은 평가가 과장이 아니냐고 힐난할 일이 아니다. 과장하게 만드는 것도 재능이다. 그의 시에는 읽는 이를 몰아붙여 감탄과 탄식의 언사를 기어이 발설케 만드는 힘이 있다. “우리는 절박하게 부패해가는 생의 오류만을 시라고 불렀다.”(비정성시) ‘절박’과 ‘부패’와 ‘오류’로 밀어붙이는 시라니, 이렇게 대책 없이 젊은 시라니, 도대체 얼마만인가.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라는 선언이 그래서 얄팍해 보이지 않는다. 책상머리에 앉아 제작한 시가 아니다. 생을 절박하게 탕진해 본 자의 오만한 고독이 그의 시를 만든다. 그 진정성이 어색한 비문(非文)과 현학적인 각주까지도 다 삼켜버린다. 이런 잠언 투의 문장은 또 어떤가. “외롭다는 것은 바닥에 누워 두 눈의 음악을 듣는 일이다.”(‘우주로 날아가는 방 1’), “멸종하고 있다는 것은 어떤 종의 울음소리가 사라져간다는 것이다.”(‘우주로 날아가는 방 5’) 금방 소비되고 마는 잠언들과 다르다. 지혜를 설파하는 잠언이 아니라 싸움을 선포하는 잠언이기 때문이다.

“황혼에 대한 안목은 내 눈의 무늬로 이야기하겠다 당신이 가진 사이와 당신을 가진 사이의 무늬라고 이야기하겠다// 죽은 나무속에 사는 방(房)과 죽은 새 속에 사는 골목 사이에 바람의 인연이 있다 내가 당신을 만나 놓친 고요라고 하겠다”(‘기미(幾微)’에서)

“불가피하게 오늘은 내가 너를 사랑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없으니 오늘은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내 눈이 너로 인해 번식하고 있으니 오늘은 너를 사랑한다 오늘은 불가피하게 너를 사랑해서 내 뒤편엔 무시무시한 침묵이 놓일 테지만 너를 사랑해서 오늘은 불가피하다.”(‘몽상가’에서)

그의 첫 시집에서 이보다 더 잘 만들어진 시는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이런 문장들 앞에서 유독 서성거리게 된다. 잘 훈련된 시인의 시는 정련된 언어와 정확한 이미지로 명쾌한 전언을 실어 나른다. 그러나 시인으로 타고난 자들은 때로 의미를 제로로 만들고도 포에지를 100으로 끌어올리는 이상한 재능을 휘두른다. 우리를 사로잡아 사유를 강제하는 것은 절차탁마된 노회한 시들이 아니라 온 몸이 악기인 자가 연주하는 이와 같은 혼신의 노래들이다. 그래서 그의 시는 때로 난해하지만 그 난해함은 읽는 이를 소외시키지 않고 외려 빨아들이는 이상한 난해함이다. 이 모든 것이 다 ‘사유하는 감각’의 권능일 것이다.



“그들의 삶은 늘 유배였고 그들의 교양은 갈 데까지 가보는 것이었으며 그들의 상식은 죽어가는 가축의 쓸쓸한 눈빛을 기억할 줄 아는 것이었다.”(‘비정성시’) 이것은 김경주가 포착해 낸 유목민의 본질이지만 우리가 읽어낸 김경주 시의 본질이기도 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이는 시인과 나이가 같다. 책상에 앉아 세상을 저울질 하는 이 백면서생은 거칠고 아름다운 유목민의 노래를 밤마다 경외와 질투가 범벅된 눈으로 야금야금 읽는다. “나는 전생에 사람이 아니라 음악이었다”고 말하는 벗이여, 너의 현생까지도 음악이다.(신형철|문학평론가)

07. 06.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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