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검은 집>에 대한 리뷰(http://blog.aladin.co.kr/mramor/1309219)를 옮겨놓고 보니까 문득 <삐딱하게 보기>(시각과언어, 1995)의 어느 대목에서 지젝이 하이스미스의 동명의 작품을 다루었는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파트리샤 하이스미스(음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로 읽는구만. 나는 나대로 읽겠다. <삐딱하게 보기>에서는 '패트리시아 하이스미스'라고 읽는다)의 책들이 나온 게 어느덧 재작년 겨울이었다. 책은 두 권쯤 사둔 것 같은데 아직 열어보진 못했다. 그럼에도 물론 지젝의 얘기를 따라가는 데에는 별 지장이 없지만(예전에 읽어둔 책의 서두는 http://blog.aladin.co.kr/mramor/803797 참조).

 

 

 

 

하이스미스의 <검은 집>은 <삐딱하게 보기>의 1장 중 '현실 속의 블랙 홀' 절에서 언급된다. "파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소설 <검은 집>은 환상 공간이 텅빈 표면, 즉 욕망의 투사를 위한 일종의 스크린으로 기능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환상 공간이 갖는 생생한 내용들의 매혹적인 현존은 단지 이 텅빈 공백을 메우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27쪽)

작품의 줄거리는 이렇다: "사건은 미국의 어느 작은 마을에서 일어나는데, 그곳 사람들은 해질 무렵이면 마을의 선술집에 모여서 마을 근처 언덕 위에 있는 오래된 폐가와 어떤 식으로든 관련되어 있는 향수어린 추억과 마을의 전설들을 되새기곤 한다. 이 신비로운 '검은 집'은 어떤 저주에 걸려 있다. 그래서 사람들 사이에서는 누구도 그곳에 접근해서는 안된다는 암묵적인 동의가 이루어져 있다. 그곳에 들어가는 것은 목숨을 건 위험한 일이라고(그 집에 유령이 나타난다든지, 침입자는 모두 죽이는 정신병자가 혼자 살고 있다든지 하는 소문이 퍼져 있다) 여겨졌지만, 동시에 이 '검은 집'은 그들 모두를 젊은 시절의 추억과 연결해주는 장소이기도 했다. 그곳은 그들이 최초로 저지른 범죄, 그 중에서도 성적 경험과 관련된 장소였던 것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그 마을에 이사온 지 얼마되지 않는 젊은 엔지니어다. '검은 집'에 대한 전설을 모두 듣고난 그는 거기 모인 사람들에게 내일 저녁 이 수수께끼에 싸인 집을 탐험해보겠다고 공표한다. 함께 있던 사람들은 그의 발언에 대해서 아무 말도 않했지만 암묵적으로 강한 반대의사를 표명한다. 다음날 저녁 젊은 엔지니어는 뭔가 끔찍한 사건이, 최소한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질 것은 기대하면서 그 집을 찾아간다. 잔뜩 긴장한 채 어둡고 낡은 폐가에 접근한 그는 삐거덕거리는 계단을 올라가서 방마다 모두 조사해보지만 마루 위에 있는 몇 개의 썩은 매트 외에는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다."

"곧바로 선술집으로 돌아온 그는 의기양양하게 그곳에 모인 사람들에게 말한다. 그들의 '검은 집'은 단지 낡고 더러운 폐가에 불과하며 신비스럽거나 매력적인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노라고. 그의 말에 사람들은 충격을 받고, 그 엔지니어가 떠나려고 하자 그들 중 한 사람이 사납게 그를 공격한다. 불행하게도 젊은 엔지니어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죽고 만다."(28쪽)

그렇다면, 어째서 이 마을 신참자의 행동이 사람들을 그토록 경악하게 만들었을까? 지젝에 따르면 그들의 적개감은 "현실과 환상 공간의 '다른 장면(other scene)' 간의 차이"에 주목함으로써 이해할 수 있다. 사람들에게 '검은 집'이 금지된 것은 "바로 그들 자신의 향수어린 욕망과 왜곡된 추억들을 투사할 수 있는 하나의 빈 공간 구실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 공간으로서의 '검은 집'을 그저 낡은 폐가에 불과하다고 폭로함으로써 그 젊은 침입자는 "그들의 환상 공간을 일상적이고 흔해빠진 현실로 환원시켜버렸다. 결국 그는 현실환상 공간 사이의 차이를 제거함으로써 그들이 자신들의 욕망을 접합할 수 있었던 장소를 그들에게서 박탈했던 것이다."('접합하다'는 'articulate'의 번역이다. 여기서는 '표현하다' 정도로 충분하다.)

마지막 문장에 붙은 각주에서 지젝은 이렇게 부연한다: "이러한 점에서 필 로빈슨의 <꿈의 구장>(1989)에서 야구장으로 변형된, 수확을 끝내 깨끗해진 옥수수밭의 역할은 '검은 집'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즉 그것은 환상의 형상이 출현할 수 있는 공간을 여는 청소라는 점이다."(47쪽)

 

"<꿈의 구장>에 관해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돌 것은 그 순수하게 형식적인 측면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면 그 밭을 네모나게 잘라내고 그것을 담장으로 봉쇄하는 것이다. 벌써 유령들이 그 안에서 나타나기 시작하며 그 뒤의 보통 옥수수는 기적과도 같이 유령들에게 생명을 주고 그들의 비밀을 보호하는 신비로운 덤불로 변형된다. 요컨대 평범함 마당이 '꿈의 구장'이 되는 것이다."(48쪽)

지젝은 이 각주에서만도 세 가지 이상의 사례를 더 드는데, 이 정도만으로도 '현실 속의 블랙홀'로서의 '환상 공간'이 곧 '꿈의 구장'이기도 하다는 점은 접수가능하다(어려운 이야기도 아니잖은가?). 여기까지 무리가 없다면 이제 중급 단계인 '환상의 윤리학'으로 넘어갈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시간이 나면 다루도록 하겠다...

07. 06.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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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뉴스에서 영화 리뷰 하나를 옮겨온다.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소설 <검은 집>에 대한 언급 때문인데, 실상 리뷰 대상인 신태라 감독의 <검은 집>은 하이스미스의 작품과는 무관하다고 한다(감독의 이름은 생소하다). 나 역시 이 리뷰와는 무관하게 하이스미스의 소설을 이미지로 띄워놓는다. 영화의 원작이라는 기시 유스케의 소설 <검은 집>(창해, 2007)과 함께. 사실 그녀의 <검은 집>(표제작이 포함된 작품집이 국내에선 <당신은 우리와 어울리지 않아>(민음사, 2005)로 번역돼 나왔다)에 대해서는 지젝이 <삐딱하게 보기>(시각과언어, 1995)에서 다루고 있기도 하다(타인의 환상을 침범하지 말라, 는 게 교훈이다). 공포영화를 즐기는 편이 아니어서 영화를 극장에서 보게 되지는 않을 것 같지만 리뷰는 그닥 공포스럽지 않다...

컬처뉴스(07. 06. 14) 아무 감정 없는 잔혹한 살인

패트리샤 하이스미스라는 미국작가가 쓴 소설 중에 <검은 집 Black House>이라는 게 있다. 한 외딴 마을의 뒷산에 이른바 검은 집이라 불리는 흉가(凶家)가 하나있는데, 마을사람들이 하루 일과를 마치고 선술집에 모일라치면 어김없이 화제로 등장하곤 했다. 귀신을 봤다는 등 여러 설(說)들이 많았다. 어느 날 그 흉가에 대해 듣게 된 한 나그네가 호기심이 발동하여 그곳을 샅샅이 뒤져보고는 그저 텅 빈 집일뿐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다음날로 마을사람들한테 그 사실을 고했다. 아무것도 아닌 것에 괜히 호들갑을 떤다는 투로 말이다.

그 말을 들은 일단의 마을 사람들이 격분하여 나그네를 때려죽이고 말았다. 마을사람들한테 그 흉가는 바로 환상공간이었고, 그 불쌍한 나그네는 환상공간을 침범하는 우를 저질렀던 셈이다. 신태라 감독의 <검은 집>은 사실 이 소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기시 유스케가 쓴 동명의 일본소설을 원작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화두로 꺼낸 까닭은 무엇인가?

 

 

 

 

 

 

 

 

신태라 감독의 두 번째 작품인 <검은 집>은 한국영화로서 드물게 보는 잘 만든 스릴러 영화다. 이전에도 스릴러 영화는 심심치 않게 만들어졌지만, 무늬만 스릴러인 경우가 대부분이었음을 감안한다면, <검은 집>은 이 장르에서 거둔 하나의 작은 성취라고 할만하다. 이 영화는 보험사기라는 현대사회에 만연해있는 병폐현상과 싸이코패스라는 원인모를 병리현상을 절묘하게 결합한 매우 지적인 스릴러 영화라는 것이다. 시종일관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으면서 영화가 끝날 때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게 만든다. 따라서 보험사기와 싸이코패스는 이 영화를 푸는 두 개의 핵심 코드가 된다.

다 알다시피 보험(保險)이란 적금(積金)과는 다르다. 일정기간 적립했다가 만기가 되면 원금은 물론이고 이자까지 쳐서 받는 적금과는 달리 보험은 만기가 되더라도 원금 회수를 기대할 수가 없다. 사망, 화재, 질병 등 뜻하지 않은 사고에 대비하여, 미리 일정한 보험료를 내게 하고, 사고가 일어났을 때 일정한 보험금을 주어 그 손해를 보상하는 제도가 보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고가 나면 불행 중 다행(한몫 챙기니까)이지만, 사고가 안 나면, 보험금은 한 푼도 없다는 역설이 발생하게 된다. 다행 중 불행이랄까?

바로 그 틈바구니 속에 보험사기라는 유혹이 끼어들게 됨은 물론이다. 뜻하지 않은 사고를 ‘뜻한 바 있는 사고’를 통해 위장(僞裝)할 수 있는 여지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험회사에서는 보험사정 업무를 통해서 뜻하지 않은 사고냐 ‘뜻한 바 있는 사고’냐를 가리는데 총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게 된다. 바로 이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정의파 싸나이 전준오(황정민)에게 어느 날 보험사기의 전조(前兆)를 알리는 한통의 전화가 걸려오게 되면서 관객은 자연스럽게 ‘검은 집’으로 초대를 받게 된다. 전화문의의 내용인즉, 자살을 해도 보험금을 탈 수 있냐는 것이다. 대답은 물론 ‘탈 수 있다’이고, 바야흐로 억대 보험금을 노린 범인의 대담한 작전이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그 범인이 단순 사기꾼이 아니라 싸이코패스였다는데 스릴러물로서의 영화의 묘미가 있다. 그렇다면 싸이코패스(psychopath)란 도대체 무엇인가? 영화는 친절하게도 이에 대해 간단명료한 정의를 내려준다. 극중 한 젊은 심리학도가 준오에게 찾아와서 자신이 작성한 석사논문을 통해 싸이코패스와 싸이코의 결정적 차이점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해준다. 매우 시사적인 내용이므로 전문을 인용해보자.

심리학도(한승규) : 싸이코패스는 선천적으로 감정의 기능을 갖지 못하고 태어났어요. 타인의 고통을 모르는데다 죄책감마저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는 거죠. 개다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설령 자기 자식에게 조차 잔혹한 행동을 서슴없이 할 수 있어요.

전준오 : 아니 그럼 싸이코랑은 다른가요?

한승규 : 싸이코는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모릅니다. 그냥 아이를 죽이고 싶어서 죽이는 것뿐예요. 하지만 싸이코패스는 다릅니다. 아이를 죽이면 보험금이 나온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죽이는 거죠.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서 사람을 그냥 물건 보듯 하는 겁니다.

전준오 : 병입니까?

한승규 : 전 병으로 봅니다. 치료할 방법은 없어요. 사회에서 격리하는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참고로 극중 이 남자는 그 싸이코패스로부터 참혹하게 살해당한다.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죽게 마련이라는 스릴러물의 공식이 괜히 생겨난 것이 아님을 새삼 일깨워주는 대목이라 하겠다).

이처럼 무시무시한 인성을 가진 싸이코패스가 보험사기에 뛰어들었고, 순박한 보험사 직원 전준오가 그 상대역으로 간택을 당한 셈이다. 따라서 우리의 주인공 전준오가 과연 어떻게 그 악의 손길을 물리칠지가 영화 감상의 관건이 됨은 물론이다.

전준오 역을 맡은 황정민은 기대한 대로 무척이나 인상 깊은 연기를 보여준다. 황정민은 일치감치 캐릭터 배우(character actor : 조연급)로서의 자격을 인정받았고, <너는 내 운명>이라는 가장 최근작을 통해서 당당하게 스타로서의 지위에까지 올랐다. 말하자면 캐릭터 스타(주연급)로의 승격인 셈이다. <검은 집>에서 그는 캐릭터 창출에 관한 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의 연기변신을 보여준다. <달콤한 인생>에서 주인공 이병헌을 위협하는 극악한 캐릭터의 한 전형을 보여주었던 황정민은 바로 얼마 후 <너는 내 운명>에서는 순박하기 이르데 없는 우직한 노총각으로 180도 변신을 한다. 그랬던 그가 다시 열정적이면서도 인간적이고, 소심한듯하면서도 대범하게 행동에 나서는 보험사 직원 역으로 다시 관객 앞에 섰다. 관객이 응답할 차례다.

이렇게 해서 나는 <검은 집>의 핵심 줄거리를 하나도 발설하지 않고 리뷰를 마무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검은 집’의 환상공간을 불가피하게 침범(侵犯)하는 일이 될 터이니 말이다. 환상공간을 대면코자 한다면, 직접 ‘검은 집’을 방문하시길 바란다.(김시무/ 영화평론가)

07. 06.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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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le 2007-06-15 0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재는 바뀌었지만 그래도 변하지 않는 게 있다면 로쟈님의 페이퍼가 여전히 너무나 재미있다는 것! 로쟈님의 시도 참 좋았어요.

로쟈 2007-06-15 0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온 글을 재미있다고 하시니까 머쓱하네요.^^;

Joule 2007-06-15 0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건 모르시나봐요. 재미있는 글 퍼오는 것도 능력이라는 거. 전 신문도 안 보고 테레비도 없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뉴스를 알라딘 서재를 통해 알게 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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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le 2007-06-15 00:29   좋아요 0 | URL
홋타 요시에의 '위대한 교양인 몽테뉴' 예전에 들었다 놨다 하다 말았는데(왜 저는 일본 작가에 대한 편견이 있는지 모르겠어요. 일본 문화에 대한 편견은 없는데. 민족주의자도 아닌데. 게다가 애국자도 아니고) 로쟈님은 읽어 보셨어요? 어때요.

로쟈 2007-06-15 00:37   좋아요 0 | URL
이번에 도서관에서 대출했습니다. 너무 자세하다는 평도 있더군요. 한데 1권은 벌써 품절 모드입니다...
 

지난주에 '중국 소설이 온다!'란 페이퍼를 만든 적이 있는데, 대표작가 중 한 사람이 쑤퉁이 방한했다('중국 작가가 왔다!'고 해야겠다). 아침에 전철에서 읽은 기사를 옮겨놓는다. 아직 그의 소설들을 읽은 바 없지만 그의 소설을 원작으로 했단 영화 <홍등>은 오래전에 본 기억이 있다. 우리에게 보다 친숙한 작가가 될지 두고봐야겠다(적어도 양적으로는 그럴 만한 여지가 충분하다. 쑤퉁은 최근 가장 많은 번역이 국내에 소개된/소개될 중국 작가이다).

경향신문(07. 06. 14) “소설…자기 내면과의 계약”…쑤퉁·전형준 교수 대담  

중국 작가 쑤퉁(蘇童·44)이 한국에 왔다. 중국 당대문학(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 가운데 가장 먼저 한국에 소개된 위화가 2000년 처음 한국 땅을 밟은 데 비하면 7년 늦었다. 그러나 그의 한반도 상륙은 중국 소설이 각광 받기 시작하는 시점에 이뤄진 만큼 훨씬 빠르고 순조로울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소설집 ‘이혼지침서’(아고라)가 나왔으며 올들어 장편소설 ‘쌀’(")과 ‘나, 제왕의 생애’(")가 출간됐다. 또 이달 말에는 ‘푸른 노예’(문학동네)가, 9월쯤에는 ‘무측천’(비채)이 나온다. 중편집 ‘양귀비의 집’ ‘홍분’(아고라)도 번역 중이다.

1980년대 중국 선봉파(전위) 문학의 기수로 알려졌던 그의 문학은 90년대 들어 거대 담론으로서의 역사를 해체하는 신역사주의로 변모한다. 문학평론가인 전형준(필명 성민엽) 서울대 중문과 교수가 지난 12일 그와 대담을 나눴다.



전형준=쑤퉁이 한국에 알려진 계기는 장이머우의 영화 ‘홍등’이었다. 원작소설이 중편 ‘처첩성군’(‘이혼지침서’ 수록)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원작에 없는 볼거리를 제공하는 반면 세부를 바꾼다. 밤마다 홍등을 건다든지, 발마사지를 한다든지 하는 다소 수상한 모티브도 추가되고 가짜 임신소동 통해 여주인공 쑹롄의 성격에 적잖은 변화가 나타났다. 이런 변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쑤퉁=영화는 감독의 것이기 때문에 관여하지 않는다. 영화가 나왔을 때 한 문학잡지 편집자로 일했는데 영화 때문에 유명해진 걸 몰랐다. 어느날 홍콩 사람이 전화를 해서 “영화에 나오는 발마사지 도구에 대해 잘 아는 것 같으니 함께 돈벌이를 해보자”고 해서 그때서야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이 봤다는 걸 알았다. 그러나 그 도구는 장이머우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다.(웃음)

전형준=중국 영화는 소설을 원작으로 한 경우가 유별나게 많다. 그러나 영화를 소설로 착각하는 데서 비롯되는 오해도 적지 않다고 본다. 문학연구자의 입장에서 볼 때 안타까운 건 중국 영화를 이야기할 때 문학을 비하하면서 영화를 띄우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쑤퉁=영화는 소설의 친척이지 자식은 아니다. 장이머우나 첸카이거는 소설을 무척 신뢰해서 소설로 영화를 만드는 경향이 두드러졌으나 요즘 영화는 상업적으로 변해서 감독 머릿속의 생각을 글로 만들어서 영상으로 옮긴다. 그러나 소설은 소설로서의 역할이 있고, 영화로 옮겼을 때의 결과는 머릿속에서 끄집어낸 어떤 생각으로 만든 영화와는 다르다.



전형준=선봉파에서 신역사주의 작가로 변했다는 평가에 대해 자신은 어떻게 생각하나. 나는 소설은 소설일 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식의 설명을 좋아하지 않는다.

쑤퉁=동의한다. 소설을 쓰는 건 자신의 내면과의 계약이다. 분류에 맞춰 소설을 쓰는 게 아니라 내가 쓰고 싶은 내면의 변화를 쓴다. 선봉파였지만 후퇴한다는 이야기를 들어도 원하는 걸 쓸 수 있는 게 자신과의 계약이다.

전형준=후퇴란 말은 실험성이 약화되거나 대중성과 타협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대중성을 고려한 것인가.



쑤퉁=나는 상업적으로 성공한 작가가 아니다. 장이머우가 영화를 찍음으로써 유명해졌는데 중국에서 3만 독자만 유지해도 좋다고 생각하다가 90년대 문학이 약세를 면치 못하면서 5000명만 남아도 좋다고 생각하게 됐다. 작가는 계속 변한다. 이를테면 ‘나, 제왕의 생애’는 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작품인데 젊었을 때 아니면 쓸 수 없는 아름답고 따뜻한 이상세계의 이야기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현실을 직시한다. 현실과 타협하는 게 아니라 현실을 주제로 쓰게 됐다.

전형준=‘쌀’이나 ‘나, 제왕의 생애’는 인간의 부조리 탐구, 잔혹극에 가까운 상상과 묘사, 상식이라는 이름의 지배 이데올로기에 대한 전복 등 좋은 의미의 불온성이 느껴진다. 창작 의도는 어떤 것이었나.



쑤퉁=‘쌀’은 첫번째 장편인데 인간성 속에는 아름다움과 함께 남에게 보일 수 없는 추악함이 있다고 생각했다. 아름다움은 묘사가 쉽지만 어둠은 표현하기 어렵다. ‘쌀’의 주인공 오룡은 최악으로 표현돼서 추리소설처럼 비현실적이기도 한다. ‘나, 제왕의 생애’는 우화에 가깝다. 제왕에서 광대가 되는 것, 하늘과 땅, 진실과 거짓, 어둠과 밝음의 극단을 잘 묘사하고 싶었다.

전형준=한국뿐 아니라 선진국에서도 문학의 위기에 대한 논의가 나오고 있다. 중국은 어떤지.

쑤퉁=중국도 당대문학의 황금기는 70~80년대였다. 당시에는 드라마·영화·음악 등이 상대적으로 부족해서 소설이 사람들의 정신적 욕구를 충족해주던 시기였다. 원래 생일케이크처럼 크고 중심에 놓였던 문학이 대중매체 발달에 따라 조그만 치즈케이크로 변했다.

전형준=중국에 사회주의 시장경제가 도입된 이후 물질적 측면은 크게 발전한 반면 민주화나 부의 분배 등은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다. 현재 중국에 필요한 정신적 가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쑤퉁=현재 중국의 문제는 빨리빨리다. 집도 빨리 짓고 돈도 빨리 벌고 뭐든지 그렇다. 이런 변화가 빠른 종말을 맞을 수도 있다. 먼저 낚아채는 사람이 임자라고 생각해서 정신적으로 공황을 맞게 된다. 그러나 가난하게 살았던 기간이 너무 길기 때문에 누구라도 자본주의 맛을 봐야 할 상황이다. 과거의 인상 쓰는 중국인들에 비하면 요즘 젊은이들은 중국인 같지 않다. 일본 아이나 한국 아이와 다를 바 없는 천진난만함은 물질이 가져다준 것이다. 사람은 산 꼭대기에 있어야 하늘을 가까이 볼 수 있고 산 밑에 사는 사람들은 산기슭만 바라본다. 중국인들은 아직 산 밑에 있다.

전형준=한국 독자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씀은.

쑤퉁=내 책을 두 권씩 사서 한 권은 자신이 읽고 한 권은 남에게 선물해주길 바란다.(웃음)



◇쑤퉁은 누구?
본명은 퉁중구이(童忠貴). 1963년 장쑤성에서 태어나 84년 베이징사범대 중문과를 졸업했다. 83년 등단한 뒤 중편 ‘1934년의 도망’(1987)에서의 형식실험으로 선봉파의 중심인물이 된다. 중편 ‘처첩성군’(1989), ‘홍분’(1991)이 영화화돼 대중에게 알려진다. 영국 캐논게이트 출판사의 세계신화총서에 오르한 파묵, 주제 사라마구, 토니 모리슨 등과 함께 참여해 집필한 ‘푸른 노예’로 세계적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방한 일정
▲14일 오후 4시 30분 서강대 강연회(다산관) ▲15일 오후 7시 교보문고 주최 강연회(서교동 한국출판인회의 강당) ▲16일 오후 2시 교보문고 사인회(광화문점) ▲ 16일 오후 5시 작가와 독자의 밤(홍대근처 중국음식점 ‘피낭’)

경향신문(07. 06. 14) 이제 中國을 읽는다…위화·모옌·쑤퉁 작품 출간

중국 당대소설의 삼두마차로 불리는 위화, 모옌(영화 ‘붉은수수밭’의 원작자), 쑤퉁을 시작으로 중국 소설이 한국에 속속 소개된다. 개혁 개방 이후 사회주의 당파성을 벗어난 40~50대 작가들이 써내는 중국 소설은 서구 출판계에서도 관심의 대상이다. 이미 독자들에게 익숙해진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작가들의 후속으로 중국 작가들을 발굴하고 있다.

국내 출판계는 올들어 발동이 걸렸다. 일본 소설이 포화상태에 이르면서 중국 소설이 ‘블루오션’으로 떠올랐다. 고전·무협·역사소설을 제외한 순문학 기준으로 볼 때 지난해 10여편에서 올해는 30여편으로 껑충 뛰었다.



단일작가로 가장 많은 책을 선보이면서 독주가 예상되는 쑤퉁 외에 위화(*왼쪽)는 10년 만의 장편인 ‘형제’(2권·휴머니스트)를 이달 말 출시한다. 또 모옌(*오른쪽)의 소설 ‘생사피로’(창비)가 올 하반기에 나온다. 포스트모던 작가인 옌롄커의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웅진), 청소년 소설 ‘빨간 기와’로 국내 독자와 낯을 익힌 차오원쉬안의 성인용 장편 ‘천표’(은행나무)도 올 안에 출간된다.

김영사 임프린트인 비채는 쑤퉁의 ‘무측천’ 외에 영화 ‘국두’의 원작소설인 ‘푸시푸시’의 작가 류헝의 장편 ‘수다쟁이 장 따닌의 행복한 생활’, 팡팡의 ‘행위예술’, 허다차오의 ‘칼과 칼’ 등 5종의 중국 소설을 올해 내놓는다. 문학동네 역시 쑤퉁의 ‘푸른 노예’ 외에 비페이위의 ‘청의’를 준비 중이다. 현암사도 한사오궁의 중단편 선집으로 중국 소설에 뛰어든다. 얼마전 중국의 대형 베스트셀러였던 양즈쥔의 ‘사자개’(황금여우)도 나왔다.

중국 소설의 강점은 탄탄한 기본기로 평가된다. 문학동네의 오영나 해외문학팀장은 “중국 특유의 입담과 표현력으로 과거 이야기를 살려내는 데 깊이가 있다”고 말한다. 또 비채의 이영희 사장은 “일본 소설에 비해 기교는 무방비 상태지만 읽다보면 확 와닿는 느낌이 있다”면서 “상황은 늘 좋지 않은데 유머와 위트가 살아 있는 것”을 중국 소설의 강점으로 꼽는다.

아직 중국 소설의 시장 규모는 크지 않다. 한 종당 3000~5000부를 소화하는 게 목표다. 그러나 출판기획자들은 “새 작품을 소개하는 보람이 있고 시장이 세분화하면서 독자층이 좀더 넓어질 것이란 기대가 있기 때문에 당분간 중국 붐이 계속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한윤정 기자) 

07. 06.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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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7-06-15 21:25   좋아요 0 | URL
제 보관함에 이 작가의 책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페이퍼 별찜해 갑니다.
새서재가 되어서도 여전히 방대하고 알 빵빵한 자료정보를 기대합니다.

로쟈 2007-06-15 23:14   좋아요 0 | URL
기대에 부응하려면 땀깨나 나겠는데요.^^;
 

자정이 다 되어 서재에 들어와보니 전혀 '딴집'이 돼 있다. 아니 그 이전에 익숙했던 '나의 서재'가 '로그인' 화면으로만 연결되길래 이미 상황이 종료됐다는 것 정도는 짐작했지만 아무래도 '익숙한 것들과의 결별'은 얼마간의 시간을 요구하는 듯싶다(어찌됐든 현재로선 마음에 드는 구석을 찾을 수 없다!).

서재의 이름도 꼭 붙여야 되는 것처럼 뜨길래 잠시 생각해보다가 '로쟈의 저공비행'이라고 붙였다(바뀐 서재에도 그냥 '로쟈의 서재'라고 해놓는 건 어울리지 않아 보여서). 20년전에 쓴 시 중의 하나가 그런 제목을 갖고 있었다. 테스트 삼아서 적어본다(이미지도 함께).

그대의 잠든 하늘을
잠행하다가
독일제 대공포 소리를 들었다
어느 이름 모를 별자리의
비명 소리를 들었다
그는 아마
저공비행을 하였던 것 같다

어쨌든 새로운 비행이 시작되었다. 마음에는 안 들더라도 하는 수 없는 노릇이지. 대공포화나 조심해야겠다...

07. 06.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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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산 2007-06-14 0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 벽지를 독특한 것으로 바르셨네요.
서재2.0이 맘에 안들면 어쩌나... 걱정했었는데, 우려했던 것보다는 괜찮은 것 같아요.

로쟈 2007-06-14 0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주여행 하시는 거에 비하면야.^^

필라멘트 2007-06-14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도 쓰시는군요. 시 좋은데요. 로쟈님이 못하시는게 뭔지.. ㅎ

2007-06-14 11: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7-06-14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키드마크님/ 아, 시는 안 쓴 지 좀 됐습니다. 쓰는 게 즐거움을 주기는 했는데, 다른 일들과 병행하기가 어려워서요.^^;
z님/ 책으로 내시는 게 아니라면 그 정도로 무난할 거 같습니다. <바틀비>는 번역본이 있으므로 한번 대조해보시길...

2007-06-14 14: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늘빵 2007-06-14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로쟈님 못하는게 뭡니깟.

로쟈 2007-06-14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돈벌이를 잘 못합니다.^^;

Joule 2007-06-15 0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락사스님, 로쟈님은 고공비행을 잘 못해요(아, 쫌 썰렁했다. ㅡㅡ'). 그리고 제 생각에는 음주댓글 달기 뭐 그런 것도 잘 못 하실 것 같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