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일들과 겹치게 됐지만 6월의 마지막 일정 중 하나는 황석영의 <오래된 정원>(창비, 2000)과 임상수의 <오래된 정원>(2007)에 대해 강의하는 것이다. 사실 '강의'라는 건 핑계이고 나 자신이 지난 20년을 잠시 돌이켜보기 위한 '뒷북'으로 지난 겨울에 기획해서 한 독서모임의 프로그램으로 제안한 거였다(나는 뒤늦게 5월의 사회적 독서 목록을 6월까지 연장하면서 <오래된 정원> 등을 추가했다. http://blog.aladin.co.kr/mramor/1108684). 

소설은 이번에야 읽게 됐는데, 지난 2000년에 처음 출간됐을 때 내가 받은 첫인상은 '정원'이란 말이 너무 튄다는 것이었다('뜰'이나 '밭'이나 '마당'에 비해서 얼마나 이국적인 말인지!). 작가의 후기를 읽고서야 의문이 풀렸는데 그는 이렇게 적었다. "1993년 귀국하자마자 구치소에 있을 무렵 운동시간에 나가 하염없이 시멘트 담벽 안의 비좁은 공간을 맴돌면서 문득 무릉도원 이야기와 샹그릴라 전설이며 하는 것들을 생각하던 중 '오래된 정원'이라는 제목이 떠올랐다." 그러니까 '오래된 정원'은 '무릉도원'과 '샹그릴라'의 은유인 셈이고, 이국적 뉘앙스가 배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다.

영화의 관련 영상을 포함하여 몇 가지 강의자료들을 챙기다가 작가와 감독의 대담이 눈에 띄어 스크랩해놓는다(사실 눈에 띈 건 오래됐지만).말미에 주연배우로 이병헌이 언급되기도 하는 걸 보면 아직 영화의 캐스팅도 공식적으론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루어진 대담이다. '잃어버린 서사를 회복하자'라는 작가의 제안이 눈길을 끄는데, 사실 이 1인칭 소설을 읽어가면서 내가 느낀 건 작가가 지난 시대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적절한 연상인지는 모르겠지만, 소설을 읽으면서 일감으로 떠올린 작품은 신경숙의 <깊은 슬픔>이었다. 황석영은 왜 3인칭으로 쓰지 않았을까? '연애감정'을 다루기 때문에? 그게 그렇게 중요했던가?).

"잊어서는 안될 한 시대의 진실"(백낙청)이 "헌신적인 활동가들의 정서적 심층에 잠재된 연애감정의 음영을 절묘하게 포착한 작품"(염무웅)으로 귀결되는 것인지, 그렇게 봉합되고 봉인되는 것인지 의구심도 갖게 된다. '잃어버린 서사를 회복하자'는 구호는 작가의 독백적 구호가 아니었을까란 생각도 들면서. 영화 <오래된 정원>은 소설이 흘려버린 서사를 챙겨주고 있는지? 아직 남겨놓은 소설과 영화를 마저 읽고/보고 좀더 생각해봐야겠다(나는 강의준비를 미리 하지 않는다).  

씨네21(05. 07. 27) "잃어버린 서사를 회복하자는 선언이라도 하자”

황구라라는 말이 있다. <오래된 정원>의 원작자인 황석영 작가와 각색자이자 연출가인 임상수 감독과의 대화는 일대일의 공정한 대담이 되기 어려웠다. 오후 4시에 만나 다음날 새벽 3시까지 황석영 작가는 쉬지 않고 말했다. 본인 레퍼토리만 200가지라고 한다. 임상수 감독은 황석영 작가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3대 구라에 대해 얘기했다. “누군가 황 선생님한테 선생님이 망명 기간 동안 그리고 감옥을 다녀 오는 동안 새로운 구라들이 떴습니다, 했더니 황 선생이 이랬대요. ‘걔네들은 교육방송 수준이야. 내가 라디오지.’” 황석영 작가의 라디오는 쉬지 않고 연애, 감옥생활, 신자유주의, 노동의 이동, 비정규직, 한국 문학의 위기, 한국영화의 위기, <한겨레>의 발전 프로젝트 등 주제를 옮겨다니며 능청스럽고 활달하게 유쾌한 이야기를 쏟아냈다. <오래된 정원>은 군부독재 반대 운동으로 18년간 장기복역하고 출옥한 오현우가 그동안 만날 수 없었던 사랑하는 연인 한윤희의 자취를 찾아가는 이야기다. 사랑하지만 만날 수 없는 연인의 가슴 아픈 사연를 뼈대로 고난의 한국 현대사를 담아냈다.

황석영 | 내가 임상수 영화를 씹으려고 나왔는데. (웃음) <그때 그 사람들>이랑 <바람난 가족>을 봤는데, <바람난 가족>이 훨씬 좋더라고. 저 양반이 자기 특유의 화법이 있는데 조금씩 비약이 있더구먼. 앞으로 혼내서 조금만 다듬으면 좋겠어. (웃음) 저 사람이 참 고급이야. 우리는 딱 알겠더라고. 내용이 남반부의 천민자본주의 재생산이구나. 아주 재미있게 봤어. 일반 대중은 어렵지. 느닷없이 죽는 실향민이 김일성 장군 노래를 부른다던가. 일반 사람은 저 실향민이 미쳤나 싶은 거지. 그 사람은 여기 와서 삶이 성공한 사람도 아니고, 회한도 있을 거고. 옛날 사회에 대한 그리움이 아니라 자기 회한인데, 남한 전체가 갖고 있는 회한이기도 하고. 누가 인권변호사를 저 따위로 그리냐 비난하는데 그렇게 생각하는 게 스테레오타입이지 뭐. 인권변호사는 교접 안 하나. (웃음)

임상수 | 실향민 장면 같은 경우 황석영 선생의 <손님>을 언제 읽었는지 모르겠지만, 전에 읽었다면 제가 영향받은 것이고 뒤에 읽었다면 아, 선생님과 내가 비슷하구나 하는 걸 느꼈죠. 그리고 <오래된 정원>에서 윤희 아버지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실토하겠습니다.

황석영 | 그래도 내가 꼬마 때부터 영화 오래 봤잖수. 카메라 돌아다니는데 군더더기 없이 탁 넘어가는 게 의젓하더라고.

임상수 | 저는 황석영 선생의 의젓하다는 말씀이 최고의 찬사라고 알아듣고 있습니다.

황석영 | 임상수는 서사가 있는 홍상수야. 그게 근데 어려워. 임 감독의 대중적이지 않은 화법이 장사하는 데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 그런데 <바람난 가족>은 교접장면이 있어서 흥행이 됐겠지. (웃음) <그때 그 사람들>은 캐릭터가 분명하지를 않아. 감독이 좀 쫄은 거 같아. 뒤처리가 애매모호하고 두루뭉술하게 끝나더만. 김재규 캐릭터가 중요한데, 가령 서사도 서사 중심이 있을 텐데,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의 <Z>를 보면 이브 몽탕의 캐릭터를 중심으로 사람이 갖고 있는 생각을 줄거리로 쫓아서 반대쪽 견해라든가 폭력, 허위를 밝히는데 <그때 그 사람들>은 김재규의 캐릭터가 너무 애매모호하지 않았나 싶어. 난 그게 압력받아서 그런 거 같아. 이 영화가 정치권을 뒤집어놓고 시끄럽게 하지 않을까 걱정도 있었을 테고. 런던에 있었지만 영화 시사회를 한 뒤에 시끄런 잡음이 있었던 건 다 알죠. 영화 중간 부분까지는 잘 넘어가더라고. 세련된 스릴러를 보는 느낌인데. 근데 보니까 역시 권력 언저리엔 다 깡패새끼들이야.

임상수 | 핵심이 그거죠.

황석영 | 드라마 <제5공화국>도 보면 이게 웬 조폭영화인가 싶어.

임상수 | 그럼요. 군사독재를 보면 원조조폭이죠. 실제 조폭이 흉내내는 원형이 있는데 그게 3공화국 당시의 청와대죠.

황석영 | 지금 청와대는 안 먹혀.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을 위해 황지우가 싹싹 비는데도 모금을 안 해줘. 누가 높은 사람이 전화했대. 돈 좀 주라고. 그런데 더 돈을 안 주더래. 청와대까지 전화할 거 있습니까, 그러면서 더 안 주더래. 더 말 안 듣는 거지. 그런데다 (노무현 정권은) 권력이양까지 한다네. 저리 순진한지 몰라.

임상수 | 소설 좀 읽은 사람 치고 황석영의 소설을 안 읽은 사람은 없죠. 제가 황석영을 읽은 때는 <객지>가 처음 단행본으로 나왔을 때죠. <객지>를 읽으며 여자 서너명쯤 꼬신 거 같은데. 이거 좀 읽어봐 하고 말이죠.

황석영 | 그러면서 술마시고 토론해보자고 꼬시는 거겠지.

임상수 | 제가 술자리에서 황석영이 되는 거죠.

황석영 | 임 감독이 공부도 잘했지. 제일 다사다난할 때 학교 다녔을 거 아냐. <바람난 가족>을 보면서 그런 시선을 봤어. 옆다리니 남의 다리 긁는 거 같은데 그게 사실 우리의 자화상이거든. 차승재 대표가 원래 의리의 사나이거든. 어디 가서든 자기 사람 칭찬하는 데는 침이 마를 지경이야. 난 임상수가 누구인지 잘 몰랐는데, 영국에서 차승재 대표로부터 전화가 왔어. 임상수가 한다며 그랬더니 임상수가 힘이 있습니다, 실력이 있습니다 그래. 다른 누구에게 물어봤더니 임상수는 자기가 좋아하는 거만 합니다, 그래. 상반된 얘기가 있더라고. 임 감독 또래에서는 씹히는 거야. 한국에 와서 보니 소문이 그렇게 나 있더라고. 그래서 <그때 그 사람들>을 봤지. 그 이유를 알겠더라고. 부분부분 비약을 하는 자기만의 화술 때문에 잘 전달이 되지 않을 수도 있겠다 싶었어. 난 보면 알겠는데. 우리도 그래. 문장 쓸 때 보면, 아 그리워서 미치겠다 발악해서 쓰지 않아. 그걸 이미지네이션으로 하거든. 비오는 텅 빈 플랫폼에 서 있는데 어떤 꼬마가 비닐우산 쓰고 저 구석에 서 있다라든가, 이렇게 바꿔서 표현하지. 요즘 젊은 작가들 문장을 보면 감수성이 있다고 그러는데, 옛날 일기장에 오늘의 명언 한 구절씩 들어가는 게 있다고. 보이스 비 앰비셔스. 뭐 문장이 그렇게 되어 있는 거야. 처먹여주지 않으면 모르나봐. 우리는 서로 ‘공중전’이 되는데 말이야.

임상수 | 공중전이라는 말은 선생님만이 쓰시는 어휘 가운데 하나죠? 소설 쓰시는 선생님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대중을 상대하는 작업인데, 우리 작가들의 영원한 딜레마란 그거죠. 선수끼리 통하는 대중과의 접점을 잃지 않으면서도 고도의 공중전을 벌여야 한다는 것.

 

황석영 | 한국영화는 관객이 조금 들었다고 자족하면 그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 거야. 요즘 젊은, 이른바 뜬다는 배우들 봐. 영혼이 어디 있어. 걔네들 눈동자를 보라고. 관객도 좀 교육시켜야 한다고. 장사되는 영화 나오면 비슷한 게 10개가 한꺼번에 터져나오고. 한 영화에 1천만명씩 드는 거 보면 정신병이야.

임상수 | 저는 전후세대 전전세대라는 개념으로 한국의 상황을 얘기해보고 싶어요. 전전세대들은 한국전쟁 등을 겪으며 정신적 외상을 입었고 그걸 가슴속에 묻어두지 않으면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가령 김형욱의 자서전은 미국식으로 보면 당연한 거든요. 사실 고백해야지 상처를 잊을 수 있는데 전전세대는, ‘가슴속에 묻어두고 가는 거야 그게 사나이야’ 그런 태도가 있어요. <바람난 가족>에서 피를 아들에게 토하는 장면이 상징적인 게 <오래된 정원>과 <손님>에 나오는 문제의식과도 통해요. 영원히 그 외상을 가슴속에 담아두려니까 피가 썩을 수밖에 없는 거죠.

황석영 | <제5공화국> 보면서 이제야 광주에서 그런 일이 있다는 거 아는 사람들이 있어. 사람들이 드라마나 보고 마는 거지. 그게 한국 사람들의 교양의 척도야. <바람난 가족>은 특유의 고상한 은유가 있는데. 한국 천민자본주의의 자화상인 거지. 첫 장면 해골파는 게 무슨 소리인지 사람들은 모를 거야. 그렇게 형성된 거거든, 이 바닥이. 어느 구석을 가도 말야, 강남의 한 집안 얘기도 그렇고 말이야. 그 사람이 만주에서 밀정노릇하다 커서 양놈 밀정노릇하다가 중공군 포로심문관으로 컸거든. 각 지역의 사학설립자다, 토호다 하는 이들의 배경이 다 그래. 일제 때 순사를 해먹든 면장을 해먹든.

임상수 | 잔인하게 얘기하자면 한국 근대사의 역사가 비적질의 역사이고 그게 여기까지 온 거고.

황석영 | 정말 그래. 동학 이래 100년이 넘었어.

임상수 | 새 정권이 비적질은 안 한다고 그런 거 같은데.

황석영 | 그러니까 이빨이 다 빠진 거잖아.

임상수 | 그 기개는 훌륭한데 그 비적질의 역사를 단칼에 잘라낼 수가 있을지.

황석영 | 그래도 설거지는 해야 할 거 아냐. 그런데 저렇게 힘이 없어 어떻게 설거지를 하나 걱정스러워.

임상수 | 잘못되면 다시 비적질 역사로 회귀할 수 있는 거 아니냐 하시는 거죠.

황석영 | 그렇지. 난 제대로 영화화 기회를 만난 적이 없어. 팔자가 그래. <삼포 가는 길>도 이만희 감독이 말년에 간암이었고 그러니 영화할 정신이 아닌 거야. 다 못 만들고 죽었어. 나머진 제작자가 만든 거야. <오래된 정원>은 러브스토리로 당연히 가는 거지만 임 감독이 자기 방식대로 꾸려갈 거라는 생각이 들어. 이 소설의 주제는 시간이야. 개인의 삶과 역사는 시제가 원래 안 맞게 되어 있는 거야. 기대와 리얼리티는 다르게 전개되게 되어 있다고. 그게 우리의 운명이야. 돌이켜 다시 살 수 없는 거잖아. 중심은 일주일이야. 18년 만에 풀려난 오현우가 갈뫼(존재하지 않는 전라도의 산골마을. 오현우와 한윤희가 짧게 함께 살던 곳이다)로 갔다가 돌아오는 거. 그리고 갈뫼에 윤희가 남긴 편지에서 18년 동안 윤희의 또 다른 삶이 있는 거지. 둘은 연결이 안 돼 끝까지. 따로 간다고. 한 일본 평론가는 이 소설이 독자가 텍스트를 읽는 행위를 통해서 둘을 접촉시키고, 완성시킨다고 했지. 중심줄거리는 러브스토리지만 20세기를 돌아보는 거야.

임상수 | 선생님 소설 중 가장 좋아하는 단편이 <이웃사람>이에요. 선생님이 내면화된 폭력이 순간적으로 나오는 작품이라고 했는데 <바람난 가족>에서 애를 던지는 거, <눈물>에서 누군가가 성지루를 칼로 푹 찌르는 거, 그게 <이웃사람>한테 알게 모르게 영향받은 것이구나 싶어요. 전 황석영의 소설에 굶주려 있었으니까 <오래된 정원>을 나오자마자 봤죠. 왜 인간이 이렇게 숭고한 거냐, 이럴 수가 있나, 하고 조광희 변호사에게 전화했더니 세상에 너 같은 양아치만 있는 게 아니라 그런 숭고한 사람들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웃음) 처음부터 영화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황석영 | 오현우가 내 캐릭터는 아니에요. 내 친구들 모자이크 한 거야. 서준식을 좋아하는데, 지금 현재 우리 동시대 지식인에 그만큼 도덕적인 사람이 없어. 걔네 체험도 있을 거고. 주변 유학생 간첩단 사건이라든가. 김남주도 있고(그런 사람들이 소설 안에 녹아들어 있지).

임상수 | <그때 그 사람들>을 만들고 나서 보수신문에 융단폭격을 받아서, 이번에는 어머니 부탁도 있고 해서 적을 만들지 않는, 아름다운 러브스토리를 만들려고 합니다.

황석영 | 그럼. 인간의 얘기를 하면 돼. 난 임상수의 간접화법이 좋다고 생각해요. 카메라 워킹이 참 좋아요, 의젓하고. 모르는 쪽에서나 씹는 거야, 비약이 심하다 이거지.

임상수 | 다음 작품이 러브스토리라니까 칸에 온 외신기자들이 다 안 믿더라고요. 차승재 대표가 이 얘기를 하니까 그러대요. 웃기지마, <조선일보>랑 한나라당이랑 이 새끼 아직도 정신 못 차렸어 그럴 거라고.

황석영 | 정치적 격변 같은 거는 저 먼 곳에서 우레 울리듯 우르릉 배경으로 깔리게 하고 그 다음 그들의 회한과 아름다운 일상을 그리면 돼. 그렇게 만들면 눈물 빠질 거야.

임상수 | 80년대 운동했던 사람들이 이 책을 임상수가 영화화한다니까 다 읽은 거예요. 다 너무 울었다는 거야. 그러면서도 그들에겐 불편한 감정이 있어요. 왜 그런가 했더니, 한국인의 삶이라는 게 되돌아보지 못하고 계속 뛰어가는 성향이 있어요. 80년대가 소설로 다뤄지긴 했지만 <오래된 정원>이 비로소 집대성한 거죠. 왜 우리가 정리도 안 하고 뛰어온 건가, 정리했어야 할 일인데, 그런 점에서 <오래된 정원>이, 소설로 정리된 거지만 영화가 사람들이 더 많이 보니까, 영화라는 장르 통해서 분명하게 짚고 가야 하지 않겠나 그래서 이 영화하게 돼 영광이에요.

황석영 | 전부 다 회한으로, 저 가슴 밑에 꺼내고 싶지 않은 것들이니까.

임상수 | 선생님 작품 연보에서 드물지 않습니까, 러브스토리가.

황석영 | 내가 감옥에서 나와서 이제 드디어 자유의 공간이야. 옛날엔 복장도 서로 단속했어. 이 새끼 왜 이렇게 야하게 입어. 문인이 입는 옷과 자태가 따로 있어. 행복할 자유와 러브스토리 쓸 자유. 예전엔 사랑을 할 자유도 억압됐어.

임상수 | 망명생활 5년 하고, 감옥 5년이 선생님께 인간적인 그리움을… 선생님은 그리움보다는 더 강력한 사나이 같은 작품을 썼죠.

황석영 | 서정적 내면, 속살이 조금씩 들어 있어. 그게 강한 서사에 묻혀서 안 보이거든. 그게 처음으로 <오래된 정원>에서 속살이 드러나는 거야. 그러니 깜짝 놀란 거야.

임상수 | 강남에 사는 싱글 여성들에게 시나리오를 읽혔더니 얘기가 너무 올드하다, 왜 안 슬프냐, 왜 여자 한윤희가 팔자도 안 고치고 그렇게 사느냐고 하던데 이들을 모두 납득시키겠다는 게 제 원대한 꿈입니다.

황석영 | 납득보다는 구성이 중요해. 구성을 가지고 그 사람들 울릴 생각을 하면 돼.

임상수 | 원작에 충실하면 다 울게 돼요.

황석영 | 에피소드들 다 무시하고 새로운 버전으로 만들라고. 구도는 잡혔으니까. 사람의 얘기지, 뭐. 임상수로서도 새로운 전기가 될 영화야.

찻집에서 두 사람은 길고 긴 대화를 나눴다. 신자유주의, 제3세계 노동자의 서구 유입, 비정규직 노동자의 증가부터 제3공화국의 비화가 화제에 올랐다. 식당에서 ‘오십세주’를 반주로 곁들이면서 두 사람은 촬영감독, 차기작 등 구체적인 얘기로 들어갔다. 황석영 작가는 스스럼 없이 말을 놓으며 애정을 표했다.

황석영 | 세르게이 본다르추크의 <워털루>(1970)를 보라고. 그 사람이 워털루 싸움의 앞뒤 사흘로 나폴레옹의 정점과 몰락을 카메라로 어떻게 담아내나 보라고. 윌리엄 프레이커 감독의 <몬티 월쉬>(1970)를 또 봐. 그렇게 촬영감독이 중요한 거야. <오래된 정원> 촬영감독은 <바람난 가족> 때 같이 한 사람이랑 해.

임상수 | 김우형 촬영감독이 <그때 그 사람들>도 같이 했고 이번 작품도 김우형 촬영감독과 해요. 저는 양아치고 김우형이야말로 예술가죠.

황석영 | 그래 잘했다. 너 같은 양아치, 그러니까 아방가르드들은 예술가의 지도를 받아야 해.

임상수 | 제가 존경하는 작가로 이문구 작가가 있습니다.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황석영 | 당신이 한국전쟁이 문학사에서 비어 있다고 했지만 이문구의 <관촌수필>이야말로 깊이와 연민이 있어. 내가 못하는 걸 이문구가 하고 이문구가 못하는 걸 내가 하지.

임상수 | 제가 <바람난 가족>의 서두에서 경찰이 유가족 대표의 멱살 잡는 장면을 가져온 게 어디냐 하면(“제가 민 게 아니고 대한민국 법이 민 겁니다”라고 경찰이 하니까 유가족 대표가 “이 멱살은 내가 잡은 게 아니라 대한민국이 잡았다”고 하는 부분) 바로 이문구 작가의 <우리 동네>였습니다. 아무도 모르더군요.

황석영 | 그래, 맞아.

임상수 | 훌륭한 작가의 에피소드를 훔쳐서 미안하기도 합니다만 엔딩 크레딧에 넣기도 그렇고.

황석영 | 그건 훔친 게 아니지. 영상언어로 다시 발견한 거지. 영화라는 게 고전이고 명작이고 한달이면 방구석에 틀어박혀서 모두 볼 수 있어. 하지만 소설은 수백년간 엄청나게 쌓아진 게 있지. 요즘 한국 문학의 위기니 하는데 그거 다 자가발전한 거야.

임상수 | 그렇죠. 평론가들과 신문들이 합작해서 만든 작가들은 수명을 다 했죠. 자기들이 불러온 위기죠.

황석영 | 그래, 그런 의미에서 우리 둘이 잃어버린 서사를 회복하고 담지하자는 선언이라도 하자. 사실 나 같으면 <바람난 가족> 그렇게 안 만들어. <대부>처럼 누아르로 만들지. 그게 천민자본주의 형성사 아냐.

임상수 | 선생님과 같이 하고 싶은 게 강남 형성사입니다. 변방이 어떻게 중심으로 바뀌는가. 천민자본주의는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사실, 선생님이 영화감독을 하셔야 되는데.

황석영 | 에이, 무슨. 내가 지금 태어나면 나도 영화감독 하지, 뭐 하러 읽지도 않는 소설 써. 그래 나도 하고 싶다. 내가 구술로 다 불러줄게. 내가 시놉시스도 다 써오고. 삼부작으로 만들자.

의기투합한 두 사람은 한잔 더를 외쳤다. 황석영 작가의 단골 술집에서 일산의 전망이 다 보였다. 통유리 바깥으로 비가 쉬지 않고 내렸다. 말솜씨 좋은 감독 가운데 손꼽히는 임상수 감독은 작가에 대한 애정 때문인지, 기가 밀려서인지 ‘라디오’를 다소곳이 듣기만 했다. 3차에 와서야 그는 술기운을 빌려 라디오와 공정한 대담을 하기 시작했다. 황석영 작가와 임상수 감독은 서로에 대한 애정을 확인하며 한국영화의 서사를 회복하자는 다짐을 하며 헤어졌다.

임상수 | 제 각색의 원칙은 이겁니다. 한윤희의 베를린 생활, 오현우의 감옥 생활을 뺀다. 그리고 윤희를 만나기 전까지의 오현우의 운동권 생활, 위장취업도 다 뺀다는 겁니다.

황석영 | 어, 그래 마음대로 해.

임상수 | 실제 배우 나이는 중요하지 않을 거 같아요. 20년 세월 뛰어넘는 연기이기는 하지만.

황석영 | 이병헌이 오현우를 하면 어떨까. <올인> 보니까 얘 눈이 촉촉한 게 있어.

한겨레(07. 01. 03) 서정시가 불가능한 시대의 연가(戀歌)

그런 시절이 있었다. 누워서 침 뱉거나 재갈 물고 침 흘리거나. 눈 질끈 감고 제 몸 불사르지 않는 한 누구나 그래야 했다. 그게 살아남은 자들의 ‘예의’였다. 정말이냐고. 1980년대, 한국이 그랬다. 그때는 ‘서정시를 쓰기 힘든’ 또 하나의 시대였다. “처녀들의 젖가슴은 예나 이제나 따스한데”, “왜 나는 자꾸 40대의 소작인 처가 허리를 꾸부리고 걸어가는 것만 이야기하는가”라는 물음조차 죄악이었다. 임상수 감독의 <오래된 정원>은 묻는다. 한 세대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죄의식 아니면 무용담으로 남아 있는 이분법의 80년대를 향해. 정말 사랑조차 그 시대엔 몹쓸 짓이었냐고.

황석영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오래된 정원>은 장기수였던 한 남자가 출소한 뒤 사랑했던 한 여자의 흔적을 되짚어가는 과정을 따른다. 군부독재에 반대하던 20대 사회주의자 현우(지진희)는 16년8개월 만에 세상을 활보할 자유를 얻는다. 그러나 어느새 하얗게 세어버린 머리카락처럼 그를 둘러싼 세상 또한 현기증이 날 정도로 변해 있다. 한때 목숨을 걸었던 동지들은 “인생은 길고 혁명은 짧다”고 탄식하며 주먹다짐을 하고, “누가 뭐래도 난 아들 편”이라던 어머니는 떵떵거리는 억대 복부인이 되어 늙은 아들에게 고기쌈을 내민다.

변해버린 세상, 변하지 않는 것이 무엇일까. 가슴에 품고 있던 단 한장의 증명사진을 들고 현우가 윤희(염정아)를 찾아 떠나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윤희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지만, 현우는 그녀와 나눴던 짧은 사랑의 파편들이 흩어져 있는 갈뫼로 향한다. 도피 생활 중에 자신을 “숨겨주고, 재워주고, 먹여주고, 몸도 줬던” 윤희를 떠올리는 동안 그는 자신이 수형 생활을 했던 16년8개월이 그녀에게 더한 포박의 세월이었음을 깨닫는다. 감옥에서의 시간을 인내하게 했던 것이 싸늘하게 식어버린 신념이 아니라 아직도 끓고 있는 사랑이었음을 또 감지한다.

그렇다고 임상수 감독이 지고지순한 사랑 예찬론을 펼치진 않는다. 대신 영화는 ‘오만’을 부려서라도 시대의 악몽을 제발 좀 떨치라고 말한다. 과거를 들먹이며 현재를 방기하지 말라고 나직하게 충고한다. 이러한 처방전은 감독의 전작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마지막 장면에서 현우는 존재를 알지 못했던 자신의 딸을 만난다. 그리고 딸로부터 어떤 화해보다 ‘쿨’한 제안을 받는다. “이젠 헛게 다 보이네”라는 현우의 독백은 역사든, 사회든, 가족이든, 거대한 권위의 감염된 상처들은 개인만이 치유할 수 있다고 믿는 그만의 윤리처럼 보인다(덧붙여 김우형 촬영감독이 든 카메라 움직임을 눈여겨보시라).(이영진기자)

07. 0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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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룡 지음 / 현대문학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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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인, 영국인, 독일인이 각각 낙타에 대한 글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프랑스인은 대뜸 근처 동물원으로 달려갔다. 반 시간가량 낙타에게 빵을 던져주고, 우산으로 쿡쿡 찔러보기도 하고, 동물원의 수위에게 몇 마디 질문도 했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저녁나절에 낙타에 대한 재치만점의 자극적 기사를 휘갈겨 신문사에 보냈다.-7쪽

영국인은 홍차를 챙긴 배낭과 편안한 야영도구를 짊어지고 사막으로 떠났다. 그곳에서 삼년간 체류하며 낙타에 대한 두툼한 보고서를 작성해서 학회에 제출했다. 체계도 없고 결론도 없는 무질서한 글이지만 자료적 가치가 풍부한 보고서였다.-7쪽

한쪽 기사는 경박하고 다른 보고서는 보편적 개념을 담지 못했다고 비웃으며 독일인은 몇 년 동안 도서관에 처박혀 '자아 개념에 입각한 낙타에 대한 개념들'이라는 세 권 분량의 저서를 완성했다. 도서관에서 쓴 그의 저서는 곧바로 다시 도서관 서고에 들어갔다. -7-8쪽

똑같은 과제를 받은 한국인은 어디로 갈까? 동물원, 사막, 도서관에 가지 않고 그 자리에서 눈앞의 컴퓨터에 검색어 '낙타'를 친 뒤 15분 만에 깨끗한 파일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다시 인터넷에 올라간 파일은 통신망을 타고 순식간에 퍼졌다. 입심에만 의존한 재치만점의 화려한 수사학, 체계는 없지만 고지식한 경험론, 낙타와는 무관한 관념론을 적당히 버무리고 사진, 만화, 소리까지 곁들인 동영상이 담긴 파일은 인터넷 최강국에서는 누구나 쉽게 만들어낼 수 있다.(...) 모든 언어를 관장하는 메타언어 '검색'은 우리에게 이제 익숙한 단어이다. 경험주의, 관념주의를 지난 세기의 사유방식이라 비웃는 검색주의가 우리의 이데올로기이다. -8쪽

그러나 조금만 기억을 더듬어보면 검색이란 단어는 별로 유쾌하지 않은 체험과 연관된다. 잠시 검문검색이 있겠습니다, 라는 말에 공연히 가슴 졸였던 시절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한때 지구상에서 가장 잦은 검색을 당했던 민족이었다. 속된 말로 많이 맞아본 뒤에 제대로 때릴 줄 알게 된 것이다.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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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을뭐라하지 2007-06-17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흥미롭군요-

마늘빵 2007-06-17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근에 나온 책이죠. 관심가던데.

기인 2007-06-18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대단한데요. :)

로쟈 2007-06-18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익한 산문집입니다.^^

곰탱이 2008-01-28 2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거의 블로깅하는 과정과 흡사합니다. 흥미롭네요 ㅎㅎ

미지 2010-06-12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재밌겟는데요, 저도 읽어봐야겠습니다.
 

서재일이란 게 주말과 휴일에 오히려 일이 더 많다. 많은 걸 보류하고 생략하더라도 몇 개의 페이퍼 거리는 꼭 남기 마련이다. 얼마전에 나온 'How To Read' 시리즈에 대한 가장 '도발적인' 리뷰를 옮겨오는 것도 그런 거리의 하나이다. 필자가 현직 편집장인지라 인문 시리즈에 대한 '감각'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리뷰이다. 

컬처뉴스(07. 06. 15) 역사상 가장 도발적인 사상과의 만남

다른 편집자들은 모르겠지만, 직접 책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내가 가장 해보고 싶은 작업 중 하나는 세계 유명 사상가들의 사유를 알려주는 입문서 시리즈를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이런 시리즈가 나올 때마다 꼭 챙겨보곤 하는데, 특히 내가 주목해 보는 것은 ‘의심의 거장들’이라고 불리는 칼 맑스, 프리드리히 니체, 지그문트 프로이트를 각각의 시리즈가 어떻게 다루고 있느냐이다(‘의심의 거장들’이라는 유명한 표현은 프랑스의 철학자 폴 리쾨르가 자신의 1965년 저서 『해석에 관하여: 프로이트에 관한 에세이』에서 처음 이들에게 붙여준 것이다).

내가  ‘의심의 거장들’을 다루고 있는 방식을 눈여겨보는 첫 번째 이유는 개인적인 이유다. 최소 열 명 이상을 다루고 있는 각 시리즈의 모든 책을 매번 다 읽을 수 없는 나로서는 몇 권만 집어들 수밖에 없는데 이왕 집어들 거면 맑스, 니체, 프로이트를 집어든다. 즉, 이 3인방은 이들과 관계된 책이라면 무엇이든 집어들만큼 내가 좋아하는 사상가들이다.

두 번째 이유는 제법 학문적인, 그러나 당연히 주관적이기도 한 이유인데, 나는 ‘의심의 거장들’이라는 데 그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는 이들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시리즈라면 다른 사상가를 다룬 수준도 뻔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즉, 이 ‘의심의 거장들’을 어떻게 다루고 있느냐는 내게 해당 시리즈의 수준을 가늠하는 리트머스 시험지인 셈이다.



“우리 시대 교양인을 위한 고품격 마스터클래스”라는 문구와 함께 첫선을 보인 “HOW TO READ”(웅진지식하우스) 시리즈를 보는 내 관심도 바로 여기에 맞춰져 있다. 내가 즐겨 사용하는 이 리트머스 시험지는 삼단, 즉 "누가 썼는가", "잘 썼는가", "쉽게 썼는가"라는 기준으로 이뤄져 있는데 각 단을 모두 빨간색으로 변색시키면 합격이다.

먼저 ‘“누가 썼는가”. 이 시리즈의 맑스, 니체, 프로이트 편은 각각 피터 오스본, 키스 안셀-피어슨, 조시 코언이 맡았다. 국내에 소개된 바 있는 인물은 안셀-피어슨이 유일하나, 이들은 모두 자기 분야에서 한몫을 단단히 하고 있는 젊은 연구자들이다(오스본은 1958년생, 안셀-피어슨은 1960년생, 코언은 1970년생).

특히 오스본은 이런 입문서의 필자로 먼저 소개되는 게 안타까울 정도인데 그의 주저 『시간의 정치학: 모더니티와 아방가르드』(1995)와 『문화이론에서의 철학』(2000)도 곧 소개되기를 바랄 뿐이다. 안셀-피어슨의 경우도 마찬가지. 그는 국내에 들뢰즈 연구(『싹트는 생명: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로 먼저 알려졌지만, 사실 영미권의 떠오르는 니체 번역자(대표적으로는 『도덕의 계보학』 등)이자 연구자이다. 그가 쓴 니체 연구서만 해도 『니체와 근대 독일철학』(1991), 『니체 대 루소: 니체의 도덕/정치사상 연구』(1991), 『새로운 니체의 운명』(1993), 『정치사상가로서의 니체 입문: 완벽한 니힐리스트』(1994) 등 네 권에 달한다.

가장 의외의 인물은 코언이다. 물론 영미권 대학 중 정신분석학을 정식 학과로 두고 있는 대학이 거의 없다는 실정을 감안해도, 코언은 영미 포스트모던 문학, 특히 레이먼드 카버와 폴 드 만 전공자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아우슈비츠라는 트라우마에 천착하는 ‘수용소 문학’을 연구 중이다(실제로 그의 최근작은 『아우슈비츠에 끼여들기: 예술, 종교, 철학』이다). 그러나 전공보다 부전공에 더 강한 인물이 꽤 있고(가령 『제국』으로 유명한 안토니오 네그리는 정치철학자이기 전에 법학자였다), 그가 꾸준히 연구성과를 발표하고 있다는 점은 사실이니 일단 이 시리즈의 필자 선택은 빨간색.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가장 중요한 건 두 번째 기준, 즉 “잘 썼는가”이다. 내 관심을 염두에 둔다면, 여기서 “잘 썼는가”라는 질문은 이들이 ‘의심의 거장들’에게 “그 명성에 걸맞은 대접을 해줬느냐”라는 질문과 같은 것이다. 각각 1883년, 1900년, 1939년에 죽은 맑스, 니체, 프로이트를 오늘날에도 여전히 ‘의심의 거장들’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일부 사람들은 그냥 버릇처럼 그렇게 부를 뿐이라고 해도, 이들의 의심이 여전히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시사해 주기 때문이다. 그도 아니라면 이들이 제기한 의심에 우리가 여전히 속시원한 답변을 못 내리고 있기 때문이거나. 그렇다면 이들에게 걸맞은 대접이란 이들의 의심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뿐만 아니라, 그 의심의 유효성(그도 아니라면 함의)을 밝혀주는 것이리라.

그런데 도대체 이들을 한데 묶어 ‘거장’이라고 칭할 수 있게 한 그 의심은 무엇일까? 우리는 이 별명의 창안자인 리쾨르의 언급을 참조할 수 있을 것이다. 리쾨르가 보기에 이들은 자본주의가 됐든, 도덕이 됐든, 의식이 됐든 연구 대상의 겉모습을 꿰뚫고 들어가 “진정한 세계, 새로운 진리 영역의 지평을 밝혀냈다”. 또한 이들은 의심을, 비판을 위한 비판의 수단이 아니라, 새로운 “해석의 기술”로 만들어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회의의 대가들’이 아니라 ‘의심의 대가들’이라는 것이다.

리쾨르의 이런 언급을 염두에 두고 본다면 가장 돋보이는 것은 맑스 편이다. 오스본은 『자본』 제1권의 “상품의 물신적 성격과 그 비밀”(제1장 4절)을 첫 번째 발췌문으로 골랐는데, ‘상품 물신주의’에 대한 오해를 지적하며(오스본에 따르면, 맑스가 말한 상품 물신주의란 상품에 대한 욕망의 고착화가 아니라 생산의 사회적 관계, 노동과 가치의 이중적 성격 등을 은폐하는 환상을 지칭한다), 맑스가 상품처럼 단순해 보이는 것에서 어떻게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동학을 읽어내는지 설명하는 부분은 무릎을 탁 치게 만들 정도다. 요컨대 맑스는 ‘노동의 산물인 하나의 물리적 객체’라는 상품의 겉모습을 의심함으로써, 상품의 사회적 의미를 드러내는 그만의 해석체계, 즉 ‘정치경제학 비판’을 창안했다는 것이다.

물론 안셀-피어슨과 코언 역시 니체와 프로이트의 ‘의심’이 어떻게 “진정한 세계, 새로운 진리 영역의 지평”을 밝혀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더 말하면 스포일러가 난무하게 될 테고, 내게 허락된 지면도 줄어들고 있으니 이쯤에서 이만. 아무튼 그래서 두 번째 빨간색.

마지막으로 “쉽게 썼는가”. 사실 이 문제는 좀 복잡하다. HOW TO READ 같은 해외 시리즈의 경우, 번역의 문제(더 나아간다면 담당 편집자의 교정교열 능력이라는 문제까지)가 중첩되어 있기 때문이다. 번역의 경우 개떡 같이 말해도 찰떡 같이 옮길 수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아무튼 먼저 각 책의 원문을 보건대 필자들은 자신들이 다루는 해당 사상가들의 저작 중 핵심적인 부분을 직접 읽는다는 이 시리즈의 취지를 잘 따른 듯하다. 그 ‘핵심적인 부분’이 그리 길지도 않고, 그 발췌 부분을 중심으로 각 사상가의 삶과 사유를 명쾌하게 풀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점은 아무래도 이 시리즈의 책임편집자 사이먼 크리칠리(그 역시 1960년생으로서 촉망받는 연구자이다)의 공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편 번역의 경우도 별다른 문제없이 술술 읽힌다. 인터넷서점의 한 독자서평에 의하면 데리다 편의 번역은 좀 의아한 면이 있지만(*한 독자는 '로쟈'인 듯하다), 그것을 제외하고는 다른 사상가들을 다룬 책들도 적절한 번역자를 만난 듯싶다. 특히 셰익스피어 편을 옮긴 이다희(그는 셰익스피어 전집을 번역 중이기도 하다), 히틀러 편을 옮긴 안인희(그는 히틀러 평전을 옮긴 바 있다)는 믿을 수 있는 번역자이다. 아무튼 그래서 또 빨간색.

정리하자면, 관심 있는 분들은 꼭 자신이 좋아하는 사상가를 골라 이 시리즈의 한 권을 찾아볼 것은 권유하는 게 내 결론이다. 이 시리즈의 또 다른 장점은 저렴한 가격(9,000원)에 고급 사양(표지나 본문 디자인이나 얄미울 만큼 깔끔하다)이라는 데 있다. 다만 아쉬운 건 이 시리즈 역시 국내 기획물이 아니라는 점. 언제쯤이면 우리는 우리 손으로 만든 이런 시리즈를 갖게 될 수 있을까?(이재원/ 그린비 편집장) 

07. 06. 17.

P.S. 이 시리즈에 대해서는 나도 진작에 언급을 해둔 터이고 몇 개의 페이퍼를 올리기도 했다. <마르크스>와 <니체>는 몇 장씩 훑어보았지만 저자가 가장 생소했던 <프로이트>는 아직 들춰보지 못했었는데, 필자의 '뒷조사' 덕분에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게 됐다(단, 한 가지 착오가 있는 듯한데, '폴 드만' 연구자는 조시 코언이 아니라 톰 코언이다). 한데, 이 리뷰를 굳이 '세계의 책'으로 분류해놓은 것은 '국내 기획물이 아니라는 점'을 고려해서가 아니라 아직 번역/소개되지 않은 책이 조만간 햇볕을 쐬었으면 하는 바람에서이다. 가장 첫손에 꼽을 만한 책은 필자도 언급하고 있는 피터 오스본의 <시간의 정치학>(1995)이고 사실 이건 최근에 내가 읽기 시작한 책이기도 하다(이미지가 뜨지 않아서 그냥 <마르크스>로 대체했다).

더불어 꼽자면 <프로이트>의 저자 조시 코언의 <아우슈비츠에 끼여들기: 예술, 종교, 철학>(2003). 아우슈비츠에 관한 아감벤과 바우만의 책들과 함께 읽어볼 만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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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문학사이' 22번째는 소설가 백가흠 편이다. 약력상으론 1974년 전북 익산에서 태어나 명지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으며 200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광어>가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첫 창작집은 <귀뚜라미가 온다>(문학동네, 2005). 제목상으론 좀 소심해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이 작가가 '귀뚜라미'급이 아니라 '광어'급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내가 매력을 느끼는 건 그가 '날것'을 다루는 솜씨이다.   

경향신문(07. 06. 16) [작가와 문학사이](22)백가흠-끔찍한 진실 적나라한 서사

잠시, 불결한 육체가 죄악과 나뒹구는 장면을 감상해보자. “달구의 늙은 노모가 달구에게 매를 맞고 있다. 노모의 검버섯 곱게 핀 뺨이 벌그죽죽하다. 바람횟집의 남자가 막 여자의 질 안에 삽입을 시작했을 때, 달구분식의 노모는 가지런히 쪽 찐 머리가 일순 헝클어지도록 세차게 귀뺨 한 대를 얻어맞았다. 천장으로 넘어온 여자의 웃음소리는 가는 신음 소리로 변하고 있다. 바람횟집 여자는 자신의 신음 소리가 새어나가지 못하게 엎드려서 손으로 입을 막고 있다. 달구의 노모도 비슷하다.”

백가흠의 첫 번째 창작집 ‘귀뚜라미가 온다’의 표제작 ‘귀뚜라미가 온다’는 폭력과 섹스가 동거하는 기묘한 장면에서 시작된다. 같은 시간 한 집에서는 아들이 늙은 어미를 두들겨패고 얇은 벽 너머의 다른 한 집에서는 젊은 남자가 ‘엄마’라고 부르는 여자와 교접한다. 장면은 계속된다. 가령 남편은 인터넷 채팅으로 아내의 몸값을 흥정한 뒤 아내에게 매춘을 강요하고 ‘아버지’처럼 보이는 고객은 아내의 음부에 “둘둘 말은 지폐를 끼워 넣는다”(‘밤의 조건’) 혹은 자발적 매춘으로 생계를 유지해온 아내와 일가족 모두를 죽이고 자살하는 남편은 어떤가(‘구두’). 그도 아니면 어린 딸을 티켓다방에 팔아넘기는 아버지는(‘배의 무덤’).

백가흠 소설의 여자들은 그렇게 아버지 혹은 남편의 손에 속절없이 맞고 피 흘리고 죽어간다. 때리는 사람이나 맞는 사람이나 모두 인간이라는 자각은 일찌감치 접어둔 채, 아니 인간이기를 포기한, 마치 본능으로만 살아가는 동물과도 같다. 그러니 어떤 평론가의 말을 빌려와 이들이 상연하는 드라마를 ‘비루한 동물극장’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충격적인 장면들이 낯설지만은 않다. 불쾌하고 역겹고 끔찍한 병리적인 가족 이야기는 이미 텔레비전의 고발 프로그램에서 익숙하게 봐온 것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전능한 가학적 폭력을 휘두르는 주인 남자(유사 아버지)가 있어, 정신지체 장애인인 ‘여자’를 부인이 보건 말건 수시로 강간하고 심지어 ‘여자’의 젖을 독점하기 위해 유아살해까지 서슴지 않는 엽기적인 이야기는 어떤가.

실제로 백가흠의 ‘배꽃이 지고’는 모 프로그램에서 다룬 이 반인륜적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고발 프로그램이 상식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낯선 개인들을 사회적 네트워크 바깥에 존재하는 예외로 괄호침으로써 이러한 이야기를 충격적이지만 흥미로운 에피소드로 소비하게 하는 반면, 백가흠은 이러한 패륜과 악덕의 이야기를 사회병리적으로 서사화함으로써 좀더 두껍게 만든다. 그리하여 백가흠 소설의 신경향파적 에피소드는 우리 사회의 병리적 현실과 그러한 현실에 내장된 남근주의적 폭력을 진단하고 해부하려는 작가적 자의식을 거치면서 사회비판적인 심리극으로 변모한다. 그리고 그 심리극의 중심에 아버지가 있다.

그런데 그 아버지는 생각만큼 권위적이고 파워풀하지 않다. 오히려 이 즈음 인구에 회자되는 연민을 자아내는 가련하고, 심지어 착하기까지 한 존재에 가깝다. “한 번도 닦아 신지 않은 듯한 구두, 먼지와 때가 굳어 가죽의 일부가 되어버린 구두”(‘구두’)는 그 자체로 왜소하고 빈약해져버린 이 즈음의 아버지를 상징한다. 그러나 아무리 어머니의 외피를 두르고 어머니 같은 캐릭터를 연기한다고 해도, 여전히 아버지들은 힘이 세다. 그들의 불쌍한 모습에 현혹되어 그들의 가학과 폭력을, 그러한 무자비한 공격에 신음하고 피흘리는 존재들을 은폐해서는 안 된다.

백가흠 소설은 이 세계에서 여전히 자행되는 불쾌하고 불편한 진실을 불쾌하고 불편한 방식으로 적나라하게 까발린다. 그리하여 여전히 종교와 법과 국가라는 상징적 아버지의 이름으로 무서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음을 고발한다. ‘성탄절’에서 연출되는 신성 모독의 이야기나 ‘루시의 연인’에서 주인공 남자의 변태적 상상력의 기원을 왜곡된 군대문화에서 발견하는 방식 또한 이에서 멀지 않다. 그러니 백가흠 소설에서 그려지는 지옥도가 우리를 힘들게 하더라도 노여워하지 말자. 그것이야말로 우리 삶의 끔찍한 실재의 모습이니. 그 모습을 외면하지 않고 직시하는 것이야말로 어쩌면 우리 독자가 갖춰야 할 윤리적 태도일는지도.(심진경|문학평론가)

07. 06. 17.

P.S. 최근 출간된 <박범신이 읽는 젊은 작가들>(문학동네, 2007)에는 '젊은 작가' 12명의 한 사람으로 선발된 백가흠과 그의 은사이기도 한 소설가 박범신의 좌담이 포함돼 있다. 책은 "2005년 가을에서 겨울 사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주최로 열린 '금요일의 문학이야기'"를 묶은 것으로 "소설가 박범신이 2000년대 한국문단의 주목받는 젊은 작가들과 만"나서 나눈 대화의 기록이다. 2000년대 젊은 작가들에 관심을 갖고 있는 독자들에겐 유익한 길잡이가 될 만하다. 관련기사를 하나 옮겨놓는다. '역사의 부채'가 없는 '행복한 글쟁이들'의 한 사람인 백가흠이 '끔찍한 진실, 적나라한 서사'의 작가라는 게 왠지 모순처럼도 느껴지는군(작가의 의도대로라면 '모순' 대신에 '불쾌'라고 적어야겠다)...

동아일보(07. 06. 15) '역사의 부채’ 없는 행복한 글쟁이들

“누구는 보안업체 다니고 누구는 경비를 하고 누군가는 세일즈 하는 것처럼 소설 쓰는 일 역시 일반 직장이라고 생각합니다.”(소설가 이기호 씨) 젊은 작가들이 선배들과 다른 문학관을 밝혔다. '박범신이 읽는 젊은 작가들’(문학동네) 에서다. 이 책은 소설가 박범신(61) 씨가 30대 작가 12명을 초청해 작품과 삶에 대해 나눈 이야기를 묶은 것이다. 생생한 구어를 그대로 옮겨 현장감을 살린 덕분에 젊은 작가들의 다른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소설집 ‘이상 이상 이상’과 ‘우리는 달려간다’를 낸 소설가 박성원(38) 씨. 그는 “문학이 어떻게 보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데, 가장 요긴하게 사용한다 해도 가위질 같은 걸 하다가 피가 났을 때 임시로 지혈하는 정도밖에 없는데, 그런데 종이책이 그렇게 아무짝에도 소용없기 때문에 모든 사람을 절대 억압하지 않는다”고 문학의 의미를 에둘러 말한다. 박 씨는 “가방은 물건을 넣고 다니는 도구인데, 그게 루이비통이 돼 버리면 어떤 사람은 흠집 날까 봐 자주 들고 다니지도 못하더라”며 “이렇게 진짜와 가짜가 역전되는 현대를 문학으로 옮기려는 것”이라고 소설관을 밝혔다.

지난해 ‘낙서문학사’를 출간한 김종광(36) 씨는 “소설이 갈등의 산물이라는데 사실 이해가 잘 안 가서 인물 간의 갈등 국면을 짧게 처리한다”며 기성관념에 반기를 든다. 그는 그러면서도 “소설을 안 쓰면 허파에 바람이 든 것 같다”며 글을 쓸 수밖에 없다고 한다.

윗세대와 달리 소설 쓰기가 숭고하다거나 그에 대해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이기호(35) 씨. 그는 “일종의 벤처인데, 경제논리에 휘말리지 않는 것”이라고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명쾌하게 정의한다. “내 글이 화염병이 돼야 한다거나 조국 통일에 기여해야 한다는 생각도 없으며 그래서 오히려 행복한 세대가 아닌가 한다”면서 그는 ‘문학 아니면 죽음을 달라’던 선배 세대와 선을 긋는다.

서울내기여서 사투리 하나 몰랐던 데다 분자생물학과 출신이어서 문학의 길에 들어서기 쉽지 않았다는 심윤경(35) 씨. “문단에서 고졸이나 마찬가지인데 그게 악착같은 헝그리 정신을 주는 것 같다”고 말한다. 다시 태어나도 글을 쓰겠느냐, 혹은 절대 쓰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김숨(33) 씨는 “별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며 중요한 것은 ‘현재’라고 말한다. “소설이라는 게 축복일 수도 있고 저주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살아가면서 매달릴 대상이 있다는 것에 대해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때때로 독자에게 불쾌함을 요구한다”고 소설의 의도를 당당하게 밝히는 백가흠(33) 씨, “작가는 언어로써 독자를 유혹하는 존재”라는 명료한 작가관을 가진 오현종(34) 씨…. 젊은 작가들은 이 책을 통해 “우리는 계속 쓸 것이며 다른 모든 건 부차적인 일”이라고 말한다. 젊은 작가들과 대화한 박범신 씨는 “이들의 고백과 발언이 어떻게 작품으로 완성되는지 좇아가 보는 것이야말로 우리 소설문학의 미래”라고 소감을 밝혔다.(김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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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회에 가던 길에 이번주 씨네21과 토요일자 한겨레를 집어들었다. 씨네21의 특집기사는 '내 인생의 영화평론가'인데 새로운 얼굴이 없어서 다소 실망(?)했다. 대부분이 한번쯤은 페이퍼에서 다룬 적이 있었던 것(유일한 예외라면 작고한 영화평론가 이영일 선생 정도이다). 한겨레의 '책과 생각'에도 눈길을 확 잡아끌 만한 책은 들어있지 않았다. 해서 대신에 김지석 논설위원의 '종횡사해'나 옮겨놓는다. 항우울제 '프로작 20년'에 관한 기사이고 나름대로 흥미롭다(며칠전 한 여대생이 우울증으로 자살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영향도 있을 법하다). 작년에 <우울증에 반대한다>(플래닛, 2006)가 출간되었을 즈음에 관련페이퍼를 올린 적이 있는데(http://blog.aladin.co.kr/mramor/909608) 같이 참고할 만하다.

한겨레(07. 06. 15) 우울증 치료제 ‘프로작’ 20년, ‘병 주고 약 파는’ 우울한 사회

올해 스무 돌을 맞은 건 6월 민주항쟁만이 아니다. 그만큼 두드러지진 않지만 지구촌 주민들의 생활에 적잖은 영향을 끼친 사건이 있다. ‘프로작 혁명’이 그것이다. 프로작은 미국 회사가 개발한 우울증 치료제다. 1987년부터 시판된 이 약은 이전 약들에 비해 부작용이 적고 복용이 간편해 우울증 치료제의 새 시대를 열었다.

지금 미국에서 한해 2천만 건 이상 처방될 정도로 인기가 높다. 보통 사람도 기분을 좋게 하려고 먹는 바람에 ‘해피 메이커’라고 불릴 정도다. 사람의 뇌에는 감정을 조절하는 여러 신경전달물질이 있는데, 프로작은 그 중 세로토닌을 증가시키는 작용을 한다. 이 약이 호전성과 자살 충동도 키운다는 논란이 커지고 있으나 아직 결론을 내릴 단계는 아니다.

우울증은 가장 흔한 질병 가운데 하나다. 지구촌 인구의 20%가량이 평생 한번 이상 경험한다. 증가 속도도 빠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20년까지 인류의 장애 요인 가운데 심장질환에 이어 두 번째를 차지할 것으로 내다본다. 우울증의 첫 발병 평균연령은 20대 후반이다. 여성이 남성보다 2배가량 많으나, 50살을 넘으면 비슷해지고 노인이 되면 함께 늘어난다.

스스로 우울증으로 많은 고통을 겪은 미국 작가 앤드류 솔로몬이 쓴 <한낮의 우울>(민음사 펴냄)은 ‘우울증 완전정복’이라고 할 만한 책이다. 우울증은 숨겨야 할 잘못이 아니다. 고혈압이나 당뇨처럼 의지를 갖고 꾸준히 대처해야 할 지속적 증상이다. 의료진과 주위 사람의 도움도 필수적이다. 그런데 남에게 자신의 우울증 증상을 털어놓는 일은 동성애자가 커밍아웃하는 것만큼이나 쉽지 않다. 우울증이 약물·알코올 중독과 대인관계 단절, 자살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지만 우울증 자체의 속성은 아니다. 그보다는 장애인 문제와 마찬가지로 자신과는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완고한 사회에 더 큰 책임이 있다. 비싼 치료비 또한 좌절과 재발에 기여한다.

현대사회는 우울증을 만들어내는 공장과 같다. 이 병을 일으키는 주된 심리적 원인은 상실과 스트레스다. 잘 사는 나라일수록 어린 시절부터 가족과 학교, 사회로부터 엄청난 압박을 받는다. 그 결과 많은 젊은이가 학업, 외모, 재산, 지위 등 여러 면에서 비현실적이라고 할 정도로 높은 기대치를 갖게 된다. 그 기대와 현실의 거리가 상실감의 원천이다. 상실감은 일상 생활에서 안개처럼 스며들어 마음 구석구석을 갉아먹다가 적당한 계기를 만나면 절망으로 치닫는다. 속도와 다중인격을 강요하는 전자문명은 사태를 더 악화시킨다. 이런 모든 상황에서 한국사회는 어느 나라보다 앞선다. 그래서 ‘시대의 우울’과 ‘사회의 우울’이 상승작용을 한다.

현대사회는 많은 구성원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 치명적 결함이 곳곳에서 드러나는데도 누구도 그것을 나서서 고치려 하지 않는다. 프로작 혁명 바람을 타고 다양한 종류의 우울증 약이 개발돼 팔리고 있다. 먼저 병을 만들어낸 뒤 새 약을 개발해 산업을 창출하지만 병의 원인을 없애는 데는 무심한 것이 현대사회의 우울한 작동방식이다.(김지석 논설위원)

07. 06. 16-17.

P.S. 프로이트를 흉내내어 말하자면 '우울증과 그 불만' 정도가 되겠다(하지만 우울증의 원인이 제거 가능한가? 모든 것이 만족스러워도 우울해지는 게 인간 아닌가?). 기사에서 '우울증 완전정복'으로 언급된 <한낮의 우울>에 버금하는 체험담은 엘리자베스 워첼의 <프로작의 나라>(1994/1995)이다.

<비치: 음탕한 계집>(황금가지, 2003)의 저자이기도 한 워첼에 대해서는 " 하버드 대학을 졸업한 후 '뉴요커', '뉴욕 타임스 매거진' 등의 편집자와 칼럼니스트로 활동했으며 1995년 롤링스톤 대학 언론상을 수상했다. 지은 책으로 <항우울제의 나라>, <더, 지금, 다시> 등이 있다."고 소개돼 있는데, <항우울제의 나라>가 바로 <프로작의 나라>를 가리킨다. 그 후속작인 <더, 지금, 다시>도 저자의 체험담을 담고 있다. <프로작의 나라>는 2001년에 영화화되기까지 한 베스트셀러이다. 이런 책이 아직 번역/소개되지 않은 걸 보면, 우리의 우울증은 아직 정도가 심하진 않은 것인지?  

20대 초기 발병시 남성보다 두 배 높다는 여성의 우울증 발병 원인도 무엇인지 궁금하다(우울증은 히스테리와 어떤 관련이 있을까?). 워첼의 경우를 참조하자면, 우울증에서 빠져나온 여자는 '까다로운 여자(difficult women)'가 되는 것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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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d 2007-06-17 12:18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프로작을 다년간 복용해본 자로서...통념처럼 약에 취하는 수준은 아닙니다.미국은 거대 제약회사가 대화치료(정신분석 등)의 힘을 '비과학적' 명목으로 '거세'하는 중입니다^^

로쟈 2007-06-17 12:56   좋아요 0 | URL
그러한 거세에 제약회사들의 입김도 한몫했겠네요...

가을산 2007-06-17 17:36   좋아요 0 | URL
제 느낌으로는 몇십년 후면 프로작 등이 커피나 비타민 처럼 복용될 것 같아요.

로쟈 2007-06-17 23:20   좋아요 0 | URL
프로작이 인민의 종교가 되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