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읽은 기사들 중에서 개인적으로 스크랩해둘 만했던 건 우리에겐 아주 먼 북유럽의 작은 나라 아이슬란드의 작은 수도 레이캬비크에 관한 것이다. 얼음땅(아이슬란드) 인구의 3/5인 12만명이 산다는 도시인데(이 나라의 전체인구가 20만쯤이란 얘기다), 인구 규모로 치자며 우리의 지방 소도시 수준이다. 고등학교 시절에 많이 읽었던 '리더스 다이제스트'에서 한번은 아이슬란드를 특집으로 다루었었는데, 내게 남아있는 아이슬란드의 인상은 그게 거의 전부이다. 작고 춥고 조용한 나라(TV도 8시 이후에는 안 나온다고 했던가). 이번에 사진으로 보니 레이캬비크는 기대에 잘 부응하는 도시이다(아담하고 깨끗하지만 별로 볼 건 없는 도시). 그곳의 사람들도 대부분은 과묵하지 않을까 싶고, 날씨가 잘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좀 지내보고 싶은 도시이다(어느 정도 규모의 도서관과 서점만 있다면 금상첨화이겠다). 그런 욕심도 일단은 '창고'에 넣어둔다.

경향신문(07. 06. 21) [세계의 컬트여행지](23)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캬비크

‘레이캬비크, 아이슬란드’면 됐다. ‘나라 이름 대기’도, ‘수도 이름 대기’에서도 ‘레이캬비크, 아이슬란드’를 들이대면 어린이들은 입술을 깨물며 두 손을 들었다. 나스카 땅 그림과 이스터섬의 모하이가 나오는 ‘소년중앙’에도 레이캬비크는 나오지 않았다. 레이캬비크는 사회과부도에만 나왔다. 빨고 있던 사탕 국물을 지도에 떨어뜨리며 레이캬비크, 레이캬비크, 라고 발음하면 입 속의 혀가 복잡하게 꼬였다. 세상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수도. 그것은 세상의 끝처럼 보였다. 지구가 아무리 둥글다 해도, 레이캬비크를 넘어 전진하는 배들은 수직의 절벽으로 추락할 것 같았다.

그 때처럼 코가 빨갛게 짓무르도록 내려다본 비행기 유리창 너머의 아이슬란드는, 황당했다. 땅은 화산재로 때묻은 것처럼 얼룩덜룩했고, 산은 마법사의 모자처럼 끝이 휘어져 있었다. 케플라빅 국제공항에서 레이캬비크 시내까지 가는 동안 단 한 그루의 나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어항 바닥에서 건져올린 것처럼 초록색 이끼로 덮인 땅에서는 이따금 김이 솟았다. 아이슬란드 도로교통의 허브, 레이캬비크 버스터미널엔 매표소와 피자를 파는 카페테리아만 있었다. 딱 가평 시외버스터미널만 했다. 여기가 아이슬란드 인구의 5분의 3, 12만명이 살을 붙이고 사는, 세상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수도, 레이캬비크다. 시내까지는 걸어서 20분. 물론 시내 전역을 걸어서 돌아볼 수 있다.

맥도널드와 스타벅스가 없다는 것을 빼면 시내는 평범했다. 집들은 레고 모형에서 집어와 꽂아놓은 것 같았다. 시청이 있고, ‘호수(트요른)’라는 이름의 호수가 있고, 시골 역사 같은 총리 공관이 있었다. 바이킹의 서사시가 ‘사가’ 자료를 모아놓은 박물관, 1940년대에 지은 현대식 교회도 있었다. 표백이라도 한 듯 유난히 밝은 금발의 사람들은 유모차를 끌거나 팔짱을 끼고 거리를 누볐다. 8월인데도 쌀쌀했다. 공항에서 꺼내 입은 점퍼를 결국 아이슬란드를 떠날 때까지 벗지 못했다. 급기야 기념품 가게에서 점퍼 하나를 더 사서 껴입어야 했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엔 아이슬란드의 첫 개척자, 잉골퍼 아날순의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874년. 그 까마득한 시대에 얼음 바다를 건너 올 사람은 바이킹밖에 없었다. 뭍이 나타나자 아날순은 바이킹 풍습대로 의자 손잡이를 집어 던졌고, 의자가 닿은 곳에 형제와 가족, 10여명의 노예가 정착했다. 거기가 바로 ‘김나는 만(Smoky Bay)’, 레이캬비크였다. 아날순의 동상은 여전히 의자 손잡이에 몸을 기대고 있다.

뭍을 만나면 배를 머리에 쓰고 전진했다는 바이킹의 후예들은 용감했다. ‘사가’에는 붉은 머리 에릭슨이 대서양을 건너 ‘빈랜드’에 도착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학자들은 빈랜드를 아메리카 대륙이라고 보고 있다. 기록이 불충분해 ‘우길’ 수는 없지만, 콜럼버스보다 500여년 먼저 아메리카를 발견한 것이다. 용감한 에릭슨은 지금도 홀그림 교회 앞에 동상으로 서 있다. ‘빈랜드’로 추정되는 미국에서 만들어 보낸 동상이다. 홀그림 교회의 종탑에 오르면 에릭슨이 항해한 대서양이 보인다.

홀그림 교회 광장은 관광객들로 붐볐다. 레이캬비크는 아이슬란드 여행의 관문이다. 관광객들은 레이캬비크를 기점으로 ‘골든서클’ 투어를 한다. 갑자기 물줄기를 뿜어내는 간헐천 게이시르, 폭포 굴포스, 아이슬란드 의회가 태동한 싱비르를 둘러본다. 4륜구동 차량을 빌려 여름에만 길이 열리는 내륙을 가로지르고, 배낭을 짊어지고 일주일씩 하이킹을 하기도 한다. 공항으로 돌아가는 길엔 ‘블루라군’에 들러 몸을 푼다. 빙하 녹은 물과 바닷물을 근처 지열발전소의 지열로 데운 일종의 온천이다. 지열 처리 과정에서 나오는 실리카가 노천온천 곳곳에 비치돼 있다. 공상과학영화에 나올 법한 파이프와 공장을 배경으로 한가롭게 온천욕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은 아무래도 낯설다.

‘블루라군’이란 이름 그대로 물 빛깔은 형광색에 가까운 하늘색이었다. 블루라군 홈페이지엔 블루라군을 너무 좋아해 여기서 결혼식까지 올렸다는 커플의 이야기가 소개돼 있었다. 이 초현실적인 물빛은 사진가도 매료시켰다. 하늘에서 본 지구를 찍는 프랑스 사진가 얀 베르트랑도 블루라군을 내려다보고 셔터를 눌렀다. 블루라군 주변 땅에선 계속 김이 올라왔다. 정말 ‘김나는 땅’이다.

레이캬비크의 ‘명동’, 아달스트래티 거리에 세워진 파이프에서도 김이 올라오고 있었다. 손을 갖다대니 따뜻했다. 사람들이 돌아간 광장에 주저앉았다. 여기가 레이캬비크에서 가장 오래된 거리다. 1752년 지어진 포게틴은 가장 오래된 건물로 가이드북에도 나왔다. 당시만 해도 레이캬비크엔 겨우 300여명이 살았다. 다른 유럽 도시처럼 르네상스 양식도, 고딕 양식이랄 건물도 없었다.



땅에선 김이 올라오고, 이따금 화산이 폭발하고, 뿔 달린 고래가 해안가로 밀려오는 곳. 훗날 톨킨은 아이슬란드를 다녀와 ‘반지의 제왕’을 썼다. 지옥의 땅, 모르도르의 무대가 바로 아이슬란드다. 이 험악한 땅에 고립돼 살아온 아이슬란드 사람들의 언어는 12세기 이후로 거의 변하지 않았다. 아이슬란드 가수 비요크도 그 중세의 언어로 노래부르는 것일까. CD플레이어에선 빗자루로 눈을 쓸 때처럼 사각거리는 비요크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눈발을 뿌리며 몽환의 세계로 인도하는 듯한 나른한 목소리. 고개를 흔들고 CD를 꺼냈다. 태양이 분홍빛으로 내려앉는 지금은 밤 11시다.



▲여행정보

아일랜드와 아이슬란드를 혼동하는 사람이 많다. 아일랜드는 영국 옆, 아이슬란드는 덴마크 위에 있다. 덴마크 코펜하겐, 영국 런던 스텐스테드 공항에서 아이슬란드 케플라빅 공항행 비행기가 출발한다. 코펜하겐·런던에서 약 3시간 걸린다. 저가항공인 아이슬란드 익스프레스(www.icelandexpress.com)가 가장 저렴하다. 일찍 예약할수록 할인 폭이 커진다.

아이슬란드를 여행하려면 버스 패스인 링로드 패스를 구입하거나 렌터카를 이용해야 한다. 가이드북엔 ‘아이슬란드 렌터카는 브루나이의 술탄도 빌리기 힘들 정도로 비싸다’고 나와 있지만, 최저 사양으로 고르면 1일 8만원 정도에 빌릴 수 있다. 레이캬비크 시내만 둘러보려면 걷기만 해도 된다.

숙소는 유스호스텔 홈페이지(www.hostel.is)를 통해 예약하거나, 여행자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소개받으면 된다. 대학 기숙사나 호스텔급 숙소가 1박 8만~12만원이다. 관광객이 몰리는 6~9월에만 운영하는 숙소도 많다. 한끼 식사가 2만~3만원으로 물가가 높다. 체감하기로는 노르웨이에 이어 세계에서 2번째로 비싼 나라인 것 같다.



가이드북은 론리플래닛사의 ‘아이슬란드, 그린란드&패로 제도(Iceland, Greenland & Faroe Islands)’와 디스커버리의 ‘아이슬란드(Iceland)’가 나와 있다. 홈페이지나 여행 블로그를 통해 얻는 정보가 더 알차다. 아이슬란드 여행(www.visit.is), 레이캬비크 여행 홈페이지(www.tourinfo.is), 데스티네이션 아이슬란드(www.destination-iceland.com), 블루라군(www.bluelagoon.com) 등이 추천할 만하다.(글·사진 최명애기자)

07. 06. 22.

P.S. 아이슬란드 관련서를 찾아보니 현재 구할 수 있는 책은 한권도 없는 듯하다. 단, 픽션쪽에서 뜻밖으로 눈에 띄는 책은 아이슬란드 작가 아날두르 인드리다손(1961- )의 <저주받은 피>(영림카디널, 2007). 너무도 조용할 것만 같은 도시 레이캬비크와는 전혀 어울려보이지 않는 제목이다! 소개에 따르면, "아무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은 상처를 다시 끄집어내야 하는 피해자와 가족들, 그리고 그것을 파헤쳐야 하는 수사팀.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슬픔을 다룬 추리소설이다. 아이슬란드 작가 아날두르 인드리다손을 일약 세계적 작가의 반열에 오르게 한 작품으로, 2000년 발표되어 스칸디나비아 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했다." 관련기사를 이참에 읽어둔다. 올여름에 예정에 없이 추리소설을 한편 읽게 된다면 제일 먼저 고려해 볼 책이다. 찾아보니 작품은 작년에 아이슬란드에서 영화화됐다.

동아일보(07. 04. 07) [한혜원의 펄프픽션]아이슬란드서 온 ‘저주받은 피’"

사람이 죽고 사는 이야기인 범죄수사 드라마는 늘 흥미진진하다. 범죄수사 드라마의 주인공은 크게 세 유형으로 나뉜다. 먼저 파이로 번스, 브라운 신부, 엘러리 퀸처럼 순전히 취미로 수사에 뛰어드는 유형이 있는가 하면, 홈즈, 뤼팽, 포와로처럼 아예 사무실을 내고 사립탐정 행세를 하는 유형이 있다. 마지막으로 그리섬, 스타페카, 콜롬보처럼 제도권 내에서 본업 삼아 범죄를 해결하는 유형이 있는데, 이를 흔히 ‘경찰소설(police procedural)’로 분류한다. 이때 경찰소설의 핵심은 무엇보다도 개성과 카리스마 넘치는 수사 반장의 캐릭터 설정에 있다.



빙하와 온천의 나라, 아이슬란드식 수사 반장인 ‘저주받은 피’(영림카디널)가 국내에 소개됐다. 우리에게는 낯설지만, ‘저주받은 피’의 작가 아날두르 인드리다손은 스칸디나비아 일대에서는 ‘흥행 보증수표’로 알려진 추리소설 작가이다. 그는 ‘저주받은 피’(2002년), ‘무덤의 침묵’(2003년) 등 ‘에를렌두르 반장 시리즈’로 북유럽 최고의 추리소설상인 ‘글라스 키(glass key)’를 최초로 연속 수상한 바 있다.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캬비크에서 전형적인 아이슬란드식 살인사건, 즉 우발적이고 무의미하고 어설픈 노인 살해사건이 발생한다. 단 한 가지, 살인 현장에 남아 있는 ‘내가 바로 그다’라는 메시지만이 유일하게 이것이 계획된 범죄임을 암시한다. 수사반장 에를렌두르는 이 단서를 토대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범죄의 씨앗을 찾아 올라간다.

실제로 연쇄살인이 끊이질 않는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아이슬란드는 추리소설의 배경으로 적합하지 못하다고 지레짐작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인터넷 보급률 세계 최고, 한국과 비슷한 크기의 국토면적, 단일민족 구성 등 의외로 우리와 닮은 면이 많기 때문일까. 지명과 이름이 낯선데도 불구하고 사건과 인물의 실체가 생생하고 절실하게 다가온다(*국역본은 아마도 영역본에서 중역을 했을 듯한데, 아래는 아이슬란드어본이다).



‘저주받은 피’는 범죄수사라는 가장 보편적인 이야기를 가장 아이슬란드적으로 풀어내 성공한 작품이다. 특히 동물적인 감각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하드보일드파 에를렌두르 반장은, 할리우드의 명탐정 부럽지 않게 장수할 수 있는 캐릭터이다. 21세기 한국형 수사반장과 경찰소설은 언제쯤 등장하게 될는지. 가장 아이슬란드적인 수사반장으로 세계 추리소설계에 도전장을 낸 아날두르 인드리다손에게 질투가 날 따름이다.(한혜원 계원조형예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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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이슬란드
    from 2007-06-27 10:29 
 
 
딸기 2007-06-22 0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행길에 비행기 옆좌석에 아주 젠틀한 중년신사가 앉아 있었어요.
가방 넣고 꺼내는데 친절히 도와준 덕에, 이야기를 하게 됐죠. 아이슬란드에서 왔대요.
"아이슬란드 사람과 만나는 건 처음이다"라고 했더니
"아이슬란드에는 사람이 많지 않거든요"라고 농담을 하더군요.
아이슬란드에 대한, '유일한' 기억이고 또 좋은 기억입니다. :)

드팀전 2007-06-22 0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이슬란드다...ㅜㅜ
30대 초반 우울모드에 접어들때 궁시렁 궁시렁 "아이슬란드에 가서 살고 싶어" 라고 했습니다.옆에 있는 사람들이 '왜?' 냐고 물었지요.
글쓴이도 썼듯이..왠지 제가 아이슬란드는 세상의 끝처럼 여겨졌습니다.왕가위의 영화<해피투게더>의 마지막 등대장면 처럼.
최소한 우리나라에서는 뉴스를 봐도 신문을 봐다 아이슬란드 이야기는 나오지 않습니다.미국도 나오고 프랑스도 나오고 가끔 남아프리카 공화국도 나오는데..
아이슬란드는 한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아마 알라딘의 페이퍼 중에서도 아이슬란드에 관련된 기사는 오늘 처음 보는 듯 합니다.아이슬란드는 어떤 말을 쓰는지 어떤 역사가 있는지..한국 사람들은 몇 명이나 사는지... 아이슬란드는 제게 사라진 아틀란티스 같은 상징이었습니다...^^ 왜 그곳에 가고 싶었을까요.제가 스스로를 수증기라고 착각해서 그랫나봅니다.죽지 않고 소멸할 수 있는 장소로 그곳이 낭만적으로 보였겠지요...청춘 나 참...

죽기 전에 꼭 갈 수 있겠지요.

비연 2007-06-22 1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여기 가고 싶어요...

로쟈 2007-06-22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딸기님/ 20만 중의 한 사람이었군요.^^
드팀전님/ '가정 먼 나라'이면서 '가장 조용할 것만 같은 나라'죠. 그린란드는 너무 땅이 크고...
비연님/ 물가가 의외로 비싸다니까 실행은 쉽지 않을 거 같습니다.^^;

수유 2007-06-22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이슬란드 하면 제겐 Sigur Ros가 떠오르죠..북구적인 사운드. 제 얼음집에 소리 있습니다만.:)

로쟈 2007-06-22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음집은 아이슬란드와 가깝겠군요.^^

수유 2007-06-22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맨 위의 도시 사진. 보니까 s시 같기도 하고..^^ 일자로 뻗은 도로하며, 바다도 보이고. 참 좋은 곳이었죠.

2008-02-25 23: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8-02-26 01:10   좋아요 0 | URL
^^
 

한겨레에 연재됐던 황석영의 소설 <바리데기>가 대단원의 막을 내린 모양이다. 작가는 연재를 마치고 난 소감을 이메일 인터뷰에 응하여 답하고 있다. 연재소설을 읽어본 바 없지만(책은 7월초에 나온다고 한다) 마침 그의 <오래된 정원>에 대한 강의를 다음주에 맡아놓고 있어서 이 인터뷰도 자료삼아 스크랩해놓는다.

한겨레(07. 06. 21) “한반도의 삶 세계인과 공유하고 싶었다”

- 우선 6개월 가까운 연재를 끝내신 소감을 듣고 싶습니다.

= 작품을 한편 끝낼 때마다 느끼는 점이지만 뭔가 내장의 주요부분이 빠져나가 버린 것 같은 허탈감이 남지요. 그런 기분은 아마 한 일주일쯤 지속될 거예요. 전에는 한달쯤 갔는데 요새는 일상으로 돌아오는 시간이 좀 빨라졌다고나 할까. 아기를 낳은 산부들을 위한 산후조리원도 있는 모양인데 우리는 뭐 그런 거 없나.(^^) 그동안 동참해주신 <한겨레> 독자 여러분께도 감사드리고 무엇보다도 줄거리를 열심히 따라오며 장면들을 구체화하려 노력해오신 노원희 화백에게도 감사를 드립니다. 노 선생의 바깥양반이 저하고는 죽마고우인데 장면에 나오는 인물 대신 여러 가지 포즈도 취해 주었다고 합니다. 만나면 제게 한바탕 할 것 같아서 은근히 걱정이지요.

- <바리데기>는 처음 구상하셨던 대로 연재가 진행되었는지요?

= 거의 구상대로 되었습니다. 사실은 이번 작품으로 감옥에서 큰 선으로 그려 놓았던 집필 계획은 절반쯤 마무리가 된 셈입니다. 아직 두어 가지가 더 남아 있습니다만. <오래된 정원>은 저의 우여곡절 많던 인생에 대한 자기 치유의 과정이자 지난 세기를 되돌아보고 정리하는, 이를테면 작가로 되돌아오려는 ‘손풀기’였다면 <손님> <심청>, 그리고 <바리데기>로 이어지는 작품들은 여러번 밝혔던 대로 일관된 기획이었지요. 현실적 내용을 우리 형식에 담아 풀어내겠다는 포부였는데요, 이제 그 윤곽이 대충 드러났다고 봅니다. 앞으로 더욱 심화시킬 작정입니다.

- 7월초에 책이 나온다고 들었습니다. 책으로 내시면서 연재분과 달리 수정하거나 보완하시는 부분이 있습니까?

= 진작에 종결원고를 신문사에 넘기고 나서 연이어 교정 작업에 들어갔는데요, 별로 손본 것은 없습니다. 다만 문장 몇 줄 대화 몇 마디 첨삭이 있었지요. 오랫동안 가지고 주무르던 주제와 소재라서 디테일까지 모두가 저에게는 낯익은 것들이었지요. 공들여서 구성하고 집필했다는 느낌입니다. 특히 북의 기근과 산불이라든가 밀항 부분과 서천 끝 세상에서 세계를 향한 공수를 내리는 부분은 오래 지니고 있었던 장면들이지요.

- 북쪽 동포들의 대규모 탈북 행렬은 안타깝지만 부정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사람이 살고 있었네>라는 방북 산문집을 통해 남북 동포 사이의 이질성을 극복하고 민족 화해를 염원하셨던 선생님이 <바리데기>에서 탈북의 현실을 정면으로 다룬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탈북자들을 다룬 소설은 다른 작가들에게서도 조금씩 나오고 있는 중이지요. 남북간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는가 하면 북쪽 사회 내부의 불안이 이어지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작가들이 취해야 할 문학적 대응은 어떤 방식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 1989년 당시에는 우선 북에 대한 우리의 냉전의식을 깨는 것이 급선무였지요. 그래야 사상 표현의 자유도 앞당겨질 것이니까. 개인적으로는 희생이 컸다고 하겠습니다. 저는 국가보안법 때문에 사회 전반 또는 국가 자체로부터 왕따를 당했지요. 연재를 시작하면서 밝힌 바와 같이 베를린 장벽 붕괴와 동구권의 변화 이후 시작된 새로운 세계체제에 적응하지 못한 주변부 나라들은 국제적인 양극화 속에서 새로운 분쟁과 굶주림에 빠져들었고 북한은 그들 중의 하나입니다.

내가 2003년 영국 체류 시기에 <바리데기> 얘기를 했더니 런던대학의 이집트 교수 한 분이 어느 사진작가 얘기를 하더군요. 나는 당장에 그의 작품집들을 샀습니다. 브라질 출신으로 망명하여 프랑스에 체류 중인 사진 작가 세바스티앙 살가도의 사진집이었어요. 예를 들어 ‘이주’와 같은 사진집은 세계적으로 충격을 준 작품집입니다. 그 속에 동구와 동남아와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등지의 현실과 형편들이 생생하게 찍혀 있었지만 북한만 빠져 있었어요. 누군가 세계를 향해서 발언을 해야 한다는 강한 충동을 느꼈습니다. 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시기를 정점으로 북한은 동구 붕괴 이후 십여년 이상 오랜 기근 속에서, 유엔의 지적에 의하면 삼백여만이 굶주림과 영양실조 후유증으로 죽어 갔습니다. 우리들 풍요의 대한민국 지척에서였지요.

저는 북한 통치권의 책임과 함께 남북의 분단체제를 경영해온 강대국들의 위선적인 인권 논리를 여러 차례 비판해 왔습니다. 이런 사실은 비현실적인 ‘북한붕괴 유도’라는 이념적 전술적인 논지들에 묻혀서 세계적으로 잊혀지거나 북한 정권의 반인도주의적 정체성을 선전하는 데만 활용된 점이 많습니다. 저는 북한 난민을 세계화체제의 그늘로 보고 있으며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주변부는 비슷한 참상을 겪고 있지요. 실제로 전쟁이 계속되고 있고, 아프리카는 도처에서 동식물이 멸종하듯이 종족 전체가 사라져가고 있어요.

내가 늘 느끼는 것이지만 우리는 마치 한쪽 창문으로만 경치를 바라보고 그쪽으로만 바람을 소통하는 듯한 생각이 드는군요. 세계는 더욱 이행기의 혼란 속에 있는데 우리는 언제나 서구 세계의 표피만 보면서 심지어는 그 잣대로 자신을 재고 맞추려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세계가 공유하는 ‘문예사조’ 따위는 없습니다. 자신과 한반도의 현재의 삶을 세계 사람들과 공유하려는 것이 작가가 국경이나 국적 따위에 구애받지 않는 ‘세계시민’이 되는 길입니다. 세계문단이 한국문학에 바라는 것은 바로 그 점입니다. 자기와 비슷하게 흉내낸 것을 그 누구도 원하지 않겠지요.

- 바리가 중국을 떠나 유럽으로 향하는 화물선 콘테이너 안의 지옥 같은 상황을 환상적 필치로 묘사한 대목이 특히 감동적이었습니다. 판소리로 치면 눈대목에 해당한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부분을 어떻게 구상하셨는지요?

= 세계의 어느 민담에 보든지 현실에서 초현실로 ‘이동’하는 줄거리가 많이 나옵니다. 그런데 우리가 겪는 초현실이란, 꿈도 마찬가지지만, 현실을 근거로 한 메타포거나 자기 왜곡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무턱댄 환상과 환영은 마땅히 경계해야 합니다. 현실의 그림자로서의 환상은 예술적 기법으로뿐만 아니라 논리적인 것보다 더욱 깊이있게 현실을 포착하게 해줍니다. 소설에는 부분적으로 저의 꿈도 써먹었는데요, 무격의 원조인 ‘바리할미’가 나타나는 장면은 제가 파리에서 집필하던 어느 날 직접 꿈에 보았던 형상을 그린 것입니다. 특히 뒷부분에 서천 끝으로 가면서 피바다 불바다 모래바다를 지나는 것과 공수 장면은 ‘황천무가’에 나오는 대목들입니다.

런던에서 저에게 자료를 모아주고 이주민들과의 인터뷰를 주선해 주는 등 도움을 준 한국근대사 전공의 박사과정을 공부하는 영국인 청년이 있었어요. 그가 가져온 자료들을 섭렵하면서, 특히 <가디언>에 소개된 런던 시내 이주민들의 분포도는 내게 깊은 감명을 주었습니다. 지구상의 거의 모든 종교와 인종과 문화가 런던을 표범 무늬처럼 잠식하고 포위하고 있더군요. 그들은 거의가 구식민지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직접 개개인을 만나는 중에 특히 나이지리아 사람의 어린 시절 체험이나 남아프리카 사람의 무속 얘기는 이러한 인간 심층의 환상들을 구성해내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당시에 런던에서는 행방불명 되었던 영국 국적의 파키스탄인 2세 청년들이 미군 관할인 관타나모 수용소에 갇혀 있다가 되돌아온 사건으로 떠들썩했고 나는 그것을 소설의 한 대목으로 넣으려 했지요. 나중에 영국 감독이 다큐 형식의 영화를 만들어 베를린 영화제에서 발표를 해버렸기 때문에 나는 이것을 바리의 ‘서천’ 장면으로 환상적인 처리를 하게 되지요. 

- 바리는 옛 제국의 수도인 런던 변두리에서 다양한 인종 집단과 섞여 생활하며 파키스탄인 남자와 결혼까지 합니다. 그리고 9·11 테러와 영국 지하철 테러, 미국 주도의 대테러 전쟁 같은 것이 바리의 삶에 끼어듭니다. 탈북자라는 바리의 신분이 상징하는 한반도의 현실과 지금의 세계적 혼란은 어떻게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겠습니까?

= 베를린 장벽 이후 부시 이전까지의 세계가 세계화체제 재편성 기간이었다면 9·11은 그것이 본격화되는 막이 열리는 분기점이 됩니다. 미국의 일방주의가 세계에 노골적으로 강행되는 근거가 되었지요. 지금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는 개인과 사회를 넘어서서 국가간에도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중입니다. 9·11은 21세기 이행기의 가장 상징적인 사건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계기로 ‘악의 축’으로 지명된 나라들을 보면 그 당사자들 보다도 중동이니 중국이니 하는 지역이 강대국의 이해관계와 더불어 주목되는 점을 눈치챌 수가 있지요.

우리가 베트남 전쟁 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미국이 일으킨 전쟁에 ‘부끄럽게’ 참여하고 있습니다. 나는 금강산 관광이나 6·15 이후 오히려 ‘분단’을 낡은 것으로 치부해버리고 의식 속에서 지워 버리려고 하는 세태를 우려합니다. 세계로 나가 보세요. 택시 운전사나 웨이터들, 그러니까면 시정 사람들도 모두 사우스, 노스 하고 되묻지요. 심지어는 서구권에서 우편물을 보낼 때 ‘사우스’를 명기하지 않으면 분명해지지 않는다는 점을 현지 교포들이 먼저 알려줍니다. 한반도의 분단이 세계 현실과 연결되어 있다는 이 운명적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나는 그런 의미에서 ‘반국적 시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인식에 대하여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현재 사용하지 않는 뒷마당도 우리 집이니 집 수리할 때를 염두에 꼭 두어야 합니다. 사실 바리를 뉴욕으로 보내지 왜 런던으로 보냈느냐고 이의를 제기한 친구도 있었는데요. 제가 19세기를 배경으로 <심청>을 먼저 쓰고 난 다음에 <바리데기>를 쓴 것은 다 이유가 있습니다. 이 두 작품은 서로 연결되어 있지요. 19세기의 제국주의와 21세기의 신자유주의가 서로 연결되는 것처럼 말이지요. 나는 미국 문명의 이를테면 ‘안동 김씨’ 본가인 영국이 현재 서구권의 모습을 잘 드러내 줄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옛날의 업보가 많고 축소되어 있으므로 훨씬 더 자세히 보이지요.

- 우리 설화에서 바리는 약수를 구해 죽은 부모를 살립니다. 소설 <바리데기>에서 바리가 구한 생명수는 어떤 것일까요? 분열과 증오와 죽임의 21세기 지구촌에서 생명의 길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 숨은 그림 찾기입니다. 글쎄요, 이 작품에서 생명수는 과연 무엇일까요? 그리고 바리는 그것을 찾기라도 했을까요? 독자들에게 던지는 질문이 될 것입니다. 

- <바리데기>의 해외 번역 출간 계획이 잡혀 있는지요?

= 현재 <심청>이 번역 진행 중이므로 프랑스쪽의 에이전트는 당분간 그 일에 전념할 모양입니다. 작년에 뉴욕과 런던쪽의 출판 에이전트 측에서 제의가 들어와 어쩌면 그들에게 맡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영독불 언어 중에 하나가 잘 된 프린트본이 있다면 거기서 막바로 다른 서구어로 번역되는 것이 더욱 효율적이라고 보고 있는데, 현재의 우리 번역 시스템은 너무 원칙적인 것이 아닌가 생각하지요. 가령 밀란 쿤데라의 경우에는 체코어를 프랑스어로 번역한 뒤에 그것을 작가가 정본으로 정하여 프랑스어에서 다른 나라 말로 번역하게 하지요. 주변 소수 언어 출신들 중에 이런 예는 많이 있습니다. 일본은 현재의 위치까지 오는 데 백년이 걸렸구요, 현재도 자기네 문화를 세계화하는 사업에는 기업과 정부가 용의주도하게 힘을 들여서 계속 중에 있습니다. 아마 우리가 하는 노력에 비하면 거의 수십배는 될 겁니다.

- 다음 소설 계획을 듣고 싶습니다. 그리고 언제 완전 귀국하시는지요?

= 집필 계획이 분명히 있지만 어느 걸 먼저 하게 될지 모르니 현재는 대답을 못하겠네요. 책이 나올 때쯤 잠깐 귀국했다가 오는 10월에는 완전히 보따리를 싸서 들어올 생각입니다. 지난 4년 가까이 런던대학과 파리대학 초청으로 있었는데, 늙마에 너무 오래 체류했다는 느낌입니다. 귀국해서는 시골에 칩거할 생각입니다. 앞으로 책이 나올 때에만 해외 행사에 참가하고 되도록이면 나다니지 않을 생각이구요. 이제 다시 집필실에서 자기와 대면하는 일만 남아있는 셈이지요.

- 문학과는 관련이 없는 질문이지만, 궁금해하는 이들이 많아서 여쭙습니다. 손학규 전 지사가 탈당한 뒤에도 여권은 여전히 대통합을 이루지 못한 상태입니다. 앞으로 손 전 지사를 위해서든 민주 세력의 대통합을 위해서든 선생님께서 추가로 하실 역할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신지요? 

= 문학과의 관련이 없다고 단정하고 묻는 질문은 또 무엇입니까? 그게 바로 형식적 민주화 시기 이후 우리의 자가당착이지요. 앞으로 책 나올 일에 흙탕이라도 튈까 하여 탈탈 털고 싶지는 않습니다. 제가 살아온 대로 말하렵니다. 작가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많아서 늘 설명해야 하는데요. 저는 문단에 나온 이후 동료 문인들과 함께 시대와 정치적 현실에 대한 일관된 비판적 관여를 해온 셈입니다. 작가도 시민의 한 사람이고 유권자의 한 사람이라는 걸 알아 두었으면 합니다. 내가 막말로 현실정치에 개입해서 무슨 국회의원이나 높은 사람 해먹겠다고 하는 것도 아닌데, 작가는 오로지 ‘글이나 써라’는 말은 문학에 대한 관점이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보면 그런 분들이 오히려 현실정치의 덕을 보고 살더군요. 

앞서도 얘기했지만 저는 때가 되면 그 당대마다 발언을 할 것입니다. 작년 가을부터 발언을 시작했는데 현재 상황을 보면 대개 다 맞아떨어진 것 같군요. 내가 점쟁이라서 그렇게 되었겠어요? 상황이 그랬기 때문에 여기까지 온 것이겠지요. 나는 김근태 의원의 최근 결단에 대해서 ‘그러면 그렇지’ 하고 무릎을 친 사람입니다. 나는 그를 늘 존경하고 사랑해온 오랜 벗인데, 그이는 행동이 좀 굼뜬 대신에 사려가 깊은 분입니다. 화려하지 않아서 그렇지 그는 매우 정직하고 언제나 정도를 걷는 중요한 지도자의 한 사람이지요. 

그가 얼마 전 6월항쟁을 돌이켜보며 양김의 분열과 삼당합당을 회고할 적에 나는 다시 가슴이 아파오더군요. 사실 84년 광주 홍남순변호사의 고희 때에 있었던 그 모임을 아쉬워하고 그때로 돌아가야 한다고 늘 얘기하던 사람이 바로 김근태씨였습니다. 그가 이제 자기를 버리고 총대를 멨으니 나는 누구도 아닌 그의 편입니다. 그를 도와줘야겠지요. 그가 나섰으니 통합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현재의 상황을 보면 우리 사회가 새로운 체제 교체의 전환점에 서 있는 것만은 틀림없어 보이는군요. 역사적 상상력은 이 시점에서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저는 단 한마디만 덧붙이고 싶습니다. 휴전선을 등지고 반도의 아래쪽만 보고 있을 게 아니라 제발 한번만 지도를 돌려서 제주도 서귀포쯤에 눈을 대고 위를 보라구요. 저 너머에 무한한 신대륙이 펼쳐지고 있지 않나요? 만주를 넘어 흥안령 산맥 지나 바이칼, 시베리아까지 보이는군요.(최재봉 문학전문기자)

07. 06. 21.

P.S. 세바스티앙 살가도의 사진집에 관심을 갖게 된다. 유감스럽지만 국내에는 아직 소개돼 있지 않다. 다만 <클라시커50 사진가>(해냄, 2005)와 최민식의 <사진이란 무엇인가>(현실문화연구, 2005) 등에서 살가도 항목을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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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프랑스에서 만난 황석영..
    from 기인 책 읽다 2007-06-21 03:22 
    파리가서 느낀 것인데, 황석영의 번역서가 꽤 눈에 뜨였어요. 무라카미 하루키 영문판을 찾으려고 그랬던 것인데, 정작 하루키는 안보이고 황석영은 보이더라고요 ^^ ㅎㅎ
 
 
로쟈 2007-06-21 0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나마 프랑스쪽으로는 많이 알려진 모양이군요. '하루키'가 안보였다고 하신 건 의외인데요.^^

프레이야 2007-06-21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가도의 저 사진집, 아마존에서 구입했어요. 옆지기가..
충격적인 사진들이었어요. 바리데기, 기대됩니다.
로쟈님, 서재 스킨이 저랑 같아요. 놀랐어요. 클릭하는데 제 서재가 도로 뜨는 줄
알았거든요. ^^

지나다 2007-06-22 0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재작년 여름 서울 놀러왔다 프레스센터 1층에서 전시회를 봤던 기억이 나네요.
작가도 잘 모르면서 흑백 사진의 깊은 울림 땜에 엽서, 포스터도 사고, 뜻밖의 수확이었죠.
괜히 지나다 아는 척~ㅎㅎ 로그인 하기 귀찮아 그냥 갑니당.

로쟈 2007-06-22 1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님/ 장마철 동안엔 같은 스킨을 사용할 것 같네요.^^
지나가다님/ 사진들이 왠지 낯에 익다 싶었는데, 전시회가 있었군요!..
 

새로 나온 책들을 좀 등한시했나 싶어 구내서점에 잠시 들러봤지만 마땅히 눈에 띄는 책은 없었다. 아침신문에서 본 몽골 서사시 <게세르>만 눈길이 끌기에 잠깐 뒤적여보았을 뿐. 기사에는 <게세르>라고만 돼 있는데, 국역본의 표제는 <게세르 칸>(사계절, 2007)이다. "티베트, 몽골 지역에서 전승되어 온 영웅서사시로, <몽골비사>, <장가르>와 함께 몽골의 전통 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이라 한다. 우리에겐 생소하지만 중앙아시아 문화를 이해하는 데 요긴한 책임에는 분명하다.

소개에 다르면, "오랜 세월 다양한 방언으로 전승되어 판본의 갈래가 매우 복잡해 연구자들조차 단편적으로 밖에 알지 못했는데, 이 책은 번역 텍스트인 1716년 북경판 목판본을 저본으로 삼고, 사진으로 함께 실어 연구자들과 일반 읽는이들 모두를 배려하였다." 역자의 품이 많이 들었을 책이다. 아침에 읽은 관련기사를 옮겨놓는다. 요즘 뜨는 '미드'라는 <프리즌 브레이크> 사례에 견주어 고전번역 품앗이에 네티즌들이 나서면 어떨까라고 필자는 제안하는데 생각해봄 직하다.   

 

한국일보(07. 06. 20) 게세르와 프리즌 브레이크

이달 초 몽골의 대서사시 <게세르>가 유원수씨의 노고로 한국어로 번역돼 나왔다. 반갑고 고맙다. 그리스ㆍ로마 신화만 판을 치는 한국적 현실에서 괜히 부자가 된 기분이다.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신화, 전설, 민담을 아우르는 서사시 분야에서는 중앙아시아와 인도가 서양을 저만큼 제친다는 것이 학자들의 중론이다. 키르기스의 <마나스>, 몽골의 <장가르>, 인도의 <라마야나>와 <마하바라타> 서사시 등등이 그러하다.

● 동양고전 번역 소홀한 인문학계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만 본 사람과 <마나스>까지 읽고 자란 학생이 가슴에 품는 세계의 크기와 수준은 엄청 다르다. 그런데 한국어 번역본이 없다. 그래서 읽고 싶어도 읽을 수가 없다.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를 잘 배워서 그런 작품들을 우리말처럼 술술 읽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전공자가 드물고, 한 사람이 옮기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상업성도 낮으니 출판사도 나서지 않는다.

게다가 우리 인문학계는 허구한 날 위기여서 이런 문제를 절박한 과제로 인식할 능력조차 없다(*인식할 능력조자 없다는 건 과장이다. 다만 여건이 따르지 않고 의지가 부족할 따름이다). 학자나 전문가만 믿고 기다리다가는 토끼 머리에 뿔 나고, 거북 등에 풀 돋기를 바라는 격이다. 그래서 늘 답답하고 화가 난다. 인문학이나 사회과학 분야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얼마 전 미국 드라마 <프리즌 브레이크> 시즌 2를 보면서 묘책이 떠올랐다! 이 드라마는 MIT를 나온 천재 동생이 억울하게 사형 선고를 받고 복역 중인 형을 탈옥시키는 내용인데 지금 1부가 지상파에서, 2부는 케이블에서 방영 중이다. 그러나 웬만한 분들은 2부 22편 다 본 지 오래다. 네티즌 내지 ‘미드(미국 드라마) 폐인’들이 현지 방영 즉시 어떻게 구했는지(이건 극비다) 전편을 인터넷에 올렸기 때문이다. 그것도 한국어 자막을 충실히 달아서. 어떤 대사에는 주석까지 붙였다(이 얘기는 미국 사람들한테는 비밀로 합시다. 베른협약 위반이니까).

미드 폐인들의 이런 헌신과 열정을 인류의 위대한 서사시에도 쏟아보면 어떨까. 원어를 모르신다고요? 별 상관없습니다! <마하바라타>만 해도 산스크리트어 몰라도 잘 된 영어 번역본이 인터넷에 여럿 올라 있다. 작가 사후 50년이 지나서 저작권법 위반도 걱정할 필요 없다. 개미들이 달라붙어 나눠서 번역하면 질은 좀 떨어지겠지만 아예 못 읽는 것보다야 백배 낫다.

사소하지만 중요한 문제 한 가지. 기왕 하려면 판본을 잘 골라야 한다. 판본 따라 내용과 느낌이 하늘 땅 차이니까. <게세르> 서사시 사계절 출판사 한글본의 경우 불교적 색채가 짙은 18세기 몽골어 판본을 텍스트로 삼았다. 반면 러시아연방 부리야트몽골공화국의 사랑게렐 오디곤씨가 최근 몇 년에 걸쳐 영어로 인터넷에 띄운 판본(http://www.buryatmongol.com/halaa1.html)은 불교가 들어오기 이전 싱싱한 샤머니즘 세계의 냄새가 물씬 난다. 첫 대목부터 ‘죽인다’.

“태초 하고도 아주 태초에/ 여러 시대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시대에/ 처음 하고도 맨 처음인 때에/ 드높은 밝은 하늘이 안개로 회오리치고/ 저 아래 땅은 진흙과 티끌로 뒤덮이고/ 풀은 아직 자랄 생각도 못할 때/드넓은 가람들은 흐를 조짐조차 없고/ 거대한 우윳빛 호수는 한 줌 연못에 불과하던 때/ (…) / 사람이 다니는 길도 나지 않았던 때/ 그 때가 좋은 시절이었노라고/ 사람들은 지금도 이야기한다!”

천지 창조와 신들의 다툼으로부터 영웅의 탄생과 지상에서의 활약까지를 광활한 초원처럼, 대하장강 같은 입담으로 풀어가는 이 판본은 가히 압권이다.

● 네티즌 열정모아 쌍방향 번역을…
이런 고전들을 네티즌과 재야 고수들이 열정을 합쳐 우리말로 옮겨 보자. 동시에 우리 고전은 영어로 바꿔 세계에 올려 주자. 미래 세대의 지성과 감성을 풍요롭게 할 동서고금의 고전들이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이광일 논설위원)

07. 06. 20.

P.S. 러시아에는 아예 3D 게임까지 나와 있군(이런 걸 유통시키는 게 이 고전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는 제 격이겠다). 원래는 어디서 개발한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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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폴리스 2007-06-21 01:43   좋아요 0 | URL
신화와 게임의 접목이라...멋진 발상이긴 한데...모 방송사에서 하고 있는 대조뭐시기 하는 드라마는 너무 게임스럽던데요...뭐랄까요...워낙 사료가 없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흥미 위주의 극전개는...좀...하하..^^;;
참고로 눈팅만 하다가 첨 글남기는데 몽고 신화를 보니 신기하네요..^^

더불어...드라마에 관련된 자료들(별로 중요치 않겠죠?)을 바로 출판해버리는
미국의 능력에 감탄하는 바입니다. 그것이 자본과 관련된 것이든 정말 필요해서든지 간에
그것을 소화해낼 수 있다는 것에 찬사를 보내는 바입니다.
이것도 하나의 기록이 될 수도 있을지 모르니깐요

로쟈 2007-06-21 08:44   좋아요 0 | URL
'너무 게임스러다면' 아예 게임으로 개발하는 것도 방법이지 않을까 싶군요.^^

몽당연필 2007-06-21 11:10   좋아요 0 | URL
프리즌 브레이크...넘 보고 싶은데 ㅠㅠ
그런데 이번에 출간된 책이 원작소설인가요?

로쟈 2007-06-22 11:55   좋아요 0 | URL
"미국의 TV 드라마 '프리즌 브레이크'의 팬들을 위해 만든 에피소드 가이드"라고 하는데요...
 

사실 좀 지나간 일이 돼 버렸지만 서재 방문자수가 지난달말인가 20만명을 넘어섰다(그 사이에 7천명 넘게 방문한 것으로 돼 있다). 하지만 서재의 문을 일시적으로 닫고 '휴가'에 들어갔던 때인지라 따로 챙기질 못했다. 다행인지 우연인지 20만을 캡쳐해두긴 했는데, 날짜를 다시 확인해보니 6월 1일이다. 아래가 남은 기록이다(today는 왜 다운된 건지 모르겠다). 

183200000 

그 사이에 또 조촐하게 기념하려고 했던 즐찾 1111명도 훌쩍 지나쳐버렸다(지금은 1147명이다). 요즘은 시간적인 여유가 없어서 퍼오는 글이 많고 아주 '대중적인' 글들을 올리는 것도 아닌데 방문객이 이처럼 많아진 것은 반가운 일이기 이전에 다소 의아한 일이다(당신은 무슨 기대로 '로쟈의 서재' 아니 '로쟈의 저공비행'을 찾는가?). 하긴 대다수는 아무런 흔적도 남겨놓지 않기 때문에 나는 동료 알라디너보다는 외계의 염탐꾼들이 더 많이 다녀가는 것으로 짐작하고는 있다. 여하튼 그런 숫자에 현혹되어 매일같이 서재에 물붓기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모종의 책임감으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하다. 나처럼 책임감이 좀 부족한 경우에도(나는 줄줄이 '가'를 받은 초등학교 성적표에서 책임감이 '나'였다). 

그래서 기획하게 된 것이 '로쟈의 한줄'이다(벌써 몇 차례 아이템은 잡아놓았는데, 한줄 정도야 수시로 주목해볼 수 있는 것이어서 작업량이 꽤나 늘어날까 미리부터 걱정되긴 한다). 취지는 그냥 카테고리가 말해주는 대로이다. 눈에 띄는 한줄에 대해서 자세하게 뜯어보거나 뒷조사를 해본다는 것. 가령 며칠 전에 옮겨놓은 인터뷰(http://blog.aladin.co.kr/mramor/1322403)에서 작가 황석영의 말.

세르게이 본다르추크의 <워털루>(1970)를 보라고. 그 사람이 워털루 싸움의 앞뒤 사흘로 나폴레옹의 정점과 몰락을 카메라로 어떻게 담아내나 보라고. 윌리엄 프레이커 감독의 <몬티 월쉬>(1970)를 또 봐. 그렇게 촬영감독이 중요한 거야.

 

 

 

  

 

여기서 오늘의 한줄은 "세르게이 본다르추크의 <워털루>(1970)를 보라고."이다. 본다르추크는 <전쟁과 평화>(1968)로 잘 알려진 러시아감독이다. 그리고 워털루는 러시아 진격에 실패한 나폴레옹이 절치부심 끝에 치른 마지막 전쟁이다(알다시피 그는 여기서도 패장이 됨으로써 역사의 뒤안길로 영원히 사라지게 된다): "1815년 6월, 엘바섬에서 돌아온 나폴레옹이 주도한 프랑스군과 웰링턴이 주도한 영국군, 프로이센 등을 포함한 연합군이 벨기에 남동부 워털루에서 대전한 전투를 말한다. 이 전투로 프랑스군은 패배하고, 나폴레옹은 세인트 헬레나 섬으로 유배되었다."(위키백과)

이탈리아와 러시아 합작으로 찍은 이 영화는 아마도 전작인 <전쟁과 평화>에 고무되어 제작된 게 아닌가 싶다(http://www.youtube.com/watch?v=IEYvfy8zKzk). <워털루>를 본 기억은 없지만 전투장면의 스틸사진상으로는 <전쟁과 평화>와 구별이 되지 않는다. 장쾌한 스펙터클을 뽐내지 않았을까 싶지만(가장 잘 만들어진 전쟁영화의 하나로도 꼽힌다) 동시대 러시아 감독인 타르코프스키의 평은 아주 신랄했다. <타르코프스키의 순교일기>(두레, 1997)에서 그는 이렇게 적었다('본다르츄크'란 표기는 '본다르추크'로 고쳤다).

"오늘 본다르추크의 <워털루>를 보았다. 불쌍한 작가다. 수치스런 작품이다. 본다르추크에게 작품 <워털루>를 위임했던, 이탈리아의 디노 라우렌티스 제작팀에서 온 로베르토 쿠오마라는 이탈리아 사람의 방문을 받았다. 영화감독으로 이탈리아에 초대하고 싶은데 올 수 있겠느냐고 묻기에, 토마스 만의 <요셉과 그의 형제들>이란 소설을 읽어보라고 권했다. 일이 잘만 된다면 카뮈의 <페스트>를 영화화하고 싶다."(49쪽)


 

 

   

 

1970,년 9월 18일자 일기의 한 대목인데, 국역본에서 9월 14일자 일기로 처리돼 있다. 영역본을 옮기면 "Today I saw Bondarchuk's Warterloo. Poor old Seryozha! It's embarrassing."(21쪽). '세료자(Seryozha)'는 '세르게이'의 애칭이다. 속되게 말하면 '맛이 갔군, 세료자!' 정도가 될 수 있을까? 문제는 본다르추크와는 달리 타르코프스키는 자신이 찍고 싶은 영화를 찍을 수 없었다는 것. 결과적으론 <요셉과 그의 형제들>도 <페스트>도 그의 필모그라피로 남지 않았다. 두번째 영화 <안드레이 루블료프>로 상당기간 마찰을 겪은 후에 그가 찍게 된 세번째 영화는 <솔라리스>였다.  

해서, "<워털루>를 보라고."란 황석영의 말은 "<워털루>를 보았다."란 타르코프스키의 말에 의해 반향되고 굴절된다. 그것은 이중적이다. 워털루 자체가 나폴레옹 자신의 영광과 굴욕을 상징하게 되듯이 말이다. 이 서재의 운명 또한 그러할 것이다...

07. 06.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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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철학자 리처드 로티가 지난 8일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지난 세기말 금세기초에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을 가졌던 철학자의 한 사람이어서 만감이 교차한다(그의 방한시 나는 강연을 직접 들어보기도 했다). 국내 여러 권의 책들이 번역소개돼 있고(그만큼 읽히는 건 아니다) 나는 그 대부분을 갖고 있다(원서로도 주요 저작들은 모두 갖고 있는 듯하다). 그 중에서 <우연성, 아이러니, 연대성>에 대한 페이퍼를 오래전부터 계획하고 있었지만 아직은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그의 죽음은 밀린 일들을 재촉한다. 애도의 뜻으로 잠시 그의 책들을 검색해보았지만 대부분 절판이다. 유감스럽다. 이미지가 뜨는 책들만 골라 며칠간 게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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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읽어보진 않았지만 저자의 <리처드 로티>와 함께 손쉬운 입문서이다. 로티가 가장 존경해마지 않는 미국철학자 존 듀이와의 비교를 통해서 프래그머티즘의 맥락을 짚어주는 책일 듯. 로티는 자신을 네오프래그머티스트라고 불렀다.
철학 그리고 자연의 거울
리처드 로티 / 까치 / 1998년 8월
18,000원 → 16,200원(10%할인) / 마일리지 9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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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리처드 로티의 출세작이자 문제작. 나는 따로 리뷰를 써두었다. 어색한 국역본의 제목은 못마땅하다.
로티 철학과 자연의 거울
김동식 지음 / 울산대학교출판부(UUP) / 2002년 10월
8,000원 → 8,000원(0%할인) / 마일리지 4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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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로티의 문제작 <철학과 자연의 거울>에 대한 로티 전공자의 해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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