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에 소개되었어야 하는 전시회 소개와 그 리뷰(http://www.culturenews.net/read.asp?article_num=8036)를 컬처뉴스에서 옮겨놓는다. 리뷰 자체가 며칠 전에 올라온 것인데, 이 리뷰를 읽고 알게 된 것이지만 <영국인 사진가의 눈으로 본 한국> 전시회는 아직 계속되고 있고 그 사진집은 지난 5월에 출간됐다. 타이틀 대로 '다시 배우는' 한국전쟁인 만큼 이 정도 '뒷북'이 대수이겠는가. 기사에서 저자주는 생략했다.

컬처뉴스(07. 07. 03) 다시 배우는 한국전쟁

《영국인 사진가의 눈으로 본 한국-1953, 그리고 삶은 계속 된다》(2007. 5. 18. ~ 2007. 8. 18, 서울대학교박물관 2층 특별전시실)는 한국전쟁 중 유엔군으로 참전했던 두 영국인 장교 안소니 영거(Anthony Younger)와 키스 글래니-스미스(Keith Glennie-Smith)의 개인 사진 기록들을 발굴해 소개한 전시이다. 전시와 함께 사진집『영국인 사진가의 눈으로 본 한국-1953, 그리고 삶은 계속 된다』(서울대학교 엮음, 눈빛, 2007) 가 발간됐다.

전방위적 한국전쟁 기록 수집하기

『영국인 사진가의 눈으로 본 한국-1953, 그리고 삶은 계속 된다』는『지울 수 없는 이미지』시리즈(박도 엮음, 눈빛)가* 보여주는 전쟁에 대한 기록의 규모 면에서나, 기록사진으로써 구성과 형식의 완성도에 비교할 수는 없다. 물론 상대적 평가의 측면에서 그렇다.『지울 수 없는 이미지』의 기록 사진들 역시 정확한 지명이나 가해자와 피해자의 정체가 모호한 부분들이 많기 때문이다. 또『지울 수 없는 이미지』가 보여주는 한국전쟁에 대한 기록 사진들은, 미국의 시각과 필요에 의한 것들이란 점을 감안하고 봐야하며, 이것이 한국전쟁의 온전한 총체상을 보여주고 있다고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지울 수 없는 이미지 1․2․3』를 보면, 미국의 보유하고 있는 한국전쟁 관련 기록의 일부인데도, 미국의 기록, 수집, 보관에 대한 인식과 능력의 우수함과 선진성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그 셋째 권은 지난달에 출간됐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의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가 주체가 된 기록 문화에서도 단절을 겪을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었다. 그런 점을 보완하기에 우리와 관련한 타인들의 기록을 열심히 찾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특정 집단과 특정 국가의 시선은 그 자체만으로 제3자의 시선이 있지만, 그 집단과 국가의 이해관계에 편향되는 한계 역시 따른다. 때문에 다각적으로 세계 속의 시각들을 모아갈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이번 전시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더불어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들은 국가 차원에서 한국전쟁에 대해 어떻게 얼마만큼 기록하고 있는지 알고 싶어진다. 이런 자료들을 비교해 본다면 국가라는 집단의 이해관계에 따라 한국전쟁이 얼마나 다르게 보일 수 있는지, 그 안에서 한국전쟁에 대한 이해의 접합점은 무엇인지에 좀 더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대중이 관련 사진 자료들을 중심으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책으로『그들이 본 한국 전쟁』시리즈(2005, 눈빛)가 있다. 그 중『그들이 본 한국 전쟁 1』은 1959년 중국 해방군화보사에서 참전기념 화보집 형식으로 출간된 것을 재출간한 것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중공군의 실체와 한국전쟁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물론 이것 역시 중국 공산당의 목적과 그들의 시선이라는 점을 감안하고 봐야 할 것이다.『그들이 본 한국 전쟁 2』는 미 해외참전용사협회에서 참전 기념호로 출간된 것을 재출간 한 것이고,『그들이 본 한국 전쟁 3』은 미군 사진병과 군속 사진가가 찍은 전쟁의 기록들을 모은 것이다.

이들 사진집에는 사진 자료 이외에도 국제관계, 한국현대사, 정치 등 관련 분야 전문가의 한국전쟁에 대한 글들(『지울 수 없는 이미지』시리즈)과 유엔군 총사령관 맥아더 장군의 보고서(『그들이 본 한국 전쟁 2』), 맥아더 장군의 뒤를 이어 유엔군 총사령관으로 재임했던 리지웨이와 클라크 장군의 보고서(『그들이 본 한국 전쟁 3』)는 물론, 미국에서 수집한 북한 측의 삐라와 포스터와 서류는 물론 중공군․북한군 포로들이 가지고 있던 사진과 편지 등(『지울 수 없는 이미지3』)이 함께 실려 있어, 학교에서 충분히 배우지 못한 한국전쟁, 한국 현대사에 대한 이해를 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읽어볼만한 가치가 크다.  

 

 

 

 

 

 

 

 

 

전체가 간과한 기억을 되짚는 특별한 통로

다시 이번 전시로 돌아와서, 영거와 스미스는 비교적 전문적인 사진 촬영 기술 보유하고 있었지만, 그들 사진의 완성도 자체는 높이 평가할만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영거와 스미스의 사진 기록물들은 사진의 예술성이나 한 컷의 사진이 갖는 구성적 완결성 면에서가 아닌, 기록의 희소성으로부터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이들의 한국전쟁과 전쟁 직후의 사진 기록들은, 종군 사진 기자들의 취재나 일종의 첩보 활동에 의한 그것들과는 다른 성격과 분위기를 전해준다. 한국의 생활상을 담은 외국인의 호기심 어린 시선, 부대 안팎에서 참전 중 군인의 인간적이고 감성적인 접근을 느낄 수 있다. 그건 그들이 참전 군인이기는 했지만, 전투 외의 여가 시간에 개인 취미 생활의 측면에서 사진 기록이었기 때문이다. 전쟁 중 격전 현장과 전투 상황에 대한 기록이 아니라, 휴식과 휴가 중 전투 이외의 시간과 공간 그리고 휴전 직후의 상황에 대한 여유로운 기록들이다.

그 전쟁중의 여유로운 풍경은 그들이 1950, 51년의 긴박한 상황보다는, 남북은 물론 관련 국가들의 이익과 관련해 전쟁을 지지부진 끌어가던 1952, 53년 사이에 참전했기 때문에 더 도드라지는 것이다. 이들의 사진 속에는 휴전이 발표된 직후 전선에서 방금 전까지 총부리를 겨누며 사투를 벌이던 유엔군과 중공군이 인사를 나누고 기념으로 화폐에 사인을 해 주고 받는 모습마저 담겨 있다.  

 

 

 

 

 

 

 

 

 

또 사진집『영국인 사진가의 눈으로 본 한국-1953, 그리고 삶은 계속 된다』안에는 영거가 쓴 한국참전 경험과 전란 속의 한국에 대한 기억들이 담겨있어, 한국전쟁에 대해 알지 못했던 부분들을 발견하게 된다. 물론 서문에서 안소니 영거는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순전히 개인의 시각과 기억의 착오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음에 대한 양해를 구하고 있다. 하지만 개인의 특성과 감성이 결합한 개인의 기억이란, 때로 전체의 기억이 간과하고 있는 세밀한 부분들을 찾아낼 수 있는 아주 특별한 통로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통로로 들어간 사람들 중에는 공적 기억에서 배제된 기억을 상기해내거나 그 감성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생겨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잃어버린 것들을 회복하고, 대화와 소통이 시작되는 것이다.

탄피로 만든 와인잔으로부터

그 중 인상적인 기억의 몇 가지는 이렇다. 전쟁 중 원화 가치가 떨어져 사실상 화폐로서 쓸모가 없게 되자 시장에서 맥주병이 돈으로 사용됐다든가 탄피(탄환이나 포탄의 껍데기)나 통신선 등 그릇이나 장바구니 등 생활용품을 만들어 썼다는 이야기다. 이런 모습들을 구체적 사진 기록들로 충분히 담겨있지는 않지만, 기억에 대한 기록과 수집 물품의 전시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 점이 이채로웠다. 전시장 중앙에는 안소니 영거가 간직하고 있던 탄피와 당시 한국의 시장에서 사서 아직도 즐겨 쓰고 있다는 탄피로 만든 와인잔이 유리관 안에 전시돼 있었다.『지울 수 없는 이미지3』에서 탄피의 다양한 재활용의 실체를 증명하는 탄피로 만든 교회의 종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이야기에서는, 놋그릇과 철재들이 모아져 전쟁물자로 조달되고 난 후, 그 전쟁의 폐품들이 일상용품들로 재활용되는 전쟁의 궁핍상과 전쟁의 생산성이 절묘하게 교차한다. 이런 교차는, 새삼 전쟁의 경험이 상품화되어 경제적 가치를 갖고 정치적 목적으로 끊임없이 재활용되고 있는 모습들 속에서도 계속해서 재현돼 오고 있다. 더구나 파괴적인 전쟁이 철학과 예술과 과학은 물론 경제 같이 많은 것을 잉태하고 발전시켜낸 생산적인 면모들조차 함축하고 있는 듯 느껴졌다. 그러나 '전쟁의 상품화와 재활용' 자체에 무턱 대고 나쁘다는 판단의 잣대를 들이대기는 어렵다. 그러고 보면 선만이 선을 악만이 악을 잉태하지 않으며, 선이 악을 잉태하기도 하고 악이 선을 잉태하기도 하는, 인간사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어느 날 한 선배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아이들을 가르칠 때 이것은 나쁜 것, 저것은 좋은 것이라 가르치지 말고, 좋게 쓰면 좋은 것 나쁘게 쓰면 나쁜 것이라 가르치자는 것이다. 가령 ‘거짓말은 나쁘다. 칼은 나쁘다’는 틀렸다는 것이다. 선배의 이야기는 섣부른 가치판단으로 아이들의 사고와 행동을 가두지 말자는 뜻에서 충분히 이해했고, 공감하고 귀담아 들었다. 하지만 모호해지는 면도 있었다. ‘전쟁은 나쁘다’, ‘살인은 나쁘다’, ‘도둑질은 나쁘다’는 틀린가 하는 것과 ‘전쟁과 도둑질과 살인도 좋게 쓰면 좋은 것이다’가 맞는 말일까 하는 것이었다. 답은, 특히 집단의 이익과 관련해서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것이다.

일종의 도둑질인 적군․적국의 첩보 활동은 나쁜 것이다. 그러나 조국․아군의 첩보 활동에 대해서는 나쁘다는 가치판단이 들어설 틈이 없으며, 우리 집단 전체를 위한 진취적이고 긍정적이며 의롭고 사명감 있는 행위로 여겨진다. 살인 역시 그렇다. 국가를 위한 경우는, 적․악에 대한 응징으로써, 우리 집단을 위한 정의로운 희생으로 추앙되고, 감히 ‘살인’이라는 부정적 의미의 낱말을 갖다 부치는 것이 적절치 않게 느껴진다. 전쟁 역시, 적의 전쟁 도발은 나쁜 것이고, 이 나쁜 것에 대해 우리를 지키기 위한 대응으로, 또는 우리 집단의 영역과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쟁은 정의로운 힘으로 추앙된다.칭기즈칸의 영토 확장이 서구에서는 폄하되고 아시아에서 미화되듯 말이다.

거짓말도 그렇다. 사람들은 선의의 거짓말이 성립할 수 있는가를 놓고 설왕설래하곤 하는데, 사람은 거짓말도 정의롭게 쓸 줄 알아야 한다. 쉬운 예로 일제로부터 독립군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오히려 나쁜 것이다. 독립군 활동을 전개하는 중에 효과적 작전 수행을 위해서는 일제를 속이는 거짓말을 아주 잘해야 하고, 못하는 것이 못난 것이다. 고작 선의의 거짓말이 아니라 훌륭하고 숭고한 거짓말조차 존재하는 것이다. 독립군의 거짓말 이야기가 너무 먼 이야기일까.

반공 교육과 ‘한국전쟁’교육의 차이

물론 겨우 탄피 와인잔의 일화에서 이야기가 너무 거창하게 흘러버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2007년은 한국전쟁 57주년을 맞은 해이다. 전쟁 발발로부터 어느새 환갑이 가까웠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그 전쟁으로부터 자유로워지지 못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전후 세대들의 집단적 경험들 중 많은 부분은 한국전쟁과 관련한 반공 교육이 차지하고 있다. 불조심 포스터를 그리고 표어를 짓 듯, 매년 6월에는 반공 포스터 그리기, 반공 표어 짓기, 반공 글짓기 대회 같은 것을 해왔고, 돼지와 늑대의 모습을 한 북한 공산당에 대항해 불쌍한 북한 주민을 구하는 똘이 장군의 활약상을 담은 만화 영화를 보며 성장했다.

그러면서 그들 중 많은 경우 비슷한 형태의 반공 의식과 관련한 꿈까지 공유하는 독특한 경험조차 있다. 고등학교 시절 한 친구가 가끔 가다 한 번씩 태권브이를 타고 북한 공산당을 무찌르는 꿈을 꾼다고 하자, 한 친구는 무장공비들이 침투했거나 전쟁 중이었거나 하는 상황에서 북한 공산군을 피해 마을과 산 속으로 숨어 다니는 꿈을 간혹 꾼다고 해서, 웃은 적이 있다. 사람들이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형태의 꿈을 꾸는 것을 보면, 사회적이고 집단적인 삶의 형태가 사람들의 의식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렇듯 대한민국 전후세대들의 집단적 삶과 의식 안에도 한국전쟁은 어김없이 어떤 양상으로든 도사리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집단적인 무의식의 공포로만 작용해서, 우리를 갇혀 있도록 내버려두어서는 안 되겠다. 북한과 미국도 그들의 이해관계를 위해 친해질 수도 있다는 사실에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 어이 없어할 만큼 어리석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그동안 우리의 역사, 정치는 물론 사회와 문화 모든 분야의 교육이 반공 교육에만 치우침으로써, 한국현대사의 가장 굵직한 사건인 한국전쟁 자체에 대한 깊이 있는 교육은 외면되어 왔다. 그렇다면 우리가 경험한 전쟁의 역사, 우리가 가진 전쟁의 상처를 우리의 미래에 좋고 이롭게 쓰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고민하고 알고 실천해 나가야 할까. 바로 그 물음에 대한 하나의 답이 한국전쟁과 관련한 기록들을 발굴하고 공유하고자 노력하는 것이 아닐까. 그것이 곧 과거에서 미래로 가는 지도를 찾아가는 한 걸음 한 걸음들이기 때문이다.(한영신/ 자유기고가)

07. 07. 0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주말 북리뷰들을 둘러보았는데 지갑을 열 만한(아니 카드를 그을 만한) 책들이 다행히 눈에 띄지 않았다. 소장도서로 분류할 책이 없지는 않지만 당장에 구매할 필요는 없는 책들이다(도서관련 지출이 많아진 즈음이라 다행스럽다). 막간에 민족주의에 대한 책 두 권의 리뷰나 챙겨둔다. 그 두 권이란, 하나는 최근 출간된 장문석의 <민족주의 길들이기>(지식의풍경, 2007)이고 다른 하나는 지난 4월에 출간된 한스 울리히 벨러의 <허구의 민족주의>(푸른역사, 2007)이다(특이하게도 조선일보의 리뷰밖에 눈에 띄지 않는다). 벨러의 책은 얇은 분량이지만 (서구)민족주의 입문서로 적절해 보인다(한국 민족주의와는 사정이 다르다는 반론들을 고려하자면. 가령 http://blog.aladin.co.kr/mramor/839351). 벨러의 책은 어제 구내서점에서 손에 들었다가 약간 파손된 상태여서 다시 내려놓았던 책이다.

경향신문(07. 07. 07) '두 얼굴’의 민족주의와 공존하기

“억눌린 것이 돌아왔다. 그 이름은 민족주의다.” 캐나다의 역사가인 마이클 이그나티에프는 1993년 이같이 선언했다. 소련이 해체되면서 집을 나갔던 ‘탕아’인 민족주의가 귀환했다. 냉전이 끝나면 세계화 물결이 지구촌을 뒤덮을 것이라는 석학들의 예언은 빗나갔다. 인종과 종교, 문화를 구심점으로 한 민족주의라는 거대한 ‘소용돌이’가 유럽을 휘감고 있다. 오늘날 서구 세계에서 ‘민족주의’는 불길한 이름이다. 민족주의는, 곳곳에서 터지고 있는 폭탄 테러와 피의 보복을 일삼는 분리주의자들의 이념이며, 끔찍한 전쟁과 국지전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그러나 과연 민족주의는 나쁜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민족주의는 두 얼굴을 갖고 있다. 저자는 “민족주의는 팽창과 정복에 따른 억압, 나치즘과 파시즘에 의한 대량학살을 가져왔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역사 속에서 민족주의는 같은 구성원이라는 민족의 정의와 삶을 일치시키려는 부단한 노력 속에서 평등과 민주주의의 폭을 넓혀왔다”고 말한다. 그는 특히 민족주의에 대한 서구의 시각을 강하게 비판한다. 영국과 프랑스는 합리적이고 시민적인 데 반해 ‘서양 속의 동양’인 독일과 이탈리아는 감정적이고 종족적이라는 이분법은 서유럽 중심주의와 오리엔탈리즘의 틀에서 이해한 민족주의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영국이나 프랑스에도 종족적 민족주의의 요소는 존재했다. 영국의 한 총리는 “신께서 어려운 일을 행하고자 하실 때는 영국인이 아니라 잉글랜드인을 부르신다”고 말해 뿌리 깊은 잉글랜드 중심주의를 드러냈다. 이와는 달리 감정적이고 후진적인 민족주의 국가로 지목된 독일의 사회민주당 정권은 프랑스의 이민정책보다 훨씬 더 유연하고 통합적인 이민정책을 펼쳤다. 이 것은 종족적이지 않은 민족주의이다.

또 민족주의는 특정 국가의 고유한 성격에서 비롯됐다기보다 국제관계의 산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근대 초기 영국에서는 에스파니아, 프랑스 등과의 대립을 통해 민족주의가 형성됐다. 한국의 민족주의가 대한제국의 위기와 식민지 경험을 거치면서 또렷해진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저자에 따르면 민족의 종족적 뿌리를 강조하는 입장에서 보면 민족주의는 오랜 역사를 지닌 자생적인 현상이다. 하지만 종족과 민족의 근원적 차이를 지적하는 입장에서 보면 민족주의는 상대적으로 짧은 역사를 지난 근대적인 현상이다. 민족에는 전 근대 시대의 종족에 담긴 문화적 논리와 근대국가 시민에 담긴 정치적 논리가 공존하는 셈이다.

저자는 근대의 시작과 함께 형성된 민족주의는 국적과 상관없이 종족적인 성격과 공민적 성격을 모두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이미 만성질환이 돼 버린 민족주의를 당장 버릴 수도 껴안을 수도 없다면 대안은 무엇일까? 저자는 “당뇨병 같은 만성질환을 달래며 살아가는 것과 같이 민족주의를 길들여 인류의 미래에 기여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결론내린다. ‘민족주의의 민주적 속성을 최대한 발화시켜 스스로 연소하게끔 하자’는 것이 이 책에 담겨있는 실천적 문제의식이다.(예진수기자)

조선일보(07. 04. 28) "민족주의는 근대 서양의 잘못된 발명품”

근대세계사의 주역은 민족과 민족국가다. 산업화와 국가간 교섭의 확대가 특징인 근대사에서 민족과 민족국가는 내적인 근대화와 외적인 국가간 경쟁의 주체였다. 그리고 민족이 역사의 기본단위라는 민족주의는 민족과 민족국가를 이끌고 가는 기관차였다. 이는 민족국가가 먼저 태동한 유럽과 북미는 물론 그들의 침략을 받으며 뒤를 따른 중남미·아시아·아프리카도 마찬가지였다.

오늘날 민족주의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부정적이다. 민족간 갈등을 유발할 뿐 아니라 세계화가 급속히 진전되는 현실과 맞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민족국가간의 극심한 충돌로 두 차례 세계대전을 겪은 유럽은 더하다. 지난 50년 유럽연합을 건설하며 초(超)민족국가를 실험해온 유럽에서 민족주의는 혐오와 기피의 대상이다. 세계대전들의 도발자였던 독일은 이런 경향이 특히 심하다.

독일의 저명한 역사학자 한스-울리히 벨러(Hans-Ulrich Wehler)가 쓴 이 책은 이런 흐름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저자는 민족이 근대의 산물이라는 점을 먼저 지적한다. 민족주의와 그 추종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고안된 질서’라는 것이다. 하지만 민족이 무(無)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종족(種族)에 기반한 통치체제의 전통에 근거하고 있다는 사실 역시 강조한다. 이는 민족을 불변의 실재로 보는 1980년대 이전의 민족주의 연구와 가변적인 것으로 보는 그 이후의 민족주의 연구를 결합한 것이다.

보불전쟁에서 승리한 직후인 1871년 1월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에서 열린 빌헬름 1세의‘독일 황제 즉위식’은 독일 민족국가 수립의 상징적인 의식이었다. 가운데 흰 옷을 입은 사람은 비스마르크다. 푸른역사 제공

민족주의는 서구문화권의 발명품이다. 근대초기 구미(歐美)가 당면한 정치적 혁명, 종교적 갈등, 위계질서의 동요 등 구조적 위기들에 대한 해법으로 민족주의가 등장했다. 민족과 민족국가를 통해 통치질서를 재확립하고 대중을 통합하려는 것이었다. 스페인에 대항해 독립전쟁을 일으킨 네덜란드에서 시작된 이런 움직임은 영국·미국·프랑스에서 모범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이들 세 나라의 근대화는 19세기 중반 이후 다른 나라들의 모방을 가져왔다.

이렇게 시작된 민족주의는 네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영국·미국·프랑스의 ‘통합민족주의’, 독일과 이탈리아의 ‘통일민족주의’, 동유럽·러시아·오스만제국의 ‘분리민족주의’, 2차 세계대전 이후 식민지에서 독립한 나라들의 ‘전이(轉移)민족주의’가 그것이다. 뒤의 세가지는 상대적인 낙후성을 극복하기 위한 방어적 근대화의 이념이었다. 이런 고통스런 근대화의 경험은 민족주의의 극단화를 낳았다. 민족과 민족국가를 상실할 수 있다는 위기감은 내·외부의 적(敵)과 이방인에 대한 적대를 가져왔다. 더구나 민족주의에 내재한 소명의식과 형제애는 타자(他者)를 배제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것은 때로 ‘원수’에 대한 폭력의 행사를 정당화했다.

독일근대사에 대한 분석은 이런 주장을 뒷받침한다. 독일에서 민족주의는 프랑스혁명의 여파로 1790년대부터 시작됐다. 그리고 19세기 중반에 이르러 프로이센의 팽창 정책으로 독일 민족국가가 탄생했다. 그러나 이때 이미 독일 민족주의는 공격성을 띠고 있었다. “프랑스를 때려 죽여라”는 선동이 지식인의 입에서 나올 정도였다. 1차 대전의 패배는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 그 결과는 히틀러라는 극단적 민족주의자의 집권이었다. 2차 대전 패전 후 독일이 민족주의의 주술로부터 풀려나서야 독일의 번영은 찾아왔다.

저자는 근대세계의 성공, 즉 경제성장·입헌-법치국가·사회복지 등을 민족국가와 연결시키는 분석을 거부한다. 그것은 우연에 불과하며, 민족국가에 부당한 명성을 가져다 주었다는 것이다. 민족주의는 내부적으로 평화로운 시민공동체와 외부적으로 민족국가들끼리 협력하는 평화로운 시스템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따라서 이제는 민족주의 개념을 걷어내고 대신 헌법국가, 법치국가, 사회복지국가라는 보편적인 토대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비(非)서구의 민족주의에 대해서는 별로 비중을 두지 않는다. 일본을 제외한 거의 모든 나라에 민족주의의 토대가 되는 종족적 전통이 없었다. 이 때문에 정치지배 시스템이 불안정하게 됐고, 그 결과 개발도상국은 근대화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안정된 민족국가는 서양에만 존재한다”는 주장에서 비서구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잘 드러난다.

그러나 한국은 종족적 전통에서 출발한 민족주의를 토대로 근대국가 건설에 성공했다. 그러면서도 독일과 같은 공격성을 보이지 않았다. 또한 이제 중국과 인도 등 다른 비서구 국가들도 한국이 걸은 길을 뒤따르고 있다. 이들의 역사적 경험까지 포괄하는 더 폭넓은 민족주의론이 필요한 시점이다. 원제 Nationalismus.(이선민 논설위원)


 
더 읽을 만한 책
민족과 민족주의에 대한 책 중에서 시기적으로 앞서고 널리 알려진 것은 프랑스 철학자 에르네스트 르낭의 ‘민족이란 무엇인가’(책세상, 신행선 옮김)이다. 보불전쟁에서 프랑스가 패전한 여파가 가라앉지 않은 1882년 ‘이성(理性)의 사도(使徒)’ 르낭이 소르본 대학에서 강연한 내용을 담은 이 책은 민족을 종족적·언어적 실체가 아니라 주관적 귀속의식을 토대로 한 정치적 실재로 파악했다. “민족의 존재는 매일매일의 국민투표”라는 유명한 구절은 이 주장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민족주의란 무엇인가’(창비, 백낙청 엮음)는 민족주의에 대한 세계 학계의 학문 연구 중 주요 성과들을 한데 담았다. 한스 콘, E H 카 등 민족주의 연구의 선구자로부터 어네스트 겔너, 앤터니 스미스, 톰 네언 등 현재의 대표적인 민족주의 연구자, 그리고 제3세계의 민족주의론까지 망라하고 있다.



민족주의에 대한 대표적인 단행본은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의 ‘1780년 이후의 민족과 민족주의’(창비, 강명세 옮김)와 인류학자 베네딕트 앤더슨의 ‘상상의 공동체’(나남출판, 윤형숙 옮김)다. 홉스봄은 민족과 민족주의가 근대의 산물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그는 프랑스대혁명에 의해 처음 등장한 민족주의를 발전단계에 따라 태동기(1780~1870), 발전기(1870~1918), 극성기(1918~1950), 쇠퇴기(1950~)의 네 시기로 구분하고 있다. 앤더슨의 책은 민족을 왕조국가가 쇠퇴하고 자본주의가 발달하는 시기에 나타나는 문화적 조형물로 본다. 그는 민족주의가 중남미의 지배층이었던 크리올(유럽 이민자의 후예)에서 기원하여 유럽과 다른 지역으로 전파됐다고 주장한다. 

07. 07. 07.

О русском национализме

P.S. 개인적으로 민족주의 일반론 이상으로 러시아 민족주의에 관심을 갖게 되는데, 러시아에서는 종교철학자 이반 일리인(1883-1954)의 <러시아 민족주의에 대하여> 같은 책이 베스트셀러로 뜬다. '이데올로기로서의 민족주의'만큼이나 고려되어야 할 것은 '종교로서의 민족주의'가 아닐까 싶다...


댓글(7)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마늘빵 2007-07-07 10:57   좋아요 0 | URL
저도 오늘 한겨레 보면서 윗 책 찜해놨어요. 두번째 책은 조선일보에만 소개된거군요. 민족주의에 관련된 몇몇 책들을 사놨었는데 아직 필을 못받아 못보고 있습니다. 아직 민족과 민족주의에 대해서는 탁석산의 <한국의 민족주의를 말한다> 외에는 살펴본게 없네요. -_-

로쟈 2007-07-07 11:25   좋아요 0 | URL
논란이 되는 주제이지만 저로서도 당장 흥미를 갖는 주제는 아닙니다.^^;

yoonta 2007-07-07 13:33   좋아요 0 | URL
rss로 로쟈님글을 바로 확인해서 보니 너무 편리하네요 ^^

비로그인 2007-07-07 14:35   좋아요 0 | URL
제국이 쓰러져간 자리에 미친 민족주의만 죽순처럼 나부껴! 제게는 가장 와닿는 말이군요. 근데 FTA적 전횡으로 치닿는 또 다른 제국의 형상 앞에 우리는 과연 어떤 평화의 제국을 꿈꿔야할런지, 꿈꿀수나 있을지 암담합니다.

로쟈 2007-07-07 22:41   좋아요 0 | URL
yoonta님/ 그게 뭔가요?^^;
쏠다님/ 꿈과 악몽은 때로 구별할 수 없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더불어 우리가 그 '제국'과 '민족주의' 바깥에 놓여 있지 않다는 인식이 우선적이어야 한다고 보고요...

드팀전 2007-07-08 12:26   좋아요 0 | URL
장벽이 무너진 자리엔 모든 것이 장벽이다...라는 시인의 말이 생각납니다.^^

yoonta 2007-07-08 13:03   좋아요 0 | URL
http://kin.naver.com/db/detail.php?d1id=1&dir_id=10801&eid=PwlZ4j4c2aKivflHiSlZl/iQyeHxRu5g&qb=cnNz

이글 읽어보시면 될듯합니다. 저는 설치형으로 했는데 컴퓨터 부팅하자마자 바로 로쟈님글 업데이트를 확인할수있네요.
 

도서출판 앨피의 '루틀리지 크리티컬 씽커즈' 시리즈로 세 명의 여성 철학자가 한꺼번에 출간됐다. 줄리아 크리스테바, 주디스 버틀러, 시몬 드 보부아르가 그 세 명의 여성이고 이 시리즈를 긁어모으는 나로선 구색을 맞추기 위해 또 모두 주문을 했다(버틀러는 배송일이 달라서 조금 미뤄두었다). 

 

그래서 어제 받아본 책이 노엘 맥아피의 <경계에 선 줄리아 크리스테바>와 <시몬 드 보부아르 익숙한 타자>이다. 맥아피의 원서를 구할 수 있어서 <크리스테바>를 먼저 손에 들었고 서론격인 '왜 크리스테바인가?"를 읽었다. 예전에 '누가 크리스테바를 읽었는가?'(http://blog.aladin.co.kr/mramor/787972)란 페이퍼를 쓰기도 했지만(관심이 있으신 분은 먼저 읽어보시길 바란다), 나름대로는 크리스테바 컬렉션을 갖추고 있을 만큼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지라 바쁜 일들에도 불구하고 눈길이 가는 걸 말릴 수가 없다. 그래서 내건 나의 타협안은 일단 이 서론만 읽어두는 것이다.

"줄리아 크리스테바(1941- )는 우리시대에 가장 주목할 만한 사상가로 꼽힌다. 크리스테바는 '말하는 존재'가 구술문학과 기록문학, 정치와 국가적 정체성, 섹슈얼리티, 문화와 자연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별자리가 된다고 보는 극히 드믄 철학자이다."(19쪽)

'가장 주목할 만한'은 'most original'의 번역이다. 그리고 '말하는 존재'는 'speaking being'을 가리키는데, 원문에는 강조표시가 돼 있지 않지만 크리스테바의 키워드이다. 그녀의 관심대상은 '말하는 존재(speaking being)', '말하는 주체(speaking subject)'로서의 인간이기 때문이다. '말하는 존재'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크리스테바는 문학과 정치, 섹슈얼리티, 정신분석 등 종횡무진이다. '말하는 존재'는 그 모든 것에 두루 걸치는 '불가사의한 접면(strange fold)'이어서이다.

"크리스테바의 통찰 속에서는 경계의 어느 쪽도 서로 영향을 주고 받지 않을 수 없다. 살아간다는 것은 변화의 상태에 있는 것이고, 다양한 힘들의 포위 아래 놓인다는 것이다. 그녀가 하는 대부분의 작업이 정통 정신분석학자가 치료하는 '경계성' 환자들에게 관심을 갖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러한 경계성은 불가리아 출신의 이민자/망명자인 크리스테바의 정체성이기도 하다(이 때문에 국역본에는 '경계에 선 크리스테바'란 타이틀이 붙여졌을 터이다). 그녀는 그러한 경계성을 일반화하며 그리하여 "크리스테바의 작업은 소위 주체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늘 빈약한 성취에 불과한지, 그것이 왜 결코 완결될 수 없는 역동적 과정인지를 보여준다."(20쪽)

이때 '주체성(subjectivity)'은 '자아(self)'와 구별되어야 한다. "'자아'는 자신의 의도를 완벽하게 지각하고 세계 내의 자율적인 존재로서 완전하게 행동할 수 있으며, 자신의 이성과 지적 능력의 인도를 받는 존재를 지칭할 때 사용돼 온 용어이다." 흔히 '내가 말야'라고 말할 때의 그 '나'를 가리킨다. "관습적인 관점에서 '자아'는 언어를 생각의 전달 도구로 사용한다. 자아는 자기가 의미하는 바를 말하고, 자기가 말하는 바를 의도한다." 곧 자아는 주인으로서의 '나'이다.

이러한 '자아'의 장소를 '주체'로 표시하는 것은 관점의 일대전환을 요구한다. "주체들은 자기를 형성하는 모든 현상을 완벽하게 지각하지 못한다. 심지어 그들이 결코 접근할 수 없는 그들 자신의 것, 즉 '무의식'이라 이름 붙여진 차원이 존재하기까지 한다." 즉, '나도 나를 모르겠어'라고 말할 때의 목적어 '나'가 주체이다. 그 무의식으로서의 '나'가 표시하는 것은 "의식에 나타나지 않는 욕망과 긴장, 에너지, 억압 등의 영역이다. 그러므로 주체성의 경험은 '자아'로서 인식되는 경험이 아니라, 주체 자신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방식으로 만들어진 정체성을 소유하는 경험이다."

"크리스테바는 이 같은 주체성 개념을 출발점으로 삼는 철학적 전통의 한 갈래를 차지한다." 그리고 "1960년대와 70년대에 크리스테바는 철학계와 문학계에 엄청난 충격을 가져온 '탈구조주의' 운동을 예고한 선도적 사상가들 중 한 명이다."(21쪽) 이것은 그녀 자신에 대한 평가와도 일치한다. "나는 탈구조주의의 한 유형을 발전시키는 데 힘을 보탠 사람들 중 한 명이다."(29쪽) 그 중에서도 크리스테바를 도드라지게 하는 점은, 곧 '왜 크리스테바인가?'란 물음에 답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그녀가 언어와 문화 사이의 접면에서 나타나는 '말하는 존재'를 언어가 어떻게 생산하는지를 이해하는 매우 강력한 도구로 제안했다는 점"이다.

해서, "누군가 정신분석 이론과 종교학, 아방가르드 문학과 철학에 이르기까지 널리 펼쳐져 있는 분야의 통찰을 통합하고자 한다면, 크리스테바야말로 우리 시대의 가장 독창적이고 영향력 있는 사상가로 꼽힐 것이다."(23쪽)

 

 

 

 

이러하 평가에 이어지는 것은 크리스테바의 간략한 전기이다. 알려진 대로 그녀는 1941년 불가리아에서 태어났다. 의대를 나오고서 교회의 회계사로 일한 그녀의 아버지는 공산당과 우호적인 관계에 있지 않았고 따라서 어린 줄리아는 공산당원이 될 수 없었다. 그래서 좋은 성적에도 불구하고 도미니크회 수녀들이 운영하는 학교를 다니게 된다(그러니까 크리스테바는 수녀들로부터 불어를 마스터하게 된다). 이때 (놀라운 일이지만) 그녀는 러시아 형식주의에 대해 알게 된다. 특히 "그녀는 당시 서구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20세기를 대표하는 탁월한 사회/문학 철학자인 동유럽의 미하일 바흐친의 작업도 접했다."(러시아 사상가 바흐친을 '동유럽의 사상가'라고 한 것은 특이하다. 다른 뉘앙스가 있는 것인가?) 

대학에서 프랑스 누보로망에 대한 박사학위논문을 쓰던 중에 크리스테바는 프랑스 정부초청 장학제도가 있다는 걸 알게 되고 마침 공산주의자 학장이 모스크바에 가 있던 1965년 겨울 그녀의 운명이 바뀌게 된다. 지도교수가 그녀를 프랑스 대사관으로 데려다 주고 거기서 그녀는 장학금 수혜를 위한 자격시험에 합격한다. 그리고는 막바로 불가리아를 떠나 파리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장학금은 1월부터 받게 돼 있었지만 학장이 모스크바에서 돌아올 경우 유학길을 가로막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녀는 단돈 5달러만 들고 크리스마스 이브에 파리에 도착한다(그리고 가방에는 달랑 바흐친의 책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이것이 소위 크리스테바의 전설이다. 그야말로 '사무라이' 아닌가?

무사들

다행히도 그녀는 우연히 불가리아인 저널리스트를 만나 장학금이 올 때까지 같이 지내게 된다. 그리곤 생각지도 않았던 새로운 지식인들의 세대에 합류하게 된다. 파리 고등실업연구원(파리 고등 사회과학연구원의 전신인데, Pratique를 '실업'이라고 옮기나?)에서 뤼시앵 골드만(1913-1970)과 만나게 되는바 "루마니아 출신의 망명 동료이자 문학이론가인 뤼시앵 골드만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이 크리스테바를 도와주었다."

크리스테바에 따르면, '그것은 조국에서 추방당한 사람들만이 줄 수 있는 그런 정류의 도움이었다."(26쪽) 이런 자전적인 내용은 크리스테바의 소설 <사무라이들>에서도 자세히 그려진다(한때 국내에도 많이 소개되었던 골드만의 책은 현재 한권도 구할 수 없는 듯하다). 골드만은 소설의 기원에 관한 그녀의 학위논문을 지도하게 되며 또한 그녀를 롤랑 바르트(1915-1980)의 세미나에 소개한다. 그녀는 롤랑 바르트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롤랑 바르트의 가르침은, 내가 환원적이고 호소력 있다고 느낀 형식주의를 이해하는 그 능력 때문에 나를 매혹시켰다."

이 대목은 오역이다. 원문은 "the teaching of Roland Barthes attracted me because of its capacity to make formalism, which I had found reductive, extreamly appealing."(5쪽)이다. "내가 형식주의를 호소력 있다고 느낀" 것이 아니라 바르트가 형식주의를 '대단히 매력적인(extreamly appealing)' 것으로 만들었다는 것. 다시 옮기면, "롤랑 바르트의 강의는 내가 환원적이라고 생각했던 형식주의를 대단히 매력적인 것으로 보이게 만드는 그 능력 때문에 나를 매혹시켰다." 1960년대 중반의 바르트라면 구조주의자로서 전성기를 구가할 때이다.

이어서 크리스테바는 파리 지성계의 모든 인물들과 만나게 된다. 레비 스트로스부터 에밀 방브니스트, 자크 라캉, 미셀 푸코 등등에 이르기까지. 당대의 구조주의자들과 조우하게 되는 것이다. 거기서 그녀는 "현재 서구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어떤 사람, 즉 미하일 바흐친과 상호텍스트성, 대화, 소설의 카니발화 등과 같은 개념들을 소개"하며 이것이 곧바로 그녀에게 명성을 가져다준다(그녀의 이 소논문에 대해서는 '누가 크리스테바를 읽었는가?'에서 다루었다). <세미오티케>에서 그녀는 이렇게 기술했다.

 

"'학자'이자 작가이기도 한 바흐친은 정태적인 텍스트 분석을 문학적 구조가 단지 '존재하는' 모델이 아닌, 또 다른 구조와 관련하여 생성되는 모델로 대체한 최초의 사람이다. 구조주의에 역동적인 차원을 부여한 것은 '초점'(고정된 의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텍스트 표층들의 교차', 말하자면 저자와 수신자(또는 인물) 그리고 동시대이거나 이전의 문화적 맥락의 여러 저술들 사이의 대화를 의미하는 '문학적 언어'라는 개념이다."(27쪽)

영역본 <언어 속의 욕망(Desire in Language)>(1980)으로부터 인용된 이 대목은 <세미오티케>(동문선, 2005)와 <바흐친과 문학이론>(문학과지성사, 1995)에 각각 우리말로 번역돼 있다. 한데, <세미오티케>를 당장 갖고 있지 않아서(연구실 공동서가에 꽂아놓았다가 잠정 분실했다) 어떻게 번역돼 있는지 확인할 수 없지만 'point'를 '초점'이라고 한 것은 오역이다. 그건 말 그대로 '점'이란 뜻이다. 바흐친은 '문학적 언어(literary word)'를 고정된 의미를 갖는 '점'이 아니라 복수적 텍스트의 '교차면'으로 본다는 것이다('이 '문학적 언어'는 아마도 러시아어 'slovo'의 번역어이며, 우리말로는 '말', '담론' 등으로도 번역돼 있다).

여하튼 크리스테바는 바흐친을 서구 이론/지성계에 최초로 소개한 공로가 있다. 그리고 "바흐친에 대한 그녀의 설명과 확장이 널리 인정받게 되면서, 크리스테바는 바로 미국에서 강의할 수 있는 일자리를 제안받는다."(28쪽) 이 대목은 처음 알게 된 것인데, 그녀는 그 제안을 당시 미국의 베트남전을 이유로 거절한다. 그리고 당시 프랑스의 전위적 문학그룹이었던 <텔켈>지 편집위원으로 가세하게 되며 그 멤버 중의 하나였던 필립 솔레르(솔레르스; 1936- )와 1975년에 결혼한다(작가이기도 한 솔레르스의 작품들은 국내에 몇 권 소개돼 있다. <여자들>과 <모차르트 평전>을 포함하여). 두 사람 사이에는 아들이 하나 있다. 아래 사진은 만리장성에서의 솔레르스와 크리스테바.  

어쨌든 1960년대 중반의 파리는 지적으로 생동감과 활력이 넘쳤고 크리스테바에게도 '황홀한 시기'였다. 그녀는 그 시대를 호흡하며 성장하며 당시의 유행사조이던 구조주의를 탈구조주의로 변형시킨다. "탈구조주의는 그것이 역사, 시간, 과정, 변화, 사건 등을 끌어들였다는 점에서 새로웠다."(29쪽)고 지적되는데, 단순하게 말하면 구조주의에 시간성/역사성을 부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크리스테바와 다른 탈구조주의자들은 앞서 소개한 '자아' 개념을 버리고 역사, 언어, 기타 결정력의 변화에 종속된 '말하는 존재' 개념을 제안한다."  

그러는 가운데 그녀가 내놓은 '가장 중요한 저서'(이면서 가장 어려운 저서)는 <시적 언어의 혁명>(동문선, 2000)이다. 말라르메와 로트레아몽 등과 같은 프랑스 아방가르드 시인들을 다룬 그녀의 국가박사 학위논문이기도 한데, 영역본과 국역본 이 방대한 저작의 모두 부분 번역이다. 이 책에서 크리스테바는 언어적 혁명이 갖는 정치적 함의를 모색한다.

1968년 5월 혁명의 좌절 이후 텔켈 그룹과 크리스테바는 중국의 마오쩌둥에 경도된다. 소비에트식 사회주의에 환멸을 느낀 프랑스의 좌파 지식인들이 대거 마오이스트가 된 것인데, 이들은 1974년 직접 3주간 중국을 여행한다. 그리고는 '또 다른 소비에트식 사회주의'를 발견하고서 당혹감과 환멸을 느낀다. "크리스테바 일행은 중국에서 자신들이 추구하는 천상의 사회주의 대신에 크리스테바가 불가리에서 이미 겪은 바 있는 소련식 공산주의의 종말 징후를 발견했다. 중국 여행은 크리스테바가 나중에 말하는 대로 '정치와의 결별'을 예정한다."(32쪽) '불가리'는 '불가리아'의 오타이다.

이 중국 여행의 결과로 나온 것이 "그녀가 나중에 스스로 '서투른 책'이라고 일컬은 <그림자 연극(Des Chinoises)>(1974)"이다. 한데, 이 책은 영어로는 <중국 여성에 대하여(About Chinese Women)>라고 부분 번역된 책이고 또 그런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왜 '그림자 연극'이라고 옮겨졌는지 모르겠다(그런 중의성을 갖는 것인가?).

아무튼 맥아피의 책을 읽으면서 내가 얻은 가장 큰 소득은 이 중국이 크리스테바에게 갖는 의미를 깨우친 것이다. 저자는 이렇게 적었다: "중국은 크리스테바에게 그녀가 마주칠 필요가 있었던 내부 영토의 섬광을 제공한다. 파리로 돌아온 뒤 그녀는 '우리가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유일한 대륙'을 독학하는 길로 정신분석학을 연구하기 시작한다."(32쪽) 

 

 

 

 

"1960년대와 70년대 저술이 기호학과 언어에 초점을 맞췄다면, 1980년대의 텍스트들은 말하는 주체의 정신분석학적 경험을 출발점으로 삼았다"는 게 크리스테바에 대한 상식적인 이해인데, 그 연결고리 역할을 해준 것이 바로 중국(=무의식)이고 중국 여행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1990년대 들어 크리스테바의 저술은 두 가지의 새로운 전환"을 선보이는데, 일련의 소설들이 그 하나이고 정치학 에세이들이 다른 하나이다. 전자에 해당하는 소설들로는 <사무라이>(1992)와 <노인과 늑대들>(1994), <포세시옹, 소유라는 악마>(1996) 등이 있고, 이 중 두 권은 우리말로도 번역돼 있다. 다만 아직 <국가주의 없는 국가> 등 후자에 속하는 책들이 소개되지 않은 것이 아쉽다.

 

 

 

 

크리스테바는 현재 파리 7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면서 정신분석의로도 활동하고 있고, 콜롬비아(컬럼비아)대학과 토론토대학의 객원교수이기도 하다. 여전히 많은 책들을 내놓고 있는데, 가장 최근의 책은 게르만계(독일계) 미국인 이론가(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 정신분석학자 멜라니 클라인, 프랑스 작가 콜레트의 저술과 생애를 다룬 삼부작이다.

정신병 모친살해 그리고 창조성

이 중 클라인을 다룬 책의 국역본 <정신병, 모친살해, 그리고 창조성: 멜라니 클라인>(아난케, 2006)은 근간 예정이다, 가 아니라 작년에 출간됐다. 알라딘에 없을 뿐이다...

07. 07. 07. 

P.S. 크리스테바의 저작을 소개하고 있는 '크리스테바의 모든 것'이란 장에서 내가 입문서로 가장 추천하고 싶은 책은 로스 구베르만이 편집한 <줄리아 크리스테바 인터뷰>(1996)이다(언어학에 대한 동영상 인터뷰 http://www.youtube.com/watch?v=IXLUsoEDYPw도 한번 구경해보시길. 영어 자막이 붙어 있다).

"20년에 걸쳐 이루어진 24개의 상이한 인터뷰들로 구성된 책"으로서 "크리스테바의 사유를 엿볼 수 있는 훌륭한 입문서이다. 대화체 어조와 문답 구성 덕분에 그녀의 저술 이면에 있는 사유를 쉽고 사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더욱이 책의 중심부에는 크리스테바의 유년기부터 1960년대 파리 체류기, 그리고 유럽의 중견 문명 비평가이자 분석가로서 활동하는 원숙기에 이르기까지 거의 20여 장의 크리스테바 사진이 실린 포토 에세이가 실려 있다."  

그리고 맥아피의 책보다 조금 늦게 나온 책으로 추천할 만한 것은 역시나 크리스테바 전문가인 존 레흐트와 마리아 마르가로니 공저의 <줄리아 크리스테바: 살아있는 이론>(2004). 'Live Theory' 시리즈의 한권이며 존 레흐트는 <한권으로 보는 현대사상가 50>(현실문화연구)의 저자이다...

P.S.2. 한편 오래전에 정리해놓은 데리다와 크리스테바의 대담('기호학과 그라마톨로지')은 http://blog.aladin.co.kr/mramor/429970 http://blog.aladin.co.kr/mramor/429972 http://blog.aladin.co.kr/mramor/429973 참조.


P.S.3. 크리스테바의 신작소설도 오랜만에 번역돼 나왔다. <비잔틴 살인사건>(소담, 2007). "크리스테바의 장편소설 ‘비잔틴 살인사건’은 팩션과 판타지가 결합된 작품이다. 작가의 상상력이 빚어낸 가상의 도시 산타바르바라를 무대로 전개되는 역사추리소설인 것이다. 마피아와 사이비종교단체가 지배하는 도시 산타바르바라는 현대 서구 문명의 어두운 이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 소설은 다양한 음성이 중첩된 형이상학적 탐정소설이란 평가를 받았다. 21세기 현대 문명의 잔혹한 이면을 비판하면서 느닷없이 십자군 전쟁이라는 과거의 역사를 대입시킨다. 제1차 십자군 전쟁의 비밀을 연구하는 세바스찬 교수가 핵심적 인물로 등장한다. 1000년 전 비잔틴제국의 역사도 되돌아보면서 작가는 자신의 모국인 불가리아의 역사를 탐구하면서 자신의 정체성 문제를 다룸으로써 이 소설을 통해 자전적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한다."(조선일보)라는 소개기사를 참조해볼 수 있겠다. 크리스테바 자신은 일종의 '안티-다빈치코드'라고 불렀다 한다.

07. 07. 22.


댓글(3) 먼댓글(0) 좋아요(5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7-07-07 23: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7-07-07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알라딘에서 검색이 안되기에 예고만 되고 아직 안 나온 책으로 알았습니다.^^

빌보 2008-01-22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낮의 우울 이란 책을 읽고 있는 중인데
그 책을 보고 크리스테바의 <검은 태양>을 읽어보려고 검색하던 중 님의 글을 보게 됐네요.
크리스테바는 처음 접하는 작가인데 의외로 번역된 책들이 많은 걸 보고 놀랐습니다..ㅎㅎ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뉴스메이커에서 시인-문학평론가 장석주의 독서일기를 옮겨놓는다. 강영안 교수의 <타인의 얼굴 - 레비나스의 철학>(문학과지성사, 2005)을 다루고 있는데, 이 책과 레비나스에 대해서는 작년에 나도 여러 차례 페이퍼를 쓴 바 있다(가령 http://blog.aladin.co.kr/mramor/816934). 다음 학기에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강의할 예정인데, 다시금 레비나스와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해서 생각도 해볼 겸 자료로 스크랩해놓는다.

뉴스메이커 732호(07. 07. 10) [독서일기](20) 타인의 얼굴-레비나스의 철학

나는 곧 너다. 웬 뚱딴지 같은 소리냐구? 어느 밤, 유대인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를 읽다가 노트 한쪽 여백에 끄적인 글귀다. 나의 레비나스 이해는 강영안과 서동욱의 이해에서 더 멀리 나아가지 않는다. 그들을 통해 레비나스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타자의 존재론적 탐구를 평생 시의 주제로 삼았던 한용운도 “나는 곧 당신이어요”(한용운, ‘당신이 아니더면’)라고 썼다. 다른 맥락이지만 시인 랭보도 “나는 타자다”라고 쓴 바 있다. 스피노자는 “자기 자신 안에 존재하며 자신을 통해 파악되는 것”을 나의 실체라고 이해했는데, 근대 독일의 관념철학은 이걸 주체로 바꾸었다. 나는 항상적으로 나 자신인 바, 신체를 가진 또 다른 존재로 환원할 수 없는 존재다. 홀로 나일 수 없고, 타자와 맺는 관계의 맥락 속에서 나로 태어난다. 수없이 많은 너 속에서 발견되며, 거꾸로 말하자면 너는 타자의 자리에 놓인 나다. 그렇다고 나와 너는 존재의 위상학에서 동일 지점에 있는 것은 아니다. 나와 너는 떨어져 있다. 나는 너의 부재 속에서 비로소 나다. 나는 너에게로 향함으로써 이타적 실존을 산다. “당신과 나의 거리가 멀면 사랑의 양이 많고, 거리가 가까우면 사랑의 양이 적을 것입니다.”(한용운, ‘사랑의 측량’)

사랑은 나의 자기됨과 내 존재의 확장을 포기함으로써, 더 적극적으로는 나를 너에게 줌으로써 살아지는 이타적 실존이다. 너와 사랑에 빠진 나는 자발적으로 너에게 갇힌 자요, 너의 볼모가 된 자다. 사랑에 빠진 나는 사랑을 가능케 한 호르몬이 작동하는 동안이지만 너를 위해 산다. 이는 “존재 안에서는 결손이고 시듦이며 어리석음이지만 존재를 넘어서는 탁월이며 높음”이다. 나는 너를 환대해야 할 뿐만 아니라 너에 대해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 레비나스는 “나의 자발성을 타인의 현존으로 문제삼는 일을 우리는 윤리라 부른다”라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 타자는 나에게 법이며 명령이다.

레비나스의 중요 저작들의 번역본이 나와 있지만, 그의 철학은 대부분 일반 독자에게는 생소할 게 틀림없다. 레비나스는 1906년 1월 12일 리투아니아의 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1995년 12월 25일 새벽에 프랑스 파리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는 어린시절부터 히브리어 성경을 읽고, 집안에서는 러시아 말을 사용하고 러시아 문학을 읽으며 자라났다. 스트라스부르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한 레비나스는 후설과 하이데거의 현상학에 정통한 현상학자였다. 아울러 당대 최고의 탈무드 선생이자 유대교에 정통한 학자이고 프랑스 철학의 큰 흐름 속에서 사유한 철학자다. 레비나스는 반유대주의에서 비롯한 폭력과 인종주의가 널리 퍼진 서유럽에서 학대받는 유대인으로 산 경험과, 경험을 넘어서서 타자 및 그 타자에 대한 책임을 보여주는 현상학의 맥락에서 자아와 타자 문제를 중심 주제로 삼는 사유를 발전시켰다. 마르틴 부버의 “나와 너”의 철학에 이어지는 주제다.

‘타인의 얼굴’은 레비나스의 나와 자기성, 타자와 고통을 통한 주체와 윤리학, 신과 종교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친절하게 안내한다. 이를테면 “타인의 얼굴은 나의 자발적인 존재 확립과 무한한 자기 보존의 욕구에 도덕적 한계를 설정한다. 타인은 거주와 노동을 통해 이 세계에서 나와 내 가족의 안전을 추구하는 나의 이기심을 꾸짖고 윤리적 존재로서, 타인을 영접하고 환대하는 윤리적 주체로서 나 자신을 세우도록 요구한다”와 같은 구절은 매우 압축적으로 레비나스 철학의 핵심을 드러낸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우리들 각자는 각 사람에 대해서 각 사람에 앞서 잘못이 있고 나는 다른 사람보다 잘못이 더 많다”고 썼다. 주체성이란 타자와의 윤리적인 관계를 통해서 정립되는 그 무엇이다. 나는 타자를 위한 존재, 타자의 필요에 대해 적극적으로 책임지는 존재다. 레비나스는 도스트예프스키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우리는 모든 사람에 앞서, 모든 사람에게 책임이 있고 나는 다른 모든 사람보다 책임이 더 많다”. 레비나스가 주체의 철학이라는 토대 위에 세운 타자의 윤리학은 나를 “타인의 고통을 짊어진, 고통받는 의인”, 즉 대속자 그리스도에까지 밀고 올라간다.

타자의 맞은편에 서 있는 나, 주체라고 부르는 이 존재는 무엇인가?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명제를 내세웠다. 내가 생각하는 한, 그 생각함이 곧 나의 존재함의 증거다. 나는 사유하는 실체이고, 사유하는 실체를 대상화하며 자기 앞에 세우는 존재가 바로 나다. 내가 생각함을 생각하는 존재라는 데카르트의 존재론을 니체는 부정한다. 니체에 따르자면 “주체는 주어진 것이 아니다. 만들어져 첨가된 것, 그 뒤에 숨겨진 것”이며, 그 본질은 “허구”다. 니체는 “‘정신’도, 이성도, 사고도, 의식도, 영혼도, 의지도, 진리도 없다. 이들은 모두 쓸모없는 허구다”라고 말한다. 니체의 철학은 과격한 주체 부정의 철학이다.

나를 나라고 부를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나의 자기됨은 먹고 마시고 즐기는 가운데 나타난다. 나의 먹고 마시고 잠자는 것은 타자가 대신할 수 없는 행위다. 레비나스는 이것을 향유라고 한다. 향유는 나와 세계가 관계하는 방식, 신체를 매개로 한 생물적 교섭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우리는 무엇보다 혼자 무언가를 먹고 마실 때, 물과 공기와 햇볕 등을 즐기고 있을 때 무리에서 저를 분리해서 오롯한 ‘자기’로 돌아간다. 그러니까 향유는 개체에 작용하는 개별화의 원리다. 나는 향유를 통해서 자기로 거듭난다. 즉 “즐김과 누림”은 우리가 하나의 개체로서 자기성을 확보하는 중요한 기반이다. 레비나스는 잠, 불면, 음식, 노동, 거주, 타자, 여자, 아이와 같은 일상성과 밀접한 것들이 우리 존재를 규정하는 요소들이라고 강조한 철학자다.

타자란 누구인가? 타자는 낯선 이다. 그 낯섦은 차라리 타자의 본질이다. 낯선 것은 끔찍하다. 사르트르는 “타자는 지옥이다”라고 했다. 타자는 언제나 내 앞에, 지금 알 수 없으며, 앞으로도 알 수 없는, “내가 완전히 파악할 수 없는 무한성”으로 서 있다. 타자는 “나에 대해서 완전한 초월과 외재성”을 가진 존재다. 타자는 내 앞에서 감추어진 그 무엇인데, 그것을 찾는 몸짓이 에로스다. 애무는 에로스의 현실태다. 애무는 손에 잡히지 않고 계속 미끄러지는 것을 만지는 행위다. 감추어진 것이란 무엇인가? 아이가 출산함으로써 그 실체가 드러난다.

아이는 “타자가 된 나”다. 아이의 출산으로 나는 비로소 나에게로의 영원한 회귀 운동에서 벗어나고, 타자와 타자의 미래 속에서 자신의 한계를 넘어선다. 타자란 모두 잠재적 적이며, 그렇기 때문에 타자를 적대하고 죽이는 일을 정당화하고, 결국은 전쟁, 폭력, 인종청소와 같은 20세기의 비극은 나의 존재를 앞세우고 나의 존재 유지를 최고의 가치로 내세운 데서 나온 것이다. 타자를 거부하고 배제하는 것은 근본 악이다.

서양철학은 히틀러와 국가사회주의의 등장이라는 근본 악을 막지 못했다. 세 형제의 맏이인 레비나스는 두 동생이 나치에 의해 희생되는 아픔을 겪었다. 그가 서양 철학을 비판하면서 타자에 대해 다르게 사유함을 하나의 철학 체계로 완성해낸 것은 이 근본 악을 넘어서기 위해서였다. 레비나스에 따르면 타자를 받아들이고 환대하며 타자에게 선을 행함으로써만 이 근본 악을 넘어설 수 있다.(시인·문학평론가 장석주)

07. 07. 06.

P.S. 옮겨놓고 나서 읽어보니 별로 새로울 것도 없는 리뷰이다. 게다가 '나는 곧 너다'? 이보다 反레비나스적인 구호도 없는데, 아무래도 필자가 자아도취적인 읽기/일기를 적은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비공개로 돌렸다가 들인 품이 아까워 열어놓는다. 겸사겸사 이남인 교수의 서평도 자료삼아 옮겨놓는다. 서평은 전적으로 후설주의자의 입장에서 씌어졌다(아래 책에는 후설과 레비나스를 비교하는 논문도 포함돼 있다).  

교수신문(06. 01. 27) 레비나스의 철학적 주제 해명…"무비판적 수용은 아쉽다"

이 책은 레비나스 철학의 핵심 개념인 주체 개념이 “그의 초기 철학에서 중기 철학 그리고 후기 철학에 이르기까지 어떤 방식으로 변화, 발전하는지를”(15쪽) 해명하고자 한다. 이러한 목표를 위해 우선 1장은 레비나스의 삶과 철학을, 2장은 주체 문제가 서양근대철학에서 논의되어온 과정을 정리한다. 거기에 이어 3장은 『존재에서 존재자로』, 『시간과 타자』 등의 작품을 중심으로 익명적 존재사건에서 주체가 출현하는 과정, 주체의 출현에서 타자와의 만남으로 이행해가는 과정을 해명하면서 레비나스의 초기 철학을 다루고 있고, 4장은 『전체성과 무한』을 중심으로 향유, 거주, 노동, 타인의 얼굴 등의 문제를 해명하면서 레비나스의 중기 철학을 다루고 있으며, 5장은 『존재와 다르게 또는 존재 사건 저편에』 등을 비롯한 몇몇 작품들을 토대로 대속적 책임의 문제 등을 해명하면서 레비나스의 후기 철학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6장은 고통 현상을 분석하면서 주체와 윤리 문제의 관계를 다시 검토하고 7장은 서양철학에서 레비나스가 이룩한 공헌을 정리한다.
절대적 타자에 대한 책임을 강조하는 레비나스의 철학은 인간존엄성이 땅에 떨어진 현대에 대해 강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현재 레비나스의 철학은 전 세계적으로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으며 국내 학계에서도 지난 10여년 사이에 그에 대한 관심이 비약적으로 커지고 있으나 아직 그에 대한 연구가 충분하게 이루어지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레비나스의 철학 전체를 조망하고 있는 이 책의 출간은 커다란 의미를 지닌다. 20여 년 동안의 오랜 기간에 걸쳐 수행된 연구를 토대로 출간된 이 책은 앞으로 레비나스 철학에 대한 연구를 위한 필독서가 될 것이다.

이 책은 레비나스의 여러 작품들에 대한 해박한 지식 및 그에 대한 치밀한 분석을 토대로 주체 개념에 초점을 맞추어서 레비나스 철학을 해명하고 있다. 이 책에서 분석되고 있는 레비나스의 작품들은 모두 아주 난해하기 때문에 하나의 작품을 올바로 이해하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닌데, 저자는 이 모든 작품을 섭렵하고 철저히 분석할 뿐 아니라,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주체 개념을 중심으로 그들 사이의 관계까지 해명하고 있다. 그를 통해 익명적 존재사건, 향유, 거주, 노동, 얼굴, 책임, 대속 등 레비나스 철학의 여러 가지 어려운 주제들이 해명되었고, 주체 개념과 관련해 레비나스 철학의 전체적인 모습도 밝혀졌다.

이 책은 앞으로 레비나스 철학에 대한 커다란 관심을 불러일으키면서 레비나스 철학 연구의 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이 책에는 “레비나스의 저작과 2차 문헌” 등 두 개의 부록이 붙어 있는데, 이 부록은 풍부한 정보를 담고 있기 때문에 연구자들에게 커다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주체의 문제를 중심으로 레비나스 철학에 접근하고 있기 때문에 이 책은, 저자도 밝히고 있듯이, 시간, 역사, 신체, 언어, 여성성, 예술, 종교, 신 등 레비나스 철학의 여타의 중요한 주제들, 그리고 레비나스에게 영향을 주었거나 레비나스로부터 영향을 받은 철학자와 레비나스의 관계도 자세히 다루고 있지 않은데, 이 책의 출간을 계기로 이러한 주제들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그러나 평자가 보기에 이처럼 여러 가지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나름대로 몇 가지 아쉬운 점도 지니고 있다. 첫째, 저자는 “나의 관점”, “나의 방식”(16쪽)에 따라 원전을 읽고 논의를 전개해 나갔다고 밝히고 있으나, 자신의 관점, 자신의 방식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밝히고 있지 않다. “나의 관점”, “나의 방식”을 밝히기 위해서는 다른 연구자들과의 비판적 대결이 필요한데, 다른 연구자들과의 비판적 대결이 이 책에 거의 나타나 있지 않은 것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둘째, 저자는 레비나스와 아무런 거리도 취하지 않은 채 레비나스가 표명하는 모든 견해를 옹호하면서 독자들에게 전달하려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자세는 독자들이 레비나스 철학을 올바로 이해하는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레비나스 철학을 올바로 이해한다 함은 그것이 지닌 의의와 더불어 한계 및 문제점까지도 이해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뒤에서도 부분적으로 지적되겠지만 레비나스 철학이 지니고 있는 한계 및 문제점은 그동안 국내외 학계에서 많이 논의되어 왔는데, 저자는 그에 대해 거의 침묵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을 비록 자세히 논하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그때그때 간단히 짚고 넘어갔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셋째, 필자는 레비나스가 “처음부터 끝까지 현상학자였다”(292)는 견해를 피력하면서 여기저기서 레비나스의 현상학적 분석을 소개한다. 평소 레비나스의 철학을 현상학으로 해석해온 평자로서는 아주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저자는 현상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충분히 논하고 있지 않으며 현상학에 대한 그의 태도는 모호하다. 저자는 레비나스가 현상학자였다고 주장하면서도 레비나스를 따라 “얼굴은 현상이 아니다”(179)라고 주장한다. 이 경우 “현상”은 후설을 비롯한 레비나스 이전의 현상학자들의 “현상”을 의미할 것이다.

그러나 후설의 입장에서 볼 때 얼굴이 “현상”이 아니며 따라서 후설의 현상학은 얼굴을 다룰 수 없는 것일까? 후설에 의하면 우리의 의식에 떠오를 수 있는 것, 즉 넓은 의미에서 경험될 수 있는 것은 모두 “현상”이다. 레비나스도 얼굴에 대한 경험, “절대적 경험” 등을 말하고 있듯이 “얼굴”이 후설의 현상학의 관점에서 볼 때 현상임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만일 얼굴이 “현상”이 아니라서 전혀 경험될 수 없다면 레비나스는 “얼굴”이라는 “현상”을 분석하면서 “얼굴의 현상학”을 전개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저자는 레비나스가 후설, 하이데거 등 이전의 현상학자들에 대해 가하는 비판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예를 들어 저자는 하이데거의 현상학을 “초개인성이나 익명성”(78)을 지향하는 “탈인격적” 사유로 규정하는데, 현존재의 “개별화” 현상을 분석하고 있는 하이데거의 현상학을 “탈인격적 사유”로 규정함은 무리일 것이다. 또 저자는 후설의 현상학에 대해서도 그것이 의식의 “객관화하는 작용”(240)에만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관념론”(117)이며 후설의 “초월론적 주체”는 “주체의 절대화”(46)의 산물이라든가, 또는 후설의 초월론적 주체가 “역사성과 상황성”(257)과는 무관한 주체라고 주장하는데, 이러한 견해는, 필자가 『현상학과 해석학』(서울대출판부, 2004)에서 밝혔듯이, 후설의 현상학에 대한 일면적인 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넷째, 책의 구성과 관련된 문제가 있다. 6장은 “고통과 윤리”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이미 3~5장의 논의를 통해 발전사적 분석이 이미 끝난 상태에서 6장에서 고통의 문제를 논의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지 궁금하다. 6장은 발전사적 논의와 무관하며 고통의 문제는 초기 철학을 다루는 3장에서도 논의되었다. 또 결론으로 제시된 7장은 레비나스 철학과 관련된 일반적인 내용을 담고 있으며 그것이 비록 나름대로 의미를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발전사적 연구의 결론으로 제시될 수 있는 성격의 것인지도 의심스럽다. 책 전체의 구성을 고려하면 6장과 7장은 사족과 같은 느낌을 준다. 이 두 장을 빼든지 부록으로 처리하고 3장, 4장, 5장의 논의를 확장시키면서 그를 토대로 어떤 결론을 도출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이남인/ 서울대 철학과)


댓글(7)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anathema 2007-07-07 00:21   좋아요 0 | URL
장석주는 그저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지, 똑똑한 전문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로쟈 2007-07-07 11:22   좋아요 0 | URL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이죠. 다만 철학에 대해선 좋아하는 만큼의 식견을 보여주지 못하는 거 같습니다...

눈팅 2007-07-07 18:11   좋아요 0 | URL
주체와 대상에서 타자와 주체로 말을 바꿔봐야 뭐 새로운 사상이 나올까요. 사르트르의 '타자는 지옥'이란 말을 인용하지 않아도 지금 세상에는 순진한 사람을 사기쳐 먹으려는 범죄자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나에게 타자는 법이자 밥이고 명령이자 망령입니다. 악마적인 타자는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드러낸다 해도 천개의 가면을 쓰고 있습니다. 레비나스를 읽어보려 시도는 해봤는데 아무래도 저와는 맞지 않더군요.쓸데없이 모호한 관념론자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로쟈 2007-07-07 22:43   좋아요 0 | URL
"주체와 대상에서 타자와 주체로 말을 바"꾸는 것은 레비나스와 무관합니다. "쓸데없이 모호한 관념론자"도 레비나스에겐 다소 억울한 레테르 같습니다. 그의 철학(윤리학)은 포로수용소에서 나온 것이라...

schizolyric 2007-07-09 12:28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강영안 선생님과 이남인 선생님의 강의를 둘 다 들을 수 있었던 운 좋은 사람인데요... 이 선생님이 후설주의자이듯이 강 선생님은 (칸트주의자로 알려져 있는?) 레비나스주의자이신 듯합니다. 그러므로 '나의 관점'이 잘 드러나지 않고 레비나스를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는 듯한 분위기는 어찌 보면 당연한 듯... ^^;;

로쟈 2007-07-09 19:20   좋아요 0 | URL
이남인 교수도 후설에 대해서는 '예리한 비판'을 가한 적이 있는지 의문입니다. 제가 읽은 몇몇 논문의 요지는 '후설 안에 다 있다'여서요...

mravinsky 2007-07-09 20:56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후썰 안에 다 있다.
이런 식의 주장이라면
철학은 플라톤 안에 다 있다.
이것도 되네요.
 

7, 8월의 사회적 독서 목록에 인문학/인문주의 관련서들을 올려놓았었는데, 가장 대표적인 인문지성으로 꼽히는 김우창 교수 관련기사가 나란히 눈에 띄기에 옮겨놓는다. 우리시대의 명저로 소개되고 있는 김우창 전집은 한번쯤 완독해볼 만하다(나는 이전에 두어 권을 사두었는데, 절판되고 새 판본이 출간돼 좀 난감하다. <궁핍한 시대의 시인>만 일단 사두었다). 그 아래는 가장 최근에 실린 그의 칼럼기사이다.   

한국일보(07. 07. 05) [우리 시대의 명저 50]<26>김우창 전집 '궁핍한 시대의 시인' 등 5권

'김우창 전집’은 인문주의가 현실을 끌어 안을 때, 귀납돼 나오는 사유의 풍경이 얼마나 풍요로운지 증명하는 전거다. 김우창(71) 고려대 명예 교수는 밝혔다. “(내 글쓰기의)지향점은 내가 만드는 게 아니고 주어진다. 시대에 대해 촉발된 느낌이 (글을) 쓰게 한다.” 글쓰기와 사유의 지향점에 대한 질문에 들려 준 답변은 다섯 권의 책에 모범적으로 적용된다.

평소 이런 저런 지면을 통해 실어 오던 그의 평론을 주목해 오던 박맹호 당시 민음사 사장이 “책으로 만들자”며 강권하다시피 했고, 어느새 진짜 책이 돼 있었다. 1977년 첫 권 <궁핍한 시대의 시인>이 빛을 보고 2권 <지상의 척도>, 3권 <시인의 보석>, 4권 <법 없는 길>을 거쳐 1993년 마지막 권 <이성적 사회를 향하여>가 나오기까지, 자칫 비연속적 사유의 기록으로 치부되고 말았을 일련의 글은 출판인의 안목 덕에 전집으로 묶였다.

그러나 저자 자신으로서는 아직도 결벽증을 떨쳐 내지 못하고 있다. “문학사상, 창작과비평 등 잡지에 수록된 글이라 체계가 없어 유감이에요. 그러나 당시 현안에 민감히 반응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저널적이라는 자평이다. “박 사장이 출판을 제의했을 때 체계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나는 거부했으나, 강권에 못 이긴 거죠.” 결과적으로 일련의 책은 한없이 높은 문화의 힘을 갈망하는 한 인문주의자의 내면을 절절하게 증거하고 있다.

생활 주변의 모든 것이 인문학적 텍스트였다. 예를 들어 1972년 12월 9일자 한국일보의 칼럼 ‘천자춘추’(유치진 씀)는 당시 미국 사회가 직면한 변화를 주제로 한 ‘자유의 논리’에서 도입부로 쓰였다(2권 <지상의 척도>). 첨단의 편의와 번다함이 공존하는 국제 공항은 포스트모더니즘적 상황에 대한 명상의 계기로 전용된다(4권 <법 없는 길>).

책은 우리 문화의 정통을 이야기한다. “조선 자기, 수묵의 산수화, 조촐한 전원 생활의 낙을 이야기하는 시조, 일상적 사건들에 대한 담담한 관찰을 기록한 시화, 수필, 잡기 등은 자연과 인간의 절제된 균형을 목표로 하는 조화의 이상”과 닿아 있다는 것.(3권 <시인의 보석>) 북한의 예술 또는 예술적 현상에 대해서는 같은 책 중 ‘이념과 표현’이란 제하로 사유를 전개한다. 북한에서 서사시적 충동이 강한 이유, 개인과 사회의 충돌이 혁명적 낭만주의라는 대전제 속으로 복속돼 가는 기제 등이 북한 예술가들의 작품에 근거해 언급된다. 그 모든 논의는 마르크스주의의 예술 혹은 문화관에 대한 갖가지 현상을 전제한 후에 나온다. 하나의 체계 아래 유기체적으로 꽉 짜인 글이다.

예술과 세계, 실존과 현상에 대해 그는 포괄적 입장을 취한다. 글의 설득력은 그 같은 배려의 결과다. 그는 문학은 결국 제도 안에 있으며, 있어야 할 것은 현존하는 것의 잠재적 부분으로부터 나온다고 본다. 관념적 당위가 정당성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현실의 영역에서 비롯돼야 한다는 믿음이다. 그 인문학적 지평의 방대함은 특유의 유연성과 공존한다. 문학이란, 제도 안에 있으며 있어야 할 것은 있는 것의 잠재적 부분으로부터 나온다는 입장이다. 그의 글은 그래서 지상에 발 디디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설득력을 갖고 접근한다.

이 시대의 화두라 할 페미니즘 역시 사유의 그물에 이미 포착됐다. 여성 문제의 의식과 그 현실적 표현을 반성하고 그 성쇠의 요인을 검토하면서, 1970년대 말부터 80년대 초까지의 상황을 점검하는 대목이다. 지금의 눈으로 보면 격세지감까지 든다. 책은 “오늘날의 여성이 매우 불행한 상황에 있는 것은 사실”이라 전제, 여성 운동의 성패는 다른 사회적 투쟁과 연결돼 있다는 시각을 제시한다. 근대화, 경제 성장, 대중 문화 시대, 민족 분단의 시대, 민족주의 시대, 민족 중흥기, 민중 시대 등을 포괄하는 당시의 핵심적 개념은 ‘산업화’였다.

문화에 대한 통찰은 시대를 초월한다. “오늘날의 사회에서 특히 언어의 타락에 크게 기여하는 것은 정치적 또는 상업적 선전을 위한 언어의 사용”이라는 지적은 날로 정치적 대립이 격화돼 가는 지금 한국이 더욱 귀담아 들어야 할 대목이다.

책은 곳곳에 인문주의에 대한 신뢰의 보루를 쌓아 두고 있다. “적어도 고급 문화의 표현으로는”이라는 유보 조항을 달긴 했으나, 문화는 “한 사회의 인문적 전통의 전부 이외의 다른 것은 아니다”라고 책은 단언한다. “인문적 전통을 통한 교양은 지식의 훈련과 함께 지식으로부터 또는 모든 외적인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마음의 해방을 목표로 한다”는 것이다.

3권은 저자의 본령을 확인시켜 준다. 황석영 이문구 등 소설가, 황동규 김광규 등 시인을 중점적으로 논하는 자리다. 그럼에도 책은 자유에 대한 여러 차원의 참고서로 읽힌다. 그에 대한 사유의 흔적은 전집 곳곳에 배어 있다. 저자에 의하면 세 가지 차원의 자유가 필요하다. 동료와 신뢰ㆍ공감할 수 있는 자유, 자연과 조화하며 사는 심미적ㆍ생태학적 자유, 그리고 스스로의 깨우침으로 도달하는 자유. “세 번째가 바로 인문 과학이 필요한 대목이죠.”

4권 <법 없는 길>에서는 오래 음미하고픈 명구가 눈을 붙든다. 근원을 사유케 하는 글이다. “마음의 실체는 고요함이다. 이것이 우리를 자아로서 지속하게 하며, 또 세계를 있는 대로 드러내주게 된다.”(‘고요함에 대하여’) 책의 초입은 이맘때가 제격이다. “장마가 끝나고 밝은 해가 비치고 태평양으로부터 올라온다는 태풍의 영향인지 맑은 바람이 분다.…(중략)…반드시 실제적이 아니고 이익이 되는 것이 아닐지라도 순간을 넘어서는 영원 아니면 지속에 대한 우리의 갈구는 삶의 근원적인 지향인지 모른다.”

자유는 이 전집의 모태이기도 하다. 저자는 “학문적 계보란 내게 없는 것 같다”며 “바로 계보가 없었던 덕에, 즉 요구하는 바가 없어서, 너무 자유로워서, 쓸 수 있었던 것”이라며 돌이켰다. 저자는 자신의 전집이 ‘좋은 사회’에 대한 인문 과학적 이해와, 그를 위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 내는 데 쓰일 수 있게 되기를 바랬다. 김우창 전집은 인문학에 대한 드높은 애정의 결과다. 어느 한 곳에 편재됨 없이, 그 근원적인 지향점을 찾아가는 구도자의 내면 풍경을 요약한 지도이면서 후세를 위한 솟대이다.(장병욱기자)

경향신문(07. 07. 05) [시대의 흐름에 서서]큰 생각, 작은 생각, 인간성

정치는 사회가 하나의 체제로 기능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어떠한 나라가 민주주의 체제인가, 사회주의인가, 또는 공산주의 체제인가를 말하는 것은 이러한 이념이 정치 전체의 성격을 규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책도 하나의 덩어리로서의 사회를 전제로 한다. 하나의 정책으로 크고 작은 일체의 것들이 움직이게 되는 것이 아니라면 교육, 의료 또는 사회 복지 제도는 물론 경제, 사회, 외교 등의 정책은 있을 수가 없을 것이다. 체제적 발상에 위험과 착각이 따르는 것은 사실이다. 구소련이 보여주는 것은 이데올로기로 굳어진 체제적 사고와 정책의 실패이다. 그럼에도 사회적인 삶을 생각하는 데에는 체제적 전제는 불가피하다.

대통령 선거와 관련하여, 정책들이 논의되고 대통령 선거에서 정책이 주된 판단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 된다. 정책들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사회가 하나의 체제라고 할 때, 정책은 체제를 움직이는 데에 중요한 전략적 의미를 갖는 것이라야 할 것이다. 또 하나의 기준은 일관성이다. 일관성은 일의 바른 추진을 위하여 필수적인 요건의 하나이다. 또 그것은 현실 자원의 제한 속에서 여러 정책들로 하여금 상호모순에 빠지지 않게 하는 데에 중요한 원리가 된다. 이러한 기준이 없다면, 모든 문제에 대한 모든 답을 제공하겠다는 잡다한 단편적인 정책들이 가장 큰 득표 효과를 갖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일관성은 사회적 삶의 근본에 대한 깊은 인식에서 나온다.

-대선,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미국 클린턴 전 대통령의 1992년 선거 유세에서 유명하게 된 말에,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 하는 것이 있지만, 경제는 어디에서나 오늘의 정치적, 사회적 과제로서 기본이 될 수밖에 없다. 자명한 일이지만, 경제는 사람의 삶의 경영에서 기본이 된다. 여기에서 삶이란 최소한의 존명(存命)이 될 수도 있고, 보다 활달한 삶을 의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앞의 필요가 우선한다. 이 점이 문명된 사회에서 고용이나 사회 안전망 그리고 의료, 교육, 연금 등의 제도가 정책적 대상으로 크게 부상하는 이유이다. 그러나 길고 넓게 보면, 건강하고 훈련된 노동력이 없이 또 사회적 평화가 없이 더 나은 삶을 위한 경제도 잘 되어 갈 수가 없다. 완전고용이나 완전한 사회복지 제도가 결국은 경제 전체에 지나친 부담을 주어 당초의 사회적 목적을 실패에 이르게 한다는 생각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적절한 조정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정치는, 사회 전체의 행복과 번영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면, 그 존재 이유를 상실할 것이다.

그러나 더 나은 삶이 경제만으로 확보되는 것은 아니다. 서구의 선진사회는 이제 ‘탈물질주의’ 단계로 들어서고 있다는 진단이 있다. 이 단계에서 사람들의 관심은 부의 확대보다 삶의 질에 있고, 그것이 정치적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 환경 문제가 이슈로 등장하는 것은 이러한 변화로 설명된다. 이것은 ‘부유한 다수자’로 인하여 일어나는 변화라는 것이지만, 역사적으로 인간은 부보다 복합적 요소로 이루어지는 행복을 이상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자연은 이 이상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 ‘부유한 다수’가 이제 이것을 다시 발견한 것은 경제발전이 가져온 환경 파괴 속에서 살아남는 데에 자연 보존이 절실한 과제가 된 때문이다. 어느 쪽으로나 더 나은 삶을 위한 경제에서, 환경의 문제는 최종적인 심급이 된다.

환경을 이야기한다면, 그것은 다른 의미에서의 환경-멀고 가까운 나라들이 이루는 세계적 국가 공동체제라는 환경을 포함해야 할 것이다. 우리에게는 그 외에 우선적으로 생각되어야 할 남북 문제가 있다. 우리의 삶을 더욱 만족스럽게 영위하는 정책은 이 모든 것을 상호 관계 또 일관성 속에서 생각하는 것이라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미 비친 바와 같이 삶의 큰 테두리를 다스리는 것만으로 보다 나은 사회를 기약할 수는 없다. 사회주의 체제의 기본은 계획경제였다. 자원 발굴, 생산, 분배 등을 전체적인 합리적 계획으로 다스리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인프라를 구축하고 체제의 토대를 정비하는 데에 있어서는 성공을 거두었지만, 그후의 유연한 발전을 촉진하는 데에는 오히려 장애가 되었다. 사회적 삶의 다른 부문에서도 사회에 대한 체제적 접근은 체제의 기초적 정비와 확립을 위해서 효과적인 수단일 수 있었으나, 행복과 사회 평화의 자발적 근원을 봉쇄해버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정책의 일관성이나 전체성이 변화하는 상황에 적응하고 수많은 작은 사실에 밀착하여 스스로를 수정할 수 있게 하는 유연성을 수용하지 않은 것이다.

노무현 정부의 실패도 정책의 빈곤보다도 현실에서 들어오는 결과를 입력하고 조율하지 못한 데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빈부 격차 해소나 부동산 투기 억제의 정책들은 모두 목표에 반대되는 결과를 냈다. 작금에 논의의 대상이 된 대학 입시제도의 문제에 있어서도 정부의 정책은, 모순은 아니라도, 정책 수행방식의 불균형을 느끼지 아니할 수 없게 한다. 모든 계층의 사람에게 균등한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목표는 정당하다하더라도 그 목표와 관련해서 고교 내신 성적의 일정한 처리를, 무리를 무릅쓰고 대학에 강요하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일일 것 같지는 않다.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어야 한다는 말로 표현되는 교육 철학 자체도 문제라 할 수 있다. 참다운 교육의 목표는 용이 못되는 사람에게도 자아실현의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 용이 나온다면, 그 한 열매일 뿐이다. 물론 국가는 용을 필요로 한다. 필요한 것은 상치되는 목표들을 수용하는 더 복잡한 정책 대안이다.)

-제도와 현실 조율능력 살펴야-

제도가 참으로 인간적인 내용을 가진 것이 되게 하려면, 끊임없는 점검과 수정과 정밀화가 있어야 한다. 의료제도를 비롯한 여러 복지제도의 현재 운영 상태는 구소련에서의 어떤 생산 체제, 가령, 구두 생산체제를 생각하게 한다. 체제 붕괴 후 터져 나온 이야기의 하나는, 소련에 구두는 많았지만, 발에 맞는 구두를 찾기가 지극히 어려웠다는 것이었다. 구두를 한 가지 크기로 제조하는 것이 할당량에 맞추는 쉬운 방법의 하나였기 때문이었다. 정책은 있어도, 현실과의 조율이 없는 곳에서, 관료기구의 확대와 통계 숫자는 구체적 현실을 대신한다. 참여정부는 무수한 정책 로드맵을 내 놓았다. 또 수없이 위원회를 만들고 행정기구를 증설했다. 정책 입안자들은 거기에서 성취감을 가졌을 것이다. 정책을 현실에 맞추어 섬세하게 조율할 수 있는 능력만이 정책을 현실이 되게 할 수 있다.

이러한 조율에 바탕이 되는 것은 현장에 움직이는 인간적 감성이다. 지도자의 자질에서도 근본이 되는 것은 그가 얼마나 인간적으로 준비되어 있는가 하는 것이다. 정책의 고안과 수행에는 포괄적이고 유연한 지적 능력, 강한 실천적 의지가 필요하다. 궁극적으로 모든 것은 인간의 삶에 대한 깊은 느낌에서 나온다. 정책의 여러 함의 그리고 예산 문제를 포함한 현실성에 대한 평가가 쉽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인간적 측면의 평가는 더욱 어렵다 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인간됨이 정책, 그 설명의 현장, 그리고 이런저런 기회에서의 언동에서 느껴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완전한 지도자를 찾을 수는 없겠지만, 정책, 현실적 유연성, 인간성-정치지도자의 자격과 관련하여, 이러한 항목들을 평가의 기준으로 생각해 볼 수는 있을 것이다.(김우창/고려대 명예교수)

07. 07. 05-07.

P.S. 개인적으로는 가장 좋은 김우창 입문서로 <행동과 사유 - 김우창과의 대화>(생각의나무, 2004)를 꼽는다. 육성 대담을 녹취한 것이기에 따라가기 쉽고 무엇보다도 '김우창 인문주의'의 기원 같은 것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주제에 대한 그의 생각의 아웃라인을 잡는 데에도 적합한 책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종이 2007-07-06 10:04   좋아요 0 | URL
'궁극적으로 모든 것은 인간의 삶에 대한 깊은 느낌에서 나온다.' 과연 인문학자 답습니다.
로쟈님 덕분에 찾는 수고 없이 늘 잘 읽고 있습니다.

로쟈 2007-07-07 11:15   좋아요 0 | URL
수고를 덜어드린다니 제가 헛수고를 하고 있는 건 아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