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신작소설집이 나온 이후 '두 여자'가 왠지 같이 연상이 돼서 검색을 해보았지만 '조우'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는다. '신정아 사건'('사태'라는 표현도 언론에서는 쓰는군)과 관련하여 전문가 인터뷰를 딴다면 나는 단연코 작가 정이현씨를 찾는 수밖에 없다고 보는 쪽이다(그래서 이 사건에 대해서라면 강준만 칼럼보다도 더 기다려지는 것이 '정이현 칼럼'이다). 이른바 '내츄럴 본 쿨걸'들의 대변인이자 그네들의 심리에 가장 밝은 작가가 그녀말고 또 있을까? 신작소설집 <오늘의 거짓말>(문학과지성사, 2007) 관련기사와 함께 말 그대로 '오늘의 거짓말'로 며칠째 뜨고 있는 신정아 사건 관련기사를 나란히 옮겨놓는다.

경향신문(07. 07. 16) 정이현 신작 소설집 ‘오늘의 거짓말’

소설집 ‘낭만적 사랑과 사회’(2002년), 장편소설 ‘달콤한 나의 도시’(2006년) 등 2권의 책으로 한국문학의 신데렐라가 된 정이현씨(35). 서울에 사는 젊은 중산층 여성의 경쾌하고 도발적인 일상을 그린 칙 릿 풍의 소재를 일정한 문학적 경지로 끌어올리는 게 그의 소설의 강점이다. 순문학과 대중문학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오간다는 평가에도 불구, 남녀노소를 끌어들이는 흡인력과 예리한 관찰력, 영민한 문체의 힘은 그가 녹록지 않은 재능과 노력의 소유자임을 보여준다.

신작 소설집 ‘오늘의 거짓말’(문학과지성사)은 그런 정씨의 작품세계를 좀더 안착시키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타인의 고독’(2004년 이효석문학상) ‘삼풍백화점’(2006년 현대문학상) 등 수상작 2편을 포함, 10편이 실린 이번 작품집에서 그는 “사회적으로 보장된 안정된 삶이 과연 우리를 지켜주는 울타리인가란 물음을 기존의 여성의 성과 결혼이라는 범주를 넘어 보다 전방위적인 삶의 양태들에로 가져간다”(평론가 박혜경).



대도시의 일상이란 테두리는 남겨두면서도 그 시선은 아내에게 얹혀살면서 카드키나 잃어버리는 빙충맞은 남편(‘그 남자의 리허설’)에게로, 강북에 살면서 여고 졸업후 강남의 백화점에서 일하다가 붕괴사고로 죽은 판매원(‘삼풍백화점’)에게로, 서른일곱살에 이르는 삶이 버거워 스물다섯에 기억이 멈춰버린 철없는 노처녀(‘위험한 독신녀’)에게로 향한다.

2022년의 시점에서 2004년 벌어진 한 소녀의 자살사건을 추적하는 이야기(‘빛의 제국’)나 인터넷 쇼핑몰에 가짜 상품사용 후기를 올리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주인공이 위층에서 들려오는 소음 때문에 고민하다가 그것이 자신이 후기를 올렸던 러닝머신임을 깨닫게 되는 이야기(‘오늘의 거짓말’)는 우리 사회가 거대한 거짓말로 구성된 모래탑임을 증언한다.

그러나 그런 거짓말은 사회만이 아니라 연인간에도, 가족간에도 있다. 과외가 금지됐던 1980년대 엄마는 불법 미제장수로 돈을 벌어 비밀과외를 시키고 과외선생은 운동권 학생이다.(‘비밀과외’) 강남 부유층 부모는 대학생 외아들이 음주운전을 하다가 미성년자 여학생을 죽인 걸 덮어버린다.(‘어금니’) 남편이 자기 아파트에서 일어난 유아살해사건의 범인이 아닐까 의심하는 아내(‘어두워지기 전에’)나 자신의 남자친구인 안과의사가 여자환자의 항문사진을 찍었다는 정황이 포착되지만 알리바이를 만들어 비호하는 임상병리사(‘익명의 당신에게’)도 안온한 일상을 위해 진실을 애써 외면한다. 그래서 7년간 연애한 뒤 결혼해서 7개월을 살고 애지중지하던 애완견을 서로 떠미는 부부(‘타인의 고독’)처럼 관계를 두려워하는 현대인은 외로울 수밖에 없다.

정이현의 소설에서 개인과 개인, 개인과 사회 사이에는 수많은 거짓과 긴장, 그로 인한 신경전이 벌어진다. 그러나 스스로 하는 짓을 아는 게 그의 주인공들이다. 그것을 포착한 순간 그들은 질끈 눈을 감거나 또다른 환상으로 그것을 포장한다. 굳이 라캉식으로 말하자면 사회질서를 가리키는 상징계 이전의 실재를 보는 건 죽음이므로.

-이번 소설집이 이전 작품들과 달라진 점이라면.

“첫 소설집에서는 동시대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그런데 1인칭으로 지금·여기를 그리면서도 역설적으로 내 이야기는 하지 않으려 했다. 그런 거리가 냉소적 시선을 만들었다. 이번 책은 내가 경험했던 과거, 70~90년대가 모두 현재에 들어와있다는 생각으로 썼다. 당대를 다루되 기억을 호출하는 방식을 사용했고 냉소보다는 연민의 감정을 느꼈다.”

-등장인물들이 자신의 거짓을 알고도 외면하는데.

모르고 지내는 것과 알고 덮은 것은 다르다. ‘어금니’의 마지막 문장(아마도 나는, 나와 영원히 화해하지 못할 것이다)을 좋아한다. 그런 상태라면 균열과 파국을 아슬아슬하게 막으면서 가더라도 어떤 시점에서는 바뀔 수 있는 것이다.”(한윤정기자)

조선일보(07. 07. 17) 뉴욕 간 신정아씨 공항서 기자들과 실랑이

가짜 예일대 박사학위 논란을 빚고 있는 동국대 신정아(여·35) 교수는 17일 오전 미국 뉴욕의 JFK공항에 도착, 기자들의 질문에 “논문 표절을 고졸 학력으로 내린 언론에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가짜 박사학위 문제로 파문이 커지던 지난 12일 극비리에 프랑스에서 입국한 후 16일 오전 11시 대한항공 KE081편으로 출국했다. 이날 공항에서 청바지 차림의 신 교수는 흰색 모자를 눌러쓰고 공항 대합실을 빠져나가려다 기자들과 5분정도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이에 앞서 신 교수의 가족 A씨는 본지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신 교수는 미국 예일대에 가서 (박사학위를 입증할) 자료를 확보할 계획이고, 변호사 등과 법적 대응책도 강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A씨는 “신 교수가 캔자스주립대 학사학위와 예일대 박사학위를 받았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며 “신 교수가 큰오빠와 함께 유학생활을 했고, (캔자스주립대) 학부 과정만 7년을 다녔는데 3년 다니다가 중퇴했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말했다.

이에 대해 동국대측은 “(본인이) 살기 위해 어떤 서류를 만들어낼지 모르겠지만 무슨 근거를 대도 (신 교수의 박사학위가 위조됐다는 점을 입증하는 데)자신 있다”고 밝혔다. 동국대 관계자는 “ ‘신 교수의 예일대 입학과 학위가 모두 가짜’라는 예일대 총장 명의의 서신 원본이 오늘(16일) 도착했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선 출국한 신 교수가 도피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신 교수 임용 의혹을 조사 중인 동국대 진상조사위원회는 신 교수 채용 당시 총장인 홍기삼씨와 상임이사인 임용택(영배 스님) 현 재단 이사장에 대한 조사도 진행할 것으로 전해졌다. 이상일 동국대 학사지원본부장은 “신 교수에 대한 임용 취소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 교수를 공동 감독에 선임했다가 철회한 광주비엔날레측은 이르면 18일 광주지검에 신 교수에 대한 고발장을 제출하겠다고 밝혔다.(김기훈 특파원)

 

 

 

 

 

 

07. 07. 17.

P.S. 찾아보니, 게다가 두 여자, 72년생 동갑내기다. 정이현, '삼풍백화점'이란 소설로 현대문학상을 수상했고, 신정아, 자칭 삼풍백화점 사고 생존자다. 나는 신정아씨의 거짓말 이력이라면 '거짓말 이야기'가 공식적으로 환영받는 동네에서 더 훌륭한 성취를 이룰 수도 있지 않았을까 아쉬워하는 쪽이다. 검찰 고발 사태로까지 갔으니 머잖아 사건은 자초지종이 만천하에 다시 한번 밝혀지고 누군가 법적인 책임을 지겠지만, 아직 젊은 나이이므로 재기할 수도 있지 않을까 믿어본다. '작가 신정아'가 '큐레이터 신정아'나 '교수 신정아'보다 못할 건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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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혼 2007-07-17 1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이상한 일입니다. 저 역시나 이 사건을 접하면서 정이현을 떠올렸는데요, 물론 '작품적'이라기보다는 '이미지적'인 것 쪽으로 기운 연상작용이었지만요.

로쟈 2007-07-17 2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품집이 이때 나온 건 우연의 일치이기도 하지만 두 사람을 동시에 떠올리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자연스런 일인 것 같습니다. 아마도 조만간 주목이 되지 않을까 싶고요...

마늘빵 2007-07-17 2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정아가 미국갔다와서 어떤 증거를 댈지 기대됩니다.

로쟈 2007-07-18 23:20   좋아요 0 | URL
증거가 있다면 미국에 가질 않았겠지요...

mravinsky 2007-07-17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미국 갔다가 다시 오지 않겠죠. 미국에서 계속 헛소리 하거나 아니면 아예 잠적하든가.

로쟈 2007-07-18 23:17   좋아요 0 | URL
짐작엔 당분간은 오지 않을 듯싶네요...

jouissance 2007-07-18 0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도대체 언제나 신문에서 불쾌한 정아씨 기사를 안 볼 수 있으려나? 이제 서서히 짜증이 밀려오네요. 온갖 방정을 떠는 신문들이나 일단 소낙비는 피하겠다는 황(?)정아씨나 짜증납니다. 가뜩이나 더워 죽겠는데 왜이리 짜증나는 일이 많은지. 로쟈님! 우리의 불쾌한 정아씨는 지금 뉴욕의 호텔방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갑자기 궁금해지네요^^

로쟈 2007-07-18 23:05   좋아요 0 | URL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는 별로 관심이 없는데, 수습은 빨리 해주는 게 여러 사람 덜 고생시킬 것 같다는 생각은 듭니다...

비로그인 2007-07-18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본 이 페이퍼에는 수정중이라는 꼬리표가 달려있었는데 ㅎㅎ 오늘 다 읽고 갑니다.
거짓말하다가 자신이 그 거짓말을 진짜라고 믿어버리는 무슨 심리학적 병인가 장애인가 이름도 있더군요 쯧쯧...

로쟈 2007-07-18 23:04   좋아요 0 | URL
어쩌면 거짓말이라는 관념 자체가 희박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아주 쿨하게...

twinpix 2007-07-18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읽으니, 소설집을 구매하고픈 욕구가 생기네요. ㅇ.ㅇ

로쟈 2007-07-18 23:02   좋아요 0 | URL
빙고입니다.^^
 

지난번에 '거장들의 영화가 온다'(http://blog.aladin.co.kr/mramor/1378961)란 기사를 소개한 바 있는데, 데이비드 린치의 신작 <인랜드 엠파이어>에 관한 뉴스기사를 찾다가 이달 20∼27일에 CGV압구정에서 열리는 ‘시네마 디지털 서울 2007'의 개막작으로 상영된다는 걸 알았다(극장개봉은 26일). 그 영화제의 집행위원장이 영화평론가 정성일씨이다. 마침 네이버의 이동진닷컴에서 정성일씨와의 인터뷰를 다루었기에 겸사겸사 읽어보도록 한다(참고로 그가 영화 데뷔작을 찍는다는 소식은 지난달에 잡지를 통해서 알게 됐는데, 영화감독들이 아주 기뻐하며 벼르고 있다는 후문이다).

이동진닷컴(07. 07. 16) [인터뷰] 정성일 평론가, 영화제 개최에서 감독 데뷔까지

‘시네마 디지털 서울 2007’이 7월20일부터 7월27일까지 서울 ‘CGV 압구정’에서 열린다. 올 들어 유달리 많은 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가운데 이 영화제가 특히 주목되는 이유는 디지털 영화에만 집중하고, 경쟁 부문에 중점을 둔 행사이기 때문이다.

아시아 각국의 신진 감독들이 출품한 이 영화제 경쟁 부문에는 모두 20편이 ‘발견’을 기다리며 포진해 있다. 또한 21세기 디지털 영화의 회고전 성격을 지닌 비경쟁 초청 부문에는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10’, 지아장커의 ‘동’, 바흐만 고바디의 ‘전쟁은 끝났다?’, 가와세 나오미의 ‘출산’, 누리 빌제 세일란의 ‘기후’, 박찬욱의 ‘사이보그지만 괜찮아’, 에릭 로메르의 ‘영국 여인과 공작’, 마이클 만 ‘콜래트럴’, 오시이 마모루의 ‘다치구이시 열전’ 등 디지털 영화의 최전선에 섰던 화제작들이 즐비하다. 개막작으로는 데이빗 린치의 첫 디지털 영화인 ‘인랜드 엠파이어’가 상영된다.

그런데 하나 더. ‘시네마 디지털 서울 2007’이 주목되는 또 한 가지 이유는 정성일이라는 이름 때문이다. 다른 이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다른 이들이 쓸 수 없는 것을 써온 영화평론가 정성일씨는 지난 20년간 한국 평론계에서 독보적인 존재였다. 박기용 한국영화아카데미 원장과 함께 공동 집행위원장으로서 직접 이끌어 온 이 행사의 프로그램 곳곳에서 그의 숨결을 느끼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가 디지털 영화의 가능성과 미래에 대해 누구보다 깊게 탐구해온 사람이었다는 점에서도 이번 영화제는 관심을 끈다.

영화평론가에게 가장 설레는 순간은 언제일까. 자신의 영화관(映畵觀)을 그대로 투영해 영화제를 열 때, 혹은 보는 자의 위치에서 만드는 자의 위치로 옮아가 감독의 자리에 서게 될 때가 아닐까. 정성일씨는 지금 그 두 가지 일의 시작을 눈 앞에 두고 있다.

해가 쨍쨍했던 15일 오후, 행사 준비에 여념이 없는 그를 ‘시네마 디지털 서울 2007’(www.cindi.or.kr)이 열리는 ‘CGV 압구정’ 근처 카페에서 팥빙수와 아이스커피를 사이에 둔 채 만났다. 구어임에도 거의 모든 문장을 ‘~어요’가 아닌 ‘~습니다’로 맺는 그의 종결법과, 질문을 듣자마자 대답하게 될 내용의 가짓수를 미리 가늠해 숫자로 박아놓은 뒤 하나씩 설명하는 연역적 화법, 그리고 듣는 이를 거듭 감탄케 만드는 그의 치열함과 뜨거움은 여전했다. 그로부터 듣는 새로운 영화제 이야기. 아울러, 마흔아홉의 나이로 처음 만들게 되는 감독 데뷔작 이야기.



-처음에 ‘시네마 디지털 서울 2007’을 어떻게 기획하시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작년 여름쯤이었을 겁니다. 우연한 기회에 CJ 문화재단 분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젠 CJ도 영화 사업을 해온 지 10년이 됐으니 사회에 기여하는 일을 해야 되는 게 아니냐고 말했습니다. 어떤 일이 가능하냐고 반문하시길래, 영화계의 독과점 폐해를 막을 수 있는 다양성 사업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가장 좋은 방법은 영화제라고 대답했습니다. 영화제는 기업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건강한 사회환원이라는 게 제 견해였기 때문입니다. 그랬더니 문화재단 측에서 긍정적으로 검토하고서, 몇 주 후 제게 구체적으로 어떤 영화제를 생각하는지 물었습니다. 그래서 7년 전 전주영화제를 맡았을 때 제가 정말 하고 싶었던 영화제가 어떤 것이었는지부터 떠올리기 시작했습니다. 생각을 굴리는 과정에서, 그 사이 테크놀로지가 발전하고 디지털 영화도 발전해왔으니, 이젠 하나의 섹션 정도가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하게 디지털 영화제를 해볼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그 결과가 ‘시네마 디지털 서울 2007’입니다.”

-한국영화아카데미 원장이신 박기용 감독님과 공동 집행위원장으로 일을 하고 계신데요.

“이 영화제를 저 혼자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까지 제가 해온 일은 영화를 보고 글을 쓰는 것이니, 만드는 사람들의 고민은 과연 어떤 것인가, 그리고 디지털이라는 새로운 영화를 만드는 새로운 세대의 생각은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 잘 아는 파트너와 함께 논의하면서 진행해야 한다고 본 겁니다. 저는 박기용 감독의 첫 영화인 ‘모텔 선인장’은 특별히 좋아하진 않습니다만, 두번째 영화인 ‘낙타(들)’은 정말 굉장하다고 생각해왔습니다. 한국에서 디지털로 만든 중요한 첫 영화가 있다면 이 작품이고, 디지털 한국영화사를 쓴다면 그 영화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느낄만큼 임팩트가 컸습니다.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제가 강의를 해오면서 지켜본 박감독은 일종의 페스탈로치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학생들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 있는 사람이란 말입니다. 학생들 면전에서는 ‘재능이 없으니 영화를 그만두고 농사나 지어라’고 냉혹하게 말하지만, 그들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열정적으로 무슨 일이든 다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디지털 영화에 대한 확신과 새로운 영화 세대에 대한 사랑을 함께 갖춘 박감독 이상의 파트너는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시네마 디지털 서울 2007’의 프로그래밍과 운영방식을 보면 영화제 이름이 드러내듯 디지털 영화에 집중한다는 특성 외에도 두드러지는 측면들이 있습니다. 전 이런 것들이 이 영화제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먼저, 왜 경쟁 영화제입니까. 경쟁을 중시하면 프로그래밍에 있어서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는 등 운영상 쉽지 않은 점이 많을 것으로 추측되는데요.

“우리끼린 솔직하게 이야기를 해야 하겠지요.(웃음) 심지어 칸 영화제조차 상영작의 3분의 1이 쓰레기 영화입니다. 그런데도 영화제에서는 다들 좋다고만 말합니다. 칸 영화제까지 올라온 것만으로도 훌륭하다고 말하곤 하는데, 저는 그렇게 좋게만 봐주려고 하는 분위기가 역겹다고 생각합니다. 아닌 것은 아닌 것입니다.

필름을 사용하지 않는 디지털 영화가 시작되면서 고무적인 변화도 많지만 나쁜 점들도 생겨났습니다. 무엇보다 디지털을 통해 누구나 영화를 만들 수 있게 되면서, 고민이 대폭 줄어들게 됐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필름으로 찍을 때는 모든 게 다 돈이 많이 드는 일이니까, 감독이 매순간 숙고 끝에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디지털이 등장하면서 고민이 사라진 겁니다. 단편도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보다 더 역겨운 것은 센세이셔널한 영화들이 주목받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용기 있는 척 정치적인 토픽을 던져놓고, 사람들이 그 토픽 때문에 지지하지 않으면 안 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겁니다. 그 순간 평하는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토픽의 긴급성 때문에 마음에 없는 공허한 지지를 하거나, 아예 침묵을 지키는 겁니다. 이런 점들이 디지털 영화가 시작되면서 만연하게 된 조류입니다.

이런 변화 과정에서 영화제들은 관심과 돈을 끌어 모을 수 있는 성과를 보여주기 위해 두가지에 집착합니다. 하나는 양의 경제학입니다. 얼마나 많은 영화를 영화제로 끌어올 수 있는가, 하는 점이죠. 그런데 제가 궁금한 것은 그 많은 영화를 다 볼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 과연 그 영화제의 프로그래머는 그걸 다 봤느냐 하는 의문인 겁니다. 양의 경제학이 질의 저하를 가져올 수 밖에 없고, 한 편이라도 더 갖고 오기 위한 경쟁이 영화제 사이에서 벌어질 수 밖에 없는 겁니다. 또 하나는 많은 관객을 끌어들이기 위해서 센세이셔널한 영화, 유수의 영화제에서 상받은 영화, 정치적인 토픽이 있는 영화 위주로 할 수 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상은 언뜻 푸짐해 보이는데 먹으면 하나같이 맛 없는 반찬으로 차려진 밥상은 우릴 화나게 하지 않습니까. 이젠 그런 영화제는 충분하다는 겁니다. 새로운 재능을 발견하고 지지하는 올바른 방법은 위로와 격려가 아닙니다. 한 자리에 모아놓고 배틀(battle)을 벌이게 한 뒤 ‘당신의 재능으로 한번 견뎌봐’라고 말하는 겁니다. 그걸 돌파했을 때 우리는 그 사람을 지지할 수 있다는 겁니다. 영화제가 하나 뿐이라면 이런 방식이 옳지 않겠지만, 영화제가 충분히 많은 지금은 하나쯤 경쟁 방식을 통해 지지해야 할 이름을 소개하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본다는 겁니다.”

-또 하나의 특색은 경쟁 부문이 아시아 영화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부산영화제의 뉴 커런츠 부문도 그렇긴 하지만, ‘시네마 디지털 서울 2007’은 경쟁 부문이 핵심이기 때문에 이런 특징이 유독 두드러져 보입니다. 왜 아시아 영화입니까.

“그 질문에 대해서는 주관적으로 대답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건 영화제를 하고 있는 저와 동료들이 전부 아시아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시아의 친구들과 함께 영화를 생각하고 싶어서입니다. 한 영화제가 전세계의 모든 영화를 다 알고 싶다는 태도를 갖는 것은 제국주의적 발상이라고 봅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한국에서 열리는 영화제가 전세계 모든 영화들을 다 안고 가고 싶어하는 것은 일종의 백인 신화의 연장선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전주영화제를 처음 시작하느라고 전세계의 영화제를 돌아다녔을 때 발견하게 된 것은 아시아에 영화제가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는 디지털 영화가 막 시작되었을 때였는데, 이른바 오지에서 새로운 재능들이 나오면서 새로운 기회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아시아의 새로운 재능은 서양 영화제의 게이트키핑(gatekeeping)을 통과하지 않으면 현실적으로 알려질 기회가 없습니다. 저는 그런 새로운 재능들에게 작더라도 기회를 주고 싶었습니다. 그게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전주 영화제 때 제가 의무처럼 염두에 뒀던 겁니다.

지금 영화제 이름이 ‘시네마 디지털 서울 2007’인 것은 향후 이 영화제가 단계별로 자매결연 도시를 늘려가면서 열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게 ‘시네마 디지털 홍콩’과 ‘시네마 디지털 마닐라’를 거쳐 ‘시네마 디지털 텔아비브’까지 열리기를 바랍니다.”

-시상방식도 참 독특합니다. 일반적으로 유수의 국제영화제는 그 명칭이 무엇이든, 1등상에 해당하는 작품상을 준 뒤 심사위원대상, 감독상 같은 명칭으로 2등상이나 3등상을 수여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제는 감독들이 심사위원이 되어 수여하는 감독상을 비롯해 비평가상 젊은비평가상 관객상까지, 심사위원들을 달리해가면서 한 작품만 골라 시상하기로 했습니다. 왜 이런 방식을 고안하신 건가요?

“저희가 생각하는 최고의 결과는 그렇게 네 개의 상을 한 영화가 다 가져가는 것입니다. 심사는 분야별 심사위원끼리 다른 방에서 각자 토론해서 서로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할 겁니다. 이전에 영화 관련 심사를 해보면 항상 느끼는 게 안배의 원칙입니다. 하지만 심사위원 등에 따라서 안배하는 것은 올바른 경쟁 방식이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안배를 없애기 위해 각 부문별로 한 편씩에만 상을 주자는 겁니다. 감독들이 그렇듯, 심사위원들도 자기 이름을 걸고 ‘배틀’을 하라는 겁니다.”

-디지털 영화는 누구나 영화를 만들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예술의 민주주의에는 명암이 공존하고, 유행의 측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변화가 유독 영화에만 있었던 것은 아닌데요, 일례로 디지털 영화의 등장은 대중음악에서 펑크의 발흥과 비교할 만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미 헨드릭스처럼 뛰어난 테크닉을 지닌 음악 엘리트들이어야 기타를 칠 수 있다고 보았던 60-70년대가 저물 무렵 나타난 펑크는, 섹스 피스톨스의 경우에서 극명하게 드러나듯 코드 3개만 알면 아무나 기타를 칠 수 있고 누구나 록밴드로 활동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런데 초기의 이른바 펑크 정신과는 반대로 이젠 펑크 밴드들도 테크닉을 중시하고 가사도 가다듬는 상황이 됐습니다. 펑크에서 출발한 그린 데이 같은 그룹은 이제 9분짜리 대곡까지 연주하니까요. 그렇다면 영화의 경우는 어떨까요. 제가 묻고 싶은 것은 누구나 영화를 찍을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어떻게 느끼시느냐는 겁니다. 누구나 영화를 찍을 수 있다는 게 무슨 뜻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게 쟁점입니다. 그 질문과 관련해서 어떤 사람들은 그게 바로 희망이라고 환호하는 반면, 또 다른 사람들은 그래서 영화를 망쳤다고 탄식하기도 합니다. 저는 두 가지 반응 중 어느 쪽에서도 반문을 포기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누구에게나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건 예술 매체에의 접근에 대한 민주주의라고 부를 수 있을 겁니다. 예전에 특권이었던 일을 이제는 누구나 할 수 있게 됐다는 겁니다.

‘시네마 디지털 서울 2007’의 경쟁 부문 출품 감독 면면을 보면 정말 놀랄 만한 경우가 많습니다. 심지어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 중국의 어느 일용 노동자가 돈을 빌려줬다가 받지 못해서 대신 채무자의 DV 카메라를 받아 왔습니다. 그 후로 그 사람은 쉬는 날마다 DV 카메라로 취미 삼아 이것저것 찍기 시작했고 스스로 촬영이나 편집 같은 영화의 테크닉을 깨달아가면서 마침내 영화를 만들게 됐습니다. 저는 그런 영화들이 다 좋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출품된 영화들을 봤을 때 그 결과물들을 보고서 놀랐습니다. 저는 이것이 희망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펑크 초기에 난립한 밴드들 중 섹스 피스톨스나 클래시 같은 몇몇 밴드를 제외하고는 다 쓰레기 밴드들이었습니다. 그게 민주주의의 좋은 점이자 나쁜 점입니다.

이번 영화제 때문에 보게 된 디지털 영화들 중에서는 놀라운 영화도 많지만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영화도 많았던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저는 영화평론가나 영화전문기자 같은 게이트키퍼들의 역할이 더욱 더 중요해졌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은 취미라고 생각하고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사실 이 영화는 굉장한 거야’, 혹은 ‘당신은 굉장하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이 형편 없는 영화는 그냥 당신의 블로그에만 올려줘’라고 말할 수 있는 게이트키퍼 말입니다. 예술적 감식안을 갖고 있는 게이트키퍼들은 재능을 발견하거나 충고를 하는 일에 책임감을 가져야 합니다.

저는 한국 영화 커뮤니티에서 결핍된 게 바로 게이트키핑 장치라고 봅니다. 영화의 만듦새와 상관 없이 영화 외적인 이유로 각광을 받는 작품들이 많은 상황에서, 그런 작품들에 기꺼이 반대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겁니다. 디지털은 그런 점에서 만드는 사람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비평하는 사람에게도 심각한 도전이 되고 있다고 판단합니다. 우리가 뛰어난 재능을 알아보지 못해서 그 재능이 스스로 포기하면, 그 책임은 상당 부분 비평하는 사람에게도 있습니다. 반대로 예술 사기꾼을 알아보지 못한 게이트키퍼들도 엄격히 비판 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게 비평 커뮤니티의 의무입니다.”



-소설가 김영하씨가 영화제 트레일러(예고편)를 만들었다는 점에서도 이 영화제의 특성이 감지되는 것 같습니다. 일단 영화를 한 번도 만들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누구나 만들 수 있는’ 디지털 영화의 축제와 잘 맞아 떨어지지요. 그런데 한 편으론 그 ‘영화 문외한’ 김영하씨가 문학이라는 또다른 예술 매체의 뛰어난 재능이라는 점에서 정반대의 의미도 지니고 있는 것 같습니다. 왜 김영하씨에게 트레일러를 의뢰하셨습니까?

“(손가락을 펴 보이면서) 세가지였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는, 김영하씨가 시나리오 각색 작업도 했고 자신의 소설이 영화화되는 일도 경험했기에 상당 부분 알고 있겠거니 짐작했는데, 영화를 무척 좋아하고 많이 본 사람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영화 창작 과정에 대해서 거의 아무 것도 모르고 있다는 게 의외였다는 겁니다. 사실 영화를 좋아하면 현장도 보고 싶어하고 참견도 하고 싶기 마련인데 현장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조직의 쓴 맛을 보여줘야지.’(웃음) 제안을 했더니 흔쾌히 모험을 받아들여서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김영하씨는 카메라 자체를 촬영 이틀 전에 받아서 연습할 시간이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최소한의 작동법만 익혀서 자동으로 놓고 찍었답니다. 김영하씨의 완성된 트레일러에는 테크닉이 없고 아이디어만 있습니다.

두번째 측면이란 바로 아이디어와 기초적인 작동법만 갖고서 대상과의 스킨십이 가능하겠는가를 우리도 알고 싶었다는 점입니다. 찍어온 것 보니 김영하씨의 말투처럼 트레일러도 툭툭 던지는 스타일이었습니다. 그렇게 툭툭 던지면서 사실상 본인은 머리 속에서 편집을 하고 있었던 겁니다. 저는 박기용 감독이 이 영화제에 관해 논의하는 과정에서 필름 시네마가 이미지 메이킹이라면, 디지털 시네마는 이미지 테이킹이라고 말했던 것을 인상적으로 들었습니다.

세번째 의미는 이번 작업을 통해 김영하씨가 그걸 보여주었다는 겁니다. 메이킹 한 게 아니라 보이는 것들을 찍었고 그걸 테이킹해서 의미를 만들어낸 것이니까요. 그는 영화로 자기의 문장을 써냈습니다. 굉장히 성공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디지털이라는 테크놀로지에 두려움을 느끼는 아날로그 세대에게 용기를 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김영하씨도 했는데 못할 게 무엇이겠습니까.”

-2000년 12월에 영화잡지 키노 편집장을 그만두셨습니다. 그때 하신 인터뷰에서 제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이제 가급적 영화에 대해 글 쓰는 것을 그만두고 싶다고, 사람이 마흔살이 되면 자기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때에도 감독으로 영화를 직접 만들려고 하셨고, 프로그래머로 전주 영화제를 출범시키셨습니다. ‘시네마 디지털 서울 2007’을 여시고 감독 데뷔를 준비하시는 지금 상황이 그때와 무척 흡사하다고 여겨지는데요, 어떻습니까. 이제 곧 쉰이 되어가시는데 지난 40대를 돌아보시면 어떤 기분이 드시는지요. 2000년에 30대를 단번에 훌쩍 지나갔다고 회고하셨듯, 40대도 그러셨는지요.

그 기간 중에 우선 임권택 감독님에 대한 인터뷰 책을 버전 업 시킴으로써 해묵은 부채를 청산했습니다. 임감독님에 대한 인터뷰를 다시 정리해야 한다는 게 항상 제 마음 속에 부채로 남아 있었으니까요. 그 작업에 거의 2년 반이 걸렸습니다. 그 책을 읽으시는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저로선 자랑스런 작업이었습니다. 저는 영화연구자들이 아니라 영화를 만들려고 하는 사람들이 임감독님의 뭔가를 훔쳐내고 싶을 때 가져갈 수 있는 도구상자로 이 책을 활용했으면 하는 소망이 있습니다.



두번째로는 키노라는 잡지를 만들면서 정기적으로 뭔가 마감을 한다는 게 사람을 참 황폐하게 만드는 일이었다는 점을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이동진 기자도 잘 아시겠죠.(웃음) 마감이 끝없이 연속되는 상황에서 충전은 불가능합니다. 자신을 다 퍼내어버리는 것이니까요. 키노를 그만둘 때 쯤에는 제가 억지를 부리고 있다는 느낌까지 들었습니다. 그만 두려 한 것은 사실 그보다 2년 전이었는데, 키노가 사정이 어려워서 혼자 빠져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 사이에 무척 황폐해졌는데, 아마도 그 시기의 글들이 제가 쓴 글 중 가장 나쁜 글이었을 겁니다. 그 과정을 끝내고 나서 제게 재활 기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런 시간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임감독님 책을 만들었고, 유랑하다시피 영화제를 떠돌았고, 글은 ‘씨네21’과 ‘말’지 정도만 쓰고 쉬었습니다.

그러자 그 다음엔 무엇보다 이젠 나를 위해서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적잖은 자본이 필요하고 스탭도 필요합니다. 두 편의 영화를 준비했는데 그 과정에서 잘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세번째 영화를 준비중인데, 아직 자세히 이야기할 단계는 아니지만, 이제까지 작업한 영화들 중에선 가장 구체적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저는 감독 데뷔와 관련해서 저 자신이 항상 인용했던 말을 제 자신에게 하고 싶은 겁니다.”



-‘영화를 사랑하는 첫번째 방법은 같은 영화를 두 번 보는 것이고, 두번째 방법은 영화평을 쓰는 것이며, 마지막 세번째 방법은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라는 프랑수아 트뤼포의 발언을 말씀하시는 거지요?

“네. 그렇습니다. 얼마 전 씨네21을 통해서 정윤철 감독이 저를 인터뷰했을 때 정감독이 마지막으로 ‘왜 영화를 그렇게 만들고 싶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 말 속에는 아마도 ‘당신이 영화를 만들면 세상이 깜짝 놀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란 뉘앙스가 들어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저는 그렇게 유치하지 않습니다. 또 그런 영화가 있지도 않습니다.

제가 영화를 만들고 싶은 이유는 딱 한 가집니다. 오랜 세월을 영화를 보고 또 영화 책을 읽으면서 열심히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같은 자리를 뱅뱅 맴돈다는 느낌이 들고 있습니다. (가슴에 두 손을 얹고)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겁니다. 그게 정말 너무 괴롭습니다.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 합니다. 자다가 벌떡 일어날 정도입니다.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 해결 방법은 하나입니다. 다른 이와 고민을 나누고 같이 해결해나가는 방법입니다. 그러려면 영화를 만드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어떤 상황을 어떤 쇼트로 어떻게 찍을 것인가가 정말 중요한데, 내가 여러 쇼트로 고민하고 있는 것을 히치콕이 하나의 쇼트로 해결하는 것을 보면 정말 놀랍습니다.

저는 최근 두기봉의 ‘익사일’을 보면서 천국에 다녀온 기분이었습니다. 인물을 그 공간으로부터 도저히 빼낼 수 없다고 본 상황에서 인물이 아무 충돌 없이 빠져나오는 쇼트가 있는 것은 매직의 순간입니다. 그런 문제를 두고 영화의 친구들과 맹렬히 토론하고 싶습니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방법을 찾고 싶습니다. 그러면 영화에 대해서 제가 좀더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간절한 제 소망은 사실 영화를 조금이라도 더 잘 보고 싶다는 생각인 셈입니다. 그게 저의 가장 큰 욕망입니다.”

-어떤 말씀이신지 너무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렇게 엉뚱한 질문이 불쑥 솟아오릅니다. 꼭 끊임없이 더 나아가야 하십니까. 어떤 지점에서도 완전한 만족이란 불가능하겠지만, 그냥 그대로 영화를 보면 안 되는 걸까요.

“돌려서 반문하겠습니다. 이동진 기자도 영화를 더 잘 보고 싶으시잖습니까. ‘익사일’을 봤을 때, ‘레이디 채털리’나 ‘밀양’을 봤을 때, 혹은 홍상수나 박찬욱의 신작을 봤을 때, 단번에 핵심을 보고 싶잖습니까. 그런 핵심이 희미하게 보이고 스스로가 불안해질 때 괴롭지 않습니까. 영화에 대한 사랑이 의심스러울 때 너무 불안하지 않습니까. 사랑을 확인받고 싶지 않습니까. 영화에 대한 글을 함께 쓰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동진 기자의 글을 보면 어떤 것들은 확신이 있는데 어떤 것은 그렇지 않다는 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확신이 없는 듯 느껴지는 글을 읽을 때는, 테크니컬하게 잘 넘어가는데도 불구하고 제 속으로 ‘불안했을 게야’라고 생각합니다.(웃음) 하지만 글을 쓰는 우리들은 잘 알지 않습니까. 확신이 있을 때 글에 힘이 있고 또 즉각 설득이 된다는 것을 말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확신을 갖고 쓴 글을 보면 배울 수 있다는 점입니다. 저는 아직도 배우는 일이 즐겁습니다. 그런데 누군가의 멋진 글들을 보면서도 거기서 배울 게 한 줄도 없다면 의미가 없는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 말은 고스란히 제게도 돌아옵니다. 저도 종종 확신 없이 글을 쓸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너무 부끄럽습니다. 그러나 확신을 갖고 쓰면 누가 반론해도 거기에 대해 토론할 마음이 있습니다. 영화를 더 잘 보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일본 영화평론가) 하스미 시게히코 같은 사람의 글을 보면 죽고 싶지 않습니까?(웃음) ‘이거 나랑 똑 같은 영화 본 것 맞아?’ 싶어서 너무 괴로워집니다.”

-감독 데뷔작 일정은 어떻게 잡고 계십니까.

“언제 완성해서 개봉할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크랭크 인은 늦여름에서 가을 사이일 것 같습니다. 장소 헌팅은 이미 다 끝냈습니다.”

-제목은 정하셨는지요? 성장 영화라는 소문이 있던데 간략하게라도 내용을 말씀해주시지요.

“아직 가제도 없습니다. 그래서 연출부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못합니다. 제목이 없는 영화를 뭐라고 말하겠습니까.(웃음) 내용은 멜로 드라마입니다. 두 여자 사이에서 끝장 나는 한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그게 이야기의 전부입니다.”

-영화를 준비하시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했던 어려움이 있었다면 어떤 것이었습니까.

“편견입니다. 저에 대한 편견 말입니다.”

-아, 그렇지요.

“그렇지요,라구요? (입에 넣은 팥빙수를 내뿜을 뻔 하면서) 그런 게 제일 나쁜 대답인 거 아시죠?(웃음) 제가 불편해 하는 어떤 사람을 원치 않게 마주친 적이 있습니다. 제가 영화를 찍을 거라는 이야기를 들어서인지 무슨 이야기냐고 계속 물어보길래 ‘조폭영화가 유행하니 저도 조폭영화 한 번 만들어보려구요’라고 건성으로 대답했습니다. 그랬더니 저를 1분 정도 바라본 뒤에 ‘그러니까 칼을 들고 복수를 하려고 15분 동안 걸어가는 그런 영화군요?’라고 말하더군요.(웃음) 이게 사람들이 내가 영화한다고 하니까 자동적으로 떠올리는 편견이구나, 싶었습니다. 배우들이나 스탭들을 만나볼 때도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것들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설득해야 한다는 것이 답답했습니다. 그런 과정이 다른 감독들과 다른 경우일 겁니다.”

-다른 사람의 영화를 평하는 위치에서 평을 받는 위치로 바뀐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없으십니까? 요즘 감독들이 모이는 자리에서는 이 영화 제작 이야기가 자주 화제에 오르는데, 그때마다 ‘두고보자’면서 이를 갈고 있는 분들이 적지 않다는데요.(웃음)

“부담감, 전혀 없습니다. 남이 뭐라고 말하든 관심도 없고 상처도 안 받을 것 같습니다. 시나리오를 놓고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올 때에도 저는 전혀 상처 받지 않았습니다. 그게 누구든 지적하는 사람의 말이 맞으면 바로 고쳤습니다. 조금 전에 하신 질문과 비슷한 질문을 저를 아끼시는 분들이 하시곤 합니다. 이 나이에 제가 부서지면 안 될 거라고 생각해서입니다. 그런데 사실 첫번째 영화가 좋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저는 굉장한 영화를 보여주고 싶은 게 아닙니다. 정말로 솔직하게 배운다는 느낌이 제일 큽니다. 저는 준비를 하면서도 스탭들에게 일일이 의견을 구합니다. 막내에게도 물어봅니다. 렌즈에서 인물 동선까지 설명한 뒤 문제 없냐고 물어보는 겁니다. 문제가 없을 리 있겠습니까. 당연히 있다고 하죠.(웃음) 그 문제점에 대한 설명을 듣고 옳으면 따르면 됩니다. 제 영화가 만들어진 후 그 영화에 대한 평들이 나오면 그걸 보고 배울 것 같습니다. 제 말에는 과장이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또 이렇게 말하고 자살할 지도 모르죠.(웃음)”

-비평을 통해 일관되게 임권택 홍상수 김기덕 감독을 옹호해 오셨습니다. 반면에 상대적으로 덜 평가하신 감독들도 있습니다. 거칠게 묻겠습니다. 왜 임권택 홍상수 김기덕입니까. 왜 이창동 박찬욱 임상수 봉준호는 아닙니까.

“물론 저는 후자로 거명하신 감독들도 장점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하는 쪽입니다. 하지만 질문이 간단하니까 저도 간단히 답하겠습니다. 제가 지지하는 감독들의 옹호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들은 제가 ‘시네마란 무엇인가’를 질문했을 때, 그에 대해 대답을 하거나, 대답을 준비하거나, 시네마를 통해 반문하는 사람들입니다.”



-올해 한국 영화계의 위기는 확실히 질적으로 이전과 다른 것 같습니다. 작년 말부터 올해 상반기까지의 한국영화들을 보면서 어떻게 느끼셨습니까. 산업적인 면 외에 질적인 측면에서 듣고 싶습니다.

영화제와 제 영화를 준비하느라 극장에서 제가 마지막으로 본 영화가 ‘숨’이었습니다. 그 이후에 나온 영화는 디비디로 챙겨본 정도입니다. 그 이전까지라는 전제를 두고 말한다면, 한국영화 그 자체의 문제점이라기 보다는 영화에 대한 관객의 태도에 대한 문제점을 말하고 싶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시네마라는 것에 대한 관객의 무관심이 공포스러울 지경에까지 온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괴물’을 예로 든다면, 적어도 작년엔 그 영화를 중심으로 사람들 사이에서 많은 논전이 벌어졌습니다. 그런 논쟁 자체는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괴물’은 1300만명이 들었다는 점을 괄호로 치고 보면, 내러티브의 구조나 비주얼한 형식 등에서 확실히 예술영화이거든요. ‘매트릭스’라는 영화가 그런 걸 생각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에게까지 철학적인 면을 생각하도록 만든 것처럼, ‘괴물’ 역시 ‘왜냐면~’이라고 설명하는 순간 담론을 끌어들여 언술하게 만들었습니다. 영화가 한국사회에서 존재하는 방식에 대해 질문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괴물’의 역할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말부터 분위기가 차갑게 바뀌었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는 마음 편하게 만들었다는 박감독의 말과는 달리 수많은 토론거리를 던지는 영화입니다. 그런데 관객이 토론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겁니다. 이어서 ‘미녀는 괴로워’가 큰 성공을 거둘 때 저는 절망적이라고 봤습니다. 영화를 보고 있는 동안에 이 영화가 그 많은 관객을 끌어들일 때 여기에 뭔가 이야기거리가 있느냐에 대해 저는 아무 것도 부과할 수 없었던 겁니다.



그 다음에 ‘천년학’과 ‘숨’에 대한 차가운 반응이 있었습니다. 담론조차 되지 못한 채 스쳐 지나갔습니다. 요즘 한국영화들은 잘디 잘게 부서진 것처럼 극장을 잠시 채우고 사라지는 느낌입니다. 오늘날 한국에서 비평 담론들이 논쟁을 벌이기 위해서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대해 이야기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된 듯 합니다.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그렇습니다. 이제 대중의 무의식과 욕망을 설명하기 위해서 동원해야 할 영화는 ‘트랜스포머’인 것으로 보입니다. 비극적이지만 사실입니다. 왜냐면 그걸 대중이 바라고 있으니까요. 저는 그 분기점에 있었던 영화가 ‘300’이라고 생각합니다.

한편으론 한국영화가 오늘날 이런 끔찍한 결과를 가져오게 된 출발점이 바로 웰메이드라는 단어가 생기고부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말을 끌어들인 뒤 끝까지 가면, 그 끝 단계에 할리우드 영화가 있는 겁니다. 결국 한국영화 프로듀서들은 새로운 할리우드를 받아들이기 위해서 그동안 노력해온 셈입니다. 그 학습의 결과가 올 여름인 거지요. 그 과정 속에서 우리가 정말 좋아하는 영화에 대한 대중의 대답은 할리우드 영화가 됐고, 이제 한국영화는 서브 텍스트 정도로 재배치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올해 여름이 한국영화계에 굉장히 중요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07. 07. 17.

P.S. 생각밖으로 배울 게 많은 인터뷰이다. 가장 중요한 건 영화에 대한 그의 못말리는 애정. 그 천부적 시네필로서의 열정과 게이트키퍼로서의 의무 사이가 영화평론가 정성일의 자리라는 생각이 든다. 최근 한국영화들에 대한 마지막 멘트는 예상밖의 것은 아니지만 음미해볼 필요가 있는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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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나무 2007-07-18 1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동안 서재가 비었을 때 무지 서운했었습니다. 오래 걸리지 않고 다시 돌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많은 걸 배울 수 있는 인터뷰 내용입니다.

로쟈 2007-07-18 18:42   좋아요 0 | URL
섬나무님 같은 분이 많지는 않겠지만(!) 덕분에, 없는 부지런을 떨게 됩니다. 책임지세욧!..

책읽기는즐거움 2007-07-18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해 볼 만한 글 잘 읽었습니다.
 

쏟아지는 책들은 많고 그걸 소개하는 일만으로도 아마 일주일이 모자랄 것이다(하물며 그걸 다 읽는다?). 한동안 연재하던 '최근에 나온 책들' 소개를 포기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인데, '전업 서재질'을 하지 않는 이상은 관련기사들을 퍼오는 것에 만족해야 할 때가 많다.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 등의 새 번역서에 대해 몇 자 적는 일도 지난주부터의 숙제였는데, 오늘 아침에 다행히 관련기사를 읽게 됐다. 수고를 대신하면서 본격적인 글은 당분간 미뤄놓는다.  

경향신문(07. 07. 16) 루카치·바슐라르·프로이트…거장의 고전들 잇단 재번역

현대 서구 사상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사상가들의 대표작들이 잇따라 재번역돼 나왔다. 게오르그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문예출판사), 가스통 바슐라르의 ‘몽상의 시학’(동문선), 지크문트 프로이트의 ‘성에 관한 세 편의 해석’(을유문화사).

1916년 발표된 ‘소설의 이론’은 헝가리 태생의 마르크스주의 사상가 루카치(1885~1971)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 본래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한 저작의 준비과정에서 나온 이 책은 서구 근대 장편소설에 관한 미학적 담론으로서 고전의 반열에 올라 있다. 특히 1980년대 세상의 문학적 변혁을 꿈꿨던 우리나라 젊은이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이번에 출판사가 정식으로 저작권 계약을 맺고 루카치 전공자인 김경식 연세대 강사(독문학)가 번역했다.

루카치는 이 책에서 왜 소설이 현대의 대표적 문학형식이 될 수밖에 없는지를 역사철학적·미학적으로 밝히고 있다. 그는 소설은 현대의 문제적 개인이 본래의 정신적 고향과 삶의 의미를 찾아 길을 나서는 동경과 모험에 가득찬 자기인식에로의 여정을 형상화하고 있는 형식이라고 정의한다. 우리나라 독자들에게 특히 유명한 본문의 첫 구절은 이번 번역본에서 “별이 총총한 하늘이 갈 수 있고 가야만 하는 길들의 지도인 시대, 별빛이 그 길들을 훤히 밝혀주는 시대는 복되도다”로 옮겨졌다.



‘몽상의 시학’은 과학사가·과학철학자이자 문학 비평에서는 상상력 비평 또는 이미지 비평을 창시한 인물로 널리 알려진 가스통 바슐라르(1884~1962)의 대표작. 그가 타계하기 1년전에 나온 책으로 ‘불의 정신분석’ 이후로 계속된 시적 상상력에 대한 연구의 결정판으로 평가된다. 바슐라르는 이 책에서 플라톤 이래 이데아의 모방에 불과한 가상으로 억압되어 온 이미지가 승리를 구가하는 시대, 철학의 지배로부터 예술의 지배로, 관념의 우위로부터 이미지의 우위로의 이동이 이루어지는 시대를 내다본다. 1978년 고 김현 교수가 번역했던 것을 이번에 새롭게 번역했다.



‘성에 관한 세 편의 해석’은 ‘꿈의 해석’과 함께 프로이트(1856~1939)의 현대 정신분석 이론의 초석을 세운 역작으로 평가되는 작품. 1905년 처음 출간된 이후 프로이트 자신에 의해 20년 동안 수정·보완됐다. ‘성적 이탈’ ‘유아 성애’ ‘사춘기의 재구성’ 등 총 세 편의 논문으로 구성된 이 책은 의식적·무의식적 충동과 행동에 내재하고 있는 억압에 대한 욕구와 정서적 에너지의 근원인 ‘리비도’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김진우기자)

07. 07.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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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장자 읽기'에 이어서 '노자 읽기' 리스트도 만들어보았다. 이 페이퍼는 그 리스트의 배경을 짚어주는 것인데, 교수신문의 서평과 담비의 리뷰를 관련자료로 옮겨온 것이다. 교수신문의 서평은 가장 최근에 출간된 번역서인 최재목 교수의 <노자>(을유문화사, 2006)에 대한 것인데, 이 책은 오늘 손에 들었지만 상당히 공을 들인 역주서로 흡족하다는 인상을 준다. 전문가의 서평을 미리 읽어두기로 한다.

그리고 담비의 리뷰는 노자의 사상이 親유가적인가, 反유가적인가, 하는 오래된 쟁점을 다시 다루고 있는데(이와 비슷한 스케일의 쟁점으론 '주역, 유가의 사상인가 도가의 사상인가'라는 게 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최재목 <노자>의 서평 필자이기도 한 조민환 교수의 <유학자들이 보는 노장철학>(예문서원, 1996) 외에 두 사상의 뿌리를 다룬 방동미 교수의 <원시 유가 도가 철학>(서광사, 1999)도 참고삼아 읽어볼 수 있겠다.

 

교수신문(07. 02. 05) '죽간본' 최초 완역서 - 노자사상의 本意 꿰뚫어

우리가 노자사상을 유가사상과 관련지어 말할 때 일반적으로 한대 사마천(史馬遷)이 ‘사기’에서 “노자를 배우는 사람들은 유학을 배척하고 유학을 배우는 자도 노자를 배척한다(世之學老者, 則絀儒學, 儒學亦絀老子)”라고 말한 것을 떠올리며, 노자는 유가와 대척점에 서 있는 것으로 이해한다. 역사적으로 많은 연구가들이 ‘노자가 과연 그랬을까’ 하고 질문을 하고 그 해답을 구하고자 했지만, 현행본 81장으로 된 ‘노자’를 보면 유가와 대척점에 선 노자의 모습만을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노자’ 연구 가운데 여전히 논란거리가 되는 것은 ‘노자’라는 인물은 과연 어떤 사람이며, ‘노자’ 장의 구분은 오늘날과 같은 형태로 되어 있었는지, 또 ‘노자’가 과연 한사람의 저작인지 아닌지 하는 것이다.

사마천은 ‘사기’의 ‘노자신한열전(老子申韓列傳)’에서 “노자의 성은 이씨(李氏)고 이름은 이(耳)이며, 시호는 노담(老聃)이다”라 하는데, 중국고대의 위대한 사상가 중에 존칭을 나타내는 ‘자(子)’자를 붙인 경우 성이 다른 인물은 노자 한사람 뿐이다. 노자사상을 연구할 때 이미 사마천이 ‘사기’에서부터 제기한 노자라는 인물과 ‘노자’라는 책과 관련되어 제기된 여러 가지 의문에 대한 명확한 답을 얻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1973년 중국 호남성(湖南省) 장사(長沙) 마왕퇴(馬王堆) 한묘(漢墓)에서 비단에 쓰여진 ‘노자’(일명 ‘帛書老子’)의 발굴과 1993년 8월 중국 호북성(湖北省) 곽점촌(郭店村)의 초나라 무덤에서 기원전 4세기 중엽에서 5세기 초 경으로 추정되는 죽간(竹簡)에 쓰여진 ‘노자’(이하 ‘竹簡本老子’로 함)의 발굴은 이같은 의문점에 대한 최소한의 답을 얻을 수 있게 하였다. 특히 ‘죽간본노자’의 발굴은 무덤 속에 진리가 숨어있다는 말을 실감케 한 발굴이었다.

‘죽간본노자’는 ‘백서노자’보다 더 시대적으로 앞선 것으로서, 현행본 ‘노자’와 장·절의 순서 및 사상 내용에서 많은 차이점이 있다는 점에서 기존에 행해진 인물로서의 노자와 책으로서 ‘노자’에 대한 연구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었다. 번역자가 노자의 ‘노’는 성이 아니고 존칭이면서, 노자는 우리가 흔히 쓰는 ‘노선생’ 즉 ‘늙은 선생(Old master)’을 의미한다는 것, 인물로서의 노자와 책으로서 ‘노자’를 분리해서 이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 그리고 원시유가와 원시도가는 사마천이 말하고 있는 것 같이 대척점에만 서 있지만 않았다는 말이 함축하고 있듯이, 기존의 노자사상 연구에 새로운 장을 열게 해준 것이 바로 ‘죽간본노자’인 것이다. 일본이나 중국에서는‘죽간본노자’에 대한 번역 및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에 비하여 우리나라는 그다지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제 이 번역서의 출간은 한국의 ‘노자’ 연구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본다.

역자는 유가·불가·도가 삼가사상에 대한 폭넓은 지식과 중국과 일본에서 행해진 ‘노자’ 관련 연구를 최대한 참조하면서 자구 하나하나에 대해 꼼꼼하게 주석하고 있다. 아울러 노자사상이 갖는 의미를 중국사상을 통관하는 입장에서 해설을 하고 있어 원형으로서의 노자사상과 그 사상이 후대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특히 성인(聖人), 자연(自然), 사(士), 미(美), 정(精), 음(音)과 성(聲)에 대한 자구 풀이에서는 관련 자구에 대한 최근의 연구 경향까지 반영하면서 거의 소논문 수준의 주석을 하고 있다. 저자의 성실성과 해박한 학식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아울러 이 책의 앞부분에서는 지금까지 연구된 노자라는 인물, 책으로서 ‘노자’, 그리고 ‘초간본노자’가 출토됨으로써 얻을 수 있는 내용을 간략하게 잘 정리하여 노자사상에 관한 전반적인 이해를 돕고 있다. 좋은 번역서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노자’는 워낙 다의적으로 해석되고 따라서 어떤 책보다도 주석서가 많다. 이런 점을 감안 하더라도 전반적으로 노자사상의 본의에 가깝게 번역된 이 번역서에서 크게 문제가 될 것은 없다. 동양철학자이면서 시인이기도 한 번역자의 절제된 언어와 맛깔스런 번역이 노자사상의 묘미를 잘 느끼게 해 준다. 다만 역주에서 또 다른 번역의 가능성이 있음을 말하지만, 현행본 ‘노자’ 19장(죽간본: ‘返也者, 道僮也’)의 ‘반(返)’자를 풀이할 때 ‘반대되는 것이 도의 움직임이다’고 한 것은 역자가 해설 부분에서 “‘반(反)’은 도의 기능적 측면을 말한 것이다”라고 말하듯이 ‘반대(反)’라는 의미보다는 ‘되돌아감(返)’으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가 더 있지 않을까 하는 점만 거론하고자 한다.(조민환/ 춘천교대 - 동양철학)

담비(07. 03. 20) 老子는 親유가적인가 反유가적인가

1993년 중국에서 '노자' 연구자들의 가슴이 콩닥콩닥 뛰고 심한 이들은 다리 힘이 쪽 빠질만한 일이 발생했다. 호북성(湖北省) 곽점촌(郭店村)의 전국시대(기원전 475~221) 중기 무덤에서 죽간으로 된 '노자'의 또 다른 판본이 발굴된 것이다. 이후 노자 학계는 충격과 엄청난 후폭풍에 휩싸였다.

'노자'엔 다양한 판본이 있다. 모두 81개 장으로 이뤄진 이 텍스트는 주로 왕필이 주석을 붙인 ‘왕필본’에 근거해 해석돼왔다. 왕필(226~249)은 남북조시대에 살았던 요절한 천재로서 그의 주석은 '노자'를 형이상학적 수양론의 결정판으로 해석하게 된 기원을 이룬다.



그러나 1973년 중국 남부 장사(長沙) 마왕퇴(馬王堆)의 무덤(기원전 168년)에서 비단에 쓰인 2종의 ‘노자’(帛書本)가 출토되었다. 학계가 깜짝 들썩였지만 왕필본과 비교해볼 때 道經과 德經의 순서가 바뀌고 글자 일부분이 다른 점을 제외하면 백서본과 왕필본 사이의 차이는 크지 않았다.



그런데 다시 20년 뒤인 1993년 ‘노자’의 일부분이 들어 있는 대나무 문서(竹簡)가 발굴된 것이다. 학계는 뭐가 많이 다르겠냐 싶었지만, 이번엔 정말 많이 달랐다. 무엇보다 '노자'에서 儒家를 강하게 비판한 부분은 다 빠져있어 '노자'라는 텍스트가 후대에 많이 개정, 첨가된 것이라는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곽점본과 왕필 및 백서본(이하 합쳐서 통행본)의 내용을 비교하는 연구들이 줄지어서 나왔다. 지난 10년간은 주로 글자를 해독하는 등 텍스트를 확정짓는 연구들이 주로 나왔다면, 근자에는해독된 내용을 바탕으로 '노자'라는 텍스트의 위상을 재규정하는 과감한 주장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최근 두 명의 학자가 곽점본과 통행본을 비교하는 논문을 나란히 발표해 주목을 끈다. 하나는 임헌규 강남대 교수가 학진 프로젝트로 수행해 최근 '동양고전연구' 제25집에 발표한 '노자의 무위이념은 유가의 인의를 비판하는가?'라는 논문이고, 다른 하나는 오상무 고려대 교수가 지난해 미국 스탠포드대에서 열린 학술대회에서 발표하고 최근 '동양철학' 제26집에 수정보완해 실은 '노자의 유가관 재론-통행본과 곽점본을 중심으로'이다.

그러나 두 학자가 곽점본을 읽고 내린 결론은 서로 상반되는 감이 있어 이를 둘러싼 학계의 논쟁이 예상된다. 임 교수는 곽점본이 시기적으로 가장 이른 노자 판본이라고 볼 때 노자가 반유가적이라는 기존 견해는 잘못된 것이며, 오히려 노자는 친유가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에 비해 오 교수는 비록 노자 곽점본은 유가에 대해 덜 적대적이지만 유가의 통치술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었다는 결론을 낸다. 또한 두 교수는 한자 해석 방법에서도 차이를 드러내고 있어 논란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먼저 임 교수의 논의를 보자. 핵심은 기존 통행본의 제38장이다. 여기에 "道를 상실한 이후에 德이 있게 되었고, 덕을 상실한 이후에 仁이 있게 되었고, 인을 상실한 이후에 義가 있게 되었고, 의를 상실한 이후에 禮가 강요되었다. 대저 예라는 것은 忠信이 엷어진 것이며 어지러움의 머리이다. 미리 아는 것은 도의 헛된 꽃이며 어리석음의 시작이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임 교수는 이런 노자의 인, 의, 예에 대한 비판이 정당한가를 살핀다. 공자는 '논어'에서 "仁은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에 인간이 인을 실행할 때 편안할 수 있다"라고 했으며 공자를 이은 맹자 또한 "仁은 인간의 편안한 집"이라고까지 천명했다. 맹자는 도처에서 인을 식물, 나무, 생장하는 곡식 등 유기체에 비유하면서 인의 실천은 유기체의 성장, 실현, 성숙과 같이 자연스럽게 진행되는 것임을 역설했다.

이를 통해 볼 때 "仁이 실행하는 의지에 의해 실천된다고 주장한 노자의 주장은 잘못"이라는 게 임 교수의 견해다. 또한 義가 仁의 외표라는 점에서 의 또한 인간의 내적 본성에 말미암아 마땅히 가야하는 바른 길이지 강압적인 것은 아니었기에 노자의 유가비판은 전반적으로 오해나 악의적 왜곡에 가깝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죽간본에는 이 38장이 빠져있다. 여기서 임 교수는 이것이 후대에 덧붙여진 것이라는 입장을 보인다. 통행본에는 죽간본에서는 보이지 않는 구절들을 덧붙인 부분이 꽤 보인다. 게다가 글자를 교묘하게 바꿔서 뜻을 완전히 틀어놓는 경우도 발견되는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18장에 나오는 아래와 같은 경우이다.

죽간본 : 그러므로 大道가 행해지지 않는데 어찌 仁義가 있겠는가? 육친이 불화한데 어찌 효자와 자애로운 부모가 있겠는가? 나라가 혼란한데 어찌 올바른 신하가 있겠는가?

통행본 : 大道가 행해지지 않자 인의가 생겨났고, 지혜가 나오자 큰 거짓이 생겨났고, 육친이 불화하니 효성스런 자식과 자애로운 부모가 있게 되었으며, 국가가 혼란하니 충신이 있게 되었다.

죽간본에는 "故大道廢 安有仁義"라고 돼 있는데 통행본에는 "大道廢 有仁義"라고 두 글자가 빠짐으로써 뜻이 위에서 보듯 확 달라졌다. 통행본에서는 道가 仁보다 더 상위의 가치라는 점이 강조된 것이다. 임 교수는 이를 이데올로기적 투쟁 때문에 개작을 통해 본문을 반유가적으로 바꾼 결과라고 해석한다.

임 교수는 이외에도 많은 부분들을 대조하여 노자의 無爲之道가 유가의 仁政과 전혀 상반되지 않고, 오히려 상호 부합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흔히들 도가는 '도'를 자연물인 天地보다 선재하는 것으로 상정하여, 道 => 天地 => 萬物로 내려오는 형식을 취하는 반면, 유가는 천지에서 만물로 내려오는 우주발생론적 체계를 취하고 있다고 간주되어 왔다. 그리고 도가는 무위를 최상의 이념으로 하며, 따라서 정치 역시 무위정치를 이상으로 한다고 간주되어 왔다.

이에 비해 유가는 인을 최상의 덕목으로 하면서 인정을 정치이상으로 주장하였다. 하지만 단순한 문자상의 차이를 버리고 그 근본정신과 거시적인 체계에서 보면 비슷하다는 게 임 교수의 입장. 도가에서 道가 자연물인 천지를 넘어서는 生生하는 자연 그 자체이듯, 유가의 天 또한 그러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오상무 교수의 의견은 좀 다르다. 임 교수가 도가와 유가의 유사점을 강조했다면 오 교수는 그 차별성을 여전히 강조하는 입장이다. 가장 확연한 부분은 앞에서 언급한 "故大道廢 安有仁義"에 대한 해석이다. 임 교수는 여기서 '安'을 의문대명사 "어찌"로 해석했다. 그런데 오 교수는 전후맥락상 볼 때 "어찌"보다는 연결조사 "이에"로 해석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입장이다.

오 교수는 그 근거로 이 18장이 내용상 17장을 잇고 있으며, 17장에 '安'이 명확하게 '이에'로 쓰이고 있기 때문이라는 점을 들었다. 만약 '安'을 '이에'로 본다면 "위대한 도사 폐기되면 이에 인과 의가 생겨난다. 가족이 화목하지 않으면 이에 효와 자가 생겨난다"로 죽간본과 통행본 사이에 변별점이 없다. 이런 견해에 대해 임 교수는 어떤 입장을 보여줄 지 궁금하다.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굳이 뜻이 다르지 않은데 왜 후대에 이 '安'자를 없애버렸는가 하는 점이다. 좀더 깊이 있는 토론이 필요하다.

아무튼 오 교수는 이런 입장에서 보듯 곽점본 노자 또한 유가에 대해 유보적이라고 본다. 다만 유가의 통치론에는 비판적이지만, 도덕론에는 동조적이라는 선에서 논의를 마무리짓는다.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단적으로 표현한다.

"노자가 仁을 끊고 義를 버려라고 말했을 때 그 청자가 누구인지를 파악해야 한다. 그것은 다름아닌 군주이다. 다시 말해 인과 의를 버려야 할 사람은 군주이지 백성들에게 인과 의를 행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통치자가 인의의 통치방법을 버릴 때 백성들은 자연스럽게 효의 마음과 행위를 회복하게 될 것이라는 게 노자의 본의이다."

과연 이를 보면 노자는 유가의 '仁'이라는 덕목 자체는 인정했지만, 그것을 통치술에 활용하는 '仁政'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었다. 그런데 임 교수는 '곽점본' 노자로 볼 때 노자 또한 '인정'을 비판한 것은 아니었다라고 해석한다. 과연 노자라는 텍스트는 어떻게 이해되어야 할까. 학계의 좀더 깊이있는 토론이 요구되는 시점이다.(리뷰팀)

07. 07. 16.

P.S. 비전문가로서 <노자> 텍스트 비평에 대해서는 깊은 관심을 갖기 어렵고 대신에 노자 사상/철학의 '해석'의 문제에 주의를 두게 되는데, 나의 견문으로 가장 흥미로운 것은 강신주의 <노자: 국가의 발견과 제국의 형이상학>(태학사, 2004)이다. 이 또한 '당신이 없는 사이에' 출간된 책이어서 최근에야 그 존재를 알게 됐는데, 책의 타이틀 자체가 상당히 '모던'하면서 파격적이다. 흔히 '형이상학'으로 이해되는 노자철학을 '정치철학'으로 재해석하는데, 그런 시각에서 보자면 <도덕경>은 가령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같은 책이라는 것이다. 관련학계의 반응은 어떤 것인지 궁금하지만 그런 '반응'을 따로 알 길이 없어서 리뷰 기사 정도만을 옮겨놓는다.

문화일보(04. 05. 14) 군주의 통치윤리로 ‘老子’ 뒤집어 읽기

2000년대 들어 우리 사회와 대중의 지적 호기심을 환기시켰던 흐름 중 하나로 중국 전국시대 사상가인 노자에 대한 관심을 들 수있다. 공중파 방송을 통해 대중들에게 ‘노자 열풍’을 지피는 데 공헌한 도올 김용옥 전 고려대 교수 외에도 국내외 수많은 연구자가 노자의 사상이 담겨 있다는 텍스트 ‘노자’에 주목했으며 나름대로의 관점에서 이를 해석한 다양한 책을 끊임없이 내놓아 왔다. 이에 따라 과거에 양생술(養生術)이나 통치술, 처세술, 무(無)의 형이상학, 마음의 수양론 등으로 이해해온 데서 나아가 최근에는 유토피아적 무정부주의나 생태철학, 페미니즘의 이론적 기초로 보는 견해까지 등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노자를 해석하는 다양한 관점이 존재하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노자 이해의 주류를 이뤄왔던 것은 중국의 보편적인 형이상학 또는 형이상학적 수양론의 결정체로 보는 견해였다. 이는 지난 2000년 가까이 노자 이해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 중국 위진 남북조시대 왕필(226~249)이라는 천재가 18세에 붙인 주석의 탓이 크다. 노자의 사상을 ‘개인’의 관점에서 조망함에 따라 일반 대중에게 ‘노자’는 무욕(無欲)의 삶을 설파한 마음의 수양론 정도로 받아들여졌다. 모든 개인에게 바람직한 삶의 가치를 전해주는 교훈서 또는 ‘삶의 기술’을 통찰해낸 성인(聖人)의 글로 이해돼 왔던 것이다.

이에 반해 책은 개인이 아닌 ‘국가(state)’의 관점에서 ‘노자’를 해석하면서 기존의 노자 이해에 대한 전복을 시도하고 있다. 연세대 대학원에서 장자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는 전쟁과 살육, 주장과 논쟁으로 뜨거웠던 중국 전국시대의 혼란과 갈등을 국가라는 관점에서 조망하고 국가의 논리를 비교할 수 없이 정교하게 숙고한데서 ‘노자’의 의미를 발견해낸 것이다. 물론 ‘노자’라는 텍스트에서 국가라는 관점을 찾아낸 것이 저자가 처음은 아니다. 한비자(韓非子) 이래 최근까지 많은 철학자가 ‘노자’에서 국가를 읽어냈지만, 이들의 작업은 그동안 통치술로 가치폄훼돼온 현실에서 보듯 뚜렷한 한계를 갖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는 우선 20세기 후반 중국에서 새로 발견된 판본들을 통해 기존 노자 이해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독자들에게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모두 81개 장으로 이뤄진 ‘노자’란 텍스트는 그동안 주로 왕필이 주석을 붙인 ‘왕필의 판본’에 근거해 해석돼왔다. 그러나 1973년 중국 남부 창사(長沙) 마왕두이(馬王堆)의 무덤(기원전 168년으로 추정)에서 비단에 쓰인 2종의 ‘노자’ 백서본(帛書本)이 출토되고 다시 20년 뒤인 93년 허베이성(湖北省) 곽점촌(郭店村)의 전국시대(기원전 475~221) 중기 무덤에서 ‘노자’의 일부분이 들어 있는 대나무 문서(죽간·竹簡)가 발굴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결국 우리는 ‘노자’에 대한 상이한 판본을 3종류 가지게 됐는데, 도경(道經)과 덕경(德經)의 순서가 바뀌고 글자 일부분이 다른 점을 제외하면 백서본과 왕필본 사이의 차이는 크지 않다. 반면 곽점본의 경우 백서본과 달리 유가사상에 적대적이지 않고 유(有)와 무(無)가 존재론적으로 동일한 위상을 가지는 등 몇가지 사상적인 차이점이 나타난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따라서 저자는 이상의 두가지 사실을 염두에 두고 ‘노자’ 81장을 포괄적이고 하나의 연결된 문맥으로 독해할 것을 주장한다. 81개 장 전체를 동일한 비중으로 고려하지 않았고 “도라고 할 수 있는 도는 영원한 도가 아니다(도가도비항도·道可道非恒道)”와 같이 일부 몇몇 장만 핵심적인 장으로 간주해 온 것이 기존 노자 이해 의 문제점이란 것이다.

모두 10장으로 구성된 책에서 저자는 ‘노자’라는 텍스트의 핵심을 통치자와 피통치자 사이의 교환의 논리를 발견한데서 찾고 있다. 군주가 통치자라는 자리에 오래 있기 위해서는 세금의 대 가로 무엇인가를 피통치자들에게 주어야 하며, 만약 이 교환의 논리를 어기게 되면 군주는 결코 통치자의 자리를 유지할 수 없음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마키아벨리와 가라타니 고진, 라이프니츠 등의 저작과 사상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저자는 노자가 유가와 법가를 비판적으로 종합해 사랑과 폭력을 적절하게 구사하는 제국의 논리를 제공했으며, 이는 한(漢)제국을 거쳐 현재 중국에 이르기까지 중국적 제국의 논리로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고 설명한다. 저자에 따르면 자연히 ‘노자’에 나오는 수양론도 대상이 군주에게만 해당하는 것으로 제한된다.



이와 함께 장자 연구자인 저자는 노장(老莊)으로 한데 묶어 이해해온 도가(道家)라는 범주가 해체돼야 한다는, 일반 독자들에게 매우 도발적으로 들리는 주장을 제기한다. 군주와 국가의 철학자
였던 노자와 단독적인 개체와 삶의 철학자였던 장자를 함께 도가 또는 노장사상으로 부르는 것은 사마천의 분류를 그대로 받아들인 것일 뿐 순자(荀子)의 저서나 ‘장자’를 정밀하게 독해하면 노자와 장자가 별개의 학풍에 속하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기존 노자의 해석과는 판이하게 다른 저자의 주장이 일반 독자들에게 당황스럽게 비쳐질 수도 있다. 그러나 최근의 ‘노자 열풍’ 속에서 노자에 덧씌워진 각종 신비한 외관을 벗겨내고 그의 철학을 비판적으로 바라보자는 저자의 주장은 독자들이 음미할 가치가 충분히 있을 것으로 보인다.(최영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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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7-16 21:52   좋아요 0 | URL
장자에 이어 노자까지 자꾸 제 가슴에 불을 지피시는군요. 둘 다 매우 관심있고 파들어가보고싶은 매력적인 철학자입니다. 저도 겉핥기 정도의 지식 밖에는 없죠. 장자와 노자는 공부하려면 좋은 텍스트들이 참 많습니다. 지적하신 강신주씨 같은 경우 <도에 딴지걸기 노자와 장자>를 통해서 자신의 주관적인 견해도 섞어가면서 재밌게 노자와 장자를 비교하기도 하고요.

로쟈 2007-07-17 00:47   좋아요 0 | URL
제가 방화까지 하다니요!^^; <장자 & 노자>는 저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저자가 보다 면밀한 책을 써서 중국이나 미국에 자신의 학설을 소개하는 게 어떨까 싶었어요...

가넷 2007-07-17 00:35   좋아요 0 | URL
장자와 노자 아닌가요...^^;

로쟈 2007-07-17 00:47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노자읽기 2007-09-18 22:39   좋아요 0 | URL
아마도 일년전 쯤 노자, 곽점초간, 백서, 통행본을 완독, 비교 연구해 본다고 했던 사람입니다. 최근에 그 작업이 거의 끝나가고 있습니다. 일년의 소회라 하면, 생각보다, 현대 우리는 한문 독해 능력이 참 떨어진다는 생각입니다 .
임교수님과 오교수님의 논쟁이라면, 저는 오교수님의 입장입니다 .참고로 백서의 표현은 '책상, 밥상, 안석 안案'이라 했습니다. 번역해 보면 큰 도가 기울고(大道廢), 책상, 밥상피고, 안석 기대고 인, 의를 잡고 있다(案有仁義)는 것입니다 즉 오교수의 번역에서 제 번역은 더 나아간 것인데, 큰 도가 짓밟고(大道發), 편안히 인, 의를 가졌다(安又{身心}義)는 것입니다. 이는 사실, 기존 통행본 도덕경에, 安, 案이 없는 것 보다 더 파격적이고, 심한 비꼼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도덕경은 安, 案을 누락해서 더 순화된 표현을 썼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유가와 도가의 대립점이라면 유가 또한 무위를 주장하기도 하여 무엇보다, 무위냐, 유위냐의 대립이 아니라, 正名과, 無名이의 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유가는 배워서 더 잘 이름을 알고 이름에 걸맞게, 즉 왕은 왕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백성은 백성답게 살자는 것이고, 도가는 억지로 끌어 올려 배워 익히지 말고, 왕도 스스로 고아, 과부, 나쁜 놈으로 부르며 외롭고 천하니, 이름을 가리지 말고, 날마다 비워, 스스로 그러한 바 대로 내 맞겨도 왕은 왕이고, 신하는 신하고, 백성 또한 스스로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말 나온 김에 이를 다시 법가와 비교하자면, 법가는 刑名이라, 이름을 벌준다(?!)는 것이니, 신하가 신하 답도록, 백성이 백성 답도록 상벌을 명확히 해 다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최근 저도 강신주님의 책을 읽었습니다. 그 책에서 가장 탁월한 관점은 아마도 무뮈무불위에서, 무불치지나, 무소불위와 같은 개념이 나와서, 통치론으로 노자가 '활용'되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강신주 님은 아예 노자가 곧 이러한 통치론, 심지어 파시즘적 철학을 가지고 있다고 강론하지만 말입니다 .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사실에 입각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무이무불위가 나오는 장은 도덕경에서 딱 두 장인데, 첫 째는 37장에 도상망위편이고, 두 번째는 48장에 위학자일익편입니다. 그런데 48장에는 초간부터 而亡丕爲가 있는반면, 37장에 而無不爲는 현행 도덕경에서 덧붙은 것이라는 점입니다. 사실 초간에는 아닐 不이 아니라 커질 丕를 쓰고 있으니, 짓길 잃고도 짓기가 커지길 잃는다는 뜻이거나, 丕가 혹 不의 필사 중 오기라면, 짓길 잃고도 짓지 않기를 잃는다는 뜻으로 행위를 잃었는데도 행위하지 못함이 없다(無弗爲; 사실 이렇게 못한다는 것이라면, 不이 아니라 弗이라 해야 합니다. )는 뜻이 아니라, 행위를 잃고 또, 행위 하지 않아야 함에서 자유롭다는 뜻일 수 있습니다. 대게 사람은 무엇을 한사코 하고자 하면서 동시에 무엇을 한사코 하지 않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48장에서는 이는 직접 도를 말하는 술어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도를 무위라 여기게 된 것은 [도덕경] 37장에서 道常無爲而無不爲라 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25장 도법자연 구를 덧붙여, 우리는 현재 道는 無爲自然이라고만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백서 갑이나, 을은 모두 '도항무명'이라 했으니, '이무불위'라는 구절이 없다는 것입니다. 더 흥미로운 것은 초간은 예초에 道를 말한 것도 아니고, 행위의 도인 갈 행行 가운데 人을 끼워 넣은 글자, 지금은 쓰이지 않지만, 구전에, '도 인'자라는 것을 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초간에선 그럼 이 행위의 도와 노자의 도가 같은 것인가? 이는 똑같은 형식으로 즉 인항무뮈와, 도항망명이라 한 장을 비교해 알 수 있는데, 결론 부터 말하면 초간은 도와 인을 같이 보지 않고, 인을 도에 못 미치는 것으로 봤다는 것입니다. 초간 12편(도덕경 32장) 망명의 도는(道恒亡名) 종놈이고(僕), 단지 점괘를 전하는 여자일 뿐이라고(唯{卜曰女}, 천지가 감히 신하삼지 못하고(天地弗敢臣), 만가지 날림들이 스스로 집안에 재물인데(萬勿將自{宀貝}) 비해, 37장에 인용된 초간에선, 행위의 도인 인은 항구히 짓기를 잃어({行人}恒亡名, 후황이 지켜지는 것임에도(侯王守之) 그래도 만가지 날림은 스스로 마음 짓고(而萬勿自{爲心}, 마음 짓고도 욕망을 갑자기 일으키니({爲心}而慾作}, 이름 잃은 깨침인 것으로써 바로 잡아지는 것({貞之以亡名之박}이라 했습니다. 그러나 백서에서는 이제, 행위의 도인 인과 망명의 도가 구별되 쓰이지 않고, 오직 도만이 쓰이게 되었고, 그래도 백서는 이를 차마 无爲라 하지 못하고, 오직 無名이라 옮기게 되니, 이미 망명인데, 다시 망명지박으로 바로 잡아야 한다는 모순에 빠지게 됩니다. 그렇다고 통행본처럼 다시 초간을 따라, {行人}이 이미 道라 바뀐 상황에서 무위라 하는 것 역시, 상황을 반전시키지 않았으니, 통행본은 도가 늘 함이 없고, 게다가 하지 못함이 없어, 후왕이 이를 잘 지키고(侯王守之) 만물도 장자 스스로 잘 바뀌는데(萬物將自化), 바뀌다가 "아무 이유 없이" 갑자기 욕망이 일어나고(化易欲作), 그러면 내가 이름 없는 통나무 인 것으로 누르는 것이라 하게 된 것입니다. 즉 통행본의 논리 속에서도 무위이무불위 한 도는 다시 무명지박의 힘을 빌어야 하는 만큼, 無所弗爲, 無弗治之한 것이 아니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래 백서가 도를 차마 무위라 하지 못하고 논리적 모순이 있더라도 한사코 망명이라 한 것은 결국 도는 초간이나, 백서나 망명의 도라 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무위를 무불치지로 착각하여 통치술로 본 것은 법가의 오해라 할 수 있다는 것 입니다. 사실 초간에서는 治자가 쓰인 적이 없고, 바로 잡아서 나라를 좌지우지 하고(以正之邦), 창을 크게 구부려서 병장을 꿰고((以{奇戈}甬兵), 기원해 섬기길 잃고서 천하를 취한다고, 나라를 다스리는 일과, 병법과, 천하를 취하는 일이 다르다 구분했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서 천하를 천자 또는 황제가 다스리는 천하로 본다면, 어쩌면 비약일 수 있습니다. 혹 춘추전국시대 천하를 주유했던 모든 유가들이 재패하길 소망하는 바, 당대의 세계, 세상을 말한다고는 할 수 있습니다. 설혹 초간에서 백서로의 변화가, 혹 정치적 관심에서 비롯한 것이라 할 지라도 그것이 유독 법가적 관심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정밀한 문헌적 검토가 필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노자, 특히 전국시대 백서 노자를 법가라 보는 김홍경씨나, 강신주님의 책에는 그러한 문헌적 검토가 없는데다, 이를 테면, 한 고조본 즉 백서 을 노자를 전국시대 노자로 보는 착각을 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대게 도덕경에 꿰어 맞추어진 현행 백서 노자 번역본을 빌어 쓰다 보니, 현행 도덕경을 전국시대 노자라 우기는 사태도 비일비재하게 됩니다 . 무엇보다, 강신주님이나, 김홍경씨가 증명해야 할 것은, 노자를 통치이념으로 써서, 춘구전국시대 '파시즘'을 구가한 군주나 그러한 통치예가 있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 아다시피 현행 [도덕경]을 정리한 한 고조의 네째 아들 문제는 노자를 좋아하여 법령을 간소히 하고, 함이 없는 정치를 행하다, 비록 명을 길게 하여 제위기간은 좀 길었을 지언정, 흉노의 침입과 귀족들의 반란을 막지 못하였다는 것은 모두가 다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지만 말입니다.

로쟈 2007-09-18 22:33   좋아요 0 | URL
댓글로 카바될 수 있는 내용은 아닌 것 같습니다(책으로 내시는 건가요?). 저야 '관전자'의 입장지만, 부엌데기님의 입론을 기대하게 되는군요.^^

노자읽기 2007-09-18 22:43   좋아요 0 | URL
그랬으면 좋겠지만, 내 줄 데가 없는데요... ^_^ 아무려면 어떻습니까?! 수천년간 그 이해가 답보 상태였던, [노자]를 이해할 수 있었다는 것 만으로도 제겐 정말 행복한 '삼 년'이었습니다.

2007-09-18 22: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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