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시사IN에 실은 서평기사를 옮겨놓는다. 천정환의 <대중지성의 시대>(푸른역사, 2008)에 대한 것인데, '평'까지 할 만한 분량은 아니고 대략 책의 인상 정도를 전하고 있다. 지난주 아침에 기사를 송고한 날 오후에 아주 우연히 저자를 만나 담소를 나누기도 했다. 그런 우연도 있는 것이다.

시사IN(08. 11. 29) 아래로부터의 '앎의 문화사'

“경계 허문 총체적 지식이 새로운 부와 권력 낳는다.” 지난 10월 서울의 한 특급호텔에서 개최된 ‘세계지식포럼’의 화두였다. 세계적인 석학과 정부 및 비정부기구 대표, 기업대표를 비롯하여 3000명이 넘는 사람이 참가비 275만원씩 내고 ‘세계 최고의 지식을 공유하는 자리’인 이 ‘지식 축제’에 참여했다고.

저자는 지식과 지식경제, 그리고 지식의 문화사와 근대적 지식 주체의 문제를 종횡하기 위한 서두에서 먼저 이 행사의 의미에 대해 따져본다. ‘지식은 돈이다’라는 우리시대의 지배적 발상과 사고, 그리고 그 실행이 ‘앎의 문제’에 대한 사회사적 관심을 부추기기 때문이다. 발상을 뒤집으면, 돈이 안 되면 지식도 아니라는 얘기 아닌가.

하지만 지식이 언제나 돈이 되고 권력이 되었던 건 아니다. 학자의 대명사인 괴테의 파우스트만 하더라도 무대에 처음 등장하자마자 이런 한탄을 늘어놓지 않았나. “아! 나는 철학도, 법학도, 의학도, 심지어는 신학까지도 온갖 노력을 다 기울여 철저히 공부하였다. 그러나, 지금 여기 서 있는 나는 가련한 바보. 전보다 똑똑해진 것이 하나도 없구나!” 요컨대 파우스트가 보기에 지식은 쓸모가 없으며 헛되고 헛되다.

그렇지만 지금의 시각에서 보자면, 파우스트는 시대를 잘못 만났을 따름이겠다. 이 대단한 ‘석학’은 철학가(철학자가 아니다!)에다 변호사에다 의사, 게다가 목사까지 겸업할 수 있을 테니 대번에 부와 권력을 쥐고 세계지식포럼의 초빙 강연자로 나설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듯 지식의 가치는 역사적으로 변화해왔으며 또 지식이라고 해서 모두 같은 값이 매겨지는 것도 아니다.  

저자가 그려내는 ‘문화사로서의 지식사’는 이러한 지식 가치의 변동과정을 다루면서 동시에 지식 가치의 이분법을 넘어선 지식 주체의 문제, 곧 ‘누구의 지식인가’를 문제 삼는다. 천재적인 개인과 권력의 시혜를 통해 이루어진 ‘지성사’가 아니라 “다양한 다수의 사람들이 소유한 지식과 그 앎-문화의 변동”에 초점을 맞춘다. 소위 ‘아래로부터의 지성사’다.

이 새로운 지성사가 드러내주는 바에 따르면 ‘대중지성’은 인터넷시대의 전유물도 그 부산물도 아니다. 1900년대의 민간학교와 1920년대의 독서회와 야학, 그리고 1970년대 노동야학과 1980년대 대학가의 ‘학회’와 ‘세미나’의 전통을 저자는 ‘자율적인 앎의 네트워크’를 구성하고자 했던 대중지성의 역사라고 새롭게 자리매김한다. 이 땅의 대중은 “책을 불태우고, ‘표현’을 금지하며, 문체를 억압하고, 시키는 대로만 글을 쓰게 했던” 봉건왕조와 일본 제국주의, 군부독재에 맞서 끊임없이 대중지성의 공간을 확보해왔다. 부와 권력을 낳는 지식만이 아닌 소통과 연대를 위한 지식도 있다는 걸 책은 웅변한다.

08. 1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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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집단 지성이냐 개인적 성찰이냐
    from 서울비 2008-11-26 23:08 
    1. 애들이 모두 선생님에게 아이스크림을 사달라고 조른다. 선생님이 반대한다. 왜냐하면, "아이스크림은 건강에 좋지 않으며, 아이스크림이 건강에 좋지 않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사실이기 때문이다." 2.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의 정의 중, Collective intelligence (CI) can also be defined as a form of networking enabled by the rise of communic..
 
 
 

미국의 저명한 법철학자이자 정치철학자 로널드 드워킨 교수가 한국학술협의회의 석학연속강좌에 초빙을 받아 지난주에 내한했다. 인권, 정의, 평등이 이번 강좌의 키워드인 듯하다. 강연회는 가보지 못했고 관련기사만 찾아 스크랩해놓는다. 그의 책은 <법의 제국>(아카넷, 2004), <자유주의적 평등>(한길사, 2005) 등이 소개돼 있는데(나는 사놓기만 하고 아직 읽진 못했다) 낙태와 안락사 문제를 법철학적으로 다룬 <생명의 영역>도 소개될 예정이라고 한다. 몰아서 읽어보면 좋겠다.

한겨레(08. 11. 21) 국민 분열시키면 ‘인권침해 정부’

“인권의 보편성을 이야기하려면 종교처럼 우리를 분열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통합해주는 것에서 논의를 시작해야 합니다.”

한국학술협의회와 대우재단 초청으로 방한한 로널드 드워킨(77·사진) 미국 뉴욕대 교수는 20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연 공개강연에서 “무엇이 진정한 인권인가를 확인하는 데 도움을 줄 ‘인권의 일반이론’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인권의 중요성과 보편성을 강조하기 위해 신이나 종교에 호소하는 것은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존 롤스(1921~2002)를 잇는 자유주의 정치철학의 거두로 평가받는 드워킨 교수는 <자유주의적 평등> <법의 제국> 등의 저서를 통해 인간의 가치와 권리에 대한 존중과, 자유의 원천인 ‘자원’의 고른 분배를 핵심으로 하는 ‘자유주의적 평등론’을 주장해왔다.

‘인권이란 무엇인가’ 주제의 이날 강연에서 그는 “국가가 국민을 평등하게 배려하고 존중하지 않는다면, 국민에게 부과되는 어떤 강제나 의무도 도덕적 권위를 갖지 못한다”며 “이런 평등한 배려와 존중의 기준이 되는 것이 인권”이라고 말했다. “어떤 계급이 다른 계급보다, 신자가 비신자보다, 아리안족이 셈족보다, 백인이 흑인보다 우월하다는 가정에서 드러나는 것과 같은, 노골적인 편견과 차별 행위가 바로 이론의 여지 없는 인권침해다.” “언론·표현·양심·정치활동·종교의 자유처럼 삶에 대한 시민의 자기책임과 관련된 권리를 침해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는 무엇보다 유럽과 미국의 학자·사상가들이 인권을 기독교적 전통과 결부짓는 것을 강하게 비판했다. 인권이 종교에 기초를 두고 있다고 가정한다면 필연적으로 ‘자기모순’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인권이 종교적 기초를 갖고 있다는 생각이 아주 오래된 것이며, 일면 유용한 점도 있다고 인정하지만 중요한 것은 신의 권위에 기대서는 윤리적 이상이나 도덕적 권리를 전혀 지탱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는 “모든 사람이 평등할 인권을 갖는다는 것은 정부가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은 소득을 보장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언제 닥칠지 모르는 불행에 대해 똑같은 힘을 가지고 대응할 권리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라며 “다음 강연에서 평등에 대한 생각을 구체적으로 밝히겠다”고 말했다. ‘우리는 평등에 대한 인권을 갖고 있는가’라는 주제로 진행되는 두 번째 공개강연은 21일 오후 3시 서울 안국동 헌법재판소에서 열린다.(이세영 기자)

고대신문(08. 11. 09) 법철학으로 푸는 실제 법률 문제

<Life's Dominion>에서 로널드 드워킨(Ronald Dworkin)은 낙태와 안락사를 법으로 허용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하고자 하는데 이 책의 주제 보다 더욱 매혹적인 것은 장중하면서도 집요한 논증방식이다. 드워킨(Dworkin)은 하버마스(Habermas) 및 롤스(Rawls)와 함께 칸트의 철학을 법학적으로 계승한 가장 유명한 법철학자 중의 한 명이다. 이들이 2008년도의 한국에 중요한 이유가 있다.

국민이 법원이 내놓는 판결과 국회가 만드는 법률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법실증주의자들은 ‘악법도 법이다’라며 실정법의 정확한 이해만을 고집하고 법현실주의자들은 ‘법은 결국 정치이다’라고 하며 권력을 쟁취하는데 몰두하고 있을 때 국민들은 법에 대한 신뢰를 잃게 된다. 이런 와중에 이들 삼총사는 ‘법은 도덕적 원칙이다’라고 말함으로써 그리고 ‘도덕적 원칙이기 때문에 이성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라고 말함으로써 국민들이 법을 두려워하지도 도구로 보지도 않으면서 법을 자발적으로 경외하면서도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는 노력을 할 수 있게 한다.

하버마스는 ‘이상적인 대화의 원칙(discourse principle)’으로, 롤스는 ‘무지의 베일(veil of ignorance)’의 가정으로, 드워킨은 ‘정합성(integrity)’등의 절차적 원칙들은 모두 칸트가 순수이성의 작용을 통해 도출했다고 주장하는 ‘정언명령(categorical imperative)’에 대응되는 것들이다. 즉 법을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이해할 수 있는 원칙으로 만드는 절차적인 요건들을 제시한 것이다. 이중에서도 유일하게 변호사이기도 한 드워킨은 자신의 법철학을 실제 법률문제를 적용하는 모습을 보여주어 독자들을 기쁘게 하는데 바로 이 책을 통해 우리는 그의 법철학의 힘을 느낄 수 있다. 책의 내용을 설명하여 서스펜스를 망치기 보다는 드워킨이 고안한 매혹적인 개념들의 쌍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첫째, 드워킨은 낙태를 반대하는 근거에 대해 생각할 때 태아 생명의 독립적인 가치(detached value)와 파생적인 가치(derivative value)를 구분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독립적인 가치는 태아의 생명이 생명 그 자체로 소중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고, 파생적인 가치는 태아가 살 권리가 있으므로, 즉 권리의 주체이므로 소중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독립적인 가치와 파생적인 가치를 예로 들어 설명하자면, 국가가 특정한 예술품이나 역사유적들을 보호하고 이들을 파괴하는 자를 처벌하는 것은 파괴행위가 누구의 권리를 침해해서가 아니라 그 예술품이나 유적 자체가 가진 독립적인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객관적으로는 아무런 가치가 없어 보이는 사유재산이라도 이를 훼손하는 자를 처벌하는 것은 그 재산이 독립적인 가치가 있어서가 아니라 훼손행위가 소유자의 재산권을 침해하기 때문이며 소유자가 권리의 주체가 될 수 없는 동물이라면 우리는 훼손행위에 대한 처벌을 요구하지는 않을 것이다. 드워킨은 현재 낙태에 대한 논란은 태아의 생명이 가진 파생적인 가치에 천착하면서 불필요한 극한대립을 겪고 있다고 주장하는데 결국 그럼 어쩌자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책을 읽어보길 권한다.

또 드워킨은 안락사에 대해서도 환자의 최선의 이익(best interests)에 대해 생각할 때 결단적 이익(critical interests)와 향유적 이익(experiential interests)를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두 가지 이익의 차이는 드워킨의 저술시점 이후에 나온 영화인 매트릭스(Matrix)를 예로 들면 설명하기 쉽다. 그 영화에서 저항군들은 향유적 이익의 측면에서 보자면 매트릭스 속에 갇혀 기계가 제시하는 경험들을 향유하며 사는 것이 더 좋다. 하지만 저항군들이 향유적 측면에서 최선의 이익을 거부하는 이유는 그것이 자신의 결단적 이익에 더욱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결단적 이익은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이 하나의 일관된 주제를 가진 소설처럼 읽히기를 바란다는 면을 개념화한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왜 결단적 이익이 안락사에서 중요한 문제인지 이해가 될 것이다. 소설이나 영화에서 마지막 장면이 무엇인가에 따라 그 소설과 영화에 대한 그리고 거기 등장한 인물에 대한 평가는 매우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필자가 현재 우리말로 번역 중에 있고 <생명의 영역>이라는 우리말 제목으로 곧 서점에서 판매될 것이고 아름답지만 힘있는 영어 문구들의 예시를 보고 싶은 사람들은 Vintage Press의 원서를 사 볼 것을 권한다.(박경신 법과대학 법학과 교수)

08. 1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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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8-11-24 16:07   좋아요 0 | URL
1990년대 들어서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라고 말 한 적이 없음을 알리는 사람들이 생겼지만 아직도 우리나라 사람 대부분은 그런 말이 있다고 믿고 있으니 역시 학교에서 배우는 거짓말이 무섭긴 하네요.다행히 요즘 청소년들은 그 말을 안 배운다고 하더라구요.역시 문제는 어른들.

노이에자이트 2008-11-24 16:08   좋아요 0 | URL
파생적 가치,독립적 가치는 굉장히 흥미로운 분류로군요.역시 윤리학과 법학의 교차지대는 흥미 만점의 논쟁거리가 많네요.

로쟈 2008-11-24 23:44   좋아요 0 | URL
내년에는 아마 책이 나올 듯싶어요...
 

최근에 나온 경제학 신간 가운데 내가 챙겨놓은 것은 마크 스쿠젠의 <거장의 귀환>(바다출판사, 2008)이다. 저자는 '경제학의 힘'을 주제로 한 <이코노파워>(크레듀, 2008)로 지난달에 처음 소개됐는데, <거장의 귀환>은 연이어 나온 책이다. 경제학의 거장, 특히 '빅3'를 꼽으라면 상식적으로 거명될 만한 세 사람, 아담 스미스와 마르크스, 그리고 케인스의 경제학을 소개한다. 이 '빅3'와 함께 차분하게 경제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그리고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서 생각해보아도 좋을 듯싶다. 관련기사를 찾아서 스크랩해놓는다.

세계일보(08. 11. 22) 미네르바가 거장들을 잇는 슈퍼경제학자?

‘빅3(big3)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어떤 시장에서든지 시장을 지배하는 주역은 3개이고 나머지는 모두 조역이라는 논리다. 그러면 경제학계 시장에서는 어떤 사람들이 빅3일까. 우선 자본주의 체계를 정립한 ‘근대 경제학의 태두’ 애덤 스미스가 있고, 자본주의를 부정한 ‘공산주의의 태두’인 카를 마르크스가 있고, 자유시장 자본주의를 교정한 수정자본주의 이론을 전개한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있다.



물론 이 세 사람의 경제학자 외에 데이비드 리카도, 프랑수아 케네, 장 밥티스트 세이, 존 스튜어트 밀, 알프레드 마셜,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어빙 피셔, 밀턴 프리드먼, 폴 새뮤얼슨, 게리 베커 등 경제학자·경제사상가는 많이 있다. 사람에 따라 견해가 서로 다를 수는 있겠지만 이 세 사람이 경제학의 거장이라는 것을 부인하기는 힘들 것이다.



이 세 사람 간에는 어떤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을까. 여러 관점에서 비교가 가능하다. 헤겔의 정반합 논리를 생각해보자. 애덤 스미스가 자본주의를 긍정하는 ‘정’이라면, 마르크스는 이를 부정하는 ‘반’이고,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두 사람의 의견을 종합한 ‘합’으로 볼 수 있다. 또 애덤 스미스를 우파라고 하면 마르크스는 좌파이고, 케인스는 중도파, 좀더 자세히 말하면 중도 우파이다. 경기순환상으로 보면 애덤 스미스는 성장 시기에 적합한 경제이론이고, 마르크스는 극심하게 불평등한 소득분배 시기에 적합하고 케인스는 심각한 불경기 시기에 적합하다. 시대적으로 보면 애덤 스미스는 18세기 사람, 마르크스는 19세기 사람, 케인스는 20세기 사람이다. 이 세 거장을 집중 조명한 최근 책 ‘거장의 귀환’을 보면서 현재 경제 위기를 한번 살펴보자.



최근 미국의 부동산 위기를 시발점으로 하여 금융 위기가 몰아닥쳤고, 연이어 실물경제에도 위기가 엄습하고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현재 상황을 1929년의 주식 폭락 이후 1930년대의 긴 불황과 비교하기에 바쁘다. 현재 상황이 정말 1930년대 같은 세계적인 대불황기로 진입하고 있는가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다. 몇 개월 전만 하더라도 1∼2년의 짧은 불경기를 예측하던 경제전문가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3∼4년의 기나긴 불경기가 올 것이라는 비관적인 견해로 말을 바꾸고 있다.

어떤 이유 때문에 주가지수, 국내총생산(GDP), 환율 같은 경제변수가 폭락했을 때 이를 회복하는 데에는 세 가지 패턴이 있다. 이를 LUV 패턴이라고 한다. L 패턴은 폭락 후 회복을 못 하는 경우이고, U 패턴은 한참 동안의 침체 후 오랜 기간에 걸쳐 천천히 회복하는 경우다. 마지막으로 V 패턴은 폭락 직후 급반등하는 경우를 가리킨다.

당초 전문가들은 세계 경제상황을 놓고 V 패턴의 회복을 전망했으나 최근 전망을 바꿔, V 패턴의 회복은 이미 놓친 상황이며 앞으로의 세계경제는 U 패턴으로 회복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한편 매우 비관적인 사람들은 현재 세계경제는 단순한 경기침체기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최고봉이자 마지막 단계인 금융자본주의가 몰락하고 있으며, 적어도 미국의 패권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앞으로 세계경제는 L, U, V 패턴 중에 어떤 패턴을 따를까. V 패턴이 온다면 애덤 스미스가 곧바로 각광을 받을 것이고, U 패턴이라면 케인스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것이다. 또 L 패턴이라면 마르크스가 각광을 받을 것이다. 만약 여러분이 현 경제 위기에 대한 절묘한 해법을 찾는다면 애덤 스미스, 마르크스, 케인스를 이을 21세기의 슈퍼경제학자가 되지 않을까. 요즘 인터넷 경제 대통령이라고 불리는 미네르바가 혹시 그가 아닐까?(김민주 리드앤리더 컨설팅 대표)

08. 11. 23.

P.S. '빅3' 가운데 시중에서 가장 찾아보기 어려운 건 케인스(케인즈)이다('전문적'이어서인 듯하다). 절판된 걸로 알았는데 찾아보니 주저인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비봉출판사, 2007)의 개역판이 나와 있다. 조순 전 경제부총리의 번역이다. 지난봄에는 <케인스 평전>(지식산업사, 2008)도 알게 모르게 출간됐다. 그 정도면 대략 구색은 갖춰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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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8-11-23 15:57   좋아요 0 | URL
위의 빅3의 원전이나 해설서는 서점에 다 있더라구요.그런데 리카도나 맬서스 책은 없어요.역시 이것도 우리나라 학문의 문제인듯.저한테 있는 리카도와 맬서스의 저서도 70년대 번역판이에요.주변 사람들도 그 번역판 외에는 최근에는 구할 수 없다고 하네요.

로쟈 2008-11-23 16:05   좋아요 0 | URL
그런 게 일본과의 차이일 듯해요...

노이에자이트 2008-11-23 18:25   좋아요 0 | URL
명저나 고전들도 번역이 안되거나 절판된 게 많아서 참...저는 요즘 아담 스미스를 해설하는 책들을 보고 있는데 아담 스미스는 자유로운 시장경제를 위해서는 공정한 경쟁이 중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독점을 허용하면 안되고 부당하게 힘을 쓰는 강자를 응징하는 법치주의가 중요하다고 했네요.음...당연히 준수되어야 할 이야기인데요...모든 규제를 다 풀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아담 스미스를 방패막이로 세우고 있으니 아담 스미스 마음이 편치는 않겠죠.

로쟈 2008-11-23 23:10   좋아요 0 | URL
아담 스미스를 읽은 사람도 거의 없다고 하잖아요?..

노이에자이트 2008-11-23 23:43   좋아요 0 | URL
해설서 읽은 이들도 그다지 없다고 합니다.사실 국부론도 얼마나 두툼합니까...저는 다카시마 젠야의 아담 스미스 해설서가 좋더라구요.일본인들은 인문사회 방송강좌를 책으로 펴내는데 이것도 방송강좌예요.다카시마 작품은 그 전에도 몇권 봐서 익숙한 학자라서요.그리고 무엇보다 분량이 작고도 내용은 영양가가 있어요.

로쟈 2008-11-23 23:52   좋아요 0 | URL
품절된 <도덕감정론>이라도 다시 나오면 좋겠습니다...

PhEAV 2008-11-23 23:58   좋아요 0 | URL
『도덕감정론』은 워낙 번역이 엉망인 것 같아서 그냥 안 나왔으면 -_-;; 누군가 다른 분이 좀 해주셨으면 -_-;;

로쟈 2008-11-24 00:00   좋아요 0 | URL
'제대로' 다시 나와야겠군요...

노이에자이트 2008-11-24 12:41   좋아요 0 | URL
도덕 감정론은 한나라당 브레인이던 박세일 씨도 역자로 참여했죠? 데이비드 흄이 같은 스코틀랜드 출신이라 지적 교류하면서 나온 책이 도덕 감정론이고 경제문제도 토론하다가 스미스는 경제에 대한 책을 쓰겠다고 약속했는데 정작 국부론이 나온 해인 1776년에 흄이 사망하고 말더라구요.

로쟈 2008-11-24 23:40   좋아요 0 | URL
아담 스미스 관련서들이 그래도 근년에 여러 권 나오기는 해서 공부를 해볼 만은 한 거 같습니다...

승주나무 2008-11-24 22:51   좋아요 0 | URL
맑스 자본론 강독을 2개월 전서부터 시작했어요. 1-1의 1/3 정도를 '기어갔는데' 해설서가 요청되는군요. 김수행 선생의 해설서는 자본론보다 다 어렵고, 이진경 씨의 해설서는 또 말이 많고... 덕담 한말씀 부탁합니다^^

로쟈 2008-11-24 23:42   좋아요 0 | URL
덕담이야 좋은 결과가 있으시길!, 말씀 드릴 밖에요. 저도 새로 나온 <자본>을 몇 페이지 읽어보긴 했는데, 워낙에 견적이 나오는 일이어서요...^^;
 

그리스 연설가들의 수사학을 다룬 <위대한 연설>(인물과사상사, 2008)이 출간된 김에 수사학 관련서들의 리스트를 만들어둔다. 직접적으로 관련된 책은 많지 않을 듯싶은데, 그래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나 키케로의 <수사학> 등이 완역된 것 등은 고무적이다.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수사학'은 김현 편의 <수사학>(문학과지성사, 1985)이다. 주네트, 바르트, 토도로프 등 프랑스어권 이론가들의 글모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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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연설- 고대 아테네 10대 연설가를 통해 보는 서구의 뿌리
김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8년 11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2008년 11월 22일에 저장
절판

수사학 이론- 2008년 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
티모시 보셔스 지음, 이희복 외 옮김 / 커뮤니케이션북스 / 2007년 4월
28,000원 → 28,000원(0%할인) / 마일리지 1,400원(5% 적립)
2008년 11월 22일에 저장
절판
수사학 1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이종오 옮김 / 리잼 / 2007년 3월
18,000원 → 16,200원(10%할인) / 마일리지 900원(5% 적립)
2008년 11월 22일에 저장
절판

수사학 2- 아리스토텔레스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이종오 옮김 / 리잼 / 2007년 8월
18,000원 → 16,200원(10%할인) / 마일리지 900원(5% 적립)
2008년 11월 22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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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김훈의 에세이집 <바다의 기별>(생각의나무, 2008)과 함께 손에 든 책은 김헌의 <위대한 연설>(인물과사상사, 2008)이다(내친 김에 그의 <고대 그리스의 시인들>(살림, 2004)도 얹었다). 소개대로 '고대 아테네 10대 연설가들을 통해 보는 서구의 뿌리'가 책의 취지이며, '인물과사상'에 1년간 연재한 글을 다듬어서 낸 책이다. 나는 경향신문 연재에서 저자의 글을 주로 읽은 기억이 있다. 그리스 고전 연구자로서 이제 활발한 저술활동이 기대되는데,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수사학>, 그리고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 관한 책들을 준비중에 있다고 한다. 고대해봄 직하다. 한겨레의 리뷰기사를 챙겨놓는다.

한겨레(08. 11. 22) 아테네 10대 연설가들의 ‘말의 기술’

아돌프 히틀러는 <나의 투쟁>에서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혁명들을 일으킨 힘은 펜의 힘이 아니라 말의 힘이었다”고 단언했다. 이 희대의 연설가는 유례 없이 저열한 방식으로 말의 힘을 남용했지만, 그 주장의 바탕에는 유구한 서구 역사의 한 갈래가 이어져 있다. 고대 그리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수사학이 그 갈래의 기원이다.

서양고전문헌학자 김헌(서울대 인문학 연구원 HK문명사업단 연구원)씨가 쓴 <위대한 연설-고대 아테네 10대 연설가들을 통해 보는 서구의 뿌리>는 바로 이 수사학의 유래를 살피는 저작이다. 고전문헌학이란 고전기 그리스·로마의 역사·철학·문학 텍스트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지은이는 고전기 문헌 가운데 수사학 텍스트를 전공했다. 그는 수사학이야말로 그리스·로마 시대 삶과 앎의 풍경을 다른 어떤 학문 분야보다 풍성하게 알려준다고 말한다. 이 책은 안티폰에서부터 데이나르코스까지 기원전 5~4세기를 수놓은 아테네 10대 연설가들의 활동을 통해 이 풍경을 들여다 보고 있다.

지은이는 먼저 수사학에 대한 통념 또는 오해를 깨는 데서부터 이야기를 풀어간다. 수사학 하면 단어를 고르고 문장을 꾸미는 표현 방식을 먼저 떠올리지만, 이것은 근래의 관념이다. 수사학이라는 말의 그리스어는 레토리케(rhetorike)인데, 이 말을 분석해보면 ‘공식적인 자리에서 연설을 하는 사람의 기술’을 가리킴을 알 수 있다. 수사학은 ‘문학적 기교’ 이전에 ‘연설의 기술’이었던 것이다. 지은이는 수사학 출현의 배경으로 고전 그리스의 민주주의를 제시한다. 모든 시민이 평등한 주권자가 된 민주주의 시대에 자기 생각을 공개적으로 설득하거나 자기 주장을 변호해야 하는 상황에서 태어난 것이 수사학이었던 것이다. 의회·법정·예식의 장이 수사학이 꽃핀 곳이었다.

>>파피루스에 쓴 안티폰의 연설문 필사본 조각.

지은이는 고전 시대를 이해하는 데는 수사학이 철학이나 문학보다 더 유용하다고 말한다. 수사학이란 ‘말의 기술’인데, 이 때의 말은 곧 이성·논리·지식을 함축하는 말이다. 동시에 수사학은 기술로서 일상의 실천 속에서 제 기능을 다해야 했다. 지식과 현실이 맞닿은 곳에서 수사학은 자라났던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수사학은 그 세계를 구체적으로 들여다 보는 데 유리하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수사학은 일종의 실용지식이었으므로, 시민으로서 공적 생활을 능숙하게 하려면 누구나 익혀야 했다. 수사학은 소수를 위한 특수학문이 아니라 일반인을 위한 교양과목이었다. 이 교양과목을 가르친 선생들이 바로 민주주의 대로를 활보하던 소피스트들이었다.

소피스트들의 수사학이 대세를 이루고 악용되는 사례가 많아지자 거기에 대항해 진리를 지키는 파수꾼이 되겠다며 등장한 것이 철학이었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그때의 철학이 말하자면, 플라톤 철학이다. 같은 철학이라 해도 아리스토텔레스는 생각이 달랐다. 그는 수사학을 적극 인정했다. 진리·정의가 거짓·불의와 대결할 때 수사학으로 무장하면 이길 수 있지만, 수사학의 도움을 받지 못하면 패배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수사학은 진리의 갑옷이었던 것이다. 그는 <수사학>에서 이렇게 말했다. “몸을 사용해 자신을 보호하지 못하는 것도 수치스러운 일인데, 인간 본성에 가장 중요한 요소인 말과 이성을 사용해 자신을 보호하지 못한다면, 이보다 더 수치스러운 일은 없을 것이다.”

지은이가 10대 연설가 가운데 특히 탁월한 역량을 보여준 사람으로 꼽는 세 사람이 뤼시아스(기원전 459~380), 이소크라테스(기원전 436~338), 데모스테네스(기원전 384~322)이다. 이 가운데 뤼시아스는 수사학을 비난했던 플라톤도 인정한 이 분야의 진정한 대가였다. 그는 ‘30인 참주정’의 공포정치에 대항하는 데 자신의 연설능력을 활용한 민주투사였다. 민주주의가 회복된 뒤 그는 법정 연설문 작성자로 활동했으며, 그 분야에서 최고의 역량을 발휘했다. 간결하고 담백한 그의 언어는 인물과 상황을 생생하게 묘사함으로써 그 시대 삶을 실감 나게 이해하게 해준다.

그리스 민주주의 말기에 활동한 데모스테네스는 의회연설의 1인자로 꼽힌다. 그는 정치가로서 마케도니아의 제국주의에 대항해 평생 싸웠다. 기품과 명분과 정의를 강조하는 그의 연설은 마케도니아에 맞서는 말의 무기였다. 그러나 연설의 힘도 마케도니아의 무력을 끝내 막지 못했는데, 패배한 그는 독약을 마시고 자살했다. 그의 죽음은 그대로 아테네 민주주의의 죽음이었다.

뤼시아스와 데모스테네스 사이에 살았던 이소크라테스는 수사학을 철학의 지위로 끌어올린 사람이었다. 그 자신 소피스트의 한 사람이었던 이소크라테스는 수사학이 마치 모든 것을 다해 줄 것처럼 떠들고 다니는 소피스트들을 사기꾼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 “수사학 교육은 대중을 설득하는 말솜씨를 가르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수사학은 단순히 혀의 싸움에서 쓸모있는 무기나 도구가 아니다. 진정한 설득은 그럴 듯한 말에서 나오지 않는다. 말을 통해 전해지는, 그리고 그 생각을 올곧게 만들어주는 품성에서 나온다.” 그런 수사학에 이소크라테스는 철학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고명섭 기자)

08. 1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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