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리뷰기사들이 크게 다룬 책은 미국의 외교전략가 브레진스키의 <미국의 마지막 기회>(삼인, 2009)다. “부시 1세는 전통적인 안정을 보존하기 위해 힘과 전통성에 의지한 경찰관이었고, 클린턴은 진보를 가능하게 하는 세계화에 의지했던 사회복지의 옹호자였으며, 부시 2세는 ‘악의 세력’에 대항하는 자기선언적 성격의 실존적 투쟁을 추구하기 위해 국내적인 공포를 동원한 자경단이었다.”(209쪽)라는 식으로 부시 부자와 클린턴 등 세 명의 미 전직 대통령을 평가하면서 미국의 '추락' 원인을 살피고 오바마 대통령에게 미국이 '글로벌 리더'로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두번째 기회(이자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말도록 당부하는 책이라 한다.     

  

미국의 대표적인 외교전략가가 '미국의 실패'를 자인하는 책이라 주목을 끈 듯한데, 브레진스키의 국제전략 '훈수' 책은 출간될 때마다 국내에도 소개되어 낯설지 않다. 한데 그의 '훈수'가 실제로 얼마 만큼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인지는 의문이다(즉 그의 말빨이 먹히는 것인지 궁금하다. 그는 미국의 '생각'을 대표하는지?). 그래서 카터 행정부 시절 안보담당보좌관을 지낸 '전직' '원로' 전략가의 책이 매번 '화제'가 되는 것이 신기하다. 모든 것을 미국의 국익의 관점에서 사고하는 냉혹한 국가주의자처럼 보이기 때문이다(전쟁도 체스판에서의 한 수단으로 이해하는. 한데 그의 훈수가 '체스판의 전략'이라면 상대방에게 다 내보여도 좋은 것인지?). 그것이 하나의 '프레임'일 뿐인지 혹은 '냉정한 현실'인지 궁금하다. 

한겨레에서는 리처드 아미티지·조지프 나이 등의 <스마트 파워>(삼인, 2009)를 같이 읽어볼 만한 책으로 꼽고 있다(리뷰는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341345.html 참조). "2006년에 워싱턴의 독립적인 정책 싱크탱크인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가 민주, 공화 양당 정치인을 비롯한 영향력 있는 사람들을 모아 스마트파워위원회를 구성하고 2006년에 리처드 아미티지와 조지프 나이를 공동의장으로 선임한 뒤 선거 1년 전에 이 보고서를 내도록 했다. 말하자면 초당파적 대안 제시인 셈인데, 대체로 조지 부시 정권에 대한 평가가 끝나고 차기 대선 레이스가 본격화한 시점에 나온 이런 움직임은 결국 공화당 쪽이든 민주당 쪽이든 미국 주류 사회에서 더는 부시 정권식 통치로는 안 된다는 합의가 이뤄졌다는 걸 의미한다. 브레진스키도 이 싱크탱크 고문이자 이사다."   

이들의 보고서(생각)가 얼마만큼 오바마 정부의 정책에 반영되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미국의 '국가 엘리트'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들여다볼 수 있겠다. 그렇다면, 한국의 선택은 무엇일까, 란 생각도 듬직하다.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에서 펴낸 <가슴 설레는 나라>(한즈미디어, 2009)가 유일한 책인가? '미래 한국을 위한 이명박 대통령의 비전'이 부제다(국민에겐 '가슴 쥐어짜는 나라'가 더 정확한 제목이었겠다). 그리고 한미 FTA에 대한 정반대의 '해법'을 다룬 책들. 미국은 '스마트 외교'를 내세우며 내년 8월까지 이라크에서 철군할 계획이라고 발표했지만 한국 국회에서는 당장 '입법전쟁'이 예고돼 있고, '춘투'도 고려하면 '전쟁'이 그칠 날은 없어 보인다. 삼일절 아침이어서 더 답답하고 착잡하다... 

09. 03.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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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r 2009-03-02 01:02   좋아요 0 | URL
'미래 한국을 위한 이명박 대통령의 비전'이라... 숨이 콱 막히네요--;

로쟈 2009-03-03 00:00   좋아요 0 | URL
그래도 30%를 설레게 한다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주중에 책 정리를 하다가 오래전 시집도 발견했다. 자작 시집이다. 뒤적거려보다가 오랜만에 자작시도 한편 옮겨놓는다. 15년 전쯤에 쓴 것이고, 시선집에 빠뜨린 걸 보면 아주 맘에 들어한 것 같지는 않지만 지금 읽으니까 괜찮다. 한때 이런 시들을 쓰며 살았다...  

  

높이 나는 새여

높이 나는 새여, 자유롭게 낙하하라
빗방울이여 자유롭게 낙하하라
눈발이여 자유롭게
우박이여 자유롭게
대지를 가볍게 들어올리던
바람이여
공기의 입자들이여
세상의 티끌들이여
노래하는 별들이여
무한 자유 낙하하라
그토록 너희는 자유로운가
어디 본때를 보여다오
내 늠름하게 지켜보리라
어서 낙하하라
창공을 넘나들던
자유의 힘줄을 보여다오
자유의 총명한 두 눈을
자유의 빛나는 콧잔등을
자유의 갈기를
내게 보여다오
어서
자유롭게 낙하하라

높이 나는 새가
나는 아니다

으아, 높이 나는 새여
빗방울이여
눈발이여
우박이여
티끌이여
별들이여
언제나 높이 있는 것들이여
자유롭게 자유롭게
마구 낙하하라
그토록
자유롭게
이 땅바닥에
먼지 뒤집어쓰고
코를 박아다오

제발 전멸해다오! 

chiken-punk.jpg PunkChic! picture by cascabelsl 

09. 0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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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9-02-28 15: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를 쓰는 남자...멋집니다.옷입고 있는 새의 정체는 뭔가요?

로쟈 2009-02-28 16:25   좋아요 0 | URL
병아리 아닌가요?^^

반딧불이 2009-02-28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저것이 병아리 다리??

로쟈 2009-03-01 13:12   좋아요 0 | URL
우량종인가 봅니다...

2009-02-28 17: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3-01 13: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28 20: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3-01 13: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9-02-28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상국을 향한 아련한 혁명의 꿈을 꾸고 계셨나요? ^^ 로쟈라는 필명이 시인에 어울리는군요. ^^

로쟈 2009-03-01 13:14   좋아요 0 | URL
해몽이 더 좋으신데요.^^;

Joule 2009-03-01 0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거 반전 맞지요? 로쟈 님 시에는 제가 좋아하는 문장이 꼭 하나씩은 들어 있더라구요.

로쟈 2009-03-01 13:15   좋아요 0 | URL
코드가 하나씩은 맞는가 봅니다.^^

파란여우 2009-03-01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지 않아도 요즘엔 시 안쓰세요? 라고 물어볼까 말까 했어요.
'한 때'로 끝나지 않으시길!
독수리(제가 몹시 편애하는 아이)가 나와서 로쟈님 시+독수리+히피 병아리=만족입니다.

로쟈 2009-03-01 22:21   좋아요 0 | URL
맘에 들어하시니 다행이네요. 시는 낭만적 세계관의 산물이라고 생각해서 좀 멀어졌지요. 세상이 팍팍하다 보니...--;

무해한모리군 2009-03-02 0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참으로 대범한 시네요.
읽으면서 속시원해집니다 ^^

특히
'그토록
자유롭게
이 땅바닥에
먼지 뒤집어쓰고
코를 박아다오

제발 전멸해다오! '

대목이 마음에 들어요.

로쟈 2009-03-03 00:05   좋아요 0 | URL
^^
 

이번주는 신간보다 개봉영화 기사가 더 흥미롭다. 어제 책 이사를 하면서 읽은 일간지 3종과 주간지 1종에서 스크랩해놓기로 한 기사도 그렇다. <왓치맨> 개봉을 맞아 '슈퍼 히어로 영화의 진화'에 대해서 살피고 있다. '상업성이 떨어지는'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라고 하니까 <왓치맨>도, 비록 그래픽 노블의 독자는 아니지만, 부쩍 관심을 끈다. 지난 여름에 본 <다크나이트>에 대한 호감도 아직 남아 있는 상태라 그런 듯하다...  


왓치맨 소설 같은 만화가 원작 심각한 주제 그대로 옮겨 ‘청소년 관람불가’ 작품 

경향신문(09. 02. 27) 슈퍼 히어로 영화, 오락이거나 철학이거나

‘슈퍼 히어로 영화는 어디까지 진화할 것인가.’ ‘슈퍼 히어로 영화는 청소년용’이라고 생각해온 관객이 3월5일 개봉하는 <왓치맨>을 본다면 당황할지도 모르겠다. 23일 언론 시사를 통해 한국에서 처음 공개된 영화 <왓치맨>은 작정한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다. 유혈 낭자한 폭력 장면은 예사이고 농도 짙은 베드신도 있다. 표현 수위만 문제가 아니다. 영화에 담긴 암울한 세계관과 역사관이야말로 청소년에겐 이해 불가다. 

  

◇ 성인용 슈퍼 히어로 영화 = <왓치맨>은 1986년 발간된 동명의 그래픽 노블(소설같은 구성·대사가 가미된 만화)을 원작으로 한다. 이 작품을 ‘100대 영문 소설’에 포함시킨 미국 시사주간 타임지는 “<왓치맨>은 냉혹한 심리학적 사실주의, 중첩된 이야기구조, 반복되는 모티브를 보여주는 매혹적인 그림을 포함한다…. <왓치맨>은 젊은 매체의 진화에 분수령이 됐다”고 평했다.

<왓치맨> 속 미국은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3선에 성공했으며, 소련과는 여전히 핵전쟁 위기를 겪고 있다. 20세기 초반부터 활약해온 ‘코스튬 히어로’는 활동을 금지하는 법안에 의해 강제로 은퇴당한 상태다. ‘코스튬 히어로’란 법망을 벗어난 범죄자를 사적으로 응징하는 일종의 자경단이다. 전직 코스튬 히어로였던 ‘코미디언’이 살해당하자, 또다른 히어로 로어셰크는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옛 동료들을 찾아다니며 은밀히 사건을 수사한다. 히어로 살해사건의 뒤에는 거대한 음모가 있었다.

<왓치맨>은 SF(과학소설)의 하위 장르인 ‘대체 역사’ 영화다. 히어로들의 활동은 미국의 현대사와 교묘히 교직돼있다. 히어로들의 참전에 힘입어 미국은 베트남전을 승리로 이끌었고, 보수 세력의 사주를 받은 ‘코미디언’은 J.F. 케네디를 암살했다. 이들은 남미의 공산정권 전복에도 기여한 것으로 설정돼있다.  

이 영화는 기존 슈퍼 히어로 장르의 관습을 반성한다. 정의를 지키고자 일어선 히어로들은 가면을 쓴 채 무법자를 퇴치했지만, 어느덧 시민들은 ‘감시받지 않는 히어로’를 불안해하기 시작한다. <왓치맨>은 ‘불법을 불법으로 응징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왓치맨> 속 히어로들은 하나같이 불완전한 인물이다. 과대망상에 빠져있거나, 일상에 만족하는 배나온 성불구의 중년이 됐거나, 인간적인 감정을 잃어가거나, 정부의 편에서 약자를 핍박한다. 완벽한 선인 슈퍼맨의 시대는 지나간 지 오래다. 지난해 영화 홍보를 위해 미리 방한한 잭 스나이더 감독은 “기존 슈퍼 히어로들은 왜 은행 강도를 잡거나 나무 위의 고양이를 구하는데 열중하는가가 의문이었다”며 “<왓치맨>을 통해 영웅의 어두운 면모를 드러내고, 슈퍼 히어로의 신화를 해부하려 했다”고 말했다.

원작의 심각한 주제를 고스란히 옮겨온 탓에 영화 <왓치맨>은 상업성이 떨어지는 듯보인다. 161분이라는 상영시간, 슈퍼 히어로 영화의 최대 관객층인 청소년을 포기한 등급은 흥행에 부담이다. 극중 유일하게 초인간적인 능력을 가진 ‘닥터 맨해튼’은 무한한 우주 속 유한한 인간의 보잘것없음에 대해 장광설을 늘어놓기도 한다.   


다크나이트 ‘악과 동거 가능한가’ 질문 철학·상업성 동시에 만족

◇ 미래의 슈퍼 히어로 영화는 = 지난해 여름 개봉한 <다크 나이트>는 슈퍼 히어로 영화의 분수령이었다. ‘악과의 평화로운 동거는 가능한가’ ‘목적이 옳으면 수단은 정당화되는가’ 같은 질문을 던진 이 영화는 152분에 이르는 상영시간 부담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400만 관객을 동원했다. ‘슈퍼 히어로 영화’가 철학적이면서 동시에 상업적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아이언맨 바람둥이 영웅 앞세워 미국 군수산업 비판도

리안 감독의 <헐크>는 ‘찢어진 반바지를 입은 초록 괴물’ 정도로 여겨졌던 헐크 이야기에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더한 성인 취향 드라마였다. <엑스맨>은 소수의 슈퍼 히어로를 동성애자, 유색인종같이 핍박받는 소수자의 시선으로 그려냈다. 심지어 바람둥이 백만장자를 슈퍼 히어로로 등장시킨 매끈한 상업영화 <아이언맨>조차 미국의 군수산업, 중동 정책에 대해 비판했다.

영화평론가 김봉석씨는 “할리우드에서 영화화되면서 대중적으로 변모하긴 했지만, 그래픽 노블은 원래 성인을 위한 문학이었다”면서 “앞으로 슈퍼 히어로 영화는 <아이언맨>처럼 오락성을 내세운 영화와 <왓치맨>처럼 심오하고 마이너한 영화로 구분돼 발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백승찬기자) 

09. 0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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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9-02-28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왓치맨을 처음 읽었을 땐 조금 버거웠는데.(만화치고는 글이 지나치게 많죠. 그래서 그래픽 노블일지도 모르겠지만.) 두번째 읽었을 땐 이거 물건이구나.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답니다.

로쟈 2009-03-01 13:11   좋아요 0 | URL
네, 그렇군요. 좋아하는 장르는 아니지만 관심은 갖게 됩니다...

라로 2009-02-28 1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왓치맨은 원래 12권짜리 만화가 원작이죠~.그걸 그래픽노블로 만들었고,,,
'슈퍼 히어로 영화의 최대 관객층인 청소년을 포기한 등급은 흥행에 부담이다'라고 하셨는데
사실 왓치맨의 팬들은 청소년들보다 중장년층이 더 많을거에요.
왓치맨을 청소년때 읽었던 사람들이 다 커서 엄청 기다리고 있는 걸로 압니다.
그리고 왓치맨의 작가는 그 어떤 히어로 만화를 그린 작가들보다 훨 유명하고 대단한 작가이니까요.
하지만 본인이 자신의 작품을 영화화 하는걸 반대하는지라 영화에서 원작자의 이름이 안나올거라고 하더군요.
예전에 나왔던 젠틀맨스리그도 그의 작품이죠.
유혈이 낭자하다고 하여 관람이 꺼려지지만 저역시 기대되는 작품이에요.

로쟈 2009-03-01 13:11   좋아요 0 | URL
나중에 영화평도 기대해보겠습니다.^^

Kir 2009-02-28 2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업성이 떨어지는', '청소년 관람불가' 이 두가지에 관심이 커졌습니다. 배트맨을 제외한 슈퍼 히어로물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데, 이건 봐야겠네요.

로쟈 2009-03-01 13:12   좋아요 0 | URL
취향이 비슷하시네요.^^
 

한겨레 홈피에서 며칠 전 블로그기사를 옮겨놓는다(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341050.html). 작성자는 '내 마음속의 굴렁쇠'님이고, 러시아 록음악의 전설 '빅토르 최'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기사에 이미지 몇 개를 추가했다). 빅토르 최의 노래는 나도 자주 유튜브에서 찾아듣는 편이라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어제 책 정리를 하다 보니까 빅토르 최에 대한 러시아어 평전도 눈에 띄었는데(러시아에는 여러 종이 출간돼 있다), 국내에도 그럴 듯한 규모의 책이 소개되면 좋겠다. 키노(빅토르 최)의 노래 링크는 '키노-슬픔-젬피라'(http://blog.aladin.co.kr/mramor/1735750) 참조.   

한겨레(09, 02, 26) [블로그] 빅토르 최, 그는 살아 있다

“오늘 나는 자유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다.”

자유와 저항을 노래했던 음유시인 빅토르 최(Виктор Цой, Victor choi)를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말 그대로 불꽃 같이 살다간 청년이다. 그에게는 조선의 피가 흐른다. 1962년 그가 태어난 나라는 카자흐스탄공화국. 아버지는 고려인 2세며, 어머니는 우크라이나 사람이다. 강제이주 70년 고려인의 삶을 더듬던 나에게 이 젊은 요절가수는 계단 끝 비상구와 같은 존재다.

Igla.jpg picture by vkovalch 

까레이스키 3세, 그는 옛소련의 전설적인 록가수다. 영화에도 출연했다. 러시아의 젊은이들은 그를 가리켜 ‘마지막 영웅’(Last Hero)이라 부른다. 이러한 믿음은 지금까지 변함이 없다. 언제나 그리워하고 지금도 빅토르 최가 남긴 흔적을 태양의 흑점으로 여기고 있다. 지금 이 순간 바뀐 것이라면 빅토르 최는 죽었고 추모의 주인공이 됐다는 사실 뿐이다.

빅토르 최의 신화는 모스크바 예술의 거리 아르바트에 있는 추모의 벽(일명 ‘통곡의 벽’)과 제단에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할아버지의 나라에서 조국공연을 앞두고 의문의 교통사고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뒤에도 그의 영혼은 이 세상에 머물고 있다.     

» <추모의 벽>. 이 벽에는 "그는 살았고, 살고 있고, 살 것이다", "빅토르! 너는 영원히 우리의 심장에 함께 있다", "노래가 세상을 바꿀 수 없을지는 몰라도 빅토르 최는 우리를 바꿨다"라는 글귀가 쓰여 있다.

낡은 벽 앞에서 언제나 울려 퍼지는 노래 ‘끄루빠 끄로위’(혈액형), 그의 배지를 단 젊은이들이 어깨 걸고 부르는 생전의 그의 노래들, 그를 기리는 빽빽한 추모글들, 이곳 그의 제단과 페테르부르크 보코슬로 스코야 클라드비세 묘지를 지키는 마르지 않는 조화들, 그의 이름으로 러시아 곳곳에서 만들어지는 거리들.  

그랬다. 그는 1993년 모스크바 콘서트홀 앞 명예가수의 전당에 장군의 아들이면서 ‘민중의 양심’으로 불렸던 옛소련의 영원한 인민가수 블라디미르 브소츠키(1938~1980) 다음으로 헌액(獻額)되는 영광을 누렸다. 소련 역사를 움직인 13명 가운데 한 명으로 이름이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생전의 그의 삶은 순탄하지 않았다. 고난이 뒤따랐고, 가난을 벗지 못했다. 그 역시 세상의 슬픔과 희망을 안고 살아갔던 고려인이었다. 월급 50루블을 받는 청년노동자로 살며 스탈린의 강제 이주정책에 내몰린 서러운 조선인의 후예들과 다르지 않았다. 그의 음악혈관에는 이렇듯 고려인의 애환과 꿈이 뒤엉켜 있었다. 낡은 아파트의 보일러실 화부로 일하며 노랫말을 짓고 곡을 만들며 노래를 불렀다. 지금 그 곳은 그를 추모하는 또 하나의 성지가 되고 있다.

음악은 빅토르 최를 이 세상에 발을 딛게 한 힘이었다. 그는 음악에 관한 그 어떠한 교육도 받은 적이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의 천부적인 음악 재능에 더없이 아낌없는 갈채를 보냈는지도 모른다. 짧다면 짧은 음악활동 10년, 화구의 불꽃과 함께 그의 노래는 점화되기 시작했다. 옛소련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록그룹 키노(KINO)는 그의 삶에 날개를 달아줬다. 1984년 핵무기가 없는 땅에서 살고 싶다고 노래한 '나는 선언한다'로 러시아 국제평화재단이 주는 반전가수상을 받기도 했다.  

빅토르 최의 음악은 러시아 펑크록의 대명사다. 그의 노래를 이끄는 선율은 저항과 자유의 음표로 가득 차 있다. 펑크록답게 노랫말도 살아있다. 목소리는 낮고 음울하지만 뿌리를 휘감는 힘이 있다. 대표곡으로 혈액형(группа крови), 변화를 원해(хочу перемен), 마지막 영웅(последний Герой), 전설(легенда), 별(звезда) 등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실패한 개혁’으로 보고 있지만, 옛소련의 해체를 가져왔던 페레스트로이카 전선에 그의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은 무시할 수 없다. 그래서일까. 고르바초프는 페레스트로이카와 인민을 위해 빅토르 최에게 ‘당신의 힘’을 빌려달라고 했다. 위기에 직면한 소련 공산당이 그를 좋아할 리 없었다.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그의 죽음에 ‘암살설’이 뒤따르는 것도 이해가 된다. 페레스트로이카를 노래한 곡으로 <변화를 원해>가 유명하다. 이 노래가 상징하듯 그는 러시아인들이 열망하는 시대의 요구를 거부하지 않는 아이콘이 됐다.

“활활 타오르는 도시에 그늘이 내린다/ 우리의 가슴은 변화를 요구한다/ 우리의 눈은 변화를 요구한다/ 우리의 웃음에/ 우리의 눈물에/ 그리고 우리의 맥박에, 변화!/ 우리는 변화를 기다린다” (빅토르 최의 <변화를 원해>에서)  

1990년 8월 15일, 빅토르 최는 죽었다. “아무도 믿지 않는다, 아니 믿고 싶어 하지 않는다.” 옛소련의 진보신문들이 그의 죽음을 알렸고, 명복을 빌었다. 사망소식이 전해지자, 5명의 소련 여성이 목숨을 끊어 그의 저승길에 동행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거리로 몰려나와 그가 가는 마지막 길을 배웅했고, 그의 주검 앞에 눈물을 뿌린 장미꽃을 헌화했다.

빅토르 최가 죽자 이 ‘영웅’을 차지하려는 카자흐스탄과 러시아 사이에서 국적 논쟁이 벌어졌다. 국적은 러시아로 하되, 출생지는 카자흐스탄으로 ‘반드시 표기’하는 쪽으로 결론이 났지만, 지금도 카자흐스탄인들에게 빅토르 최는 영원한 카자흐스탄인이다. 하지만 나라가 없는 슬픈 조선유랑민들에게는 그 역시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운명을 살다가 간 고려인이었다.

그의 죽음과 함께 분신이었던 록그룹 키노는 해체됐다. 그러나 그의 노래는 여전히 영혼의 날개를 달고 세상을 향해 비상 중이다. 이 젊은 영혼이 갈망했던 꿈은 아직, 오지 않은 것일까. 여전히 궁금하다. 시대가 그에게 원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09. 02. 28. 

P.S. 기사에서 몇 가지 표기는 착오이다. 러시아 인민가수 '블라디미르 브소츠키'는 '비소츠키'가 맞다(비소츠키의 노래 링크는 http://blog.aladin.co.kr/mramor/1038835). 그리고 빅토르 최의 노래 '혈액형'은 러시아어는 '끄루빠 끄로위’가 아니라 '그룹빠 끄로비'이다(영화 <이글라>에 삽입된 버전으로는 http://www.youtube.com/watch?v=PuQ4Y_MnaFc 참조. 노래 가사에 맞는 버전으론 http://www.youtube.com/watch?v=kXRJkMsIwVg&feature=related) '이글라'는 '(주사)바늘'이란 뜻이다). '변화를 원해'(http://www.youtube.com/watch?v=f9dpPdbnTHA, 라이브는 http://www.youtube.com/watch?v=jyorQevSPI0&feature=related), '마지막 영웅'(http://www.youtube.com/watch?v=3m5peDpAFVs), '전설'(http://www.youtube.com/watch?v=ce3PBE9lUIk), '별'(http://www.youtube.com/watch?v=niTdmRhzyVM) 등도 한번 들어보시길(찾아보니 굉장히 다양한 버전들이다). 마지막은 러시아의 또 다른 젊은 영웅이었던(마찬가지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세르게이 보드로프' 주연의 영화 <형제2>에 삽입된 '마지막 영웅'(http://www.youtube.com/watch?v=m2HPWiqesks&feature=related) 1편에서 러시아 마피아를 상대하던 보드로프가 2편에서 상대하는 건 미국 마피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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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9-02-28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전 로자 룩셈부르크 평전을 읽었는데 거기 "나는 있었다, 나는 있다, 나는 있으리라"라는 말이 나오던데, 추모의 벽에도 비슷한 문구가 나오네요.
인용인것같은데, 누구의 말인지 알수 있을까요.

로쟈 2009-03-01 13:10   좋아요 0 | URL
레닌에게도 그런 말을 쓰죠. 관용화된 표현 같아요...

비로그인 2009-02-28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빅토르최의 노래중에 <엄마, 우린 모두 중환자예요>라는 노래의 가사를 참 좋아했어요.
러시아에서는 키노의 가사를 시집으로 내기도 했다더라구요.
혈액형을 다시 부른 윤도현의 곡은 정말 별로였어요;

로쟈 2009-03-01 13:10   좋아요 0 | URL
네, 빅토르 최 책이 여러 권 나와 있었어요. 좀 허름한 장정들이었지만...

Kir 2009-02-28 2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 때, 러시아 관련 강좌에서 혈액형이랑 마지막 히어로를 들은 적이 있어요. 가사를 알고 들으면서 더욱 그랬지만, 가사를 알기 전에도 -몇번 들려주고 난 뒤에 가사를 알려주셨거든요- 그 애조 띤 음울한 목소리와 그의 생애가 겹쳐져서 뭐라 말할 수 없는 기분에 참 우울했습니다.

로쟈 2009-03-01 13:11   좋아요 0 | URL
러시아 강좌도 들으시는군요.^^

파란여우 2009-03-01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쪽 롹 시작하는 젊은이들은 반드시 찾아봐야 할 장소로 빅토르 최의 무덤순례를 한다더군요. 교통사고라고 하지만 그것도 좀 미심쩍은 구석이 많고요, 아무래도 반정부 활동을 하다보니 정황이 묘하게 되었습니다만. 근데 아내와 무덤이 나란히 있는게 아니고 한 구역이긴한데 좀 떨어져 있어서 그렇더군요.

로쟈 2009-03-01 22:16   좋아요 0 | URL
빅토르 최의 무덤에도 가보셨나요?!..

파란여우 2009-03-02 14:33   좋아요 0 | URL
앞으로 갈 미래를 꿈꾸고 있습니다.ㅎㅎㅎ
텔레비전에서 본겁니다.

로쟈 2009-03-03 00:04   좋아요 0 | URL
꿈이 이루어지시길!^^
 

이번주 시사IN의 서평기사를 옮겨놓는다. 문학평론가 이명원씨가 김윤식 선생의 신간 <내가 살아온 한국 현대문학사>(문학과지성사, 2009)를 다루고 있다. 몇 주 전에 책을 사서 서문을 읽어두었는데, 마침 서평은 서문과 표제글에서 언급되고 있는 미국의 경제학자 'W. W. 로스토우'(로스토)의 근대화론,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경제성장 단계론'에 대해 몇 마디 덧붙이고 있다. 개인적으로 로스토우에 대해서는 몇 달 전에 알게 되어 몇 가지 자료조사를 한 적이 있다. 서평기사에 나도 몇 마디 덧붙여본다. 참고로, "논문과 대담을 모은 김윤식의 <내가 살아온 한국 현대문학사>"에서 대담은 부경대 국문과 남송우 교수와의 대담 두 꼭지이다. 각각 <일제말기 한국인 학병세대의 체험적 글쓰기론>(서울대출판부, 2007)과 <백철 연구>(소명출판, 2008)가 대담의 화제다.  

시사IN(09. 02. 24) '숨은 신’의 이면 파헤쳐 식민사관 극복하기  

김윤식 교수는 스스로 자신을 ‘벤허선의 노예’로 표현한 적이 있다. 그는 ‘필사적으로’라는 표현에 걸맞게 한국 근대문학과 비평의 현장에서 글쓰기를 멈춘 적이 없다. 비유컨대 그에게 ‘근대’란 ‘숨은 신’과도 같은 것이었다. 신에 대한 열망이 크고 높을수록, 그것에 도달할 수 없다는 절망은 넓고 깊었을 것이다. 



논문과 대담을 모은 김윤식의 <내가 살아온 한국 현대문학사>는 일종의 자전적 고백의 성격도 띠고 있다. 한국전쟁 직후의 폐허와도 같은 현실 속에서, 그가 어떻게 제로 상태의 한국 근대문학 연구에 매진할 의지를 다질 수 있었는지, 또 그 학문적·비평적 실천의 야심은 무엇이었는지를 이 저작처럼 성실하게 보여주는 책은 없다.

이 책의 여러 논문에서 그는 근대문학 연구를 향한 집념의 뿌리에 ‘식민지 사관’의 극복이 있었음을 밝혔다. 그는 식민지화를 가능케 한 ‘근대’의 성격과 이념에 대한 지적 탐구 경로를 밝히는 한편, 오늘의 중진 자본주의 단계에 도달한 한국의 정치경제학적 현실 속에서 왜 ‘소설’에 대한 관심이 ‘글쓰기’로 전환될 수밖에 없었는가를 논의한다.

소설이야말로 역사적 근대에 조응하는 미학적 양식이었다는 것. 이는 그가 선용하는 게오르그 루카치의 이론이거니와, 오늘과 같은 말기 근대의 성격 변화와 인간적 위엄을 상실한 시민계층의 속물화는 그 미학적 결과로 소설 양식의 쇠락을 초래할 것이다. 1991년 이후의 현실에서 그는 이것을 ‘인간은 벌레다’라는 명제에서 찾았고, 이것이 소설 양식의 쇠락을 대체한 ‘글쓰기’에 대한 탐구로 그를 이끌어, 다시 일제 말기와 광복 공간의 ‘글쓰기’를 야심차게 조망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물론 후학의 처지에서 보면, 김윤식의 ‘근대’에 대한 시각 역시 또 다른 비평의 대상이다. 가령 그의 ‘근대 공부’에 충격을 가한 로스토의 <경제성장의 제 단계> 등을 포함한 근대화 이론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가 그 한 예다. 로스토의 근대화론은 김윤식은 물론 1960년대 학계에서 ‘근대’를 조망하는 유력한 프리즘 구실을 한 것이 사실이고, 일정한 학문적 성과는 물론 경제개발계획의 이론적 원천으로서 실질 효과를 낳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로스토의 근대화론이란 실제로는 제3세계에 대해 미국의 지배력을 확보하기 위한 국가정책 프로젝트의 하나로 기획한 기술합리적 통치담론(정일준)이었다. 따라서 그것을 가치중립적 보편담론으로 간주하는 것은 위험하다. 동시에 분단 이후 남북한 문학사를 기술하는 데 ‘원리적으로’ 통일문학사론은 불가능하다는 시각 역시 논쟁의 뇌관을 품고 있는 주장이다.(이명원_문학평론가) 

09. 0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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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시사IN] '숨은 신’의 이면 파헤쳐 식민사관 극복하기 / 이명원 (문학평론가)
    from 자기치유 : 간혹 한가한 시간에는 울증이 오지 않습니까? 2009-02-27 19:03 
    김윤식 교수는 스스로 자신을 ‘벤허선의 노예’로 표현한 적이 있다. 그는 ‘필사적으로’라는 표현에 걸맞게 한국 근대문학과 비평의 현장에서 글쓰기를 멈춘 적이 없다. 비유컨대 그에게 ‘근대’란 ‘숨은 신’과도 같은 것이었다. 신에 대한 열망이 크고 높을수록, 그것에 도달할 수 없다는 절망은 넓고 깊었을 것이다. 논문과 대담을 모은 김윤식의 는 일종의 자전적 고백의 성격도 띠고 있다. 한국전쟁 직후의 폐허와도 같은 현실 속..
 
 
베토벤 2009-02-27 14:12   좋아요 0 | URL
어느새 10년에 가까운 일이 되어버렸지만, 김윤식 선생의 책에 대한 이명원씨의 서평. 묘한 기분이 드는군요. ^^

로쟈 2009-02-28 11:44   좋아요 0 | URL
흠을 잡을 순 있지만, 너무 업적이 많은 분이예요...

2009-02-27 20: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28 11: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09-02-28 00:20   좋아요 0 | URL
이명원과 김윤식...하하하...궁금하군요.
로스토우가 베트남전 때 경제성장의 단계론에 입각해 초강경 외교정책을 직접 입안했고 그때문에 그 인상을 절대 못지우더라구요.근대화론자도 여러명이 있지만 로스토우가 워낙 악명이 높은 탓에 근대화론 자체에 부정적 인상을 받은 사람도 많을 거예요.우리나라에서는 리영희<전환시대의 논리>에 나오는 베트남 전쟁 으로 알려졌지요.리영희는 그를 최악의 지식인으로 평가했습니다.그런데 베트남전 다룬 책들은 로스토우를 별로 좋게 안 보더라구요.한일 국교정상화 때도 막후 인물로도 활동했고 우리나라에도 종종 왔지요.

로쟈 2009-02-28 11:41   좋아요 0 | URL
네, 박태균 교수의 논문들을 읽어보니 그랬더군요. 단행본 분량의 책이 나오면 좋겠어요. 박태균 교수가 직접 인터뷰도 몇 차례 가졌는데,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났다고 아쉬워하더라구요...

노이에자이트 2009-02-28 17:12   좋아요 0 | URL
박태균 씨가 인터뷰할 때까지 그가 살았군요.저한테 로스토우가 1983년 가을에 방한했을 때 한국경제에 대한 신동아와의 인터뷰가 있는데 그때도 나이가 들었더라구요.
박태균 씨가 한 인터뷰에선 무슨 문답이 오고 갔을까요? 성향으로 볼 때 로스토우에 호의적이지는 않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