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부터 국내에서 가장 주목받은 정치철학자라면 단연 프랑스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다. 그의 주저 <불화>도 소개될 예정이기에 (일부 불만에도 불구하고) '랑시에르 붐'은 한동안 더 이어질 듯하다. 랑시에르의 민주주의론을 소개/해명하는 글이 눈에 띄기에 옮겨놓는다. 필자는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길, 2008)와 <무지한 스승>(궁리, 2008)을 우리말로 옮긴 양창렬씨다.  

 

고대신문(09. 05. 10) 민주주의는 모든 정체의 아나키적 원리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그것은 어원상 ‘인민의 지배’를 뜻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 단어는 아무데나 쓰이고, 그만큼 의미 없는 단어가 되었다. 좌우를 막론하고 민주주의를 표방할 뿐 아니라, 민주주의 앞에 붙는 수식어에 따라 그것은 전혀 다른 것을 가리킨다. 다양한 수식어만큼이나 민주주의는 닳아빠진 개념이 된 듯하다. 이처럼 모호한 개념을 유지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랑시에르에 의하면 민주주의와 같은 정치 관념들의 고유함은 그것이 다의적이라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투쟁의 대상이 된다는 데 있다.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는 다를 수밖에 없고, 바로 그 차이가 불화를 가능하게 한다. 정치적 투쟁은 바로 그 단어를 전유하기 위한 투쟁이다.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되찾기 위해 랑시에르는 그 단어의 희랍적 어원 그리고 그것의 역사적 분절을 되짚어 본다. 특히 플라톤이 범례적으로 보여준 민주주의에 대한 증오에 주목하면서 말이다.  

『국가』, VIII권에서 플라톤은 여러 정체들을 검토하면서 민주정을 과두정에 대한 빈자들의 전복으로 간주한다. 이 아카데미아의 철학자는 민주주의적 인간형을 서술하는 데 꽤 많은 페이지를 할애한다. 왜냐하면 그에게 정체란 정부 형태만이 아니라 그 체제 하에서 공통으로 살아가는 존재 방식과 습속을 뜻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특히 민주주의적 인간은 노예와 구별되는 신분상의 자유, 의회에서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자유 뿐 아니라, ‘멋대로 할 수 있는 자유’를 가졌다. 플라톤은 561c-e에서 이소노미아를 누리는 사람의 삶을 묘사하는 데, 이 민주주의적 인간형은 오늘날 공화주의자들이 비판하는 소비사회의 탈근대적 개인을 예견한 것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이 제멋대로 하는 자유는 민주정 자체가 정체들의 잡화점과 비슷한, 무정부 상태의 다채로운 정체라는 사실에 기초한다.

플라톤은 이소노미아에 가장 분개하는데, 그것은 법 앞의 평등만이 아니라, 오히려 법을 비롯한 공적 사안을 결정하는 데 참여할 수 있는 평등을 가리킨다. 그것을 보장해주는 것은 바로 추첨이었다. 추첨은 통치를 ‘아무나’에게 ‘우연’하게 맡길 뿐, 통치자의 어떤 자질이나 지식도 따지지 않는 제도다. 지식과 정치적 탁월함을 가진 자에게 기하학적 평등에 따라 통치의 특권이 돌아가야 한다고 보았던 플라톤에게 추첨은 무질서 그 자체였다. 그리고 이는 정치에 대한 지식 그리고 그 지식을 갖고 있는 전문가가 있는가라는 랑시에르의 주요한 화두와 연결된다.

플라톤의 『프로타고라스』(320d-324d)에 등장하는 흥미로운 신화에 주목하자. 에피메테우스는 다른 생명체들에게는 기술을 나눠주면서 정작 인간에게는 생존에 필요한 성질들을 부여하는 것을 잊는다. 그래서 프로메테우스는 신들에게서 불과 기술을 훔쳐 인간에게 가져다준다. 그런데도 인간들은 흩어져 살 뿐, 도시국가에 모여 살지 못한다. 결국 제우스는 멸종할 위기에 처한 인간에게 정치적 덕(염치와 정의)을 주기로 작정한다. 헤르메스가 그 덕을 기술을 나눠주듯 분배해야 하느냐고 묻자, 제우스는 모두가 그 몫을 가질 수 있도록 분배하라고 답한다. 소수만이 그 몫을 갖는다면 도시국가는 있을 수 없기 때문이라면서 말이다.

여기에서 프로타고라스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를 말해주고 있다. 정치와 관련해서 전문가란 존재하지 않으며, 모두가 평등한 능력을 갖고 있다. 심지어 이 평등이 모든 정치 질서, 모든 정치 공동체를 정초하는 전제가 된다. 랑시에르는 이것을 ‘평등 전제’라고 부른다. 앞서 언급한 추첨 그리고 프로타고라스가 들려준 신화가 공통적으로 가리키는 것은 누가 누구를 정치적으로 지배해야할 자연적 원리(archē)는 없다는 사실이다. 모든 정부 형태는 이 원리의 부재, 정당성의 부재에 토대를 둔다. 랑시에르가 말하는 민주주의는 여러 정체들 중 하나의 정체가 아니라, 모든 정체의 아나키적 원리인 것이다.

민주주의는 이 평등전제를 입증하고 활성화시키는 정치를 뜻하기도 하며 그것은 반드시 정치적 주체화를 거친다. 이 점에서 데모스라는 단어가 내포한 이중성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것은 인민 전체를 가리키기도 하고, 빈자들만을 가리키기도 한다. 인민은 본디 정치적 주체인 동시에 배제된 자라는 이중적 신체를 가진 분열된 주체인 것이다. 정치적 주체화는 항상 말과 사물 사이의 틈에서 생겨난다. 가령 헌법에 기록되어 있는 인민의 권력을 몫 없는 자들이 실제로 행사하려할 때 그것은 정치 질서 자체에 분리와 불일치를 가져오는 사건이 됨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 빈자들, 노동자들, 여성들도 인민인가?’, ‘우리는 이 나라를 통치할 주인의 범주에 셈해지고 있는가?’라는 질문들은 언제나 말과 사물, 담론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폭로하는 효과가 있다. 이러한 질문들 그리고 그 질문을 던질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내는 역량과 행위야말로 정치요 민주주의다.  



랑시에르에게 가장 많이 쏟아지는 비판 중 하나는 그가 정치를 일시적이고 국지적인 것, 다시 말해 드문 사건으로 묘사하며, 선거나 투표와 같은 제도를 치안의 장치로 보는 등 제도의 문제에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고로 정치를 어떻게 이어갈지, 민주주의 또는 평등을 어떻게 제도화할 것인지에 대해 그가 답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비판에 대한 몇 가지 답변들로 결론을 대신하자.

첫째, 우리는 앞에서 랑시에르에게 민주주의란 하나의 정체나 통치 형태가 아니라 정치 자체의 전제이자 원리임을 밝혔다. 민주주의는 제도가 아니다. 둘째, 랑시에르는 바디우처럼 모든 투표에 기권하라고 주장하지도 않는다. 그는 지난 2005년에 있었던 유럽헌법안에 대한 국민투표에서 지배자들의 합의에 맞서 반대표를 던지는 것이 투표 속에서 인민주권을 연출하는 한 방식이라고 보았다. 마찬가지로 작년에 쇠고기 재협상과 대통령 재신임을 국민투표에 부치자던 주장은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사실 그것은 인민으로 바꿔 읽을 수 있으며, ‘아무나’에게로 확장될 수 있어야 한다—으로부터 나온다’는 인민주권의 원리를 정치 무대에 올리는 한 실험이 될 수도 있었다.  

셋째, 랑시에르는 『민주주의에 대한 증오』에서 짧은 임기로 연임할 수 없게 의회의 대표를 뽑고, 국가의 공무원이 인민의 대표를 중임할 수 없게 만드는 등 고대 그리스의 ‘추첨’을 연상시키는 주장들을 한다. 물론 이것들은 대의제를 ‘민주적’으로 이끄는 최소치이지 그러한 제도 변화 자체가 민주주의는 아니다. 넷째, 랑시에르는 바리케이드가 세워지고 무너지며, 촛불에 불이 붙고 사그라지는 짧은 봉기의 순간에 완전히 새로운 것이 나타났다 사라진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최근의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그는 ‘사건과 돌발’의 사상가가 아니라 ‘해방’의 사상가다. 역사는 국가 형태에서 벗어나는 공통적인 것의 형태들을 발명하려는 다양한 노력과 실천들의 망으로 이루어진다. 이것은 그가 간헐적인 사건들의 불연속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선형적 시간이 아니라, 공존하는 여러 시간성들의 집합을 통해 역사를 사유하기 때문이다.(양창렬_파리1대학 철학과 박사과정) 

09. 05.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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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학술서'라고 할 만한 책은 단연 <열녀의 탄생>(돌베개, 2009)이다. 주중에 서점에 들렀을 때 표지를 보기는 했지만 '열녀의 탄생'이란 제목만 보고 그냥 지나쳤는데, 리뷰를 보니 강명관 교수의 '대작'이다. 850쪽이 넘는 분량이 대작이란 말을 붙이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부제는 '가부장제와 조선 여성의 잔혹한 역사'. 이미 제목과 부제가 내용을 다 짐작하게 해주는데, 그럼에도 물론 중요한 것은 '디테일'이다. 책은 한국사회 여성 차별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서 무엇이 문제인가를 꼼꼼하게 짚어준다. 리뷰를 읽어보니 문제는 <소학> <삼강행실도> 열녀편, <내훈> 등의 핵심 텍스트들이고, "<열녀의 탄생>은 18세기 이후 종법제에 입각한 가부장적 친족제도가 완벽하게 정립되는 데 결정적인 구실을 한 이 텍스트들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유포됐으며, 어떤 과정을 거쳐 여성의 대뇌에 장착돼 어떤 파급효과를 낳는지, ‘열녀’의 역사를 축으로 삼아 치밀하게 파고든다." 저자의 노고와 열정이 인상적이다. 책은 지난주에 출간된 강준만 교수의 <어머니 수난사>(인물과사상사, 2009)를 떠올리게 해주어, 서평기사를 같이 스크랩해놓는다.    

한겨레(09. 05. 16) 여성은 조작된다, 지금도 쭉~

누나는 대학, 남동생은 중학교 입학시험을 쳤는데, 둘 다 합격했다. 아버지는 누나한테 진학 포기를 종용했고 공부 잘하던 딸은 거기에 따랐다. 자신을 희생한 누나와 그 남동생의 그 뒤 인생은 흔히 미담기사의 재료가 되거나 인기 있는 방송 드라마로 등장했다. 이런 얘기도 가능하다. 오누이가 있었는데 이번엔 오빠가 대학, 여동생은 중학교에 시험을 쳐 둘 다 합격했다. 가난했던 그 집 어머니가 둘 중 하나한테 학교를 그만두라고 종용한다. 누구한테? 열에 아홉, 아마도 열에 열 모두 여동생 쪽이 아닐까.

얼마 전까지는 그랬을지 몰라도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하며 그런 성차별은 과거지사라고 말할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는 이런 말을 했다. “요즘 대학 인문분야 학생들 다수가 여학생이다. 그런데 그들을 가르치는 교수들 가운데 여성은 한두 명뿐이다. 교수 공채 때 여성은 아예 처음부터 대상에서 제외된다.” 정치권을 보든 기업 최고경영자(CEO)를 보든, 검사 판사를 보든 우리 사회 힘 있는 분야에서 실세를 점하고 있는 쪽은 여전히 압도적으로 남성이다. 임금격차와 승진기회, 가사노동 모두 여성들이 절대적으로 불리한 게 우리 현실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 아이 많이 낳지 말라고 닦달하더니 이젠 많이 낳지 않는다고 야단이다. 낮은 출산율과 관련한 ‘문제’에 대한 비판의 화살이 쏠리는 쪽도 주로 여성이다. 따라서 “작동방식만 다를 뿐 우리는 여전히 가부장제하에서 살고 있다”는 게 강 교수 생각이다.

<열녀의 탄생>(돌베개)은 이 유구한 우리사회의 성차별이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한국과 중국의 수많은 전적들을 섭렵한 철저한 문서검증을 통해 고고학적·계보학적으로 더듬어 올라간 강 교수의 10여년에 걸친 노작이다. ‘열녀’(烈女)가 무엇인가? “열행(烈行)을 실천한 여성”이다. 열행의 대종은 “여성이 사회적으로 유일하게 공인된(또는 공인될) 성적 상대자(대부분은 남편)에게 자신의 성적 종속성을 천명하기 위해 자신의 신체를 학대하거나 신체의 일부 또는 신체 전부를 희생하는 것”이다. 쉽게 얘기하면, 남편을 위험에서 구하거나 정조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신체 일부를 훼손하거나 목숨을 버리는 행위다. 남편의 병구완을 위해 허벅지 살을 도려내 피와 살을 먹이거나 외간 남자한테 잡힌 손목을 잘라버리는 행위, 개가를 거부하며 코나 귀를 베어버리거나 굶어죽는 행위, 임진·병자 양란 때 겁탈에 저항하다 학살당한 일 등이 이에 포함된다. 나라가 문을 세워 이들을 표창하고 집안의 세금과 부역을 면제해준 게 정려(旌閭)다. 조선 후기로 갈수록 정려의 대상으로 뽑힌 열녀는 거의 목숨을 버린 경우다. 선조 이후 열녀 553명 중 임진왜란과 직접 관련된 열녀는 441명이고 이들 중 죽지 않고 열녀가 된 여성은 단 4명, 1%도 되지 않았다.

고려시대까지만 해도 열녀나 열행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 말조차 없었다. 성리학으로 무장한 사대부들이 조선을 건국하기 직전 ‘절부’(節婦), ‘열부’(烈婦)란 말이 일부 사대부들의 글에 등장한다. 절부는 남편이 죽었는데도 재가하지 않고 수절하는 여성이며, 열부는 열행을 감행한 남편 있는 여성이다. 열녀는 결혼하지 않은 여성의 열행까지 포함한 좀 더 포괄적인 개념이다. 절부는 아내가 죽어도 새장가 들지 않고 수절한 남편인 ‘의부’(義夫)와 짝을 이뤘다. 고려 때까지만 해도 남편 잃은 여성의 재가, 삼가는 전혀 허물이 되지 않았으며, 수절은 여성에게만 강요된 윤리가 아니라 남녀 모두의 선택이었다. 게다가 결혼한 여성이 남자 집(시댁)에 들어가는 게 아니라 남자가 여성의 친가(처가)에 들어와 사는 게 일반적 관행이었다. 이런 풍경은 조선 전기까지 대체로 유지됐다. 15세기 후반 성종 때의 ‘경국대전’에서 ‘의부’란 말이 사라지고 개가를 하는 여성의 후손들에겐 벼슬길을 극도로 제한하는 등 법·제도상으로는 가부장제가 어느 정도 정비됐으나 본디 윤리적 성격이 강한 열행, 열녀를 법·제도로 장려하고 강제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국가를 가족의 연장으로 본 조선의 성리학 사도들이 남성이 지배하는 가부장제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본디 대등했던 ‘남성=여성’ 관계를 ‘남성>여성’의 위계적 관계로 바꾸고, 여성들이 그것을 자연스런 인간본성으로 받아들인 뒤 남성에 대한 종속성을 실현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목숨까지 내던지게 만드는 더욱 강력한 장치가 필요했다. 이 종속적 윤리의 내면화, 이념적 세뇌를 위한 텍스트, 유교적 가부장제의 욕망을 윤리의 이름으로 여성의 대뇌에 설치해 그것을 끝없이 복제함으로써 종속적 여성을 대량으로 자동제조해내는 프로그램이 바로 국가-남성이 독점한 인쇄물이었고, 그 대표가 <소학> <삼강행실도> 열녀편, <내훈>이었다.  

<열녀의 탄생>은 18세기 이후 종법제에 입각한 가부장적 친족제도가 완벽하게 정립되는 데 결정적인 구실을 한 이 텍스트들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유포됐으며, 어떤 과정을 거쳐 여성의 대뇌에 장착돼 어떤 파급효과를 낳는지, ‘열녀’의 역사를 축으로 삼아 치밀하게 파고든다. <소학>은 결코 아이들 교육용 책이 아니었다. 난해한 남성용 한문서적인 소학(나중에 언해본도 나옴)은 성리학 사도들을 길러내는 의식화 작업의 실천원리였다. 경국대전의 차별적인 여성 조항들이 모두 주자가 중국 고대 고전들에서 따와 편집한 이 소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 역시 대부분 중국 <고금열녀전> 등에서 얘기를 따와 그 가운데서 능동적인 여성상을 제시한 부분들을 제거해버리고 재편집한 <삼강행실도> 열녀편은 여성의 종속성 내면화에 가장 결정적인 기여를 한 여성용 책이다. <내훈>은 주로 위기시의 열행을 기록한 <삼강행실도>와는 달리 일상적인 열행을 담았다.

오누이 이야기는 과거지사가 아니다. 강 교수에 따르면 “‘나’는 권력적 타자에 의해 제작된 존재”다. 예전에는 국가-양반(남성)이 <소학>과 <삼강행실도>와 <내훈>을 통해 자신들이 원하는 인간들을 양산해냈다면, 오늘날엔 국가-자본(테크놀로지)이 교육과 미디어라는 권력기구를 통해 그들의 욕망을 대뇌에서 대리복제하는 개인들을 양산해내고 있다. 따라서 나는 정말 나일까? <열녀의 탄생>은 그 해답의 실마리를 찾으려는 시도이기도 하다.(한승동 선임기자)   

» 가족계획 지도원(오른쪽 끝)이 농촌 여성들을 상대로 교육을 하고 있다. 가족계획사업이 시작된 1962년 당시 교육 내용은 산모 나이 35살까지 3년 터울로 4명의 자녀만 낳자는 것이었다.

한겨레(09. 05. 09) '극성 엄마’ ‘속물 엄마’ ‘부패 엄마’ 만드는 사회

‘한국 생활사’ 집필을 평생 작업으로 구상중인 강준만 전북대 교수가 ‘어머니’라는 존재 안에 농축된 한국형 가족주의 시스템의 모순을 파헤쳤다. 책 제목이 <어머니 수난사>다. <입시전쟁잔혹사>에 이어 넉 달 만에 선보인 생활사 단행본이다. 그런데 왜 ‘수난사’인가. 강 교수가 볼 때 한국의 어머니들은 생존을 위해 각개약진해야 했던 사회에서 가족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과잉 순응’ 전략으로 ‘투사’가 됐다. 이들은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입시전쟁 투사, 치맛바람 투사, 자녀결혼 투사, 부동산 투사. 전투의 일선으로 내몰린 이들에겐 사는 게 축복일 리 없었다. 싸움으로 점철된 역사는 고난의 역사, 시련의 역사였다. 이 과정에서 어머니는 ‘자기희생’의 상징이자 실체로 자리잡았다.  

이런 어머니의 역사에서 절대적인 중요성을 갖는 사건으로 강 교수는 한국전쟁을 꼽는다. 전쟁은 공적 영역에 대한 신뢰를 파괴하고 피붙이의 중요성을 실감케 함으로써 어머니를 중심으로 한 가족주의를 한층 강화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물론 ‘강한 어머니 만들기’에는 정부도 한몫했다. 1955년 정부는 5월8일을 ‘어머니날’로 제정했는데, 이를 통해 전파시키려고 했던 것은 어머니의 끊임없는 인내와 희생이었다. 해마다 어머니날이 오면 대통령 담화가 발표됐고, 언론은 “자녀의 빛나는 생을 위하여는 자기 몸을 초개처럼 내던질 수 있는” 어머니의 사랑을 앞다퉈 강조했다. 이즈음 욕망과 윤리 사이에서 갈등하는 유부녀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 <자유부인>이 반향을 일으키자, 정부와 사회단체들은 남편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허벅지 살을 도려내 복약시켰다는 ‘허벅다리 부인’의 사연을 발굴해 맞세우기도 했다.

60년대에는 경제발전과 더불어 전투적인 가족계획이 추진되면서 가족 구성과 어머니의 구실에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자식을 좋은 학교에 보내려고 돈 쓰고 로비도 불사하는 것을 가리켜 ‘치맛바람’이라 이르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였다. 정부와 언론은 공모한 듯 거세게 치맛바람을 질타했다. 이에 대해 강 교수는 “모든 궂은일은 어머니가 떠맡게 하는 구조를 온존·강화하면서 그로 인해 빚어지는 사회문제의 책임을 어머니들에게 돌리는 수법은 이후 지속되는 어머니 수난사의 핵심을 구성하게 된다”고 꼬집었다.

‘복부인’과 ‘신사임당’이 공존한 70년대를 거쳐 입시전쟁에 질적 전화가 이뤄지는 80년대가 열렸다. 입시전쟁도 점차 제도화·체계화의 길을 밟는데, 더는 어머니의 희생만으로는 성공을 보장할 수 없게 됐다. ‘계급전쟁’의 양상을 띤 입시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어머니가 동원할 수 있는 경제력의 크기와 현명함 또는 영악함”이 중요했다. 8학군 신드롬과 함께 중산층의 강남을 향한 질주가 시작되고 있었다.

97년 외환위기는 ‘강한 어머니’를 다시 호명했다. ‘남편 기 살리기’를 강조하는 신현모양처론이 유행하는 가운데 한쪽에선 ‘아줌마 때리기’가 본격화됐다. 아줌마 때리기는 기혼 중년여성의 가족 이기주의와 공공의식 부재를 문제삼았다. “어머니는 찬양하고 아줌마는 때려라”였다. 아줌마를 어머니로부터 분리시키려는 이런 심리를 강 교수는 ‘자궁 가족’ 이기주의로 규정한다. “나의 어머니가 나를 위해 벌이는 투쟁은 아름다워도 너의 어머니가 너를 위해 벌이는 투쟁은 추하다는 이중적 인식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강 교수는 이런 어머니 수난사를 야기한 주범으로 ‘가족주의’를 지목한다. “자궁 가족의 번영과 영광을 위해 일부 어머니들은 ‘복부인’이 되기도 했고 ‘마담뚜’의 도움을 받아 ‘정략결혼’의 수익성을 최대화하고자 했다. 일부 어머니들은 ‘기러기 엄마’가 되기도 했고, ‘원정출산’마저 마다하지 않았다. 그럴 경제적 능력이 못 되는 어머니들은 ‘우골탑’ 대신 ‘모골탑’을 쌓았다. 많은 어머니들이 극성 엄마, 속물 엄마, 부패 엄마 노릇을 불사했다.”

문제는 이렇게 험난한 어머니들의 투쟁에도 불구하고 행복하다 말하는 이들이 많지 않다는 것인데, 강 교수는 이를 일러 “모두가 희생자요 모두가 불만인 체제”라고 한다. 비극은 이 체제의 덫을 벗어날 속시원한 방도를 누구도 쥐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강 교수는 진보진영을 향해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투쟁의 틀을 벗어나 구체적 대안을 모색하라”고 주문한다. “당장 어머니들의 육아 부담을 제도적으로 덜어주는 게 백날 ‘신자유주의 타도’를 외치는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한 신자유주의 극복책이 될 수 있다는 걸 이해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앞으로도 어머니가 투사가 되어야만 하는 잔혹한 역사는 계속될 것이다.” (이세영 기자)  

09. 05. 16. 

 

P.S. '여인 잔혹사'라고 하니까 떠오르는 영화가 두 편 있다. 한국 최초의 칸느영화제 출품작이기도 한 이두용 감독의 <물레야 물레야>(1983)와 정진우 감독의 <자녀목>(1984).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영화들인데, 짐작엔 <물레야 물레야>에 대한 호평 때문에 <자녀목>이 제작된 게 아닌가 싶다. 두 편 다 원미경 주연작이며, <자녀목>은 그해 대종상 작품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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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바다 2009-05-16 16:46   좋아요 0 | URL
'열녀' 이야기도 나왔으니 '효자/효녀/효부'에 대한 책도 나와야 할 것 같군요^^ 사실 조선 시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열녀'도 중요하지만 '효자/효녀/효부'가 더 중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로쟈 2009-05-16 21:09   좋아요 0 | URL
네, <효경>에 대한 비슷한 연구서도 나올 법하네요...

딸기 2009-05-17 14:06   좋아요 0 | URL
저는 잘 몰랐는데, 강명관 교수가 대단한 분인가봐요.
책 사서 읽어보고 싶네요. :)

로쟈 2009-05-17 14:51   좋아요 0 | URL
한겨레 쪽에도 칼럼을 쓰시죠. 연구서 네 권을 한꺼번에 펴내기도 하시고...

노이에자이트 2009-05-17 15:31   좋아요 0 | URL
강명관,강준만 둘 다 기성논리에 도전하는 지식인의 전형이지요.그리고 글 읽는 맛이 있어서 좋아요.강명관의 한겨레신문 토요일 고정칼럼은 끝난 것 같던데요.

로쟈 2009-05-20 21:18   좋아요 0 | URL
맞아요. 그 칼럼들을 묶어도 읽을 만한 책이 나올 거 같습니다...
 

이번주에 나온 가장 중요한 번역서는 물론 칸트의 <판단력 비판>(아카넷, 2009)이다. 3대 비판서를 백종현 교수가 혼자 힘으로 완역한 셈인데, 이로써 최재희(이석윤)판 3대 비판서가 수십 년만에 완전히 세대교체되었다. 기념비적인 업적이며 역자가 '한국의 칸트'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겠다. 여하튼 덕분에 한국어로 칸트를 읽어볼 생각을 품을 수 있게 됐다(나는 대학 2학년 때인가 최재희판 <순수이성비판>을 읽다가 그만 둔 기억이 있다). 물론 온전한 세대교체 및 한국어 번역의 정착은 일반 독자들뿐 아니라 철학전공자들 사이에서도 얼마나 읽히는가에 달려 있을 것이다(가령 학술논문에서도 백종현판 칸트가 인용된다면 비로소 '한국어본'의 소임을 완수하게 되는 것). 한국어로서 칸트는 아직 '젊은' 철학자다. 관련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한겨레(09. 05. 16) 근대 정신세계 혁신, 그 파괴와 건설의 완결편 

“그의 철학은 너무나도 파괴적이었고 많은 결과를 초래했으며, 그의 사상은 근대 의식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했다.”(노르베르트 힌스케 <현대에 도전하는 칸트>)

이 문장의 주인공이 바로 독일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1724~1804)다. 근대 철학의 혁신자이자 계몽 정신의 산마루였던 칸트는 파괴자였던 것만큼이나 건설자였다. 그는 낡은 세계를 무너뜨리고 정신의 새 건축물을 세웠다. 이 파괴와 건설의 논리적 드라마가 펼쳐지는 곳이 그의 3대 비판서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판단력비판>이다. 이 세 비판서 가운데 마지막 저작 <판단력비판>이 칸트 전문 연구자 백종현 서울대 교수의 번역과 주해를 거쳐 새롭게 나왔다. 앞서 백 교수는 <실천이성비판>(2002)과 <순수이성비판>(2006) 번역·주해본을 펴낸 바 있다. 이로써 칸트 3대 비판서가 백종현판으로 완역됐다. 40년에 걸친 칸트 연구의 결실이다.  

우리에게 각인된 칸트의 이미지는 파괴자라는 말이 주는 격정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는 일점일획의 오차도 없는 단조롭고 엄격하고 규칙적인 삶을 산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쾨니히스베르크의 걸어다니는 시계가 그의 이미지다. 그러나 이 이미지는 후년의 칸트를 칸트 생애 전체로 확대한 모습이다. 젊은 시절 칸트는 자유분방하고 유쾌한 사람이었다. 내기 당구를 즐기고 살롱과 클럽을 드나들고 흥겨운 대화로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사교계의 총아, 멋쟁이 신사가 칸트였다. 그랬던 그는 1770년 쾨니히스베르크대학 정교수 취임을 전후해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뀌었다. 칸트는 사교계에 발을 끊고 은둔자가 됐다. 그 무렵 하나의 거대한 문제가 그를 엄습했던 것이다. 철학의 근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강박적 의무감이었다. 골방에 틀어박힌 칸트는 고투에 고투를 거듭한 끝에 10여 년 뒤 한 권의 책을 출간했다. 그 책이 바로 <순수이성비판>(1781)이다. 칸트는 이 책에 이어 7년 뒤 <실천이성비판>(1788)을 완성했고, 다시 2년 뒤 <판단력비판>(1790)을 세상에 내보냈다. 3대 비판서를 완성한 후의 칸트는 젊은 날의 습성을 까마득히 잊어버린 노인이 돼 있었다.

칸트가 세 주저에 ‘비판’이라는 제목을 붙인 것은 그가 계몽정신의 아들임을 보여준다. <순수이성비판>의 초판 머리말에서 그는 자신의 시대를 “모든 것이 비판에 부쳐져야 하는 진정한 비판의 시대”라고 규정한 뒤 이렇게 말한다. “이성은 오직, 그 자신의 자유롭고 공명정대한 검토를 견뎌낼 수 있는 것에 대해서만 꾸밈없는 존경을 승인한다.” 이성이 모든 것을 비판에 부친다면, 이성 자신도 그 비판의 법정에 서야 할 것이다. 이성이 이성 자신을 소환해 심문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칸트 비판철학의 놀라운 전환이다. 인간 이성이 이성 자신을 규명함으로써, 인식할 수 있는 것과 인식할 수 없는 것, 마땅히 행해야 하는 것과 행해서는 안 되는 것을 분간해 내는 것이 이성 비판의 제1과제라고 칸트는 본 것이다. 그러므로 이성 비판이란 이성 자신의 기능과 능력을 밝히고 그 한계를 찾아내는 일이다. 여기서 그 한계를 모르는 이성은 가차 없이 탄핵당한다.  


칸트의 비판 작업은 정신과 세계의 관계에 대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이루어냈다. 이성의 자기비판 작업을 통해 칸트는 우리 정신이 세계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근거를 자기 안에 가지고 있으며, 그 인식을 통해서 사물 자체의 존재가 확실해진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다시 말해, 인간 이성이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현상세계의 창조자 노릇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하여 이제까지 신이 담당하던 창조자 구실이 인간의 이성 안으로 옮겨졌다. 세계 존재의 근거가 신에게서 인간으로 바뀐 것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우리 의식의 규정을 받는다는 이 발상, 신의 업무를 인간의 업무로 바꿔놓은 이 발상이 바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다.  

그렇게 의식이 창조자 노릇을 한다고 해도 제멋대로 하는 것은 아니다. 의식은 엄격한 법칙을 따른다. 이렇게 의식이 따르지 않으면 안 되는 ‘자연의 법칙’의 근거를 밝히는 것이 <순수이성비판>이라면, 그런 자연의 법칙 안에 종속돼 있으면서도 동시에 자유의지로써 세계를 바꾸고 도덕적 이상을 구현해 가는 정신 능력의 근거를 규명하는 것이 <실천이성비판>이다. 물론 이때도 정신은 엄격한 내적 법칙 곧 도덕법칙을 따른다. <판단력비판>은 이 두 저서 사이 가교 노릇을 하는 책이다. 판단력은 자연과 자유 사이, 순수이성과 실천이성 사이를 이어주는 다리다. 행위하고 실천하려면 먼저 판단해야 한다. 그렇게 판단하는 마음의 능력의 원천을 찾아내는 과정에서 칸트가 먼저 탐구하는 것이 ‘미적(미감적) 판단력’이다. 이 미적 판단력 규명이 이후 철학적 미학의 진정한 출발점을 이룬다. 나아가 칸트의 미적 판단력은 현대의 정치철학에도 자양분을 제공하는데, 한나 아렌트의 ‘정치 판단 이론’은 칸트의 이 판단력비판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명섭 기자)     

 

세계일보(09. 05. 13) 칸트 3대 저작물 완역 마침표 찍다

서양의 세 문화기둥인 그리스·로마 문화와 과학, 기독교 사상은 칸트에 이르러서야 최초로 통합됐다. 그는 이 세 문화기둥을 동시에 한 시야에 두고 반성하며 설명했다. 한국 철학사와 정신사에 칸트 철학이 미친 영향도 지대했다. 한국에 칸트 사상이 유입된 것은 20세기 초. 우리 사회가 19세기 말부터 서양전통에 합류한 게 계기가 됐다. 우리 사회 저변에는 유교적인 가치 체제가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표면적으로는 서양의 가치가 사회 유지의 잣대가 되고 있다. ‘사회 정의’라는 문제만 하더라도 ‘서양 법사상’이 사회 유지의 근간이 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 흐름의 핵심에 ‘칸트’가 있다. 칸트 철학은 우리보다 앞서 서양철학을 받아들였던 일본을 통해서였다. 한국 철학박사들 중 ‘칸트’를 주제로 학위를 받은 사람은 100명이 훨씬 넘는다. ‘퇴계 이황’이나 ‘율곡 이이’를 주제로 학위를 받은 사람들보다 많은 수치다. 

이처럼 철학사에서 칸트의 비중이 컸으나, 그간 그의 사상이 ‘동일 학자의 일관된 설명’으로 드러나지는 않았다. 칸트의 3대 저작물인 ‘순수이성비판’(1781년) ‘실천이성비판’(1788) ‘판단력비판’(1790)은 그의 인식론을 잘 담아냈으나, 한 학자가 풀어낸 경우는 없었다. 각기 지식(眞)과 행위(善)의 영역을 논한 ‘순수이성비판’과 ‘실천이성비판’에 더해 감정 영역인 ‘미(美)’의 문제를 다룬 ‘판단력 비판’을 한 사람이 번역하기에는 무리가 따르는 게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백종현(59) 서울대 철학과 교수의 성과는 눈에 띈다. 백 교수는 최근 ‘판단력 비판’(아카넷)을 내놓으며 칸트의 3대 저작물 완역에 이정표를 찍었다. 일본 저작물을 답습하던 관행을 벗어나는 계기가 마련된 셈이다. 칸트의 3대 저작물을 한 학자가 완역한 경우는 외국에서도 사례가 발견되지 않는다는 게 책을 출간한 아카넷 오창남 편집장의 설명이다. 



칸트가 10년에 걸쳐 3대 저작물을 내놓았듯 백 교수도 3대 저작물 번역에 10년 가까운 시간을 투자했다. 2002년 ‘실천이성비판’에서 시작해, 2006년 ‘순수이성비판’를 거쳐 올해 ‘판단력비판’을 번역하며 작업을 마무리했다. 백 교수는 “칸트 이전의 모든 철학은 ‘칸트 저수지’에 모이고, 칸트 이후의 철학은 이 저수지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라며 “칸트 철학이 우리 사회에 주는 뜻은 각별하다”고 설명한다.

“사람의 여러 가치를 논했던 칸트 철학은 ‘인간 소외’가 심각한 문제로 부각되는 현실에서 더 유용성이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여러 ‘가치’가 있는데, 이 가치를 가치있게 하는 게 중요합니다. 칸트는 무엇보다 ‘인간의 존엄성’을 강조했어요. 사람이란 결함이 있는 존재인데, 이를 극복하는 가치있는 과정에서 인간의 존엄성이 나오지요.”

우리 사회의 좌우갈등과 빈부격차 등 문제점도 칸트의 방식으로 해결책을 모색해 볼 수 있다. 법률적 평등과 시민적 자유에서 조화를 찾으려는 노력을 지속하면 갈등의 강도가 낮아진다고 백 교수는 설명한다. 사회의 소외층 혹은 사회에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생각도 중요하다. 백 교수는 “소외층들이 스스로 그 사회의 구성원이라는 걸 감사하게 생각하는 사회가 제대로 된 사회”라며 “약자가 감사하다고 여기는 세상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그의 3대 저작물 완역은 일본 영향을 받았던 선배 학자들의 한계를 건너뛰었다는 의미가 추가된다. 또 통일되지 않았던 철학 언어가 자리를 잡게 된다는 점도 의미 있다. 일례로 그간 국내 저작물에서 ‘오성’(깨닫는 능력)으로 번역됐던 독일어 ‘VerStand’(아는 능력)는 본래의 뜻인 ‘지성’으로 풀이했다. 백 교수는 칸트의 3대 저작물 완역에서 더 나아가 4대 저작물의 하나로 그의 종교 철학을 다룬 ‘순절한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를 번역하고 있다. 2∼3년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이번 번역이 끝나면 칸트 사상의 ‘진선미성’(眞善美聖)이 완결되는 셈이다.(박종현 기자) 

09. 05. 15.  

P.S. <순수이성비판>의 해설서로는 백종현 교수의 <존재와 진리>(철학과현실사, 2008)가 있지만 입문서도 겸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저자가 옮긴 카울바하의 <칸트 비판철학의 형성과정과 체계>(서광사, 1992)가 예전엔 입문서 역할을 했었다. 김상봉 교수의 <자기의식과 존재사유>(한길사, 1998)는 짐작에 우리말로 씌어진 가장 쉬운 칸트 소개서가 아닐까 싶다('쉽다'는 건 어디까지나 다른 책들과의 비교에서만 의미를 갖지만). 칸트 전공자인 김상봉 교수는 언젠가 <판단력 비판>을 옮기겠다고 한 적이 있어서 나는 김상본판이 백종현판보다 먼저 나올 줄 알았다.  

개인적인 바람을 적자면, 승계호 교수의 입문서 <칸트>가 꼭 좀 번역/소개됐으면 싶다. 영어권의 칸트 입문서로 한국인 학자가 쓴 책이 읽힌다는 건 자랑할 만한 일 아닐까. 정작 이런 책을 번역하는 데에는 국내 학자들이 왜 인색한지 나는 잘 모르겠다. 말이 나온 김에 한 가지 바람을 더 적자면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 번역 이후에 백종현 교수가 헤겔의 <정신현상학>도 마저 번역해주면 좋겠다. 한국의 헤겔 전공자나 헤겔학자들은 임석진판을 넘어서는 <정신현상학> 번역에 별로 관심이 없는 듯하므로 그나마 기댈 수 있는 건 '부지런한' 칸트 전공자가 아닐까 싶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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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이] 2009-05-16 00:16   좋아요 0 | URL
정말 감사드려야 할 일인거 같아요.

로쟈 2009-05-16 00:30   좋아요 0 | URL
일당백이라고 해야겠어요. 덕분에 동료 철학 전공자들이 좀 민망해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2009-05-16 04: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5-16 1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게슴츠레 2009-05-16 15:57   좋아요 0 | URL
가히 '감동적'인 소식이군요.ㅎㅎ 백종현 선생님 덕분에 칸트를 읽지 않을 핑곗거리가 또 하나 줄은 것 같습니다.

로쟈 2009-05-16 21:10   좋아요 0 | URL
사실 너무 열심히 하는 것도 동료 학자들에겐 '민폐'인데요.^^;

푸른바다 2009-05-16 16:51   좋아요 0 | URL
최재희 역이나 전원배 역의 순수이성비판도 휼륭한 편이었으니, 칸트는 우리나라에서 비교적 행복한 철학자였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석윤 역 판단력 비판이 가장 한자가 많고 딱딱했는데, 새 번역이 기대되는 군요. 말씀대로 백종현 교수님이 정신현상학 마저 새로 번역하신다면, 우리나라 번역사에 신기원이 이루어지겠군요^^

로쟈 2009-05-16 21:11   좋아요 0 | URL
저는 아직 백종현판을 안 읽어봤는데, <판단력비판>부터 읽어보려고 합니다...

푸른바다 2009-05-16 22:53   좋아요 0 | URL
백종현 판이 가장 나은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겠지요. 하지만 아직 칸트가 우리말로 완전히 들어오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입니다. 백종현 판에서 기존의 번역에서 사용되던 '오성'을 '지성'으로 바꾸었지만, 우리말에서 흔히 사용되는 '지성'이 과연 칸트 철학 체계에서 'Verstand'에 대한 적절한 번역인지는 의문입니다. 적어도 우리말에서의 '지성'이 칸트의 'Verstand'보다 포괄적이고 개념의 지도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다르지 않나 싶어서입니다. 'Verstand'는 칸트가 새롭게 의미를 부여한 용어이고 따라서 이에 적절히 대응하는 한국말은 없는 것이 당연할 것입니다. 'Verstand'는 감관을 통해 들어온 지각들에 대한 좁은 의미의 '판단'인 반면 우리말에서 '지성'은 넓은 의미의 지적인 능력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칸트의 Verstand로 한정되기에는 지성이 일상 생활에서 너무 빈번히 다른 의미로 사용되기에 오히려 칸트 이해를 그르치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생깁니다. 차라리 관례대로 일상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 '오성'을 그냥 Verstand의 번역어로 사용하는 편이 혼돈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아무튼 말씀하신 대로 지식인들이 '백종현 판'을 한국어 저본으로 받아들이고 꾸준히 인용하고 그 개념들을 공유했을 때, 비로서 칸트의 한국말화가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겠지만 '지성'의 경우 과연 칸트적 의미의 Verstand로 좁혀지기에는 너무 널리 사용되고 있는 용어가 아닐까 싶군요.

로쟈 2009-05-16 22:20   좋아요 0 | URL
'지성' 번역에 대해서는 저와 뜻이 같으시네요.^^ 역자가 독어 'Verstand'야 잘 이해하시겠지만 한국어 '지성'의 쓰임새에 대해서는 간과하신 게 아닌가 싶었어요. 게다가 국내 로크 전공자들은 '인간 오성론'을 아직까지는 '인간 지성론'으로 바꿀 의향이 전혀 없는 듯싶으니, 독자로선 어차피 '지성'과 '오성'을 다 알아야 합니다. '도덕형이상학'을 '윤리형이상학'이라고 '의역'한 것도 저는 공감하기 좀 어렵습니다...

푸른바다 2009-05-17 09:35   좋아요 0 | URL
존 로크의 'Human Understanding'은 오히려 우리말 '지성'에 좀 가까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Human Understanding'은 데카르트의 'Bon Sens'와 통하는 개념이고 칸트의 'Vernunft'와 대응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일본에서 존 로크의 'Human Understanding'을 '悟性'이라고 번역할 때도 포괄적인 이성 개념을 전제하고 있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悟'는 우리나라에서 '깨닫다'로 이해되듯이 어떤 포괄적인 이해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그런데 존 로크의 'Understanding'에 대한 역어였던 '悟性'이 더 좁은 개념인 칸트의 'Verstand'의 역어로서 채택 되었는지도 궁금하더군요^^

칸트도 수차례 번역되고, 데카르트, 흄, 버클리의 책도 대부분 번역되어 있는 판에 유독 근대 인식론의 진정한 출발인 존 로크의 <인간 오성론>만 번역이 진행되지 않는 것도 신기합니다^^ 제가 알기론 1970년대 초반 휘문출판사에서 간행한 조병일 선생의 발췌 번역본 외에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라캉이 '프로이트에로의 복귀'를 외치 듯, 화이트헤드는 '존 로크로의 복귀'를 외치는 듯 싶은데 우리 말로는 복귀할 곳이 없는 셈입니다^^

로쟈 2009-05-17 10:34   좋아요 0 | URL
서지에 밝으시네요.^^ 개인적으로는 고등학교 때 이런 개념들을 처음 접하면서 '오성'이란 말이 입에 익었기 때문에, '悟性'이란 어원적 의미를 참조하지 않고도 그냥 쓰게 돠는데요. 제가 염려하는 것은 이게 '지성'으로 깔끔하게 대체되기 어렵다면, 결국 독자들은 '하나 더' 알아야 하는 부담이 있다는 것이죠. 차라리 고정시켜서 쓰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인지 의문입니다(그래서 저는 '초인'을 '위버멘쉬'라고 음역하는 것도 '전문가적 오버'라고 생각합니다). 독어의 Verstand를 결국 영어권에서는 intellect가 아니라 Understanding으로 옮기는 것 아닌가요? 차라리 쓰던 말의 의미역을 좀 확장하는 것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푸른바다 2009-05-17 19:08   좋아요 0 | URL
서지에 밝기는요^^ 로쟈님에 비하면 새발의 피죠^^ 아무튼 저도 로쟈님 의견에 동감입니다. '오성'이라는 말을 사용한지도 벌써 100년(?)년 가까이 된듯 싶고, 일관되게만 사용한다면 학적인 추론이나 대화에 큰 문제는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칸트적 의미의 '이성'이나 '오성'도 웬만큼 철학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알고 있을 듯 싶구요. 저는 '위버멘쉬'로 번역해 놓은 전문가들을 보면 왠지 '라파엘 전파' 미술가가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나옵니다. 물론 그분들의 학문적 노력과 실력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니 오해하지는 마시구요^^ 불경의 한역 과정에서 '번역어'가 '원어'로 바뀐 사례는 있는 것 같습니다. Nirvana가 무위로 번역되다가 음사인 '열반'으로 바뀐 경우겠지요. 이 경우 무위가 이미 도가철학의 핵심 용어이기 때문에 이와 구별하는 차원에서 발생한 필연성이 있었다고 하겠지만, '초인'의 경우 니체외의 다른 철학체계에서 사용된 적이 거의 없는 니체 번역용 '신조어'에 가깝기 때문에 '위버멘쉬'의 의미를 초인에 부여해서 쓰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조금이라도 철학을 아는 사람이라면 '초인'하면 니체를 떠올릴 터이니 '초인'의 의미만 잘 해설되어 있다면 니체철학을 이해하는 데 장애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다는 게 제 의견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09-05-17 15:40   좋아요 0 | URL
제가 가진 대양출판사 번역본(한상범 역)에는 '인간지성론'으로 되어 있네요.
1978년 초판 81년 중판.이 역본은 해설이 정말 자세하고 저자 연표도 자세해서 좋아요.

푸른바다 2009-05-17 15:59   좋아요 0 | URL
노이에자이트 님이야 말로 서지에 밝으시군요^^ 저는 그런 번역본이 있는지 몰랐습니다. 한상범씨 책은 완역인지 모르겠네요^^ 로크의 원저 자체가 난삽하고 길고 반복되는 부분이 많아서 영어로도 축약본이 더 널리 보급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저도 축약된 영어본 2종을 갖고 있을 뿐입니다^^ 조병일 번역본은 축약본도 아닌 발췌본입니다^^ 언제 헌책방에서 찾아 봐야 할 것 같네요.

노이에자이트 2009-05-17 16:38   좋아요 0 | URL
역자가 "이 발췌에 대해서는 역자가 책임을 짐.골자는 다 들어가 있음"이라고 밝혔어요.영어본 중에도 발췌본이 있는데 역자는 그 책들은 참고하지 않았다네요.대양출판사 세계사상대전집은 헌책방에 있을 거에요.저는 낱권으로 몇권 구입했는데 고물상에서 구입한 것도 있어요.
댓글 수준이 높군요.자세히 읽어봐야겠네요.
<니이체 철학의 현대적 조명>(청람)에 실린 정동호 논문제목이 '위버멘쉬는 누구인가'네요.

bam 2009-05-17 07:10   좋아요 0 | URL
김상봉 선생님의 번역본도 올해 안에 나올 것입니다. 지금 번역은 일단 끝냈고 옮긴이 주 다는 작업을 하고 계신다 들었습니다. 후일 두 번역본을 비교해보면 재밌을 듯 하네요. 칸트번역에 대한 백종현 선생님의 노고는 정말 이루말할 수 없이 고마운 것이고, 특히 순수이성비판의 경우, 1쇄에 나왔던 사소한 오역과 오류들을 다음쇄 찍을 때 교정하고 했던 모습도 좋았습니다만, 번역본을 볼 때 가끔 참을 수 없이 싫은 경우들이 있더라구요. 대표적으로 칸트가 라틴어를 사용한(또는 인용한) 대목에서 '고어'의 느낌을 살리시고자 한문으로 번역한 점. 어쨌듯 백종현 본이 최재희나 전원배 번역본보다 물론 나쁠리야 없겠지만, 그렇다고 더 좋은 번역이라고 볼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기존의 번역어들에 대한 몇 몇 수정이 백종현 본을 읽을 때 치명적으로 다가올 때도 있거든요. 오역의 문제라기보다는 번역어 선택의 문제랄까, 백종현 선생님도 연배가 꽤 있으셔서 그런지 거의 쓰지 않는 단어들을 부러 선택하시는 경우들이 있더라구요. 그리고 아주 가끔 <접속사>의 번역이 부적절하다고 느끼곤 했습니다.

한 가지 더: transzendental (이하 tr.)과 a priori (이하 ap.) 의 번역 / 백종현은 transzendental을 '초월적'으로, a priori를 '선험적'으로 번역합니다. 그 전에는 대개 tr.을 '선험적'으로, ap.를 '선천적'으로 번역되었었는데, 그런 기존의 관행이 ap.와는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닌 innatus(본유적/선천적)와 ap.를 혼동시키기 때문에 현재 학계에서는 ap.를 '선험'으로 번역하는 것에 모두 동의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tr.에 있습니다. transzendental이란 개념은 칸트 자신이 창안해낸(혹은 칸트 시대에 창안된)개념입니다. 물론 tr.은 스콜라철학의 transzendentalia(초월자/직역하자면 초월적인 것들)과의 일정부분 연관성을 가집니다. 과거에 '초월'은 'transzendent'의 번역어였고, transzendent와 transzendentalia는 중세 스콜라의 신학적 맥락의 뜻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백종현 선생님은 transzendentalia와 tr.의 관련성 때문에 이를 '초월적'이라 번역하고, 기존에 '초월/초재'라 번역되던 transzendent를 '초험'이로 번역합니다. 그런데 '초월'이란 역어는 니체의 위버멘쉬를 '초인'이라고 번역할 때와 꼭 같은 난점을 가지게 됩니다. '초월'이나 '초인'이란 단어를 들었을 때, 혹은 읽었을 때, 저는 언제나 super-natural 을 떠올리게 됩니다. (이것이 저에게만 해당하는 극주관적인 느낌은 아닐거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칸트의 tr.은 그 자신이 설명하듯 ap.와 밀접한 개념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둘이 서로 치환되어 사용되기까지 할 정도로 말이죠. 칸트는 'a priori한 인식'이란 표현으로 '대상 일반에 대해 가능한 순수하고도(경험적인 것이 섞이지 않은)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인식'을 의도하고 있고, transzendental이란 표현으로는 'a priori의 가능성을 문제삼는/탐구하는'이라고 설명합니다. <순수이성비판> 머리말의 유명한 구절 중에 "transzendental Philosophie는 a priori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철학이다."라는 말도 있는데(정확하진 않습니다), 어쨌듯 '초월'이란 역어는 이상합니다. 이런 사정때문에 상당수의 연구자들은 tr.의 번역에 있어서도 '선험'을 사용하곤 합니다. 한편 김상봉 선생님은 tr.과 ap.의 연관성을 고려하시고 tr.을 '선험론적'이라 번역할 것을 제안하고 있는데, 저는 백종현 번역본을 읽을 때, transzendental이라는 표현을 '선험론적'으로 모두 바꾸어 읽어야 비로소 이해가 되더군요. 또 tr.은 이후 하이데거나 프랑스철학에서도 많이들 사용되는 개념인데, 번역할 때는 보통 a priori랑 구별 없이 둘 다 '선험적'으로 번역되는 것 같습니다.

로쟈 2009-05-17 10:25   좋아요 0 | URL
댓글로만 읽기에는 아까운 지적이신데요.^^ 김상봉판도 기대가 됩니다(갑자기 '칸트 르네상스'라도 된 듯싶네요). 저도 오래전 읽은 기억으로 '선천적/선험적'을 '선험적/초월적'으로 바꾸고 transzendent인가를 '초재적'이라고 번역해야 한다는 식의 설명을 읽은 듯합니다. 기본적으로는 학술용어/전문용어의 경우 의미상의 맞대응어를 찾기는 어렵고, 그걸 고정시키고 사용하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고정/사용에 얼마간의 '근거'나 '적합성'을 고려해야겠지만요. 더불어 이해의 용이성도 중요하게 고려해야겠구요. 이런 대목에선 같은 전공학자들끼리도 합의가 어려운 듯싶어요. 들뢰즈 번역어들의 경우도 그렇고. 그게 물론 학적으로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을 수 있다는 건 알지만, 일반 독자들에겐 '골탕'먹는 일입니다. 이렇게 저렇게 번역된다는 걸 과연 모두 알아야지만, 칸트를 이해할 수 있고, 들뢰즈를 이해할 수 있다는 건 좀 소모적이란 생각이 들어요...

푸른바다 2009-05-18 14:20   좋아요 0 | URL
초인에 대한 님의 느낌이 극주관적인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저에겐 꼭 super natural의 느낌이 강한 것은 아닙니다^^ 사실 super natural한 힘을 가진 자로서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용어는 '초능력자'이지 '초인'은 아닌 것 같네요^^ 유리 겔라를 초능력자라고는 해도 초인이라고 하면 어색하듯이 말입니다. '초인'이란 말은 일상어에선 명사로 보다는 '초인적'이란 형용사로 많이 사용되는 것 같습니다. 이때도 니체적인 의미의 초인과는 물론 다르겠지만 '초능력'과도 매우 다른 보다 현실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것 같습니다. '초인적인 힘을 발휘했다'는 말은 유리 겔라가 아니라 현실적인 사람에게 해당되는 말입니다^^ 예를들어 야구에서 '초인적인 역투'라는 말을 사용하듯이 말입니다. 형용사적으로 사용된다는 건 초인의 경지에는 달성할 수 없다는 걸 전제할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초능력 보다는 현실적인 개념으로 제겐 느껴집니다.

이육사의 '광야'에도 초인이 등장하는 데, 이 개념이 니체랑 관련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분명 super natural한 힘을 가진 사람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싶네요^^ 독일어에서 ubermensch도 어차피 신조어니 이의 간결한 번역어인 '초인'에도 니체가 ubermensch에 담고자 했던 의미를 부여해서 사용한다면 큰 문제가 없지 않을까 싶네요. 위버멘쉬하면 전 왠지 '어륀지'가 연상되어 웃음이 나옵니다.

로쟈 2009-05-17 22:31   좋아요 0 | URL
네, 하지만 '위버멘쉬'론자들은 동일한 사안이라고 생각지 않는 듯합니다...

푸른바다 2009-05-17 23:04   좋아요 0 | URL
그래도 니체가 이 땅에서 대중적으로 가장 사랑 받는 서양 철학자가 아닌가 싶습니다. 전집이 2회나 간행된 철학자도 니체가 유일한 듯 싶고... 번역하시는 분들이 자신의 마음에 맞는 번역어를 고르는 것은 '오역'만 아니라면 어느정도 자유의 영역에 속하겠죠. 하지만 이 번역어의 생존 여부는 민중이 얼마나 그 번역어를 사랑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 같습니다. 초인이라는 번역어는 니체가 이땅에서 읽힌 이래 영원회귀와 함께 니체 사상을 대표하는 단어였고, 니체를 읽으면서 느꼈던 수많은 개인적인 감정들과도 얽혀 있습니다. 전 아무래도 위버멘쉬를 사랑할 수는 없을 것 같네요. 아마 많은 니체 독자들도 비슷한 심정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번주에는 눈에 띄는 신간이 많지 않다. 물론 그래도 항상 몇 권 정도는 읽어볼 만한 책이고, 소장해 둘 만한 책이다(백종현 교수 번역의 <판단력 비판>(아카넷, 2009)도 출간됐지만 너무 고가여서 일단은 관망하기로 했다). 예술분야의 책 가운데 '이주의 책'으로 꼽을 만한 것은 이자벨 밀레의 <미완의 작품들>(마음산책, 2009). 책은 제목만으로도 얼마간의 값어치를 한다. 즉, 영감을 준다! 이런 책은 내용보다도 저자가 처음 구상을 하고 거기에 걸맞은 작품들을 고르고 원고를 써나가는 과정 자체가 더 흥미로울 듯싶다(머릿속에 그려진다!). 그래서 저녁에 외출을 했다가 아예 사들었다. 미켈란젤로의 노예상들에서 조르주 페렉의 <'53'일>까지 11점이 저자가 다루는 미완성 작품들의 목록인데, 물론 이 목록은 얼마든지 더 이어질 수 있다. 그러니 이 책 또한 '미완성'이다. 사실 10점이나 12점이 아닌 11점만을 다룬 것도 그런 미완성성을 드러내기 위한 저자의 고려이다. 내가 만약 '미완의 작품들'이란 책을 쓴다면 어떤 리스트를 만들 수 있을까? 시간이 좀 나면 혼자 궁리해봐야겠다...    

  

서울경제(09. 05. 16) 미완의 작품 그 비밀을 들춰보다 

'논 피니토(non finito)'. 미완성의 미학을 일컫는 말이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당시 사람들이 발견한 새로운 세상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이 있었기 때문에 유난히 미완의 작품이 많았다. 의문과 탐구가 미완까지 용인했지만 그렇지 않은 이유도 있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전성기를 대표하는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1475~1564)는 1905년 교황 율리우스 2세의 영묘(塋墓) 구상을 지시받는다. 하지만 중간에 변덕을 부린 교황과 메디치가를 비롯한 다른 권력자들의 주문으로 영묘 제작은 진행과 중단을 되풀이했다. 때문에 40년 뒤 완성 시점에 '노예상(像)'들은 영묘에 들어가지 못했다. 다른 주문에 밀려 미완성으로 남은 것. 



완결되지 않은 작품임에도 거장의 손길은 돌에도 생명을 불어넣어 노예상은 마치 대리석 안에서 숨쉬던 인간이 뚫고 나오는 찰나를 보여주는 듯 생생하다. 지금은 피렌체에 5점, 루브르 박물관에 2점이 전시중인데 사람들은 이 노예상 속에서 메디치가와 교황의 주문으로부터 한 번도 자유롭지 못했지만 항상 자유와 정의를 추구했던 미켈란젤로의 저항과 고통, 자존심을 읽을 수 있다. 



베르디 이후 최고의 오페라 작곡가로 꼽히는 자코모 푸치니(1858~1926)의 오페라 '투란도트'에는 열정이 담겨 있다. 60대의 푸치니는 웅장한 이야기와 새로운 곡풍으로 자신의 예술세계를 확장하고자 이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푸치니는 그러나 3막을 작곡하던 중 후두암으로 사망했다. 뒷부분은 당시 토리노 음악원장이던 작곡가 프랑코 알파노가 완성했다. 1926년 4월 밀라노의 스칼라 극장에서 이 작품의 초연을 맡은 토스카니니는 "이것으로 거장의 작품이 끝났습니다. 그 분은 여기까지 작업한 후 돌아가셨습니다"라며 다른 지휘자에게 자리를 넘겼고 객석은 눈물 바다가 됐다.

스페인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1852~1926)가 1883년부터 사망할 때까지 40년간 건설 책임을 맡은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성가족 성당)'은 건축가 사후에도 건설 중이며, 소설가 오노레 드 발자크(1799~1850)는 일부러 끝맺음 단계에서 손을 놓아버렸다.

프랑스 작가인 이 책의 저자는 미완의 작품들은 초고와 걸작의 중간지점에서 작품 제작과정에 대한 비밀을 완성된 작품보다 더 많이 드러낸다고 소개했다. 음악과 문학, 미술을 넘나들며 11개의 미완을 보여준다.(조상인기자)  

09. 0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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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tty 2009-05-16 04:43   좋아요 0 | URL
와 이 책 너무 재미있어보이네요.
언제나 좋은 책 소개 감사드립니다! ^^

로쟈 2009-05-16 10:03   좋아요 0 | URL
저랑 '감'이 비슷하시네요.^^

2009-05-17 07: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5-17 07: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5-17 10: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5-20 12: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의 인문학 서재>(산책자, 2009) 표지를 전송받았다. 시안은 확인했지만('서재'가 컨셉이다) 표지 최종판은 나도 처음 본다. 표지에 박힌 몇몇 인물 사진이 교체된 걸 알겠다. 페이퍼로 옮겨놓으니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데, 여하튼 이런 모양새의 책이 내주초에 출간될 예정이다. 그래도 기다리신 분들께는 좋은 '기념품'이 되면 좋겠다(내용의 대부분은 내가 그동안 서재에 풀어놓은 것들이므로 아주 낯설지는 않으실 테니까).   

 

09. 05. 15. 

P.S. 이미지상으로는 잘 읽히지 않는데, 부제는 '곁다리 인문학자 로쟈의 저공비행'이다. 제목이 뜻하는 바는 '책머리에'에 적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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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로쟈의 인문학 서재 제사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09-05-18 13:21 
    예정대로 <로쟈의 인문학 서재>(산책자, 2009)가 오늘 출간됐다. 아마도 내일부터는 배포가 될 듯싶고, 일반서점에서는 이르면 수요일부터 구매가 가능하지 않을까 한다. 나는 오늘 밤에나 책을 받아볼 듯싶은데, '기념'으로 책의 제사(에피그라프)도 소개한다. 지난번에 표지 이미지를 올려놓았으니 의당 '제사' 차례이기도 하다. 사실 책장을 열면 가장 먼저 읽게 되는 것이 '제사'(혹은 '헌사')이지만 거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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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09-05-16 21:14   좋아요 0 | URL
네, 감사합니다.^^

연두부 2009-05-16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이런 일을 진행하고 계셨군요..축하드립니다...꼭 사 볼께요 ㅎㅎ

로쟈 2009-05-16 21:15   좋아요 0 | URL
몰래한 건 아니고, 작년부터 예고됐던 일입니다.^^;

김도마 2009-05-16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재가 어떻게 편집이 되었나 궁금하네요~
진심으로~축하드립니다.

로쟈 2009-05-16 21:15   좋아요 0 | URL
극히 일부(?) 글을 수정하고 편집한 책입니다...

푸른바다 2009-05-16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57번 째 댓글이네요. 뒤늦게 나마 축하드립니다^^ 앞으로 많은 책들을 출간하시기 위한 신호탄으로 알겠습니다^^ 표지 디자인에는 직접 관여하셨는지요? 어째 사르트르가 빠졌네요^^

로쟈 2009-05-16 21:16   좋아요 0 | URL
왼쪽 하단에서 발견하실 수 있을 텐데요.^^ 책도 독자가 있어야 낼 수 있는 것이죠.^^;

키노 2009-05-17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집니다. 인문학 책들이 어려운 내용들만 담은 것이 많았는데 로자님이라니까 급관심^^ 출간을 축하합니다

로쟈 2009-05-17 22:30   좋아요 0 | URL
네, 너무 어렵지 않은 글들을 고르려고 애썼습니다.^^;

Sati 2009-05-17 1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드디어군요. 축하드려요. 장바구니에 넣고 메일로 축하선물(?) 보내드릴게요.

로쟈 2009-05-17 22:3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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