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라캉주의와 변증법적 유물론

며칠전부터 지젝의 <시차적 관점>(마티, 2009)을 다시 손에 들고 주로 후반부를 읽었다. 필요 때문이기도 하고 관심 때문이기도 한데, 사실 두께가 두께인 만큼 단숨에 일독하긴 어려운 책이어서 이렇듯 기회가 닿을 때마다 읽어두는 것. 단, 원서와 같이 읽기 때문에 진도가 빨리 나가진 않는다. 그럼에도 지젝의 독자라면 '지젝의 모든 것'이라고 할 만한 이 책을 여러 번 숙독해봄 직하다(일독도 어렵다면서?!). 그러기 위해선 약간의 교정도 필요하다. 더없이 요긴한 번역본이긴 하나 으레 그렇듯이 분량이 분량인 만큼 실수와 착오도 드물지 않다. 물론 대부분은 사소한 것이나 간혹 문제가 되는 오역도 있다. 그런 걸 고쳐가면서 읽으면 된다(조금 난해할 듯싶지만 어떤 경우에도 이 책의 가치는 폄하될 수 없다. 사실 지젝보다 난해한 책들도 부지기수다).    

가령, "여기서 우리가 제안해야 하는 것은 헤겔적인 '무한판단'으로서 타자성에 대한 적나라한('비승화된') 미움만을 전시하는 폭력적 직접성이 '쓸모없는' 그리고 '과잉적' 분출의 사변적 정체성을 사회에 대한 보편적 반성 과정과 함께 주장해야 한다. 아마도 이 우연일치에 관한 궁극적인 실례는 정신분석적 해석의 운명일 것이다."(590쪽)는 '제안'을 보자.  

일단 이 책에서 '정체성'이란 단어가 나오면 한번쯤 주의해야 한다. 이 'identity'란 단어가 '정체성'이란 뜻보다는 보통 '동일성'이란 뜻으로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speculative identity'라고 하면 거의 무조건 '사변적 동일성'이다('사변적 정체성'이란 말을 나는 들어본 적이 없다). 그리고 '동일성'이라고 하면, 보통 '무엇과 무엇의 동일성'이란 구문으로 쓴다. 이 문장도 마찬가지다. 원문은 이렇다.   

"What we should propose here is the Hegelian 'infinite judgment' assertimg the speculative identity of these 'useless' and 'excessive' outbursts of violent immediacy, which display nothing but a pure and naked ('unsublimated') hatred of the Otherness, with the global reflexivization of society; perhaps the ultimate example of this coincidence is the fate of psychoanalytic interpretation."(300쪽) 

핵심구문은 'the speculative identity of A with B'(A와 B의 사변적 동일성)이다. 다만 A에 해당하는 것이 관계사절까지 거느리고 있어서 다소 길 따름. 국역본은 이를 간과해서 "사변적 정체성을 사회에 대한 보편적 반성 과정과 함께 주장해야" 한다는 식으로 엉뚱하게 옮겼다. 'global reflexivization of society'도 '사회에 대한 보편적 반성 과정'이 아니라 '사회의 지구적 재귀화' 정도다('재귀화'는 울리히 벡 등의 성찰적/재귀적 근대론자들이 쓰는 용어다).    

유사한 사례를 더 들자면, "지속되는 '테러와의 전쟁' 속에 있는 대립쌍들의 이러한 '사변적인 정체성'은 우리로 하여금 일련의 중요한 정치이론적 결과들을 도출하도록 강요하는데..."(734쪽)에서도 "대립쌍들의 이러한 '사변적인 정체성'(This 'speculative identity of opposites)"은 마찬가지로 "대립쌍들의 이러한 사변적 동일성"이란 뜻이다. 여하튼 사단은 '동일성' '정체성' 등을 모두 카바하는 'identity'의 오지랖이 우리말보다 넓다는 데 있다('진리'와 '진실'을 다 카바하는 'truth'처럼).

한두 가지만 더 짚어본다. "여기서 첫번째 교훈은 지배 이데올로기('근본주의 대 자유주의')가 부과하는 선택이 실제의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는 항상 세번째 가능성을 찾아야만 한다. 두번째 교훈은 근대성 또는 반성적인 '위험사회' 이론의 주제 중 하나가 오늘날 우리 모두가 너무나 많은 선택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다."(682쪽)  

이 대목은 번역만 가지고는 오역을 찾아내는 것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원문과 대조하면 너무도 단순한 착오가 포함돼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The first lesson here here is that choice imposed by ruling ideology ('fundamentalism versus liberalism') is not a real one: we always have to look for a tertium datur. One of the topoi of the theories of second modernity or reflexive 'risk society' is that today, we are all exposed to too many choices."(348쪽) 'second modernity'(이차적 근대)가 '두번째 교훈'으로 잘못 옮겨진 것. '반성적인'이라고 옮겨진 'reflexive'도 보통은 '성찰적' 혹은 '재귀적'이라고 옮겨지는 듯하다.   

그리고 고대 중국의 이데올로기적 좌표에 관한 얘기. "고대 중국의 이데올로기적 좌표는 - 모택동에 의해 복권된 기괴한 세번째, '법가'의 입장, 평등주의적인 혁명적 공포의 지지자와 함께 - (전통적인 관습, 권위 그리고 교육에 의존하는) 유교와 (자발적인 자기-계몽을 추구하는) 도교 사이의 대립에 의해 지배되었다(우리가 느끼기에 오늘날의 이데올로기적 지도는 신보수주의 근본주의적 민중주의와 자유주의적 다문화주의 사이의 대립으로 결정된다). 유교와 도교는 서로에게 기생하며 둘 모두 체계에 대한 모든 대안적 선택들을 가로막는다."(683쪽)  

이 부분도 번역만 가지고는 오역을 식별하기 어렵다. 원문은 이렇다. "The ideological constellation in ancient China was dominated by the opposition between Confucianism (reliance on traditionaal customs, authority, and education) and Taoism (spontaneous self-enlightenment) - with the uncanny third position of 'legalists' rehabilitated by Mao Zedong, partisans of egalitarian revolutionary terror. In our perception, today's  ideological constellation is determined by the opposition between necconserverative fundamentalist populism and liberal multiculturalism - both parasitizing on each other, both precluding any alternative to the system as such."(349쪽) 

특이한 경우인데, 역자는 하이픈의 범위를 착각하여 두번째 문장을 엉뚱하게도 "(우리가 느끼기에 오늘날의 이데올로기적 지도는 신보수주의 근본주의적 민중주의와 자유주의적 다문화주의 사이의 대립으로 결정된다)"고 괄호안에 넣어버렸다. 그래서 'both'가 가리키는 것이 '근본주의적 민중주의와 자유주의적 다문화주의'가 아니라 엉뚱하게도 '유교와 도교'가 돼버렸다. '둘다'라고 했으면 그냥 넘어갈 수도 있을 텐데, '유교와 도교는'이라고 해놓았으니 명백히 오역이다.  

첫 문장은 고대 중국의 이데올로기적 배치는 유교와 도가였고, 법가가 '제3의 입장이었는바, 이 법가는 마오쩌둥과 혁명적 테러를 주도한 평등주의 빨치산(파르티잔)들에 의해 복원되었다는 게 요지. '지지자'이라고 옮긴 '파르티잔'은 짐작에 문화혁명시 '홍위병'을 가리키는 게 아닌가 싶다.       

오래 붙들고 있을 시간이 없어서, 사소한 거지만 지젝의 번역서들에서 종종 반복되는 오역을 지적하고 마무리한다. '오역'이라고 하면 '논쟁의 여지는 있지만' 개인적으론 '오역이라고 할 만한' 사항이다. 바로 'arguably'를 '논쟁의 여지는 있지만'이라고 옮기는 것. "논쟁의 여지는 있지만 슈만의 피아노 대작인 '유모레스크'는 그의 노래들로부터 목소리가 점차 사라지는 배경 위에서 이해되어야 한다."(715쪽)에서 첫 부분은, "'Humoresque,' arguably Schuman's piano masterpiece"를 옮긴 것이다. 'arguably'는 '논쟁할 수 있는'이란 뜻도 되지만, 보통은 '주장할 수 있는' 쪽이다. 여기서는 "'유모레스크'가 슈만의 피아노 걸작이냐 아니냐는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이런 식이 아니라 "슈만의 피아노 걸작이라고 할 만한 '유모레스크'는", 이런 식으로 나가야 한다. 책에 종종 등장하는 'arguably'는 모두 '논쟁의 여지는 있지만'이란 식으로 옮겨졌는데, 이야말로 'arguable'하며 나로선 불편하다(다른 책들에서도 마찬가지다). 

   

덧붙여 말하자면, 문두 부사로 쓰이는 'incidentally'를 '우연히도'라고 옮기는 것도 나를 불편하게 한다. '말이 난 김에 말하자면' '덧붙여 말하자면'이 문맥에 적합한 경우가 대부분인데, 가령 아부 그라이브의 이라크 포로 학대가 미국식 하위문화를 연상시킨다고 지적하는 이런 대목.  

"군부대에서든 고등학교 교정에서든, 신고식이 과도하게 진행되어 병사들 또는 학생들이 인내할 만한 것으로 간주되는 수준 이상으로 다치게 되거나 굴욕적인 자세를 취하게 되거나 (동료들 앞에서 맥주병을 항문에 삽입하는 것과 같은) 품격을 떨어뜨리는 행동을 수행하게 되거나 바늘로 꿰어지는 것 같은 추문이 발생할 때 우리는 미국 신문에서 정기적인 간격으로 유사한 사진들을 보지 않는가(그리고 우연히도 부시 자신이 '해골과 뼈'라는 예일 대학의 가장 배타적인 비밀단체의 성원이었으므로, 입회하기 위하여 그가 어떤 의식을 감행해야 했는가를 알면 흥미로울 듯하다)?"(720쪽)  

여기서 'incidentally'를 '우연히도'라고 옮기는 건 뜬금없다. 이 경우에도 '말이 난 김에 말하자면' 혹은 '덧붙여 말하자면'이라고 해야 한다. 사소해 보이지만 자주 등장하여 독서를 불편하게 하기에 맘먹고 털어놓는다... 

09. 08.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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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동 2009-08-04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급 서적일 수록 비평이 필요하군요.
비전문가인 일반 독자의 경우 바른 것과 그러지 못한 것에 대한 구별 능력이
부족합니다. 대충 넘어가는 경향이 있습니다.(책에 대한 맹신으로)

원문-> 번역(한글,한자) -> 독자의 이해의 경우,
(심심하면 한자사전을 자주 본다는 김훈님의 말이 생각남)
한 독자가 원문에 대한 직독을 한다 하더라도, 그 또한 번역에 해당됨.

외국서적에 대한 번역이 매우 중요함을 새삼 느낍니다. 특히 고급 텍스트를
번역하시는 분들께 심심한 감사드립니다.

저 또한 로쟈님 덕분에 '비평과 번역'의 중요성을 느낍니다.
어쩜 '곁다리'라는 말은 인문학의 대중적인 친근미를 더 할 수 있는
적당한 표현이라 생각합니다.(비전공자 입장에서)

제 맘속에 인문학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이 도사리고 있는 듯합니다.
철학,문학,미술 등의 용어에 대한 공부 부족으로 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는 경우도 있구요.(사변적 동일성,,,등) 영어 단어는 알지만
문장으로 엮어지면 몰라버리는 경우와 같겠지만요

로쟈 님이 뒷 따르며 흘려버린 것을 운좋게 줍는다는 의미에 동감입니다.
한 책을 놓고, 독자의 의견과 취향이 다르다는 것을 매번 느낍니다.
비평이나 오류에 대한 수정은 독자에게 좋은 정보라 생각합니다.

조선 말, 일제, 6.25 등, 역사의 질곡을 거치면서 우리가 놓쳐버린 것이
많은 것같습니다. 어차피 인간 사회가 파란만장 하지만요.
분야별 더 좋은 번역서들이 많이 출판되도록 민.관으로부터 지원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로쟈 2009-08-04 13:29   좋아요 0 | URL
네, 지원도 필요하고, 더 중요하게는 독자층이 늘어나야겠습니다...

목동 2009-08-05 07:23   좋아요 0 | URL
어제 저녁에 '로쟈의 인문학 서재'의 '서재5(내 울부짖은들 누가 들어주랴)'를 읽고서야 '~들어주랴'의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번역비평은 원한의 지평을 넘어서야 한다.'외 몇 문장이 마음에 닿았습니다. 특히 릴케의 '두이노의 비가' 읽기(~서재,391~405쪽)를 읽을 때는, 음~ 해체된 백제의 미륵사지서탑(국보11호)을 재건할때 느낄 만한 떨림과 호기심을 갖게 했습니다.(수사반장처럼)

저는 '책세상'의 '릴케 전집'를 가지고 있는데, 꺼내 '비가'를 찾아 읽으려 했지만,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제목이 다른지?)

자연과학에서 원문 번역과 인문학에서 번역이 크게 다르지 않겠지만,
제(자연) 분야에 번역서들을 가끔 볼 때마다 쉽지 않겠다는 생각하곤 했는데. 풍부한 언어적 상상력이 필요함을 느낍니다.

또한, 번역서 책값이 대체적으로 비싸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해가
되더군요.(제2의 창작)

로쟈 2009-08-05 21:40   좋아요 0 | URL
책세상판도 <두이노의 비가 외>라고 돼 있을 듯한데요...

푸른바다 2009-08-04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젝이 말하는 '신보수파의 근본주의적 민중주의'가 무엇인지 번역으론 와 닫지 않는군요^^ 이 경우는 우리나라에서의 어법을 볼 때 '민중주의' 보다는 포퓰리즘이 더 적절한 번역인 것 같습니다. '근본주의'라 함은 조지 부시의 기독교 근본주의를 말하는 것인가요? 암튼 네오콘과 미국 민주당간의 대립을 지칭하는 것 같은데, 제 이해가 맞는 지 모르겠네요. MB 정권도 어찌보면 근본주의적 포퓰리즘에 가깝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우리나라 민주당은 사실 미국 민주당보다도 리버럴하지 않지만...

저도 시차적 관심은 보유하고 있지만 아직 읽지 못했습니다^^ 로쟈 님과 더불어 조금씩 읽어가야 겠군요^^

로쟈 2009-08-04 22:50   좋아요 0 | URL
두어 장을 꼼꼼하게 읽으면 나머지 장들도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근본주의에 대한 지젝의 입장은 '상식'과는 좀 다릅니다.'민중주의'란 번역어는 번역본을 그냥 따른 것이구요...

seerblest 2009-08-04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arguably는 로쟈님 지적대로 오역이 맞습니다. 보통은 문장 전체를 수식하면서 "틀림없이"란 뜻으로 쓰이는 부사로,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이 아니라 (오히려) "논쟁의 여지(필요) 없이"가 더 정확한 본래의 뜻이죠. 따라서, "슈만의 걸작으로 뽑기에 손색없는 유모레스크" (혹은, 누구라도 슈만의 걸작이라고 손꼽을(주장할) 유모레스크)가 정확한 번역이겠죠. 부사로서의 arguably는 누구라도 기꺼이 그렇게 주장하듯이의 어감을 뜻하니까요.

로쟈 2009-08-04 22:49   좋아요 0 | URL
잘 정리해주셨네요. 짐작엔 형용사 arguable에 너무 의지한 탓이 아닌가 싶어요...
 

'크레월드'라는 웹진 8월호의 '파워블로거'란에 '로쟈의 저공비행'이 소개됐다(https://www.creworld.co.kr/200908/intro/power_blogger.jsp). 얼마전 간단한 이메일 인터뷰에 응한 적이 있는데, 기사에 일부 반영이 됐다. 옮겨놓으려고 하니 같은 폭의 봉지에 또다른 봉지를 집어넣는 듯하나 거울을 들여다보는 듯한 재미도 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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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동 2009-08-03 2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곁다리, 곁가지 ,,, 마음에 듭니다.(가지를 쳐나가면 될 듯싶다.)
책을 버리며, 책읽는 법을 배울 것 같아요.

로쟈 2009-08-03 21:10   좋아요 0 | URL
네, 그렇게 관심을 확장해나가는 게 공부죠...
 

2-3년내로 쓰고자 하는 것 중의 하나는 '너 자신을 세라'는 제목의 책이다. 자기 자신을 포함하는, 자기 반영적인 지식의 문제를 다루고자 하는데, 그런 관심사에서 <책 읽는 뇌>(원제는 '프루스트와 오징어'이지만)나 뇌과학, 그리고 인지주의에 관한 책들도 조금 들춰본다(이 경우에도 내게 가장 유익한 건 지젝의 책들이다). 아무래도 조금씩은 준비를 해두어야 할 것 같아서이다. 맛보기로 삼자면 아래와 같은 '드루들'이 내가 생각하는 컨셉이다. 예전에 로저 프라이스의 <낚시질하는 물고기>(창해, 1994)란 책이 소개된 바 있는데, 이미지를 온라인에서 찾을 수가 없어서 폰카로 찍어 옮겨놓는다.

   

표제작이기도 한 이 드루들의 제목이 'Fish fishing', 곧 '낚시질하는 물고기'다. 저자는 이렇게 적어놓았다.  

"시끄럽게 굴기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 드루들(droodle)은 자연스럽지 못하다고 시비를 걸었다. “왜 낚시바늘에 미끼가 달려 있지 않은가?” 혹은 “어떻게 낚시줄을 묶을 수 있었는가?” 등등. 그 대답은 이렇다. 이 물고기는 영리하므로 걸렸는지 안 걸렸는지 곧바로 알 수 있기 때문에 미끼는 필요없다. 게다가 물고기를 잡는 데에는 그다지 흥미가 없고, 낚시질하는 그 자체에만 흥미가 있다. 이 드루들에 가까이 다가가서 잘 살펴보면, 낚시줄은 그 물고기의 할아버지가 단정하게 세로매듭으로 만들어준 것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중력과 은총>(1996)이란 책에서 이 대목을 인용하고 나는 이렇게 적었더랬다. "'8월에 내리는 눈'과 같은 책, 나는 언젠가 그런 걸 쓰고 싶다." 8월이어서 문득 그 생각이 났다... 

09. 08. 02.  

P.S. 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1998)는 그 이후에 나온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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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9-08-03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좋습니다...물고기도 8월의 크리스마스도..

로쟈 2009-08-03 17:38   좋아요 0 | URL
네, 휴가도 못갈 처지라 이미지만이라도...^^;

목동 2009-08-03 2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낚시꾼은 가장 물고기가 잡히지 않는 곳에 자리를 정하고
강물에 낚시 바늘을 담근다. (하얀전쟁/안정효)

로쟈 2009-08-04 00:26   좋아요 0 | URL
낚시도 좋아하실 듯한데요.^^

비로그인 2009-08-04 0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낚시질하는 물고기 그림과 약간의 글을 퍼갑니다.
 

시사칼럼을 하나 읽고 스크랩해놓는다. 국가와 법이 지배계급의 도구에 불과하며 "정의는 강자의 이익"에 다름아니라는 것을 MB정권은 입증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뒷북성 주장이지만, 이런 정도의 상식도 제대로 공유되지 않는 형편이어서 퍼나르기로 한 것이다. 미디어법 개정에 이어서 MBC 접수 수순을 밟고 있는 MB정권은 계급투쟁을 어떻게 하는지 '지대로' 보여준다. 이제 우리는 “계속되는 승리는 멸망의 시작이다”는 경구를 두고두고 확인해야 할 사명과 의무가 있다...   

시사IN(09. 07. 25) 마르크스주의 테제를 입증하려는 MB 

옛소비에트 마르크스주의는 국가와 법을 지배계급의 ‘도구’로 파악했다. 이에 대하여 서구 마르크스주의는 ‘지배계급의 도구’라는 테제가 너무 단선적이라고 비판하며, 국가와 법의 ‘상대적 자율성’ 테제를 제시했다. ‘상대적 자율성’ 테제는 자본주의 국가와 법 제도 속에 들어 있는 인권 보호·노동 보호·사회복지 등을 위한 법제는 피지배계급의 투쟁의 산물이기에, 이를 지키고 확장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실천적 시사를 던졌다.

느닷없이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언급하는 것은 이명박 정권의 행태 때문이다. 근래 이명박 정권은 ‘실용’을 내세우지만, 실제 행동을 보면 정치·사회 세력을 ‘적군’과 ‘아군’으로 선명히 나누고 적군에게는 축출과 진압이라는 몽둥이를, 아군에게는 자리와 혜택이라는 꿀단지를 안기고 있다.

멀리는 KBS 정연주 사장의 해임과 기소, 가까이는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대한 전격 감사와 황지우 총장의 교수직 박탈, 안경환 국가인권위원장의 임기 전 사퇴 등의 일이 있었다. 정부를 비판하는 누리꾼, 촛불 시민과 언론인은 형사처벌 대상이 되고 있다. 이 속에서 표현의 자유 등 정치적 기본권, 노동 보호와 사회복지 등 사회·경제적 기본권은 급속히 위축되었다. 오랜 전통을 가진 대표 시민단체가 정권에 비판적이라고 기존의 보조금도 끊으면서, 정권 옹위에 앞장선 정체불명의 단체에게는 다액의 보조금을 주고 프로젝트도 발주한다.

한편 정부와 집권당은 비정규직 노동자 고용의 사유를 제한하지는 않고 그 고용기한만을 연장해주려 애를 쓴다. 임금이 낮고 통제가 용이한 비정규직 노동자를 더욱 많이 쓰기를 원하는 기업에 선물을 안겨주고 싶은 것이다. 대통령이 재래시장을 방문해 어묵은 사먹어도 재래시장을 고사시키는 기업형 슈퍼마켓(SSM)의 확장을 막을 계획은 없다. 종부세·법인세·소득세 등 경제적 강자의 세금은 대폭 줄이면서, 간접세는 인상해 서민의 조세 부담을 높이고 있다. 거대 건설업체가 환호하는 4대강 개발사업은 이미 착수되었다. 지난주에는 집권당이 ‘날치기’라는 무리수를 써서 신문·방송 관련 법률을 통과시켜 정권 창출의 공신인 조선·중앙·동아 보수 언론사의 숙원을 해결해주었다.

권력이 하는 일은 원래 그렇다고 냉소를 보내고 말기에는 너무하다. 지배계급과 지지집단의 이익을 위해 노골적으로 행동하는 이명박 정권은 ‘지배계급의 도구’ 테제의 타당성을 스스로 입증해 보이려 하는 듯하다. 대립하는 계급 이익을 조정하거나 절충할 생각은 추호도 없어 보인다. 고대 그리스의 소피스트 철학자 트라시마코스의 정의(正義)에 대한 정의(定義)인 “정의는 강자의 이익이다”를 전 국민이 실감하게 하려는 모양이다. 미국 부시 정권의 구호인 “온정적 보수주의”에서 ‘온정’을 느낄 수 없었던 것처럼, 이명박 정권의 구호인 “따뜻한 보수”와 “따뜻한 시장경제”에서 ‘따뜻함’을 찾기란 무망(無望)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회통합은 물 건너갈 수밖에 없다.

“계속되는 승리는 멸망의 시작이다”
이명박 정권은 이제 자기 길을 분명히 선택했다. 강자와 지지자를 위해서 철두철미 봉사하고, 반대자는 강경하게 억누르며, 약자에게는 립 서비스 수준의 위로와 빵 부스러기 수준의 배려를 베풀기로. 그러나 이 순간 기세등등, 환호작약하는 집권 세력에 당 태종의 명신(名臣) 위징(魏徵)의 다음과 같은 말을 들려주고 싶다. “계속되는 승리는 멸망의 시작이다.” ‘역풍’의 기운은 벌써 느껴지고 있다. 행정부와 국회를 모두 장악해 오만방자해진 이명박 정권의 일방통행은 필연적으로 ‘거리의 정치’를 불러올 것이다.

서민 대중과 진보와 개혁을 지향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려운 시기가 왔다. 대의민주주의의 규정력(規定力)은 강력하다. “정권 퇴진”이 구호로 나오고 있지만, 정당한 절차를 거친 투표를 통하여 선출된 정권을 임기 전에 퇴진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남은 이명박 정권 동안 우리 사회의 진보를 위해서는 어떠한 정권과 정책, 그리고 어떠한 집권 전략이 필요한지 고민하고 성찰해야 한다. 그리고 연대하고 실천해야 한다. 안경환 교수의 인권위원장 퇴임사를 되새겨본다. “오늘 우리를 괴롭히는 이 분노와 아픔은 좀 더 밝은 내일을 위한 작은 시련에 불과하다는 믿음을 다집시다. 제각기 가슴에 품은 작은 칼을 벼리고 벼리면서, 창천을 향해 맘껏 검무를 펼칠 대명천지 그날을 기다립시다.”(조국_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09. 08.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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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가게재습격 2009-08-02 17:09   좋아요 0 | URL
로쟈님, 오랜만에 들립니다. 건강하시죠?^^ 글에 공감하지만, '칼을 벼리기'보다는 반성부터 해야 할 듯 싶은데요...

로쟈 2009-08-03 17:39   좋아요 0 | URL
적이 코앞에 있어서 '반성부터'는 어려울 듯하고요, '반성도 하면서'라고 해야겠어요.^^;

목동 2009-08-03 06:26   좋아요 0 | URL
책의 겉표지는 이 대통령님의 글씨체인듯 한데요?

이 대통령님 콧날의 옆모습을 보셨던 가요?
그 분의 콧날 아래에 반듯하게 다문 입 모양에서 지긋한 의지력을 느낍니다.
냉탕과 온탕이 분명하듯, 포화가 쏫아지는 긴박한 상황에서 신속히 대처하는
전사의 분명한 의지력을 느낍니다.

무엇을 알고싶은 사람이, 첫 번째 사람에게 무엇을 물었을 때,
두 번째 사람이 더 많이 알고 있을 경우, 묻는 사람이 첫 번째 사람을 왕따
시키며 무시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첫 번째 사람이 느끼는 배신감.

박지성이 아인트후벤에서 뛸때 득점력이 떨어지자 관중은 야위합니다.
'지성'이 관절 수술 후 회복되어 득점력이 늘자 관중은 곧 '지성~'를 노래합니다. 그때 '지성'은 배반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스포츠의 냉정함.

냉엄한 현실속에서 무언가를 원안대로 해내야 하지만 왜곡될 수 밖 없는 것들을 상상합니다. 함께한 집단의 특성이 자신의 몸에 냄새처럼 스며있습니다.

영부인이 준비한 식탁의 음식들을 맛있게 드신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 모습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공간이 다르지만 속성은 변하지 않습니다.

로쟈 2009-08-03 17:40   좋아요 0 | URL
국민과 민심을 '적'으로 간주하는 게 문제가 아닐까요...
 

조카의 돌잔치에 다녀오느라 외출했더니 급 피곤 모드다. 초저녁에도 무덥다는 느낌은 올여름 들어서 처음인데, 날씨가 정말 그런지 기가 허한 탓인지 헷갈린다. 7월의 일들을 그대로 이끌고 8월로 넘어와서 몸이 더 무거운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처치를 좀 해야 할 터인데, 하고 생각하다가 만만한 일거리부터 해치우기로 한다. '이달의 읽을 만한 책'을 꼽는 일이다. 얼핏 리스트를 보니 내가 읽은 책은 한 권밖에 없다. 책읽는 양으로 공부하는 거라면 다들 낙제 맞는 건 시간문제겠다. 구경하는 셈으로 쳐야지...  

1. 문학 

신경숙 작가가 꼽은 문학분야의 책은 채호기 시인의 <손가락이 뜨겁다>(문학과지성사, 2009). 물론 시집이다. 이런 시들이라 한다. "사랑한다 당신을/ 당신을 껴안는다/ 당신은 없다/ 백지위에/ 당신/ 이 남았다./ 당신/ 을 떼어내/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쓰다듬었다/ 동글동글하고 말랑말랑한 당신"('당신' 중에서) 손가락이 뜨거운 이유가 그런 데 있나 보다. 추천자는 "이 불타오르는 여름날, 이 아름다운 시의 에로스를 수혈 받을 수 있다면 거칠고 포악한 것들을 동글동글하게 바꿔 놓을 수 있지 않을까?"라고 적었지만, 여름보다는 겨울에 더 적합하지 않을는지. 여름엔 사랑을 좀 식혀주는 시가 더 잘 맞을 듯싶다는 건 나의 편견인가?   

 

신간 외국소설들을 좀 훑어보다가 눈길이 멈춘 작품은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있는 나날>(민음사, 2009). 동명의 영화가 먼저 떠오를 텐데, "일본계 영국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의 장편소설. 1989년 부커상 수상작으로, 전 세계 20여 개국에서 번역·출간되었다. 인생의 황혼 녘에 비로소 깨달은 삶의 가치 그리고 잃어버린 사랑에 대한 허망함과 애잔함을 내밀하게 그려냈다. 앤소니 홉킨스와 엠마 톰슨 주연의 영화 <남아 있는 나날>의 원작 소설이다."라고 하면 더 이상의 소개는 불필요할 듯싶다. 이미 <남아있는 나날>(세종서적, 1994)이라고 한번 번역된 적이 있으나 이번에 좀더 믿을 만한 새 번역으로 다시 나왔다. 뜨거운 것보다는 이런 게 이젠 내 취향에 맞는다.  

그리고 한권 더 고르라면 아냐 울리니치의 <페트로폴리스>(마티, 2009). "모스크바 출신의 아냐 울리니치의 데뷔작으로, 적나라한 풍자로 한 소녀의 성장을 그린다. 미국 도서상 '2007년 35세 미만 작가의 우수소설 5편'에 선정되었으며, '빌리지 보이스'가 뽑은 2007년 최고의 책으로 선정되었다. 모든 어리석은 선입견으로부터 자유를 찾아나서는 이야기이다."라는 것이 간단한 소개. 일단 러시아가 배경이라는 점이 내겐 강력하게 어필한다. 원저의 표지가 여러 종인데, 맘에 드는 건 페테르부르크와 뉴욕의 이미지를 합성해놓은 것이다. 흠,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궁금하다.     

2. 역사

이덕일 소장이 고른 책은 김선자의 <중국 소수민족 신화기행>(안티쿠스, 2009). 저자는 중국신화 전문가다. 간단한 소개에 따르면 책은 "영토로는 전 중국의 63% 이상을 차지하되 인구수로는 9%가 채 되지 않는 55개 소수민족들의 신화의 세계로 안내한다. 크게 귀주성, 운남성, 티베트, 신장, 만주, 광서성 여섯 지역의 다양한 소수민족들의 오래된 노래를 통해 고대인들의 상상력이 담겨 있는 신화의 원형을 제시한다. 신화 탐구서지만 그 어느 여행서보다 흥미진진한 중국 오지 여행 가이드북이기도 하다." 색다른 가이드 북으로도 읽을 수 있다는 얘기.  

이덕일 소장의 보충 설명으론 "저자는 2007년에 출간한 <만들어진 민족주의-황제신화>에서 중국이 ‘중화문명탐원공정’ 등으로 신화였던 황제를 실존인물로 만드는 이유가 중국 내 소수민족은 물론 한국, 일본 등의 민족까지 황제의 자손으로 만들려는 정치적 의도가 있음을 밝혀낸 바 있다. <중국 소수민족 신화기행>은 한족(漢族)들이 만드는 이런 정치적인 지배이념에 대해 소수민족들의 오래된 신화로 대답하는 듯하다." 내친 걸음이라면 저자가 옮긴 <중국신화전설1,2>도 독서목록에 올려놓을 수 있겠다. 전설처럼 8월 한달이 지나갈 듯하다...  

  

3. 철학 

김상환 교수가 꼽은 철학분야의 책은 '철학'보다는 '종교'로 분류될 만한 책이다(알라딘의 분류로도 그렇다). 에두아르 쉬레의 <신비주의의 위대한 선각자들>(사문난적, 2009). 라마, 크리슈나, 헤르메스, 모세, 오르페우스, 피타고라스, 플라톤, 예수가 책에서 다루고 있는 '선각자들'의 이름이다. 추천사에 따르면, "이 책은 역사상 가장 중요한 영적 선지자들의 종교적 체험을 소설적인 필체로 그려내는 대중 교양서이다. 120년 전에 처음 발표되었지만 아직도 문장들이 젊게 살아 있어 고전적인 저서의 힘을 느낄 수 있다. 저자는 다양한 형태의 종교들이 하나의 원리로 수렴하고 모든 선지자들이 서로의 가르침을 확증하는 관계에 있다는 관점에서 종교의 여명기에서 예수까지의 역사를 서술한다."    

연이어 읽을 만한 책은 오강남 교수의 <또 다른 예수>(예담, 2009). 비교종교학자의 '도마복음' 풀이다. 구원이 아닌 깨달음에 초점을 맞춘 '선각자' 예수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이 도마복음이고, 흔히 영지주의(그노시즘)의 복음서로 간주됐지만 저자는 신비주의와 관련하여 이해하는 것이 더 합당하다고 한다. 영지주의와 신비주의가 얼마나 다른 것인지 잘 모르겠으니 세르주 위탱의 <신비의 지식, 그노시즘>(문학동네, 1996)이라도 다시 찾아봐야겠다.  

4. 정치 

손호철 교수가 추천한 정치분야의  책은 박찬수 기자의 <청와대 VS 백악관>(개마고원, 2009)이다. 한겨레21에 연재될 때 나도 몇 번 읽어본 동명의 칼럼 모음집. 소개에 따르면, "네 차례의 한국대선과 두 차례의 미국대선을 취재했으며 2년간 청와대 출입기자로, 이후 3년간 워싱턴 특파원으로 청와대와 백악관을 현장에서 살펴본 베타랑 정치 전문기자가 쓴 이 책은 그간의 경험을 토대로 청와대와 백악관에 대한 궁금증을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해소해주는 유익하면서도 읽는 재미가 쏠쏠해 피서용으로 안성맞춤이다. 특히 이 책은 항상 시스템이 부재하다는 비판에 시달리는 청와대와 치밀한 시스템을 갖춘 것으로 정평이 난 백악관의 차이를 대비하면서도 권력의 속성 때문에 두 권력기관에 공통점도 아주 많다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생생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소위 ‘부시의 입’으로 통하던 전 백악관 대변인 스콧 매클렐런이 부시 행정부의 기만과 진실에 대한 모든 것을 가감 없이 털어놓"은 책 <거짓말 정부>(엘도라도, 2008)가 한 술 더 뜰지 모르겠다. 청와대라고 해서 사정이 다를까 싶지만, '정부는 어떻게 국민을 속이는가?'를 폭로할 대변인이 물론 청와대에는 없을 거라는 점이 청와대와 백악관의 한 가지 차이이기도 하리라. 미국의 또다른 대표적 권력기관 펜타곤의 역사를 다룬 책 <전쟁의 집>(동녘, 2009)도 최근에 나온 책으로 8월의 독서목록에 올려봄 직하다.    

5. 경제/경영 

이준구 교수가 고른 경제/경영분야의 책은 윤종록의 <호모디지쿠스로 진화하라>(생각의나무, 2009). "호모디지쿠스’는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새로운 인간형을 뜻하는 말이다. 저자는 지금 세상이 얼마나 빠르게 변화해 가고 있는지를 찬찬히 설명해 주고 있다."고. 생각해보니 디지털 전도사 네그로폰테의 <디지털이다>(커뮤니케이션북스, 1995)가 소개된 게 얼추 15년쯤 전이 아닌가 싶다. 그 사이에 변화된 세상은 <디지털 해적들의 상상력이 돈을 만든다>(살림Biz, 2009)는 표제에서 잘 드러난다. 소개를 보니 "미국의 '비즈니스위크' 지에 의해 ‘2008년 가장의 혁신적인 책’으로 선정되기도 한 이 책은 재미와 장난이 가득한 젊은이들의 문화가 기존의 생산물들을 차용하고 혼합하고 재창조하는 과정에서 기성 문화와 경제 산업에 커다란 활력은 물론 새로운 부를 창출해내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한다.   

6. 사회 

김문조 교수가 추천한 사회분야의 책은 조너선 색스의 <사회의 재창조>(말글빛냄, 2009). 개인적으론 몇 주 전에 서평을 쓰기도 해서 친숙한 책이다(http://blog.aladin.co.kr/trackback/mramor/2930871 참조). 간단한 소개를 전하면, "랍비 서품을 받은 신학자이자 철학자인 저자는 오늘날 사회를 잠시 들려 머물고 가는 별장이나 호텔에 비유하면서, 미래 사회는 인류가 정을 붙이고 더불어 살아가야 할 ‘고향’이 되어야 함을 역설한다."   

사실 사회의 '재창조'를 위해서는 먼저, 뒤집어 엎어야 하는 게 아닌가도 싶지만, 동시에 정확한 현실 진단도 필수적이지 않을까. 두 대표적인 시사주간지에서 인터뷰특강을 펴낸 <거꾸로, 희망이다>(시사IN북, 2009)와 <화>(한겨레출판, 2009)가 도움이 되겠다. 김어준 총수의 이런 충고. “이런 정부를 상대로 그냥 화를 내거나 분노하면 안 되죠. 주화입마(走火入魔), 내상을 입습니다. 그럴 때는 굉장히 안정적인 바이털 사인을 유지하면서, 차분하고 화사하게 웃으면서 화를 내야 하는데 그걸 전문용어로 ‘엿 먹인다’고 합니다. 상대를 내 눈높이로 끌어내려서 엿을 먹이는 거죠.”   

7. 과학 

장경애 편집장이 고른 과학분야의 책은 <기후, 예고된 재앙>(알마, 2009)이다. 주제 자체는 새롭지도 놀랍지도 않다. 그만큼 많이 다뤄진 '핫 이슈'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온실효과를 현재진행형으로, 즉 기후 변화의 메커니즘을 상세히 설명하면서 동시에 어떤 경우엔 연구의 불확실성이나 과학적 논쟁까지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 점은 저자들의 의도와 관련돼 있다. 저자들은 급변하는 지구의 기후 변화에 대처하는 의사결정이 시민적 수준에서 내려져야 한다고 믿으며 이를 위해 과학적 논쟁이 본질적인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고 믿는다."고 추천자는 소개한다.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책으로 <데드라인에 선 기후>(에코리브르, 2009), <6도의 악몽>(세종서적, 2008)도 같이 서가에 올려놓음 직하다. 후자에 대해선 "세계가 점점 뜨거워지면 어떻게 될 것인지 말해주는 묵시록적 입문서, 읽다보면 정신이 번쩍 들면서 부끄러워진다. 과학적 배경이 탄탄한 책이지만, 지옥에 떨어진 자들이 벌 받는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한 중세 그림 같기도 하다."(파이낸셜타임스)란 평도 참고해볼 수 있다.    

8. 예술  

김춘미 교수가 추천한 예술분야의 책은 남수영의 <이미지 시대의 역사 기억>(새물결, 2009). 사진에 관한 책인가 했더니 다큐멘터리에 관한 책이라 한다. 소개에 따르면, "이 책은 다큐멘터리의 존재 가치를 새로운 각도에서 조망하고 있어 흥미롭다. 있는 그대로의 객관적인 사실을 반영하는 것이 다큐멘터리라는 과거의 시각과 달리 필자는 다큐멘터리 역시 이미지의 한 형태로서 그것은 사건과 우리의 현재 및 미래를 잇는 새로운 의미를 창출해내는 무엇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사실 '역사 기억'이란 말은 둔중한 울림을 갖는데, 최근에 나온 <기억과 전쟁>(휴머니스트, 2009)나 테사 모리스 스즈키의 <우리 안의 과거>(휴머니스트, 2006) 등의 책들이 모두 기억을 경유한 역사 인식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기억은 물론 매체에 의한 기억이다. 때문에, '역사 기억'은 사실 '역사-매체-기억'이라는 3항조의 문제이다. <이미지 시대의 역사 기억>도 그런 맥락에서 읽어볼 수 있겠다. 흠, 아예 '역사서'로 분류할 수도 있겠군.    

9. 교양 

이한우 기자가 고른 교양서는 앨리스 스타인바흐의 <한 달에 한 번씩 지구 위를 이사하는 법>(웅진지식하우스, 2009)이다. 표지와 제목만으론 소설인지 에세이인지도 분간이 안되는데, 알라딘 분류상으론 '세계 일주 에세이'다. 보아 하니 이런 계절엔 딱 '경계'해야 할 책인데, 부주의하게도 소개를 읽어버렸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저널리스트 앨리스 스타인바흐가 파리, 프라하, 교토, 피렌체 등 세계의 가장 핫한 도시들을 자유로이 떠돌며 자신의 흥미를 끄는 여러 다양한 강좌를 배우며 여행한 지은이의 경쾌한 모험이 펼쳐지는 책이다. 이를 테면 파리에서는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프랑스 요리 학교 리츠 에스코피에의 쿠킹 클래스에 등록하고, 영국 스코틀랜드에서는 양치기 개 조련법을, 이탈리아 피렌체에서는 예술 강좌를 듣고, 영국 윈체스터에서는 제인 오스틴의 발자취를 따라 여행하며 제인 오스틴 학회에 참가한다. 일본 교토에서는 전통 춤과 다도를 배우고, 체코 프라하에서는 글쓰기 수업을 듣고, 프랑스 아비뇽에서는 갖가지 아름다운 프로방스식 정원을 둘러보는 식이다."   

 

이런 걸 두고 '염장을 지른다'고 하지 않나? 같은 저자의 책으로 <앨리스, 30년 만의 휴가>(21세기북스, 2006)도 소개돼 있는데, 그 정도는 봐줄 만하지만('30년만'이라잖은가?), <한 달에 한 번씩...>은 독자의 처지를 망각한 불쾌한 책이다. 설사 자기 경험담이라 하더라도 이런 경우엔 '소설'이라고 둘러대는 게 독자에 대한 예의다!     

10. 가라타니 고진

이번주에 가라타니 고진 컬렉션의 세번째 책으로 <네이션과 미학>(도서출판b, 2009)이 출간됐다. 해서 내 맘대로 고르는 주제는 별 고민 없이 '가라타니 고진'이다. 사실 그의 따끈한 신간을 읽어보는 게 나로선 의무이자 즐거움이다. 그것이 '의무'인 것은 '가라타니 고진의 모든 책'이라고 내가 이미 정해두었기 때문이다(얼추 80%는 읽은 듯하다). 더구나 이번에 나온 책은 그의 '내셔널리즘론의 결정본'이라고 하니 더더욱 독서욕이 자극된다. 지구 위를 이사하기는커녕 동네도 못 벗어나는 위인들에겐 그래도 책이 보상이자 위안이요 자극이자 기쁨이다. 안 그러면 또 어쩔텐가...  

09. 08. 01.  

 

P.S. '이달의 고전'으론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골랐다. 햇빛이 뜨거운 날에는 한번쯤 생각나는 작품이기도 하니까. 게다가 나로선 지난달에 미리 읽었기 때문에, 더 읽을 부담(?)이 없다는 장점도 있다(고르고 보니 지난달엔 '사르트르'였군). 대신에 '카뮈 그 사람'을 이해하는 데 <이방인>과 함께 가장 요긴하다고 생각하는 <최초의 인간>을 이달에 읽어보고 싶다(그는 어머니에 대한 소설로 시작해서 아버지에 대한 소설을 미완으로 남겨놓고 생을 마감했다).  

 

여유가 되면 방대한 전기 <카뮈, 지상의 인간>(한길사, 2007)과 전집의 한권으로 나온 <젊은 시절의 글>(책세상, 2008)도 참조하면 좋겠고. 해서 내년 1학기에는 카뮈의 문학세계에 대한 강의도 해볼 계획이다. 그런 의욕이 나를 조금더 살아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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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동 2009-08-02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화점이란 남성에겐 사무적인(계획구매) 공간과 비슷하지만,
여성에겐 즐기는(구매와구경) 공간임을 다시느낍니다.
"책에 지배당하는 게 좋으냐, 책을 지배하는 게 좋으냐,
하지만 그 스트레스가 참 좋더라!"(승효상/건축가)
- 문학:류시화의 '첫사랑',
- 역사:다원일체(신화의 대결시대),
- 철학:신비주의자(임마누엘 스베덴보리),
- 정치:영화'대통령의 연인''
- 경제:더불어 살아가는 고향,
- 사회:이념을 넘어서
- 과학:쾌적한 지구 환경,
- 예술:미래의 기억,
- 교양:아름다운 달 여행,
- 고전:'똥파리'등이 생각났습니다.
8월도 심심치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로쟈 2009-08-02 12:22   좋아요 0 | URL
책읽을 여유만 있다면 심심한 계절은 없지요.^^

2009-08-01 22: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8-02 12: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라로 2009-08-02 0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앨리스 스타인바흐는 제가 아주 좋아하는 작가에요!!!!
그 작가의 글을 올려 주신게 왜 이리 감사한지~.ㅎㅎㅎㅎㅎ

로쟈 2009-08-02 12:22   좋아요 0 | URL
이미 팬들이 있군요.^^

Kir 2009-08-08 0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달도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