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신간 가운데 눈에 띄는 건 미국의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김영사, 2010)다. '하버드대 20년 연속 최고의 명강의'란 문구가 표지에 박혀 있는데, 실제로 하버드의 학부생 7000명 가운데 천 명이 수강한다는 강좌 '정의'를 책으로 다듬은 것이다(강의 동영상은 유튜브에도 많이 올라와 있다). 대학교수나 강사들에게 '강의 교수법'의 모범 사례로도 참고해볼 만하다. 흔히 공동체주의자로 분류되는 샌델은 2005년에 한국철학회의 초청을 받아 내한하여 네 차례의 강연을 한 바 있으며 이 강연은 <공동체주의와 공공성>(철학과현실사, 2007)로 출간됐다(우리의 똑똑한 고등학생들도 '강의'를 들을 수 있겠다). 그의 정치철학적 입장에 대해선 책에 실린 해제와 인터뷰가 요긴하다. 어제는 이 두 권의 책과 함께 또다른 '마이클'이 생각나기에, 역시나 미국의 대표적인 정치철학자 마이클 왈저의 전쟁론 두 권을 손에 넣었다. <전쟁과 정의>(인간사랑, 2009)와 <마르스의 두 얼굴>(연경문화사, 2007)이 그것이다. 겸사겸사 두 마이클의 책들을 리스트로 묶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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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2010년 5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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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공동체주의와 공공성- 다산 기념 철학 강좌 9
마이클 샌델 지음, 김선욱 외 옮김 / 철학과현실사 / 2008년 2월
15,000원 → 15,000원(0%할인) / 마일리지 0원(0% 적립)
*지금 주문하면 "12월 31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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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왈저, 정치철학 에세이
마이클 월저 지음, 데이비드 밀러 엮음, 최흥주 옮김 / 모티브북 / 2009년 1월
30,000원 → 27,000원(10%할인) / 마일리지 1,5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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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정의
마이클 왈저 지음, 유홍림 옮김 / 인간사랑 / 2009년 9월
15,000원 → 14,250원(5%할인) / 마일리지 430원(3%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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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30 01: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5-30 08: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blanca 2010-06-07 16:13   좋아요 0 | URL
저 강의실 풍경은 정말 소름이 돋네요. 안그래도 어제 이 책 실물을 봤었는데 읽어 봐야겠습니다.
 

빌려볼 책들이 있어서 관내 도서관에 갔다가 정간실에서 <인물과사상>(6월호)에 실린 김진석 교수 인터뷰 기사를 흥미롭게 읽었다. 한 가지 정도만 빼면 그의 의견에 대부분 동의할 수 있었다. 집에 돌아와 한국일보에 실린 그의 칼럼들을 찾아 옮겨놓으려다가 우연히 이기호 소설가의 지난주 칼럼을 읽게 됐다. 원래 벌어지는 일은 하려던 일과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 법이다. 철학자의 칼럼 대신에 소설가의 칼럼을 스크랩해놓기로 한다. 참고로 칼럼에서 언급되는 가라타니 고진의 대의제 비판은 <일본 정신의 기원>(이매진)에서 읽을 수 있다.

 

한국일보(10. 05. 22) 과두정이냐, 제비 뽑기냐

6.2 지방선거의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목요일, 천안함 사건 민군 합동조사단의 발표가 있었다. 전국에 생중계된 발표가 끝난 시각은 점심시간 바로 직전. 그래서인지 식당에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의 화두는 온통 그쪽으로만 쏠렸다.

유능한 엘리트만 뽑는 선거
선거 운동 첫날을 발표 시점으로 삼은 저의를 의심하는 사람과, 조만간 국지전이라도 발생하지 않겠냐며 우울한 낯빛으로 우울한 예측을 내놓는 사람, 교신기록 미공개를 예로 들며 음모론을 설파하는 사람까지, 오가는 이야기들은 심각했다. 그러나 그래서 식당 안은 아연 알 수 없는 활기로 들끓고 있었다. 그런 식당 안으로 들어와 명함을 돌리며 허리를 숙이는 구의원 입후보자까지, 2010년 5월 하순의 대한민국은 요란스럽고 수상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구의원 후보자가 주고 간 명함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명함이어서 그랬겠지만, 공약은 온데간데 없고 후보자 약력만 열 줄 넘게 빼곡히 적혀 있다. 행정학박사라는 입후보자는 캐치프레이즈 역시 '행정학박사가 만들어가는 명품 구정 실현'으로 큼지막하게 박아 놓았다. 바로 그 문구가 그렇지 않아도 어수선했던 내 마음을 더욱더 어수선하게 만들었다.

사실 우리는 선거를 통해 우리의 대표를 선출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선출된 사람들 대부분은 우리 사회의 유능한 엘리트 집단이다. 예외 없이 일류라고 일컫는 대학을 졸업했으며, 각종 고시에 패스했거나, 이른 나이에 공직이나 기업 대표를 역임한 사람들이다. 국회의원 중에는 유독 교수, 변호사, 기업체 사장이 많다.

사람들은 국민의 마음을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을 뽑아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남들보다 우월한 식견을 가진 사람이 대표로 선출되는 것을 당연하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그렇게 선출된 엘리트들은 다시 민의의 대표라는 이름으로 민중을 계몽하고, 정해진 방향으로 이끌고 가려 애를 쓴다. 정파적 입장에 따라 소소하게 의견이 갈릴 수 있겠지만, 출신 성분으로만 따지자면 가히 엘리트들의 과두정(寡頭政)이 실현된 곳이 바로 이 땅의 의회이고, 이 땅의 민주주의의 다른 모습이다.

하지만 사실, 민주주의 본질은, 일본의 평론가 가라타니 고진이 어느 글에선가 말했듯, 제비 뽑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그의 말에 따르면 민주주의는 데모크라시의 어원 그대로 '누구라도 좋은', '하찮은' 사람들이 통치하는 체제이다. 그 말인즉슨, 민주주의 체제란 그 누구도 그 누구를 계몽하려 들지 않고, 무언가를 독점하려 들지도 않으며, 소수에게 권력이 독점되는 현상 또한 발생하지 않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 제비 뽑기와 같은 상태에선 '북풍'이니 '노풍'이니 하는 바람은 일지 않을 것이며, 누군가가 정보를 손아귀에 쥔 채 시기를 저울질하는 일 따위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상태 자체를 지금 이 땅에서 바라는 것은 다분히 이상적인 일이겠지만, 이 과두정의 체제를 모두들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 역시 충분히 괴이쩍다. 우리가 선거철만 되면 자꾸 누군가가 만들어낸 바람에 몸을 맡기고, 거기에 휩쓸린 선택을 하게 되는 것도 다 그와 같은 연유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찮은' 사람들의 민주주의를
우리의 투표가 보다 더 민주주의의 본질에 다가서기 위해선, 바로 그 바람을 배제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같은 맥락으로, 바람을 만드는 자와, 바람을 가르치는 자들을 우선적으로 솎아내는 일 역시 시급한 과제일 것이다. 그래야 우리도 나중에 1 번부터 8 번까지, 그 누구를 제비 뽑기 하듯 뽑아도 아무 걱정 없는 그런 상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행정학박사이지만 행정학박사 학위 따위를 자신의 약력에 포함시키지 않는 명함, 나는 그런 명함을 받아보고 싶었다. 출신학교 따위는 더더군다나 말할 나위도 없고. 그런 '막 돼먹은' 명함이 보고 싶어졌다.(이기호 광주대 문예창작과 교수·소설가) 

10. 05. 29. 

 

P.S. <다시, 민주주의를 말한다>(휴머니스트, 2010)에서 과두정과 추첨제(제비뽑기)에 관해 참고할 만한 대목을 뽑아본다. 먼저, 박명림 교수의 지적. 

시민됨의 인정이라는 것은 주권을 이양함으로써 공적 존재(즉 국가)를 형성한 뒤 국가의 역할을 통해 안전과 권리와 형평을 제공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개별적인 시민의 존재가 전체로서 치자와 피치자의 동일성의 원칙에 의해서 국가를 구성한 뒤 다시 국가에 의해서 개별적인 시민의 권리를 보장받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가 구성한 국가가 소수 과두집단에 포함된 시민 외에는 개별적으로 열심히 먹고살라고 한다면 곧 공동체로부터 전혀 시민됨을 보장받지 못하는 겁니다. (90-91쪽)

그리고 그리스 민주정에 대한 김상봉 교수의 설명. 우리가 더 '진보한' 민주주의를 갖고 있는 건지 생각해볼 문제다.

제가 아는 한 역사에서 가장 급진적으로 평등한 사회는 적어도 남성 시민들 내에서는 고대 아테네였어요. 아테네 시민들의 관심사는 철저히 권력의 평등한 공유 원칙에 입각한 민주주의였죠.(...) 오늘날 공직자를 뽑을 때 어떻게 뽑는 게 민주적인 방식입니까? 우리는 선거잖아요. 그런데 아테네 시민들한테 선거는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그건 '과두정'이에요. 그들은 '추첨'을 민주정이라고 보았습니다. 원래 그게 고전적 구분이에요.
선거로 할 경우 열이면 열, 돈 있는 사람만 선거에 나갈 수 있습니다. 생업을 제쳐놓고 선거에 나갈 사람이 있겠어요? 특히 그 시대에? 그리고 거기 나가면  인물 좋은 사람이 한 표라도 더 얻게 돼요. 집안 좋고 학벌 좋고 돈 많은 사람이 이길 수밖에 없어요. 아테네 시민들은 그걸 집요하게 거부한 거예요. 그 다음에는? 추첨해서 아무나 맡는 겁니다. 그래서 모든 시민이 모이는 민회는 말할 것도 없고, 우리 식으로 말하면 국회인 평의회, 그리고 가장 중요한 권력기관 중 하나인 재판정 배심원까지 모두 추첨으로 뽑은 겁니다. 당시에는 판사, 검사가 따로 있지 않았으니까요. 해마다 추첨을 통해 뽑았어요.(167-1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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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 2010-05-29 21:39   좋아요 0 | URL
어릴 때부터 지도자의 윤리를 가르치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았지만, 추첨은... 상당히 충격적이네요^^... 여러 모로 깊이 생각해야 할 문제 같습니다.

로쟈 2010-05-30 20:09   좋아요 0 | URL
민주주의 원리에 비추어보면 오히려 자연스런 방식이죠...

구보 2010-05-30 12:32   좋아요 0 | URL
출신대학을 밝히지 않은 명함을 받으면 '명문대가 아닌가보다'란 생각이 들 지경에 이르렀습니다.반성합니다.
가라타니고진에 매혹된 사람이 한 둘이 아니네요.
요즘 읽는 책에도 어김없이 인용되고 있는 걸 보면요.

로쟈 2010-05-30 20:08   좋아요 0 | URL
오늘 고진 번역자를 만났는데, 그래도 책은 생각만큼 안 나간다네요. 반가운 소식도 있는데, <트랜스크리틱>에 이은 고진의 또 다른 주저가 조만간 나온다고 합니다...

aleph 2010-05-30 14:01   좋아요 0 | URL
오오. 추첨이라.. 제가 가졌던 선거에대한 통념을 깨는군요.

로쟈 2010-05-30 20:07   좋아요 0 | URL
초등학생이 로테이션으로 반장하는 것과 비슷한 거죠. "아이들은 모두 천재다"는 믿음이 민주주의(평등)에 대한 믿음이고요...

픽션들 2010-06-01 22:49   좋아요 0 | URL
'자유'는 커녕 '평등'이라는 말만 들어도 빨간 불이 깜박깜박하는 현재의 한국은 정말 문제가 많습니다. 오늘 전직 방송작가였다는 사람과 선거에 대해 얘기를 나누다가 깜짝 놀랬습니다. 겨우 58년 게띠인 사람이...sbs여서 그런가...저는 택시를 타면 기사분들과 정치 얘기를 (일부러)많이 하는 편인데 어떤 경우엔 콧김을 쑹쑹뿜는 기사분과 짧은 시간 불편해지기도 합니다.
 

이번주 한겨레21의 서평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내가 쓸 차례였지만 내가 쓴 건 아니다. 여러 사정으로 나는 내주에나 쓰게 될 듯하다). 뤽 폴리에의 <나우루공화국의 비극>(에코리브르, 2010)에 대한 것이다. 부제는 '자본주의 문명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를 어떻게 파괴했나'인데, 태평양에 이 작은 섬나라를 가장 부유한 나라로 만들었던 것도 자본주의였으니 약 주고 병 준 셈이다. 우리의 운명뿐 아니라 지구의 운명도 그와 크게 다를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한겨레21(10. 05. 28) 자본주의에 무너진 새똥 섬 

뤽 폴리에의 <나우루공화국의 비극>(안수연 옮김·에코리브르 펴냄)의 부제는 ‘자본주의 문명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를 어떻게 파괴했나’다. 의미심장한 제목처럼 내용은 자본주의 물결이 한 나라를 ‘파괴’하고 ‘비극’으로 몰아넣는 과정을 세세하게 묘사한다.

인산염으로 순식간에 부자가 된 나우루
태평양에는 작은 섬이 많다. 이 가운데 삐죽 솟은 한 산호초 섬 위에 북반구와 남반구를 오가는 철새들이 똥을 누고 가기 시작했다. 똥이 쌓여 땅덩어리를 이뤘다. 그 땅에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다. 나우루공화국이다.  

나우루공화국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비행기로 7시간 거리의 작은 섬이다. 얼마나 작으냐 하면 21㎢, 연안을 따라 둥그렇게 이어진 도로를 일주하는 데 30분이면 족하다. 현재 인구는 9천 명 남짓. 세상에서 가장 작은 이 나라는 한때 ‘석유 재벌’ 국가에 맞먹는 수준의 부자였다. 1970년대 나우루의 1인당 국내총생산은 2만달러에 육박했다. 그러나 지금은 전기조차 끊겼다 들어왔다 하는, 가난하고 가난한 나라다. 부와 극빈 사이를 오간 시간은 고작 30여 년에 불과했다.

산호초와 새똥과 바닷물, 오랜 세월의 화학적 결합으로 나우루를 덮고 있는 땅은 화학비료의 중요한 원료인 인산염으로 변했다. 서구 열강들이 나우루에서 인산염을 처음 발견했다. 그들은 나우루를 ‘관리’해준다는 명목으로 인산염을 마구 캐갔다. 그러나 나우루가 이에 대한 권리로 받는 돈은 수익금의 2% 정도에 불과했다. 지배받는 세월 동안 나우루는 자본의 힘을 알게 됐다.

1968년 독립한 나우루는 4천 명의 주민을 가진, 세계에서 가장 작은 공화국이 됐다. 인산염 산업은 국유화됐다. 정부는 국민과 공평하게 수익을 나눠가졌다. 부자가 된 국민은 일하지 않았다. 나라에서 받은 돈으로 최고급 자동차를 사서 짧은 해안도로를 할 일 없이 빙빙 돌았다. 자동차가 고장나면 고치지 않고 도로에 그냥 버려두고 새 차를 샀다. 농사도 짓지 않았다. 가까운 나라에서 들여온 인스턴트 식품, 신선한 고기와 과일로 식탁을 채웠다. 나우루인들은 뚱뚱해졌다. 그러나 개의치 않았다. 이 섬에서 살찐 몸은 매력으로 꼽혔기 때문이다.   

인산염은 한정된 자원이었다. 1990년대가 되면서 나우루 국토의 80%가 파헤쳐졌고 1997년에는 광산 활동이 최소한도로 줄었다. 나우루는 부채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2000년대 초, 나우루는 인산염이 빠져나간 텅 빈 땅이 됐다. 후유증처럼 대부분의 주민은 비만과 당뇨에 시달리고 있다. 나우루인들은 손에 들어온 부를 방치한 것처럼 손가락 사이로 모래알처럼 빠져나가는 부도 그저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들은 그저 어깨를 으쓱하며 “돈은 날아가버렸어요”라고 말할 뿐이다. 이런 낙천성 때문에 그들의 비극이 더 애잔하다. 세상이 그들을 그대로 뒀다면, 물고기를 잡아 먹고 섬에서 난 열매를 따 먹으며 적어도 건강한 몸으로 생을 지속할 수 있지 않았을까.

나우루의 현재, 지구의 미래  
지은이는 나우루를 “부와 재앙이 동일한 기세로 쌓이는 세계의 교차로”였다고 말한다. 학자들은 나우루공화국의 몰락을 두고 지구의 몰락을 예견한다. 수천 년에 걸쳐 만들어진 인산염을 30년 만에 소진한 이들의 역사는 지구가 수억 년 세월 만들어놓은 석유를 200여 년 만에 다 써가는 인류의 미래를 말한다고. ‘돈’이 되는 곳이면 네 땅 내 땅 가리지 않고 파헤치고 뒤집어엎는 자본주의의 폐해를 우리는 나우루를 통해 먼저 보았다. 그런데 작고 연약한 섬나라의 비극을 타산지석 삼아 자본주의의 폐해를 논하는 이런 시선도 어쩌면 나우루인에게 잔인한 건지 모르겠다.(신소윤 기자) 

10. 05. 28.    

P.S. 책의 뒷표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생태학적 재앙, 경제적 파산, 과도한 소비, 각종 만성질환, 자본주의 문명의 병폐를 단기간에 압축적으로 보여준 나우루의 이야기는 바로 현재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자본주의 문명의 병폐를 압축적으로 체현하고 있는 토건공화국의 미래도 어쩌면 나우루공화국의 비극만큼이나 '교훈적인' 타산지석이 될는지도 모른다. 4대강 공사로 파헤쳐진 국토의 모습이 나우루공화국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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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ahun 2010-05-28 14:26   좋아요 0 | URL
직업은 토목기사지만 이런 사진 이런글 볼때마다 자괴감이 드네요. 도무지 이놈들은 목위가 허전해서 머리란걸 달고 있는건 아닌지...
생명과 생태를 고민하는 토목은 아직도 몇십년 뒤의 일일까요..에효

로쟈 2010-05-29 18:53   좋아요 0 | URL
몇십 년 뒤에 남아있을 '생태'가 있을지...--;
 

경향신문 이대근 논설위윈의 칼럼을 옮겨놓는다. 천안함 사건(천안함 게이트)을 빌미로 벌어지고 있는 남북 대치상황이 과연 누구에게 이익이 되고 고통이 되는지 따져본 칼럼이다. 이명박과 김정일을 제외한 모두에게 고통을 안겨준다는 것이 필자의 계산서다. '적대적 공범자'라는 게 따로 없다. 자신을 이명박, 김정일과 동일시하는 이들이 왜 그리 많은 것인지.    

경향신문(10. 05. 27) 적대는 공짜가 아니다

적어도 정치적으로 봤을 때 천안함 사건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손해 볼 종목은 아니다. 마침 화폐 개혁실패로 박남기 당 재정부장을 숙청하고 총리가 인민에게 사과해야 할 정도로 민심이 흉흉해진 터라 인민들의 불만을 외부로 배출하고 외부 위기를 이유로 내부 결속을 꾀할 필요가 절실했다. 그런 때에 딱 맞춰 남측이 동시 다발적 압박 공세를 하고 있으니 김정일로서는 만세 부를 일이다. 천안함 사건은 경제난이 장군님의 부덕의 소치가 아니라 외부의 제재 때문이라는 근거로 활용할 수도 있다. 선군정치가 얼마나 선견지명이 있는 것인지를 입증할 기회로 삼을 수도 있다. 인민생활 개선을 포기하면서까지 핵·미사일 개발에 자원을 집중 투입해 억지력을 확보하지 않았으면, 지금쯤 군사 보복을 당하고도 남았을 텐데 그런 사태를 막았으니 그럴 만도 하다.

이명박 대통령에게도 천안함 사건은 정치적으로 나쁘지 않다. 이미 지방선거 쟁점을 흐리고 반MB 표심을 약화시키는 데 상당한 정도로 기여했다. 선거에서 져도 남북 대결로 정국 주도권을 장악할 수 있다. 중도·실용때문에 진짜 보수 맞느냐는 의심을 받아야 했던 억울함도 보수세력이 오랫동안 갈망해왔던 남북대결을 선물함으로써 풀 수 있다.

이명박·김정일 뺀 모두에 고통
남북관계를 복원하라는 ‘부당한’ 압력으로부터도 해방될 수 있다. 대북 강경책은 자기 정당화의 메커니즘을 갖고 있는 묘한 동물이다. 대북 강경책은 북한의 대남 강경책을 초래하고 그 대남 강경책은 다시 대북 강경책을 정당화한다. 그 때문에 북한과 화해하다가 당하면 용서가 안되지만, 적대하다가 당한 것은 용서가 되는 것이다. 이명박이 안보·평화에 실패했으면 정치적 타격을 받아야 하는데 그러기는커녕 인기가 더 오르는 것은 이런 대결의 특성 때문이다.

이렇게 직접 부딪치지만 않으면 어설픈 화해나 뜨뜻미지근한 관계보다 적대가 정치적으로 유리하다. 바로 그 때문에 두 사람 모두 화해하거나 국면을 바꾸기 위해 무리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두 사람을 제외한, 이 땅에 발을 딛고 사는 사람들의 사정은 다르다. 남북 교류·협력 전면 차단은 북쪽만 아니라 남쪽 사람들의 피해를 동반한다. 대북 지원을 끊으면 김정일이 굶는 게 아니라 힘없는 북한 사람들이 굶어 죽고 그 때문에 46명의 죽음이 그랬듯이 남쪽 사람에게 적지 않은 고통을 준다. 남측이 대북 압박을 해도 북한이 ‘전면 전쟁’이니 ‘남측과의 모든 관계 단절’이니 하는 역공세로 그 불안을 더 키워 환율 급상승과 같은 경제불안 현상이 나타날 때 떨며 가슴을 졸이는 쪽은 북한이 아니라 남한이다.

한·미 양국은 연합 군사훈련으로 북한의 비상동원 체제를 유도,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기름과 전력을 탕진하게 해서 경제난을 가중시키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보복과 중단, 제재로 북한의 목을 죌수록 우리의 목도 조여진다. 북한의 작은 손실조차 우리의 손실이며 북한이 잃는 것은 곧 우리가 잃는 것이다. 한반도 남쪽을 떼어내 태평양 한 가운데로 이사가지 않는 한 북한은 우리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대화는 이런 한반도에서 살아가야 하는 우리의 운명이며, 유일한 해결책이다. 북한이 대화하기 좋은 상대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그 반대라서 더욱 그렇다. 대화는 이명박 처럼 할 말 없을 때, 대책이 없을 때 하는 빈 말도 아니며 기념사에 동원되는 췌사(贅辭)도 아니다. 대화란 정말 대화하는 것을 말한다.

이에 반해 대결은 잠자는 적의를 불러내는 주술 혹은 악령이다. 증오와 분노를 스스로 정당화시키는 힘을 지닌 그런 악령이다. 이런 대결을 나쁘다고 하는 것은 도덕적, 윤리적 관점에서 하는 말이 아니다. 실질적인 이유가 있다. 전력 강화를 위해 엄청난 군비를 쓰고도 군사적 긴장과 불안 속에서 사는 것과 그 일부만을 북한에 지원하고도 남북이 화해와 안정 속에서 사는 것을 비교해 보라. 대결은 적절하게 써야 할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그 결과, 더 많은 미래 비용을 발생시키는 행위이기에 문제인 것이다.

대결의 엄청난 비용 직시해야
이런 대결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아마도 다음 정부는 대결을 물려받지 않을 것이다. 남북관계를 복원하려 할 것이고, 그 때문에 이명박 정부가 북한에 주지 않았던 식량을 주고, 경협을 재개하고 확대해야 할 것이다. 북한 사람을 굶기고 골탕먹이고 겁주고 북한 경제를 흔들었다고 좋아할 것 하나도 없다. 적대한 시간의 길이 만큼 청구서가 쌓일 것이다. 적대는 공짜가 아니다. 

10. 05. 27. 

P.S. '북풍몰이'로 선거국면이 유리하게 돌아가자 한나라당이 입단속에 나섰다. 유리해진 마당에 경제상황을 고려해 너무 무리하지 않겠다는 계산일 것이다. 예견된 수순이긴 하나 이러한 술수에 넘어가는 수준의 '표심'으론 아직도 '머나먼 민주주의'다. '북풍 민주주의'란 결국 '막걸리 민주주의'나 '고무신 민주주의'에서 멀지 않다. 아니 더 나쁘다고 해야겠다. 그나마 막걸리와 고무신 대신에 공포와 겁박으로 표를 쓸어모으는 것이니 말이다... 

북풍에 따른 지지율 상승 효과 못지않게 국민들 사이에서 경제위기론이 확산될 조짐을 보이자 한나라당 정 대표도 갑자기 태도를 바꿨다. 그는 경기 하남 지원유세 도중 “한나라당은 천안함과 관련해 야당을 공격하지 않겠으니 민주당도 천안함 문제를 국내 정치의 정쟁 소재로 끌어들이지 않을 것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앞서 당내 이한구 의원도 평화방송에 출연해 “비경제 쪽에서 사고를 너무 크게 안 쳤으면 좋겠다”고 신중한 대처를 요청했다.(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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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케 2010-05-27 08:45   좋아요 0 | URL
요즘 이 시절에 <쇼크독트린>을 읽고 있습니다. 시집도 아니고 말랑한 사랑이야기도 아닌 책을 읽다가 소주 마시러 가기는 황석영의 <~너머 ~너머> 이후 처음이아닌가 합니다. 전쟁 이야기가 나오면서 거의 40조 가까운 돈이 증시에서 사라져버렸는데 그 이면에는 풋옵션과 환치기로 대박 난 외국자본들이 있지요
단순히 지방선거때문이라고 보기에는 지나치만큼 과하게 판을 키우고 있는 무리들...이 위기를 조장하고 확대시키는 무리 (수구세력-조중동연문)의 배후...
전후복구사업이 아니라 전쟁 그 자체가 시장인 시대에 산다는 것...참 우울합
니다. 일단 투표 !

로쟈 2010-05-28 10:29   좋아요 0 | URL
이젠 고등학생 때부터 읽어야 하지 않나 싶어요...

samahun 2010-05-27 10:06   좋아요 0 | URL
책을 읽는다는 행위가 과연 내 삶에 무슨의미가 있는가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로쟈님이나 파란여우님의 서재를 보면서 새삼 삶과 사회를 바라보는 눈이라는 책읽는 행위의 가치를 느낌니다. 로쟈님의 인문학서재를 거의 무협지 읽는 기분으로 보고 있습니다. 기묘한 초식과 내공가득한 검술과 호방한 무림의 세계에 빠진듯...^^ 항상 건필하세요..

로쟈 2010-05-28 10:30   좋아요 0 | URL
혼자 고수란 건 별 의미가 없습니다.^^;

푸른바다 2010-05-27 17:16   좋아요 0 | URL
선거가 끝나면 곧 월드컵이지요. 붉은 악마의 환성 속에서 언제 전쟁분위기였냐는 듯한 상황으로 바뀌겠지요... 달력 대로 진행해 가는 모양새로 보아 이도 계산되어 있겠지요.

로쟈 2010-05-28 10:31   좋아요 0 | URL
네, 그런 계산을 해두었겠지요. '어리석은 백성'들입니다...

비로그인 2010-05-27 20:05   좋아요 0 | URL
저는 이 부분을 꼭 강조하고 싶군요. "대화는 이런 한반도에서 살아가야 하는 우리의 운명이며, 유일한 해결책이다." 적어도 한쪽에는 그럴 의지가 없어 보이긴 하지만요.

로쟈 2010-05-28 10:32   좋아요 0 | URL
치킨게임 얘기들이 많이 나오는데, 사익을 위해서라면 물불가리지 않겠다는 주의죠. 대화는 사치스러워 보입니다...

Sati 2010-05-28 07:40   좋아요 0 | URL
두 사진이 참 인상적이네요.

로쟈 2010-05-28 10:32   좋아요 0 | URL
인격은 가려지지 않는 듯해요...
 

연이은 저녁 강의로 '파김치'가 되고 있다. 엊저녁엔 강연차 대구에 다녀왔는데, 예상보다 많은 청중(학생)이 모여서 애를 먹었다. 그런 경우엔 '남자의 자격'이 보여주듯이 '강사의 자격'이란 게 요구되지만 오전에 20명을 대상으로 한 강의를 하고, 오후엔 300-400명을 상대로 한 강연을 한다는 건 줄넘기를 하다가 갑자기 역도를 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갖게 한다(내가 역도를 해본 적이 있던가?). 홈쇼핑 방송의 게스트로 한번 나갔을 때도 느낀 거지만, 역할이 비슷해 보이고 같은 콘텐츠의 말을 하더라도 바뀐 장소와 상황은 다른 '기능'으로의 변신을 요구한다. 그럴 준비도 안돼 있지만 뭔가 변신하기엔 너무 피로한 요즘이다('피로파괴'란 말이 요즘은 너무 잘 이해된다). 그런 피로를 무릅쓰고 '이달의 읽을 만한 책'을 고르기로 한 건 오늘 오전까지 써야 할 주간지 원고가 다음주로 넘어갔기 때문이다(이유는 마땅한 책이 없어서다!). 그 빈틈을 막간 삼아 재빨리 골라놓도록 한다(기차와 버스에서 내내 잤더니 잠이 오지 않는 이유도 있군. 눈은 충혈된 상태에서 잠이 안 오는 그런 시츄에이션이다). 간행물윤리위원회에서 선정하는 '6월의 읽을 만한 책' 리스트가 평소보다 빨리 올라왔다.  

1. 문학 

소설가 신경숙씨가 고른 문학서는 룽잉타이의 <눈으로 하는 작별>(사피엔스21, 2010)이다. 오랜만에 외국소설(이 아니라 에세이)인데, 저자는 '중화권 최고의 사회비평가'로 꼽히는 인물이라고. 하지만 "이 책 <눈으로 하는 작별>은 냉철한 비평가의 눈으로가 아니라 두 딸을 가진 엄마의 입장, 또한 엄마이기 이전에 딸의 입장에서 이미 세상을 뜬 아버지 그리고 이제 다시 작별해야 하는 어머니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쓰여진 그 자신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마음이 담긴 인생에 관한 책이기도 하다."는 소개다.     

작별에 관한 책이라고 하니까 떠오른 건 소설가 김형경의 에세이 <좋은 이별>(푸른숲, 2009)이다. 베스트셀러이니까 더 소개할 건 없겠다(나만 안 읽었다고 보면 될까?). 개인적으론 보부아르가 쓴 <작별의 예식> 영역본을 주문해놓고 기다리고 있다(일시품절이어서 지체되고 있다). 사르트르의 죽음에 부쳐 그녀가 한 말. "그의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았지만 나의 죽음이 우리를 다시 합치지는 못할 것이다." 실존주의 철학자다운 '쿨한 이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별 뒤에 남는 사람들은 무얼까? 그들도 '생존자'일까? 얼마전에 테렌스 데 프레의 <생존자>(서해문집, 2010)에 대한 포스팅을 했는데, 저자가 1장 '소설 속에 나타난 생존자'에서 다루고 있는 몇 편의 소설들이 눈길을 끌었다. <페스트>, <수선공>,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연옥>, <암병동> 등이 그가 거론하고 있는 작품이다. <페스트>는 내달에 다시 읽은 계획이어서 제외하면 눈에 띄는 건 버나드 맬러머드의 소설 <수선공>동인, 2009)이다. 존재 자체도 모르고 있던 작품인데 바로 주문해서 어제 손에 넣었다.   

흥미롭게도 1913년 러시아 키예프에서의 반유대주의 재판을 소재로 하고 있다. 원작은 1966년에 나왔고 번역대본이 된 2004년판에는 <엄청나게 시끄럽게 믿을 수 없게 가까운>(민음사, 2006)을 쓴 젊은 작가 조너선(조나단) 사프란 포어의 서문이 붙어 있다. 그는 '좋은 책'과 '위대한 책'을 구분하면서 "위대한 책은 우리 세상이 필요로 하는 것이지만 좋은 책은 우리 문화가 원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작품을 '위대한 소설'로 분류한다. <수선공>과 같이 배송된 책은 솔제니친의 <암병동>(홍신문화사, 2009). 번역은 좀 미심쩍은데, 강의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지 확인해보기 위해 주문한 책이다.   

2. 역사  

이덕일씨가 고른 역사분야의 책은 백범흠의 <중국, 외교관의 눈으로 보다>(늘품, 2010). 추천 이유는 이렇다. "저자는 아무리 많은 북방 민족이, 아무리 오랫동안 중원을 정복했어도 최후의 승자는 중국역사, 중국문화 자체라는 관점을 시종 유지한다. 중국 역사, 중국 문화는 거대한 용광로이기 때문에 이민족의 정복 역사도 모두 용해시켜 종국에는 중국 역사·문화로 재창출한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은 중국의 미래에 대한 전 세계적 논쟁에 중요한 시사점이 될 것이다." 저자는 현재 외교부 APEC 과장으로 돼 있다.   

얼른 드는 생각은 중국 내부의 시점에 본 중국이 모습과 비교해보면 좋겠다는 것인데, 일단 자오팅양의 <천하체계>(길, 2010)가 떠오른다. 지난달에 서평을 쓰려다가 미뤄둔 책이기도 하다. 저자가 말하는 핵심은 '천하'와 '세계'의 차이인데, 그는 천하를 '무외(無外)'로 정의한다. 곧 '바깥이 없음'이다. 강의를 듣는 중국학생에게 물어보니 원래 '천하'란 말에 그런 뜻이 들어있지는 않다고. 일상어 감각으론 그렇다는 얘기일 것이니, 자오팅양은 '천하'를 새롭게 '발명'한 셈이기도 하다.   

더불어 눈에 띄는 책은 자오쯔양 중국공산당 총서기 최후의 비밀 회고록 <국가의 죄수>(에버리치홀딩스, 2010). 단연 눈길을 잡아끄는 책이다. 간단한 소개.   

1989년 6월 4일 중국 톈안먼 민주화 운동은 우리의 5·18 광주 학생운동을 떠올릴 만큼 중국이 민주화·현대화로 가는 과정에서 일어난 중요한 사건이다. <국가의 죄수>는 톈안먼 운동 때 광장에 모인 학생들을 독려하고 무력 진압에 반대하다 덩샤오핑에게 숙정된 당 총서기 자오쯔양이 가택 연금 중에 과거를 돌아본 회고록이다.  

 

3. 철학 

김형철 교수가 고른 철학 분야의 책은 이진우의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를 찾아서>(책세상, 2010). 제목은 비유적 의미가 아니다. 말 그대로 발 벗고 찾아나선 철학 기행문이다. 

니체는 자신에게 맞는 장소를 찾아서 떠돌아다니는 정신적 육체적 방랑아였다. 뢰켄, 베를린, 라이프치히, 나움부르크, 루체른, 질스마리아, 로마, 밀라노, 사크로몬테, 오르타 호수, 제노바, 토리노. 이 도시들의 공통점은 모두 유럽에 있다는 것, 그 중에서도 독일, 스위스, 이태리에 있다는 것 외에 니체의 삶의 흔적이 뭍어 있는 곳이다. 이진우는 이 발자취를 직접 온 몸으로 2년여에 걸쳐서 추적해나갔다. 직접 차를 몰고 네비게이션의 도움도 없이 찾아 나서기도 했다. 유럽에서 미아가 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약간의 모험을 즐기면서 글을 써나간다. 극단적 상대주의를 주장하는 니체를 박사학위논문으로 쓴 저자다운 자세다.  

'니체'가 언급된 김에 상기하게 되는 책은 하이데거의 <니체1>(길, 2010). 이 또한 하이데거식의 '니체를 찾아서'라고 할 수 있을까? 비트겐슈타인 전공자인 이승종 교수의 <크로스오버 하이데거>(생각의나무, 2010)도 내친 걸음에 같이 읽어볼 수 있겠다. 지금 형편에 이런 책들을 읽으려면 말 그대로 어디 물건너 가야 할 것 같긴 하지만...   

4. 정치/사회 

강정인 교수가 고른 정치/사회 분야의 책은 안동일의 <새로운 4.19>(예지, 2010). 제목 그대로 "이 책은 1960년 4·19 혁명에 참가했던 지은이가 4·19 혁명의 시발점인 2월 28일 대구 학생 데모로부터 4월 26일 이승만 대통령 하야에 이르기까지의 역사적 기록을 정리한 것이다." 저자는 <새 천년과 4.19>(삶과꿈, 1999)도 오래전에 출간한 바 있다. 지난 4월에 나온 <4.19와 모더니티>(문학과지성사, 2010)도 같이 읽어볼 만한 책.   

 

5. 경제/경영 

이준구 교수가 고른 경제/경영서는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피터 드러커에 관한 책 <무엇이 당신을 만드는가>(위즈덤하우스, 2010). 편저자는 드러커의 책을 다수 우리말로 옮긴 드러커 전도사이다.   

이 책 전반에 걸쳐 드러커에 대한 편저자의 짙은 애정과 존경을 느낄 수 있다. 드러커의 책을 여러 권 번역하고, 면답하는 과정에서 시쳇말로 그의 ‘광팬’이 되어버린 것 같다. 이 책의 장점은 일반인의 눈높이에 맞춰 드러커의 사상세계를 풀어서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언어의 수준을 넘지 않는 평이한 서술이 독자들로 하여금 편안함을 느끼게 만든다. 공연히 어려운 서술로 독자들이 머리를 복잡하게 만드는 책이 너무나 많은 현실에서 이런 책을 보면 반갑기까지 하다.

편저자가 쓴 다른 책으로 <한권으로 읽는 피터 드러커 명저 39권>(21세기북스, 2009)도 있다. 그 중 한 권일텐데, 개인적으로 눈길이 가는 건 '피터 드러커 사상의 원전'격이라는 <경제인의 종말>(한국경제신문, 2008)이다. "1939년 미국에서 초판이 출간된 후 전세계에서 다양한 언어로 번역출간되었다. 이후 약 40권에 이르는 드러커의 모든 저서들은 자신이 <경제인의 종말>에서 분석하고 예측한 것을 시간의 검증을 거쳐 그 신뢰성과 타당성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드러커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하니 또 호기심이 발동한다. 드러커의 책 가운데 <새로운 현실>(시사영어사, 1989)이 내가 처음 읽은 것이지만 요즘은 찾아볼 수 없다.   

6. 과학 

최영주 교수가 추천한 과학분야의 책은 크리스틴 라센의 <스티븐 호킹>(이상미디어, 2010). 표지만 봐도 알 수 있지만 이 저명한 과학자의 전기다. "학생 때 호킹 박사의 강의를 자주 접했고, 현재 천체물리학자가 된 이 책의 저자는 과학자로서의 호킹 박사의 업적뿐 아니라 그의 경이로운 삶에 관한 이야기를, 인간 호킹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자 하였다." 초등학생용 전기들 외에도 두어 권 정도는 더 참고할 수 있겠다.   

7. 예술 

김춘미 교수가 추천한 예술분야의 책은 전용복의 <한국인 전용복>(시공사, 2010). 부제가 “옻칠로 세계를 감동시킨 예술가의 꿈과 집념의 이야기, 한국인 전용복”이란 걸 알고 나서야 대충 내용 짐작이 되는 책이다. 특이한 건 저자가 전용복 자신이라는 것.  

“나는 조선의 칠쟁이다”를 자랑스럽게 세계에 알리고, “목숨을 건다”는 말을 진심으로 하는 이 분은 2008년 9월 6일 세계에서 하나밖에 없는 옷칠 시계를 만들어 8억 4천만 원에 팔았고, 일본의 자존심 메구로가조엔을 복원해낸 장본인이다. 그런데 그가 살아온 흔적을 읽으니 정말 목숨을 걸고 진정으로 일을 열심히 해냈다. 전용복이 있어서 나도 한국인이라는 데 다시 한번 자부심을 가지게 된다. 어린시절 학교를 그만두고 생존을 위해 해야 했던 많은 일들을 항상 자신을 더 성장하게 만드는 계기로 삼았던 전용복은 그 자체로 훌륭한 근본을 가진 인간이다.

그런 장인정신을 컨셉으로 한 책이라면, <우리 시대의 장인정신을 말하다>(북노마드, 2010)를 같이 끼워넣을 수 있겠다. 유홍준(문화유산), 김영일(음악), 배병우(사진), 정구호(패션), 김봉렬(건축), 조희숙(음식) 등 우리시대 대표적 장인들의 고백을 담고 있다.    

 

8. 교양 

이한우 기자가 고른 교양서는 이종근 외, <한국의 옛집과 꽃담>(생각의나무, 2010)이다. 전통 한옥을 '옛집'으로도 부른다는 걸 이번에 알았다(이 경우는 '옛날집'의 '옛집'이 아니다). 소개는 이렇다.  

지방언론사 기자로 오랫동안 지역문화에 관한 저술을 발표해온 저자의 이 책은 단연 눈길을 끈다. 우선 우리 옛집의 담과 굴뚝 등 한옥 중에서도 사람들이 별로 눈길을 주지 않던 부분에 시선을 가져간다. 서울에서는 창덕궁 대조전, 운현궁과 석파랑, 한규설가 등을 살핀다. 지방에서는 전라도의 김성수 생가와 별장, 소쇄원, 경상도의 도동서원, 범어사 등의 구석구석을 돌아본다.

찾아보니 한옥(옛집)과 꽃담에 관한 책들이 몇 권 더 있다. 사실 한옥에는 살아본 적이 없어서 옛집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별로 감이 오지 않는다. 조금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되면 책을 구해놓고 한번 알아봐야겠다.   

9. 실용 

손수호 논설위원이 고른 실용서는 허시명의 <막걸리, 넌 누구냐?>(예담, 2010). 추천자는 미리 이렇게 적었다. 

오해 없기 바란다. 이 책은 권주가를 부르지 않는다. 알코올을 칭송하는 내용은 더욱 아니다. 막걸리에 대한 인문적 민속적 접근이다. 파란으로 점철된 막걸리의 빛과 그림자를 드러내고 있다. 요즘 말로 ‘올 댓 막걸리’라고나 할까. 술을 잘 못하는 장태평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막걸리의 과거와 현재의 이력을 처음으로 정리한 책”이라고 보증을 섰다. 

찾아보니 아예 <막걸리 기행>(한국방송출판, 2010)이란 책도 나와 있다. 나는 술을 잘 못하는 편이지만 술꾼들의 푸짐한 이야기에는 가끔 넋을 놓는 편인데, 한겨레21에 '내가 만난 술꾼'을 연재하고 있는 임범 기자가 2008~2009년 중앙선데이에서 ‘씨네알코올’이란 제목으로 연재한 칼럼을 묶고, 라거 맥주와 칼바도스, 테킬라 라벨 보는 법, 칵테일 만드는 법 등, 술에 관한 각종 팁을 더해서 펴낸 <술꾼의 품격>(씨네21, 2010)도 술에 관한 책에서라면 빼놓을 수 없겠다. "이십대엔 술을 많이 마셨고, 삼십대엔 폭음했고, 사십대에 술을 즐기다가 지금은 애주가가 됐다"는 게 저자의 이력이고 보면 믿어볼 만한 책이다.   

10. 민주주의  

때가 때인 만큼 이달의 주제는 '민주주의'로 고른다. '시민을 위한 민주주의 특강'을 엮은 <다시, 민주주의를 말한다>(휴머니스트, 2010)가 출발점이자 참조점이다. 한홍구 교수의 <지금 이 순간의 역사>(한겨레출판, 2010)을 통해서 '한국 민주주의 100년을 돌아보다'를 보충해볼 수 있겠다. '민주공화국에서 국가를 다시 생각하다'란 박명림 교수의 강연은 <한국 1950 전쟁과 평화>(나남출판, 2002)를 통해서 보충하고. 어쩌면 2010년 또한 2009년 못지 않은 불행한 해로 기록될지 모르겠다. 박명림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불행하게도 우리 국민의 많은 수는 지금 국가의 공공성이 실종됨으로써 정치적, 법적으로는 시민권 시민성 국민성이 인정받고 있지만,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는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한국의 통계를 살펴보면 이런 현상이 너무도 심각하게 우리 앞에 다가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의 국민, 하나의 시민이라고 말하기조차 힘든 정도예요. 두 개의 국민, 두 개의 시민으로 분화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91족)  

이러한 현실이 무엇으로 귀결될 것인가? 나는 문명의 붕괴와 파국 외 다른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10. 05. 27.  

P.S. 이달의 읽을 만한 고전은 카뮈의 <페스트>(책세상)를 고른다. 고등학교 읽었으니 거의 30년 전에 읽은 작품이다. 어차피 강의도 예정돼 있어서 필독하게 됐다. 그참에 허버트 로트먼의 전기 <카뮈, 지상의 인간>(한길사, 2007)도 훑어볼 생각이다. 올리비에 토드의 <카뮈>(책세상, 2000)과 함께 카뮈에 대한 가장 상세한 전기다. 그나저나 우리의 '페스트'는 언제 끝장을 보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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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0-05-27 0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홈쇼핑 방송의 게스트로 한번 나갔을 때도 느낀 거지만 → !!!! 뭘 파셨어요? 잘하셨을 듯 ㅎ

중국관련 세 책 모두 관심이 가는데 특히 국가의 죄수를 읽어보고 싶네요. 무엇이 당신을 만드는가 랑 두권은 보관함에 쓱~

로쟈 2010-05-28 10:28   좋아요 0 | URL
저야 물론 책을 팔았지요.^^;

길위에서 2010-05-28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으로 하는 작별>은 소설이 아니라 에세이입니다 ^^;;
6월에도 읽고 싶은 책이 한가득이군요~

로쟈 2010-05-28 11:00   좋아요 0 | URL
아, 저는 자전적인 소설인 줄 알았어요.^^;

비로그인 2010-05-28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스트는 한번 터지면 상황이 안정될 때까지 손쓸 수 없는 것 아닐까요? 차라리 예방이 중요하고 더이상 사태를 악화시키지 않는 조처를 취하는 게 최선인 듯한데요. 그런 조처는 의사들이 하는 것이겠고요.

로쟈 2010-05-29 18:56   좋아요 0 | URL
이미 벌어진 일인걸요.^^;

노이에자이트 2010-05-28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앙일보사의 현대문학전집을 상자속에서 아직도 안 꺼냈나요? 그 전집 제1권이 버나드 맬러무드<새로운 인생>입니다.러시안 유대인이라서 포그램 당시의 사건을 소재로 쓴 게 <수선공>이지요.

로쟈 2010-05-29 18:56   좋아요 0 | URL
'아직도'가 아니고, '반영구적'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05-29 22:31   좋아요 0 | URL
영화좋아하시니 로버트 레드포드가 나오는 야구영화 '내츄럴'을 아시겠지요.그 영화 원작이 맬러무드 소설이에요.

로쟈 2010-05-30 20:15   좋아요 0 | URL
ㅎㅎ 그렇담 초면은 아니네요.^^

목동 2010-05-28 1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로쟈 2010-05-29 18:56   좋아요 0 | URL
별말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