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주말판에서 '로쟈의 번역서 읽기'를 옮겨놓는다. 최근에 강의에서 읽은 게 계기가 돼 살만 루슈디의 <한밤의 아이들>(문학동네, 2011)을 다뤘다. 방대한 이야기를 품고 있는 작품이어서 핵심 주제 가운데 하나인 '한밤의 아이들 VS 인디라 간디'만을 글감으로 삼았다. 영화화된 <한밤의 아이들>도 조만간 볼 수 있었으면 싶다... 

 

 

 

한겨레(12. 12. 08) 독재권력에 절제당한 신생 인도의 가능성

 

살만 루슈디에게 세계적 유명세를 치르게 한 작품은 이슬람교를 부정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이란의 종교지도자 호메이니로부터 파트와(사형선고)를 받은 <악마의 시>이지만, 그를 영어권의 대표적 작가로 떠오르게 한 작품은 그보다 먼저 쓴 <한밤의 아이들>이다. 영문학의 대표적 문학상인 부커상을 세 차례나 수상한 이 전례 없는 소설 덕분에 루슈디는 일약 ‘거장’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시작은 단출했다. 1975년 첫번째 장편소설을 출간하면서 받은 인세로 루슈디는 인도를 여행하면서 봄베이(지금의 뭄바이)에서 보낸 어린 시절에 관한 자전소설을 구상했다. 하지만 바로 그해 인도의 초대 총리로 17년 동안 통치했던 자와할랄 네루의 외동딸 인디라 간디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독재권력을 장악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후 인도는 1977년까지 ‘어둠의 시대’를 통과하게 되는데, 그러한 환경에서라면 개인의 삶과 역사가 분리될 수 없다는 통찰이 자연스레 얻어질 만하다.

 

루슈디는 새 소설의 주인공 살림 시나이를 영국의 오랜 식민지였던 인도가 독립국가로 새롭게 탄생한 1947년 8월15일 자정에 똑같이 태어난 것으로 설정함으로써 이러한 통찰을 정면으로 밀어붙인다. “나는 불가사의하게 역사에 손목이 묶여버렸고 나의 운명은 조국의 운명과 하나로 이어져 불가분의 관계”가 되었다는 게 살림의 말이다. 그렇게 하여 마치 역사에 수갑이 채워진 것처럼 살림의 개인사는 인도의 역사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으며 전개된다. 루슈디의 두번째 소설 <한밤의 아이들>의 탄생이다.

 

 

그런데 왜 ‘한밤의 아이들’인가? 열번째 생일을 맞은 살림은 1947년 8월15일 자정부터 1시 사이에 자신을 포함해 모두 천 명하고도 한 명의 아이가 태어났다는 걸 알게 된다. 그 가운데 420명이 영양실조와 여러 질병 등으로 사망하고 581명의 아이들이 살아남았다. 이 아이들은 모두가 자정이 선물한 특별한 능력을 갖고 있어서 어떤 아이는 거울 속으로 들어갔다가 나올 수도 있고, 어떤 아이는 몸의 크기를 마음대로 늘이거나 줄일 수도 있었다. 저마다 변신과 비행, 예언, 마법의 능력을 보유한 가운데, 살림이 가진 초능력은 사람들의 머릿속과 가슴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 능력이었다. 살림을 통해서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된 한밤의 아이들은 협회까지 결성하게 된다. 그들의 초능력은 신생국가 인도의 잠재적 역량을 비유한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밤의 아이들은 비상사태 속의 계엄 하에서 불순한 음모를 꾸미는 집단으로 내몰려 모두 체포돼 희망을 절제당한다. 살림과 마찬가지로 국가와 나를 동일시하면서 “인디아는 곧 인디라, 인디라는 곧 인디아”라고 생각한 간디 여사에게 한밤의 아이들은 경쟁자이자 흉악한 범죄자 집단으로 치부된 것이다. 새로운 인도의 가능성은 ‘한밤의 아이들’과 함께 열렸다가 그렇게 닫힌다.

 

12. 12.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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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주간경향(1004호)에 실은 북리뷰를 옮겨놓는다. 지젝 방한기 <임박한 파국>(꾸리에, 2012)을 다뤘다. 이미 언급한 바 있지만 <멈춰라, 생각하라>(와이즈베리, 2012),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궁리, 2012)와 함께 '3종 세트'로 읽는다면 지젝 입문뿐만 아니라 현단계 세계정세에 대한 입문으로도 최적이라고 생각한다. 내년에는 좀더 두꺼운 책들이 번역돼 나올 전망이다...

 

 

 

주간경향(12. 12. 11) 붕괴 직전에 놓인 자본주의

 

<여름 인상에 대한 겨울 메모>라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유럽 여행기 제목을 빌리자면 <임박한 파국>은 ‘여름 강의에 대한 겨울 결산’에 해당하는 책이다. 지난 6월 말 방한한 지젝은 홍세화 진보신당 전 대표, 설치미술가 임민욱씨와 인터뷰를 하고 두 차례 대중강연을 가졌다. 이 ‘결산 보고서’에는 당시 인터뷰, 강연 내용, 청중과의 질의 응답, 그리고 방한 일정을 조율하고 진행했던 이택광 교수의 후기가 담겼다.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철학자’ 지젝이 우리에게 남긴 메시지는 무엇이었나? 먼저 제목 그대로 ‘임박한 파국’에 대한 주의의 환기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은 아직 해소되지 않은 상태다. 지젝은 단도직입적으로 지금의 자본주의 시스템이 더 이상 지속되기 어려운 붕괴 직전에 놓여 있다고 말한다. 그 자신 현장에서 즉석연설을 하기도 했던 2011년 가을 월가 점령시위도 이러한 구조적 위기상황에 대한 통찰에 빚지고 있다고 본다. 그럼에도 자본주의의 종말 이후를 상상하는 건 불가능하다. 이데올로기적으로 봉쇄돼 있기 때문이다.

 

가령 자본주의의 실상은 무엇인가. 지젝은 할리우드 코미디 영화에 나온 유머를 예로 든다. 주인공이 카페에 가서 크림 없는 커피를 주문하지만 크림이 다 떨어지고 우유만 있기 때문에 크림 없는 커피는 없고 우유 없는 커피만 있다는 게 웨이터의 대답이다. 크림 없는 커피나 우유 없는 커피나 똑같은 커피지만 무엇이 없느냐에 따라 커피의 종류가 달라진다. 그렇게 부재 혹은 부정은 정체성을 구성한다. 지젝은 자본주의도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글로벌 자본주의는 중국, 북유럽 등 성공한 국가들뿐만 아니라 국가 기능이 망가져 있는 콩고와 같은 나라도 포함한다. 자본주의의 대표적 성공사례인 애플은 어떤가. 아이패드의 위탁제조업체가 중국에 공장을 둔 폭스콘이다.

 

 

가혹한 노동조건으로 인한 중국 노동자들의 연쇄 자살로 큰 물의를 빚은 곳이기도 한데, 폭스콘의 대만인 회장은 “매일 100만 마리의 동물들을 관리하느라 골치가 아프다”고 말했다. 그래서 타이베이 동물원 원장에게 자문을 구하려고 했다나. 폭스콘은 새로운 성공신화를 쓴 애플의 이면이다. 중요한 것은 폭스콘이 없는 애플은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오늘의 자본주의는 그러한 어두운 이면과 배제 없이는 작동하지 않는다.

 

임박한 파국에 직면하여 당연히 요구되는 과제는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숙고다. 지젝은 오늘날 좌파의 임무는 답이 아니라 정확한 질문을 제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본주의 시스템이 막다른 골목에 도달할지라도 과거의 해법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과거에 대한 어떤 노스탤지어도 거부해야 한다는 게 지젝의 입장이다. 그는 ‘거대한 혁명’에서 가능성을 찾지도 않는다. 수백만의 사람들이 광장에 모이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그 뒤에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가 더 중요하다. 좌파의 고민은 거기에서 시작되어야 하며, 도그마적인 사고를 지양하고 이상주의와 결합된 실용주의적 정신이 필요하다고 지젝은 말한다.

 

지젝의 생각이 우리 현실에는 어떤 효용을 가질까. 당신의 이론도 스타벅스 커피처럼 소비되는 것 아니냐는 한 청중의 질문에 지젝은 그럴 수도 있다고 흔쾌히 인정한다. 하지만 지난 6월 총선이 있던 그리스에서 지젝은 농담이나 던지는 ‘미친 철학자’가 아니라 급진좌파연합의 ‘비밀스런 멘토’로 지목돼 공격받기도 했다. 똑같은 지젝이지만 우리에겐 ‘스타벅스 철학자’와 ‘가장 위험한 철학자’란 다른 종류의 선택지가 주어진 셈이다.

 

12. 12.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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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올해의 책은 11월말까지 출간된 책들 가운데 선정하는 게 일반적이어서(한국일보가 주관하는 출판문화상은 10월말까지 출간된 책을 대상으로 한다) 지젝의 <멈춰라, 생각하라>(와이즈베리, 2012)도 출간된 김에 '2012년의 책'을 골라놓는다. 얼추 다섯 권이 채워졌기 때문이다. 순서는 출간일자의 역순이다. 플라토노프의 <체벤구르>(을유문화사, 2012)가 올해의 '서프라이즈'이며 위화의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문학동네, 2012)는 올해의 '에세이'이고 마이클 샌델의 <민주주의의 불만>(동녘, 2012)은 올해의 '정치철학', 사사키 아타루의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자음과모음, 2012)은 올해의 '발견'이다. 그밖에도 주목할 만한 책은 많지만 개인적으로 인연이 닿은 책들 위주로 골랐다(고르고 보니 러시아, 중국, 미국, 일본 책이 한권씩이군).

 

 

개인적으로 올해의 책, 올해 낸 책은 <그래도 책읽기는 계속된다>(현암사, 2012)와 <로쟈의 세계문학 다시 읽기>(오월의봄, 2012) 두 권이다. 다섯 권을 채우지 못해 리스트는 따로 만들지 않는다. 미뤄진 책들이 연초에 출간될 예정인데, 내년에는 꼭 다섯 권을 채우도록 애써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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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춰라, 생각하라- 지금 여기, 내용 없는 민주주의 실패한 자본주의
슬라보예 지젝 지음, 주성우 옮김, 이현우 감수 / 와이즈베리 / 2012년 12월
14,000원 → 12,600원(10%할인) / 마일리지 700원(5% 적립)
2012년 12월 03일에 저장
절판

체벤구르
안드레이 플라토노프 지음, 윤영순 옮김 / 을유문화사 / 2012년 10월
17,000원 → 15,300원(10%할인) / 마일리지 85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내일 수령" 가능
2012년 12월 03일에 저장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위화, 열 개의 단어로 중국을 말하다
위화 지음, 김태성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9월
16,800원 → 15,120원(10%할인) / 마일리지 84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내일 수령" 가능
2012년 12월 03일에 저장

민주주의의 불만- 무엇이 민주주의를 뒤흔들고 있는가
마이클 샌델 지음, 안규남 옮김 / 동녘 / 2012년 7월
23,000원 → 20,700원(10%할인) / 마일리지 1,1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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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책을 골라놓는다. 타이틀은 슬라보예 지젝의 <멈춰라, 생각하라>(와이즈베리, 2012). 최근에 나온 <임박한 파국>(꾸리에, 2012)와 연초에 나왔던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궁리, 2012) 등과 함께 '올해의 지젝 3부작'이라고 꼽을 만하다. 지젝의 애독자로선 당연히 '올해의 책' 가운데 하나다. "원제는 The Year of Dreaming Dangerously(위험한 꿈을 꾸는 해)로, 지젝은 금융위기로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불만이 폭발하는 한편, 정치적 압제에서 벗어나려는 투쟁이 세계 곳곳에서 전개되었던 2011년의 희망과 절망, 기회와 위협을 다각도로 조명하고 있다."

 

 

두번째 책은 사이비 과학과 미신 등에 맞서온 회의주의 투사 마이클 셔머의 역작 <믿음의 탄생>(지식갤러리, 2012)이다. 우리의 믿음의 기원과 진화에 관해 가장 설득력 있는 설명을 제공한다.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바다출판사, 2007)과 공저 <무신예찬>(현암사, 2012) 등이 같이 읽을 만한 책이다. 세번째 책은 협력과 이타성의 진화에 관한 진화생물학의 연구를 집대성한 마틴 노왁/로저 하이필드의 <초협력자>(사이언스북스, 2012). "이기와 이타, 배신과 협력 사이의 갈등으로 가득한 삶이라는 게임에서 이기심이라는 금과옥조를 거스르고 어떻게 경쟁 대신 서로 협력하게 만들 수 있는지를 탐구하는 책"으로 경제서로도 분류돼 있다. 그리고 나머지 두 권도 관심저자들의 책이다. 네번째는 러셀 자코비의 <친밀한 살인자>(동녘, 2012). 협력의 배신 사례라 할 만한데, '이웃 살인의 역사로 본 폭력의 뿌리'를 다루고 있다. 진화심리학자 데이비드 버스의 <이웃집 살인마>(사이언스북스, 2006)와 같이 읽어볼 만하다. 끝으로 <자유죽음>(산책자, 2010)의 저자 장 아메리의 <죄와 속죄의 저편>(길, 2012).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가 쓴 '정복당한 사람의 극복을 위한 시도'의 에세이 모음이다.


5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멈춰라, 생각하라- 지금 여기, 내용 없는 민주주의 실패한 자본주의
슬라보예 지젝 지음, 주성우 옮김, 이현우 감수 / 와이즈베리 / 2012년 12월
14,000원 → 12,600원(10%할인) / 마일리지 7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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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믿음의 탄생- 왜 우리는 종교에 의지하는가
마이클 셔머 지음, 김소희 옮김, 이정모 감수 / 지식갤러리 / 2012년 11월
22,000원 → 19,800원(10%할인) / 마일리지 1,100원(5% 적립)
2012년 12월 01일에 저장
절판
초협력자- 세상을 지배하는 다섯 가지 협력의 법칙
마틴 노왁.로저 하이필드 지음, 허준석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2년 11월
20,000원 → 18,000원(10%할인) / 마일리지 1,00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내일 수령" 가능
2012년 12월 01일에 저장

친밀한 살인자- 이웃 살인의 역사로 본 폭력의 뿌리
러셀 자코비 지음, 김상우 옮김 / 동녘 / 2012년 11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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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젝의 최신작 <멈춰라, 생각하라>(와이즈베리, 2012)가 출간됐다. 원저는 <위험한 꿈을 꾼 해(The Year of Dreaming Dangerously)>(2012)로 지난 10월에 나온 책이다.

 

 

개인적으로는 번역본의 감수를 맡았는데, 책이 갖는 시의성과 함께 지젝에 관심 있는 독자들을 고려해 원서 강독 강의를 기획했다(http://cafe.daum.net/purunacademy/8Bko/73). 강의는 12월 7일부터 1월 25일까지 8주간 매주 금요일(15:00-17:00)에 푸른역사아카데미에서 진행되며 책을 정독하면서 지젝의 생각과 문제의식을 충실히 이해하는 데 목적을 둔다. 아래의 소개를 참고하시길.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철학자'이자 우리시대의 가장 도발적인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을 로쟈와 함께 원서로 읽습니다. 그의 최신작 <멈춰라 생각하라(The Year of Dreaming Dangerously)>는 이슬람혁명부터 월스트리트 점령시위까지 2011년 한해 동안 일어난 사건들의 의미에 대한 지젝의 분석과 성찰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시대를 살고 있고,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지젝의 뜨거운 사유와 함께 고민해보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영어 문장에 익숙하지 않은 분도 번역본과 같이 읽어갈 수 있습니다.

 

12. 1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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