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달 책&(418호)에 실은 '로쟈의 주제별 도서소개'를 옮겨놓는다. 주제는 '클래식 이야기'다. 클래식에는 문외한인 편에 속하지만, 클래식 전문가나 애호가들의 책은 그것대로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그들이 전해주는 클래식 감상법은 간명한데, 반복해서 들으라는 것이다... 

 

 

 

책&(13년 5월호) 음악이 흐르는 책

 

5월은 가정의 달이면서 ‘계절의 여왕’이기도 하다. 싱그러운 계절을 만끽하며 읽을 수 있는 책은 어떤 것이 있을까 생각해보다가 클래식 음악에 관한 책을 몇 권 골랐다. 전문가 수준의 클래식 애호가가 아니더라도 음악의 감동은 누구에게나 손을 내민다. 하지만 막상 그 손을 맞잡고 환희에 도달할 기회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 않다.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5월에는 클래식과의 속 깊은 데이트를 주선해주는 책들을 통해서 음악과의 만남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켜보아도 좋겠다.


클래식의 문외한이라도 거리낌 없이 손에 들 만한 책은 조윤범의 <나는 왜 감동하는가>(문학동네, 2013)이다. 현악사중주단의 리더이면서 칼럼니스트이고 음악FM방송의 DJ이기도 한 저자가 클래식 안과 밖의 여러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전해준다. 책으로도 묶인 <조윤범의 파워클래식1,2> 강의로 유명한 그는 음악의 감동이 자연스러운 것도, 쉽게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감동은 이해와 공감, 그리고 표현이라는 과정을 거쳐야지 도달할 수 있다. 우리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예술가들은 주변에 많이 있다. 지금 당장에라도 음반을 감상하거나 연주 동영상을 관람할 수 있으니까. 다만 그보다 먼저 필요한 것이 이해와 공감이고, 또한 이를 표현하려는 노력이다.


저자는 어린 시절, 방안에다 여러 개의 실을 빨랫줄처럼 매달고 악기 이름을 적은 메모지를 실에 붙여서 자기만의 오케스트라를 만들어놓았다고 한다. 레코드판으로 듣더라도 마치 음악회 현장에 있는 것처럼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오보에와 플룻이 나오면 가운데를 쳐다봤고, 바이올린이 나오면 왼쪽 앞을, 첼로가 나오면 오른쪽 앞을 쳐다봤다.” 물론 그렇게 듣는 것이 습관이 되자 그는 눈을 감고 들어도 악기들의 위치를 상상할 수 있었다. 어떤 악기가 어떤 소리를 내며 지금 그 소리들이 어떻게 어우러지고 있는가를 느끼는 것은 그런 반복적인 청음의 결과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사랑하게 된다는 점에서 클래식도 예외는 아니다.


대중과 가장 친숙한 지휘자이자 음악 해설가인 금난새의 <금난새의 교향곡 여행>(아트북스, 2012)은 한국인에게 클래식의 대명사로 통하는 ‘불멸의 교향곡’ 11작품에 대한 해설서이다. ‘교향곡이란 무엇인가’란 친절한 소개에서부터 하이든의 교향곡 ‘고별’을 거쳐 말러의 교향곡 1번과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5번에 대한 해설까지를 포함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교향곡에는 “작곡가의 음악적 정서뿐만 아니라 시대정신과 사상, 감정, 나아가 문학적인 내용 등 모든 세계관이 담겨” 있다. 교향곡이 ‘소리로 빚은 위대한 문화유산’인 것은 그 때문이다. 저자는 그 교향곡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하는 친절하면서 미더운 가이드를 자임한다. 


연주자나 지휘자가 아니라고 해서, 곧 음악을 전공하지 않았다고 해서 클래식 애호가의 자격이 없는 것은 아니다. 대학시절부터 클래식 음반을 쫓아다니다 결국 일간지의 음악담당 기자가 된 문학수의 <아다지오 소스테누토>(돌베개, 2013)에는 클래식에 대한 저자의 열정과 조예가 여실히 담겨 있다. 그는 어떻게 해야 클래식과 친해질 수 있는가란 물음에 답하여, “이 곡 저 곡 많이 들으려고 하지 말고, 같은 곡을 자꾸 반복해 들으세요.”라고 조언한다. 반복적으로 들음으로써 곡의 흐름에 익숙해지고, 음의 전체 구조가 머릿속에 들어올 때 비로소 우리는 그 음악이 주는 감흥에 본격적으로 입문하게 된다.


물론 바쁜 일상에서 꽤 긴 시간의 클래식을 반복해서 듣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시간을 바치지 않는다면 음악은 결코 당신에게 다가오지 않는다”는 게 저자의 믿음이다. 뒤집어서 말하면, 저자의 ‘클래식 읽기’에는 빈번한 술자리를 잊고 드라마 시청과 주말 등산을 포기하면서 음악에 바친 그의 시간이 집약돼 있다. 음악의 감동이 그런 ‘희생’을 보상해주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젊은 시절 그를 음악의 길로 이끈 대표적인 작품이 ‘혁명’이란 제목이 붙은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5번이라는 점이다. 금난새 역시 특별한 애정을 고백하면서 “가끔 쇼스타코비치가 저를 위해 작품을 썼다고 착각할 때가 있습니다”라고 언급한다. 클래식 애호가들의 이런 감상을 비교해보는 것도 클래식 연주를 비교해서 듣는 것만큼 재미있다. 

 

 


한편 아무리 감동을 들먹여도 진지한 클래식 애호가가 되는 일이 부담스런 독자도 있을 법하다. 부담스럽지 않게 클래식을 살짝 비껴가고자 한다면 애초에 장일범, 정준호 등 클래식 멘토 7인이 쓴 <호모 클라시쿠스>(생각정원, 2012)를 읽고 방향을 틀어도 좋겠다. 클래식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거꾸로 빠져나오는 출구이기도 할 테니까. 7명의 사례를 읽다가 클래식 애호가의 기질을 자기 안에서 발견한다면 하는 수 없다. 류준하의 <내 삶의 변주곡 클래식>(현암사, 2012)으로 넘어가는 수밖에. ‘음악의 기쁨을 아는 젊은 클래식 애호가를 위한’ 책이다. 반면에 클래식이 아니어도 좋다고 생각된다면 이민희의 <왜 그 이야기는 음악이 되었을까>(팜파스, 2013)도 적당하다. 스물 네 곡의 음악이야기를 늦은 밤 라디오방송에서처럼 편안하게 들려준다. 헨델과 모차르트의 곡 이야기와 함께 자우림과 이상은의 노래 이야기도 담겨 있다.

 

13. 05.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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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책'을 골라놓는다. 타이틀북은 아론 제임스의 <그들은 왜 뻔뻔한가>(추수밭, 2013)로 정했다. 한 주 묵은 책이긴 한데(이번주 한겨레21에 리뷰기사가 떴다), 원제의 'Assholes'이 이번주에 끝도 없이 뉴스기사에서 튀어나오는 바람에 새삼 관심을 안 가질 수 없게 됐다(한겨레21의 리뷰에 따르면 미국판 '그들'은 우리보다 강도가 약하다고 한다. 그들은 진정한 '진상'을 못 겪어본 것). 말하자면 절묘한 타이밍에 출간된 책이다('Assholes'을 번역본은 '골칫덩이'라고 옮겼고, 리뷰를 쓴 기자는 '개자식'이라고 옮겼다). '그들'에 관한 '이론'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는 게 특징.   

 

 

두번째 책은 고경태의 <대한국민 현대사>(푸른숲, 2013). '국민으로 살아낸 국민의 역사'가 부제다. 좀 특이한 역사책인데, "아버지가 남긴 34년간의 신문 스크랩을 재료로 아들인 저자가 뼈대를 세우고 살을 붙여 내놓은 <대한국민 현대사>는 권세 잡은 이들만의 역사를 좇는 일반적인 역사서와는 전혀 다른 특별함이 깃들어 있다. 위세 등등하던 그들과 함께 그 시절을 살아낸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받아들인 일상에 관한 역사책이다." 요즘은 신문 스크랩이 드물어졌지만, 한때는 나도 몇 권의 스크랩북을 가지고 있었다. 몇 번 이사하면서 다 폐기한 듯한데, 34년간이나 보존된 스크랩을 재료로 했다니까 그 지속적인 열정이 감탄을 자아낸다.

 

 

세번째 책은 제프리 잉햄의 <자본주의 특강>(삼천리, 2013)이다. 저자만큼, 아니 그 이상 무게가 실리는 건 역자인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이다. 잉햄의 책으론 <돈의 본성>(삼천리, 2011)에 이어서 나온 것인데 전작 역시 홍기빈 소장의 번역이다. '자본주의'에 대한 요긴한 가이드북인 듯싶다.

 

 

네번째 책은 죠슈아 퍼퍼와 스티븐 시나의 <닥터 프랑켄슈타인>(텍스트, 2013). "의사 역시 평범한 인간일 뿐, 신이 아니다. 선한 자질과 성격적 결함을 동시에 지니고 있기에 사람을 살려야 할 의사가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 이 책에서는 사람을 치유하던 의사가 연쇄살인범, 독재자, 테러리스트, 사디스트로 변해버린 수없이 많은 사례를 만날 것"이라고 소개된다. 원제는 <의사가 사람을 죽일 때>이다(번역본의 제목은 오해의 소지도 있다.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의 창조자'이지 살인자는 아니기 때문이다). 끝으로 다섯번째 책은 '우리시대의 명강의' 시리즈의 셋째 권으로 나온 안대회 교수의 <궁극의 시학>(문학동네, 2013)이다. "중국 시학 가운데 난해하면서도 대중적이며, 아직까지도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시품>을 대상으로 회화와 서예, 인장, 그리고 인생의 문제까지 연결시켜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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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왜 뻔뻔한가- 부도덕한 특권 의식과 독선으로 우리를 욱하게 하는 사람들
아론 제임스 지음, 박인균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13년 4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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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대한국民 현대사- 국민으로 살아낸 국민의 역사
고경태 지음 / 푸른숲 / 2013년 5월
20,000원 → 18,000원(10%할인) / 마일리지 1,00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1월 5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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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특강
제프리 잉햄 지음, 홍기빈 옮김 / 삼천리 / 2013년 5월
23,000원 → 20,700원(10%할인) / 마일리지 1,1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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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닥터 프랑켄슈타인
조슈아 퍼퍼 & 스티븐 시나 지음, 신예경 옮김 / 텍스트 / 2013년 5월
18,000원 → 16,200원(10%할인) / 마일리지 9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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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한겨레의 '로쟈의 번역서 읽기'를 옮겨놓는다. 강의차 읽은 게 계기가 돼 쑤퉁의 <쌀>(아고라, 2007)을 다뤘다. 얘깃거리가 많은 소설이지만, 제한된 분량에 맞추느라 오전 시간을 거의 잡아먹은 글이다. 쑤퉁의 작품은 여럿 소개돼 있으며 대부분 구입한 상태인데, 장편 중에서는 <나, 제왕의 생애>(아고라, 2007)과 <뱀이 어떻게 날 수 있지>(문학동네, 2008) 등을 먼저 읽어보려고 한다. 한편, <쌀>은 <대홍기 쌀집>이란 제목으로 영화화됐는데(지나치게 선정적이란 이유로 7년간 상영 금지됐었다고), 어디서 구해볼 수 있으면 좋겠다... 

 

 

 

한겨레(13. 05. 11) 지옥세상에서 사람답게 살아남는 법

 

세상이 전쟁과 굶주림으로 어지럽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아니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까를 묻는 게 먼저인지도 모른다. 중국 작가 쑤퉁의 소설 <쌀>(아고라·2007)의 주인공 우룽은 난세를 버텨내지 못하고 그냥 황천길로 떠나는 건 억울할뿐더러 바보 같은 짓이라고 생각한다. 우룽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두 가지다. 첫째, 살아 있는 것, 둘째, 사람답게 사는 것. 일단은 살아남는 게 중요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사람답게 살 수 없는 세상에서 사람답게 사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고향 펑양수에 홍수가 나자 우룽은 석탄운송 열차에 몸을 싣고 낯선 도시로 온다. 사지(死地)가 된 고향에서 빠져나오긴 했지만 도시는 비정했고 사람들은 속악했다. 부두 건달패의 우두머리 아바오는 먹을 것을 구걸하는 우룽의 손을 발로 짓이기며 자기를 아버지라고 부르면 음식을 주겠다고 조롱한다. 고아인 우룽은 고향에서도 개보다 나을 게 없는 존재였지만 굶어죽지 않기 위해 건달들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자신이 정말 개 같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에겐 다른 면도 있다. 쌀 냄새에 이끌려 와장가의 대홍기 쌀집에 찾아간 우룽은 거렁뱅이 취급을 받자 밥그릇을 내동댕이치기도 한다. 생존에 대한 욕구가 전부는 아니다. 그에겐 어엿한 인간으로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도 있다. 무보수로 일하게 된 쌀집 주인 펑 사장과 목욕탕에 가서 그의 등을 밀다가도 ‘우리는 모두 같은 존재인데 왜 나만 항상 당신의 등을 밀어야 하는 거지?’라고 의문을 품는다. 그는 자신이 받은 모든 차별과 모욕을 마치 장부에 기입하듯 가슴에 새겨두었다가 철저하게 복수한다.

 

 

쌀집의 큰딸 쯔윈이 실력가 뤼 대감의 정부 노릇을 하면서도 그 하수인인 아바오와 정을 통하는 걸 알게 된 우룽은 뤼 대감에게 밀고의 편지를 보내 아바오를 죽게 만든다. 쯔윈이 아바오의 아이인지 뤼 대감의 아이인지 불확실한 아이를 임신하자 펑 사장은 우룽을 일단 데릴사위로 삼았다 제거하려고 한다. 하지만 명줄이 쇠심줄 같은 우룽은 악착같이 살아남아, 아들을 낳고 뤼 대감 댁으로 들어간 쯔윈 대신에 그 동생 치윈과 결혼하여 대홍기 쌀집의 주인이 된다. 쌀자루를 들고나가 부두 조직의 우두머리까지 된 장년의 우룽은 뤼 대감도 암살하고 마침내 도시의 실력자가 돼 꿈을 이룬다. 하지만 그의 성공은 자신을 살인도 서슴지 않는 복수의 화신으로 만든 대가로 얻은 것이며, 성병으로 썩어가는 그의 육신처럼 무상하다.

 

모두가 복수를 벼르는 악인임에도 우룽이 우리에게 강한 인상을 주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의 교훈 때문이지 싶다. 은전 두 닢을 준다고 하니까 자기를 아버지라고 부르는 청년의 손을 짓밟으며 우룽은 처음 도시에 왔을 때 아바오에게 당한 치욕을 상기한다. “복수심과 증오심이야말로 우리가 사람 구실을 하게 하는 밑천”이라는 게 자존심을 지키지 못한 청년에게 가르쳐주고자 한 우룽의 교훈이다. 몸은 만신창이가 됐지만 객차에 쌀을 가득 싣고 고향으로 떠나는 우룽의 마지막 모습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애초에 우룽의 꿈은 금의환향이다. 고향 사람들에게 자신이 개가 아니라 어엿한 사람이라는 걸 인정받는 것이다. 생니를 다 뽑고 이빨 전부를 금니로 해 넣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쑤퉁의 <쌀>은 어엿한 사람이 되려는 욕망이 증오와 복수를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는 세상의 지옥도를 보여준다.

 

13. 0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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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문학의 거장 필립 로스의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문학동네, 2013)가 출간됐다. 제목이 입에 익어서 확인해보니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새물결, 2010)로 나온 적이 있는 작품이다(알라딘에는 흔적이 없다. 그새 절판된 듯하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지만, 매카시즘의 광풍이 불던 시대가 작품의 배경이다. <미국의 목가>, <휴먼 스테인>과 함께 로스의 '미국 3부작'으로 불린다고. <휴먼 스테인>을 전에 읽다가 말았는데, 이 참에 다시 손에 들어보고픈 욕심도 생긴다. 겸사겸사 리스트로 묶어놓는다. 생각만큼 많지는 않다(절판된 책들이 몇 종 돼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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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
필립 로스 지음, 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4월
15,800원 → 14,220원(10%할인) / 마일리지 79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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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 스테인 1 (무선)
필립 로스 지음, 박범수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14,000원 → 12,600원(10%할인) / 마일리지 7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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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 스테인 2 (무선)
필립 로스 지음, 박범수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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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분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월
14,000원 → 12,600원(10%할인) / 마일리지 7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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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회의(343호)에 실은 리뷰도 옮겨놓는다. '인문학을 공부하다' 특집인데, 내가 청탁받은 건 세 권의 인문서에 대한 검토였다. 제목에 모두 '인문학'이 들어가 있어서 '인문학 책'이라고 따로 작명을 했다(원래 쓰이는 말인지는 긴가민가). 불황 속에서도 읽히는 '인문학 책'의 매력과 아쉬움을 적었다. 그러고 보니 기획회의에는 상당히 오랜만에 글을 싣는다.

 

 

기획회의(13. 05. 05) '읽히는' 인문서의 시대

 

인문학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다행히 나는 이 질문에 답하지 않아도 된다. ‘최근 인문학 분야 도서 중 어떤 책이 인기를 끌고 있으며 그 이유는 무엇인지’를 짚어달라는 게 <기획회의> 편집자의 주문이기에. 인기 인문서의 원인 분석을 해달라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겠다. 그렇지만 인문학의 향방에 대해서도 뭔가 말해야 하지 않을까란 불길한 예감도 든다. 인문학 책이 왜 읽히고 있으며(더 정확하게는 왜 팔리고 있으며)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지 더듬다 보면, 인문학은 우리에게 무엇인지 물을 수밖에 없으며 우리 곁의 인문서들이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도 점검해보게 되지 않을까. 하지만 이런 거창한 문제는 일단 덮어두기로 한다. 나로선 부족한 역량과 분량을 얼마든지 핑계로 댈 수 있다. 익숙한 게 믿는 구석이다. 그냥 앞가림만 하기로 하자.  

 

통칭하면 ‘인문 분야 도서’이고 ‘인문서’이지만, ‘인문학 책’이라고 특정하게 되면 제목에(적어도 부제에) ‘인문학’이란 말이 들어간 책을 별도로 가리킨다. 이게 ‘업계 용어’로 등재돼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거기에 준하지 않을까 싶다. 어떤 책들인가. 가령 최근에 나온 책 가운데서도 <숲의 인문학>(글항아리) <홍루몽 인문학>(휘닉스) 같은 제목이 이제는 어색하지 않으며 심지어 <조선의 선비들, 인문학을 말하다>(행복한미래), <조선시대 어린이 인문학>(열린어린이) 같은 제목도 충격적이지 않다. ‘인문학’의 오지랖이 넓다는 것을 고려하면 이해해줄 만하다. 인문서는 안 팔리는 책의 대명사이지만 특이하게도 언제부턴가 ‘인문학’이란 말은 독자를 유인하는 매끈한 미끼로 간주된다. 인문서는 안 읽어도 ‘인문학’에는 끌린다? 무슨 이유일까? 세 권의 책을 통해 살펴보려 한다.

 

 

 

일단 주현성의 <지금 시작하는 인문학>(더좋은책)에서부터 시작해보자. 2012년 10월에 출간돼 10만부 이상 판매됐다고 전해지는 책이다(그 정도면 인문서로서는 상반기 최대 베스트셀러가 아닐까?) 제목이 말해주듯 전형적인 ‘인문학 책’이다. ‘우리 시대가 알아야 할 최소한의 인문 지식’이 부제. 무엇이 비결일까. 저자는 인문교양 분야 베스트셀러를 기획한 경력의 출판기획자라고 소개되지만 이 책이 데뷔작이다. 기획자로서의 감각이 내용 구성에 배여 있겠지만, 아무래도 "지금 시작하는"이란 문구가 독자들에게 어필했을 가능성이 높다.

 

지난 2006년 대학 인문학의 위기 선언과 함께 시작된 대학 바깥의 역설적인 ‘인문학 붐’도 한 풀 꺾인 듯한 느낌이 없지 않은 상황에서(서울대의 ‘최고지도자 인문학 과정’을 소개한 CEO 인문학> 같은 책도 몇 년 전에 나왔지만 독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지금 시작하는"이란 건 어떤 의미일까? 나로선 ‘새로운 시작’이라기보다는 ‘재정비’의 의미가 아닐까 싶다. 인문학 붐과 함께 다수의 관련서가 쏟아져 나왔고, 스타급 인문학자들도 탄생했으며, 인문학 공부가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다. 게다가 ‘우리시대의 영웅’ 스티브 잡스는 “소크라테스와 점심을 할 수 있다면 애플이 가진 기술을 모두 줄 수 있다”는 말로 인문학 열풍을 더 부채질했다. 그 결과 대학 내 인문학의 위상과는 무관하게 인문 지식과 인문학적 성찰의 가치에 대해선 다들 수긍하는 분위기가 됐다. ‘인문학’은 대접 받는 유행어가 됐다. 그래서 형성된 게 ‘이건 뭐지?’라는 궁금증과 뭔가 알아야 한다는 부담이 아닌가 싶다.

 

인문학이란 무엇인가. 인문학 전공자라면 별로 궁금하지도 않은 질문이지만 다수의 비전공자에게는 다르게 비쳤을 법하다. 그들에게 ‘인문학’이란 말은 판독해야 할 시대의 상형문자 같은 게 아닐까. 그래서 문학, 역사, 철학 책들에 두루두루 눈길을 주어보지만 쌓이는 건 두서없는 지식이고 도무지 갈피를 잡지 못하겠다. 안 그래도 뜬 구름 잡는 얘기처럼 들리는 인문학 얘기들이 머릿속에서 정돈되지 않은 채로 나열돼 있는 상황이라고 할까. <지금 시작하는 인문학>의 등장배경이다. 더불어 "처음 만나는 인문학"이 아니라 "지금 시작하는 인문학"이어야 하는 이유라고도 말하고 싶다.

 
<지금 시작하는 인문학>의 저자는 인문학과는 구면이지만, 그래도 아직 뭔지 잘 모르겠다는 독자들을 타깃으로 삼았다. “그동안 많은 교양 입문서가 나왔지만 매우 산발적이거나 한 분야의 지식에만 치우쳐 있어, 인문 교양에 욕심을 내는 초심자들에게는 꽤 긴 길을 돌아가게 만들었다”는 것이 그의 문제의식이다. 그렇다면 어떤 책이 필요한가. “어느 정도 깊이 있는 인문서를 읽는 즉시 바로 소화할 수 있는, 그런 체계적 지식을 전달할 수 있는 책”이다. 요컨대 체계적인 실전용 가이드북이라고 할까. ‘최소한의 인문 지식’을 체계적으로 제공함으로써 곧바로 인문서 독서로 진입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저자가 자임한 역할이다. 그런 취지에서 고른 영역이 심리학, 회화, 신화, 역사, 철학, 글로벌 이슈 등 여섯 가지라는 점은 이 책만의 특징이자 개성이다. ‘인문학의 핵심 여섯 분야’를 이렇게 꼽는 경우는 흔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려나 <지금 시작하는 인문학>은 독자의 필요와 눈높이에 맞는 기획과 콘텐츠를 통해서 인문서의 숨은 독자들을 끌어낸 공로를 십분 인정해줄 수 있는 책이다. 하지만 한편으론 이 책의 독자들이 저자의 기대대로 “어느 정도 깊이 있는 인문서를 읽는 즉시 소화할 수 있는” 단계에까지 이르게 될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아마도 독자들에게 가장 어렵게 여겨질 ‘현대의 철학’ 장만 하더라도 저자는 비트겐슈타인뿐만 아니라 콰인, 크립키 등의 전문적인 분석철학자까지 다룬다. 입문서라고는 하지만 ‘인문 교양’의 범위를 상당히 넓게 잡고 있는 것이다. 정신분석학의 비중을 고려하면 프로이트와 함께 자크 라캉의 정신분석을 자세히 소개하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상상계’라는 개념에다 ‘Imagery’라고 잘못 병기한 걸로 보아(‘the imaginary’ 대신에) 저자 자신이 성급하게 이해하고 있지 않나 의심도 든다. 소쉬르 언어학의 의의를 설명하면서 “인간 이성을 구조로 대치함으로써 구조주의를 이성에 뿌리를 둔 기존의 철학과 분명히 다른 탈근대(탈이성)의 의미를 부여받게 된다”고 한 대목도 요령부득이다. 짐작엔 ‘주체’를 ‘이성’으로 잘못 이해한 게 아닌가 싶다. 때문에 분명 ‘흥미로운 지식의 향연’을 제공하고는 있지만, 독자가 가려서 즐겨야 한다는 조건은 붙는다. 물론 그렇게 가려서 즐길 만한 독자를 겨냥한 입문서가 아니라는 게 딜레마이긴 하지만. 

 

 

 

<고미숙의 몸과 인문학>(북드라망) 역시 제목에 ‘인문학’이란 말이 들어간 ‘인문학 책’이다. 더불어 저자의 이름도 같이 들어가 있는 건 ‘고미숙’이란 이름이 이미 하나의 브랜드라는 걸 말해준다. ‘동의보감 삼종세트’의 마지막 권으로 나온 책은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와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 서주명리학과 안티 오이디푸스>를 읽은 독자에게는 가벼운 ‘몸 풀기’로 여겨지는 ‘사회비평적 에세이’다.

 

저자의 문제의식이란 무엇인가. 대학이 지난 ‘지적 구심력’이 이미 끝났다는 것. “리모델링과 시설투자에 올인하는 사이, 대학은 한낱 ‘취업전선’이 되어 버렸다. 붕어빵에 붕어가 없듯이 이제 대학에는 지성이 없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렇게 대학이 지성을 포기하자 새로운 지성의 광장이 열렸고 ‘대중지성의 시대’가 도래했다. 어떤 시대인가. “지식인이 대중의 흐름에 영합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 자신이 ‘지성의 주체’가 되는” 시대다. 저자는 바로 그런 시대를 주도한 대표적 인문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며, <고미숙의 몸과 인문학>은 그런 저자의 활달한 문체와 문제의식을 여일하게 담고 있다. 그게 매력이기도 하지만 지나치게 반복적이란 느낌도 준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게 읽은 글이 ‘아기를 업어야 하는 세 가지 이유’라는 점에서도 그렇다(양기 덩어리인 아이에겐 음기가 필요하다는 것, 등은 서늘하다는 것, 아기를 업으면 엄마가 자기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세 가지 이유다). 인문학의 오지랖에 경탄할 밖에!

 

 

 

미국의 교육전문가 리 보틴스의 <부모 인문학>(유유)은 ‘교양 있는 아이로 키우는 2,500년 전통의 고전교육법’이 부제다. 고전 공부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단단한 공부>나 <공부하는 삶>과 맥을 같이하고, 또한 이지성의 베스트셀러 <리딩으로 리드하라>(문학동네)와도 연결될 수 있는 책이다. ‘공장 교육’으로 전락한 오늘날 국가 주도의 공교육을 비판하면서 저자는 부모가 직접 자녀들에게 고전을 가르치는 ‘고전 공부법’을 주창한다.

 

하지만 “오늘날 교육은 다음 세대가 역사 속 위대한 고전과 대화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주지 않는다”는 저자의 비판에 십분 공감하더라도 그의 전제까지 공유하기는 어렵다는 게 문제다. 어떤 전제인가. 부모들이야말로 아이들을 사랑하고 가르칠 능력이 있다고 믿는 저자는 “12년 동안 효과적인 학교 교육을 받고도 아이들 공부에 아무런 도움도 안 될 정도로 기초 지식을 배우지 못하는 게 가능한 일일까?”라고 묻는데, 우리는 그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걸 몸으로 알고 있다. “고전 공부에 관심이 많은 부모는 양질의 학습 자료만 있으면 공부법을 습득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미국은 어떤지 몰라도) 우리에게 그런 학습 자료가 있는지 심히 의심스럽다. 때문에 <부모 인문학>은 부모의 책임감을 다시금 깨닫게 해주더라도 그 깨달음이 우리의 교육법을 바꾸게 해줄지는 미지수다.

 

어느 분야에서건 마찬가지겠지만 ‘읽히는’ 인문서도 비결과 한계를 갖는다. 어느 쪽이 더 오래 버틸까. 인문 지식과 인문학적 성찰에 대한 관심과 열망이 가라앉지 않기 전에 새로운 출구를 뚫어줄 ‘인문학 책’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아니 굳이 ‘인문학’이란 말을 제목에 붙이지 않아도 인문서가 읽히는 시대를 고대한다.

 

13. 05.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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