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로디 비티의 <상호의존성이란 무엇인가>(살림, 2013)란 책이 출간됐다. '스스로를 학대하며 살아온 사람들을 위한 마음처방'이 부제. 얼핏 상호의존의 필요성을 얘기하는 책처럼 보이지만 소개를 보니 정반대의 주장을 펼치는 책이다. "저자인 멜로디 비티는 상호의존성을 가진 사람에게 나타나는 현상은 자신을 돌보지 않아 생긴다고 설명하며, 자기 돌보기의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자기 돌보기의 방법으로 일일이 반응하지 말 것, 다 내려놓을 것, 더 이상 희생은 하지 말 것, 자립적인 태도를 가질 것, 자신의 감정을 느낄 것, 제대로 분노할 것, 당당하게 의견을 밝힐 것 등 보다 구체적인 실천 방법을 제시한다." 곧, 남보다는 자기 자신을 돌보라는 것. 맥락은 다르지만 (상호)협력의 문제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게 해주지 않을까 싶다. 협력에 관한 책들 가운데 바로 떠오르는 책들과 같이 리스트로 묶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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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호의존성이란 무엇인가- 스스로를 학대하며 살아온 사람들을 위한 마음처방
멜로디 비티 지음, 서민아 옮김 / 살림 / 2013년 7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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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협력자- 세상을 지배하는 다섯 가지 협력의 법칙
마틴 노왁.로저 하이필드 지음, 허준석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2년 11월
20,000원 → 18,000원(10%할인) / 마일리지 1,0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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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게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
리차드 세넷 지음, 김병화 옮김 / 현암사 / 2013년 3월
18,000원 → 16,200원(10%할인) / 마일리지 900원(5% 적립)
2013년 07월 09일에 저장
절판
협력의 진화- 이기적 개인의 팃포탯 전략
로버트 액설로드 지음, 이경식 옮김 / 시스테마 / 2009년 4월
17,000원 → 15,300원(10%할인) / 마일리지 850원(5% 적립)
2013년 07월 09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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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한 일이긴 하지만, 만약 이번주에 휴가를 간다면 가방에 제일 먼저 챙겨넣을 책은 <아듀 데리다>(인간사랑, 2013)다. 데리다의 죽음에 부친, 그를 추모하는 철학자들의 글모음으로 우리에게도 친숙한 지젝, 랑시에르, 바디우 등의 추모사도 포함돼 있다. 편자는 코스타 두지나.

 

 

사실 데리다 자신이 '추모사' 전문이었기에, 코스타 두지나는 서문 격의 글에서 '데리다의 추모사'를 데리다적 스타일로 해명한다. <아듀 데리다>란 번역본 제목이 예고됐을 때, 나는 데리다가 쓴 <아듀>인 줄 알았는데(레비나스를 추모하는 책이다), <아듀 데리다>(2007)가 따로 있었다. 아마도 오래전에 복사라도 해두었을 성싶은데, 지금 원본을 따로 찾을 수 없다(하드카바 원서는 너무 비싸서 구하기 어렵다). 그래서 당장 읽는다면 번역본으로만 읽어야 하는데, 다행히 번역이 좋은 편이다.

 

 

뒷표지에는 지젝이 데리다에게 보내는 추모사, '차연으로의 복귀를 청하는 호소'에서 한 대목이 실렸는데(아무래도 국내에선 지젝이 대세 철학자인지라) 이런 대목이다(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데리다와 내가 한 배를 타고 있음을 발견한 지금, 관계를 조정하고 때늦은 연대감을 표명할 때가 된 듯하다. 데리다의 작품들과 씨름하는 많은 페이지들을 썼고, 이제 데리다의 인기가 시들해지는 지금이 어쩌면 데리다가 차연이라고 부른 것과 내 작품의 친연성을 지적함으로써 그에 대한 기억에 경의를 표할 때인 듯하다. 생애 마지막 20년 동안 데리다는 해체가 과격하면 할수록 어떻게 그것이 해체의 내적 조건, 즉 정의에 대한 메시아적 약속에 더 의존할 수밖에 없는지 강조했다. 이 약속이야말로 바로 데리다적인 신념이 대상이다. 데리다의 궁극적인 윤리적 원칙은 이 신념만큼은 환원 불가능하며 '해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데리다는 온갖 종류의 역설을 허용할 수 있다.

데리다와의 오랜 불화를 접고 '때늦은 연대감'을 표명하고 있는 추모사. 차연(데페랑스)으로의 복귀를 호소하는 글답게 지젝은 마지막에 데리다의 차연을 이해하지/수용하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인지를 그답게 설명한다.

 

라캉의 말처럼 욕동의 진짜 목적은 목표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주변을 끊임없이 맴도는 것이다. 처음으로 성관계를 가진 어느 바보에 대한 유명한 음담패설에서 여자는 그에게 무엇을 할지 정확하게 말해준다. "내 다리 사이에 이 구멍이 보이지? 그것을 여기에 넣어, 이제 깊숙이 밀어넣어, 이제 빼, 밀어넣어, 빼, 밀어넣어, 빼..." 잠깜만'하고 바보가 여자에게 물었다. "결정을 해! 넣어 아니면 빼?" 바보가 미처 알아채지 못한 것은 바로 미결정 그 자체, 반복되는 망설임 속에서 만족을 얻는 욕동의 구조이다. 다시 말해서 바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데리다의 차연이다.

두 철학자와 동시대를 살았고, 살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13. 07. 07. 

 

 

 

P.S. 짐작에 지난 일년 정도 기간에 구입한 데리다 관련서들이다. 베누아 페터즈의 전기 <데리다>는 결정판 전기라 할 만한 분량을 자랑하는데 평도 좋다(놀랍게도 저자는 비평가이면서 만화작가이자 소설가이다). 데리다의 독자라면 필수 소장 아이템. 읽는 건 '휴가' 때나 가능하다는 게 문제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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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한겨레의 '로쟈의 번역서 읽기'를 옮겨놓는다. 요즘 알베르 카뮈의 작품들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는 중이어서 자연스레 그의 <페스트>를 다루게 됐다(언젠가 <최초의 인간>도 이 칼럼에서 다룬 적이 있다). 번역본은 책세상판으로 읽었는데, 김화영 선생의 이 번역본은 민음사판으로 나와 있다. 부분적으로 같이 읽은 건 이휘영 선생의 번역이다(주인공의 이름을 '리외'로 옮긴다). 아마도 <이방인>과 마찬가지로 최초의 번역본이지 않았을까 싶다. 고등학생 때 제일 처음 읽었던 건 주우 세계문학 시리즈의 <페스트>였다(돌이켜 보면 꽤 괜찮은 리스트의 전집이었다).

 

 

 

한겨레(13. 07. 08) 카뮈의 인간에 대한 ‘야심’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1947)는 애초에 한 가지 감옥살이를 다른 감옥살이로 표현해보려는 것이었다. ‘2차 세계대전 직후 최대의 걸작’이란 평판을 얻은 이 소설에서 페스트로 인한 오랑 시민들의 ‘감옥살이’는 일차적으로 작가와 동시대인들이 겪은 전쟁의 은유였다. 거기서 더 나아가 카뮈는 그 은유를 삶의 일반적인 차원으로까지 확대하고 싶어 했다. 페스트는 죽음이란 인간 조건 자체를 비유할 수도 있다. 그 죽음은 주인공이자 서술자인 의사 리유의 말을 빌리면 우리가 받아들일 수 없는 죽음, 곧 ‘익숙하지 않은 죽음’이다.

 

작품의 또다른 주요 인물인 타루와의 대화에서 리유는 자신이 의사라는 직업을 그냥 한번 해볼 만한 직업 같아서 택했다고 말한다. 소위 ‘추상적인’ 선택이었다. 의사가 된 이상 사람들이 죽는 장면을 볼 수밖에 없었는데, 한번은 어떤 여자가 죽는 순간에 “안 돼!”라고 외치는 걸 듣는다. “그때 나는 절대로 그런 것에 익숙해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지요”라는 게 그의 고백이다. 이 죽음과의 싸움, 죽음에 의해 좌우되는 세계의 질서와의 싸움은 일시적인 승리를 포함할지라도 언제나 패배할 수밖에 없다. 다만 리유는 불의와 마찬가지로 그런 죽음과는 타협하지 않고자 한다. 그것이 시시포스 신화를 떠올리게 하는 그의 ‘반항’이다.

 

리유와 몇몇 동료가 환자를 치유하고 페스트의 확산을 막기 위해 결사적으로 애쓰는 가운데서도 페스트는 막무가내로 도시를 점령하고 사람들을 쓰러뜨린다. 많은 희생자들 가운데 가장 고통스러운 장면을 연출하는 것은 한 어린아이의 죽음이다. 죄 없이 죽어가는 자의 오랜 고통 앞에서 주변은 신음과 흐느낌으로 채워진다. 페스트를 신이 내린 고통으로 수용하려는 파늘루 신부에게 리유는 격렬하게 외친다. “이 애는, 적어도 아무 죄가 없었습니다!” 그러한 항의에 대한 신부의 대답은 “아마도 우리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사랑해야 할지도 모릅니다”라는 것이었다.

 

리유와 파늘루 신부와의 논쟁 장면은 흡사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나오는 ‘대심문관’ 편을 방불케 한다. 이반 카라마조프 역시 신의 섭리가 무고한 어린아이의 고통을 대가로 구현되는 것이라면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한다. 도스토옙스키는 그런 이반의 논리를 조시마 장로의 가르침과 대비하면서 여전히 인간의 지성을 넘어서는 사랑과 섭리의 편을 들고자 하지만 카뮈의 선택은 단연 파늘루 신부가 아닌 리유 쪽이다. 그렇더라도 어린아이의 무고한 고통과 신의 섭리에 대한 반항만을 주제로 삼았다면 <페스트>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아류작에 머물렀을 것이다.

 

 

카뮈는 타루와 리유의 대화 장면을 통해 한걸음 더 나아간다. 타루가 자신의 관심사는 신이 없이 어떻게 성인이 될 수 있는가라는 것이라고 말하자, 리유는 성인들보다는 패배자들에게 더 연대의식을 느끼며 자신의 관심은 그저 인간이 되는 것이라고 응답한다. 그러자 타루는 “그럼요, 우리는 같은 것을 추구하고 있어요. 다만 내가 야심이 덜할 뿐이죠”라고 정리한다. 만약 두 사람이 같은 것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타루의 ‘성인’은 리유에게 ‘인간’이 된다. 타루에게 성인이라고 불릴 만한 이가 리유에게는 그저 인간일 뿐이라면 리유가 인간에 대해 훨씬 더 높은 기대와 야심을 가진 셈이 된다. 리유를 작가적 분신으로 내세운 카뮈는 대단한 야심가였다.

 

13. 07.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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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저자'도 마저 골라놓는다. 이번주엔 작가들로만 골랐다. 먼저 프랑스 작가 조르주 페렉. '조르주 페렉 선집'의 세번째 책으로 <잠자는 남자>(문학동네, 2013)가 출간됐다. <어느 미술애호가의 방>(문학동네, 2012)와 <인생 사용법>(문학동네, 2012)에 뒤이은 책이다.

 

 

<잠자는 남자>는 <인생 사용법>에 비하면 '애교스런' 분량으로 1967년작. "작가의 젊은 시절을 가늠하게 하는 사회학적 자전소설로, 이십대 중반 주인공 '너'의 파편화된 의식이 좇는 (반)의식 상태의 기행을 이인칭으로 풀어낸 독특한 소설이다. 1974년 베르나르 케이잔 감독과 공동 연출하여 당해 최고의 신진 영화인에게 수여되는 장 비고 상을 수상했다."

 

 

이로써 국내에 소개된 페렉의 책은 6종이 됐다(2종은 중복돼 나왔다). "20세기 후반 프랑스 문학을 대표하는" 실험적 작가의 대표작들을 한국어로도 읽을 수 있다는 사실, 이 생각하면 좀 놀랍기도 하다.

 

 

 

그만큼 놀라운 건 독일 작가 W. G. 제발트의 책들이 번역되고 있다는 점. 이번엔 <공중전과 문학>(문학동네, 2013)이 출간됐다. 국내에 소개된 네번째 책으로 소설이 아니라 문학론이다.

 

1997년 스위스 취리히 대학에서 진행했던 강연과 후기를 정리하여 묶은 '공중전과 문학', 강연 주제의 문학적 사례인 작가 논문 '알프레트 안더쉬'로 구성되어 있다. 두 텍스트를 관통하는 주제는 전쟁과 폭력 앞에서 입을 닫고 역사수정주의를 암묵적으로 지지했던 전후 독일문학에 대한 비판이다. 이미 전세가 기운 이차대전 말 영국군의 공습으로 희생된 수많은 독일인에 대해, 독일 국가와 문단 전체가 애도를 회피하고 과거를 수정하는 일에 몰두했다는 것이다. 그동안 누구도 꺼내지 못했던 민감한 주제를 담은 이 책은, 출간 당시 독일 사회의 격렬한 반응과 함께 이른바 '제발트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작가가 영국 대학에서 독일문학을 가르쳤던 독특한 처지에 있었기에 상대적으로 독일 문단에 대해 거리를 두는 게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제발트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수전 손택이 평도 그렇다.

섬세하고 농밀할 뿐만 아니라 사물의 물성에 통달한 듯한 제발트의 언어는 한마디로 경이로움 그 자체이다. (…) 제발트처럼 국외에서 영원히 거주한 독일 작가만이, 그렇게 설득력 있는 고상한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아무튼 아직 본격적으로 읽지는 않았지만 관련 연구서까지 모으게 만들 만큼 제발트는 뭔가를 기대하고 꿈꾸게 하는 작가다(내년쯤에는 강의에서도 다루고 싶다).

 

 

그리고 중견작가 김원우. 그의 장편소설 <부부의 초상>(강, 2013)이 출간됐다. 내가 읽은 건 산문집 <산책자의 눈길>(강, 2008)이 마지막이었던 듯한데, 그 사이에 <돌풍전후>(강, 2011)도 있었다(제목과 달리 '돌풍'을 일으키진 못했다). 이번에 나온 소설은 얼핏 <모노가미의 새 얼굴>(솔출판사, 1996)을 떠올리게 한다. 결혼 문제를 다룬 소설일 거라는 짐작 때문이다. 책은 <스크린 앞에서>란 단편과 <부부의 초상>이란 장편으로 구성돼 있는데, 두 작품은 연작이다. 작가의 일러두기에 따르면, "이 책의 내용은 철두절미하게 우리의 세태, 제도, 인심, 풍속 등을 지은이 나름의 안목대로 그럴싸하게 조감해본 조작물"이다. 소개는 이렇다.

전작 <돌풍전후> 이후 2년 반 만에 내놓는 김원우의 장편소설. 작가 김원우의 소설 문장은 흔히 만연체로 이야기되곤 하지만, 그 풍성한 어휘와 맛깔 나는 말의 리듬감은 세상살이의 입체를 한껏 부각하면서 소설만이 그려낼 수 있는 인간 진실의 조망을 실답게 성취한다. 씹으면 씹을수록 진미가 우러나오는 특유의 문체는 그 자체만으로도 김원우 문학의 인장으로 손색이 없다. 그런데 이번 장편 <부부의 초상>에서는 전작 <돌풍전후> 때보다도 더 적극적으로 사투리를 소설의 문체에 끌어들이고 있는데, 작품의 무대인 대구와 경북 일원의 사투리가 인물들의 대사는 물론이고 그쪽 대구의 신문사에서 문화부 기자로 일하다 퇴직한 소설 화자의 지문에까지 버젓이 올라 있는 형편이다.

그 만연체 문장을 읽어나가는 기분이 어떤지 궁금한 독자라면 무더위 속에서 잘근잘근 읽어나가도 좋겠다...

 

13. 07.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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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소개된 저자의 책 가운데 눈에 띄는 책을 고르는 '이주의 발견'이다. 이번 주에는 에스더 M. 스턴버그의 <공간이 마음을 살린다>(더퀘스트, 2013). 검색해보니 저자도 <내면의 균형>이란 책에 이어서 두번째 책인 듯하니 '신진 저자'다. 그럼에도 '신경건축학'이란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가고 있다고 소개된다. <공간이 마음을 살린다>는 바로 그 신경건축학의 문제의식과 적용을 보여주는 책이다. 원제 자체가 <힐링 스페이스>(원서의 표지가 번역본보다는 '힐링'에 충실하군).

 

 

사실 공간이 바뀌면 마음도 달라진다는 건 우리의 일상적 경험과도 부합한다. 신경건축학은 그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려는 것으로도 볼 수 있는데, 소개는 이렇다.

스턴버그는 지금껏 감각, 정서, 면역체계를 둘러싼 복잡한 관계들을 밝혀낸 심리학과 뇌과학, 의학 연구의 역사로 우리를 끌어들인다. 그 첫머리에 나오는 한 가지 예는 바로 ‘창밖으로 자연 경관이 내다보이는 병실의 환자들이 창밖으로 콘크리트 벽만 바라봤던 환자들보다 빨리 나았다’는 1980년대 연구다. 쾌적한 풍경이 보인다고 해서 어떻게 병이 빨리 나을 수 있었을까? 저자는 감각의 뇌과학적 경이로움을 보여주는 일련의 장소와 상황들을 탐색하며 이 질문의 답을 찾아나간다.

정재승 교수는 추천의 글에서 "공간과 건축이 인간의 사고와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측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더 나은 건축을 탐색하는 학문"을 신경건축학이라고 정의했다. 누구에게 도움이 되는 책일까. 역시나 정재승 교수의 견해에 따르면, (1)건축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경험과 직관, 관습으로 축적되어 온 건축학적 전통이 실제로 그 안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한 심리학적 연구 결과를 일러주며, 건축학이 좀더 '증거 중심의 학문'으로 나아가는 길을 모색하게 해준다. (2)신경과학을 탐구하는 이들에게: 이 책은 뇌에 대한 이해가 건축학이라는 경이로우면서도 중요한 분야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에 대한 놀라운 통찰을 제공해줄 것이다. (3)누구에게나: 이 책은 내 삶이 공간을 뇌와 마음, 힐링과 행복이라는 관점에서 다시 들여다보는 유익한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자연스레 궁금해진 건 한국인의 대표 주거공간인 아파트를 신경건축학적 관점에서는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마침 박철수의 <아파트>(마티, 2013)도 지난주에 출간됐다. 박해천의 <콘트리트 유토피아>(자음과모음, 2011), 발레리 줄레조의 <아파트 공화국>(후마니타스, 2007)과 함께 묶어서 읽어볼 만한 책. 저자는 아예 한국을 '아파트단지 공화국'이라고 일컫는다.

 

우리야 으레 아파트에 사는 걸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지만, 외국인들은 하나같이 기이하게 여긴다(대단위 아파트를 많이 지었던 사회주의 시절 러시아도 우리만큼은 아니다). 그들에게는 보통 도시의 독신자들이 주로 거주하는 공간, 정도가 아파트에 대한 인상인 듯하다(그러니 결혼한 사람들이 아파트라는 몰개성적 공간에 거주한다는 게 이상하게 보이는 것. 우리는 땅값이 비싸다는 걸 고려해야 할까). 아무튼 중요한 건 경제성이나 생활의 편이성이란 이유 말고, 신경건축학적으로도 아파트란 공간이 살 만한 곳인지, 한번 생각해볼 만하다는 것...

 

그런 생각을 아파트 15층에서 적는다. 지금이야 적응이 됐지만 오래전 아파트 14층에 살 때 처음 몇 달 동안 '공간 스트레스'에 시달렸던 기억도 문득 떠오른다. 공중에서 수감생활하는 기분이었다...

 

13. 07.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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