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다운 무더위가 이어지고 있다. 이 정도면 '열심'이라는 걸 인정해도 좋겠다. 지지부진한 독서를 만회하기 위해서 '이달의 읽을 만한 책'을 얼른 골라놓는다. 주중엔 따로 시간을 낼 수 없다는 사정도 고려해야 하지만, 이런 건 나도 꽤나 '열심'이다...

 

 

 

1. 문학   

 

김미현 교수가 추천한 책은 정유정의 <28>(은행나무, 2013)이다. 덧붙일 것도 없는 책이고, 지난달에 이미 꼽은 바 있기도 하다. 한국소설이라면 구병모의 <파과>(자음과모음, 2013)와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문학동네, 2013)도 자연스레 덧붙일 수 있을 것이다.

 

 

무더위와 겨룰 만한 소설을 더 고른다면 거물급 작가 마이클 코넬리의 <클로저>(알에이치코리아, 2013), 일본의 젊은 기대주 모리 아키마로의 <검정고양이의 산책 혹은 미학강의>(포레, 2013), 그리고 경찰청 근무 경력의 부부 작가 박하와 우주의 <나는 어제 나를 죽였다>(예담, 2013) 등을 연이어, 혹은 비교해가며 읽어도 좋겠다. 여름이니까.

 

 

 

2. 역사

 

김기덕 교수가 추천한 책은 고미숙의 <두개의 별 두개의 지도>(북드라망, 2013)이다. 다산과 연암의 라이벌 평전을 시도한 것으로 역시나 군말이 필요 없는 책. 박제가의 <북학의>(돌베개, 2013) 정본 번역본이 나온 김에 임용한의 <박제가, 욕망을 거세한 조선을 비웃다>(위즈덤하우스, 2012)까지 더 얹어도 좋겠다. 박제가의 라이벌은 누구였던가. 찾아보니 이덕무를 꼽기도 하는군...

 

 

 

3. 철학

 

박인철 교수가 고른 책은 데카르트의 <정념론>(문예출판사, 2013)이다. 현대과학적 시각에서 보면 소박한 면도 없지 않지만, "전반적으로 그 내용의 깊이나 통찰력으로 볼 때, 우리 현대인이 귀담아 들어야 할 부분이 적지 않다. 특히 몸과 관련지어 감정을 놀라울 만치 세밀하게 분석하고 있다는 점이 그렇다. 그런 점에서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과 관련한 논의로서 이 책은 하나의 의미 있는 고전으로 손꼽힐 만하다."는 평이다. 아울러 '지젝의 모든 것'을 압축한(?) <헤겔 레스토랑><라캉 카페>(새물결, 2013)도 이달에 씨름해볼 만한 책이다. 휴가비가 줄어든다는 부담은 있더라도...

 

 

 

어려운 책이 부담스러운 독자라면 최근에 나온 입문서들을 참고해도 좋을 듯한데, 로제 폴 드르와의 <처음 시작하는 철학>(시공사, 2013), 롤란트 W. 헹케 등의 <철학 입문>(북비, 2013), 나오미 잭의 <한 권으로 끝내는 철학>(작은책방, 2013) 등이 거기에 해당한다. 각각 프랑스와 독일, 그리고 미국에서 나온 교재용 책이다.  

 

 

 

4. 정치/사회

 

마인섭 교수가 추천한 책은 조지프 스티글리츠의 <불평등의 대가>(열린책들, 2013)다. 저명한 경제학자가 불평등의 값비싼 정치적 대가를 조목조목 설명하고 있는 책. 결론은 물론 우리가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샘 피지개티의 <부의 독점은 어떻게 무너지는가>(알키, 2013), 로버트 스키델스키와 에드워드 스키델스키 부자의 <얼마나 있어야 충분한가>(부키, 2013)도 나란히 읽어봄직하다. 

 

 

 

 

5. 경제/경영

 

김은섭 위원이 추천한 책은 셰릴 샌드버그의 <린 인>(와이즈베리, 2013)이다. 저자가 페이스북의 최고운영책임자이기도 해서 화제가 됐던 책. "여성이 사회 또는 조직에서 맞닥뜨리는 장애물과 편견의 원인은 무엇인지 자신과 주변의 경험을 담은 자기계발 성격이 강한 자서전"이다. 여성 자기계발서 범주에 속하는 책으로 피터 모들러의 <오만하게 제압하라>(리더스북, 2013), 앤 프란시스의 <딸들의 경영시대>(메디치미디어, 2013) 등도 눈에 띈다. 여성이 주름잡는 시대가 과연 올 것인가..

 

 

6. 과학

 

김웅서 위원이 고른 책은 브라이언 클레그의 <과학을 안다는 것>(엑스오북스, 2013)이다. "우리 몸은 과학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축소판 우주이다. 이 책은 사람 몸을 탐색하면서 그 속에 숨어있는 물리학, 화학, 생물학, 천문학 등 분야를 넘나드는 흥미로운 과학 이야기를 풀어간다. 뿐만 아니라 과거 인류의 진화로부터 최근 뇌과학까지 시간을 초월한 다양한 내용이 담겨있다." 우리 몸에 대한 과학으로 서울대 교수진의 교양강의를 묶은 <뇌, 약, 구, 체>(동아시아, 2013)도 같이 읽어볼 만하다. 청소년이 읽을 수 있는 수준이다. 더불어 우리 몸은 아니지만, 깃털에 관한 흥미로운 자연사로 소어 핸슨의 <깃털>(에이도스, 2013)도 놓치기 아까운 책이다.  

 

 

 

7. 예술

 

이주은 교수가 고른 책은 가오싱젠의 <창작에 대하여>(돌베개, 2013)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의 창작론. 그의 희곡도 <버스 정류장>(민음사, 2002)과 <피안>(연극과인간, 2008)이 소개돼 있다.

 

 

예술분야의 조금 전문적인 책으론 독일의 미술사학자 에르빈 파노프스키의 <시각예술의 의미>(한길사, 2013)이 최근에 나온 묵직한 책이다. <도상해석학 연구>(시공사, 2002)가 나온 게 벌써 10년도 더 전의 일이다.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그의 <인문주의 예술가 뒤러1,2>(한길아트, 2006)도 번역된 바 있다. 당장 장바구니에 넣어놓는다.

 

 

 

8. 교양

 

내가 고른 교양서는 소영현 등의 <감정의 인문학>(봄아필, 2013)이다. 추천사는 이렇게 적었다.

저자들은 열정과 분노, 슬픔과 공포, 위안과 기대, 그리고 평온과 광기에서 다양한 사회적 함의를 발견하고 감정의 역사성을 되짚는다. 감정의 젠더를 질문하고 감정의 계급성을 되새긴다. 이를 위해 영화와 드라마, 일상의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분석거리로 삼았다. 비단 감정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확장하는 데만 의의를 둔 책은 아니다. 거기서 더 나아간다. 감정에 대한 다양한 각도의 인문학적 성찰을 시도하면서 저자들은 인문학의 사회적 역할 또한 회복하고자 하는 속내를 감추지 않는다. ‘지금-여기’의 삶에 대해 인문학은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를 시범적으로 보여주고자 한다. 저자들의 표현으론 ‘함께 고민하는 인문학’의 한 사례다.

저자들은 연세대의 사회인문학 사업단의 연구교수로 재직중인데, 책은 감정에 대한 사회인문학적 성찰을 보여준다. 사회인문학 전반의 기획에 대해서는 <사회인문학이란 무엇인가?>(한길사, 2011)를 참고할 수 있다. 더불어 강추할 만한 이달의 교양서는 젊은 국문학 연구자들의 문제의식을 담은 <문학사 이후의 문학사>(푸른역사, 2013)다.

 

 

9. 실용

 

이계성 위원이 추천한 책은 서진석의 <좋은 아빠의 자격>(북라이프, 2013)이다. 두 아이를 키우며 습득한 노하우를 전수해주는 책. 아무리 그래도 좀 꺼려지는 분야의 책이다(이래저래 비교가 될 터이기에). 권오진의 <행복한 아빠학교>(행복한미래, 2013), 손석한의 <아이의 미래를 바꾸는 아빠의 대화혁명>(웅진주니어, 2006) 등이 같은 부류의 책이란 것 정도만 더 적어둔다.   

 

 

 

10. 하루키

 

나대로 고른 주제는 하루키다. 하루키 강의를 준비하면서 관련서들을 읽고 있는데, 가장 최근에 나온 걸로는 시바타 쇼지의 <무라카미 하루키 & 나쓰메 소세키 다시 읽기>(늘품, 2013)이 유익하다(무국적 작가로 불리던 하루키를 소세키와 함께 일본의 대표적 국민작가로 재평가하는 것이 책의 포인트이다). 하루키 번역자이기도 한 제이 루빈의 <하루키 문학은 언어의 음악이다>(문학사상사, 2003)은 아직까지도 영어권에서 나온 가장 좋은 입문서일 듯한데, 원서도 개정판이 나온 만큼 번역도 개정판이 나오면 좋겠다. 고모리 요이치의 <무라카미 하루키론>(고려대출판부, 2007)은 <해변의 카프카>에 대한 정밀한 독해이면서 가장 비판적인 하루키론이다.  

 

13. 08. 04.

 

 

 

P.S. '8월의 읽을 만한 고전'으로는 이번에 정암학당 번역판이 나온 플라톤의 <파이돈>을 고른다.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죽음 장면을 다룬 대화편으로 영혼불멸 사상을 주제로 하고 있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이라는 엄중한 극적 상황을 배경으로 선택함으로써, 플라톤은 소크라테스가 행한 것들과 이야기한 것들에 특별한 중요성과 무게를 부여하고 있다. <파이돈>은 플라톤이 전하는 소크라테스의 백조의 노래인 것이다." 이미 나와 있는 번역본들과 비교해가며 읽어보는 것도 독서의 즐거움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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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한겨레의 '로쟈의 번역서 읽기'를 옮겨놓는다. 안드레이 플라토노프의 <체벤구르>(을유문화사, 2013)에 대한 간략한 독후감을 적었다.

 

 

한겨레(13. 08. 05) 공산주의 마을을 누가 파괴했을까

 

‘소비에트 유토피아문학의 정수’로 소개됐지만 안드레이 플라토노프의 <체벤구르>(1928)는 소련에서 거의 부재했던 작품이다.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개혁) 분위기를 타고 정식으로 출간된 게 1988년이기 때문이다. 이해에는 역시나 금서였던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도 출간돼 러시아 독자들과 만났다. <닥터 지바고>의 경우, 러시아혁명에 대한 불신과 회의를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인 만큼 소련에서 공식 출간되지 않은 것이 충분히 이해가 된다. 우리에겐 ‘반공문학’으로 읽히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누구보다도 사회주의 이념에 헌신적이었던 철도노동자 출신 작가의 대표작은 어째서 금지됐던 것일까.

 

전체 3부로 구성된 장편 <체벤구르>의 주인공은 사샤 드바노프이다. 어부였던 그의 아버지는 죽음이 무엇인지 너무 궁금해서 두 발을 밧줄로 묶고 호수에 몸을 던졌다가 죽었다. 죽음을 마치 여느 마을에 마실을 가는 것처럼 생각했던 것이다. 사샤는 아이들이 많은 드바노프 집안에 입양되지만 끼니를 제대로 이을 수 없는 가난 때문에 구걸에까지 나선다. 방랑자이자 기계공인 자하르 파블로비치가 그를 양자로 거두며, 혁명이 일어나자 두 사람은 당원이 된다.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도록 볼셰비키는 텅 빈 심장을 가져야 한다는 양아버지의 교훈을 품고서 사샤는 당의 명령에 따라 진정한 공산주의 마을을 찾아 떠난다. 당과 무관하게 자생적인 혁명이 일어나 공산주의를 건설한 마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로자 룩셈부르크의 무덤을 찾아가는 순례자 코푠킨이 사샤의 동행이 돼준다.

 

두 사람은 순례 길에서 마을 사람들 모두가 유명인의 이름으로 개명한 마을도 거쳐 간다. 혁명 이후의 삶은 그 이전과는 다른 삶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이들은 ‘표도르 도스토옙스키’가 되고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됐다. 그리고 무엇이 새로운 완벽한 삶인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하지만 사회주의가 무엇이고 어떻게 건설해야 할지는 알지 못했다. 예컨대 ‘도스토옙스키’는 사회주의를 좋은 사람들의 모임 같을 걸로 생각했을 뿐이어서 필요한 물건이나 건물에 대해서 무지했다. 사샤와 코푠킨이 도착하게 되는 공산주의 마을 체벤구르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렇지만 부르주아를 몰아내고 스스로의 힘으로 건설한 이 공산주의 유토피아에서는 태양도 이전보다는 더 열심히 일할 거라고 사람들은 믿었다. 이들의 ‘낙원’은 얼마나 보존될 수 있을까. 소설의 결말에서 체벤구르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외부 군대의 공격을 받고서 파괴된다. 코푠킨을 포함해 동지들이 모두 살해당하고 사샤만이 홀로 살아남아 고향으로 돌아온다. 사샤는 언젠가 아버지가 몸을 던졌던 호수로 걸어들어간다.

 

 

비극적으로 보이는 결말은 사회주의에 대한 플라토노프의 지극한 염려를 반영하는 듯이 보인다. 궁금한 것은 ‘외부 군대’의 정체를 작가가 어째서 모호하게 했을까 하는 점이다. 당시로서 적은 혁명군(적위군)이거나 반혁명군(백위군)일 수밖에 없다. 체벤구르가 반혁명군에 의해 파괴되는 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모호하게 처리할 이유도 없어 보인다. 혹 플라토노프는 다른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닐까. 이상적 공산주의 마을은 자본주의뿐 아니라 현실사회주의로서도 감당하기 어려웠던 것이 아닐까. 현실사회주의를 ‘현실과 타협한 사회주의’로 이해하게 되면 억측은 아닐지도 모른다.

 

13. 08.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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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달에 슬라보예 지젝이 방한한다는 소식은 전했다. 최근에 나온 <말과 활>(창간호)에 실린 지젝의 기고문도 일부 옮겨놓은 적이 있는데, 9월 둘째주에 이에 대해 강의를 하게 될 듯하다(알라딘에 조만간 공지가 뜰 것이다). 주저 <헤겔 레스토랑><라캉 카페>가 나오면서(번역서 제목은 타이핑할 때마다 묘한 웃음이 나오게 만든다) 관련기사도 계속 나오고 있는데, 중앙일보의 인터뷰기사를 옮겨놓는다. 

 

 

헤겔과 마르크스, 라캉을 접목해 자신만의 이론체계를 구축한 것으로 유명한 지젝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사상가 중 한 사람이다. 실천적 철학자이면서 ‘문화이론의 엘비스’라 불릴 만큼 인기도 높다. 난해한 이론 전개로도 유명하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29일, 미국의 사상가 노엄 촘스키(MIT 교수)가 “지젝이 얘기하는 것은 무슨 말인지 하나도 이해못하겠다”고 꼬집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인기높은 그를 e-메일로 만났다.(이은주 기자)

-엄청난 분량의 책이다. 정치 팜플렛 같고, 철학적 논고를 담고 있는가 하면 문화 평론으로 읽히기도 한다.

 

“20~30년 동안 꿈꿔온 ‘필생의 역작’(opus magnum)이다. 이 두꺼운 책이 영어권에서만 1만부가 팔리고 현재 10여 개국에서 번역되고 있다. 특히 영어 이외의 언어로 번역돼 출간된 것은 한국이 처음이다. 그동안 어둠 속에 있던 헤겔을 다시 조명하고, 지금 한참 유행하고 있는 라캉의 전혀 새로운 얼굴을 하나로 결합시켰다는 점이 가장 뿌듯하다.”

-왜 헤겔인가.
“헤겔은 읽으면 읽을수록 경이로운 사상가다. 그는 대학생 때 프랑스 혁명을 대환영했다. 그러나 혁명은 곧 공포정치로 변질됐다. 그래도 그는 자유 이념이 역사의 종언을 향해 가리라는데 희망을 걸었다. 하지만 그것은 프로이센의 군주제와 관료주의로 귀결되고 말았다. 어디서 많이 들어보던 이야기 아닌가? 헤겔은 21세기라는 ‘우리 시대의 아들’이다.”

21세기 지구촌의 현실이 헤겔이 마주했던 역사적·정치적 상황과 너무도 흡사하다는 의미다. 그는 이번에 ‘무(無) 이하인 것(Less Than Nothing)’이라는 개념에 천착했다. 이는 ‘있음’과 ‘없음’이라는 이분법적인 도식을 넘어선다. 책에서 그는 셜록 홈즈와 경찰서장의 대화를 인용했다. “제가 주목해야 할 점이 있습니까?” “그렇소. 그날 밤 개의 이상한 행동을 놓치지 마시오.” “그날 밤 개는 전혀 짖지 않았는데요.” “그게 바로 이상한 행동이오.” ‘없음’은 아무것도 없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없는 것이지만 오히려 그것으로부터 어떤 것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진보적 사유’하면 흔히 마르크스를 든다. 그런데 당신은 헤겔의 복권에 무게를 뒀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마르크스’는.

“기준은 우리 시대가 당면한 지적 과제를 해결하는데 마르크스나 헤겔이 얼마나 도움이 되는가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헤겔이, 그리고 ‘헤겔의 반복으로서의 라캉’이 우리 시대의 교착 상태를 극복할 수 있는 핵심적인 아이디어를 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는 책에서 마르크스야말로 헤겔을 오해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헤겔의 많은 부분이 유물론적인 반면 마르크스의 많은 부분이 관념론적인 것으로 드러났다”고 했다. 마르크스는 국가를 폐지한 사회주의를 제창했으나 전체주의 등 국가에 의한 폭력으로 진보주의가 좌절했다는 것이다. 반면 헤겔은 여전히 국가를 최고의 해결책으로 고민했다고 강조한다. 지젝은 “오늘날 가장 서둘러야 하는 과제는 국가가 금융 부분을 효율적으로 통제하는 것”이라고 했다.

-한국에서는 보수와 진보에 관한 논쟁이 뜨겁다. 당신이 보기에 ‘진보적인 것’의 기준은.

“‘보수’와 ‘진보’라는 말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달려있는 것 같다. 그리고 여기에 헤겔이 가르치는 대로 개념은 시대정신 속에 살아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오늘날 자본가들은 경제적으로 최고의 혁신가이지만 동시에 정치적으로는 보수적이다. 또 중국의 정치가들은 이념적으로는 사회주의를 옹호하지만 가장 뛰어난 ‘자본가’(이 말을 여러 가지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이기도 하다. 진보와 보수는 한 사람에게도 공존하는 등 일종의 아이러니 속에 있는 것이다.”

지젝은 9월 24~29일 한국을 찾는다. 경희대 특강, 세계적인 철학자 알랭 바디우 등과 함께 하는 학술대회 참석 등이 예정돼 있다. 그는 “한국은 놀랍지 않은 부분이 하나도 없다고 해야 할 정도로 경이롭고 신비한 나라”라며 “분단 등 정치적 상황도 흥미롭고, 눈부신 경제 성장이나 영화 분야에서의 활약도 놀랍다”고 말했다.

 

<헤겔 레스토랑>에 대한 포스팅은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아주 금욕적으로 읽고 있다. 이번주에는 기사 인용으로 포스팅을 대신한다...

 

13. 08.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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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엔 덥다'고 생각하는 편이지만, 꽤나 무더운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특별한 신조가 있어서가 아니라 설치할 공간이 없어서(벽마다 책장이다) 에어컨을 달지 않은 탓에 선풍기 바람으로 꿋꿋하게 버텨야 하는데, 아무래도 독서의 효율은 떨어진다. 독서실을 끊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 돼 잠시 아이스커피 한잔으로 정신을 가다듬다가 '이주의 발견'을 적는다. 몇권의 후보가 있었는데, 더 뒤적거릴 여유도 없어서 눈에 띄는 책을 책상맡에 갖다놓았다. 도널드 프레지오시 편저의 <꼭 읽어야 할 예술이론과 비평 40선>(미진사, 2013). '21세기를 위한 미술사 입문서'라는 건 이 책에 대한 로버트 로젠블럼(뉴욕대 교수)의 평이다.

 

 

제목 그대로 예술이론과 비평 40편을 모아놓은 것으로 미술비평이나 미술사 전공자들의 교재용 책이다. 관련 전공학생들이 학부나 대학원 과정에서 읽어나가는 용도이고, 원저는 옥스포드대학출판부에서 나왔다. 편저자도 나름 명망가이고(그래서 원서를 주문하면서 그의 책도 하나 더 주문했다), 번역은 홍대 미술대학 예술과 교수와 제자들이 맡았다.

 

개인적으로는 '꼭 읽어야 할', 이런 말이 들어간 제목을 싫어하기에, 번역본의 제목은 좀 유감스럽긴 하다. 원저의 제목처럼 <미술사의 기술> 정도로 가거나 <예술이론과 비평 40선> 정도가 좋았겠다. 이 책의 독자가 초등학생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 인명에 대해서 역자는 E. Gombrich의 국내 통용 표기인 '곰브리치' 대신에 '곰브릭'이라고 옮겼다. 국내에서는 '곰브리히'로 관례적으로 사용하지만 해외에서 '곰브릭'으로 불린다는 게 이유다(그런 식이면 '언스트 곰브릭'이 돼야 할 것 같은데, 그건 또 '에른스트 곰브릭'이다. '곰브리히'는 출처가 또 어디인지?). 그런 이유라면 '플라톤'도 '플레이토'라고 불러야 하는 것 아닌가. "내가 밖에 나가 보니 이렇게 부르더라"는 거밖에 안 된다. 굳어진 고유명사는 '한국어'란 인식이 필요하다(선집까지 나오고 있어도 '벤야민'을 '베냐민'으로 표기하는 방식에 내가 동의하지 않는 이유다).

 

곰브리치가 재직했던 런던의 '바르부르크연구소'도 독일 태생의 바르부르크(A. Warburg)를 영국에선 '워버그'라고 부른다는 이유로 '워버그연구소'가 됐다. 내가 유감을 가질 건 아니고, 명칭 문제는 전공자들이 알아서 합의를 보면 좋겠다.

 

 

 

디테일한 면에서는 불만스럽지만, 여하튼 이런 앤솔로지를 나는 좋아하는 편이다. 아직도 '대학원' 감각을 갖고 있어서인가 보다. 제이 에멀링의 <20세기 현대예술이론>(미진사, 2013)과 <새로운 미술사를 위한 비평용어 31>(아트북스, 2006)도 원서와 함께 구비해놓았었다. 거기에 조나단 해리스의 <신미술사? 비판적 미술사!>(경성대출판부, 2004)까지. 나름대로 대학원 수준의 이론공부를 할 준비는 다 돼 있다. 그게 가능한 건 이론이 통분야적이기 때문이다. 곧 문학이론이나 영화이론, 미술이론이 따로 분리되지 않는다. 일례로 푸코의 '작가란 무엇인가'나 벤야민의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은 <꼭 읽어야 할 예술이론과 비평 40선>에도 수록돼 있다.

 

책 이사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그러니까 당분간은) 체계적인 독서가 어렵겠지만, 언젠가 좀 여유를 갖고서 '40선'에 대한 독서를 해나가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더위를 먹어서 하는 소리가 아니다... 

 

13. 08.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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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저자'를 골라놓는다. 경합자가 많지는 않았다. 먼저 1978년 흑인 최초로 퓰리처상 소설상을 수상한 작가 제임스 앨런 맥퍼슨의 작품집 두 권이 번역돼 나왔다(이전에 나온 앤솔로지 <직업의 광채>에도 그의 단편 '닥터를 위한 솔로 송'이 수록돼 있다). <외치는 소리>(마음산책, 2013)와 <행동반경>(마음산책, 2013). 

 

 

<외치는 소리>는 1968년에 발표된 첫 단편집이고, <행동반경>은 퓰리처상 수상작으로 1977년에 발표됐다. <행동반경>의 소개를 보면, "<행동반경>은 성격과 태도가 다양한 흑인을 등장시켜 획일화된 인종적 편견을 무너뜨린다. 등장인물들이 겪는 문제는 위선, 배신, 기만, 질투, 수치, 우월감 등에서 촉발된 것이기에 흑인만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인종적, 사회적, 문화적 차이로 다른 신념들과 부대껴야 하는 그들의 혼란과 태도는 인간의 본질에 맞닿아 있다. 인종과 가치 들이 혼재하는 미국에서의 삶이란 편견과 충돌과 혼란을 껴안아야 하는 것임을, 인종보다는 인간적 고민이 뒤따르는 것임을 12편의 사실적인 이야기로 보여준다."

 

 

제임스 앨런 맥퍼슨의 작품 세계에 대해 서울대 영문과 김성곤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퓰리처상 수상작가 제임스 앨런 맥퍼슨은 흑인 작가지만 인종차별 문제보다는 인종적, 사회적, 문화적 이유로 주위와 단절된 채 살고 있는 미국 소수인들의 심리적 애환과 고립을 오 헨리식 위트와 마크 트웨인식의 유머로 그려냄으로써 미국 흑인 문학의 새로운 길을 열었다. 맥퍼슨의 주인공들은 모두 랠프 엘리슨의 소설 제목처럼 미국의 주류 문화에서는 ‘보이지 않는 인간’이면서, 동시에 트웨인의 헉 핀처럼 미국의 관습과 제도로부터 자유로운 방랑아들이다. 그들의 소외된 삶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맥퍼슨은 휴머니티를 상실한 현대사회의 우울한 풍경을 예술적·우회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종래의 사회저항소설과는 다른, 새로운 문화저항소설인 이 작품을 한국 독자들에게 강력하게 추천한다.

 

두번째 저자는 작년부터 소개되고 있는 프랑스의 사회학자 가브리엘 타르드다. "가브리엘 타르드는 에밀 뒤르케임과 더불어 19세기 말 프랑스 사회학계를 대표한 사상가였지만, 사후 오랫동안 잊혔다. 1960년대 말 철학자 질 들뢰즈가 ‘미시사회학의 창시자’로 재평가하면서 다시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는 소개가 말해주듯이 프랑스에서도 재발견, 재조명되고 있는 학자.

 

 

이번에 나온 <사회법칙>(아카넷, 2013)은 1897년의 강의를 담은 책으로 "타르드 자신이 쓴 ‘타르드 사회학’과 사회사상의 해설서"이다. 타르드 사회학 입문서라고 해도 좋겠다.

 

  


그리고 정치인 심상정. <실패로부터 배운다는 것>(웅진지식하우스, 2013)이 출간됐다. 진보정치의 대명사였던 저자가 지난 10년을 회고하며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지킬 것인가'를 정리한다. 소개는 이렇다.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누구나 인정하는 정치인 심상정. 그는 오늘의 한국을 만든 ‘일하는 이들’과 함께 25년 동안 노동운동을 해왔으며,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1번으로 국회에 들어간 이후 한국 진보 정치의 가장 뜨거운 국면마다 한복판에 서 있었다. 그런 그가 지난 10여 년의 진보 정치를 돌아보며, 진보를 둘러싼 숱한 편견, 오해, 한계에 대해 놀랍도록 솔직하게 대답한다. 그와 함께 진보의 실패와 성공의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정치의 본질, 진보의 존재 이유, 한국의 시민들이 가져야 하는 긍지, 그리고 우리가 포기해서는 안 되는 원칙과 희망을 깨닫게 된다. 무엇보다 이 책은 앞으로 부상할 한국 사회의 주요 의제들을 짚어내고 있다.

한국의 현실정치와 진보정치를 고민하는 독자라면 박원순, 오연호의 대담집 <정치의 즐거움>(오마이북, 2013)과 함께 필독해볼 만하다...

 

13. 08.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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