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에 실린 북리뷰를 옮겨놓는다. 이번주에 나온 브룩 원렌스키 랜포드의 <에덴 추적자들>(푸른지식, 2013)이 리뷰감이었다. 창세기에 등장하는 에덴이 어디에 있는지 설명하려고 했던 여러 학자, 지식인, 혁명가 등을 소개하고 있는 책으로 광범위한 자료조사와 재기 넘치는 필체가 결합된 수준 있는 논픽션이다.

 

  

 

중앙일보(13. 09. 28) 에덴은 있다! 낙원을 향한 그들의 열망

 

이 책은 창세기에 나오는 에덴이 실재한다고 믿고 찾아 나선 각양각색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논픽션이다. 책을 읽다가 에덴동산에 대한 ‘상식’은 뭔지 궁금했다. 마침 최근에 나온 크리스틴 스웬슨의 『가장 오래된 교양』이 생각나 펼쳐봤다. 하나님이 아담과 이브를 창조했다는 에덴이 지구 어디에 있었는지는 예로부터 적잖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 중 일부의 사람들은 발 벗고 찾아 나서기까지 했다. 바로 ‘에덴 추적자들’이다.

 



하지만 우리가 GPS로 찾을 수 있는 어떤 장소가 아닌 이상 에덴의 위치에 대해선 정확히 알기 어렵다. 『가장 오래된 교양』의 저자는 그럼에도 “성서 본문에 있는 잘 알려진 지명들을 근거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에덴이 오늘의 이라크에 있었다고 믿는다.”

‘에덴 추적자들’은 그 정도 추정에는 만족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일단 창세기의 묘사가 구체적이면서도 모호하다. “에덴에서 강 하나가 흘러나와 그 동산을 적신 다음 네 줄기로 갈라졌다”라며 네 강줄기의 이름으로 비손과 기혼, 티그리스, 유프라테스를 차례로 거명한다. 오늘날에도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은 터키에서 시작해 이라크를 지나 페르시아만으로 흘러 들어간다. 문제는 오늘날엔 존재하지 않는 비손강과 기혼강이 어디에 있었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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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크게 두 파가 나뉜다.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을 기준으로 삼는 사람들은 기혼강과 비손강도 그 근처에 있다고 믿는다. 강이 아니라 샘이나 운하가 아니었을까 추정하는 사람도 있다. 반면 비손강과 기혼강에 더 초점을 맞추는 사람들은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강 이름도 바뀌었을 것이기에 성서에 나오는 이름에 집착하면 안 된다고 본다. 창세기에 나오는 강 이름이 그저 ‘세상에서 가장 큰 네 강’을 가리킬 뿐이라는 1세기 로마시대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의 말을 좇게 되면 에덴은 반드시 중동에 있을 필요가 없다.

비손강은 갠지스강으로, 기혼강은 나일강으로 이름이 바뀌었을 수도 있다면, 에덴은 말 그대로 지상 어딘가에 있는 곳이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심지어 에덴이 실제 장소일 수도 있고 은유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난감한 일이지만 에덴은 우리 마음속에 있다는 말로도 들린다.

이런 에덴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많은 흥미로운 사례 가운데 저자는 감리교 목사이면서 보스턴대 학장이었던 윌리엄 워런을 먼저 소개한다. 1859년 다윈의 진화론이 등장하면서 독실한 기독교인들은 인간이 원숭이와 다를 바 없다는 충격적인 주장에 맞서고자 각오를 단단히 한다. 강연 때마다 서두에 “혹시라도 모인 사람 중에 자신을 동물이라고 믿는 사람이 있다면, 그 동물이 사람이 될 때까지 토론을 미루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일침을 놓던 워런도 그런 투사였다. 비교신화학을 전공했지만 진화론자들을 개종시키기 위해 워런은 과학의 언어를 배워서 창세기의 내용을 입증하고자 했다.

그가 주장한 에덴 후보지는 북극이었다. 당시 북극은 탐험가들의 손길이 닿지 않아 아직 미지의 지역이었고 워런의 ‘에덴 북극설’은 대중의 북극 환상에 편승한 것이기도 했다. 그가 1985년에 펴낸 『낙원을 찾다!』에는 북극을 중심에 놓은 고대 세계의 지도까지 수록했고 많은 독자들이 그에게 지지를 보냈다. 하지만 북극이 정복되고 북극 열병이 사그라지면서 그의 에덴 북극설도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졌다.

워런보다 좀더 신빙성 있는 주장을 내놓은 학자들도 물론 있었다. 『낙원을 찾다!』에 추천서를 써주기도 한 영국 옥스퍼드의 아시리아학 교수 아치볼드 세이스도 그 중 한 명이다. 어학에 탁월한 재능이 있었던 그는 고대 바빌로니아의 쐐기문자에 대한 독해를 바탕으로 에덴이 ‘좋음’이란 뜻의 고대 도시 에리두 근처에 세워진 동산으로 추정했다.

플랜테이션 농장 비슷한 곳으로 농장 가운데 특별한 나무가 있었다고 하며, 세이스는 이에 근거해 성서에 나오는 지식의 나무는 소나무, 생명의 나무는 야자과식물이라고 주장했다. 기혼강과 비손강은 고대의 인공 운하였을 거라는 게 그의 견해다. 그는 노아의 홍수가 실제로 있었던 재앙이며, 에덴동산 이야기도 사실에 근거한 이야기로 믿었다.

에덴 찾기는 기본적으로 진화론과 과학의 도전에 맞서 신의 창조론을 방어를 위한 성격을 띤다. 1991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47%가 여전히 지구와 사람을 신께서 아주 특별하게 창조했다고 믿는다. 그들에게 창세기에 대한 문자 그대로의 믿음은 신앙의 지표다. 창조론과 진화론의 대립 속에서 화해를 모색한 한 과학교사의 말은 왜 여전히 에덴이 관심사가 되고 있는지 시사해준다.

진화론을 안 믿는다는 건 지구가 편평하다고 믿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하지만 동시에 그는 신앙이 아이들을 망치는 게 아니라 삶에 아름다움을 더해준다고 믿는다. 과학과 신앙 사이에서 머뭇거리는 독자들에게 흥미진진한 이야기들과 함께 사색의 정원으로 인도하는 책이다. 아, 파라다이스란 말은 원래 페르시아어로 담이 둘러진 정원을 뜻한다고 한다.

 

13. 09. 28.

 

 

P.S. 에덴에 대한 가장 자세하면서도 강력한 문학적 묘사는 물론 밀턴의 <실낙원>에서 읽을 수 있다. 조신권, 이창배 교수의 번역본이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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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한중인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의 출세작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새물결, 2013)이 다시 나왔다.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인간사랑, 2002)으로 나왔던 첫 번역판이 원래의 제목을 찾아서 나온 것이라 더 반갑다(새물결은 현재까지 지젝의 첫 저작과 마지막 저작 번역본을 보유하게 됐다).

 

 

사실 인간사랑판이 절판된 뒤로 '품귀본'이 돼 중고가가 65000원까지 치솟았지만(현재 알라딘에 올라와 있는 중고판이 그렇다) 더 온전한 새 번역본을 훨씬 저렴하게 구할 수 있게 됐다(초판 번역본의 오류들도 시정됐을 것이다). 소개는 이렇게 돼 있다.

슬라보예 지젝의 1989년 저작으로 그의 처녀작이라고 할 수 있다. 현상 속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실천가로서 그는 난해하다는 이유로 일반인들에게는 자칫 추상적인 개념들의 집합으로 비춰질 수 있는 라캉의 이론을 현실과 맞닿은 지점까지 끌어들인다. 소수를 위한 전문이론인 정신분석학이 영화나 대중소설 등의 대중문화와의 만남을 통해 훨씬 더 구체적으로 다가오게 되는 것이다. 그는 단순히 라캉을 소개하는 위치를 넘어서서 라캉의 목소리를 통해서 자신의 얘기를 전하는 데 비상한 능력이 있는 듯하다. 이 책은 라캉에 대한 해설서가 아니라 라캉에 관한 기존의 관점을 갱신하기 위한 출사표와도 같다. 지젝 자신이 서론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통상 포스트 구조주의자의 범주 속에 포함되는 라캉을 구출하는 동시에 독자로 하여금 그의 이론에 올바로 입문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는 것이 이 책의 목표다.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은 국내에서는 <삐딱하게 보기>로 처음 소개된 지젝의 본격적인 철학서로는 처음 소개된 책이기도 해서 재출간의 의미가 여러 모로 깊다. 책이 나오고 2003년에 처음 방한했던 지젝은 올해 세번째로 한국을 찾았고, 그에 대한 수용과 이해 수준도 그간에 한층 높아졌다. 그렇게 높아진 시선으로 다시 읽어볼 만하다. 개인적으로는 강의가 가능한 수준으로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을 독파하는 것이 재독의 목표이다. 겸사겸사 새 번역본을 계기로 더 많은 독자들이 지젝과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13. 09. 27.

 

 

P.S. 지젝과 함께 방한중인 알랭 바디우의 주저 <존재와 사건1>(새물결, 2013)도 곧 나오는지 예판에 들어갔다. 전체의 절반인지 아니면 1/3 정도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비로소 본격적인 바디우 읽기의 여건도 마련되는 셈. 읽다가 만 제이슨 바커의 <알랭 바디우 비판적 입문>(이후, 2009)도 다시 손 닿는 곳으로 옮겨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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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차례 방한이 무산됐던(건강상의 이유라고 들었다) 알랭 바디우가 드디어 한국을 찾았다. '공산주의 이념' 컨퍼런스(멈춰라, 생각하라)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엊그제 지젝 인터뷰와 마찬가지로 경향신문에 게재된 '동행 인터뷰'를 옮겨놓는다(전문은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9262206405&code=960201 참조). 인터뷰어는 제자이기도 한 서용순 영남대 학술교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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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용순=한국은 현재 상당히 발전한 자본주의 국가지만 사람들의 삶은 힘들다. 한국 젊은이들은 일자리를 찾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노동자들은 정말 열심히 일한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인들은 정치적으로 무기력하기 짝이 없다. 1980~1990년대에 활발했던 정치적 투쟁의 열기도 거의 사라졌다.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세계적인 수준에서 심화되고 있는 이런 탈정치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바디우=정치적 상황이 좋지 않은 것은 전 세계가 마찬가지라고 본다. 한국에서 정치적 투쟁이 활발했던 것은 1980~1990년대였고, 프랑스에서는 1960~1970년대였다. 탈정치화는 다른 여러 곳에서 비슷하게 관찰되는 현상이다. 발전된 자본주의 나라들에서 공통적으로 벌어지는 현상이다.

서용순=다른 원인도 있겠지만, 그런 종류의 무기력은 제도적 정치에 원인이 있는 것 같다. 의회민주주의는 무엇보다도 선거를 통해 그런 무기력을 조장한다. 당신은 선거라는 제도의 부정적인 측면을 계속 강조한다. 선거는 어떤 점에서 부정적인가.

바디우=선거는 기존의 경제적·사회적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절차다. 선거를 통해서는 정치 정당들의 정권 교체가 이뤄질 뿐이다. 미국에서는 공화당과 민주당 사이에, 프랑스에서는 좌파 정당과 우파 정당 사이에 교체가 일어난다. 그들과는 다른 정치적 전통을 지닌 한국에서는 양상이 좀 다르겠지만 대체로 그런 식이다. 정권 교체는 철저히 평화적이어서 사람들이 여기에 완전히 동의한다고 전제한다. 실제 의회주의에서 권좌에 오른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기존 정치적·사회적 시스템을 보존해야 한다는 데 동의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점에서 투표를 하는 것은 우리 역시 그런 합의에 따른다고 말하는 방식일 뿐이다. 그렇다고 내가 선거를 단순히 자본주의에 가장 잘 들어맞는 정치적·국가적인 조직 양식이라고 말하려는 건 아니다. 레닌은 민주주의가 하나의 국가 형식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민주주의를 통해 가치와 이념을 만들어내려고 시도하지만, 민주주의의 운영이 우선시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의회민주주의는 발전된 자본주의 나라들의 국가 형식이다. 그러므로 발전된 자본주의에 대한 지지는 곧 선거에 대한 지지다. 자본주의와 선거는 항상 함께 간다.

서용순=이런 상황을 극복하는 진정한 정치, 해방의 정치가 가능하다고 보는가.

바디우=그런 정치가 가능한지, 가능하지 않은지를 아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런 정치를 우리가 원하고 있느냐이다. 그 다음에 역사적 상황이나 세계 속에서의 관계 등이 관건이 된다. 그러나 다른 정치가 있어야 한다는 원칙을 단지 그런 정치가 어렵다는 이유로 포기해서는 안된다. 물론 어렵다.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그 정치가 더 쉬운 순간들과 더 어려운 순간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치가 가능한 것에 매달려서는 안된다는 게 내 입장이다. 가능한 것만 생각한다면 우리는 의회정치밖에 할 수 없다. 유일하게 가능하다고 여겨지는 게 의회정치이기 때문이다. 정치를 위해서는 우선 여러 가지 원칙들이 지켜져야 하고, 그 다음에는 구체적인 상황에서의 창안이 필요하다.

서용순=당신은 오래전부터 ‘공산주의’의 전망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것은 이전의 여러 사회주의 국가에서 주장했던 공산주의와는 완전히 다른 어떤 것이다. 새로운 공산주의가 전제하는 것은 무엇인가.

 

 

 

바디우=공산주의는 19세기 유럽에서 나온 이념이다. 원칙적으로 이 이념은 사적소유 또는 자본주의의 지배와는 다른 방식으로 사회를 재조직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 이념은 평등한 사회, 여러 가지 문제를 공동으로 결정하는 사회가 가능하다는 이념이었다. 이것이 공산주의의 원칙이다. 그 다음에 실제로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역사적 경험이 있다. 이 경험에서 대단히 심각한 오류 역시 나왔다. 인류 역사 전체에 비추어 공산주의 이념의 역사는 정말 짧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실제 몇 십년밖에 안되고 최대한으로 잡아도 150년이다. 결국 우리는 공산주의 이념을 실험하는 단계에 있는 것이다. 20세기를 관통하는 것은 국가 권력과 연결된 공산주의, 국가를 통해 실현되는 공산주의의 관념이었다. 그것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그 경험의 결과를 고려하면서 그 이념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

서용순=한국에서 사람들은 공산주의라는 말을 들으면 과거 사회주의 국가들을 떠올린다.

바디우=왜냐하면 이른바 인민민주주의를 표방했던 이 국가들을 이끌었던 것은 공산당이라는 이름을 가진 정당이었기 때문이다. 그 당은 20세기 공산주의와 관련된 어떤 것을 실현하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공산주의의 문제는 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운동의 문제다. 이 국가는 파산했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 국가가 공산주의 운동을 지지하고 조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후 이 국가들은 아주 빠르게 보수적인 국가가 됐다. 그들은 사회적·경제적 형식을 지키려 했지만, 공산주의 운동은 그것에 활기를 불어넣지 못했다. 결국 공산주의 이념의 완전한 실패였다. 20세기 사회주의 국가들은 스스로를 공산주의 체제라고 말하지도 않았다. 그들이 표방한 것은 사회주의 국가였고, 그 국가의 성격은 공산주의를 향해 나아가는 중간 단계의 국가였다. 실제로 소련과 중국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들에는 공산주의가 없었다. 국가권력을 장악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공산주의적 운동은 완전히 사라졌다.

서용순=당신에게 북한과 같은 국가는 이러한 공산주의의 전망과는 아무 관계가 없을 것 같다.

바디우=그런 질문은 한국에서 어쩌면 당연한 것이라는 점을 아주 잘 이해한다. 내가 말하는 공산주의는 북한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게다가 나는 북한이 현재 공산주의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고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서용순=얼마 전 그들은 공산주의라는 말을 아예 강령에서 지웠다. 그들에게 공산주의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바디우=그랬나? 그럴 줄 알았다. 북한은 공산주의와 아무 관계가 없는 나라였다. 나아가 지금은 그들 스스로도 공산주의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북한은 민족주의 국가, 군국주의 국가이다. 그것은 명백하다. 한국에 온 김에 확실히 선언하겠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은 북한과 그 어떤 종류의 관계도 없다.

서용순=세계를 돌며 공산주의에 대한 콘퍼런스를 조직하고 있다. 서울은 4번째 개최 도시다. 서울 개최는 어떤 의미가 있나.

바디우=나는 국제주의적인 비전을 갖고 있다. 오늘날 국제주의자가 되는 것은 마르크스 당시보다 훨씬 더 필수적이다. 정치의 무대는 전 세계적이어야 하고 그럴 수 있다. 자본주의는 전 세계적이고, 공산주의도 그래야 한다. 우리는 더 이상 일국 사회주의의 시대에 살지 않는다. 우리는 뭔가 전 세계적인 어떤 것을 해야 한다. 생각은 간단했다. 공산주의 이념에 대해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을 전 세계의 다른 장소에서 모아보는 것이다. 런던에서 1차 콘퍼런스를 열었고, 베를린에서 2차, 뉴욕에서 3차를 진행했다. 유럽에서 먼저 연 것은 아마 우리(바디우와 지젝)가 유럽 사람들이라서 그랬을 것이다. 그 다음 아시아와 라틴 아메리카, 아프리카에서 콘퍼런스를 이어갈 것이다. 서울에서 네 번째 행사를 하는 이유는 중국이나 일본과는 달리 한국에는 당신과 이택광 같은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웃음) 또 한국은 역사적 상징성이 큰 나라다. 현재 세계에서 유일하게 분단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가 아닌가. 5차는 볼리비아에서, 6차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할 것 같다.

13. 09.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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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철학의 고전적인 저작, 토머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까치, 2013)가 50주년 기념판으로 다시 출간됐다. 두 가지가 달라졌는데, (1)저명한 분석철학자이자 토머스 쿤의 패러다임 이론을 푸코의 사회과학 이론에 접목시켰다는 평가를 받는 과학철학자 이언 해킹이 쓴 서론이 추가됐고, (2)서울대학교 홍성욱 교수가 공동 역자로 참여하여 번역을 새롭게 개정하고, 역주를 달아 독자의 이해를 도왔다. 비로소 '정본' 번역이 나온 느낌이다. 해서 아주 오랜만에 책을 다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내가 처음 읽은 건 학부 2학년 때였으니 25년 전이다). 그간에 참고할 만한 책도 더 보태졌기에 같이 리스트로 묶어놓는다.  

 


5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과학혁명의 구조- 출간기념50주년 제4판
토머스 S.쿤 지음, 김명자.홍성욱 옮김 / 까치 / 2013년 9월
20,000원 → 18,000원(10%할인) / 마일리지 1,000원(5% 적립)
2013년 09월 26일에 저장
일시품절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 해제
존 프레스턴 지음, 박영태 옮김 / 서광사 / 2011년 5월
18,000원 → 17,100원(5%할인) / 마일리지 900원(5% 적립)
2013년 09월 26일에 저장
품절
현대과학철학 논쟁- 쿤의 패러다임 이론에 대한 옹호와 비판
토마스 쿤.칼 포퍼.라카토스 외 지음, 조승옥.김동식 옮김 / 아르케 / 2002년 12월
28,000원 → 26,600원(5%할인) / 마일리지 840원(3% 적립)
양탄자배송
내일 아침 7시 출근전 배송
2013년 09월 26일에 저장

과학혁명- 전통적 관점과 새로운 관점
김영식 지음 / 아르케 / 2001년 2월
23,000원 → 21,850원(5%할인) / 마일리지 690원(3% 적립)
*지금 주문하면 "1월 6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13년 09월 26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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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로는 어제 지젝의 방한 첫 강연이 있었다. 일정 때문에 가보진 못했는데, 내일자 경향신문의 '동행 인터뷰'를 보니 이번 세 차례 강연에 8000명이나 신청했다고 한다. 이택광 교수와의 인터뷰 기사 가운데 관심 있는 대목을 옮겨놓는다(전문은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9242154465&code=960201&nv=stand 참조). 

이택광=알랭 바디우는 낡은 것으로 간주되어온 ‘공산주의’라는 용어를 재사유하면서 새로운 이념을 만들어내자고 했다. 당신도 의기투합해 바디우와 함께 런던, 뉴욕, 베를린에서 ‘공산주의의 이념’ 콘퍼런스를 열었다. 이번 서울 콘퍼런스의 의미는 무엇인가.

 

 

지젝=우선 말하고 싶은 것은 이번 행사는 내게 ‘철학적 콘퍼런스’라는 것이다. 네팔의 ‘공산주의자 친구’들이 어떤 구체적인 투쟁을 하고 있는지를 논하려는 자리가 아니다. 바디우나 내게 이 콘퍼런스는 ‘영원한 이념’ 같은 근본 문제를 따지는 자리다. 공산국가는 몰락해도, 공산주의는 살아나곤 하는 보편적 이념이다. 또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지난해 6월 서울에서 만난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다. 그들은 그저 자기 이익과 직업이나 지키려는 멍청한 노동자들이 아니다. 쌍용차 노동자들은 그들의 투쟁이 삶의 방식을 지키려는 것임을 깨닫고 있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에 관한 아주 중요한 질문이 이들의 투쟁에 담겨 있다. 공산주의의 소생은 하트와 네그리가 말했던 ‘공통적인 것’과도 관련 있다. 우리가 공유하는 실체인 자연이나 대중교통, 전기 같은 시설이나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의 사유화에 대해서는 폭력적 수단을 써서라도 저항해야 한다.

 

이택광=공산주의라는 용어가 지칭하는 것은 다양하다. 한국에선 북한을 떠올리곤 한다. 한국은 오랜 기간 냉전 이데올로기에 노출되어 있어서 공산주의에 대한 경직된 태도가 남아 있다. 물론 과거 역사적 공산주의를 실패한 기획이기 때문에 아예 논의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도 많다.

 

지젝=북한은 마르크스나 공산주의를 언급도 잘 하지 않는다. 기이한 체제를 유지하는 북한에서 볼 수 있는 건 군사적 애국주의뿐이다. 이것을 두고 단순히 “호호호” 하면서 “북한은 더 이상 마르크스를 인정하지 않아. 그러니까 더 이상 우리의 문제가 아냐”라고 쉽게 받아들여선 안된다. 역사의 교훈은 단순하지 않다. 북한은 20세기 공산주의 프로젝트가 어떻게 아주 잘못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실패의 지점에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

 

지젝은 북한이 유튜브에 올린 선전 동영상을 거론하며 “‘우리 위대한 지도자’가 어쩌구 하는 부분을 잘라서 보면 서구 자본주의와 소비주의에 대해 꽤 괜찮은 분석을 보여준다”고도 했다. 지난 3월 타계한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를 두곤 이런 비유를 했다. “그는 ‘돈 많은 카스트로’였다. 그가 한 일이라곤 돈을 뿌린 것뿐이다.” 쿠바식 공산주의를 베네수엘라에 이식하려 한 차베스의 시도를 비꼰 말이었다.

 

이택광=바디우와는 어떻게 인연을 맺었나. <까다로운 주체>를 쓸 때만 해도 바디우에 비판적이지 않았나. 지금은 충실한 사도인 것 같다. 철학적 견해는 다르지만, 정치적 입장에서 바디우가 공격 당하면 그를 옹호하곤 했다. 친구이면서 라이벌 관계인 것 같은데.

 

지젝=그와 나는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1990년대 처음 만났는데, 당시 우리는 서로를 많이 좋아하지 않았다(웃음). 비판도 많이 했다. 바그너에 관한 것은 ‘무조건’ 통한다. 바디우가 <바그너는 위험한가>(북인더갭)를 썼을 때 발문도 썼다. 포스트모더니즘 흐름의 한 부분이 되지 않으려 했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그와 차이점도 있다. 그에 대해 놀랐던 건, 프랑스 엘리트들은 미국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데, 그가 <타이타닉>을 훌륭한 영화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더한 걸 이야기하면, 메릴 스트립이 나왔던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도 훌륭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웃음). 진지한 이야기를 하면, 플라톤은 <국가>에서 시인 추방론을 주장했다. 시보다 철학의 우위를 주장한 것이다. 바디우는 시와 철학의 화해를 시도한다. 바디우는 시적 진리를 이야기하지만, 나는 시가 진리를 담보하기 어렵다고 본다. 역사적 사건을 봐도 대부분 전체주의자들은 예술에 대해 광적인 열정을 보였다. 시적인 열정이 좋은 결과를 초래한 적이 없다. 시를 지나치게 찬양하면 문제가 생긴다(웃음).

 

이택광=국가에 관한 입장은 상반되어 보인다. 바디우가 국가의 상징성에 주목한다면, 당신은 국가를 변화하는 현실적 토대로 여기는 것 같다. 또 국가가 완벽하게 기능하는 것일 수 없다고도 생각하는 듯하다.

 

지젝=이번 행사를 두고 말하자면, 바디우와 나는 국가에 관한 시각이 다르다. 바디우는 반(反)국가주의자다. 그는 국가 자체를 타락한 것으로 본다. 한편 그는 모순되어 보이지만, 국가라는 문제에 집중한다. 전형적인 프랑스 좌파의 관점이라고 볼 수 있다. 당분간 인류 사회가 존재하는 한 국가는 여전히 존재할 것이고, 우리는 국가를 없애지 못할 것이다. 국가와의 관계 속에서 공산주의의 이념을 생각해봐야 한다. 국가는 하나의 도구나 물질적 토대라는 측면이 있다. ‘저기 있는 국가’에 희망이 없다는 것은 나도 안다. 하지만 국가는 적이 아니라고 본다. 문제는 사회 안에, 시스템에 있다.

 

 

 

이택광=한국인들은 자신이 이데올로기와 관계 없다고 생각하고, 또 탈이데올로기적인 삶일수록 훌륭한 삶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당신은 도발적으로 이데올로기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여러 사람이 그 점에 매료된 것 같다. 당신은 한국에서 인기가 좋다. 세 차례 예정된 당신의 대중 강연에 8000명이 신청했다. 최근 번역 출간된 1800페이지 분량의 <헤겔 레스토랑> <라캉 카페>(새물결)도 초판이 열흘 만에 다 나갔다고 들었다.

 

지젝=고마운 일이다. 한국인들이 날 왜 좋아하는지 아직 모르겠다. 얼마 전 번역본을 받았다. (두꺼워서) 책장을 채우기 좋은 책이다(웃음).

12. 09. 25.

 

 

 

P.S. 이번 방한에 맞춰 몇 권의 책이 출간됐는데, 한국일보에 연재됐던 이택광 교수의 인터뷰집 <다시 더 낫게 실패하라>(자음과모음, 2013)도 그중 하나다. 연휴 전에 나온 <바디우와 지젝 현재의 철학을 말하다>(길, 2013)는 물론 <맑스 재장전>(난장, 2013)에도 지젝의 대담 내지 인터뷰가 포함돼 있다. 가벼운 분량의 책들인 만큼 무거운 책(책장을 채우기 좋은 책)들과 씨름하기 전에 워밍업 삼아 읽어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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