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갓길에 우편함에서 <월간 에세이>(10월호)를 들고 왔다. 지난 여름에 '에세이'를 청탁받고 쓴 글이 이달에 실렸기 때문이다. 카뮈의 <시지프 신화>에 대해 짧게 적은 글을 찾아서 옮겨놓는다.

 

 

 

월간 에세이(13년 10월호) 좋은 에세이, 좋은 시도

 

에세이란 말의 출처는 프랑스어 ‘엣세’다. 흔히 <수상록>으로 번역된 몽테뉴의 책 <엣세>가 내가 알기론 ‘에세이’의 기원이다. 고유명사가 장르를 가리키는 보통명사로 전환됐다고 할까. ‘엣세이에’(시도하다)란 동사에 근원을 두고 있는 말이어서 내게 ‘에세이’는 뭔가를 시도한 결과물을 떠올려준다. 이 ‘시도’는 책임으로부터는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내 식대로 구별하면 그게 ‘기획’과의 차이다. ‘시도’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마다하지도 않는다. 주사위를 던져서 원하는 숫자가 나올 확률이라고 해도 좋겠다. 반복해서 던지면 분명 한번은 원하는 숫자가 나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대개 시도는 시도 자체에서 의의를 찾는다. “좋은 시도였어!”라는 격려의 말이 보통 그런 뜻을 함축한다.


프랑스어에 기원을 두어서인지는 몰라도 에세이란 장르에서 내가 연상하는 책은 몇 권의  프랑스 책이다. 프랑스인 저자가 쓴 책들 말이다. 중학교 때 라디오방송에서 들은 몇 가지 내용이 흥미로워서 처음 구입했던 <수상록>을 제쳐놓으면 내가 읽은 에세이의 서두에 오는 건 알베르 카뮈의 <시지프 신화>다. 짐작엔 대학 1학년 때 읽은 책이다. ‘에세이’란 말이 자주 ‘수필’이란 한국어로도 번역되지만 <시지프 신화>를 수필로 부르긴 어려울 것이다. 수필이란 말이 연상시키는 부드러움과는 전혀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우리말 대응어를 찾자면 이 경우 에세이는 시론(試論)에 가깝다. ‘시험 삼아 해본 주장’이라고 해야 할까.


<시지프 신화>에서 카뮈는 이 시론을 철학과도 구별한다. 자신은 부조리의 감수성을 제시하려고 하는 것이지 이 책이 ‘부조리의 철학’은 아니라고 미리 일러준다. 물론 그런 철학은 이제까지 경험해보지 못했다고 하니까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 아마도 카뮈가 철학이란 말로 염두에 둔 것은 제대로 된 규모의 논증이 아닐까 싶다. 시론은 그러한 규모나 엄밀성에서 자유롭다.

 

사실 <시지프 신화>의 전체적인 구성이 잘 짜여 있다기보다는 적당히 구색을 맞췄다는 인상을 준다. 얼핏 체계적인 듯 보이지만 필연성을 결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체계적이기도 하다. 가령 첫 번째 파트인 ‘부조리의 추론’이 비교적 정연한 데 비하면 ‘부조리한 인간’과 ‘부조리한 창조’라는 나머지 두 파트는 엉성하다. ‘부조리한 인간’의 세 절이 각각 ‘돈후안주의’와 ‘연극’, 그리고 ‘정복’인 것은 말 그대로 부조리한 조합이다. 부조리란 테마를 부조리한 방식으로 다룬다고 하면 역설적이지만 말이 안 되는 건 아니다.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라는 구절로 시작한 카뮈의 에세이는 시지프 신화에 대한 재해석으로 마무리된다. 카뮈는 자살이 부조리에 대한 올바른 대응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럼 뭔가? 반항이다. ‘긍정’이란 이름을 가진 특이한 반항이다. 그 반항의 모델이 바로 그리스 신화 속 시지프이다. 거대한 바위를 산정까지 굴려 올리는 무용한 노동을 무한히 반복하는 게 신들이 시지프에게 내린 형벌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 노동이 아니다. 카뮈의 관심을 끄는 건 정상에서 굴러떨어진 바위를 다시 밀어올리기 위해 터벅터벅 내려오는 시지프의 걸음이다. 잠시 동안의 휴식은 시지프에게 ‘의식의 시간’이다. 무얼 의식하는가. 자신의 노동과 그 결과 사이의 부조리이다. 이 부조리를 의식하되 긍정하고 다시금 바위에 몸을 밀착하는 것이 시지프의 반항이다.

 

그러니 시지프에게 감동적인 것은 노동 자체가 아니라 그 무용성에 대한 의식이다. 바로 그럴 때 “시지프는 자신의 운명보다 더 우월하다. 그는 그의 바위보다 더 강하다”라고 카뮈는 적었다. 나는 이 문장을 쓸 때 카뮈가 의기양양했으리라고 상상한다. 말 그대로 좋은 에세이, 좋은 시도다.

 

13. 09.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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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숲, 2013)이 천병희 선생의 번역으로 새로 나왔다. 이제이북스에서 처음 나오고 길에서 개정판으로 출간된 <니코마코스 윤리학>(길, 2011)과 함께 두 종의 원전 번역본을 갖게 된 셈. 주문한 책은 아직 못 받았지만, 미리 리스트를 만들어놓는다. 올해 플라톤의 주요 대화편들을 강의에서 읽고 있는데, 내년에는 <니코마코스의 윤리학>도 강의 커리에 포함시키려고 한다. 신뢰할 만한 번역본들과 함께 크리스토퍼 원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입문>(서광사, 2011)도 가이드북으로 참고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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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코마코스 윤리학- 그리스어 원전 번역, 개정판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3년 10월
27,000원 → 24,300원(10%할인) / 마일리지 1,3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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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코마코스 윤리학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강상진.김재홍.이창우 옮김 / 길(도서출판)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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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입문
크리스토퍼 원 지음, 김요한 옮김 / 서광사 / 2011년 6월
22,000원 → 19,800원(10%할인) / 마일리지 220원(1%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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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코마코스 윤리학- 개정판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최명관 옮김 / 창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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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 지젝 강연에 가보려고 했지만 체력이 바닥이 나 집에서 쉬었다. 지난주만 해도 충북과 경북, 그리고 강원도에 다녀왔으니 동선이 만만찮았다. 쉬면서 책을 좀 보려고 했지만 아직 정상 컨디션이 아니어서 대신에 독서거리만 챙겨놓는다. '오래된 새책' 범주에 들어갈 책이 지난주에도 몇 권 나왔는데, 그중에서 두 권을 골랐다.

 

 

먼저, 어린이 철학운동의 선구자라는 개러스 매슈스의 <아동기의 철학>(필로소픽, 2013). 이전에 <유년기 어린이 철학>(교육과학사, 2006)으로 소개됐다가 절판된 책이다. 제목이 바뀌면서 다시 번역됐다. '타고난 철학자인 어린이들에 대해 생각하다'란 부제가 책의 주제를 압축한다. 요지는 이렇다.

어린이 철학 운동의 선구자로 손꼽히는 개러스 매슈스는 이 책을 통해 어린이들의 사고가 오히려 ‘철학함’의 훌륭한 조건이 될 수 있다고 설득력 있게 주장한다. 저자가 피아제의 유명한 ‘보존 실험’을 비판하는 부분은 이 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과학적인 실험처럼 보이는 피아제의 보존 실험이 실제로는 과학적이라고 할 근거가 약함을 보이고, 아주 어린 아이들에게서 ‘자아중심주의’와 ‘현상주의’라는 모호한 개념이 나타난다는 피아제의 주장에 대해서도 반례를 제시한다. 이어서 어린이들의 생생하고 뛰어난 철학적 사고와 활동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이전에는 연구된 적 없는 주제들, 예를 들어 어린이의 권리, 어린이와 죽음, 아동 미술의 예술성, 어린이를 위한 문학, 어린이의 권리, 아동기의 기억상실과 인격 동일성 등이 논의된다.

 

 

요컨대 어린이 철학 교육의 이론적 근거와 가능성을 조명한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이론적으로는 피아제와 콜버그의 비판이 책의 핵심이다). 이 주제에 관심이 있는 독자나 교사들에게 필독서.

 

 

독서법을 다룬 책 가운데 최장기 베스트셀러로 보이는 애들러의 <독서의 기술>이 십대의 눈높이에 맞게 편집돼 나왔다. 허용우의 <독서의 기술, 책을 꿰뚫어보고 부리고 통합하라>(너머학교, 2013). 정확하게 말하면, 오래된 책을 새책으로 만든 경우라고 할까. 소개는 이렇다.

저자 허용우는 서양 고전만을 다루어 낯설고 어려운 애들러의 <독서의 기술>을 우리에게 친근한 책과 예문들, 구체적이고 쉬운 해설과 유쾌하고 생생한 글로 선보인다. 이 책은 독서의 기술을 축구에 비유하며 축구를 하려면 조기축구보다는 수준 높은 국가대표 단계의 축구를 해 보자고 독자들을 자극하고, 저자가 오랫동안 연구한 내용을 한 번에 이해할 수는 없지 않겠냐며 격려한다. 학업에 대한 부담으로 시간과 여유가 없는 우리 십대들을 위해 실용서, 문학, 수학, 과학, 역사, 교과서 읽는 법을 소개하여 실용성을 높였다. 

독서에 멀미를 보이는 학생들을 편하게 독서로 유인하는 역할을 해주지 않을까 기대한다. 독서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자각이 없이는, 그리고 실천이 없이는 우리가 어떤 미래를 기대할 수 있을까. 그런 소극적 이유를 제쳐놓더라도 독서를 즐기는 능력과 기술의 습득은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가장 저렴하면서 동시에 가장 고급스러운 향유의 바탕이다.

 

 

찾아보니 원저 증보판은 분량이 두툼한 편이다. 한번 구해봐야겠다...

 

13. 09.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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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저자'를 고른다. 먼저, 미국의 저명한 법철학자이자 고전학자 마사 누스바움의 책이 오랜만에 출간됐다. <시적 정의>(궁리, 2013). "문학적 상상력이 어떻게 정의로운 공적 담론과 민주주의 사회의 필수요소가 되는지를 조목조목 밝히는 이 책은 바로 문학의 사회적 가치를 논하는 책이다." 부제는 '문학적 상상력과 공적인 삶'. 

 

 

명망에 비해서는 국내에 소개된 책이 적은데, 누스바움의 단독 저서로는 <공부를 넘어 교육으로>(궁리, 2011)에 이어 두번째 책이다(묵직한 주저들이 여럿 더 있다). 편저자로 참여한 책으론 <불편한 인터넷>(에이콘출판, 2012)과 절판된 <나라를 사랑한다는 것>(삼인, 2003)이 있다. 저자가 말하는 '시적 정의', 곧 문학의 사회적 가치는 어떻게 발현되는가.

세계적으로 저명한 법철학자, 정치철학자인 마사 누스바움은 시카고 대학 법학과 학생들과 소포클레스, 플라톤, 세네카, 디킨스의 작품을 함께 읽었다. 왜 변호사나 재판관, 혹은 정치인이 될 학생들과 문학 작품을 읽었을까? 소설이 우리에게 불러일으키는 공감, 상상력, 연민의 감정이 합리적인 공적 판단을 내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문학적 상상력이 어떻게 정의로운 공적 담론과 민주주의 사회의 필수요소가 되는지를 조목조목 밝히는 이 책은 바로 문학의 사회적 가치를 논하는 책이다.  

우리의 법학교육이나 로스쿨 커리큘럼에 이러한 문학의 가치가 잘 반영돼 있는지 궁금하다.

 

 

두번째 저자는 중국의 고문헌학자 리링. '리링저작선'의 네번째 책으로 <유일한 규칙>(글항아리, 2013)이 출간됐다. 손자 강의를 엮은 <전쟁은 속임수다>(글항아리, 2013)의 짝이 되는 '손자의 투쟁철학'을 개관하고 있다. 공자에 관한 책, <논어, 세번 찢다>(글항아리, 2011)와 <집 잃은 개>(글항아리, 2012)와 함께 중국의 고전학 수준을 가늠하게 해준다. 리링은 중국에서도 손자 연구의 최고 권위자라 한다.

 

 

<손자병법>은 물론 여러 종의 번역본이 나와 있다. 개인적으론 김원중 교수의 <손자병법>(글항아리, 2011)을 구비하고 있는데, 리링의 책들을 길잡이 삼아 '병법'에도 도전해봐야겠다...

 

 

러시아의 아동심리학자로 국내 교육계에서 각광받고 있는 레프 비고츠키의 주저 <사고와 언어>(한길사, 2013)도 새로 번역돼 나왔다. 러시아어 원전 번역인데, 이전에도 두 차례 번역본이 나온 바 있다. <사고와 언어>(교육과학사, 2011), <생각과 말>(살림터, 2011)과 비교해서 읽어봐도 좋겠다.

 

 

비고츠키 가이드북과 입문서에 해당하는 책은 비고츠키 교육학 실천연구모임에서 펴낸 <비고츠키 '생각과 말' 쉽게 읽기>(살림터, 2013), 르네 반 더 비어의 <레프 비고츠키>(솔빛길, 2013), 알렉산더 로마노비치 루리야의 <비고츠키와 인지발달의 비밀>(살림터, 2013) 등이 있다...

 

13. 09.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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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발견'은 찰스 클로버의 <텅 빈 바다>(펜타그램, 2013)이다. '남획으로 파괴된 해양생태계와 생선의 종말'이란 부제가 어떤 내용인지 짐작하게 해준다. "인간의 탐욕이 부른 바다의 황폐화를 다룬 논픽션"으로 "영국에서 환경 전문 저널리스트로 활동해온 전(前) '데일리 텔레그래프' 기자, 찰스 클로버가 전 세계 바다에서 벌어지는 수산물 남획의 실태와 남획이 불러온 해양생태계 파괴의 실상을 치밀한 취재와 조사를 통해 정면으로 드러낸 심층르포다."

 

 

'해양판 <침묵의 봄>'이란 <인디펜던트>의 평이 책의 성격을 잘 압축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지은이가 소개하는 한 연구에 따르면, 단적으로 1950년대에 해양에서 살았던 대어의 90%가 사라졌고, 세계의 어획량은 1988년부터 매년 77만 톤씩 감소해왔다. 이대로 간다면 우리가 지금 즐기는 생선을 우리 다음 세대가 맛볼 기회는 사라지고 말 것이다."

 

 

책의 메시지는 영화로도 제작됐다는데, 루퍼트 머레이 감독의 동명의 다큐가 그것이다. "전 세계 해양에서 벌어지는 남획이 초래한 결과의 불편한 진실"이란 평을 받았다고.

 

 

'불편한 진실'은 물론 지구 온난화 문제를 다룬 엘 고어의 환경리포트와 동명의 영화를 염두에 둔 표현이겠다. 그렇다면, '생선의 종말'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저자의 메시지는 이렇게 간추려진다.

-덜 포획한다. 포획 속도를 현재 속도의 절반 이하로 늦춘다면 바다가 다시 풍요로워질 것이며, 마침내 더 포획할 수 있을 것이다.

-생선을 덜 먹거나 낭비가 덜한 방식으로 잡은 생선을 먹는다.
-평소 자신이 먹는 것에 주의를 기울이고 지속가능하지 않은 방식으로 잡은 생선은 거부한다.
-포획 대상을 까다롭게 선별하는, 낭비가 적은 어법을 선호한다.
-어부들에게 어획권 거래를 허용하되, 그에 따른 책임을 부여한다.
-공해와 집약적으로 어획되고 이용되는 바다의 50% 수역에 다랑어와 황새치 같은 대형어종의 회유지가 될 보호구역을 설치한다. 북해가 대표적인 예다.
-개체군 감소를 감시하는 지역 관할 어장기구에 공해상의 조업에 법을 집행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다.
-200해리 이내의 수역에서는 조용한 민주주의 혁명을 조직해야 한다. 그리하여 시민들이 바다 전체에 대한 권리를 되찾아야 한다.

아무려나 이주에 나온 책 가운데서는 오시카 야스아키의 <멜트다운>(양철북, 2013)과 함께 필독해볼 만한 논픽션이다. 많이들 지적해온 바 있지만 국내에서도 이런 논픽션이 많이 나오면 좋겠다...

 

13. 09.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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