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문학상은 캐나다의 여성 작가 앨리스 먼로에게 돌아갔다. 영국의 도박사이트 '래드브록스'에 따르면, 무라카미 하루키가 가장 유력한 후보였고 북미 여성작가들이 그 뒤를 이었는데(조이스 캐롤 오츠가 먼로와 함께 유력한 후보였다), 예측을 벗어나지 않은 결과다. 단편 작가로 '캐나다의 체호프'로 불린다는 게 눈에 띈다. 개인적으론 얼마전에 또 다른 캐나다의 여성 작가 매거릿 애트우드와 함께 앨리스 먼로에 대해 알게 됐는데, 국내에도 애트우드의 책이 훨씬 많이 소개됐지만 이젠 지명도가 바뀔 듯하다. '앨리스 먼러와 마거릿 애트우드'로. 두 여성작가의 번역된 작품을 한데 모아놓는다.

 

올해 110번째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캐나다 작가 앨리스 먼로(82)는 섬세한 관찰력으로 삶의 복잡한 순간과 여성의 섬세한 내면을 포착해 단편이라는 압축된 형식에 담았다. 1968년 첫 단편집 <행복한 그림자의 춤>을 낸 이후 지난해 <디어 라이프>를 발표하기까지 44년간 13권의 단편집을 내놓았다. 장편소설은 <소녀와 여성의 삶>(1971)이 유일하다. ‘캐나다의 체호프’라고 불리는 이유다. 캐나다 작가로는 처음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그는 같은 캐나다 여성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와 함께 영미권 여성 작가 중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꼽혀왔다. 평생 단편을 써온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것도 매우 이례적이다.(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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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라이프 (무선)
앨리스 먼로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2월
16,000원 → 14,400원(10%할인) / 마일리지 8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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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그림자의 춤
앨리스 먼로 지음, 곽명단 옮김 / 뿔(웅진) / 2010년 5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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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
앨리스 먼로 지음, 서정은 옮김 / 뿔(웅진) / 2007년 5월
11,000원 → 9,900원(10%할인) / 마일리지 5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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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떠남
앨리스 먼로 지음, 김명주 옮김 / 따뜻한손 / 2006년 1월
9,500원 → 8,550원(10%할인) / 마일리지 47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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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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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발견'으로 고른 책은 곽은경, 백창화의 <누가 그들의 편에 설 것인가>(남해의봄날, 2013)이다. 국제연대활동가 곽은경의 삶을 다룬 책으로 부제는 '로렌스 곽, 평화를 만드는 사람'이고, '행동하는 멘토' 시리즈의 첫 권으로 나왔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추천사를 빌리면 "곽은경은 대한민국이 배출한 가장 걸출한 국제 활동가이다. 곽은경처럼 열정적이고 헌신적인 활동을 보여준 활동가는 미처 없었다." 그럼에도 놀라운 건 이 활동가의 족적에 관한 뉴스기사가 하나도 없었다는 것. 그래서 말 그대로 책의 발견이자 사람의 발견이다. 어떤 인물이고 어떤 책인가.

 

 

국제사회에서 저명한 이름, 국제연대활동가 곽은경. NGO를 떠올리면 긴급 구호활동 혹은 아프리카의 굶주린 아이들을 돌보는 연예인의 봉사활동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이 전부인 우리에게, 그는 냉엄한 국제사회의 높은 문턱과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잔혹한 세상의 비극을 가감 없이 전달한다. 영어 불어 어느 것 하나 완벽한 의사소통이 불가능했던 그가 스물다섯에 한국을 떠나 전 세계 55개국 대표들의 투표로 국제 NGO 팍스 로마나 세계 사무총장으로 일하기까지 그 치열한 평화의 기록이 지구촌 아픈 역사와 함께 펼쳐진다.

이 책은 한 사람의 25년 삶을 복기하면서 가장 약한 자들의 편에 서서 그들의 생존과 인권, 평화를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그들을 돕는 헌신적인 NGO 활동가들의 생생한 사투를 담아낸다. 생리 때면 마을 밖으로 쫓겨나 동굴에 사는 인도의 달리트 여성들, 총성이 끊이지 않는 격변의 현장 남아공. 전 세계 어둠이 드리운 곳을 찾아 목소리 없는 이들을 위해 목숨을 걸고 일해 온 그들의 삶은 우리가 외면한 지구촌 슬픈 역사의 기록이다.

이 기록은 백창화 작가와의 공저인데, 출간 과정이 특이하다. "2년 반 동안 파리와 제네바, 인터라켄을 오가며 담아낸 곽은경의 삶 속에는 또 다른 화자가 등장하는데 청년 시절 같은 꿈을 꾸었으나 한국에서 평범한 삶을 걷게 된 오랜 벗, 백창화 작가다."

 

 

 

저자(주인공)의 삶과 활동도 놀랍지만, 그걸 남해의 한 작은 출판사가(이제까지 다섯 권의 책을 낸 남해의봄날은 통영에 있다) 기획해서 책으로 펴낸 것도 놀랍다. 장기불황이라는 출판계에서 한 가지 흥미로운 생존법을 제시해주는 듯싶다. 이 또한 발견 거리다...   

 

13. 1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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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던 책 두 권이 다시 나왔다. 가라타니 고진의 <트랜스크리틱>(도서출판b, 2013)과 아마티아 센의 <자유로서의 발전>(갈라파고스, 2013). '오래된 새책'으로 묶어서 반가움을 표한다.

 

 

<세계사의 구조>(도서출판b, 2012)와 함께 '사상가' 고진을 대표하는 책으로서 <트랜스크리틱>은 한길사판(2005)으로 나왔다가 절판됐던 책이다. 이번에 '가라타니 고진 컬렉션'의 하나로 재출간됐는데(이 선집도 현재로선 두어 권 정도를 더 남겨놓고 있다), 저자의 수정을 반영하고 있어서 아주 동일한 책은 아니다. 설명은 이렇다.

세계가 주목하는 가라타니 고진의 주저 정본판. <트랜스크리틱>은 2005년에 이미 우리말로 옮겨져 가라타니의 주저로서 많은 이들에 의해 읽혀져 왔다. 그런데 그것은 2001년판을 원본으로 하되 영어판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수정된 내용들을 일정 부분 반영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독자들은 지금 이 <트랜스크리틱>에서 2005년 번역판과의 상당히 커다란 차이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비평가로서가 아닌 사상가로서의 가라타니 고진이 본격적으로 자신만의 독창적인 이론적 체계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니는 저술이지만, 그 영향작용사와 관련해서도 이 책은 처음 출간되자마자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사실 '세계가 주목하는' 사상가인지는 의문이지만(영어로 번역된 고진의 책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 아직 <세계사의 구조>도 번역되지 않았다) 나는 그게 고진에 대한 과소평가라고 본다(지젝은 이러한 과소평가에서 예외이다. <트랜스크리틱>에 대한 본격적인 서평을 '시차적 관점'이란 제목으로 쓴 바 있기에. <시차적 관점>의 원래 발상은 고진의 것이다. 고진이 칸트에게 쓴 말을 지젝은 라캉에게 적용한다). '고진과 함께'라는 건 따라서 (적어도 서구의 독자가 가질 수 없는) 우리의 유리한 조건이다. 고진이 말하는 트랜스크리틱이란 무엇인가.

내가 트랜스크리틱이라고 부르는 것은 윤리성과 정치경제학 영역 사이에서의, 즉 칸트적 비판과 맑스적 비판 사이에서의 코드 변환(transcoding), 요컨대 칸트로부터 맑스를 읽고 맑스로부터 칸트를 읽는 시도이다. 내가 이루고자 한 것은 칸트와 맑스에게 공통된 ‘비판(비평)’의 의미를 되찾는 일이다.

예전판이 나왔을 때 여러 번 페이퍼를 써둔 적이 있기에 따로 군말을 덧붙이진 않는다. 다만 여전히 <트랜스크리틱>은 칸트와 맑스를 읽는 가장 강력한 시각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자유로서의 발전>은 인도 출신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아마티아 센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다. 예전에 세종연구원판(2001)으로 나왔다가 절판된 책. 제목은 센의 기본적인 문제의식을 압축하고 있다.  

아시아 최초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경제학의 ‘마더 테레사’, 아마티아 센. 그가 평생에 걸쳐 추구한 웅대한 문제의식의 결정판으로서, 민주주의와 자유의 확장이야말로 진정한 발전의 목표임을 실증적으로 밝혀내고 있다. 센의 문제의식은 역량의 회복을 통해 대다수 사람들의 삶의 질이 향상되는 균형잡힌 성장에 초점이 맞추어진다. 특히 센의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한 발전관은 개발독재에 신음했던 우리에게도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역량'이란 말은 센경제작(센코노믹스)의 핵심 개념인데, 'capability'의 번역이다. '삶의 질'에 관한 공동연구를 마사 누스바움과 진행하면서 제시한 걸로 안다. 최근 번역된 <시적 정의>(궁리, 2013)에서 누스바움도 이 공동연구의 경험에 대해 언급한다. "1986년부터 1993년까지 경제학자 아마르티아 센과 함께 헬싱키에 있는 유엔대학 부설 세계경제개발연구소의 '개발도상국의 삶의 질 평가에 대한 프로젝트' 공동기획자로서" 참여한 경험이다. 두 사람의 공유한 생각은 " 삶의 질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 환원적이면서 인간 복잡성에 대한 이해를 결여하고 있는 듯 보이는 표준화된 경제적 패러다임에 대한 비판"(<시적 정의>, 16쪽)으로 모아진다. 개인적으로 '삶의 역량'이나 '자유로서의 발전'이란 개념은 '성장이냐 분배냐'란 이분법에 여전히 갇혀 있는 우리의 사고 지평을 벗어나게 해줄 걸로 기대한다. 공론장의 키워드들이 조만간 대체되길 바란다...

 

13. 10.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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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시사IN(317호)에 실은 북리뷰를 옮겨놓는다. 마사 누스바움의 <시적 정의>(궁리, 2013)를 '오래 두고 읽는 책'으로 골랐다. 오래전에 구한 원서를 방치해두고 있었는데, 조만간 먼지를 털어봐야겠다. <시적 정의>는 국내에 먼저 소개된 <공부를 넘어 교육으로>(궁리, 2011)과 같이 읽어봐도 좋겠다. '누스바움 스타일'이 어떤 것인지 감을 잡게 해준다.

 

 

 

시사IN(13. 10. 12) 공무원이 문학을 읽어야 하는 이유

 

얼마 전 지방도시에 내려가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러시아문학 고전에 대한 강의를 했다. 통상 그런 연수 프로그램에는 독서의 효용이나 방법에 대한 강의가 포함되곤 하지만, 러시아문학에 대한 강의 요청은 의외였다. <죄와 벌>이나 <안나 카레니나>를 진지하게 읽는 공무원이라고 하면 좀 특이하게 생각하는 게 우리 사회의 통념 아닐까.

 

 

그런 강의의 서두에 인용했더라면 좋았을 책이 마사 누스바움의 <시적 정의>(궁리)다. ‘문학적 상상력과 공적인 삶’이 부제니까 더할 나위 없다. 미국의 저명한 고전학자이자 법철학자인 저자는 ‘공적인 시’가 필요하다는 월트 휘트먼의 말에 공감하며 우리의 공적 삶에 문학적 상상력이 개입할 필요성을 역설한다. 옹호의 근거는 간명하다. 직역하면, “그것이 우리와 동떨어진 삶을 살아가는 타인의 좋음에 관심을 갖도록 요청하는 윤리적 태도의 필수적인 요소”라고 보기 때문이다. 거꾸로 그러한 상상력을 함양하지 않는다면 사회정의로 이어지는 필수적인 가교를 잃게 될 거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시카고대학의 로스쿨에서 ‘법과 문학’을 강의한 경험에 토대를 둔 이 책에서 누스바움은 주로 디킨스의 소설 <어려운 시절>을 사례로 활용한다. 흥미롭게도 이 소설에 등장하는 교장선생님 그래드그라인드는 교육자이자 경제학자로서 계산만을 중요시하고 감정과 상상력 따위는 쓸모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보기에 문학은 인간의 복잡한 삶을 ‘도표 형식’으로 나타내려고 애쓰는 정치경제학의 적이다. ‘쓸데없는' 이야기책은 사람들은 공상에 빠뜨리고 비합리적 행동으로 내몰 수 있다. 좁은 의미의 경제적 합리성이란 관점에서 볼 때 문학과 문학적 상상력은 무용하고 위험하다.


하지만 그래드그라인드의 생각과는 정반대로 누스바움은 이야기책이 공적 합리성 교육에 필수적이라고 본다. 공적 영역이란 무엇인가. 재판관이 판결이 내리고 입법자가 법을 제정하며 행정부에서는 다양한 정책을 입안하고 실행하는 공간이다. 소설에서는 특이한 인물로 비치는 그래드그라인드식의 공리주의적 관점과 경제적 비용편익 분석이 이 공적 영역에서는 오히려 표준화돼 있다. 국책사업 대부분이 점수화된 사업타당성 조사를 통해 결정되는 게 우리의 현실 아닌가. 문학이 이런 영역에서 과연 어떤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      


핵심은 그래그라인드식 시각이 제대로 보지 못하는 걸 보게 해준다는 데 있다. 공리주의적 계산과 경제학적 사유는 인간 존재의 개별성과 내면적 깊이, 그리고 희망, 사랑, 두려움 따위를 보지 못한다. 의미 있는 삶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한다. 반면에 문학, 특히 소설은 하나의 이야기를 통해 독자로 하여금 등장인물과 관계를 맺게 하고, 그들의 계획과 희망, 공포를 공유하면서 삶의 복잡한 일들을 풀고자 하는 그들의 노력에 동참하게끔 한다. 그래그그라인드의 관점에서 볼 때 소설이 ‘형편없는 경제학’이라면, 소설의 관점에서 볼 때 그래드그라인드식의 경제학은 ‘형편없는 소설’이다.


소설을 읽음으로써 우리는 “내가 속한 사회적 계급의 구성원만이 아닌 다른 동등한 인간 존재를 인식할 수 있게 해주며, 노동자들도 복잡한 사랑의 감정과 소망 그리고 풍부한 내적 세계를 가진 사려 깊은 존재들이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사실을 놓치는 과학이라면 그것이 아무리 정교하다 하더라도 대단히 미흡하며 부적절한 과학일 수밖에 없다. 숫자와 도표로 채워진 보고서만 읽고 판단하는 대신에 소설을 읽어야 하는 이유다. 소설을 읽는 공무원들을 응원한다.

 

13. 10. 09.

 

P.S. 지극히 당연한 말이지만 공무원뿐만 아니라 학생들도 소설을 읽어야 한다. 되도록 '저명한 작가의 문학작품'이면 더 좋겠다. 최근 뉴스기사에 따르면 문학 독서는 타인에 대한 공감과 이해력을 높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데이트나 입사 면접에 가기 전에 뭘 하는 게 좋을까. 체호프나 도스토옙스키 같은 작가의 문학작품을 읽는 것이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과학저널 <사이언스> 최신호에는 어떤 글을 읽는 것이 공감과 사회적 지각 능력, 감성지능을 발달시키는 데 좋은지에 대한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실렸다. 미국 뉴욕 뉴스쿨의 심리학자들인 에마누엘레 카스타노 박사와 데이비드 키드 연구원은 18~75살의 독자들을 세 그룹으로 나눠 각각 저명한 작가의 문학작품, 베스트셀러에 오른 대중소설, 그리고 진지한 논픽션의 일부를 읽게 했다. 그러고 나서 다른 사람의 얼굴 표정을 담은 사진을 보고 이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표출하고 있는지 등을 구별해내는 5개 테스트를 받도록 했다. 실험 결과 문학작품을 읽은 그룹의 점수가 다른 두 그룹에 견줘 압도적으로 높았다. 대중소설을 읽게 한 그룹은 아무것도 읽지 않은 사람들과 비슷한 점수를 기록했다. 대중소설은 주로 사람들의 이기심이나 욕망을 다루는데다 작가가 흥미로움을 더하려고 작품의 전개 과정을 특정 방향으로 통제하고 있어 독자들을 수동적으로 만드는 경향이 있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반면에 등장인물의 삶에 대해 섬세하고 길게 탐구하는 문학작품을 읽은 독자들은 해당 인물의 처지에 서서 생각하게 돼 타인에 대한 공감과 이해력이 높아진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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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라보예 지젝과 존 밀뱅크의 공저 <예수는 괴물이다>(마티, 2013)가 출간됐다. 밀뱅크는 영국 노팅험 대학의 종교학 교수로 "근대 사회와 현대 신학의 문제를 근대 이전의 기독교 전통으로 답하려는 급진 정통주의 운동의 대표적 사상가"로 소개된다.

 

 

 

책의 원서는 몇년전에 구입했고, 번역이 진행중인 것도 몇년 전에 알았지만 그간에 잊고 있었기에 출간 소식은 갑작스럽고 반갑다. 사실 지젝의 세번째 방한에 맞춘 듯이 보이니 때맞춰 나온 것이긴 하다. 책소개는 간략하게만 뜬다.

지젝에 따르면 기독교는 신 자신이 곤경에 처했다고 말하는 종교다. 이는 기독교에 대한 이단적 독해가 아니라, 기독교가 전하려는 메시지가 바로 신 자신의 곤경이라는 뜻이다. 기독교의 진정한 계시는 신의 무능함, 신의 비존재를 계시하는 것이다. 우리가 아는 피안의 하나님은 없다. 욥이 전하는 그리스도의 절규대로 신은 신 자신과 분열된다. 그리스도를 괴물이라 부르는 까닭이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아무런 보증도 없는, 다시 말해 큰타자의 보증이 없는 ‘사랑’의 몸짓이다. 이 큰타자의 죽음을 대면하는 몸짓, 이것이 지젝이 말하는 무신론적 기독교이다.

 

 

사실 지젝의 기독교론은 중간중간에 다른 책들에서도 읽을 수 있었고, 좀더 본격적으로 다룬 책으론 <죽은 신을 위하여>(길, 2007)이 이미 번역된 바 있다. 그 연장선상에서 읽을 수 있는 책. 이 주제에 관해서는 아담 코츠코의 <지젝과 신학>(2008)도 참고할 수 있으며, 지젝과 밀뱅크가 편집에 관여한 <신학과 정치적인 것>(2005)도 요긴한 참고문헌이다(묵직한 앤솔로지다). 아무려나 언제든 읽을 용의가 있는 책이 출간되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난이도를 검토해보고 강의에서도 내년에는 강의의 커리로도 다루려고 한다. 미리 반가움만 적는다...

 

13. 10.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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