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미출간도서이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책은 슬라보예 지젝의 <가장 숭고한 히스테리환자>(인간사랑, 2013)다. 지젝의 정신분석 박사학위논문인 걸로 아는데(내가 알기에, 아직 영어판으로는 나오지 않았다. 부분적으로는 번역돼 있지만), 번역 대본은 2011년판으로 돼 있다. 2011년에 개정판이 나온 듯한데 초판은 1988년에 나왔다(아래 오른쪽 표지).

 

 

새로 나온 2011년판의 표지를 찾아보니 앞뒤가 아래와 같다. 부제까지 포함하면 <가장 숭고한 히스테리환자: 헤겔이 지나간다>이다.

 

 

 

영어 데뷔작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새물결, 2013)이 1989년에 나왔으니까 <가장 숭고한 히스테리환자>는 그보다도 더 빨리 나왔다. '슬라보예 지젝의 기원'이라고 할까. 부제도 '라캉과 함께 한 헤겔'이니까 가장 최근에 나온 <레스 댄 낫씽(Less Than Nothing)>의 원형으로도 읽을 수 있으리라.

 

 

'철학자 지젝'과 진지하게 조우할 의향이 있는 독자라면(나부터가 그렇지만) <가장 숭고한 히스테리환자>에서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을 거쳐 <헤겔 레스토랑><라캉 카페>에 이르는 여정에 도전해봄직하다. 현재까지는 '지젝의 시작과 끝'이다...

 

13. 1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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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책'을 고른다. 오전에 강의를 다녀왔더니(토요일 근무를 한 셈이다) 해질녘에야 주말 기분이 든다. 이번주에는 '빅타이틀'이 눈에 띄지 않는다. 몇 권은 주중에 따로 다룬 탓이기도 하다. 그래서 고른 타이틀북은 반가운 이름으로 골랐다. 3년 전 세상을 떠난 이윤기 선생의 집필노트,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웅진지식하우스, 2013). '이윤기가 말하는 쓰고 옮긴다는 것'이 부제다.

 

 

소개에 따르면, "이 책은 그가 평생 자신의 언어를 부리며 살아갈 모든 이들에게 전하는 작가의 영혼과 글쓰기의 태도에 대한 모든 것이다. 여기 실린 39편의 에세이에는 첫 문장의 설렘부터 퇴고의 고뇌까지, 그리고 1977년 등단의 두근거림부터 창작과 번역의 세계를 오가던 고민들이 모두 녹아 있다." 그의 유고 산문집 <위대한 침묵>(민음사, 2011)과 함께 읽어봄직하다.

 

 

두번째 책은 사회학자 노명우의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사월의책, 2013)다. '고독한 사람들의 사회학'이 부제. "혼자 살기는 인구조사의 통계결과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혼자 산다는 것은 삶의 철학의 문제이자 살림살이의 문제이고, 처세술의 문제이자 잠 못 이루는 밤의 고민거리이다. 저자는 이러한 구체적 문제들에 대한 생생한 체험과 그에 대한 깊은 성찰을 책 속에 담아냈다." 이 주제의 베스트셀러 <혼자 사는 즐거움>(토네이도, 2011)과 비교해서 읽어봐도 좋겠다. 1인 가구가 점차 늘어나는 추세인 걸 고려하면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한 성찰은 앞으로 더 자주 나오지 않을까 싶다.

 

 

세번째 책은 미셸 레이몽의 <우리는 왜 먹고, 사랑하고, 가족을 이루는가?>(계단, 2013). '인간의 생존, 번식, 유대에 관한 다윈의 작은 가이드'가 부제. 말 그대로 생물로서 인간에 대한 다윈주의 가이드북이다. 책이 얇다는 게 강점.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의 독자가 나란히 읽어볼 만하지 않을까. 더불어 '협력은 어떻게 이기심을 이기는가'를 부제로 한 요차이 벤클러의 <펭귄과 리바이어던>(반비, 2013)이 네번째 책이다. "‘협력 연구의 대가’ 하버드 석학 요차이 벤클러는 위키피디아와 오픈소스를 중심으로, 온라인에서 발생하는 대규모 협력 현상에 대한 연구로 세계적인 명성을 쌓은 석학이다. 벤클러는 산업 시대의 조직 운영 방식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정보화 시대의 새로운 오픈소스 경제에 대해 1990년대 이후 탁월한 식견을 제시해왔다. 이번 책에서 벤클러는 주로 온라인상에서 벌어지는 현상에 주목하던 그간의 연구에서 협력 시스템을 구상하는 방법 자체의 문제로 관심을 확장한다."  

 

 

마지막 다섯번째 책은 유승훈의 <부산은 넓다>(글항아리, 2013)로 골랐다. "이 책은 인문학의 바다에서 부산의 이야기를 거둬 올리고자 했다. 인문학은 사람을 중심에 두고 생각한다. 즉 사람의 생각과 말, 시간과 공간을 연구하면서 궁극적으로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는 인간학이다. 저자는 가능한 한 낮은 자세에서 부산을 바라보고, 거시적인 것보다 미시적인 것에 관심을 둔다." 저자는 소금의 문화사, <작지만 큰 한국사, 소금>(푸른역사, 2012)으로 한국출판문화상을 수상한 바 있는 역사민속학자다. 외부인이자 민속학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부산이 어떻게 보일지 궁금하다. 내주에 강연차 부산에 갈 일이 있는데, 가방에 챙겨놓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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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 이윤기가 말하는 쓰고 옮긴다는 것
이윤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10월
13,800원 → 12,420원(10%할인) / 마일리지 690원(5% 적립)
2013년 10월 12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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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 고독한 사람들의 사회학
노명우 지음 / 사월의책 / 2013년 10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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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밤 11시 잠들기전 배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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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먹고, 사랑하고, 가족을 이루는가?- 인간의 생존, 번식, 유대에 관한 다윈의 작은 가이드
미셸 레이몽 지음, 이희정 옮김 / 계단 / 2013년 10월
13,500원 → 12,150원(10%할인) / 마일리지 67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1월 6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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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과 리바이어던- 협력은 어떻게 이기심을 이기는가
요차이 벤클러 지음, 이현주 옮김 / 반비 / 2013년 10월
16,500원 → 14,850원(10%할인) / 마일리지 82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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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발견'을 하나 더 적는다. 이주의 또 다른 발견? 김민형의 <소수 공상>(반니, 2013)이 발견에 값하는 책이다. 국내서인가 하면 그렇진 않다. 옥스포드대 수학과 교수인 저자가 영어로 쓴 책을 수학을 전공한 역자가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질서와 혼돈의 경계 어딘가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소수에 대한 몇 가지 상상'이 부제. 짐작하겠지만 여기서 소수는 요즘 흔하게 쓰는 소수자의 소수가 아니라 약수가 1과 자기 자신뿐인 자연수를 가리킨다. 그 소수에 대한 공상이라고? 어떤 책인가.

 

정수론의 대가 옥스퍼드대 김민형 교수가 안내하는 유쾌한 수학의 세계. 기존에 우리가 해왔던 수학의 방식을 완전히 뒤집는다. 사실 우리가 의미도 모른 채 공식을 외고 문제풀이에 급급했던 수학의 개념들을 아주 색다른 방식으로 설명을 시도한다. 바로 수학이 필요한 것은 실용적인 쓰임새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계를 해석하는 하나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저자 김민형 교수는 수의 의미, 곱셈과 덧셈의 차이 같은 우리가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개념들을 사유하는 과정을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수란 무엇이고, 수학적 사고란 어떤 것이며, ‘수학 한다’는 것의 진짜 의미가 어떤 것인지를 몸소 보여준다.

저명한 수학자로 국내에 자주 소개된 저자는 많지 않은데, 당장 생각나는 이름은 이언 스튜어트이다. <위대한 수학문제들>(만니, 2013)과 <아름다움은 왜 진리인가>(승산, 2010) 등이 최근에 나온 책들이다(모두 같은 역자가 옮겼다).

 

복잡한 공식이 나오는 수학책은 나도 피하는 편이지만 간혹 원론적인 문제를 평이하게 다룬 책에는 흥미를 느낀다. 수학자나 수학사 관련서와 함께 '교양' 범주에 속한다고 생각해서다. <소수 공상>은 오랜만에 수학적으로 사고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 '보여주는' 흥미로운 책일 듯싶다...

 

13. 1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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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에 실린 북리뷰를 옮겨놓는다. 크리스티아 프릴랜드의 <플루토크라트>(열린책들, 2013)를 다룬 것인데, '슈퍼 리치', 신흥 갑부들을 다룬 책으로 뛰어날 뿐 아니라 현단계 자본주의의 특징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도 필수적인 책이다. 자본주의 이행기의 러시아를 다룬 저자의 전작, <세기의 세일: 러시아의 두번째 혁명 이야기>도 바로 주문했는데, 이 또한 소개되면 좋겠다.

 

 

 

중앙일보(13. 10. 12) 1대 99의 시대 ? 아니 0.1대 99.9의 시대

 

플루토크라트? 일단 제목부터 확인하자. 그리스어로 부(富)를 뜻하는 ‘플루토’와 권력을 의미하는 ‘크라토스’의 합성어로 ‘부와 권력을 다 가진 부유층’을 가리킨다. 좀더 구체적으로는 글로벌 자본주의의 승자로 부상한 0.1%의 신흥 갑부들이다.

이른바 ‘글로벌 수퍼리치’는 어떤 이들이고, 또 그들은 어떤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움직이는가. 언론인이자 산업 전문가인 저자는 플루토크라트의 세계를 놀랄 만큼 생생하고 정밀하게 보여준다. 곧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계급투쟁이 아니라 구체적인 데이터이다”라는 주장에 충실하다.

지금 우리가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간단한 데이터를 보자. 2005년을 기준으로 빌 게이츠의 재산은 465억 달러이고, 워런 버핏은 440억 달러다. 두 사람의 재산 합계는 미국 전체 인구의 하위 40%에 해당하는 1억 2,000만 명의 재산 총계 950억 달러에 육박한다. 예외적인 억만장자들이라고만 치부할 순 없다. 그들을 정점으로 한 새로운 수퍼엘리트 계급이 형성됐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세계는 ‘플루토크라트와 그 나머지’로 양분됐다.

새로운 플루토크라트의 등장 배경은 무엇인가. 레이건과 대처 시대의 부자 감세다. 레이건 행정부는 최상위 한계세율을 70%에서 28%로 삭감했다. 신자유주의의 확산은 소련과 동유럽 공산주의의 붕괴와 함께 더 가속화했다. 기술혁명과 세계화, 그리고 워싱턴 컨센서스의 등장이 세계경제를 변화시켰다.

브릭스(BRICS,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 국가들이 자본주의 체제에 본격 편입되면서 이들 신흥 국가들이 첫 번째 도금시대(鍍金時代)를 겪는 동안 서구사회는 두 번째 도금시대를 경험하고 있다. 이 쌍둥이 도금시대의 수혜를 최상층이 독점한 결과가 플루토크라트의 시대를 만들었다. 미국의 중산층이 차이나 신드롬에 밀려 점점 일자리를 잃어가는 동안에도 수퍼엘리트들은 천문학적인 소득을 올리며 부를 축적했다.

과거 부자들이 은수저를 물고 태어났기에 부자였다면 오늘날 플루토크라트들은 ‘일하는 부자’다. 그들은 부를 소비하는 것뿐 아니라 창조하는 데 탁월한 재능을 가졌다. 수퍼엘리트가 되기 위한 중요한 자질이 시차 적응이라고 할 만큼 그들은 전세계를 누비고 다닌다. “우리는 아내보다 비행기 승무원들을 더 잘 아는 그런 사람들이죠.”라고 말하는 부류다.

또한 자본주의를 일종의 해방신학으로 받아들여서 자유로운 시장이 곧 자유로운 인간의 조건이라고 믿는다. 더 이상 개별 국가의 국민이라는 정체성에 구애받지 않는 세계시민이고자 한다. 글로벌 자본주의 체제에서 기업들이 글로벌화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플루토크라트는 공익활동에도 열성적이어서 ‘박애 자본주의’의 실천자이기도 하다. 자본가는 선행을 실천해야 하고 선행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더욱더 진정한 자본가가 되어야 한다는 빌 게이츠의 ‘창조적 자본주의’에 대한 신념은 이들의 생각을 대변한다.

사실 빈부격차라면 원래 있었던 거 아닌가. 물론 그렇다. 하지만 현재의 격차는 유례가 없었다는 점에서 새롭다. 또 사정이 이렇게까지 극단적이지는 않았다. 미국의 경우, 1940~70년대 사이에는 부유층과 나머지 사이의 소득 격차가 줄어들었다. 상위 1%의 소득비중이 1940년에 16%였던 것이 70년에는 7% 아래로 떨어졌다. 빅3 자동차 기업과 노조와의 대타협으로 중산층의 소득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1970년대 후반부터 중산층의 소득은 정체된 반면 최상층은 폭주하기 시작했다. 1980년 미국 CEO의 평균소득이 근로자 소득의 42배였지만 2012년에는 380배로 치솟았다. 트리클 다운(Trickle Down·낙수효과)은 없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2년밖에 지나지 않은 2010년에도 세계경제는 전체적으로 6%나 성장했지만, 이 기간 소득 증가분의 93%는 상위 1%가 차지했다. 파이는 커지더라도 많은 사람의 몫은 오히려 더 줄어드는, 말 그대로 승자독식사회다.

흥미로운 것은 그 상위 1%도 분화돼 있다는 점. 부의 독점과 빈부격차의 확대에 대한 문제제기가 월가 점령시위의 이슈이기도 했던 ‘1 대 99 사회’이지만, 저자는 그 1% 내에서도 0.1%의 갑부들과 그 아래 0.9%의 부자들은 차원이 다르다고 말한다. 83년과 2000년 사이 경제전문지 ‘포브스’의 부자 목록에서도 상위 25%는 4.3배 더 부유해진 반면에 하위 75%는 2.1배 부유해지는 데 그쳤다. 5천만 달러 이상의 재산을 가진 ‘초고액 순자산 보유자’는 2011년 기준으로 전 세계에 8만4700명이 있는데, 그 중 2700명은 5억 달러를 보유하고 있다. 최상층과 중상층의 분리와 격차는 심각한 정치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진단이다.

“백만장자들이 스스로 억만장자의 뒤를 따라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고 있어야, 슈퍼엘리트들이 민주주의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런 믿음이 무너진다면? 계급전쟁은 1% 대 99% 사이에서가 아니라 0.1%(억만장자) 대 0.9%(백만장자) 사이에서 일어나게 될 것이라는 게 저자의 전망이다. 그렇다면 나머지 99%는 이 계급전쟁의 구경꾼에 불과한 것인가.

플루토크라트를 대놓고 비판하진 않지만, 부의 차이가 문화적 차이를 낳고 사회적 연대를 가로막는다는 저자의 지적은 온당하다. 사회적 분열과 적대 속에서도 과연 플루토크라트는 그들의 부와 힘을 유지할 수 있을까. 현단계 자본주의가 어디까지인지 알기 위해서라도 우리 ‘나머지’들이 탐독할 이유가 분명해 보인다.

 

13. 10. 12.

 

 

 

P.S. <플루토크라트>의 번역은 막힘이 없지만, 적어도 한 곳은 오역 같다. "보수적인 세계관을 가진 젊은이를 뜻하는 'young fogey'라는 표현도 <스펙테이터>가 1984년에 만들어낸 신조어다."(99쪽)에서 '1984년에 만들어낸 신조어'는 '<1984>식의 신어'가 아닐까. 소설 <1984>에 나오는 '뉴스피크(New Speak)' 말이다. 한편, 슈퍼리치를 다룬 책들은 이미 여럿 소개돼 있다. <플루토크라트>에다 더 얹어서 읽어볼 수 있겠다.

 

 

 

동시에 유례 없는 경제적 불평등이 지불해야 할 대가에 대한 책들도 필독해볼 만하다. 래리 바텔스의 <불평등 민주주의>(21세기북스, 2012), 원제가 '승자독식의 정치학'인  제이콥 해커와 폴 피어슨의 <부자들은 왜 우리를 힘들게 하는가?>(21세기북스, 2012), 그리고 조지프 스티글리츠의 <불평등의 대가>(열린채들, 2013)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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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의 '3인 1책 수다'를 발췌해놓는다(전문은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50131011140448§ion=03). 매달 진행해온 '수다'의 마지막 차례였는데, 지그문트 바우만의 책 <유행의 시대>(오월의봄,2013)와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동녘, 2013), 두 권을 거리로 삼았다. 바우만에 대한 소개는 이렇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2002년 <자유>(문성원 옮김, 이후 펴냄)가 처음 출간된 이래 꾸준히 주요 저작들이 국내에 소개되고 있는 사회학자다. 그는 1925년 유대인으로 태어나 제2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직접 체험한 뒤 홀로코스트, 마르크스주의, 현대성 등의 주제에 천착하며 깊이 있는 사유를 발전시켰다. 야만의 시대인 20세기를 관통한 뒤 예측 불가능한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이 현자의 통찰력은, 인간을 규정하는 조건들이 얼마나 무시무시하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지속적으로 일깨운다. 

 

 

프레시안(13. 10. 11) 가난은 '차이'일 뿐? 문제는 '지식'이야, 바보야!

 

(...)

 

이현우 : 바우만은 포스트모더니티나 포스트모던이라는 시대 규정 용어 대신, 자신이 만든 '유동하는 근대(리퀴드 모더니티)'라는 신조어를 사용합니다. 이 시리즈의 책을 많이 펴냈고, 국내에도 <액체근대>(이일수 옮김, 강 펴냄), <유동하는 공포>(함규진 옮김, 산책자 펴냄), <리퀴드 러브>(조형준·권태우 옮김, 새물결 펴냄) 등 다수가 소개됐어요. 포스트모던이라 통칭되는 시대에 대한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낸 사회학적인 공로가 있습니다. '포스트모더니티'라는 단어가 한국어 상으로는 '모더니티 이후' 정도의 의미 말고는 말해주는 게 별로 없는데, '리퀴드 모더니티'는 이미지로 강력하게 다가오는 지점이 있잖아요. 우리가 어떤 시대를 사는지에 대한 그림이나 조감도를 갖고자 할 때, 유력하게 참고할 만한 사회학적 통찰 아닌가 싶습니다.

 

 

지그문트 바우만 말고 국내에 이만큼 지속적으로 소개된 사회학자들이 거의 생각나질 않아요. 개인적인 독서 경험으로는 리처드 세넷 정도입니다. <뉴캐피털리즘>(유병선 옮김, 위즈덤하우스 펴냄), <불평등 사회의 인간 존중>(유강은 옮김, 문예출판사 펴냄), <장인>(김홍식 옮김, 21세기북스 펴냄), <투게더>(김병화 옮김, 현암사 펴냄) 등이 출간됐죠. 바우만과 세넷이 새로운 자본주의의 비슷한 시기를 각자의 입장에서 얘기하는 건데, 이 두 사람이 자주 소개되고 읽힌다는 건 그만큼 잘 읽히게끔 쓴다는 뜻일 것이고, 저자의 문제의식이 우리에게 어필하는 부분이 있다는 거겠죠.

이권우 : 포스트모던에 대한 기존 해설들이 체제의 연장이나 성숙을 강조했다면, 바우만은 '거대한 전환'이라는 강한 이미지를 부드럽게 이야기하는 쪽인 듯합니다. 그래서 '유동하는 근대'가 좋은 개념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시대를 특징짓는 개념어를 찾으려 하지만 쉽지 않은 문제잖아요. 바우만의 '유동하는 근대'는 신자유주의의 단말마적 비명이 체제 종결에 가까워지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사회를 고민해봐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자연스럽게 유도합니다.

우리에겐 다른 낙수 효과가 필요하다

이권우 : 그나저나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는 제목이 참 좋습니다.(웃음)

김용언 : 부제도 강력해요. '가진 것마저 빼앗기는 나에게 던지는 질문'.

 

이현우 : 이 책 서두에도 실린 성경 구절에서 따온 부제죠.

"가진 사람은 더 받아 넉넉하게 되겠지만 못 가진 사람은 그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마태복음 13장 12절)

사실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에 나오는 불평등의 현실은 누구나 다 아는 상식 같지만, 통계로 다시 확인했을 때 여전히 놀랍습니다. 1대 99도 미화된 겁니다. 0.1대 99.9의 사회라고 봐야 하죠. 바우만도 초반에 통계를 인용하고 있지만, 세계 최고 부자 1000명의 부를 합하면 가난한 25억 명의 재산을 전부 합친 것의 두 배에 달합니다. 인류 역사상 이런 시대가 없었어요. 통상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 하늘 아래 새로운 것 없다고 생각했지만 이제 새로운 시대, 새로운 불평등의 단계에 도달했다는 겁니다. 거기에 대한 자각이 우리에게 부족하지 않은가 싶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통계상의 조작까진 아니더라도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표현 중에, 상위 20퍼센트와 하위 20퍼센트 등의 문구를 떠올렸습니다. 그 문구 속에서 상위 20퍼센트 내의 차이가 지워지는 게 아닌가 싶어요. 내부에서도 엄청난 빈부의 격차가 존재하니까요. 아주 극소수의 과두 재벌과 일반적인 부유층과의 낙차마저도 상당히 커요.

이권우 : 이번에 정부가 증세개편안을 처음 내놨을 때 난리가 났죠. 연봉 5000만 원부터 증세하려 했던가요?

이현우 : 처음엔 3450만 원부터였어요. 그 정도 소득을 중산층으로 분류하려는 것 같은데 실질적으로는 생계유지에 가까운 층이죠.

김용언 : 방금 말씀하신 상위 20퍼센트 내의 낙차 때문에 생기는 기이한 분위기도 존재합니다. 우리가 보기엔 충분히 많이 번다고 느끼는 사람들조차 <조선일보> 등의 매체를 통해 "먹고 살기 힘들다", "교육비 빼고 나면 남는 게 없다" 등의 발언을 서슴지 않아요. 그 발언을 읽는 '중산층', 즉 3450만 원의 연봉을 받는 이들이 느끼는 박탈감이 예전과는 비할 수 없이 커지는 것 같습니다.

예전엔 집 한 채 있으면 나는 중산층이라고 믿었고. 한국에선 부동산을 통한 인생역전이 가능했기 때문에 언젠가 '위쪽 세계'로 진입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게 다 사라졌어요. 상위 20퍼센트 사람들도 먹고 살기 힘들다고 불평하는 마당에, 자신이 결코 '중산층'이 아니며 99.9퍼센트 저 아래쪽에 속해 있다는 것을, 그 현실과 꿈의 괴리를 이제야 조금씩 알아가는 것 같습니다.

이권우 :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22쪽에 흥미로운 문장이 나옵니다. 바우만이 <설국열차>를 본 걸까요?(웃음) "오늘날 사회적 불평등은 역사상 최초로 영구기관이 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 이 시대가 얼마나 강고하게 불평등의 구조를 체제화했는가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현우 : 바우만의 첫 번째 문제의식은 유례없는 불평등, 부의 편차이며, 두 번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회가 어떻게 유지되고 있는가입니다. 바우만은 '거짓 믿음'이라는 이데올로기의 유포 때문에 가능하다고 보지요. 우리도 많이 속아 넘어간 이데올로기인데, MB정부 때의 '낙수 효과' 주장이 틀렸다는 걸 지난 5년 동안 배웠잖아요. 기업의 이윤이 늘어나고 부유층의 소득이 늘어나면 자연스럽게 중산층과 서민에게까지 그 효과가 재분배될 것이라 주장했지만, 그 같은 경제학적 이론이나 예측이 통하지 않는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게 분명합니다.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49쪽에 보면, 바우만은 "아무런 증거가 없이도 '명백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암묵적 전제들' 네 가지를 제시합니다. 첫 번째는 '경제성장'이 어떤 문제든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이죠. 지금 박근혜 정부도 마찬가지로, 키워드만 창조경제로 바꾼 채 '성장이 우리를 구원하리라'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김용언 : '착한 성장'이라는 말도 나오더군요.(웃음)

이권우 : 암묵적 전제 두 번째가 '영구적으로 늘어나는 소비'입니다. 즉 '소비가 우리를 행복하게 하리라'죠.

이현우 : 세 번째는 "인간들 간의 불평등은 자연적인 것이다", 네 번째가 "경쟁은 사회 질서의 재생산과 사회 정의의 필요충분조건이다"입니다.


 

(...)

 

이현우 : 개인적으로 이 정도 수준의 책은 고등학생들도 읽고 토론하는 단계까지 가야 뭔가 변화의 계기가 마련될 것 강습니다.

이권우 : 결국 낙수 효과가 없다는 이야기를 어떻게 '낙수'시킬 수 있을까, 그걸 고민해야겠네요.

이현우 : 비판적인 인식의 낙수 효과, 성장신화의 낙수 효과를 대체할 수 있는 것의 낙수 효과가 필요하지요.

이권우 : 이런 상황에서 대안적 세력이 시민적 지지를 받지 못한다는 건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명백한 자료, 낙수 효과의 허위에 대한 통계 자료를 보여주어도 시민들을 설득하지 못한다는 건, 우리의 광범위한 대안적 세력들이 게으르거나 설득력이 부족하거나 둘 중 하나겠죠.

이현우 : 부족한 부분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적들의 관리가 뛰어나요. <유행의 시대> 65쪽에 보면 그와 연결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과 다투면 부자들이 신이 나서 손을 비벼댈 이유는 수도 없이 많다." 이 문장 바로 위쪽, 리처드 로티의 <미국 만들기>(임옥희 옮김, 동문선 펴냄)에서 바우만이 인용한 부분을 볼까요.

"프롤레타리아의 정신을 다른 데로 돌리는 게 목표이다. 미국인의 하위 75퍼센트와 전 세계 인구의 하위 95퍼센트가 민족적, 종교적 적개심, 성적인 관습에 관한 논쟁으로 정신을 못 차리게 하는 것이다. 가끔 일어나는 짧은 유혈 전쟁을 포함하여 미디어가 만들어내는 의사사건(pseudo-events)으로 프롤레타리아의 주의를 자신들의 절망에서 다른 곳으로 돌릴 수만 있다면, 엄청나게 부유한 사람들은 별로 두려울 일이 없을 것이다."

빈부의 차이, 제도 불평등에 대한 인식에 대한 관심으로 옆으로 돌리는 것. 한국 사회의 경우 지역주의가 바로 그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한국의 과거 기득권층의 최대 발명품이 지역주의라고 봐요. 여전히 여론 시장을 장악해요. 상징적인 게 지역주의 아이콘이었던 분이 지금 대통령 비서실장을 하고 계시잖아요. '우리가 남이가'주의가 여전히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게 우리사회의 불편한 진실 같습니다. 이 역시 가난한 사람들끼리 다투도록 만드는 조작의 일종이죠.

이권우 : 지역주의에 명백하게 덧붙일 다른 요소는 남북간 적대적 공존이지요.

이현우 : 강준만 교수의 표현을 빌려오자면 '내부식민지'가 그런 식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다문화주의'의 아름다운 허상

이권우 :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에서 '소비가 우리를 행복하게 하리라'라는 맹목적인 믿음의 문제점을 지적했던 바우만이, <유행의 시대>에서도 비슷한 관점을 취하는지 살펴볼까요.

이현우 : <유행의 시대> 41쪽에 비슷한 문제의식이 있습니다.

"모든 것을 아우르는 오늘날의 문화는 사람들이 셔츠를 갈아입거나 양말을 갈아 신는 것만큼이나 자주, 빨리, 능숙하게 자신의 정체성(또는 최소한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모습)을 바꾸는 능력을 습득하도록 요구한다."

당신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더 나은 존재가 될 수 있다, 무언가를 소비한다면. 이런 식의 소비주의가 말하자면 유동하는 자기 정체성이며, 경제적 논리와 완벽하게 부합하게 됩니다.

이권우 : 경제성장을 촉진하려면 소비가 당연히 이뤄져야 합니다. 둘은 쌍생아 격인데요.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75쪽을 인용하겠습니다.

"행복 추구는 곧 쇼핑이라는 것, 행복은 상점 진열대에서 찾아야 하고 상품 진열대에서 발견되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 오늘날 이것은 자명한 공리이다."

그리고 바로 옆 페이지 74쪽을 보면, "그러한 믿음들은 현재의 소비자와 장차 소비자가 될 사람들에게 제공되는 화려한 상품들(행복한 삶과 동일한 것으로 생각되는 보상들)의 향연에 매일 초대받지만 결국은 매일 같이 배제되고 참석을 거부당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분노와 원한이 생겨나고 쌓이는 것을 막지는 못 한다."

그런데 이 자체의 흐름을 왜 거부하지 못할까요. 자신들이 배제되고 거부당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쌓이는 분노와 원한이 왜 지금의 체제를 붕괴시키는 데 기여하지 못할까요.

(...)

 

13. 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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