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자주 마신다고 해서 꼭 커피의 역사에까지 관심을 가져야 하는 건 아니지만, 커피를 마시며 그런 책을 읽는 것도 제법 그럴 듯하지 않을까 싶다. 마크 펜더그라스트의 <매혹과 잔혹의 커피사>(을유문화사, 2013)가 그런 책의 하나다. "커피에 얽힌 정치, 경제, 문화, 전쟁 등이 흥미롭게 전개되는 커피사 책. 기존에 커피의 역사에 대해 다뤘던 책들은 1930년대에 출간된 것으로, 최근의 이야기가 담기지 않았지만 이 책의 원서는 2010년 10월에 출간돼 최근의 흐름까지 담고 있다"고 소개된다. 커피의 역사를 다룬 책이 몇 권 더 있었다는 기억이 나서 리스트로 묶어놓는다(하인리히 야콥의 <커피의 역사>는 번역이 두 종이다). 이런 일도 기억날 때 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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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혹과 잔혹의 커피사
마크 펜더그라스트 지음, 정미나 옮김 / 을유문화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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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커피의 역사- 세계 경제를 뒤흔드는 물질의 일대기, 완역본
하인리히 에두아르트 야콥 지음, 남덕현 옮김 / 자연과생태 / 2013년 10월
22,000원 → 19,800원(10%할인) / 마일리지 1,1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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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커피의 역사- 개정판
하인리히 E. 야콥 지음, 박은영 옮김 / 우물이있는집 / 2005년 5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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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커피, 설탕, 차의 세계사
이윤섭 지음 / 필맥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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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시사IN(325호)에 실은 서평을 옮겨놓는다. 지그문트 바우만의 <이것은 일기가 아니다>(자음과모음, 2013)를 서평감으로 골라서 썼다. 바우만의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읽고 음미할 만한 통찰과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책이다. 번역과 편집이 기대에 미치지 못해 아쉽다(특히 앞부분의 번역이 좋지 않으며 부분적으로 본문과 인용문이 구별돼 있지 않은 편집도 독서를 방해한다). 여하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우만의 모든 책'이다. 더 밀리기 전에 부지런히 읽어두어야겠다...

 

 

 

시사IN(13. 12. 07) 정부가 거짓말을 고안하는 이유

 

출간 종수가 한 가지 기준이 된다면 올해의 저자로 가장 유력한 이가 폴란드 출신의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이다. 2002년부터 국내에 소개된 단독 저서가 열다섯 권에 이르는데, 그 가운데 일곱 권이 올해 출간됐다. 직접적인 계기는 2012년 여름에 나온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동녘)이 독자들의 호응을 얻어낸 덕분으로 보이는데, 1925년생으로 아흔에 가까운 노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활발하게 저서를 펴내고 있어서 앞으로도 당분간은 우리에게 친숙한 이름이 될 듯싶다.


2010년 9월부터 2011년 3월까지 쓴 바우만의 일기를 묶은 <이것은 일기가 아니다>(자음과모음)는 이 괄목할 만한 지식인 학자의 사색과 성찰의 깊이를 아주 가깝게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것은 일기가 아니다’라는 제목이 붙은 건 일상의 고백보다는 동시대의 이슈들에 대한 성찰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굳이 일기란 형식을 갖게 된 데는 이유가 없지 않다. 고백에 따르면 바우만은 ‘하루 복용량’과도 같이 매일매일 글을 쓰지 못하면 고통에 빠지는 글쓰기 중독자이기도 하지만, 글을 쓸 수밖에 없는 이슈들도 끊임없이 발생한다. 그의 지적 호기심은 은퇴를 거부하지만 신체의 나이는 그 호기심을 충족시킬 만한 충분한 능력을 더 이상 허용하지 않는다. 일기는 그런 욕구와 여건 사이의 타협책이다.

 


우리시대의 현자는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프랑스의 사례를 보자. 바우만에 따르면 21세기는 ‘밀레니엄 버그’라는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거짓말과 함께 도래했다. 종말론적 상상이 판을 쳤지만 지구의 종말은 오지 않았다. 하지만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대중의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고, 실제로 안정적인 직업과 수입에 대한 전망은 불투명해졌다. 이런 불안과 혼란을 배경으로 등장한 이가 2002년에 내무부 장관으로 부임했던 니콜라스 사르코지다. 그는 정부를 신뢰할 수 있는 새로운 시대를 약속하여 대중의 지지를 끌어냈다.


사르코지는 어떤 일을 했던가. 그는 사회적 불안과 공포의 원인을 알아냈다고 말하고 교외의 빈민구역(방리유)을 지목했다. 이 ‘악의 근원’을 근절한다는 명분으로 그는 강력한 공권력을 동원했다. 그리고 마치 작전과도 같은 정부의 조치가 미디어를 통해서 보도되면서 정부가 약속을 지키기 위해 뭔가를 하고 있다는 인상을 대중에게 심어주었다. 이런 경력을 바탕으로 사르코지는 2007년에 프랑스 대통령으로까지 선출됐고, 그의 후임 내무장관 역시 사르코지의 수법을 똑같이 따르고 있다.


하지만 ‘안전하지 못한 사회와의 전쟁’이 두 번 반복되면서 국민들은 그것이 아무런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는 제스처에 불과하다는 걸 알게 됐다. 사르코지는 실패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 국민의 눈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지만 한시적으로라도 그 관심을 정말로 중요한 문제들에서 돌리게 할 수는 있었다. 그사이 또 다른 거짓말을 고안해내면 되는 일이었다. 게다가 정부의 약속에 대한 국민적 불신과 무관심을 키움으로써 정부가 해줄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는 생각을 갖게 하고, 사회적 불안을 항구적인 것으로 만듦으로써 극우 근본주의의 기반을 강화한 것도 사르코지의 성과다. 이와 유사한 일이 베를루스코니 정부 시대의 이탈리아에서, 그리고 이명박 정부 시대의 한국에서 버젓이 벌어지지 않았던가. 아니 과거형으로만 말하는 것은 온당하지 못하다. 우리에겐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니까. 그런 점에서 여전히 바우만에게서 배울 게 아직 많다. 다만 <이것은 일기가 아니다>의 일부 부정확한 번역이 그러한 배움에 장애가 돼 아쉽다.

 

13. 12.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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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몇 안 되는 일본어 단어 가운데 하나가 '가와이이'다('가와이'로 알았는데, '이'가 장음인가 보다). 귀엽다는 뜻(언젠가 한 뒷풀이 자리에서 김애란 작가에게 듣고 '가와이이'란 말의 쓰임새를 알았다). 신간 가운데 요모타 이누히코의 <가와이이 제국 일본>(펜타그램, 2013)은 바로 그 '가와이이' 현상에 초점을 맞춘 일본문화 비평서다. '세계를 제패한 일본 ‘귀요미’ 미학의 이데올로기'가 부제. 놀랍게도 일본에서도 이 주제를 다룬 첫 책이라고 한다. 소개는 이렇다.

 

저자 요모타 이누히코가 말했듯이 “그토록 중요한 주제인데도 아직까지 본격적인 분석의 대상이 된 적이 없는 ‘가와이이’ 현상을 최초로 다룬 책”이다. 이 책은 1990년대의 소녀 문화 연구 단계에서 한 걸음 나아가, ‘가와이이’를 학술적 연구 대상으로 자리매김했다는 연구사적 의의도 갖고 있는 것이다. <가와이이 제국 일본>이 만화나 애니메이션은 물론, 일본 팝컬처 전반이 품고 있는 근원적인 어떤 것을 파악하는 데에 중요한 힌트를 던져 줄 것이라 기대한다.

비단 일본문화 비평서로서만 의미를 갖는 건 아니다. "가와이이’라는 말은 이미, 오늘의 일본과 일본 문화를 읽어내는 데에 가장 핵심적인 키워드다.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대중소비문화의 중요한 속성으로 퍼져나가고 있다"는 진단에 동의한다면, 일반적 현상에 대한 분석으로도 의미가 있는 셈.

 

저자는 '일본을 대표하는 영화사가 겸 평론가'라고 소개되는데, 이름은 입에 익지 않았지만 검색해보니 <일본영화의 래디컬한 의지>(소명출판, 2011)의 저자다. 장바구니에 장기 체류중인 책인데, 가격이 만만찮아서 보류중이지만 언젠가 품절되기 전에 구입해야겠다는 생각은 갖고 있다. 그 외 <라블레의 아이들>(씨네21북스, 2012; 빨간머리, 2009)란 책도 나와 있는데, 무슨 책인가 궁금해 오전에 주문해서 받았다. 내용은 '천재들의 식탁'이란 부제 그대로다.

저자는 천재적인 예술가들이 남긴 엄청난 양의 자료를 샅샅이 뒤져, 그들이 즐겨 먹었던 음식들을 그대로 재현해 냈다.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카레 전골’, 문학 평론가 요시모토 다카아키의 ‘니쿠 프라이’, 다치하라 마사아키의 ‘산채 요리’처럼 요리를 함께 먹던 사람들끼리의 연대감과 그 음식을 먹던 당시의 상황의 그리움이 담긴 음식에서부터 이탈리아 미래파의 독특하면서도 유쾌한 요리, 라프카디오 헌과 폴 볼스처럼 개인의 역사적 삶의 습곡 속에서 끄집어낸 고국에 대한 향수가 어려 있는 요리, <연인>을 쓴 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소녀 시절의 식민지에서의 체험을 통해 익힌 맛의 감각과 그 지속적인 맛의 기억, 화가 조지아 오키프의 인생의 덧칠을 다 빼버린 듯한 담백함 속에 느껴지는 ‘텃밭 채소 샐러드’, 혁명적인 삶을 살다간 이사도라 던컨의 ‘캐비아 포식’, 탐미파 작가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감잎 초밥’과 어둠 속에서 먹는 ‘화퇴백채’라는 요리와 그 행위가 주는 기묘한 에로티시즘, 기호학자 롤랑 바르트의 섬세하면서도 예리한 ‘덴푸라 예찬’...

소개가 한참 더 이어지는 걸 끊었다. 이 정도면 '잡학다식'의 한 표본이다. 여하튼 이런 예상 밖의 책들은 별미다. 정색하는 책들만 읽다가 막힌 숨통을 틔어주기에.

 

 

이누히코의 책은 생각보다 많이 소개돼 있는데, 아쉽게도 영화 관련서들이 모두 절판된 상태다. <일본영화의 래디컬한 의지>의 전사로 읽을 수 있는 <일본영화의 이해>(현암사, 2001)를 구할 수 없는 게 특히 유감이다. <오시마 나기사의 세계>(문화학교서울, 2003)과 <만화원론>(시공사, 2000)도 다시 통할 수 있지 않을까? 뒤늦게 발견한 독자들을 배려해서라도 복간되기를 기대한다...

 

13. 12.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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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한겨레의 '로쟈의 번역서 읽기'를 옮겨놓는다. 헤밍웨이의 걸작 <노인과 바다>를 읽은 소감을 적었다(분량상 일부밖에 다루지 못했다). <노인과 바다>를 헤겔의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이란 시각에서 바라본 것은 조르주 바타유의 견해에 빚진 것으로 그는 '헤겔의 빛에 비춰본 헤밍웨이'(1952)란 작가론을 쓴 바 있다. 이에 대한 소개는 김윤식의 <비평가의 사계>(랜덤하우스, 2007)를 참고했다.

 

 

한겨레(13. 12. 02) 노인과 청새치의 존재 증명 투쟁

 

‘헤밍웨이가 쓴 최고의 이야기’로 꼽히는 <노인과 바다>는 알다시피 혼자 고기잡이를 나간 노인이 오랜 사투 끝에 청새치를 잡지만 돌아오는 길에 상어 떼를 만나 다 뜯기고 뼈만 앙상하게 남은 고기와 함께 귀항한다는 내용이다. 물론 이런 줄거리가 말해주는 건 별로 없다. 작품의 말미에서 거대한 꼬리와 하얀 등뼈만 남은 청새치를 두고 멋진 상어라고 감탄하는 관광객 신세가 되지 않으려면, 우리도 자칭 ‘이상한 노인’을 따라나서 그가 무엇을 상대로 어떻게 사투를 벌였는지 직접 목격하는 게 최선이다.

 

84일 동안 고기를 한 마리도 못 잡은 산티아고 노인은 사십일까지는 동행하던 소년의 부모가 이른 대로 이젠 운수가 바닥이 난 것처럼 보인다. 전설적인 어부였는지 모르지만 이제 더는 그렇지 않다. 그는 늙었다. 하지만 그의 두 눈은 여전히 생기와 불굴의 의지로 빛난다. 그는 85가 행운의 숫자라고 믿으며 다시금 출항한다. 그는 거대한 물고기를 잡기 위해 먼바다에 가서 깊이 낚싯줄을 드리운다. 예상을 훌쩍 넘어선 대단한 놈이 미끼를 물고 사흘간의 쟁투가 벌어진다. ‘평생 듣도 보도 못한 굉장한 물고기’와의 무모한 사투는 노인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가.

 

사랑하고 존경한다고까지 말하지만 노인은 상대인 청새치를 죽이려고 한다. 생계는 부차적이다. “나는 인간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또 얼마나 견뎌낼 수 있는지 놈에게 보여주고 말겠어”라는 게 그의 결심이다. 즉, 그는 자기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싸운다. 헤겔 식으로 말하면 누가 주인인지를 겨루는 ‘인정투쟁’이다. 생사를 건 이 투쟁에서 비켜나 패배를 자인하면 노예로 전락한다. 더불어 이 투쟁에선 과거의 증명이 아무 의미를 갖지 못한다. ‘지금 이 순간’이 전부이며 매번 새롭게 자기를 증명해 보여야 한다. 서로를 닮은 이상한 노인과 이상한 물고기의 자존심까지 건 쟁투가 갖는 의미다.

 

 

마침내 수면으로까지 올라온 거대한 청새치를 작살로 꽂아서 죽인 노인은 이렇게 중얼거린다. “난 지쳐 빠진 늙은이야. 하지만 내 형제인 저 물고기를 죽였고, 이제부터 고된 잡일을 해야만 해.” 자기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인정투쟁이 주인의 노동이라면 나머지 뒤치다꺼리는 노예의 노동이다. ‘고된 잡일’(문학동네)은 ‘노예의 일’(slave work)을 옮긴 것인데, 다른 번역본에서는 ‘궂은일’(시공사), ‘잡일’(열린책들), ‘노예처럼 더러운 노동’(민음사) 등으로 옮겼다. 청새치가 흘린 피 냄새를 맡고 몰려든 상어 떼와의 싸움도 마찬가지로 뒤치다꺼리라고 해야 할까. 똑같은 사투처럼 보이지만 자기의 소유를 방어하기 위한 싸움과 자기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싸움은 종류가 다르다. 통상 바다는 생존투쟁의 공간이지만 노인에게는 인정투쟁의 공간이기도 했다.

 

인간은 파멸할지언정 결코 패배하지는 않는다는 게 노인의 신념이자 작품의 주제다. 노인과 대등하게 맞섰던 청새치는 죽음을 맞았지만 그 또한 패배하지 않았다. 상어들에게 계속 전리품이 뜯겨나가는 중에도 노인이 물고기가 자유롭게 헤엄칠 수 있다면 상어 놈들과 어떻게 싸웠을까를 생각하며 즐거워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둘은 모두 죽을 때까지 싸운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우리는 단지 살아남기 위해서 사는 노예일 수 없다는 걸 노인은 온몸의 고투로 보여준다.

 

13. 12.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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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전공자들에겐 친숙한 이름일지 모르겠지만 크리스토퍼 알렉산더는 최근에야 알게 됐다. 물론 그의 책이 출간됐기 때문인데, 건축분야의 고전을 소개하는 'ag클래식'의 첫권으로 나온 <영원의 건축>(안그라픽스, 2013)이 그것이다. 절판됐지만 그보다 먼저 <건축, 도시 형태론1,2>(태림문화사, 2010)가 나왔었고, 공저로는 <패턴 랭귀지>(인사이트, 2013)가 소개돼 있다. <패턴 랭귀지>는 무려 1158쪽에 달하는 책이다. 그 <패턴 랭귀지>의 철학적 배경을 제공하는 책이 바로 <영원의 건축>이라고.

 

영국의 건축가이자 건축 이론가 크리스토퍼 알렉산더가 1979년에 쓴 이 책은 건축과 건축물, 그리고 도시계획에 대한 새로운 대안을 담고 있으며,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버클리의 환경구조센터가 펴낸 시리즈의 첫 번째 책으로, 「패턴 랭귀지」와 「오리건대학교의 실험」의 철학적 배경을 제공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패턴 언어’의 개념을 제시한다. 패턴 언어의 기본 아이디어는, 건축물을 설계할 때 자주 등장하는 동일한 형태의 설계 내용이다. 이런 것들을 하나의 언어로 보고 다른 건축물을 설계할 때 이 패턴 언어를 재사용하는 것이 여러 가지 면에서 이득을 가져다준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철학적 배경'을 제공한다는 말에서 짐작할 수 있지만 <영원의 건축>은 마치 현자나 구루의 책처럼 읽힌다. 왜 그런지는 아래의 소개를 읽으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영원의 건축>은 건축 책으로서는 흔치 않게 기술적인 부분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고, 산문시나 경전 같은 통찰로 이루어져 있다. 실제로 혹자는 이 책을 건축 책이 아니라 건축을 사례로 이용한 철학책으로 보기도 한다. 이처럼 시류에 얽매이지 않는 특성 때문에 이 책은 출간된 지 3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건축비평 분야에서 스테디셀러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 책이 다른 건축 서적과는 달리 수십 년 동안 인정받고 있는 이유는, 그저 스타일 때문만이 아니다. 이 책에는 단순하면서도 시간을 초월한 진리가 담겨 있다. 이 진리는 특별한 깨달음을 통할 필요 없이, 누구에게나 있는 자연스러운 언어의 힘을 따르면 얻을 수 있다.


지은이는 건축 전문가나 대규모 개발업체가 주도하는 오늘날의 건축 행태가 인간의 본성에서 멀어지고 있다고 개탄한다. 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사람이다. 이 사람과 멀어진 채 기능과 스타일에만 치중한 건축물에서, 사람들은 편안함과 자연스러움을 느낄 수 없다. 그리고 그러한 건축은 영원하지 않다. 이 책은 패턴 언어가 만들어줄 조화로운 세상을 때로는 시처럼 때로는 잠언처럼 아름답게 묘사한다. 글을 읽다보면 이 책이 궁극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어떻게 건물을 지을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가 언급한 적이 있지만, 건축철학 내지는 건축가를 위한 철학에 대한 관심을 다시금 부추기는 책인데, 안 그래도 '건축가를 위한 철학'(Thinkers for Architects) 시리즈의 <하이데거>(스페이스타임, 2013)가 최근데 재번역돼 나오기도 했다. 이 주제의 책들도 조금씩 모아놓고는 있는데, 언제쯤 여유를 낼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군...

 

13. 12.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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