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나온 에밀 시오랑의 <지금 이순간, 나는 아프다>(챕터하우스, 2013)의 부제가 '태어남의 불행에 대해'다. 사실은 원제가 그렇다. 책은 <내 생일날의 고독>(실험출판사, 1981; 에디터, 1994)이란 제목으로 두 차례 나온 바 있다. 나는 1994년판을 갖고 있는데, 그때 부제는 '태어남의 잘못에 대하여'였다. 그때도 원제를 살린 제목으로 나왔더라면 했는데, 이번에 또 한번 감상적인 제목으로 개명돼 유감스럽다. 과거 시몬 베유의 책 대다수가 그렇게 떡칠이 되더니 시오랑의 책들도 비슷한 신세다(압권은 <역사와 유토피아>란 책이 <세상을 어둡게 보는 법>이란 제목으로 나온 것. 부제가 '인간과 역사에 대한 철학적 험담'이었다).

 

 

현재 구할 수 있는 시오랑의 책은 <절망의 맨끝에서>를 옮긴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챕터하우스, 2013)와 <독설의 팡세>(문학동네, 2004)가 더 있다(고작 세 권이다). 원제대로 번역된 책은 한권도 없다(<독설의 팡세>는 <고뇌의 삼단논법>을 옮긴 것). 게다가 올헤부터 시오랑 책들을 내고 있는 챕터하우스는 무슨 창조적 발상인지 표지마다 꽃그림이다. 참고로 불어판 원서의 표지는 이렇다.

 

 

 

새로 창조할 것도 없이 비슷하게 흉내라도 냈다면 더 나았겠다. 2004년판의 표지는 이랬었다.

 

 

 

이 책이 347쪽이었는데, <지금 이순간, 나는 아프다>는 296쪽이다. 통상 행수가 줄고 여백이 늘어나는 추세를 감안하면 분량이 줄어든다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분량을 덜어냈다면 한번 더 '태어남의 불행'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절망과 폐허의 철학자'의 책이라고 해서 이렇게 무성의하게 출간해도 좋은 것인지 책을 장바구니에 넣었다가 한번 더 생각해보게 된다...

 

13. 12. 08.

 

P.S. 분량이 줄어든 것 아닌가란 의혹에 대해 출판사 측에서 답변을 보내왔다(방명록 참고). 다행스럽게도 분량은 줄어들지 않았다는 것이고, 다만 1990년판에 실렸던 인터뷰가 빠졌다는 설명이다.  

마지막으로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분량에 대해서는, 이번 도서는 불어 원서와 일일이 대조를 하였고, 한 구절도 빼지 않고 오히려 몇 구절을 추가하였습니다. 분량이 많이 줄어든 것은, 단순히 페이지로 비교되지 않는 행이나 자간의 차이와, 1990년도 한국어판 도서에 있는 <에밀 시오랑의 인터뷰> 부분이 빠진 것인데, 갈리마르판 불어 원서에 들어 있지 않아서 넣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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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기 전 막간에 '이주의 책'을 골라놓는다. 타이틀북은 오찬호의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개마고원, 2013). '괴물이 된 이십대의 자화상'이 부제. "인간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에는 사회의 ‘지적 총량’이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친다는 생각 아래, 현대사회가 개인의 생활스타일을 어떻게 창출하는지에 대해서 관심이 많다"는 저자의 첫 책이다.

 

부제대로 이십대 문제/담론을 다루는데, "오늘날 이십대들은 마냥 고통 받는 것만이 아니라, 그 고통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적극 찬성하기까지 하며 스스로도 다른 이들에게 고통을 주는 데 앞장서기도 한다. 이런 기묘한 상황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이십대 문제를 결코 풀 수 없을 것"이라는 게 문제의식이다.   

 

두번째 책은 이승욱, 김은산의 <애완의 시대>(문학동네, 2013). '길들여진 어른들의 나라, 대한민국의 자화상'이 부제이며, <대한민국 부모>(문학동네, 2012)란 책으로 화제를 모았던 저자들의 두번째 책이다. "저자들은 그들의 장기를 살려 경제 성장과 산업화라는 국가적 위업 아래 숨죽여 살았던 각 개인의 삶을 세대별로 파노라마처럼 그려내고, 그 개인의 삶이라는 낱개의 조각들로 한국 사회가 과연 어떤 삶의 총합인지, 그리고 어떻게 직조되었는지 보여주는 거대한 모자이크판을 완성한다."

 

 

세번째 책은 글모음집 <나는 천천히 울기 시작했다>(봄날의책, 2013). "좋은 작가, 좋은 글을 한자리에 오롯이 모았다. 김소연, 김연수, 성석제, 오은, 서효인 작가 등 시인과 소설가의 손끝에서 만들어진 글부터 강광석, 류상진, 박성대, 유소림, 최용탁 작가 등 삶의 현장에서 만들어진 글까지. 어느 하나 예외 없이 노동과 삶과 내면의 풍경을 담담하고 유쾌하게 풀어냈다." 그리고 네번째 책은 <나는 천천히 울기 시작했다>에도 글을 보탠 사진작가 노순택의 <잃어버린 보온병을 찾아서>(오마이북, 2013). 이번에도 분단 문제를 다룬 사진과 일기를 같이 엮었다.  

 

 

끝으로 다섯번째 책은 클로드 케텔의 <장벽>(명랑한지성, 2013)이다. "프랑스의 역사학자 클로드 케텔은 우리 시대를 초세계화, 국경 없는 세계라 칭하는 천진한 발상에 제동을 걸면서,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장벽을 통해 인류의 역사를 재조명하고 있다." '장벽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게 '인간의 또 다른 역사'가 보여주는 현실이다. 우리의 분단 현실을 좀더 보편적인 시야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해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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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괴물이 된 이십대의 자화상
오찬호 지음 / 개마고원 / 2013년 12월
14,000원 → 12,600원(10%할인) / 마일리지 7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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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완의 시대- 길들여진 어른들의 나라, 대한민국의 자화상
이승욱.김은산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11월
14,000원 → 13,300원(5%할인) / 마일리지 420원(3%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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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는 천천히 울기 시작했다- 노동의 풍경과 삶의 향기를 담은 내 인생의 문장들
강광석 외 지음, 박지홍.이연희 엮음, 노순택 사진 / 봄날의책 / 2013년 11월
13,000원 → 11,700원(10%할인) / 마일리지 6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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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보온병을 찾아서- 분단인의 거울일기
노순택 글.사진 / 오마이북 / 2013년 12월
23,000원 → 20,700원(10%할인) / 마일리지 1,15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1월 6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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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에 실은 북리뷰를 옮겨놓는다. 사회학자 송호근 교수의 <시민의 탄생>(민음사, 2013)에 대한 서평을 청탁받아 쓴 것인데, 묵직한 문제의식과 통찰을 유려한 문체로 실어나르고 있는 수작이다. 저자의 전작 <인민의 탄생>(민음사, 2012)과 정치학자 최정운 교수의 <한국인의 탄생>(미지북스, 2013)와 겹쳐 읽으면 좋겠다(그런 생각으로 두 권을 찾았지만 끝내 아직 못 찾고 있다. 책을 구입하고도 못 읽는 신세라니!). 3부작의 마지막 권인 <현대 한국 사회의 탄생>도 출간을 고대한다.   

 

 

 

중앙일보(13. 12. 07) 문자와 동학, 근대 시민을 깨우다

 

한국에서 근대국가와 근대사회, 그리고 근대인은 언제 출현했는가. 사회학자 송호근 교수가 화두로 삼은 물음이다. 서양의 근대가 뚜렷하고 분명한 모습을 띠고 있기에 그 기원과 진화 양상을 충분히 재구성해볼 수 있지만 한국은 사정이 그렇지 않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한국의 근대는 그 기원과 진화의 궤적이 모호하다. 한국 현대사회의 특질에 대한 분석에 몰두해온 사회학자로서 명확히 해명되지 않는 이 기원의 문제에 항상 갈증을 느껴왔다는 그가 결국 직접 팔을 걷어붙였다.

물론 근대의 기점과 성격에 관한 연구가 없지 않았다. 아니 한국사 연구의 뜨거운 쟁점 가운데 하나였다. 과문하지만 상식에 기대보면,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함께 비로소 서양식 근대가 이식됐다고 보는 식민지 근대화론이 한쪽에 있다. 반면 다른 쪽엔 18세기에 이미 토지 소유관계의 변화와 함께 근대 자본주의의 맹아가 싹텄다고 보는 자생적 근대화론이 있다.

식민지 근대화론에 따르면 일본의 식민지배는 긍정과 부정의 양면적 성격을 띠며, 자생적 근대화론에 따르면 일본의 지배는 우리의 자생적 근대화의 길을 차단하고 굴절시킨 혐의를 피할 수 없다. 그 외에 근대라는 역사적 범주가 서양사를 기준으로 한 것이며 한국사의 특수성은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이라는 일반적 틀로 재단하기 어렵다는 근대 회의론도 있다.

입장은 다르지만 근대의 핵심을 자본주의 경제체제와 국민국가라는 정치체제의 결합으로 이해한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다. 자본주의 근대로 나갈 수 있는 역량을 일제의 강점 이전에 우리가 갖고 있었느냐 없었느냐가 주된 쟁점이었다.

 

 

하지만 전작인 『인민의 탄생』에서와 마찬가지로 송 교수는 ‘공론장 분석’이라는 새로운 방법론을 채택한다. 공론장의 구조변동에 관한 하버마스에 선구적 연구에 기대어 저자는 공론장의 분석을 아예 조선의 전반적 역사 변동과정을 설명하는 통시적 분석틀로 삼는다. 책의 부제가 ‘조선의 근대와 공론장의 지각 변동’으로 붙여진 이유다. 저자는 “조선의 역사 변동은 공론장 구조 변동의 역사”라고까지 말한다.

그러한 관점에서 볼 때, 19세기 중반 이후 조선은 한 시대가 저물고 질적으로 전혀 다른 시대가 다가오는 전환기였다. 이 전환기를 가리키는 이름이 ‘말안장 시대’(1860~94)다. 1860년대 전국 각지에서 봉건 질서와 지배층에 반기를 든 민란의 시대가 도래했고, 저자의 표현으로 문자해독력을 갖춘 ‘문해인민’(文解人民)은 주체의식과 존재론적 자각을 갖게 된 ‘자각인민’으로 진화했다. 이 시대를 특징짓는 건 양반 공론장의 쇠퇴와 평민 공론장의 확대다.

19세기 전반기 60년간의 세도정치로 인해 조선을 지탱해온 지식과 권력의 선순환이 차단되고 차츰 서양의 위협과 직면하면서 더 이상 성리학적 천(天) 개념은 유지되기 어려웠다. 문명과의 관계를 재설정하는 천 개념의 변용이 불가피했지만, 지배층이 내세운 위정척사(衛正斥邪)와 동도서기(東道西器), 문명개화 등의 세 가지 태도는 여전히 ‘지배층의 천’만을 고려한 것 일뿐 ‘인민의 천’에 대한 고려는 없었다.

인민의 천은 동학에서 새로운 근거를 마련하게 되는데, 동학은 인민도 스스로 천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해준 매우 파격적인 ‘종교 개혁’이었다. 이렇듯 지배층의 천과 인민의 천이 분리되면서 역사 또한 지배층의 역사와 인민의 역사로 분리되며, 이 두 역사는 1894년에 서로 충돌하면서 모두의 실패로 끝난다.

말안장 시대에 이어지는 시대가 갑오정권에서 대한제국에 이르는 근대 이행기이다. 공론장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 시기는 지식인 공론장이 형성되고, 평민 공론장이 세속적 평민 공론장으로 부활하며, 이 두 공론장이 서로 연대하고 공명한다는 데서 그 특징을 찾을 수 있다.

대한제국의 근대화가 제대로 추진됐다면 개인은 시민으로, 사회는 시민사회로 자연스레 이행해갈 수 있었을 터이지만, 불행히도 국권 침탈과 함께 그 과정은 중단됐다. 그 결과 시민의 탄생은 “식민 통치하에서 유일하게 허용된 상상력의 공간, 문학의 영역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시민의 탄생』은 자각인민이 근대적 개인을 거쳐 시민으로 태어나는 과정을 면밀하게 추적한다. 근대적 개인과 시민을 구분하는 점이 흥미로운데, 근대적 개인이 사회를 구성하는 주체라면 저자는 개인과 사회가 근대성을 획득해가는 과정에서 개인은 시민으로 발전한다고 본다.

 

이러한 접근 시각과 용어들이 ‘송호근판’ 한국 근대 기원론의 강점이다. 저자는 한편으로 공론장 분석이라는 새로운 방법론을 적용함으로써 한국 근대사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조망을 제시하며, 다른 한편으론 공론장의 구조 변동에 대응하여 인민이 어떠한 주체로 진화해가는가를 단계별로 기술한다. 전례 없는 시도이자, 한국 근대사의 전개과정에 대한 안목과 이해를 획기적으로 넓혀주는 중요한 성과로 읽힌다.

 

13. 12.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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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마지막 '이달의 읽을 만한 책'을 골라놓는다. 12월은 사실 이달의 읽을 만한 책이 아니라 올해의 책을 고를 때이지만(실제로 몇 곳에 추천도서 목록을 보내야 한다) 얼마 남지 않은 기간에 읽어볼 만한 책이 또 없지는 않다. 하던 대로 한국출판문화진흥원의 추천목록에 따라 다섯 분야의 책을 고르고(http://www.kpipa.or.kr/info/recommBook.do?board_id=35) 나대로 고른 책을 덧붙이기로 한다.

 

  

 

1. 문학예술

 

먼저 내가 고른 책은 손철주의 <사람 보는 눈>(현암사, 2013)이다. 손철주의 옛그림 이야기의 연속인데, 이번에 다룬 건 '사람 그림'. "이미 우리 옛 그림을 어떻게 보고 읽을 수 있는지 안내해 온 저자가 이번 책에서는 ‘사람이 나오는 우리 그림’만을 골라서 설명과 논평을 붙였다. 짧지만 군더더기가 없어서 그림에 대한 설명으로 족하고 논평은 간명하지만 핵심을 전달한다."

 

 

 

정이현 작가가 고른 책은 조은 시인의 <또또>(로도스, 2013)다. "이 책은 인간과 반려동물이 같이 하는 삶에 대한 아름다운 기록인 동시에, 인간이 다른 생명과의 동반적 삶을 통해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새롭게 이해해가는 하나의 성장담"이라는 평이다. '동물권리 선언 시리즈'로 나온 <인간과 동물, 유대와 배신의 탄생>(책공장더불어, 2013)과 <동물 쇼의 웃음, 쇼 동물의 눈물>(책공장더불어, 2013)도 같이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

 

 

덧붙여, 올해의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앨리스 먼로의 소설들을 읽으며 한해를 마무리해도 좋겠다. 마지막 소설집 <디어 라이프>(문학동네, 2013)가 최근 번역돼 나왔고, <행복한 그림자의 춤>(뿔, 2010)과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뿔, 2007)은 이미 나와 있던 책들이다.

 

 

 

2. 인문학

 

인문 분야 추천도서는 김경임의 <사라진 몽유도원도를 찾아서>(산처럼, 2013)와 오창섭의 <근대의 역습>(홍시, 2013)이다. <사라진 몽유도원도를 찾아서>는 "우리 회화 사상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몽유도원도'는 어떤 의미를 담고 탄생하게 됐으며 어떻게 역사의 물결을 타고 유랑하게 됐는지 이 책에서 그 흔적을 찾아나선" 책이다. "몽유도원도의 시대적.사상적.문화적 탄생 배경을 살펴보며, 꿈의 주인인 안평대군의 삶과 문화적 이상을 추적하여 그림에 담긴 의도를 밝혀내고 있다." 미술사학자 안휘준 교수의 <안견과 몽유도원도>(사회평론, 2009)도 같이 읽어볼 수 있겠다. <근대의 역습>은 "일제 강점기의 사진, 신문, 기사 등에서 우리를 근대화시킨 증거와 흔적들을 찾아내어 그 의미를 꼼꼼하게 분석하고" 있는 책. 이덕일의 <근대를 말하다>(역사의아침, 2012)의 짝이 될 만하다.

 

 

개인적으로는 세계문학론과 혼종문화론을 주제로 한 책들도 독서목록에 올려놓고 있다. '지구시대의 문학연구'를 부제로 한 윤지관 교수의 <세계문학을 향하여>(창비, 2013)는 세계문학의 이념과 실천에 관한 다양한 쟁론적 글들을 수록하고 있는 평론집. 김용규 교수의 <혼종문화론>(소명출판, 2013)도 '지구화 시대의 문화연구와 로컬의 문화적 상상력'이란 부제대로 지구화시대 혼종문화적 양상에 대한 진단과 이론을 소개한다. 문학평론가 소영현의 <프랑켄슈타인 프로젝트>(봄아필, 2013)는 "문화를 둘러싼 이분법, 고급문화와 대중문화, 문학과 문화, 리얼리티와 가상, 실제와 재현 등의 구분법을 의문시하고, 시대와 공간을 넘나드는 다양한 텍스트들 속에서 ‘타자’와 문화에 대해 사유"를 담았다.

 

 

 3. 사회과학

 

프란시스코 페레/박홍규의 <꽃으로도 아이를 때리지 말라>(우물이있는집, 2013)과 스튜어트 프리드먼의 <와튼스쿨 인생특강>(비즈니스북스, 2013)이 추천도서다. <꽃으로도 아이를 때리지 말라>는 '자유교육의 선구자'의 교육론을 소개하고 간략한 평전을 덧붙인 책으로 2002년에 나왔던 책의 개정판이다. 

 

 

대선 1년을 맞아 지난 대선에 대한 평가와 성찰을 담은 책들도 읽어봄직하다. 문재인 후보의 <1219 끝이 시작이다>(바다출판사, 2013)와 홍영표 의원의 <비망록>(다산북스, 2013)이 나왔고,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의 진실'을 밝힌 유시민의 <노무현 김정일의 246분>(돌베개, 2013)은 두달 전에 출간된 바 있다. 바둑처럼 복기를 해서 실력을 키울 수 있다면 얼마든지 마다하지 않을 일이다. 

 

 

4. 자연과학

 

자연과학 추천도서는 길버트 웰치의 <과잉진단>(진성북스, 2013)이다. 병원에서 검진을 받아본 이라면 누구나 경험해봄직한 일인데, "조기 검진이 병에 걸린 이에게는 유용하긴 하지만, 과잉 진단으로 이어질 위험성이 크다". 아마 감상선 암환자의 증가 같은 게 대표적 사례일 것이다. 의료기기의 발달로 조기에 병을 발견하는 건 좋은 일이겠으나 오히려 건강에 대한 염려와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경우도 적지 한다. 의학상식으로라도 읽어둘 만한 책.

 

 

 

개인적으로는 마이클 거숀의 <제2의 뇌>(지만지, 2013)도 장바구니에 넣어두고 있는데, 흥미롭게도 뇌가 아닌 소화기관에 관한 책이다. "소화기 신경계의 발견에서부터 각종 신경전달물질, 식도에서 위, 대장에 이르기까지의 여정, 과민성 대장 증후군을 비롯한 소화기 질환과 신경계의 역할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와 관련된 것이기도 한데, 러셀 블레이록의 <죽음을 부르는 맛의 유혹>(에코리브르, 2013)은 MSG로 대표되는 식품 첨가물의 위험성을 고발하는 책이다. "글루탐산과 여타 흥분독소가 성장기의 뇌 발달 방식을 바꾸어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밝혀낸 실험과 신경계를 손상시키는 흥분독소를 비롯해 신경계 질환과 관련한 중요한 연구 사례를 소개한다."

 

 

과학책 독자라면 물론 에드워드 윌슨의 신간 <지구의 정복자>(사이언스북스, 2013)와 스티븐 제이 굴드의 에세이들도 놓칠 수 없겠다. 개인적으론 <플라밍고의 미소>(현암사, 2013)와 <여덞 마리 새끼 돼지>(현암사, 2012)가 번역된 김에 원서도 주문했다(굴드의 소문난 글솜씨를 감상해보기 위해서다). 

 

 

 5. 실용일반 

 

여문주의 <어이없이 틀리는 우리말 맞춤법 500>(인이레, 2013)이 추천도서다. "이 책은 500개라는 항목 수가 확인해 주듯이 일상에서 잘못 쓰이는 어휘와 표현들이 거의 망라된 책이다. 너무 사소하여 학교에서도 안 가르쳐주고 너무 황당해서 남들도 잘 지적해 주지 않는, 그런데 나만 모르고 잘못 써 온 말들이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책의 어느 페이지든 펼쳐서 죽 넘겨보면 된다." 학생들에게도 요긴할 듯한 책. 맞춤법에 관한 책을 더 찾아보니 김남미의 <100명중 98명이 틀리는 한글 맞춤법>(나무의철학, 2013)이 인기 도서다. 전문적인 책으론 <한글 맞춤법 강의>(신구문화사, 2010)가 있다.

 

 

 

0. 글쓰기

 

내 맘대로 고르는 주제는 '글쓰기'로 정했다. 계기는 유명작가 20인의 글쓰기 방법을 소개하고 있는 매러디스 매런의 <잘 쓰려고 하지 마라>(생각의길, 2013)인데, 퓰리처상 수상작가 제니퍼 이건, 제인 스마일리 등이 어떤 동기와 노력으로 글을 쓰는지 친절하게 안내한다.

 

 

 

'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은 없다'는 말에 동감한다면 따라해볼 수 있는 지침서. 조금 프로페셔널하게는 윌리엄 케인의 <거장처럼 써라>(이론과실천, 2011)가 아주 요긴한 책. 헤밍웨이와 포크너 등 유명작가 18인의 소설작법을 쪽집게 선생처럼 짚어준다. 저자가 유명작가가 아닌 게 신기할 정도다. '거장'이란 말에 주눅들지 않고 좀더 평범하게 시작하고 싶다면 바바라 애버크롬비의 <인생을 글로 치유하는 법>(책읽는수요일, 2013)이 도움이 된다. 글쓰기의 부담은 낮추고 의욕은 한껏 부추겨준다.  

 

13. 12. 07.

 

 

 

P.S. 12월의 읽을 만한 고전으로는 <논어>를 고른다. 정확하게는 <논어> 강의다. <심경호 교수의 동양고전 강의: 논어>(민음사, 2013)가 3권짜리로 출간돼서인데, <논어>에 대한 책이 중국에서도 이렇게 많이 나오진 않을 듯싶다. 도대체 무슨 새로운 얘기가 더 가능한지 궁금해서 읽어보려고 한다.

 

 

비교해볼 만한 건 물론 김용옥의 <논어한글역주>(통나무, 2008)다(최근에는 만화판까지 나왔다). 아, 리링의 <집 잃은 개 1,2>(글항아리, 2012)와 <논어, 세 번 찢다>(글항아리, 2011)도 비교대상이 될 수 있겠다. 베이징대 석학의 <논어> 강의는 어떤 것인지 맛볼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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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의 연재꼭지 '뉴 파워라이터'의 이번주 기사를 옮겨놓는다(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12061841275&code=960205). 지지난주에 인터뷰를 했고 그게 기사화됐다. 사진은 경향신문 자료실에서 찍은 것이다.

 

 

경향신문(13. 12. 07) [뉴 파워라이터](8) 서평가 이현우

 

명함은 한 인간의 사회적 정체성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물건이다. 그 점에서 이현우씨(45)의 명함은 특이하다. 앞면의 이름과 뒷면의 이름이 다르다. 지난달 27일 경향신문사에서 만난 그가 건넨 명함 뒷면에는 흰색 바탕을 배경으로 선명한 검은 글씨가 찍혀 있었다. ‘로쟈’.

 

이현우씨는 본명보다 필명이 더 먼저 알려진 사람이다. 그의 첫 책인 <로쟈의 인문학 서재>가 나온 것은 2009년이지만, ‘로쟈’라는 이름은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신간의 바다에서 헤매는 이들에게 읽어야 할 책들의 좌표를 알려주는 나침반 구실을 해왔다. 그의 필명이 20세기 초 독일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가 아니라 <죄와 벌>의 주인공 로지온 라스콜리니코프에서 따온 것이라는 사실을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어진 지 오래다. 책동네에서 ‘로쟈’는 ‘서평가’의 대명사다.

 

- 현재 서평을 기고하는 매체는 몇 개나 되나.

“시사주간지 ‘시사인’, 한겨레, 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서평지 ‘책&’에 정기적으로 쓰고 있고 기타 계간지 등에서 부정기적으로 청탁을 받아 글을 쓴다.”

 

- 어떤 경로로 서평가가 됐나.

“인터넷서점 알라딘에서 알라딘 독자 서평을 쓴 게 시작이다. 그리고 인터넷 카페 ‘비평고원’에 책 이야기를 썼다. 둘 다 2000년대 초반이다. 그 무렵 ‘텍스트’라는 이름의 북매거진에서 청탁이 왔다. 이런 활동들을 하고 있었는데 2007년 한 일간지에서 나를 포함해 인터넷 공간에서 신간 정보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전달하며 맥락까지 짚어주는 일군의 누리꾼들을 ‘인터넷 서평꾼’이라는 이름으로 소개한 뒤 서평꾼으로 알려지게 됐다. 이후 언론에 인터뷰 기사가 실리고 여러 언론매체로부터 서평 청탁을 받았다. 말하자면 온라인에서의 인지도를 바탕으로 오프라인 서평을 쓰게 된 것이다.”

 

 

 

이현우씨의 학문적 기반은 러시아 문학이다. 그는 대학과 대학원에서 러시아 문학을 전공하고 2004년 러시아 시인 푸시킨과 레르몬토프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러나 그의 지적 관심은 문학만이 아니라 칸트, 마르크스, 레닌, 니체, 레비나스, 벤야민, 데리다, 라캉, 지젝 등 철학자들과 이론가들에게까지 뻗어 있다. 지젝 전문가로도 알려진 그는 <로쟈와 함께 읽는 지젝>이라는 지젝 입문서를 쓰기도 했다. 그의 알라딘 서평 블로그 ‘로쟈의 저공비행’이 ‘서평’ 블로그가 아니라 ‘인문학’ 블로그로 알려진 이유다. 이씨는 자신을 ‘문학 극대주의자’라고 말한다.

 

“역사나 철학과 함께 문학을 인문학의 한 분과학문으로 보는 것을 나는 문학 극소주의라고 부른다. 나는 문학 극대주의자다. 역사, 철학, 문학이 다 큰 의미에서 문학이라고 본다. 작가라면 전체에 대한 통찰이 필요하고 사회에 대한 책임도 있어야 한다. 문학이 삶에 대한 총체적 인식을 추구한다면, 작품 하나를 읽기 위해서도 모든 게 다 필요하다. 플롯이나 테크닉을 다루는 정도로는 안된다. 내 경우에는 현상학, 해석학, 정신분석학, 수용이론 등 문학이론을 공부하면서 철학에 대한 관심으로까지 확장됐다.”

 

- 서평은 비평과 어떻게 다른가.

“비평은 독자들이 같은 책을 두 번 읽게, 다시 읽게끔 하는 것이다. 서평은 읽을 것이냐 말 것이냐를 판단하는 자료를 독자들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비평은 어떤 책을 이미 읽은 독자를 상대로 한다. 서평은 읽지 않은 독자를 상대로 한다. 넓게 보면 서평은 비평에 포함된다. 그런데 요즘엔 책을 읽은 독자들이 적어 비평을 읽는 독자들이 실종됐다. 상대적으로 서평의 역할은 커졌다.”

 

- 서평의 기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서평은 어떤 책을 읽고 싶도록 하거나, 읽은 척하게 하거나, 안 읽어도 되도록 해준다.”

 

- 서평을 쓸 때 원칙은.

“내 주관을 적게 넣는다. 이건 지면 사정과 관련이 있다. 서평 분량이 원고지 9~10장이다. 책 내용을 정리하고 나면 주관적인 판단을 섞는다고 해봐야 한두 문장이다. 다른 필자들은 주관적 느낌을 내용보다 더 중심적으로 다루는 경우도 있는데 나는 독자들이 책 내용을 맛보게 하는 데 중심을 둔다. 개성이 없다거나 호오가 분명하지 않다거나 하는 인상을 줄 수 있지만, 서평은 어떤 책을 골랐다는 것 자체가 유익한 정보다. 비평은 다르다. 어떤 책을 비평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 자체는 정보가 안된다.”

 

- 독자들에 대한 영향력은 어느 정도라고 평가하나.

“우스개로 10부 나가는 데는 기여하고 있다고 본다. 출판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지면 서평이나 지면 책광고의 영향력은 많이 줄었다고 한다. 그러나 책을 고를 때 서평을 참고하려는 독자들의 성향은 바뀌지 않았다. 독자들이 정보를 얻는 출처가 분산됐을 뿐이다. ‘로쟈의 저공비행’ 방문자는 하루 2000명 정도 된다.”

 

- 적합한 서평 분량은 어느 정도라고 보나.

“길어야 원고지 20장이다. 그 이상은 무리다. 30장 이상은 비평이다. 서평의 경우 100자평도 독자들에게는 유익한 참고가 될 수 있다.”

 

- 신형철 문학평론가는 “저이(로쟈)는 사람이 아니라 기계가 아닌가”라고 말한 적이 있다. 책을 얼마나 읽나.

“대학이나 도서관, 문화센터 같은 곳에서 강의도 해야 하고 서평도 해야 하기 때문에 사실 책 읽을 시간이 많진 않다. 다만 강의하고 서평 쓰고 잠 자는 걸 빼면 책 검색, 책읽기, 서평 쓸 책을 고르는 일이 내 일상이라고 말할 수는 있다. 출판사에서 내게 보내는 책은 일주일에 20~30권인데, 내가 직접 사는 책이 또 그만큼 된다. 그러니 내가 사는 책과 받는 책을 합하면 연간 2000권쯤 될 것이다.”

 

 

 

- 서평가는 평생직업인가.

“한시적으로 하는 일이다. 60대 서평가는 이상하지 않나. 3년 복무라고 생각했는데 2007년부터 잡으면 이미 3년을 초과해 장기복무하는 셈이 됐다. 서평집 독자가 절반씩 줄어들고 있다. 지금까지 서평을 모은 책은 두 권(<책을 읽을 자유> <그래도 책읽기는 계속된다>) 냈는데, 네 권까지 내면 더는 못 낼 것 같다. 자연적으로 은퇴하게 될 것 같다.”

 

 

 

- 앞으로의 계획은.

“비평 쪽으로 가려 한다. 책을 자세히 읽고 음미하며 읽는 것 말이다. 서평이라는 글쓰기 형식이 다른 것으로 대체되진 않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서평 독자들을 어느 정도 규모로 만든 뒤 이 독자들과 함께 더 깊이 읽는 독서문화를 만들어보고 싶다. 그런 독자들이 5000~1만명 정도 유지된다면 좋겠다. 읽을 만한 책이 나왔을 때 1만명의 독자는 있는 사회를 보고 싶다는 뜻이다.”

 

13. 12. 06.

 

P.S. 지난 가을에는 성대신문과도 인터뷰를 가졌는데, 기자들의 파업으로 뒤늦게 기사화됐다(http://www.skkuw.com/news/articleView.html?idxno=10846). 아무래도 서평가로서 인터뷰한 것이라 중복되는 질문들이 있고 답변도 대동소이하다. 몇몇 오식을 교정하여 옮겨놓는다.

 

성대신문(13. 12. 03) 서평블로거 '로쟈' 이현우 인터뷰

 

당신은 일주일에 몇 권의 책을 읽는가? 모두를 부끄럽게 만드는 질문 앞에 서평의 고수가 나타났다. △당대의 서평가 △인문학 전도사 △지젝 전도사로 불리며 서평계에서 필명 ‘로쟈’로 유명한 이현우다. 책 좀 읽는 네티즌 사이에서 그는 전설이라 불린다. 그의 블로그 ‘로쟈의 저공비행’에는 매일 2500명이 넘는 사람이 들렀다가며, 총 방문자는 300만 명에 이른다. 블로그 뿐만 아니라 온라인 서점과 각종 일간지에서도 그를 가장 영향력 있는 서평가로 평가한다. ‘인터넷 서평꾼’이라 불리는 그에게 참 친해지기 힘든 ‘독서’와 ‘인문학’에 대해 묻는다.

 

■ 언제부터 그렇게 온라인 서평계에서 유명해졌나

인터넷 공간에 서평류의 글을 올린 활동은 1999년부터 했다. 초기에는 ‘비평고원’이라는 카페에서 서평을 쓰다가 온라인 서점인 ‘알라딘의 서재’에서 이름이 알려졌다. 알라딘에서 추천을 많이 받으면 ‘명예의 전당’에 오르는데 몇 개 써본 마이리뷰가 반응이 좋았다. 리뷰를 그렇게 많이 쓴 것은 아닌데 책에 대한 잡다한 지식을 자주 포스팅 한 게 영향이 큰 것 같다. 

 

블로그에 서평을 쓰기 시작한 것은 2003~2004년부터다. 그때 처음 블로그가 생겨 지금 사용되는 ‘온라인 개인서재’와 함께 ‘북 블로거’, ‘서평블로거’ 등의 개념이 만들어졌다. ‘온라인 서평꾼’이라는 별명은 2007년 한겨례 신문에서 처음 사용한 것 같다. 특별히 나를 지칭하는 단어는 아니었는데 지금까지 그 이름으로 불리는 사람이 더 없어서 검색하면 나만 뜬다. (웃음) 

 

■ 블로그에 가봤더니 신간들을 몇 권씩 주제별로 묶어서 추천하더라. 

그것이 ‘인터넷 서평꾼’들의 역할이다. 주제별로 묶어 여러 책을 한 번에 추천한다. 책들 사이의 관계, 문학과 사상의 지도를 그려 가이드처럼 추천해 주는 것이다. 도서관 사서의 역할과 같다. 모든 책을 다 읽지는 못한다. 읽는 것도 있지만 책을 그냥 ‘본다’. 책을 ‘보는’ 걸로는  한국에서 랭킹 안에 들 수 있다. (웃음) 책에 대해 검색하고, 책을 만지고 훑어보는 것은 거의 업자수준으로 한다. 일주일에 거의 수십 권을 그렇게 스크린한다. 이걸 책의 면접을 본다고 말한다. 사람을 그냥 보는 거랑 사귀는 거랑 다르지 않나. 사람을 만나보고 더 깊게 알아가는 것은 좀 더 여러 번 만난 후다. 면접이 통과돼 시간 여유가 생기면 그때 그 책을 깊게 만난다.   

 

■ 도대체 책을 얼마나 읽는 건가. 

너무 많이 받는 질문이다. 48시간을 사는 게 아닌 이상 보통사람과 비슷하거나 더 적게 읽는다. 유별나게 독서유전자가 따로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저 어릴 때부터 숫기가 없어서 사람 사귀는 것보다 책을 사귀었다. 초등학교 때 책과 강렬하게 만난 기억이 있다. 하루 이웃집에 놀러 갔는데 그 집 서재에 전집이 꽂혀있는 걸 보고 충격받았다. 아마 ‘세계소년소녀문학전집’이었을 것이다. 그런 광경을 그 때 처음 봤다. 서점에 가본 적도 없어서 책이 세트로 50권 모여 있다는 것이 굉장히 경이롭게 느껴졌다. 그때부터 전집을 4~5번은 반복해서 읽었던 것 같다. 그냥 책 안에 있는 이야기들이 좋아서 읽었다.

 

대학교 때는 책을 사서 넘버링하는 습관이 있었다. 연말에 300권대까지 간 것을 봐서 하루에 한 권 꼴로 산 건데 요새는 더 산다. (웃음) 출판사에서 보내는 책이랑 개인적으로 사는 걸 합치면 일주일에 30권 씩 일 년에 1500~2000권 정도 새 책이 생긴다. 보관 문제 때문에 조만간 이사를 한다. 저번 주에 산 책을 못 찾고 있다. 심각하다. 

 

 

 

■“인문학을 읽기 전에 로쟈에게 물어보라”고 하던데, 어쩌다 인문학 전도사가 되었나

인문학 전도사는 좀 과장된 표현인 것 같다. 과거 ‘쿤데라와 고진의 고원’이라는 블로그 운영자와 죽이 맞아 인문학 관련 글을 많이 썼다.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슬라보예 지젝과 가라타니 고진 관련 포스팅을 많이 해서 이름이 알려졌다.   

 

나는 크게 두 가지 역할을 했다. 최근에 나온 인문학 책들을 많이 소개했고, 그다음엔 관련 이론서나 번역서가 나오면 그것에 대한 리뷰나 코멘트를 많이 올렸다. 그때 고전번역에 대해 독한 코멘트를 많이 했는데 그게 네티즌에게 약간 어필을 했던 것 같다. ‘신뢰할 만한, 참고할 만한 블로거’로 인식되는 데 말이다. 신랄한 비판의 글 때문에 출판사들의 미움을 많이 받기도 했다. 물론 이건 책에 좀 관심 있는 네티즌에 한정된 이야기다. 아마 날 모르는 사람이 훨씬 많을 것이다. (웃음)

 

■ 얼마 전 슬라보예 지젝의 방한으로 해설서인 <로쟈와 함께 읽는 지젝>이 더 유명해졌다. 본지에서도 그를 다뤘는데 어쩌다 지젝의 전도사로 불리게 되었나

지젝의 오랜 독자였다. 96년 국내에 처음 소개됐는데 본격적으로 읽은 것은 2000년 정도부터다. 읽다가 굉장히 강한 인상을 받아서 지젝의 모든 책을 섭렵했다. 이유를 물어본다면 현상에 대한 문제를 다시 정의하게 만드는 지젝의 철학이 맘에 들었다. 책을 읽고 나면 사회문제 저반의 현상이나 사태를 지젝의 눈을 통해서 다시 보게 된다. 세계에 대해 통찰하면서 다시 눈뜨게 되는 느낌이 든다. 초기 번역본들의 질이 좋지 않아서 번역서로는 이해가 잘 안 되더라. 그래서 오역에 대한 지적도 하고 번역도 직접 하면서 많이 떠들다 보니까 어쩌다 전도사가 됐다. 그러다 번역서를 넘어 그의 사상을 다룬 <로쟈와 함께 읽는 지젝>을 쓰게 됐다.

 

■ 요새 다들 인문학 시대라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사실 나는 인문학 자체에 대해서는 양가적인 태도를 지닌다. 인문학의 주류는 서양 인문학이다. 서양에서 인문학은 최상위 계층을 위한 교양교육이었지 중산층이나 빈곤층을 위한 교육이 아니었다. 백년 전 우리는 10% 정도만이 책을 읽고 70%가 문맹이었다. 한국사회에서도 독서가 중산층과 빈곤층으로 확장된 것은 두 세대가 채 되지 않는다. 빈곤층을 위한 희망인문학이 가능해진 것도 최근에 와서다.

 

그럼에도 인문학은 또 다른 계급투쟁의 계기가 될 수 있다. 우리는 1:99의 경쟁사회에 산다. 1명의 승자가 독식하는 구조다. 그러나 이러한 체제에 적응하는 것이 필요한 것인지, 아니면 그 시스템을 변화시킬 것인지에 대한 문제의식이 우리에겐 없어 보인다. 우리가 그 문제의식 자체를 아예 차단해버린 것이다. 그것이 문제를 더 악화시킨다. 우리는 대부분 99%의 입장이다. 이 99%가 배우는 인문학은 현재의 부당한 사회 시스템에 대해 저항하는 무기가 될 수 있다. 인문학을 해야 하는 이유는 그 시스템에 ‘당하지 않기 위해서’다. 오히려 경쟁력이 될 것이다. 생존만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더 가치 있고 훌륭한 삶을 사는 것이 목표라면 말이다.

 

■언제까지 계속 서평을 쓸 것인가

서평은 어떠한 중대한 사회적 역할 같은 것이다. 지식사회를 위해 사회적 책임을 지고 있는 느낌이다. 지금으로선 대체할 만한 인물이 매우 드물다. 십 년 동안 책을 검색하고 읽는 것을 누가 하겠나. 좋아서하지 않으면 힘들 것이다. 일을 대신해줄 후임들이 많아지면 자연스럽게 교체가 될 것이다. 서평가는 절대 어렵지 않다. 책을 읽고 남들이 읽기에 유익하다는 생각이 들면 서평가의 자질이 있는 것이다.

 

■책 읽기 싫어하는 성균인들에게 한마디 부탁한다

이 질문은 뭐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이건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다. 책을 안 읽으면 죽는 것이다. 사람들은 무지가 자기의 선택이라고 착각한다. 책을 안 읽는 건 본인의 선택이라면서. 하지만 대개 책을 안 읽는 경우보다 ‘못’ 읽는 경우가 더 많다. 그것을 착각하는 건 안쓰럽다.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면 입맛에 맞는 작가를 세 사람 정도 전집으로 읽어라. “나는 책과 인연이 없어”라고 하더라도 “나는 이 작가는 읽어”라고 하면 나름 괜찮은 대학생활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여도 되고 과학자, 철학자여도 된다. 그것조차 부담된다면 해설서나 서평집을 읽어라. 무슨 책을 읽을지 로드맵을 제시해 줄 것이다. 일단 읽어라. 독서의 효용이나 즐거움에 대해서 경험해보지 못한 상태에서 독서가 안 맞는다고 말하는 것은 편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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