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서니 케니의 '서양철학사' 시리즈 가운데 마지막 4권 <현대철학>(서광사, 2013)이 출간됐기에 페이퍼를 적었는데 등록을 누르는 순간 로그아웃이 되면서 다 날아가버렸다. 임시 저장도 일부만 돼 있어서 결국 페이퍼를 포기하고 리스트로 대신한다. 케니의 <서양철학사>는 전체 네 권 가운데 현재 세 권이 나와 있다. <근대철학>도 조만간 소개되기를 기대한다(*생각보다 빨리 나왔다). 그밖에 그가 공저한 <옥스포드판 서양철학사>를 옮긴 <서양철학사>(이제이북스, 2004)와 <서양철학사>의 축약판을 옮긴 <서양철학사>(동문선, 2003)가 번역됐었지만 현재는 모두 절판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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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철학
앤서니 케니 지음, 이재훈 옮김 / 서광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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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철학
앤서니 케니 지음, 김성호 옮김 / 서광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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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철학
앤서니 케니 지음, 김성호 옮김 / 서광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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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철학
앤서니 케니 지음, 김성호 옮김 / 서광사 / 2008년 6월
32,000원 → 28,800원(10%할인) / 마일리지 960원(3%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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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한겨레의 '로쟈의 번역서 읽기'를 옮겨놓는다. 아감벤의 <예외상태>(새물결, 2009)를 다시 들추고, 특히 '통치 패러다임으로서의 예외상태' 장의 내용을 간추렸다. <예외상태>에서 아감벤은 주로 독일 법학자 칼 슈미트와 대결하는데, 슈미트의 <독재>(1921)와 <정치신학>(1922)이 주된 검토 대상이다. <정치신학>(그린비, 2010)은 번역돼 있지만 <독재>(법원사, 1996)는 절판된 지 오래됐다. 그렇게 없어도 되는 책은 아니라는 걸 요즘 시국은 말해준다. 다시 출간되면 좋겠다. 절판된 <대지의 노모스>(민음사, 1995)도 마찬가지이고, <헌법이론> 같은 책도 번역되길 기대한다. 예외상태(입헌 독재)의 이론적 명분이 어떤 것인지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

 

 

 

한겨레(13. 12. 30) 민주주의 위해 민주주의 희생하자는 논리

 

법과 법의 공백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하게 하는 영화 <변호인>을 본 때문인지 책장에 꽂혀 있던 조르조 아감벤의 <예외상태>에 손길이 갔다. 이 이탈리아 철학자의 이름을 전세계에 알린 ‘호모 사케르’ 연작 가운데 하나다. 예외상태란 무엇인가. 법의 효력이 정지되는 법의 공백 상태를 가리킨다. 당장 갖게 되는 의문점. 예외상태는 법 안에 있는가, 법 바깥에 있는가. 법의 공백을 법으로 규정할 수 있는가.

 

아감벤의 문제의식도 멀리 가지 않는다. 예외상태라는 개념 자체를 정의하기가 어렵다는 것. 예외상태는 공법과 정치적 사실 사이의 불균형점이며 법률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이 교차하는 모호한 경계선에 자리한다. “예외상태는 법률 차원에서는 이해될 수 없는 법률적 조처라는 역설적 상황”에 놓인다.

 

예외상태란 개념의 기원은 흔히 ‘긴급 사태는 법률을 갖지 않는다’는 라틴어 격언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격언은 “긴급 사태에서는 어떤 법률도 인정될 수 없다”와 “긴급 사태는 그에 고유한 법률을 만들어낸다”는 두가지 상반된 의미로 해석된다. 하지만 중세를 배경으로 한 이 격언에서 법률이란 말은 무엇보다도 교회법을 가리켰다. “적절하지 않은 곳에서 미사를 올릴 바에는 아예 미사곡을 부르거나 듣지 않는 편이 좋다”는 식의 규정 같은 것이다. 규정은 그렇지만 최고도로 긴급한 사태일 경우에는 규정의 위반도 정당화된다는 게 중세의 긴급 사태론이다. 예외상태론에서 주장하듯이 공동선을 위해서라면 법의 효력 정지도 필요하다는 생각은 중세와 무관하다. 그것은 근대적 발상이다.

 

헌법의 효력을 일시적으로 정지시키는 ‘계엄 상태’는 프랑스 혁명기에 처음 제도화된다. 곧 예외상태는 절대주의 전통이 아니라 민주주의 혁명 전통의 창조물이다.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은 대다수 교전국에 예외상태가 등장하게끔 만들었다. 프랑스에선 전쟁이 끝날 때까지 유지된 계엄 상태에서 행정부가 실질적인 입법기관이 됐다. 전후 독일에서는 제국의 대통령에게 광범위한 예외적 권한을 부여했다. “(대통령은) 군대의 힘을 빌려서라도 공공의 안전과 질서 회복에 필요한 조처를 취할 수 있다”고 헌법에 명시함으로써 ‘대통령 독재’로의 길을 열었다. ‘민주주의 수호’란 명분이 실상 민주주의와는 무관하며 입헌 독재는 전체주의 체제로 가는 한 국면에 불과하다는 걸 나치 독일의 사례는 극명하게 보여준다. 물론 유신체제를 경험한 우리에게도 예외상태는 낯설지 않다.

 

오늘날 군사적 비상사태나 경제적 비상사태는 예외상태의 흔한 명분이 되고 예외상태는 상례가 되고 있다. 통상적인 통치술로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의회가 아닌 행정부가 주도하는 국가에서라면 권력분립이라는 민주주의 원칙은 의미를 잃는다. 아감벤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이러한 헌정 질서의 변환이 서구 민주주의 국가 전체에서 진행중이라고 경고한다. 문제는 법학자나 정치가들에게 너무도 익숙한 이런 상황이 시민들에게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민주주의를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도 크다고 할 수 없다. 사정이 이러할진대, 민주주의 자체의 일시적 희생 따위야 정말 사소한 것”이라며 예외상태, 곧 입헌독재를 옹호하는 한 헌법학자의 말이 섬뜩하게 들리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미 민주주의와 함께 있지 않다.

 

13. 12. 29.

 

 

 

P.S. 마지막 문단의 인용은 미국의 헌법학자 로시터의 말로 <입헌 독재>(1948)에서 아감벤이 인용한 것이다. 로시터는 거물급 학자로 보이는데, <페더랄리스트 페이퍼> 보급판의 편자이기도 하다.

 

 

원래 법학도였던 아감벤 덕분에 헌법에 대한 관심이 다시 살아나 몇 권 더 구입했다. 아직 헌법학이나 헌법이론서에까지는 손길이 가고 있지 않지만, 법제사 관련서와 칼 슈미트, 로널드 드워킨의 책들을 새로 장바구니에 넣어두었다. 법학도가 아닌 일반 시민도 헌법을 공부해야 하는 게 법비(法匪)들이 판을 치는 세상이다('법비'란 말의 뜻에 대해서는 한홍구 교수의 칼럼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17380.html 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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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중앙선데이에서 '문학이 낳은 문학'을 옮겨놓는다. 중국의 문호 루쉰의 단편 <광인일기>와 고골의 단편 <광인일기>를 다뤘다. 루쉰이 일본 유학 시절 러시아 문학을 접하고 탐독한 걸로 알려져 있는데, 데뷔작인 <광인일기>는 고골의 작품에서 제목과 발상을 따온 것으로 유명하다. 두 작품의 주제나 초점은 다르지만, 영감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중국에서의 러시아문학 수용은 관심이 가는 주제이긴 하지만, 참고할 만한 자료가 없어서 아쉽다(굉장히 비싼 가격의 학술서가 약간 있긴 하다).

 

 

 

중앙선데이(13. 12. 29) 왜 그들이 세상을 다 차지하는 걸까

 

중국 근대사의 거인이자 전투적인 지식인 루쉰. 그는 어떻게 중국 근대문학의 아버지가 되었을까? 국비유학생으로 일본에 건너가 의학을 공부하던 루쉰에게 하루는 충격적인 일이 벌어진다. 수업시간에 환등기로 미생물 사진을 보여주던 교수가 시간이 남자 러일전쟁 관련 자료들을 보여 주었는데, 그중에 러시아에 군사기밀을 넘긴 죄로 일본군에게 총살당하는 중국인이 있었다. 그 중국인 주위에는 건장하지만 몽매한 중국인들이 이를 구경하기 위해 잔뜩 모여 있었다. 일본 학생들은 손뼉을 치며 환호했지만, 루쉰은 참담한 심정이 된다. 병자들을 구제하는 것보다 정신을 뜯어고치는 일이 훨씬 더 시급하다고 생각한 루쉰은 당장 학교를 때려치운다. “어리석고 겁약한 국민은 체격이 아무리 건장하고 우람한들 조리돌림의 재료나 구경꾼이 될 뿐”이므로.

하지만 의지만으로는 뜻을 펼칠 수 없었다. 좌절감에 빠져 허송세월만 보내던 어느 날 옛 친구가 찾아와 『신청년(新靑年)』에 글을 청탁한다. 중국의 현실에 대해 깊은 절망에 빠져 있던 루쉰은 이런 말로 거절한다. “쇠로 만든 방이 있는데 창문도 없고 부술 수도 없다. 사람들이 깊은 잠에 빠져 있고 곧 숨이 막혀 죽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런 가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이들을 깨우는 것이 온당할까? 그들을 오히려 더 고통스럽게 하는 일이 아닐까?”

하지만 결국 친구의 강권으로 루쉰은 글을 쓰게 된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작품이 중국 최초의 근대소설 『광인일기』(1918)다. 잠들어 있는 중국 인민을 깨우려는 그의 첫 ‘외침’이었다.

루쉰의 걸작이 무에서 탄생한 것은 아니다. 제목부터 형식까지 러시아 작가 니콜라이 고골의 영향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한 세기 전에 쓰인 고골의 『광인일기』(1835)는 과대망상증에 빠진 하급관리의 일기다. 관청의 하찮은 직급인 포프리시친은 국장의 집에서 연필 깎는 일을 하다가 국장의 딸에 대한 은밀한 욕망을 키운다. 마흔을 이미 넘긴 초라한 행색의 포프리시친에게는 가당치도 않은 꿈이지만, 국장의 딸이 고위관리와 결혼할 거라는 걸 알자 그의 분노는 폭발한다.

 

“이 세상은 시종무관 아니면 장군이 모든 것을 차지하게 된다. 내가 어떤 초라한 재물이라도 찾아내어 손에 넣으려고 하면, 으레 시종무관이나 장군이 가로챈다. 제기랄! 나도 장군이 되고 싶다. 청혼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다. 내가 장군이 되면, 그들이 어떻게 나한테 착 달라붙어서 모호한 말과 예절을 다해 아부할지 보고 싶어서다. 그 다음엔 그자들한테 침이라도 뱉어 주고 싶다. 제기랄, 화가 치민다!”

현실을 인정할 수가 없었던 포프리시친은 아예 현실 밖으로 튕겨 나간다. “나는 왜 9급 관리가 되었을까? 어쩌면 나는 백작이나 장군인데, 다만 9급 관리처럼 보이는 건 아닐까? 아마 나 자신도 내가 어떤 인간인지 모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실 역사에도 그런 예는 얼마든지 있지 않은가.”

금지된 욕망을 향한 집착은 욕구불만을 더해만 가더니, 포프리시친은 결국 자신의 생각을 조작하기에 이른다. 출근도 하지 않고 집에 틀어박혀 있던 그는 마침내 자신이 하찮은 관리가 아니라 스페인 왕이라는 걸 발견한 것이다. 아니, 그렇다고 믿는다.

 


루쉰의 『광인일기』도 과대망상증에 걸린 한 광인의 일기다. 어느 관청의 보조원으로 일하다가 피해망상증에 걸린 작가의 외사촌동생이 소설의 모델이다. 억압에 짓눌린 힘없는 광인의 분노는 주위 사람들이 자신을 잡아먹으려 한다는 망상을 만들어 내고 만다. 루쉰은 위대한 러시아 작가 고골에서 출발했지만, 관료제 사회에서 소외된 욕망의 문제를 다루는 데 그치지 않고 좀 더 시야를 넓혀 봉건제적 질서의 해악을 폭로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루쉰은 ‘인의(仁義)’니 ‘도덕’이니 하는 것이 결국 사람을 잡아먹는 ‘식인’의 명분일 뿐이라고 고발하는 것이다. “4000년간 줄곧 사람을 먹어 온 곳”에 섞여 살아 왔다는 광인의 발견은 중국 현실에 대한 루쉰의 급진적이고도 철저한 절망을 반영한다. “사람을 먹는 자가 내 형일 줄이야! 내가 사람을 먹는 사람의 동생일 줄이야!”

루쉰은 자신의 『광인일기』가 고골의 소설보다 울분을 더 깊고 폭넓게 토로했다고 스스로 평하기도 했다. 정신병원을 스페인 왕궁으로 착각하고 자신을 때리는 자들을 고위 관리라 여기는 고골의 광인에게서는 희망을 찾아볼 수가 없다. “어머니! 이 병든 아들을 가엾게 여겨주세요! 그런데 알제리 총독의 코밑에 혹이 있는 것을 아세요?”

반면 루쉰의 소설은 광인의 노심초사로 끝을 맺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말의 희망이, 너무나 희미해서 더욱 처절한 희망이 엿보인다. “사람을 먹어 본 적 없는 아이가 혹 아직도 있을까? 아이를 구해야 할 텐데….” 중국의 개조를 향한 위대한 행보의 첫걸음은 울분의 토로와 절망의 외침이었다.

 

13. 1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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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외에는 급한 원고가 없기에 며칠 벼르던 페이퍼를 적는다. 일종의 독서계획이다. 강의와 원고를 위해 읽어야 할 작품만으로도 시간이 모자라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계획마저 포기할 만큼 합리적인 성격은 아니다. 단순하게 말하면 세 명의 작가의 대작 세 편을 읽으려고 한다.

 

 

 

먼저 연말 화제작으로 떠오른 로베르토 볼라뇨의 <2666>(열린책들, 2013). 영어판으로는 한권이지만(한국어판보다도 영어판을 먼저 구했다), 작가는 5부로 이루어진 이 작품의 다섯 권의 책으로 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하고 한국어판은 이에 따라 5권으로 분권돼 나왔다(맨오른쪽 표지는 갈리마르에서 나온 프랑스어판). 1750쪽이 넘는 대작. 규모만으로도 흥미를 끌기에 충분하다.

이 작품이 전 세계 독자들의 관심을 끈 것은 볼라뇨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혼신을 다해 완성한 마지막 작품이라는 이유 때문에 감정적으로 이끌렸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작품 외적 요인보다도 독자들이 <2666>에 관심을 집중한 까닭은 생전에 볼라뇨가 이 작품에서 세계 최악의 범죄 도시인 후아레스의 여성 연쇄살인사건을 다루겠다고 여러 차례 밝혔기 때문이기도 하다. 작가는 80년이란 시간과 두 개의 대륙을 넘나들며 수수께끼의 연쇄살인마와 유령 작가를 두 중심축으로 내세워 전쟁, 독재, 대학살로 점철된 20세기 유럽 역사에서 인간의 악이 어떤 모습으로 진화되어 왔는지를 파헤치고 있다. 보리스 안스키의 일기에서 서술되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범죄와 제2차 세계 대전의 홀로코스트는 20세기 말과 21세기 초의 멕시코 국경으로 상징적으로 수렴되며, 1백 명이 넘는 여성 연쇄살인사건으로 재생산된다.

 

볼라뇨의 책을 읽을 기회가 없었지만 <2666>이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거의 대부분의 작품을 구입했다. 흥미를 갖는 건 나치, 2차대전, 홀로코스트 등의 주제를 볼라뇨가 다루는 방식이다. 라틴 아메리카 작가에게 보통 기대하기 어려운 소재 아닌가. 그래서 일차적으로는 대표작 <칠레의 밤>(열린책들, 2010)과 함께 <제3제국>(열린책들, 2013),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을유문화사, 2009) 등을 독서의 우선순위에 놓고 있다.

 

 

그리고 최근에야 번역된 걸 알게 된 조나탕 리텔의 <착한 여신들>(랜덤하우스, 2009). 국내 독자들에겐 외면 받았지만 이 미국 출생 작가의 900쪽이 넘는 데뷔 장편소설이 프랑스에서 출간되자 독서계가 들썩였다는 화제작이다. "이 소설은 프랑스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공쿠르상과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 대상을 수상했고, 2006년부터 현재까지 1백만 부가 넘게 팔리며 유럽을 뜨겁게 달군 밀리언셀러로 기록됐다." 프랑스의 가장 대표적인 문학상을 석권한 작품으로도 유명하지만 동시에 '문학상이 문학과 무슨 상관이냐!'며 수상을 거부한 걸로 유명하다. 현재는 바르셀로나에서 집필중이라는 그의 다음 작품도 기대가 갈 수밖에 없다(올해 중편집을 펴냈다). <착한 여신들>은 어떤 소설인가(영어본 제목은 <친절한 사람들>).  

작가 조나탕 리텔은 어느 나치 친위대 장교의 목소리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과 독일 사람들을 치밀하게 파헤쳤다. 냉정하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우크라이나와 스탈린그라드, 아우슈비츠, 베를린 공습 그리고 히틀러의 비밀 벙커를 묘사하며 살상(殺傷)의 시대가 우리에게 안겨준 아픔과 고통, 광기의 역사를 회고한다.(...) 좋은 가장이자 친절한 이웃이었던 보통 사람들이 어떻게 그토록 잔인해질 수 있는가에 대한 끔찍한 진실을 들춰낸 작품이다. 누구도 미치지 않았으나 모두가 광기에 휩싸였던 지옥의 나날들에 대한 나치 친위대 장교의 묵시록적 고백을 담았다. 가해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최초의 홀로코스트 문학이다. 

 

 

홀로코스트 문학이란 점이 특별히 프랑스에서 화제를 모은 배경이기도 하겠지만, 그것만으로는 화제성을 설명할 수 없다. 작품이 궁금한 이유이기도 한데, 독서욕이 자극되어 영어본도 주문해놓은 상태다.

 

 

 

끝으로 아직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작가 윌리엄 볼먼. 지난 2005년에 <중유럽>이란 소설로 전미 도서상을 수상한 작가다. 2차대전 당시 독일의 옛소련 침공을 소재로 한 811쪽짜리 장편소설로 "대형컴퓨터 프로그래머 출신인 볼먼은 이 작품에서 초현실주의적이고 신화적인 가상의 인물들과 역사적 실재 인물들을 함께 등장시키고있다." 당시에 관련 기사를 읽고 작품을 바로 구입했는데, 이제까지 한국어본이 나오지 않고 있다. 리텔이나 볼먼이나 '역사소설'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듯싶어서(혹은 새로운 유형의 역사소설) 관심을 갖게 된다.

 

물론 작품이 길기만 하다고 좋은 건 아니지만(보르헤스는 장편을 쓰레기통에 비유했던가) 길게 쓰고도 독자를 감동으로 넉다운 시킬 수 있다면 그건 작가의 역량이다. 20세기 중반, 특히 나치 독일(제3제국)과 스탈린 시대 러시아에 다시 관심을 갖게 된 터라 세 작가의 대작 세 편에 대해 거는 기대가 크다. 새해가 다가온다는 건 새로운 책들과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열린다는 의미다. 새해가 기다려진다...

 

13. 12. 28.

 

 

P.S. 독일의 제3제국, 곧 히틀러의 독일에 대해서는 히틀러 관련서들 외에도 몇 권의 참고할 만한 책들이 있다. 크리스 비숍과 데이비드 조든의 <제3제국>(플래닛미디어, 2012)는 그 성장과 몰락에 대한 개관이며, 안진태 교수의 <독일 제3제국의 비극>(까치, 2010)은 이 주제를 다룬 보기 드문 국내서다. 알베르트 슈페어의 <기억>(마티, 2007)은 "히틀러의 건축가이자 독일군의 전쟁 물자를 총괄한 군수장관으로, 뉘른베르크의 전범재판에서 살아남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알베르트 슈페어의 자서전"이다. "지식인으로서 비판적으로 사유할 책무를 잊었던 치명적인 과오에 대해 통절한 반성을 드러낸다." 내부자 시점의 기록이란 점에서 조나탕 리텔의 <착한 여신들>과도 비교해봄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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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몸단장하는 여자와 훔쳐보는 남자>(이봄, 2013) 덕분에 이름을 기억하게 된 저자는 프랑스의 미술사학자 파스칼 보나푸다. "서양미술 속의 ‘누드화’를 다룬 책이다. 우리가 그동안 말로 꺼내지 않고 에둘러서 했던 이야기, 그럼에도 꼭 하고 싶다면 ‘무례한 사람’이라는 오명을 각오해야 하는 이야기를 그 누구도 아닌 ‘미술사학자’가 꺼낸다. ‘몸단장하는 여인’이라는 주제는 고대에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예술의 역사를 관통하는 매우 보기 드문 주제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라는 게 책소개.

 

 

 

전시 기획자이자 소설가이기도 하다는 저자의 책은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의 <렘브란트>와 <반 고호>를 포함하여 몇 권 더 나와 있다.

 

 

그래도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서양미술사의 비밀을 누설하다'를 부제로 달고 나온 <몸단장하는 여자와 훔쳐보는 남자>일 수밖에 없는데, 원제는 <무례: 화장대 앞의 여인들>(Indiscretion: Femmes a la toilette)이다. '무분별'이라고 해야 할지 '무례'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화장실에서 몸단장하는 여인들을 몰래 훔쳐보는 행위를 가리키겠다. 바로 저자 보나푸가 그런 무례한 남자를 자처하고 나섰다. 아예 서문 제목을 '나는 관음증 환자다'라고 붙였으니 무례하더라도 위선적이진 않다.

 

 

아쉬운 건 번역본의 표지다. 열쇠구멍을 통해 들여다보는 관음증적 시선을 콘셉트로 잡았지만 그다지 에로틱하지 않다. 원서와 비교해봐도 대번에 알 수 있다. 너무 과감한 표지가 부담이 됐을 것도 같지만, 미술사의 고전적인 누드화를 주제로 한 책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 '열쇠구멍'이나 '훔쳐보는 남자'라는 설정은 좀 식상하다.

 

 

원서의 표지를 그대로 가져왔던 프랜시스 보르젤로의 <누드를 벗기다>(시그마북스, 2012)와 비교해봐도 그렇다. 그럼에도 올해의 마지막 미술책으로 구입했다. '서양미술사의 비밀'을 누설해준다고 하니 한번 들어보려고...

 

13. 12. 28.

 

 

P.S. 파스칼 보나푸의 책 얘기를 하다 보니 떠오른 책은 고갱 그림들로 표지갈이를 한 한스 페터 뒤르의 문명화과정 3부작(<은밀한 몸>, <음락과 폭력>, <에로틱한 가슴>)이다. 2006년에 1판 1쇄가 나오고, 지난달에 소프트카바로 2쇄가 나왔다. 표지만으로도 탐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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