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공지다. 푸른역사아카데미에서 진행하는 7월 강좌는 나보코프를 읽는다. '로쟈와 함께 읽는 나보코프'(http://cafe.daum.net/purunacademy/8Bko/169). 나보코프의 미완성 유작 <오리지널 오브 로라>가 나온 김에 번역본으로 읽을 수 있는 작품들을 네 편을 골랐다. 7월 7일부터 28일까지 매주 월요일 저녁 7시 30분-9시 30분까지다. 구체적인 일정은 아래와 같다.

 

 

1강 7월 7일 나보코프, <오리지널 오브 로라>

 

 

 

2강 7월 14일 나보코프, <사형장으로의 초대>

 

 

3강 7월 21일 나보코프, <절망>

 

 

 

4강 7월 28일 나보코프 <롤리타>

 

 

14. 0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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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시즌인 만큼 축구의 관한 책을 '이주의 발견'으로 꼽는다. 데이비드 골드블라트의 <축구의 세계사>(실천문학사, 2014). 무려 1248쪽 분량. '축구의 모든 것'이라고 해도 무방하겠다. 축구의 역사에 관해서는 디스커버리 총서판으로 나온 알프레드 바알의 <축구의 역사>(시공사, 1999)가 참고할 만한 책이었다.

 

영국의 스포츠저널리스트이자 축구 탐사보도 전문기자 데이비드 골드블라트의 <축구의 세계사>. 축구의 탄생과 전파가 어떻게 돈과 권력, 인종과 계급, 폭력과 저항 그리고 수많은 영웅들과 역사적인 승패 등을 교차하며 세계사를 형성했는가를 추적한다.

 

축구 얘기가 나온 김에 관련서가 더 있나 찾아보니 <축구의 역사>(일신사, 2008), <축구철학의 역사>(리북, 2011), <축구전쟁의 역사>(이지북, 2002) 등이 눈에 띈다. <축구전쟁의 역사>는 아마도 2002년 월드컵을 겨냥해서 나왔던 듯싶은데, 지금은 절판됐다(어느새 12년 전이다!).

 

 

오늘은 독일과 포루투갈이 전쟁을 치르고, 내일은 러시아와 한국이 '전쟁'을 치른다. 승패를 떠나서 후회 없는 일전을 바란다...

 

14. 0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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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발견'과는 좀 다르게 '이달의 만화' 내지는 '이달의 르포르타주'로 고를 만한 책이 출간됐다. ‘코믹 저널리즘(Comic Journalism)’의 선구자 조 사코의 <저널리즘>(씨앗을뿌리는사람, 2014). <팔레스타인>(글논그림밭, 2002)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된 작가인데 국내에는 몇 작품이 더 소개돼 있고, <저널리즘>은 그의 대표적 만화 기사들을 모은 책이다. 6인의 한국 기자들이 번역에 참여한 점이 눈에 띈다.

 

2012년 미국에서 출간되어 이후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등지에서 번역 출간되었고, ‘2013 LA타임스 도서상’ 파이널리스트에 오르기도 한 『저널리즘』은 지난 10여 년간 『디테일즈』, 『뉴욕타임스 매거진』, 『타임』, 『하퍼스』, 『가디언』 등에 실린 사코의 단편 만화 기사 11편을 모아 6개의 챕터로 분류한 작품집으로, 진실 보도의 책무를 지닌 언론매체들이 종종 스쳐가거나 회피하는 세계 역사의 중요한 장면들이 담겨 있다. 「헤이그」편은 네덜란드 헤이그의 국제전범재판소에서 진행된 보스니아 내전의 전범 재판 과정을, 「팔레스타인」편은 헤브론과 가자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을, 「코카서스」편은 러시아와의 분쟁 속에서 갈 곳을 잃은 체첸 난민들 이야기를, 「이라크」편은 미국 역사의 가장 어두운 부분이라 할 수 있는 포로 고문과 이라크에 파병된 미군들의 이야기를, 「이민」편은 아프리카의 가난과 전쟁, 폭정을 피해 유럽으로 건너가고자 하는 이들이 인구 40만의 지중해 섬나라 몰타로 몰려들면서 벌어지는 사태들을, 「인도」편은 인도의 빈곤 문제와 복잡한 카스트 제도의 실상을 담고 있다.

한겨레 안수찬 기자는 추천사에서 "이 책에는 저널리즘의 방법론을 혁파하는 실험정신과 사실의 총체를 온전히 드러내려는 장인정신이 깃들어 있다. 그것을 나는 흠모하며 시기한다. 언젠가 이런 성취가 한국에서도 이뤄질 수 있을까."라고 적었다. 나도 똑같은 기대와 바람을 가져본다...

 

14. 06.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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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공지다.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 진행하는 '로쟈의 세계문학: 노벨문학상 수상작 읽기' 시즌3이 7-8월에 진행된다(매주 화요일 저녁 7:30-9:30이고, 8월 12일은 휴강이다), 이번엔 1989년도 수상자 호세 카밀로 셀라에서 2003년 수상자 존 쿳시까지, 여덟 명의 수상작가와 그들의 대표작을 살펴본다.(http://www.hanter21.co.kr/jsp/huser2/educulture/educulture_view.jsp?&category=academyGate9&tolclass=0001&lessclass=0003&subj=F91578&gryear=2014&subjseq=0001&booking=). 구체적 일정은 아래와 같다.

 

로쟈의 세계문학클럽 : 노벨문학상 수상작 읽기 3 (1989~2003)

 

1강 7월 1일_ 카밀로 호세 셀라, <파스쿠알 두아르테 가족> - 1989(스페인)

 

 

2강 7월 8일_ 토니 모리슨, <빌러비드> - 1993(미국)

 

 

3강 7월 15일_ 오에 겐자부로, <만엔원년의 풋볼> -1994(일본)

 

 

 

4강 7월 22일_ 주제 사라마구, <눈먼 자들의 도시> -1998(포르투갈)

 

 

 

5강 7월 29일_ 귄터 그라스, <양철북> -1999(독일)

 

 

 

6강 8월 5일_ V. S. 나이폴, <미겔 스트리트> -2001(영국)

 

 

7강 8월 19일_ 임레 케르테스, <운명> -2002(헝가리)

 

 

 

8강 8월 26일_존 쿳시, <추락> - 2003(남아공)

 

 

14. 06.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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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중앙선데이에 실은 '로쟈의 문학을 낳은 문학'을 옮겨놓는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지하로부터의 수기>와 카뮈의 <전락>을 다뤘다. 화자의 장광설이라는 형식과 봉변(결투) 에피소드에 초점을 맞추었다.

 

 

중앙선데이(14. 06. 14) 설령 불행을 가져와도 …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인간 의식

 

“어디부터가 고백이며 어디부터가 남들에 대한 고발일까?” 작가 스스로 그렇게 묻고 있는 카뮈의 『전락』(1956)은 그의 작품 가운데 가장 난해하면서 동시에 가장 독특한 소설이다. 주인공인 전직 변호사 클라망스의 냉소적인 장광설로 일관하고 있는 형식만 그런 게 아니다. 클라망스가 죽치고 있는 물의 도시 암스테르담도 카뮈의 여느 소설과는 배경이 다르다. 비가 많이 내리고 안개가 자주 끼는 도시는 이 ‘태양의 작가’에게 분명 이례적인 공간이다. 카뮈답지 않은 형식과 배경, 그리고 주인공의 독백을 통해 작가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이런 특이성 때문에 이 작품에 영향을 준 원천에 대해 궁금해지는데, 바로 카뮈가 오랫동안 사숙한 작가 도스토옙스키의 『지하로부터의 수기』다. 공교롭게도 두 작품 모두 작가들이 마흔세 살에 발표한 소설들이며, 무엇보다 ‘말 없는 상대방과 나누는 혼자만의 대화’라는 드문 형식이 두 작품 간의 영향 관계를 떠올리게 한다.

 


그런데 형식상의 공통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창작 배경이다. 『지하로부터의 수기』(1864)는 동시대 비평가 체르니셰프스키의 소설 『무엇을 할 것인가』(1863)에 대한 문학적 응전이었으며, 『전락』은 사르트르와의 논쟁에 대한 응답이었다. 문제는 이러한 배경이 철저히 숨겨져 있다는 점이다. 두 작가의 목소리는 화자의 목소리 바깥으로 빠져나오지 않는다. 배경이 된 논쟁은 문학적으로 승화돼 있으며 상징적·비유적 장치들을 통해서만 암시된다.

『지하로부터의 수기』에서는 ‘지하’라는 공간부터가 상징적이다. 그것은 우리 의식의 지하 혹은 이면을 가리킨다. 자신이 병든 인간이자 심술궂은 인간이라는 걸 자인하면서 기나긴 고백을 시작하는 중년 화자는 인간이 이성적인 존재며 과학과 상식에 따라 이상적인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는 당대의 지배적인 사상에 조롱과 야유를 퍼붓는다. 인간은 개미가 아니며 ‘2×2=4’와 같은 수학적 정식으로 이해될 수도, 조종될 수도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반면에 그가 옹호하는 것은 자신의 변덕스러운 욕망과 자의식이다. “의식은 예컨대 2×2보다 무한히 더 높은 것이다.”

이 ‘지하 인간’은 비록 의식이라는 것이 인간에게 불행을 가져다줄지라도 그 어떤 것과도 맞바꿀 수 없다고 생각한다. 설사 치통일지라도 ‘나’의 고통은 나의 존재를 입증해 주기에 자부심의 근거가 된다.

이러한 생각의 소유자가 타인의 말과 행동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일례로 젊은 시절에 주인공은 당구장에서 한 장교가 지나가면서 길을 막고 있던 자신의 어깨를 거머쥐고 마치 물건처럼 옮겨놓는 일이 벌어지자 모욕감을 느낀다. 하지만 상대의 덩치가 너무 컸기에 실제로는 속으로만 성질을 부리다 꽁무니를 뺀다. 굴욕감에 괴로워하던 그는 결국 결투를 단행한다. “물론 그가 힘이 더 셌기 때문에 내가 좀 더 아프긴 했지만, 그런 건 문제도 아니었다. 문제는 내가 목적을 달성했고 자긍심을 지켰으며 한 발짝도 양보하지 않음으로써 대중 앞에서 나 자신을 그와 대등한 지위에 세웠다는 데 있다.”

『전락』의 화자 클라망스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간다. 그는 남들과 대등한 것에 만족하지 않고 항상 그들보다 우월한 지위에 있고자 한다. “나는 사실 높이 위치한 곳이 아니면 도무지 편치가 않았어요. 삶의 사소한 것에 이르기까지 내겐 높은 곳에 있고 싶은 욕구가 있었어요. 나는 지하철보다는 버스가, 택시보다는 마차가, 반지하층보다는 테라스가 더 좋았어요.”

클라망스는 그런 위치에서 마치 초인이라도 된 듯한 기분으로 우쭐대며 살아가던 인물이다. 그러던 어느 날 자동차를 운전하고 가다가 신호 대기 중이었는데, 앞에 있던 오토바이가 엔진이 꺼져 출발하지 못하고 있었다. 신호가 바뀌자 클라망스는 옆으로 지나가게 비켜달라고 말했지만 작달막한 오토바이 사내는 도리어 욕지거리를 했다. 화가 난 클라망스가 따귀나 한 대 올려붙이겠다는 심정으로 차에서 내린 순간, 몰려든 군중으로 경황이 없는 중에 오히려 귀싸대기만 호되게 얻어맞는다. 정신을 차리자 오토바이는 달아나버린 뒤였다. 카뮈 판 『지하로부터의 수기』에서 클라망스의 경험은 ‘지하 인간’보다 더 어이없는 경우라고 할 수 있을까? 클라망스는 상대보다 머리 하나가 더 크고 근육도 쓸 만했지만 주먹다짐은커녕 예기치 못한 봉변만 당한 꼴이기 때문이다.

역사적 반항(혁명)을 부정하는 『반항하는 인간』(1951)이 출간됐을 때 사르트르 진영에서는 신출내기 장송을 내세워 카뮈의 사상이 순진하다고 비판했다. 카뮈는 장송을 제쳐두고 곧장 사르트르에게 반론을 제기했고, 사르트르는 추가적인 반론을 봉쇄하면서 카뮈와의 오랜 우정을 버리고 사상적 결별을 선언한다. 사르트르보다 ‘머리 하나가 더 컸던’ 카뮈지만 논쟁은 그에게 상처만 남긴다. 그 후 수년의 침묵 끝에 발표한 『전락』에서 사르트르와 자신의 모습을 모두 투사한 ‘재판관 겸 참회자’ 클라망스의 형상은 카뮈에게서 일종의 출구전략이었다. 1960년 교통사고로 카뮈가 세상을 떠났을 때 사르트르는 추도사에서 『전락』을 카뮈의 최고작으로 치켜세웠다. 이 작품의 속내가 사르트르에게는 제대로 전달됐던 것이 아닐까.

 

14. 06.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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