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달 '독서인'에 실은 독서카페 칼럼을 옮겨놓는다. 레나타 살레츨의 <선택이라는 이데올로기>(후마니타스, 2014)를 골라서 읽고 적은 독후감이다.

 

 

 

독서인(14년 10월) 선택의 독재와 진정한 선택

 

<사랑과 증오의 도착들>(도서출판b)이란 책으로 처음 소개된 레나타 살레츨은 슬로베니아의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이다. 동시에 라캉주의 정신분석가이다. 슬라보예 지젝이 엮은 <항상 라캉에 대해 알고 싶었지만 감히 히치콕에게 물어보지 못한 모든 것>(새물결)의 공저자로서 히치콕 영화에 대한 빼어난 독해를 이미 보여준 바 있다. 지적 동료로서 지젝과 같이 편집한 책이 몇 권 더 소개되었지만 단행본으로 치자면 최근에 번역돼 나온 <선택이라는 이데올로기>(후마니타스)가 국내에 소개된 저자의 두 번째 책이다. 간단한 이력을 이렇게 나열한 것은 살레츨의 책을 흥미롭게 읽어온 터라 더 소개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지젝이 독보적인 성과를 보여주고 있어서 상대적으로 묻힌 감이 있지만 통칭 ‘슬로베니아 라캉학파’로 불리는 그의 동료들, 곧 살레츨을 비롯하여 믈라덴 돌라르, 알렌카 주판치치, 미란 보조비치 등은 모두 ‘동유럽의 기적’이라 불릴 만한 새로운 철학적 통찰과 이론적 분석을 내놓고 있다.


원제가 <선택의 독재>인 이번 책의 메시지는 제목 그대로 ‘선택이라는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이다. 무엇의 이데올로기라는 것인가? 살레츨에 따르면 선택은 후기 산업자본주의 사회의 지배적 이데올로기이다. 이데올로기란 말의 원래적 의미를 따르면, 이데올로기란 우리의 삶이 구성되는 방식을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것이다. 선택, 곧 ‘우리는 모든 것을 선택할 수 있다’는 관념은 후기 자본주의 사회가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인식을 가로막음으로써 자본주의의 지배를 영속화한다. 그렇다면 선택의 이데올로기성을 폭로하는 것은 자연스레 이데올로기 비판으로서 의미를 갖는다.


물론 반론이 가능하다. 선택이란 행위는 ‘선택의 자유’를 전제로 하고 자유는 다른 무엇보다 긍정적인 가치인데, 무슨 문제인가라는 반론이다. 선택의 자유가 주어지지 않는 사회보다 무엇이건 선택할 수 있는 사회가 훨씬 더 나은 사회가 아니냐는 반문도 뒤따를 수 있겠다. 하지만 그렇듯 자연스러우면서 자명해 보이도록 하는 것이 이데올로기의 효과이고 기능이다. 가령 “사회 같은 것은 없다”고 한 마거릿 대처의 유명한 선언을 예로 들어 보자. 대처는 사회는 없으며 존재하는 것은 “개인으로서의 남녀, 그리고 가족”뿐이라고 말했다. 사회라는 게 허울이고 허상이라면, ‘사회적 문제’라는 말은 어불성설이고 ‘사회적 고통’도 부정확한 표현이 된다. 대신에 모든 것이 개인의 선택과 책임의 문제로 귀결된다. 이것이 ‘개인의 선택’이라는 이데올로기의 효과다. 이렇게 되면 “사회의 부정의에 대한 투쟁은 사라지고 대신 그 자리에는 가난에 대한 수치와 경제적 성공의 사다리에서 더 높이 올라가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자리잡는다. 그와 동시에 자본주의사회의 계급적 차이와 인종적·성적 불평등은 은폐된다. 선택이라는 이데올로기는 모두가 선택의 자유와 권리를 누리는 데 있어서 평등하지 못한 사회적 조건을 보지 못하게 한다.


선택이라는 이데올로기를 떠받치는 또 다른 관념으로서 ‘합리적 선택’ 또한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왜냐하면 실제 사람들의 선택은 합리성과는 별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는 라캉주의 정신분석가로서 저자가 장기를 발휘하는데, 그가 보기에 어떤 선택은 합리적 숙고보다는 그 사람의 더 깊은 심리적 구조를 반영한다. 무슨 말인가. 예컨대 히스테리증자나 강박증자, 그리고 정신병 환자는 그 심리적 구조에 따라 각기 다른 선택을 하게 된다는 뜻이다. 히스테리 여성은 으레 자신의 선택 결과에 실망한다. 항상 ‘이게 아니야!’라고 느끼며 또 다른 물건을 고르지만 불만족은 해소되지 않는다. 선택한 물건의 하자가 있어서가 아니다. 히스테리의 전형적 증상일 따름이다. 남성 강박증자라면 어떨까. 그는 어떤 선택에든 주저하며 꾸물거릴 것이다. 그는 자기가 욕망하는 대상이 자신을 집어삼키지는 않을까 염려하여 대상에 대한 접근을 가급적 회피한다. 항상 누군가에게 억압당하고 조종 받는다고 생각하는 정신병 환자에게는 선택의 상황 자체가 가능하지 않다. 그는 항상 누군가의 선택을 대리한다고 느낀다. 이러한 예시들이 말해주는 것은 우리의 선택이 생각만큼 합리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흔하게 볼 수 있는 과시적 소비만 하더라도 그렇다. 필요해서가 아니라 남의 부러움을 사기 위해서 고가의 물건을 구매하는 행위는 비합리적 선택의 전형적인 사례다. 


선택의 실상이 이러함에도 선택이 찬양된다면 그것은 합리적 의심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비단 자본주의 사회만이 그런 건 아니다.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노동자의 권리와 계급 없는 사회라는 이상이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여졌고 찬양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사회체제를 유지하는 한갓 이데올로기에 불과했다. 과거 동유럽에서 인민이 공산주의 정권에 맞서 투쟁할 때 당 기관원들은 권력이 이미 인민에게 있기 때문에 정권과 싸워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이데올로기가 작동하는 전형적인 방식이다. 인민주권이라는 허울이 현실의 모순에 대한 직시와 투쟁을 가로막는 역할을 했던 것이다. 살레츨은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선택이 그와 유사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선택은 주로 소비와 관련한 선택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럼으로써 더 중요한 선택의 가능성을 은폐한다. 하지만 우리가 시야를 더 확장하자면, 더 근본적인 선택은 사회구조에 대한 선택이어야 한다. 우리에게 선택할 권리가 있다면 그 권리는 자본주의를 거부할 권리도 포함하는 게 온당하다. 과연 그러한 선택권이 우리에게 있는가. 선택의 독재를 수용할지, 아니면 거부할지 선택할 권리가 우리에게 있는가. 저자 살레츨이 우리에게 묻는다.


철학자 지젝은 유사 선택의 사례로 설탕봉지를 예로 든 적이 있다. 커피에 프림과 함께 넣는 설탕이 같은 종류임에도 흰 봉지와 노란 봉지에 따로 담겨져 테이블에 비치되어 있다고 해보자. 흰 설탕이냐, 노란 선택이냐는 선택지인 것처럼 보이지만, 어차피 질적인 차이가 없는 선택이기에 그것은 진정한 선택에 값할 수 없다. 유사 선택이다. 간판은 다르게 달고 있지만 기본적인 정치적 입장과 정책 면에서 별로 차이가 없는 정당들 사이에서 유권자가 선택해야 한다면 그 또한 유사 선택을 면하기 어렵다. 진정한 선택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현실에서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 사이의 경계를 다시 긋는 행위다. 가능한 것이라는 테두리 안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불가능한 것이라고 치부되는 것을 가능한 것으로 끌어안는 행위다. 주어진 것 안에서만 고르라는 선택의 독재를 넘어서는 것은 바로 그러한 진정한 선택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14. 10. 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대한출판문화협회에서 펴내는 월간지 출판문화(587호)에 실은 초대석 칼럼을 옮겨놓는다. 수년 전 독서에세이를 연재한 적이 있는데, 이번에 다시 청탁을 받아 내년에도 격월로 독서에세이를 연재할 예정이다. 이 칼럼은 그 맛보기라고 해야겠다.

 

 

출판문화(14년 10월호) 책은 여전히 우리의 미래다

 

굳이 해보지 않아도 아는 일이 있는 것처럼 굳이 읽어보지 않아도 어림할 수 있는 글이 있다. 서평가가 <출판문화>의 초대석 지면에 쓸 수 있는 글이 그런 종류일 것이다. 책을 읽자, 라는 빤한 얘기. 그렇다, 흥미로울 게 전혀 없는 고정 레퍼토리다. 우리가 독서량 조사에서 매번 꼴찌를 맴도는, 다시 말해서 어지간히 책을 안 읽는 국민이라는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좀 읽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염려 섞인 제안. 이 글은 그런 기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임을 미리 밝힌다. 늘 반복하는 주장에 한두 마디 더 얹을 수 있다면 나로선 최선이겠다.

 

책이 거의 모든 것이라고 생각하는 축에 속하지만 그렇다고 책에 대한 열혈 신자는 아니다. ‘독서 천국 부독서 지옥을 설파할 생각은 없다는 얘기다. 책에서 배운 것인지는 몰라도 내 나름으론 관용적이다. 다른 가능성에 대해서도 얼마든지 고려한다. 어떤 가능성인가? 어차피 책과 담을 쌓기로 한 것이 우리의 결연한 태도이자 문화라면(이건 비독서 문화라고 해야겠다), 그리고 책을 안 읽는 게 우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 가운데 하나라면 그런 장기를 살리는 것도 한 가지 방책은 되지 않겠느냐는 것. 자문해보자. 잘하지 못하거나, 별로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억지로 해서 좋은 결과를 얻은 경우가 과연 얼마나 되던가. 다른 선택지에 대한 기회비용까지 계산하면 역시나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는 결론이 나올 것이다. 소질이 없다면 일찍 접는 것도 차선은 된다. 어쩌면 한국인에게 독서 또한 그런 없는 소질은 아닐까.

 

예부터 책읽기를 즐겨온 자랑스러운 전통을 우리는 갖고 있다고도 말한다. 일리가 없지 않지만 딱히 맞는 말도 아니다. ()보다 문()을 숭상했던 조선조 선비들이 그 전통의 주역일 터이지만 문제는 책을 읽을 줄 아는 선비들이 결코 전체 인구의 다수는 아니지 않았느냐는 반론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 때 식민지 조선의 문해율이 30퍼센트를 넘지 않았다면 조선의 문해율 인구가 그보다 높았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즉 아무리 한쪽에는 독서를 즐기는 선비들이 있었다고 해도 인구의 절대 다수는 책과는 거리가 먼 문맹이었을 것이다. 책을 읽어온 내력 못지않게 안 읽어온 내력도 무시 못한다고 해야 온당하다.

 

물론 문해율만 놓고 보자면 사정은 달라진다. 어려운 한문 대신에 한글을 쓰게 된 덕이 크지만, 오늘날 한국인의 문해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곧 한글 문장을 읽지 못하는 한국인은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30퍼센트 미만이던 문해율 인구가 거의 100퍼센트에 육박한다고 하면 말 그대로 뽕나무밭이 푸른 바다로 변한 수준이다. 그렇다, 나름 대단한 일이고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그런데 그런 자부심이 자기도취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한 가지 의문도 해결해야 한다. 어째서 그런 높은 문해율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의 독서량은 형편없이 적은가라는 의문이다.

 

나는 두 가지 답변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한 가지 답변은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불분명하지만, 우리가 분명 책을 읽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안 읽기로 작정했다는 것. 운전면허를 갖고 있지만, 운전을 하지 않는 사람이 있고, 가수 뺨치는 소질을 갖고 있지만, 노래만은 극구 사양하는 사람도 있다. 마찬가지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책을 읽을 수 있지만 다른 일에 손댄다는 것이다. 그것이 개인적인 선택이라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겠으나 집단적으로 그런 선택을 했다고 하면 그 이유는 연구과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답변은 문해력이 곧바로 독서력, 곧 책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을 보증해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 다시 말해서 문해력과 독서력이 일치하는 건 아니라는 설명이다. 그래야 높은 문해율과 낮은 독서량 사이의 불일치가 설명된다. 이 경우 사람들은 책을 안 읽는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실상은 책을 읽을 능력이 부족해서 못 읽는 게 된다. 어느 쪽이 진실에 가까울까?

 

만약에 전자라면, 즉 다들 책을 읽을 수 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읽지 않는 것이라면 문제의 해법은 관심을 독서로 돌리게끔 하는 것이다. 어떤 유인책이 효과적일지는 궁리해봐야겠지만 해법 자체가 복잡한 건 아니다. 물을 먹이기 위해 말을 강가로 데려가듯이, 어떻게든 책을 접하기 쉬운 곳으로 자주 데려가다 보면 어느 시점에서인가 국민의 절대다수가 독서국민으로 탄생하는 기적이 연출될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만약 후자라면, 즉 문해력은 습득했지만 독서력이 갖춰지지 않아서 책을 못 읽는 거라고 한다면, 문제는 좀 복잡하다. 일단 책은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읽을 수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가 책을 안 읽는 것이 아니라 못 읽는 것이라는 현실 직시가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 단계에서 독서력을 갖추기 위한 독서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독서력을 갖춘다는 게 대단한 수고를 요구하는 힘든 일은 아니라는 점이다. 비유컨대 그것은 반복적인 독서를 통해서 우리 뇌에 독서근육을 만드는 일에 해당하다. 꾸준한 운동이 우리의 근력을 키워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꾸준한 독서는 우리의 독서근육을 발달시킨다. 책은 기분으로 읽는 게 아니라 근육으로 읽는다. 얼마만큼의 독서량이 있어서 독서근육이 만들어지는가에 대해서는 확정적으로 말할 수 없지만 대략 150권가량의 독서가 권장된다. 1~2, 혹은 길게 잡아도 3~4년에 걸쳐서 그 정도 분량의 책을 읽는다면 자연스레 독서근육이 길러질 수 있다. 그리고 일단 독서근육이 형성된 다음이라면, 독서는 한결 수월하고 재미있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러니까 이 경우에도 선후관계는 바뀔 수 있는데, 책은 재미있어서 읽는다기보다는 읽다 보면 재미있어진다.

 

독서력을 갖춘 독서국민이 되는 방도에 대해 적어보았는데,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자면 왜 굳이 그래야 할까란 회의도 검토해보아야겠다. 성인의 일 년 평균 독서량이 열권에도 미치지 못하는 현실에서, 온 국민이 책을 읽는 독서강국으로 가는 길은 너무 멀고도 험한 여정일 수밖에 없다. 왜 그런 고난을 감수해야 하는가. 몇몇 선진국의 사례가 있다손 치더라도 우리의 형편과 소질을 고려하지 않고 무작정 따라하기에 나서는 것은 몰주체적 행태 아닌가.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말이 있듯이 남의 나라의 좋은 문화가 항상 우리에게도 좋은 문화가 되는 건 아니다. 다른 나라의 훌륭한 도서관시설과 독서문화가 부럽다지만, 과거에 우리가 토착 민주주의라고 불렀던 한국형 민주주의가 따로 있었던 것처럼, 한국형 비독서 문화도 충분히 가져봄직하다. 어쩌면 그것이 한강의 기적을 낳은 성공신화의 밑바탕이었는지도 모를 일 아닌가?

 

나로선 이런 회의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세계에서 최초로 금속활자를 발명했다곤 하지만 우리에게 그 용도는 똑똑한 백성을 만드는 데 있지 않았다. 책을 널리 보급하여 누구라도 책을 읽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우리의 이상도 아니었다. 책은 읽어온 내력보다 안 읽어온 내력이 양적으로는 오히려 더 본질적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책을 읽자고 제안한다면 뭔가 대단한 비전이라도 제시해야 할 듯싶지만, 나의 동기는 소박하다. 우리가 잘 안 해본 걸 한번 해보자는 것.

 

책을 안 읽는 건 너무도 오랫동안 줄기차게 해왔다. 부독서가 우리의 적성에 맞는지도 모르겠다. 그뿐 아니다. 책을 직접 구매한 독자의 경우도 대략 15퍼센트 정도만 완독한다고 하니까 우리의 비독서는 상당한 스펙트럼을 자랑한다. 책이 없어서 안 읽을뿐더러 있어도 안 읽는 것이니 말이다. 때문에 식상하다. 여전히 책을 읽는 사람이 신기하다고 생각할 게 아니라 꾸준히 책을 안 읽는 사람이 식상하다고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그래서 좀 덜 식상한 선택을 해보는 건 어떨까. 그래서 놀라운 반전의 드라마를 써보는 건 어떨까. 한국인들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는 드라마!

 

 

이게 아주 이상한 드라마는 아니다. 디지털 시대의 구루였던 스티브 잡스의 사례만 하더라도 그렇다. 잡스는 애플사의 아이패드가 출시되던 날 아이들의 반응은 어떠냐는 기자의 질문에 자기 아이들은 써본 일이 없다고 대답했다. 그가 선호했던 건 아이들과 식탁에 앉아 책과 역사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었다. 그가 아이들에게 권한 건 아이패드가 아니라 책이었다. 인터넷 시대에 책은 너무 낡은 것 아니냐는 낡은 생각을 뒤집을 필요가 있다. 독서국민은 우리가 아직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며 책은 여전히 우리의 미래다.

 

14. 10. 1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주의 책'을 고른다. 잠시 쉬어가는 의미에서 평소와는 좀 다르게 '교양심리학' 분야의 책들로 다섯 권을 골랐다. 인지심리학 분야의 책도 하나 포함돼 있지만 넓게 보자면 모두 심리학 책들이다. 이 분야의 책은 꾸준히 나오고 있지만(아마도 고정 독자층이 있는 걸로 보인다) 나로선 평소에 잘 읽게 되지 않는데, 생소한 저자가 많아서 어떤 책이 진짜이고 또 가짜인지 판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보통은 저자 소개나 추천사 등에 의지하게 된다. 그렇게 고른 책들에 대락적인 순서를 부여했다.

 

 

먼저, 타이틀북은 니컬러스 에플리의 <마음을 읽는다는 착각>(을유문화사, 2014). '오해와 상처에서 벗어나는 관계의 심리학'이란 부제가 책의 초점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아니, 그래도 부족하다. 스티븐 핑커의 추천사가 도움이 되는 이유. "뛰어난 사회심리학자 니컬러스 에플리는 <마음을 읽는다는 착각>에서 다른 사람의 생각을 어떻게 이해하는지(그리고 잘못 이해하는지)를 최근의 흥미로운 연구 사례들을 곁들여 생생하게 들려준다." 이 정도면 손에 들어도 된다. 저자는 시카고대학 경영대학원의 행동과학 교수.   

 

두번째는 독일 심리학자 게오르크 피퍼의 <쏟아진 옷장을 정리하며>(부키, 2014). '힘들고 아픈 나를 위한 치유의 심리학'이 부제다. 이 역시 제목과 부제만으로는 어떤 책인지 가늠할 수 없다('치유의 심리학'을 표방하는 책은 부지기수다). 추가적인 소개. "지은이는 25년 이상 심리 치료사로 활동하며 수많은 사건·사고 관련자를 치료한 독일의 대표적인 트라우마 전문가로, 자신이 경험한 사례를 통해 삶에서 맞닥뜨리는 여러 위기를 극복하고 더 행복하고 충만한 인생을 살 수 있는 방법을 들려준다. '옷장이 쏟아진' 것처럼 마음이 무너져 내려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놀라운 힘이 우리에게 내재되어 있음을, 그리고 그 힘을 일깨울 방법을 알려 준다." 

 

 

세번째는 스페인의 인지심리학자 라파엘 산탄드루의 <마음의 함정>(생각의날개, 2014). '나를 비참하게 만드는 부정적인 생각에서 벗어나는 법'이 부제다. 제목과 부제는 다 거기서 거기다. "저자는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외부에서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그 사건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마음이라고 말한다. 똑같은 좌절을 겪고도 길에서 잠깐 넘어진 것처럼 무릎을 툭툭 털며 일어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주저앉아 낙심하며 일어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우리가 느끼는 모든 불행과 두려움과 좌절감이 우리 마음속에서 우러난 것이며, 이러한 부정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긍정적인 마음을 유지하는 방법을 깨닫게 될 것이다."는 소개도 그다지 미덥지는 않다. 다만 스페인에서 20만부 이상 판매된 베스트셀러라고 하니까 '부정적인 생각에서 벗어나는 법'을 배우진 못하더라도 세계의 베스트셀러를 일람하는 효과는 있겠다.

 

네번째는 데이비드 리코의 <내 그림자가 나를 돕는다>(마디, 2014). 원제는 '그림자 댄스'이고 부제는 '당신의 어두운 면이 지닌 능력과 창의성을 일깨운다'. 저자는 심리치료 전문가. "이 책은 개인생활, 가족관계, 인간관계, 종교 등의 세계에서 그림자가 나타나는 곳을 찾고, 마음을 조용히 훈련하여 자신의 어두운 면과 함께 지내는 법을 보여준다."

 

 

그리고 끝으로 다섯번째 책은 스티븐 코슬린 등의 <상뇌하뇌>(추수밭, 2014). "인지신경과학의 거목인 스티븐 M. 코슬린 박사가 30년 인지심리학 연구 결과들을 토대로 당신의 뇌가 생각하는 방식에 대한 전혀 새로운 이론을 제시한다. 바로 뇌는 좌뇌와 우뇌가 아니라 상뇌와 하뇌로 작동한다는 것. 이로써 50년간 우리의 편견을 지배해 온 좌뇌형 인간과 우뇌형 인간의 허구성이 드러나고, 우리 각자는 상뇌와 하뇌의 상호작용 정도에 따라 크게 4가지 인지유형으로 사고한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우리 뇌가 상뇌(뉴브레인)와 하뇌(올드브레인)로 구성되어 있다는 상식은 새로운 발견과 거리가 멀지만 작동방식에 따라 4가지 인지유형으로 나뉜다는 점은 흥미를 끈다. 덧붙여 스티븐 핑커의 추천사. "코슬린은 현 시대 인지신경과학 분야를 주도한 위대한 과학자 중 한 명이다." 헛소리를 하는 책은 아니라는 얘기니 믿어보기로 하자...


5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마음을 읽는다는 착각- 오해와 상처에서 벗어나는 관계의 심리학
니컬러스 에플리 지음, 박인균 옮김 / 을유문화사 / 2014년 9월
14,000원 → 12,600원(10%할인) / 마일리지 700원(5% 적립)
2014년 10월 12일에 저장
절판

쏟아진 옷장을 정리하며- 힘들고 아픈 나를 위한 치유의 심리학
게오르크 피퍼 지음, 유영미 옮김 / 부키 / 2014년 9월
14,800원 → 13,320원(10%할인) / 마일리지 740원(5% 적립)
2014년 10월 12일에 저장
절판
마음의 함정- 나를 비참하게 만드는 부정적인 생각에서 벗어나는 법
라파엘 산탄드루 지음, 홍선영 옮김 / 생각의날개 / 2014년 10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2014년 10월 12일에 저장
구판절판
내 그림자가 나를 돕는다- 당신의 어두운 면이 지닌 능력과 창의성을 일깨운다
데이비드 리코 지음, 김하락 옮김 / 마디 / 2014년 9월
15,500원 → 13,950원(10%할인) / 마일리지 770원(5% 적립)
2014년 10월 12일에 저장
절판


5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이달의 읽을 만한 책'을 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이어가겠다고 했는데, 좀 늦어졌다. 분야를 약간 조정하고 좀더 자유롭게 고르려고 한다. 책이 너무 많으니 목록을 줄여보는 것도 고려해봄직하나 어차피 골라서 읽는 거라면 읽을 만한 책 '후보'로 생각해도 되겠다.

 

 

1. 문학예술 

 

아무래도 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프랑스 작가 파트릭 모디아노에게 관심을 쏠릴 듯하다. 이미 상당수 작품이 번역돼 있고 몇 권은 추가적으로 더 나온다고 하니까 독서 목록은 충분하다. 대표작으론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문학동네, 2010)이 꼽히는 모양인데, 1978년 공쿠르상 수장작이니까 그럴 만하다.

 

 

국내에 처음 번역된 작품은 그보다 한 해 전에 나온 <가족수첩>(1977)인데, 김화영 교수의 번역으로 <추억을 완성하기 위하여>(문장사, 1978)라고 나왔었다. 그게 <추억을 완성하기 위하여>(세계사, 1991)이라고 재출간됐고, 내가 읽은 것도 그 책이다. 읽었다곤 하지만 역자 해설만 기억이 난다. <프랑스문학 산책>(세계사, 1989)에서 저자 김화영 교수는 동시대 프랑스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르 클레지오, 미셸 투르니에와 함께 파트릭 모디아노를 꼽았었다. 그 중 벌써 두 작가가 노벨상 수상작가가 된 셈인데, 노벨문학상 심사위원회의 프랑스문학에 대한 '편애'라고 하면 억지일까. 그럼에도 물론 '이변'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결과다. 10년 전, 2004년에 옐리네크가 수상자로 선정됐을 때의 '파격'에 비하면 아주 조신해보이기까지 한다. 아무튼 결과는 나왔고 한두 권 읽어보는 걸로 '의례'를 갈음해도 좋을 듯. 그러다 작가의 매력에 뒤늦게 빠진다면 한 계절을 축내고 어쩔 수 없겠고.  

 

 

예술분야에선 미술사 관련서 세 권을 골랐다. 동물행동학자 데즈먼드 모리스의 <예술적 원숭이>(시그마북스, 2014)는 '300만 년에 걸친 미술 진화사'가 부제. 초기작이 이제 번역됐나 했더니 2013년작이다(초기에 유인원들의 그림에 대한 책을 펴냈던 걸로 기억한다). "<털없는 원숭이>로 유명한 동물학자이자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초현실주의 화가로 직접 작품활동을 펼쳐온 데즈먼드 모리스는 우리 인류의 비범한 진화 이야기를 통해 예술이 사소하고 평범하게 시작하여 어떻게 발전해왔는지 시각 미술을 기반으로 설명하고 있다."

 

윌 곰퍼츠의 <발칙한 현대미술사>(알에이치코리아, 2014)는 '천재 예술가들의 크리에이티브 경쟁'이 부제. 저자는 세계적인 미술관 테이트 갤러리 관장을 역임했고, 그런 경력을 바탕으로 "19세기 인상파 작품들에서 시작된 현대미술 태동기부터 앤디 워홀의 「캠벨수프 깡통」, 데이미언 허스트의 「상어」로 이어지는 동시대미술을 아우르며, 걸작에 숨은 이야기들을 예술가들의 눈과 입을 통해 생생하게 들려준다."

 

토비 레스터의 <다 빈치, 비트루비우스 인간을 그리다>(뿌리와이파리, 2014)는 '인체비례도에 얽힌 2000년 서양문화 이야기'다. 원과 정사각형 안에 사내가 팔다리를 내뻗고 있는 유명한 그림이 '비트루비우스 인간'이다. 저자는 "그 상징적 그림에 담긴 비밀을 풀고 미술과 사상의 역사를 솜씨 좋게 엮어낸다."

 

 

 

2. 인문학

 

네덜란드 만화가 마르흐레이트 데 헤이르의 시리즈를 고른다. <과학이 된 무모한 도전들><철학이 된 엉뚱한 생각들>, 그리고 <종교가 된 사적인 고민들>(원더박스, 2014). 좀 가벼운 느낌의 책을 고른 건 사회과학 분야에서 무거운 책을 골라서다.

 

 

3. 사회과학

 

충분히 짐작할 수 있지만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글항아리, 2014)이다. 주변에서도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이 책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저자의 핵심 메시지를 더 많은 사람이 공유하는 것이라는 생각에서 '이달의 읽을 만한 책'으로도 골라놓는다. '올해의 책'으로도 가장 강력한 후보이기에 군말은 적지 않는다.

 

 

4. 과학 

 

과학쪽은 뇌과학 분야의 책 세 권을 골랐다. 모든 이전에 한번씩 언급했던 책들이라 별도의 언급은 피한다. 에릭 캔델의 <통찰의 시대>(알에이치코리아, 2014)와 크리스토퍼 코흐의 <의식>(알마, 2014), 그리고 조금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스티브 다얀의 <우리는 꼬리치기 위해 탄생했다>(위즈덤하우스, 2014) 등이다.

 

 

5. 글쓰기

 

글쓰기나 책읽기 분야의 책들을 매달 돌아가면서 고르려고 한다. 이달에는 문장 교정에 지침서가 될 만한 책으로 <이수열 선생님의 우리말 바로 쓰기>(현암사, 2014)와 <고종석의 문장1,2>(알마, 2014) 두 권을 고른다(<고종석의 문장>은 한번 '이달의 읽은 만한 책'으로 고른 적이 있다). 저자의 이름이 제목에 박힌 것 자체가 책에 대한 신뢰를 암시한다. 자신이 쓰는 문장에 대한 '마사지 효과'를 경험해보시길.

 

14. 10. 11.

 

 

P.S. 피케티의 <21세기 자본>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이달의 읽을 만한 고전'도 마르크스의 <자본>을 고른다, 라고 하면 좋겠지만 무리한 일이기에 자본론 읽기에 도움이 될 만한 책 세 권을 고른다. 최근에 나란히 출간됐는데, 김수행 교수의 <자본론 공부>(돌베개, 2014), 강신준 교수의 <오늘 '자본'을 읽다>(길, 2014), 그리고 중국학자 양자오의 <자본론을 읽다>(유유, 2014)가 그 세 권이다. 가이드를 셋이나 두면 여정이 꼬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정확한 길찾기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발견이라고 이름 붙이기엔 너무 친숙한 주제이지만, 민족주의를 다룬 묵직한 연구서가 출간되었기에 '이주의 묵직한 발견'이라는 이름을 붙여본다. 서양사학자 김인중 교수의 <민족주의와 역사>(아카넷, 2014). '겔너와 스미스'가 부제인데, 민족주의 연구의 거목으로서 어니스트 겔너와 앤서니 스미스를 집중 조명하고 있기에 붙여진 것이다(한스 콘 같은 학자는 이제 지나간 이름이 되었나 보다).

 

 

저자는 에드워드 톰슨의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창비, 2000), 이매뉴얼 월러스틴의 <근대세계체제>(까치, 2013) 등의 굵직한 저서들을 공역했고, 민족주의 관련서로는 브라이언 젠킨스의 <프랑스 민족주의>(나남, 2011)를 우리말로 옮긴 바 있다. <프랑스 민족주의>의 부제는 '1789년 이후의 계급과 민족'인데, 홉스봄의 책 <1780년 이후의 민족과 민족주의>(창비, 1998)를 떠올려준다. 1780년대가 중요한 분기점이란 걸 시사한다.

 

 

대표적인 민족주의 연구자로 언급되고 있지만 어니스트 겔너의 책은 <쟁기, 칼, 책>(삼천리, 2013)만 소개된 터이고 <민족과 민족주의> 같은 주저는 아직 번역되지 않았다. 앤서니 스미스 같은 경우는 사정이 나아서 <민족주의란 무엇인가>(용의숲, 2012)가 번역돼 있다(<국제화 시대의 민족과 민족주의>(명경, 1996)도 번역됐었지만 절판된 지 오래다).

 

 

저자는 앤서니 스미스의 저작들에 대해서 상당한 분량을 할애하여 검토하고 있는데, 주요 저작들 가운데 특히 <민족들의 족류공동체적 기원>(1986)을 자세히 다룬다. 현단계 민족주의 연구를 대표할 만한 저작이라면 소개되어도 좋지 않을까 싶다. 아무튼 민족과 민족주의에 대한 이해를 한단계 심화시켜줄 만한 노작이 나온 듯싶어 반갑다...

 

14. 10. 1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