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이주의 발견'으로 고른 책은 데이비드 실즈의 <문학은 어떻게 내 삶을 구했는가>(책세상, 2014)다. 거의 매일 문학 강의를 하는 나로선 손이 안 갈 수 없는 책. 저자는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문학동네, 2010)로 처음 소개된 바 있는 미국 작가다. 다큐멘터리적 소설로 유명하다는데, 국내에는 두 권의 에세이로 이름을 알린 셈. 신작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가.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에서 모든 생명의 불가피한 운명이자 가장 외면하고 싶은 진실인 죽음을 경쾌하고도 신랄하게 그려낸 데이비드 실즈가 이번에는 자신의 '업'인 문학에 대해 이야기한다. <문학은 어떻게 내 삶을 구했는가>는 제목 그대로 데이비드 실즈가 문학이 그의 삶을 어떻게 구했는지 탐구하는 책이다. 실즈는 문학은 과연 우리 삶에서 무엇을 의미하는가, 즉 그는 왜 글쓰기에 발 들였고, 왜 문학과 예술을 사랑하게 되었고, 그것이 그의 삶을 어떻게 나아지게 했는가에 대한 답으로 자신의 문학적 기원인 말더듬증부터 디지털 시대의 독서와 글쓰기의 운명에 이르기까지, 자전적 회고와 문학 비평을 종횡무진 풀어놓는다.

여차하면, 나도 비슷한 책을 써볼까 싶다. 실즈가 1956년생이니까 10년쯤 뒤에는 나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요즘 같아선 누구보다도 많이, 많은 작품들에 대해 강의를 하고 있으니 아주 빈말은 아니다.

 

 

다음주 강의에서 다룰 작품들을 책상 가까이에 옮겨놓았는데, 쿤데라의 <불멸>(민음사, 2011), 오에 겐자부로의 <아름다운 애너벨 리 싸늘하게 죽다>(문학동네, 2009), 그리고 앨리스 먼로의 <디어 라이프>(문학동네, 2013) 등이다. 다음주는 이런 작품들로 연명할 예정이니, 더불어 이 작품들에 대해 강의하기 전에는 죽을 수도 없으니, 문학이 내 삶을 구제했다는 말은 억지나 과장이 아니다. 그래, 인생아, 한 주 더 살아보기로 하자!..

 

14. 12.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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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작가, 아니 남미의 경우에는 국적이 크게 중요하지 않은 듯하므로, 라틴아메리카의 대표작가 가운데 한 명인 홀리오 코르타사르(창비 표기론 '꼬르따사르')의 단편집이 출간됐다. <드러누운 밤>(창비, 2014). 코르타사르의 장편이 번역되길 더 기대했지만 단편도 뛰어나다고 하니 아무려나 반갑다. 몇몇 단편 선집에 그의 작품이 수록된 적은 있으나 제대로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다.

 

 

코르타사르에 대해 내가 아는 정보는 두 가지다. 가르시아 마르케스, 바르가스 요사 등과 함께 라틴아메리카 붐 소설을 주도했으며, 카를로스 푸엔테스까지 포함하면 중남미 현대문학의 4인방쯤 된다는 것이 하나이고, 로베르토 볼라뇨가 가장 숭배하는 남미작가라는 게 다른 하나. 내 식으로 구분하자면 볼라뇨는 현대 남미문학을 마술적 리얼리즘 계보와 비마술적 리얼리즘 계보로 나누는데, 마르케스와 코르타사르가 각각을 대표한다. 그리고 볼라뇨 자신은 코르타사르파에 속한다. 그런 관점에서 좀 읽어보고 싶었는데, 볼라뇨 컬렉션이 17권이나 나오는 동안 코르타사르는 (난해한 탓인지?) 거의 소식이 없었다.

 

 

볼랴뇨의 작품도 <야만스러운 탐정들>만 읽었을 뿐, 아직 대부분 읽지 않은 상태라(그래도 책은 거의 모은 듯하다) 이번 겨울에 유작 <2666>을 비롯해서 몇 권 더 읽어봤으면 한다. 마르케스나 요사, 이사벨 아옌데 등의 대표작을 읽은 터라, 다른 계보의 작가들에 대한 독서도 균형안배 차원에서 읽어두고자 하는 것이다.

 

 

<드러누운 밤>이 출간된 김에 어젯밤에 바로 주문한 영역본은 장편 <팔방놀이>와 단편집 <확대>(원제는 '악마의 침')다. 영어본으로는 두 작품을 같이 묶은 작품집도 나와 있다. 볼랴뇨 때도 그랬듯이 미지의 작가를 만나는 일은 초등학교 시절 겨울방학을 기다리던 것 같은 기분을 갖게 한다. 책들은 주문해놓았으니 방학보다 훨씬 일찍 만나게 될 것이다. (책중독자라면 알겠지만) 그 기다림의 시간도 꽤 근사하다... 

 

14. 12.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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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생각할 필요 없이 날씨만으로 12월이고 겨울이다. 늘 그렇지만 이맘때면 일정이 많건 적건 간에 마음 한쪽이 분주하다. 하루를 정리하고 한달을 정리하는 일에 덧붙여 한해를 정리해야 하니까. 다사다난했다기 보다는 험난했다는 표현이 어울릴 2014년을 정리하는 마지막 달에 읽을 만한 책들을 골라놓는다.

 

 

 

1. 문학예술

 

읽어볼 만한 한국소설로는 '은행나무 노벨라' 시리즈를 고른다. 비슷한 분량이라도 '경장편'이라고 우기지 않고 '노벨라(중편)'라는 점을 표나게 내세웠는데,  시리즈 목록이 좀 늘어나면 단편도 아니고 장편도 아닌, '중편'이란 과연 무엇인가, 생각해볼 거리도 제공해줄 듯싶다(중편의 시학?). 배명훈의 올여름 배명훈의 <가마틀 스타일>로 첫발을 뗀 이후 김혜나의 <그랑 주떼>, 김이설의 <선화>, 최민경의 <마리의 사생활>까지 네 편이 선보였다. 현재까지는 <선화>가 가장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듯하다.  

 

 

세계문학 쪽으로는 최근 셋째 권이 나온 '문학동네 세계시인 전집' 시리즈를 고른다. '선집'이 아니라 '전집' 시리즈다. 세이머스 히니, 필립 라킨에 이어서 폴란드 시인 <즈비그니에프 헤르베르트 시전집>(문학동네, 2014)이 이번에 나왔다. "1956년 출간된 첫 시집 <빛의 심금>을 필두로 1998년 출간된 마지막 시집 <폭풍의 에필로그>까지 총 10권의 시집에 빠졌던 작품들까지 한데 묶은 이번 시전집은 역자 김정환의 즈비그니에프 헤르베르트에 대한 오랜 관심에서 출간까지 빛을 볼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무려 936쪽, 번역의 노고가 여실히 느껴지는 분량인데, 이 참에 영역 선집도 구해볼까 싶다.

 

 

예술 분야의 책으론 좀 가볍게, '모마 아티스트 시리즈'를 고른다. 12권이 한꺼번에 나왔는데, 뉴욕의 현대미술관 '모마'가 현대미술가 12인을 집중조명한 시리즈다. 현대미술 전성기의 주역으로 세잔, 브랑쿠시, 레제, 마티스, 피카소, 호안 미로 등 6명, 그리고 미국 현대미술의 대표작가로 드 쿠닝, 폴록, 재스퍼 존스, 리히텐슈타인, 워홀, 라우센버그 등 6명이다. 개인적으로는 다소 덜 알려진 미국 현대 작가들의 작품세계에 대해서 일별해볼 수 있겠다 싶어 반갑다.

 

 

 

2. 인문학  

 

인문학 분야에서는 출판사를 옮겨 다시 번역돼 나온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와이즈베리, 2014)를 고른다. 200만부 이상 팔려나간 책이지만 실제 독자는 생각만큼 많지 않다는 게 출판계의 생각이다. 그 실제 독자 수가 늘어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나대로 그런 바람을 갖는 이유는 별권으로 나온 해제에 적었다). 여전히 좀 어렵게 느껴지는 독자라면 <10대를 위한 정의란 무엇인가>(미래엔 아이세움, 2014)를 대신 읽어봐도 좋겠다. 토머스 캐스카트의 <누구를 구할 것인가?>(문학동네, 2014)는 <정의란 무엇인가> 때문에 널리 알려진 '전차(활차) 문제'를 폭넓게 다룬 책으로 '‘도덕적 딜레마’ 시대를 사는 이들을 위한 탁월한 윤리학 입문서'이다. 승계호 교수의 <철학으로 읽는 괴테 니체 바그너>(반니, 2014)는 고급 인문독자들이 놓치지 말아야 할 올해의 책 가운데 하나다.

 

 

 

3. 사회과학

 

사회과학 쪽에서는 최근에 나온 자본주의 관련서들을 골랐다. 월러스틴 등의 <자본주의는 미래가 있는가>(창비, 2014)를 포함해서, 자본주의의 역사를 다룬 울리케 헤르만의 <자본의 승리인가 자본의 위기인가>(에코리브르, 2014), 그리고 데이비드 하비의 <자본의 17가지 모순>(동녘, 2014) 등이다.

 

 

더불어, 한국사회의 지울 수 없는 상처이자 질문이 된 세월호 문제를 다룬 책으로 <눈먼자들의 국가>(문학동네, 2014), <4.16 세월호 민변의 기록>(생각의길, 2014), 그리고 <사회적 영성>(현암사, 2014) 등을 고른다. 올해가 다 가도록 우리는 여전히 '눈먼자'로 남아 있겠지만 손가락으로 더듬어서라도 알아내야 할 진실이 아직 우리 앞에 있다.

 

 

 

4. 과학

 

과학 쪽에서는 <장하석의 과학, 철학을 만나다>(지식채널, 2014)가 아무래도 기본서. KAIST의 뇌과학자 김대식 교수의 <김대식의 빅퀘스천>(동아시아, 2014)도 이름값이 기대되는 책이다. 같은 뇌과학자의 책으론 개정판으로 다시 나온 에릭 캔델의 자서전 <기억을 찾아서>(알에이치코리아, 2014)도 같이 읽어봄직하다.

 

 

<인터스텔라> 열풍에 기대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사이언스북스, 보급판, 2006)를 다시 읽어봐도 좋겠다. 미치오 가쿠의 <평행우주>(김영사, 2006)도 현대 우주론을 이해하는 흥미로운 길잡이. 복잡한 수식 없이 밤하늘을 바라보고 싶은 독자라면 폴 보가드의 <잃어버린 밤을 찾아서>(뿌리와이파리, 2014)의 안내를 받아도 좋겠다.

 

 

 

5. 독서교육

 

그리고 내맘대로 고른 이달의 주제는 독서교육이다. 자극이 될 만한 책이 마크 바우어라인의 <가장 멍청한 세대>(인물과사상사, 2014). 실제적인 독서교육 방법과 사례에 대해서는 김은하의 <독서교육, 어떻게 할까?>(학교도서관저널, 2014), 경기도중등독서토론교육연구회 교사모임에서 펴낸 <함께읽기는 힘이 세다>(서해문집, 2014)를 참고해볼 수 있겠다.

 

14. 12. 03.

 

 

P.S. '이달의 읽을 만한 고전'은 예기치 않은 출현으로 최근 알라디너들의 환영과 지지를 받은 새 번역 <돈키호테>(열린책들, 2014)다. 예전에 창비판으로 읽고 강의를 했었는데, 새 번역본이 나온 김에 다음 주부터 진행하는 한 강좌에서는 열린책들판을 교재로 정했다. 겸사겸사 다시 읽어보려고 한다. 돈키호테와 함께 뭔가 제정신으로 지나온 것 같지 않은 한 해를 마감하는 것도 나쁘진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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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동국대학원신문에 실은 '원서서평'을 옮겨놓는다. 매번 마감에 쫓기다 보니 가벼운 터치의 책을 고를 수밖에 없었는데, 이번에 다룬 건 제임스 웨스트 3세의 <완벽한 시간>(2005)이다. '스콧 피츠제럴드와 그의 첫사랑 지네브라 킹의 로맨스'가 부제. 피츠제럴드의 작품, 특히 <위대한 개츠비>를 강의할 때 참고했던 책이다.

 

 

동국대학원신문(14. 12. 01) 지나가지 못한 사랑, 첫사랑에게 되돌려진 피츠제럴드의 편지

 

미국의 재즈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 스콧 피츠제럴드의 독자라면, 그리고 『위대한 개츠비』(1925)를 흥미롭게 읽은 독자라면 주인공 개츠비의 필생의 사랑인 데이지 뷰캐넌의 모델이 누구일까 궁금해 할 법하다. 첫 소설 『낙원의 이편』(1920)부터 피츠제럴드는 주로 자전적인 경험을 소재로 작품을 썼기 때문이다. 최근에 만들어진 바즈 루어만 영화 <위대한 개츠비>(2013)에서라면 데이지 역을 맡은 캐리 멀리건의 모델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제임스 웨스트 3세의 『완벽한 시간』(2005)은 그 데이지의 모델이 피츠제럴드의 첫사랑이었던 지네브라 킹이며, 두 사람은 세간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깊은 사이였다는 사실을 두 사람이 주고받은 편지들에 근거해서 밝히고 있는 책이다.

 

 

『낙원의 이편』에 등장하는 이자벨의 모델이기도 한 지네브라의 존재 자체는 피츠제럴드의 전기 작가들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생전의 인터뷰에서 지네브라는 피츠제럴드가 젊은 시절 자신을 둘러쌌던 많은 남자들 가운데 하나였을 뿐이라고 일축했다. 두 사람의 관계를 입증할 만한 증거도 없는 터여서 특별한 사이가 아니었다는 그녀의 말이 그대로 받아들여졌다. 피츠제럴드 역시 떠들썩한 연애상대였던 젤다 세이어와의 결혼을 위해 『낙원의 이편』 출판을 서둘렀기에 대개 그렇듯이 그의 첫사랑은 ‘지나간 사랑’으로 여겨졌다. 당시 판매는 『낙원의 이편』에 미치지 못했지만 피츠제럴드 자신은 대표작이라고 자부한 세 번째 소설 『위대한 개츠비』에서도 데이지의 모델은 젤다 세이어인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런데 숨겨진 내막은 달랐다. 피츠제럴드가 젤다 세이어에 매혹된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였는데, 젤다가 지네브라와 마찬가지로 부잣집 딸이라는 점과 지네브라와 외모가 닮았다는 점이 그것이다. 젤다의 모습 속의 지네브라를 사랑했다고 해야 할까. 거슬러 올라가면 피츠제럴드가 지네브라를 처음 만난 건 1915년 1월의 한 파티에서였다. 두 사람은 첫눈에 호감을 느끼며 사랑에 빠졌지만 아직 십대였던 두 사람은 자주 만날 수 없었고 주로 편지로 마음을 주고받았다. 사랑이 무르익기도 했지만 결국 2년 뒤인 1917년 1월에 두 사람은 관계를 정리하는데, 그들의 이별에는 빈부의 차가 가장 결정적이었다. 1916년 피츠제럴드는 지네브라의 아버지인 시카고의 갑부 사업가 찰스 킹이 한 말을 기록하고 있다. “가난한 남자는 부잣집 여자와의 결혼을 생각지도 말아야 한다.”

 

 

서로 헤어지게 되자 지네브라는 피츠제럴드에게서 받은 편지를 모두 소각하고 자신이 보낸 편지도 소각해줄 것을 요구했다. 피츠제럴드는 그 요구에 따랐는데, 다만 자신이 타이핑한 사본을 따로 만들어둔 다음이었다. 1940년 피츠제럴드가 죽고 나서 이 사본을 보관하던 딸 스코티는 1950년에 이를 지네브라에게 되돌려주었다. 지네브라는 이 사본을 평생 옷장에 보관하다가 1980년에 세상을 떠났고, 그녀의 손녀가 2003년에야 할머니의 유품을 우연히 발견함으로써 다시 공개되기에 이르렀다. 비록 피츠제럴드의 편지는 남아있지 않지만 지네브라 킹의 편지를 통해서 그들의 관계가 재구성되기까지의 여정이다.

 

 

이러한 사실이 『위대한 개츠비』를 읽는 데 어떤 도움이 될까. 최소한 작가 피츠제럴드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 작품인지는 해명할 수 있을 듯하다. 즉 상처 입은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한 시도로 읽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더구나 데이지의 남편 톰 뷰캐넌의 외모가 찰스 킹을 닮았다는 점도 피츠제럴드가 어떤 의도에서 이 소설을 구상했는지 짐작하게 해준다. 소설에서 데이지를 완벽하게 되찾으려는 개츠비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가지만, 작품 속 화자 닉 캐러웨이의 말대로 개츠비는 적어도 뷰캐넌 부부보다는 도덕적으로 더 우월하다. 소설가의 정산법이다.

 

14. 12.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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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북플 이용자는 알겠지만 추천마법사 외에 북플 추천이란 게 있다. 그냥 불쑥 이런 책에 관심 있을 거 같으니 한번 살펴보라고 들이미는데, <성재 봉기종 선생의 대학강해>(전학출판사, 2014) 추천이 며칠새 두 번이나 들어왔다. 이게 관심을 표명할 때까지 계속 추천하는 것인지 어떤지 모르겠지만 추천시스템에 대해 약간 의혹도 생겼다. 성재 봉기종 선생이 누군지도 모르고, <대학>에 특별한 관심을 보인 기억도 없기 때문이다. 읽은 걸로 치면 학부 1학년 때 과제물로 <대학>과 <중용>을 읽은 거 같은데, 좀 과장해서 30년 전 일이다. 최근에 나온 남회근 <대학강의>(부키, 2014)라면 또 모를까.

 

 

저작선이 출간되고 있는 남회근(1918-2012)은 유불도 강의로 유명한 대만의 학자다(불교 수행자이기도 했다). 아직 저작선판으로는 나오지 않았는데, 나는 이전 번역판으로 나온 <논어 강의>를 좀 읽은 기억이 있다. <대학강의>에서 표나게 내세운 건 '원본 <대학>' 강연이라는 점. '원본' 얘기가 나오는 건 유가에서 사서를 편찬하면서 원본에 손을 댔기 때문이다.

송유宋儒인 주희는 <예기>속의 대학과 중용을 따로 떼어내어, 순서를 바꾸고 내용을 덧붙여 제왕의 학문으로 탈바꿈시켰다. 그 후 천여 년 가까이 '원본' <대학>은 사라지고 주희의 '장구본'이 정통으로 군림하였다. 선현의 논리를 제멋대로 해석하여 과거 시험의 표준이 되었고 후인들의 사고를 옭죄었으며 이후 수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하였다. 이 책은 유가와 도가가 나누어지지 않았던 도통道統의 시대, 담백하고 논리정연하고 정채로운 '원본' <대학>을 강의한다. <대학>은 내면의 학문 수양을 통해 이치를 밝히고 본성을 실현하여 그것으로가까운 사람들, 나아가 세상을 이롭게 함을 드러낸 책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평소(혹은 예전에) 읽은 <대학>과는 다른 <대학>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전공자들이야 이미 사정을 알고 있겠지만 일반 독자로선 흥미를 가질 만하다. 게다가 얇은 분량의 경전에 대한 두툼한 풀이여서 강연자의 솜씨도 여실히 드러나지 않을까 한다.

 

 

국내에서는 내노라 하는 학자들의 강의가 더 있을 텐데, 떠오르는 건 김용옥, 김충열, 대산(김석진)의 강의다. 일일이 다 구입할 것까진 없고 가까운 도서관에 (혹 비치돼 있다면) 날 잡아서 몇 권을 나란히 펴놓고 독서 삼매경에 빠져봄직하다. 며칠만 투자하면 '대학'의 문리가 트이지 않겠는가, 싶다. 내가 그러고 싶지만, 당장은 여유가 없군. 독서계에서 가장 부러운 건 백수 독학자들이다. 그들이야말로 독서 여유의 지존인지라...

 

14. 12.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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