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저자'를 고른다. 물리학자이자 과학사상가 내지 생명사상가라고 해야 할 장회익 선생의 책 두 권이 개정판으로 한꺼번에 나왔기에 머리에서 언급한다. <공부 이야기>(현암사, 2014)와 <삶과 온생명>(현암사, 2014)가 그것으로 먼저 나온 <과학과 메타과학>(현암사, 2012)까지 포함해 '3부작'을 이룬다. <공부 이야기>에 대한 소개는 이렇다.

 

장회익 선생의 베스트셀러인 <공부도둑>의 개정신판인 <공부 이야기>가 새 모습으로 출간되었다. 끝없이 앎을 추구하며, 평생 앎과 숨바꼭질하며 살아온 생애의 자취를 더듬으며 선생은 자신을 때로는 공부꾼 때로는 앎을 훔쳐내는 학문도둑이라고 말한다. 그저 앎을 즐기고 앎과 함께 뛰노는 것이 좋았던 어린 시절, 청소년 시절, 대학 시절, 유학 시절에 이어 장년을 지나 노년의 지금까지 여일한 ‘공부하는 삶’이 담백하고 아름답다.

다른 두 권보다 앞세운 것은 공부 입문이면서 장회익 입문도 겸할 수 있겠기 때문이다. 특히나 수능을 치른 예비 대학생들이, 더구나 자연과학 계열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이라면 필독해봄직하다.

 

 

말이 나온 김에, 예비 대학생이 읽어봄직한 또 다른 책은 역사학자 박상익 교수의 <나의 서양사 편력1,2>(푸른역사, 2014)이다.

<번역은 반역인가>, <밀턴 평전> 등의 저서와 <호메로스에서 돈키호테까지>, <뉴턴에서 조지 오웰까지>, <러셀의 시선으로 세계사를 즐기다>, <새로운 서양문명의 역사> 등 다수의 저서와 번역서를 통해 서양사를 우리 현실과의 관련 속에서 이해하는 데 힘써온 저자 박상익의 <나의 서양사 편력>. '나를 깨우는' 서양사의 장면들에 주목한다. 고대, 중세, 근대, 현대의 시대순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에서 저자는 우리의 현실을 비춰주는 거울이 될 만한 서양사의 94개 장면들을 모았다. 여기에 저자가 오랜 기간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연구한 주제인 존 밀턴에 관한 5편의 글을 한데 모아 별도로 편성했다.

영국의 탁월한 시인이자 혁명가였던 밀턴에 대한 글이 5편 포함된 것은 저자가 <밀턴 평전>(푸른역사, 2008)을 펴낸 사실을 떠올려준다.

 

 

그리고 작가 조정래 선생의 산문집도 출간됐다. <조정래의 시선>(해냄, 2014). 소설이 아닌 다른 형식의 글은 생각보다 드문 편인데, 수년 전에 나온 '작가생활 40년에 대한 자전에세이' <황홀한 글감옥>(시사IN북, 2009)과 산문집 <누가 홀로 선 나무>(문학동네, 2002) 정도가 있을 뿐이다. 소설 밖 육성과 만날 수 있는 드문 기회.

<조정래의 시선>은 '문학과 우리 역사 그리고 사회적인 긴급한 문제에 한해' 발언한다는 원칙을 문학인생 45년간 지켜온 작가가 인터뷰와 강연, 신문 칼럼 등에 공개한 의견을 엄선하고 미처 전달되지 않은 내용을 보충하여 정리한 산문집이다. 사회구성원이자 치열한 문학인, 그리고 후회 없는 생을 살아온 한 사람으로서 소설에서 직접 말하지 않은 문학론, 인생관, 민족의식, 사회 인식을 담은 이 책은 '인생이란 자기 스스로를 말로 삼아 끝없이 채찍질을 가하며 달리는 노정이고, 두 개의 돌덩이를 바꿔 놓아가며 건너는 징검다리'라고 정의한 작가의 '매 순간 진정을 다 바친 내 인생의 결정들'이다.

연말이라 그런지 세 저자의 책들이 모두 한 생애, 내지 한 시대를 축약하고 있다. 연말의 독서거리로는 맞춤하다 싶다. 막 성년을 앞둔 젊은 세대 독자들의 손길이 많이 닿았으면 싶다...

 

14. 1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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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에 잠시 들여다본 책은 개정 번역판으로 나온 <안티 오이디푸스>(민음사, 2014)다. 예판시 주문을 했고 며칠전에야 펭귄판 영역본과 함께 배송받았다(영어판을 따로 갖고 있지만 바로 찾을 수가 없어서 펭귄판도 같이 주문했다). 이전 번역판과는 달리 미셸 푸코의 영어판 서문 '비-파시스트적 삶의 입문서'가 서문격으로 번역돼 있어서 일단은 다행스러웠다(물론 이 서문을 읽다가 책을 덮는 독자들도 많이 있으리라). 그리고 예의 아주 유명한 서두를 읽다가 오래 전에 쓴 페이퍼가 생각났다. 2005년 7월에 쓴 '말하는 입과 먹는 입'이다(즐찾 300이 넘은 걸 기념하여 쓴 페이퍼인데, 그 후 거의10년이 지났고 현재는 5660명이다. 한 세월이 지나간 듯한 느낌이다). 새 번역본이 20년만에 나온 김에, 거의 10년 전 페이퍼도 다시 읽어보는 의미에서 옮겨놓는다. <안티 오이티푸스>의 첫 대목에서 '그것'에 대한 해석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번에 나온 김재인판의 번역은 이렇다.

 

그것(Ça)은 도처에서 기능한다. 때론 멈춤 없이, 때론 단속적으로. 그것은 숨 쉬고, 열 내고, 먹는다. 그것은 똥 싸고 씹한다. 이드(le ça)라고 불러버린 것은 얼마나 큰 오류더냐? 도처에서 그것은 기계들인데, 이 말은 결코 은유가 아니다. 그 나름의 짝짓기들, 그 나름의 연결들을 지닌, 기계들의 기계들.  

다음 단락부터는 2005년의 글이며, 빌미로 삼은 김항의 글은 <말하는 입과 먹는 입>(새물결, 2009)에 수록돼 있다. 한편 새 <안티 오이디푸스>의 판권면에 책의 1판 1쇄가 1997년 4월 25일에 나왔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1994년에 나온 만큼 3년이 누락되었다. 1994년에 첫 번역본이 나왔다는 사실은 '옮긴이의 말'에서도 언급되고 있는데 이런 착오가 발생한다는 건 놀랍다. 편집자가 너무 무신경했다...

 

브리핑 거리들은 정말로 널려 있지만, 책상에서 제일 먼저 손에 잡힌 건, 혹은 가장 만만하게 눈에 띈 건 김항의 "말하는 입과 먹는 입"(<세계의문학>, 2005년 여름호)이다(사실은 데리다의 "이론을 좇아서"란 글을 염두에 두었지만 아직 다 읽지 않았다). 필자는 동경대학교 박사과정에 있는데, 히로마쓰 와타루의 <근대초극론>(민음사)를 우리말로 옮긴바 있고, 나는 <세계의 문학>지에서 그의 글을 두번째로 읽게 되었다. 국가와 폭력이란 주제를 다루고 있는 이 글은 생각보다 견적이 많이 나온다. 제대로 검토하기 위해서 참조해야 할 저자들이 여럿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다룰 수 있는 건 그냥 글의 서두뿐이다. 이 서두는 <안티 오이디푸스>의 서두이기도 하다. 

"그것(Ça)은 작동하고 있다. 때로는 흐르며, 때로는 멈추면서, 도처에서 그것은 작동하고 있다. 그것은 호흡을 하고, 그것은 열을 내고, 그것은 먹는다. 그것은 똥을 싸고, 그것은 섹스를 한다. 그럼에도 '한데 싸잡아 그것(le ça)'이라 불렀으니 얼마나 잘못된 일인가. 도처에서 이것은 여러 기계들이다. 게다가 결코 은유가 아니다. 이것들은 서로 연결하고, 접속하여 기계의 기계가 되는 것이다."

이 문단에 대한 필자의 해설: "여기서 '그것(Ça)'은 입이다. 호흡하고, 열을 내뿜고, 먹는 입. 항문과 연관되고 성기를 빠는 입. 이렇게 다른 기계와 연결된 기계인 입을 '그것(le ça=Es)'이라 부른 일, 즉 정신분석학에서 무의식에 해당하는 '그것'이라 싸잡아 부른 것은 잘못이었다. 입을 대표하는 입 일반은 없기 때문이며, 입은 항상 무언가에 연결된 기계이기 때문이다. 정신분석가만이 입을 그것(Es)이라 부르며 안심한다."(강조는 나의 것)

 

이 대목을 읽고 내가 제일 먼저 떠올린 것은 몇 년 전의 '논쟁(?)'이다. <문학과 사회> 2002년 여름호에 이종영의 "파시스트 들뢰즈와 가타리가 반(反)파시즘을 말하다"란 글이 실렸고(이 글의 풀-버전은 <내면성의 형식들>(2002)에 '들뢰즈와 가타리의 파시즘과 반(反)파시즘'이란 보론으로 들어가 있다), 이어서 이를 반박하는 김재인의 글 "파시즘과 비인간주의 사이에서 외면당하는 들뢰즈와 가타리"가 가을호에 게재됐다. 이 논쟁의 핵심(즉, 들뢰즈/가타리가 파시스트냐 아니냐)은 여기서의 관심사가 아닌데, 다만 흥미로웠던 건 인용한 대목에서 '르 싸'의 해석을 놓고 벌어진 논쟁이었다.

 

자신이 엉터리 번역본인 국역본 <앙띠 오이디푸스>를 참조하고 있다고(그러니까 <안티 오이디푸스>를 제대로 읽지 않았으며 당연히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고) 비난하는 김재인에 대해서 이종영은 독자들/친구들에게 이렇게 호소했었다: "김재인 씨는 <앙띠 오이디푸스> 한글판의 번역이 엉망이고 ‘위서’에 가깝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김재인 씨가 사례로 제시한 내용은 저를 어리둥절하게 합니다. 김재인 씨는 <앙띠 오이디푸스> 한글판에서 잘못된 번역의 대표적 사례로 <앙띠 오이디푸스>의 첫 문단을 듭니다. 즉 한글판에서 ‘이드’(Id, das Es)로 옮겨놓은 첫 문단의 ‘싸’(ça)가 ‘이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앙띠 오이디푸스> 첫 문단의 ‘싸’(ça)는 명백히 ‘이드’입니다. 왜냐하면 들뢰즈와 가타리가 그렇게 말하기 때문이지요. 그들은 ‘숨쉬고 뜨거워지고... 똥누고 성교를 하는’ ‘그것’에 대해 말한 후, ‘그것’을 정관사를 붙여 ‘르 싸’(le ça)라고 한 것은 잘못이었다고 합니다. 이때 그들은 정관사 ‘르’를 강조합니다... 김재인 씨는 이 첫 문단의 ‘그것’이 ‘입’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똥누는 것은 토악질을 하는 것이고 성교는 하는 것은 키스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도대체 이러한 자의적 해석을 하는 사람이 과연 <앙띠 오이디푸스>를 최명관 씨보다 더 잘 번역할 수 있을지 의문이 갑니다."

 

이에 대해서 김재인은 이렇게 반박한바 있다: "내 주장을 반복하면 이렇다. 들뢰즈-가타리가 ‘르’를 떼어야 한다고 했을 때 이는 ‘의도적인 혼동’을 염두에 두고서 그렇게 한 것이다. 즉 프로이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또는 프로이트를 혼동시키기 위해. 왜냐하면 그들이 보기에 프로이트는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단수 정관사를 쓴 것은 더더욱 잘못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복수 부정관사를 써서 ‘des ça’라고 했어야 옳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양체요 리좀이다. 그래서 첫 문단의 그것이 ‘입’을 가리킨다는 점은 명백하다. 나는 모든 ‘그것’이, ‘그것’ 일반이 입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입은 그것의 한 사례라는 것을 말하고자 했을 뿐이다. 첫 문단의 서술을 잘 읽어보면 이 점은 명백하다(절대로 자의적 해석이 아니다). 이런 해석을 제시한 것은 내가 처음이다."(강조는 나의 것)

 

그리고 이제 김항이 두번째인 듯하다(하지만, 이 '독특한 해석'의 반복은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나로선 이 서두에서의 '그것(Ça)'이 어떻게 '입'으로 해석될 수 있는지 자못 궁금하고 신기하지만 두 사람이나 이런 '독특한' 해석(처음 김재인이 그러한 견해를 제시했을 때, 그것은 그 자신의 말대로 '유일무이한' 해석이었다. 전세계를 통틀어서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김항만 빼놓고)을 제안/지지할 때는 정색하게 된다. 정말로 '입'이 열을 내면서, 먹으면서, 똥을 싸고 섹스를 하는가? 아마도 김재인/김항은 토악질=똥으로 오랄섹스=섹스라는 비유적 등식화를 여기서 추가적으로 요구하게 될 듯하다(정신분석학이 모든 게 '그것=입'의 문제라고 주장하며 오랄섹스에 대해 근심하는 학문인가? 정신분석가만이 입을 그것(Es)으로 부르며 안심한다? 나는 어떤 정신분석가들인지 궁금하다). 하지만, 들뢰즈/가타리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은유/비유를 혐오한다(이것들은 은유가 아니다!). 고로 똥은 똥이고 섹스는 섹스다.

 

김항의 인용/번역문에서 바로 제시돼 있듯이, "도처에서 이것(Ça)은 여러 기계들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대목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이지만, 유방이나 입은 이 기계들 가운데 하나이다. 상식적으로 읽을 때, 들뢰즈/가타리는 이 (욕망하는)기계들을 통칭해서 그것(독어로 Es/ 불어로 le Ça/ 영어로 Id)이라고 정신분석학이 명명한 것에 반대하는 것이다. 그것은 기계들의 복수성을 일반화하고 단수화하는 것이기 때문에(반복하지만, '기계들'은 결코 은유가 아니다. 더불어 그것은 '입'이라는 단일한 기계가 아니라, '기계들'이다). 물론 이어지는 대목에서 보듯이, 식욕상실자의 입은 '먹는 기계', '항문기계' '말하는 기계' '숨쉬는 기계' 어느 것(=기능)이 될지 불확정적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입이 '기계들'의 대용어나 통칭어가 될 수는 없다.

 

김재인은 "나는 모든 ‘그것’이, ‘그것’ 일반이 입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입은 그것의 한 사례라는 것을 말하고자 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맞는 얘기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맨처음 '그것'은 입이 아니다. 김항은 "정신분석학에서 무의식에 해당하는 '그것'이라 싸잡아 부른 것은 잘못이었다"라고 말했다. 맞는 얘기다. 하지만, 내가 아는 정신분석학에서 입을 무의식(=그것)이라 부르지 않는다. 나는 두 유능한 연구자의 입에서 왜 이런 '독특한' 주장이 반복되는 것인지 다시금 궁금하고 신기하다...

 

여기까지가 2005년에 쓴 것이다. 문득 생각이 나서 역자의 견해가 그간에 변함이 없는지 알고 싶었지만 책에는 따로 역자의 주석이 붙어 있지 않다. 분량을 감당하기 어려워서 '가이드북' 형식의 책을 따로 펴낼 예정이라 한다. 그래서 좀더 기다려봐야겠지만, 여전히 같은 견해라면, 나로선 또 계속 궁금하고 신기할 듯하다(프로이트가 '그것'을 '이드'라고 부름으로써 '욕망 기계들'을 부당하게 축소했다는 게 내가 이해하는 들뢰즈의 입장이다). '옮긴이의 말'에서 역자가 적은 소회는 이렇다.

이 책의 내용을 바탕으로 여러 강의도 진행했고 논문들도 썼지만, 옮긴이 자신도 내용을 충분히 숙지했는지는 여전히 자신이 없다. 다만 외국에서 간행된 저술들과 논문들 그리고 국제 학술대회에서 접한 강연과 대화를 통해, 아직 <안티 오이디푸스>는 현 시점에서 세계적으로 충분히 이해된 책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 확인은 특별한 자신감으로 다가왔으며, 번역 작업을 이쯤에서 마쳐도 되리라는 결심을 굳히게 했다. 언제까지 혼자서만 읽는 텍스트로 놔둘 수는 없으며, 한국어를 읽을 수 있는 모든 이가 공유해야 할 시점이 되었다는 느낌이 든 것이다.

요컨대 역자의 관점에서 보자면, 한국어판 <안티 오이디푸스>는 '자신 없음'과 '특별한 자신감' 사이에 놓여 있다. 독자의 관점에서는 어떨까? 그에 상응하여, 한국어로 읽을 수 있을지 여전히 자신이 없지만, 이번에는 분명 읽을 수 있으리라는 특별한 자신감도 든다. 내년쯤에는 결과를 알 수 있으리라...

 

14. 1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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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독자가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교양철학서 범주의 책들은 꾸준히, 적잖게 출간된다. 누군가는 찾고, 누군가는 읽는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나도 그 '누군가'의 한 명에 속할 텐데, 맘만 먹으면 매주 페이퍼 거리로 다룰 만한 책도 여럿 된다. 최근에 나온 책 가운데서는 리처드 테일러의 <무엇이 탁월한 삶인가>(마디, 2014)와 제니퍼 마이클 헥트의 <살아야 할 이유>(열린책들, 2014)도 그런 경우다.

 

 

<무엇이 탁월한 삶인가>는 미국의 원로 철학자로 2003년에 세상을 떠난 저자 리처드 테일러에 대한 관심과 '탁월함'이란 주제에 이끌려 손에 들게 됐는데, 국내엔 오래 전에 소개된 <형이상학>(서광사, 2006; 종로서적, 1990) 외에 <결혼하면 사랑일까>(부키, 2012)가 아주 오랜만에 추가됐고 <무엇이 탁월한 삶인가>가 세번째 책이다. '탁월함'을 주제로 삼는다지만 원제는 <자부심 되찾기: 우리 시대의 잃어버린 미덕>이다. '자부심'이 주제인 셈.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미국의 대표적인 형이상학자의 전복적 인생 지침. 행복에 이르는 탁월함을 명쾌하게 밝힌다. 자부심, 선(good)의 원래 의미는 유대-기독교 이래 현대사회에서 사라졌다. 모든 사람이 자부심을 가질 수 있고 타인에 대한 자비가 곧 선이라는 주장 등인데, 이로써 삶의 의미는 퇴색되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이에 대한 분명한 이해를 갖고 있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정당한 사랑’만이 우리 삶의 목적이며 그 근거는 탁월함이다. 부와 명예의 과시는 자부심을 주지 못하며 관습과 종교에 맞춰 살며 안주하는 것은 ‘자발적 노예’의 삶이다.

자부심이 결여된 삶은 부유하든 가난하든 노예의 삶에 불과하다는 문제의식에 공감한다면 연말 '머스트리드' 목록에 올려놓을 만하다(리처드 테일러가 국내에서 그렇게 인지도 있는 철학자는 아니라서 책의 출간 사실이 흥미롭다. 이 책을 소장하고 있는 대학도서관이 한 곳도 없다! 그래도 미주나 찾아보기가 다 빠진 건 유감스럽다).

 

 

<의심의 역사>(이마고, 2011)라는 베스트셀러의 저자 제니퍼 마이클 헥트의 책도 국내엔 세 권이 소개돼 있다. <행복이란 무엇인가>(공존, 2012)에 뒤이어 <살아야 할 이유>까지 나왔기 때문인데, 부제는 '자존의 철학'이고 원제는 <스테이(Stay)>다. '자살의 역사와 그에 반대하는 철학'이라는 원서의 부제가 책의 메시지를 좀더 분명하게 전달해준다. 일종의 '反자살론'이란 점에서 카뮈의 <시지프 신화>를 떠올려주는 책(물론 카뮈의 책보다는 훨씬 수월하게 읽힌다).

 

시인이자 역사학자인 제니퍼 마이클 헥트의 자존의 철학. 오래된 동료 시인 두 명의 자살을 목도하며 저자는 오늘날 우리가 삶과 죽음을, 특히 자기 살해에 의한 죽음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하는 물음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한다. 자살은 인류 역사에서 어떻게 다뤄져 왔는가? 자살을 논하는 철학자들의 시선은 어느 곳을 향하고 있는가? 현재의 우리는 자살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저자는 이러한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 역사학과 철학의 학문적 경계를 넘나들며 개인적, 학문적 역량을 이 책에 집약시킨다.

제니퍼 헥트는 1965년생으로 여러 대학을 거쳐 컬럼비아대학에서 과학사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현재는 뉴욕의 뉴스쿨대학교와 컬럼비아대학교에서 시와 철학을 가르치고 있다 한다. 아무튼 진지하게 자살을 생각해본 독자라면 (손해보는 셈치고) 일독해 볼만하다. "<살아야 할 이유>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확실하고 강력한 책이다"(샌프란시스코 북리뷰)도 참고해서...

 

14. 1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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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고전'으로 아프리카문학 대표작들을 고른다. 벤 오크리의 <굶주린 길>(문학과지성사, 2014)이 출간되어서인데, 1959년생인 벤 오크리는 나이지리아 중부 민나 출생이고 나이지리아 정부 장학생으로 영국의 대학에서 공부한 후 BBC에서 프리랜서로 일한 경력을 갖고 있다. 대표작이 1991년에 발표하여 부커상을 수상한 <굶주린 길>이다. 어떤 작품인가.

 

벤 오크리는 독립을 전후로 한 격동기의 나이지리아에서 태어났다. 치누아 아체베, 윌레 소앙카와 같은 아프리카 문학 1세대 작가들이 아프리카의 식민지 현실과 독립에의 열망을 문학에 담아냈다면 벤 오크리는 독립 이후 아프리카의 현실에 주목한다. 어린 시절 겪은 비아프라 내전과 이어지는 숱한 종족 갈등과 쿠데타는 벤 오크리에게 정신적 상흔으로 남았으며, 그는 이 어두운 역사를 수많은 작품에 담아냈다. 소설 <굶주린 길>도 그 연장선에 있다. 리얼리즘의 한계를 느낀 벤 오크리는 현실과 초현실을 오가는 혼령 아이를 설정해, 혼란의 시기에 자신이 직접 본 살아 숨 쉬는 일반인들의 역사, 그 역사를 온몸에 새긴 인물들을 묘사하며, 마치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오고 가는 혼령 아이처럼 끊임없이 변화하는 모국 나이지리아를 그려냈다.

 

동시대 아프리카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라는 점에서는 1세대 작가로 올해도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됐던 응구기 와 시응오도 같이 떠올릴 만하다. 펭귄판 <울지마라, 아이야>(1964)에 벤 오크리가 서문을 붙이고 있어서 연관짓게 된 것인데, 1938년생인 응구기의 대표작은 1967년작인 <한 톨의 밀알>(들녘, 2014)이다(번역본은 여러 번 재출간됐다). 어떤 작품인가.

월레 소잉카, 치누아 아체베, 나딘 고디머, 존 쿳시 등과 더불어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작가로 손꼽히는 응구기 와 시옹오. 응구기가 세계적인 작가로 발돋움한 작품으로, 작가의 작품세계가 전환기를 맞이했음을 알려주는 소설이다. 이 소설은 형식, 내용, 문체 등 모든 면에서 그의 최고작으로 손꼽힌다. 외부 세력에 의한 공동체의 붕괴가 가져다준 비극과, 그 공동체를 다시 일으켜 세우려는 지난한 과정에서 사람들의 심리와 행위가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면서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이 때문에 로렌스의 서정성과 콘라드의 비극성을 잘 조화시켜 놓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요컨대, 아프리카문학이 어디에 있느냐고 묻는다면, 이 두 작가의 대표작을 꺼내놓을 수 있겠다. 제목도 비슷하게 연상되기에 기억도 쉽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프리카문학의 강의에서 다룬다면 필수 커리 두 편은 정해진 셈이다...

 

14. 1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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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의 캘린더는 오늘 12월 20일을 '박근혜, 18대 대통령 당선 확정'으로 기억한다. 그렇군, 2년전에 그런 일이 있었고, 2014년은 그 당선의 '버라이어티한' 결과를 총체적으로 보여준 한 해였다(세월호 사건부터 통진당 해산 선고 판결까지. 그리고 그 사이에 정윤회 문건 파문). 임기는 3년 더 남았지만, 더 보여줄 게 있을까 미리 염려된다. 2014년의 정치적 의미는 권력이 무엇을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지, 무엇을 동원할 수 있고 어떤 거짓말로 둘러대는지, 그래서 어디까지 망가질 수 있는지를 다 보여주었다는 데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게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비록 게임에서 진다 하더라도 패를 다 보여준 상대는 '더티할' 수는 있을지언정 더이상 두려운 대상이 아니기에. 희망은 없지만, 두려움도 없어진 연말에 고르는 '이주의 책'이다.

 

 

타이틀북은 박노자의 <비굴의 시대>(한겨레출판, 2014)로 골랐다. 제목보다는 '침몰하는 대한민국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란 부제에 이끌려서다. "우리 시대 가장 급진적이고 예외적인 지식인으로 평가받는 박노자의 고민과 번뇌를 담고 있다.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의 1부에서는 박근혜 정권의 후진성,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사고와 비정규직 문제를 비롯한 노동자 문제 등 한국 사회 전반에 대해 다루었다. 2부에서는 바깥으로 눈을 돌려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정치/사회적 문제를 살펴본다. 3부에서는 지식인의 한계와 자본의 노예로 전락한 학계에 대해 비판한다. 4부에서는 우리 시대 사회주의와 좌파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다루었다." 우리가 동시대에 무엇을 보고 듣고 겪고 있는 건지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겠다.

 

두번째 책은 류동민의 <서울은 어떻게 작동하는가>(코난북스, 2014). "서울이라는 우리 삶의 운영 체제, 그 정치경제학에 관한 책. <마르크스가 내게 아프냐고 물었다> <일하기 전엔 몰랐던 것들>에서 정치경제학과 일상, 인문학과 사회과학을 솜씨 있게 엮었던 충남대 경제학과 류동민 교수가 이를 담았다." 서울을 대한민국의 축소판으로 읽으면, '대한민국은 어떻게 작동하는가'의 예시로도 읽을 수 있겠다.

 

 

세번째 책은 필립 K. 하워드의 <노스페이스의 지퍼는 왜 길어졌을까?>(인물과사상사, 2014). '일상을 위협하는 법 만능주의가 부제다. 소개에 따르면, "저자 필립 K. 하워드는 앨 고어가 추진한 미국의 정부 혁신 정책의 자문을 하는 등, 미국 내 규제 완화를 위해 목소리를 높여온 지식인이다. 그는 <노스페이스의 지퍼는 왜 길어졌을까?>를 통해 오늘날 미국 사회의 규제가 그들의 건국이념인 ‘자유와 책임’이라는 가치를 파괴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국책 사업 같은 대규모 프로젝트부터 개인의 판단이 필요한 일상적 행위에 이르는 다양한 사례를 들어, 규제가 불러일으킨 폐해를 진단한다." 원제는 <상식의 죽음>.  

 

 

네번째 책은 '우리시대 명강의' 시리즈로 나온 박홍규 교수의 <자유란 무엇인가>(문학동네, 2104). "이 책은 여러 질문을 던진다. '자유'는 진정 우익의 이데올로기를 대변하는 것인가? 자유의 기원은 무엇이며, 정의는 무엇인가? 인류의 역사 속에서, 자유란 무엇이었는가? 서양의 철학자들은 '자유'를 어떻게 보았는가? 왜 자유는 불의에서 벗어나려는 숭고한 정신에서 이기적 소유와 사유의 욕망으로 타락했는가? 자유의 기나긴 역사와 우리 사회의 문제를 짚으며 자유의 진정한 의미를 묻고자 했기에 <자유란 무엇인가>는 ‘자유’의 사상사를 되짚는 철학서인 동시에, 양극화된 한국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논하는 사회학서의 성격을 띠고 있다."

 

끝으로 다섯번째 책은 조계완의 <오래된 질문 새로운 답변>(앨피, 2014)이다. '경제학 거인들의 거의 모든 경제이야기'가 부제. "경제 전문 기자이자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는 연구자인 저자는, 오랜 시간 국내외 사회과학 및 인문학 고전 속에 담긴 지적 거인들의 학문적 성취들을 성실하게 탐색하고 채집하여, 그것들이 기획·생산·소비되는 구조와 회로를 830페이지의 방대한 분량 안에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제시하고 있다."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오래된 물음에 답하는 데 필요한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책이겠다. 저자는 '지식의 채석장'에 비유하고 있지만 홀가분하게 새해를 맞이하기 위한 '지식의 사우나'로서도 의미가 있겠다...

 

14. 1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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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굴의 시대- 침몰하는 대한민국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14년 12월
17,000원 → 15,300원(10%할인) / 마일리지 85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1월 16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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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그리고 삶은 어떻게 소진되는가
류동민 지음 / 코난북스 / 2014년 12월
14,000원 → 12,600원(10%할인) / 마일리지 7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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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노스페이스의 지퍼는 왜 길어졌을까?- 일상을 위협하는 법 만능주의
필립 K 하워드 지음, 김영지 옮김 / 인물과사상사 / 2014년 12월
13,500원 → 12,150원(10%할인) / 마일리지 67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1월 16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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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란 무엇인가- 공존을 위한 ‘상관 자유’를 찾아서
박홍규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2월
20,000원 → 19,000원(5%할인) / 마일리지 600원(3%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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