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 눈 뜨고 처음 읽은 글이 (문자 메시지와 메일을 제외하면) 중앙일보에 실린 소설가 김훈의 '새해 특별 기고'다(http://joongang.joins.com/article/265/16832265.html?ctg=). 제주에 있는 선배가 새해 안부와 함께 읽어보라는 문자를 보내와서 찾아 읽은 글이다. 세월호 사건과 그 이후를 다루고 있어서 <눈먼 자들의 국가>(문학동네, 2014)를 바로 떠올리게 했다. 유민이의 유품으로 돌아온, 물에 젖은 6만원 얘기는 유민 아빠 김영오의 <못난 아빠>(북앤리브로, 2014)에 나온다고. 여러 대목에서 작가의 통탄에 공감하게 되는데, 특별히 개인적으로는 '골든타임'에 대한 지적을 반복하고 싶다. 그래서 일부를 여기에 옮긴다.

 

2014년 4월 16일의 참사 이후로 사태를 바라보는 이 사회의 시각은 발작적인 분열을 일으키며 파탄되었다. 슬픔과 분노를 온전히 간직해서 미래를 지향하는 동력으로 가동시켜야 한다는 시각과 그 슬픔과 분노를 매우 퇴행적인 소모적인 것으로 여겨 혐오하는 시각이 교차했다. 거칠게 말하자면 4월, 5월까지는 전자의 시각이 우세했으나 6월 4일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적지 않은 재미를 보고, 이어 7월 30일 재·보선에서 여당이 압승하자, 후자의 시각이 주류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슬픔과 분노에 오랫동안 매달려 있는 것은 경제 살리기에 해롭다는 것이 그 혐오감의 주된 논리였다. 세월호에서 놓친 골든타임이 경제회복의 골든타임으로 살아났고 거기에 이념의 날라리들이 들러붙기 시작했다. 사실 4·16참사 이후에 경기는 장기 침체에 빠졌고, 정부의 부양책은 힘을 쓰지 못했다. 모두들 슬프고 분하면 경기는 침체되는 것이니까. 슬픔과 분노가 경기침체의 원인이라는 말도 결국은 동어반복이다. 어찌 헌 옷을 벗듯이, 헌신짝을 벗어버리듯이 마음의 일을 벗어 던질 수 있을 것인가. 돈 많고 권세 높은 자들이 큰 죄를 저질러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형량을 줄여서 선고하고, 형기 중에도 특별사면, 일반사면, 집행정지, 가석방, 병보석으로 풀어주는 무법천지를 나는 자유당 때부터 보아왔고 자유당은 지금도 특별사면 중이다. 죄형법정주의는 무너졌고 경제는 합리적이고 규범적인 토대를 상실했다.

 

재벌의 불법을 용인해야 경제가 살아나고, 정당한 슬픔과 분노를 벗어 던져야만 먹고살기 좋은 세상이 된다는 말은 시장의 논리도 아니고 분배의 정의도 아니다. 그것은 정치적인 속임수일 뿐이다. 법치주의가 살아 있어도 법이 밥을 먹여줄 리는 없고, 밥은 각자 알아서 벌어먹어야 하는 것인데, 법치주의를 포기해야만 밥을 벌어먹기가 수월해진다면 이 가엾은 중생들의 밥은 얼마나 굴욕적인 것인가.

"세월호에서 놓친 골든타임이 경제회복의 골든타임으로 살아났고"란 대목이다. 인명구조에서 쓰던 '골든타임'이 (다분히 의도적인) 용도전용 결과 경제회복이나 정치개혁 같은 말과 어울려 쓰이는 조어가 돼버렸다. 어느 사이엔가 관련 기사들에 자주 등장하는 '골든타임'이 그래서 내겐 가장 역겨운 시사용어가 되었다. '지금밖에 없는 이 기회를 놓치시겠습니까?'라고 미소를 지으며 겁박하는 게 '골드타임'론이다. 놓치면 후회할 거라는.('마지막 기회!'란 말은 홈쇼핑 전용어이기도 하군.)

 

<눈먼 자들의 국가>의 표제글에서 소설가 박민규가 잘 정의한 대로 세월호는 "선박이 침몰한 '사고'이자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은 '사건'이다". 밝혀져야 하는 것은 이 사건과 사고의 진상이다. 혹은 그 둘 사이의 관계다. 김훈의 표현으론 이렇다. "세월호가 침몰한 사건과 그 모든 배후의 문제를 다 합쳐서 세월호 제1사태라고 한다면, 제1사태 직후부터 이 나라의 통치구조 전체가 보여준 붕괴와 파행은 세월호 제2사태다. 이것은 또 다른 난파선이다. 제1사태와 제2사태는 양태는 다르지만 뿌리가 같아서 어느 것이 원인이고 어느 것이 결과인지 구분할 수 없는데, 과거의 제2사태가 오늘의 제1사태로 터져 나오고, 오늘의 제2사태가 미래의 제1사태를 예비하고 있다."

 

세월호특별법에 따른 위원회가 사고/사건의 진상과 책임을 어디까지 밝혀낼 수 있을지 미지수이지만, 나는 그 조사결과가 박근혜정부의 마지막 기회, 곧 골든타임이라고 생각한다. 김훈의 바램은 이렇다.

우리는 새로 생기는 위원회를 앞세워서, 세월호를 끝까지 끌고 가야 한다. 위원회가 동어반복으로 사태를 설명하지 말고 그 배후의 일상화된 모든 악과 비리, 무능과 무지,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의 공생관계를 밝히는 거대한 사실적 벽화를 그려주기 바란다. 그리고 유민이의 젖은 6만원의 꿈에 보답해주기 바란다. 나는 사실 안에 정의가 내포되어 있다고 믿는다.

왠지 결과가 눈에 다 보이는 듯하지만, 그들에게도, 눈먼 자들에게도 이번이 마지막 기회다. 국민지지 회복의 '골든타임'이 어떤 것인지 그들도 여실히 경험해볼 수 있는 기회. 2015년이 그렇게 밝았다...

 

15. 01.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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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마지막 페이퍼 거리를 뭘로 하나 생각하다가, 러시아 영화 얘기로 시작한 하루였기에 모스크바예술극장을 제목에 단 시집 얘기로 마무리한다. 제33회 김수영문학상 수상시집으로 기혁의 <모스크바예술극장의 기립박수>(민음사, 2014)가 출간됐다. 재작년 수상시집이 황인찬의 <구관조 씻기기>(민음사, 2012)였고 작년엔 손미의 <양파 공동체>(민음사, 2013)였다. 간단한 소개는 이렇다.

 

2010년 「시인세계」 신인상을 받으며 시인으로 데뷔하고 2013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문을 통해 문학평론가로도 등단한 기혁은 이지적이면서도 감성적인 언어를 구현하는 시인으로 많은 주목을 받아 왔다. 그의 첫 시집이자 제33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 시집이기도 한 <모스크바예술극장의 기립 박수>는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이미지의 연쇄를 통해 이제껏 본 적 없는 기이하고 아름다운 시적 무대가 된다. 시인 기혁은 이러한 시적 무대의 연출자 겸 배우, 혹은 조명 기사 겸 관객이 되어 연극을 만들어 낸다.

표제시가 미리보기로는 제공되지 않아서 아쉬운데, 조재룡 교수가 붙인 해설의 제목 '어느 무정부주의자의 부조리극에 관하여'를 통해서 얼추 작품세계를 어림해본다. 덕분에 떠올리게 되는 작가는 러시아 부조리극의 대명사 다닐 하름스다(베젠스키와 함께 오베리우 그룹의 일원이었다).

 

 

하름스의 작품은 단편집 <집에서 한 남자가 나왔다>(청어미디어, 2004)가 10년 전에 출간되고 이후엔 소식이 없다(부조리극 <엘리자베타 밤>이 한 문예지에 번역된 게 내가 아는 전부다). 하긴 매일매일 부조리한 발언과 사건이 넘쳐나는 마당에 러시아 부조리문학에까지 관심을 둘 독자가 어디에 있으랴. 현실의 부조리가 문학의 부조리를 압도하는 세계에서 하루이틀, 한달, 두달, 그리고 마침내 한해를 보낸다는 건 얼마나 불행한 일인지...

 

14.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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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플에서 친구 신청한 분의 닉네임이 우리말로 읽으면 '자네트'이길래, 뜬금없이 생각난 시가 있다. 박상순의 '자네트가 아픈 날'. <마라나, 포르노 만화의 여주인공>(세계사, 1996)에 실려 있는데, 찾아보니 절판된 지 오래 됐다. 다시 나오지 않은 게 유감이다. 재간을 독촉하는 의미로(사심으론 제목을 <자네트가 아픈 날>로 바꾸면 더 좋겠다) 1996년쯤에 쓰고 2009년에 블로그에 옮겨놓았던 글을 한번 더 재탕한다. 아니, 다시 찾으니 <자네트가 아픈 날>(문학세계사, 1996)이란 제목의 시집이 나왔었다! '현대시동인상 수상시집'이었다. 어차피 절판됐으니 다시 나오길 기대한다. 참고로 박상순의 시집 가운데 데뷔작 <6은 나무 7은 돌고래>(민음사, 1993)는 2009년에 다시 나왔다. 10년 전에 나온 <러브 아다지오>(민음사, 2004)가 세번째 시집이다.

 

자네트가 아픈 날 2

나는 항아리를 만든다. 미술대학에 다닌 솜씨로, 이제는 다 틀어져 버린 솜씨로, 틀어진 항아리를 만든다. 내가 주둥이를 최대한 작게 마감할 동안 그녀는 약을 먹는다.

나는 노래를 듣는다. 약에 취한 그녀의 노래, 음악대학을 다닌 솜씨로, 그녀는 내 항아리를 노래한다. 나는 항아리 속으로 들어간다. 항아리 속에 그녀의 이름을 새긴다.

그녀가 아픈 날, 나는 항아리를 만든다. 그녀의 이름을 새기고 그녀의 노래를 묻고 마침내 그녀를 묻고, 미술대학에 다닌 솜씨로 뚜껑을 밀봉한다. 

그녀가 아픈 날, 나는 가로수에 대해 공부한다. 그녀를 묻은 뒤에도 나는 가로수만 생각한다. 미술대학을 다닌 솜씨로, 노란 가로수, 불타는 가로수, 그 속에 물고기가 헤엄치는 가로수, 노래하는 가로수.

이제는 다 까먹어버린 솜씨로 내가 아는 모든 사람이 다, 담겨질 거대한 항아리를 만든다. 담겨질 사람은 없다. 나는 다시 가로수에 대해 공부한다. 거꾸로 서는 가로수, 날개 달린 가로수, 돌덩이를 삼킨 가로수, 항아리를 삼킨 가로수.

나를 긴 줄에 묶어 책꽂이 뒤로 끌고가는 가로수, 나를 잡아먹는 가로수, 온몸이 다 항아리처럼 불어난 나의 가로수.  

이 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즉 즐기기 위해서는 ‘항아리’와 ‘가로수’란 두 이미지가 뜻하는 바를 알아야 한다. “그녀(자네트)가 아픈 날”, ⓐ“나는 항아리를 만든다”와 ⓑ“나는 가로수에 대해 공부한다”가 이 시의 줄거리이기 때문이다. ‘항아리’는 한 ‘세계’를 뜻한다. 이때의 세계는 자기만의 예술세계일 수도 있고 가정일 수도 있다. ‘그녀’와의 관계가 문제되고 있으니까 여기서는 가정이라고 해두자. 즉 이 ‘항아리’는 예술작품(Art Work)으로서의 항아리라기보다는 사회적 삶의 표준단위, 즉 가정(Family Life)으로서의 항아리이다.  

그럼 이제 1연을 보자. “미술대학을 다닌 솜씨”로 만들 수 있는 항아리는 FL이 아니라 AW이다. 굳이 “틀어져 버린” 솜씨가 아니어도 그런 솜씨로는 FL을 만들 수 없다(이 사회적 통념!). 그러는 ‘나’의 옆에서 “그녀는 약을 먹는다”(그녀는 약값이 필요할 것이다). 2연에서 “그녀는 내 항아리를 노래한다”. “음악대학을 다닌 솜씨”니까 FL에 대한 감각이 ‘나’보다 나을 리 없다. 약에 취해 있으니까 더더욱 그렇다. 이 항아리가 제대로 된 항아리, 즉 FL을 보장해줄 수 있는, FL로서의 항아리인가 아닌가를 제대로 분별해내지 못하는 것.  

“항아리 속에 그녀의 이름을 새기”는 ‘나’의 행위에서 드러나듯이 이 항아리는 AW로서의 항아리이다. 이건 생활의 터전, 즉 FL로서의 항아리가 아닌 것이다. 따라서 3연에서 결국 이 항아리가 “그녀의 노래를 묻고 마침내 그녀를 묻”는 옹관묘가 된 것은 당연하다. “내 항아리”는 예술의 세계이고 죽음의 세계인 것.  

그리고 이제 ‘가로수’. 가로수는 버드나무처럼 길가에 서 있는 나무이다. 그것은 중심에 있는 나무가 아니다. 그래서 ‘가로수’는 ‘주변적인 존재, 주변적인 삶’의 은유가 된다. “그녀가 아픈 날”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던,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나’는 바로 ‘가로수’ 같은 존재이다. 그래서 그는 4연에서 “가로수에 대해 공부한다”, “가로수만 생각한다”.  

그는 “미술대학을 다닌 솜씨”(!)로 그런 주변적인 자기세계에, 상상적인 세계에 안주한다. 그러다 보니 이제 ‘항아리’의 세계는 점점 멀어져 간다. 5연에서 “다 까먹어버린 솜씨”로 ‘항아리’를 만들어보려고 하지만 제대로 만들어질 리도 없고, 거기에 “담겨질 사람”도 없다. FL뿐만 아니라 AW로서의 항아리도 그는 이제 만들 수 없게 된 것이 아닐까? 그는 “다시 가로수에 대해 공부”하는 수밖에 없다.  

이 자폐적인 세계는 6연에서 “나를 잡아먹는 가로수”의 세계로 진술된다. 이 ‘가로수’는 이제 “온몸이 다 항아리처럼” 불어난 것이다. ‘가로수’가 ‘항아리’를 대신하는 것. 이 안쓰러움을 이 시는 은근하게 노래한다. 이게 내가 이 시를 재미있게 읽은 이유이다...

14.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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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생명에서 발행하는 월간 '다솜이 친구' 1월호에 실은 글을 옮겨놓는다. '감각의 도서관'이란 꼭지를 연재하게 첫번째 주제는 '경제'였고('새해에 읽는 희망의 경제'라는 제목이 붙여졌다),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부키, 2014)와 <사기>의 <화식열전>(민음사판으론 <사기 열전2>에 수록돼 있다)을 다룬 신동준의 <사마천의 부자경제학>(위즈덤하우스, 2012)에 대한 짤막한 소개글이 되었다.

 

 

다솜이 친구(15년 1월호)

 

경제 상황이 어려워지면서 살림살이 걱정으로 새해를 맞이하는 이들도 많을 듯하다. 경제가 무엇이길래? 새해의 첫 독서거리로 경제서를 고르는 독자가 던져볼 만한 질문이지 싶다. 경제란 무엇이고, 그것은 왜 중요하며, 과연 경제적 고통에서 벗어날 길은 없는가? 이달에는 그런 원론적인 질문과 마주하게 해주는 신간과 고전을 함께 읽어보려고 한다.

 

우리가 경제학을 배워야 할 이유

경제란 무엇인가란 질문은 자연스레 경제를 연구하는 학문으로서 경제학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 케임브리지대학 경제학과 교수로 우리에게 친숙한 경제학자 장하준의 강의라면 좋은 출발점이지 않을까. 더구나 ‘지금 우리를 위한 새로운 경제학교과서’를 표방하는 책이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다. 부제만 보면 두 가지가 포인트이다. ‘지금 우리를 위한’ 강의라는 것과 ‘새로운 경제학교과서’라는 것.


저자가 염두에 둔 ‘우리’는 일반 시민으로서 독자를 말한다. 흔히 어려운 용어나 복잡한 수식으로 채워진 경제학은 전공자나 전문가의 영역으로 치부하기 쉽다. 하지만 몇 차례 경제위기를 통해 경험한 것은 누가 진짜 전문가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저자는 경제학이 과학인 양 행세하지만 결코 물리학이나 화학과 같은 의미의 과학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이유는 경제문제에 대해서는 딱 떨어지는 한 가지 답만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복수의 경제이론이 경합을 벌이고 있는 것처럼 항상 복수의 답안이 선택지로 주어진다. 따라서 어떤 경제 현상을 이해하고, 특정한 정책을 지지하는 것은 가치중립적인 판단이 아니다. 그것은 강도 높은 정치적 행위다.


‘새로운 경제학교과서’의 목표는 ‘책임있는 시민’이 갖춰야 할 경제 이해를 제공하는 것이다. 경제학자이지만 장하준은 전문 경제학자들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다. “전문가란 새로운 것은 아무것도 더 배우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란 해리 트루먼의 말을 인용한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전문가란 아주 좁은 영역을 잘 아는 사람일 뿐이기 때문에 대개 편협한 시각을 갖는 경우가 많다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제학적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전문 경제학자들의 말에 도전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저자는 이러한 자세가 바로 민주주의의 기초라고 생각한다.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는 경제를 알고 이해하는 ‘경제 시민’이 되기 위한 필수 지식으로 구성돼 있다. ‘교과서’인 만큼 기본적인 지식과 시각을 다루지만 ‘자본주의의 간단한 역사’를 다룬 장만 읽어보아도 경제를 보는 시야가 확연히 달라질 것이다. 또 경제학의 다양한 접근법을 비교하는 장은 경제학파에 대한 일목요연하면서도 충실한 소개로 저자의 명성에 값한다.

 

 

부자가 되고 싶은 인간의 본성

근대 자본주의가 서양에서 탄생한 만큼 경제학도 서양의 전유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러한 상식을 재고하게끔 해주는 책이 있다. 너무도 유명한 사마천의 <사기>의 <화식열전>편이다. 다양한 사업으로 재산을 모은 총 52명의 행보를 소개한 열전으로 신동준의 <사마천의 부자경제학>은 이를 일컬어 “동서양을 통틀어 사상 최초의 경제·경영 이론서”라고 부른다.

 

<화식열전>의 핵심은 부자가 되고 싶어하는 것을 인간의 본성으로 못 박은 것이다. 즉 부(富) 자체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는 점에서 획기적이며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 견줄 만하다는 평가다. 화식(貨食)이란 무엇인가. ‘식화’라고도 쓰이는 이 말은 <서경>에서 따온 것으로 천하를 다스리는 여덟 가지 원칙 가운데 먹는 것(食)이 가장 중요하고, 그 다음으로 재화(貨)가 중요하다는 의미다. 역사서의 <식화지>는 한 시대의 사회경제사를 기술한 것이다.

 


<화식열전>에서 사마천이 따르는 입장은 ‘관자’를 대표격으로 하는 상가(商家)다. 제자백가 가운데 상가는 부민부국, 곧 백성과 나라를 부유하게 하는 ‘상도’를 가장 우선적인 가치로 여겼다. <관자>에 나오는 주장으로 “백성을 얻는 방안으로 백성에게 이익을 주는 것보다 더 나은 방안은 없다.”는 것이다. 공자와 순자의 유가에서는 극기복례의 예치를 강조했지만 관중과 사마천은 필선부민(必先富民)이 통치의 요체라고 보았다. 치국평천하의 길은 백성을 잘살게 하는 데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부민의 방도로 <화식열전>은 중농이 아닌 중상을 주장한다. 하지만 중국의 역대 왕조는 모두 중농을 근간으로 했다. 마오쩌둥의 중화인민공화국도 마찬가지였다. 중국에서 중상주의로의 전환은 덩샤오핑의 개방정책으로 처음 이루어진다. <화식열전>의 지혜가 비로소 빛을 발할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사기>의 <화식열전> 편이 2천여 년 전의 저술이지만 21세기에도 음미해볼 필요가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14.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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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는 아니더라도 영화를 안 본 건 아닌데, 영화 얘기가 뜸했다. 연말 결산 기사를 보다가 지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했던(그래서 나도 볼 뻔했던) 안드레이 즈뱌긴체프의 <리바이어던>(2014)이 내겐 올해의 영화로 유력했겠다 싶어 몇 자 적는다. 올 칸느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하고 런던영화제에서는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한 작품이다(예고편은 http://www.youtube.com/watch?v=agMj9DNUuRo). 홍상우 교수의 소개를 일부 옮긴다.

 

2014년도 칸 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 각본상을 받은 <리바이어던>은 개인의 이익과 국가 이익의 충돌을 소재로 하여 서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작품에 대한 해외 언론의 반응은 "러시아에서 날아온 새로운 걸작", "즈뱌긴체프가 황금종려상을 수상할까?", "타르코프스키의 충실한 신봉자로 간주되는 즈뱌긴체프는 질감이 풍부하고 긴장감이 넘치는 선굵은 강렬한 영화를 창조했다" 등과 같은 호평이었다.

 

이 작품의 주요 사건은 바렌츠 해 부근의 한 마을에서 일어나지만, 개인의 이익과 권력의 이익이 충돌하는 곳이면 어디서든지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항상 그렇듯이 이 양자의 갈등에서 누가 승자가 되는지는 분명하다. 영화에서 시장은 평범한 가정의 집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빼앗으려 한다. 이 집에서 주인공 니콜라이는 아내와 아들과 함께 살고 있는데 이 집을 빼앗으려는 시장은 이미 마피아 두목과 다를 바 없다. 그는 경찰, 법원 등 모든 권력 기관을 개인의 권력 유지를 위해 사용한다. 그는 지시에 순응하지 않는 자들을 능숙하게 처치한다.

 

현지 보도에 따르면, 칸에서 시사가 끝난 후 이 영화에 대한 평단의 반응에는 당혹감도 섞여 있었다. 그들은 즈뱌긴체프 감독이 이러한 급진적인 이야기를 소재로 하리라고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러시아 포커스가 지적한 바에 의하면 이 영화에는 "뿌리 깊은 부정부패, 관리 앞에서 무기력할 수밖에 없는 보통 사람, 불법적인 국가 사업 동업자들 사이에서 횡행하는 뒤봐주기, 돈이 되는 것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축성에 나서는 교회 등 현대 러시아의 병폐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것이다.(홍상우)

유가 하락으로 인한 루블화 약세로 러시아 경제가 어려운 처지에 있고, 내년 전망도 밝지 않다. 정치사회적으로 푸틴 시대에 별로 기대할 게 없다 싶었는데(사정은 우리도 별로 다르지 않다) 즈뱌긴체프의 러시아는 다소나마 위안이 된다. 현실을 구제하지는 못할지라도 증언은 될 터이니까.

 

 

1964년생인 즈뱌긴체프의 장편영화 데뷔작은 <리턴>(2003)이었다. 2003년 베니스 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작으로 2000년대 가장 중요한 러시아 영화의 한 편이다. 필모그래피를 보니 이후에 <추방>(2007), <엘레나>(2011), 그리고 <리바이어던>(2014)까지 네 편을 찍었다(국내에는 <추방>만이 '즈비야긴체프'란 감독 이름으로 출시돼 있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나 알렉산드르 소쿠로프의 템포를 떠올리게 한다. 그가 계속 영화를 만들 수 있기를 기대한다.   

 

내친 김에 올해 나온 러시아 관련서 가운데, 두 권만 언급한다. 토머스 레밍턴의 <러시아 정치의 이해>(한울, 2014)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 정치에 대한 개관이다. 교과서에 해당하는 책인데, 사실 너무 비싸서 구입은 보류하고 있지만 구성상으로 보자면 욕심을 낼 수밖에 없다.

이 책은 러시아의 역사와 정치, 경제, 사회에 대한 폭넓은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일차적으로 이에 대한 독자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켜준다. 또한 러시아 정치의 역사적 연원에서 시작해 소련 시기 정치체제의 유산, 푸틴과 메드베데프의 리더십, 행정부와 의회, 러시아 정당체제의 성격, 러시아의 정치문화, 러시아 시민사회와 이익집단, 러시아 경제의 변화와 현황, 러시아 사법체계의 속성, 러시아의 국제관계 등을 폭넓게 다룬다.

그리고 또 한권은 안나 폴릿콥스카야의 <러시안 다이어리>(이후, 2014). 절망적인 세계를 보여주지만 내가 사랑하는 러시아는 즈뱌긴체프와 폴릿콥스카야의 러시아다. 그들의 정신으로 지탱하는 러시아...

 

14.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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