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번스타인의 <악의 남용>(울력, 2016)을 읽다가 존 듀이의 '창조적 민주주의'란 연설문을 알게 되었다. 그가 80세 생일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행한 연설로 전체 제목은 '창조적 민주주의 - 우리 앞에 놓인 과제'(1939)다. 국내에 번역본이 있는지 찾아봤지만 눈에 띄지 않는다(다만 서용선의 <혁신교육 존 듀이에게 묻다>(살림터, 2012)에 이 연설에 대한 언급이 보인다). <악의 남용>에서 인용된 부분은 연설의 말미다.

 

"민주주의는, 다른 삶의 방식과 비교해볼 때, 경험의 과정을 목적인 동시에 수단으로서 성심성의껏 믿는(...) 그리고 사람의 감정, 욕구, 소망을 해방시켜서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을 존재하게 하는 유일한 삶의 방식이다. 왜냐하면 민주주의에 이르지 못하는 모든 삶의 방식은, 경험들이 확장되고 풍부해지면서 계속 안정을 이루게 하는, 접촉, 교환, 의사소통, 상호작용을 제한하기 때문이다. 이 해방과 풍요로움의 과제는 매일매일 수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경험이란 것은 그 자체로 종말에 이를 때까지는 끝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주의의 과제는 모두가 공유하고 모두가 이바지하는 보다 자유롭고 보다 인간적인 경험을 창조하는 영원한 과제이다."(45-46쪽)

요컨대 '매일매일의 경험으로서의 민주주의''영원한 과제로서의 민주주의'가 듀이가 생각한 민주주의의 최종적인 모습이다. 물론 우리가 갖고 있는 제도로서의 민주주의와는 좀 다른 의미의 민주주의다. 번스타인의 해설은 이렇다.

"듀이에 따르면, 민주주의는 단지 제도나 공식적인 투표 절차 또는 권리에 대한 법률적 보장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물론 이런 것들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들에 생명과 의미를 불어넣기 위해서는 일상적인 민주주의적 협동이 실천되는 문화가 요구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제도와 절차는 실속 없고 무의미해질 위험에 놓이게 된다. 민주주의는 '삶의 방식'이자, 적극적이고 부단한 관심을 요구하는 윤리적 이상이다. 만일 우리가 민주주의를 창조하고 재창조하는 일을 해내지 못한다면, 민주주의가 계속되리라는 보장은 없다."(45쪽)

<악의 남용>이 듀이의 민주주의론을 핵심으로 다룬 책은 아니다. '9/11 이후의 정치와 종교의 부패'란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9/11과 그 이후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가 저자의 관심사다. 이 문제를 문명의 충돌이 아니라 '멘탈리티의 충돌'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 주장이다. 그 멘탈리티의 한쪽에는 '절대적인 것에 대한 열망'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실용주의적 가류주의'(pragmatic fallibilism)가 있다. 실용주의적 가류주의란 대략 미국의 실용주의(프래그머티즘)와 일치하는 철학이자 태도이며, 이를 설명하면서 다른 실용주의 사상가들과 함께 듀이도 검토하고 있다.  

 

 

미국의 대표 철학자 듀이는 국내에서 주로 교육철학자로서 참조되고 있는데, 그런 면에서는 <민주주의와 교육>이 핵심 저작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널리 읽히는 성싶지 않다. 그런데 듀이는 교육철학자로서 뿐만 아니라 공공철학자로서 주목받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마이클 샌델이 보여주듯이 공공철학이야말로 미국철학다운 특징이며 강점이다. 찾아보면 <자유주의와 사회적 실천>(책세상, 2011), <공공성과 그 문제들>(한국문화사, 2014), <현대 민주주의와 정치 주체 문제>(CIR, 2010) 등 읽을 거리가 없지 않다.

 

듀이의 민주주의론이 여전히 우리에게도 유효하다고 생각한 이유는 그가 진작에 '기업 멘탈리티'를 민주주의 가장 큰 적으로 지목한 때문이다. "그는 미국 민주주의에의 최대 위협은 내부적인 것, 즉 공중들이 강력한 특정 이익 단체의 조종을 받게 되는 경우라고 느꼈다. 그는 '공중의 소멸', 즉 공개적인 의사소통과 토론 및 심의 하에서 정보를 숙지한 공중의 소멸을 염려하였다. 듀이는 우리 시대에 전 세계적 차원에서 채택된 멘탈리티인 '기업 멘탈리티'의 성장과 전파로 인해 민주주의를 위협할 수 있음을 경고하였다."(44쪽)

 

 

이후 듀이의 경고는 현실이 되었다. 그 여정은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마이클 샌델의 <민주주의의 불만>으로의 여정이다(<민주주의의 불만>은 공공철학자 샌델의 가장 중요한 저작이다). 샌델은 20세 후반 미국사를 '절차적 공화정'(우리식으로 표현하면, '절치적 민주주의' 내지 '형식적 민주주의')에 의해 미국 민주주의가 점차 거세되어온 과정으로 묘사한다. 그 결과 얻게 된 것은 '형식상의 민주정+내용상 과두정'이다. 이건 미국만의 현실이 아니다. 서민 표몰이를 한 뒤에 부자 감세를 하는 게 한국 민주주의의 현단계니까. 그 결과가 미국 중산층의 붕괴이고 유사 이래 가장 크게 벌어진 게 빈부 격차다. 물론 '헬조선'을 만들어낸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이런 현실이 바뀔 수 있을까.

 

 

듀이식 대안을 다시 적자면 관건은 '창조적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것이다. 이제껏 없었다면 만들어내는 것이다. 미국 대선후보 예비선거가 진행되면서 그 과정과 결과가 관심을 끌고 있다. 특히 민주당 후부로 버니 샌더스와 힐러리 클린턴의 승부가 주목거리인데, 듀이가 옹호한 미국 민주주의가 아직 살아있는지 가늠해보는 중요한 지표가 될 듯싶다. 우리도 다르지 않다. 올봄의 총선과 2017년 대선은 한국 민주주의의 맨얼굴을 확인하게 해줄 중요한 일정이다. 그것이 당장의 변화를 가져올 수는 없다. 하지만 변화를 위한 첫걸음은 내딛게 해줄 것이다. '매일매일의 경험'과 '영원한 과제'를 향한 첫걸음... 

 

16. 02. 09.

 

 

P.S. 실용주의적 가류주의를 설명하면서 저자 리처드 번스타인이 가장 많이 참고하고 있는 책은 루이스 메넌드의 <메타피지컬 클럽>(민음사, 2006)이다. "미국 실용주의의 역사를 탐구하고 미국 역사의 맥락 안에서 이 운동의 위상을 조망"한 책. 메넌드가 가장 중요하게 다룬 네 명의 실용주의 사상가는 윌리엄 제임스와 찰스 퍼스, 존 듀이 외 연방 대법관을 지닌 올리버 웬델 홈즈 2세다. 프래그머티즘의 3인방으로 널리 알려진 세 명의 철학자와 같이 놓인 홈즈만이 생소한데, 국내엔 <보통법>(알토란, 2012)이 번역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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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사에 관한 책이 출간됐다. 정확히 말하면 재출간됐다. 제임스 르 파누의 <현대의학의 거의 모든 역사>(알마, 2016)인데, 절판된 <현대의학의 역사>(아침이슬, 2005)가 재번역돼 나온 것이다.

 

 

번역본이 668쪽, 원서도 600쪽 가까이에 이르는 두툼한 책이다. 내용은 제목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현대의학의 역사를 간결하고 알기 쉽게 정리하고 있다. 현대의학의 번영부터 쇠퇴에 이르기까지, 그 장대한 파노라마를 단 한 권의 분량으로 요령 있게 펼쳐 보인다. 특히 1940년대부터 시작된 현대의학의 괄목할 만한 성취를 '열두 가지 결정적 순간'으로 압축한 제1부에서는, 현대의학의 두 축인 항생제와 코르티손의 개발부터 개심술을 통한 고난도 심장 수술, 그리고 장기이식이라는 마법의 완성까지 주요 혁신 기술들의 탄생과정이 흥미진진하게 소개되고 있다."

원제는 '의학의 번역과 쇠퇴'. 번영은 이해가 되지만 '쇠퇴'는 무얼 뜻하는지 궁금하긴 하다. 소개에 따르면, " 저자는 1970년대부터 조짐을 드러낸 현대의학의 쇠퇴 양상에 대해서도 책의 절반 이상을 할애해 치밀하게 서술한다. 기존 의학 연구가 한계에 다다를 즈음 새로운 동력으로 등장한 사회 이론과 신유전학이 어디에서 어떻게 실패했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는 것이다."

 

 

 

다른 의학사에서도 그렇게 기술하는지 궁금하다. 의학의 역사를 다룬 책이 드물지는 않다. 국내 저자로는 황상익 교수의 책들이 의학사 관련서들이고, 이재담의 <서양의학의 역사>(살림, 2007), 재컬린 더핀의 <의학의 역사>(사이언스북스, 2006), 로이 포터의 <의학: 놀라운 치유의 역사>(네모북스, 2010) 등이 모두 같은 분야의 책이다. 그럼에도 분량으로는 <현대의학의 거의 모든 역사>가 가장 방대하다. 정확한 건 비교해봐야 알겠지만 기본서 역할을 해줄 듯싶다.

 

 

말이 나온 김에 덧붙이자면, 정신의학과 전문의 하지현 교수가 정신의학의 역사를 스케치한 <정신의학의 탄생>(해냄, 2016)을 펴냈다. "200년 정신의학의 역사적 사실과 과학적 진실을 쉽게 풀어낸 책"으로 네이버캐스트 연재물을 단행본으로 엮었다. 예전에 한번 다룬 적이 있지만 정신의학과 관련해서는 (미셸 푸코의 책들을 별도로 하면) 에드워드 쇼터의 <정신의학의 역사>(바다출판사, 2009), 앤드류 스컬의 <현대 정신의학 잔혹사>(모티브북, 2007)도 같이 참조해야 하는 책이다. 정신의학의 탄생 못지 않게 그 공과에 대해서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방송이나 팟캐스트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아산병원의 정신의학 전문의 김병수 박사도 정신의학에 관한 가벼운 읽을 거리를 펴냈다. <마음의 사생활>(인물과사상사, 2016). 하지현의 <정신의학의 탄생>과 같이 읽어봄직하다. 나부터도 사이코패스 권력자들 이야기나 예술가들의 조울병 이야기를 이 두 권의 책에서 비교해가며 읽었다. 그에 관한 포스팅은 언젠가 시간이 날 때...

 

16. 02. 09.   

 

 

P.S. 의학 교재용 책을 제외하면 의학 관련서의 하위장르에는 '병원의 진실'도 포함된다. 대개 범죄소설이나 공포물의 인상을 주는데 독일의 전직 의사 베르너 바르텐스의 <의사 유감>(알마, 2015)도 그에 해당한다. "의사로 생활하다 병원 현실에 염증을 느끼고 저널리스트로 진로를 수정한 저자는 한때 자신이 몸담았던 의료계의 현실을 유머러스하고 통쾌한 문체로 가감 없이 까발린다. 그가 들려주는 병원 안 풍경은 충격적이고 살풍경하고 웃긴다. 그러나 저자는 결코 병원 파괴론자는 아니다. 그가 쓰디쓴 독설을 쏟아내는 이유는 죽어가는 의학을 살리기 위해서다." 병원의 실상이라는 게 비슷한 편일 것이기에 우리에게도 참고가 되겠다.

 

또다른 장르는 '의학의 미래'인데, 가장 대표적인 표상이 청진기가 사라진 진료실이다. 그에 관해서는 에릭 토폴의 <청진기가 사라진다>(청년의사, 2012)란 예고편이 나왔었고, 지난해에는 본편 격으로 <청진기가 사라진 이후>(청년의삭, 2015)가 출간되었다. <청진기가 사라진다>의 원제는 <의학의 창조적 파괴>. 의학도나 예비의학도들이라면 필독해봄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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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저자'를 고른다. 순서상 두어 주 밀린 저자들도 함께 다룬다. 먼저 슬라보예 지젝. 여섯 편의 글모음으로 <왜 하이데거를 범죄화해서는 안 되는가>(글항아리, 2016)가 출간되었다. 같은 형식의 책으로는 <신을 불쾌하게 만드는 생각들>(글항아리, 2015)에 이어지는 것이다. 시사평론집으로 분류할 수 있을까. <멈춰라 생각하라>(와이즈베리, 2012)에 이어지는 그의 '생각들'을 읽어볼 수 있다.

 

"슬라보예 지젝이 여러 지면에 발표한 글 여섯 편을 엮은 책. 하이데거의 나치 가담,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논쟁, 시리아 난민, 전 지구적 자본주의, 그리스 국민투표 등 각기 다른 주제를 다루었지만 지젝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간명하다. 사태를 단순하게 받아들이지 말라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나치에 동조했다. 여기저기서 반유대적인 발언을 했다. 그러나 저자는 이를 직접적으로 범죄화하는 것은 너무나 손쉬운 탈출구가 아닌가, 하고 질문을 던진다."  

 

인도 작가 아룬다티 로이의 대표작 <작은 것들의 신>(문학동네, 2016)이 새 번역본으로 다시 나왔다. 1997년 데뷔와 동시에 부커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인도의 이국적인 풍경을 배경으로 사회의 제도와 관습에 의해 한 가족의 삶이 파괴되는 과정을 그려낸 이 작품은, 출간 전 160만 달러라는 당시로서는 기록적인 선인세를 받았고, 출간 후 전 세계에서 40여 개 언어로 번역 출간돼 600만 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뉴욕타임스 '주목할 만한 책', 인디펜던트, 선데이타임스, 옵서버 '올해의 책' 등으로 선정되었다. <작은 것들의 신>은 아룬다티 로이의 유일한 소설 작품이다."

 

유일한 작품이 된 것은 로이의 관심사가 직접적인 사회운동 쪽으로 더 쏠렸기 때문이다. 가라타니 고진은 생태운동에 나선 문학평론가 김종철과 함께 아룬다티 로이를 '근대문학의 종말'을 보여주는 실제적 사례로 꼽기도 했다. 곧 문학이 할 수 없는 일, 문학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는 것. <작은 것들의 신>과 로이의 다른 책들은 그런 면에서도 비교해봄직하다.  

 

 

그리고 나이지리아 출신 작가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강연과 에세이를 모은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창비, 2016). 이미 알라딘에서는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책이다.

"소설가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는 페미니즘에 대한 온갖 오해를 단호하고도 위트 있게 반박하며 여성과 남성 모두를 페미니즘의 세계로 초대한다. 전통적인 성역할에 고착된 사고방식이 남성과 여성 모두를 짓누르고 있으며, 페미니즘을 통해 우리 모두가 더욱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역설한다. '모두를 위한 21세기 페미니스트 선언'이라 부를 만하다. 유튜브에서 250만에 가까운 조회수를 기록한 2012년의 TED×Euston 강연을 바탕으로, 2014년 미국에서 책으로 출간되었다.

 

이번에야 검색해보게 되었는데, 아디치에의 작품들은 이미 여럿 번역되었다. <태양은 노랗게 타오른다><숨통><아메리카나> 등인데, 에세이에서 시작된 독서의 여정이 장편소설로 이어져도 좋겠다. 아디치에의 메시지는 무엇인가. "여자든 남자들, 우리는 모두 지금보다 더 잘해야 합니다."

 

16. 02.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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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고 막간에 '이주의 책'을 고른다. 대부분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있을 듯싶은데, 나도 저녁은 부모님 댁에서 할 예정이다(가까이에 사시기 때문에 명절 나기가 수월한 편이다). 그 전에 오후에 일을 많이 해야겠지만, 먼저 의무적인 포스팅부터. 타이틀북으로 고른 것은 조지 레이코프 등의 <이기는 프레임>(생각정원, 2016)이다. 세계적인 인지언어학자이지만 국내에서는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등 프레임론의 저자로 더 유명한 듯.

 

저자는 심층의 사고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진보적으로 생각하고 말하는 방법을 보여준다. 보수의 틀에 갇히지 않으면서 미래 가치를 생산하고 소통하기 위해서는 민주적 가치를 지닌 언어를 되살려야 한다. 그 방법으로 레이코프는 '진보의 가치를 반복하여 말하라', '일관성을 유지하라', '사실과 정책을 가치에 명확하게 연결하라'와 같은 구체적인 목록을 제시한다.

 

두번째는 마우리시오 라부페티의 <호세 무히카 조용한 혁명>(부키, 2016)이다.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으로 널리 사랑받은 호세 무히카 우루과이 대통령의 정치인과 지도자로서의 면모를 집중 탐구한 책"이다.

 

세번째는 지난 12월에 나온 책이지만 지금 손에 들고픈 책으로 미국 대선후보 경선에서 가장 핫한 인물로 부상한 버니 샌더스의 <버니 샌더스의 정치혁명>(원더박스, 2015)이다. "2016 미국 대선 민주당 후보 경선에서 거센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무소속 정치인 버니 샌더스의 정치 회고록이자 자서전"이다.  

 

 

네번째는 장신기의 <사람들은 왜 진보는 무능하고 보수는 유능하다고 생각하는가>(시대의창, 2016)이다. '보수화된 시민 32인을 심층 인터뷰하다'가 부제. "저자는 정치사회 보수화의 실질적인 주체인 시민들에 초점을 맞췄다. 보수화된 사람들을 심층 인터뷰한 결과 보수화 현상에는 계급, 가치, 세대 등 여러 원인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엘리트 세력에만 국한되어 있던 기존 진보 담론에서 벗어나 엘리트 세력의 행위와 이에 대한 대중의 반응 사이의 역학관계를 복합적으로 분석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다섯번째는 손석춘의 <새 길을 연 사람들>(어른의시간, 2016)이다. "건국대학교 교수이자 언론인인 저자가 인류사에서 새로운 길을 열어간 20여 명의 인물들의 삶과 사상을 담은 책이다. 붓다에서 시작하여 무려 2,500여 년에 걸친 20여 인물들을 징검다리를 놓아 그들이 열어 간 길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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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는 프레임- 진보적으로 생각하고 말하는 방법
조지 레이코프.엘리자베스 웨흘링 지음, 나익주 옮김 / 생각정원 / 2016년 2월
13,000원 → 11,700원(10%할인) / 마일리지 6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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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 무히카 조용한 혁명
마우리시오 라부페티 지음, 박채연 옮김 / 부키 / 2016년 2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2016년 02월 07일에 저장
절판

버니 샌더스의 정치 혁명- 버니 샌더스 공식 정치 자서전
버니 샌더스 지음, 홍지수 옮김 / 원더박스 / 2015년 12월
18,000원 → 16,200원(10%할인) / 마일리지 9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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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람들은 왜 진보는 무능하고 보수는 유능하다고 생각하는가- 보수화된 시민 32인을 심층 인터뷰하다
장신기 지음 / 시대의창 / 2016년 2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4월 14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16년 02월 07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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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출판문화협회에서 펴내는 소식지 출판문화(602호)에 실은 글을 옮겨놓는다. '이현의 책읽는 세상'이 격월로 연재되는데, 이달에 읽은 책은 크리스티앙 들라캉파뉴의 <인종차별의 역사>다. 이 책에 관한 국회방송 프로그램에 패널로 출연한 게 독서의 계기였고, 읽은 김에 몇 가지 내용을 정리했다.

 

 

출판문화(16년 2월호) 차이가 차별받지 않는 세상

 

‘차이가 차별받지 않는 세상’이라면 꿈꾸어볼 만한 세상이고, 꿈만 꿀 게 아니라 직접 만들어가야 할 세상일 것이다. 그 첫걸음을 자임하는 책으로 <인종차별의 역사>(예지, 2013)를 읽었다. <20세기 서양철학의 흐름>(이제이북스, 2006)이란 책으로 알려진 저자 크리스티앙 들라캉파뉴는 <인종차별의 역사>와 <노예의 역사>(예지, 2015)를 통해서 다시금 우리에게 이름을 각인시키게 되었다. 사실 ‘인종주의’나 ‘인종차별’이 한국사회의 중대문제로 부각된 적은 드물기 때문에 이와 관련한 책이 많이 읽히는 것 같지는 않다. 남의 나라 일이거나 과거의 일로 치부되기 쉬운 것이다. 흥미로운 건 저자도 한때 그렇게 생각했다는 점이다. 1949년생인 저자가 20대를 맞은 1960년대 후반의 일이다.


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유대인 대학살을 뜻하는 ‘쇼아’의 진상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인종차별을 철폐하기 위한 전 세계적 운동이 있었다. 미국에서도 흑인차별에 반대하는 시민권 운동이 승리를 거두면서 1960년대 말에는 “인종차별과 반유대주의가 영원한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생각해도 좋을 것처럼 보였다.” 반유대주의가 나란히 언급된 것은 역사적으로 가장 대표적인 인종차별에 해당하면서 동시에 쇼아라는 참극을 낳았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게 종식되었다면 인종차별의 역사는 ‘역사적 인종주의’로 분명하게 한정돼 기념관에서만 그 기억이 보존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희망에 불과했다. 1967년 벌어진 6일전쟁(3차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아랍연맹 국가에 승리를 거둔 뒤에 다시금 반유대주의는 고개를 들기 시작했고, 1973년의 제4차중동전쟁과 석유파동 이후에 유럽경제가 위축되면서부터는 아랍인들이 인종차별의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이어서는 실업과 경제 불황의 책임이 이민자들에게 돌려지면서 새로운 인종차별이 촉발되었다. 요컨대 인종차별은 끝나지 않았고, 오늘날 세계화시대에는 어디서나 숨 쉬고 있다. 저자가 인종차별의 역사를 다시금 더듬게 된 배경이다.


그렇다고 해서 저자가 인종차별은 항상 존재해왔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곧 인종차별이 인류의 체질이나 내력은 아니다. 고대 근동의 문헌들에서 인종차별과 관련된 내용은 찾아보기 어려우며 고대이집트 공문서에는 이방인에 대한 모욕적인 언급이 없다. 거꾸로 고대이집트는 외국인들에게 친절한 나라였다고 기록돼 있다. 구약의 창세기만 하더라도 인류는 아담과 이브의 후손이고 모두 한 형제다. 다툼은 있었을지언정 인종주의적 증오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저자가 겨우 찾아낸 것은 고대그리스 사회의 자민족중심주의다. 그리스인들은 모든 사람들이 동등하다거나 같은 조상을 두었다고 믿지 않았다는 점에서 인종주의의 ‘원조’가 된다. 물론 인종이나 인종주의란 말이 탄생하기도 전의 얘기다.


그리스인들의 구분법은 두 가지였다.  먼저 그리스말을 할 줄 아는 사람들과 할 줄 모르는 사람들. 그들은 이민족을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는 이들’이란 의미에서 ‘바르바로이’라고 일컫고, 이것이 야만인(바바리안)의 어원이다. 곧 그들의 첫 번째 구분법은 ‘우리↔야만인’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로 그리스 사회 내부는 자유인과 노예로 구분되었다. 남성 시민이 자유인이었고 노예와 여자는 그와는 별개의 존재로 대우받았다. ‘자유인↔노예’가 두 번째 구분법인 셈이다. 사실 이런 구분이라면 고대그리스에서만 존재했을 성싶지 않다. 노예제라는 건 고대사회의 일반적인 특징이며 문명국가가 스스로를 오랑캐와 구별한 것도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인종주의는 이러한 구분 혹은 편견이 담론으로 정당화될 때 성립한다. 이론(대개는 유사이론)을 통해 뒷받침될 때 인종주의는 비로소 구색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중요한 철학자가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이다. 흥미롭게도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저자의 평가는 이중적이다. 그가 인종차별주의자이면서 동시에 반인종차별주의자라는 것이다. 그럼 아리스토텔레스가 한입으로 두말을 했다는 것인가? 실상을 보면 거의 그렇다고 할 수 있다. 먼저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이상학>에서 ‘흰색’과 ‘검은색’은 인간들 간의 특별한 차이가 아니라고 말했다. “인간의 흰색과 검은색은 특별한 차이를 만들지 않고, 각각에 이름을 붙인다고 할지라도 백인과 흑인 사이에는 특별한 차이가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그런 점에서 저자는 <형이상학>이 서양철학사에서 인종차별을 반대한 최초의 위대한 책이라고까지 치켜세운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아리스토텔레스는 노예는 노예로 태어난다고 하여 노예제를 정당화하고자 했다. 소피스트들이 노예를 정복전쟁의 결과로 이해한 반면에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보다 본질적인 근거를 제시하려고 했던 것이다. 전쟁에서 패배하면 자유민도 노예로 전락하는 게 당시의 현실이었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노예제를 정당하지 못한 폭력의 결과로 보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래서 동원한 것이 유사 생물학적 근거였던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보기에 노예와 여자는 자유로운 신분을 가진 성인 남자와 비교해 열등한 본성을 타고 난다. 그들은 태생적인 노예성과 기형성을 갖고 있기에 자유민과 동등하게 대우받을 수 없다. 인종차별이 사회적 불평등을 생물학적 지식을 통해 정당화하려고 할 때 시작된다면, 아리스토텔레스야말로 인종차별주의자라는 오명을 덮어쓸 만하다. 상황이 더 나쁜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러한 관점이 중세와 그 이후에 반향을 얻는다는 점이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를 좇아 이방인들을 가리켜 ‘이성이 결여된 존재’라고 규정했고, 에스파냐의 신학자 세풀베다는 인디언들도 에스파냐인들보다 태생적으로 열등하기에 신대륙에 대한 정복 행위는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모두가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직접 유래한 담론이기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종차별의 원형’이 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사례가 문제적인 것은 인종차별에 합리성을 부여하려고 한 시도 때문인데, 그와 같은 맥락에서 계몽주의 철학자들도 비판의 대상이 된다. 18세기 박물학자인 뷔퐁은 “백인이 사람이라면 검둥이는 사람이 아니라 모든 면에서 완전히 원숭이 같은 동물일 것이다”라고 썼다. 그가 검둥이를 지칭한 ‘네그르’라는 말은 불과 16세기에 등장했고, 인종(race)이란 말도 15세기 말부터야 쓰인 단어이지만 뷔퐁은 이런 단어들을 동원해 인종 간의 태생적인 차이를 지적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인종차별주의 혐의는 칸트도 비껴가지 않는다. 칸트 역시도 흑인은 인류 등급에서 가장 밑바닥에 두며 유대인에 대해서는 ‘탐욕스런 인간’이자 ‘사기꾼’으로 규정한다. 당대의 통속적인 편견들이 철학으로 포장돼 있을 뿐이다. 관용의 철학자 볼테르도 백인과 흑인은 “전적으로 다른 인종”이라는 주장을 편 인종차별주의자였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시대의 한계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칸트와 볼테르의 일부 동시대인들은 여자나 흑인, 유대인에 대한 증오와 멸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소수였고, 인종차별적 관념은 더욱 확장돼 다음 세기에는 망상으로까지 발전해간다. 19세기 중엽 프랑스의 외교관 고비노가 펴낸 <인종 불평등론>이 대표적 사례다. 고비노는 피의 ‘생명력’이 많고 적음에 따라 흑인종과 황인종, 백인종 간에 위계를 세웠다. 물론 가장 우월한 것은 백인종으로 고비노는 ‘가장 아름답고 가장 지적이며 가장 활동적인 인종’이라고 기술한다. 반면에 흑인종은 ‘지금 이 순간의 감각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없는 인종’이다. 고비노는 인종을 하나의 사실이자 가치로 만들었으며 아리아인의 절대적 우위성을 최초로 부르짖었다. 그의 책이 당대에는 별다른 반응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했지만 소수의 광적인 추종자를 낳은 것이 문제인데, 그 가운데는 고비노를 비난하면서도 그의 생각을 더욱 과학적으로 발전시키고자 한 스튜어트 체임벌린 같은 인물도 있었다. 다윈을 사상적 지도자로 삼은 체임벌린은 애꿎게도 진화론 사상을 그의 게르만족 우월신화를 정당화하는 데 이용한다. 인종주의가 얼마나 허약한 이론적 기반을 갖고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이지만, 불행하게도 이런 체임벌린을 열광적으로 숭배한 이가 바로 히틀러였다. 20세기의 인종주의 대학살의 전조는 그렇게 마련되었던 것이다.

 

 

저자는 19세기에 만들어진 인종차별 담론의 통합이 20세기에는 실제적인 결과를 이끌어낸 것으로 이해한다. 고비노와 체임벌린의 망상이 히틀러에 의해서 실행된 것이다. 그 결과는 우리가 아는 600만 유대인의 대학살이다. 이 전대미문의 폭력은 여전히 철저한 반성과 성찰의 대상이지만, 저자의 우려대로 반유대주의는 여러 가지 형태로 다시금 현실정치에 출몰하고 있다. 프랑스에서 인종갈등과 차별을 부추기는 극우정당이 득세하더니 미국에서조차 인종차별 발언을 서슴지 않는 정치인이 유력한 대통령 후보로 부상하고 있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인종주의란 다른 게 아니다. 저자에 따르면, 타자에 대한 증오에 객관적인 근거를 부여하려는 태도를 우리는 모두 인종주의라고 부를 수 있다. 다시 말해, 인종차별의 역사는 남의 역사, 과거의 역사로만 머물지 않는다. 오늘의 현실이기도 하다. ‘차이가 차별받지 않는 세상’이 아직 우리가 사는 세상이 아니라면 말이다. <인종차별의 역사>가 무겁게 던지는 문제의식이다.

 

16. 02.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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