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외적으로 9시간 넘게 잠을 잤는데도 간밤에 술을 마신 것 같은 숙취가 있다(전형적으로 술 마신 다음날 머리가 개운하지 않은 현상 혹은 증상). 꿈에 음주라도 한 것인지. 술독을 해장술로 푸는 것처럼 해독수면이라도 취해야 하나 생각중이다. 그러는 중에 뒤적여본 책은 데이비드 실즈와 케일럽 파월의 <인생은 한뼘 예술은 한줌>(이불)이다.

데이비드 실즈는 <우리는 언제가 죽는다>(문학동네)와 <문학은 어떻게 나 삶을 구했는가>(책세상)가 소개되어 있어 우리에겐 구면이다. 장르의 경계를 파괴하는 일련의 소설로 알려졌고 대학에서 창작강의도 하는 모양이다. 혹은 문학강의. 공저자인 케일럽이 그의 강의를 들은 제자. 이번 책은 사제지간인 두 사람이 계급장 떼고 나눈 ‘썰전‘을 그대로 책으로 엮은 것이다. 원제는 ‘내 생각엔 당신이 전적으로 틀렸어요(I Think You‘re Totally Wrong)‘.

˝소설가 데이비드 실즈와 그의 제자인 소설가 케일럽 파월의 대화를 기록한 책이다. 두 작가는 3박 4일간 조용한 시골마을의 집에 머물며 인생과 예술에 대한 대화를 나누기로 한다. 그 여정에서 겪은 아주 사소한 대화와 행동까지 최대한 솔직하고 꾸밈없이 담았다. 현존하는 미국 작가들에 대한 평가, 그리고 문학계의 현실에 대한 비판, 자신들의 사생활, 가족사, 보수와 진보, 전쟁과 살인, 성적 취향, 결혼의 의미까지… 실로 다양한 이슈를 종횡무진 넘나들며 인생과 예술의 의미를 짚어낸다.˝

번역본 제목이 이 ‘썰전‘의 화제를 말해준다. 인생과 예술. 혹은 인생이 먼저일까, 예술이 먼저일까. 그렇게 보면 전혀 새로운 주제가 아니다. 고전적인 사례로는 모옴의 <달과 6펜스>까지 바로 들먹일 수 있다. 아무튼 새로운 책의 가능성(이런 책도 있구나!)을 보여준다고 해서 관심을 갖게 되지만 머리가 아픈 관계로 관전은 다음으로 미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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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늦잠을 자고서 식탁에 앉아 늦은 아침(에 해당하는 것)을 먹으며 논문을 읽다가 손 가까이에 있어서 이병률의 <눈사람 여관>(문학과지성사)을 뒤적였다. 일거리로 써야 할 페이퍼는 많지만, 또 읽은 김에 몆자 적는다. 눈길이 멎은 시에 대해. ‘나는 나만을 생각하고‘는 눈에 잘 띄지 않을 법하고 시상도 일견 단순하다. 그런데 생각하게 한다.

나는 나만을 생각하고
해가 진다
나는 나만을 생각하느라
다리를 건너다
다리에서 한없이 쉰다

우리가 우리만을 생각하는 것도 모자라
나는 나만을 생각하고
그 이유에 관여하는 것들이 우주의 속살로 썩는다

생각을 앉히고
생각 옆으로 가 앉지만
나는 지렁이

나는 나만을 생각하여서
나에게 던진 질문 따위로 흘러내리고
그러고도 지구를 지구의 손금대로 살게 할 수 없음을 방관하면서

‘나는 나만을 생각한다‘와 ‘해가 진다‘를 연결한 것이 시의 착상이다. 우리가 우리만을 생각하고 나는 나만을 생각하는 바람에 우주의 속살이 썩는다. 우주까지 갈 건 아니고 지구가 자기 손금대로 살지 못한다. 이 시에서 재밌는 대목은 나만을 생각하는 바람에 시답지 못한 시행들도 방관한 점이다. ˝그 이유에 관여하는 것들˝이라든가 ˝그러고도 지구를 지구의 손금대로 살게 할 수 없음을 방관하면서˝는 지극히 비시적인 표현들이다. 이런 구절을 포함하려면 명분과 작업이 필요하다. 이 시에는 그게 마련되어 있다. ˝나는 나만을 생각하고.˝

해가 진다
고개를 들 수 없는 땅을
끊어지지 않는 몸으로 가야 해서
나는 나만 생각하느라
참으로 그래서
해가 지는 것이다

이 시의 착상이 ‘해가 진다‘와 ‘나는 나만을 생각한다‘를 연결시킨 것이라고 했는데 그 둘 사이에 인과성이 있다. ˝나는 나만 생각하느라/ 참으로 그래서/ 해가 지는 것이다˝ 말 자체가 모순이긴 하다. 진정 나만 생각했다면 해가 지거나 말거나 방관했을 터이며 자책도 갖지 않을 터이다. 그런데 ‘지렁이‘로서 나는 그렇게 자책한다.

이 자책은 시적이지만 논리적이진 않다. 사실 지렁이는 지구 생태계의 순환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동물이다. ˝지구를 지구의 손금대로 살게˝ 하는 데 도움을 주는 존재인 것. 고작 ˝끊어지지 않는 몸˝으로 기어가려고 자기 생각만 하는 존재가 아닌 것이다. 이런 모순을 해결해야 하지만 자신을 지렁이에 빗댄 시적 화자는 자기 생각만 하느라고 여념이 없다.

그리하여 별이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나는 한사코 나만 생각하는 것이고
아무것도 정하지 않은 채
나에게로만 가까워지려는 것이다

마지막 연이다. 별의 관계는 인간관계의 은유이자 대체이므로 사람들이 혹은 애인이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나는 내 생각만 한다는 뜻으로도 읽힌다. 그래서도 더 멀어질 테고. 그게 ‘해가 진다‘는 표현의 함축이다(별도 진다). 그것만으로도 좋은 착상과 비유다. 문제는 애먼 지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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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내가 적으려는 건 <걱정에 대하여>(문예출판사)라는 책에 대해서이다. 지난달에 책이 나오자마자 원서까지 주문했고 오늘 받았다. 저자 프랜시스 오고먼은 영국의 대학에서 영문학 교수로 재직중이며 존 러스킨과 빅토리아시대 소설이 전문 분야다(19세기 영문학 전공자라면 친숙할 법한 이름이다).

‘걱정‘을 표제이자 주제로 다루고 있어서 일단 눈길을 끄는데 좀 풀어서 얘기하면 ‘문학과 문화로 본 걱정의 기원과 의미‘가 책에서 다루는 내용이다.

˝<걱정에 대하여>는 빅토리아시대(1831~1901)에 오늘날과 같은 걱정의 관념이 대두한 것부터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걱정이 현대의 ‘시대적 특징’으로 자리 잡게 된 과정을 다양한 문학 작품과 문화사를 통해 살펴보는 책이다. 너무나도 흔한 인간의 경험, 워낙 자주 일상 대화에서 나타났다 사라지는 그 친근함 때문에 오히려 눈에 잘 보이지 않게 된 인간의 경험에 관한 내밀하고 개인적인 설명을 제공함으로써, 이 책은 현대 세계가 우리의 일상적인 불안을 형성하는 과정을 탐구한다. 이를 통해 걱정이 인간의 약점일수도 있지만 감성과 이성을 가진 복합적 존재인 인간의 자연스러운 귀결이기도 하다는 점을 깨닫게 하고자 한다.˝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성격의 책인데(문학사와 문화사를 경유한 주제 탐구라는 점에서) 경험칙상으로 이런 책의 독자는 많지 않은 것 같다. 어느 정도 책을 읽은 독자들이 흥미를 가질 법한 주제와 스타일을 갖고 있어서다. 그럼에도 꽤 유익하고 흥미로운 책이라는 점은 널리 알리고 싶다. 그래야 다른 책도 나올 수 있을 테니. 저자의 다른 책 가운데 신작 <망각>도 그렇게 욕심을 갖게 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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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주 읽어볼 만한 강의자료들을 골라서 프린트하는 작업을 열심히 하다가 프린터 위에 놓여 있는 책들 가운데 하나를 빼내 아무 페이지나 펼쳐 읽고 피식 웃었다. ˝태생이 함부로여서 눈은 생각이 많다˝!

점심시간도 되고 했으니 일손을 놓고 시집을 펼쳤다. <눈사람 여관>에 수록된 ‘어떤 아름다움을 건너는 방법‘인데, 1연을 건너뛰면 이렇게 시작한다.

눈이 내릴 것 같다

그 무언가 힘으로도 미치지 못하면서
나를 이토록 춤추게 하는 무언가

내 몸 위에는 한 번도 꽃잎처럼 쌓이지 않는 눈,
바다에도 비벼지지 않는 청어 떼 같은 눈,
태생이 함부로여서 눈은 생각이 많다

잠시, 바다에도 비벼지는 게 뭐가 있을까란 의문과 함께 태생을 문제 삼는 건 명예훼손의 소지가 있다는 생각까지. 한 연 건너뛰고서 세 연을 적으면,

그러니까 세상 모든 그날들을 닮으면서 내리는 눈,
오늘 내린 눈을 두 눈으로 받아 녹이고서야
울먹울먹 피가 돌았다

단 한 번도 순결한 적 없이 마취된 척
한 세계를 가득 채운 냄새나 좇으며
허술한 사랑을 하려는 나여

눈이 저 형국으로 닥쳐오는 것은 내 마음이 아니란다

뭔가 절박한 마음을 표현하려는 듯싶지만 내게는 그냥 허술한 시로 읽힌다(이병률의 시는 어깨에 힘을 줄 수록 허술해지는 듯하다). ˝태생이 함부로여서 눈은 생각이 많다˝, 한 문장 건진 걸로 자리를 정리해야겠다.

눈 얘기는 어제 읽은 시집 <바람의 사생활>(창비)에도 나오는데 눈길이 좀 머물렀던 시라 같이 기억이 났다. ‘아무것도 그 무엇으로도‘가 제목이다.

눈은 내가 사람들에게 함부로 했던 시절 위로 내리는지 모른다

어느 겨울밤처럼 눈도 막막했는지 모른다

눈길이 머문 건 이 첫 두 연이 좋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다음부터의 진행은 공감하기 어려웠다. 이제 보니 ˝피를 돌게 하는 것은 오로지 흰 풍경뿐이어서 그토록 창가에 매달렸는지도 모른다˝는 구절은 앞엣시의 ˝오늘 내린 눈을 두 눈으로 받아 녹이고서야/ 울먹울먹 피가 돌았다˝와도 연결되는군. 시인은 눈은 보아야 피가 도는 모양이다(특이한 연결이긴 하다. 이미지 상으로 눈과 피는 보통 대조적이기 때문이다).

지나는 김에 적자면, ‘울먹울먹‘ 피가 돈다는 건 무슨 뜻인가. 피가 비로소 돌게 돼 어깨를 들썩일 정도로 감격한다? 그런 절박함과 ‘허술한 사랑‘은 또 어떻게 연결되는가? 허술한 시는 너무 많은 걸 짜맞추게끔 한다.

다시 ‘아무것도 그 무엇으로도‘로 돌아오면 마지막 연은 이렇다.

손가락을 끊어서 끊어서 으스러뜨려서 내가 알거나 본 모든 배후를 비비고 또 비벼서 아무것도 아니며 그 무엇이 되겠다는 듯 쌓이는 저 눈 풍경 고백 같다, 고백 같다

무슨 조폭 영화에나 나오는 이미지를 눈 풍경과 중첩시키고 있는데 공감도안되고, 납득도 안된다(시인은 비비는 걸 좋아하는 모양이다). 이 시에서도 ˝어느 겨울밤처럼 눈도 막막했는지 모른다˝ 정도를 챙긴다. 생선도 먹기 위해선 버릴 건 버리면서 다듬어야 하듯 시도 그렇다. 그러다 먹을 게 남아나지 않을 때도 있지만...

PS. 눈을 소재로 한 시를 고른 건 첫눈이 올 때가 되어가기 때문이다. 보통 11월 중순에 기온이 떨어지면 오는 것 같으니까(12월인가?). 첫눈이 온다고 하여 있는 일정이 없어지거나 없는 일정이 생기는 건 아니지만 관성처럼 첫눈을 기다린다. 이병률의 첫 시집 <당신은 어딘가로 가려 한다>(문학동네)도 오늘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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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공지다. 지난여름에 강남도서관에서 '로쟈처럼 서평쓰기' 강좌를 열었었는데, 이번 겨울에 후속강의도 4회차로 진행한다. 일시는 11월 28일부터 12월 26일까지(12월 12일 휴강) 매주 화요일 오전(10시-12시)이다. 구체적인 일정은 아래 포스터를 참고하시길.

1강 11월 28일_ 서민, <서민독서>



2강 12월 05일_ 김훈, <남한산성>



3강 12월 19일_ 박노자, <러시아혁명사 강의>



4강 12월 26일_ 캐시 오닐, <대량살상수학무기>



17. 1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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