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타니 고진 컬렉션을 번역해오고 있는 문학평론가 조영일의 신간이 나왔다. <직업으로서의 문학>(도서출판b). 기억에는 세번째로 펴내는 문학론인데 이번에는 다소 얇다. 평론집이 아니라 문학에세이집이라고 돼 있군.

˝<가라타니 고진과 한국문학>, <한국문학과 그 적들>, <세계문학의 구조>라는 평론집과 가라타니 고진의 번역자로서 유명한 조영일이 6년 만에 발간하는 문학에세이집이다. ˝문학은 직업일 수 있는가?˝ 다소 엉뚱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오늘날 문학가나 문학 지망생들에게는 어떤 의미에서 ˝문학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질문일 수 있다. 왜냐하면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는 문학의 상품적 성격과 그것을 생산하는 주체(작가)가 괄호에 넣어져 있는 데에 반해, ˝문학은 직업일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은 ‘상품으로서의 문학‘이 가진 의미와 그것을 파는 작가에 대한 실존론적 물음이기 때문이다.˝

제목은 막스 베버의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패러디한 것으로 보이는데, 베버의 직업이 ‘소명‘을 뜻한다면 조영일의 직업은 말 그대로 ‘밥벌이‘를 가리킨다. 저자는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보다 ‘문학은 직업일 수 있는가?‘란 질문이 훨씬 더 중요한 질문이라고 보는데 그건 아렌트의 용어를 빌리자면 작품을 작업(work)이 아닌 노동(labor)의 산물로 보는 견해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대표적으로 허먼 멜빌은 문학이 직업이 못된 경우다. 작품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없어서 상당 기간 동안 문학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작가에게 문학이 직업이었느냐, 아니었느냐와 무관하게 작품은 존재한다. 단 한권의 시집도 생전에는 펴내지 못한 시인도 존재하는 것처럼. ‘문학이 직업일 수 있는가?‘가 그토록 중요한 질문인가에 대해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이유인데 거꾸로 그렇기 때문에 저자의 논변이 궁금하다. 설득력 있는 주장을 펼치고 있는지에 대한 궁금함이다. 저자의 주장 한 대목.

“작가들이 글을 써서 먹고살 만해진 것은 언제부터일까요? 즉 ‘직업으로서의 작가’(전업작가)는 언제부터 등장한 것일까요? 저는 그것을 1980년대라고 봅니다. 물론 이청준, 최인호, 황석영 등이 본격적으로 활동하는 1970년대가 되면 소위 문학으로 먹고사는 것이 가능해지기는 합니다. 하지만 세속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그들의 성공은 제한적이었습니다.”

전업작가의 등장이 1980년대부터라? 흥미로운 견해라고 생각한다. 70년대 작가들의 성공이 제한적이었다고 보는데 80년대부터는 그런 제한이 풀렸다는 것일까?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자면 전업작가로서 먹고살 만한 작가는 요즘도 손에 꼽을 수 있는 정도 아닌가? 1980년대라고 저자가 특정하는 근거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읽어보는 수밖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의 부제가 그렇다. 한민주의 <해부대 위의 여자들>(서강대출판부). 국문학 전공 저자의 책으로는 이채로운데, ‘근대여성‘의 문제를 ‘과학문화사‘라는 확장된 시야에서 다루고자 한 점이 포인트. 묵직한 학술서이지만 주제의 흥미 덕분에 손에 들게 된다.

˝<해부대 위의 여자들>은 한국 근대 여성이 ‘과학적 교양’과 관련하여 주체상과 세계상을 여하히 형성해 나갔는지를 도상해석학적 차원에서 고찰하는 저서이다. 이 책의 내용은 로봇에서부터 사춘기 소녀의 감수성, 여성의 성욕과 히스테리, 가정경제학, 위생학, 출산과 양육의 테크놀로지, 성형, 미용 기술, 방공과학과 대용품 공학, 그리고 영양학에 이르기까지 여러 논제의 맥락에서 과학의 젠더 효과에 관한 이해를 다루고 있다.˝

저자의 다른 책으로는 <불량소녀들>과 <낭만의 테러> <권력의 도상학> 등이 있는데, 권력도상학이라는 새로운 방법론을 근대(과학)문화사에 적용하여 흥미로운 결과들을 이끌어내고 있다. 한데 모아서 읽어봄직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저녁강의를 마치고 귀가하여 호두파이로 밤참을 대신하면서 오늘 온 책들을 살핀다. 당장의 강의와 관련하여 주문한 책도 있지만 관심 때문에, 혹은 향후의 강의와 관련하여 주문한 책도 있다. 국내 저자 2인이 공저한 <투르게네프, 동아시아를 횡단하다>(점필재)가 후자에 해당한다. 따로 나 같은 독자가 아니라면 손에 들 사람도 별로 없을 것 같은 책이다.

투르게네프의 소설 <그 전날 밤>(국내에서는 <전날밤>이나 <전야>로 번역됐었다)이 러시아에서 어떻게 극화되었고 그것이 다시 일본과 한국(조선) 연극계에는 어떻게 소개되어는가를 다룬 연구서로 아르부조프의 각색본과 일본의 각색본, 한국의 번역본을 자료로 수록하고 있다. 투르게네프의 작품에 대한 직접적인 연구서는 아니지만 <전날밤>의 수용과 각색 문제를 살펴보는 데 중요한 참고가 될 만하다.

그렇다고 극화된 <전날밤>까지 강의에서 다룰 건 아니고, 나의 주된 관심은 투르게네프의 소설 <전날밤>에 놓인다. 내년이 투르게네프의 탄생 200주년이기도 해서 주요 작품에 대한 강의를 진행하면 좋겠다 싶은데 문제는 주요작의 번역본이 없거나 마땅치 않다는 점. <전날밤>도 그 가운데 하나다. 얼마전에 언급한 바 있는 <사냥꾼의 수기>도 마찬가지고, 후기소설 가운데서는 <연기>와 <처녀지>도 다시 나왔으면 싶은 작품들이다. 내년봄까지 기다려봐서 이 가운데 몇작품이라도 다시 나온다면 8강 정도의 강의를 꾸리려고 한다. 탄생 200주년을 맞는 나대로의 자세다.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에 대해서는 각각 16강, 12강의 강의를 진행하고 있거나 진행할 계획이기에 투르게네프에 대해서도 그 정도의 시간은 할애하는 게 형평에 맞다고 생각한다.

한편, 생각난 김에 적자면, 투르게네프의 단편 ‘밀애‘가 동아시아문학, 특히 일본문학에 끼친 영향은 정선태 교수의 <지배의 논리 경계의 사상>(소명출판)에 실린 논문을 참고할 수 있다. 김진영 교수의 <시베리아의 향수>(이숲)에는 투르게네프의 산문시 ‘거지‘의 번역과 수용에 대한 논문이 수록돼 있다. ‘투르게네프와 동아시아‘라는 주제 범위에 포함되는 논문들로 참고할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쓰메 소세키의 신간인가 해서 확인해보니 그렇지 않다. <슬픈 인간>(봄날의책)은 ‘세계산문선‘ 시리즈의 하나로 나왔고 근대 일본작가들의 산문을 모은 것이다. 소세키는 대표 저자로 이름이 들어간 것. 하지만 ‘슬픈 인간‘의 표제작에 해당하는 글이 책에는 들어 있지 않다. 어째서 <슬픈 인간>된 건지 소개만으로는 알기 어렵다.

˝근대 이후 풍요로운 낭만과 지성이 꽃핀 시기의 정신을 이어받는 작품부터, 전쟁과 가난과 차별과 청춘 등 각종 파란 속 우울과 자포자기 가운데 치열하게 각자의 삶을 살다간 인간의 풍경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가 사랑한 스미다강의 푸른 물소리 같은 울림으로, 고바야시 다키지가 식민지 감방 동지를 향해 쿵쿵 굴러주던 발소리의 뜨거움으로, 다카무라 고타로가 감각의 본질에 육박해갔던 정신의 치열함으로, 하라 다이키가 자신의 전존재가 실린, 곧 생을 마감할 것 같은 아슬아슬한 느낌으로 나를 멈춰 세우고 밑줄 긋게 만든 문장들.˝

일본문학기행도 준비할 겸 산문선도 읽어봐야겠다. 다카무라 고타로는 생소한 작가(시인)인데 이미 번역본도 나와있다. 산문선과 함께 단편선 <이상한 소리>(창비)도 같이 읽으면 좋겠는데 어디에 두었는지는 찾아봐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번주에 강의할 책을 찾다가 손택의 <해석에 반대한다>(이후)를 오랜만에 책장에서 빼냈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이 책(1966)에 실린 논문과 평론이 1962년과 1965년 사이에 쓰였고 그건 첫번째 소설(1962)을 발표하고 두번째 소설을 쓰기 시작한 시점(1965) 사이라고 일러준다. 그러니까 막간에, 소설 간에 쓰인 글들이라는 얘기이고 손택에게는 소설들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기도 하다(이런 의향과는 어긋나게도 손택은 소설가가 아니라 비평가나 에세이스트로 기억된다).

1960년대 초반은 1933년생인 손택이 30대로 접어들 무렵이다. 젊고 활기에 넘치는 지성의 탄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해석에 반대한다>는 매력적이다. 심지어 모든 문장에서 ‘젊은 손택‘이 느껴진다. 한국어 번역판이 나온 건 2002년이고 내가 지금 손에 들고 있는 건 2013년에 나온 8쇄다. 그 사이에 표지가 바뀌어서 나는 두 권의 <해석에 반대한다>를 갖고 있다(물론 초판을 못 찾아서 몇년 전에 다시 구입한 탓이다).

그렇게 15년 전에 번역본이 나왔고, 심지어 원저는 반세기도 더 전에 나왔지만 놀랍게도 손택의 책은 현재적이고 또 미래적이다. 그가 다룬 책들 가운데는 이제 갓 번역됐거나 아직 번역되지 않은 책이 상당수여서다. 그렇게 번역되지 않은 책을 꼽아보다가 아연 놀란 건 미셸 레리스의 <성년>(이모션북스)이 작년말에 번역돼 나왔다는 사실. 심지어 나는 장바구니에 넣어놓기까지 했다! 아마도 러시아문학기행을 준비하느라 경황이 없어서 구입을 미뤘고 그러면서 까맣게 잊은 모양이다.

<성년>은 프랑스의 초현실주의자이자 인류학자인 미셸 레리스의 자전소설. 경력으론 조르주 바타유와 비교되는 작가다. 하지만 국내에 소개된 건 <성년>이 유일하다. 1946년에 발표된 이 소설이 1963년에 영어로 번역돼 나오고 이를 계기로 손택이 쓴 리뷰가 ‘미셸 레리스의 <성년>‘이다. 번역본에서 10쪽 분량이니 긴 글은 아니지만 이걸 읽을 만한 조건이 우리에게 갖춰진 건 불과 일년도 되지 않는다. 레리스와 손택과 시간대를 맞추기.

역자인 유호식 교수의 연구서 <자서전>(민음사)의 한 장도 레리스에게 할애돼 있기에 손택의 글과 같이 읽어볼 만하다. 물론 그렇게 읽을 만한 책이 어디 한두 권이냐는 반론이 바로 치밀어 오른다. 이럴 때는 논리적인 이유를 대기 어렵다. 그저 편애라고 말하는 수밖에. 나는 손택을 편애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