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이주의 저자'를 고른다. 1년 넘게(확인해봐야 하지만 기분으론 그렇다) 말썽이던 PC를 업그레이드하면서, 그리고 바뀐 환경에 서서히 적응하게 되면서(이건 이삿집에 적응하는 것 비슷하다) 서재일의 여건이 좋아진 덕분이다. 조만간 '이주의 책'도 다시 고르고, 새로운 기획도 시도해보려 한다. 일단은 '이주의 저자'부터.

 

 

연말에 책을 낸 국내 저자들 가운데 3인을 골랐다. 먼저 부산대 한문학과의 강명관 교수. 느낌으론 오랜만에 새 책을 펴냈다. <허생의 섬, 연암의 아나키즘>(휴머니스트, 2017)이다. 제목대로 연암의 <허생>에 대한 재해석을 시도한 책이다.

 

"가난한 선비 허생이 과일과 말총을 사재기하여 큰돈을 버는 이야기. 연암 박지원의 <허생>은 누구나 줄거리를 알 정도로 유명한 소설로, 당시 조선의 취약한 경제를 폭로하고 실학적 관점에서 북학과 상업주의를 지지한 작품이라고 널리 알려졌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이 책은 우리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허생>의 의미를 산산이 깨뜨리는 파격적인 해석을 담았다. 저자 강명관 교수는 <허생>이 실린 <옥갑야화>의 모든 작품을 꼼꼼하고 면밀하게 읽는 동시에 연암의 방대한 사유와 <열하일기>의 전체 맥락 속에서 <허생>이 무엇을 말하는지 분석한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기존에 알고 있던 것과는 전혀 다른 <허생>을 만나게 된다."

 

<허생> 혹은 <허생전>은 국어 교과서에도 수록돼 있는(있었던) 만큼 우리에게 친숙하다(읽은 지는 오래 됐군). 이 참에 작품도 다시 읽고, 새로운 해석도 음미해보는 시간을 가져도 좋겠다. <열하일기>도 소장본으로 마련하고.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의 서영채 교수도 새책을 펴냈다. <죄의식과 부끄러움>(나무,나무. 2017). '현대소설 백년, 한국인의 마음을 본다'가 부제. 부제에서 알 수 있지만, 한국현대소설사를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한 책이다.

 

"근 10여 년 동안 저자 서영채를 사로잡은 화두는, '한국인'이라는 주체가 어떻게 형성되어왔는지였다. 그 계기가 된 것은 바로 나쓰메 소세키와 이광수의 소설들이다. 식민지 모국(비록 일본도 근대화가 이식된 나라이지만)의 작가 소세키와 식민지의 작가 이광수가 인물을 형상화해낸 방식이 왜 그렇게 서로 다른지 의문이었던 것이다. 저자는 이런 문제의식 아래에서 근현대 한국소설들을 다시 해석하게 되었고, 그 결과 '(식민지)근대성'과 '주체 형성'이라는 짝을 도출하게 된다. 이 주제를 가지고 2011년 이후 발표한 글들을 저본으로 하여, 이론적.학문적인 곳을 독자들이 읽기 쉽도록 풀어 쓴 것이 <죄의식과 부끄러움>이다."

 

식민지 근대성과 주체 형성은 나도 관심을 갖는 주제여서 곧바로 손에 들었다. 이광수와 나쓰메 소세키에 대한 비교 등은 내달 일본문학기행 전까지는 읽어볼 참이다. 강의에서 종종 다루는 <광장>과 <당신들의 천국>에 대한 해설도 유익한 참고가 될 듯싶다.  

 

 

 

서양사학자로 특히 19세기 영국의 사회사, 노동사 등에 관한 독보적인 성과들을 내놓고 있는 광주대 이영석 교수도 신간을 펴냈다. <삶으로서의 역사>(아카넷, 2017). '나의 서양사 편력기'란 부제가 알려주듯, 역사가로서의 삶과 연구의 궤적을 회고한 책이다(저자가 정년을 1년 앞두고 있다고). 작년 겨울에 나왔던 임지현 교수의 <역사를 어떻게 할 것인가>(소나무, 2016)와 비슷한 성격의 책으로 이해된다.  

 

"이영석의 <삶으로서의 역사>. 어느 서양사학자의 생애사이자 역사가로서의 연구 궤적을 보여주는 지성사다. 자신이 고민하고 방향 전환하고 몰두했던 연구대상과 자신의 탐구의 열망을 젊은 연구자와 일반 독자에게 전달하려는 의도가 진솔하고 촘촘하게 배어 있다. 특히 젊은 시절부터 자신이 처한 시대상황이 어떻게 연구 대상의 선택과 집중에 영향을 미쳤는가를 탐색하는 과정이 치밀하다. 저자는 이 책을 가리켜 메타-역사서술이라 부른다."

 

일단 역사학도나 역사학 전공 지망 학생들이 귀감으로 읽어볼 만하고, 일반 독자도 '한 서양학사학자의 생애사'를 흥미롭게 따라가봄 직하다. 저자의 몇몇 주저들이 어떤 고민의 과정을 거쳐서 나오게 되었는지 살펴보는 것도 역사서 독자들의 공부가 되겠다...

 

17.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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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부아르의 책을 비롯해 오늘 배송예정인 책들을 기다리고 있지만 진행상황을 보니 여차하면 내주 화요일에나 받을 것 같다. 올해의 마지막 책 목록에 변동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읽을 책이 없는 건 아니므로 대소롭진 않지만 다음주 강의차 재주문한 하루키 책들은 오늘 받지 못하면 내일 도서관에 가든지 해야 한다(안 그래도 대출할 책들이 좀 있기에).

예정대로라면 다음주에, 더 거창하게는 내년에 첫 타자로 배송될 책은 ‘염상섭 문학전집‘으로 새로 나온 세 권이다. <화관><젊은 세대><대를 물려서>. 주요작은 아니어서 세 권 모두 생소한데 염상섭 전집은 ‘묻지마 주문‘에 해당하기에 클릭해서 살펴보지도 않았다. 책을 받게 되면 그때서야 어떤 작품이고 언제쯤 읽을 것인지 가늠해보려 한다.

글누림에서 나오고 있는 염상섭 문학전집은 지난 2015년에 세 권이 나오고 소식이 없다가 올봄에 한권 나온 데 이어서 이번에 세권이 추가되었고 내년에도 연속적으로 나올 모양이다. 분량이 방대하기에 그런 속도로 나와도 몇년 걸리지 않을까 싶은데 아무튼 무탈하게 마무리 되기만을 바란다(끝내 완간되지 못한 민음사판 전집을 반면교사로 삼아서).

염상섭의 대표작 <만세전>과 <삼대>는 강의에서 종종 다루었지만 다른 작품도 몇권 포함해서 염상섭 문학의 성취를 세계문학적 관점에서 자리매김하고 싶은 게 개인적인 포부다. 20세기 후반의 작가로는 박완서 문학이 그런 포부를 갖게 한다(박완서 전집은 이미 완간되었다).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의 주요작에 대한 강의를 내년, 늦어도 후년까지는 책으로 낼 예정인데, 그와 더불어 ‘한국문학 다시 읽기‘의 결과물도 책으로 엮을 계획이다. 주로 해온 일이 근현대 세계문학에 대한 강의였기에 그런 시야와 안목으로 한국 근현대문학도 재평가하려는 것이 나의 계획이다. 아마도 앞으로 5년 가량은 이런 계획에 붙들려 지낼 듯싶다. 물론 전집들이 제때 차질없이 나와준다는 조건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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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김수영문학상 수상시집으로 문보영의 <책기둥>(민음사)이 출간되었다. 소개된 이력은 간략하다. "1992년 제주에서 태어났다. 고려대학교 교육학과를 졸업했다. 2016년 중앙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시집 <책기둥>으로 제36회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했다." 등단부터 김수영문학상 수상까지 최단 기간이라 한다. 나이로도 25세에 수상이면 거의 기록이 아닌가 싶다. 찾아보니 1962년생 장정일 시인도 <햄버거에 대한 명상>(1987)으로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을 때 25세였다. 내 가늠으로는 이 두 사람이 최연소일 것 같다. 정확히 30년 차이이니, 한 세대의 시간이 지나갔군.

 

 

 

올해의 마지막 주문 목록을 갱신할까 하다가, 시 몇 편을 읽어보기로 했는데, 흠 전문이 소개된 게 눈에 뜨지 않는다. 찾아보건 중앙신인문학상 수상작인 '막판이 된다는 것'.

 

 후박나무 가지의 이파리는 막판까지 매달린다. 그늘을 막다른 골목까지 끌고 갔다. 막판 직전까지. 그 직전의 직전까지. 밑천이 다 드러난 그늘을 보고서야 기어이
 후박나무는 그늘을 털어놓는다. 막판의 세계에는 짬만 나면 밤이 나타나고 짬만 나면 낭떠러지가 다가와서. 막판까지 추억하다 잎사귀를 떨어뜨렸다. 추억하느라 파산한 모든 것
 붙잡을 무언가가 필요해 손이 생겼다. 손아귀의 힘을 기르다가 이파리가 되었다. 가지 끝에서 종일 손아귀의 힘을 기르고 있다. 그러나 양손이 모두 익숙지 않은 것들은 양손잡이일까 무손잡이일까. 그늘을 탈탈 털어도 가벼워지지 않는
 애면글면 매달려 있는. 한 잎의 막판이 떨어지면 한 잎의 막판이 자라고
 아무것도 붙잡을 수 없어서 손이 손바닥을 말아 쥐었다. 손을 꽉 쥐면 막판까지 끌고 갔던 것들이 떠오른다. 막판들이 닥지닥지 매달려 있다. 막판 뒤에 막판을 숨긴다.

 

"막판 뒤에 막판을 숨긴다"고 했지만, 별로 궁금하지도 기대되지도 않는다. 무언가가 비어 있는 듯한 시이고, 나로선 여전히 '햄버거에 대한 명상' 쪽이 더 신선하고 싱싱해 보인다. 30년이나 더 나이를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시인에 대한 소개는 이렇다.

 

"문보영의 시는 전위를 두려워하지 않는 과감함과 이야기 형식으로 써내려 간 매력적이고 독자적인 언어로 가득하다. 동시에 우리 일상의 소소한 모습들을 시로 옮기는 시선에서는 진솔함과 다정함을 느낄 수 있다. 낯섦과 새로움, 일상과 비일상이 교차하는 한가운데에 바로 문보영의 시가 있다."

 

과감하고 매력적이고 독자적이고 진솔하고 다정한 시를 쓰는 시인이라... 정말 그러한지는 내년에 만나보기로 한다. '막판이 된다는 것'이 올해의 마지막 시다...

 

17. 12.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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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한 권의 책을 만지는 사람들이 매일 한 권의 책을 기록하는 이야기"라는 콘셉트의 새로운 시리즈가 나왔다. '읽어본다'. 책읽기 기록이자 책일기다. 가령 김유리, 김슬기의 <읽은 척하면 됩니다>(난다)는 "온라인 서점 예스24의 김유리 MD와 매일경제 문화부 김슬기 기자가 2017년 1월 1일부터 6월 30일까지 매일같이 써나간 책일기. 이후인 7월 1일부터 12월의 오늘까지는 저자가 관심으로 읽고 만진 책들의 리스트를 덧붙였다." 다양한 분야의 저자들이 읽어낸 독서일기를 비교해가며 읽어봐도 좋겠다. 내년엔 우리 각자도 독서일기를 써봐도 좋겠고. 올해의 마지막 리스트로 올려놓는다(빼놓은 게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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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침 인사 대신 읽어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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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사라 베이크웰의 <살구 칵테일을 마시는 철학자들>(이론과실천)을 읽다가 보부아르의 책들을 검색했다. 실존주의의 탄생 시점으로 저자는 세 명의 젊은 철학자가 파리 몽파르나스 거리의 한 바에 앉아 살구 칵테일을 마시던 순간을 지목하는데, 때는 1932-3년 초였고, 세 철학자는 고등사범 동기였던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그리고 레몽 아롱이었다. 독일에서 유학중이던 아롱이 두 사람에게  최신 철학인 현상학에 대해 한창 열을 올리며 소개했고, 사르트르는 그런 친구를 경악에 찬 눈길로 바라보았다. 보부아르는 사르트르가 창백해졌다고 묘사했다. 새로운 철학에 흥분하기도 했고, 친구한테 뒤져 있다는 느낌에 자존심도 구겨진 상태였다.

 

 

사르트르는 당장 서점으로 달려가 "현상학에 관한 책은 전부 내오시오!"라고 소리 지르게 된다. 당시 프랑스에 소개된 책은 레비나스가 쓴 얇은 책 <후설 현상학에서의 직관이론>(그린비) 한권뿐이었다고 한다(<살구 칵테일을 마시는 철학자들>의 역자는 국내 번역된 책 제목을 전혀 따르지 않아서, <후설의 현상학 속 직관론>이라고 옮겼다). 성에 차지 않았던 사르트르는 그해 여름 아롱의 제안에 따라 베를린으로 유학을 떠난다. 후설을 현상학을 공부하기 위한 유학이었고, 자기 식으로 현상학을 소화하고 돌아온 그는 이내 '현대 실존주의의 창시자'가 되었다.

 

이상이 <살구 칵테일을 마시는 철학자들>의 서두다. 사실 별반 새로운 내용은 아닌다. 학부 때 불어 강의 시간에 듣기도 하고, 오래 전 안니 코엔 솔랄의 평전 <사르트르>(전3권)에서 읽기도 한 내용이다. 차이라면 세 사람이 마시던 게 '맥주'에서 '살구 칵테일'로 바뀐 것 정도다. 저자가 붙인 주석을 보니 맥주는 사르트르의 회고 속에, 살구 칵테일은 보부아르의 자서전(자전소설로도 분류된다)에 나온다.  똑같은 장면을 두 사람이 각기 다르게 기억하고 있는 셈인데, 사라 베이크웰은 사르트르의 기억은 미덥지 않다면 보부아르의 손을 들어준다(주종이 핵심은 아니지만).

 

 

그렇게 '살구 칵테일'로 기록해 놓은 책이 <여자 한창 때>이다. 보부아르의 자서전(자전소설)은 통상 4부작으로 알려져 있는데, 번역판 제목으로 1부가 <처녀시절>(1958)이고, 2부가 <여자 한창때>(1960)이다. 현재 번역본이 한 종밖에 없다. <여자 한창 때>는 직역하여 <나이의 힘>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영어판 제목은 'The Prime of Life'이니까 '한창때'나 '전성기'란 뜻으로 추정된다. 거기에 이어지는 나머지 두 권은 <사물의 힘>(1963)과 <결국>(1972)이고, 아직 번역본이 없는 것으로 안다. 결국 자서전을 기준으로 하면 보부아르의 생애에 대해서 우리는 절반만 읽을 수 있다(그렇다고 따로 보부아르의 평전이 나와 있는 것도 아니다).

 

 

보부아르의 책을 검색하다가 비로소 알게 된 것인데, 철학적 에세이 두 권이 지난해 가을에 출간되었다(본 것도 같은데 그냥 무시하고 지나친 모양이다). <모든 사람은 혼자다>와 <그러나 혼자만은 아니다>(꾸리에)라고 짝지은 제목인데, 물론 원제와는 거리가 멀다. 각각 보부아르의 첫번째와 두번째 에세이, <피리우스와 시네아스>(1944), <애매성의 윤리학>(1947)을 옮긴 것이다. (예전에 나온 적이 있는지는 확인해보지 않았지만) 크게 환영할 만한 일인데, 곧바로 주문을 하면서도 <그러나 혼자만은 아니다>의 번역에 문제가 많다는 리뷰 때문에 <모든 사람은 혼자다>만 주문했다. 올해의 마지막 주문 가운데 하나다. 제목만으로는 소설 <모든 인간은 죽는다>(1946)도 떠올리게 되는데, 두 에세이 사이에 출간된 작품이다.

 

 

 

오늘날 보부아르는 주로 <제2의 성>의 저자로만 기억되는데, 사르트르와 마찬가지로 소설가를 겸한 철학자였고 그녀의 소설들도 제대로 소개되면, 다시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오래 전부터 갖고 있다. 공쿠르상 수상작인 <레망다랭>도 절판된 지 오래 되었고, <초대받은 여자>도 읽을 수가 없다. <위기의 여자>, <모든 인간은 죽는다>, <타인의 피> 정도가 현재 시중에 나와 있는 소설들이다. 실존주의 문학자들로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카뮈 등의 대표작을 한데 묶어서 강의해보려는 기획도 수년 전에 세워보았지만 보부아르의 작품이 없어서(즉 균형을 맞출 수가 없어서) 보류한 상태다. 그 많은 세계문학전집판으로 보부아르의 작품이 최소한 두어 편은 새 번역본으로 나오면 좋겠다...

 

17. 12.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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