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시인 로트레아몽의 <말도로르의 노래>(문학동네)가 황현산 선생의 번역으로 새로 나왔다. 기존 번역본들이 절판된 터라 이미 부재한던 시집인데 이제 다시 기대할 수 있는 최량의 상태로 존재하게 되었다.

그런데 <말도로르의 노래>는 역설적으로 번역의 영향을 덜 받는 작품으로 보인다. 보들레르에서 말라르메까지 프랑스 대표 시인들의 시가 한국어 번역을 통해서도 살아남는 경우는 극히 희소한 가운데 로트레아몽은 예외로 보이기 때문이다. 어떤 번역을 통해서건 시답게 읽히고 뭔가 영감을 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림에는 한국현대시에 은연중에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된다. 랭보나 말라르메의 영향을 식별하기 어려운 것과 비교된다고 할까.

시집을 읽은 게 나로서도 20년도 더 전의 일이라 이런 판단이 유효한지는 다시 따져봐야겠다. 그럴 기회가 생겨서 반갑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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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모자 2018-06-23 1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황현산 선생께서 번역하신다는 얘기만 쭈욱 듣다가 드디어 출간돼서 반갑네요.
시론 수업 때 들뢰즈의 동물-되기와 로트레아몽의 변신에 관한 내용을 배운 걸로 기억합니다... 그때 꽤 흥미진진해서 민음사 판으로 사서 읽었더랬죠.. 하지만 민음사 판은 편역본이라 아쉬웠는데 이번에 완역으로 나와서 기쁩니다. 바슐라르의 로트레아몽도 언젠가 다시 나오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로쟈 2018-06-23 23:46   좋아요 0 | URL
네, 바슐라르의 책도 그러고 보니 절판된 지 오래 됐네요.~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문학의 귀족이라면
발저는 문학의 하인
로베르트 발저는
야콥 폰 군텐과 함께
하인학교에 다니지
벤야멘타 소년학교는 하인학교
어떠한 지식도 가르치지 않는다
가르치는 교사도 없다
인내와 복종을 기르친다
제복만 입는다
귀족 태생의 야콥은
미미한 존재를 꿈꾼다
발저는 문학의 조수
발저는 하인들을 양성하고
발저는 작은 글씨로
아주 아주 작은 글씨로
작은 문학을 완성한다
작은 글씨로도 여백이 모자라
발저는 산책으로 나머지를 완성한다
인내와 침묵을 완성한다
발저의 집은 정신병원
발저는 집을 갖지 않는다
발저는 집을 짓지 않는다
집이 없는 보헤미안 릴케는
귀족의 성에서 시를 쓰고
집이 없는 발저는
산책길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돌아오지 않는 발자국만
눈길에 찍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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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0sun 2018-06-22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저의 눈밭에서의 죽음이나
톨스토이가 가출해서 기차역에서 죽은것
현실같지 않고 영화의 한장면 같아요.
(근데 발저는 왜그렇게 맘이 짠하지~)
일부러 작정해도 안될것 같은데.

로쟈 2018-06-22 20:40   좋아요 0 | URL
네, 매우 발저다운.

로제트50 2018-06-22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년전 배수아가 번역한
마르틴 발저의 <불안의 꽃>을
읽었습니다. 배수아 번역작은 일단
사던 시절. 그 독일 -발저 조합에
웬지 이끌리면서 <세상의 끝>을 구입, 로베르트 발저. 이걸 안 순간
목사님 설교, 감정을 따르지말고 이성을 따르라...가 생각나면서@@
그래도 로베르틴 발저도 매력있길,
아직 펼치지 않은 표지에 기대
합니다^^*

로쟈 2018-06-22 20:42   좋아요 1 | URL
로베르트는 뭔가 새로운 세계입니다.~
 

도봉산행 기차를 탄다
도봉산에 가지 않는다
도봉산에는 도봉이 있나
도봉산
봄에도 여름에도 도봉산
설마 겨울에도
설산 대신 도봉산인가
도봉산에는 언제 가는가
도봉산에는 갈 일이 없나
도봉산을 왜 피하는가
거리낌없이
도봉산행 기차를 타고
도봉산에 가지 않는다
도봉산은 멀다
꿈속의 도봉산
도봉산을 꿈꾸지 않는다
오늘도 도봉산을 오르는 사람들
하지만 도봉산에 가지 않는다
도봉산에 갈 일이 없다
도봉산을 외면한다
도봉산이 불러주지 않는다
도봉산에 간 적이 없다
도봉산을 사랑한다
도봉산을 그리워한다
도봉산은 어디에 있나
도봉산과는 무슨 인연인가
도봉산에 가지 않는다
도봉산은 거기에 있다
알 수 없는 도봉산
도봉산도 알지 못할 것이다
왜 도봉산인지
도봉산은 숨어 지내나
도봉산을 찾는다
도봉산이 보이지 않는다
도봉산이 그립다
도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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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0sun 2018-06-22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엿날옛적에 한번 올라가 본적은 있으나
하산하여 먹었던 고기와 막걸리만 기억나고
도봉은 김수영 시인을 떠올리게 하는~
김수영문학관이 그짝에 있다던데
강의도듣고 문학관도 가보고 싶네요.

로쟈 2018-06-23 15:06   좋아요 0 | URL
네, 김수영문학관이 그쪽이죠. 엠티라도 가봐야겠네요.~
 

걷는다
걸어왔다
걷는다
말없이 걸어왔다
걷기만 하자
걷는 데만 주목하자
나는 걸었고 속도를 냈다
속도가 붙는다
걷는 건 외롭지 않다
외롭지 않게 걷는다
두 다리가 사귀듯이 걷는다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다
슬프다
걷는다
슬픔을 삼키며 걷는다
내색하지 않는다
걸었다
걸어왔다
걷는다
한참을 걸었다
잊을 수 있을까
걷는다
이유는 없다
걷는다
구두가 닳는다
바꿔 신는다
걷는다
걸어올 때까지
걷는다
걷는 건 외롭지 않다
말없이 걷는다
꺾일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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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트50 2018-06-22 0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계절엔 아침 출근길 들판을
보면 차에서 내리고 싶어요^^;
밤퇴근길은 무서버서 배고파서^^*
어제 저녁 모임 장소 이름이 골짜기를 뜻해서 정류장에서 내려
일 이분 걸은 것이 침 좋았답니다.
자갈길(신발 밑창이 얇았지요)과
좌우로 늘어선 나무에서 나오는 향과
공기가 골짜기로 들어서는 기분이었지요^^* 그 짧은 시간이
행복했습니다. 이 시를 보니 그때가
기억나 또 기분 좋아요~
화자의 심정과 관계없이.

로쟈 2018-06-22 10:11   좋아요 0 | URL
네 우리가 매일 걷지요.~
 

한권도 읽지 않았지만 괜히 친하다고 생각되는 작가들이 있다(안면이 있다고 다 집에까지 찾아가는 건 아니잖은가). 미국의 여성작가 시리 허스트베트가 그런 경우다. 책은 다 챙겨놓고 매번 신간도 눈여겨 보는데 현재 네 권의 소설과 세 권의 에세이가 출간되었다(모두 뮤진튜리에서 나왔다. 전속 작가 같다). 세번째 에세이가 이번 주에 나온 <여자를 바라보는 남자를 바라보는 한 여자>(뮤진트리)다. 제목은 원제를 그대로 옮긴 것인데, ‘예술, 성 그리고 마음을 바라보는 시선‘이 부제다.

˝작가 시리 허스트베트의 에세이다. 인문학자이고 소설가이며 예술비평가인 시리 허스트베트는 문학과 인문학뿐만 아니라 정신의학을 비롯한 과학 분야에서도 독보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이다. ‘예술, 성 그리고 마음을 바라보는 시선’이라는 부제에서 보듯, 이 책은 예술과 성, 마음에 관한 11편의 에세이를 담고 있다. 저자는 특유의 명징함으로 화가의 그림에 표현된 여성을 바라보고, 예술작품의 가치에 대해 논하고, 이 시대의 포르노그래피를 생각하고, 문학에 표현된 젠더의 문제를 고찰한다.˝

소설은 아무래도 분량상, 그리고 주로 강의책들에 밀려서 선뜻 손에 들기 어려운데 에세이라면 부담없이 읽어볼 수 있겠다(원서도 바로 주문해놓았다). 생각해보니 <살다, 생각하다, 바라보다>도 에세이였는데 묻어둔 감이 있다. 내친 김에 시리의 에세이들과는 이번에 안면을 터 두기로 한다. 아니 현관까지는 들어가 보도록 한다. 아, 마음 속까지 들여다보게 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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