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에 한겨레에 실은 '언어의 경계에서' 칼럼을 옮겨놓는다. 지난 목요일에 강의에서 다룬 필립 로스의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에 대해서 적었다. 예전에 <미국의 목가>를 강의에서 읽었기에 그의 '미국 3부작'을 모두 읽은 게 되었다(이번에 <휴먼 스테인>과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를 읽었다). 아직 읽을 작품들이 더 있지만 '미국 3부작' 외에 후기작인 <죽어가는 짐승>, <에브리맨>, <울분> 등을 강의에서 다루었기에 나대로는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주부터는 돈 드릴로를 읽는다...
















한겨레(19. 07. 05) 배신의 쾌감이 금지를 대신한 시대 


“모든 사람은 우울에 빠지는 성향을 타고나지만, 일부만이 우울을 습관화한다.” 우리에게는 아직 완역본이 나오지 않은, 17세기 영국 목사 로버트 버턴의 저작 <우울의 해부>(1624)에 나오는 내용이다. 그런데 우울의 습관화는 어떻게 형성되는 것일까? 버턴은 답하고 있지 않지만 미국 작가 필립 로스는 장편소설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1998)에서 나름의 견해를 제시한다. 정확하게는 소설의 화자 네이선 주커먼에게 그의 고등학교 은사 머리 린골드가 들려주는 견해다. 정답은 배신이라는 것. 즉 인간은 배신을 당하면 소질로만 갖고 있던 우울을 습관화한다.


거창하게 보자면 인류의 역사가 배신으로 점철된 역사라고 머리는 말한다. 성서에서 예를 찾자면 배신당한 아담부터 배신당한 요셉과 삼손, 배신당한 다윗과 배신당한 욥까지. 그리고 인간들에게 끊임없이 배신당한 하느님까지.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의 주제 역시 배신이다. 머리 린골드가 공산주의자 동생 아이라 린골드의 삶을 회고하는 소설에서 주로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1946년에서 1956년 사이로 미국 현대사에서 배신행위가 휩쓴 시대다. 매카시즘의 광기가 횡행했던 이 시기는 가히 ‘배신의 시대’라고 불림 직한데, “그 시대에 배신은 미국인이면 아무 데서나 저질러도 되는 용인된 위반”이었다. 배신의 쾌감이 금지를 대신하고, 배신을 저지르고도 도덕적 권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고등학교를 중퇴한 뒤에 광산 광부와 레코드공장 노동자로 밑바닥생활을 하던 아이라 린골드는 노조 행사에서 링컨을 연기하며 인생의 전기를 맞는다. 링컨의 연설들을 감동적으로 낭독한 덕분에 라디오 드라마의 주역이 되고 ‘아이언 린’(강철의 린골드)으로 불리며 대중의 스타로 부상한다. 아이라는 자신이 연기한 영웅들을 몸에 익히고 대중은 그를 영웅의 화신으로 믿었다. 그런 아이라에게 세 번 이혼하고 사십대에 접어든 여배우 이브 프레임이 반한다. 어린 나이에 어머니의 사랑을 잃은 아이라 역시 이브의 모성적인 면과 불행한 개인사에 끌려 그녀와 결혼한다.


하지만 열정적인 공산주의자와 스타 여배우의 결합은 이미 모순과 충돌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개방적인 성격과 공산당의 비밀주의. 가정생활과 당”은 양립하기 어려운데다가 아이라는 자식에 대한 갈망을 갖고 있었다. 게다가 이브에게는 앞선 결혼에서 낳은 딸이 있었다. 그녀의 딸 실피드는 이브의 배우 생활과 연이은 결혼 때문에 상처를 입고 어머니에게 욕설과 폭력을 서슴지 않는 아이로 성장했다. 이브는 아이라의 아이를 임신하지만 실피드의 강요에 따라 낙태하게 되고 부부관계는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급기야는 딸에 대한 맹목적인 애정 때문에 그녀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이브는 남편을 배신하고 아이라의 공산주의자 전력을 폭로하는 책을 발표하기까지 한다. 그 제목이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이다.


이브의 폭로로 아이라는 노동계급의 배신자로 낙인찍히고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처지에 이른다. 그렇지만 형 머리가 들려주는 동생 아이라의 또 다른 진실은 그가 열여섯 살에 저지른 살인이었다. 아이라의 인생은 ‘냉혹한 살인자 아이라’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찾기 위한 필사적인 시도였다. 광산에서 공장에서, 그리고 성우 연기와 민중선동에서, 프롤레타리아 생활과 부르주아 생활에서, 결혼과 간통에서, 흉포한 행동과 예의바른 사교생활 어디에서도 동생은 자신의 삶을 찾지 못했다는 것이 형의 평가다. 결국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는 이브의 폭로도 진실과는 거리가 있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끊임없이 갈망한 남자”와 결혼한 것이기에 그렇다. 여기까지 읽어온 독자라면 필립 로스가 붙인 제목에서 배신감을 느낄 수도 있겠다.


19. 07.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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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맘 2019-07-06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당히 흥미로운 스토리네요
기생충의 이정은 배우보고 감독이 하다하다 인중으로 연기를 다 하네 라고 했다던데 소질 하나 제대로 갖고 있는게 없는데 우울이라는 소질은 있다니 다행인지?ㅎㅎ 결국 배신을 많이 당했다는 얘기가 되나요?ㅎㅎ 뭐니뭐니해도 나 자신한테 당한 배신이 젤 많습니다~그것도 우울의 소질을 드러내는데 큰 역할을 하겠죠!ㅋ

로쟈 2019-07-07 10:23   좋아요 1 | URL
셀프 배신은 강도가 다를 거 같은데요.^^;
 

이번주 주간경향(1334호)에 실은 북리뷰를 옮겨놓는다. 마크 피셔의 <자본주의 리얼리즘>(리시울)에 대해 적었는데, 얇은 책임에도 막상 서평에서는 일부 내용만을 언급할 수 있었다. 한 차례 포스팅한 대로 <기이한 것과 으스스한 것>(구픽)도 최근에 나왔는데, 원서도 엊그제 받은 김에 조만간 읽어볼 생각이다(그의 책은 모두 구입했다)...

















주간경향(17. 07. 08) 자본주의, 여전히 강력하지만 구멍 역시 커진다


영국 비평가 마크 피셔의 <자본주의 리얼리즘>은 먼저 제목에 대한 해명을 요구한다. 무엇이 ‘자본주의 리얼리즘’인가. 자본주의가 유일하게 존립 가능한 정치·경제 체계이며 그 대안은 가능하지 않다는 감각이다. ‘대안은 없다’는 과거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의 독트린이 그대로 자본주의 리얼리즘의 슬로건이다. 저자가 대담에서 인용한 말은 우리에게도 친숙하다. “자본주의가 싫으면 북한에나 가서 살아라.”

자본주의 이후에 대한 상상이 봉쇄되고 그 대안이 고작 북한이라면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은 무의미할 것이다. 하지만 전위적인 문화비평가로 활약했던 저자는 비록 자본주의가 강고한 현실을 구축하고 있지만 그 대안의 모색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것이 그의 내기다. 사실 필요한 것은 그 가능성과 불가능성을 가르는 기준 자체의 변경이다. 지금 현실적이라고 이야기되는 많은 것들이 한때는 불가능한 것이었다는 사실만 보아도 그렇다.

저자는 라캉 정신분석학의 개념을 빌려서 ‘현실’과 ‘실재’를 구분한다. 현실은 실재에 대한 억압으로 구성되기에 실재는 현실에서 재현되지 않는다. 그것은 현실의 균열과 비일관성 속에서만 드러나는 어떤 외상적 공백이다. 그러한 실재의 대표 사례가 환경 재앙이다. 가령 원자력 안전신화를 철저하게 무너뜨린 후쿠시마 원전사고만 하더라도 현실로 통합될 수 없는 실재적 사건이다. 그것은 동시에 자본주의의 무한성장 신화에 대한 묵시록적 경고이기도 했다.

환경 재앙에 대한 문제의식은 많이 공유된 상황이라는 판단에서 저자는 두 가지 쟁점을 거기에 추가한다. 하나는 정신건강이고, 관료주의가 다른 하나다. 자본주의는 정신건강을 마치 자연현상인 양 다루고자 하지만 기후변화에 따른 날씨가 자연적 사실을 넘어서듯이 정신건강은 그 자체가 정치적 범주에 속한다.

광기뿐 아니라 우울증 같은 경우도 영국에서는 국민건강보험으로 처리되는데, 저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스트레스와 그 고통 역시 사회적 차원에서 다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정신건강 질환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계속 증가하는 것은 “자본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는 유일한 사회체계이기는커녕 내재적으로 고장나 있으며, 그것이 잘 작동하는 듯이 보이도록 만드는 비용이 아주 크다는 것을 시사한다.”

또한 신자유주의의 승리와 관료주의는 한물간 것으로 취급되었지만 현실에서는 오히려 더 비대해졌다. 관료주의가 새로운 형태로 증식한 때문이다. 이를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교육현장인데 후기자본주의 사회의 소비자로 양성된 학생들과 여전히 훈육적 방식의 교육을 고집하는 교사들 사이의 간극은 극복되지 않는다. 저자가 지적하는 문제는 비단 영국 사회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소위 학교 붕괴 현상은 현단계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교육이 당면한 일반적 현상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리얼리즘은 여전히 강력하지만 그 구멍 역시 커지고 있다는 것이 명민한 비평가의 진단이고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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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0sun 2019-07-06 0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읽으면서 그 구멍을 부작용으로만 생각하고
구멍을 메워야 된다는 생각속에 빠져 있었던 것은 아니었나~
자본주의의 끝이 세상의 끝이라 여기고.


로쟈 2019-07-07 10:24   좋아요 0 | URL
그게 자본주의 리얼리즘이죠.~
 

이달에는 5회에 걸쳐 한국현대시 강의도 진행하는데 어제 첫 시간에 다룬 시인은 김소월이다. 선택의 여지도 없다고 할 수 있는데 현대시사의 첫 머리에 오는 시집이 <진달래꽃>(1925)이기 때문이다(그리고 그에 이어지는 시집이 만해의 <님의 침묵>(1926)이다). 따라서 현대시사 이해의 첫 과제는 소월의 시적 성취가 어떻게 가능했는지 해명하는 것이다.

하지만 강의는 유감의 말로 시작할 수밖에 없었는데 소월시를 읽을 때 필수자료로 읽을 만한 평전이 아직도 나오지 않아서다. 평전이란 이름을 달고 있는 책이 없지는 않으나 모두 연보를 자세하게 푼 수준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현대시사의 많은 시인들의 평전이 나와있음에도 유독 소월의 경우에만 그 위상에 걸맞는 평전이 나와있지 않다. 백석과 함께 학계에서 가장 많이 연구되고 있는 시인이라는 사실에 비추어도 이례적이면서 불만스러운 현실이다.

결과적으로는 한국 현대시 이해에 온전한 첫발을 내딛는 것이 불가능하다. 아무래도 어정쩡한 모양새밖에 되지 않는데, 나로선 무엇보다도 스승인 김억(김안서)와의 관계가 잘 해명되어야 소월시를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소월은 김억의 주선에 의해 시들을 발표했다. 요즘식이라면 스승이 제자의 매니저 노릇을 한 게 된다. 하지만 그들의 관계는 호의적이면서 동시에 불화관계였다. 김억의 진술에만 의존할 수 없는 이유다). 더불어 소월의 독서 경험과 번역작업 등도 제대로 검토되어야 한다.

이러한 여건이 아직 갖춰지지 않아서 나는 소월시에 대한 이해가 여전히 가설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표작 ‘진달래꽃‘만 하더라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는 여전히 과제로 남아있다. ‘이별의 정한‘을 노래한 시라는 통상적인 이해는 이 시의 시제가 미래시제라는 것을 간과한다. 오지 않은 이별을 노래한다는 것은 거꾸로 현재의 사랑을 강조하는 것으로도 읽힐 수 있다. 님이 아직 내 곁에 있다면 진달래꽃을 가시는 길에 뿌리겠다는 제스처는 ‘가진 자의 여유‘로 읽힌다. 정반대로 ‘사랑의 기쁨‘을 반어적으로 노래한 시가 되는 것이다. 너무도 잘 알려진 시이건만 ‘진달래꽃‘에 대한 이해조차도 나는 미래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한 시인이 소월이다. 어제 강의에서는 그 점을 강조하고자 했다. 언제나 제대로 된 규모의 좋은 평전이 나올지 모르겠지만 기다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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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파리 2019-07-05 0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억의 번역시집 <오뇌의 무도>와 김소월이 읽은 어떤 번역시와 김소월의 시는 어떤 삼각형의 꼭지점으로 이어져 있을 듯 합니다.

로쟈 2019-07-05 06:29   좋아요 0 | URL
네, 당연히 포함되고요, 그밖에 소월은 투르게네프의 소설을 번역하기도 했고 짧게 일본유학생활도 경험했기에 그에 대한 자세한 검토가 필요합니다.
 

햄릿이 말했다 죽음보다 
두려운 건 죽음에서 깨어나는 일
마치 꿈에서 깨어나는 것처럼
죽음이 끝이 아니고 고뇌도 끝나지 않는다면
헛되고 헛된 죽음이라
헛된 삶조차도 구제 못할 죽음이라니
삶보다도 못한 죽음이라니
햄릿은 탄식했다 죽음은 
고작 삶이 꾸는 꿈
무덤 속에서도 유골이 꾸는 꿈
그리고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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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gles 2019-07-02 0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넘 멋진 시인데요! 게다가 짤이! 컴버비치가 연기한 ntlive 햄릿! 좋아하는 작품이에요^^

로쟈 2019-07-03 23:21   좋아요 0 | URL
햄릿이 쓴 거죠.~

2019-07-02 02: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03 23: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막국수를 먹으며
씻을 수 없는 일에 대해 생각한다
막국수는 육전막국수
소고기육전이 들어가서 육전막국수
그래도 막국수인데 씻을 수가 없다니
무언가로 보상할 수 없고
회복할 수 없고 씻을 수 없는 일들이
나는 막국수를 먹으며
필연코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인지
씻을 수 없는 일은 끝내 씻을 수 
없는 일이어서 사무라이는 할복을 하고
아이아스는 칼끝에 몸을 던지지
씻을 수 없는 일은 그렇게 씻기는 것일까
그럼에도 씻을 수없는 일일까
막국수처럼 돼버린 일들을
생각하다가 나는
냅킨으로 입을 닦는다
입을 닦는 일이 전부다
아 씻을 수 없는 일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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