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에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에서 '대학 신입생을 위한 추천도서'를 선정해 발표했다. 취지는 이렇다. "문학, 역사 등 각 분야 12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좋은책선정위원회는 대학 입학을 앞둔 신입생들의 기본 소양 형성에 도움을 주고자 하는 취지에서 매년‘대학 신입생을 위한 추천도서’를 선정, 발표하고 있다." 20권의 책이 추천됐는데, 목록에 대한 소감을 그때 적어두려다가 미뤘었다. 오늘 보니 대학도서관 홈피에도 떠 있고 하기에 다시 생각이 나서 목록과 함께 몇 마디 보탠다. 일단 리스트는 이렇다.  


연번


서명


저/ 역자


출판사


1


광장


최인훈


문학과지성사


2


당신들의 천국


이청준


열림원


3


모던 타임스(Ⅰ,Ⅱ)


폴 존슨/ 조윤정


살림


4


광기의 역사


미셸 푸코/ 김부용


인간사랑


5


마르크스의 유령들


자크 데리다/ 진태원


이제이북스


6


자크 라캉 세미나 11


자크 알랭 밀레 편/ 맹정현 외


새물결


7


전체주의의 기원(1,2)


한나 아렌트/ 박미애 외


한길사


8


극단의 시대(상,하)


에릭 홉스봄/ 이용우


까치글방


9


행복의 지도


에릭 와이너/ 김승욱


웅진지식하우스


10


괴짜경제학


스티븐 레빗 외/ 안진환


"


11


불안


알랭 드 보통/ 정영목


이레


12


세계시민주의 


콰메 앤터니 애피아/ 실천철학연구회


바이북스


13


이분법을 넘어서


장회익, 최종덕


한길사


14


인간의 얼굴을 한 과학


홍성욱


서울대학교출판부


15


이중나선


제임스 왓슨/ 최돈찬


궁리


16


과학혁명의 구조


토머스 S. 쿤/ 김명자


까치글방


17


공간의 시학


가스통 바슐라르/ 곽광수


동문선


18


고삐 풀린 현대성


아르준 아파두라이/ 차원현 외


현실문화연구


19


리바이어던


토마스 홉스/ 신재일


서해문집


20


침묵의 봄


레이첼 카슨/ 김은령


에코리브르

'좋은책선정위원회'는 '이달의 읽을 만한 책' 선정위원회이기도 해서, 리스트를 보면 대략 누가 어떤 책을 추천했는가 짐작해볼 수 있다. 가령, 철학 분야의 책들인 <광기의 역사>, <마르크스의 유령들>, <자크 라캉 세미나 11> 등은 김상환 교수(서울대 철학과)의 추천작일 것이다(한데, 이건 대학 신입생이 아니라 대학원 신입생을 위한 추천도서가 아닌지?). 특기할 만한 것은 국내서가 두 권의 한국 소설을 포함해서 네 권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광기의 역사>와 <리바이어던>은 완역본이 있음에도 발췌역본이 선정됐다는 점(실무자들의 착오가 아니라면 의아한 일이다. 고등학교 신입생을 위한 추천도서도 아닌데 말이다). 몇 가지 분야로 나누어 나대로의 추천도서도 보태본다.  

1. 문학  

 

최인훈의 <광장>(문학과지성사)는 얼마전에 새 전집판이 나왔고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은 문학과지성사판 외에 열림원판이 나와 있다. 국내서가 두 권이므로 국외서를 하나 덧붙이자면, 내가 주로 추천하는 책은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다. 그러고 보니 세 권 모두 이념과 삶의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2. 철학 

 

푸코의 책 <광기의 역사>는 간행물윤리위원회에서 추천한 인간사랑판 외에 완역본인 나남판이 있다(내가 알기에 인간사랑판은 중역본이 번역도 더 낫다는 얘기를 들어본 바 없다). <마르크스의 유령들>도 일단은 마르크스의 <공산당선언> 정도는 읽은 다음에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자크 라캉 세미나 11>도 마찬가지다. 프로이트의 책을 한 권이라도 먼저 읽는 게 순서일 것이다. 나도 아직 읽어보지 않았지만, 김덕영의 <프로이트, 영혼의 해방을 위하여>(인물과사상사, 2009) 같은 책을 조감도 삼아 미리 읽어보는 게 낫겠다. 개인적으론 윌 듀란트의 <철학이야기>가 가장 무난한 책이다. 물론 동양철학은 다루지 않기에, '서양철학 이야기'가 보다 적합한 제목이긴 하지만(국내엔 서너 종의 번역이 나와 있다).  

3. 역사 

 

역사분야의 책은 두 종의 '20세기사'다. 역사서는 비교적 난이도에 구애를 받지 않기 때문에 읽어봄 직하다(분량은 좀 부담스러울 수 있겠다). 한국현대사 쪽으로는 강준만의 <한국 현대사 산책>(전18권)을 필요할 때 참고할 수 있겠다.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현대사>(창비, 2001)도 원서와 함께 읽어봄 직하다(내가 신입생이라면 그러고 싶다).  

 

4. 정치 

 

정치분야의 책은 한나 아렌트의 <전체주의의 기원>인데, 이 또한 신입생에겐 좀 부담스러운 책일 듯싶다. 이왕 부담스러운 김에 지젝의 <전체주의가 어쨌다구?>까지 더 얹어놓는다. 

5. 경제 

 

경제학 책으로 추천된 것은 스티븐 레빗 등의 <괴짜 경제학>인데, 장하준의 <사다리 걷어차기>와 <김수행, 자본론으로 한국경제를 말하다> 등도 같이 읽어봄 직하다. 입장은 조금 다르더라도, 세계경제와 한국경제를 바라보는 조금 다른 시각을 엿볼 수 있겠다. 물론 <88만원 세대> 같은 화제작도 대체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인지, 관심을 가져볼 수 있겠고.  

6. 사회 

  

사회분야의 책으론 인도 출신의 문화인류학자 아르준 아파두라이의 <고삐 풀린 현대성>이 추천되었다. 나는 갖고 있지 않은 책인데, "국민국가의 종말, 탈영토화, 탈식민주의 등을 탐구한 평론. 지난 20년간 진행된 세계화가 국가의 경계를 흐리고 있다고 진단하며 ‘탈국가론’을 제시하고, 곧 초국가주의가 도래할 것이라 말한다." 아프리카계 학자인 콰메 앤터니 애피아의 <세계시민주의>도 같은 맥락에서 읽을 수 있겠다. 나는 거기에 가라타니 고진의 <세계공화국으로>으를 덧붙이고 싶다. 저자가 고등학생도 읽을 수 있도록 배려한 책이므로 대학 신입생이라면 거뜬히 읽을 수 있을 것이다.  

7. 과학  

 

과학책으론 왓슨의 <이중나선>과 홍성욱의 <인간의 얼굴을 한 과학>이 선정됐다. 생물학 책이 빠진 듯해서 보태자면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이젠 '고전'의 지위를 얻고 있는 책이 아닐까. 다윈과 다윈주의에 대한 입문서로서도 유력하다.  

 

장회익, 최종덕 교수의 대담집 <이분법을 넘어서>와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 그리고 바슐라르의 <공간의 시학>은 과학철학자의 저작이란 공통점이 있다. 과학과 역사, 그리고 시 사이의 크로스오버를 즐길 수 있도록 해준다. 물론 실제로 읽는 건 만만찮은 일이어서 <이분법을 넘어서>를 제외하면 책장을 몇 장 못 넘길 우려도 있다.  

8. 예술  

흥미롭게도 예술분야의 책은 눈에 띄지 않는다. <공간의 시학>이 이 범주로 고려됐던 것일까? 여긴 뭐 무주공산이므로 그냥 세 권을 채워넣는다. 대학생들이 가장 많이 읽은 책은 아마도 진중권의 <미학 오디세이>일 텐데, 최근엔 <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쪽으로 쏠리는 듯하다.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는 누구나 추천하는 책이지만, 그냥 돈 모아서 소장해두는 책이라고 해두자. 나는 러시아문학이 전공이기에 <러시아 미술사>도 필독서로 넣고 싶다.  

9. 교양  

 

에릭 와이너의 <행복의 지도>와 알랭 드 보통의 <불안>, 그리고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은 교양서로 묶는다(카슨의 책은 이미 '고전'이기도 하지만). 이중 가장 의외의 책은 <행복의 지도>. 지난 가을에 나왔으니까 출간된 지 아직 반년밖에 되지 않은 책이다. 하지만 '어느 불평꾼의 기발한 세계일주'란 부제를 고려해보건대, 가장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지 않을까 싶다(나도 읽어보고 싶다!). 소개를 보니 "'지상에서 가장 행복한 곳'을 찾겠다는 기상천외한 여행기"라 한다. <불안>은 베스트셀러 작가의 수상록이고, <침묵의 봄>은 환경운동의 모태가 된 책. '행복'과 '불안', '침묵' 중에서 자신과 가까운 쪽을 택해 교양으로의 여정을 시작하면 되겠다. 

10. 고전 

  

신입생들이 읽을 만한 고전으론 홉스의 <리바이어던>이 추천됐다. 한데, 서해문집판은 지적했다시피 발췌본이다. 완역본은 나남에서 두 권짜리로 출간된 바 있다. 가격에서나 분량에서나 모두 부담스러운 책.   

 

정 부담스럽다면, <리바이어던>에 대한 해제서를 읽거나 유사 <리바이어던>을 읽는 것도 좋겠다. 폴 오스터와 보리스 아쿠닌 소설의 제목이 <리바이어던>이다...  

09. 03. 07. 

P.S. 대략 대학 신입생을 위한 간행물윤리위원회 추천도서를 따라갔는데, 이런 목록이야 '일람'의 용도 이상의 의미는 갖기 어려울지 모른다. 그럼에도 뭔가 '잔소리'처럼 덧붙이는 것은 "내가 대학 신입생이었을 때 이런 책들을 읽었더라면" 하는 이루어질 수 없는 바람을 토로하는 것일 수도 있다. 내 맘대로 그런 바람을 더 보태자면, 서경식의 <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 이희재의 <번역의 탄생>, 고종석의 <감염된 언어> 등을 꼽고 싶다. 모두가 '국가' '국민' '국어'가 무엇인지에 대한, '한국어'와 '한국인'의 운명에 관한 책이다. 대학생이 된다는 것은 얼핏 자명해 보이는 그러한 '조건'에 대해서, 나의 삶과 언어의 '테두리'에 대해서 의문을 갖는다는 뜻이다. 가져도 좋다는 뜻이다. 물론 '나'에 대한 물음은 청소년기에 먼저 떼고 와야 하는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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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대학 신입생을 위한 추천도서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0-03-07 21:08 
    메를로퐁티의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검색하다가 알게 된 것인데, 흥미롭게도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가 선정한 '2010년도 대학 신입생을 위한 추천도서 20종'에 포함돼 있다('대학원 신입생'을 위한 책이 아닐까?). 겸사겸사 추천도서의 리스트를 훑어보고, 분야별로 몇 권씩 묶어놓는다(작년에도 같은 리스트를 올려놓은 적이 있군. 목록을 비교해보도 좋겠다). 폴 크루그먼의 <불황의 경제학>과 알랭 드 보통의 <왜
 
 
람혼 2009-03-07 2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완역본이 나온 지도 이미 오래인데 굳이 <광기의 역사> 추천도서로 인간사랑에서 나온 축약본을 선정한 것이 좀 이상합니다(번역 자체에 대한 시비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그런데 <광기의 역사> 불어완역본의 출판사는 민음사가 아니라 나남출판입니다.

로쟈 2009-03-07 22:06   좋아요 0 | URL
맞아요. 수정했습니다. 아마 선정위원은 그냥 <광기의 역사>라고만 했겠죠. 실무진에서 찾아본 게 인간사랑판이었을 거구요...

마늘빵 2009-03-07 2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신입생을 위한 책은 별로 보이지 않는데요. 이건 대학원생을 위한 추천 도서인듯. 그것두 인문/사회대쪽만.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이 들어간 게 재밌네요. 나름 학술적인 책만으로 목록을 짜지 않으려고 한 것 같기도 하고.

로쟈 2009-03-07 22:06   좋아요 0 | URL
그게 선정위원들이 그냥 몇 권씩 추천한 걸 합산하지 않았나 싶어요...

마냐 2009-03-08 0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대학 신입생 시절 이후 강산이 몇번 바뀌었는데, 읽지 않은 책이 훨 많군여..ㅎ 그렇다고 사회인을 위한 추천도서로도 그닥 땡기지는 않지만, 로쟈님의 별도 추천은 귀담아 둘께여..^^;

로쟈 2009-03-08 08:55   좋아요 0 | URL
하워드 진과 지그문트 바우만의 책들을 집어넣으려다가 국내서로만 갔습니다.^^;

2009-03-08 01: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3-08 08: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3-08 04: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3-08 08: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드팀전 2009-03-08 05: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고등학생들은 수준이 좀 높아지긴했지만...이런 리스트들은 늘 교수들의 자기수준에서 '이 정도는 읽어야지 않아'하는 식으로 추천도서를 올린다니까요. 저도 <광기의 역사>는 완역본만 봤는데...서점에서 보니까 두께차이가 거의 두배더군요.^^ 나남판을 결국 다시 사야겠다는 생각만하고 늘 다른 걸로 손이.

로쟈 2009-03-08 08:55   좋아요 0 | URL
저도 절반 정도는 감이 없는 추천이란 생각이 들어요. 또 대학마다 필독도서 리스트를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중복성도 있고요. 그런 걸 읽는 교양강의들도 있습니다. 한두 권, 한두 명의 저자와 친숙해지는 게 더 중요한 듯싶어요...

노이에자이트 2009-03-08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수들도 자기가 추천한 책 외에는 읽기 벅차겠네요.우리나라 학생들,대학 입학할 때 대입시험공부 외의 배경지식은 머리 속에 없다는 현실을 잘 알면서 왜 이런 책들을 추천서라고 내놓는지 모르겠습니다.로쟈 님은 그 심리를 어떻게 해석하십니까?

로쟈 2009-03-08 16:09   좋아요 0 | URL
'심리'까지는 아니구요, 그냥 '관행'이죠. 약간은 무성의한 번역본 선정도 그런 탓이겠구요...

rkaksh 2009-03-23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몇책들은 고등학교때 읽긴읽었는데...

아직도 잘 모르겟네요...

로쟈 2009-03-24 00:24   좋아요 0 | URL
소설을 제외하고 읽으셨다면 조숙하셨네요.^^

keith 2019-01-15 0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추천 감사합니다.
 

아래 한국일보의 기사를 밑천 삼아서 20주기를 맞은 시인 기형도 읽기 리스트를 만들어둔다.  

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수 있습니다 

7일은 시인 기형도(1960~1989) 20주기가 되는 날이다. '나의 영혼은 검은 페이지가 대부분이다'와 같은 어두운 이미지가 가득한, 그의 유고시집 <입속의 검은 잎>은 이후 수많은 문학청년들의 가슴에 청춘의 화인(火印)을 찍었다. <정거장에서의 충고>는 그의 20주기에 나온 추모문집이다. 지인과 문우들의 고인에 대한 그리움이 절절하게 묻어난다. 이 문집의 편집위원이자 고인과 '목욕탕을 함께 갈 수 있는 사이였다'는 대학친구 성석제씨. 그는 대학시절 문학상을 먼저 받은 기형도 시인이 상금으로 수동타자기와 세계문학전집을 들여놓은 뒤 가늘게 실눈을 뜨고 "너도 상 받으면 먼저 책하고 타자기부터 사"라고 말했던 기억을 떠올린다.  

묘한 경쟁심 혹은 반발심에 성씨는 상을 받기도 전에 "상금은 내것이나 다름없다"고 호기를 부리며 술값으로 미리 다 써버렸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고인의 충고를 잊지 않았고 다음해 청계천에서 중고 수동타자기와 문학전집을 산 뒤 상금은 내 것이나 다름없다는 흰소리 따위는 않고 글을 써서 문학상을 받았던 일을 기억한다. 어느덧 20년, 중견 소설가가 된 그는 이제 허허롭게 웃는다. "둘 중에 누가 더 장사를 잘했는지 아직 잘 모르고 있다."

시인의 부고를 들었을 때 부친상중이었던 시인 이문재씨. 죽기 나흘 전 그의 상가를 찾아온 고인은 "형, 상복이 참 잘 어울리네요"라며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고 한다. 그 난데없는 인사가 자신이 들은 고인의 마지막 육성이었다는 이씨. "그는 늘 나의 아버지와 겹쳐서 떠오른다. 2009년 3월 초순은 혼자서 건너가기가 만만치 않다"며 쓸쓸한 가슴을 쓸어내린다. 이밖에도 1980년대말 문학과지성사 일을 맡고 있던 문학평론가 김병익씨는 그 뜨거운 정치의 계절에도 문학에 대한 열정으로 가장 활발하게 문학기사를 써냈던 젊은 문학기자로 기형도를 추억한다. 고인의 어떤 시 구절처럼 어쩌면 '추억은 황량'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월은 그리움을 증폭시킨다.(이왕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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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 2009-03-07 21:32   좋아요 0 | URL
절판된 책도 있군요.

로쟈 2009-03-08 08:56   좋아요 0 | URL
세월이 흐른 것이기도 하구요...
 

'이달의 읽을 만한 책'을 좀 뒤늦게 올려놓는다. 개강 첫 주라 정신없이 바빴고, 일도 많았다. 물론 그 일들이 다 끝난 건 아니지만, 금요일 밤이라는 핑계로 잠시 한숨 돌린다(내일 일은 내일로 미루자!). 사실 지난달 마지막 날인 28일에 페이퍼를 올려두려고 했으나 간행물윤리위원회의 웹진이 늑장을 부렸다. 그러니 이렇게 페이퍼가 늦어진 것이 내 탓만은 아니다(돌이켜보니 19일에 올린 달도 있었다!). 이 정도로 변명을 대신하고, '3월의 읽을 만한 책'을 좀 뒤적거려 본다. 흠, 바다 냄새, 화약 냄새가 미리부터 진동하는군... 

1. 문학 

문학분야의 책으로 소설가 신경숙씨가 고른 건 소설가 한창훈의 <나는 여기가 좋다>(문학동네, 2009). 표지에서도 짐작해볼 수 있지만 제목에서 '여기'는 '섬'이고 '바다'이다. 바다와 섬 사람들에 대한 소설. "소설가 한창훈은 바다와, 바다를 생존의 터로 여기고 사는 사람들의 대변인처럼 소설을 쓴다. 오랫동안 그래왔다. 무슨 얘기를 써도 한창훈의 글에서는 바다 냄새가 펄펄 난다. 그러니까 이 소설집의 제목 ‘나는 여기가 좋다’ 란 곧 ‘나는 바다가 좋다’ 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소설가 한창훈, 하면 저절로 그 이름 뒤로 바다가 따라다닌다. 우리나라 바닷가 사람들이 어떤 모양새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알려면 사실적인 어떤 기록을 뒤져보는 것보다 한창훈의 소설을 읽는 일이 더 실감나는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해서 봄보다는 여름이 더 잘 맞을 듯싶은 소설이기도 하다.   

찾아보니 <홍합>(한겨레출판, 1998)으로 널리 이름을 알린 이후에 쓴 <세상의 끝으로 간 사람>(문학동네, 2001), <섬, 나는 세상 끝을 산다>(창비, 2003), <청춘가를 불러요>(한겨레출판, 2005) 등도 모두 그의 섬 이야기이고 바다 이야기이다. 이 정도면 일로매진의 대표적인 작가가 아닐까 싶다. 얼핏, <갯마을>의 작가 오영수와 <성삼포>의 시인 이생진이 떠오른다. 제주도의 사진작가 김영갑의 <그 섬에 내가 있었네>(휴먼&북스, 2007)은 이 참에 알게 된 책이고(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258495 참조). 흠, 김영갑 갤러리가 제주도 최고 관광지의 하나라고 한다. 제주의 봄이 문득 궁금해지는군...  

2. 역사 

역사학자 이덕일씨가 고른 역사분야의 책은 박재광의 <화염병기>(글항아리, 2009)이다. 서저에서 봤을 때 바로 떠올린 건 영화 <신기전>인데(예고편만 봤다), 실제로 조선의 병기를 다룬 책이어서 신기전 얘기도 나온다고. "고려 말부터 조선에 이르기까지 여러 화기에 대해 체계적으로 서술하고 있는 이 책은 이처럼 일반의 상식을 뛰어넘는 사례들로 풍부하다"는 것이 추천의 이유다.    

 

무기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보통 전쟁사의 애독자이기도 할 텐데, 저명한 전쟁사가 존 키건의 <1차세계대전사>(청어람미디어, 2009)가 마저 출간됐다. 먼저 나온 <2차세계대전사>(청어람미디어, 2007)의 짝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세계전쟁사>(까치글방, 1996)과 세트를 맞추어도 좋겠다(키건의 책은 몇 권 더 출간돼 있다). 방대한 분량의 세계대전사를 집필한 저자도 놀랍지만, 개인적으론 역자인 조행복씨에게도 경탄을 금치 못하겠다. 작년 봄부터 펴낸 역서가 굵직한 책으로만 여섯 권이다. 더러 지체되어 나온 책들이 있다손 치더라도 초인적인 작업량이라 아니할 수 없다.   

3. 철학

김상환 교수가 추천한 철학 분야의 책은 나도 최근에 서평을 쓴 바 있는 바우만의 <유동하는 공포>(산책자, 2009)다. 추천사는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만 못하다는 속담은 어떤 지각이론을 담고 있다. 그것은 시각이 청각보다 우월하다는 이론이다. 조금 더 비튼다면 이렇게도 말할 수 있다. 백 가지 말, 백 가지 설명이 하나의 이미지만 못하다. 백 가지 이야기도 어떤 시각적 이미지로 수렴되지 못하면 오래 머물러 있을 수 없다."란 구절로 시작하는데, '3월의 읽을 만한 책'을 소개하는 기사는 이걸 받아서 <유동하는 공포>의 핵심을 "백 가지 말, 백 가지 설명이 하나의 이미지만 못하다는 사례를 들어 이미지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고 요약했다. 이미지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책? 역시나 직접 읽지 않고 들은 풍월로만 전달하다 빚어지는 오류라고 해야겠다.   

이미지 얘기가 서두에 나온 건 바우만의 근대성의 이미지를 '불(빛)'에서 '물'로 바꾸어놓았다는 얘기를 꺼내기 위해서였다. "폴란드 출신의 세계적인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근대성을 물의 이미지에 담아 설명했다. 이것은 우리가 통상 근대성에 대해 가져왔던 이미지와는 많이 다르다. 계몽, 이성의 빛 등과 같이 근대성을 표현하는 말들은 오히려 밝은 불의 이미지를 중심에 두고 있지 않은가."라는 식으로 말이다. 최근에 바우만의 책을 여러 권 입수했는데, 아직 소개되지 않은 '유동성' 시리즈 몇 권도 마저 출간되면 좋겠다.     

그리고, '물의 이미지로 본 근대'라고 해서 생각난 것인데, 러시아의 근대야말로 '유동하는 공포'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아닌가 싶다. 내가 염두에 둔 건 푸슈킨의 서사시 <청동기마상>으로, 표트르대제가 핀란드만 옆에다 세운 인공도시 페테르부크르의 대홍수를 다룬 작품이다. 가난한 하급관리 예브게니가 홍수로 약혼녀를 잃고 헤매다가 나중에는 청동기마상(표트르 대제의 동상)에 쫓긴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알렉산드르 베누아는 그 장면을 이렇게 그렸다.  

 

"가련한 미치광이가 어디로 가든 청동기마상이 무겁게 말발굽 소리 울리며 밤새도록 그의 뒤를 따라왔다." 공포스럽지 않은가?! 이 또한 '유동하는 공포'라 이름붙이고 싶다.  

4. 정치 

손호철 교수가 추천한 정치분야의 책은 공진성의 <폭력>(책세상, 2009)이다. "이 책은 폭력이란 무엇이며, 폭력과 비폭력은 어떻게 구별하고 누가 이 같은 기준을 정하는지, 나아가 폭력과 법과는 어떠한 관계에 있으며 민주주의에서 폭력은 어떻게 다루어져야 하며, 미래 사회에서 폭력은 어떠한 양상을 띨 것인지 등 폭력에 대해 우리가 궁금해 하고 있으며 알아야 할 의문들에 쉽게 답을 해주면서 이 문제에 대해 성찰을 하도록 만들어주고 있다."라고 소개한다.  

관심을 갖고 있는 주제라서 나는 지난 1월말에 책을 읽었는데, 저자가 주장하는 몇 가지 논점은 다음과 같다. (1)폭력은 파괴를 수반할 수 있는 강렬한 힘이다. (2)그렇기 때문에, 폭력은 두려운 것이지만, 경험과 적응 여부에 따라서 그 강렬함의 정도와 두려움의 정도는 달라질 수 있다. (3)그렇기 때문에 폭력의 폭력성을 결정하는 것은 폭력의 사용자가 아니라 폭력의 대상이다. (4)폭력은 인간과 관련된 것이다. 이러한 논점이 어떤 성찰로 유도하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저자는 '민주주의 사회와 폭력' 장에서는 '상징적 폭력'의 문제를 다루면서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에 대해 16쪽이나 할애하는데, '80년 광주'에 대해선 8줄을 할애하고 있는 것과 너무 대조된다(저자가 합창단 '음악이 있는 마을'의 테너라고 소개된 약력을 보고서야 어찌된 영문인지 이해할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동의는 할 수 없다).  

저자의 결론은 이렇다. "폭력을 중지시키기 위해서는 폭력이 필요하며, 폭력을 더 큰 폭력으로 제압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강해져야 하고 더 큰 폭력에  익숙해져야 하지만, 그렇게 폭력에 익숙해지고 무감각해지면 더 이상 타인이 겪는 폭력을 폭력으로 느낄 수 없게 된다. 이 폭력의 딜레마에서 우리는 과연 벗어날 수 있을까?"(140-1쪽) 흠, 다시 읽어봐도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다. 차라리 내게는 사카이 다카시가 쓴 <폭력의 철학>(산눈, 2007)이 더 이해하기 쉽고 유익하다. 결들여 지적하자면, 책은 노무현 정부 시절 김창호 국정홍보처장의 이름을 '정창호'라고 오기했다.    

5. 경제/경영

이준구 교수가 추천한 경제/경영서는 임상규의 <녹색희망, 농업의 미래>(매일경제신문사, 2009)이다. 저자는 참여정부의 마지막 농림부 장관이었다고 한다. 소개에 따르면, "이 책은 우리 농업의 현실에 대한 객관적 분석으로부터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는 데 이르는 광범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특히 오랜 공직자 생활로부터 우러난 날카로운 정책 감각이 책 전반에 걸쳐 생생하게 드러나고 있다."   

관심사가 다른 탓에 책을 손에 들 것 같지는 않지만, '녹색'이라는 말이 새로운 '전쟁터'가 되고 있다는 점만은 지적해두기로 하자. 사단은 <녹색평론>이 쌓아온 그간의 입지를 한순간에 어그러뜨리는 '녹색성장'이란 말이다. 우석훈에 따르면(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336940.html), '회색사업'이라 불러 마땅하지만 녹색으로 분칠하고 다니는 탓에 이 유행어는 경계해야 할 키워드의 하나가 되었다. 생태주의와 반생태주의가 모두 '녹색'을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우니 말의 경제가 '뒤죽박죽'이다. 개념 정리 차원에서 '생태경제학자' 우석훈의 말을 참조해두기로 하자.   

자, 상황은 그렇고, 이명박 정부에서 얘기하는 녹색성장이 과연 녹색인가 회색인가, 이에 대해서 잠깐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역사적인 의미로 말하자면, 녹색이라는 단어는 본디 생태주의나 환경주의라는 의미보다는 ‘핵폭탄 반대’라는 의미가 더 깊다. 1960~70년대, 냉전이 깊던 시절 핵실험은 사막과 바다에서 주로 이뤄졌는데, 이 핵실험을 막을 수는 없더라도 그 장소에서 ‘증인’이 되고자 했던 사람들이 녹색이라는 상징을 썼다. 숱한 박해를 당하고, 죽기도 많이 죽었지만, 냉전 시절 가장 강렬한 평화주의자들이 핵실험장에서 같이 죽겠다고 덤볐다는 것이 녹색이라는 색깔이 가졌던 상징이다. ‘그린피스’의 그린을 요즘은 환경 또는 생태라는 의미로 이해하는 사람이 있지만, 원래의 의미는 ‘반핵’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이명박 정부는 철저하게 원자력 위에 서 있기로 선택한 것이라서, ‘녹색’은 아니다. 정부의 저탄소 기본계획은 원전을 강화하는 것 위에 서 있기에, 어떻게 치장하더라도 열심히 원자력 발전소를 짓는 정부는 기본적으로는 반녹색이다. 녹색 본래의 의미라면, 원자력 발전소의 이른바 ‘셧다운’에 관한 계획을 발표하면서 “우리는 녹색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상식적이다. 그러나 이 정부는 앞으로도 원전을 많이 지을 것이고, 원전 없이는 한국은 돌아가지 않으므로, 이미 수명이 다한 원전도 자기 마음대로 기술평가를 하고 수명을 늘리겠다고 하는 것이 기조다. 그런 점에서 기본적으로 반녹색이다.

어쨌든 이건 기본에 관한 얘기라고 하고, 실제로 뭘 하겠다는지 한번 살펴보자. 한반도 대운하를 슬쩍 ‘4대강 정비사업’이라고 이름을 바꾸고, 이게 정부가 사용할 돈의 대부분인 상황인 게 현정국이다. 이 4대강 정비사업은 누가 뭐라고 말해도 시멘트 사업이고, 강바닥을 긁어내고 시멘트 둑을 더 높게 쌓겠다는 게 사업의 실체다. 그래서 역시 회색사업이라고 볼 수 있다.

종합적으로 보면, 기괴한 토건자본의 ‘그린워시’, 즉 녹색 이미지를 뒤집어쓰는 녹색 마케팅이 바로 녹색성장인 셈이다. 그래서 사기다. 이 사기가 언제까지 통할까? 그건 모르겠다. 그러나 사기는 사기다. 골프광 토호들이 이명박 대통령을 등에 업고, 땅값 올리기 사기사업을 벌이면서 ‘녹색 이미지’를 뒤집어쓴 이 거짓말 사업, 그 결과로 국토 생태는 결딴날 것이다. 녹색성장 사업이 벌어지는 전국 단 한 곳이라도 지역 생태가 버티는 곳이 있을까? 처절한 생태 파괴의 현장이 눈에 보이지 않는가? 이 정부의 사업이 녹색인지는 모르겠는데, 확실히 반생태적이기는 한 것 같다.  

'글로벌 식품의약기업의 두 얼굴'을 고발하는 스탠 콕스의 <녹색 성장의 유혹>(난장이, 2009)도 '녹색 마케팅' 비판서로 읽을 수 있다. "<녹색성장의 유혹>은 녹색 당의에 은폐된 우리들의 일상과 이 시대의 모순을 드러내 보여주는 책이다. 오늘날 전세계를 배회하고 있는 유령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친환경, 생태친화 등으로 불리는 이른바 ‘녹색’이란 은유적 색깔일 것이다. 바야흐로 녹색의 시대인 것이다."란 소개가 인상적이다. 책의 원제는 '병든 지구(Sick Planet)'인데, 전 지구적 '녹색성장'의 필연적인 귀결이 그러할 것이다(아니 이건 '미래'가 아니라 '현재'이다).    

 

6. 사회 

김문조 교수가 추천한 사회분야의 책은 마크 타이너의 <정직한 법조인 링컨>(소화, 2008). 미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대통령인 만큼 한국인도 가장 숭배하는 미국 대통령이어서 링컨에 관한 책은 다수가 출간돼 있다. "링컨의 변호사 시절을 중점적으로 다룬 이 책은 짓밟힌 민중의 권익 향상을 위해 힘쓰다가 흉탄에 의해 사거한 ‘국민적 영웅’ 링컨의 실상을 파악하려는 동기에서 집필된 것이다. 옮긴이 역시 감상주의로 일관된 ‘링컨 신화’의 거품을 걷어내는 데 진력해 온 흔치 않은 링컨 전문가이다."라고 소개되는 책. 같은 역자가 옮긴 <가면을 벗긴 링컨>(소화, 2008)과 '세트'이다. 한국일보(08. 11. 08)의 서평은 두 권을 이렇게 소개했다. 

<정직한 법조인 링컨>은 법조인으로서의 링컨이 대통령 재임 기간의 5배인 25년 동안 변호사로 있으면서 수임했던 5,600여건의 사건을 통해 그를 조명하는 책이다. 이를테면 그의 공식적 측면을 둘러보는 것이다. 과부에게는 수임료를 받지 않았다든지, 불리한 상황에서도 무고한 사람들의 변호를 열정적으로 완수해 무죄 방면을 이끌어낸 일 등이 서술된다. 하지만 이 역시 통상적인 링컨의 전기작가들이 거의 관심을 두지 않았던 분야다. 책은 링컨이 인용한 영국 법률논문들의 제목까지 일일이 전거하는 등 실증적으로 많은 힘을 기울였다. 노예와 관련된 사건의 소송은 물론 각종 민사소송에서 보여준 링컨의 기민함이 생생하다. 특히 노예 관련 소송에서 그가 "도덕적 판단을 유보, 노예 소유주를 대리"(279쪽)한 일 등은 그가 변호사로서 실증법적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또 다른 한 권은 '달의 뒷면'을 들춰낸다. 진실은 과연 불편한 것인가. <가면을 벗긴 링컨>이 보여주는 링컨에 대한 이야기는 불편하다. 이 책은 '부정직한 링컨의 진짜 얼굴'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노예해방으로 알려진 링컨이 실은 평생 동안 골수 백인 지상주의자였다니. 남북전쟁 당시에는 북부의 정적 수만여명을 투옥하는 것도 모자라, 남부 도시의 포격은 물론 민간인에 대한 살상에까지 일일이 관여했다니. 그것들조차도 약과다. 좌든 우든, 링컨 숭배주의자들이 똑같이 보이고 있는 링컨을 향한 충성심에 비하면 예고편이다. 그들은 정부나 재단으로부터의 재정적 보조를 따내는 데는 귀재였다. 기금과 장학금은 물론, 수만달러가 걸린 '링컨 상'까지 그들의 몫이었다. 9ㆍ11 사태를 두고 "그 어느 때보다 우리가 강력한 중앙정부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계기"라고 그들은 입을 모았다. 저자는 "링컨 숭배주의는 미국인들에게 왜곡된 역사를 주입, 오도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며, 좌파라고 해서 이런 국가주의적 흐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말한다.  

이러한 링컨의 두 얼굴이 징후적으로 드러내주는 것이 '미국의 두 얼굴'이고 '두 역사'다. 몇달 전 '장정일의 책 속 이슈'가 생각난다(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323306.html). 미국사의 이해를 위한 기본 초식으로 이 참에 알아두도록 하자.  

남부의 경제적 기반이 대농장이었다면, 북부는 상·공업이 발달했다. 남북의 이질적인 경제구조는 자연 환경에 따른 것이지만, 제임스 M. 바더맨의 <두 개의 미국사>(심산, 2004)를 보면 애초부터 두 지역을 차지한 이민자의 성격이 달랐다. 영국은 장자 상속 원칙에 따라 차남 이하는 유산이 없었다. 남부에 정착한 사람들은 토지상속에서 배제된 지주 계층으로, 그들은 남부에 대농장을 짓고 노예를 부리며 고향의 귀족 생활을 재현했다. 반면 북부에 정착한 사람들은 종교적 자유를 찾아온 청교도로, 근면과 자기 절제라는 노동 윤리에 충실했다.  

남부 귀족들은 노예 노동으로 얻은 농산물을 영국에 팔았고, 영국산 제품으로 사치를 했다. 연방정부는 북부의 상공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영국 제품에 높은 관세를 부과했는데 그것이 남북의 대립을 심화시키면서, 미합중국 헌법의 약한 고리를 파고들었다. 미국 헌법은 연방정부의 통제와 각 주(州)들의 주권 범위를 모호하게 규정해 놓았다. 그래서 일부 남부 주들은 “어떤 주도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연방의 결정을 무효화할 권리”뿐 아니라, “필요하다면 연방으로부터 이탈할 권리까지 각 주에 있다”고 주장하게 된 것이다.

건국 이후 지속된 연방주의자와 분리주의자의 한판 대결이 흑인 노예 문제로 불거진 게 남북전쟁이다. 오로지 분리주의자들에 대항해 연방을 건사하려는 목적에서였지 ‘노예해방’ 전쟁은 링컨의 안중에 없었다. 저 유명한 노예해방선언이 발표된 시점이 전쟁 직전이 아니라, 전쟁이 한창인 1863년 1월1일이었다는 점은 그래서 흥미롭다. 링컨은 그 선언을 통해 두 가지 전략적 승리를 거두었다. 남부의 흑인들이 대거 북부로 넘어 온 것과, 도덕적 우위를 확보함으로써 유럽 국가들의 남부에 대한 지원을 차단한 것.   

7. 과학 

장경애 편집장이 추천한 과학분야의 책은 닉 레인의 <미토콘드리아>(뿌리와이파리, 2009). '뿌리와이파리'는 언젠가 언급한 대로 주목할 만한 교양과학서 출판사이고, <미토콘드리아>는 재작년에 낸 <삼엽충>과 함께 소장해둠직한, 탐나는 책이다(나는 아직 구입하지 못했지만). 추천의 변은 이렇다. "한 동안 과학자들은 세포핵을 생명체의 중심으로 간주한 채 미토콘드리아를 주변적 존재로 홀대했다. 그러나 미토콘드리아가 다세포 생명체를 창출하는 진화의 실세임이 밝혀지면서, 생명계의 역동성을 미토콘드리아의 작동으로 이해하고 해석하려는 ‘미토콘드리안 패러다임’이 풍미하고 있다. 총 500여 쪽에 달하는 방대한 책에서 저자는 생명체의 탄생, 성장, 분화 노화, 및 죽음과 같은 현상들을 ‘생체 에너지 발전소’에 비견되는 미토콘드리아의 역능을 중심으로 상세히 설명한다.(...) 생소한 개념과 이론들을 소통 가능한 방식으로 알기 쉽게 전달하고자 노력했다 는 점에서 저자와 역자 모두에게 찬사를 보낸다." 저자의 다른 책으론 절판됐긴 하나 560쪽의 방대한 책 <산소>(파스칼북스, 2004)가 있다.   

8. 예술

김춘미 교수가 추천한 예술분야의 책은 '재즈책'이다. 정우식의 <언제나 재즈처럼>(고려원북스, 2008). 라디오를 잘 듣지 않아서 저자의 이름이 생소하지만 '올 댓 재즈'란 프로그램의 PD라고 한다. 소개는 이렇다. "음악을 좋아하는 이든 아니면 별로 관심이 없는 일반 생활인이든 간에 모두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 하나 나왔다. 엄밀히 말하면 음반 한 장을 권하고 싶다는 말이 더 맞을 듯싶다. 우리나라에서 재즈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유일하게 안식처를 제공하고 있는 CBS FM의 <올 댓 재즈>라는 프로가 있고 이 프로그램 뒤에는 프로를 제작하고 있는 정우식 PD가 있다. 프로를 진행하고 있는 재즈 색소포니스트 이정식은 정우식을 영원한 ‘jazz kid'라 일컫는다. 이 책은 100여 년 이어져 내려온 재즈의 역사에서 가장 대표적인 33인을 추려, 아주 쉽고 간명하게, 그 인물들의 역사성, 음악적 특징, 대표작, 대표적 음반 등을 소개하고 있다." 참고로 책의 목차는 이렇다. 몇몇 아티스트의 전기는 '현대예술의 거장' 시리즈로 출간돼 있다.   

Jazz의 위대한 순간 Ⅰ New Orleans Jazz & Swing(1895-1940)
위대한 재즈의 발명가 루이 암스트롱 Louis Armstrong
세상에서 가장 슬픈 목소리 빌리 홀리데이 Billie Holiday
The King of Swing 베니 굿맨 Benny Goodman
재즈 보컬의 퍼스트레이디 엘라 피츠제럴드 Ella Jane Fitzgerald
재즈의 연금술사 듀크 엘링턴 Duke Ellington
스윙 백작의 리듬 혁명 카운트 베이시 Count Basie

Jazz의 위대한 순간 Ⅱ Modern Jazz(1940-1959)
비밥(Bebop)의 쌍둥이 찰리 파커/디지 길레스피 Charlie Parker/Dizzy Gillespie
스타일도 하나의 연주다 델로니어스 몽크 Thelonious Monk
늘 새롭지 않다면 그건 더 이상 재즈가 아니다 마일스 데이비스 Miles Davis
재즈계의 원조 꽃미남 쳇 베이커 Chet Baker
재즈와 클래식의 크로스오버 모던 재즈 쿼텟 Modern Jazz Quartet
풍부한 감성으로 재즈를 노래하다 사라 본 Sarah Vaughan
하드밥(Hard Bop) 사관학교의 수장 아트 블래키 Art Blakey
여전히 살아 숨쉬는 색소폰의 전설 소니 롤린스 Sonny Rollins
일평생 ‘스윙’만을 고집한 재즈 피아노 장인 오스카 피터슨 Oscar Peterson
구수한 알토 색소폰의 명인 캐논볼 애덜리 Cannonball Adderley
실험성과 대중성의 인상적인 만남 데이브 브루벡 Dave Brubeck
신과 대화하는 색소폰 연주자 존 콜트레인 John Coltrane 

 

Jazz의 위대한 순간 Ⅲ Soul/Fusion/Contemporary Jazz(1960-1993)
인상파 재즈 피아니스트 빌 에반스 Bill Evans
보스 기타(Boss Guitar)의 출현 웨스 몽고메리 Wes Montgomery
새로운 물결, 보사노바의 두 거장 스탄 게츠/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 Stan Getz/Antonio Carlos Jobim
재즈계의 카멜레온 허비 행콕 Herbie Hancock
퓨전재즈의 소장파 웨더 리포트 Weather Report
피아노 즉흥연주의 신기원 키스 자렛 Keith Jarrett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베이시스트 자코 파스토리우스 Jaco Pastorius
라틴 향 물씬한 퓨전재즈 칙 코리아 Chick Corea
재즈 기타리스트에서 최고의 보컬리스트로 조지 벤슨 George Benson
건반 위의 마술사 밥 제임스 Bob James
색소폰으로 노래하는 연주인 그로버 워싱턴 주니어 Grover Washington Jr.
모두에게 다가온 재즈의 설렘, Feels so good 척 맨지오니 Chuck Mangione
재즈 보컬 4인방의 즐거운 재즈 맨해튼 트랜스퍼 Manhattan Transfer
황금비율로 만난 컨템퍼러리 재즈 명콤비 데이브 그루신/리 릿나워 Dave Grusin/Lee Ritenour
우리 시대 진정한 재즈 스타 팻 메스니 Pat Metheny  

9. 교양 

이한우 기자 꼽은 교양서는 고종석의 <어루만지다>(마음산책, 2009). 이미 소개한 적이 있는 책이다(http://blog.aladin.co.kr/mramor/2514691). <도시의 기억>(개마고원, 2008)과 마찬가지로, 한국일보의 연재를 묶은 것이다. 추천자에 따르면, "입술, 감추다, 메아리, 미끈하다, 혀놀림, 가냘프다, 발가락, 손톱, 잇바디, 꽃값, 모름지기, 바람벽, 그네, 무지개, 미리내, 누이, 엇갈리다, 궂기다, 어둑새벽, 켤레, 간지럼, 밴대질, 눈물, 딸내미, 속삭임, 스스럼, 술, 한숨, 보름, 그믐, 거품, 춤, 그대, 구슬, 어루만지다, 서랍, 버금, 비탈, 엿보다, 주름. 모두 40개의 우리말을 단서로 고종석이 준비한 향연은 때로는 외설적이다가도 어느새 순정적이다.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그의 해박함을 즐기는 것 또한 고종석만이 줄 수 있는 뜻밖의 즐거움이다.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따뜻해짐을 느낀 것만으로 ‘언어학자’ 고종석에게 참 고맙다." 언어학자가 아닌 '객원논설위원'으로서 고종석이 쓴 시평들을 묶은 <경계긋기의 어려움>(개마고원, 2009)도 이번에 출간됐다. 실생활의 경험에서 말하자면, 고종석은 전철에서 읽기에 가장 좋은 저자의 한 사람이다. 3월엔 고종석 '3종 세트'와 함께해보시길...   

10.  기형도

아동분야에 추천된 알렉상드르 자르뎅의 <알록달록 공화국>(파랑새, 2009)도 흥미를 끌지만(예전엔 '알렉상드르 자르댕'으로 소개됐었다), 이달에도 내 맘대로의 카테고리를 만든다. 오늘(3월 7일) 20주기를 맞은 '기형도'가 이 달의 특별한 카테고리이고, 사실 늦게라도 이 페이퍼를 쓴 이유의 절반은 이미 '전설'이 되고, '신화'가 된 그의 이름을 상기하기 위해서다. 어제 귀가길에 나는 심야극장 대신에 대헝서점에 들러서 이번에 나온 추모문집 <정거장에서의 충고: 기형도의 삶과 문학>(문학과지성사, 2009)을 손에 들었다. 그리고 좌석버스의 침침한 불빛 아래서 몇 편의 글을 읽었다. 89년 봄의 몇몇 일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살아있었다면 그도 어느덧 지천명의 나이다! 

물론 기형도에 대한 개인적인 안면이나 기억은 갖고 있지 않다. 중앙일보의 기사들과 유고시집 <입 속의 검은 입>(문학과지성사, 1989)이 나오기 전에 발표된 시편들을 기억할 따름이었다. 그의 죽음도 시집이 나온 뒤에야 알았거나 그냥 '단신'으로 지나쳤을 것이다. 하지만 시집을 읽은 뒤, 기형도란 이름은 지나칠 수 없는 이름이 됐다. 10년쯤 전에 기형도 시에 대해 나대로 글도 쓰고 강의도 한 적이 있다. 그가 첫시집의 제목으로 생각해두었다는 <정거장에서의 충고>를 읽고 덧붙일 말이 더 있을지 생각해볼 작정이다. 그래서 '3월의 읽을 만한 책'에 포함시켜둔다.   

09. 03. 06-07.  

P.S.  이달에 읽을 고전은 밀턴의 <실낙원>이다. 작년 6월에 한번 꼽아본 적이 있지만, 고전은 '읽기'의 대상이 아니라 '다시 읽기'의 대상이라는 점에서 두 번 꼽는 일이 흠은 아니겠다(사실은 이번에야 읽는 것이지만). 밀턴 전공자인 박상익 교수의 <밀턴 평전>(푸른역사, 2008)과 편역서 <아레오파기티카>(소나무, 1999)도 같이 읽을 책이다. 낙원에서 쫓겨나는 아담과 이브의 신세가 '신화'로만 읽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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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r 2009-03-07 0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지 않아도 이 페이퍼가 올라오지 않길래, 새학기가 시작되어서 정신없이 바쁘시구나 했습니다. 이번달도 고맙습니다^^

로쟈 2009-03-07 11:33   좋아요 0 | URL
별말씀을요.^^; 시간을 좀 잡아먹는 페이퍼라서 늦어지게 됐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09-03-07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70년대에 정음문고나 삼성미술문고로 번역된 휘이어가 쓴 링컨전기에도 링컨은 연방을 구하기 위해 전쟁을 했지 노예해방을 위해 한 것이 아니라고 링컨이 말했다고 나와 있는데 한국인은 커녕 미국인들도 그런 걸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그런데 저는 성인이 된 뒤에 그 책을 읽어서 그런지 그다지 큰 충격은 안 받았습니다.물론 당시 남북전쟁 때 영국노동자들이 남군에 가는 물자하역을 거부하면서 노예해방에 공감했고, 마르크스 역시 링컨을 지지한 점을 간과해선 안되지만요.

로쟈 2009-03-08 08:57   좋아요 0 | URL
그래서 '두 얼굴'이겠죠. 이면만을 볼 건 아니라는 의미에서도...

노이에자이트 2009-03-08 14: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저는 링컨을 좋아해요.정치가로서 냉정하고 합리적으로 전쟁을 지휘했다고 봅니다.

로쟈 2009-03-08 16:10   좋아요 0 | URL
제가 어릴 때 읽은 전기는 '좋은 쪽'만 얘기해서, 뒤늦게 균형을 잡으려고 합니다...

노이에자이트 2009-03-08 2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도 역사적 인물들의 어두운 면을 그릴 수 있는 풍토가 되면 좋겠습니다.
 

이달말 '안나 카레니나' 내한 공연을 앞둔 러시아의 안무가 보리스 에이프만의 인터뷰기사가 올라왔기에 옮겨놓는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는 자주 강의도 하게 되는 작품이어서 어떻게 발레로 공연되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조만간 알게 될 듯싶다... 

 

한겨레(09. 03. 03) 그의 발레,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나의 무대는 열려있는 감정의 경험이다. 내가 지배하는 캐릭터가 사는 곳에서 미스터리를 창조하여 그것의 대단원을 가지고서 나만의 세상을 만든다.”

러시아 ‘드라마틱 발레’의 거장 보리스 에이프만(63)과 그의 발레단이 이달 말 한국을 찾는다. 에이프만은 뛰어난 심리묘사와 애크러배틱에 가까운 극적인 안무, 장엄한 스케일의 연출로 세계 무용계의 눈 귀를 끌어온 안무가. 우리에게는 2001년부터 <차이코프스키-미스터리 한 삶과 죽음>, <레드 지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돈키호테> 등의 내한 무대로 두터운 팬층을 확보하고 있다. 3월27~29일 서울 역삼동 엘지아트센터(02-2005-0114)에서 신작 <안나 카레니나> 국내 초연을 앞둔 그를 전자우편으로 미리 만났다.

에이프만은 “한국 관객들은 매우 감성적이고 지적이다”며 “나의 작품을 잘 아는 전문가들이 모이는 곳을 방문한다는 것이 가장 기분 좋다”고 기대감을 에둘러 표시했다. 그는 러시아 고전발레의 빼어난 테크닉을 바탕으로 현대무용을 접목시켜 철학적 이야기를 그려낸다. 고전문학이나 역사상의 극적 이야기와 철학적 주제가 그의 크고 화려한 현대발레로 무대화된다.  

그의 발레단이 한국 무대에 처음 선보이는 <안나 카레니나>는 톨스토이 명작에 현대 발레의 옷을 입힌 작품. 19세기 러시아 왕정 관료인 남편과 유복한 삶을 누리던 안나 카레니나가 청년 장교 브론스키와 사랑의 도피를 하지만, 혹독한 현실 앞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비극을 담았다. 그레타 가르보, 비비안 리, 소피 마르소 등 당대 최고 여배우들이 주연을 맡으며 꾸준히 영화화된 작품이다.

에이프만은 카레니나의 타오르는 열정과 내면적 고통을 숨막히도록 격정적인 안무와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6번 ‘비창’ 등의 극적인 음악으로 형상화했다. 19세기 러시아 왕정의 시대상을 그린 소설과 달리 에이프만은 안나의 심리적 억압과 욕망에 초점을 맞췄다. 그는 이 작품으로 2006년 ‘무용계의 오스카상’으로 일컫는 ‘브누아 드 라 당스’ 안무상을 수상했다. 

“사랑에 관한 발레를 만들고 싶었다. ‘3각 관계’라는 영원하고도 신화적인 주제는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다. 젊고 현대적인 배우들로 이뤄진 우리 무용수들은 사랑의 현대적인 개념과 증오를 표현한다.”

에이프만은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는 오랫동안 관심의 대상이었다”며 “주인공 안나가 받아들인 감정적이고 에로틱한 세계는 우리 공연의 세계였다”고 작품 동기를 밝혔다. 그는 안나의 심리를 극적인 독무뿐만 아니라, 남편 카레닌 또는, 애인 브론스키와의 화려한 듀엣 춤으로 다양하게 표현했다. 그는 “안무가는 수많은 여성과 남성 캐릭터를 만들어 낸다. 나의 발레에서 여성의 주제는 언어가 아닌 몸을 통해서 표현된다”며 “나 자신을 춤추는 안나의 열정으로 드러내야 했다”고 귀띔했다.  

특히 에이프만은 안나의 심리 상태에 따라 흰색, 검은색, 붉은색의 드레스를 입게 해 순수, 어둠, 열정에 대한 상징성을 덧입혔다. “예술과 마찬가지로 생활에서도 색깔은 특별한 드라마적인 의식과 연관이 있다. 예를 들면, 검은색은 죽음의 비극과 관련 있고, 흰색은 결혼, 붉은색은 열정을 연상시킨다. 그것의 전형성을 바꾸고, 새로운 드라마적인 효과를 줄 수 있다.”

13살 때부터 안무를 시작한 에이프만은 바가노바 발레 아카데미와 옛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 컨서바토리에서 수학했고, 1975년 키로프 발레의 <불새>를 안무하면서 처음 세계 무용계의 눈길을 받았다. 1977년 ‘보리스 에이프만 발레단’을 창단한 뒤로 연극성이 강화된 ‘현대발레’ 장르를 선보여왔다. 그는 옛 소비에트 연방 시대에 공연 예술인 최고의 찬사인 ‘러시아의 국민 예술가’ 칭호를 받았고, 러시아 최고 권위의 ‘골든 마스크상’을 두 번, ‘황금 소피트상’을 다섯 번 받았다.

그는 고전 발레뿐만 아니라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셰익스피어, 체호프 등이 지은 고전문학 작품을 비롯한 다양한 소재를 현대발레로 창작했다. 또한 차이코프스키, 몰리에르, 발레리나 올가 스페시프체바 등 천재 예술가들의 고뇌를 극적인 무용작품으로 무대에 올렸다. 에이프만은 “처음에는 발레의 새로운 잠재력을 발견하려고 노력했고, 그리고 나서 심오한 문학세계와 진실한 음악을 발레로 결합시킬 수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2007년 10월 내한했을 때 “발레는 인간의 감정과 욕망, 내면세계를 관객들과 나눌 수 있는 예술”이라고 말했던 그에게 다시 물었다. 그에게 춤은 무엇일까? “나는 춤에 의해 살아가고, 춤을 위해 산다. 춤은 구경꾼들을 인간의 열정을 끌어올리는 사람들에게 포함시키는 것이 가능하며, 나는 그 지점이 가장 흥미롭다.”

<안나 카레니나>는 서울공연에 앞서 3월20일 거제문화예술회관, 22일 대구 오페라하우스, 24일 김해문화의전당에 이어 31일 경기도문화의전당, 4월2일 울산 현대예술관에서 지방 관객과도 만난다.(정상영 기자)   

 

■ 보리스 에이프만 인터뷰 전문  

-발레 <안나 카레니나>의 매력을 소개한다면?  

=저는 사랑에 관한 발레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의 ‘3각 관계’에 대한 영원하고도 신화적인 주제였습니다. 이 주제는 항상 의미가 있습니다. 당신이 이러한 신화적인 스토리를 읽는 동안 영감이 생겨납니다. 우리 무용수들은 젊고 현대적인 무용수들로서 사랑과 증오의 현대적 개념을 표현합니다. 만일 우리가 타이틀 <안나 카레니나>를 지운다고 해도, 이 공연은 여전히 (톨스토이의) 그 소설을 연상시킵니다. 그리고 동시에 (이 발레는) 톨스토이 작품의 영향 아래서 쓰인 독립적이고 새로운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당신은 작품에서 음악을 매우 효과적으로 사용한다. 당신이 음악에 대해 특별한 노력과 관심이 있는 것은 컨서바토리에서 공부했기 때문인가요?

=아마 당신이 알 텐데요, 나는 컨서버토리에서 안무를 공부하였습니다.(참고로 에이프만은 옛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 컨서바토리에서 수학했다) 그런 연유로 음악의 세계와 특별한 연관을 갖고 있습니다. 음악과의 연관성은 사실 매우 미묘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단지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음악을 볼 수도 있어야 합니다. 음악의 ‘조형성’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어떻게 움직이고, 어떤 감정들이 표현되는지, 그리고 드라마투르그에 무엇을 답하는지 말입니다. 음악은 더 이상 내 작업에 ‘보조제’가 아니라 내가 살아가고 창조하는 세계를 구성하는 한 요소입니다.

음악을 고르는 것은 발레를 만드는 작업의 첫번째이자 중요한 것입니다. 그것은 이후의 모든 작업의 과정을 규정합니다. 음악을 고르는 과정은 고통스럽습니다. 이것은 단지 많은 시간 음악을 듣는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음악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한 노력이며, 무언가 음악 안에 있는 새롭고 현대적인 것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 음악이 잘 알려진 고전임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안나 카레니나>에 대한 많은 정보를 갖고 있지 않은 한국 관객들에게 팁을 준다면?

=소설 <안나 카레니나>에 저는 오랫동안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톨스토이의 작품을 읽을 때 당신은 그의 주인공들의 심리에 대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놀라운 작가의 이해력을 느낄 것이며, 또한 러시아 삶을 반영함에 있어서 놀라운 열정과 정확성을 느끼게 됩니다. 소설 <안나 카레니나>에는 여주인공의 내면세계에 대한 몰입뿐 아니라 그녀의 성격에 대해 완벽한 사이코-에로틱한 이해가 있습니다. 현대 문학에서 우리는 그러한 열정과 은유와 환상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내 안무에 필요한 요소가 되었습니다. 나는 마침내는 소설을 넘어섰습니다. 여자 주인공이 받아들인 감정적이고 에로틱한 세계는 우리 공연의 세계와 같습니다. 저는 오늘날에도 남자와의 에로틱한 관계에 사로잡혀 아이들을 버릴 수 있는 그러한 여성이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안나 카레니나>에서 안나의 희고, 검고, 붉은 드레스는 그녀의 감정변화와 처해있는 상황을 표현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공연을 위해서 효과적이라고 생각하지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예술과 삶 속에서 색깔은 특별한 드라마적 의식과 연관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검은색은 죽음의 비극과, 흰색은 결혼과, 붉은 색은 열정과 연관이 있습니다. 이런 전형적인 것을 바꾸고, 새로운 연극적인 효과를 주는 것은 가능합니다.

-안나가 브론스키를 만난 후 심리변화를 효과적으로 관객에게 이해시키고 주제를 느끼게 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 같습니다. <안나 카레니나>의 안무를 창작하면서 가장 힘들고 어려운 일은 무엇이었습니까?

=안무가는 수많은 여성과 남성 캐릭터를 만들어 냅니다. 제 발레에 있어서 여성의 주제는 언어를 통해서가 아니라, 몸을 통해서 나타납니다. 저는 제 자신을 열정을 춤추는 그녀에게 구체화해야 합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 표현의 한계를 위해 여성이 되는 것입니다. 물론, 안나 카레니나가 제 자신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무용수들과 함께 우리가 이러한 사이키델릭 타입의 여성을 느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물론 몇몇의 사람들은 우리의 비전에 대해 논쟁하기도 하지만 말입니다. 우리가 만들고 있는 것은 사이코드라마로 불려지는 동시에 관객들을 감정적이고 지적으로 영향을 주는 황홀한 경험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엘리트적이거나 실험적인 예술이 아닙니다. 이것은 단지 현대 발레일 뿐입니다.

우리는 지난 30년 동안 우리의 스타일을 발전시켜왔고, 이것은 최근에 많은 추종자를 양산했습니다. 최근에 저는 우리의 스타일과 유사한 작업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젊은 안무가들의 작품을 많이 보았습니다. 발레의 다른 경향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가 우리와 함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을 발레로 만든 첫 번째 안무가로 유명합니다. 그런 작업의 동기는 무엇입니까? 그런 작업을 하면서 오리지널 작품의 명성과 이미지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책임감이나 우려를 느낀 적이 있습니까?

=발레를 비롯한 많은 무대예술의 바탕이 되는 문학 작품은 발전되어야 합니다. 최초에 저는 발레 작품을 위한 새로운 잠재력을 발견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진지한 문학과 진실한 음악을 결합함으로써 도달할 수 있다고 이해했습니다. 저는 항상 새롭고 독립적인 작품을 만듭니다. 문학적 주제는 단지 발레의 바탕이 될 뿐이며, 제 공연들은 다양한 주제들에 대한 판타지아입니다.

-지금까지 당신은 도스토예프스키, 셰익스피어, 체홉, 톨스토이 같은 위대한 작가들의 작품을 현대발레로 만들었습니다. 또한 차이코프스키, 몰리에르, 발란신 같은 재능 있는 아티스트들의 삶과 이야기를 발레화하였습니다. 같은 방식으로, 혹시 당신의 마음 속에 발레화하고 싶은 위대한 아티스트나 작품이 있습니까?

=저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삶에 대한 발레를 만들고 싶은 꿈이 있습니다. 그 작품은 특별히 프로이트의 심리와 연관된 매우 흥미로운 작업이 될 것입니다.

-안나 카레니나라는 어떤 인물입니까?

=안나 카레니나는 비극을 위해 창조된 매우 특별한 타입의 여성입니다. 그녀의 관능적인 세계는 매우 모호합니다. 만일 그녀가 브론스키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누군가 다른 사람을 만났을 겁니다. 조금만 밀어 부쳤어도 그녀가 그렇게 될 수 있었을 겁니다.

안나는 한 남자에 대한 성적 집착에 의해 파멸하게 됩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녀는 약물 중독자였다는 사실입니다. 지속적으로 아편을 먹으면서, 신경과민으로 인한 신경쇠약증에 빠진 그녀, 바깥 세상을 향한 적개심… 흉악한 존재로 변한 그녀는 그녀 자신을 파멸로 몰아갑니다. 자살을 택함으로써 그녀는 자신과 그녀를 그 지경으로 몰아넣은 친척들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저는 톨스토이의 소설이 훌륭한 작품이지만 톨스토이의 잠재의식의 세계를 작품전체에 다 이식하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이것은 프로이드보다 더 깊은 프로이드의 세계입니다. 그녀를 향한 세상의 시선은 그녀 자신을 희생토록 했습니다. 이것은 희생당한 여성의 타입입니다. 그녀는 죽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우리는 그녀를 비난하거나 죄를 면제하여 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단지 그녀는 동정할 수 있을 뿐입니다.

삶은 그녀에게 점차 참을 수 없는 것으로 변하였습니다. 그녀는 그녀의 아들을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모성애를 잃었습니다. 그것은 끔찍한 일입니다. 그녀는 그것을 선택했습니다. 그녀는 그 두 가지의 사랑이 명백하게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브론스키를 선택했습니다.

우리의 시간과 19세기가 일치하는 것 아닙니까? 이것은 여성과 어머니로서 궁극적인 문제입니다. 이러한 카테고리는 가정이란 개념에서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존재하는 것입니다. 아이를 넘어, 신의 도덕성을 포함한 모든 것을 뛰어 넘어 - 이것은 당신이 끊임없이 생각해야 할 문제입니다. 그녀는 남자를 잃은 상실로 인해 죽은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악마 같은 세상의 창조물로 다시 태어난 한 여성의 비극입니다.

제 견해로 남편 카레닌은 비극적인 인물입니다. 그가 왜 그렇게 나쁜 방식으로 취급되어야 합니까? 그는 아내를 사랑하고, 결국 가족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평범한 남자입니다. 이러한 열정이 바로 그의 재앙이었습니다. 그리고 종교로부터 이것을 숨기고 귀족들과 함께 즐기는 것에 실패하였습니다. 그는 혼자였고, 발가벗겨졌고, 내면적으로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당신에게 춤이란 무엇입니까?

=저는 춤에 의해 살아가고, 춤을 위해 삽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춤의 철학을 소개한다면?

=안무는 선의 아름다움입니다. 그 안에는 미학적인 아름다움, 감정과 에너지가 있습니다. 안무가가 문학을 어필한다고 해도, 특별한 형식의 세계는 남아 있습니다. 이것은 상대적인 예술이며, 발레는 발레 고유의 법칙에 의해서 존재합니다. 반대로 춤은 구경꾼들을 인간의 열정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가능하며, 저에게는 무엇보다 그 지점이 가장 흥미롭습니다.

-보리스 에이프만 발레의 움직임은 애크러배틱에 가깝고 무용수들에게는 어렵고 위험하게까지 보입니다. 이런 어려운 움직임을 요구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예를 들어 <백조의 호수> 같은 작품은 매우 어렵습니다. 무용수는 기본적으로 매우 훌륭한 테크닉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다른 종류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특별한 작용, 테크닉과 스타일이 필요합니다. 감정을 몸으로 표현하는 무용수의 능력이 요구됩니다. 전통적인 작품에서는 밖으로 보여지는(외적인) 면, 움직임(안무)의 그림, 현상(그래픽)이 보다 중요합니다. 여기서는 전문성이 필수 요소입니다. 우리 단체에서는 이것만으로는 불충분합니다. 우리 무용수들은 신체적 능력뿐만 아니라 정신적 깊이를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우리 단체에 우리를 하나로 묶고 다 함께 이루고자 하는 지향점에 대한 지시가 있습니다. 그 과정에는 리더가 있고 그 리드에 따라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리더를 믿는, 그리고 상호 합의된 지향점에 따르는 사람들의 자발적인 협력에 의해 이루어 집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리더의 아이디어가 성공이었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지향점을 포기했던 첫 번째 사람이었습니다. 그 지향점이 우리 모두를 신체적, 정신적으로 한계에 이르게 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지금은 매우 특별한 삶을 살고 있는 이유입니다. 나는 결과를 달성하는 것을 방해하는 불필요한 모든 것을 제거했습니다. 나는 목표를 위한, 거의 금욕적인 삶을 삽니다. 그리고 나와 뜻을 함께 하는 사람들은 남았고, 그것을 원치 않는 사람들은 떠났습니다.

-무용수들의 역할이 매우 어렵습니다. 특히 안나의 역할. 몸으로 표현하기 불가능할 것 같은 것을 요구합니다. 어떤 시스템이 있습니까?

=창작에 어떤 시스템은 없고 만들기 원치도 않습니다. 어쩌면 나 대신 누군가가 할 수도 있겠죠. 우리는 매일 열심히 안무적 창조를 하고 그 실현은 우리에게 큰 결과를 가져옵니다. 당신이 매일 스케일을 연습하면 당신의 손가락은 점차 자유롭게 키보드를 날아다닙니다. 무용수가 안무(움직임)를 이해하고 느끼면 그의 몸은 점차 가장 어려운 테크닉이라도 자기 몸에 익숙할 수 있게 됩니다. 무엇보다 이런 무용수들은 연극적인 해석을 할 수 있습니다. 나의 모든 무용수들이 눈부신 테크닉뿐 만 아니라, 연극적인 재능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동안 많은 나라 많은 도시에서 공연을 했다. 당신이 한국에서 공연했을 때 만났던 한국 관객들의 느낌은?

=한국 관객들은 매우 감성적이고 지적입니다. 나의 작품이 올려지는 곳에 있을 때 기분이 좋고 나의 작품을 잘 이해하는 무용 전문가들이 모이는 곳이 좋습니다.

-이번 한국에 왔을 때 하고 싶은 것이나, 꼭 먹고 싶은 음식이 있나요?

=일반적으로 건강에 좋고 낮은 칼로리의 음식을 좋아하고 한국에서는 김치를 좋아합니다.

-앞으로 한국에 꼭 소개하고 싶은 당신의 작품은?

=당연히 나의 최근 작품인 <오네긴>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3월3일에 오픈 4월 말까지 공연하고 미국 투어를 갑니다. 한국 관객들도 이 작품을 좋아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끝으로 오는 3월 당신의 작품을 기다리고 있는 한국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젊은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오랫동안 젊은이들과 일해 왔으니까요. 그들에게 자신 안으로 깊이 들어가 스스로를 파악하기 위해 멈추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자신의 목적이 무엇인지 느끼고, 무엇을 위해 태어났는지 알기 위해서 말입니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미션을 갖고 태어났습니다. 모든 사람이 이것을 생각해 볼 시간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자신의 미션을 달성하기 위해 이런 것들을 이해하는 게 중요합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행복’이라 부르는 것을 달성할 수 있습니다.

내 삶의 많은 것이 나 자신에게 달려있기 때문에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사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당신이 누군가 탓해야 한다면 자신을 탓하십시오. 정부나 이웃에게 이유를 돌리거나 다른 사람을 질투하지 마십시오. 중요한 것은 절대 다른 사람을 질투하지 않는 것입니다. 일하십시오. 인생 전체를 살아가십시오. 그것이 전부입니다.  

09. 03. 05. 

P.S. 인터뷰에서 내게 인상적인 것은 두 가지다. 먼저 카레닌에 대한 에이프만의 옹호. "제 견해로 남편 카레닌은 비극적인 인물입니다. 그가 왜 그렇게 나쁜 방식으로 취급되어야 합니까? 그는 아내를 사랑하고, 결국 가족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평범한 남자입니다. 이러한 열정이 바로 그의 재앙이었습니다." 카레닌을 열정을 가진 인물이자 '비극적인 인물'로 보는 견해를 나는 따로 접해보지 못했다. 그의 발레에서 왜 카레닌에게 그토록 많은 비중이 두어지는지 이해할 만하다.    

그리고 두번째는 '서프라이즈'. 그의 신작 <오네긴>에 관한 얘기다. "당연히 나의 최근 작품인 <오네긴>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3월3일에 오픈 4월 말까지 공연하고 미국 투어를 갑니다. 한국 관객들도 이 작품을 좋아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오호, 내가 가장 보고 싶은 발레 작품이 하나 생겼다. 내년에는 우리도 볼 수 있을까? 참고로, 에이프만 발레단의 리허설 장면은 http://www.youtube.com/watch?v=pVTjdr724Ac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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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보리스 에이프만의 차이코프스키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09-09-07 15:14 
    한국을 자주 찾는 러시아의 안무가 보리스 에이프만의 발레 <차이코프스키>의 공연을 위해 주연 발레리노와 함께 내한했다는 소식이다. 인터뷰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연합뉴스(09. 09. 07) <인터뷰> 안무가 에이프만ㆍ발레리노 말라코프 "한국 무용수들은 정신적인 면에서 차이콥스키의 음악과 통하는 면이 많은 것 같습니다."(에이프만) "일본에서는 90번 넘게 공연했는데, 한국은 이번이 처음이에요. 한국에 대한 여러
 
 
하이드 2009-03-06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엘지 티켓 오픈할때 방심했더니, 벌써 코앞이군요. 3일만 하는거라 좋은 자리가 남았을지 모르겠습니다. 로쟈님 소개해주신 덕에 오랜만에 공연나들이 하게되었네요. ^^

로쟈 2009-03-06 22:37   좋아요 0 | URL
며칠전까지는 자리가 좀 있던데요.^^

하이드 2009-03-06 23:47   좋아요 0 | URL
2007년 왔을때는 그 해 티켓 오픈하자마자 공연 3개를 모조리 가장 먼저 하는 바람에, 정말 좋은 자리로 예매 했었는데 이번엔 좀 많이 늦었죠.

그래도 늦게 한 것 치고는 꽤 좋은 자리에 예매했습니다. ^^ 가격도 너무 착하네요.

비로그인 2009-03-06 0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녀는 남자를 잃은 상실로 인해 죽은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악마 같은 세상의 창조물로 다시 태어난 한 여성의 비극입니다." 인터뷰 기사가 여러군데 좀 이상하지만 이것은 유독 그렇군요. 사회가 안나 카레니나를 정죄할 권리가 없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면 모르지만요. 이 소설이 성경을 인용(로마서 12:19)하고 시작하지 않습니까?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라는 구절이지요. 나보코프가 이 구절에 기대어 해설한 바에 의하면, 사회도 안나를 비판하고 정죄할 아무런 권리가 없지만, 안나도 복수의 자살을 함으로써 브론스키에게 복수할 아무런 권리가 없다는 메시지가 있지요.

"제 견해로 남편 카레닌은 비극적인 인물입니다. 그가 왜 그렇게 나쁜 방식으로 취급되어야 합니까? 그는 아내를 사랑하고, 결국 가족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평범한 남자입니다." 글쎄... 알렉세이 카레닌이 "비극적"이고 "노력하는 평범한 남자"라... 그럴지도 모르지만 이것이 카레닌의 위선에 대한 면죄부가 되지는 않겠죠? Pavear & Volokhonsky 부부의 번역(위의 영역본에서 제일 왼쪽)을 읽으면서 알렉세이 카레닌의 위선과 교묘한 심리가 혐오스럽더군요.

독자마다 나름 달리 읽을 수도 있음을 충분히 인식하고 인정하면서도 간혹 제가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일부 작품들에 대해서는 한 마디 하지 않을 수 없어 그냥 넘어가려다가 에이프만의 말에 - 어쩌면 좀 이상한 번역(?)에 - 토를 약간 달아봅니다.^^;

로쟈 2009-03-06 22:37   좋아요 0 | URL
러시아어 원문을 보고 싶네요. 아니 영어로 인터뷰를 했는지도 모르겠군요...

urblue 2009-03-06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써 예매해뒀습니다. 지금은 안나 까레니나를 다시 읽고 있는 중이구요. 대학 때 읽었지만, 그때는 톨스토이 작품은 좀 지루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다시 보니 아주 재밌네요. 문제는 좀처럼 속도가 나지는 않는다는 겁니다만. ^^;
존 크랑코의 <오네긴>은 9월에 공연이 있습니다. 내년엔 에이프만의 <오네긴>도 왔으면 좋겠네요.

로쟈 2009-03-06 22:38   좋아요 0 | URL
네, <오네긴>을 같이 기다려보지요.^^

anthony 2009-03-06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완전 기대중이에요-
저번에 '차이코프스키'가 최고의 무용 공연이었던지라ㅠㅠ

로쟈 2009-03-07 13:32   좋아요 0 | URL
^^
 

밀턴의 <실낙원>을 읽기 위한 첫강의가 있었다. 밀턴의 생애뿐만 아니라 그가 살았던 17세기 영국의 정치-사회사에 대한 조감도 필요했지만 아직은 입에 설었다. 아무려나 시간은 흘러갈 것이고, 한달 후에는 <실낙원>을 완독한 소감도 적을 수 있을 것이다. 고전에 대한 강의를 하려니까 떠올리게 된 글은 '클래식'을 주제로 한 사보에 실은 것이다. 지면에는 약간 축약된 글이 실릴 터인데, 여기에는 초고를 옮겨놓는다. 글의 일부는 예전에 적은 '클래식이란 무엇인가'(http://blog.aladin.co.kr/mramor/1985806)에서 가져왔다.   

클래식(Classic)이란 무엇인가? 서양의 말이나 개념이 국내에 수용되면서 의미의 변형과 굴절이 일어나는 경우가 드물지 않은데, ‘클래식’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때문에 한국어에서 ‘클래식’이란 말은 이중적이다. 영어사전에서 ‘Classic’은 명사일 분야를 막론하고 ‘일류 작가’나 ‘걸작’을 가리키는 것이 첫 번째 뜻이고,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 작가와 작품을 가리키는 것이 두 번째 뜻이다. 사실은 첫 번째 뜻이 두 번째 뜻에서 파생되어 나왔을 것이다. 서양에서 고대 그리스와 로마시대는 문화사의 전범이 되는 시기이자 가장 빼어난 시대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똑같이 ‘클래식’으로 옮기지만 복수형 어미를 취한(하지만 단수로 취급하는) ‘Classics’는 보다 한정적으로 그리스․ 로마의 ‘고전’과 이를 연구하는 ‘고전학’을 뜻한다.  

 

한편, 이런 ‘본래적’ 의미와는 다르게 국어사전에서 ‘클래식’은 ‘서양의 고전음악’으로 정의된다. ‘Classic’이 ‘클래식’으로 음역(音譯)되면서 의미의 축소가 일어난 것이다. 이러한 언어 현실을 인정하자면 우리말에서 ‘클래식’은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고 해야겠다. 즉, 좁은 의미에서의 클래식은 고전음악을 가리키며, 넓은 의미의 클래식은 ‘고전(古典)’ 일반을 가리킨다. 이 넓은 의미에서의 클래식이 이 글의 테마다. 그래서 ‘클래식이란 무엇인가’는, 다시 ‘고전이란 무엇인가’라고 바꿔 물어도 좋겠다.   

이탈리아의 소설가 이탈로 칼비노는 ‘왜 고전을 읽는가(Why read the classics?)’란 질문을 던지면서 고전을 이렇게 정의했다(여기서 칼비노가 말하는 고전은 ‘고전 문학작품’을 뜻한다). “고전이란, 사람들이 보통 ‘나는 ……를 다시 읽고 있어.’라고 말하지, ‘나는 지금 ……를 읽고 있어.’라고는 결코 이야기하지 않는 책이다.” 이 정의에 덧붙여 칼비노는 “동사 ‘읽다’ 앞에 붙은 ‘다시’라는 말은 유명 저작을 아직 읽지 않았음을 부끄러워하는 사람들의 궁색한 위선을 드러낸다.”고 꼬집었다. 그가 말하는 ‘위선’은 흔히 고전을 “너무도 유명하지만 아무도 안 읽은 책”이라고 부르는 것과도 상응하는 것이겠다. 모두들 읽었을 거라고 생각하기에 감히 ‘안 읽었다’고 말할 수 없는 책, 그래서 ‘지금 읽고 있어’가 아니라 ‘다시 읽고 있어’라고 말하는 책이 소위 고전이다. 하지만 칼비노의 정의는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도 합당한 정의다. 고전은 한번 읽고 마는 책이 아니라 다시 읽는 책이고 반복해서 읽는 책이기에 그렇다. 왜 그런가?  

런던에 있는 대영박물관에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유물 전시실이 마련돼 있다. 선사 시대의 그리스에서부터 기원전 5세기경의 그리스, 바세이 신전, 파르테논 신전 조각, 헬레니즘 시대의 그리스, 로마 미술품 등이 15개의 전시실이 나뉘어 배치돼 있으며 요즘은 온라인 투어도 가능하다. 박물관 관람이 대개 그렇듯이 이런 유물들을 들여다보자면 자연스레 이 고대인들과 현재 우리 자신들 사이의 ‘간격’을 생각해보게 된다. 즉, 박물관에서 접할 수 있는 고대 세계의 문학․언어․문화․사고방식이 현재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며, 우리는 이것을 어떤 식으로 읽어낼 수 있을까란 물음을 던지게 되는 것이다. 한 ‘클래식’ 입문서의 저자들은 이러한 물음 앞에서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건축물․조각․도기․그림 등은 “물질적인 유물 이상의 것”이 된다고 말한다. 옛것(古)이지만 현재를 되새김해보도록 해주는 것, 그것이 클래식이고 고전(古典)이다. 따라서 고전을 읽는 것은 ‘그들의 문화’를 읽는 것이 아니라 시간적 간격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문화’에 ‘우리의 문화’를 견주는 것이며, ‘우리의 문화’ 속에 아직 숨 쉬고 있는 그들의 ‘살아있는 유산’을 인지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클래식 속에는 어떤 의미가 무엇이 새겨져 있으며 무엇이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일까? 다시 클래식이란 말의 어원으로 돌아가 보도록 한다. 일본의 인문학자 이마미치 도모노부 교수는 ‘클래식을 공부한다’는 의미가 결국은 ‘클래식에서 배운다’는 뜻이라면서 이 말의 라틴어 어원을 이렇게 풀어준다. 곧 ‘클래식’은 라틴어 ‘클라시쿠스(classicus)’에서 유래했는데 이 말은 형용사이며 처음부터 ‘고전적’이라는 의미가 있었던 건 아니다. 클라시쿠스는 사실 ‘함대(艦隊)’라는 의미를 가진 ‘클라시스(classis)’라는 명사에서 파생된 형용사이다. 함대라는 말은 군함이 적어도 두세 척 이상은 있다는 뜻이다. 클라시스는 ‘군함의 집합체’라는 의미였다. ‘클라시쿠스’라는 형용사는 로마가 국가적 위기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국가를 위해 군함을 그것도 한 척이 아니라 함대(클라시스)를 기부할 수 있는 부호(富豪)를 뜻하는 말로 국가에 도움을 주는 사람을 가리켰다. 다시 말해서 전쟁과 같은 긴급한 어려움에 처한 국가에 큰 도움을 주는 재력가를 가리키는 말이겠다.   

이 ‘클라시쿠스’와 ‘클래식’은 어떤 관계인가? 이건 유비적 관계다. 국가적 위기에 함대를 기부할 수 있는 상황을 개인의 차원에서 생각해보면, 인생의 위기에 당면했을 때 정신적인 힘을 주는 책이나 회화, 음악, 연극 등을 통칭하여 ‘클래식’'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고, 이마미치 교수에 따르면 중세의 비교적 이른 시대, 즉 교부시대부터 그러한 의미로 클래식이란 말이 쓰이기 시작했다. 비유컨대, 위대한 고전은 거대한 ‘항모 선단’쯤 되는 것이다. 더불어 ‘위기’에 직면하고 있지 않다면 ‘고전’은 ‘쇳덩이’나 ‘종이더미’ 이상의 적극적인 의미를 갖기 어렵겠다. 이 클래식이란 말을 동아시아문화권에서는 ‘고전(古典)’이라 옮긴 것인데, 이것은 ‘오래 전부터 소중하게 여겨온 서적’이란 뜻이다. 여기서 ‘典’이란 글자는 상형문자로 다리가 달린 책상 위에 옛 책의 형태인 두루마리를 소중히 올려놓은 모양새를 의미하며, 읽지 않고 쌓아두기만 하는 것이 늘 열심히 읽는다는 뜻이라 한다.  

물론 이 ‘고전’이란 말에는 ‘위기적 상황에서 힘이 되어 준다’는 클래식의 적극적인 어원적 의미는 가미돼 있지 않다. 그리고 ‘고전음악’을 뜻하면서 아울러 ‘고급’이나 ‘걸작’ ‘명품’을 뜻하는 우리말 ‘클래식’에도 그러한 어원적 의미는 결여돼 있다. 지금 전 세계적인 경제 위기와 불황에 처하여 한갓 ‘고전 나부랭이’를 들먹이는 것은 매우 한가한 노릇이 아닌가라고 혹 생각하는 이가 있다면 그는 클래식이 갖는 본래적 의미를 제대로 간수하지 못하거나 망각한 것이다. 뒤집어 생각하면, 이러한 위기적 상황에서 막강한 정신적 힘이 되어주는 것이 바로 클래식이기 때문이다. 만약 어떤 클래식이 ‘나’에게는 아무런 용기도 지혜도 주지 못하며 오히려 힘만 빠지게 한다면 그것은 ‘클래식’이 아니다. 적어도 ‘나’에겐 클래식으로서 자격 미달이다. 그러니 억지로 클래식을 읽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클래식이 역사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힘을 불어넣어준 작품들을 뜻한다면, 그런 맥락에서 ‘나의 클래식’, ‘나만의 클래식’ 목록도 만들어질 수 있다. ‘나’에게 살아가는 힘이 되어주는 것, 그것이 ‘나만의 클래식’이다.    

물론 클래식이 불어넣어주는 삶의 희망이 단지 ‘생존’만을 의미해서는 곤란할 것이다. 우리가 고전을 읽으며 고전에서 배워야 하는 삶은 당당한 삶이고 기품 있는 삶이다. 삶의 기품은 부유한 이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다시 라틴어의 어원으로 거슬러 올라가자면, 국가가 위기에 직면했을 때, 자기 자식(프롤레스)밖에는 내놓을 게 없는 사람 ‘프롤레타리우스(proletarius)’라고 불렀다 한다. 즉 ‘클라시쿠스’가 재산이 있어서 국가를 위해 함대를 기부할 수 있는 부유층을 가리킨데 반해, ‘프롤레타리우스’는 오직 자기 자식을 내놓는 것밖에 할 수 없는 가난한 사람을 의미했다. 한국어의 말장난을 갖다 쓰자면 ‘클라시쿠스’는 ‘맨션계급’이고 ‘프롤레타리우스’는 ‘맨손계급’이라고 할 수 있을까?  

중요한 것은 클래식의 가치와 효용이 이 두 계급에 모두 가 닿는다는 점이다. 즉 클래식은 ‘고귀한 자’도 읽어야 하고 ‘나약한 자’도 읽어야 한다. ‘고귀한 자’는 고전을 통해서 자신의 의무를 상기할 필요가 있고 ‘나약한 자’는 자신의 처지를 극복할 용기를 얻을 필요가 있다. ‘함대’를 기부할 정도가 못되는 ‘고귀한 자’는 ‘고귀한 척하는 자’일 따름이고, 형편 때문에 고전을 읽을 여유가 없다고 말하는 ‘나약한 자’는 ‘나약함에서 벗어나지 못할 자’이다. 이제 당신에게 클래식이란 무엇인가를 물어야 할 차례다. 

09. 03.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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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우리에게 고전이란 무엇인가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09-05-31 10:08 
    '우리에게 고전이란 무엇인가'는 얼마전에 출간된 <고전의 미래>(길, 2009)의 부제다. 저자는 이탈리아의 고고학자이자 고전학자인 살바토레 세티스. 200쪽 남짓하는 분량이 너무 짧아서 관심에서 제쳐놓고 있었는데, 책을 번역한 김운찬 교수의 소개글이 있기에 일단 스크랩해놓는다. 고전에 대한 나의 생각은 <로쟈의 인문학 서재>(산책자, 2009)에도 들어가 있는 '당신에게 클래식이란 무엇
 
 
2009-03-05 18: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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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05 23: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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