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젝의 <시차적 관점>(마티, 2009)이 출간된 김에 '지젝의 주저 읽기' 리스트를 만들어둔다. <시차적 관점>의 출간을 앞둔 시기에 그가 자신의 '주저'라고 꼽은 책은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1989) <부정적인 것과 함께 머물기>(1993) <까다로운 주체>(1999)를 포함한 네 권이었다. 모두가 국내에 소개돼 있으므로 바야흐로 읽어주기만 하면 되겠다. 읽기로 마음 먹으면 여름까지는 풍성한 읽을 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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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차적 관점- 현대 철학이 처한 교착 상태를 돌파하려는 지젝의 도전
슬라보예 지젝 지음, 김서영 옮김 / 마티 / 2009년 3월
37,000원 → 33,300원(10%할인) / 마일리지 1,8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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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arallax View (Paperback)
슬라보예 지젝 지음 / Mit Pr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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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주문하면 "7월 31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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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다로운 주체- 정치적 존재론의 부재하는 중심
슬라보예 지젝 지음, 이성민 옮김 / 비(도서출판b) / 2005년 4월
28,000원 → 25,200원(10%할인) / 마일리지 1,4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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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icklish Subject (Paperback)- The Absent Centre of Political Ontology
Zizek, Slavoj / Verso Books / 2000년 5월
34,250원 → 28,080원(18%할인) / 마일리지 1,41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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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슴츠레 2009-03-29 18:03   좋아요 0 | URL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은 2판이 나와있군요. 지젝 스스로가 몇몇 부분은 비판했던 책이니만큼 어떻게 바뀌어 있을지 궁금합니다. 큰 수정없이 표지만 바꾸고 서문만 덧대서 그대로 나왔을런지? 한국에도 2판이 번역되어서 나오면 좋으련만...요원한 일이겠죠?

로쟈 2009-03-29 18:21   좋아요 0 | URL
짐작엔 서문만 다시 썼을 듯싶은데요(원서의 편집 미스는 교정될 수 있겠지만). 어차피 한국어판이 절판된 마당인지라 2판의 번역판이 다시 나오면 좋겠어요. 제목도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이라고 바로 잡아서...

[해이] 2009-03-29 18:19   좋아요 0 | URL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은 도대체 언제 재판이 나올까요....

로쟈 2009-03-29 18:22   좋아요 0 | URL
이게 안 팔리는 책은 아니니까 다시 나오겠지요. 몇몇 오류를 바로 잡아서 빨리 나오면 좋겠습니다...
 

'이주의 문학서'를 꼽는 걸로 새로 나온 책들에 대한 '눈팅'을 마무리할까 한다. 샨사나 조이스 캐롤 오츠 같은 저명한 작가들의 신작들이 출간됐지만 한 권만 고르라고 한다면 아라빈드 아디가의 <화이트 타이거>(베가북스, 2009)다. 작년 부커상 수상작이라고 하니까 작품성은 이미 공인받은 터이고(인도 출신 작가로는 살만 루시디, 아룬다티 로이, 키란 데사이에 이은 네 번째 수상자라 한다), 요즘 관심의 한 축이 인도쪽으로 쏠리고 있는 탓에 눈길이 안 갈 수 없다. 게다가 '날 것 그대로의 인도'를 보여준다고 하는 점도 마음에 든다(비카스 스와루프의 <슬럼독 밀리어네어>를 바로 연상케 한다). 일단은 관련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경향신문(09. 03. 28) 부조리와 비극, 날 것 그대로의 인도 

“절대로 갠지스강에 들어가면 안됩니다. 똥이며, 지푸라기며, 물에 잠긴 시체의 일부며, 썩은 물소 고기며, 일곱 가지 산업폐기물 따위를 입안 가득히 담고 싶지 않다면 말입니다!”

인도에 대한 낭만과 환상을 싹 걷어낸 인도 작가 아라빈드 아디가(35)의 장편소설이다. 가난과 차별, 악취와 오물, 살인과 부패로 가득한 소설은 ‘진짜 인도’에 관한 이야기다. 소설은 비천한 계급 출신으로 자수성가한 기업가가 된 주인공 발람이 인도를 방문하는 중국의 원자바오 총리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을 통해 인도사회의 위선과 부조리를 거침없는 입담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뼈마디가 앙상하고 온몸에 가난이 새긴 흉터가 가득했던 발람의 아버지는 아들만이라도 다른 삶을 살게 하기 위해 학교를 보내지만 결국 발람은 학교에서 끌려나와 미래라고는 없는 노예의 삶을 강요받는다. 우여곡절 끝에 델리의 부잣집에 운전기사 겸 하인으로 들어간 발람은 주인 아쇽을 존경하고 충성하지만 주인은 결국 아내가 저지른 자동차 사고를 하인인 그에게 덮어씌우려 한다.

주인에 대한 애증 속에 갈등하던 발람은 결국 주인을 죽임으로써 종살이로부터 탈출을 기도한다. 그리고 ‘기술 및 아웃소싱의 세계적 중심지’ 방갈로르로 숨어들어 반짝이는 샹들리에가 달린 사무실과 은색 랩톱을 가진 기업가가 된다. 발람이 털어놓는 ‘살인의 추억’은 속죄를 위해서가 아니다. 발람은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옹호하거나 방어하지 않지만 “인간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위해 단 한 번의 살인이 필요했다”고 또렷이 말한다.

“저는 그날 밤 델리에서 주인의 목을 따버린 것이 실수였노라고 말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절대로. 저는 말할 것입니다. 단 하루라도, 단 한 시간이라도, 아니, 단 일 분이라도, 하인으로 살지 않는다는 게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된 것은 참으로 가치 있는 일이었다고.”

불편한 진실로 가득한 소설이 무겁지 않은 것은 걸쭉한 입담과 블랙유머로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작가의 필력과 작가가 전하려는 희망적 메시지 때문이다. 소설은 인간의 자유가 얼마나 중요한지, 운명의 굴레를 벗어나려는 노력의 소중함을 역설하며 현재진행형인 인도사회의 부조리와 비극을 끊어내려 한다. “인도의 젊은이들이여, 그대 혁명의 책은 바로 그대들의 뱃속에 들어 있도다. 그것을 배출해내서 읽으라!” 2008년 부커상 수상작이다.(이영경기자) 

09. 03. 28. 

 

P.S. 이번주 신간 중에는 샤시 타루르의 <네루 평전>(탐구사, 2009)도 포함돼 있다. 한겨레의 짧은 책 소개는 이렇다  

인도. 한국인들에게는 ‘종교·명상·카스트의 나라’다. 하지만 국제정치의 영역에서 인도는 ‘세계 최대의 민주주의 국가’로 불린다. 두 인식 사이의 골은 깊고 넓다. 이를 메우려면 인도의 첫 총리를 지낸 자와할랄 네루에 대한 이해가 절실하다. 그는 간디와 함께 ‘현대 인도’를 빚어낸 두 창조자이기 때문이다. <네루 평전>(원제 Nehru-The Invention of India)의 지은이는 말한다. “네루가 인도에 끼친 영향은 너무 커서 주기적으로 재점검해 봐야 할 정도다. 오늘의 인도는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모두 네루라는 한 사람에게 크게 빚지고 있다.”

왜 그런가? 인도라는 거대한 집을 오래도록 떠받쳐온 네 개의 기둥, 곧 ‘민주주의 제도+세속주의+사회주의 경제+비동맹 외교’를 세운 이가 바로 네루라는 게 지은이의 평가다. ‘카스트의 나라’ 인도가 오늘날 국제정치 무대에서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면서도 ‘다원적 민주 국가’로 불릴 수 있는 기반을 닦았다는 것이다. 네루는 최상층 힌두 브라만 계급 출신이었지만 농민과 일체감을 느꼈고, 종교를 중시하는 종파주의는 극단적으로 멀리했다. 영국의 식민지배에 맞서다 9번 체포되고 10년을 감옥에서 지냈다. 격정적이고 급진적인 성품이었지만, 인종과 언어가 복잡한 인도의 통합을 위해 필요한 중도적 리더십을 지향했다. 네루는 이렇게 ‘자기’를 눅이며 무엇을 꿈꿨을까? “바라건대, 스스로를 다스릴 수 있는 4억의 인민입니다.” 네루의 꿈은 아직 현실이 아니다. 네루 사후 인도도 빠르게 달라지고 있다. 그래도 인도의 지식인들은 ‘네루’를 쉼 없이 재검토한다.(이제훈기자) 

한데, 얼마전에 읽은 <거꾸로 가는 나라들>(난장이, 2009)에서 저자 판카즈 미시라의 네루에 대한 평가는 박한 편이었다. 첫 여성 총리를 지낸 그의 딸 인디라 간디에 대한 평가는 더욱 신랄했고. 네루에 대한 상반된 역사적 평가가 있다는 점 정도는 알아두어야겠다. 여하튼 이 복잡한, 복잡해보이는 나라를 이해하기 위한 길잡이로 몇 권의 책을 꼽아둔다. 저자가 모두 인도인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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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9-03-28 23:20   좋아요 0 | URL
소설과 함께 인도인이 보는 인도는 흥미롭네요. 특히 네루 평전요

로쟈 2009-03-29 08:28   좋아요 0 | URL
네루나 간디에 대해선 세계위인전으로만 읽는 터라 우리가 약간의 환상도 갖고 있는 듯해요...

노이에자이트 2009-03-29 17:14   좋아요 0 | URL
인도가 티벳 분쟁때 달라이라마에 동조하고 중국과 국경분쟁도 하는 등 중국과 사이가 안 좋은 시절엔 중국 공산당에서 네루를 완전히 악질로 취급하더군요.

로쟈 2009-03-29 23:26   좋아요 0 | URL
언젠가 둘이 전쟁도 했지요. 러시아까지 포함해서 참, 이해하기 어려운 대국 트리오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09-03-30 23:12   좋아요 0 | URL
예.그때 소련이 인도 편들었는데 인도가 참패했지요.중소 분쟁이 한참 심할 때였지요.제3세계의 맹주는 누구냐를 두고 인도,중국,인도네시아가 3파전을 벌였던 때입니다.
 

이번주에 주목을 끄는 철학서는 장 살렘의 <고대 원자론>(난장, 2009)과 한자경 교수의 <헤겔 정신현상학의 이해>(서광사, 2009)이다. 후자는 국내 필자가 쓴 <정신현상학> 해설서 가운데 가장 상세한 듯싶다. 하지만 별다른 소개기사는 눈에 띄지 않기에 <고대 원자론>에 관한 기사만 옮겨놓는다.  

   

한겨레(09. 03. 28) 2500년 전 원자론, 인류에 쾌락을 선사하다

<고대 원자론>은 ‘원자론’이라는 이름으로 묶이는 고대 그리스·로마의 세 철학자 데모크리토스(기원전 460년경~360년경·사진), 에피쿠로스(기원전 342~271년), 루크레티우스(기원전 94년경~55년경)의 사유 세계를 해설한 책이다. 고대철학 전문 연구자인 장 살렘 프랑스 파리1대학 교수가 이 분야에 관심이 있는 일반인용으로 썼으며, 그 밑에서 에피쿠로스 철학으로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하고 있는 양창렬씨가 우리말로 옮겼다.   

이 원자론자들이 오늘날 우리에게 지닌 의미는 이 책의 부제 ‘쾌락의 원리로서의 유물론’에 드러나 있다. 지은이는 이 세 사람이 유물론적 세계관을 정초했으며, 거기에 입각해 ‘쾌락의 윤리학’을 설파했다고 말한다. 이 세 원자론자, 그중에서도 특히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의 원자론이 현대 철학의 관심사가 된 것은 젊은 카를 마르크스의 연구에 힘입은 바 크다. 22살의 마르크스는 박사학위 논문으로 이 두 사람의 사상을 비교한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 자연철학의 차이>를 썼다. 마르크스는 이 논문을 통해 헤겔 관념론의 자장 안에서 커가던 자신의 사유를 일신할 계기를 마련했다. 일종의 유물론적 도약의 발판을 찾아낸 셈이다.

장 살렘의 <고대 원자론>은 마르크스의 이 논문을 서술의 배경 또는 발단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마르크스와는 다른 방식으로 이 고대 유물론자들의 사상을 해석한다. 마르크스가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를 극적으로 대립시켜 선배를 기각하고 후배의 편에 선다면, 살렘은 두 원자론자의 차이보다는 같음 쪽에 무게를 싣는다. 원자론이라는 큰 묶음 속에서 두 사람의 생각의 이어짐을 추적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에피쿠로스와 루크레티우스의 관계는 어떤가. 지은이는 에피쿠로스와 루크레티우스를 각각 장을 나눠 따로 설명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두 사람의 철학은 포개진다고 말한다. 에피쿠로스보다 200여년 뒤에 살았던 로마 시인 루크레티우스는 철두철미하게 에피쿠로스주의자였다. 그는 자신의 저작에서 에피쿠로스의 발자국을 그대로 좇았다. 루크레티우스의 의미는 에피쿠로스 철학의 탁월한 주석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에피쿠로스는 300편에 이르는 많은 저작을 남겼지만, 그 가운데 현존하는 것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따라서 그의 사상을 알려면 루크레티우스의 충실한 해설이 뒷받침돼야 한다. 지은이가 이 책에서 루크레티우스를 설명하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에피쿠로스 철학을 이해하려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가 공유하는 유물론적 세계관은 “전 우주는 물체와 허공으로 이루어져 있다”라는 명제로 집약된다. 우주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 그 내부는 물체로 채워져 있되, 물체가 운동할 수 있는 것은 허공이 있기 때문이다. 이때 물체는 더는 나눌 수 없는 미립자의 집합이다. 이 미립자, 곧 원자를 일종의 레고라 한다면, 이 세계는 그 레고들의 결합인 셈이다. 이 ‘레고랜드’에는 창조주나 절대자가 끼어들 틈이 없다. 그런 신적 존재 없이 이 세계는 스스로 작동하고 변화한다. 여기까지는 두 사람의 생각이 다르지 않다. 두 사람이 갈라지는 지점은 ‘원자의 운동’이다. 데모크리토스는 원자들이 무게를 지니고 있어서 빗방울처럼 위에서 아래로 같은 속도로 떨어진다고 말한다. 떨어지면서 충돌하고 되튀고 얽힌다.

그런데 같은 속도로 평행하게 떨어진다면 서로 충돌할 일이 없다. 이 모순을 해결하는 것이 에피쿠로스가 제안하는 ‘클리나멘’(편위)이다. 에피쿠로스는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원자들이 조금씩 수직에서 비껴나는 이탈 운동을 한다고 말한다. 이 이탈이 바로 편위다. 이 편위가 있기 때문에 원자들은 서로 충돌할 수 있고 일종의 ‘브라운 운동’을 할 수 있으며, 그 편위의 자유 운동 속에서 모임과 흩어짐을 통해 세상 만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런 원자론적 자연학에 기반해 윤리학이 펼쳐진다. 에피쿠로스에게 자연의 세계는 윤리의 세계와 친연성을 넘어 어떤 일치성이 있다. 자연의 클리나멘은 사유의 클리나멘으로 이어지며, 이 사유의 클리나멘에서 사유의 의지, 사유의 자유가 도출된다.

에피쿠로스의 철학은 흔히 ‘쾌락주의 철학’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는데, 그때의 쾌락주의는 ‘오늘을 즐겨라’(카르페 디엠) 식의 ‘안달하는 쾌락주의’와는 종류가 전혀 다르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에피쿠로스가 쾌락이야말로 최고선이라고 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쾌락은 욕망의 절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고통의 부재’에 가깝다. 에피쿠로스는 그런 쾌락을 두고 ‘아타락시아’(평정심)라고 했고, 아타락시아를 통해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그가 아테네 교외의 정원에 세운 학교(‘에피쿠로스의 정원’)에서 가르친 것은 아타락시아에 이르는 길이었다. 철학이란 “추론과 토론을 통해 행복한 삶을 얻어내는 활동”이었다. 에피쿠로스는 유물론적 세계관이 신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 없이, 다시 말해 죽음 이후에 대한 두려움 없이 삶을 지혜롭게 통찰해 행복에 이르는 길을 찾을 수 있게 해준다고 믿었다. 유물론이 쾌락의 원리, 행복의 원리가 되는 이유다.(고명섭 기자) 

09. 03.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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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이] 2009-03-28 21:23   좋아요 0 | URL
한자경씨의 책들은 참 재미있게 읽었었는데 ㅎㅎ 새 책을 내셨다니 너무 반갑네요~

로쟈 2009-03-28 22:20   좋아요 0 | URL
이 분이 칸트철학과 불교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두 번 받으셨죠. 저도 칸트에 관한 학위논문은 오래전에 읽은 기억이 납니다...
 

'이주의 과학서'는 영국의 여성 유전학자이자 방송인 앤 무어의 <브레인 섹스>(북스넛, 2009)다. 제목의 '섹스'란 말 때문에 아무리 '브레인'을 앞세워도 서점직원에게 찾아달라고 하기가 좀 멋쩍은, 그런 책이다. 남녀간의 성차가 이미 뇌의 구조와 기능에 각인돼 있다고 주장하는 책이니(남성 과학자라면 감히 주장하기 어렵겠다) 논란을 불러일으킬 만하다(성정체성이 그렇게 명확한 게 아니라고 주장하는 버틀러의 <젠더 트러블>과 비교해서 읽어봄 직하다). 한편으로 뇌과학 관련서는 하나의 트렌드라고 봐도 좋을 만큼 쏟아지고 있는데(전담 길잡이가 있었으면 싶다), 이주에는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인 에릭 캔델의 자서전 <기억을 찾아서>(랜덤하우스, 2009)도 챙겨놓을 만한 책이다. 알라딘에는 사회과학서로 분류돼 있는 <꿀벌 없는 세상, 결실 없는 가을>(에코리브르, 2009)는 내가 서평도서로 다룰 뻔한 책인데, 당장은 아니더라도 나중에 뭔가 적고 싶다(같이 참고할 책은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과 <자음과 모음>(2008년 가을호)에 실린 슬라보예 지젝의 기고문 '벌들과 새로운 냉전'이다). 이 책들에 대한 리뷰기사를 하나씩 스크랩해놓는다.    

한국일보(09. 03. 28) 남녀는 똑같다? 뇌 구조부터 다르다! 

"남자와 여자의 능력이 똑같다고? 우스운 소리 말라고 해. 남녀의 공통점은 인간이라는 것밖에 없어요. 엄연히 다르지."

회식에 함께한 여직원들 앞에서 한 남자 동료가 이런 얘기를 떠벌였다 치자. 십중팔구 그는 '남녀차별주의자'로 찍힐 것이고, 여직원들로부터 엄청난 '탄압'을 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영국 BBC 프로듀서이자 옥스퍼드대 유전학박사인 앤 무어 등이 지은 <브레인섹스>는 남녀의 재능이나 행동은 분명히 다르며, 다를 수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책이다. 주장의 근거는 뇌과학의 실증적 연구성과이다.

 

최근 100년간 남녀의 차이에 관한 주도적 설명은 '성별 역할기대에 맞춰진 사회화 과정에서 차이가 비롯된다'는 것이었다. 이런 설명의 이면에는 '일부러 차별을 만들려고만 하지 않는다면 남녀의 차이는 생기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은 남녀의 상이한 호르몬 과정이 어떻게 서로 다른 뇌를 형성하게 하고, 행동의 차이를 낳게 하는지를 실증적 연구사례를 통해 설명한다.

뇌과학 연구에 따르면 태아가 6주가 됐을 때 성이 나눠지며, 남녀의 뇌도 이때부터 달라지기 시작한다. 여자 태아의 뇌가 애초의 기본형대로 성장하는 반면, 남자 태아의 뇌는 생식기에서 왕성하게 분비되는 남성 호르몬에 노출되면서 격렬한 화학반응을 겪는다. 그 결과 암수 포유류의 뇌는 신경전달물질의 양과 신경세포의 연결, 세포 및 세포핵의 크기 등이 다르다는 것이 확인됐다.

발생 단계부터 달라지는 남녀의 뇌는 성장기를 거치면서 차이가 더욱 커져 행동과 인지, 반응 등에서 극명한 차이를 내게 된다. 공간지각능력이나 추상적 관계를 파악하는 데 남자가 우수한 반면, 여자는 언어능력이나 감각에 대한 반응도가 앞서는 것도 뇌의 생물학적 차이에서 기인한다는 것이 저자들의 주장이다.

저자들은 "지난 30~40여년 동안 여성들은 옆에 있는 남성만큼 뛰어난 사람이 될 수 있고 되어야 한다고 교육 받으면서 자랐다"며 "그 과정에서 여성들은 심각하면서도 불필요한 고통과 좌절과 실망을 겪어야만 했다"고 비판한다.(장인철기자)   

경향신문(09. 03. 28) 기억을 찾아 뇌속을 헤매다 

부스스한 머리에 흰색 가운을 입고 시약 냄새가 코를 찌르는 실험실에서 현미경에 코를 박고 있는 사내. 과학자의 전형적인 이미지다. 자연 이런 이미지로 정의되는 과학자들은 무척이나 건조해 보인다. 그러나 세계적인 생물학자 에릭 캔델(80)의 자서전인 이 책을 보면 끊임없이 가설을 세우고 이를 증명하기 위한 실험을 반복하는 과학자들 삶의 이면엔 도전과 경쟁, 논쟁과 성취가 가득차 있음을 알 수 있다.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이자 카블리 뇌과학연구소장인 캔델은 가장 단순한 뇌를 가진 바다달팽이를 이용해 기억이 세포 안에 저장되는 과정을 연구한 논문으로 2000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다.

대공황이 시작되던 1929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난 유대인 캔델. 9살에 나치에 의해 굴욕적이고 공포스러운 경험을 한 뒤 미국으로 건너오게 되는 과정의 서술로 시작되는 그의 삶에는 20세기에 진행된 뇌와 관련된 실험과 논쟁의 역사가 오롯이 담겨 있다. 



공포스러운 유년기의 경험 때문에 인간의 기억에 관심을 갖게 된 그는 의대에 진학했으며, 특히 인간의 정신과 의식에 대한 선구적 심리학자인 프로이트에 깊은 감명을 받아 정신과를 선택했다. 프로이트가 주창한 의식과 무의식의 메커니즘을 총체적으로 규명해 보겠다는 포부에서다. 하지만 그는 의대 상급반 시절 만난 신경생리학자인 해리 그런드페스트로부터 “정신을 이해하려면 뇌의 세포를 하나씩 관찰할 필요가 있다”는 말을 듣고 정신과 의사 대신 당시 새롭게 떠오르던 분자생물학의 세계에 발을 들여 놓는다. 

그는 전도유망한 생화학자로서 크고 작은 성취들을 이룩해 나갔다. 새로운 발견을 했을 땐 동료와 함께 뛸듯이 기뻐했고, 새로운 연구대상을 향해 돌진했다. 그의 성취를 시기한 옆방의 연구자가 갑자기 말문을 끊어버리는 일을 겪기도 했다. 밤낮 없이 실험에만 몰두하는 그를 향해 부인이 “당신 이런 식으론 더이상 안돼! 당신하고 일만 생각하잖아! 나와 아이들을 완전히 무시하면서 말이야!”라고 고함 치면서 부부관계에 심각한 위기를 맞기도 했다.

그가 매달렸던 주제는 ‘기억은 어떻게 만들어지며 신경체계의 각 부문은 어떤 역할을 담당하는가’였다. 이를 위해 그는 매우 단순한 뇌 구조를 가진 바다달팽이를 실험 대상으로 삼는 모험을 감행한다. 선배 과학자들은 그의 선택을 만류했는데 당시엔 단순한 동물에 대한 연구는 인간의 행동과 무관하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했다. 기억과 학습과정이 신경세포 안에서 어떻게 이뤄지는지 관찰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후 바다달팽이는 그의 평생 친구가 되었다. 일곱살짜리 딸이 그의 마흔살 생일을 맞아 ‘바다달팽이’란 제목의 시를 지어 선물할 정도였다.

노벨상 수상으로 세계 최고 과학자의 반열에 오른 그는 도전정신을 강조한다. “매번 새로운 시도는 불안을 불러왔지만 기운을 북돋기도 했다. 새롭고 근본적인 것을 시도하느라 몇 년을 잃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다 하고 있는 판에서 막힌 실험을 하는 것보다 낫다”는 것이다.(김재중기자)  

    

서울경제(09. 03. 28) 사라지는 꿀벌, 우리 생존 위협?

꿀벌들이 사라지고 있다. 언뜻 이 말을 들으면 '그래서 뭐?'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사실 꿀이라는 맛난 식품을 제공하는 꿀벌이 감히 우리의 생존을 위협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감지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꿀벌이 사라진다는 것은 우리가 꿀을 앞으로도 계속 먹을 수 있는가 하는 소박한 문제가 아니라, 수많은 과일과 작물들에게 화분매개(꽃가루 받이)를 해온 무보수 노동자들이 소멸한다는 사실 자체에 그 절박함이 있다.

음식과 환경의 연결고리를 탐구하는 저자는 꿀벌의 질병으로 알려진 '군집 붕괴 현상(Collony Collapse Disorder; CCD)'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CCD는 2006년 미국의 양봉가들이 처음 발견해, 2007년 원인 모를 꿀벌의 질병으로 미국에서 맹위를 떨쳤다. 뒤이어 유럽 등지에서도 같은 증상의 질병이 확인돼 '꿀벌실종(Bee lose)'으로 세계에 알려졌다.

 

미국의 꿀벌 실종 상황은 심각한 수준이다. 미국은 지난해 CCD로 총 보유 꿀벌의 수가 240만군 수준으로 감소됐는데, 같은 해 한국의 군집수가 200만군 이상으로 집계된 것과 비교하면 토지면적이 우리보다 50배나 큰 미국에 닥친 심각성을 이해할 수 있다.

마치 공기나 물과 같이 언제나 자연적으로 공급될 것 같은 꿀벌에 의한 화분매개는 이미 10여 년 전부터 공급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꿀벌 외에는 화분매개를 대신 해 줄 마땅한 대체 생물이 없는 상황에서 CCD는 양봉업만이 문제가 아닌 화분매개를 필요로 하는 거의 모든 작물, 즉 농업 전반에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게 됐으며, 현재도 그 피해를 키워가고 있다.

농업 전반에서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자 가장 큰 피해국인 미국은 미농무성(USDA)을 필두로 질병의 원인체 규명에 돌입하였으며, 곤충학자ㆍ세균학자ㆍ화학자ㆍ물리학자 등 전문가를 동원해 원인체 발견과 해결책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연구 결과로 전자파, 환경오염물질, 살충제 등 농약, IAPV(Israelli acute paralysis virus; 이스라엘 급성 마비병 바이러스) 등 변형 바이러스 들이 유력한 원인체로 제시됐으나, 정확한 CCD의 원인체는 아직 규명하지 못하고 있다.

저자는 꿀벌과 환경 전반에 걸친 풍부한 배경 지식과 뛰어난 필치로 양봉가들에 의해 CCD가 인식되는 과정을 사실적으로 서술하고, 재앙처럼 다가오는 새로운 질병에 원인도 모르고 대처 방법도 모르는 인간의 무력감을 무게 있게 다루고 있다. 또 많은 전문가들이 새로 출연한 질병을 제어하는 시발점이 되는 원인체 규명에 매진하는 과정과 연구결과를 정확한 근거를 들어 제시한다. 저자는 집중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결론을 보여주지 못하는 전문가 집단의 무능함을 양봉 현장과 건강한 자연환경의 목소리로 질타한다.

저자는 더 나아가 환경 저널리스트로서 거시 생태계의 흐름에 입각해 CCD가 꿀벌의 귀소 본능의 상실, 즉 방향 감각, 기억의 상실인 점을 주목한다. 또 살충제 등 폭 넓은 화학적 환경오염에 의한 스트레스, 거대 단일 작물재배에 의한 단순성 스트레스, 그리고 각종 꿀벌 병원체를 제어하기 위하여 끊임 없이 투여되는 약제들에 의한 스트레스 등을 그 원인으로 추론한다.

CCD의 연구에 큰 관심을 둔 과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책에서 많을 것을 배웠음을 고백하고, 작가의 뛰어난 직관적 추론에 경의를 표한다. 이 저서가 꿀벌 뿐 아니라 건강한 자연환경을 사랑하는 우리 모두에게 자연의 생태를 보다 심층적으로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윤병수 경기대학교 생명과학과 교수) 

09. 03.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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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흥미로운 책, &lt;브레인 섹스&gt;
    from 자기치유 : I am NOT such a person. 2009-03-28 17:59 
    브레인 섹스 카테고리 인문 지은이 앤 무어 (북스넛, 2009년) 상세보기 여행을 다녀왔더니 한국에 흥미로운 책이 한권 소개되었다. 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이 책은 '로쟈'의 소개에 따르면 '남성과 여성은 뇌 자체에 프로그래밍되어 있는 내용의 차이로 인해 다르다'라는 것. 개인적으로 상당히 신봉하고 있는 '남성과 여성의 차이는 사회화의 결과일 뿐이고, 일부 신체적 차이는 있을 수 있으나 상당부분 여전히 사회화로 인한 것'이라는 내용과..
 
 
2009-03-29 13: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3-29 13: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주중에 이 서재의 '즐찾'이 2000명을 넘어섰다. 작년의 목표치이긴 했으나 대략 이달쯤에 도달할 거라고 예상은 하고 있었다. '2000'이란 숫자는 1일 방문자 '1000'과 함께 이 서재(블로그)의 한계치라고 생각해오던 것이다(성장의 한계?). 현재의 여건에선 그 이상의 관심을 끌어모을 '동력'을 갖고 있지 않기에(내가 '전업 블로거'라면 사정은 다르겠지만). 다 아시겠지만 주로 언론 리뷰기사(스크랩)와 내가 쓴 잡문(주로 서평)이 이 서재의 단촐한 메뉴다. 특별히 재미있거나 심오한 '콘텐츠'를 제공하지 않음에도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찾아주었다. 감사한 일이면서 약간은 부담스러운 일이다. 책에 대한 정보와 지식을 공유하는 일은 즐거운 일이면서 내가 지향하는 일이지만 그런 정보/지식을 내가 원하는 만큼 생산해낼 수 있는 형편이 못 되어 유감스러운 적도 많다. 스크랩으로 많은 페이퍼를 채우는 일이 멋쩍기도 하고(하지만 그 많은 책을 어찌 다 읽는단 말인가?!). 아무튼 이런 것이 현재 '스코어'이고 짧게 적어본 '서재 주인'의 감상이다. 경영학을 공부한 바 없어서 앞으로 어떻게 서재 운영의 쇄신을 도모해야 할지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지속가능한 서재질'에 대해서는 고민을 좀 해볼 생각이다...   

'감상'은 그렇다 치고 '주업'으로 돌아오면, 새로 나온 관심도서들을 소개해온 처지에서 볼 때 이번주는 '최악'이다. 평소 기준에 따르면 다뤄야 할 책이 최소로 잡아도 10권은 되기 때문이다(평소의 2-3배다). 물론 한권만 고르라고 하면 개인적으론 지젝의 <시차적 관점>(마티, 2009)을 꼽을 수밖에 없다(아직 리뷰기사들이 뜨지 않고 있다). 어젯밤에 조금 읽어봤는데, 최소 두 달치의 '식량'은 확보한 듯싶어 부듯하다(가라타니 고진의 <트랜스크리틱>과 대결하는 대목이 일단 관심을 끈다. 이 책에 대한 고진의 서평 제목이 '시차적 관점'이었다). 그렇다고 다른 책들은 그냥 넘어가도 좋으냐고 하면 또 그렇지가 않다. 해서 내주까지 틈나는 대로 스크랩도 하고 코멘트도 달아볼 생각이다(사실 이런 일은 '조수'가 해주면 좋겠는데 '1인 블로그'인지라 1인 2역을 해야 한다).   

 

닥치는 대로 집어보자면 먼저 '결혼제도를 통해본 서구문화사'<진화하는 결혼>(작가정신, 2009)이 있다. 원서의 부제 '사랑은 어떻게 결혼을 정복했나(How Love Conquered Marriage)'가 이미 많은 걸 얘기해주는 책이다. 역사적으로 '사랑'(감정)이 결혼의 중요한 변수는 아니었지만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차츰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되기 시작했다는 것.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연애혼'이 '중매혼'의 전통을 넘어서기 시작한 것. 저자의 역사적 통찰은 이렇듯 감정(사랑)을 중요시한 결혼관이 필연적으로 결혼이란 제도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다는 데 이른다(어제 연예가 뉴스에 '가수 박진영 결혼 10년만에 이혼'이 뜨던데, 그런 식인 것. '애정'이 결혼생활에 절대적인 변수라면 애정의 변덕을 누가 말릴 수 있으랴). 결혼의 단꿈을 꾸고 있을 청춘들에게는 도움이 안될 듯싶지만 차츰 무뎌지는 감정과 타엽해야할 처지에 놓인 기혼자들은 한번 읽어볼 만한 책이겠다(내친 김에 <오르가슴의 과학>(어드북스, 2009) 같은 책에 눈길을 줄 수도 있겠다. 2006년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교 출판부에서 발행한 책으로 성적 현상을 과학적으로 접근하여 “근래에 없던 인간 섹슈얼리티의 걸작”이라는 극찬을 받은 화제작이라 한다). 

 

문화일보(09. 03. 27) 결혼의 조건에 ‘사랑’은 없었다

오늘날 결혼에서 가장 중요한 조건 또는 근거로 꼽히는 것은 ‘사랑’이다. 하지만 사랑이 언제부터 결혼의 전제조건이 됐을까. 과연 사랑이 결혼의 가장 중요한 근거이긴 한 걸까. 무엇보다도 결혼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이 모든 것에 답하는 책이다. (100여장이 넘는 주를 빼고서도) 500여장에 이르는 방대한 책은 인류의 여명기부터 고대, 중세, 근·현대에 이르는 긴 시기 동안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의 결혼과 관련된 각종 문헌과 통계자료, 연구결과를 취합, 분석하여 결혼을 둘러싼 다양한 해석과 역사를 펼쳐보인다. 



그럼 언제부터 ‘사랑을 기반으로 하는 결혼’이라는, 오늘날 우리들이 너무나 당연시하는 관념이 자리잡게 됐을까. 서구의 경우 19세기에 들어와서부터였다. 저자는 “결혼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그저 사랑하는 남녀가 만나 가정을 꾸리는 ‘낭만적인’ 일만은 결코 아니었다”며 “오랫동안 결혼은 정치적 거래이자 경제적 거래였는데 유력한 가문과의 사돈을 통한 동맹 맺기, 성별 분업, 재산 상속 등이 모두 결혼을 통해 이뤄졌다” 고 말한다.

이처럼 공적인 영역에 머물렀던 결혼이 사적인 영역으로 넘어오게 되는 전환점인 19세기는 결혼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하다. 이 시기는 결혼을 둘러싼 현재의 다양한 문제와 논의, 견해들이 이미 내포돼 있던 때이기도 하다. 미국의 독립전쟁과 1789년 프랑스혁명으로 인해 자유, 평등, 박애의 정신이 전파되자 결혼 역시 개인의 인권과 관계된 사적인 일로 정착됐다. 아울러 양성 평등이 화두로 떠오르면서 결혼은 남성과 여성이 좀 더 동등한 관계를 기반으로, 사랑 하에 이뤄져야 하는 일로 여겨졌다. 과거 결혼의 부산물 정도로 여겨졌던 사랑이 결혼을 위해서 없어서는 안될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됐던 것이다. 그 이전, 그러니까 18세기 말까지 전 세계 대부분의 사회에서 결혼은 경제적인 면과 정치적인 면에서 너무나 중요한 제도였기 때문에 당사자 두 사람의 자유로운 선택에만 맡겨둘 수는 없는 문제였다. 특히 결혼 당사자들이 사랑이라는 ‘비이성적이고 덧없는 것’을 기반으로 결정 내리려 하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

저자에 따르면, 인류 역사상 대부분의 기간 동안 결혼의 1차적인 목표는 부부와 그 자식들의 욕구, 즉 개인적인 욕구를 채워주는 것이 아니었다. 결혼은 평생의 반려자를 구하고 사랑하는 자식을 기르기 위한 일인 동시에, 좋은 가문과 사돈을 맺고 가족의 노동력을 증가시키는 일이기도 했다. 전통적으로 결혼은 성별과 연령을 기준으로 노동을 분배하고 권력을 분할하는 역할을 해왔다. 저자는 “물론 과거 수천년 동안에도 사람들은 사랑에 빠졌다. 심지어 때로는 배우자와 사랑에 빠지는 사람도 있었다”면서도 “하지만 결혼은 근본적으로 사랑과 관계가 없었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18세기에 시장경제가 전파되고 계몽주의가 등장하면서 커다란 변화들이 급속히 이뤄졌다. 18세기 말에는 중매결혼 대신 개인이 직접 배우자를 선택하는 결혼이 사회적 이상으로 자리 잡았으며, 사랑을 기반으로 한 결혼이 장려됐다. 이 무렵부터 사람들은 사랑이 결혼의 근본적인 이유가 되어야 하며, 젊은이들이 사랑을 기초로 배우자를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급진적인 새 사상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19세기에 사랑을 기반으로 한 결혼에 감상적인 색채가 더해지고, 20세기엔 성(性)이 강조되기에 이르렀다. 사랑과 동반자 관계를 결혼의 기반으로 삼은 것은 수천년간 이어져 온 전통과의 단절을 의미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내포된 위험을 깨닫고, 사랑을 기반으로 한 결혼이라는 전대미문의 개념이 과격한 개인주의를 낳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사랑의 결합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자유선택과 남녀 평등을 중시하는 가치관이 쉽사리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혁명적인 결혼 시스템은 처음 잉태되던 순간부터 불안정한 징후들을 드러냈다. 결혼 생활에서 사랑, 즉 애정이 절대적인 요소라면 만약 애정이 식을 경우 결혼 생활 역시 더 이상 유지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결국 이 시스템의 불안정성은 20세기 말에 이르러 사람들을 괴롭히게 됐다. 동성 결혼과 동거, ‘싱글 맘’ 등 다양한 형태의 결혼이 등장했고, 높은 이혼율과 낮은 출산율, 독신주의자의 급증 등은 결혼 제도 자체를 뒤흔들고 있다.

저자는 “오늘날 우리는 전인미답의 영역으로 들어가고 있다”며 “이 새로운 결혼 풍속도 속에서 우리를 이끌어줄 결정적인 안내인도 없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미래에도 결혼이라는 제도가 유지될 것이라고 저자는 내다본다. 단, 지금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결혼 제도가 될 가능성이 크지만 말이다.(김영번 기자) 

09. 03.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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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더욱 흥미로운 책, &lt;진화하는 결혼&gt;
    from 자기치유 : I am NOT such a person. 2009-03-28 18:07 
    진화하는 결혼 - 스테파니 쿤츠 지음, 김승욱 옮김/작가정신 사실 오늘 발견한 책 중에서 더욱 관심가는 책은 이 책이다. 결혼에 대한 관념이 서구 문화에서 어떻게 변화하였는지를 추적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이 책은 우리들에게 결혼과 사랑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하게 해줄듯하다. 일생의 화두이기도 하나 사랑을 다루고 있고, 최근 들어 보다 큰 관심을 갖게 된 결혼의 문제도 파고들고 있으며, 전공을 고려하고 있는 문화사라는 분야의 책이라는 점에서 이래저래..
 
 
stella.K 2009-03-29 14:05   좋아요 0 | URL
위의 책들 재밌을 것 같군요. 좋은 정보네요.
벌써 즐찾이 2000이라니, 놀랍습니다!
축하해요.^^

로쟈 2009-03-29 16:53   좋아요 0 | URL
네, 감사. 오래만에 댓글도 달아주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