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내주에나 리뷰가 올라올 거 같은데, 이번주 철학분야의 관심도서는 김진석 교수의 <더러운 철학>(개마고원, 2010)과 여덞 명의 사상가의 정치철학을 다룬 <현대 정치철학의 모험>(난장, 2010)이다. 이 중 <현대 정치철학의 모험>의 목차와 함께 '기획의 말'을 도서출판 난장의 블로그에서 발췌해 옮겨놓는다.  

   

1. 클로드 르포르: 정치적인 것의 발견과 현대 민주주의의 모색(홍태영)
2. 알랭 바디우: 진리와 평등으로서의 정의(장태순)
3. 자크 랑시에르: 감성적/미학적 전복으로서의 정치와 해방(최정우)
4. 가라타니 고진: 교환 X로서의 세계공화국(조영일)
5. 에티엔 발리바르: 도래할 시민(권)을 위한 철학적 투쟁(장진범)
6. 조르조 아감벤: K(양창렬)
7. 샹탈 무페: 경합적 다원주의로서의 급진민주주의(홍철기)
8. 악셀 호네트: 인정투쟁, 사회적 갈등의 도덕적 구조와 논리(강병호)
  



기획의 말 
현대, 정치철학, 모험

2008년 봄과 여름의 길거리를 수놓았던 촛불은 사그라졌다. 그러나 그 촛불은 현재 ‘공화국’에 대한 논의, 87년-97년-08년 ‘체제논쟁,’ 그리고 ‘급진민주주의’에 대한 토론을 낳았다. 이런 촛불의 흔적 또는 촛불효과는 신자유주의라는 반(反)정치를 넘어서는 ‘정치(철학)의 귀환’으로 규정할 수 있을 듯하다.  

서구 유럽에서 정치(철학)의 귀환은 베를린 장벽과 소련의 붕괴, 나아가 맑스주의의 위기 속에서 나온 것이었다. 이 귀환은 맑스주의의 경제주의적 경향을 레오 스트라우스나 한나 아렌트 식의 ‘정치’의 자율성론으로 비판하고 존 롤즈, 마이클 샌들, 찰스 테일러, 로버트 노직,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 같은 영미 정치철학자들의 이론을 수용하는 형태를 띠었다. 이처럼 서구 유럽, 특히 프랑스에서 정치(철학)의 귀환은 결국 철학이 곧 정치라고 봤던 루이 알튀세르, 장-프랑수아 리오타르, 질 들뢰즈, 미셸 푸코, 자크 데리다 등 ‘68사상가들’을 결산하며 정치철학의 고유한 영토를 확보하기 위한 시도였다.

이와 달리 지금 이 땅에서 정치(철학)의 귀환은 여러 가지 한계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인 대중운동이 지성계에게 사유할 것을 요청, 심지어 명령하는 상황으로부터 나온 것이라는 점에서 보다 건설적이다. 그리고 여기에서의 귀환은 하나의 철학적 조류에 또 다른 조류를 대립시키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라는 (컨)텍스트로부터 출발한다는 점에서 건강하다. 하지만 반신자유주의 연합이든, 반MB 연합이든, 또 그밖에 어떤 구체적인 전략을 사유하든 간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촛불의 교훈은 이것이다. 즉, 정치란 (국가에 무언가를 ‘요구’하는 것인 동시에, 제대로 된 ‘국가’ 자체를 요구하는 것이라는 이중의 의미에서) 국가에 대한 요구를 초과한다는 것, 민주주의는 일종의 합의나 체제가 아니라 갈등·경합·투쟁·계쟁·봉기의 과정에 다름 아니라는 것. 우리가 지금 소개하는 철학자들은 바로 이런 공통의 지평 위에 서 있다. 

정치철학이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아리스토텔레스는 바람직한 국가형태가 무엇인지를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어떤 권력이 정당하며, 누구에게 권력이 돌아가야 하는가 등 아리스토텔레스가 던진 질문은 지금까지도 정치철학의 주된 물음이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 자신이『정치학』에서 평등/불평등의 문제가 정치철학의 난제라고 밝히고 있다는 사실은 자못 의미심장하다. 이는 체제에 대한 고민의 가장자리야말로 정치철학의 아포리아가 자리하는 곳임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권력의 정당성과 배분이라는 문제의 가장자리에 위치해, 정치 또는 정치적인 것이란 무엇인지를 묻기. 기존의 정치 개념(권리, 정의, 자유, 평등, 인민주권 등)을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기. 바로 이것이 여덟 명의 철학자를 통해 우리가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이다. 따라서 이 모음집은 구체적인 지침을 제공하는 하나의 전략서가 아니라, ‘지금 여기’라는 (주)텍스트를 읽기 위한 (곁)텍스트, 그러나 늘 곁에 두고 사유하며 곱씹을 것을 요구하는 (곁)텍스트이다. 

지금 선보이는 여덟 명의 철학자는 우리와 동시대인이다. 그러나 그들의 핵심 주장은 적게는 몇 년, 많게는 수십 년 지난 게 대부분이다. 이제와 이들의 사유를 소개한다는 것은, 그것도 본격적인 연구서가 아니라 입문서의 형태로 소개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지성사적으로 늘 뒤쳐져서 남들 뒤꽁무니 따르기에 바쁜 우리 모습에 대한 자조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아니면 유행하고 있거나 유행할, 하지만 결국 사라질 운명에 처한 일군의 신상품을 풀어놓는다는 냉소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허나 무엇보다도 푸코가「계몽이란 무엇인가?」에서 ‘근대’를 하나의 태도, 그것도 ‘비판적 태도’로 규정했듯이 우리 역시 ‘현대’ 또는 ‘동시대’를 하나의 태도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거의 모든 철학자는 오늘을 사유하기 위해 과거의 텍스트를 읽었다. 이것은 오늘과 거리를 둔다는 점에서 시차적(時差的)이며, 과거의 텍스트를 다른 시각으로 읽는다는 점에서 시차적(視差的)이다. 요컨대 현대/동시대는 이 이중의 시차를 경유함으로써만 우리에게 온전히 주어진다. 이와 마찬가지로 독자들이 이 모음집의 텍스트를 그 맥락에서 떼어내 자유롭게 인용할 때, 다시 말해서 이 텍스트들이 경전들에 대한 단순한 주석이 아니라 ‘지금 여기’를 이해하기 위한 (곁)텍스트가 될 때 이 모음집에 수록된 정치철학은 비로소 현대적일 수 있을 것이다.

이 모음집에 참여해주신 글쓴이들의 약력에는 대부분 ‘과정’이라는 꼬리말이 붙어 있다. 그러나 학계와 사회의 끝자락 또는 가장자리에 있는, 이 ‘과정 중의’ 사람들이야말로 지금, 여기에서 필요한 새로운 ‘모험’을 감행하기에 가장 적합한 이들이 아닌가. 이제는 당신의 차례이다. 

10. 01. 24.  

P.S. 개인적으론 <현대 정치철학의 모험>의 '슬라보예 지젝' 편 집필을 제안받았지만, 아직 읽지 못한 책이 많아서 사양했었다. 가령 <지젝의 정치학>(2006)을 아직 읽지 않았고, <바디우, 지젝, 그리고 정치의 변형>(2009)이란 책은 배송되는 대로 읽어봐야 한다. 예정대로라면 하반기에는 지젝의 정치철학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정리해볼 수 있을 듯하다. 혹은 그럴 수 있기를 기대한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목동 2010-01-25 0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상속에도 철학적인 사유가 존재합니다. 우연과 필연에 대한 계속되는 선택의 문제는 정치에서도 다를게 없습니다. 세계속에 한국의 정치는 어디로들 향하는지, 뱀의 머리가 되어 봄처녀를 따라 오겠지만요.

로쟈 2010-01-25 13:16   좋아요 0 | URL
정치가 인간의 본질적인 차원이라는 것, 그런 의미에서 '정치적인 것'에 대해 숙고해볼 필요가 있다는 대중적 자각 같은 게 필요해보입니다. 신간도 그런 맥락에서 의의가 있을 듯싶고요...
 
'레닌 재장전' 예고

<레닌 재장전>(마티, 2010)이 드디어 출간됐다(아직 이미지는 뜨지 않지만 알라딘에도 입고돼 있다). 책은 어제 배송받았는데, 표지가 깔끔하고 책도 분량에 비해 가벼운 것이 마음에 든다. 속표지(표2)에는 특이하게도 지난 11월 '번역자 간담회' 자리에서 나온 얘기가 발췌돼 있다(7명의 역자 중 5명이 참석했었다). 사진은 마티출판사의 블로그에서 가져왔다. 

“이미 고전이 되어버린 마르크스와 달리, 여전히 언급하길 꺼리던 레닌이 이렇게 세상에 다시 등장한 것! 이것 자체가 의미가 크다. 레닌이 귀환했다. 게다가 세계의 담론을 이끌어가는 살아 있는 최고의 석학들이 레닌을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이 땅에 살아가는 우리는 어떻게 레닌을 읽을 것인가? 그의 책 제목처럼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 이현우(알라딘 블로거 '로쟈')  

“80년대 끝무렵부터 90년대 초반을 고비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진보 운동이 사그라들었다. 정의, 저항, 혁명 등의 단어가 증발한 것 같았다. 철저하게 자본주의를 향해 걸어와 노동자들의 연대와 희망이 사라진 지금 우리 앞에 ‘레닌’이 부활하고 있다.” - 이재원   

“이 책을 옮기며 알게 되었다. 나에게 레닌은 ‘질문’이다. 근본적인 질문을 구하도록 나를 이끌었다. 그는 자신의 몸 전체를 던져 민주주의를 실현하고자 한다. 그 자체가 질문이었고 고민이었으며 민주주의였다.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진 우리에게 절실한 책이다.” - 한보희  

“왜 레닌을 읽을 필요가 생겼을까? 이 점이 중요하다.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오랫동안 잊혀졌던 단어들을 되새기게 되었다. 정의, 정당, 조직…. 오히려 마르크스는 지식인의 세계에 속한 사람(사상), 고전이 되었다. 하지만 레닌은 지식인의 세계에 들어가지 않은 사상가다. 그런 점에서 새로웠고 자극적이다. 왜 레닌을 읽을 필요가 생겼을까? 다시 한번 자문하게 된다.” - 최정우(알라딘 블로거 '람혼') 

“바디우의 레닌은 참으로 흥미로웠다. 냉혹한 현실 정치인이란 통념과는 완전히 반대로, 레닌은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라는 기로에 섰을 때 언제나 ‘정의와 이념, 그리고 진리를 선택했다’고 바디우는 말한다. 레닌은 말랑한 타협의 정치가 아니라 ‘진리의 정치’를 실현하고자 한 것이다.” - 이은정 

   

레닌의 철학과 정치적 실천에 대한 재해석/재평가를 담은 17편의 글 가운데 내가 맡은 건 지젝이 쓴 '오늘날 레닌주의적 제스처란 무엇인가; 포퓰리즘적 이성에 맞서' 하나이다. 다른 역자들, 특히 역자들을 대표해 '옮긴이의 글'을 쓴 이재원씨나 가장 어렵고 많은 분량의 텍스트들을 옮긴 한보희씨에 비하면 대수로운 수고는 아니었다(그럼에도 편집부를 애먹게 했지만). 지젝의 텍스트는 이렇게 시작한다(이 서두는 <시차적 관점>의 내용과 일부 중첩된다). 이후 포퓰리즘에 대한 논의에서 지젝은 주로 라클라우의 포퓰리즘론(<포퓰리즘적 이성에 대하여>)과 대결한다.     

슬로베니아의 늙은 공산주의 혁명가 요제 유란치치의 운명은 스탈린주의적 왜곡의 가장 완벽한 은유로 꼽을 만하다. 1943년 이탈리아가 항복했을 때 유란치치는 아드리아해 라브 섬의 한 강제수용소에서 유고슬라비아 포로들이 일으킨 반란을 지휘했다. 그의 지휘하에 2,000명의 굶주린 포로들은 단독으로 2천 200명의 이탈리아군을 무장해제했다. 전쟁이 끝나고 그는 체포되어 인근의 작은 골리 오톡(‘벌거벗은 섬’)의 악명 높은 공산주의자 수용소로 보내졌다. 그곳에서 그는 1953년 다른 죄수들과 함께 1943년 라브섬에서의 반란 10주년 기념비를 세우는 데 동원되었다. 요컨대, 공산주의자 죄수로서 유란치치는 그 자신이 지휘한 반란을 위한, 곧 그 자신을 위한 기념비를 세운 셈이다. 만약 ‘시적 불의’(이 경우엔 ‘시적 정의’가 아니다)라는 게 있다면, 유란치치의 경우가 거기에 해당할 것이다. 사실 이 혁명가의 운명이야말로 스탈린 독재시절 전체 인민의 운명, 처음엔 혁명을 통해서 구체제를 영웅적으로 전복시키고, 그 다음엔 새로운 규정의 노예가 되어 자신의 혁명적 과거에 대한 기념비를 강제로 세워야 했던 수백만 인민의 운명이 아니던가? 따라서 이 혁명가는 그 자신의 운명이 전체의 운명을 대표한다는 점에서 아주 탁월한 ‘보편적 단독자’이다.   
여기서 진정한 과제는 10월 혁명의 비극을 사유하는 것이다. 곧 그 위대성, 유례없는 해방적 힘과 함께 그것이 스탈린주의로 귀결된 역사적 필연성을 동시에 인식해야만 한다. 우리는 두 가지 유혹에 맞서야 한다. 하나는 스탈린주의가 궁극적으로는 우발적인 일탈에 불과하다고 보는 트로츠키식 관점이며, 다른 하나는 공산주의 기획은 본질적인 차원에서 전체주의적이라고 보는 관점이다. 트로츠키에 대한 최고의 전기를 펴낸 아이작 도이처는 그 셋째 권에서 1920년대 말 강제 집산화와 관련하여 명쾌하게 지적하고 있다. “외부를 향하여 확장하는 데 실패하고 소련 안으로만 한정되자 혁명의 역동적 힘은 내부로 향하게 되고 소비에트 사회의 구조를 한 번 더 폭력적으로 재구축하기 시작했다. 강제적인 산업화와 집산화는 혁명 확산의 대체물이 되었고 러시아 부농계급(kulak)의 일소는 국외 부르주아계급 타도의 대용품이 되었다."(127-8쪽)

 

마지막에 인용된 아이작 도이처의 책은 '트로츠키 3부작'을 가리키는 것으로 <무장한 예언자 트로츠키>(필맥, 2005), <비무장의 예언자 트로츠키>(필맥, 2006), <추방된 예언자 트로츠키>(필맥, 2007)로 번역돼 있다. 그 셋째 권은 물론 <추방된 예언자 트로츠키>를 가리키는데, 책을 갖고는 있지만 시간이 없어서 대조해보진 않았었다. 미주를 보니 편집부에서 해당 쪽수를 찾아놓았다. 이렇게 번역됐다.  

"러시아혁명의 충격이 유럽에서 혁명을 일으키지는 못했지만, 그 추동력은 아직 소진되지 않았음이 판명됐다. 그러나 그 추동력이 밖으로 작용하거나 확장되지 못하고 소련 안으로 응축되면서 내부지향적인 것이 되고 다시 한 번 격렬하게 소련사회의 구조를 재편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강제적인 공업화와 집단화가 혁명의 전파를 대체하게 됐고, 러시아 쿨라크의 해체가 해외 부르주아 지배체제의 전복을 대신하는 대용품이 됐다."(166-7쪽) 

이하 '오늘날의 레닌주의적 제스처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직접 확인해보시기 바란다... 

10. 01. 24. 

P.S. 교정을 한 차례 보긴 했으나 잘못 옮기거나 이해한 부분도 없지 않을 것이다. 인용한 대목에서도 "새로운 규정의 노예가 되어"란 말은 "새로운 지배의 노예가 되어"라고 옮기는 것이 더 나았겠다는 생각이 든다(옮길 때는 'rules'라고 복수형으로 돼 있어서 '지배'란 단어를 피했었다). 그리고 134쪽에서 "야만적인 인종주의와 반유대주의 같은 이데올로기적 요소들조차도, 포퓰리즘 등가적 요구의 사슬에 엮어 들어갈 수 있다."는 "야만적인 인종주의와 반유대주의 같은 이데올로기적 요소들조차도, 포퓰리즘 등가적 요구 사슬에 엮여 들어갈 수 있다."로 수정돼야 한다. 교정시에 미처 확인하지 못했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목동 2010-01-25 0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집단과 개인의 기억은 여진처럼 사라지지 않군요. 개인의 마음속에서 의심을 품었던 그 힘들이 물방울처럼 모여 새로운 변혁의 힘으로 작용하군요.

로쟈 2010-01-25 09:25   좋아요 0 | URL
기본적으론 기표의 문제입니다. '레닌'이란 이름을 호명하고 소환하는 문제...

2010-01-25 13: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25 14: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진화심리학과 절망의 진화
다윈의 렌즈와 인간 본성

지난 목요일 저녁에 <오래된 연장통>(사이언스북스, 2010) 출간기념 행사에 참석한 바 있는데, 프레시안에 취재기사가 올라왔기에 옮겨놓는다(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100122190055&Section=04). 내 역할은 저자의 전중환 교수에게 저서와 진화심리학에 대한 몇 가지 질문을 던지는 것이었다. 주최측에선 처음에 '인문학자'의 반론을 기대했지만, 나는 시종 우호적인 입장에서 질문을 했고 몇가지 사안에 대해서만 아직 진화심리학의 성과가 미흡한 듯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진화심리학과의 개인적인 인연은 '진화심리학과 절망의 진화'란 페이퍼에 적어놓은 적이 있다). 소위 '다윈주의 좌파'의 가능성에 대한 의견도 문의했지만 저자는 진화심리학자는 현상을 설명할 뿐이라는 '과학자'의 입장을 견지했다.     

프레시안(10. 01. 23) "내 안에 석기 시대의 마음이 들어 있다" 

"먼 훗날 나는 훨씬 더 중요한 연구 분야가 열리리라 본다. 심리학은 새로운 토대 위에 서게 될 것이다."

150년 전 다윈이 <종의 기원>의 말미에서 이렇게 예언했을 때, 그 얘기를 귀담아 듣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부터 일군의 학자는 이런 다윈의 전망을 현실로 만들었다. 1980년대 중반 이들은 진화의 산물인 '인간 본성'을 규명하려는 자신의 연구에 이름을 붙였다. 바로 '진화심리학(evolutionary psychology)'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진화심리학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똑같이 가지고 있을 마음의 틀에 관심을 갖는다. 그 마음의 틀은 수백만 년 동안 인류의 조상이 아프리카 초원에서 수렵·채집 생활을 하면서 맞닥뜨린 온갖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전중환 경희대 교수는 최근 펴낸 <오래된 연장통>(사이언스북스 펴냄)에서 이 마음의 틀을 '오래된 연장통'에 비유한다.

"인간의 마음은 톱이나 드릴, 망치, 니퍼 같은 공구들이 담긴 오래된 연장통이다. (…) 우리의 마음은 어떤 배우자를 고를 것인가, 비바람을 어떻게 피할 것인가, 포식동물을 어떻게 피할 것인가 등 수백만 년 전 인류의 진화적 조상들에게 주어졌던 다수의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문제들을 잘 해결하게끔 설계되었다."

진화심리학은 이 오래된 연장통의 실체를 파악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을 이해하는 첫걸음이라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한국에서 맨 처음 진화심리학 박사 학위('가족 내의 갈등과 협동에 관한 진화심리학적 연구')를 받은 전중환 교수는 <오래된 연장통>에서 그것의 힘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진화심리학의 유혹에 빠지다
지난 21일 마련된 전중환 교수와 책벌레들이 만난 자리('과학, 블로거를 만나다')에서도 진화심리학은 빛났다. 책벌레들을 대표해서 전 교수와 대담에 나선 이현우 박사도 진화심리학에 끌리는 속내를 감추지 않았다. 러시아 문학을 공부하는 이 박사는 '로쟈'라는 필명으로 유명한 서평가이다. 그의 얘기부터 들어보자.  

"(진화심리학에 대한 인문학자의 딴죽 걸기를 기대했을) 주최 측의 생각과는 달리, 나는 진화심리학에 대단히 우호적이다. 국내에 이미 소개된 로버트 라이트의 <도덕적 동물(Moral Animal)>, 데이비드 버스의 <욕망의 진화(The evolution of Desire)>와 같은 책도 흥미롭게 읽었다. 진화심리학의 최신 연구 성과가 담긴 <오래된 연장통>도 열심히 읽었다.

이런 진화심리학의 연구 성과가 더 많이 소개되고, 여러 사람이 이것을 공유해야 한다. 인문학자들은 흔히 인간에게 기대를 갖고 있기가 쉬운데, 진화심리학은 이런 거품을 빼는데 기여해 결과적으로 인문학의 진전에 도움이 될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런 진화심리학을 고등학교 교육 과정에 집어넣어야 한다."

이현우 박사의 이런 솔직한 고백은 진화심리학의 위상 변화를 잘 보여준다. 1970년대 그 전신인 사회생물학은 인문과학, 자연과학을 막론하고 대다수 지식인에게 극우 이데올로기를 뒷받침하는 사이비 과학으로 받아들여졌었다. 여전히 의혹의 눈길을 보내는 이들이 상당수가 있지만, 이 박사의 얘기에서 엿볼 수 있듯이 분위기가 바뀌었다. 



인간의 발정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이렇게 진화심리학을 둘러싼 환경이 변한 데는 그것이 지난 30년간 쌓은 놀라운 연구 성과 덕분이다. 전중환 교수는 <오래된 연장통>에서 이런 연구 성과를 가장 최신의 것까지 요령 있게 소개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라면 누구나 믿음직한 진화심리학 길잡이의 출현이 반가울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대다수 포유류 암컷은 배란 직전에 발정기에 도입하며, 이 기간 동안 여러 수컷과 성관계를 맺는다. 인간은 이런 발정기가 없다. 남성은 물론이고 여성도 (신경을 쓰지 않는 한) 배란 여부를 확인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진화심리학의 최근 연구 결과를 보면, 인간의 발정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전중환 교수의 설명을 들어보자. 

"우리 조상들이 진화한 원시 환경에서 모든 여성이 자식에게 우수한 유전적 형질을 전달해 주는 섹시한 남편들을 얻은 건 아니다. 이런 여성은 가임기에 섹시한 외간 남자와의 혼외정사를 추구하게끔 진화했을 것이다. 이 이론은 다음과 같은 예측을 한다. 가임기의 여성은 좋은 유전자를 지닌 남성을 남편감이 아닌 성관계 상대로 선호하는 경향이 있을 것이다.

실제로 이런 예측은 사실로 확인이 되었다. 코와 턱이 발달한 남성적인 얼굴, 어깨가 넓고 근육이 탄탄한 남성적인 신체, 분위기 있는 저음의 남성적인 목소리, 남자답게 크고 훤칠한 키에 대한 여성들의 선호는 가임기가 되면서 뚜렷한 상승 곡선을 그렸다. (…) 가임기 여성은 비가임기 여성보다 거칠고 남성적인 사내의 체취를 보통 사내의 체취보다 더 선호했다."

이처럼 진화심리학은 마음의 틀이 어떻게 빚어졌는지 설명하고, 그것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미처 알지 못했던 인간의 비밀을 발견하면서 영향을 확대해 왔다. 전중환 교수는 <오래된 연장통>에서 진화심리학이 철학, 예술, 종교, 미학, 경제 등을 바라보는 시각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알려준다. 



마음의 '오작동'에 주목하라!
전중환 교수가 <오래된 연장통>에서 반복해서 지적하고 있듯이 인간의 마음은 수백만 년 전 아프리카 초원의 수렵·채집 생활에서 겪어야 했던 문제를 잘 풀게끔 진화했다. 불과 1만 년 정도밖에 안 되는 농경 생활이나, 길어야 200년 짧으면 수십 년에 불과한 도시 생활이 마음의 진화에 영향을 줬을 가능성은 적다.

"우리 안에는 석기 시대의 마음이 들어 있다."

이러다 보니, 인간의 마음은 현대의 일상생활 속에서 갖가지 불행한 결과를 초래한다. 예를 들어 보자. 먹을거리가 부족한 수백만 년 전 아프리카 초원에서 인류의 조상은 열량이 높은 음식을 달게 느끼게끔 마음이 진화해 더 많은 에너지원을 섭취했다. 그러나 이런 본성은 단 것이 지천에 있는 현대에서 각종 성인병을 일으키는 원흉으로 작용한다.

포르노에 흥분하는 남성도 마찬가지 예다. 전중환 교수의 설명은 이렇다.

"인류가 진화한 환경에서 포르노는 없었다. 남성이 포르노에 등장하는 여성의 모습을 감상할 때, 남성의 두뇌는 그 모습이 실제 여성이 아니라 점과 선이 조합된 허상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포르노 속 여성과 성관계를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모르는 남성의 두뇌는 포르노를 보면서 아무런 실익도 없이 심장 박동 수를 높이며 발기를 시킨다."

이현우 박사는 "연예인에게 열광하는 대중문화도 이런 진화심리학의 시각으로 볼 수 있다"고 공감을 표시했다. TV 속의 선남선녀 연예인에게 열광을 한다 한들, 실제 현실에서 얻는 이익은 없다. 우리의 마음이 수백 만 년 전 아프리카 사바나에서는 그런 선남선녀를 배우자로 선호하도록 빚어진 데서 비롯된 현상이라는 것이다. 



좌파든 우파든 진화심리학을 접수하라!
전중환 교수의 주장대로, 진화심리학이 오래된 연장통의 비밀을 하나씩 해명해 인간을 더 깊이 있게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걸 인정하자. 그렇다면, 그것은 인간의 미래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까? 이현우 박사는 조심스럽게 이렇게 물었다. "진화심리학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런 질문에 답할 수 있을까?" 전 교수의 답을 들어보자.

"많은 진화심리학자는 오래된 연장통의 비밀을 해명하는 데서 멈춘다. 그렇게 발견된 인간의 본성을 어떻게 해석해 처방할지를 놓고는 대부분의 진화심리학자가 침묵한다. 많은 이들이 오해하듯이, 진화심리학자의 주장은 인류가 진화한 환경에서 빚어진 인간의 마음을 그대로 따르자, 이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자연주의 오류).

그러나 인간의 마음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다면 온갖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유용한 참고 사항이 될 수 있다. 예를 들면, 정치적으로 우파든 좌파든 진화심리학을 통해서 얻은 인간에 대한 통찰은 세상을 이해하는 시각을 더욱더 깊게 해줄 것이다.

나는 국문과, 영문과, 불문과 학생들에게 진화심리학 강의를 들으라고 권유한다. 인문과학, 사회과학, 그리고 우리 삶을 둘러싼 모든 지식 분과들은 진화심리학을 토대 삼아 한 단계 더 도약하게 될 것이다. 인간의 마음에 대한 진화적 접근을 불편하게 받아들이며 무시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은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지만, 다윈 혁명은 어쨌든 진행 중이다."

다윈 혁명은 진행 중이다!
이런 전중환 교수의 선언이 현실이 될지는 더 두고 볼 일이다. 다만 진화심리학의 있는 그대로의 면모를 제대로 전달할 전문가를 한국 사회가 얻은 것만으로도 반가운 일이다. 장담하건대, 진화심리학을 둘러싼 지적 논쟁은 앞으로 전 교수의 존재로 더욱더 풍성해 질 것이다.

전중환 교수는 농담처럼 "대중을 위한 진화심리학 책은 <오래된 연장통>이 마지막"이라고 말했다. 이 책에 실린 수많은 진화심리학 연구에 필적할 만한 성과를 내겠다는 한국의 첫 진화심리학자의 야망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연구에만 몰두하겠다는 그의 바람이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자신의 연구 성과를 대중과 잘 소통할 수 있는 과학자가 드문 한국 현실에서, 대중이 이런 감각과 솜씨를 가진 전중환 교수를 그대로 둘 리가 없다. 또 한국 사회의 지적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도 그대로 둬서는 안 된다. 그가 앞으로 오래된 연장통의 어떤 비밀을 파헤쳐 우리를 놀라게 할지 기대된다.(강양구기자) 

10. 01. 23.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0-01-23 14: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23 14: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목동 2010-01-23 18:13   좋아요 0 | URL
생명체의 속성은 생명체가 영속되기를 바라는 것이며, 이 바램은 우성(극우 이데올로기로 이용됨)과 열성에 의해 진행됩니다. 생명체(조직,개체)의 극소단위가 유전자(DNA)라 한다면 진화심리학이 생명체의 외형적인 행동습성(반응) 등을 가지고 유전적인 속성(우리 안에는 석기 시대의 마음이 들어 있다)을 증명하기보다는 좀 더 미시적인 유전자의 특성이나 역활 등을 증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진화심리학이 진화생물학 등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최근에 유전학에서 어떤 이론적인 근거가 되고 있는지를 살펴 봄도 좋을 듯해요.

로쟈 2010-01-24 21:17   좋아요 0 | URL
진화심리학이나 진화생물학이나 요즘은 유전학과도 요즘은 연계돼 있는 듯싶은데요. 서로 대립되지 않는 걸로 압니다(초기엔 물론 왓슨과 에드워드 윌슨 같은 이들이 서로 대립했다고 얼핏 읽은 듯하지만요)...
 

주말 북리뷰를 둘러보았다. '이거다!' 싶은 0순위 책은 보이지 않지만 관심을 끌 만한 책은 여러 권 된다. 장바구니에 넣어둔 책의 하나는 20대 젊은 세대 인터뷰집 <요새 젊은 것들>(자리, 2010). 과문한 탓에 '88만원 세대'를 '20대 개새끼'라고도 부른다는 건 소개기사를 보고서야 알았다. 말하자면 책은 '발칙한 반란을 꿈꾸는' '20대 개새끼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작년 가을에 나온 우석훈의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레디앙, 2009)와 겹쳐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부제대로 하면 '88만원세대 자력갱생 프로젝트 VS 88만원세대 새판짜기'이다). '반란'과 '혁명'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도 부수적으로 확인해보고. '요새 젊은 것들'을 다룬 책답게 블로거 사회에서는 화제작으로 거명되고 있지만 오프라인쪽에선 별로 주목받는 눈치가 아니다('요새 젊은 독자들'에게 얼마나 반응을 얻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 가장 크게 다룬 기사를 옮겨놓는다.     

  

한국일보(10. 01. 23) 20대의 유쾌한 반란… 우리는 당당한 '開청춘'이다!

요새 젊은 것들이란…. 끌끌 혀 차는 소리.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유사 이래 쭉 그랬으니까. 그런데 요즘 한국의 20대는 더 한심해 보인다(는 말을 듣는다). 대학 나와봤자 비정규직 신세라고 안쓰러워하는 '88만원 세대론'에 이어 '20대 개새끼론'까지 뒤집어썼다. 2008년 촛불시위 때 20대가 별로 안 보였다고, 그래, "니들은 평생 호구로 살아라. 한국 사회의 희망은 촛불 10대에 걸겠다"며 나온 게 '20대 개새끼론'이다. 패기도 꿈도 없는 무관심 무기력 세대라는 비난이다. 



그래서 어쩌라고? 우리가 그렇게 만만해 보여? 훈계하려고 하지 마. <요새 젊은 것들>의 항의다. 20대 대학생 3명이 당찬 20대 9명(팀)을 인터뷰한 이 책은 '발칙한 반란을 꿈꾸는', '앞가림 좀 한다는 젊은 것들'의 이야기다. 여기서 앞가림은 착실히 스펙 쌓아서 취직 잘하고 제때 결혼하는 게 아니라, 시키는 대로 살기를 거부하면서 올바른 삶과 제대로 된 사회를 고민하고 길을 열어가는 당당함을 가리킨다.

등장인물 면면이 흥미롭다. '키보드 전사'를 자처하는 진보적 인터넷 논객 한윤형, '지속가능한 딴따라질'과 '빡센 취미생활'을 추구하는 인디 레이블 붕가붕가레코드의 곰사장(본명 고견혁), 2008년 국무총리와의 대담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부끄럽다. 국민을 바보로 아느냐'고 일침을 놓아 유명해진 '고대녀' 김지윤, 한국 사회에 대해 전방위 비평을 시도하는 '철학 오타쿠' 박가분, 현재 한국 문단에서 가장 논쟁적인 작가 중 하나로 꼽히는 소설가 김사과, 기존 패션 잡지에 반기를 든 길거리 패션 독립잡지 '크래커'의 편집장 장석종, 국내 하나뿐인 청소년 인문학 전문서점 인디고서원의 유스북페어 팀장 박용준, 최근 영화로도 소개된 4인조 길거리음악단 '좋아서하는밴드', 요즘 20대의 현실과 육성을 담은 다큐멘터리 '개청춘'을 만든 여성영상집단 '반이다' 를 인터뷰했다.

이들의 발언에는 각자의 삶과 일부터 평소 생각과 우리 사회를 보는 날카로운 눈까지 두루 들어있는데, 한결같이 솔직하고 진지하고 유쾌하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자뻑'이 우리의 힘"이라는 곰사장, "큰 무대, 대형 밴드? 그런 데 꿀릴 것 없다"는 좋아서하는밴드, "내가 싫으면 그만이지 기계적 중립은 싫다"는 김사과의 말은 당당하다. "스펙? 투쟁? 기존 틀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순수한 투사들로 이뤄진 지적 공동체를 20대나 젊은 사람들이 시도해야 한다"는 박가분의 주장은 한국의 제도권에 '치명적 백태클'을 날리려고 벼르는 주모자답다.

반이다의 발언, "학벌 만능과 무자비한 경쟁 등 괴상하게 돌아가는 사회에 짱돌을 드는 심정으로 '개청춘'을 만들었다. 개 같은 청춘이 아니라 열릴 개(開), 그러니까 '열려라', 청춘이다"는 곧 이 책의 목적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오미환기자) 

10. 01. 23.  

P.S. 책소개에는 이런 대목도 포함돼 있다. "데모할 것 다 하고도 대기업에 취직하고, 중산층에 편입할 기회가 손만 뻗으면 닿을 듯 존재했던 386에게는 그만큼 변절의 자기합리화도 익숙했다. 하지만 태생부터 비정규직 88만원 세대에서 벗어나기 힘든 오늘의 20대에게는 오르지 못할 나무를 향한 곁눈질보다 밑져봐야 본전이라는 배짱이 더 익숙할지도 모른다." 흥미로운 건 '태생론'. 태생론으로 환원하자면, '386세대'나 '88만원세대'나 등가다. 뻐길 것도 없고 부러워할 것도 없는. 더불어, 더 나을 것도, 더 나아간 것도 없는. 경험상 '요새 젊은 것들'도 기성세대가 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노이에자이트 2010-01-23 17:45   좋아요 0 | URL
2년 전부터인지 대중매체에서 60대까지는 아저씨,아줌마로 표기하더라구요.70세 넘은 사람들에겐 50대까지도 '요새 젊은 것들'일 거에요.

로쟈 2010-01-24 21:18   좋아요 0 | URL
세대란 게 그렇죠. 저도 자리에 따라선 '젊은 학도'란 얘길 듣습니다...

목동 2010-01-23 16:41   좋아요 0 | URL
장안에 즐거움을 주고있는 드라마 '추노'의 제작의도("그리고 어쩌면 화폐가치가 인생의 값어치로 손쉽게 매겨지고 '88만원 세대'라던가, '비정규직 확대'와 같은 문구들로부터 눈길을 떼지 못하는 현재의 모순을 그 시대와 등가로 놓을 순 없다하더라도 맨몸으로 부딪혀 싸우지 않고서는 무엇인가의 노예가 되지 않고 사랍답게 살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는 것만큼은 여전하기 때문인지도..")가 인상적입니다.

로쟈 2010-01-24 21:19   좋아요 0 | URL
묵직한 출사표군요...

루체오페르 2010-01-23 16:48   좋아요 0 | URL
PS 가 가슴에 저며오네요.
[변하지 않는 단 하나는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사실] 이란 말이 생각납니다.

로쟈 2010-01-24 21:20   좋아요 0 | URL
사실 한 20년의 세월도 지나고 보면 순간이죠...
 
2010년 학술출판 트렌드

이번주 한겨레21의 별책부록으로 실린 글을 옮겨놓는다. 아직 지면으론 보지 못했는데, 2010년의 인문출판 트렌드에 관한 글을 청탁받고 쓴 것이다. 한데 구성을 보니 초점은 '트렌드'가 아니라 '키워드'였다. 인문서부터 자기계발서까지 2010년의 '출판시장 키워드' 다섯 가지를 꼽고 있는데, 결과적으론 '역사와 그 반복'이 내가 고른 키워드가 됐다. 다른 필자들과 달리 출간예정 리스트를 잔뜩 나열한 건 이미 교수신문에 게재됐던 리스트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달리 피해가기 어려웠다. 나머지 키워드는 '장편소설' '프로슈머' '연예인 실용서' '실패하지 않는 삶' 등이다(http://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26609.html 참조).  



한겨레21(10. 01. 22) 인문서부터 자기계발서까지, 출판시장 키워드 5 

2010 키워드① 역사와 그 반복 

사회학자 김홍중 교수의 <마음의 사회학>(문학동네 펴냄)에 따르면, 우리 시대는 ‘생존’을 무엇보다도 소중한 가치로 설정하는 사회적 합의를 달성했다. ‘생존이 부끄러움이 되는 감수성’을 ‘진정성’이라고 부른다면, 외환위기 이후 한국 사회는 그 진정성이 유효할 수 있는 환경과 토대를 상실했다. 그래서 가장 절박한 관심이 ‘진정한 삶’이 아니라 ‘목숨 그 자체’가 돼버렸다. 하지만 경제불황과 맞물려 2009년 한 해 경제·경영서와 자기계발서의 인기가 급격하게 하락한 것은 반전의 한 조짐이다. 우리는 생존보다 더 소중한 것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 2010년 출간 예정 인문·사회과학서들에 거는 기대이다.  

생존보다 더 소중한 것을 찾을 수 있을까  
한-일 강제병합 100주년을 맞기에 올해는 비단 한-일 관계뿐만 아니라 자연스레 우리의 지난 100년사를 더듬어보게 한다. 따라서 올해의 트렌드라면 아무래도 역사와 그 반복이 될 듯하다. 먼저, 개화기와 일제강점기를 산 이들이 준비했던 근대국가의 모습을 되돌아보는 <그들이 꿈꾼 나라>(돌베개)나 강제병합 전후의 사정을 짚어줄 <대한제국흥망사>(돌베개)가 눈길을 끄는 책이다. 일제시대사 쪽으론 경성제국대학의 의의를 해부한 <식민권력과 근대지식>(서울대출판문화원)과 <식민지 검열의 역사적 성격>(소명출판) 등도 드물게 다루어진 주제라 관심을 모은다.

한국전쟁 6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기에 현대사 분야에서도 기대작이 없지 않다. 역사문제연구소에서 펴내는 <한국전쟁에 대한 11가지 시선>(역사비평사)이나 염인호의 <또 다른 한국전쟁>(역사비평사), 박찬표의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본 한국현대사>(후마니타스), 김종엽의 <분단체제와 87년체제>(창비), 서동진의 <한국 자본주의와 정신분열증>(창비) 등이 우리가 살아온 모습을 성찰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해줄 것이다. 임지현·백영서 등 한국의 대표적인 인문학자들을 인터뷰해 1990년대 이후 한국 인문학의 지형을 탐색한 <세기말 한국 인문학의 지각변동>(그린비)도 필독 범주에 넣을 만하다.

번역서들의 면면도 화려한 편이다. 마르크스의 <자본>(길)이 새로 완간되고,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길)이 새 번역본을 얻는 것 외에도 사회심리학자 미드의 주저 <정신, 자아, 사회>(한길사)와 독일의 개념사 연구 성과를 집대성한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전 5권·푸른역사)이 번역돼 나올 예정이다.  

화려한 번역서의 면면
철학·이론 분야에서는 슬라보예 지젝의 책이 <처음은 비극으로 다음은 희극으로>(창비) 외 여러 권 소개될 예정이고, 프레드릭 제임슨의 <정치적 무의식>(민음사), 가라타니 고진의 인터뷰 <정치를 말한다>(도서출판b), 아즈마 히로키의 <존재론적, 우편적>(도서출판b) 등이 우리말 번역본을 얻는다. 독창적인 데리다 연구서인 아즈마 히로키의 책은 김상환의 <데리다와 들뢰즈>(창비)와 같이 읽어봄직하다.  

10. 01. 22.  

P.S. 특집에는 '2010 이런책이 보고 싶다' 코너도 있는데, 소설가·문화평론가·편집자 등이 속내를 드러냈다. 읽어보니 이쪽이 더 재미있다(http://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26603.html). 거창하게도 나는 '시대의 벽화와도 같은 책'을 읽고 싶다고 적어보냈다. 

Cover: In 1926

특정 연도, 시대의 벽화와도 같은 책

다윈 탄생 200주년이기는 했지만, 개인적으로 2009년에 가장 읽고 싶었던 책은 ‘1989년’에 관한 것이었다. 하지만 연말에야 크리스 하먼의 <1989년 동유럽 혁명과 국가자본주의 체제의 붕괴>(책갈피 펴냄)가 출간된 정도였고, 이마저도 재간본이다. 영어권에서 동유럽과 소련의 현실사회주의 붕괴 과정을 다룬 책들이 다수 쏟아져나온 것과 비교하면 우리의 관심사는 그들과 전혀 다른 건가 싶기도 하다. 한 박자 늦은 것이긴 하지만, 2010년에라도 읽어볼 수 있을까.  

특정 연도에 대한 역사서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인문학자 한스 굼브레히트의 주저작 <1926년: 시대의 가장자리에서 살아가기>(1997)란 걸 알게 되면서다. 500쪽이 넘는 이 두툼한 책을 읽어볼 엄두는 내지 못했지만 이런 종류의 책이 번역되면 좋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아, 더듬어 올라가면 국내에 소개된 책 가운데는 중국사학자 레이 황의 <1587 아무 일도 없었던 해>(가지않은길 펴냄)도 꼽아볼 수 있겠다. 명나라 만력제의 한 치세를 다루지만 한 시대와 국가제체에 대한 총체적인 조감도를 매혹적으로 펼쳐 보이는 책이다.

우리의 경우 ‘1950년대’나 ‘1960년대’ 같은 식으로 한 시대를 다룬 책들은 더러 있었다. 여전히 ‘시대’나 ‘체제’가 우리의 주된 코드이자 키워드이다. 하지만 조금 더 세밀하게 접근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1960년’에 대한, ‘1980년’에 대한 책, 개인의 일상적인 삶의 감각과 시대정신과 국제사회의 변동이 어떻게 맞물려 돌아가는지 보여주는 ‘시대의 벽화’와도 같은 책을 이제는 우리도 가져봄직하다. 당장 올해에 그런 걸 읽을 수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로군.


댓글(4) 먼댓글(1)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2010년 출판시장, 인문서부터 자기계발서까지
    from 뻥 Magazine 2010-01-23 12:23 
    2010년 주인공은 누규~ [2010.01.22 제795호] 인문서부터 자기계발서까지, 출판시장 키워드 5   한겨레21에 난 2010년 출판시장 트렌드 기사다. 필진에 로쟈님 글도 있고 내 책도 언급되었다. 하루에 한 번씩 내 책 모니터링을 하면서 다양한 시선을 목격한다. 책을 읽지 않고 쓴 혐의가 짙은 서평도 보고, 읽었지만 주마간산으로 읽은 서평도 있다. 어떤 독자는 너무 꼼꼼하게 분석을 해서 나를 놀래킨 독자도 있다. 작가
 
 
다크아이즈 2010-01-22 2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출판 시장 키워드에 점자책 사진이 우뚝 서 있는 것도 무슨 의미가 있는 거죠? 페이퍼가 제게 너무 어려워 접수 못할 땐 이렇게 엉뚱한 수수께끼를 홀로 풀다 가곤 한답니다. ^^*

로쟈 2010-01-22 23:28   좋아요 0 | URL
아, 그건 그냥 기사에 있는 걸 가져온 거예요. 짐작엔 '더듬어본다'는 의미이지 싶네요...

목동 2010-01-23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양극화가 심해지는 상황에서 인문.사회학 관련서 출판 및 독서의 증가가 어떤 의미일지 생각해 봅니다(책속에서만 어떤 방법을 찾으려다 실패한 것인지 모르지만). 현재 도시간 경쟁은 일회성(소비성) 에너지 분출장을 마련하는데 집중해 있습니다. 도시의 발전을 위해 초대형(복합기능) 도서관을 만들어 운영하겠다는 뜻은 미루어진듯(표심을 잡지 못함) 합니다.고급화된 영양공급으로 육질화된 에너지 분출은 개인간의 소비경쟁을 더 부른듯 합니다. 더 높은 양질의 삶을 위해 인문학적인 희망도 중요하지만 양극화로 절망적인 개인이 자가 발전할 수 있는 관련 프로그램들이 많이 운영되고 참여 했으면 좋겠어요 <희망의 인문학/얼쇼리스/이매진>.

로쟈 2010-01-23 12:37   좋아요 0 | URL
'인문학적 희망'보다는 '정치적 변혁'이 필요하겠지만, 전자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사상누각이 되기 쉽다는 것도 목격해온 바이죠. 이중의 전략이 그래서 필요하다는 생각이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