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일정을 마친 어젯밤 문득 닉 혼비의 <런던스타일 책읽기>(청어람미디어, 2009)를 빼들었다가 우연히 체호프의 편지들에 관한 수다를 읽고서 '런던스타일로 체호프 읽기'란 페이퍼를 구상했지만 실행하지는 못했다. 쾌락원칙뿐만 아니라 현실원칙도 고려해야 하는 게 '현실'이므로 몇 가지 핑계를 대 욕구의 좌절을 정당화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면서 든 생각은, 그런 발상의 '쓸모없는 책얘기'는 정말 나밖에  할 사람이 없겠다는 것과(쓸모없으니까!) 하지만 그런 얘기들을 늘어놓긴 위해선 나이도 그만 먹고 휴가를 가질 필요가 있겠다는 것이었다. 체호프에게 얄타라는 휴양지가 필요했듯이. 아래 사진은 얄타에서의 체호프.

   

울며 겨자 먹기로 내가 대신에 간단히 늘어놓기로 한 건 저명한 러시아 문학자 조셉 프랭크의 도스토예프스키 평전 소개다('조지프'라 읽는지도 모르겠지만 내게 친숙한 건 '조셉'이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다뤘으니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해서도 한두 마디 하는 게 형평에 맞겠다는 논리다. 사실은 어제 체호프의 편지들을 검색해보다가 우연히 알게 된 정보인데, 프랭크의 대작 평전 <도스토예프스키>(전5건)의 압축판이 작년 가을에 나왔다. 압축판이라고는 해도 서문까지 포함하면 거의 1000쪽에 육박하는 책으로 'Dostoevsky: A Writer in His Time'이란 제목이다. <도스토예프스키와 그의 시대> 정도로 옮길 수 있겠다(김윤식 교수의 <이광수와 그의 시대> 비슷하게).  

이미 다섯 권의 평전을 모두 갖고 있지만(물론 완독하진 못했고, 가끔 개별 작품들에 대한 기술을 참고한다) 이 책을 장바구니에 넣고 주문을 고민하고 있는 중이다. 아마도 번역돼 나온다면 이 압축판으로도 러시아 작가 평전으론 가장 방대한 분량이지 않을까 싶다. 다섯 권짜리 원래의 평전은 연대기 순으로 아래와 같이 출간됐다. 첫권이 1976년에 나왔고 2002년에 마지막 권이 나왔다. 분량은 권당 400-800쪽. 보통 전공자들에게 권위 있는 평전은 작가 사전과 함께 기본서이다.   

  

 

 

 

국내에 이미 소개된 평전으론 모출스키와 얀코 라브린의 평전 정도인데, 그나마 라브린의 책은 품절상태. 모출스키의 저명한 평전은 영역본도 있다.

  

내가 제일 처음 읽은 평전은 E. H. 카의 <도스토예프스키>(홍성사, 1979; 기린원, 1989). 가장 손때 묻은 책인데, 지금은 자취를 찾을 수 없다... 

10. 02. 15.  

 

P.S. 이미 상당수의 도스토예프스키 연구서를 갖고 있지만 새로운 책이 나오면 그때마다 탐을 내게 된다. <백치> 연구서로 유명한 로빈 밀러의 <도스토예프스키의 미완의 여정>(2007)도 이번에 발견한 책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여정만 미완이겠는가. 도스토예프스키 읽기의 여정도 언제나 미완이다. 표지가 마음에 든다. 바로 손을 써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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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15 13: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2-16 02: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목동 2010-02-15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스또예프스끼 전집(25권)/열린책들/2000년>중에 백치(상,하권)를 읽었죠. 귀족청년, 퇴역 장군, 장군의 아내, 장군의 세 딸, 지주, 장교(권투선수), 진보성향의 젊은 사상가 등,등장 인물중에 24%가 사상가던데요. 작가의 기준이 외형(제도)보다는 인간의 마음과 생각에 있다는 반증같았습니다.

로쟈 2010-02-16 02:27   좋아요 0 | URL
그래서 후기소설들을 '관념소설'이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연휴 마지막날에 <안나 카레니나> 강의가 있어서 자료를 만들다가 아예 리스트도 만들어둔다. 작년에 여러 종의 번역본이 한꺼번에 출간됐기 때문에 읽을 거리는 풍족하다. 아래는 원월드 클래식의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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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쉬클롭스키 지음, 이강은 옮김 / 나남출판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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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형규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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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카레니나 2 (무선)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형규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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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아이즈 2010-02-12 17:39   좋아요 0 | URL
정녕 이렇게 두꺼운 책인 줄 몰랐다는 것. 민음사 판 1, 2권만 샀는데도 기절하고 싶었어요. 속도가 늦은 편이라 일주일은 꼬박 투자해야 할 것 같은데, 이 책만 읽냐구요? 열 권을 함께 읽는 로쟈님이시니 빨리 읽는 비법도 있을 것 같은데... 그나저나 강의자료 만드시는 것 상상만 해도 부럽네요.
설날 행복하세요.

로쟈 2010-02-15 12:12   좋아요 0 | URL
전혀 부러워하실 일은 아니고, 여기저기 쓴 걸 편집하는 일입니다. 열 권을 읽는다고 더 빨리 읽는 건 아니고, 더 어수선하게 읽는 거지요.^^;

푸른바다 2010-02-12 18:43   좋아요 0 | URL
전 여태 안나 '카레리나'로 알고 있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카레니나'로 군요^^ 3종의 번역본 모두 읽고 비교해 볼 시간과 열정은 없을 듯 싶고, 적어도 한 종은 읽어보고 싶은데 선택이 쉽지 않은 것 같은데요^^ 어떤 걸 기준으로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박형규, 이철 교수님은 원로이신 것 같고, 민음사 판 번역자인 연진희 씨는 상대적으로 젊은 분으로 추측되는 군요^^

즐거운 설날 되시기 바랍니다^^

로쟈 2010-02-15 12:13   좋아요 0 | URL
맘먹고 하지 않으면 발음이 좀 어렵긴 합니다. 연휴가 끝나가네요.^^;

이매지 2010-02-12 19:57   좋아요 0 | URL
아, 정말 작년 연말과 올초에 걸쳐서 안나 카레니나를 읽었는데 정말 뭔가 느릿느릿 읽고, 러시아에 대한 바탕 지식이 없어서 좀 어려운 부분도 있었지만 이게 고전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 읽고 나서 여운이 남는 소설을 정말 오랫만에 만난 듯.

로쟈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로쟈 2010-02-15 12:14   좋아요 0 | URL
좀 지루한 부분도 있지요. 그런 걸 '고전'이라고도 하지만요(목 매달고 싶을 만큼 지루한!).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비로그인 2010-02-12 21:03   좋아요 0 | URL
강의 먼저 듣고 나중에 읽어도 되겠지요? 집이 아닌지라 책 사서 둘 곳이 없네요.

로쟈 2010-02-15 12:15   좋아요 0 | URL
네, 나중에 '다시' 읽으셔도 됩니다.^^

릴케 현상 2010-02-12 23:46   좋아요 0 | URL
아하 다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전 안나 카레니나 수업시간에 읽었어요. 범우사 걸로 봤을 듯한데^^ 기억나는 게... 그 무렵에 여자 친구가 고향 갔다가 서울 올라왔는데 역에 마중 가서 제가 "내 귀가 이상해 보이지 않아?"하고 농담해서 같이 웃었더랬죠.

로쟈 2010-02-15 12:15   좋아요 0 | URL
저도 읽은 건 범우사판입니다. 요즘은 소설가 지망생들도 잘 읽는 듯해요...

목동 2010-02-13 09:27   좋아요 0 | URL
이동은 평행을 깨는 단초가 되는듯 합니다. 지루함, 우연한 만남, 집요한 구애, 불륜, 임신, 이사, 시선, 자살 등은 요즈음 유행하는 진화론적인 표현으로 하면 여성의 유전자와 남성의 유전자의 충돌일듯 싶습니다. 세월이 지나도 인간의 근본벅인 삶의 방식은 변화되지 않을 듯해요. '이탈의 추억'이라는 유전자가 있으려나 싶어요.

로쟈 2010-02-15 12:16   좋아요 0 | URL
잘 다녀오셨나요?^^

목동 2010-02-15 13:52   좋아요 0 | URL
근거리라 인사도 못드렸습니다. 다시 쿨해진(냉냉한) 느낌입니다. 일상은 쪼그리고 앉아 쪼이는 말없는 햇볕같습니다. 올해도 건강하십시오.

빵가게재습격 2010-02-13 16:56   좋아요 0 | URL
문학에는 소양이 빵점인데다가...러시아 문학은 묵직해서 잘 안 펼쳐보게 되네요. 왠지 그런느낌입니다. 19세기의 어느 부르주아 가문에서 태어나 사랑하는 이를 위한 결투를 하루 남겨두고 읽는 책 같은. ^^;; 설날이라 어머님 댁에서 접속했습니다. 올 한 해도 건강하게 잘 지내세요.^^

로쟈 2010-02-15 12:17   좋아요 0 | URL
묵직한 게 장점이죠. 친해지면 묵직한 친구가 생기는 거라서요.^^

2010-02-16 09: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2-16 02: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0-02-17 00:14   좋아요 0 | URL
오프라인 수업신청해 놓고 온라인으로만 선생님 뵙다가 "안나~" 수업 들으러 갔었습니다.
벅찬 감동으로 수업시간내내 귀가 얼어있었네요..
아트앤에 이메일 주소 물어볼까 하다가 여기오게 되었어요.
대충 보니 읽어야 할 책이 엄청많다는..

그래도 이번 러시아 문학기행을 듣게 되어 다행입니다. 러시아 문학만 읽어도 세계문학의 미혹에 헛되이 헛발질 하지 않아도 될듯.. 다독을 못하는 저로선 어떤 다행하고 적합한 위대한 길에 들어섰다는 느낌입니다. 러시아문학을 읽는 콤빠니아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상상해봅니다.

로쟈 2010-02-17 00:18   좋아요 0 | URL
아, 오셨었군요. 러시아문학을 좋아하신다니 저도 반갑습니다.^^ 콤빠니아는 따로 자격이 필요한 건 아닐 테고, 이미 그 길에 들어서신 거 같은데요.^^

비로그인 2010-02-17 00:39   좋아요 0 | URL
어 이렇게 빨리 댓글을..야행성이시군요..
그날 곶감은 잘 들고 가셨는지요? 드리긴 했지만 보자기에 싼 물건을 들고 가기가 좀 뭣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자 제가 다 곤혹스럽던걸요..^^

뒤늦은 인사지만 새해 복많이 받으셔요

로쟈 2010-02-17 00:47   좋아요 0 | URL
아, 곶감은 잘 빼먹고 있습니다.^^ 다시금 감사. 강의후에 귀가하면 자정이 다 돼가는 시간이어서 부득이 '야행성'입니다. 사실 강의가 없는 날도 보통은 2시를 넘기지만요.^^;

비로그인 2010-02-17 12:21   좋아요 0 | URL
헤헤~~ 분신들.. 마음으로 다가오는 치명적인...

lo초우ve 2010-02-17 16:31   좋아요 0 | URL
안나카레니나.. 톨스토이의 작품이군요..무심코 지나쳐왔던..아니, 말로만 듣던..
쿡쿡쿡^^;; 나이들어서 한두권 책을 접하려고보니 어릴때 생각이 나는군요 .어릴때 책 읽고 독후감쓰기.. 정말 어렵고 지겹고 그랬는데 물론 오빠의 반강요였지만..^^;;
어쨌든 ...내용이 어렵나요?? 나도 함 읽어봐야지~~

로쟈 2010-02-17 23:21   좋아요 0 | URL
사랑과 불륜에 관한 내용이니 어렵다고 말하긴 어려울 듯합니다.^^;

lo초우ve 2010-02-18 11:48   좋아요 0 | URL
네.. 로쟈님의 답변 감사합니다 ^^ 늦었지만.. ㅎㅎ 새해 복 많이 받으시구요 건강하시구요 ^^ 소원성취하세요 ^^ 더불어 좋은일 가득 넘쳐나길 바랍니다 ^^
 

펭귄클래식의 체호프 단편집이 출간됐다. <사랑에 관하여>(펭귄클래식코리아, 2010). 아홉 편의 단편을 수록하고 있는데, 초기작으론 <굴>, <진창>, <구세프>, 그리고 중/후기작으론 작가 스스로 '소삼부작'이라고 부른 <상자 속의 사나이>, <산딸기>, <사랑에 관하여>와 러시아의 연출가 카마 긴카스가 '체호프 삼부작'으로 각색/연출하기도 한 <검은 수사>, <로실드의 바이올린>,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등이 포함됐다.  

  

체호프가 남긴 단편들만 하더라도 수백 편에 이르고 짐작에 국내에 소개된 건 수십 편 수준이다. 아직도 읽지 못한, 경험하지 못한 체호프의 세계가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이 이럴 땐 즐거움이다. 펭귄판만 하더라도 단편집이 여러 권인데, 한국어 펭귄판은 일단 한권으로 묶었다. 책이 나온 김에 체호프의 영어본들을 둘러봤는데, 퓅귄판이나 옥스포드판과 다른, 특히 표지가 사뭇 매혹적인 판들이 눈에 띄어서 잠시 눈요기를 했다. 여유만 된다면 순전히 표지만으로라도 소장해두고 싶은 책들이다. 일단 새 옥스포드판.  

  

   

러시아 미술작품들을 표지로 썼다. 새로운 컨셉은 아니지만, 일단 그림들은 좋다. 하지만 내가 더 경탄한 건 원월드 클래식(Oneworld Classics)이란 세계문학전집 시리즈이다. 러시아문학 쪽으론 현재 15권이 나와 있는데, 표지로만 치면 가장 탐나는 시리즈이다. 그 중 체호프의 작품으론 단편집 <상자 속의 여인>과 <사할린 섬>이 출간돼 있다. <사할린 섬>은 나도 갖고 있는데, 한권만으로는 표지의 전체적인 컨셉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어쨌든 <상자 속의 여인>은 가장 맘에 드는 체호프 작품의 표지이다.     

 

 

내친 김에 맘에 드는 표지 몇 개를 더 나열해본다. 

-톨스토이, <세 편의 노벨라> 

   

-도스토예프스키, <여름 인상에 대한 겨울 메모>

-부닌, <어두운 가로수길> 

 

-불가코프, <거장과 마르가리타> 

 

10. 0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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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10-02-11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불가코프 표지 멋져요. 다른 표지들도 멋지네요.

로쟈 2010-02-11 22:07   좋아요 0 | URL
안 그래도 표지 얘길 하려니까 하이드님 생각이 났어요.^^

Kitty 2010-02-12 0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즐찾 브리핑에서 무심코 클릭하면서 하이드님 페이퍼인줄 알았는데 로쟈님 서재로 넘어와서 깜짝 ^^;; 표지들 다 정말 멋지네요~

로쟈 2010-02-12 09:22   좋아요 0 | URL
평범한 표지들만 보다 보니 눈이 번쩍 뜨이더군요...

목동 2010-02-13 1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미지 시대에 책의 겉표지 또한 독자와 중요한 소통의 한 방법같습니다. 아마 출판 기획자가 가장 신경쓰는 부분같기도 하구요.
 

문화웹진 나비에 실은 서평을 옮겨놓는다(http://nabeeya.yes24.com/Archive/archive_view.aspx?CD_MENU=41&bType=&ID_CONTENT=2574). 대니얼 레비틴의 <호모 무지쿠스>(마티, 2009)에 대한 것이다. 웹진이어서 가능한 일이지만 오전에 보낸 원고가 바로 편집돼 올라왔다.     

나비(10. 02. 11) 음악,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

“음악은 ‘귀로 듣는 치즈케이크’다?” 
음악은 왜 존재하는가? 인지심리학자이 레코드 프로듀서이기도 한 대니얼 레비틴의 『호모 무지쿠스』(마티, 2009)보다 먼저 읽은 전중환의 『오래된 연장통』(사이언스북스, 2010)에서 진화심리학자인 저자가 던진 물음이다. “음악은 인간 문화의 중추를 이루고 있지만, 정작 음악이 어떤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진화했는가는 거의 완벽한 미스터리”라는 게 그 물음의 출발점이다. 음악이 인간의 삶에서 행해 온 역할과 음악과 인간의 공진화 과정을 살펴보는 『호모 무지쿠스』의 여정에 들어서기 전에 미리 문제의 윤곽을 살펴보는 게 좋겠다.    

           

“인류학자, 고고학자, 생물학자, 심리학자 모두 인간의 기원을 연구하지만, 음악의 기원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적다”는 게 레비틴의 문제의식이지만, 예외적인 인물도 있었다. 『언어본능』,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등의 저작으로 유명한 진화심리학자 스티븐 핑커다. 그는 음악을 “귀로 듣는 치즈케이크”라고 주장하는 바람에 음악 애호가와 음악학자들에게 큰 파문을 던졌다. 맛있는 치즈케이크라면 좋다는 말일까? 그게 아니다. 전중환의 설명에 따르면, “입으로 맛보는 치즈케이크를 폭식하는 행위가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되지 않듯이, 귀로 듣는 치즈케이크를 애써 만들거나 감상하는 행위도 생존과 번식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즉 음악은 진화의 산물이 아니라 우연적인 부산물(스팬드럴)일 따름이라는 것이다. 



상황을 조금 자세히 들여다보자. 『호모 무지쿠스』의 전작이자 레비틴의 데뷔작 『뇌의 왈츠』(마티, 2008)의 마지막 장 ‘음악본능’에 나오는 얘기다. 음악 지각과 인지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1997년 학술대회가 MIT에서 열렸고 스티븐 핑커가 개막 연설자로 초대됐다. 그는 언어는 명백히 진화적 적응인 반면에 음악은 부산물이란 주장을 펴면서 “음악은 인간이 수행하는 인지작용 가운데 가장 흥미롭지 않은 연구 주제”라고 못을 박았다. 자신의 『언어본능』을 인용하여 그는 이렇게까지 선언했다.   

“생물학적 인과관계로 볼 때 음악은 무용지물이다. 오래 살거나 자손을 보거나 세상을 정확하게 지각하고 예측하려는 목표를 위해 설계되었다는 징후가 전혀 없다. 언어, 시각, 사회적 추론, 신체 능력과 달리 음악은 우리 종에서 사라진다 해도 우리의 삶의 양식에 사실상 아무런 변화도 가져오지 않을 것이다.” 

이 도발적인 주장에 레비틴과 그의 많은 동료들은 당혹스러워했고, ‘음악의 진화적 기원’에 대해 재고하면서 핑커의 주장이 틀렸다는 것을 입증하고자 했다. 그들의 생각으론 첫째, 음악이 비적응이라면 음악 애호가에겐 진화적인 불이익이 있었을 것이고 둘째, 음악은 오랫동안 있어온 현상이 아니어야 했다. 하지만 음악은 인간의 문명과 역사를 같이해 왔고 보편적일뿐더러 영속적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음악은 어떤 점에서 ‘진화적 적응’이라 할 수 있는가? 여러 가설들이 제시된 가운데, 전중환은 음악이 사회적 결속을 강화하는 기능을 한다, 음악은 남성이 여성을 유혹하기 위한 구애행동이다, 음악은 엄마가 갓난아이를 달래는 자장가에서 기원했다 등 세 가지 가설을 간단히 소개한다. 


 
“음악은 ‘부산물’이 아니다. ‘진화적 적응’의 산물이다.”
레비틴은 『뇌의 왈츠』의 마지막 장에서 조금 더 자세하게, 그리고 강하게 음악이 진화의 산물임을 주장하는데, 요점은 이렇다. 모든 인간에게서 발견되며(하나의 종에 널리 퍼져야 한다는 생물학자의 기준을 충족시킨다), 오랫동안 존재해왔고(청각적 치즈케이크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반박한다), 특별한 뇌 구조와 관련된 전담 기억체계가 있으며(모든 인간에게서 관련 뇌 체계가 발달할 때 우리는 진화적 기초를 갖는 것으로 본다), 다른 종의 음악활동과 유사한 면이 있다, 그러므로 음악은 진화적 적응의 산물이다. 그의 두 번째 저작인 『호모 무지쿠스』는 이러한 주장의 확장판이다. 



‘여섯 가지 노래의 세상(The World in Six Songs)’라는 원제대로, 저자는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의 일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온 음악의 갈래를 여섯 가지 유형으로 나눈다. 우애의 노래, 기쁨의 노래, 위로의 노래, 지식의 노래, 종교의 노래, 사랑의 노래가 그 목록이다. 보기에 따라서는 ‘급진적인’ 이 유형분류의 근거를 그는 노래가 갖는 진화적 기능과 역할에서 찾는다. 왜 우애의 노래가 필요했던가? 근육과 동작을 서로 일치시키는 노래와 춤을 통해 초창기 인류 사이에는 강한 유대감이 형성되었을 터이므로 노래는 우애와 사회적 유대의 수단이었다. 왜 기쁨의 노래가 필요했던가? 즐거운 음악을 들으면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의 수치가 증가하여 기분을 좋게 하고 활기를 불어넣으며 스트레스를 줄이고 면역계를 튼튼하게 만들어주었다. 왜 위로의 노래가 필요했던가? 슬픈 노래는 신경안정 호르몬인 프롤락틴이 배출되게 하여 우리의 기분을 전환시켜주었다. 왜 지식의 노래가 필요했던가? 노래와 집단 가창은 지식과 정보를 전수해주어 생존과 번식에 이득을 부여했다. 왜 종교의 노래가 필요했던가? 의식과 종교의 음악은 궁극적으로 개인에게 안전하다는 인식을 주고 자신이 행동의 주인이라는 느낌을 갖게 했다. 왜 사랑의 노래가 필요했던가? 사랑의 노래는 인간의 가장 큰 열망과 고매한 품성을 이야기함으로써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우선적으로 돌보도록 했다. 물론 이러한 능력이 없었다면 오늘 같은 사회는 만들어질 수 없었으리라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이러한 요지를 전달하기 위해서 저자가 동원하는 것은 뇌신경과학, 진화심리학 지식과 함께 음악 애호가이자 프로듀서로서의 풍부한 경험이다. 사실 그의 주장의 많은 부분은 믿음과 추정에 의존하고 있으며, 음악의 진화적 기원은 아직 과학적으로 확실하게 입증된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가 책에서 예시하는 수많은 노래들은 우리가 ‘음악적 인간(호모 무지쿠스)’이며, 친구인 올리버 색스가 명명한 대로 ‘뮤지코필리아’ 곧 ‘음악사랑’이 인간의 본성을 이룬다는 점을 잘 입증해준다(인용된 노래들은 이 책의 인터넷사이트 www.sixsongs.net 에서 들을 수 있다). 대개의 사랑이 그렇지만 음악에 대한 사랑도 못 말리는 사랑이다.  



P.S. 개인적인 발견은 저자가 맨 마지막에 ‘역사상 가장 완벽한 사랑 노래’로 꼽은 마이크 스코트(아일랜드 밴드 워터보이스의 보컬리스트)의 <모두 가져와>(Bring 'Em All In)이다(http://www.youtube.com/watch?v=EuEhb35y2SM). 현란한 기타 스트러밍과 함께 흥얼거리는 노래의 가사는 이렇다.

모두 가져와, 모두 가져와, 모두 가져와
모두 가져와, 모두 가져와, 내 마음속에 받아들이게
잔챙이도 좋고 상어도 좋아
밝은 곳에 있는 녀석도, 어두운 곳에 있는 녀석도 다 가져와 
(…)
용서할 수 없는 것, 되찾을 수 없는 것을 가져와
잃어버린 것, 이름 없는 것을 가져와, 모두가 볼 수 있도록
추방당한 것, 잠들어 있는 것을 가져와
입구에 가져와, 발 옆에 놓아두게

음악을 끔찍이 아끼고  좋아하는 이라면  자신이 사랑하는 음반들 옆에  나란히 꽂아두어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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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HIN 2010-02-11 1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에- "음악은 귀로 듣는 치즈케이크"라니.
전 그 표현도, 풀이도 마음에 드는데요.(웃음)

로쟈 2010-02-11 22:01   좋아요 0 | URL
보기에 따라선 비하하는 의미가 아닐 수도 있겠어요...

L.SHIN 2010-02-12 17:16   좋아요 0 | URL
네,그러니까요.
 

수학책 하나를 찾다가 러시아의 여성수학자 코발레프스카야(코발렙스카야)에 관해 조사하게 됐다. 소피아 코발레프스카야(소냐는 소피아의 애칭이다). 관련자료가 몇 건 검색되지 않는데, 러시아 수학자 하면 로바체프스키나 페렐만을 떠올리게 되는 우리의 상식에 코발레프스카야란 이름도 포함시키면 좋겠다. 알고 보니 그녀의 남편 코발레프스키 또한 저명한 고생물학자였다. 고종석 편집위원은 '사랑없는 결혼'이라고 했지만 짐작엔 '위장결혼'이었다(여성을 불평등한 처지에서 구제하기 위한 위장결혼은 당시 러시아사회의 유행이기도 했다. 체르니셰프스키의 소설 <무엇을 할 것인가>에도 나온다). 아무려나 부부의 지명도로 치자면, 퀴리 부부 다음은 되겠다. 여성저널 일다의 리뷰기사는 페미니즘적 시각의 과학사 <피타고라스의 바지>도 함께 다루고 있다.    

  

한국일보(01. 11. 07) [오늘 속으로] 코발레프스키 

1840년 11월7일 러시아의 동물학자 알렉산드르 코발레프스키가 태어났다. 1901년 몰(歿). 코발레프스키는척추동물과 원색동물(原索動物)의 비교 연구에서 업적을 남겼다. 원색동물이란 원시적 등뼈인 척색(脊索)이 소화기의 등쪽에 있는 바닷동물들을 말한다.멍게가 그 예다. 원색동물과 척추동물을 합해서 척색동물이라고 부른다. 코발레프스키는 동포 생물학자 일리아 메치니코프와 공동으로 발생학과 비교해부학을연구해다윈의 진화론을 보강했다.

학문의 역사에서 코발레프스키가문을 유명하게 만든 것은 동물학자 코발레프스키라기보다는 그의 동생 블라디미르 코발레프스키 부부다. 블라디미르 코발레프스키(1842~1883)는고생물학자로서 모스크바 대학 교수로 일하며 포유류 특히 유제류(有蹄類)의 화석 연구에 커다란 업적을 남겼다. 유제류란 소나 말, 코끼리, 사슴,노루처럼 발끝에 각질의 발굽이 있는 포유류 동물들을 가리킨다. 블라디미르 코발레프스키 역시 형과 마찬가지로다윈의 진화론을 각론적으로 크게 보강한공적이 있다.

블라디미르 코발레프스키의 아내 소냐 코발레프스카야(1850~1891)는 수학자다. 그녀 자신 편미분방정식론과 함수론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겼고 프랑스에서 과학 분야 최고상인 보르댕상을 받기도 했지만, 코발레프스카야는 근대해석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독일 수학자 테오도르 바이어슈트라스와 절친한 사제지간이었던 것으로 유명하다.

1870년대 러시아에서는 여성이 대학에 진학할 수 없었고, 외국 유학도 미혼 여성으로서는 거의 불가능했다. 소냐는 18세에 고생물학자 블라디미르코발레프스키와 사랑없는 결혼을 한뒤 곧바로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그녀는 일생을 독신으로 산 스승 바이어슈트라스의 지적 동지이자 정신적 연인이 되었다.(고종석편집위원)   

일다(05. 02. 14) 남성적 학문의 세계에 뛰어든 여성들

핵 물리학자 페이 에이젠버그-셀러브는 자서전에서 다음과 같이 짓궂게 말한 바 있다. “하버드에건 다른 어느 대학에건, 이류밖에 안 되는 많은 남자교수들이 있다. 나는 이류밖에 안 되는 여성들이 정년직을 받는 것을 보게 되면 비로소 여성에 대한 차별이 없어졌다고 믿겠다.”

그녀의 약력은 왜 그녀가 이런 말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를 정확하게 보여준다. 1950년대에 그녀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하버드 물리학과 과장에게 강사직을 얻을 수 없다는 거절의 말을 들어야 했다. 그녀는 사이클로트론(원자핵 파괴 장치)을 사용하는 실험에 참가하고 있었는데, ‘건물 내 여성출입금지’라는 규칙 때문에 밤에 몰래 실험실에 들어가기도 했다. 물론 에이젠버그-셀러브와 같은 선구적인 연구자 덕택에, 전통적으로 남성의 영역으로 여겨지던 수학, 과학의 영역에서도 성차별이 점차 줄어드는 추세다. 



물리학의 종교적 속성이 여성배제 부추겨
마거릿 버트하임의 <피타고라스의 바지: 여성의 시각에서 본 과학의 사회사>는 수학, 과학이 어떻게 해서 여성배제적인 성격을 확립하게 되었는가를 살펴본다. 또한 역사에 이름을 남긴 소수의 여성물리학자나 천문학자들이 어떻게 차별의 벽을 뛰어넘어 학문적 성과를 남기게 되었는가를 추적한다.

지은이는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수학 및 통계학, 생물학, 화학의 영역에는 여성 연구인력이 절반을 넘었는데도 불구하고 유독 물리학에서는 여성의 비율이 지독하게 낮은 사실을 지적한다. 그리고 그 이유로 물리학의 종교적이고 초월적인 성격을 지목한다.

지은이에 따르면, 물리학은 그 뿌리가 가장 종교와 긴밀하게 얽혀있는 과학이다. 기원전 6세기 이오니아의 철학자 피타고라스는 수를 연구하여 신의 원리를 깨닫고자 하는, 다분히 신비주의적 세계관을 설파했다. 중세 후기 이후 기독교 성직자들은 성서의 신을 수학적 창조주라고 생각했다. 또한 뉴턴을 비롯한 근대 과학자들은 마치 종교를 통해 세상의 진리를 파악하듯, 과학을 통해 세계를 완벽하게 해석하는 ‘사제적인 과학자’ 상을 확립했다.

일반적인 상식과는 달리, 당대 교회는 18세기에 계몽주의가 성행하기 전까지 수리 과학과 상보적인 관계를 유지했던 것이다. 현대의 경우, 아이슈타인에서 스티븐 호킹에 이르기까지 정상급의 현대 물리학자들은 우주를 수학적으로 설명해내려는, 현실 초월적인 시도에 매달리고 있다.

물리학의 현실 초월적 성격은, 신학과 마찬가지로 여성들을 배제시켰다. 중세대학들은 수리 과학을 공부할 수 있는 유일한 교육기관이었으나 기본적으로 성직자들을 양성하는 곳이었으므로 여성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한 여성들은 ‘진리’를 추구하는 남성을 방해하는 ‘하이에나’ 혹은 ‘선동자’들이었다. 1603년에 설립된 초기 과학협회인 린체이 학회에서는 여성과의 관계가 과학적 활동을 저해하는 구속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자진해서 정절을 지킨 사람들이 다수를 차지할 정도였다.

물론 18세기의 여성 물리학자 라우라 바시와 같은 소수 여성들은 헌신적이고 계몽적인 부모나 남편을 통해 과학적 성과를 남길 수 있었다. 그러나 ‘비공식적인’ 방식을 통해 탄생한 여성 과학자들은 남성 과학자들의 비판을 피할 수 없었는데, 심지어 19세기의 위대한 여성 과학자 마리 퀴리마저 그녀의 업적을 모조리 남편의 덕으로 돌리려는 세간의 비난에 맞서 끊임없이 싸워야 했다.

지은이는 물리학의 유사-종교적 속성과 여성배제적인 특성을 동시에 비판한다. 물리학의 현실 초월성은 수학적 법칙에 신비성을 부여하는 유사-종교에 지나지 않으며, 보다 현실에 밀착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그러한 종교적 성격의 물리학 실험이 필요로 하는 공적인 지원이 실로 엄청나기 때문이다.

“무한한 지식욕도 무한한 탐욕만큼이나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이다.” 현대 물리학계가 여성 물리학 연구자들에게 보다 개방된 자세를 취하는 것과 종교적인 속성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것은 보다 개방적이고 평등한 태도를 요구한다는 점에서 비슷한 목표인 셈이다. 이런 비판은 서구 학계뿐만이 아니라 한국의 학계에도 해당될 수 있다. 



19세기 러시아 수학자 소피아 코발렙스카야의 생애 
<피타고라스의 바지>에 등장한 여성수학자와 과학자들은 마리 퀴리를 제외하고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노벨상과 비슷한 위상을 차지할 만한 파리 학술원의 보르당상을 수상한 19세기 러시아 여성 수학자 소피아 코발렙스카야(1850~1891) 또한 그러하다. 독일의 아동학자이자 사학자 코듈라 톨민이 쓴 <소피아 코발렙스카야: 불꽃처럼 살다간 러시아 여성 수학자>는 당대의 여성이 학문이라는 남성의 영역에 뛰어들기 위해 어떤 고난의 관문을 통과해야 했는가를 살펴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19세기라는 격동의 혁명적 시대를 살아간 어느 열정적인 여성의 삶을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책이다.

소피아와 그의 언니 아뉴따는 당대 러시아 귀족 집안의 자녀답게 외국 가정교사 아래서 유럽의 선진화된 학문을 접할 수 있었다. 소피아는 어렸을 때부터 수학이 매혹적인 세계라고 생각했으며 여러 친척과 가정교사들에게 자청해서 수학수업을 받았다. 한편 그녀는 사회 문제에도 관심이 많았다. 당대의 후진적인 러시아 정치 체제를 비판하던 개혁적인 젊은 세대들은 ‘허무주의자’라고 불렸으며, 사회의 위험세력으로 간주됐다. 소피아 역시 ‘허무주의자’로서, 혁명에 대한 애착과 수학연구에 대한 애착은 소피아의 삶에 가장 중요한 구심점 노릇을 했다.

소피아와 언니 아뉴따는 계속 공부하기를 원했지만 러시아에서는 여의치 않았다. 그래서 그녀들은 진보적인 남성과의 ‘위장 결혼’이라는 위험한 선택을 통해 천신만고 끝에 외국으로 공부를 하러 가게 된다. 소피아와 동료들은 새로운 개념의 가족 공동체를 만들었다. 예컨대 소피아가 수학 연구를 해야 할 때 친구가 몇 년씩이나 기꺼이 그녀의 딸에게 엄마 노릇을 대신 해주었던 것이다.

소피아는 파리 꼬뮌에 투신한 언니와 형부를 구하기 위해 현장으로 달려가 구명운동을 펼쳤으며, 남편 블라디미르가 헛된 부자의 꿈에 빠져 사업에 실패한 후 그의 빚을 계속해서 갚기도 했다. 이처럼 소피아와 그녀 주변의 사람들 사이에는 개인의 안위를 뛰어넘어 상대를 위해 애쓰는 열정이 흘렀다.

이런 순수한 열정은 소피아의 학문적 후견인을 자청했던 괴팅겐 대학의 수학교수 바이어슈트라스와 그녀에게 스톡홀름 교수직을 마련해주었던 수학자 미탁-레플레르에게서도 발견된다. 소피아는 여성의 대학 입학이 금지된 러시아를 떠나 유럽으로 ‘유학’을 왔지만, 유럽에서도 여성이 수학수업을 듣는 것은 하늘에 별따기였다. 소피아의 지지자들이 없었다면, 출산과 가족, 남편의 빚에게 계속 신경을 써야 했던 그녀가 연구를 계속하기란 어려웠을 것이다.

유럽에서 ‘변두리’에 속했던 스톡홀름에 자식을 친구에게 맡겨두고 홀로 공부를 온 미망인 소피아에게 보수적인 사람들이 손가락질할 때나 여성에게는 박사학위를 줄 수 없다고 보수적인 대학이 고집할 때 이들은 그녀가 계속 연구를 할 수 있도록 격려했으며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소피아는 친구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저는 남편과 같이 살지 않아요. 어떤 이유에서건 남편과 떨어져 사는 여자는 누구든 착하고 제대로 생각하는 귀부인들의 눈에는 의심스럽고 위험한 사람으로 보이죠. 거기에다 배운 여자들은 다른 누구보다도 훨씬 더 안 좋게 평가되죠.”

이처럼 소피아를 외롭게 한 일상적 관습의 벽은 막강했다. 그녀가 이룬 업적은 그녀 개인의 천재성뿐만이 아니라 비공식적 차원에서 행해진 아낌없는 성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소피야의 일대기는 한 개인이 시대의 장벽을 뛰어넘기 위해서는 진보적이고 보다 유연한 사고방식을 지닌 집단이 주변에서 버팀목 역할을 해주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성차별을 비롯한 모든 종류의 차별이 극복되는 과정에서 일상적인 지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예시이기도 하다.(김윤은미 기자) 

10. 02. 10. 

Софья Ковалевская Софья Ковалевская. Воспоминания

P.S. 러시아에서 출간된 코발레프스카야의 회고록이다. 기사에서 그녀 역시 '허무주의자'였다는 대목이 나오는데, 흥미롭게도 '니힐리스트'(허무주의자)란 중편소설도 남기고 있다. 오른쪽은 <어린시절의 화상>과 <여성 니힐리스트> 두 편을 같이 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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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0-02-10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러시아의경우 성도 남성와 여성에 따라서 격변화를 일으키나요.부부인것으로 알고 있는데 남편은 코발레프스키와 코발레프스카야라고 하네요^^

han86866 2010-02-12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냐 코발레프스카야 이야기를 여기서 보는군요 사실 수학사에서 유명한 여성수학자라고 하면 누가 뭐래도 에미 뇌터가 첫손에 꼽힐겁니다 코발레프스카야가 여성수학자가 드물던 시기에 본격적으로 활동하던 거의 최초의 여성수학자라고 한다면 뇌터는 단지 여성이기때문이 아니라 그업적 자체도 당시(20세기 초중반)활동하던 다른 일급수학자들과 비교해도 발군이었습니다 그 유명한 괴팅엔 수학학단의 일원이었고 오늘날에도 학부 대수학교재에서부터 대학원과정까지 그녀가 남긴 많은 정리들이 연구되고 강의되어지고 있습니다

로쟈 2010-02-15 12:10   좋아요 0 | URL
네, 저로선 '여성'뿐만 아니라 '러시아 수학자'라는 데 관심이 있어서요. 뇌터의 경우도 평전이 소개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