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장바구니에 넣어둔 책의 하나는 앤 노튼의 <정치, 문화, 인간을 움직이는 95개 테제>(앨피, 2010)이다. 일종의 '문화연구 해설집'이라고 소개되는데, 강의준비를 겸하여 읽어보려고 한다. 역자의 책소개 기사가 올라왔기에 먼저 챙겨놓는다.

서울신문(10. 02. 20) 정치는 문화이고, 문화는 곧 정치다  

‘정치, 문화, 인간을 움직이는 95개 테제’(앤 노튼 지음, 오문석 옮김, 앨피 펴냄)라니. 그런 게 있기는 한 건가 하는 의문부터 들 것이다. ‘테제’라는 말부터가 정치적인 냄새를 풀풀 풍기는 이 책은, 실제로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정치학과 교수인 저자가 미국정치학회에 제출한 글에서 출발했다. 그렇다면 정치면 정치지, 왜 문화이고 인간이란 말까지 붙었을까. 그런 의문이 들었다면 일단 이 책을 읽을 준비가 된 것이다. 이 책은 정치는 곧 문화이고, 문화는 곧 정치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물론 국내 출판사에서 ‘인간’이란 인문학의 궁극적인 주제어를 첨가하긴 했지만, 원래 제목에도 정치(학)(politics)와 문화(culture)가 나란히 붙어 있다. 저자가 95개 테제 중 맨 처음에 제시한 것이 “문화는 매트릭스다.”이다. 여기서 말하는 ‘매트릭스’는 어떠한 것도 고립된 채 존재하지 않는 의미와 관계의 ‘자궁’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문화를 어떤 상황의 가변적 요인, 즉 변수(變數)로 간주하는 것은 (의도적인) 무지의 산물이 된다.

왜 그러한가. 문화는 이 사람과 저 사람 사이의 간격이며, 사람과 그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 사이의 간격이기 때문이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는 것이 아니라 ‘문화’가 있는 것이다. 저자가 이처럼 문화와 사람, 곧 우리 삶과 세계를 연결짓는 까닭은, 문화를 자꾸 우리 삶, 특히 정치와 구분지어 생각하려는 모종의 시도들이 횡행하기 때문이다. 그 시도들은 자꾸 문화를 우리 삶과 정치와 분리하여 생각하라고 말한다.

이 책은 그런 시도를 획책하는 특정 집단을 불러내어 그들의 의도를 폭로하고 비판한다. 그들은 바로 미국의 학계, 더 구체적으로는 미국의 주류 학자들이다. 저자는 오늘날 전 세계의 학문계를 선도하는 미국의 주류 학계에 팽배해 있는 ‘사이비’ 문화 연구 행태를 버리고, ‘문화 그 자체’로 문화 연구의 방향을 바로잡으라고 말한다. 미국 학계에 만연한 ‘과학적 연구’에 대한 광적인 ‘미신’이 참된 학문적 ‘신앙’을 대신하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과학적 연구’가 학자들 사이에서 일종의 면죄부처럼 남용되는 경향까지 있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정치, 문화, 인간을 움직이는 95개 테제’(원제 ‘95 Theses on Politics, Cultrue & Method’)가 되었다. 1517년 독일의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가 교회의 면죄부 판매에 맞서 비텐베르크 성 정문에 못 박은 ‘95개조 항의문’처럼, 이 책은 문화 그 자체에 대한 이해를 재점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문화는 단순한 기호나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나’란 존재와 그 주변을 촘촘히 구성하고 있는 물질이자, 삶의 전제 조건이다. 지금 내가 쓰는 글도,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모두 2010년/대한민국/서울 혹은 강원도/사무실 혹은 집이라는 문화적 맥락에 위치해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쯤 되면 이런 의문이 들 것이다.

‘대체 문화란 무엇인가?’ 그에 대한 답이 이 책의 95개 테제에 담겨 있다. 여기서 또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 95개 주장들은 테제, 곧 실천을 전제로 한 ‘운동 강령’이라는 점이다.(오문석 조선대 국문과 교수·번역자) 

10. 0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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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2-20 22:30   좋아요 0 | URL
95개 테제들이 실천을 전제로 한 '운동강령'이라니... 정말 읽고 싶어지는 군요.

미래 작가를 지향하는 사람들로서는 더욱이...

비로그인 2010-02-20 22:29   좋아요 0 | URL
95개 테제중 이런 것들이 눈에 띄어서 이상스레 반가웠습니다.

82. 거짓말과 오류에도 의미가 있다.
86. 문화에는 다양한 시공간의 차원이 있다.
95. 이론은 특수자를 전부 설명할 수 없다.
 

프레시안북에서 나오고 있는 '레볼루션' 시리즈의 2차분이 1년만에 출간됐다. <카스트로: 아바나선언>과 <토머스 제퍼슨: 독립선언문> 두 권. 쿠바혁명과 미국혁명을 대표하는 문건들로서 각각 타리크 알리와 마이클 하트가 해제를 썼다. <독립선언문>에 대해서는 이미 '세계를 뒤흔든 선언' 시리즈 가운데 <세계를 뒤흔든 독립선언서>(그린비, 2005)가 출간돼 있어서 같이 참조할 수 있다. <아바나 선언>은 처음 소개되는 듯싶지만, 카스트로 관련서는 제퍼슨보다 상대적으로 많이 나와 있다. 겸사겸사 리스트를 만들어놓는다.  


5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카스트로 : 아바나 선언
피델 카스트로 지음, 강문구 옮김, 타리크 알리 / 프레시안북 / 2010년 2월
10,000원 → 9,000원(10%할인) / 마일리지 500원(5% 적립)
2010년 02월 20일에 저장
절판
들어라! 미국이여- 카스트로 연설 모음집
피델 카스트로 지음, 강문구 옮김, 이창우 그림 / 산지니 / 2007년 3월
13,000원 → 11,700원(10%할인) / 마일리지 65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2월 4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10년 02월 20일에 저장

피델 카스트로- 마이라이프
피델 카스트로.이냐시오 라모네 지음, 송병선 옮김 / 현대문학 / 2008년 4월
32,000원 → 28,800원(10%할인) / 마일리지 1,600원(5% 적립)
2010년 02월 20일에 저장
절판
토머스 제퍼슨 : 독립선언문
토마스 제퍼슨 지음, 차태서 옮김, 마이클 하트 / 프레시안북 / 2010년 2월
10,000원 → 9,000원(10%할인) / 마일리지 500원(5% 적립)
2010년 02월 20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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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20 12: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2-20 17: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2-20 22: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2-20 22: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2-21 09: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James 2010-02-20 19:33   좋아요 0 | URL
저는 원서의 표지가 너무 마음에 드는 군요!
 

'2월의 읽을 만한 책'(http://blog.aladin.co.kr/mramor/3381664)으로 올려놓기도 한, 프랑스의 저명한 중국학자 프랑수아 줄리앙 읽기 리스트를 만들어놓는다. <무미예찬>(산책자, 2010)에 대한 서평원고를 아침까지 넘겨야 하는 탓에 지금 붙들고 있기도 하다. 사실 진작부터 관심을 갖고 있던 저자라서 그의 나머지 책들도 모두 갖고는 있다. 다만 사정상 같이 훑어보려는 계획은 대폭 축소됐다. 리스트로 입막음을 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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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자에게는 고정관념이 없다 (양장)- 철학의 타자
프랑수아 줄리앙 지음, 박치완.김용석 옮김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09년 12월
29,000원 → 29,000원(0%할인) / 마일리지 1,450원(5% 적립)
2010년 02월 17일에 저장
구판절판
무미 예찬- 고요함의 멋과 싱거움의 맛, '담백한' 중국 문화와 사상의 매혹
프랑수아 줄리앙 지음, 최애리 옮김 / 산책자 / 2010년 1월
14,000원 → 12,600원(10%할인) / 마일리지 700원(5% 적립)
2010년 02월 17일에 저장
절판
In Praise of Blandness: Proceeding from Chinese Thought and Aesthetics (Paperback)
Jullien, Francois / Zone Books / 2007년 9월
41,880원 → 34,340원(18%할인) / 마일리지 1,72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2월 19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10년 02월 17일에 저장

사물의 성향- 중국인의 사유 방식
프랑수아 줄리앙 지음, 박희영 옮김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09년 7월
23,000원 → 23,000원(0%할인) / 마일리지 230원(1% 적립)
*지금 주문하면 "2월 4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10년 02월 17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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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거창하지만, '공지' 페이퍼이다. 수유너머N의 초청을 받아서 내주 화요일(23일) 저녁에 제목으로 내건 주제를 갖고서 발표를 하기로 했다(http://nomadist.org/xe/freeboard/10728).  



주제는 어제 정해서 주최측에 보냈는데, '과거로부터의 교훈'이란 건 <잃어버린 대의를 옹호하며>(2009)의 제2부 제목이기도 하다. 토론자가 책의 역자인 박정수 수유너머 연구원이다.   

아마도 <레닌 재장전>(마티, 2010)과 <지젝이 만난 레닌>(교양인, 2008) 등에서의 레닌론과 <잃어버린 대의를 옹호하며>에서의 혁명론, 포퓰리즘론을 어떻게 엮어서 발표문을 쓰게 될 거 같다. 그것도 써봐야 아는 것이고, 당장은 세 마리 늑대에 쫓기고 있는 형편이어서(처음엔 세 마리 토끼를 내가 쫓는 줄 알았다) 제 시간에 발표문을 작성할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다. 여하튼 주최측의 요청에 따라 공지는 해놓는다.  

10. 0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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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건희주의를 어떻게 넘어설 수 있는가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0-02-23 01:36 
    오늘 저녁에 수유너머N에서 발표하는 '지젝의 레닌주의와 과거로부터의 교훈' 발표문 가운데 일부를 옮겨놓는다. 혹 궁금해 하시는 분들에게 참고가 되면 좋겠고, 나머지 부분은 발표 이후에 다시 정리해서 올려놓을 예정이다.     “우리는 레닌을 반복하고 재장전해야만 한다. 즉 우리는 오늘날의 성좌에서 똑같은 추동력을 되살려내야 한다. 레닌으로의 변증법적 회귀는 "좋았던 옛 혁명기"를 향수 속에서 재연하는 것도, 기회주의적이고
  2. 지젝의 레닌주의와 과거로부터의 풍경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0-04-15 23:55 
    <레닌 재장전>에 대한 서평을 옮겨놓다 보니 지난 2월 수유너머N에서 가졌던 화요토론회 자리가 생각났다. 안 그래도 토론회 장면을 찍은 사진을 홈피에 올려놓았다는 얘기를 얼마 전에 들었던 참이어서 들어가봤다(http://nomadist.org/xe/galary/13552). 이런저런 근심으로 무거운 머리를 잠시 내려놓는다. 발표문은 이미 두 개의 페이퍼로 정리해놓은 바 있으니 참고하시길.    10.
 
 
2010-02-17 00: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2-17 01: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2-17 07: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2-17 01: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0-02-17 0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같은 일반자유시민이 참여해도 되는 건지요?

수유넘어 역시 온라인 강의는 들어보았었는데 참가는 아직 못해 봤어요..

선생님의 로쟈가 어디에서 왔을까.. 처음엔 신기했어요.
저는 나의 여인! 로자 룩셈부르크을 연상했었거든요.
박노자와 로쟈가 러시아에서 온것은 요즘에 알게 된거예요..
살아있다는 게 참 신기하고 재밌죠^^
저는 러시아와 러시아문학에 열광하고 있답니다.
선생님이 얘기해주는 그 모든 캐릭터들의 눈부심이란! 또 광대무변함, 공허함..또 철학이라니 성자라니.. 문학을 놓고 그런 엄청난 이야기를 들을수 있는 곳이 있었다니 그저 대단하기만 해요^^ 올해는 정말 기뻐요~

로쟈 2010-02-17 23:17   좋아요 0 | URL
참가에 제한은 없는 걸로 알아요. 아현역 부근에 있습니다. 올해는 이제 시작인데요.^^

비로그인 2010-02-18 05:32   좋아요 0 | URL
수유넘어N에 가보았는데 엄청난 것 같았어요~

그렇지만.. 저는 이번엔 못갈거 같아요.. 제가 엄청 수줍고~ 또한 히키코모리라서.. 코뮨..!! 설레이는 마음은 있지만 아직은 제 이상 너머에 있네요~~~

그러나 한겨레엔 고고씽~.

로쟈 2010-02-18 21:56   좋아요 0 | URL
자주 뵙겠는데요.^^

비로그인 2010-02-18 22:47   좋아요 0 | URL
저는 선생님 맨날 뵙는 데... 온- 오프라인 동시 강의 정말 좋아요.

주머니에 넣고다니는 기분인걸요.
책을 읽다가... 아무때나...
나만의 즐거운 밀회.ㅋㅋ*^*---

高原 2010-02-18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자샘을 직접뵙고 싶고...참가하려고 하는데 그날까지 한권이라도 읽고가야하는데 어쩔지 모르겠습니다.

로쟈 2010-02-18 21:55   좋아요 0 | URL
두꺼워서 저도 완독은 못한 책들입니다.^^;
 
톨스토이, 도덕에 미치다

몇 시간 전이지만 엊저녁에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에 대한 강의가 있었다. 필요 때문에라도 읽은 책이 석영중 교수의 <톨스토이, 도덕에 미치다>(예담, 2009)이다. 톨스토이의 어린시절과 청년시절에 대해서는 다루고 있지 않지만, 결혼 이후의 삶, 특히 <안나 카레니나>를 쓴 이후 만년의 톨스토이의 삶과 '콩가루 집안' 얘기를 비교적 자세하게 소개해주고 있어서 유익하다. 예전에 읽은 얀코 라브린의 <톨스토이>나 기타 전기에서 미처 읽지 못한 대목들(혹은 잊어먹은 대목들)도 있다. 내친 김에 톨스토이와 관련한 참고문헌 몇 가지를 챙겨놓으려는 생각에서 페이퍼를 적어둔다. 그 전에 <톨스토이, 도덕에 미치다>에 대한 서평기사를 하나 더 읽어둔다. 그의 전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참고로, 현재 한국어로 읽을 수 있는 가장 자세한 평전은 쉬클롭스키의 <레프 톨스토이>(나남, 2009)이다.  

 

한겨레21(09. 11. 13) 오욕의 굴레와 싸운 톨스토이의 고행   

“그는 예술가였지만 예술을 미워했다. 귀족이었지만 귀족을 미워했다. 90권이나 책을 썼지만 말을 믿지 않았다. 결혼을 했지만 결혼 제도를 부정했다. 언제나 육체의 욕구에 시달리면서 금욕을 주장했다. 천재적인 두뇌의 소유자였지만 지성을 증오했다.”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는 이렇게 모순으로 점철된 삶을 살다 갔다. 위대한 작품을 남긴 소설가요, 설득력 있는 우화와 특유의 도덕론으로 ‘인류의 스승’으로 추앙받는 그도 평생 오욕의 굴레에서 고통스러워했다. <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에서 ‘돈’이란 열쇳말로 거장의 철학과 예술세계를 흥미롭게 분석해낸 석영중 고려대 노어노문학과 교수의 신작 <톨스토이, 도덕에 미치다>(예담 펴냄)는 이런 그의 삶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수많은 저작을 중구난방 훑어보는 대신, 지은이는 톨스토이가 삶의 전화점에 섰던 마흔아홉 살에 내놓은 <안나 카레니나>를 중심으로 그의 삶을 들여다본다. 그는 “쉰 살 이전의 톨스토이가 위대한 작가라면, 쉰 살 이후의 톨스토이는 위대한 교사”라고 썼다. 작품의 줄거리는 “고위층 사모님이 남편도 자식도 다 버리고 연하의 남성과 애정 행각을 벌이다가 일이 잘 풀리지 않자 자살한다”는 내용이다. 여주인공 안나는 달려오는 기차에 몸을 던지는 것으로 삶을 마무리한다. ‘불륜을 저질렀다고 해서 꼭 이렇게까지 비참하게 죽어야 할까?’ 지은이는 “소설을 찬찬히 읽다 보면 작가가 여주인공을 죽인 것이 꼭 불륜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고 지적했다.

50살에 ‘위대한 작가’에서 ‘위대한 교사’로
“톨스토이는 여주인공의 죽음을 통해 상류층의 모든 것을, 예컨대 그들의 사고방식과 습관과 생활태도, 사랑과 연애와 결혼, 그리고 심지어 예술관과 먹는 음식까지 비판한다. ‘잘’ 살기 위해서는 그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에 관한 소설인 셈이다.”  

실제 이 작품 집필을 마친 이후 톨스토이는 삶의 방식을 송두리째 바꿨다. 소설 속에서 비판했던 모든 것을 버리고 소박한 삶을 살기 위해 ‘눈물겨운’ 노력을 기울였다. 참되게 살기로 결심한 그가 맨 먼저 한 일은 앞선 삶의 ‘죄상’을 낱낱이 고백하는 <참회록>을 써 이를 만천하에 알리는 것이었다. 이후 그는 ‘잘 사는 법’에 대해 죽는 날까지 집요하게 설파해댔다. “톨스토이는 햄릿처럼 생각하면서 돈키호테처럼 살기로 결심한 사람”이란 평가가 절묘하다.

‘성자’의 반열에 오른 이후에도 톨스토이의 ‘고행’은 그칠 줄 몰랐다. 16살 차이가 나는 톨스토이와 그의 부인 소피야 베르스는 1862년 결혼한 이래, 반세기 만에 ‘죽음이 그들을 갈라놓을 때까지’ 끝없이 부부싸움을 벌인 것으로 유명하다. 흔히 소피야를 소크라테스의 부인 크산티페에 버금가는 ‘악처’로 몰아붙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소피야는 결혼 직후부터 27년 동안 무려 16차례 임신을 했고, 13명의 아이를 낳았다. 30년 가까운 세월을 끊임없는 임신과 출산·수유로 보냈다는 얘기다. 그는 또 악필로 유명한 톨스토이의 원고를 일일이 깔끔하게 정서해준 훌륭한 조력자이기도 했다. 물론 악다구니긴 했지만, ‘콩가루 집안’의 책임을 그에게만 들씌우는 건 부당해 보인다.  

80대 대문호의 가출과 마지막 유언
1910년 10월28일 새벽 톨스토이는 ‘가출’을 감행했고, 20여 일 만에 그는 러시아 서부의 한적한 간이역 아스타포보의 역장 관사에서 생을 마쳤다. 행려 같은 쓸쓸한 죽음은 아니었다. 러시아를 비롯한 전세계가 ‘80대 대문호의 가출’이란 희대의 사건을, 당시 기준으로 보자면 거의 실시간으로 전했다. 그가 마지막 숨을 몰아쉬던 순간에도 관사 밖은 인파로 북적였다. 하지만 남편이 위독하다는 소식에 한달음에 달려간 소피야는 주변의 방해로 임종조차 지키지 못했단다. 기막힌 삶이다.  

“진리를… 나는… 사랑한다.” 톨스토이가 숨지기 전 남긴 마지막 말이다. 그가 실제 ‘진리’를 발견했는지는 알 수 없다. 스스로는 분명 그렇게 믿었을 터다. 어쩌면 그것이 ‘비극’의 씨앗이었는지 모른다.(정인환 기자) 

10. 02. 16.  

P.S. 내가 챙겨두려고 하는 건 참고문헌에 실린 '톨스토이 관련서적' 몇 가지다. 일단 저자가 챙겨놓은 한국어본은 라브린의 <톨스토이>(한길사, 1997)와 딸 타티야나 톨스타야의 <딸이 본 톨스토이><서당, 1988), 그리고 파이지스의 러시아 문화사 <나타샤 댄스>(이카루스미디어, 2005)다. 거기에 영역본으로 제시됐지만 메레지코프스키의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금문, 1996)도 한국어본으로 추가할 수 있다.   

기타 여러 권의 참고문헌이 소개돼 있지만, 나의 관심은 만년의 가족사와 관련된 것이다. 가령, 참고문헌에는 빠져 있지만, 톨스토이의 만년을 다룬 소설로 제이 파리니의 <톨스토이의 마지막 정거장>(궁리, 2004) 같은 것. 이 작품은 작년에 영화화되어 얼마전에 미국에서 개봉된 걸로 돼 있다(예고편은 http://www.youtube.com/watch?v=bTh-vQho7UU 참조). 흠, 헬렌 미렌이 아내 소피야 역을 맡고 있군.    

 

짐작에 영화에서도 핵심은 톨스토이 부부의 불화일 듯싶은데, "좀더 자세한 내용을 원하는 독자라면 이 분야의 고전이라 할 수 있는 <사랑과 증오, 소피야와 레오 톨스토이 부분의 파란만장한 결혼생활>을 읽으면 좋을 것이다."(96쪽)라고 추천되는 책이 있다. 윌리엄 쉬러의 <사랑과 증오>(2007)다.  

2007년에 나온 책이니'고전'이란 얘기는 가장 자세히 다룬 책이란 뜻이겠다(400쪽 분량). 거기에 보태 소피야의 일기도 영역본이 나와 있다.  

 

저자가 주로 참고하고 있는 톨스토이의 전기는 A. N.  윌슨의 <톨스토이>(노튼판 2001)이며, 소피야의 전기로는 앤 에드워즈의 <소냐: 톨스토이 백작부인의 삶>(1981)도 참고문헌 목록에 들어 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톨스토이 연구서는 랑쿠르-라페리에르의 <카우치에 누운 톨스토이(=톨스토이 정신분석)>(2007)와 (저자의 참고문헌에는 빠져 있지만) 구스타프슨의 평전 <레프 톨스토이>(1989)이다. 두 책 모두 러시아어로도 번역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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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벤야민의 마지막 횡단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0-06-12 09:04 
    일간지 리뷰기사를 보다가 모르고 지나갈 뻔한 책을 하나 발견했다. 톨스토이 생애의 마지막 날들을 소설로 옮긴 <톨스토이의 마지막 정거장>(궁리, 2004)의 저자 제이 파리니의 또 다른 전기소설이 출간된 것인데, 이번엔 독일의 비평가 발터 벤야민이다. <벤야민의 마지막 횡단>(솔출판사, 2010). 벤야민의 전기는 몇 권 출간돼 있지만 '전기소설'이라고 하니까 또 감이 다르다. 벤야민의 독자라면 놓치기 아
  2. 톨스토이의 마지막 인생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0-12-06 23:10 
    이미 예고돼 있었지만 톨스토이의 마지막 1년을 다룬 영화 <톨스토이의 마지막 인생>이 내주 개봉된다 한다. 지난달에 서거 100주년을 맞은 이 거장의 삶을 한번쯤 음미해보는 시간이 될 수 있을 듯하다. 덤으로 아내 소피야 역을 맡은 헬렌 미렌의 연기도 기대를 모은다.    한겨레(10. 12. 07) 성자로 박제된 ‘소년’의 마지막 1년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1828~1910)는 &l
 
 
sophie 2010-02-16 0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재를 뒤져보니 <톨스토이의 비밀일기>가 나오네요. 인디북에서 나온 건데 읽으면서 별로 재미는 못 봤지요.

로쟈 2010-02-16 10:45   좋아요 0 | URL
일기 분량도 사실 너무 방대해서 전공자도 읽을 엄두를 내기 어렵습니다. 논문을 쓴다면 모르지만요.^^;

목동 2010-02-17 07:42   좋아요 0 | URL
전에 일기을 읽었어요. 기억에 남는 것은 국내 전시회였죠('04.12.10-'05.3.27). 다시 읽어 보렵니다.

L.SHIN 2010-02-16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보고 싶네요.

목동 2010-02-17 00:24   좋아요 0 | URL
네, 저도 보고 싶습니다

페크pek0501 2010-02-17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귀족이지만 귀족을 미워했다는 톨스토이. 자신의 삶에 사회에 순응하며 살지 않았기에 그의 삶은 모순 투성이일 수밖에 없겠죠. '삶과 사회'와의 마찰 때문에 좋은 글을 뽑아낼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야말로 작가의 저항정신입니다. 마찰과 저항이 있어야 좀더 바람직한 세상에 대한 모색이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한 작가의 고뇌가 만든 그의 저작을 통해 우리를 정신세계를 풍요롭게 했다는 점에서 인류에게 훌륭한 공헌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로쟈 2010-02-17 23:23   좋아요 0 | URL
인류를 위해 공헌하자면 가족들의 희생이 따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