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자 한겨레에 실린 '로쟈의 번역서 읽기'를 옮겨놓는다. 이 칼럼은 4주에 한 차례씩 실리며 첫회에 다룬 건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이다. 그냥 '번역서'에 대한 리뷰면 되는 코너인데, '번역'의 의미에 대해서 한번 더 생각해본다고 애를 쓴 게 됐다. 참고로 '위버멘쉬'란 표기가 '위버멘슈'로 고쳐진 것은 편집부의 손을 거친 때문이다.

    

한겨레(10. 06. 05) 우리, 적어도 ‘말인’은 되지 말자! 

국내에서 출간되는 인문사회과학서의 절반 이상이 번역서이며, 학술교양서의 경우에는 번역서의 비중이 60%를 넘는다. 어지간한 독자에게 ‘번역서 읽기’는 독서의 일상이고 다반사다. 비일비재한 일에 대해 굳이 정색한다면 그건 우리의 독서를 좀 ‘의식화’해보자는 뜻이다. 최소한 절반의 독서는 ‘번역서 읽기’라는 점에 주의를 환기해보자는 것이다. 번역이란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옮기는 일이니 필연적으로 차이를 낳는다. 의미의 불가피한 변형과 왜곡이 빚어지며 경우에 따라서는 새로운 의미가 생산된다. 그래서 번역서 읽기는 변형된 의미를 보정하는 읽기이고, 새로운 의미를 음미하는 읽기이다.

다수의 번역본이 나와 있는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사례로 읽어보자. 주목하고 싶은 것은 두 구절이다. 청하판 니체전집(최승자 옮김)에서 각각 “보라, 나는 너희에게 초인을 가르친다.”와 “그러므로 나 그들에게 가장 경멸스러운 인간에 대해 말하려니, 그것은 곧 최종 인간이다.”라고 옮겨진 대목이다. 여기서 ‘초인’과 ‘최종 인간’은 대립적인 개념으로 독일어의 ‘위버멘슈’(Ubermensch)와 ‘der letzte Mensch’를 옮긴 것이다. 영어로는 보통 ‘슈퍼맨/오버맨’(superman/overman)과 ‘라스트 맨’(last man)으로 옮긴다.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존재라고 말할 때 차라투스트라가 지향으로 삼는 것이 ‘초인’이다. 반면에 ‘최종 인간’은 “우리는 행복을 만들어냈다!”고 자위하고 현실에 안주함으로써 차라투스트라의 경멸을 사는 인간 유형이다.

이 두 단어를 책세상판 니체 전집(정동호 옮김)은 각각 ‘위버멘슈’와 ‘비천하기 짝이 없는 인간’으로 옮겼다. ‘위버멘슈’는 음역한 것이고 ‘비천하기 짝이 없는 인간’은 의역한 것에 가깝다. ‘초인’이란 관례적 번역어가 ‘슈퍼맨’을 연상시킨다고 하여 전공자들은 ‘위버멘슈’란 음역을 선호하는데, 사실 니체의 ‘위버멘슈’를 가장 오용한 사례가 나치 독일이었던 걸 고려하면 궁색한 선택이다. ‘비천하기 짝이 없는 인간’과 구색을 맞춘다면 차라리 ‘넘어가는 인간’(김진석) 같은 ‘파격’을 선택하는 게 낫지 않을까. 



세계문학전집에 포함돼 있는 민음사판(장희창 옮김)에서는 ‘초인’과 ‘말종 인간’을 상대어로 골랐고, 펭귄클래식판(홍성광 옮김)에서는 ‘초인’과 ‘최후의 인간’으로 짝을 이루게 했다. 다른 번역본을 더 살펴보아도 ‘위버멘슈’의 번역은 대략 ‘초인’으로 합의가 돼 있지만, ‘der letzte Mensch’는 번역어가 딱히 정착돼 있지 않은 형편이다. 독자들에겐 다소 불만스러운 상황인데, 개인적으론 중국의 문예이론가 류짜이푸의 <얼굴 찌푸리게 하는 25가지 인간유형>(예문서원)에서 해법을 찾을 수 있었다. 저자가 말하는 ‘25가지 인간유형’의 하나가 바로 ‘초인’의 대응개념인 ‘말인'(末人)이었다. 그에 따르면 “일반인들보다 하급으로 퇴화하여 위축되고 창조력이라고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보잘것없는 인간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말인’이란 번역어를 루쉰이 만들어냈다는 사실이다. 루쉰의 ‘아Q’가 사실 그런 ‘말인’이었다. 중국에서도 ‘최후의 인간'(最後的人)으로 번역된 사례가 있는데, ‘초인’의 대응어가 되기에는 그 의미가 모호하다. 반면에 ‘말인’은 우리에게도 그 의미가 전달되기에 ‘초인’의 상대어로는 최적이다. 니체의 초인사상이 어렵다고들 하지만, ‘초인과 말인’이란 짝으로 접근하면 조금은 쉽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초인 되는 거 어렵지만, 말인은 되지 말자!” 

10. 06. 05. 

P.S. 지면에서 다시 읽어보니 원고에서 한 문장이 빠졌다. 짐작엔 분량 때문이었을 듯싶은데, 빠진 문장은 '말인'에 대한 설명 이후에 '소인'과의 차이를 지적하는 대목이다.  

그에 따르면 “일반인들보다 하급으로 퇴화하여 위축되고 창조력이라고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보잘것없는 인간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들은 천박한 짓을 할 만한 능력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소인’과도 구별된다.

'말인'에 대한 류짜이푸의 설명을 조금 더 보태자면(그는 초인이 '백조'라면 말인은 '까마귀'와 같다는 비유까지 든다), "'소인'은 생리적이거나 지적인 면에서 일반 사람과 동일하지만 품격이 떨어지고 인격이 보잘것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영혼은 살아 숨쉬지 않는 게 아니라 그저 지저분할 뿐이다. 그러나 '말인'은 대부분 우매하면서 선량하다. 그들에게는 천박한 짓을 할 만한 능력이 없다."  

"니체가 말하는 '말인'은 무엇이 사랑이고 무엇이 창조인지, 무엇이 희망이고 무엇이 별인지도 모르는 사람이다. 이들은 위대함을 추구하는 사람들과는 반대쪽에 있으면서 작은 것에 만족하고 앎이 없는 사람들이다."

'말인'이란 번역어를 만든 루쉰은 니체와 달리 이들을 '멸시'하는 대신에 동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동시에 개탄했다. 사실 우리의 처지를 돌아보더라도 그러한 개탄에 이유가 없지 않다. 류짜이푸의 결론은 이렇다. 

'말인'은 지혜가 없는 대신 어느 말에나 순종한다. 힘은 없는 대신 상대방의 기분을 잘 맞춘다. 이렇게 되면 사회적으로 대량의 '바보 언니'가 세세 대대로 뒤를 이을 것이며 미래 사회는 말인이 좌지우지하는 사회가 될 것이다. 이러한 사회의 미래에 멸망의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질 것은 누가 봐도 자명한 일이다. 우리들이 한사코 말인의 대량 출현을 막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1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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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세 2010-06-05 0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잘 봤습니다!! 니체와 홍상수의 절묘한 크로스오버 ^^

로쟈 2010-06-05 08:46   좋아요 0 | URL
'크로스오버 니체'가 돼버렸네요.^^

빵가게재습격 2010-06-05 0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이 너무 과중해지는게 아닌가...좋은 글을 보고도 그런 걱정을 먼저 해 보게 되네요. 건강하시죠?^^

로쟈 2010-06-05 08:48   좋아요 0 | URL
다른 걸 줄이고 있습니다. 건강은 앓아눕지 않을 정도입니다.^^;

미지 2010-06-05 0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정말 날쌘 글입니다!
선거 결과가 좋아서 기분이 좋습니다.
빵가게님 걱정처럼, 건강하시고, 잠시라도 기분 좋게 쉬셨으면 합니다...

로쟈 2010-06-05 08:49   좋아요 0 | URL
네, '말인'들의 선거 결과가 나올까봐 걱정했었는데, 다행입니다...

비로그인 2010-06-05 1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거도 끝나니 초인 씹는 말인들의 르상티망에 대해 더욱 생각하게 됩니다. 근데 르상티망에 대한 적절한 번역어로 뭘 꼽으십니까?

로쟈 2010-06-05 23:08   좋아요 0 | URL
'원한'이라고 하면 어색한가요? 번역어는 사용의 문제라 맞춰가면 되는 건데요...

비로그인 2010-06-07 22:50   좋아요 0 | URL
저야 '업계' 흐름을 잘 모르니까요, 확인차 여쭤 봤습니다.

로쟈 2010-06-07 22:58   좋아요 0 | URL
업게에선 둘다 쓰는 것 같습니다.^^; 아시겠지만, 니체 자신이 독어 대신에 불어 단어를 쓰고 있어서 어떻게 번역해야 하는지 곤란하긴 합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06-05 1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번역된 학술용어의 불일치를 손보고 정리하여 그 결과가 곧 나온다고 하니 기대해 봐도 되겠지요.

로쟈 2010-06-05 23:06   좋아요 0 | URL
번역 학술용어 사전이 나오나요?

노이에자이트 2010-06-06 01:44   좋아요 0 | URL
한국학술단체연합회에서 7년 간 작업하여 데이터 베이스화했답니다.8월부터 인터넷으로 서비스한다네요.예를 들어 a priori를 치면 뜻이 나오는 방식인가 봐요.문과 이과 전부 다 작업했다고 하네요.

로쟈 2010-06-06 08:30   좋아요 0 | URL
그런 중요한 뉴스를 모르고 있었네요.^^;

herenow 2010-06-05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 애매하던 용어가 싹 정리되는 느낌입니다.
위버멘슈, 루쉰, 그리고 말인... 고맙습니다.

로쟈 2010-06-05 23:06   좋아요 0 | URL
도움이 되셨다니 저도 좋네요.^^

Joule 2010-06-06 0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 님 원래 원고대로 말인에 대한 설명이 있었어야 했는데 싶어요. 누락된 상태에서는 말인의 의미가 잘 와닿지 않았는데 편집 누락되었다는 문장들을 읽으니 얼른 이해가 되었어요.

근데, 말인을 '말인종'으로 번역하면 초인은 '초인종'이 되겠네요. 풉.


로쟈 2010-06-06 08:34   좋아요 0 | URL
말인을 정의한 한 문장이 있으니까 아주 없는 건 아닙니다.^^; 굳이 덧붙이면, '말종 인간' 같은 번역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생각해요. 초인/말인은 도덕적인 구분이 아니니까요...

2010-06-07 01: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6-07 10: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6-09 17: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6-09 17: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 '로쟈와 함께하는 러시아문학 여행: 도스토예프스키 깊이 읽기'를 7월에 진행하게 됐다(http://www.hanter21.co.kr/jsp/huser2/educulture/educulture_view.jsp?category=academyGate7&tolclass=&searchword=&subj=F90788&gryear=2010&subjseq=0001). 여러 가지 부담이 있지만 진작에 예고된 것이라 강의 제안을 마다할 수 없었다(올해의 마지막 강의이다). 도스토예프스키 읽기란 주제는 내가 제안한 것인데, 분량상 <지하로부터의 수기>, <죄와 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세 작품을 중심으로 도스토예프스키의 문학세계를 둘러보게 된다. 7월 1일부터 5주간 매주 목요일 저녁 7시 30분-9시 30분까지 진행되며 커리큘럼은 아래와 같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장편소설에 도전해보고 싶었던 분들이라면 참고해보시길.   

1. 7월 1일_ 도스토예프스키의 문학세계  



2. 7월 8일_ <지하로부터의 수기> 읽기 



3. 7월 15일_ <죄와 벌> 읽기 



4. 7월 22일_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읽기(1) 



5. 7월 29일_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읽기(2)

10. 06.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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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보 2010-06-04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출판사는 선택은 번역의 질과 관계가 있나요?

로쟈 2010-06-05 08:44   좋아요 0 | URL
가장 최근에 나온 걸로 골랐습니다...

자꾸때리다 2010-06-04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헉 12마넌...하기사 로쟈님도 땅파먹고 사는 건 아닐테니...

로쟈 2010-06-05 08:43   좋아요 0 | URL
물론 유료강좌입니다.^^;

2010-06-05 00: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6-05 08: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후 2010-07-01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워낙 지독인 탓에 이제막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민음사) 일독했습니다. '매년 재독리스트'에 추가해야겠네요. 죄와벌만큼이나 재미있게 읽었어요. 말미의 작품해설은 대체로 '읽지말자'주의인데 분량이 적어서 읽어봤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비밀이 있더군요. 번역가 김연경님이 선배 '이현우'님께 사의를 언급한 부분을 보고 '아하!'하고 무릎을 쳤습니다. 농입니다.^^

열린책들번역을 먼저 보다가(기존에 죄와벌을 열린책들 번역으로 봤었거든요.) 대화체의 격식이 좀 옛스러워서 민음사로 넘어왔는데 작품 전체적으로 본인에게 맞는 번역서였네요.
위대한 대작을 양질의 번역서로 접할수 있어서 참 다행이었습니다.

재능을 떠나서 저에게 존재하는 도스토예프스키적인 성격을 문장으로 규정할 수 있었네요.
'저열함과 자만심을 아우르는 극단의 심연' ㅜㅜ
날씨가 많이 더워지는데 항상 건강하세요.

로쟈 2010-07-02 00:25   좋아요 0 | URL
아, 역자 후기에 그런 게 있었죠.^^; 오래 전(?) 일이라 깜박 잊고 있었네요. 조만간 저도 이 번역본으로 완독해볼 참입니다...

바람처럼~ 2010-07-02 0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오늘 한겨례 강좌 좋았습니다.
날씨도 더운데 열강을 하셨습니다. ^^
덕분에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 러시아 역사까지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
로쟈님 서재를 뒤져보니 ㅎㅎㅎ 지젝까지도 관심가네요.

여전히 '(인)문학'이 낯선데 올 여름은 맘먹고 읽어보려 합니다.

로쟈 2010-07-02 09:09   좋아요 0 | URL
냉방이 잘 안돼서 '열강'하게 됐습니다.^^; 두툼한 작품들을 이열치열로 읽어보시면 좋은 여름나기가 될 거 같습니다.^^
 

지난 2004년 <갈매기> 공연으로 호평을 얻은 러시아의 연출가 지차트콥스키의 <벚꽃동산>이 지난주부터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공연되고 있다. 내주에는 나도 시간을 내보려고 하는데, 일단은 공연 소개기사와 관람평을 스크랩해놓는다.       

한겨레(10. 05. 28) 희극적이고 비극적인 그 집안

예술의전당이 올해 러시아가 낳은 위대한 소설가이자 극작가 안톤 체호프(1860~1904)의 탄생 150돌을 맞아 그리고리 지차트콥스키(51) 연출의 <벚꽃동산>을 28일~6월13일 토월극장에서 공연한다.

지차트콥스키는 러시아 황금마스크상을 수상한 연출가이다. 이달 초 러시아 말리극장을 이끌고 엘지아트센터에서 <바냐 아저씨>를 선보였던 레프 도진(66)과 더불어 러시아의 최고 현역 연출가로 손꼽히는 인물. 그는 2004년에도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 <갈매기>를 올려 국내 연극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기며 ‘올해의 연극상’, ‘동아연극상 특별상’, ‘올해의 연극 베스트3’을 수상하기도 했다.

체호프는 연극이란 ‘인생 그 자체’이며 인생을 탐구하는 것을 근본 목적으로 삼는다. 그의 4대 희곡 <갈매기>와 <바냐 아저씨>, <세 자매>, <벚꽃동산>에는 일상적이며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그러면서도 알 수 없는 인생의 내적 아이러니가 담겨 있다.

특히 체호프가 죽기 한해 전인 1903년에 쓴 <벚꽃동산>은 19세기 말 러시아 봉건 귀족의 붕괴와 그 과정에서 떠오른 계층 갈등을 그린 작품이다. 과거의 습관과 낭비벽으로 벚꽃동산을 잃는 여지주 라넵스카야 부인과 자립심 없는 그의 오빠 가예프, 농노의 자식으로 부를 일군 로파힌, 가정교사 샤를로타와 수양딸 바랴, 늙은 하인 피르스 등 주변 인물들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과 겹친다.

체호프의 작품은 시대와 역사를 관통하는 동시대성과 해석의 다양함을 제공한다. 실제로 체호프는 <벚꽃동산>을 코미디(희극)라고 생각했고, 1904년 모스크바 예술극장에서 초연한 연출가 스타니슬랍스키는 비극으로 해석했다. 두 사람의 이견은 이 작품의 양면적 성격을 어떻게 연출할 것인가에 대해 후대의 연출자들에게 숙제로 남겨두었다. 따라서 이번 토월극장 무대에서는 사실적이고도 서사적인 무대와 텍스트 자체를 깊이 있게 해석해내는 지차트콥스키의 연출이 더욱 관심을 모은다.  

지차트콥스키는 최근 국내 언론 인터뷰에서 “러시아의 몰락한 귀족 여성 라넵스카야를 기존의 노부인으로 표현하지 않고 세상을 향해 전진하는 당당하고 아름다운 40대 여성으로 그릴 것”이라고 연출의도를 밝혔다.

“체호프 작품을 할 때마다 강하고 깊이있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작품의 등장인물은 사실적이고 역동적인 인물이라서 고정적인 이미지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작품을 읽을수록, 이해할수록 다양한 표정과 특징을 가진 인물들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는 “‘소리는 들려도 받아들이는 것은 다르다’라는 러시아 속담이 있다”며 “작품을 받아들이는 관객마다 그 느낌이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공연에서는 2004년 <갈매기> 공연에서 강렬한 시청각적인 무대효과로 극찬을 받았던 무대디자이너 에밀 카펠류시가 30m에 이르는 토월극장을 깊이있게 입체적으로 사용할 독특한 감각의 무대미술도 기대된다. 또한 원로 연기자 신구씨를 비롯해 지차트콥스키가 까다롭게 뽑은 이혜정, 장재호, 이찬영, 이지혜, 박성민, 안순동, 이춘남, 이안나, 김태균, 이종무, 지니 등 한국 배우들의 연기 또한 관심거리. 한국 공연을 마친 뒤 11월 러시아 볼코프 국제 연극 페스티벌에도 초청돼 본고장인 러시아 관객과도 만난다.(정상영 기자)

경향신문(10. 06. 04) [객석에서]연극 ‘벚꽃동산’ 

막이 오르는 순간, 객석 여기저기에서 “와” 하는 탄성이 새어나왔다. 관객의 시선을 단숨에 잡아끄는 매혹적인 무대였다. 30m가 넘는 깊이를 그대로 살려낸 갈색 톤의 질감 있는 무대. 전면은 널찍하고 뒤로 갈수록 점점 좁아지면서 사다리꼴 모양새를 취했다. 라네프스카야 부인의 오래된 영지 ‘벚꽃동산’에 자리한 대저택의 실내다. 오랜 세월 간직해온 풍요로움과 당당함, 그 저택에서 대를 이어 살아온 숱한 가솔들, 하지만 러시아가 새로운 질서로 재편되면서 점점 쇠락해갈 수밖에 없는 벚꽃동산의 슬픈 운명을 고스란히 담아낸 무대였다. 삐걱대는 나무 틈새로 간신히 스며 들어오는 햇살. 그것은 마치 앓아 누운 노인의 팔목처럼 앙상했다.

지난달 28일 서울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막을 올린 체호프의 <벚꽃동산>(사진). 에밀 카펠류쉬가 디자인한 무대는 기대한 대로 미학적 완성도가 높았다. 그는 6년 전에 같은 장소에서 공연한 체호프의 <갈매기>에서도 그렇게 근사한 무대를 펼쳐보인 적이 있다. 무대의 폭과 깊이를 남김없이 활용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사실과 상징을 적절히 배합해 강렬한 이미지를 만들어냈던 것이다. 이번 무대도 역시 그의 작품으로서 손색이 없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연극은 첫인상의 강렬함을 뒷받침할 만한 뒷심을 별로 보여주지 못했다. 배우들의 덜 익은 연기 탓이었다. 그것이 캐스팅의 실패이거나 연습 부족이었는지, 아니면 연출자 그레고리 지차트콥스키와 한국 출연진 사이의 소통에 문제가 있었던 것인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공연 첫날인 28일, 가예프 역을 맡은 배우 이찬영을 비롯한 몇몇 외에는 어설프게 겉도는 연기를 펼쳤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당연히 앙상블은 무너졌다. 각자의 역할을 제대로 소화하면서 서로 조화를 이뤄내는 앙상블이야말로 체호프 연극의 관건이 아니겠는가? 그렇지 않다면 체호프 연극은 산만하고 시끄러운 소동에 가까워질 가능성이 크다. 체호프는 언제나, 힘주어 말하지 않지만 은근히 뭔가를 이야기한다. 그래서 치밀한 연기와 앙상블이야말로 체호프의 내밀한 속내를 푸는 열쇠다.

우리는 그것을 한 달 전 LG아트센터에서 확인한 바 있다. 러시아의 거장 레프 도진이 연출한 <바냐아저씨>에서였다. 당시 이 연극은 러시아어로 공연됐음에도 관객에게 체호프 연극의 짙은 울림을 전해줬다. 하지만 이번에는 한국어로 공연됐음에도 울림이 짧다. 주지하다시피 올해는 체호프 탄생 150주년. 상반기에 이미 여러 편의 체호프 연극이 공연됐고 관객의 눈높이는 당연히 올라갔다. 이 정도의 <벚꽃동산>으로는 현재의 관객을 충분히 만족시키기 힘들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마지막 장면. 늙은 하인 피르스 역을 맡은 관록의 배우 신구가 휘청거리던 연극의 중심을 간신히 일으켜 세운다. <벚꽃동산>의 마지막 방점이라 할 수 있는 그 적막감을, 배우 신구가 ‘홀몸’으로 보여준다. “인생이 다 지나갔어. 그런데도 도무지 산 것 같지가 않아…. 아무것도 남은 게 없어, 아무것도.”(문학수 선임기자) 

10. 06.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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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K 2010-06-07 1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겨레 현대철학 종강타임때 추천해주신 덕분에 지차트콥스키의 벚꽃동산 잘 보고왔습니다. 로쟈님이 프로그램에 쓰신 글을 읽고나니 왜 체홉을 코미디로 읽게되는지 공감이 가더라구요. 감사합니다.

로쟈 2010-06-07 19:42   좋아요 0 | URL
아, 저도 수요일에 볼 예정인데요. 제가 그런 얘기도 했던가요?^^;
 
죽은 시간강사의 사회

천안함과 선거 정국으로 인해 뉴스가 '묻혔지만' 지난주 25일에 대학의 한 시간강사가 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메일함을 확인해보니 이튿날인 26일 '대학강사교원지위회복과 대학교육정상화 투쟁본부'쪽에서 보낸 메일이 와 있다. 이후에도 이번 사건과 관련한 메일을 몇 차례 더 받았다. 개인적으론 엊그제가 시간강사를 하다가 2003년 자살한 친구의 기일이기도 해서 마음이 더 착잡했다. 대학사회에서 비정규 교수 문제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대부분 외면한다. 나 또한 대학에 한쪽 발을 들여놓고는 있지만 이런 현실을 대할 때마다 '정나미'가 떨어진다(그래서 요즘 나대로의 '자립'과 '안식'을 꿈꾼다.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는). 대학사회의 '암흑의 카르텔'을 다시 한번 질타하는 이광수 교수의 기고문을 스크랩해놓는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교수신문(10. 05. 31) [긴급기고] ‘암흑의 카르텔’ 누가 외면하나  

또 한 분의 비정규 교수‘시간강사’가 자살을 했다. 부모를 앞에 두고, 사랑하는 아내와 두 자식을 곁에 두고 조선대 시간강사 서 아무개 박사(45세, 영어영문학)가 지난 5월 25일 밤 11시 광주 금호동 자신의 아파트에 연탄불을 피워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08년 건국대 시간강사 한경선 박사가 임용비리와 강사 제도를 비판하며 피 끓는 유서를 남긴 채 자살한 지 2년 만의 일이고, 1998년 이래 벌써 여덟 번째의 비극이다. 여덟 번째이지만 이번 서 박사의 비극은 엄청난 충격을 우리에게 뱉어냈다. 그것은 그가 그 동안 빠져나오지 못 한 채 유린당하고 겁탈당한 대학의 임용 구조 속에서 정규직 교수가 저지른 비리를 낱낱이 폭로하고 그 문제를 풀어야 함을 만 천하에 공개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는 최근 2~3개 대학의 전임교수 임용에서 탈락했기 때문에 자살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가 목숨을 걸면서 폭로한 내용은 충격적이라 파장이 쉽게 수그러들지는 않을 것 같다. 가장 충격적인 내용은 ‘B’라고 밝힌 그의 은사에 관한 내용이다. 서 박사에 의하면 그가 B 교수와 공동저자의 명의로 쓴 논문이 대략 54편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논문은 모두 서 박사 자신이 쓴 것이라 했고, 심지어는 B의 제자를 위해 쓴 박사학위 논문도 있고, 석사학위 논문도 있다고 했다. 숫자로 표현된 양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도 있고, B의 입장에서는 일방적으로 매도당했다는 말을 할 수도 있을 것이지만, 나와 같이 그 업종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들은 그의 말이 대개 맞을 것임을 다 알고 있다. 그래서 그가 “‘교수와 제자 =종속관계=교수=개’의 관계를 세상에 알려 주십시오”라고 울부짖은 그 말의 피맺힘을 익히 안다.

대학 교수의 임용을 둘러싸고 저지른 갖은 악행은 널리 알려진 것처럼 재단과 대학 당국에 의한 것만은 아니다. 그들의 비리가 이해할 수 있을 정도라는 뜻이 아니고, 그보다 더 더럽고 악질적이고 그래서 그가 ‘개’(犬)라고 표현할 정도의 짓이 정규직 교수들에 의해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심각하다는 말이다. 그가 개를 셀 때 사용하는 단위인 ‘마리’라는 어휘를 사용하면서까지 질타한 ‘시간강사’에 대한 정규직 교수의 비열함과 잔혹함은 이 업계에서는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 정규직 교수들은 그들의 ‘종’(僕)-서 박사는 자신을 B에게 이렇게 불렀다-에게 논문이나 책을 자신이나 자신의 제자 혹은 자신의 지인을 위해 대필을 시키는 것은 속칭 ‘관행’에 가까울 정도이고, 그 외에 그들에게 저지른 악행이 비일비재하다. 그런 교수 한 ‘마리’에 1억5천만원, 3억원을呼價 한다고 했다. 서 박사 개인이 그런 ‘오퍼’를 받았다고 했다. 이 또한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물론 다수의 교수는 그런 짓과는 거리가 먼, 일반 사회의 이치와 다르지 않다.

돈을 수억이라도 주고, 수 십 편의 논문을 써주고, 몸도 뺏기고 마음도 뺏기면서까지 교수가 되려고 그 많은 시간강사들이 안간힘을 쓰는 것은 그 교수들이 너무나 많은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고, 교수가 된다는 것은 같은 교원에서 위치 이동을 하는 것이 아닌 신분 자체가 달라진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 교수들은 자신들이 교과부나 사학 재단에 대해 피고용주 신분이면서 동시에 시간강사에 대해서는 실질적인 고용주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인간성’, ‘대인관계’ 등의 표현으로 그 시간강사들을 매도하고, 평가하는 카르텔을 강하고 질기게 형성하고 있다. 그 안에서 한 번이라도 찍히면 그 동안 공부하고, 연구하고, 교육하면서, 질기고 모질게 살아 온 인생은 물거품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시간강사’라는 슬픈 이름을 가진 그 비정규 교수들은 정규직 교수에게 반항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한 채 그냥 목숨을 던져 버릴 수밖에 없다. 그 암흑의 카르텔에서 살아나온 자는 아무도 없다. 단언하건데, 비정규 교수 문제에 침묵하고 그 암흑의 카르텔에 저항하지 않은 교수는 지식인이 아니다. 상당수의 교수들이 신자유주의를 반대하고, ‘4대강’과 MB 정부에 대해서 맞싸우며 ‘진보’를 실천하고 있다. 맞고 옳고 바람직한 일이다. KTX 여승무원들의 억울한 주장에 귀기울여주고 함께 싸운 사람들은 그들 진보적 지식인들이다.

그런데 신자유주의와 여승무원 문제에까지 그렇게 치열하게 싸워 나가는 그 진보적 지식인들이 지금 여기 우리가 같이 살고 있는 이 비리와 부정의 틀 안에 짜여 있는 악의 카르텔에 대해서는 절대 침묵이다. 무엇 때문일까. 그들도 그 공존공생,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김상봉 교수의 말을 빌려 말을 하자면, “지금 이곳에서, 비정규 교수 문제를 위해 싸우지 않는 진보 지식인은 가짜다.”(이광수 부산외대·역사학) 

10. 05.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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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01 00: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6-01 00: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스피 2010-06-01 12:13   좋아요 0 | URL
뭐 대학의 정규직 직원(정교수,부교수,조교수,전임강사)등이 신경을 쓰지 않으면 과연 시간 강사 문제가 해결 될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로쟈 2010-06-04 08:55   좋아요 0 | URL
법으로 해결할 수도 있는데, 고등교육법 개정안 매번 발의만 돼고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어요...

2010-06-01 16: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6-04 08: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06-01 21:14   좋아요 0 | URL
아이고...대학원 안 가길 잘했다는 생각입니다.

미미달 2010-06-03 19:59   좋아요 0 | URL
꼭 강사가 되기 위해서 대학원에 가지는 않습니다.
 

오후에 후배의 결혼식에 갔다가 오는 길에 이번주 시사IN을 손에 들었다. '6월의 책꽂이' 가운데 인문사회과학쪽의 서평을 맡았기 때문이다. 대상은 <다시, 민주주의를 말한다>(휴머니스트, 2010). '시민 양성' 혹은 '시민 교육'에 대한 제안에 특별히 주목했는데, 어쩌면 우리는 '시민'에서 조만간 '난민'의 지위로 전락할지도 모른다("난민은 어쩌면 오늘날 생각할 수 있는 인민의 유일한 형상이다"라고 조르조 아감벤은 말했다). 아니 이미 그렇게 대우받고 있는 것인지도... 

시사IN(10. 06. 05) 사실, 민주주의가 밥 먹여준다 

“당신의 민주주의는 안녕하십니까?” 이것은 ‘시민을 위한 민주주의 특강’을 모은 <다시, 민주주의를 말한다>가 던지는 화두다. 민주주의의 안부에 대한 관심은 최장집 교수의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후마니타스) 이후에 줄곧 제기돼온 것이지만, 이명박 정부의 거칠 것 없는 ‘역주행’은 이러한 관심에 실감을 부여한다. 도정일 교수가 여는 글에서 묻고 있듯이, “반세기에 걸친 민주화운동의 성과에도 2008년 이후 한국 민주주의는 어째서 그토록 빠르게, 쉽게, 어이없이 후퇴와 퇴행과 반전을 강요받게 되었는가?” 정말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아니, 문제는 조금 더 심각하다. 도 교수는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문명의 붕괴>에서 암시를 얻어 아예 “사회는 어느 때 망하는가?”란 질문을 던진다. 위기가 닥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할 때, 알고도 대처하지 않거나 못할 때, 틀린 방식으로 대처했을 때, 너무 늦게 대처했을 때 그 사회는 망한다. 그렇다면 당장 시급한 것은 우리사회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하는 것이고, 그에 대한 제대로 된, 너무 늦지 않은 대처를 해야 한다. 그러한 인식과 대처를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이 ‘시민의 양성’이라고 도 교수는 말한다.   

"가만히 있으면 더한 정권도 나온다"
하지만 한국 교육에서 제대로 된 시민교육은 공백 상태다. 6월민주항쟁 이후 한국사회는 형식적 민주화의 길로 접어들었지만 시민 양성이라는 사회민주화의 과제를 소홀히 한 탓에 우리는 여전히 선거철마다 ‘북풍’에 시달리고 “민주주의가 밥 먹여주냐?”란 냉소와 대면하지 않는가. 그런 냉소에 대응하자면, 한홍규 교수의 주장대로 "사실 민주주의가 밥 먹여준다". 1987년 민주항쟁에 뒤이은 노동자 대투쟁의 결과로 노동자들의 살림살이만 아니라 나라의 살림도 좋아졌다는 것이 그 사례다.  

이것은 우리만의 사례가 아니다. 한 사람이 가입한 시민단체 숫자가 10개는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박원순 변호사는 “나는 꿈이 있습니다”로 시작하는 마티 루터 킹 목사의 연설 때 그 앞에 청중 100만명이 있었음을 상기시킨다. 분명 민주주의 사회의 주인은 국민이지만, 그 주인이란 자리는 우리가 주인다운 역할을 해야만, 주인다운 의무를 다해야만 얻을 수 있다. 교훈은 무엇인가? 가만히 있으면 진다는 것이다.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이보다 더한 정권도 나오고, 더한 민주주의의 후퇴도 경험하게 될 겁니다”라고 한 교수는 경고한다.  

그렇기 때문에 대한민국 시민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주체라는 자각을 갖고서 각자가 지금 당장 실천할 수 있는 일을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공부해야 한다. 남북관계가 극단적 대치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요즘이라면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도 긴급한 공부거리다. 원래 사적 이익의 공적 조정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 것이 국가와 정치의 역할이지만 한국 사회에서 실종된 것이 바로 그런 역할이다. 공공성의 실종과 사사화(私事化), 그리고 권력자원이 소수에게 집중되는 과두화와 함께 사회적 특권과 신분이 세습되는 역근대화, 각자가 알아서 먹고살아야 하는 삶의 자영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는 것이 박명림 교수가 진단한 우리사회의 모습이다. “우리는 단지 정부를 민주화했을 뿐인데도 사회의 민주화 혹은 공동체의 민주화를 이루었다고 착각한다"라고 그는 말한다.  

이 착각의 대가가 너무 크다. 하지만 망연자실하여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다. 시민 교육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시민교육은 시민의 삶에 가해지는 고통의 양을 줄이기 위한 교육이고 삶의 의미와 가치와 품위를 드높이기 위한 교육이다”(도정일)라는 주장에 동의한다면 말이다. 다만 너무 늦지 않았기만을 바랄 뿐이다.   

10. 05. 30.  

P.S. '시민'의 주권을 방기할 때 우리는 '난민'으로 전락할 거라고 적었는데, 그 '난민'의 보다 친숙한 표현은 '노예'일 것이다(대부분 놓치곤 하지만 선거는 '합법적' 반란의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런 맥락에서 김종철 선생의 칼럼도 옮겨놓는다. 

한겨레(10. 06. 01) 노예를 위한 변명

요즘 내 주변에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는 이들이 많다. 사는 게 너무 재미없고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그들은 호소한다. 인간이 자유인으로 살아가기 위한 최저 조건인 민주주의의 원칙들이 너무도 노골적으로 파괴되어 가는 모습을 도처에서 목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나 자신도 자포자기 상태에 빠지는 경우가 점점 늘고 있다. 나도 이제 늙었는데, 흉한 꼴 아예 외면하고 조용히 지내다가 이 세상을 하직했으면 하는 생각이 자주 든다. 역사책을 보면 문명이 시작된 뒤 인간의 삶이란 강자의 약자에 대한 끝없는 괴롭힘, 착취와 약탈의 연속이라는 것을 확인하지 않을 수 없다. 어쩌다 민초들의 단결된 저항으로 지배자들이 조금 양보하는 척하지만, 그것은 극히 드문 순간일 뿐, 또다시 무자비한 침탈과 억압과 속임수가 한층 더 교활한 형태로 되풀이되는 것이다. 우리가 아는 역사는 대체로 강자들의 시각으로 작성된 기록이다. 그럼에도 조금만 정신을 차리고 들여다보면 인간사를 관통하는 원리가 ‘악마의 정신’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다. 그래서 이럴 바에야 뭣 땜에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서 피나는 싸움을 해야 하는지, 심각한 회의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이다.

최근에 나는 어떤 젊은 기자한테서, 한때 민주화에 헌신했던 몇몇 원로작가에게 4대강 문제에 대해 발언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거절 이유는 한마디로 피곤하다는 것이었다. 듣고 보니 이해할 만했다. 수십년 동안 민주주의를 위해서 싸웠고, 그 결과 얼마간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이 지켜지는 듯한 세상에 살고 있다는 기분 속에서 노년기를 보내고 있었는데, 이제 순식간에 도로아미타불이 돼버린 그 민주주의를 생각하면 얼마나 서글퍼지고 기운이 빠지겠는가.

게다가 국가권력의 전횡을 근본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것은 민초들이 얼마나 정치적으로 깨어 있느냐에 달렸는데, 유감스럽게도 오늘날 한국에서 가장 결핍되어 있는 게 올바른 ‘정치교육’이 아닌가. 흔히 ‘욕망의 정치’라고 부르는 게 바로 이런 정치교육의 결핍에 따른 불가피한 결과이다. 즉, 안락과 안전에 대한 헛된 꿈 때문에 자유와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우리들 중 다수는 지금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금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절반을 넘는다고는 하지만, 끔찍한 무지 속에 갇혀 있는 사람들도 허다하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 최근 내가 거리에서 만난 한 택시운전사는 우리나라가 물 부족 국가이기 때문에 ‘4대강 사업’이 꼭 필요하다는 견해를 갖고 있었다. 어째서 물 부족 국가라고 생각하느냐는 내 질문에 그는 “물이 부족하기 때문에 요즘 많은 사람들이 생수를 사먹지 않느냐?”고 대답했다. 이 터무니없는 말은 그냥 웃고 넘길 게 아니다. 그 택시운전사를 포함하여 생계유지에 급급한 많은 우리 이웃들은 지금 어용언론 이외에 독립적인 미디어를 접할 기회가 거의 없다는 중대한 문제가 여기에 내포돼 있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의 민주주의가 살아나자면 가령 <한겨레>를 보는 사람이 크게 늘어나야 하지만, 문제는 한겨레 독자들이 생활 속에서 대개 고립되어 있거나 한겨레 독자들하고만 주로 소통하고 지낸다는 점이다. 사실 나 자신도 저 택시운전사의 터무니없는 얘기를 듣고도 더는 응대하지 못했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러나 아마도 나와 같은 승객만 계속해서 만나는 한, 그 택시운전사는 점점 더 자신의 신념을 굳혀갈 것이고, 그 결과 자신의 진정한 이익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권력의 맹목적인 지지자, 즉 ‘노예’로 계속 남아 있을 것이다. 노예는 원래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존재이다. 고통을 느낀다면 그는 자유인이다. 그러나 노예더러 자유인이 되자고 설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육신의 안락과 안전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길들여져 있는 노예에게 자유란 무의미한 것이기 때문이다.(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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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le 2010-05-31 0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타 암기 과목이라고 무시하면 망해요 'ㅅ'

로쟈 2010-06-01 00:46   좋아요 0 | URL
^^

무해한모리군 2010-05-31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 선거를 보면서 몰라서도 아닌거 같고, 이유를 모르겠어요 =.= (땅... 값일까요?)

로쟈 2010-06-01 00:48   좋아요 0 | URL
냉소주의자들은 투표를 안 할테니, 나머진 실제 기득권자를 빼면 자신이 기득권자라고 '착각하는' 이들이죠...

글샘 2010-05-31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민 교육의 중요함을 알고있는 넘들은... 바로 권력을 가진 자들이죠. 그래서 언론과 교육을 그렇게 목숨걸고 휘두르려 하는 거구요.

로쟈 2010-06-01 00:49   좋아요 0 | URL
ㅎㅎ '반시민교옥'의 중요성이라고 안다고 해야할 거 같아요. 조중동이 줄기차게 해대는...

mirror 2010-06-01 0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민교육 운운하면서, 태백시의 한나라당 후보의 지원유세를 한 박원순씨가 과연 민주주의를 지키자고 말할 자격이 있는 지 의문이군요. 시민운동해서 누구의 떡을 더 키우려는지 모르겠습니다. 박원순씨는 시민운동이나 하면서 아름다운 인생 산다는 비난을 받아도 할 말이 없을 것 같습니다. 물론, 박원순씨는 다른 지역에서 각각 무소속도 민주당 후보도 지원했었습니다. 아름다운 공평무사죠.

로쟈 2010-06-01 07:19   좋아요 0 | URL
"이번에 저가 방문하고 지지의 의사표시를 한 지역은 모두 40여군데에 이르고 그 중에 한나라당 후보가 출마한 곳은 두군데에 불과합니다. 나머지는 민주당이나 민주노동당, 무소속, 풀뿌리 후보들입니다. 사실 한나라당 후보는 아주 소수입니다. 어찌보면 너무 편파적이라고 느껴질 정도입니다. 만약 제가 민주당 후보만 지지하고 돌아다녔다면 그것은 정당한 일일까요? 제가 민주당 대표나 민주당 산하의 부설기관이 아닐진대 그것이야말로 웃기는 일이 아닐까요? 한나라당 후보는 모두 악이고 민주당 후보 또는 민주노동당 후보는 모두 선인가요?"라고 하셨네요. 그분의 방식일 텐데, 저도 공감하진 않습니다...

자꾸때리다 2010-06-01 15: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절감합니다. '국민개X끼'론은 한국 네티즌이 만들어 낸 최고의 사회 이론이 아닌가 싶습니다.
(닉네임 옛날 것으로 바꿨습니다.)

픽션들 2010-06-01 2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유주의자라고 착각하는 보수지식인.
기득권 층이라고 착각하는 난민.
기득권 층이라고 착각할 수도 없는 난민.

여기서 마지막 부류의 난민이 어째서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선택을 하는 것인지는,
시민(난민)교육(부재)의 문제겠지요. 자유주의의 칼날을 휘두르는 보수지식인 재의식화 과정, 그런 교양강좌도 있으면 좋겠어요~

미지 2010-06-01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늘 김종철 선생 글 절실히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 자유주의라는 게 참 자기함정인 것 같아요, 박원순씨 보면... 수량적 평등주의에 그렇게 무력하게 넘어가다니요 -- 근본적 사유를 안 하니까 피상적으로 되나봐요... 저도 조심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