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 감옥'에 있다 보면 가끔 '먼 나라'의 책들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최근에 '마지막 왕국' 시리즈의 나머지 책들이 출간된 프랑스 작가 파스칼 키냐르가 그런 '먼 나라'의 작가다. 이 참에 그의 책들을 다 모아놓고 읽고픈 생각마저 든다. 그의 문학세계를 소개한 기사가 있어서 옮겨놓고 리스트도 만들어놓는다.  

  

주간한국(11. 01. 19) 시간과 언어에 대한 독창적 사유

알듯 모를 듯 모호한 말이지만, 매혹적인 말들이 있다. 파스칼 키냐르의 문장이 대개 그러하다. 세상의 모든 아침, 은밀한 생, 혀끝에서 맴도는 이름. 이제는 고유명사처럼 읽히는 이 말들은 그의 책 제목들이다.

파스칼 키냐르. 1948년 프랑스에서 태어난 소설가이자 음악가, 시나리오작가, 번역가, 철학자다. 몇 년 전부터 화두가 된 '통섭'에 가장 어울리는 저자로 꼽힐 듯하다. 음악가 집안 출신의 아버지, 언어학자 집안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식탁에서 오가는 여러 언어(프랑스어, 독일어, 영어, 라틴어, 그리스어)를 습득했고, 여러 악기(피아노, 오르간,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를 익히며 자랐다.  

에마뉘엘 레비나스, 폴 리쾨르 등과 함께 철학공부를 했고, 스물한 살에 첫 작품 <말 더듬는 존재>를 썼다. 육순을 넘긴 지금까지 그 방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숨 쉬듯' 글을 쓰고 있다. 음악(장편<세상의 모든 아침>), 회화(장편 <로마의 테라스>), 언어(장편 <혀끝에서 맴도는 이름>) 등 다양한 코드를 통해 시간과 언어에 대한 독창적 사유를 펼친다.

그의 작품은 일반 독자보다 프로 작가들 사이에서 더 많이 회자된다. 아득하면서도 황홀하게 말하는 파스칼 특유의 화법은 글로 밥 먹고 사는 사람들에게 매혹적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을 터다. 앙드레 지드의 <지상의 양식>처럼, 키냐르의 작품 역시 소설과 에세이, 시와 산문의 경계를 넘나드는 탈장르적인 특징을 보여준다. 그는 전통적인 장르를 파괴하고 라틴어를 비롯해 9개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독창적인 담론을 펼친다. 그러니 그의 소설(소설이라고 하지만 에세이에 가까운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기승전결의 서사구조나 인물이 아니라 언어 그 자체다.

대표작 <은밀한 생>은 어떤가. 화자와 M, 네미 샤틀레가 등장하는 이 소설은 90년대의 이탈리아와 중국, 프랑스와 튀니지, 벨기에 등을 배경으로 한다. 그러나 화자의 기억과 몽상 속에서 소설의 공간은 역사와 신화, 일상을 넘나들며 동서고금의 구석구석으로 확대된다. 기실 줄거리가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한 이 작품은 32장의 정교한 구성을 통해 사유와 삶, 허구와 지식을 하나의 몸 안에 뒤섞는다. 제목처럼 텍스트 자체가 하나의 '은밀한 생'인 것. <은밀한 생>을 비롯해 그의 책은 어느 부분부터 읽어도 무방하다.

작가는 2000년부터 '마지막 왕국' 시리즈를 집필하고 있는데, 2002년 출간한 1권 <떠도는 그림자들>로 공쿠르상을 수상했다. 이 책에서 그는 탈장르적 글쓰기를 통해 독자와 저자의 구분을 없을 없애려는 열망을 보여준다. 바로 이 점이 공쿠르 위원들이 그에게 지지를 보내는 이유(탈장르적 글쓰기)이자 그의 수상을 반대한 이유(공쿠르 심사 대상인 '소설'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프랑스 최고의 작가라는 데는 이견이 없는 듯하다.

지난 주 그의 책 <옛날에 대하여>와 <심연들>이 번역, 출간됐다. '마지막 왕국'시리즈의 2,3권에 해당하는 책들이다. <옛날에 대하여>는 그의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시간에 대한 사유'를 드러내는 작품이다. 여기서 작가는 과거-현재-미래로 나뉜 통상적 시간 개념을 '옛날'과 '옛날 이후인 과거' 등 2개의 개념으로 나누어 사고한다.

<심연들>은 세상의 모든 심연들, 즉 한번 빠지면 나오기 힘든 세계들을 담은 책이다. 빛이 들어오지 않는 심해, 바닥 없는 우물, <팡세>의 파스칼이 죽을 뻔했다 살아난 뇌이이 다리에서 본 생사의 갈림길, 드물게 찾아오는 무아지경의 순간, 독서…. 책은 이런 파편적 사유로 점철된다. '사랑한다, 즉 책을 펼쳐놓고 읽다.'(<은밀한 생> 중에서)는 작가의 말처럼, 서늘하면서 아름다운 그의 글은 넘치는 애정으로 두고두고 곱씹어 읽을 때 제대로 음미할 수 있다.(이윤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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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한 생
파스칼 키냐르 지음, 송의경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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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도는 그림자들
파스칼 키냐르 지음, 송의경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9월
14,000원 → 12,600원(10%할인) / 마일리지 7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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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대하여
파스칼 키냐르 지음, 송의경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12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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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연들
파스칼 키냐르 지음, 류재화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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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20 18: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20 18: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침경 2011-01-20 22:05   좋아요 0 | URL
반가운 소식에 두권의 책을 바로 손에 넣으며 로쟈님도 반가워할거라 생각했습니다..^

로쟈 2011-01-20 22:10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오늘 손에 넣었습니다.^^

귀족온달 2011-02-05 03:09   좋아요 0 | URL
꼭 읽고 싶었던 작가...감사합니다^^

로쟈 2011-02-06 12:14   좋아요 0 | URL
^^
 

지젝의 <폭력이란 무엇인가>(난장이, 2011)에 대한 서평기사 두 편을 옮겨놓는다. 책에 관심은 있지만 얼핏 읽을 엄두가 안 나시는 분들에겐 참고가 될 만하다.   

주간한국(11. 01. 19) 눈에 보이지 않는 폭력에 관심을

MTV철학자, 현존하는 가장 위험한 철학자. 지젝에 붙은 이 수식어들은 현재 그의 위치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1989년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을 통해 영어권 지식사회에 등장한 이후 60권에 달하는 방대한 저서를 줄기차게 써왔고 지금도 한 해 2,3권씩의 책을 쓴다. 그 입담의 원천은 가장 난해한 사상가, 헤겔과 라캉이다. 그는 헤겔을 통해 라캉의 사유를 읽고, 다시 라캉 언어로 헤겔의 사상을 설명한다. 여기에 마르크스와 대중문화가 이론적 틀로 더해진다. 팝음악, 할리우드 영화, 오페라는 그가 자주 인용하는 사례들이다. '마돈나가 싱글 앨범 내듯' 정력적으로 책을 내는데다, 대중문화를 통한 설명 덕분에 지젝은 2000년대 가장 대중적인 사상가 중 하나가 됐다. 



신간 <폭력이란 무엇인가>는 지젝의 이론적 사유를 바탕으로 폭력에 대한 다양한 성찰을 펼쳐놓은 책이다. 저자는 폭력의 개념을 몇 가지로 나눈다. 우선 주관적 폭력, 객관적 폭력이다. 가해의 의미로 쓰이는 일반적 폭력을 '주관적 폭력'이라 칭하고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폭력을 '객관적 폭력'이라 칭한다. 객관적 폭력은 다시 언어를 통해 구현되는 '상징적 폭력'과 경제정치 체계를 통해 만들어지는 '구조적 폭력'으로 나뉜다.

그의 주장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폭력에 대한 우리의 관심이 눈에 보이는 '주관적 폭력'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객관적 폭력' 즉 '상징적 폭력'과 '구조적 폭력'에 두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폭력의 상투적 이미지에 한걸음 물러날 때만, 인간은 폭력에 대해 본격적으로 사유, 성찰할 수 있다는 것.

책은 총 6가지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1장에서는 주관적 폭력과 객관적 폭력의 차이를 설명한다. 2장에서는 폭력의 궁극적 원인이 공포에 있다고, 이웃에 대한 두려움에 있다고 설명한다. 그 공포가 언어 자체에 내재된 폭력의 기초를 이룬다. 3장에서는 테러리즘이 가진 원한이란 감정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 정의에 대해 짚고 넘어간다. 원한은 목표를 성취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목표를 이루는 데 장애물이 될 법한 것들을 어떻게 하면 제거할 수 있는지에 더 큰 관심을 쏟아붓는 도착이다. 4장에서는 관용적 이성의 이율배반에 대해, 5장에서는 사회 지배 이데올로기서의 관용의 한계에 대해 설명한다. 6장에서는 발터 벤야민의 신적 폭력 개념이 가진 해방적 면모를 설명한다.

'이 책에서는 폭력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대신 폭력으로 향하는 여섯 가지의 우회로를 일별해보고자 한다. 폭력의 문제를 삐딱하게 바라보아야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폭력을 직접적으로 건드리게 되면 폭력은 반드시 신비화된다.' (26페이지)

이 책은 지젝 특유의 '변증법적 화술'로 폭력에 대한 성찰을 논하고 있지만, 지젝의 어느 저작보다 명쾌하게 읽힌다. 만평과 영화 등 친근한 소재를 통한 설명과 명쾌해진 번역 덕분이다. 인터넷 서평꾼으로 유명한 로쟈, 이현우 씨의 번역으로 출간됐다.(이윤주기자) 

국제신문(11. 01. 15) 폭력의 실상, 한발 물러서면 제대로 보인다

'괴물 철학자' '현존하는 가장 위험한 철학자'라는 악명(또는 명성)에 걸맞게 슬라보예 지젝(62)의 글은 종횡무진과 성역 침범을 서슴지 않는다. 이번에 번역돼 나온 폭력이란 무엇인가(원제 Violence)도 마찬가지다. 칸트, 니체, 알랭 바디우 같은 서양의 어려운 철학자부터 2005년 파리 이민자 폭동, 같은 해 뉴올리언즈의 허리케인 카트리나 피해와 잇따른 폭력 사태에 대한 호도 등 현실의 사건을 치밀하게 엮어나간다.

지젝이 '폭력이란 무엇인가'에서 먼저 말하는 것은 일단 한 걸음 물러나서 폭력을 보자는 것이다. 그러면서 폭력을 이렇게 분류한다. 먼저 주관적(subjective) 폭력. 테러, 범죄에 대한 전쟁, 폭동, 국제 분쟁처럼 명확히 식별 가능한 행위자가 저지르는 폭력이다. 두번째가 상징적(symbolic) 폭력이다. 인간 사회의 언어 자체에 들어있는 훨씬 근본적인 폭력을 일컫는다. 세번째는 구조적(systemic)폭력이다. 묘하게도 '우리의 경제체계와 정치체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때 나타나는 파국적인 결과'에 해당한다.

두번째와 세번째 폭력은 객관적(objective) 폭력으로 묶을 수 있다. 지젝은 한 걸음 물러나서 보아야 이 같은 폭력의 구조를 식별할 수 있다고 본다. 책 속에 있는 예시를 통해 접근해보자. 자애롭고 선하면서도 부유한 귀족이 있었다. 그런데 그 나라에서 귀족의 횡포가 심해져 억압받던 이들이 혁명을 일으켰다. 혁명은 폭력을 동반한다. 이 귀족도 결국 다른 나라로 추방된다. 자애롭고 선한 귀족은 혼란스럽다. "나는 젊잖은 내 삶을 유지했을 뿐인데, 뭐가 잘못된 거지?"

지젝은 '그의 태도는 자신이 누리던 안락한 생활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구조적 폭력이 지속돼야만 했다는 점에 대해 그가 놀랄 만큼 무감각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고 썼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폭력에만 매달려 폭력에 대해 사유하는 경향이 강한데, 그런 상황에 갇혀서는 "모든 폭력에 대한 반대"를 외치는 것은 이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객관적 폭력을 은폐하기 십상이란 것이 그의 관점이다.

지젝은 책의 전반부에서 영화, 문학, 사건 등을 실례로 들면서 이 같은 주장을 논증해간다. 모두를 품에 안는 척하면서도 결국 그 품안에 안기지 않는 사람은 배제해버리는 기독교의 구조. 이와 유사한 이슬람교. 엄청난 기부를 통해 세계의 위기를 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세계의 위기 자체를 생산하고 있는 세계의 거대 기업과 자선가. 지젝은 때로 깜짝 놀랄 만큼 예리한 시선으로 폭력의 문제에 대한 지평을 넓힌다.

그는 눈에 보이는 주관적 폭력과 싸운다고 무작정 참여와 실천에 뛰어들기 보다 한발짝 물러나 사유할 것을 권한다. 지젝이 책에서 내놓는 대안과 권유는 때로 불온하고 위험해보이거나 잘 이해가 안 가기도 한다. 그의 제안에 굳이 동의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일반 독자에게 이 책은 세상을 휘감고 있는 폭력에 대해 무척 폭넓고 새로운 관점에서 깊이 사유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이 매력이다. 유명한 서평 전문 블로그인 '로쟈의 저공비행'을 운영하는 이현우 씨를 비롯해 김희진 정일권 씨가 함께 한 번역도 생생하고 명쾌해서 좋다.(조봉권기자) 

11. 01. 19.  

P.S. 그래도 <폭력이란 무엇인가>를 혼자 읽기가 버거우신 분이라면 관련강좌의 도움을 얻으셔도 좋겠다. 한겨레교육문화센터(신촌)에서 2월28일부터 4월 4일까지 6주 동안 매주 월요일 저녁(19:30-21:30)에 '로쟈의 인문학 여행 : 슬라보예 지젝, 폭력이란 무엇인가' 강좌를 진행한다(http://www.hanter21.co.kr/jsp/huser2/educulture/educulture_view.jsp?category=academyGate7&tolclass=&searchword=&subj=F90934&gryear=2011&subjseq=0001&p_selmenu=01). 일정은 <폭력이란 무엇인가>의 여섯 장을 일주일에 한 장씩 자세히 읽는 것이다. 참고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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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모스크바의 지젝과 바타유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1-02-11 23:49 
    엊그제 모스크바에 도착해서 아르바트거리에 여장을 풀고 이틀째 '출장일'을 보내고 있다. 6시간의 시차는 일상의 리듬을 약간 이상하게 바꾸어놓았는데, 어제오늘 나는 모스크바 시간으로 새벽 4시에 일어나는 '어얼리 버드' 노릇을 하고 있지만, 한국시간으론 아침10시에 일어나는것이니 한껏 늑장을 부리는 것이기도 하다(그래서 일찍 일어나는 것인지 늦게 일어나는 것인지 헷갈린다).밀린 원고들을 다 싸들고 온 탓에 주로 숙소에 머물러 있다가 어제오늘 낮시간에 내가
 
 
2011-05-11 16: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5-11 23: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무엇이 정의인가>(마티, 2011)에 대한 비교적 자세한 리뷰기사가 올라왔기에 옮겨놓는다. 알라딘에선 비교적 반응이 좋은 편인데, 그래도 <정의란 무엇인가>에는 견줄 바가 아니다. 여전히 베스트셀러 수위권을 달리며 조만간 80만부를 돌파할 거라는 예상이니까. 그 정도면 거의 국민 '교과서' 수준이지 싶다...  

  

서울신문(11. 01. 19) 한국사회 ‘정의란… ’ 샌델 교수에게 말하다

지난해 출판계 최대 화두는 마이클 샌델 미국 하버드대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의 돌풍이었다. 1쇄 1000부만 나가도 많이 나간다는 인문출판 현실에서 70만부 넘게 팔렸으니 경악할 법도 하다. 여기에는 빛과 그림자가 있다. 한편으로는 정의에 대한 타는 목마름이 있었다는 얘기여서 반갑다. 다른 한편으로는 정의에 대한 국내의 수많은 고민들은 외면당하기 일쑤인데 물 건너 유명대학 교수의 논의에 열광하는 기현상에 대한 냉소도 나온다. 



‘무엇이 정의인가-한국사회, 정의란 무엇인가에 답하다’(마티 펴냄)는 ‘정의란’가 불러일으킨 이런 돌풍에 대한 한국인들의 대답이다. 문화평론가인 이택광 경희대 교수와 장정일 소설가를 비롯해 정의론과 법철학 분야를 공부해온 이양수, 김도균, 최원 등 젊은 법철학자와 정치학자, 필명 ‘로쟈’로 유명한 서평블로거 이현우 등 10명의 필자가 참가했다.

먼저 이택광 교수의 결론은 “누구도 이 정의 없는 현실에 대한 책임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지금 여기서 ‘정의란’이라는 책을 읽는다.”는 것이다. ‘정의란’을 읽는 것은 부(不)정의한 세상에 홀로 탈색된 채 서 있고자 하는 욕망이 낳은 일종의 알리바이, 즉 부재증명이라는 것이다.

단적으로 “막걸리보안법 시대도 아닌데 이명박 정권이나 삼성그룹에 대해 정의롭지 못하다고 말하려면, 상당한 오해와 불편을 감수해야만 한다.”는 얘기다. 정의롭지 못하다는 것은 알지만 앞장서서 외칠 자신이 없는 사람들이 책으로 대리만족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 어린 시선이다.

장정일은 더 신랄하다. 그는 “창의적 논문과 정리성 논문이 있다면 샌델의 책은 정리성 논문에 가깝다.”고 정의한 뒤 “도덕에 대한 고민을 잠재적·정치적 가능성에 연결짓지 못하고 너무 일찍 법을 불러낸다.”고 비판한다. 샌델은 자유주의를 비판하면서 그 근거로 공동체 도덕에 기반을 둔 법을 내세운다. 이런 까닭에 한국의 맥락에서 샌델은 법 질서 확립이라는 명분으로 남용될 위험이 있다. “법치를 통한 정의사회-공정사회도 좋다-구현은 어디서 많이 듣던 얘기가 아니던가.”라고 장정일은 반문한다.

비판론자 못지않게 중립적 태도를 취하는 이들의 주장에도 귀 기울일 만하다. 이들은 대체로 샌델이 ‘정의란’를 통해 결론적으로 도출해 내는 공동체주의와 그 이후 샌델의 주장을 미국식 애국주의와 접합한 공동체주의 운동으로 세심하게 구분하는 쪽에 서 있다.

자유주의에 대한 샌델의 공격을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의 대립으로 파악하기보다 자유주의의 부족한 점을 공동체주의가 보완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한 예다. 또 이들은 샌델이 끊임없이 제시하는 사고실험을 그 자체로 비윤리적인 것으로 거부하기보다 철학적인 판단을 압축해서 보여 주는 도구로서 받아들인다.

서평블로거 이현우는 이런 입장에서 ‘정의란’의 돌풍이 불러올 긍정적인 측면에 주목하자고 제안한다. ‘삼성 비자금’ 사건에 대한 재판 결과를 언급하면서 “지금 필요한 것은 샌델 열풍이 아니라 깨어 있는 시민의 반부패 혁명”이라는 김용철(‘삼성을 생각한다’의 저자) 변호사의 주장에 대해 이현우는 되묻는다. “시민들의 의식을 어떻게 깨울 수 있을까.”

이현우는 “내기를 건다면 나는 아직도 우리에겐 더 많은 도덕적 사고의 훈련이 필요하다는 쪽에 걸고 싶다. 70만 독자로도 깨어 있는 시민이 부족하다면 필요한 것은 700만의 독자이고 시민”이라고 단언한다. 이제 막 도덕적 사고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결과를 조금 더 두고 보자는 얘기다.

김도균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아예 다른 차원을 지적한다. 정치학자 샌델이 정치적 공공선에 대해 언급하는 데 치중하다 보니 사회경제적 차원의 문제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정치적인 부분에서는 자유주의 철학을 비판하면서도 사회경제적인 분야에 대해서는 별 언급이 없는 것은 자유주의 원리를 적극 수용하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추측해 본다.”면서 “교육, 의료, 주거, 보육, 노후, 기초소득 보장 같은 복지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론은 이권우 출판평론가의 언급에서 찾을 수 있다. “지금 우리는 책 읽기의 사회학을 검증하는 현장에 서 있다. 책 읽는 한국 사회가 과연 현실을 바꿀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정의란’ 열풍이 또 한번 휩쓸고 지나간 ‘선진’ 미국의 유행에 그치고 말지 아닐지는 우리 자신에게 달렸다는 의미다.(조태성기자) 

11. 01. 19.   

P.S. 파이앤셜뉴스의 '화제의 책' 코너도 옮겨놓는다. <무엇이 정의인가>의 내용을 잘 간추려주고 있다.

파이낸셜뉴스(11. 01. 20) 마이클 샌델의 ‘정의론’ 신드롬을 어떻게 볼 것인가

세간의 화제가 된다는 것은, 곧 기자 회견을 앞두고 있다는 뜻이다. 쏟아지는 질문공세, 눈부신 플래시 세례. 세계 정상급 연기로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건 김연아도, 1996년 은퇴를 앞두고 있던 서태지도, 아들의 병역비리가 드러난 정치인도 다 알고 있었다. 자신이 밟아야 할 다음 순서가 바로 ‘기자회견’이라는 점 말이다. 그들 앞에는 너무도 많은 질문이 놓여 있었다.

70만 독자들의 선택. 무한도전 멤버 중 MBC 서점을 가장 방문하지 않는다는 하하도 귀동냥으로 알고 있는 ‘정의란 무엇인가’. 일명 ‘저스티스’로 회자되고 있는 이 책 역시 우리 사회의 화제가 되었다. 슈퍼스타K 최종무대가 방송된 바 있는 한 대학의 무대는 이 책의 저자, 마이클 샌델을 만나기 위한 이들로 북적거리기도 했다. 무려 4000여 석의 강연장을 연예인이 아니라 바로 ‘철학자’가 채웠다는 사실은 이 책이 단순히 ‘베스트 셀러’ 이상의 의미로 한국사회에 상륙했음을 직감하게 한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누구나 알 만한 베스트 셀러를 부러 거창하게 소개하는 것은, 이 책도 드디어 다음 순서를 밟을 때가 됐음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바로 기자회견. 그 동안 우리는 책 한 권을 앞에 두고 얼마나 많은 수다를 떨었던가. 이 책이 잘 팔리는 이유에서부터, ‘그래서 정의가 도대체 뭐라는 거야?’라는 푸념까지. 우리의 그 모든 궁금증을 반영한 첫 번째 공식질문이 바로 한 권의 책으로 출간되었다. 의미심장하게도, 마이클 샌델의 질문을 그대로 뒤집은 책 ‘무엇이 정의인가?’이다.

이 같은 제목은 ‘정의란 무엇인가’의 열풍에 편승하고자 하는 ‘안일하고도 소박한 상업적 바람’의 연장선에 이 책이 놓여 있다고 오해할 여지도 준다. 동시에 베스트 셀러를 마냥 삐딱하게 보려는 것은 아닌지 염려할 만한 소지도 낳는다. 하지만 절대적으로 얘기하건데 그런 오해와 염려에 대해선 안심해도 좋다. 이 책은 11명의 공저자들이 다양한 방향에서 ‘마이클 샌델의 정의론’을 분석하고 이를 소비하는 한국사회를 독해한다. 샌델에 대해 우호적인 논자들도 있고 비판적인 논자들도 있다.

소설가 장정일은 “정작 읽게 된 이 책의 수준이 고작 맥도날드 매장에서 고등학생들이 햄버거를 먹으며 할 수 있는 잡담에 불과하다”고 다소 감정적으로 말하면서도 샌델의 정의가 일종의 ‘신학’으로 변질될 수 있는 지점을 선명하게 짚어낸다. 꽤 알려진 인터넷 서평꾼 ‘로쟈’는 샌델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정의’ 열풍이 한국사회를 ‘살아있는 정의의 사회’로 만들어 갈 시민들의 도덕적 사고 훈련에 도움이 된다고 옹호한다. 한편 현재 샌델의 책을 번역하고 있는 철학자 이양수는 ‘정의론’을 둘러싼 다양한 입장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샌델이 무엇을 비판하고 있고 어떤 비판을 받고 있는지를 잘 정리해 준다. ‘샌델이란 무엇인가’라는 소제목을 붙여도 좋을만한 글이다. 그리고 정치철학자 최원은 샌델이 중요한 참고점으로 삼고 있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론’을 소개하며 샌델이 아리스토텔레스를 잘못 이해하고 있음을 공박한다.

이들 모두가 탄탄한 논리로 뒷받침되고 압축적으로 배경 지식들을 소개함으로써 우리는 정의에 대한 더욱 진지한 고민에 몰입할 수 있게 된다. 샌델에 대한 찬성과 반대를 넘어서 ‘정의에 대한 더 깊은 고민’이 이 책의 기획 의도이기도 하다. 샌델에 대한 치밀한 분석 끝에 나온 “무엇이 정의인가?”라는 질문에 우리는 마냥 “샌델”이라고 답할 수는 없게 된다. 이 책은 이렇게 샌델이 촉발시킨 ‘정의’라는 화두를 더 의미 있게 증폭한다.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은 다음엔 꼭 이 책을 읽어야 합니다”라고 공식 선언해도, 분명 흠이 되지 않을 것이다.(김성광 예스24 도서1팀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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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1-01-19 12:08   좋아요 0 | URL
저도 이 책을 뒤늦게 사 볼 생각이긴 한데
이런 류의 책이 몇 권은 더 나오지 않을까 해요.
단지 미이클샌델이 이 분야에서 포문을 연 것일뿐
그것이 과연 이 사회를 얼마나 바꿔놓을 수 있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로쟈님 말씀에 동의합니다.
이승만 때부터 한 번도 정의로운 사회에서 살아보지 못한
한국인들 아닙니까?ㅋ

돈케빈 2011-01-19 19:16   좋아요 0 | URL
비트겐슈타인 열풍이나 샹탈 무페 열풍은 기대해 볼 수 없을까요?
'하바드' 세 글자의 힘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자꾸때리다 2011-01-19 20:57   좋아요 0 | URL
그런 열풍은 프랑스에서나...ㅡㅡ;;

philocinema 2011-01-19 21:37   좋아요 0 | URL
한국에서도...
 

오래만에 이주의 관심도서 리스트를 꼽는다. 계기가 된 건 러시아의 심리학자 비고츠키의 <생각과 말>(살림터, 2011)의 출간이다. 비고츠키 책이 처음 나온 건 아니지만 690쪽이란 분량으로 보아 어지간한 글들은 포함한 '선집'으로 보인다. 그게 의의다. 러시아어 원전 번역본도 근간인 걸로 알지만 이 선집은 표지 때문에라도 구비해놓고 싶다. '진화를 넘어선 섹스의 심리학'을 다룬 데이비드 레이의 <욕망의 아내>(황소걸음, 2011)도 이번주 신간인데, 데이비드 버스의 <여자가 섹스를 하는 237가지 이유>(사이언스북스, 2010)에 연이어 읽어봄직하다. 거기에 보관함에 넣어둔 책 몇 권을 더 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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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야에서 삶을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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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아내- 진화를 넘어서는 섹스의 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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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8 22: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19 00: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울신문의 '고전 톡톡 다시 읽기' 연재에서 체르니셰프스키의 <무엇을 할 것인가>가 다뤄졌기에 옮겨놓는다. 이 연재는 수유+너머와 공동기획으로 진행한다고 한다. '코뮨주의'적 삶의 가능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소설이기도 하기에 수유+너머와의 '결합'은 자연스럽다...    

서울신문(11. 01. 17) 체르니셰프스키 ‘무엇을 할 것인가’ 

체르니셰프스키의 ‘무엇을 할 것인가’는 시대와 삶을 질문하는 모든 청년들을 위한 책이다. 작가는 새로운 시대의 자유와 혁명을 말하는데, 놀랍게도 이 과정이 사랑과 결혼을 통해 이루어진다. 바리케이드 앞이나 공장의 파업 현장이 아니라 사랑과 결혼을 통해 혁명을 한다? 그런 혁명이 대체 어떻게 가능한가. 

●‘지하실’에서의 삶
“나는 자유롭고 싶어요!” 소설은 ‘자유’를 향한 베라 파블로브나의 당찬 외침과 함께 시작한다. 하지만 그녀의 외침은 현실 앞에서 공허하기만 하다. 가난하고 비천한 집안 출신의 어린 여성, 19세기 중반 러시아에서 그런 여자에게 허락된 삶이란 자신을 구원해 줄 남자를 기다리거나 하급 노동자가 되는 것뿐이다. 이미 정해진 삶의 행보만이 강요되는 곳, 누구도 다른 삶의 가능성을 말하지 않는 곳, 베라는 이런 자신의 현실을 ‘지하실’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지하실’에는 ‘사랑’이 넘친다. 아니 바로 이 ‘사랑’이 곧 그녀를 구속하는 지하실의 정체다. 흔히 사랑한다면 상대방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의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은 사랑이 아니라 상대에 대한 집착과 소유욕에 불과하다. 베라의 어머니가 모성애를 내세워 자신이 원하는 삶을 딸에게 강요하고, 부잣집 도련님 이반이 오로지 헌신적으로 남편을 보필해줄 여성을 배우자로 찾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모순투성이의 관계를 지속하는 한 우리에게 자유란 불가능하다. 그래서 베라는 이 ‘지하실’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전혀 다른 방식의 사랑의 모험을 감행한다.

●이기적 유물론자의 사랑법
베라와 사랑에 빠지게 될 두 남자 로푸호프와 키르사노프. 그들은 언제나 자신의 이익에 따라 행동하는 이기적 유물론자들이다. 물론 여기서 ‘이익’은 화폐적 척도로 계산되는 무엇이 아니라 존재를 충만하게 하고 삶을 고양시키는 선택을 말한다. 이를 위해 그들은 원하는 것들의 ‘무게를 하나씩 달아’보고 ‘그중에서 가장 유리한 것을 선택’한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동정, 연민, 희생으로 점철된 관계는 서로를 구속하고 괴롭게 한다. 그러니 오로지 저 자신을 위하여 사랑하고, 일하고, 관계하라! 이 이기적 계산법에 따라 베라는 집을 나오고 새로운 시대를 앞당기고자 노력하는 신청년, 로푸호프와 결혼을 한다.

베라와 로푸호프의 사랑은 그 자체가 지하실로부터, 강요된 삶의 행보로부터 탈출하는 일이며 동시에 새로운 삶을 구성하는 일이기도 하다. 두 사람의 부부 관계는 아주 파격적이다. 그들은 서로에 대한 존경과 신뢰를 유지하기 위하여 각방을 썼고, 심지어 ‘중립의 방’이라는 공간을 만들어 외부와 소통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또한 베라는 자신의 취미와 꿈을 살려 가난한 여자들과 함께 운영하는 ‘봉제공장’을 만든다. 구성원 모두가 공장의 주인이기에 그들은 각자의 관심과 능력에 따라 소비조합, 공동주택, 배움터 등의 새로운 관계와 생활들을 조직해 간다. 공장은 이제 단순히 생계를 위한 노동의 현장이 아니다. 그곳은 새로운 관계와 실험 속에서 가난한 여성들이 삶을 바꾸고 존재를 충만하게 하는 자유와 해방의 공간이 되어 있었다. 베라와 로푸호프는 단지 스스로의 자유와 행복을 위해 노력했다. 그런데 그 일련의 행보들이 구체제를 타도하기 위해 바꾸고 외쳤던 바로 그 혁명의 실천이 된 것이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무엇을 할 것인가’의 혁명성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작가는 이제 사회를 바꾸고, 일상을 바꾸는 것을 넘어 존재의 근본적인 고양을 시도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것은 베라와 로푸호프의 결별 과정 속에서 이루어진다.

언제나 그러하듯이 이들의 사랑 또한 머무르지 않는다. 로푸호프의 ‘절친’ 키르사노프와 베라가 사랑에 빠진 것이다. 이 경우 보통은 서로에 대한 극한 분노와 질투, 자기 비하로 얼룩진 파국을 맞이하기 마련이다. ‘영원한 사랑’에 대한 믿음이 온갖 망상들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베라 역시 처음에는 죄책감으로 괴로워하고 자신의 새로운 사랑을 부정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로푸호프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절망에 사로잡히기는커녕 베라를 헤아려 주고 그녀가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수 있도록 적극 돕는다. 심지어 베라와 키르사노프가 타인들로부터 비난받지 않도록 치밀한 자살극을 꾸미기까지 한다. 이렇게까지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사랑의 무상성을 깊이 통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다 거기에 맞는 시간을 갖고 있는 법이오.” “당신은 오직 한 종류의 사랑에 만족했지만 지금은 다른 것을 원하고 있는 게 틀림없어.” 그에게는 이별의 아픔마저도 자신의 삶을 고양시키는 수련의 과정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로푸호프의 노력으로 두 사람은 자기 자신과 정직하게 대면할 수 있었다. 베라는 그동안 자신을 지하실로부터 탈출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 로푸호프에게 의존하여 생활을 꾸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 의존한 채로는 살아갈 수 없다. 자기가 자기 삶의 주인이 되지 못하는 한 사랑과 삶의 변화 앞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이 깨달음을 얻은 베라는 자신의 두 번째 사랑이 단순히 파트너를 바꾼 관계가 아니라 진정으로 독립한 두 남녀의 결합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 그녀는 의사가 되는 수련을 받기로 결심하는데, 당시로선 가히 혁명적인 이 도전은 베라가 자기 존재의 축을 세우는 일이었다. 그녀는 그렇게 모든 의존으로부터 벗어나 자기 삶을 한가운데로 도약시키고 있었다. ‘완전한 독립 없이는 진정한 행복이란 불가능하다.’ 혼자서 가는 사람만이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고, 또 그런 사랑만이 통상적인 삶의 습속을 바꾸는 혁명이 될 수 있다.

무엇을 할 것인가. 시대의 격변 속에서 길을 찾는 모든 청년들에게 체르니셰프스키는 이렇게 답한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그것만이 사랑과 혁명이 조우하는 길이라고.(박수영_수유너머 남산 연구원)   

서울신문(11. 01. 17) [고전톡톡 다시읽기] 체르니셰프스키와 레닌

19세기 중반 러시아. 구체제는 각종 모순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이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차르는 토지개혁령을 시행하지만, 그것은 도리어 민중의 삶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갔다. 아버지 세대는 부르주아적 삶의 양식을 대안으로 제시하지만, 그 역시 이미 유럽 각국에서 한계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렇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니콜라이 체르니셰프스키(Nikolai Chernyshevskii, 1828~1889)는 이 시대적 질문과 온몸으로 대결한 러시아의 작가였다.

체르니셰프스키는 생의 대부분을 감옥에서 보낸다. 그의 나이 서른 다섯, 잡지에 기고한 글들이 지주들의 반발을 사 그만 감옥에 갇히게 되었고, 그 후로 약 20여년을 감옥과 시베리아의 유배지를 전전하다 세상을 떠났다. 노래와 춤으로 가득한 한편의 연애 소설, ‘무엇을 할 것인가’(왼쪽·1863)는 바로 그 감옥에서 완성된 작품이다.

일개 연애소설이 일으킨 사회적 반향은 의외로 엄청났다. 주인공들을 따라 수많은 청년들이 안정된 삶을 박차고 집을 나왔고, 곳곳에서 각종 생활 공동체가 조직되었다. 그리고 약 40년 후, 1917년 러시아 혁명의 대명사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 역시 ‘무엇을 할 것인가’를 만난다. 그는 이 소설을 얼마나 좋아했던지 자신이 쓴 정치 팸플릿에 같은 이름을 붙이기도 한다.

하지만 두 사람을 연결시키는 것은 쉽지 않다. 제국주의의 타도를 외치는 혁명가, 그리고 감옥에서 연애 소설을 쓴 작가. 더군다나 계급투쟁과 전투적 당의 창설 등을 내용으로 하는 레닌의 ‘무엇을 할 것인가’(오른쪽)는 청년들의 사랑과 결혼을 골자로 하는 체르니셰프스키의 소설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하지만 레닌은 체르니셰프스키의 의도를 정확히 간파하고 있었다. 그는 말한다. ‘체르니셰프스키의 가장 위대한 공적은 올바른 마음가짐을 지닌 진지한 사람은 누구나 다 혁명가라는 것을 보여 준 것’ 이라고. 수인의 몸으로 연애소설을 쓴 체르니셰프스키도 대단하지만 거기서 혁명을 읽어낸 레닌 역시 대단할 따름이다.(서울신문·수유+너머 공동기획) 

11. 01. 18.  

P.S. 첨언하자면, 사회소설이 '연애소설'이란 외피를 띠는 것은 당시에 일반적이었다. 투르게네프 소설의 애독자로서 체르니세프스키가 <전날밤>이나 <아버지와 아들>을 염두에 두고 <무엇을 할 것인가>를 썼다는 점도 참고할 수 있다. 더불어, 레닌과 젊은 세대 혁명가들을 열광하게 만든 건 소설에 등장하는 '새로운 인간' 라흐메토프이다. 모든 것을 자신의 의지로 제어할 수 있는 '강철인간' 라흐메토프는 베라/로프호프/키르사노프와는 또 다른 '새로운 혁명가형'을 예고하는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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