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시간의 시차 때문에 모스크바에 와서 가장 피곤이 몰려오는 시간은 밤 9-10시 사이다. 한국시간으론 오전 2-3시로 넘어가는 시간이니 그럴 만하다는 생각도 든다. 잠시 눈을 붙일까 하다가 오늘(어제) 아르바트 거리에 있는 작은 인문서점에서 구한 책 얘기를 조금 부려놓는다. 아래는 아르바트거리의 모습. 지금은 눈이 조금 더 쌓였다. 

작은 서점이긴 해도 문학, 철학, 종교, 역사 쪽 책들과 오래된 문학전집류를 파는 서점이어서 나름대로 챙길 만한 책들이 있었다. 러시아 문학과 문화 관련서를 제외하면 사르트르의 <문학이란 무엇인가>와 에코의 <미네르바의 성냥갑> 등이 더 얹은 책이고, 일차로 계산을 마치고 돌아서려다 직원에게 문의해서 구한 책이 랑시에르와 아감벤의 책 한권씩이다. 그래서 무슨 시리즈는 아니지만 '모스크바의 랑시에르와 아감벤'이란 제목을 붙였다.   

랑시에르와 아감벤은 국내에 나란히 소개됐기 때문에 나로선 같이 떠올리게 되는 면이 있는데(두 사람의 저작을 묶어서 서평을 쓴 적도 있다) 러시아어본도 나란히 구하게 됐다. 그래봐야 러시아어로는 몇 권 번역돼 있지 않다. 랑시에르의 책으론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와 <감성의 분할>이 번역돼 있는 걸 알고 있어서 찾아달라고 했는데(<미학의 무의식>은 2004년에 구입했었다), <감성의 분할>만 꺼내다 주었다. 그것도 어디냐고 냉큼 들고 와서 이제서야 펴보니 <감성의 분할> 외에도 <미학 안의 불편함>과 아직 번역되지 않은 <이미지의 운명>까지 합본된 책이다(264쪽밖에 안됨에도!). 무슨 '횡재'한 기분이다. 아래 왼쪽이 러시아어판 <감성의 분할>이고 오른쪽은 <이미지의 운명>의 영어판 <이미지의 미래>.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는 한번 더 찾아보고 못 구하면 인터넷서점으로 주문할 참이다. 러시아어 아감벤은 랑시에르에 비하면 아직 빈곤한 편이다. 잡지들에는 그의 글이 다수 번역돼 있지만 단행본은 <도래할 공동체>(2008) 달랑 한 권이다. <호모 사케르> 연작이 아직 소개되지 않은 게 좀 의아한 수준. 아래가 <도래할 공동체>의 러시아어본과 영어본의 표지다.  

Грядущее сообщество 

랑시에르나 아감벤의 책 모두 1000부를 찍었으니 전혀 대중적이라고 볼 수 없다. 어지간한 서점에선 구경할 수 없는 게 당연하다. 그에 비하면, 한국에서 랑시에르나 아감벤 '붐'은 비록 한정된 독자층 사이에서 많이 입에 올려지는 정도라고 해도 상당히 예외적이란 느낌이다. 지난 2004년의 기억이지만, 인문학 전공의 이탈리아 유학생에게 아감벤을 아느냐고 물었다가, 누군지 모른다고 해서 내심 신기해 했던 일이 모두 그런 '착시'에서 비롯됐을 것이다(움베르토 에코는 잘 안다고 했다). 그러니 이런 책을 만나면 반가워하는 '외국인'이 러시아 서점 직원에게도 특이하게 보일 법하다. 나는 아주 조용히 서점에서 빠져나왔다... 

11. 0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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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02-14 04: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잠 못 들고 가끔 페이퍼를 끼적여 올리곤 하는 시간에 로쟈님의 글이 올라오니 외려 제가 이곳에서 시차를 느끼는 것만 같네요 ㅋㅋ
어제 올려주신 '모스크바' 서점도 그렇지만 건물들이 새로 지어진 것처럼 깔끔하군요. 돌아오실 때 책만 한 보따리 되는 것 아닌가요?ㅎㅎ^^

로쟈 2011-02-14 15:33   좋아요 0 | URL
눈덮힌 거리는 훨씬 더 깔끔합니다. 비현실적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쉽싸리 2011-02-14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꼭 같은 책을 영어,러시아어,한국어로 읽으면 기분이 어떨까요?
저로서는 평생 경험해보지 못한 기분이고 앞으로도 그럴까 같아 궁금하네요.^^

로쟈 2011-02-14 15:34   좋아요 0 | URL
음, 그게 같은 곡에 대한 각기 다른 연주를 듣는 느낌이에요. 한국어 번역본들간의 차이보다 조금 더 큰 차이로, 아, 같은 곡을 다른 악기로 연주한다고 하면 비슷할 거 같네요...

philocinema 2011-02-14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러시아에서 건강 잘 챙기셔요! 공부는 '몸'으로 하는 거니까요!

로쟈 2011-02-14 15:35   좋아요 0 | URL
네, 예전보다 훨씬 편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일거리만 없다면 좋을 텐데요.^^;

목동 2011-02-14 2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가셨군요. 엉뚱하지만,,, 어젠 영화 한 편을 봤는데요.
'The Concert',,,요.

로쟈 2011-02-15 00:59   좋아요 0 | URL
오긴 했지만 벌써 갈날이 며칠 안 남았습니다...

반딧불이 2011-02-15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러시아에 계시는군요. 늘 고골의 네프스키 거리만을 상상하다가 아르바트 거리를 보니 잠이 확 달아나는 기분이네요.

로쟈 2011-02-16 01:02   좋아요 0 | URL
네프스키는 '대로'라서 비교가 안되죠.^^ 아르바트는 그에 비하면 아담하고 편안한 거리입니다. 1킬로쯤 되려나요. 전철역 한 구간 거리인데, 어슬렁거리기도 좋습니다(기념품가게가 많구요). 겨울엔 물론 사정이 좀 다르지만...
 

한국시간으론 자정이 다 돼 가지만 모스크바는 아직 저녁을 먹기에도 이른 시간이다. 오늘도 낮에 3시간 동안 서점 순례를 했는데, 2004년에 가장 자주 들르던 서점 '모스크바'에 다시 가니 감회가 새로웠다. 하지만 책은 모스크바예술극장 골목에 있는 교재서점(주로 교재들을 판매하는 서점이다)에서 주로 구입했다. 들고 간 돈이 모자라서 모스크바서점엔 한번 더 가볼 참이다. 아래가 모스크바서점이다.

Названы лучшие книжные магазины Москвы  

내가 주로 구하는 책은 러시아문학 작품, 러시아문학 연구서 등 전공관련서와 이론서/철학서의 러시아어 번역서들이다. 연구서와 번역서는 사실 대형서점에 가도 '재미'를 못 보는 수가 많다. 제대로 다 갖춰놓는 서점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교재서점에서 뜻밖에도 들뢰즈/가타의 <천개의 고원> 러시아어판을 발견했다. 작년에 출간된 책이다. 들뢰즈의 책은 대부분이 이미 출간돼 있고, 가타리와의 공저도 <천개의 고원>만 빼고는 대부분 러시아어판이 있는 걸로 안다. 왜 출간이 안 되는지 의아하게 생각하던 차였는데, 예기치않은 장소에 꽂혀 있었다. 가격은 25000원 가량. 아래가 실물이다.   

 

참고로 <안티오이디푸스>의 러시아어판은 2008년에 나왔다. 그리고 <의미의 논리>의 새 번역판도 올해 출간됐다. 우리말로도 <안티오이디푸스>(<앙띠오이디푸스>)의 새 번역판이 올해 나온다고 하므로 '자본주의와 분열증'은 아주 오랜만에 완독을 시도해볼 수 있겠다. <의미의 논리>까지 보태서.   

 

들뢰즈 외에 후설과 하이데거의 책들이 새로운 장정으로 다시 나왔고, 롤랑 바르트와 레비-스트로스의 책도 '아카데미 프로젝트' 시리즈로 다시 나왔다(바르트의 <S/Z>은 오늘 구입했다). 라캉의 세미나도 두어 권 (재)출간됐고(<에크리>는 아직도 러시아어판이 없다). 이채로운 건 테리 이글턴의 <문학이론입문> 러시아어판. 하드카버의 무거운 장정으로 출간돼 있었다('입문서'와는 어울리지 않는!).  

Козел отпущенияНасилие и священное. Издание 2 

르네 지라르의 <희생양>(왼쪽)도 러시아어판이 눈에 띄었다. 작년에 나온 것인데, 너무 비싸서 일단은 다시 꽂아두었다. 좀더 저렴한 곳에서 구입하려고 한다.지라르의 책은 <폭력과 성스러움>(오른쪽)도 작년에 다시 나왔다. 다시 확인해보니 대개의 책은 품절되지만 않았다면 러시아 인터넷서점에서 더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하지만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 그리고 <도스토예프스키> 등은 아직 러시아어로 번역되지 않은 듯 보인다(그의 도스토예프스키론은 <르네 지라르 혹은 폭력의 구조>(나남)에 번역돼 있다). 음, 이런 데 관심을 가진 특이한 한국인이 모스크바의 서점들을 배회하고 있다...  

11. 02. 12.  

P.S. 러시아에 왔으니 러시아 철학서 얘기도 예의상 한마디 해야겠다. 2004년과 비교해서 가장 눈에 띄는 건 로스펜출판사에서 펴내고 있는 '20세기 후반 러시아 철학' 시리즈이다(리스트는 http://www.ozon.ru/context/detail/id/4184947/ 참조). 저작선이 아니라 저자론 모음집이다. 오늘은(쓰다보니 어제가 됐다) 모스크바서점에서 <바흐친>만 구입했는데, 나로선 생소한 철학자도 많이 포함돼 있다. 일단 이름이라도 아는 철학자들의 책은 구해놓으려고 하지만, 당장 <로트만>도 몇 군데 대형서점에선 눈에 띄지 않는다(내주엔 전문서점을 둘러봐야겠다). 한편, 러시아 학자들이 쓴 '20세기 사상가' 시리즈도 예전엔 못 보던 것이다(리스트는 http://www.interpres.ru/catalog/prod_list.php?kod_zhanr=5&kod_seriya=521&page=1 참조). 아래가 <질 들뢰즈>의 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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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1-02-13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택광 씨의 <세계를 뒤흔든 미래주의 선언> 후반부 내용에
펠릭스 가타리와 질 들뢰즈에 대한 언급이 잠깐 있어서
이들 두 사람의 사상에 대해서 급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는데
<안티 오이디푸스>의 새 번역판이 나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네요.
이 책이 출간되면 <천 개의 고원>이랑 함께 질러야겠습니다.

로쟈 2011-02-13 14:13   좋아요 0 | URL
들뢰즈/가타리의 두툼한 평전도 올해 나올 거 같습니다. <안티오이디푸스>가 다시 나오면 '다시 읽기' 붐이 좀 생길거 같기도 합니다...

2011-02-13 11: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2-13 14: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귀족온달 2011-02-13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들뢰즈를 러시아어로 읽으면 어떤 기분이 들까 상상해봅니다....수유/너머 에서 번역했던 자료로도 몽롱했거든요...

로쟈 2011-02-14 03:22   좋아요 0 | URL
한국어 번역으로 명확하지 않은 부분이 있어서 영어본도 구하고 러시아어본도 구하는 것이죠.^^;
 

한국은 늦은 오후로 접어들고 있지만, 모스크바는 아침시간이다. 아침식사를 하고 어제 한국에서 온 대학원생들과 한담을 나누다 방으로 와서 뉴스기사를 검색해본다. 동해안 폭설 소식에 아직 구제역 파동은 끝날 줄을 모르는군. 기사들을 읽다가 칼럼 하나가 인상적이어서 스크랩해놓는다. 구제역 현장의 '농심'을 전달해주고 있다. 살처분되는 돼지들의 사진을 보면 묵시록의 시대가 따로 있는 게 아니란 생각이 든다. '지금, 여기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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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11. 02. 12)[낮은 목소리로]생명의 질서가 무너져간다

구제역 파동이 빨리 끝나야 할 텐데 걱정입니다. 강진은 약 2만6000마리의 소를 키웁니다. 2000농가가 소를 키우니까 평균 13마리 정도 키우는 셈이죠. 구제역 파동이 나면서 소 사육농가의 불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강진읍은 그나마 나은 편이지만 면 단위 식당·상가는 거의 폐업 직전입니다. 밥집도 술집도 파리만 날립니다. 소 사육농가는 명절도 없이 방역을 하루에 두 번씩 합니다. 집안식구들도 내려오지 못하게 하고 축사를 지킵니다. 방역초소를 보면 거의 계엄령 수준입니다. 움푹 파인 도로를 지날 때 상처난 농민 마음을 보는 것 같아 아픕니다. 

구제역은 사람 관계를 단절시킵니다. 서로 만나지 말아야 하고 그게 도리이고 예의입니다. 계모임, 동창회, 작목반 회의, 농민회 총회도 연기됐습니다. 관계의 단절은 결과이고 또 원인이기도 합니다. 자연과 격리된 공장식 축사가 결국 구제역의 원인이고, 생리와 섭리를 무시한 인위적인 양육이 병의 근원입니다. 규모화 농업은 시스템에 의존하는 농업입니다. 제초제와 살충제로 나락을 키우고 항생제와 외국산 사료로 소를 키웁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규모를 유지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현 단계에서 가장 효율적이기 때문입니다. 조물주는 모든 생물을 자연교배 할 수 있게 창조했지만 소는 정자를 수의사가 주입합니다. 임신을 하는 것이 아니고 임신을 시킵니다. 자연이 역사와 진화를 통해 유지했던 생명의 질서가 인간에 의해 제조됩니다. 현대 농법은 자연과 자연의 유기적 순환을, 생명과 생명 간 결합과 관계를, 사람과 생물 간 교감을, 사람과 사람 간 나눔과 소통을 단절시킵니다.

  

인간관계도 끊어내는 구제역
사람들은 흔히 ‘질서를 지킵시다’라고 말하면 줄을 잘 서는 것으로 생각합니다만 자연의 질서는 관계를 잘 맺는 것입니다. 쌀 미(米)자를 보면 위 아래로 사람손이 여든여덟번 간다는 말이 되지만, 가운데 십자를 기준으로 사방에서 협력해야 한 톨의 쌀이 나온다고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늘과 땅, 사람과 씨앗이 제대로 관계를 맺어야 생명이 탄생합니다. 관계는 소유의 개념이 아닙니다. 서로 존중하고 섭리를 이해하고 생명의 원리를 보장하는 것이 관계의 시작입니다.

구제역 사태로 약 350만마리의 생명이 살처분됐습니다. 조류인플루엔자까지 합치면 약 1000만마리의 생명이 죽었습니다. 생매장하는 장면이 생중계되고 있습니다. 인간이 동물을 소유하고 그들의 운명을 결정할 권한과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오만과 독선이 생매장의 철학적 바탕입니다. 살처분 말고 다른 대안이 있는가. 모르겠습니다. 다른 방법이 있는가를 저는 모릅니다만 자연이 부여한 생명을 인위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는 인간의 오판이 병의 원인이고 그 결과라는 사실은 숨길 수 없습니다. 살처분 주사를 맞은 어린 송아지가 어미소 젖을 물고 죽었다는 농민의 울음 섞인 인터뷰를 보았습니다. 소 27마리를 매장한 농민이 결국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죽음의 잔치를 빨리 끝내야 합니다. 그리고 되돌아봐야 합니다. 우리가 말하는 효율과 경쟁력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똑똑히 보고 성찰해야 합니다.

가축 묻고 강 파는 ‘포클레인 정치’
자연의 질서를 파괴하는 4대강 사업이 속도전의 기세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생명에 대한 무지를 넘어 생명을 무시하는 정책 입안자들의 서류놀음이 죽음의 잔치를 부추깁니다. 용산참사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시위는 그저 처리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사람을 불태웠습니다. 동물을 살처분하는 포클레인과 4대강을 파는 포클레인과 경찰을 진입시킨 컨테이너가 한국 사회를 인정사정없는, 피도 눈물도 없는 죽음의 나라로 만들고 있습니다. 삼호주얼리호 선원들이 무사히 귀국해서 다행이고 선장이 빨리 회복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그러나 배에 뚫린 무수한 총탄자국을 보면서, 우리 가족이 있는 배에 저렇게 많은 총을 난사한 저들의 작전이라는 것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과연 그 배에 국회의원이나 재벌 총수들이 인질로 있었다면 저런 작전을 벌일 수 있었겠는가 묻습니다. 대통령의 가족이 배에 있었다면….

돈을 벌기는 어려워도 잃기는 순간입니다. 여러 해 동안 쌓은 사람 간의 신의도 잃기는 순간입니다. 세상사 다 그렇습니다. 하물며 생명은 끊어지면 그것으로 끝장입니다. 그래서 소중하게 겸손하게 조심스럽게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결정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생명을 다루는 일에 정치적 이해관계, 경제적 타산 이딴 거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강광석 | 전농 강진군 정책실장)  

11. 0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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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와 함께 '폭력이란 무엇인가' 읽기

엊그제 모스크바에 도착해서 아르바트거리에 여장을 풀고 이틀째 '출장일'을 보내고 있다. 6시간의 시차는 일상의 리듬을 약간 이상하게 바꾸어놓았는데, 어제오늘 나는 모스크바 시간으로 새벽 4시에 일어나는 '어얼리 버드' 노릇을 하고 있지만, 한국시간으론 아침 10시에 일어나는 것이니 한껏 늑장을 부리는 것이기도 하다(그래서 일찍 일어나는 것인지 늦게 일어나는 것인지 헷갈린다).  

Жижек в Кембридже: «Изнасиловали? Давайте обсудим» 

밀린 원고들을 다 싸들고 온 탓에 주로 숙소에 머물러 있다가 어제오늘 낮시간에 내가 한 일이라곤 두 곳의 서점에 들른 것 정도다. 어제는 루뱐카역의 비블리오-글로부스에 들렀고, 오늘은 아르바트의 돔-끄니기에 들렀다. 6년 전엔 비블리오-글로부스가 더 낫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더 흡족한 쪽은 돔-끄니기이다. 이유야 별것 아니다. 지젝의 <폭력에 대하여>(2010)를 우연히 발견했기 때문이다. <폭력이란 무엇인가>(난장이, 2011) 말이다. 아래가 러시아어본이다.  

 

나는 몰랐던 사실인데, 작년에 유로파란 출판사에서 두 명의 역자가 공역해 펴냈다. 분량은 184쪽. 나로선 한국어본 공역에 참여한데다 이달말부터 한겨레문화센터에서의 강의도 있기 때문에 책의 의미가 각별하다.  

러시아 책값도 그간에 더 올라서 이젠 한국 책들과 별 차이가 없는 것처럼 여겨지는데, <폭력에 대하여>도 250루블(1만원)을 주고 샀다(다른 서점의 정가를 보니 189루블 정도에도 구입할 수 있었다. 여전히 책값은 서점마다 천차만별이다). 

<폭력에 대하여>와 함께 돔-끄니기가 점수를 딴 건 조르주 바타이유 때문인데, <저주의 몫>이란 제목으로 <종교의 이론>(우리말 번역은 <어떻게 인간적 상황에서 벗어날 것인가>), <에로티즘>이 합본된 책이다. 책값은 685루블(27,500원 가량). 세권 값이라고 생각하면 나름 괜찮은 편이다. 6년전엔 바타유의 소설집을 구했었는데, 이 이론서는 2006년에 나왔다.   

그밖에도 책은 여러 권 샀지만(전공서와 영화책을 빼면 슬로터다이크의 <냉소적 이성 비판>, 푸코의 <임상의학의 탄생>, 라캉의 <세미나2> 등이 오늘 구한 책이다) 이 두 권 때문에 어제의 실망을 좀 만회했다... 

오랜만에 모스크바에 왔지만, 짧은 체류에다가 매인 일들이 많아서 예전처럼 '모스크바 통신'을 올리거나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폭력에 대하여>를 모스크바에서 만난 반가움 때문에 소감을 간단히 적었다. 어쩐지 이런 멘트로 마무리해야 할 듯싶다. "이상 모스크바에서 로쟈였습니다." 

11. 02. 11.  

P.S. 러시아에는 어떤 책들이 나와 있나, 혹 궁금해하실 분이 있을 듯해서 약간 덧붙이자면, 돔-끄니기를 두 시간쯤 둘러보고 받은 인상에 불과하지만, 일단 융의 책들이 많아졌다. 프로이트와 함께 심리학 서가를 꽤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푸코의 두툼한 강의록들이 연이어 출간되고 있다(왼쪽 이미지가 <주체의 해석학>이다). 프랑스 철학자들 가운데에서는 단연 푸코가 가장 높은 지명도를 갖는 듯싶다. 그리고 헌팅턴이나 후쿠야마 등 미국 학자/논객의 책이 다수 눈에 띄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은 거의 대부분 번역돼 있는 듯 싶지만, 정점은 지난 듯하고 <1Q84>도 아직 소개되지 않은 상태다(대신에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이 여럿 번역돼 있어서 이채로웠다. 러시아에서도 붐은 타는 듯하다). 러시아문학 작품과 연구서는 생각만큼 늘지 않았고 눈에 띄는 책도 별로 없었다. 러시아 학자의 책으론 바흐친 전집의 4-1, 4-2권이 출간됐는데 모두 그의 <라블레>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로트만과 우스펜스키의 서신 교환집(오른쪽 이미지)이 개인적으론 눈길을 끌었다. 다른 서점도 좀더 다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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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12 02: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2-12 03: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2-12 11: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2-12 15: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헌내 2011-02-12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러시아 가 계신가 보군요..^^

로쟈 2011-02-12 15:37   좋아요 0 | URL
흠, 대외비인데요.^^

푸른바다 2011-02-12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러시아에서도 책을 사시는군요.^^ 바타이유, 바타유의 혼용은 어떤 의도가 있으신 건가요?

로쟈 2011-02-12 15:37   좋아요 0 | URL
쓰다 보니 혼용이 되네요. 책이 두 종류로 나와 있어서요. 저는 어느쪽이건 통일해주면 좋겠다는 입장입니다. 러시에서도 물론 책은 사지만, 어지간하면 2만원 안팎이라 '재미'는 없습니다.^^;

2011-02-12 15: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2-12 15: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Kitty 2011-02-12 1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모스크바 가셨군요! 치안은 괜찮은거죠?
작년에 모스크바 가려다가 무서워서 ㅠㅠ 행선지를 바꿨거든요.
언젠가 꼭 가보고 싶네요. 건강하게 일정 마치고 돌아오세요~

로쟈 2011-02-13 14:19   좋아요 0 | URL
좀 위험한 곳이긴 하죠. 느닷없이 테러나 폭력 사건이 터지니까요. 사람들 표정도 무뚝뚝한 편이고요. 그래도 고풍의 외관은 화려하고 아름답습니다. 처음 온 친구들이 그렇게 말해주네요.^^

hikrad 2011-02-13 0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러시아의 서점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네요.
<임상의학의 탄생> 러시아어본 사진도 보고 싶구요^^

로쟈 2011-02-13 14:17   좋아요 0 | URL
러시아 서점이라고 특별하진 않습니다. 푸코의 책은 많이 나와 있는데, 2-3만원씩 해서 사들고 갈 엄두가 안 나네요. 여기도 인터넷서점이 더 저렴할 때가 있구요. <임상의학의 탄생>은 작년에 나왔는데, 252쪽의 슬림한 책입니다. 기회가 되면 사진도 올려놓을게요.^^

람혼 2011-02-13 0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러시아의 로쟈님! ^^ '모스크바 통신'은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어놓으셨지만, 왠지 예전의 그 '모스크바 통신' 글들이 그리워지기도 하는군요. 당연히 쓰면서 예상하셨겠지만, 저로서는 바타이유의 러시아어 판본들에 가장 먼저 관심이 갑니다. 좋은 시간 보내고 돌아오시길!

로쟈 2011-02-13 14:14   좋아요 0 | URL
그땐 인터넷 사용이 불편해서 '길게' 쓸 수밖에 없었으니 지금하곤 사정이 좀 다르죠. 실시간을 인터넷을 하다 보니, 러시아 같지가 않아요.^^;

유형원 2011-08-30 1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로쟈님~ 지금 모스크바에서 어학연수중인데 비블리오 글로부스에 О НАСИЛИИ있어요 ^^

유형원 2011-08-30 1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참, 그리고 1Q84는 6월인가 7월에 발간되어서 곳곳에서 쌓아놓고 파는 모습을 목격했습니다 ))
 

독서대학 르네21이 3주년을 맞는다. 청소년 독서 지원사업을 더 확대한다는 소식이다. 르네21의 신학기 인문강좌도 소개할 겸 관련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서울신문(11. 02. 11) “책 통해 빈곤 청소년에 희망 쏠 것” 

인문학 책 읽기가 유행이다. 대학생들도 읽고 회사 사장님들도 읽고 직장인들도 읽고 노숙자들도 읽는다. 하지만 무엇을 읽어야 할지, 책과 어떻게 소통해야 할지를 혼자서 깨우치기란 여전히 쉽지 않다. 특히 입시에 치이는 청소년, 그중에서도 저소득층 청소년이라면 인문학에 대한 접근 자체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인문 강좌 사업과 풀뿌리 독서 모임 활성화를 표방하며 2008년 3월 문을 연 ‘독서대학 르네21’은 올해부터 빈곤 청소년 도서 지원 등 그룹 독서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대한성공회 신부인 김한승 르네21 운영위원장은 9일 기자간담회를 갖고 “지난해까지 시범적으로 ‘희망의 인문학’ 사업을 운영해본 결과, 그룹 독서를 통해 성찰과 소통을 경험하게 된 학생들의 자아 존중감이 향상되는 성과를 이뤘다.”면서 “또한 책을 무상으로 지원해 ‘나만의 책’을 갖도록 하는 것이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경험과는 또 다른 의미가 있음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올해부터 서울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지원을 받아 7개 기관 50여명의 학생들에게 모두 37권의 책을 무상 지원할 예정”이라면서 “단지 지식을 늘리는 독서가 아니라 책을 통해 자신과 타인의 삶을 사랑하고 존중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가출 청소년 재활 쉼터, 지역 아동센터, 마을 도서관 등 빈곤 청소년을 보호하고 있는 다양한 시설에 우선 지원되며, 점차 규모를 늘리는 한편 연령대를 낮춰 저소득 가정의 아동, 영유아로 넓혀갈 예정이다.

문제는 르네21이 대한성공회와 한국출판인회의가 공동 운영하는 비영리 시민 문화교육 기관이라는 점이다. 3년 동안 수요인문강좌, 금요대중강좌 등 80개의 강좌를 통해 2000여명의 수강생을 배출했지만 연 3억원이 넘는 예산의 절반 이상에 해당하는 금액이 적자로 돌아온다.

김 운영위원장은 “사업이 확대되어 가는 상황에 맞게 맞춤형 후원을 조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구체적인 후원 방법 등은 르네21 홈페이지(www.renai21.net)를 통해 문의할 수 있다.(박록삼기자) 

11. 02. 10.  

P.S. 르네21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에는 매주 수요일 저녁에 열리는 '인문교양교실'도 있는데, 2011년 1학기에는 인상파 회화(이택광), 러시아 문학(이현우), 그리스 비극(김기영)을 주제로 한 강의가 16주간 진행된다(http://www.renai21.net/lecture/item.php?it_id=1294633166). 내가 맡은 러시아 문학쪽은 5주간 다섯 명 작가의 대표작을 감상하는 내용이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참고하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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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10 14: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2-10 16: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herenow 2011-02-10 15:16   좋아요 0 | URL
여기 교양강좌를 들어본 적이 있는데, 이만큼 적자인줄은 몰랐네요.
이번엔 로쟈님도 강사로 나오시는군요. ^ㅅ^
덕분에 더 많은 분들에게 르네21이 알려지게 되면 좀 나아지겠죠? (그랬으면...)


로쟈 2011-02-10 16:13   좋아요 0 | URL
네, 그렇게 적자라면 오래 운영하긴 어려운 게 아닐까도 싶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