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아내가 여러분을 배신한다면"

오늘자 한겨레의 '로쟈의 번역서 읽기'를 옮겨놓는다. 체호프의 단편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에 대한 '해럴드 블룸의 읽기'를 바탕으로 적은 글이다. 번역본은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열린책들), <강아지를 데리고 다니는 귀부인>(고려대출판부), <사랑에 관하여>(펭귄클래식코리아)에 실린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등을 참조했다. 참고로 국내에 소개된 체호프 단편집은 이 작품을 포함하고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두 종류로 나뉠 수 있다.

 

한겨레(11. 06. 11) '중년의 불륜’ 그린 체호프 소설, 실은 자기 이야기?

인생은 아름다운가? 체호프적 자세라면 거의 언제나 아름다울 법하다. “만약 아내가 여러분을 배신한다면 아내가 배신한 것이 조국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뻐하십시오”(<인생은 아름다운 것>)라는 게 이 러시아의 유머작가가 건네는 충고다.

그런 사고의 전환이 잘 안된다면 안톤 체호프의 가장 유명한 단편의 하나인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의 주인공을 따라 바닷가 벤치에 앉아보는 것도 좋겠다. 여자들을 ‘저급한 인종’이라고 부르지만 정작 여자들이 없으면 이틀도 살지 못하는 중년의 바람둥이 구로프는 휴양지 얄타에서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안나를 만나 한번 더 수작을 걸고 잠시 연인이 된다. 안나와 함께 바닷가 벤치를 찾은 그는 드넓게 펼쳐진 풍경을 바라보며 무심하게 반복되는 파도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우리 개개인의 삶과 죽음에 대한 그 완전한 무관심이 그에게 깊은 인상을 준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은 한마디로 유부남 은행원과 젊은 유부녀 사이의 사랑 이야기이다. 휴양지에서의 짧은 만남 이후에 안나는 눈물을 지으며 남편이 있는 곳으로 떠나고 구로프는 모스크바로 돌아온다. 구로프는 여느 여인들처럼 안나도 잊힐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그녀에 대한 기억은 더욱 생생하게 떠올라 그를 괴롭혔다.

누구에게라도 자신의 추억을 털어놓고 싶은 마음에 그는 같이 카드놀이를 했던 관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얄타에서 얼마나 매혹적인 여자와 사귀었는지 아신다면 깜짝 놀랄 겁니다!” 하지만 흘려들은 상대방의 대꾸는 이랬다. “당신 말이 맞았어요. 지난번의 그 철갑상어는 맛이 좀 갔어요!” 흔하게 주고받는 말이었지만 그의 말은 구로프를 화나게 했다. 주변의 모든 것이 야만적으로 보이기 시작하고 은행일도 지겨워졌다. 아무 데도 가고 싶지 않았고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결국 그는 안나가 사는 도시로 무작정 찾아가고 오페라극장에서 그녀와 재회한다.

안나가 가끔씩 모스크바에 오는 걸로 두 사람의 밀회는 다시 이어지지만, 매번 눈물짓는 안나를 보면서 구로프는 자신이 처한 딜레마를 생각한다. 맙소사, 흰머리가 나기 시작한 지금에서야 진정한 사랑에 빠지다니!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좀더 기다려보면 어떤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이고 그땐 분명 새롭고 멋진 생활이 시작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동시에 이제야 겨우 아주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 시작됐다는 사실도 두 사람에겐 분명했다. 



체호프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거기까지다. 줄거리만 보자면 흔하디흔한 불륜담이고, 특별할 건 하나도 없는 인물들이 주인공이다. 저명한 비평가 해럴드 블룸에 따르면 “그는 바람둥이 중 한 사람일 뿐이고, 그녀는 눈물짓는 여인 중 한 사람일 뿐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독자는 이 두 주인공에 대해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알지 못한다. 그것은 두 사람의 일상적인 이야기가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고리키의 평에 따르면, 체호프는 “따분한 일상의 희미한 바다에서 비극적 유머를 드러낼 수 있는 작가”였다. 그런 따분한 일상 속에 잠겨 있는 인간 존재의 진실을 발견하는 일은 셰익스피어조차도 하지 못한 일이었으며 그것이 체호프의 가장 위대한 힘이라고 블룸은 말한다. 더불어 교묘하게 바꿔놓긴 했지만 구로프란 인물이 체호프 자신의 패러디라는 의견도 피력한다. 아닌 게 아니라 <개를 데니고 다니는 부인>은 건강이 악화되던 체호프가 모스크바예술극장의 여배우 올가 크니페르와 사랑에 빠진 시기에 쓴 작품이었다. 그러니 체호프에게도 인생은 아름다웠다. 다만 체호프식으로. 

11. 06. 11.   

P.S. 기사의 제목이 '중년의 불륜’ 그린 체호프 소설, 실은 자기 이야기?'라고 나갔는데, 노파심에서 적자면 비록 '자기 이야기'라 하더라도 '중년의 불륜'은 체호프와 무관하다(교묘하게 바꿔놓았다는 건 그런 의미에서다). 모스크바예술극장의 <갈매기> 공연을 계기로 그가 크니페르를 만난 것은 1898년이며 미혼이었던 두 사람은 1901년에 결혼한다. 그리고 1904년에 체호프는 지병인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난다. 체호프는 작품에 작가 자신의 모습이 반영되는 걸 극도로 꺼렸지만, 블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흔적을 이렇게 읽어낸다.  

사랑에 빠진 체호프는 스스로의 모습을 <갈매기>의 트리고린에 빗대어 풍자했고, 구로프는 그보다 더 뒤틀린 자신에 대한 풍자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구로프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며 안나가 눈물을 그치기를 바란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를 내칠 수는 없다. 그것은 바로 우리 이야기이기 때문이다.(<해럴드 블룸의 독서기술>, 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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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은 무엇이었나

한국전쟁에 관한 책을 몇종 소개하면서 주요 저작 가운데 빠트린 책이 있는데, 박명림의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1,2>(나남, 1996)이 그것이다. 책은 구입했지만 아직 페이지는 넘겨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한국 1950: 전쟁과 평화>(나남, 2002)도 눈독을 들이고 있는 책이다. 한국전쟁에 관한 보다 온전한 그림을 그려보기 위해서는 반드시 참고할 필요가 있기에.

 

하지만 그보다 먼저 구입한 책은 최근에 나온 <역사와 지식과 사회>(나남, 2011)이다. '한국전쟁 이해와 한국사회'가 부제. 한국전쟁 연구를 갈무리하면서 이에 관한 저자의 학문적 온축을 그대로 보여준다. 책은 오늘 받았는데, 책장을 넘기기 전에 먼저 인터뷰기사를 찾아서 옮겨놓는다. 

한겨레(11. 05. 08) 한국전쟁 연구, 지성사 되다

한국전쟁은 우리의 현재에 영향을 줬던 모든 사건들 가운데 가장 결정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전쟁이 초래한 피해의 규모를 넘어, 두 한국이 아직도 겪고 있는 분단과 대결이라는 현실과 따로 떼어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집중적으로 연구가 이뤄졌어야 하는 분야지만, 오히려 체제 경쟁의 틈바구니 속에서 이념에 휘둘렸던 역사가 있었다. 



한국전쟁 연구의 대가로 꼽히는 박명림(사진) 연세대 교수가 한국전쟁에 대한 연구의 흐름, 곧 한국전쟁 학지사(學知史)를 정리한 책을 펴낸다. <역사와 지식과 사회-한국전쟁 이해와 한국사회>(나남 펴냄)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단순히 연구 경향의 흐름만 나열하지 않고 학문과 사회가 어떤 관계에 놓여왔는지 또한 앞으로 어떤 관계를 추구해야 하는지 등을 탐구한 책이다.

박 교수가 분석의 대상으로 삼는 시기는 주로 1980년 ‘광주항쟁’ 때부터 최근까지 30년이다. 이전 한국전쟁 연구는 주로 무비판적 냉전반공주의의 영향 아래에 놓여 있었고, 광주항쟁을 겪은 80년대에야 ‘인식의 전환’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당시 폭발한 현대사 연구에 대한 관심의 밑바탕에는 민족과 민중을 내세운 ‘운동’의 흐름이 있었다. 다만 민족해방이냐 민중민주냐 등 노선마다 필요에 따라 ‘꿰어맞추기’식으로 역사를 풀이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박 교수는 “80년대 국내 연구에서 가장 뒤처진 부분은 역시 관심의 제고와 시각 전환을 넘는 사실의 발굴과 정리, 이론과 방법의 영역이었다”고 말한다. 급진주의적 시각으로 이뤄진 연구들이 나타났지만, 과거 반공주의를 대체할 정도로 객관적 평가를 받은 단독연구는 없었다는 것이다.  



한국전쟁 연구의 수준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린 것은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이었다. 커밍스는 미국 비밀자료와 북한 노획문서 등 폭넓은 자료 발굴로 연구 주제와 시기, 영역을 대폭 확장했고, 미국에 대한 급진적 비판을 통해 기존의 친미-반공주의적 연구 접근법에서 탈피했다. 당시로선 획기적이었다. 학제적·융합적 연구의 시작을 열기도 했다.

급진구조주의적 관점에서 이뤄진 커밍스의 연구는 한국전쟁 연구에 질적 도약을 가능하게 했지만 한계 또한 존재했다고 한다. 한국전쟁의 원인을 한국 사회의 내적 모순에서 찾고 한국전쟁에 대해 김일성-스탈린-마오쩌둥의 합의된 전략을 간과했다거나, 미국의 개입에 대한 강한 비판을 앞세운 나머지 북한 체제에 대한 비판 지점들을 놓치는 모습도 보였다.

그 뒤 현실사회주의 붕괴라는 또 한 차례의 전환을 통과하며, 한국전쟁 연구는 이념의 영역에서 크게 벗어날 수 있었다는 것이 박 교수의 풀이다. 인물과 마을 연구 등 세세한 차원에까지 연구가 세밀화됐고, 전통주의니 수정주의니 하는 낡은 틀은 큰 의미를 갖지 못하게 됐다는 것이다. 다만 박 교수는 “한국전쟁 연구가 보편의 광장으로 나아가려면, 철학적이며 해석적인 문제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한국전쟁이 남긴 유산은 평화와 인권을 어떻게 이룰 것이냐의 문제로 이어져야 하며, 이념적 굴레가 벗겨지는 최근에야 보편적 인간의 문제로서 한국전쟁 연구가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한 일간지는 이 책의 출간에 대해 “박명림 교수가 친북에 빌미를 제공했던 브루스 커밍스를 강도 높게 비판한다”며, 커밍스 연구의 한계를 지적한 부분을 부각시켜 보도했다. 이에 대해 박 교수는 “아직도 학문을 이념으로 재단하는 경향이 남아 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책머리에서 박 교수는 “언론이 주도하는, 사실보다 주장을 우선하고 진실보다 이념을 우선하는 현상은 이제 병리적 수준”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최원형 기자) 

11. 06. 09.    

P.S. 말미에 언급된 '한 일간지'는 중앙일보이다. 아예 '박명림 VS 커밍스'의 구도로 프레임을 짰다. 인터뷰기사에서 한국전쟁을 표나게 '6.25전쟁'이라고 부르는 이유에 대해선 링크해놓은 '한국전쟁은 무엇이었나'를 참고하시길.  

중앙일보(11. 06. 03) “누가 전쟁 시작했는지 묻지 말라니…브루스 커밍스의 6·25, 북한에 면죄부” 

6.25전쟁 전문가 박명림(48) 연세대 교수가 브루스 커밍스(68) 미 시카고대 석좌교수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커밍스 교수의 대표작 『한국전쟁의 기원』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박 교수가 오는 8일 내놓을 예정인 『역사와 지식과 사회-한국전쟁 이해와 한국사회』(나남·작은 사진)에서다. 박 교수는 신간에서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이후 지금까지 30년간 6·25 연구의 흐름을 두루 살펴봤다. 그 가운데 눈에 띄는 인물은 브루스 커밍스. 책의 한 장(章)을 ‘커밍스의 성과와 한계’를 지적하는 데 할애했다. 한국 현대사 연구에 미친 커밍스의 영향이 막대함을 반영한다. 

커밍스의 영향이 학계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한국 현대사를 둘러싼 이념 분쟁의 뿌리가 그와 연관된다. 박 교수에 따르면 “커밍스는 ‘누가 한국전쟁을 시작했는가’하는 물음을 제기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는데, 이 한마디가 한국전쟁과 북한 이해에 끼친 영향은 엄청났다. 특히 80년대 사회운동과 급진 학문, 이념주의자들에게 끼친 영향은 정말 컸다. 친북주의와 반미 주사파는 이 한마디를 금과옥조처럼 삼았다”고 지적했다. 80년대 한때 커밍스의 영향을 받았던 박 교수는 “이제 커밍스 연구의 시대적 한계를 분명하게 할 때”라고 말했다. 책 출간에 앞서 그의 얘기를 들어봤다.

 -커밍스의 무엇이 문제인가.

 “민족·민중이라는 두 개의 기준에 초점을 두고 북한에 대해선 온정적이고 남한에 대해선 가혹한 비판을 가했다. 역사 서술의 객관성·균형성이 흐트러졌다. 전쟁 당시 남한과 미군의 민간인 학살은 비판하면서 북한의 학살은 간략하게 다루는 불공정성도 보였다.”

 -박 교수도 진보성향의 학자로 알고 있는데.

 “진보냐 보수냐의 문제가 아니다. 사실의 문제다. 예컨대 6·25전쟁이 남침이라는 사실은 이제 명백히 밝혀졌다. 남침을 지적한다 해서 진보가 보수로 바뀌는 것은 아니다.”

 커밍스의 책을 보면 6·25전쟁과 관련, 남침과 북침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일제시기에서부터 시작된 계급갈등이 해방 이후 더욱 증폭된 일종의 ‘내전(內戰)’으로 봤다. 이에 대해 박 교수는 “한국전쟁을 미국의 남북전쟁과 같은 내전으로 볼 수 없다. 한국전쟁의 핵심 기원인 한반도 분단은 내부 사회모순이나 계급갈등과 상관없는 국제요인에 의한 것이었기 때문”이라며 “선제공격을 감행한 북한에 면죄부를 주고, 북한의 독재와 폭력, 반인권 문제를 제대로 거론하지 않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비판했다. 또 “더욱 큰 문제는 소련의 깊숙한 개입이 증명된 이후에도 자신의 기본 가설을 회의하거나 수정하지 않는 것”이라며 "자신의 주장을 새로 발굴된 역사적 자료와 비교해 수정하는 지적 용기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했다.

 -80년대 커밍스의 영향을 받았고, 『해방전후사 인식』 필자로도 참여하지 않았나.

 “80년대 커밍스의 연구는 놀라운 것이었다. 한국학의 수준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그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역사는 시대의 산물이다. 커밍스 책이 나온 후 국내외 큰 변화가 있었다. 한국의 민주화, 북한의 파탄, 사회주의의 붕괴 등이다. 커밍스 책에는 이런 변화가 반영되지 않았다. 게다가 90년대 들어 옛 소련, 중국, 동구권의 새로운 문서자료가 발굴, 공개됐다. 한국전쟁이 남침이었음이 밝혀졌다. 북한의 주장을 종식시키는 계기가 됐다. 커밍스의 책은 새로운 자료들이 발견되기 전의 연구다.”

 -6·25전쟁과 북한을 분석할 때 중시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자유·인권·민주주의·평등·정의·개방 등 인간 사회가 공통으로 추구하는 보편적 가치를 중심으로 조명해야 한다. 자주·민족·통일 같은 특수과제도 중요하지만 보편적 가치보다 위에 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박 교수는 커밍스의 성과를 일정 부분 인정했다. “일제시대 사회변동, 농민의 존재조건과 인식의 문제, 지방인민위원회, 게릴라 투쟁, 토지문제, 미국의 한국정책에서의 관료 갈등 문제 등은 커밍스 이전엔 거의 다루어지지 않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6·25에 대한 최근 연구 경향은.

 “남침이냐 북침이냐의 기원 논쟁은 이제 무의미해졌다. 한국전쟁 발발 관련 학위 논문도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전쟁에 대한 기억·생활·여성의 변화 등 사회 전반에 미친 영향으로 연구가 확대된다. 과거엔 정치학 중심이었는데 최근엔 사회학·인류학·역사학·신문방송학 등 거의 전 분야로 확산되고 있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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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jpolitics 2011-06-10 09:45   좋아요 0 | URL
커밍스의 연구는 그야말로 "도약"이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네요. 그 당시 주어진 자료와 한계내에서는 최선의 연구였다고 생각되는데, 현재의 자료를 통해서, 과거의 연구를 "무비판적으로 비판"하고 재단하는 것은 학문을 하는 입장에서는 말도 안되는 것 같네요. 박명림 연구 역시 커밍스의 기초적 연구를 토대로 발전된 것인데, 모 신문사의 기자는 학문의 진보와 발전을 단순히 이념의 틀로써 한국전쟁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 참 안타깝습니다.

로쟈 2011-06-11 15:18   좋아요 0 | URL
자칭 '학자'들도 그런 태도를 보이죠...

릴케 현상 2011-06-10 17:15   좋아요 0 | URL
정말 중앙일보 기사 읽고 좀 황당했던 기억이 나네요--

로쟈 2011-06-11 15:19   좋아요 0 | URL
<6.25전쟁의 재인식> 같은 책은 그런 태도의 '학술판'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11-06-11 20:31   좋아요 0 | URL
중앙일보는 올해 한국현대사 교과서를 고쳐야 한다는 캠페인을 광범위하게 벌였습니다.그 결과 국사편찬위원회의 이태진 씨가 건국의 성과를 내세울 수 있는 자부심을 고취하는 방향으로 고쳐야 한다는 화답을 받아냈고 교과서포럼 인사들이 또다른 보수인사들을 추가해서 한국현대사학회를 5월에 결성했죠.중앙일보는 이런 흐름을 주도한 데 대해 상당한 자부심이 있더라고요.그러니 박명림 씨와의 인터뷰 기사도 저런 식으로 쓴 거죠.
이태진 씨도 해방 이후사에 대해선 중앙일보나 교과서 포럼 쪽의 흐름과 동일하다고 봐야죠.

로쟈 2011-06-13 08:49   좋아요 0 | URL
결과적으론 박정희 재평가를 위한 사전포석일 거란 분석이 있더군요....
 

간행물윤리위원회의 월간 소식지 책&(395호)에 실은 주제별 도서소개를 옮겨놓는다. 이달의 주제는 '한국전쟁'이었고, 요령껏 그림을 그려보았다. 애초엔 3권의 책에 대한 소개가 될 예정이었지만 이것저것 뒤적이다 보니 몇권 더 언급하게 됐다. 거기에 직접 언급하지 않은 책의 이미지도 몇권 더 추가했다. 아울러 지면에는 빠졌지만 병기된 책의 출간연도는 살려놓았다.

  

책&(11년 6월호) 역사가 돼가는 전쟁

한국전쟁은 무엇이었나? 해마다 6월이면 던져지는 질문이고, 이에 답하는 굵직한 저작들도 다수 출간돼 있다. 가장 많이 읽히는 책으로 박태균의 <한국전쟁>(2005)이 입문서 역할을 해준다면, 정병준의 <한국전쟁>(2006)은 방대한 자료섭렵을 통해서 ‘한국전쟁’뿐 아니라 ‘한국전쟁 연구’에 대한 조감도 구실을 한다. ‘전쟁의 개전․성격․형성’보다도 ‘한국전쟁사의 역사’가 먼저 다뤄지는 이유다. 실상 휴전 이후에도 두 세대가 지나면서 한국전쟁은 우리에게 ‘경험’이 아니라 ‘역사’가 돼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전쟁에 대한 이해도 경험의 증언보다는 자료의 발굴․공개와 조사․연구에 더 많이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병준에 따르면 한국전쟁 연구는 두 차례의 전성기를 맞았었다. 기본적으로는 모두 전쟁 당사국들의 자료 공개 상황과 밀접하게 관련되는데, 첫 번째는 1970년대 중후반 미국측 자료가 공개됨으로써 이루어진다. 비밀문서들이 대량으로 비밀 해제되어 공개됐고 이 자료들에 근거해 출간된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1, 2>(1981, 1990)는 기념비적인 업적으로 평가된다. 커밍스는 연구대상을 남한과 북한 외에 미국으로 확대했고 1950년 6월 발발의 원인에 초점이 맞춰진 기존의 연구 시야를 1945-50년 남북한 내부 정치상황으로 확장했다. 그로써 커밍스는 ‘냉전의 소련주도설’을 핵심으로 하는 전통주의 해석에 반대하여 미국의 책임을 강조하는 수정주의적 시각을 제시했지만, 그의 작업은 접근자료의 제한에서 비롯된 한계도 갖고 있었다. 구소련 문서들이 1990년대 초중반에야 공개됐기 때문이다. 1970년대 미국 자료의 공개가 미국의 책임을 부각시켰다면 1990년대 소련 자료의 공개는 반대로 소련 또한 상당한 책임을 지고 있음을 증명해주었다.   

한국역사연구회 현대사분과에서 펴낸 <역사학의 시선으로 읽는 한국전쟁>(2010)에 실린 기광서의 ‘한국전쟁 속의 스탈린’은 소련측 자료를 통해서 알 수 있는 스탈린의 입장과 역할을 정리해준다. 당초 북한 지도부의 무력통일 방침에 대해 스탈린은 줄곧 반대의사를 표명했지만 1950년 봄 김일성과 박헌영의 모스크바 방문시 입장을 바꾼다. 입장 변화의 계기는 네 가지로 간추려지는데, 중국혁명의 성공으로 국제적으로 유리한 환경이 조성됐고, 필요시 중국군의 파병이 가능하게 됐으며, 중․소동맹 체결로 미국의 개입 가능성이 줄어들었고, 원자폭탄 개발로 소련이 고무된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스탈린은 대외적으로는 ‘전쟁 불개입’, 즉 공개적 개입 금지 입장을 전쟁기간 동안 견지했다. 중대한 정책적 오류로 판명이 나지만, 안전보장이사회 불참 결정도 북한과 전쟁을 공모했다는 인상을 주지 않으려는 계산이 앞섰던 것으로 해석된다. 그렇지만 비록 전쟁의 주도권을 행사하진 않았더라도 전쟁기간 내내 스탈린은 ‘사회주의 모국의 수령’으로서 북한과 중국에 대해 ‘총지휘자’의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평가된다. 승리의 가능성이 희박해지면서 북한과 중국으로선 ‘무의미한’ 전쟁의 휴전협상이 장기화된 것 역시 유리한 조건을 고집한 스탈린의 완고한 입장 때문이라는 게 필자의 견해다.       

러시아의 구소련 문서 공개 이후로 후기수정주의 혹은 신수정주의적 접근이 본격화되지만 그에 걸맞은 연구성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는 게 정병준이 <한국전쟁>에서 내리는 평가다. 게다가 러시아는 1950년부터 6월말까지 한국전쟁 개전 준비․발발과 스탈린의 역할과 관련한 핵심 문서들을 아직 공개하지 않고 있기에 한국전쟁은 드러난 진실만큼이나 감추어진 수수께끼를 갖고 있다. 더불어 북한과 중국측 기밀문서도 아직 공개되지 않은 상황이기에 한국전쟁에 대한 이해는 여전히 보완될 여지를 많이 남겨놓고 있다. 물론 새로운 자료가 등장한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학자들 간에도 전쟁에 대한 시각차가 너무 뚜렷해서 전쟁의 명칭 자체에서부터 의견이 엇갈리기 때문이다.    

김학준은 <한국전쟁>(2010)에서 국제사회에서는 ‘the Korean War’라는 명칭이 통용되는 편이지만 이것을 바로 ‘한국전쟁’이라고 옮기는 것은 곤란하다고 말한다. 과거 ‘6.25사변’ 혹은 줄여서 ‘6.25’라고 부른 대로 북한이 전면남침한 전쟁 개시일을 부각시켜 이 ‘코리아의 전쟁’은 ‘6.25전쟁’으로 지칭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신전통주의에 가깝다는 이러한 견해는 보수주의 학자들의 공통적인 견해이기도 한데, <6.25전쟁의 재인식>(2010)에서 제시하는 이유는 조금 더 명쾌하다. 미국과 ‘함께’ 싸운 전쟁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전쟁’이란 말은 자칫 미국이 한반도에서 한민족과 ‘맞서’ 싸운 전쟁으로 오해될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와 함께 싸운 건 미국만이 아니었다.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의 강뉴부대도 유엔군의 일원으로 낯선 땅에서 피를 흘렸다. 1954년에 출간된 <강뉴>(2010)는 6,037명이 파병돼 124명이 전사한 강뉴부대의 한국전쟁 참전기이다. ‘한국전쟁은 무엇이었나’란 질문이 한국인만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알게 해준다. 

11. 06. 09.  

P.S. 한국전쟁 관련서를 모으다가 범위가 좀 확장돼 아예 전쟁과 전쟁사에 관한 책들도 사들이고 있는데(최근에 구입한 것만 해도 20권 가까이 된다), 오늘 배송받은 것은 다케나카 치하루의 <왜 세계는 전쟁을 멈추지 않는가?>와 김동춘의 <미국의 엔진, 전쟁과 시장>, 그리고 후안 고이티솔로의 <전쟁의 풍경> 등이다. 전쟁의 이모저모를 짚어주고 있어서 모두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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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국전쟁 이해와 한국사회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1-06-09 23:26 
    한국전쟁에 관한 책들을 몇종소개하면서 주요 저작 가운데 빠트린 책이 있는데, 박명림의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1,2>(나남, 1996)이 그것이다. 책은 구입했지만아직 페이지는 넘겨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한국 1950: 전쟁과 평화>(나남, 2002)도눈독을 들이고 있는 책이다.한국전쟁에 관한 보다 온전한 그림을 그려보기 위해서는 반드시 참고할 필요가 있기에. 하지만 그보다 먼저 구입한 책은최근에 나온 <역사와 지식과
 
 
꼬마요정 2011-06-09 23: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쟁은 참혹해요. 그 중에서 한강 다리 끊고 도망간 이승만이 생각나는군요. 어쨌거나 이 전쟁으로 가장 큰 이득을 본 건 일본이겠구요..

로쟈 2011-06-11 09:42   좋아요 0 | URL
그런 이해관계가 생기기에 전쟁은 계속되는 거겠죠...

그림자놀이 2011-06-10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시 민간학살 문제를 주로 다룬 김동춘의 <전쟁과 사회>(돌베게, 200)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로쟈 2011-06-11 09:43   좋아요 0 | URL
네, 빼놓을 수 없는 책입니다. 작년에 나온 책 3권에 초점을 맞추려던 글이어서 빠진 책들이 많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11-06-11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정주의(이 용어도 좀 이상합니다만 관례대로 하겠습니다)가 우리의 사상을 오염시켰다고 비분강개하는 이들이 있지만 실제로 80년대에 번역된 수정주의학파로 분류되는 책들 중 현재 절판 안 된 것은 커밍스 것밖에 없습니다.나머지는 다 절판되었고요.

로쟈 2011-06-13 08:50   좋아요 0 | URL
그런 거 저런 거 이전에 전쟁에 대한 관심 자체가 만료된 듯싶습니다...
 
신자유주의 권력의 계보학

기획회의(297호)에 실은 리뷰를 옮겨놓는다. 사이토 준이치의 <자유란 무엇인가>(한울, 2011)를 만지작거리다가 아예 그의 <민주적 공공성>(이음, 2009)과 같이 다루게 됐다. 저자의 문제의식 정도를 간추렸다.   

  

기획회의(11. 06. 05) 자유는 사적인 문제가 아니다

인문서의 한 갈래가 ‘인문서를 읽기 위한 인문서’라면 사이토 준이치의 <자유란 무엇인가>(한울, 2011)는 그쪽으로 분류할 수 있는 책이다. 자유론의 현재적 쟁점이 무엇이며 어떤 주장들이 서로 경쟁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 이 ‘가이드북’의 역할이다. 원저는 일본의 이와나미출판사가 기획한 ‘사고의 프론티어’ 시리즈 가운데 하나로 나온 <자유>(2005). 저자의 책으론 국내에 먼저 소개된 <민주적 공공성>(이음, 2009)에 뒤이어 두 번째로 나온 것이다. 이 <민주적 공공성> 또한 같은 시리즈의 <공공성>(2000)을 옮긴 것이다. ‘공공성’과 ‘자유’에 대한 관심이 저자에겐 병행적이거나 연속적이라는 걸 짐작케 한다.   

‘하버마스와 아렌트를 넘어서’란 부제를 단 <민주적 공공성>의 키워드는 당연히 ‘공공성’이다(하버마스의 <공론장의 구조변동>을 바로 떠올리게 한다). 한데 일본에서도 이 말은 국가가 사용하는 말, 즉 일종의 관제용어였다가 새로운 의미를 얻게 된 건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에, 그러니까 책이 쓰인 시기를 고려하면 2000년대 초반 들어서 ‘공공성’ 혹은 ‘공공권(公共圈)’이란 제목을 단 책들이 출간되고 대학에서는 ‘공공철학’ 강좌가 개설되고 하는 식으로 붐을 이루고 있다고 전한다. 저자에 따르면 그것은 국가가 ‘공공성’을 독점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의 확산과 맞물린 현상이다.   

우리는 어떤가. 한국어판에 부친 서문에서 그는 “한국사회는 어떠한지 궁금합니다”라고 적었는데, 사정이 좀 다르다고 해야겠다. <민주적 공공성>이란 책 자체도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으며(그 점에선 <자유란 무엇인가>도 마찬가지인 듯싶다), 공공성이란 말도 일본만큼 널리 쓰이지 않는다. 드물게도 ‘공공성’을 제목에 달고 나온 조한상의 <공공성이란 무엇인가>(책세상, 2009)에서 저자가 ‘공공성과 시민사회’ ‘공공성과 국가’ ‘공공성과 언론’ 등을 각 장의 제목으로 삼고 있는 데서 알 수 있듯이 한국에서 공공성의 초점은 아직 국가나 언론(미디어)에 두어져 있다. 반면에 <민주적 공공성>은 공공성에 대한 ‘재정의’를 통해서 문제의 지형을 ‘시민사회와 공공성’ 쪽으로 옮겨가고자 한다. 이러한 재정의와 새로운 관심을 우리도 공유할 필요가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정체(政體)가 ‘민주공화국’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헌법 제1조에 명시돼 있듯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하지만 박명림 교수와 함께 ‘공화국을 위한 열세 가지 질문’을 던지고 있는 <다음 국가를 말하다>(웅진지식하우스, 2011)에서 김상봉 교수는 ‘공화국’이 이 땅에서 한 번도 실현된 적이 없다고 말한다. ‘민주국가’와 ‘공화국’은 서로 다른 정치적 범주인바, “민주국가가 모두에 의한 나라라면 공화국은 모두를 위한 나라”이다. 공화국은 의사 결정의 형식이 아니라 그 내용이 모두를 위한 것일 때 붙일 수 있는 이름이다. 그 말은 공화국이란 나라가 소수 권력집단이 사익이나 챙기는 기구가 아니라 ‘공공적 기구’라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공공성과 공화국의 정신이 빠진다면 민주주의는 ‘내용 없는 형식’, 곧 껍데기로 전락한다(이명박 정부의 대한민국은 공화국인가 껍데기인가?). 우리는 아직 민주국가에서 공화국으로 가는 여정에 있는 셈이다.  

<다음 국가를 말하다>에서 두 저자는 이 공화국으로의 여정에서 같이 고민해볼 문제들을  제시하고 있지만 거기에 ‘자유’는 포함돼 있지 않다. 자유와 공공성을 나란히 다루지 않는 것은 자유가 ‘공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사적인 것’이라는 암묵적인 전제를 깔고 있어서가 아닌가 싶다. 반면에 공공성에 대한 사이토 준이치의 논의는 ‘자유’에서 출발한다. 자유가 출현했다는 것은 자유가 출현할 수 있는 공공적 공간을 창조하기 시작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한나 아렌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함께 먹는 식사 때마다 자유도 합석하도록 초대받는다. 비록 의자는 빈 채로 있지만 자리만큼은 마련되어 있다.”(<과거와 미래 사이>)   

아렌트를 따라서 사이토는 공공적 공간이 두 가지 정치적 가치와 연계돼 있다고 말한다. 그 하나가 ‘자유’이고, 다른 하나가 ‘배제에 대한 저항’이다. 아렌트적 의미에서 자유는 공공적 공간, 즉 공공성을 전제로 한다. 반면에 ‘사적(private)’이란 말은 타자의 존재가 박탈됐다는 뜻이다. 자신의 행위와 의견에 대해 응답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이 공공적 공간이기에 타자의 부재․박탈은 곧 자유를 위한 장소의 박탈을 의미한다. ‘행위할 권리’와 ‘의견을 피력할 권리’를 위한 장소의 박탈이다. 따라서 아렌트에게서 사적인 삶과 자유는 양립할 수 없다. 자유에 대한 이러한 관점은 근대적 의미의 자유, 흔히 ‘간섭의 부재’로 정의되는 ‘소극적 자유’에 대한 옹호와 대비된다.   

<자유란 무엇인가>에서 사이토 준이치가 자유론의 출발점으로 검토하는 것이 이사야 벌린의 소극적 자유론이다.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의 구분은 벌린의 유명한 논문 ‘자유의 두 개념’(1958)에 근거하는데, 사이토는 벌린의 사고가 자신의 시대 인식에 토대로 두고 있다고 평가한다. “통제와 간섭이 도를 넘으면 소극적 자유의 개념이 우세해지고, 거꾸로 방임적 시장경제가 위세를 떨치면 적극적 자유의 개념이 우세해지는 것”이란 벌린의 주장을 그대로 그에게 돌려주자면, 나치즘과 스탈린주의라는 전체주의에 대한 기억이 아직 생생하게 남아있었기에 벌린으로선 소극적 자유를 옹호했으리라는 것이다.  

두 차례의 전쟁과 전체주의 지배를 경험한 20세기 중반 이후에는 국가 폭력이 자유에 대한 최대의 위협으로 인식되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반동으로 등장한 것이 자유지상주의였다. 하지만 20세기 후반 이후 신자유주의, 곧 ‘방임적 시장경제’ 하에서 사정은 바뀌었다. ‘정치적인 것’(국가)과 ‘사회적인 것’(고용보장이나 사회보장)이 ‘경제적인 것’에 의해 지속적으로 식민화되고 있는 것이 그간의 경과이다. 국가의 활동영역이 후퇴한다고 해서 저절로 개인의 자유가 신장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의 경험은 말해준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정치적인 것’, ‘사회적인 것’, ‘경제적인 것’ 사이의 새로운 관계에 대한 구상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자유를 사적인 문제가 아닌 공공적 문제로 재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소극적 자유에 대한 비판에서 자유와 공공성의 연계로 주장을 전개해나가는 저자의 결론은 충분히 동의할 만하다.  

“우리 모두가 함께 자유를 누리기 위해 거부해야 할 것은 타자에 의한 간섭 일반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들 사이의 교섭을 미리 불필요한 것, 위험한 것, 그리고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으로 간주하는 사상과 행동이다.”  

11. 06.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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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어두운 시대의 공공철학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1-06-08 20:34 
    경향신문의 '문화와 세상' 칼럼을 옮겨놓는다. 오전에 잠시 궁리해보다가 공공철학을 소재로 쓰게 됐다. 최근에 자유와 공공성을 주제로 한 책들과 <아렌트 읽기>(산책자, 2011)등을 들춰본 탓이다.한겨레에 이어서 경향에서도 필명이 '로자'라고나갔는데, '로쟈'에서 '로자'로 개명해야 할는지도 좀 생각해봐야겠다...경향신문(11. 06. 07) 공공철학, 광장, 촛불“지금 인터넷에서 ‘공공철학’을 검색해 보면 수많은 관련 사이트가 눈에 띕니다.
 
 
2011-06-11 22: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6-13 08: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근대성이냐 탈식민성이냐

방한중인 남미의 해방철학자 엔리케 두셀의 인터뷰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라틴아메리카 참여민주주의의 현주소와 새로운 민주주의의 가능성, 그리고 필요성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정보기술 발전에 따른 전자민주주의에 대한 기대가 눈길을 끈다.

 

경향신문(11. 06. 07) "남미 참여민주주의는 세계 정치의 새 경험”

우리 사회의 문제를 파악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데 있어 미국과 유럽 등 서구 학문이 중심이 돼 왔다. 마찬가지로 지난 10년 동안 중도좌파 정권이 들어서면서 변혁의 소용돌이를 겪은 라틴아메리카의 현실과 철학에 대해서도 서구 중심의 편견으로 바라본 게 사실이다.

엔리케 두셀 멕시코 국립자치대학 교수(77)는 라틴아메리카의 현실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해방철학’을 주창한 중남미의 대표적 학자다. 그가 고려대 문과대 주최로 열린 금호아시아나 해외석학 초청강좌와 심포지엄(1~3일)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했다. 그의 저서인 <1492년 타자의 은폐>(그린비)가 국내에 출간된 시점이기도 하다.

지난 4일 만난 두셀 교수는 “1999년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대통령이 집권한 ‘볼리바르 혁명’ 이후 중남미 정치지형이 급격하게 변했다”며 “이런 변화는 새로운 정치학을 통한 철학적 해석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변화는 베네수엘라에 이어 브라질, 볼리비아 등으로 중도좌파의 집권이 확산된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민중의 참여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민주주의의 시도이며, 세계 정치의 새로운 경험”이라는 것이다. 

두셀 교수는 “그동안 어떤 국가도 헌법에서 항구적으로 민중의 참여를 보장한 적은 없었다”며 “제도적으로 보장된 6만여개의 주민평의회가 각각의 의제를 심의하고 제안하는 베네수엘라의 모습에서 새로운 형태의 민주주의를 발견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차베스주의자’는 아니라고 분명히 밝힌다. 그러면서 “중요한 것은 이 모델이 실패하느냐 성공하느냐는 것이 아니라 시도 자체가 가치있고 깊이있게 분석할 필요가 있으며 21세기 정치철학에 있어서 근본적인 문제가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그가 보기에 지금까지의 대의민주주의는 민중의 참여가 반영되지 않는 시스템이다. 그러나 “베네수엘라 모델은 주민평의회가 반대하면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에서 민중의 참여를 수렴하는 제도의 창조를 통한 또 다른 차원의 국가를 만들어나갈 수 있다”고 평가한다.

이런 현실로부터 끌어낸 그의 해방적 정치철학은 “권력은 지배이며, 정치란 권력을 잡기 위한 수단”이라고 규정해 온 유럽 근대 정치철학을 부정한다. 기존 정치질서에서 배제되고 피해 입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질서와 체제 자체가 잘못됐고, 이를 바로잡기 위한 수단으로서 긍정적인 의미의 권력 개념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생각은 어쩌면 당연한 것으로 보이지만 미국이나 유럽 이론이 담아내지 못한 라틴아메리카의 현실을 바탕으로 나왔다는 점에서 무게감이 있다. 그의 관점에서 볼 때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로 벌어진 한국의 2008년 촛불집회는 “민중의 참여가 일상적으로, 항구적으로 이뤄질 수 있는 제도가 없었기에 일어난 일”이다.

한편 외부에서 중남미 상황이 포퓰리즘으로 인한 새로운 독재자의 등장쯤으로 치부되는 현실에 대해 두셀 교수는 “미국이 석유를 확보하기 위해 베네수엘라를 마음대로 조종하려는 목적으로 세계 여론을 왜곡하고 있다”고 단언한다. 중남미에 덧씌워진 ‘포퓰리즘적 복지 때문에 망했다’는 것도 편견이다.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군부독재에 반대해 75년 멕시코로 망명한 두셀 교수는 모국의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포퓰리즘의 대명사로 불리는 후안 페론 대통령은 자립적인 산업화와 내수진작 정책을 썼지만, 이를 반대한 미국 산업부르주아들이 군부쿠데타를 지원함으로써 오늘날 빈곤의 근본 원인을 제공했다”고 말한다. 군부독재 정권이 미국에서 빌린 엄청난 외채가 시민들의 몫이 됐으며, 이후 집권한 민선 정권들도 미국의 시장개방 요구를 그대로 수용한 신자유주의 정책을 펴면서 빈곤을 악화시켰다는 것이다.

두셀 교수가 볼 때 99년 이후 중남미 국가들의 정책은 “이전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그는 “세계 리튬 매장량 1위인 볼리비아에서 원재료를 수출하지 않고 충전지를 만들어 팔겠다고 하면 서방국가들은 포퓰리즘이라고 얘기한다”며 “어떤 의미에서는 푸에블로(민중)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진정한 포퓰리즘”이라고 말했다. 브라질 경제를 발전시켰다고 평가받는 룰라 전 대통령 역시 “82%의 지지를 받으며 임기를 마쳤다는 점에서 ‘포퓰리스트’이지만 이를 봐도 라틴아메리카가 포퓰리즘 때문에 망했다는 것은 맞지 않다”고 했다.

두셀 교수는 “이미 볼리바르 혁명이 미국식 신자유주의의 실패를 예견했다”고 지적한다. “중남미 국가들이 자신들의 빈곤을 불러온 신자유주의를 더 이상 신성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하고 있는 한국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지금까지 한국이 미국의 자본주의 체계를 따라서 성공했지만 미국 모델 자체가 위기에 봉착하면서 한국도 위기에 봉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멕시코는 미국과의 FTA로 인해 재난 수준의 타격을 맞았다”면서 “미국식 자본주의에 함몰되기보다 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철학을 고유한 현실과 전통으로부터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황경상기자) 

한겨레(11. 06. 08) "민중 참여 제도화는 자본주의 한계 넘는 혁명”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첨병인 세계경제포럼에 대항하고 대안을 찾겠다는 취지로 2001년 첫발을 디딘 세계사회포럼은 브라질 포르투알레그리에서 처음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포퓰리즘 딱지를 붙이긴 하지만, ‘좌파 도미노’란 이름으로 브라질·베네수엘라·볼리비아 등에 등장한 새로운 정치적 리더십도 주목받고 있다. 현실 속 실질적인 대안운동에 끊임없이 밑바탕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라틴아메리카 ‘탈식민주의’ 담론은 현재진행형이다.

아니발 키하노, 월터 미뇰로 등과 함께 대표적인 탈식민주의 학자이자 ‘해방철학’의 창시자로 꼽히는 엔리케 두셀(사진) 멕시코 메트로폴리타나 자치대 교수가 최근 고려대 문과대학, 스페인·라틴아메리카연구소, 철학연구소, 한국사회연구소 등의 초청으로 방한했다. 지난 1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만난 두셀은 “민중의 참여를 ‘제도화’하는 것이 자본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는 혁명”이라며 “발전된 전자 매체 등이 민중의 성숙과 참여를 확대하고 있는 오늘날의 현상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라틴아메리카 탈식민주의는 서구가 주도해서 만든 근대 세계가 식민지배로부터 시작됐으며, 근대성의 극복은 결국 식민성의 극복과 다름 아니라는 점에 주목한다. 특히 두셀의 해방철학은 ‘정복하는 자아’로부터 나오는 서구의 근대적 사고를 뒤집어, 가부장주의의 희생양인 여성, 종속국가, 황폐화된 지구를 상속받을 미래 세대 등 억압받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출발하는 것이 뼈대다.

두셀은 서구 정치사상의 주요 쟁점인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에 대한 비판을 통해 해방철학을 설명했다. 그는 기본적으로 정복과 지배로 나아간 서구적 보편주의를 비판하지만, 합리성·이성 등의 가치를 기반으로 전지구적 공동체를 끌어안을 수 있는 새로운 보편주의를 찾고자 한다. 특수주의로 흐르는 것은 그 어떤 보편적인 가치도 만들어낼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두셀은 인간은 계약 이전부터 이미 사회적인 존재인데, 자유주의는 인간을 고독하고 자유로운 원자로 먼저 상정한 뒤에 사회계약을 맺게 하는 오류를 저질렀다고 말했다. 원자화된 개인으로서 전쟁 상태와도 같은 자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적 소유’를 뼈대로 한 자본주의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고, 모든 교환을 자본주의 시스템으로 대체하는 물신숭배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두셀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강조해 다른 공동체들과 소통할 수 없게 만드는 공동체주의 역시 비판한다. 공동체주의는 공동체 외부에 있는 존재에 대해 차별과 배제를 휘두르게 되며, 결국 개별적인 특수주의에 머무를 뿐 결코 보편주의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에 대한 비판 속에서 두셀이 강조하는 것은 ‘국가’의 중요성이다. 여기서 국가는 근대 부르주아 국민국가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억압받고 억눌린 사람들을 위해 제도를 변화시키는” 구실을 하는 존재다. 소통하지 못하는 공동체주의는 국가의 구실을 약화시키고, 자유주의는 시장주의를 내세워 민주주의를 무력화시킨다. 두셀은 “자유주의적 민주주의는 엘리트 계층이 대표를 관료적으로 떠맡는 제도”라며 “관료 시스템, 정당이 없어지고 민중이 직접 대표가 될 수 있도록 ‘참여’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민중이란 누구인가? 두셀은 민중에게 어떠한 고정된 정체성을 부여하진 않는다. 기존 정치 시스템에서 차별받고 배제됐던 희생자들이 윤리적 가치에 따른 요구를 펼 때 그들은 민중이 된다고 봤다.

그렇다고 참여에 대한 요구가 곧바로 직접 민주주의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두셀은 “대의제 자체가 문제라는 것이 아니라, 대의제가 민중의 통제를 받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말한다. 그는 베네수엘라나 멕시코시티 등에서 이뤄지고 있는 풀뿌리 민주주의 활동 등을 사례로 들었다. 10여년 전 포르투알레그리에서 제기된 민주주의 전략에 따라 헌법을 통해 주민 자치권을 강화했던 베네수엘라에서는 이미 6만여개의 주민회의(Community Council) 기구가 만들어졌고, 이들이 예산의 결정부터 집행까지 모두 스스로 결정하고 있다고 한다. 곧 민중이 참여하는 국가가 민중을 위해 제도를 바꿔나가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두셀은 이런 변화가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미국이나 유럽의 심장부에서도 각종 비판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민중은 참여를 통해 자본주의의 한계를 인식하게 될 것이다.”

특히 두셀은 정보기술의 발전에 대해 큰 기대를 걸었다. “아랍 국가에서 일어난 혁명에 자극을 받아 스페인에서 대규모 군중집회가 일어날지 그 누가 알았겠느냐”며 “각종 전자 매체의 발달로 ‘전자 민주주의’까지 바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또 그는 “한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은 자본주의에 잘 적응했지만, 지금처럼 계속 가속페달을 밟았다가는 결국 한계에 부딪히게 될 것”이라고 충고했다.(최원형 기자) 

11. 06.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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